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디킨슨은 『두 도시 이야기』에서 산업혁명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었다….빛의 계절이면서도 어둠의 계절이었고, 희망의 봄이지만 절망의 겨울이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도 기왕에 진행 중인 4차산업혁명과 더불어 죽음과 삶, 파괴와 부활이라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팬데믹은 부뤼겔이 묘사한 것처럼 “죽음이 승리”(triumph of death) 한 역사적 사건이었지만 동시에 T.S Eliot이 [황무지]에서 노래한 것처럼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는” 부활의 봄이기도 하다.


금권민주주의 Plutocracy를 묘사하는 그림

흑사병 팬데믹은 1347년에서 1351년을 정점으로 해서 수십년간 유럽을 유린하여 유럽인구의 1/3을 넘는 7500만명에서 2억의 생명을 앗아갔다. 포스트 흑사병 팬데믹 시대의 유럽에서는 인구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과 임금상승으로 봉건제적 생산양식은 종말을 고하고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이 일어났다. 코로나 팬데믹은 중세의 흑사병 팬데믹 보다 훨씬 적은 인명피해를 내고 수그러들 것이기 때문에 인구감소로 인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생산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방역과 의약기술이 발전한 21세기 선진 자본주의국가에서 코로나 팬데믹이 전쟁으로 죽은 전사자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를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에 코로나 이후의 자본주의는 코로나 이전의 자본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포스트 자본주의(post capitalism)로 이행할 것으로 보인다.

(1) 포스트 자본주의로의 이행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고립생활이 일상화되면서 온라인 경제, 원격경제, 가상현실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온라인 경제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불이 붙었다. 거리두기로 집콕하고 있는 사람들은 텔레메디슨으로 원격진료와 치료를 받고, 회사에 나가지 않고 텔레컨퍼런싱을 통해 자가 업무를 보며, 텔레뱅킹으로 금융업무를 본다. 아이들은 학교에 나가지 않고 온라인 강의를 시청하고 교수와 교사들은 온라인 강의를 시연한다. 온라인 배달앱을 통해 시장을 보고 음식을 주문하고 이동은 우버택시를 이용한다. 긱 노동자(gig, 프리렌서 노동자)가 적기배달, 가사일, 가드닝(gardening)을 담당한다. 이러한 온라인 배달 서비스를 담당하는 긱(gig) 경제는 4차 산업혁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으나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과 4차 산업혁명으로 전통적인 산업자본주의는 포스트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 산업자본주의가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와 시장경쟁을 두 축으로 하고 있는데 반해, 포스트 자본주의는 공유경제와 시장경쟁을 두 축으로 하고 있다. 플랫폼 경제, 공유(sharing) 경제 하에서 기업은 오픈소스 코드, 빅 데이터와 온라인 플랫폼과 같은 생산수단을 공유하여 무한 이윤을 추구한다. 공유경제는 공동소유와 공동분배를 특징으로 하는 전통적인 커먼즈(commons)와는 달리, 공동사용하는 ‘공유’ (sharing)는 있으나 공동소유나 분배가 없다.

포스트 자본주의 하에서 플랫폼 기업은 타인의 생산수단과 노동수단을 자신의 자산으로 삼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공급자와 수요자를 연결하여 노동수단 소유자들이 벌어들인 이윤을 같이 나누는 기업이다. 플랫폼 기업인 우버는 프리랜서, 파트타임, 일용직, 비정규직, 비공식 ‘플랫폼 근로자’인 프리카리아트 (precariat)와 고객들을 연결해주고 플랫폼 사용료를 받는다. 이러한 임시직, 비정규직 프리랜서 노동자들이 ‘직장과 직업이 없이’ (gigged) 자유롭게 일하는 경제를 ‘긱 경제’ (gig economy)라고 부른다. 긱 경제는 독립노동자들이 일을 나누고, 시간을 나누고, 페이를 나누는 불안정한 노동시장이다. 긱 경제화가 진행되면 노동자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하향 평등화된다. 긱 노동자들은 직업정체성이 없고, 고정된 작업장이 없고, 표준근로시간이 없으며, 비임금(non-wage) 형태로 보상을 받는다. 그들은 산업화시대의 노동계급이 받았던 국가복지를 받을 수 없고,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며,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 임시직, 계약직, 독립노동자가 주류가 된 프리카리아트 노동시장에서 프리카리아트들은 집단적으로 조직하기 힘들고, 집단행동을 할 수 없다.

온라인 플랫폼 경제에서 임시노동, 대행노동, 과제노동을 하는 긱(gig) 노동자들은 유연한 스케쥴에 따라 대기 (on-call), 적기주문형(on-demand), 제로시간계약으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높고, 노동시간의 불확실성으로 소득불안정성이 높고 임신과 질병과 같은 긴급 위험에 대한 대응력이 낮다.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플랫폼경제, 공유경제, 긱(gig) 경제는 산업화시대의 정규직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해체시키고 불안하고 위험한 계급 (dangerous class)인 프리카리아트(precariat: precarious proletariat)를 양산한다.

