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이르러 인간은 종교 철학에 있어서 개벽의 전환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는 21세기의 존재론이 실체론에서 생성론으로 전환을 하게 되면서 종교철학 또한 이 영향으로 벗어날 수 없기에 당연한 결론입니다. 하여 실체론에 입각한 유일신 종교들은 이제 소명을 다하게 되면서 21세기의 종교는 표층종교에서 심층종교로, 믿음의 종교에서 깨달음의 종교로, 타력의 구원에서 자력의 체험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다시 모색할 수 밖에 없는 시점이기에 필자는 새로운 종교철학의 태통을 위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해 인류 사고의 원형태인 신비주의에 대하여 먼저 모색을 시도해보고자 합니다. 일반적으로 신비주의(Mysticism)라 함은 절대적 존재(ultimate reality)와의 합일을 의미하는 종교적 양식을 일컫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존재론에 따라 신비주의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갈라지는데, 예를 들면 실체론의 입장중 하나인 일원론의 관점을 따르면 개체는 태생적으로 본래 하나인 실체가 단지 다른 양태들로 변용되어 나타났기에 절대적 존재인 실체와 개체는 속성상 완전히 같다고 볼 수 밖에 없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데 이런 관점을 일관한 철학이 스피노자의 범신론pantheism이라할 것이며, 실체론의 입장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인 이원론의 입장을 따르는 유일신 사상은 절대적 존재와 개체는 서로 다른 실체이므로 존재론적으로 간극이 있을 수 밖에 없어 속성상 일치라는 개념은 성립될 수 없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원론을 극복하고 신과 인간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면의 흐름이 있는데 이에 부합하는 종교철학으로 네오플라토니즘에서 비롯된 기독교 신비주의, 이슬람 수피즘, 유대교의 카발라신앙, 힌두교의 베단타 신학 등으로 이루어진 신비주의들을 들 수가 있습니다.
한편 실체론에 반대하는 비실체론, 즉 생성론의 입장을 견지하는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과 불교의 불성사상도 네오플라토니즘의 신비주의적 유출론 체계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넒은 의미에서 신비주의에 포함시켜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신비주의는 단지 특정한 종교적 양식이 아니라 인종이나 지역 또는 시대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인류 정신문명의 보편적 구조라는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즉, 구조주의자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의 보편적 사고의 양식으로서 주장한 ‘야생적 사고’(그는 근친상간의 법칙을 야생적 사고의 가장 보편적이고 원초적 형태라고 주장하였습니다)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신비주의는 세계 모든 인종이나 종교나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기에 이를 인류의 보편적 문화유산으로 인정하고 더욱 확산, 심화시켜 나가야하지 않을까하는 바램을 갖게 되는데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신비주의는 절대적 존재와 인간과의 본래적 일치 또는 합일 체험을 중시하는 종교적 양식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데 그렇다면 신과 인간 나아가 초월과 내재의 합치, 즉 직접적 합일체험을 통해 신과 인간의 이분법적 분리를 전제로 하는 실체론에 입각한 유신론들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현대종교의 문제점인 중간적 존재인 성직자와 종교적 공간 및 상징 등을 통하지 않으면 신을 만날 수 없도록 제도화된 오늘날의 종교적 장치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들도 극복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한편 신비주의와 유사한 종교적 형태가 샤마니즘이라할 것인데 다만 기존 보편적 신비주의와 다른 것은 신과 인간 사이를 매개하는 무당(shanman)이 있기에 합일체험을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는 유사 신비주의라 할 것인데 오늘날 기성 종교들의 폐해는 이러한 매개자들을 마치 신의 대변인인양 왜곡하는 종교적 형식과 장치에서 비롯된다할 것인데 특히 한국의 종교적 유전자는 우랄알타이 산맥에서 발원한 샤마니즘shamanism에서 발원하였기 때문에 기성종교의 성직자들이 신도들에게 자신들을 마치 샤먼처럼 신의 전달자라고 세뇌시킴으로서 종교의 폐해를 키우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샤머니즘화하고 있는 한국 기성종교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비주의의 올바른 부활이 반드시 필요하다할 것입니다.
