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민주(民主)의 개념 간 보기

민주(民主)는 결정권의 주체를 뜻하는 것일 뿐, 선과 악, 법치주의와 무관하다

민중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

민주는 ‘민중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는 권력행사의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 독재자가 될 수도 있으나, 민중에 의한 정치(by the people)는 민중이 결정권을 행사한다는 뜻이다.

민주는 선·악의 개념과 무관하다

민주는 반드시 옳거나 틀린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점에서 ‘대의제’도 마찬가지이다. 둘 다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느 것이 더 ‘선(善)’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것이 누구에게 더 유리한가 하는 점이다. 두 말할 필요없이, 민중이 결정권을 가지면 민중에게 유리한 것이고, 과도적 국회가 결정권을 가지면 그 구성원의 다수를 차지하는 ‘가진 자;를 위한 정책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민주는 법치에 우선 한다

사회의 변혁은 법률의 제정을 통해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법은 지켜 할 최소한의 규범인 동시에, 일어난 사회적 변화를 가장 늦게 섭렵, 반영하는 늑장꾸러기이다. 더구나 법은 흔히 추상적 규범으로서 표현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그 법을 해석함으로써 행동지침을 도출해낸다. 그런데 그 해석은 일정하지 않고 다양하게 연역될 수 있다.

그래서 ‘법은 지켜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성립하기 어렵다. 흔히 법은 시대에 뒤떨어지고 또 구체적 상황에서 법규범의 해석이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오는 결론은 법은 스스로 해석하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고, 또 낡은 법은 무시하고 시대에 맞는 행동이 앞서야 변화된 현실을 추인하는 과정으로서 마침내 법은 개정되게 된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지켜야 된다’라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주해가면 된다고 했다. ‘법을 지켜야 한다’가 아니라 선택사항으로 둔 것이다.

더구나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법은 근현대 국가의 권력으로 강요되는 ‘실증법’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민중의 결정이나 민중 재판소의 결정을 뜻하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 자신의 경우에 자신에게 사형의 형량을 결정한 것은 그를 재판한 501명의 민중재판관이 아니었고, 원고측이었다. 당시 배심(참심) 재판관들은 형량을 결정할 권한이 없었고, 다만 원고와 피고가 각각 제시하는 형량 가운데서 선택할 수 있는 권한만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에게 내린 사형의 선고를 받아들인 것은 근대 실증법의 개념과 거리가 멀고 또 일반 법 규범 자체를 지켜야하는가의 문제와도 거리가 멀다. 또 구체적 상황에서 피고인 소크라테스 자신이 아니라 반대편 원고가 내린 사형의 형량을 결정한 501명 재판관들의 결정을 자신이 따르기로 선택한 것일 뿐. 그런 자신의 선택을 타인에게도 따르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민주의 적, 독재가 가능한 환경은 권력집중이다.

민주의 반대는 방법 및 절차에서 ‘소수’에 의한 ‘강요’이며, 강요의 사회체제는 가치관의 단순화를 초래한다. 예를 들면 박정희 개발독재를 찬양하는 이는 ‘박정희가 밥을 먹고 살게 해 줬다’라는 논리이고, 그 이면에 반대파 억압, 재산 갈취, 인권유린, 노동착취, 사회양극화 등의 부작용은 무시된다.

독재는 권력이 집중된 환경에서 서식한다. 예를 들면, 식민지배, 이승만, 유신, 군부독재 등이 그러하며, 현행 1987년 법도 독재의 잔재를 내포하고 있다.

반대로 독재가 서식하지 못하는 환경은 ‘변덕’ 심한 민중이 결정권을 가질 때이다.

 

자기 결정권 – 공주도 불행해질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공주는 바깥 세상에 나가서 산전수전 겪는 일 없이, 자신에게 밥을 먹여주고 ‘보호’해주는 왕-아버지 슬하에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을 사는 것인가? 그것은 공주 자신의 삶이 아니라 아버지-왕의 ‘아바타’가 되는 것을 뜻한다. 그런 점에서 민중은 짐짓 잘난 독재자의 ‘보호’라는 명분 아래 억압을 받으면서 살아가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민중은 판단의 실수를 범하는 경우에도 자기결정권을 존중받아야 하고,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재단할 권리가 있다. 판단의 실수는 ‘대의제’ 위정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며, 그런 점에서 대의제는 민주보다 더 효과적인 제도가 될 수 없다. 오히려 소수 대의 위정자의 경우에는 수뢰에 의한 부패와 독단의 위험성만 가중된다.

