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라디오. 귀를 의심했다. 많은 인구만큼이나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중국이라지만, 사랑을 보험에 의지한다니 가당키나 한 말인가. 잘못 들었나 싶어 볼륨을 높였다. DJ 역시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내용은 이랬다. 중국에서 일정 기간 연인관계를 지속한 후 결혼하는 가입자에게 돈이나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는 ‘사랑보험’이 인기 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보기)불황으로 젊은 세대가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고 있는데, 사랑보험이 이 틈새를 파고든단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결혼 기피가 사회적 문제인 것은 매한가지인가 보다.
싱글족은 서러워
결혼이라… 남 이야기가 아니다. 서른이 넘으니 여기저기에서 결혼 압박이다. 명절 때가 특히 심하다. 오랜만에 모인 친척들은 나의 건강보다 연애 여부를 더 궁금해한다. 질문 폭탄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이번 설은 그래도 잘 넘어갔다. 한국 평균 결혼비용 절반인 1억1900만 원을 줄 수 있냐는 이야기에 모두가 조용해졌다.
사회가 미혼 혹은 비혼자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가족의 압박보다 훨씬 무겁고 잔혹하다. 연말정산 시즌이 되니 올해도 어김없이 싱글세가 논란이 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두 자녀 가정보다 소득세를 연간 79만 원 더 낸다는 기사도 보인다. 집 구할 때도 서러운 건 마찬가지다. 공공분양·임대에서 싱글은 늘 뒷순위로 밀린다. 자의든 타의든 한국사회에서 ‘혼자’ 살아가는 사람들은, 인구절벽이라는 국가적 과제 아래 또 다른 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다.
내 선택이 어때서
이쯤 되니 궁금해진다. 사회문제 해결의 책임을 왜 개인에게 전가하는가? 핵가족은 해체된 지 오래고, 다양한 가족 형태가 등장했다. 그리고 결혼을 ‘안’하는 사람만큼이나 여건이 안 돼서 ‘못’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유전결혼, 무전비혼’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하는데 정책과 제도는 낡고 게으르기 짝이 없다. 그러니 싱글을 어떤 사연 있는 ‘사람’이 아니라 혼인율에 영향을 미치는 ‘숫자’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결혼을 종용하는 이들에게 나는 늘 ‘선택의 문제’라고 말한다. 언젠가 그 순간이 오면, 어쩔 수 없이 혹은 억지로가 아닌 온전한 내 의지로 결정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마찬가지이길. 마지막으로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중국 사랑보험에 가입한 이들 중 다이아몬드를 받겠다며 관계가 끝난 연인과 혼인신고를 하는 사람이 없길 바란다. 보험사기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보험에 기댄 당신의 사랑이 행복할 리 없기 때문이다.
글 : 최은영 | 미디어홍보팀 선임연구원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