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즈음의 알코올 그리고 실명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박혜영
서른 즈음 우리는 많은 고민에 휩싸인다. 어른이 되긴 된 건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건지, 겁나고 두렵다. 그 혼란의 서른 즈음에 실제로 두 눈이 멀어버린 노동자들을 만났다. 정말이지 내년이면 서른이거나 그 언저리 나이의 그들.
“그냥 알콜이라고 했어요.” 모두가 공통으로 하는 말이었다. 실명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모두 자기가 사용하는 그 액체가 그냥 알코올이라고 여겼다. 질문은 필요 없었다. 누구든 그냥 일을 했고, 파견회사나 사용회사에서도 아무런 말을 해주지 않았다. 어지러우면 창가에 가 심호흡을 했지만 그저 그 뿐이었다. 자신의 시신경과 뇌를 파괴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렇게 무방비하게 노출 되었을까 몇 번이고 궁금했다.
그 알코올은 메탄올이다. 무색의 그 액체. 피해자들은 그 액체를 보통 하루 12시간 일하는 내내 기계에 들이 부었고, 또 자신들의 몸으로 흡수했다. 적게는 4일 반, 많게는 4개월의 노동으로 그들은 익숙한 세상을 못 보게 되었다. ‘삼성전자 하청업체 파견 노동자 메탄올 실명’이라는 타이틀로 올 해 초 잠깐 언론이 들썩였다. 갤럭시 같은 핸드폰의 버튼이나 뒷 판을 만들던 그이들이 주인공이었다. 슬픈 사연의 주인공.
처음 그들, 원인을 모르니 앞이 안보이고 호흡곤란이 와 응급실에 실려가서도 대책이 없다. 그 메탄올이 몸에 들어와 시신경과 뇌를 표적으로 공격을 해버릴지는 역시 몰랐다. 우연히 담당 의사가 메탄올 급성 중독을 의심했다. 같은 시기에 병원에 실려간 노동자들은 실명의 이유를 찾았지만, 그 시기에 소문에 밝지 않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어떤 이나, 다른 시기에 병원에 실려간 어떤 이는 역시 이유를 몰랐다. 그렇게 영문을 모른 채 적게는 10개월에서 많게는 2년 가까운 시간을 암흑에서 보내던 이들이 추가로 찾아왔다. 다행히 지인이 한번 산재보험 신청을 해보자고 권유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저 4대 보험 안들어져 있는데 산재신청이 가능해요?”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실명이 그 알코올 때문이었는지 상상할 수 없던 이들은 파견노동자였고, 제조업 파견은 법 상 금지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노동은 4대 보험에도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아무도 일러주지 않았고, 그들이 일하는 여건에 관심 있는 자들도 없었다. 근로기준법, 산업안전보건법, 노동조합법 그 어떤 노동법도 그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최저임금의 값싼 노동은 삼성 핸드폰을 만들어 냈지만 대기업은 그저 하청업체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핸드폰이 시장 점유율 1위를 하건 말건.
올 해 초, 세간이 떠들썩해지자 노동부가 나섰었다. 노동건강연대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와 노동조합들은 추가 피해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으나, 노동부는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그들은 어떤 일을 한걸까. 무얼 한걸까. 뭐든 했겠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또 하나, 삼성. 원청인 그들은 이 일은 2차 하청업체가 관리하는 일이라 말한다. 1진 깡패가 2진, 3진 깡패에게 무언가를 내놓으라 한다. 2,3진 깡패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을 지켜내고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1진 깡패의 책임을 묻는 건 당연하다. 먹이사슬 구조를 보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이던가. 이건 순전히 비유다. 오해하지 말길.
같은 일을 하던 사람들은 정말 모두 괜찮은걸까? 올 초 실명피해를 입었던 노동자들 가족은 추가 피해자 소식을 듣고 기막혀 했다. 이번 피해자들은 이들보다 먼저 혹은 같은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오늘 쓰러져 내일 안나와도 그만인 파견 노동이 불러온 참사, 누구라도 처음 위험을 감지했더라면, 이후에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서른 즈음의 노동자들은 세상의 빛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예방을 말하기에는 이 현실이 부끄럽다.
당부한다. 노동부는 당장, 영문도 모른 채 어둠에 놓여있을 피해자들을 찾는 일에 집중해 주길 바란다. 최소한 실명의 이유는 알고, 산재보상이라도 받아 적게나마 생계를 해결해야 할 것 아닌가. 이 노동자들의 신호를 세심하게 반성하고 파견노동을 당장에 중단시켜야 한다. 그리고 삼성. 책임여부는 나중 문제다. 광고를 해서라도 갤럭시를 만들다가 실명된 노동자들을 찾는데 함께 하길 바란다. 그것이 당신들이 기업으로써 이 사회에 공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다.
- 이 글은 경향신문 기고글 입니다. 지면 관계상 편집이 되어 원글을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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