고대 그리스 원어에는 중우(衆愚: 어리석은 민중)의 개념이 없고, 단순히 ‘군중(群衆 ochlocratia)’이 있었을 뿐이다. 군중이 결정권을 행사하는 민주정치에서는 뇌물과 독단의 폐해가 최소화된다. 소수의 국회의원, 소수의 법관, 소수의 검찰, 경찰은 쉽게 부패하게 된다.

 

태극기부대와 촛불부대의 충돌이 뜻하는 것과 민주를 향한 길

태극기부대와 촛불부대 간 갈등은 좌·우의 충돌이 아니다

태극기부대와 촛불부대는 지향성에서 차이가 있으나, 그것은 좌와 우 간의 갈등이 아니다. 일국의 대통령을 빨갱이로 모는 태극기부대가 원하는 것은 대통령이 가진 막강한 권력이다. 그것을 그들이 원하는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촛불혁명은 박근혜 정부 권력의 부패상에 대한 민중의 분노에서 야기되었다.

그런데 그 부패의 원인을 개인의 도덕성 탓으로 돌려버리기보다는 권력집중에서 초래되는 구조적 비리의 산물이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 부패는 총체적인 것이고, 한 두 사람의 도덕성 여부에 달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청와대, 사법부가 총제적으로 연루되었고, 입법부는 그 권력의 농단 앞에 침묵했다.

태극기부대의 의사도 인정을 해주는 아량이 민주화의 물꼬를 튼다

태극기를 흔들며 ‘빨갱이 문재인 타도’를 외치는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절대선(善)으로 간주하고 강요한다. 바로 이 ‘강요’가 독재와 독선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그들의 독선적 강요를 이기는 방법은 또 다른 독선으로 그들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독선을 인정을 하고 제도적 장치 안으로 유도해 들이는 것이다. 잘잘못을 떠나서 태극기부대의 의사도 인정을 해주는 아량을 가질 때, 비로소 ‘소수의 강요에 의한 독재’를 근절하고 민주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 사회적 환경이 조성된다. 상대를 인정하고, 다수결의 민주적 원리로 회귀함으로써, 태극기부대 뒤에 숨어있는 아집, 독선, 독재, 권력집중과 그 권력 탈취의 음모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적 이념’이 아니라 ‘결정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것이 핵심이다

통일, 자주(외세 배격), 기본소득, 토지공개념 등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강요’되는 순간 이념의 실천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강요는 소수의 집권에 의해서만 가능하며, 집권은 결국 소수의 이익에 봉사하게 마련이라, 구체적 실현의 과정에서 이념은 변질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노무현이 제안한 로스쿨은 국회의 입법과정에서 변질되어 ‘금수저’ 로스쿨로 둔갑해버리고 말았다.

하나의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입법과 시행과정에서 수없이 의견수렴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결정권을 민중이 행사해야 ‘금수저’ 로스쿨 같은 부작용이 생기지 않게 된다. 결국 핵심은 이상적 ‘이념’ 자체가 아니라 결정권을 누가 행사하는가 하는 것으로 귀결되게 된다.

  

2. 사고의 틀 바꾸기: ·우 이념 대립을 국가 폭력에 대한 경계로

고대 그리스에는 좌·우 극단의 대립이 없었다

 19세기 마르크스의 <자본론> 출현 이후 지금까지 세계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 대립의 성토장이 되어왔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에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과 체제의 대립이 없었다.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존재하는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이 그리스에도 있었는데도 그랬다. 이미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의 국부(國父)로 불리는 솔론의 개혁도 빈자와 부자 간 극한 대립을 극복하려는 것이었다. 이렇듯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는 체제나 이념의 대립이 왜 없었을까?

고대 그리스에는 자본이나 공산이라는 구체적 내용의 대립보다 ‘절차’의 개념이 발달되었다. 문제가 생기면 민중이 모여서 다수로 결정을 하는 방법을 말한다. 민중이 스스로 논의하여 도출하는 결론은 당연히 극단의 대립이 아니라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그 옛날 기원전 6세기 초 아테네에서는 빈자와 부자 간 극한적 대립이 있었다. 내란 위협의 도가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민중은 뜻을 모아 믿을 만한 사람 솔론에게 전권을 부여하게 되고, 솔론은 적정한 선에서 결론을 도출했다. 그것은 양 극단을 피하면서, 토지 재분배는 하지 않고 부채는 말소하는 것이었다.

