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정당정치는 다수결 원리에 따른 승자독식제와 결합되어 과반수 득표에 못 미치더라도 한 표라도 더 획득한 후보/정당이 일정 기간 국정을 독점함으로써 대의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당이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정당정치가 아닌 다른 형태의 대의제도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20세기 중국의 직업대표제 모색의 경험은 21세기 한국에게 정당과 의회의 틀에 갇혀있는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는 가능성의 유산이 될 수 있다.
즉, 직업대표제는 각 직업계 대표들 간의 상호 경쟁, 견제와 타협으로 균형을 잡아 특정집단의 정치적 주도권을 상대화함으로써 정당중심의 구역대표제보다 민주주의 원리에 더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직업이 자주 바뀌는 상황에서 선거인명부 관리가 어렵고, 직업이기주의로 인해 국정의제를 공정하게 심의/의결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사회세력이 상호 작용하는 속에 감시와 견제를 행하고 정부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각기 다른 계층과 이익집단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도록 만드는 것이 민주제도의 근본원리임을 환기해야 한다. 이 점에서, 자본과 권력의 로비에 의해 좌우되는 정당들의 상호작용보다 자신의 직업이해에 의거해 국정의제를 심의하는 직업대표들의 상호작용이 덜 공정하다고 볼 근거는 없어 보인다.
대의제는 그 자체로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구역대표제와 직업대표제를 병행하여 상호 보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는 망국적 지역주의의 포로가 된 채 노농대중과 진보세력의 국회진입을 가로막는 한국의 정당정치를 혁신하고, 적어도 그 폐단을 최소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본 글은 다른백년연구원 대안민주주의분과 내부 연구모임에서 유용태 교수(서울대 역사교육과)가 발제한 자료로서, 공식적으로 외부 인용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부득이하게 인용이 필요할 경우, 저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상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