[ 공동체토지신탁 ]
공동체가 소유하고 가족농이 농사짓는다
유기농업의 확산과 유기농지를 보전하기 위한 움직임이 미국에서도 있다. 지역공동체의 지원에 기반한 농업(Community Supported Agriculture, CSA)과 공동체토지신탁(Community Land Trust, CTL)을 결합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온 미국 메사추세츠주의 인디안라인 농장과 케어테이커 농장에서 배울 점은 무엇일까?
지역공동체의 지원에 기반한 농업(CSA)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를 기반으로 한다. 소비자 회원들은 농업 생산자가 계속 농사지을 수 있도록 생활을 지원하고, 농업 생산자는 회원들에게 농업 생산물을 보내는 구조이다.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하지만 CSA는 주로 소규모 가족농들이 개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동체토지신탁(CLT)은 땅을 영구적으로 소유·관리하는 비영리기구이다. 공동체 전체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토지의 가치를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다. CLT는 주로 도시지역의 저소득층 주거복지 모델로 많이 활용되며 농촌지역에서 유기농지보전에도 활용되고 있다.
CLT의 독특한 특징은 토지를 개인의 소유물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세대를 대신하여 땅을 관리하는 독립된 비영리소유주인 CLT가 토지에 대한 권한을 갖는다. CLT가 토지를 소유하면 시장에 팔지 않는다. 회원들은 CLT의 토지를 임대하여 개인이나 공동체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활동 즉, 주거, 농업, 상업활동 등을 할 수 있다. CLT 토지 위에 세운 모든 시설 등은 토지와 달리 개인이 소유할 수 있다. 요약하면, CLT는 토지를 임대해 주어 토지의 사유화를 막고, 토지 위에 짓는 시설과 토지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을 개인에게 보장해 준다. 그렇게 해서 인류 공동의유산인 토지를 보호하고 토지 가치를 공유하며 개인의 노력에 대한 이익도 보장해 준다.
농지를 공동체가 소유하면 개인이 농지를 소유할 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개인이 빚을 내거나 높은 비용을 들여 농지를 매입했을 때는, 빠르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석유화학 농법과 환금성 작물재배의 유혹을 떨치기 쉽지 않다. 또한 농지전용이 쉬운 한국에서는 개인이 전환을 통해 매매수익을 얻으려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농지보전이 쉽지 않다. CLT 방식으로 농지를 공동체가 소유하면 농지 매매수익을 얻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실제농사를 짓고자 하는 사람들이 농지를 활용할 수 있고, 유기농지가 보전되는 이점이 있다.
인디안라인 농장
미국 메사추세츠주 사우스에그리먼트에 위치한 6만 8천796㎡(17에이커) 규모의 인디안라인 농장은 1986년부터 선구적으로 CSA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했다. 1999년 인디안라인 농장의 농부인 엘리자베스킨과 알렉스 소프는 뉴에코노미스인스티튜트(NEI)라는 CLT 단체와 더네이처설번시(TNC)라는 환경단체와 함께 인디안라인 농장의 농지를 매입했다.
북아메리카의 초기 CSA 농장을 보존하고 유기농 농장을 유지하고 농장과 인접한 습지를 보전하고 소규모 농업을 하는 농부들에게 적정한 가격의 농지를 제공하려는 목적이었다. CLT 단체와 환경단체와 농부들이 함께 인디안라인 농장의 땅을 샀다. 위의 네 가지 목적이 각각 CLT환경단체의 정체성과 맞물리기 때문에 각 단체들은 인디안라인의 농부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농장 보전에 동참했다.