 

좌·우 대립의 원인은 번복이 불가능한 경직된 체제이다

 지금 한국에서는 민중의 뜻을 수렴하는 이런 유연한 절차 민주정치가 실종되었다. 공산주의 뿐 아니라 자본주의도 마찬가지로 강요된 사회체제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 싸움은 결정의 번복이 불가능한 강요의 경직되고 집권적인 권력구조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차 민주정치가 정초되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의 이념 싸움을 할 필요가 없다. 민중의 결정은 극단으로 흐르지 않고 타협을 통해 조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민중은 과거의 결정을 번복하여 갱신할 수 있는 권리도 가져야 한다. 제도의 갱신이 가능하다면 서로 반목하면서 빨갱이(공산주의)나 파랭이(자본주의) 사냥을 할 것 없이 다수결로 다시 결정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빨갱이가 아닌 사람조차 빨갱이로 몰아붙이는 빨갱이 사냥은 권력이 비민주적으로 집중된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권력이 분산(아나키)되어 있다면 결정의 주체가 외연으로 확산되어 다원화 되므로 특정인을 빨갱이로 모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그래서 민주정치를 논함에 있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 대신에, 절차와 내용 간 대립개념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내용은 상황, 시대, 시민의 기호에 따라서 가변적이다. 그러나 민중의 뜻을 모으는 방법으로서의 절차 민주주의는 결여할 수 없는 민주정치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내용보다 절차가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다.

절차와 내용 간 대립 개념 가지고 민주주의를 논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장점을 갖는다. 지금까지 민주정체를 논하는 데 쓰인 개념들, 국가와 정부, 개인과 집단, 진보와 보수, 선과 악, 계급투쟁과 보편적 이성의 화합, 폭력과 평화 등의 대립개념들이 다소간 추상적이고 어떤 특정의 대상, 혹은 구체적 실체를 적시하기가 어려운 점이 있는 반면, 절차와 내용이 대립개념은 그보다 선명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3. 누가 결정하는가? 고대 그리스 자유시민 민주정치

결정하는 주체가 달라지면 결정하는 내용이 달라진다.

 ‘절차’ 민주정치는 ‘내용’으로서의 민주정치와 대응 관계에 있다. 내용으로서 정책 입안에 관한 문제는 절차로서 결정의 주체에 관한 문제와는 다른 문제이다. 절차란 어떤 과정으로 누가 결정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주도권의 귀속에 관한 것이고, 내용이라 함은 기본소득제, 토지공개념, 최저임금 등과 같이 구체적인 정책 내용에 관한 것이다. 결정의 주체에 따라서 그 결정의 내용은 달라지기 마련이므로, 절차의 문제는 내용보다 더 우선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절차 민주정치에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 이념이 대립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편에 민중. 그리고 그 반대편에 대의제의 허울을 썼으나 실은 민중의 뜻을 배반하는 위정자들이 서로 대립한다. 위정자와 민중 가운데 누가 결정권을 갖는가 하는 문제는 아주 중요하 것으로서, 결정하는 사람이 달라지면 그 내용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지금같이 대의제 국회에서 결정권을 갖는다면 민중을 위한 복지정책은 실로 가결되기 어렵다. 국회의원들 다수가 가진 자들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민중의 결정권을 확보한 다음 나머지는 민주적 방법으로 결정하면 된다. 민중의 결정권만 확보된다면 공산주의나 자본주의체제를 가지고 충돌할 필요도 없어진다. 그 중간 어디쯤인가에서 다수가 원하는 것으로 절충하면 되기 때문이다. 평등과 자유의 가치를 어떻게 양립하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 평등과 자유를 어떻게 적절하게 복합할 것인가 하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결정하는 궁극적 주체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내용의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 하는 것은 누가 결정권을 행사하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국회가 결정권을 가진다면 국회를 구성하는 의원들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따라 그 결과가 도출 될 것이다. 국회는 민중의 뜻을 대의(代議)해야 하는 곳이지만, 이런 개념 규정은 형식적인 당위성일 뿐 현실이 아니다. 국회의원의 다수가 사회 경제적으로 유력하고 부유한 계층에서 정당을 배경으로 선출되는 것이므로 서민의 입장을 대변하기 어렵고 당리당략 혹은 지역집단의 이해에 구속된다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국회의원이 결정권을 행사했다면 정치인으로서의 사회성으로 인해 그 내용은 당연히 보다 보수적일 것이다,

그러나 시민의 다수가 서민들로 이루어지므로 민중이 결정권을 가질 경우 국회의원들보다 스스로의 이해관계에 더 충실할 수가 있다. 직접 민주정치를 통해 민중이 투표권을 행사한다면, 그 결정 내용이 보다 더 진보적일 것은 자명하다. 결정권자가 민중이 아니고 다수가 상류층으로 구성된 국회의원들이라면 기본소득제, 토지공개념 같은 법안은 절대로 통과되지 않는다. 통과가 된다면 이미 그 내용이 변질되어 이도저도 아닌 회색 법안이 된 다음일 것이다. 본질이 변하지 않으면 그런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경험으로 터득한 바이다.

