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주류 언론도 남북대화가 그리고 이어서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북미대화가 세상을 하루아침에 바꾸지는 않을 것이란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이나 트럼프 대통령에게 모세처럼 바다를 가르거나 예수처럼 죽은 사람을 일으켜 세울 능력은 없다.
그들은 강력하고도 상징적인 행위를 취할 수 있다. 이 행위의 전후로 정부의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이 뒷받침된다면 경제와 시민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 그러나 통합을 향한 준비와 그 실행을 지지하는 광범한 지지 그리고 이에 입각한 권한의 위임이 없을 경우, 무기력감이 희망과 진보의 불빛에 그림자를 드리울 위험이 존재한다.
나는 북한과의 교류를 논의하는 시민 모임에 단 한 차례도 초대받은 적이 없다. 사실 그런 시도가 있다는 말을 주변에서 들어본 적도 없다. 정치인들이 기적을 이뤄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이번 정상회담의 막후 전략이 점진적인 진보일 수는 없다. 최근 대결의 언사와 전쟁 준비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것이었다. 이전의 남북 정상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금강산 관광이나 이산가족 상봉에 집중할 여유가 없다.
북한의 일방적인 비핵화라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정상회담에서 고집할 수도 없다. 광범하고 포괄적인 거래 없이 일방적인 비핵화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현 트럼프 정부는 이 같은 거래를 협상하거나 실행할 능력이 없다. 정부에서 전문가를 모두 내쫓았기 때문이다.
두 정상은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전환과 이를 가능케 할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의 관계 변화를 상징적으로 그리고 실질적으로 표명해야만 한다.
일본과 중국의 불화는 물론, 미국과 중국 및 미국과 러시아 간의 긴장은 이와 같은 대타협이 그저 몽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주장도 가능하다.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에 맞닥뜨렸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다른 때 같았으면 별 관심도 없이 심드렁했을 관료와 정치인들이 평소에는 고려하지도 않았을 혁신적 행위를 취할 수밖에 없는 흔치 않은 순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반도 문제의 핵심은 안보다. 이번에는 전쟁이나 충돌 혹은 갈등을 몇 주 혹은 몇 달 뒤로 미루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장기적인 안전 보장에 모든 노력을 집중해야만 한다. 이러한 시도라야 “안보”라는 용어의 의미가 바뀌었음을 보여줄 수 있다. 얼음이 물로, 또는 물이 증기로 그 상태가 바뀌는 것처럼 말이다. 상태가 어떻게 바뀌든 여전히 동일한 물 분자인 것처럼, 안보의 본질 역시 불변이겠지만 어떤 모양을 취할지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안보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자
그렇다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이슈란 무엇인가? 언론이 압도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북한의 비핵화 그리고 향후 관계 정상화의 전제 조건으로서 북한의 조건 없는 비핵화이다.
그러나 잠시 솔직해지자.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과 햄버거를 함께 먹자는 제안에서 선제적인 핵 타격 위협으로, 역사상 가장 엄격한 제재의 설파로, 그리고 북한과의 의미 있는 대화에 관한 어떠한 명확한 설명도 없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갑작스런 정상회담 합의로 오락가락해왔다.
진정한 안보를 향한 첫 걸음이란 이에 관한 진지한 논의의 시작이다. 특정 무기 시스템을 관철시키려는 특수 이해관계로부터 독립된, 투명한, 시민이 직접 참여하는 논의이다. 안보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관하여 우리 스스로가 솔직하게 대화한다면 의미 있는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누군가가 위에서 좌지우지 않는 합의이다.
그러나 한반도의 안보 논의는 점점 더 현실로부터 멀어지는 중이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국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이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특히 그렇다.
남한과 북한, 그리고 이 지역의 여타 국가들이 함께 공유하는 안보에 관한 근심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확립하는 일이, 합의의 바탕을 마련하는데 훨씬 중요하다. 이는 향후의 진전을 위한 강력한 기반이 된다. 북한이 핵무기와 관련 기술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미국은 스스로 서명했던 핵확산방지조약을 어기면서 차세대 핵무기 시스템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사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일이 아니다. 북한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공통의 기반을 찾을 수 없게 하고 결국 실패하게 된다.