또한 신비주의는 합리적 이성(철학)과 종교적 직관(종교)의 결합, 즉 분별과 직관 또는 이성과 감성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성)만능의 현대에도 과학의 한계를 뛰어 넘는 종교가 왜 필요한지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할 것입니다. 나아가 신비주의는 신과의 일체를 보여줌으로서 신과 인간, 초월과 내재, 이성과 감성, 인간과 자연,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등의 이원성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 자체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바울의 초월적 종말과 구원이 아닌 역사적 예수의 현세적이고 내적인 구원을 더욱 빛나게 한다 할 것입니다. 하여 예수를 신화적 예수로서의 구원Christos자가 아니라 성육인의 화신Incarnattion으로 사건화된 인간, 즉 역사적 예수로 재해석하게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할 것입니다. 하여 예수를 성육신의 사건event으로 해석하고 또한 모든 인간도 같은 성육신의 사건event으로 본다면 우리는 예수와 같이 성육화된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도 예수와 동질적인 동지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닦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성육화된 예수가 되기 때문에 신화적 예수를 도반으로 하여 그가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같이 걸어가야만 하는 신학적 토대를 마련할 수가 있다할 것입니다(이에 대해서는 추후 알랭바디우의 진리의 신학과 안병무 선생의 사건의 신학과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을 융합 하여 다시 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신비주의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기성종교의 결정론을 버리고 인간의 주체적 지향과 자유의지를 중시한다는 점인데 왜냐하면 신과의 합일체험은 반드시 인간의 의지와 수행을 통하여만 가능한 것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이 신의 선택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결정론은 폐기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신비주의의 또다른 특징은 자연의 존재법칙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적 양식이라 할 것입니다.
이는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비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필자가 주장하는 일심사상도 자연법칙인 현대물리학(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과 천체물리학 나아가 복잡계 이론과 인지과학의 융합에서 얻어낸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신비주의 양태를 검토해보고합니다.
무엇보다 기독교 신비주의는 네오플라토니즘Neo platonism의 플로티누스의 유출론에서 비롯되는데 궁극적 실체로서 제 1원인자인 헨Hen으로부터 제 2의 실체인 인격신(유일신) 누스Nous가 출원 하며 다시 누스로부터 제3의 실체이자 인간의 영혼인 프시케Psyche로 흘러드는데 이 영혼에는 우주적 영혼(니르구나 브라만)과 개인적 영혼(사구나 브라만)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철학의 방점은 유출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에 방향을 역류하여 영혼의 최초의 고향인 헨Hen으로 돌아가서 정화하는 과정, 즉 환원하는 과정을 그리면서 결국 자의식을 정화purification하여 신의 순수의식에 몰입되는 일치체험을 중시하게 됩니다. 이는 이후 마이스터 에카르트는 유출론을 더욱 심화, 확장시키면서 제 1원인을 신성Gottheit라 불렀습니다만 그 구조는 위 유출론과 큰 차이는 없다할 것이며 역시 그도 자아의식을 버리고 절대적 존재와의 합일unification을 도모하는 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갈파한 것입니다.
그 외에 이슬람교의 수피즘은 성자인 만수르에서 그 절정을 보는데 ‘그는 내가 사랑하는 나이고 나는 그가 사랑하는 그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신비주의의 극단을 보이고 있으며 나아가 유대교에는 카발라신앙이 있으며 힌두교에는 상카라가 주창한 불이론의 베단타 신앙(위에서 본 니르구나 브라만Nirguna Brahman과 사구나 브라만Saguna Brahman의 일치)이 있으며 불교에는 불성사상이 있어 세상은 여래성기, 법성현기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처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한편 현대에 들어와서 신비주의의 특징을 유지한 채 나타난 비실체론적인 생성론에 기반한 신학이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이라 할 것입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보게 되면 신God의 위상과 역할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유출-환원론과 유사하다할 것인데 그는 현실적 실재actual entity들의 합생concrescence에 신도 참여를 하는 데 신은 자신의 ‘원초적 본성’을 이용하여 현실적 실재들에게 자신의 주체적 지향aim으로서의 목적인을 부여하고 과 영원한 객체everalsting object를 통하여 작용인을 부여하는 ,즉 유출작용을 시작합니다. 이후에는 자신의 ‘결과적 본성’을 통하여 현실적 계기들을 구제하는 역할, 즉 환원작용을 마무리합니다.
결국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도 그 골격은 네오플라토니즘과 마이스터 에크하르의 유출-환원론을 철학적으로 갈무리한 것에 불과하다할 것입니다. 하여 필자는 생성론자인 화이트헤드가 기독교의 신을 다시 호출하여 신을 유일신인 누스Nous처럼 인격화하여 신에게 다른 현실적 실재를 출산하고 구원하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신을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인 존재로 그리는 범재신론(panentheism)을 주창한 점에 대해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비록 중세의 오로지 ‘초월적인 기독교’의 인격신의 개념을 버린 점은 높게 사고 싶습니다.)