주권자 민중은 국회의원이나 위정자의 판단에 종속되는 존재가 아니다. 많은 사안이 상투적으로 대의체제하에 이루어진다는 전제를 하더라도, 민중이 필요로 할 때 그 권한은 바로 민중 자신에게로 귀속되어야 한다. 한 번 결정으로 권력을 대의체제로 이양했다고 해서 변경이 불가능하거나 무지 곤란한 것이 되어, 민중이 구속을 받고 체제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권력을 대의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전문성이나 합리성에서 적정한 인간인가?

분명히 그런 것은 아니다. 민중이 비이성적이라면 이들 정치가도 그와 같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정치가도 정치가이기 전에 민중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국회의원이나 법관들 하는 행색을 보면 보편적인 상식조차 갖추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또 정치가들도 스스로는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서 보좌관이나 비서관을 두고 자문을 구해서 직무를 수행한다. 그 주체가 민중이 되면 왜 안 되나. 민중도 필요할 때 전문가에게 자문을 의뢰하면 된다. 그래서 현대 사회가 복잡하고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고 해도 반드시 결정권을 전문가에게 맡길 필요가 없다.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것과 결정권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반드시 전문가가 정치가가 되어야 할 당위성도 사라지고 또 현실적으로 정치가들이 전문가인 것은 아니다.

 

4. 아무 내용 없는 허사(虛辭)로서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다. 그런데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것이 없다. 남한은 ‘대한민국’, 즉 ‘대한 민주공화국’인데,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실제 내용에서 양자 간 차이가 크지만, 같은 표현이 쓰이고 있다. ‘민주(주의)공화국’이란 말은 체제가 상반되는 경우에도 같이 쓰이니, 이 말 자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탈리아 헌법 제1조에는 “이탈리아는 노동에 기초한 민주공화국이다”, 독일 연방공화국 기본법 제1조에는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국가권력의 의무이다”, 프랑스 헌법 제1조에는 “프랑스는 분할될수 없고, 종교에 의해 통치되지 않으며 민주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프랑스는 출신, 인종, 종교에 구분없이 모든 국민의 평등을 보장한다. 프랑스는 모든 종교를 보장한다. 프랑스의 모든 정부조직은 분산되어 있다.”라고 되어 있다. 노동이나 인간의 존엄성, 민주사회주의, 나라가 분할되지 않으나 정부조직은 분산된다 등의 개념은 훨씬 더 구체적이다. 그런데 그냥 민주공화국이라고만 하면 현실적으로 그 외연의 범위가 넓어서,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가 없고 허사(虛辭)에 가깝다.

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고 있으나 실제로 국민은 찬밥 신세라, 이것도 허사에 불과하다. 해방 후 미군정 시대를 거쳐, 1948년 헌법이 제정된 다음부터 지금까지 사실 국민이 주체가 되어 무언가를 규정해본 적이 없다. 그저 국민은 떠밀려 살았을 뿐이다. 이승만 독재, 유신독재, 전두환 군부정권 등이 그러하다. 그 이후에도 공권력의 권위주의가 그대로 잔재하여 국민은 그 공권력에 눌려서 ‘갑’이 아닌 ‘을’로 살아오고 있을 뿐이다.

결국 헌법에 규정하는 ‘민주공화국’의 허사가 우리에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채워져야 하는데, 누가 그것을 정하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그 주체는 공권력이 아니라 바로 민중이 되어야 한다.

 

5. 체제나 법률의 결정은 민중의 뜻에 따라 가변적이어야 한다.

진보의 적(敵)은 사실 정책 내용 자체에서 구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기존 체제의 개혁, 변화 자체를 방해하는 사회적 세력인 것은 확실하다. 그 변화가 보수든 진보든 꼭 어느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고정된 가치관이나 법칙은 있을 수 없다. 민중 다수의 의사에 따라 보수로도 갔다가 진보로도 갔다가 하면 된다. 문제는 민중의 뜻에 따라 언제나 변화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실로 경계해야 할 것은 한 번 만들어진 것은 고치지 못하거나 아니면 고치기 무지 어렵도록 경직된 절차를 만들어두는 것이다. 이런 경직성은 결정하는 주체가 민중이 아니라 대의제 기구인 국회가 되었을 때 가중된다. 국회의원의 출신성분이 가진 자들 혹은 가진 자들에 부화내동하는 세력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므로, 자연히 기득권 특권층에 유리한 것은 얼른 통과, 그렇지 않은 것은 묵혀두었다가 판판이 폐기한다.