생태 시스템의 붕괴는 공동의 안보 우려 중 하나이다. 한반도에서 물은 희소하다. 작년 여름 물 부족이 위기 수준에 도달했고, 2018년의 높은 기온과 낮은 강수량을 고려한다면 올해에는 작년 수준의 재앙을 넘어설 전망이다.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사막이 서서히 확산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5년 간 식량 가격이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 문제가 북한과 공유하는 중대한 안보 이슈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우리는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보의 정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환경안보와 인간안보 및 경제안보를 강조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중대한 안보 우려를 묵살한다면 이는 회담의 목적 자체를 망각하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했던 “‘전략적 인내’의 종말”이란 용어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만 한다. 다른 방식으로 말이다.
트럼프 주변의 강경론자들은 이 말이, 오로지 군사력이나 제재를 통한 심대한 타격에 의해서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의미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는 “‘전략적 인내’의 종말”이란 표현의 유일한 의미가 아니며 나아가 가장 주된 의미도 아니다.
‘전략적 인내’의 종말에 대한 보다 정확한 해석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그저 내버려두고 점점 적대적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대비하여 방어계획을 준비하면 된다는 오바마 정부의 기본 가정이 미국에게 심각한 실수이며 그것이 군사행동이 아니라 실질적인 대화로 대체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전략적 인내란 의미 있는 대화가 절대로 아니며, 남북한과 중국, 일본 및 러시아를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안보질서를 위한 근본적 제안도 결코 아니다.
미국이 중동 전역에서 일으킨 인도적 위기에서 볼 수 있듯이 경제제재나 군사행동을 통한 대응이란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남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담대하게 사고하여 진지한 시도를 해야만 한다. 모든 측면에서 동북아시아의 안보 규칙을 새로 쓰고, 사려 깊고 용감하며 현명한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마치 영국의 대헌장을 기초하는 것처럼, 위대한 역사적 순간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언론 플레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역사적 위기는 너무나도 심각해서 이같이 큰 그림을 그리는 접근법이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어쩌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일지도 모른다.
반 지성주의
한반도 안보와 관련하여 가장 심각한 암적 존재는 부패한 언론을 통해 전파되는, 악의적 반 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이다. 주식시장이나 외국 투자은행으로부터 독립된, 신뢰할만한 정보제공처의 사멸로 한국인 다수가 미덥지 않은 정보에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다. 협력과 상호부조를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에 의미를 부여했던 지역 공동체가 시들면서 많은 한국인들은 깊은 고립감에 빠졌다.
연령대를 불문한 높은 자살률은 이런 상황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진지한 논의를 벌이기보다 비디오 게임이나 천박한 드라마에 빠져들려는 한국인이 대단히 많다는 점도 명백한 증거이다.
의미 있는 정책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두려움 없는 진실의 추구가 끊임없는 소비로 대체되었다. 단시간의 전율을 위해 먹고 마시고 시청하는 당장의 만족을 “행복”의 정의로 떠받드는 문화가 조장하는 소비이다.
정치는 인기를 얻기 위한 쇼가 되었다. 정책의 세부사항이나 장기적 발전에 대한 관심은 거의 없고, 소셜 미디어에 방금 올라온 언급에만 모두가 열광한다. 선정주의가 동북아를 불안하게 만드는 사회, 환경, 경제 요인에 관한 세밀한 분석을 대신한다.
안보에 관한 논의가 이처럼 기괴하게 변형된 데에는 비디오 게임 문화의 확산이 영향을 미쳤다. 가차 없는 군사충돌을 미화하고, 총싸움이 오락거리일 뿐만 아니라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성인을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시간을 보낸다. 게임문화는 기후변화와 인공지능에 의한 대규모 통합 그리고 국민국가의 와해에 직면하고 있는 오늘날의 복잡한 안보 상황을 설명할 수 없도록 만든다. 비디오 게임은 장기 전략이 아니라 분초를 다투는 빠른 대응이 안보의 핵심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북한의 핵무기보다 훨씬 위험하다.
