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우리에게 친숙하게 여겨졌던 '아쿠르트 아줌마'. 이들이 근로자가 아니라는 최근 대법원 판결이 사람들에게 많은 의아함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법원은 왜 이들을 근로자라고 보지 않은 것일까요. 

최종연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가 우리 법원이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그에 따라 근로자성을 인정받기 위해 지난하게 싸워온 여러 형태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사례와 문제점에 대해 짚어봅니다. 

 

사장님’이 된 1만 3천명

-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에 관한 대법원 판결을 돌아보며

[광장에 나온 판결] 대법원 2015다253986 퇴직금 지급 청구의 소[대법관 권순일(재판장) 박병대 박보영(주심) 김신]

 

최종연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그 어느때보다도 무더웠던 2016년 여름에 인기를 끌었던 제품 중에는 ‘콜드브루’라는, 병에 든 커피제품이 있었습니다. 신선함을 중시한 데다 맛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데 일반 편의점 등에서는 팔지 않아서 사먹었다는 ‘인증샷’을 SNS에 올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던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콜드브루’를 실제 판매하는, 소위 ‘야쿠르트 아줌마’로 불리는 위탁판매원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판결이 2016. 8. 24. 대법원에서 선고되었습니다. 판결 직후 ‘야쿠르트 아줌마가 아니라 야쿠르트 사장님이라고 불러야겠다’는 등 판결을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반응들이 있었지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사실 너무도 오래 반복되어 온 근로자성의 인정에 관한 법적 공방의 한 단면을 보여줄 뿐입니다.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이 근로자가 아닌지는 어떻게 해서 문제가 된 것일까요? 어떠한 사람이 법률상 ‘근로자’로 인정받는다면 근로기준법 등 여러 법률이 규정한 각종 수당, 근로시간의 제한, 퇴직금 등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현재 한국사회에는 골프장 캐디, 택배기사 등 각종 기사(지입차주), 각종 검침원, 방문판매 영업사원, 채권추심원, 보험설계사 등 200만여 명으로 추산되는 소위 ‘특수고용형태 종사자’가 있습니다. 이분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고자 통상임금소송 또는 퇴직금 청구 소송, 해고무효소송, 산재인정소송 등을 제기할 때 그 전제가 되는 근로자성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기준

 

사실 대법원이 근로자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세워놓은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났습니다. 다만 그 기준이 복잡하면서도 모호한 부분들이 있을 뿐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계약의 형식 또는 명칭과 무관하게 ‘근로제공관계의 실질이 근로제공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속적인 관계’가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사내규정을 적용받으며 업무수행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하는지, ② 사용자가 근무시간ㆍ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제공자가 구속을 받는지, ③ 근로제공자가 스스로 비품ㆍ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④ 이윤 및 손실의 위험을 스스로 부담하는지, ⑤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⑥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있고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였는지, ⑦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이 있는지 및 그 정도, ⑧ 사회보장제도 관련 법률에서 근로자성을 인정받는지 등을 종합해서 판단하여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위와 같은 조건들 중에서 ⑥번(기본급ㆍ고정급 유무), ⑧번(사회보장 관련 법률의 적용 여부)는 사용자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임의로 정할 여지가 크다는 점에서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않아도 근로자성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문제는 특수고용형태 종사자의 근로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에 위와 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요건 자체도 보기에 따라 모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법원이 첫 번째로 꼽는 요건인 ‘상당한 지휘ㆍ감독’이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어느 정도로 지휘ㆍ명령을 내려야 ‘상당하다’고 볼 수 있는지 그 횟수나 방식을 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에 따라 이정도면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더하여 실제 당사자는 내가 근로자성을 인정받는데 필요한 요건을 충족한다는 점에 대해 증거를 마련하여 법원에 제출할 ‘입증책임’을 진다는 점도 늘 부담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이 ‘근로자’가 아니라고 한 이유

 

 

실제 야쿠르트 위탁판매원 사건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되었는지 잠시 보겠습니다. 원고는 2002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야쿠르트와 위탁판매계약을 맺고, 아침 8시 이전에 관리점에 출근했다가 오후 4시까지 판매활동을 했습니다. 계산은 그날 고객에게 받은 돈은 모두 회사에 제출했고, 판매한 제품 수량에 따라 수수료를 지급받는 방식이었습니다. 원고는 사회보험료를 지불하지 않았지만 대신에 회사는 적립형 보험의 보험료와 상조회비 일부를 지원했고, 근무복과 근무연수에 따라 해외연수 기회를 제공했으며, 매달 두 차례 신제품 및 판촉 프로그램 교육도 실시하였습니다.