국회는 직무를 유기하면서도 그 결정권을 민중에게 내주기를 원하지 않는다. 오늘날 국회의 안하무인 특권의식은 그들을 국회로 보낸 민중을 배반하는 것이다. 국회 안에 진보가 보수로 세력이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국회 자체가 바로 보수의 아성이다. 그 아성은 주권자 민중이 결정의 주체로서 제자리를 찾는 절차 민주정치의 도입을 원천적으로 두려워하고 방해하고 있다.

국회는 기득권자들의 특권을 지속시키려 하는 음모를 체제안정이라는 빌미로 감추고 있다. 변화에 대한 거부는 사법부도 마찬가지이다. 위정자들에게 빼앗긴 민중의 권리를 찾는 데는 바로 이런 음모와 논리를 경계하고 방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헌정 체제나 법률의 경개(更改)가 가능할 경우 사회의 안정성은 어떻게 도모하나 하는 문제가 있다. 한편에 체제 안정, 다른 편에 변화를 어느 정도로 도모할 것인가 하는 것도 위정자, 국회, 법관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민중이 결정한다.

 

6.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와 대의제 국회의 태만

직접 민주정치에 반대하고 간접 민주정치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직접 민주정에 반대하는 근거로서 첫째, 민중이 결정하면 중우정치가 된다는 것이다. 민중은 비전문적이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이고 정서가 불안하며 선동에 취약하고 적대성을 갖는 존재이므로, 이런 민중에게 권력을 맡기면 중우정치가 되어 국가 사회가 혼란해진다고 한다. 둘째, 고대 그리스는 나라 규모가 작아서 직접민주정치가 가능했으나 현대는 영역이 넓어서 직접민주정치를 시행할 수가 없다고 체념한다.

 첫 번째 문제, 민중이 결정권을 가지면 중우정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부터 살펴보자. 이런 염려는 민중이 아닌 정치가들은 민중과 다르게 현명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는 논리를 깔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전문 법조인인 법관도 완벽한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아가 전문가일수록 범죄에 더 능하다는 말도 회자되고 있는 판이다. 변호사, 의사가 그러하다. 법을 잘 알고 있을수록 변호사는 법망을 어떻게 빠져나가는가 하는 것을 잘 안다. 의사도 세계적 통계로 오진율이 30%가 넘는다. 의사의 오진율이 높다고 해서 의사로부터 치료의 임무를 박탈하는 일이 없다. 그 오류는 필요악이다. 그저 개선을 바랄 뿐이다.

법관이 재판을 잘못하는 경우를 대비하여 재심 제도를 둔다. 잘못 판결하면 다시 하는 것이다. 경찰이 수사를 잘못하면 재수사를 한다. 그런데 중우정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중에 대해서만은 실수 없이 완벽하게 판단 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중도 잘못된 결정을 하면 법관과 같이 스스로 재심도 하고 번복도 가능해야 한다. 민중의 결정은 한 번 만에 완전해야 한다는 법이 없다.

사실 오판(誤判)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부패이다. 부패는 민중보다 소수의 전문가들의 경우 더 심각하다. 최근 회자되고 있는 양승태 전(前)대법원장 사법권력 농단의혹은 법관들의 부패가 심각한 상황에 있음을 노정한다. 이는 양승태 개인이 아니라 사법권력 전반에 걸친 적폐이다. 이런 부패의 가능성은 결정권이 소수의 손에 집중될수록 더 심각하며, 민중에게로 널리 확대될수록 줄어든다.

만일 민중의 자질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면 직접 민주정치뿐 아니라 간접 민주정치도 실시할 수가 없다. 비이성적인 민중이 대의정치, 즉 간접민주정치를 해줄 정치가를 뽑는 능력을 갖는 것조차 불가능해지고 말기 때문이다. 이렇듯 비이성적이고 불안한 민중이 어떻게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을 뽑도록 맡길 수가 있겠는가. 종국에는 대중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되고, 민주정치 자체의 존속이 불가능해 진다.

 두 번째 문제, 나라의 규모가 커서 직접민주정치의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올바른 말이 아니다. 영역의 규모와 무관하게, 직접민주정치는 분권적인 권력 구조에 의한 것이다. 말 그대로 간접민주정치에서 정치가가 민의를 대표한다면, 직접민주정치에서는 민중이 직접 권력을 행사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민중의 권력 행사는 반드시 민중이 다 직접 결정한다는 것이 아니다.

직접 민주정치의 나라로 알려진 고대 아테네에서도 의회, 행정부 등 대의 기관이 있었다. 그러나, 민회의 민중이 공직자를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직접 행사했고 그런 점에서 그것은 직접민주정치이다. 이것은 현대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사실은 직접 민주정치를 하건 간접 민주정치를 하건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어느 것이건 공직자가 공권력을 오·남용했을 때는 가차 없이 처벌하는 권한을 민중이 직접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직접 민주정치의 비밀이다.