산업공해와 환경파괴
언론이 과장하는 북한의 공격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데 반해, 기후변화와 산업공해의 위협은 100 퍼센트 확실하다. 언론은 지난 50년간의 기온 변화를 비교하는 일이 없다. 그런 비교가 있었다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인지 조금은 알 수 있었을 수도 있다.
산업공해와 관련된 질병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년 죽어가고 있는지도 우리는 모른다. 한국인 대부분은 지난 10년간 국내의 독성물질 배출이 얼마나 심각해졌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 분석은 고사하고, 언론은 미세먼지를 마치 눈이나 비처럼 피할 수 없는 무엇이라는 식으로 다룬다.
정부의 핵심 기능 상실과 기업의 탈규제로 인해 한국의 공장들은 대기와 수질을 얼마나 오염시켰는지를 자발적으로 보고한다. 자발적 보고서가 변조되기도 하며 정부가 공해 유발 기업을 조사하거나 벌칙을 부과할 방법은 전혀 없다. 한국 정부는 시민을 중독 시키는 행위를 멈추라고 기업에 요구할 권한을 상실했다. 시민들에게 제공되는 것은 주요 병원의 화려한 암 센터이다. 이곳에서 희생자를 사랑하는 친지들은 치료를 위해 재산을 쏟아 붓지만 이들이 환경 정책을 바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다.
향후 30년 동안 기후변화가 한반도에 가져올 위협을 어떤 식으로든 객관적으로 평가해본다면, 그 위험성이 너무나 크고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이를 완화하는 데 소요될 비용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 드러날 것이다. 한국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재래식 무기 전반에 걸쳐 획기적으로 예산을 삭감하는 협약을 주변국들과 맺고, 100 퍼센트 재생 가능한 경제로 완전하게 이행하는 것이다.
환경의 관점에서 안보를 재규정하는 데 반대하는 부류와 단기적 이익 상실이 두려워 지속 가능한 경제 시스템에의 투자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미래 세대를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사막의 확산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이다. 베이징을 향하고 있는 중국 북부의 사막은 평양으로 움직인 다음 서울에 닿을 것이다. 한반도에는 이미 반 건조 지역이 확산하는 중이다. 탱크나 미사일 방어시스템이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이를 저지할 수는 없으며, 우리는 결국 생존을 위한 싸움에 직면할 것이다.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아파트를 짓느라 없애버린 농토와 방치된 상태에서 빗물에 소실된 비옥한 토양이, “자유무역”을 통한 곡물과 채소의 수입으로 어떻게든 해결되리라는 것이 한국 기업가와 정부 관료의 상식이다. 슬픈 일이다.
그러나 기후변화의 추이는 이런 계획이 헛된 꿈임을 보여준다. 미국과 러시아, 호주, 아르헨티나 등 곡물과 채소를 수출하는 국가들은 점점 더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게 되며, 어쩌면 동북아시아에 더 이상 식량을 공급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수입 농산물 가격이 치솟고 식량 자체가 금세기의 안보 이슈가 될 것이다. 중국은 자국의 어마어마한 부로 식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국은 궁지에 몰릴 수도 있다.
좋든 싫든 한국은 농업을 중시하는 경제로 회귀할 수밖에 없고 경솔한 택지개발로 소중한 토양을 잃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후회할 미래가 올 것이다. 석유를 기반으로 하는 비료와 농업이 환경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수백, 수천 년간 한반도에서 사람이 살아가야 한다. 따라서 이제 농업에의 접근법은 유기농일 필요가 있다. 유기농이란 상위 중산층 시장을 상대로 값비싼 브랜드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사막의 확산과 함께 해수면의 상승이 전 지구에서 진행 중이다. 부산이나 인천 같은 도시가 물에 잠기며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피해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식량공급의 위험과 해수면 상승에 대한 장기 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심지어 다수의 한국인은 해수면의 상승과 사막화가 중대한 위협이라는 점조차 이해하지 못 한다.
해수면의 상승 이외에도 또 다른 해양의 위협이 존재한다. 해양의 산성화와 함께 진행되는 해양 온도의 상승이다. 이는 매우 실질적인 위협으로, 향후 20년간 한국인들이 항상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류의 상당수가 격감하거나 심지어 멸종할 것이다.
