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가 매월 둘째주 목요일마다 발행하는 국회감시 뉴스레터 <월간국감>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회감시를 위한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아래 버튼을 눌러 선영 활동가, 마늘이와 함께 국회감시를 시작해보세요.
안녕하세요,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에서 활동하는 마늘이 집사 선영이에요.
2023년 3월 6일, 김진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는 4월 28일까지 선거법을 개정하겠다는 목표로 전원위원회를 열어 선거제 논의에 집중하겠다고 합의했어요. 그런데… 그 선거제가 어떤 모양인데요? 소선거구제니, 중대선거구니, 도농복합형이니, 전국단위니, 권역별이니, 개방형이니, 폐쇄형이니… 너무나 복잡한 선거제. 네, 이번 달 <월간국감>은 ‘선거제의 모양’으로 시작합니다!
어느 날, 국회에 선거제를 바꾸자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됐습니다. 한 번 읽어볼까요?
“‘개방명부식 권역별 대선거구제’는 권역 내 정당득표율에 따라 해당 권역의 정당별 의석수를 먼저 확정하되, 정당 내 당선자는 후보자 득표순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방식”
…여러분은 이 문장을 보았을 때 어떤 선거제인지 이해가 되시던가요? 저는 한참을 반복해서 읽어봤고, 개정안도 프린트해서 읽어봤어요. 그래도 머리 속에 그려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고요. 봐도 봐도 낯설고 어색한 선거 용어 때문에요! 저만 그럴까요, 우리 모두 선거제도가 낯섭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뀔 선거제에 따라 투표해야만 합니다.
선거제, 어렵지 않… 지 않고 어려워요
국회의원이 300명인데 이러다 선거제만 300가지 나오는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거법 개정안이 연일 발의되고 있습니다. 각기 다른 법안들은 각기 다른 선거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이 선거제도가 나에게 좋은지 안 좋은지 판단할 길이 없습니다. 단어부터가 낯설고 어려워 바로 이해하기 힘들잖아요.
① 일인선거구제(소선거구제) vs 다인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vs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일인선거구제(소선거구제) 한 지역구에서 가장 많이 득표한 1명이 당선됨
다인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 여러 지역구를 하나로 합쳐 가장 많이 득표한 순으로 여러 명이 당선됨
도농복합형 선거구제 땅은 좁은데 인구가 많은 곳은 다인선거구제로 합치고, 땅은 넓은데 인구가 적은 곳은 일인선거구제를 적용함
일단 우리 동네 의원을 뽑는 지역구부터 살펴봅시다. 지금 우리가 우리 동네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인 일인선거구제(소선거구제)는 사표가 가장 많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되어 왔죠. 맞습니다. 그렇다면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다인선거구제(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많은 기사와 글에서 2-4인을 뽑는 선거구를 중선거구, 5인 이상을 뽑는 선거구를 대선거구라고 표현하지만 이는 학술적으로 정의된 개념이 아닙니다. 그러니 <월간국감>에서는 중대선거구제를 다인선거구제라고 칭할게요.
다인선거구제는 장점이 단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장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구수에 따라 선거구마다 배분되는 지역구 의석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소선거구 여러 개를 합쳐 다인선거구를 만들면 선거구의 면적, 즉 땅이 넓어집니다. ‘좁은 땅’에 ‘많은 사람들’이 사는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땅이 조금 넓어져도 인구만큼 지역구 의석을 많이 받기 때문에 큰 불편함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3명의 국회의원을 가진 강남구(갑,을,병)처럼요.
그런데 강원도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안 그래도 강남구, 아니 서울시보다 ‘넓은 땅’을 가졌으나 ‘적은 사람들’이 사는 춘천시에 철원군·화천군·양구군까지 붙였는데도 국회의원은 딱 2명(갑,을)에 불과합니다. 땅이 넓으면 넓을수록 한정된 선거운동기간 안에 충분히 유권자와 소통하기 어렵겠죠.