여기서 사고의 틀이 180도 전환된다. 민중이 비이성적이어서 직접 민주정치를 도입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민중의 뜻을 대의하는 공직자는 그 권력이 개인의 것이 아니므로 그 행사 과정을 시민들로부터 철저하게 검증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 검증과 처벌의 장치를 제도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직접 민주정치의 최소한 요건이다.

민중은 행정, 입법, 사법 등 정부의 3권을 초월하는 주권자이고 모든 권력은 민중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어느 정도의 권력을 대의제(代議制)로 하고 어느 정도를 직접 민주정치로 하는가도 민중이 스스로 결정한다. 국회가 그 길을 막는다면 대의(代議)를 하도록 위임한 주권자 민중의 적이 된다. 민중은 주권자로서 위정자들이 결정하는 대로 눈치만 보고 살 것이 아니다. 엄동설한에 개고생 해가며 촛불을 들고 대통령을 탄핵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일상적으로 공직자에 대한 감시가 이루어져야 한다. 위정자가 아니라 민중이 명실 공히 주권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직접민주정과 간접민주정은 어느 쪽을 할 것인가를 두고 싸울 필요도 없다. 둘을 적당하게 섞으면 된다. 지금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은 국민투표에 의해 선출되므로 이는 직접 민주정에 의한 것이다. 또 진보와 보수 간에서도 대립 그 자체는 근본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인권이 극도로 침탈되지 않는 한, 사회는 극도의 진보와 극도의 보수로 치달을 수가 없고 중의를 모아서 얼마간의 중도에서 머물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느 정도의 진보 혹은 보수를 할 것인가 하는 것보다, 그 정도를 ‘누가 결정할 것인가’에 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이해의 당사자인 민중이 되어야 한다.

 

7. 권력통제형 민주정치: 직접민주정치와 간접민주정치의 이분법 극복

 수(數)가 아니라 빈·부의 기준에 따른 아리스토텔레스 정치체제의 분류

고대 그리스 민주정에서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등 특정의 이념을 중심으로 하는 대립이 전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치체제를 민주정치(다수 혹은 빈자), 과두정치(소수 혹은 부자), 군주정치로 구분할 때, 그 핵심은 구체적 사회체제의 내용이 아니라 누가 결정권을 갖는가 하는 절차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빈자의 민주정치는 공산주의와 같은 말이 아니고, 과두정치는 어떤 특정계층의 경제적 특권과 무관하게, 결정하는 주체가 소수 혹은 부자라는 말이 된다. ‘빈자의 정치’ 혹은 ‘부자의 정치’는 결정권의 주체를 말하는 것이지, 구체적 체제의 내용으로서 공산, 자본 혹은 토지소유의 특권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론에서 논의되는 것은 빈자와 부자 간 갈등이다. 흔히 민주정이 다수, 과두정이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라고 알고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지식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민주정과 과두정의 차이가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통치라는 개념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 그 대신 민주정은 빈한한 자들, 과두정은 부유한 자들이 권력을 갖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모든 정치체제, 즉 군주정(왕정), 과두정(귀족정), 민주정(폴리테이아)이 일정 사회 계층의 이익만 옹호하는가, 혹은 전체민중의 이익을 도모하는가에 따라 좋은 정부도 되고 나쁜 정부가 되기도 한다. 그가 생각하는 바의 좋은 정부는 부자나 빈자 가운데 어느 한 편의 이익만을 옹호하는 정부가 아니다. 반대로, 그는 언제나 부자나 빈자 계층 간의 상반된 이해를 절충하기를 강조하며, ‘복합성’이야말로 좋은 정부체제의 조건이라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가 권력을 가지고 결정을 하는가에 기준을 두고 정치체제를 구분하였다. 민주정에서는 보다 넓은 사회계층 출신으로 민중에 의해 뽑힌 아르콘들이 세력을 가지거나, 민회의 민중이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민중’이라는 개념은 빈자의 집단만이 아니라, 상류와 하류의 사회경제적 집단을 함께 포함하는 전체 자유인의 사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두정에서는 재산자격에 의해 선출되는 아르콘들이 집권하며 빈한한 계층은 참가하지 않는다. 이때는 피선거인의 자격이 재산에 따라 한정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정치체제는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범위를 기준으로 구분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다수와 소수의 차이가 아니라 빈부의 차이에 의한 것이다. 민주정에서는 빈자가 결정권을 가지고, 과두정에서는 재산자격에 따라서 선거권이나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주의할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는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빈자인가 부자인가 하는 데 관심을 가졌을 뿐, 빈자나 부자를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자의 주체는 절차요, 후자의 정책은 내용에 해당한다. 이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체제론의 관심은 절차에 관한 것으로서, 민주정치란 정책의 결정권이 빈민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민주정이란 빈민이 직접 결정권을 갖는 것이어야지, 부자가 빈민에 관련한 정책의 내용을 결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빈부 간의 갈등에 관한 관심은 아리스토텔레스 뿐 아니라 그 이전의 플라톤, 그리고 더 이전 시대의 역사가였던 헤로도토스와 투키디데스에서도 보인다.

