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연방의회에서 행한 연설을 통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의 작전지침서의 한 페이지를 뽑아 중국과 효과적으로 경쟁할 필요를 강조하면서, 자신의 야심찬 국내 프로그램 계획을 이에 연동시켰습니다. 아이젠하워가 국가안보를 언급하면서 미국전역의 고속도로건설에 자금을 지원하도록 국가를 설득한 것처럼, 바이든은 광범위하게 기획한 인프라 프로그램을 미국이 국제적 지도위치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으로 묘사했습니다. 이러한 접근방식에 위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강대국 경쟁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 들었고 게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런 강대국의 경쟁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대만에 대한 군사적 충돌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제 생각에는 다소 과장되었음), 미국이나 중국 모두 상대방의 주권이나 독립에 진정한 위협이 되지 않습니다. 두 국가는 단순하게 너무 크고 인구가 많으며 침략을 고려하거나 상대방에게 결정을 강요하기에는 서로 간의 거리가 너무 멉니다. 중국과 미국 모두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런 사실은 한 국가가 다른 국가에게 전쟁을 시도하려는 능력을 더욱 엄격하게 제한합니다.
더욱이 미중 어느 나라도 상대방이 선호하는 정치적 이념으로 전환되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이 향후 다당제적 민주주의를 도입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미국이 일당의 국가자본주의 체제로 변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공화당이 권위주의로 표류하는 것이 놀라운 사실이지만). 좋든 싫든 미중의 두 강대국은 오랫동안 공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무엇에 대해 경쟁 할 것인가?
경쟁이라는 일부의 측면에서 자신의 국가가 진보된 군사능력과 함께 우수한 인공지능 능력, 녹색 에너지 기술 및 생의학 제품을 개발하려고 먼저 노력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가 반복적으로 주장했듯이, 자신이 세계질서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원칙이나 규범을 방어하고 홍보하기 위한 도덕적 경쟁이 더욱 중요할 것입니다. 핵심질문은 이렇습니다: 누구의 원칙이 결국 세계적으로 보다 지지를 받을 것인가?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이 있지만, 중국이 선호하는 세계질서는 본질적으로 Westphalian(상호존중의 주권국가 질서)입니다. 영토주권과 비간섭을 강조하고 다양한 정치적 질서가 존재하는 세계를 포용하며 자유와 개인의 권리보다는 (예건데 국가경제에 대한) 집단적 요구를 우선적으로 여깁니다. 정치학자 Jessica Chen Weiss가 최근 언급했듯이, 중국은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되 이것의 보편주의적 주장이 중국공산당의 권위를 위태롭게 하거나 내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 “전체적인” 정치질서를 추구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모든 인간이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는 기본적인 주장을 바탕으로 자유주의적 가치를 선호하는 세계질서를 오랫동안 추진해 왔습니다. 미국 지도자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유엔헌장같은 문서에 포함시키는데 역할을 하였습니다. “인권 및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에 대한 존중을 차별없이 장려하고 증대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이와 유사한 원칙들이 분명히 세계인권선언의 중심내용이며 북대서양조약 및 기타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기구들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미국도 중국도 이러한 규범적 선언에 현실적으로 부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다른 나라의 내정에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는 중국의 주장과는 달리 , 중국은 실제로 여러 차례 개입하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지도자들은 자유, 민주주의 및 기본 인권에 대한 깊은 헌신을 칭찬하고 싶어하지만, 주요 동맹국의 불법적인 행동을 의도적으로 묵인했으며 미국은 자신의 지지한 이상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보여주는 규범적 선호는 공허한 수사만은 아닙니다. 미국은 때때로 민주적 통치를 포기하고 개입의 영역을 확장하거나 미국이 제시한 규범을 거부한 국가들을 처벌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사용했습니다.
어떤 규칙이 이길 가능성이 있습니까?
