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파탄의 주범이 ‘의료비’인 사회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팀장

 

 

 등록 2013년 2월 11일


 

 

“의료비 조달을 위해 전세비를 축소하거나 재산을 처분한 가구가 41만, 사채를 이용한 가구는 13만에 이른다”

 

지난 2월 1일 한국개발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의 현안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다. 의료비 지출을 생활비나 저축, 민간보험 등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가구가 51만에 이른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의료비가 소득 대비 10%이상인 가구 중 저소득층이 차지하는 비중은 56.4%, 30%를 초과하는 가구 중 저소득층 가구는 73.7%에 이른다고 보고하였다. 특기할 만한 사항은 이들 중 위암환자 보유 가구는 1.2%인 반면 고혈압이나 당뇨 환자와 같은 만성질환이 있는 가구는 32.2%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간과되었던 만성질환의 의료비 부담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론지면을 통해 ‘메디컬 푸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의료비 부담으로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약을 먹지 못하는 의료 빈민층을 일컫는 말이다. 일반론적인 이야기 일 수 있으나 따지고 든다면 건강보험을 위주로 한 의료보장체계가 문제다. 공적영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의료비 부담도 대부분 사적인 몫이 됐다. 민간보험 구매력도 없고 저축에 의지하기도 힘든 경우라면 사실 비빌 언덕도 없다. 이른바 ‘재난적 의료비’와 관련해 건강보험공단의 자료를 보면, 2011년 기준 전체 건강보험대상 가구 중 20.6%(300만 가구)가 재난적 의료비 지출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5가구 중 1가구 꼴로 의료비 재난으로 생계가 위협 받고 있다는 이야기다. 반면 건강보험 환자의 보장률은 MB 정부 5년간 거의 답보상태로 62%수준에서 변동이 없다.

 

 

상황이 이러한데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의료비 부담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새해 예산결정에서는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의료급여 미지급금 예산이 삭감되어 의료급여 환자의 의료이용을 저해할 여지가 커졌으며, 새 정부의 대표적인 보장성 방안인 이른바 4대 중증질환 공약도 사실상 ‘폐지’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인수위를 중심으로 재정논란을 가중시키더니 결국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이 큰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는 모두 제외 한 채 시행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것도 적용시기를 1년 늦추었다.       
 

 

 

건강보험 보장성은 꿈적하지도 않고 개선될 여지도 별로 없는 반면, 2월 초에는 건강보험 수가가 한 차례 요동을 쳤다. 응급의학, 산부인과 행위를 중심으로 한 수가 상승으로 연간 1천 4백억 원에 해당하는 재정이 의료기관의 몫이 됐다. 작년에 결정한 2013년도의 일률적인 수가 인상분(건강보험공단과 의료기관 간의 환산지수 계약) 6천4백억 원까지 포함하면 현재 까지 건강보험 전체 재정 중 7천8백억 원이 의료기관에 배분된 것이다. 반면 ‘09년~’13년 동안 보장성 부분으로 투여되는 비용은 연간 약 3천억 원(5년간 1조 5천억)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들의 몫이라고 할 수 있는 보장규모에 비해 약 2배 이상을 매년 공급자 보상으로 할애하고 있는 것이다. 공평하지 않을뿐더러 보장성이 항상 우선순위에서 배제되는 구조다.

 

 

생계를 위협하는 의료비 지출은 소득계층별로 대상자의 범위가 상이할 뿐 일반화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저소득층에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며 중산층의 몰락에도 의료비가 원인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료비가 가정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보장성은 과거 5년간 답보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후퇴했다고 보아야 한다.

 

 

건강보험정책의 최우선순위를 ‘의료비 재난’ 해소에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보장성정책이 핵심이 되어야 하고 보장성을 중심으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도 재설정되어야 한다. 재정지출에 있어 수가인상이 보장성 보다 우선이 될 수 없다. 불필요한 재정 낭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불제도 개편도 병행되어야 하며 국민들이 체감할 정도의 보장성이 전제가 된다면 보험료 인상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보장성에 대한 접근방식도 지금과 같이 질환 중심보다는 보편적인 접근이 더 필요하다. 질환별 보장율 격차가 심화되어 건강보험권내에서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균등급여를 규정하는 건강보험 원리에도 맞지 않는 접근이다. 모든 환자를 대상으로 하되 비용부담이 높고 이용량이 많은 항목부터 해결해야 한다. 선택진료, 상급병실, 간병비가 일차적 타깃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의료비로 인한 가계파탄을 부추긴 주범은 건강보험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라도 의료비 재난이라는 위험신호에 건강보험이 제대로 된 응답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