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달려갑니다 가장 먼저 그대 마주하고자
경남 산청연합회에서 조생벼 농사 짓는 이상목·김영숙 생산자
이달의 살림 물품 – 한살림 조생벼
더도 말고 올벼만 같아라, 한살림 조생벼
“조금만 더 올라가면 돼요.” 가파른 산 길을 따라 벌써 한참을 올라왔다. 산기슭에 자리 잡아 그런지 생각보다 아담한 규모에 여전히 파르라니한 논들만 스쳐 지나간다. 추수를 앞둔 논이라기에 끝없이 펼쳐진 황금물결을 기대하고 찾아갔지만 이쯤 되니 걱정이 앞선다. “다 왔네요. 저기입니다.” 황매산을 배경으로 온통 짙은 녹색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군데군데 푸른빛이 박혀있지만 분명 누릇한 논이 그의 손가락끝에 매달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벼의 추수 시기는 9월 말에서 10월 초. 벨 시기가 아직 달포 반이나 남았음에도 논이 벌써 누렇게 물든 것은 조생벼 품종을 심었기 때문이다. 벼는 출수기, 즉 이삭이 패는 시기의 빠르고(早, 일찍 조) 느림(晩, 늦을 만)에 따라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으로 나눈다. 기후 특성상 만생종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나라에서 주로 재배하는 것은 중생종과, 중생종보다는 출수기가 늦은 중만생종이다. ‘올벼’라고도 부르는 조생벼의 비중은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조생벼의 비중이 적은 것은 한살림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반 벼에 비해 수매가가 8%가량 높다 보니 농사를 짓고자 하는 이는 많지만, 공동체별로 정해진 약정량이 많지 않아 한 사람당 몇 년씩 돌아가면서 재배한다. 올해 산청연합회에서는 생산자 열 명이 조생벼 농사를 짓고 있다. “올해로 4년째 짓고 있는데 한 사람 앞에 3,700kg 정도씩 약정되어 있어요. 논으로 치면 700평 정도 되죠.” 논농사치고는 많지 않은 양. 그래서 조생벼 생산자 대부분은 중생종, 중만생종 벼를 더 많이 심고 있다.
미질·수확량 모두 만족
7월 장마 직후 이삭이 패 수확할 때까지 높은 온도에서 익는 조생벼는 일반 벼와 비교해 쌀표면 색이 불투명하고, 미숙미가 많아 수확량도 적은 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품종개량이 꾸준히 진행된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이상목 생산자가 올해 심은 품종은 운광벼. 쌀의 모양이 맑고 깨끗하며 밥 맛이 좋은 것이 운광벼의 특징이다. 키가 작아 잘 쓰러지지 않으며, 한 포기당 패는 이삭의 수가 많은 편이라 중생종, 중만생종에 비해 수확량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지역에 맞는 품종이 무엇인지 몇 년째 시범 재배한 끝에 찾은 품종이에요. 자연은 두 가지를 다 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그런데도 운광벼는 수확량이나 미질 모두 좋은 편이라 만족도가 높습니다.”
산청은 지역적 특성상 조생벼 키우기에 유리하다. 이상목 생산자의 논은 해발 350m 높이에 자리 잡고 있다. 남쪽 지방이지만 생육기간이 짧은 조생벼가 잘 자랄 만큼 서늘하고 지대가 높다보니 수질도 깨끗하다. “다른 곳에서 유입되는 물이 없다보니 1급수로만 농사를 짓고 있는 셈입니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도열병이라든지 흰마름병 같은 병충해의 피해도 거의 없어요. 산 아래로 조금만 내려가도 약을 많이 치는데 여기는 모두가 친환경 농사를 짓고 있죠.” 실제로 그가 있는 효렴골에서 농사를 짓는 이들은 거의 한살림 생산자 회원이다. 지역적 특성에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조생벼를 키우기 좋은 환경임에는 분명하다.
물론 어찌 농사가 수월하기만 할까. 생산자들이 유기농사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 첫손에 꼽기를 주저 않는 풀과의 전쟁은 조생벼 농사에서도 큰 벽이다. 모내기할 때 물을 깊게 댄 뒤 우렁이를 풀어놓기는 하지만 논바닥이 고르지 않은 곳이나 벼 포기 사이에서 자라는 피는 대식가라는 우렁이도 별 수 없다. 결국 농부의 손으로 일일이 잡아 뽑아야 하는데 땡볕에서 온종일 고생해도 별반 티가 나지 않는다. “다른 일에 신경 쓰느라 제때 우렁이를 넣지 못한 곳은 벼 반 지슴(잡초) 반이에요. 땅은 참 정직해요. 사람이 신경을 쓴 곳과 그렇지 않은 곳에 확연히 다른 결과물을 내어주죠.”
글·사진 김현준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