지난 3 월에 본 주제에 대해 글을 썼을 때 경제적 규모가 다른 국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고 국내에서의 성공이 다른 국가들이 이를 본받도록 고무시키기 때문에 강력한 군사력과 함께 경제적 성공이 핵심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이념 자체가 지닌 본질적인 매력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과 가장 가까운 동맹국들이 지지하는 자유주의 규범과 중국의 국가주권에 대한 발언적 방어 및 비간섭 그리고 자신의 문화 및 역사적 경험과 일치하는 정치제도를 발전시킬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반복적인 강조 가운데, 과연 어떤 주장이 세계인들에게 매력적일까요?
우선 첫째로, 비민주적 지도자는 (여전히 전세계 상당부분의 정부들이 그런 셈이지만) 자신의 정부시스템을 결정할 권리를 부여하고 외부인이 자신의 국경 안에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것이 불법으로 간주되는 세계질서를 선호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미국과 서방의 원조 프로그램이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개혁을 조건화하지 않고 개발원조를 기꺼이 제공하려는 중국의 의지가 일부 국가에서 특히 매력적인 것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방망이(개혁요구) 없이 비간섭에 대한 옹호와 서구적 자유규범의 반대는 많은 독재국가들의 지지를 얻을 것입니다.
둘째, 강력한 중국이 제안하는 상기의 원칙을 존중하는 해당 국가들은, 중국이 후원하는 한, 정권 붕괴에 대해 걱정을 덜할 것입니다. 홍콩과 대만(중국은 이를 내부문제로 간주)을 제외하고는, 중국의 솔직한 외교수사는 중국고유의 독재적 성격을 공유하지 않는 국가들에게도 안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독재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것을 돕는지는 모르겠지만, 중국은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타국의 기존 민주주의를 레닌주의적 핵심을 가진 일당 국가자본주의 정권으로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홍콩과 대만은 여기서 중요한 예외입니다.)
물론 정책은 바뀔 수 있지만, 현재 많은 국가들에게 ‘모든 국가는 결국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보다 중국의 입장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셋째, 중국의 입장은 위선적 행동에 자유롭습니다. 모든 국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발전하도록 허용되어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민주주의 국가이던, 군사독재 국가 혹은 군주제 국가이던 이들과 무역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각 국가와 관계를 지역조건에 맞추어 조정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자유주의 원칙을 선포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위반한 가까운 동맹국을 묵인하고 계속 지지하는 이율배반적 상황에 처할 수 있지만, 중국은 원칙과 상관없이 누구와도 거래와 투자 및 협력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감안할 때, 세계질서에 대한 중국의 실용적 접근방식이 결국 미국의 자유주의 이상을 대체하면서, 대부분 국제기구의 기반이 되는 규범적 토대가 점차 Westphalian 성격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도 규범적 입장에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론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권력중심의 현실정치가 작동하는 세계 속에서도 많은 국가들이 도덕적 문제에 무관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잔인함의 도출, 무고한 이들의 죽음에 대한 냉담한 무시, 그리고 국가권력이 진행하는 잔인한 행동 등은 여전히 세계를 놀라게 하는 혐오스러운 행동입니다. 이러한 행동이 특정 국가의 경계 안으로 국한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장 독재적인 정권조차도 이러한 흐름과 경향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상기의 행동을 의도적으로 은폐하고 이를 지적한 국가 혹은 인사들을 제재 또는 제한하며 숨길 수 없는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교한 변명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의적 통치를 정당화하고 개별정부의 내부정책이 도덕적 비난에서 면제되는 세계질서를 촉진하려는 중국의 노력이 다른 국가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개별정부가 자신의 국경 내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 할 때, 독재국가들을 포함하여, 모든 국가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자국의 국경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국경 안에 실재하는 국가의 주권과 절대적 권위에 대한 특권을 부여하는 것은 또한 국가자결이라는 개념에 반합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지만 독특한 문화, 언어,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다스리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도 공감합니다. 자유주의 원칙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 유럽의 식민주의시대를 종식시켰으며, 궁극적으로 소련해체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개별국가 안에서 민족 또는 민족집단에 대한 학대를 조장하는 세계질서는 스스로를 다스리거나 평등한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호소력을 갖지 못할 것입니다.