 

돌아가면서 통치하고 지배 받는 평등한 시민 민주정치

고대 아테네 시민 민주정치의 지혜를 돌아보자. 그들은 통치자나 피치자가 차이 없이 똑같은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돌아가면서 통치를 담당할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시민은 평등하며 조금도 차이가 없고, 또 시민이 교대로 지배도 하고 지배 받기도 한다.

가족의 지배는 군주정이다. 이는 모든 가정이 한 사람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적(politike) 지배는 자유롭고 평등한 자에 대한 것이다.

대부분 정치적 지배에서는 통치자와 피치자가 교체된다. 이들은 자연성에서 같은 수준이며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일찍이 복종할 줄 모르는 자는 좋은 지배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옳은 말이다. 이들은 동일하지 않으나 선한 시민은 양편에 다 같이 능해야 한다. 어떻게 자유인으로서 통치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자유인으로 복종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이 시민의 덕성이다. 지배자의 절제와 정의는 피치자의 것과 다르지만, 선량한 사람의 덕성은 양쪽을 다 같이 포함한다. 자유이면서 피치자인 선량한 사람의 덕성은 한 가지 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덕성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그가 지배할 수 있게, 또 하나는 복종할 수 있게 하는 덕성으로서 남자와 여자의 절제와 용기가 다르듯이 다른 것이다.

왕이라는 것은 그 국민보다 현저하게 우월한 것이 아니므로 … 모든 시민이 다 같이 차례로 통치하고 또 통치를 받고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에서 명백히 필요하다. 평등이란 동류의 사람들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데 있는 것이며, 정의 위에 기초하지 않는다면 어떤 정치도 유지되어 나갈 수 없다.

통치자와 피치자는 동일한 동시에, 일면 상이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의 교육 또한 동일해야 하는 동시에, 일면 상이하기도 해야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지배하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복종하는 것을 잘 배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지배를 받는 민중과 통치를 하는 정치가가 인간의 자질에서 다른 점이 있다고 보지 않았다. 또 정치를 함에 있어서 인간의 자질은 모두 평등하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민중과 다른 훌륭한 정치가란 개념이 없다. 그저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나라 일을 맡아서 할 뿐이다.

사실 우리는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에서 직접민주정치가 발달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위 예문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민들이 돌아가면서 통치하고 또 통치를 받는다고 분명히 적고 있기 때문이다.

 

아테네의 대의정치와 민중의 공직자 처벌권

아테네에도 대의정치가 있었다. 우리 국회와 같이 ‘500인 의회’가 있었고 10명의 장관, 장군 등 민중들에 의해 뽑혀서 나라 일을 대신 했던 공직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아테네 민주정치가 직접민주정치였던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다소간 대의정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권력을 제어 감시할 수 있는 권력이 민중에게 주어져 있었다. 이것이 바로 직접민주정치의 비밀이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들 수 있는데, 하나는 특정인에 대한 권력의 집중을 막는 것, 다른 하나는 공권력에 대한 감시 및 처벌권을 민중이 행사하는 것이었다.

아테네인들은 민중이 대중으로서 갖는 감정적 취약성이 아니라 오히려 권력이 특정인에게 집중되었을 때에 초래되는 위험을 경계했다. 인간의 생물적 약점보다는 사회적 제도로서 권력의 집중에 의해 야기되는 부정적 결과를 방지하는 데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관리의 임기를 1년으로 제한하고 또 연임이나 재임을 허용하지 않았다.

또 공직자가 공권력을 오용·남용 하든가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 민중이 처벌권을 확실하게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제도는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이다. 이 제도는 고대 아테네에서 이렇다 할 뚜렷한 잘못도 없는 정치가를 추방하는 데 쓰였다. 찬성 6000표만 모이면 막연한 의혹이나 그냥 ‘싫다’는 감정만으로도 민중이 정치가를 10년 동안 추방할 수 있는 가공할 제도적 장치가 도편추방제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치가들을 추방할 정도이니, 정치가나 장군이 잘못을 범하게 되면 가차 없이 민회의 결정이나 민중재판소에서 재판을 거쳐 추방해버렸다. 이렇게 국가나 민중에 손해를 야기한 공직자에 대한 처벌은 말할 것도 없고 공직자 아닌 정치가, 또 그에 대한 단순한 의구심만으로도 추방해버리는 절차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런 도편추방제도는 공권력을 행사하는 공직자는 사인(私人)과 달라서 각별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대 아테네인은 깨닫고 있었으며, 이런 제도적 장치가 그 민주정이 바르게 작동하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사실을 보여준다.