부의 불평등
한국에서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를 갈가리 찢고 있으며, 이는 국내외에서 심각한 정치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족 자영업의 몰락, 청년 일자리의 질 저하, 투자은행을 비롯한 투기적 금융기관이 경제계획에서 발휘하는 권력의 증대는 이 사회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부의 집중과 공적 영역의 상실을 알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들은 언론에서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자세히 알지 못 한다. 또한 한국의 문화 자체가 사람들로 하여금 무언가에 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충분한 부를 지니고 출발하여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 할 경우, 자신에게 그저 주어지는 정보를 통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파악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진보 단체들조차 상품 주도의 퇴폐 문화가 만드는 심각한 모순에 관하여 예리한 분석을 제공하지 않는다.
투자은행이나 통신사업자가 철저하게 규제되는 공적 독점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사람들은 이 시절이 더 보수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상식이었다.
석유에의 중독
한국 언론이나 싱크탱크에서 벌어지는 안보 논쟁의 대부분은 값비싼 탱크와 전투기, 잠수함 및 여타 무기 시스템이 한국을 방어하는 최선의 방법임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러나 연료가 없다면 이들 값비싼 무기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나는 농담할 의도가 전혀 없다. 수입된 석유에의 철저한 의존은 그 자체로서 심각한 안보 위협이다. 많은 무기가 (태양이나 풍력이 아니라) 석유에 의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석유의 흐름이 교란될 경우 도시에 거주하는 많은 한국인이 생존할 수 없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전쟁이 발발하고 그 결과 한국으로 향하는 원유와 천연가스의 선적이 중지된다면 그 상황은 한국전쟁 당시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다. 대량 소비로 살아가는 오늘날의 삶을 고려하면 사람들이 수일 안에 아파트에서 얼어 죽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굶주리게 된다. 이제까지 소비적 삶을 살지 않았던 북한 사람들은 그들이 확실하게 우위에 있음을 곧 깨닫게 된다.
남한은 안보를 계획하면서, 북쪽의 이웃이 보여주는 검소함과 소박함 및 효율을 들여다봐야 한다. 남한 사람들은 종종 한밤중에 위성에서 찍은 한반도 이미지를 들고서 의기양양해 한다. 어둠에 덮인 북한과 달리 남한은 크리스마스트리처럼 환하게 빛나고 있는 이미지를 두고 남한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그리고 북한이 얼마나 뒤쳐졌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한이 불필요한 조명을 켠 채 어마어마한 낭비와 소비를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국가 안보를 위한 법률로 불필요한 전력 사용이 엄격하게 규제해야만 하고 대규모 태양광 및 풍력 발전을 요구해야만 한다.
무기 시스템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 가지의 중요한 변화
새로운 기술의 등장으로 군사충돌의 본질이 바뀌고, 이에 따라 현재의 무기 시스템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전투기와 항공모함, 탱크와 대포가 미래에는 더 이상 효과적인 무기가 아닐까? 마치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이런 의문이 제기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은 놀랍다.
기하급수적 속도의 기술 발전이 의미하는 바는 수만 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할 수 있는 무기들이 빠르게 저렴해지고 따라서 작은 집단 또는 심지어 개인도 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위협에 대한 대응은 협력과 신뢰 그리고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미래의 충돌이 국민국가 사이에 일어날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국민국가들이 빠른 속도로 분해되는 중이다. 아직 권위를 지니고 있기는 하지만, 전 지구적 네트워크의 금융과 거버넌스에 통제된다. 새로운 무기의 기능 향상과 이를 통제해야 할 정부의 분해 현상이 결합하면서 다가오는 미래에 엄청난 위협이 될 것이다.
전통적인 군사력은 탱크와 전투기, 미사일, 전함, 항공모함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들은 극도로 비용이 많이 들며 새로운 무기에 취약하다.