몇 명을 뽑는 다인선거구인지에 따라서도 선거 결과가 달라집니다. 흔히 다인선거구제는 사표를 줄이고 소수정당의 당선 가능성을 높일 거라 기대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첫째, 오히려 거대양당의 독점 현상은 견고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2-4인선거구가 그렇습니다. 한 선거구에 정당별로 후보자 한 명씩만 공천하라고 제한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에 각 정당은 당선인만큼 후보자를 공천할 테니까요. 2022년 지선 당시 대구 수성구바 선거구는 4인 선거구였는데, 국민의힘 3인과 더불어민주당 1인이 구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둘째, 같은 정당으로 출마한 다른 후보자끼리 경쟁하다 보니 파벌 정치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거비용은 더더욱 많이 지출할거고요. 셋째, 예를 들어 5인 선거구일 경우 1등과 3등, 5등 당선인 사이 득표율이 현저히 차이가 나면 표의 등가성이 심각하게 왜곡될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 최형두 의원이나, 김진표 국회의장 등이 거론했던 도농복합형 선거구제의 경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땅은 좁고 인구는 많은 도시는 다인선거구로 하고, 땅은 넓고 인구는 적은 농촌은 소선거구를 적용한다는 건데요. 표의 등가성 측면에서 위헌 소지도 있습니다.
도농복합형 선거구제는 농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보장하기 위해 필요하다고는 하는데… 그렇다면 정당에서 농어민들의 이익을 대변할 후보자를 공천하면 될 문제 아닌가요? 굳이 선거구의 크기로만 접근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편, 지금도 넓은 농어촌의 소선거구는 첫 선거를 치르는 신인 정치인이 이미 안면이 있는 기성 정치인보다 도전하기 어려운 곳이기도 하고요.
② 단기비이양식 투표제 vs 단기이양식 투표제
단기비이양식 투표제 투표용지에 1명만 찍음 (≒다수대표제)
단기이양식 투표제 투표용지에 찍고 싶은 여러 명을 선호하는 순위대로 찍음 (≒선호투표제)
이 개념은 아마 처음 들어보셨을 겁니다 왜 이 어려운 말을 소개해 드리냐면요, 다인선거구제를 도입했을 때 기존의 다수대표제가 아닌 선호투표제를 적용하면 선거개혁의 원칙인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행 선거제에도 적용되고 있는 단기비이양식은 간단하게 말해,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내 표가 사표가 되는 겁니다. 즉 한 종이에 기표한 나의 표가 차순위 후보에게 넘기지 않을 경우 단기‘비(非)’이양식, 넘길 경우 단기이양식이 됩니다. 다인선거구제를 적용할 경우, 최하위 득표자를 1순위로 선택한 유권자들이 차순위로 선택한 후보에게 표가 이양된다면(단기이양식), 당선인들의 대표성이 더욱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③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vs 권역별 비례대표제
전국단위 비례대표제 각 정당은 비례대표 명부를 ‘전국에 하나’ 제출함.
권역별 비례대표제 각 정당은 비례대표 명부를 ‘권역마다’ 제출함.
요새 가장 많이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입니다.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는 지금 우리가 투표해왔던 바로 그 제도예요.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흔하게 6개, 7개 권역으로 나누거나 많게는 20여 개 정도로 쪼개는 건데요. 서울, 경기와 인천, 강원과 세종, 충북, 전라, 경상, 제주 등 권역 단위를 칭합니다. 그런데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을 쪼개면 쪼갤수록 득표율이 적은 정당이 의석수를 얻기가 어려워집니다.
예를 들어 전국을 아주 단순하게 8조각으로 나눠봅시다. 비례대표 의석 47석을 8개 권역으로 나누면 약 5-6석이 나오는데요. 경기도에 배분된 비례대표 의석이 6석이라면, 경기도에서만 최소 약 16.6% 이상 득표해야 1석을 얻을 수 있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정당득표와 의석수 간 불비례성이 더욱 심화될 겁니다. 반면 지금의 전국단위 비례대표제는 전국 각지에서 받은 정당득표율을 바탕으로 의석수를 분배합니다.
④ 병립형 비례대표제 vs 연동형 비례대표제
병립형 비례대표제 지역구 의석 배분과 관계 없이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함.
연동형 비례대표제 비례대표 의석을 지역구 의석 배분 결과와 연동해서 배분함.
비례대표 의석을 확정하는 방식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요, 바로 병립형과 연동형입니다.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별로 지역구에서 몇 석을 얻었는지와 상관없이(병립) 정당득표율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합니다. 소선거구제와 병립형 비례대표제의 조합은 전국적 지지를 얻는 거대양당에 굉장히 유리한 선거제도죠.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우선 분배하나, 각 정당이 얻은 지역구 의석을 반영해(연동)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개를 섞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요.