이같은 제도적 장치는 현재 우리 한국의 상황과는 아주 다르다. 우리네 위정자들은 범법 행위를 한 경우에도 ‘고도의 정치적 결정’이라는 빌미로 정당화함으로써 법위에 군림하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도권이 민중이 아니라 위정자에게 있음을 단적으로 증명한다.

더구나 현행법에 따르면, 우리는 증거가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공공연히 대중 앞에서 적시했을 때는 명예훼손죄에 걸리게 되어있다. 사실 공직자의 경우는 비리의 의혹만 있어도 공론화함으로써 훗날을 경계하는 것이 공권력의 오·남용을 방지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사실조차 발설하지 못하도록 하여 원천적으로 막고 있으므로 공직 비리는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고금을 막론하고 민중과 정치가의 자질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며, 직접민주정 혹은 간접 민주정(대의제도) 중 어느 것을 할 것인가를 두고도 다툴 필요가 없다. 대의정치를 해도 상관이 없으나, 민중을 대의하는 공직자가 그 권력을 올바르게 행사하는지에 대한 감시와 처벌의 권한을 주권자인 국민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민중이 그 공권력을 감시·처벌하는 제도적 절차가 거의 전무하다.

 

고대 그리스인의 공직자 감시와 소환제

국민소환제(recall)는 공직자 임기 만료 전이라도 국민이 부적격하다고 판단하는 경우 일정수의 투표참여율과 일정수의 찬성률에 따라 투표로서 그를 해임하는 것이다.

공권력을 행사하는 자에 대한 견제장치로서의 국민소환제는 고대 아테네 민주정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공권력에 대한 아테네인의 감시는 관직에 임할 때의 자격심사, 관직을 물러나올 때의 수행검사가 있었다. 기원전 4세기 중반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으로 전하는 <아테네 국가제도>에 따르면, 의원들은 다음해의 의원들과 9명 아르콘의 자격심사를 한다고 하고, 그 전에는 의회가 최종 심사를 하였으나 아리스토텔레스 당시에는 그 최종 자격심사권이 민중재판소로 넘어갔다고 한다. 특히 관직을 마치고 나올 때 확인을 하여 미비한 점이 있으면 벌을 주고 국가에 손해를 입힌 것이 있으면 손해배상을 하도록 했다. 이뿐만 아니라 아테네 민회는 매달 공직자의 공무수행을 감시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었다.

의회는 휴일을 빼고 매일 열리고 민회는 각 행정회기[프리타네이아]마다 4번 열린다. … 첫 번째 주요 민회에서 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관리들이 잘 통치할 때는 그들에 대한 지지를 표결하며, 먹을 양식과 영토방어에 대해 의논하고, 같은 날 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탄핵을 하게 한다.

<아테네 국가제도>에서 전하는 위 예문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고전기 아테네인들은 약 한 달 간격으로 4번의 민회를 여는데, 그 중 첫 번째 민회에서는 언제나 공직을 잘 수행한 자에 대해 지지를 표하고, 못한 자들에 대해서는 탄핵을 한다. 공직자가 법을 따르지 않을 때 원한다면 개인도 탄핵할 수 있다. 의회가 이를 유죄로 판결하면 문제는 또 재판소로 이관 된다. 세금을 받아서 관리들에게 나누는 직책을 맡은 세금 수납관의 경우, 분배한 몫을 나무판에 적어 가지고 와서 의회장에서 읽는다. 이때 공인이건 사인이건 간에 분배를 잘못한 자를 보게 되면 의회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여 잘못의 유무를 가리는 투표를 한다. 의원들은 또 자신들 가운데서 회계관 10명을 추첨하여 각 프리타네이아[행정회기: 1년의 1/10]마다 관리들의 회계를 검열하도록 했다.

의회는 물론 민회의 민중은 공직의 수행 상황과 공직자에 대한 감독을 매달, 즉, 행정회기가 바뀔 때마다 수행했다. 공권력에 대한 고대 아테네인의 감시는 철저했으며, 근대 국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작은 권력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감시함으로써 민주정이 순기능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했다.

 

최자영

전 부산외국어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