드론과 로봇의 등장
드론과 로봇의 경우, 우리는 이 새로운 기술의 역사라는 측면에서는 석기 시대에 살고 있다. 다가올 10년 동안 이 기술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바꾸어 놓을 것이라고 예상해야만 한다. 로봇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지 말아야 하겠지만, 드론이 새로운 디스토피아로 우리를 이끌 것이다. 드론은 점점 소형화하며 치명적일 정도로 빨라지고 점점 더 스스로 움직인다. 기술과 트렌드는 이미 알려졌지만 이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차세대 드론을 상상해보자. 1만개 정도의 드론 떼가 형성되는데, 여기에는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미사일에서부터 표적의 중요한 부분에 도달하여 이를 언제라도 날려버릴 수 있도록 무장된 1센티미터 미만의 작은 드론이 포함된다. 이 드론 떼가 전투기를 가득 실은, 건조에 80억 달러가 소요되는 항공모함 안으로 침투할 수 있다. 몇 시간 안에 항공모함을 폐물로 만드는 것이다.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살인 기계로서의 로봇은 치명적 공격이 벌어지는 범위 안에서 인간의 조종 없이 작동한다. 이들이 얼마나 위험할지, 로봇 제작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금지하거나 제한할지는 아직 그 논의가 시작되지도 않은 중대한 문제이다. 살인 기계를 디자인하는 이들이 그들의 걸작에 아시모프의 로봇 윤리를 프로그램 할 것 같지는 않다.
점점 정교해지는 사이버 전쟁과 선전을 위한 뉴스 서비스
사이버 전쟁은 모든 원격 시스템 및 전자 시스템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 해킹이 불가능한 전통적인 손 기술로 우리를 돌려놓을지도 모른다. 미래의 사이버 무기는 (핵무기를 포함하여) 적의 모든 무기를 장악 가능하도록 만들 수 있다. 적의 모든 무기가 네트워크에 접속되어 있다면 말이다.
현재 사이버 전쟁은 국민국가가 아니라 군대 내부의 일부 그룹이나 국가와 관련이 없는 여타 행위자들에 의해 활용되고 있다. 현재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바로 이 때문이며, 뜻을 함께 하는 그룹들의 복잡한 세계적 네트워크들 사이에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위험이 제기된다. 동아시아 국가안보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국가 간의 갈등이란 전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3차원 인쇄 등 비 전통적인 수단을 통하여 대상을 변형하는 방법의 등장
3차원 인쇄는 매우 새로운 기술이기 때문에 군사력에 어떻게 적용될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 한다. 그러나 산업계에서는 3차원 인쇄가 이미 게임체인저로 인식된다. 인쇄기에 장비나 무기 혹은 기계의 디지털 정보를 간단하게 입력함으로써 사물을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을 제공한다.
3차원 인쇄는, 지난 20년 동안 공장에서 사용되어 온 컴퓨터 수치제어(CNC)와 밀링, 압출, 절단 기술의 연장이다. 3차원 프린터기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열가소성 수지의 작은 방울로 온갖 사물을 창조할 수 있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추적 불가능한 총을 제작하는 패턴이 이미 인터넷에 올라와 있다. 미래에는 3차원 인쇄기를 어딘가에 설치하고 인터넷을 통해 아무거나 만들 수 있다.
군비 경쟁이 진정한 위협이다
미국의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정책결정과정에서 정치가와 기업의 관심을 과학적 방법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지식인들과의 교류하지 않도록 만드는 군사적 낭비의 결정판은 미사일 방어이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에서 미사일 방어가 도입되었을 당시, 이는 트로이의 목마로서 고안되었다. 약속한 바를 실행에 옮기지도 못할 가상의 시스템을 판매함으로써 몇몇 기업에게 커다란 이득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정책이었다.
좀 더 깊숙한 수준에서 보자면, 미사일 방어의 촉진은 미국 사회의 반지성적 흐름을 활용하기 위한 시도였다. 당시 군대와 외교가에는 핵무기의 위험스런 확산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협상을 통한 군비축소협정임을 논리적이고 과학적으로 제기한 지식인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옳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설득하는 데는 능숙하지 않았다. 이들은 안보 이슈를 이해하지 못 하는 “온건파” 혹은 “책상물림”으로 치부되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미국이 유럽에서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 감축을 위해 협상을 통해 조인했던, 강제력을 갖춘 조약이 미사일 확산에 대응하는 사실상의 유일한 방법이다.
