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항쟁 일흔돌] ‘이념의 딱지’로 선동된 제주, 동백꽃 시린 눈물이 되다

제주 4·3항쟁 일흔돌. 70년 세월에도 4·3의 상처는 여전히 아프고 시리다. 총칼 자국 선명한 상흔은 위정자들에 의해 이념의 딱지가 내려앉았다. '4·3 민중항쟁'이라는 명명이 좌익이라고 선동되는 배경이다. 정치적으로 악용되고 군경에 짓밟힌 제주의 넋이 동백꽃 시린 눈물 되어 머체왓('돌밭'의 제주방언) 사방에 떨어진다. 1948년 5·10 총선거를 앞두고 제주 도민들은 단독정부와 단독선거를 온몸으로 항거하며 봉기했다. 총 200석 중 북제주군 갑·을 선거구 두 곳이 과반수 미달로 선거무효가 확정됐고, 제헌의회는 두 석이 부족한 198석으로 출발했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제주는 정권의 정통성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됐다. 이승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