⑤ 개방형 명부 vs 폐쇄형 명부 vs 가변형 명부
폐쇄형 명부 정당투표용지 1장에 정당명만 나열되어 있어 지지하는 정당에 투표함.
개방형 명부 정당별 투표용지에 적힌 후보자 중 특정 후보자에 투표함.
가변형 명부 지지하는 정당이나, 지지하는 비례대표 후보자를 직접 투표할 수 있음. 투표용지 1장에 모든 정당의 모든 비례대표 후보가 적혀 있거나, 수기로 적는 방법 등이 있음.
우리가 받는 정당투표용지에는 정당명만 적혀 있었죠. 이게 폐쇄형 명부입니다. 정당이 공천한 우선순위대로 득표율에 따라 당선인이 결정되는 방식이죠. 폐쇄형 명부는 정당 지도부가 강력한 공천권을 행사하는 반면 유권자가 비례 후보를 직접 선택할 수 없다는 점에서 비판받아왔습니다. 단점만 있지는 않습니다, 여성, 또는 소수 계층의 대표성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안정적 장치가 되거든요.
반면, 개방형 명부는 유권자가 정당이 공천한 후보자들에게 직접 투표를 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아래 이탄희 의원이 제안한 선거 투표용지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지지하는 비례 후보한테도 기표할 수 있도록 칸을 열어놨죠. 유권자도 비례대표 후보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인물 중심적 투표 행태가 영향을 미쳐 정당의 책임정치가 희석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가변형 명부는 폐쇄형 명부와 개방형 명부가 결합한 형태입니다. 지지하는 비례 후보가 없다면 정당의 우선 공천 순위에 맡기겠다는 마음으로 정당에 기표하면 되고, 지지하는 비례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에게 직접 기표하면 되는 방식이죠.
선거제의 이모저모한 모양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자! 이제 온갖 곳에서 이야기하는 각종 선거제는 저 단어가 조합된 것이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으로도 쏟아질 선거제 관련 기사에 주눅 들지 말고, <월간국감>을 참고해 차근차근 읽어봐 주세요. 눈에 보이지 않았던 선거제의 모양이 조금 더 뚜렷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선거제도를 만드는 3가지
선거제도, 자세히 알아보니 구조도 다양하고 그 효과도 다 다르죠. 선거제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이유는 선거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당사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와 정당이 그렇고요, 선거를 관리하는 선관위도 그렇고요, 투표를 직접 행사하는 유권자도 그렇고요, 심지어 투표를 하지 못하더라도 투표로 선출된 국회의원이 만들고 바꾼 법과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친구들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선거제 개편 논의는 어느 때는 너무 느리다가도, 갑작스레 너무나 빨라집니다. 수많은 이해관계 속에서 한참을 대립각을 세우다 선거일은 다가오니 어느 순간 발등에 불 떨어지듯 얼렁뚱땅 합의하고 법을 개정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선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제 개편은 유권자가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국회의 논의를 거쳐 완성되어야 합니다. 내가 던진 표가 국회 의석수에 어떻게 반영될지 쉽게 예측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투표하는 것은, 전략투표를 해야 할지 소신투표를 해야 할지 머리 속만 복잡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선거제 개편 논의가 있을 때마다 유권자들은 의견을 낼 기회도, 적당한 창구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거제 개편 논의가 한창인 이 시기에 우리는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 선거법 개정 시한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이해와 지지야!
- 국회는 선거제 논의에 국민 의사를 확인하고, 반영하는 공론화 과정 추진해!
- 정당득표와 의석 간 비례성을 높이기 위해 의원은 늘리고, 비례 의석은 확대해!
솔직히 말하면, 의정감시센터에서 일하면서 ‘국회, 제발 천천히 일해!’라고 외친 시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 국회가 의욕만 앞세우고 성큼성큼 나아가는 것도 꼭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이번에 새삼 깨닫고 있달까요. 시민과 함께하는 선거제 개편 논의는 갈 길이 멀지만, 그 먼 길도 국회감시 뉴스레터 <월간국감>와 함께 국회 감시 레벨을 차근차근 높여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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