1995년 북한과의 합의와 같은 국제협약이 긴장을 완화하고 안보를 증진하는 유일하고도 과학적인 방식이지만, 이러한 시도는 지식인들에게 과도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진실로 무장하고 무기 시스템을 거부하는 집단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무기를 생산하는 기업가들이 두려워하는 바다.
미사일 방어와 여타 자동화 무기와 같이 비용이 과다 책정된 무기 시스템의 멋진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들 시스템은 정책결정과정과 시스템 운영에서 전문가를 제거하고 이윤을 증대한다. 협상을 통해 무기제한협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보력을 갖춘 전문가보다 무기 생산 업자에게 더 짜증나는 사람이란 없다. 한때 미군 내에는 안보와 역사를 이해하고 새로운 무기의 실전배치 가능성을 평가하는 데 과학적 방법론을 활용할 줄 아는 외교와 기술 분야의 교육받은 전문가가 다수 존재했다. 오늘날의 장군과 대사들은 무기 시스템 판매를 자신의 주된 임무로 생각하며 퇴직 후 방위산업체를 상대로 두둑하게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컨설팅 사업을 기대할 뿐이다.
그러나 미사일 방어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드 및 이와 유사한 시스템은 날아오는 미사일 중 기껏해야 일부만을 떨어뜨릴 수 있을 뿐이다. 더욱이 미사일 방어시스템과 여타 무기 시스템은 미국 내에서 객관적인 제3자로부터 더 이상 검증되지 않기 때문에 그 신뢰성이 의심스럽다.
그런데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저지하지 못할수도 있지만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데는 효과적이다.
핵무기의 대량 확산은 진정으로 위험스러우며, 이는 핵전쟁의 가능성을 한층 높인다. 북한의 조그마한 핵 프로그램은 커다란 위협이 아니다. 심각한 위협은 다른 곳에 있다.
현재 일본과 남한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았으며 배치하지도 않았다. 중국은 300개 미만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진정한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고 느낀다면 중국은 단기간 안에 300개 미만에서 1만 개 이상으로 핵무기를 늘릴 수 있다.
이후는 연쇄반응일 뿐이다. 일본은 6천 개의 핵무기를 보유할 수 있고, 남한도 뒤를 따른다. 그 다음은 어디인가? 대만? 베트남? 인도네시아? 만일 일본이나 남한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이 지역 전체를 훨씬 불안하게 만들게 될 위험한 연쇄반응이 폭발한다.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전략을 고민할 때
다가오는 남북 정상회담을 둘러싼 대부분의 논의는 미국의 불가능한 요구를 어떻게든 북한이 받아들이도록 하고 어떻게든 대결을 몇 개월 후로 미루는 데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훨씬 큰 전략을 가져야만 하며 이번 정상회담은 그 전략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전략의 핵심은 안보에 관한 국내외 논의를 장악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기생산업자의 관대함에 자신의 급여를 의존하는 워싱턴 D.C.의 이른바 전문가들로부터 한국이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남북 정상회담은 위험스러운 미래를 대비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 안보에 관하여 다시 생각하고 시민의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호소하는 기회로 활용되어야만 한다. 한국의 많은 정치가와 외교관들이 국내외에서 다른 행위자들을 설득하는 데, 한국만의 뚜렷한 시각을 명확하게 표현하기보다 다른 나라들을 만족시키는 데 온통 정신을 쏟는다는 점은 슬픈 일이다.
일본의 철학자 오규 소라이가 언젠가 내놓았던 관찰이 여기에 꼭 들어맞는다.
소라이가 이렇게 언급했다. “체스를 두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 방법은 체스의 규칙을 완벽하게 익혀서 어떤 상황에서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체스를 두는 다른 하나의 방법은 체스를 두는 규칙을 만드는 것이다.”
안보와 군사 그리고 한반도의 미래를 생각할 때, 한국이 채용한 전략은 전자이다.
한국은 남들이 가르쳐 준 규칙을 마스터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항상 그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임 규칙의 변경이 단지 유용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역사적 순간이 존재한다. 지금이 바로 그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