솔직해집시다: 지난 20년은 20세기가 끝나갈 때 자신들이 누렸던 유리한 입장 에도 불구하고(아마도 그것 때문에) 세계의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미국은 비용을 많이 들이고도 실패한 여러 전쟁에 빠졌고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했으며 현재 남북전쟁 이후 볼 수 없었던 수준의 정치기능장애와 당파분열에 직면해 있습니다. 일본은 경제적으로 진퇴양난을 거듭해 왔고, 유럽은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일부 지역에서 자유주의적 도전에 직면해 있으며, 인도와 브라질이 지정학적 잠재력을 충족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무대에서 자유주의의 장기적 매력에 대한 우려는 근거가 거의 없습니다. 장기적 관점을 취하면 자유주의 이상이 보다 매력적입니다. 세계의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이 최근에 부진했지만 20세기 대부분의 기록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일부 중국평론가들이 평하듯이, 서구가 세기말기적이고 자초한 쇠퇴상태에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실수입니다.
James Scott 과 Amartya Sen는, 자신들의 저술을 통하여, 자유주의 사회는 스탈린주의 시대의 집단화 또는 마오쩌둥의 비참한 대약진과 같은 엄청난 파국적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적고, 설사 오류가 발생하더라도 바로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에 대한 최악의 대응은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를 포함하여 Narendra Modi 인도 총리 , Jair Bolsonaro 브라질 대통령 , 헝가리 총리 Viktor Orban 같은 강력한 권위주의적 경향을 가진 포플리스트들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생각은 필자를 다음과 같은 결론으로 이끕니다.
자유주의 원칙을 선호하는 미국인과 동맹국들은 그러한 진리가 “자명하다”거나 역사가 필연적으로 이를 선호한다고 가정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의 활이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면, 그것은 신성을 가장한 개입, 인간본성의 고정된 경향, 또는 불가피하게 미리 정해진 (자유주의적인) 결과로 이끄는 역사적 목적론 때문이 아닙니다. 역사의 활은 해당 지지자들이 특히 다른 대안과 비교할 때 그들 자신의 원칙이 지닌 우월성을 성공적으로 입증할 때에 비로소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이든 행정부가 하려는 목표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성공할지 여부는 현재 정치를 왜곡하는 잘못된 정보의 역기능적인 부정적 소용돌이를 되돌릴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끝.
출처: Foreign Policy(포린폴리시) on 2021-05-03.
Stephen M. Walt
하버드 대학의 정치분야 박사과정 주임교수로 국제관계학의 세계적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음
참조자료>
미국의 비난에 대한 중국국제방송의 미국 평가
– 미국은 정치체제와 인권에 관한 한 매우 불량국가에 속한다-
1. 흑인에 대한 역사적 구조적 제도적 불평등이 상존 – 중산층 백인자산은 흑인평균의 44배.
2. 이데올로기로 인한 반아시안계에 대한 폭력난무 – 주로 중국계와 한국계에 집중.
3. 개인방어권이라는 미명하에 총격사건과 총기자살 만연 – 연간 2만 명 희생과 2만 명 자살.
4. 사회경제적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 –인구 15%인 5천만명이 푸드뱅크에 의존하여 연명.
5. 정치자금의 무제한 허용에 따른 금권 재력 정치만연- 무조건 돈많이 쓴 후보가 당선되었다.
6. 워싱턴 Frame에 의한 국제언론의 조작 – 최근의 신장 사례(과장 왜곡 조작)가 대표적인 예.
7. 유엔 등 국제기구의 기후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인권 등 협약사항의 서명거부 및 불이행.
파리기후협정 / 유네스코 / WTO / WHO와 백신정책 / ICC 입국거부 및 제재 등.
한마디로 미국은 정치체제와 인권에 대하여 국제사회에 발언할 자격과 권한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