결국 그는 ‘초월’과 ‘내재’라는 이중적인 신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기는 하였으나 근원적으로 종전의 기독교적 신God 개념을 차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순을 노정하고 있는데 특히 초월자로서의 신의 속성인 ‘동시성’ ‘영속성’ 문제는 오늘날 현대물리학 이론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어 그조차 제대로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하여 필자는 그러한 신의 초월성도 우주의 내재 속에서 찾아내야한다는 당위성을 자각하면서 신비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새로운 종교철학을 시도하였습니다. 그 결과 ‘일심사상’이라는 종교철학을 구축하게 되었는데 그 큰 틀을 설명드리자면 여기서 말하는 ‘일심’은 그냥 하나의 유기체로서의 ‘우주 자체’를 의미합니다. 복잡계 이론에 의하면 우주 자체는 무한한 구성요소로 이루어져있지만 그러한 구성요소와는 전혀 다른 존재로 창발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라 구성요소들의 합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유기체, 즉 분리되었지만 분리되지 않은 한 몸the devided undevideness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와는 전혀 다른 독자적인 하나의 생명체인 유기체이기에 그러한 유기체는 물리적 요소와 정신적 요소를 모두 갖추어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인지과학, 특히 토토니의 정보통합이론에 의하면 마음은 정보의 통합처리시스템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도 자신의 항상성 유지를 위해 쉬지 않고 자기-조직화를 수행하면서 우주내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처리하고 있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우주는 당연히 마음을 가진 존재라는 결론을 도출하게 됩니다.
또한 우주는 정보로 이루어져있다고 주장하면서 대세로 떠오른 ‘정보우주론’에 의하면 우주는 정보로부터 출발하였는데 이를 존 아치볼트 휠러는 it from bit 즉 우주는 정보로부터 태어났다라는 것인데 오늘날은 bit(0 또는 1)가 아닌, Q bit(0 과 1)로 이루졌다고 보며 큐비트 256개만 주어지면 우주의 모든 정보를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쉬뢰딩거의 파동함수에 우주의 모든 정보가 담겨져 있다고 해석하는 것과 상통하는 것으로 결국 우주는 정보의 통합적 처리시스템이라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하다면 결국 우주 자체는 마음을 가진 존재이기에 물리적 측면과 정신적 측면을 구유한 하나의 전일적인 유기체라 할 것입니다.
결국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와의 합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생명체, 즉 유기체이기 때문에 우주 자체는 화이트헤드의 ‘신의 원초적 본능’처럼 자신의 구성요소에게 작용인과 목적인을 부여하면서 우주안의 세계들을 설계designer하며 창도advocator합니다. 즉, 우주는 ‘항상성homeostsis유지’라는 ‘목적인’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항상 ‘자기-조직화self organization’를 멈추지 않는 ‘작용인’을 가지고서 세계를 설계하며 창도하는 것입니다.
한편 우주 자체 또한 자신의 구성요소들에 의해 생성되기 때문에 우주 자체는 구성요소인 세계로부터 작용인과 목적인을 새롭게 부여받음으로써 우주와 세계는 서로 창조하면서 창조되는 상호작용을 하는 상호인과관계, 즉 연기적 관계를 맺게 됩니다.
이런 상호 인과적 관점은 화이트헤드의 신의 위상에 대한 설명과 동일하다할 것입니다만 다만 일심사상은 신은 우주자체를 의미하기에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 즉 범재신론panentheism이 합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신의 초월성문제(즉, 신은 다른 현실적 실재와 동시적인 존재라는 ‘동시성’과 신은 다른 현실적 실재와는 달리 항상 초월적이며 영원하다라는 ‘영속성’의 문제)는 생길 여지가 없는 장점이 있다할 것입니다. 또한 이런 관점을 연장한다면 인간도 단지 신의 피조물로서 결정론을 따르는 대상이 아니라 신과 함께 우주의 ‘설계’와 ‘창도’를 아우르는 주체적이고 창조적인 존재로 승격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일심사상은 굳이 초월적인(엄밀히 말하자면 ‘초세간’transcendent을 의미) 신의 개념을 동원하지 않고도 우주의 생성과정을 초월적이며 내재적인 ‘일심’만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기에 현대의 비실체론, 즉 생성론(사건론, 과정론, 관계론)에 가장 부합하는 종교철학이 된다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성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존재의 법칙을 무시한채 존재법칙과는 무관한 선험적인 당위법칙을 만들어 무조건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측면때문에 발생한다할 것인데, 즉 존재Sein를 벗어나 그와 어긋난 당위Sollen를 강요함으로써 종교가 도리어 족쇄가 되어버린 것이라 할 것인데 위에서 언급한 신비주의나 필자의 일심사상은 우주의 존재법칙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종교철학을 추출한 것이기에 몸에 딱 맞는 옷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할 것이며 또한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이원론이든 일원론이든 실체론에 입각한 종교로 인해 나타나는 폐해를 조금이라도 없앨 수 있는 ‘자연신학’이라할 것입니다.
즉 ‘일심사상’은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의 ‘합생이론’과 양자역학의 ‘존재론’ 및 상대성이론의 ‘상호인과론’ 나아가 복잡계의 ‘창발이론’ 및 인지과학의 ‘마음’개념을 융합한 과학적인 종교철학으로 신비주의의 입장을 받아들이는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종교철학이라 할 것입니다.
-존재에서 당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