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가나는 자국에서 가장 훌륭하기로 손꼽히는 인재를, 아프리카는 한 명의 거인을, 세계는 도덕적 잣대를 잃었다. 그를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그가 살아온 특별한 삶에 영향을 받았던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 역시 비통함에 빠져 있다. 같은 아프리카 출신이자 평화와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리더로서, 나 역시 감히 그들 중 한 명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내인 나네를 비롯한 아난 가족들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하고 싶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민사회적 관점에서, 또 그가 한평생 가슴에 품고 살았던, 현재 우리가 분투하고 있는 문제의 관점에서 코피 아난에게 경의를 표하려 한다.
코피 아난은 유엔 사무총장 재직 당시 ‘우리 연합국 국민들’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되는 유엔 헌장의 서문을 재차 강조하곤 했다. 국가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가장 먼저 내세운 표현처럼, 유엔은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제1의 원칙이었다.
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코피 아난은 각국 정부에게만 책임을 전가하지 않고 포용적으로 접근할 때 가장 효율적인 거버넌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가 비정부단체(NGO)부터 노동조합, 종교단체까지 시민사회 모든 분야의 목소리를 높이기 위한 유엔 의제를 강화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코피 아난이 가난한 이들에게 보인 헌신은 깊고도 개인적인 것이었기에 절대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는 새천년개발목표(MDG)가 무사히 채택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일부 강대국들의 설득에도 나섰다. 그는 MDG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최소한의 개발 목표”라며 혹독하리만치 솔직하게 평가했고, 항상 더 나은 대안을 찾기 위해 분투했다. HIV/AIDS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각하던 시기에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과감히 나섰고,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제 HIV/AIDS는 현대 주요 질병 문제 중 하나로 당당히 인정받게 되었다. 특히 빈곤층 산모와 영아들 사이에서 HIV/AIDS가 확산되지 않게 막기 위한 연구 개발에 엄청난 재정 자원을 투자했다. “세상의 부당함을 내 일처럼”이라는 국제앰네스티의 슬로건처럼, 그는 가난과 불의, 불평등을 진심으로 자신의 일처럼 여겼으며 깊이 공감했다.
코피 아난은 기후변화에 맞선 투쟁에도 앞장섰던 활동가였다. 그는 기후변화가 환경뿐만 아니라 경제, 평화, 안보, 성평등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을 막으면 지구를 구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그들의 미래까지도 지킬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가장 취약한 이들에게 평생을 헌신했던 사람답게, 코피 아난은 기후변화가 특히 아프리카와 도서국가, 최빈개발도상국에 미치는 영향을 우려했다. 유엔 사무총장 재직 중 기후변화 문제에 상당한 우선 순위를 부여했던 그는 유엔을 떠난 뒤에도 핵심 과제로 삼아 관련 활동을 이어갔다.
평화에 대한 그의 헌신 역시 한결같았다. 은퇴 후 한가로운 생활을 즐길 만한데도 그는 불굴의 용기와 저력을 발휘해 세계 곳곳의 분쟁 지역에 평화를 요구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국제 원로 자문그룹인 디 엘더스(The Elders)의 의장이 된 그는 케냐를 비롯해 분쟁을 겪고 있는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가장 최근에는 미얀마의 로힝야인들에게 평화와 정의를 보장하라고 촉구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의 행적이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누구보다도 코피 자신이 먼저 인정할 사실이다. 르완다의 안타까운 사례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은 세계적인 강대국들이 그의 앞길을 방해한 결과물일 때도 많았다. 코피가 애석해했던 것 중 하나는 2012년 6개항 평화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이후 유엔-아랍연맹의 첫 번째 합동특사직을 사임해야 했던 일이었다. 강대국들이 시리아 국민들의 생명보다 지정학적 이익을 우선하면서 그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기 때문이었다. 코피는 자신의 활동으로 위기감과 이성을 되찾을 수 있기를 바랐지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었다. 이라크 사례에서 코피는 국제법과 국제규약에서 요구하는 내용을 재차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찬성하는 국가까지도 포괄해 세계 대중들의 의견을 파악하고 이해했던 현명한 목소리였다. 그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면 셀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코피는 유엔에 애정을 갖고 인류의 연대와 정의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전적으로 헌신했지만, 한편으로는 민주성, 준수 및 일관성 부족이라는 유엔의 한계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유엔이 1945년 당시의 지정학에 머물러 있다고 대담하게 소신을 밝혔다. 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개편을 위해 분투했지만, 그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코피 아난을 추억하면서, 우리는 그가 남긴 업적에 존경을 표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투쟁을 이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취약하며, 소외된 자들을 위한 투쟁이다. 우리는 코피 아난이 대표적으로 보여줬던 대담한 리더십이 요구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세계는 포용적이고 효과적인 유엔을 필요로 한다.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과제를 받아들일 준비를 마치고 안전보장이사회를 반드시 개편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계속해서 처참한 피해를 일으키고 있는 지금, 변명 대신 야심찬 조치가 필요한 때다. 법치주의에 대한 존중이 급격히 무너지고 민간인들이 끔찍한 피해에 시달리고 있는 지금, 지도자들은 정의로운 평화의 가능성을 과감히 믿고 끈질긴 투쟁을 이어 나가야 한다. 지속가능한 개발목표의 시대에, 누구도 낙오되지 않도록 실질적인 행동과 책임을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시민사회 전반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 확신한다. 코피는 평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 기후변화에 맞선 싸움에서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더욱 증폭시키고자 했다. 그가 떠난 것은 그를 세상에 내보냈던 아프리카 대륙뿐만 아니라,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모든 사람들에게도 크나큰 상실이다.
코피 아난의 삶은 세상을 더 안전하고, 공정하고, 정의롭고, 포용적인 곳으로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영감으로 남을 것이다.
국제앰네스티 쿠미 나이두Kumi Naidoo사무총장
그가 그립겠지만, 그를 잊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도덕적인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세상에, 코피의 삶이 앞으로도 그 용기를 발휘할 수 있는 영감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