 

 

법원은 이러한 근무형태에 대해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이 회사의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받지 않았다고 보았습니다. 판매업무를 하면서 근무 품목과 수량, 근무시간과 장소를 원고가 스스로 정했고 따로 회사가 관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근무복을 제공하고 보험료, 상조회비를 지원한 것도 “판매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배려 차원”이고, 회사가 실시한 교육도 “최소한의 업무안내 및 판촉활동에 대한 독려”일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원고는 회사가 관리점 내 게시판에 일정표를 부착하는 방식으로 업무지시를 했고 고객관리 및 영업활동 지침에 관한 서약서를 쓰게 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회사와 맺은) 위탁판매계약상 의무를 주지시키는 것에 불과’하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원고는 위와 같은 이유로 1,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패소하였습니다.

 

 

사실 위와 같은 법원의 판단은 실제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이 근무하는 현실에 근거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조금만 달리 보면 불합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이 야쿠르트를 팔면서 다른 회사의 빵이나 과자도 같이 판매할 수 있을까요? 또는 지정된 배달순서를 미루거나 구역을 벗어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배달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점들은 모두 회사와의 ‘계약’에 위반되는 행위들일 것입니다. 이는 동시에 위탁판매원이 회사에 상당한 정도로 종속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회사가 판매원들을 정식 채용하는 대신 위탁판매계약만 맺으면서 유제품 등을 판매한 결과, 회사는 전국 1만 3천여 명의 판매원에게 고정적으로 지출될 고정 월급과 각종 수당, 퇴직금 적립금도 절약할 수 있고 근로자 관리에 따른 부담도 덜 수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보면 장사가 잘 되면 수수료를 더 주고, 요구르트가 안 팔리면 수수료를 덜 주면 그만이 되는 셈입니다.

 

 

■ ‘사장님’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한 지난한 과정

 

 

다른 특수고용형태 종사자의 경우는 근로자로 인정받았을까요. 신용정보업체와 채권추심업무에 관해 위탁계약을 맺은 채권추심원들에 대해 법원은 위탁계약의 내용상 ‘취업규칙을 대신하는 내용이 많고, 징계해고나 정리해고에 해당하는 내용도 있다’라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인정한 사례가 있습니다. 업체들이 이 판결에 놀라 계약서 내용을 바꾸었지만, 계약서를 섞어 쓰는 등 계약 자체에 큰 의미가 없었다고 보고 채권추심원에게 근로자성이 있다고 본 2015년 대법원 판결도 있습니다. 커플매니저가 기본 월급이 없이 성과수당과 성혼사례비만 받으며 근무했지만, 이를 성과급 성격으로 보고 근로의 종속성을 인정한 하급심 판례도 최근 나왔습니다. 몇 년 전에는 한국전력공사로부터 검침과 요금청구서 송달, 단전/송전을 위탁받은 전기검침원들을 근로자로 보고 퇴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도 선고되었습니다. 이 때 법원이 들은 중요한 이유는 전기검침 등 업무가 회사의 핵심 업무로서 매일 업무보고를 받았고, 회사가 정해주는 담당구역에서 일을 했으며 손해와 이익을 스스로 부담할 수 없었다는 점 등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근로자성이 인정받은 경우들은 정말 극소수입니다. 2002년도부터 부정되어 온 골프장 경기보조원, 소위 ‘캐디’의 근로자성은 거듭된 소송에도 불구하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에는 해당한다는 방향으로 법원의 판단이 확립되고 있습니다. 배달대행업체 기사로 일하던 고등학생이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충돌해 척수를 다쳐 산재신청을 한 사건에서도, 배달여부와 배달회사를 기사가 선택할 수 있고 근태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근로자성을 부정한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근로자성이 부정된 판결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 근로자가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

 

 

다시 화제로 돌아와서,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을 비롯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들이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물론 증거를 모아서 소송을 제기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야쿠르트 위탁판매원을 비롯한 유사한 위탁판매원들이 영원히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뜻이 아니며, 고용의 종속성에 관한 새로운 증거들을 모아가면 법원은 그에 따라 새로이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사 입장에서는 각종 지시ㆍ공문과 교육을 없애고 위탁계약을 변경하여 성과에 따른 보수 지급을 강화하는 등 근로자성의 증거를 더욱 치밀하게 약화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이른바 선행 판결의 학습효과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혼자서 대응하는 것이 아닌, 비정규종사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는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함께 대응하는 방법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친구, 내 친척 누구라도 이러한 특수고용형태 종사자가 될 수 있음을 느끼고 그에 대한 입법적인 대책을 공론화하는데 목소리를 보태는 시민들의 작은 관심도 실질적인 변화의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