4차 산업혁명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인공지능 로봇으로 대체함으로써 정규직 노동자들을 프리카리아트로 전락시키고 긱(gig) 노동자를 양산하고 있다. 구매력이 약한 긱 노동자들의 과소소비로 인해 포스트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었던 시점에서 코로나 팬더믹이 확산되면서 긱 노동자들의 수요가 폭발하였고, 이는 긱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높여주었다. 긱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온라인 배달 서비스가 포스트 자본주의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높아지자 정치인들은 긱 노동자들에게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건강과 안전에 관한 기본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입법을 추진하여 긱 노동자들에게 사회경제적 시민권을 부여하려하고 있다.
(2) 시장의 후퇴와 국가의 귀환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총아인 시장이 후퇴하고 그 자리에 국가가 들어섰다. 폴라니에 의하면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100년간의 평화’ (1815-1914) 끝에 파산을 하였고, 1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2차 세계대전을 치른 뒤 출현한 자본주의는 시장에 대해 국가가 비대칭적으로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국가주도형 자본주의였다. 그런데 ‘케인지안 황금기’로 불리는 국가주도 자본주의는 1970년대에 위기를 맞게 되었고 시장이 갈채를 받으면서 화려하게 복귀하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시대를 열었는데, 세계화와 4차 산업혁명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불평등과 양극화를 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자본주의가 될 수 없었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브렉시트와 트럼피즘으로 취약성이 노출되었다.

이러한 포스트 세계화 시대가 전개되는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발발하여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자유방임적 시장의 무능이 드러난 반면, 국가는 코로나 방역과 치료 과정에서 사회적 양극화를 치유하는데 있어서 비교우위를 보여주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글로벌 질병위기 해결을 위해 다시 국가가 소환된 것이다. 국가는 신자유주의적인 ‘거대정부의 비효율성’ 담론에서 과감히 탈피하여, 대규모의 구제금융 팩키지를 단행하고, 고통에 처한 시민들을 보살피는 ‘돌봄국가’ (caring state)가 되어주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벌어졌던 의료, 보건과 같은 공공재와 의료시스템 하부구조 구축에서 시장이 적절한 투자에 실패했다는 반성 위에 국가가 직접 나서서 시민사회와 의료사회와의 공감, 협력하여 치료약과 백신의 개발, 연구, 제조를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주도하여야하고, 국가의 대응은 제레미 리프킨이 이야기하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적 감수성의 함양, 동식물과의 교감, 우리 삶의 절대적 조건인 동물과 식물의 생물권을 인정하는 “공감 문명”(empathic civilization, J. Rifkin) 방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생태계와의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과 같은 전염병 재앙으로 시장에 복수하고 있는 자연과 동물과 화해를 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J. Rifkin, The Empathic Civilization, 2010)

(3) 세계화의 쇠퇴와 포스트 세계화 시대의 도래

코로나 팬데믹은 경제적 세계화의 심각한 후퇴를 가져올 것이다. 세계화가 극심한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낳으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자본주의의 심장인 월스트리트에서부터 전 세계로 확산되자, 세계화는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고를 받았다. 2016년의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의 대통령당선으로 ‘국경이 없는 세계’(borderless world)는 사라지고 인구, 문화, 물자,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을 막는 장벽이 일국단위로 국경에 세워지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방역을 위해 국가가 국경을 폐쇄하는 조치들을 취함으로써 지난 50년간 꾸준히 증가해온 국경을 넘나드는 자유로운 이동의 흐름을 역류시키고,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국경이 없는 세계화의 시대에서 국경의 장벽이 다시 세워지는 영토적 민족국가시대로의 흐름을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폴라니가 지적하였듯이 국제주의적 시장의 운동에 대항하여 정부는 일국경제를 바깥세계와 절연시키고 경제적 민족주의(economic nationalism)를 동원하여 자급자족(autarky) 경제를 지향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은 기업들로 하여금 불확실성이 높아진 원거리 공급체인 (remote supply chains)에의 의존도를 낮추고 국내 공급체인을 강화하여 내향적인 자기고립(self-isolation) 경제를 지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보호주의와 고립주의가 세계화를 대체하면, 글로벌 공급체인이 약화되고 세계경제 전체가 위축될 것이다. 그 결과 1930년대의 대공황같은 글로벌 경제위기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 보호주의와 고립주의 경향은 미중간의 비동조화 (decoupling)를 강화할 것이다. 자유무역 시대에 미중은 전략적 경쟁과 협력을 통해 상호이익을 취하는 공진(co-evolution) 또는 동조화(coupling)을 추구했으나, 트럼프가 미국제일주의, 자국우선주의를 주장하면서 중국을 적대적 경쟁자로 간주하자 미중간의 패권경쟁이 치열해지고 있고, 미중간의 비동조화도 강화되고 있다.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 지스트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