구체적으로 농장 매입 과정을 살펴보면, 환경단체인 TNC는 농지 개발을 영구적으로 제한하는 개발제한권을 5천513만 5천원(5만 달러)에 매입하고, NEI 산하 CLT기구인 서던버크셔CLT는 1억 7천091만 8천500원(15만 5천 달러)에 농장 전체를 산뒤, 농부들에게 건물을 6천77만 5천 원(5만 5천 달러)에 사고 토지에 대한 소유권은 CLT가 영구적으로 가졌다. CLT는 농부들에겐 99년 동안 농장의 토지를 임대하는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농장의 사용을 보장해 주었다. CLT와 환경단체가 참여하여 농장 매입비용을 조달하는 방식은 농부들이 매입비용을 빨리 갚기 위해 지속불가능한 농법으로 환금성 작물 중심으로 농사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농장에서 농산물을 직접 수확하는 인디안라인 농장의 CSA 회원들. (indianlinefarm.com 갈무리>
케어테이커 농장
미국 메사추세츠주 윌리암스톤에 위치한 케어테이커 농장의 창립자인 스미스 부부는 농장을 영구히 보전하기 위해 CLT단체인 윌리엄스톤루러랜즈파운데이션(WRLF)과 메사추세츠 주정부, 케어테이커 농장에 새롭게 참여할 농부인 돈 자사다와 브릿지 스판과 함께 케어테이커 농장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시작했다.
케어테이커 농장이 영구적으로 지역공동체를 위해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도록 토지 소유권은 WRLP가 갖고, 농장은 메사추세츠주의 농업 보전 규제에 의해 보호되었다. 인디안라인 농장과 마찬가지로 농부들은 토지 99년 임대권을 가지며, 농장 안의 주택과 농업시설 등을 매입해 소유하였다.
케어테이커 농장의 토지 매입비용은 CSA 회원들이 주도한 지역 모금과 WRLF의 기금, 윌리암스톤 시의 공동체보존기금, 메사추세츠 주의 개발권 판매 수입 등으로 충당했다. 케어테이커 농장의 사례는 농지보전을 위해 농업 생산자와 비영리기구는 물론 주정부까지 함께 협업한 좋은 사례이다.
공동체·비영리법인이 개인에게 임대
유기농지보전을 위한 해외 사례에서 한국유기농지보전을 위한 여러 가지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첫째, 한국의 농지는 대부분 용도 전환 가능성이 있어 값이 매우 비싸다. 유기농사를 지으려는 농부 홀로 농지를 매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잘 조직된 지역공동체 그룹, 농부들, CSA 회원들이 토지 매입비용을 함께 조달해야 한다. 매입하면 농지를 개인소유 방식보다 생산자 공동체나 비영리법인이 소유하면서 농지를 빌려주는 임대 방식으로 운용해야 한다. 농지 임대 방식은 자금은 없지만 실제 농사를 짓고자 하는 농부들에게 유리하며, 적정한 농지 가격을 유지하는 데도 유리하다.
둘째, 한국형 유기농지 보전 모델을 구축하고 이후 유기농지를 지속적·효과적으로 운용하기 위해서 지역 농업 생산자, 환경보호단체, 지방정부, 생협 등이 참여하는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해외 사례에서 보듯이 각 단체 및 정부의 기금, 회원들이 함께 모금한다면 농지 매입비용을 그리 어렵지 않게 충당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하는 거버넌스가 생기면 유기농지 보전에 필요한 정책을 만들고 입법화하는 과정이 쉬워진다.
셋째, 유기농지 보전을 위해서 한국의 농지법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한국의 전반적인 농지 가격이 해당 농지에서 생산하는 농업 생산물보다 월등히 비싼 이유는 용도전환의 기대가격이 포함되어 있어서다. 개발 가치를 확실히 제거해 개발을 규제하는 방식으로 농지 가격의 안정화를 모색하지 않는다면, 높은 농지가격은 족쇄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농지은행제도는 기업농을 위한 제도로 전락했지만 소농과 유기농지보전을 위한 도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하고 고민할 필요가 있다.
생산 기술의 고도화와 대규모 자본집약적 산업 중심의 발전 때문에 일자리가 감소하여, 나라의 존속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농약과 화학비료, 기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자본집약적인 기업농업’이 아닌 유기농업은 소농의 ‘정성과 노동’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 소농의 ‘정성과 노동’에 기초한 유기농업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없다. 때문에 노동집약적인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터전이 된다. 유기농업의 확산과 발전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유기농이 늘어나면 땅이 살고, 사람이 산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농업은 제조업 중심의 수출에 기반한 한국경제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왔지만, 유기농업의 활성화 없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인식이 점차 더 확산될 것이다. 유기농지 보전에 대한 다양한 연구와 논의들이 보다 활발히 일어나길 기대한다.
<출처 : 2015년 4월 살림이야기(http://goo.gl/MIu26z)>
이 성 영 /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