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강두웅 ㅣ 법무법인 이공 및 미국 뉴욕주 변호사

마감시간에 임박하여 은행에 찾아가 직원의 실수를 유도해 수십 차례, 합계 800여만원의 돈을 갈취한 사람의 얘기가 TV 뉴스에서 나온다. 같이 TV를 보던 아내가 “최근 뉴스에 나온 사람 중에 그나마 착한 사람이네!” 나도 “저 정도면 귀엽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사는 독극물(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을 팔았다. 그로 인한 위험을 처음부터 알았다. 본국에서는 당연히 거쳐야 할 안전성을 확인하지 않았다. 그 독극물이 수많은 사람을 죽였다. 사망 원인이 자사제품으로 밝혀진 후에도 피해보상은커녕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법률대리인 김앤장과 서울대 조모 교수로 하여금 피해실험 결과를 조작하게 하고 피해자가 지쳐 쓰러지도록 5년의 세월을 끌었다. 정부는 피해자의 방해자로서의 역할을 더했다. 아내와 내가 800여만원의 갈취 사건을 “그나마 착하다”, “저 정도면 귀엽네”라고 하는 이유다.

 

‘징벌적손해배상’(이하 징손)제도를 도입하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힌 자에게는 기존의 민법의 실손해배상(이하 실손)원칙의 범위를 넘는 액수를 피해자에게 배상하게 하자는 것이다. 해당 가해자를 단죄함과 동시에 다시는 유사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반대의 소리 또한 높다.

 

가장 자주 언급되는 주장이 지나친 배상액으로 기업이 망하거나 그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억지로 짜낸 관념적 주장인 듯하다. 실제 한국의 실손액 수준은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및 일부 유럽 등 징손제도가 존재하는 소위 인권선진국보다 훨씬 작다. 이들 국가의 징손액은 실손액의 수배에서 수백배에 달한다.

 

징손액이 천문학적인 이러한 국가에서조차 징손으로 망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 미국에서 한때 유명했던 ‘맥도널드 커피사건’(맥도널드가 규정 온도 이상의 커피를 한 할머니에게 제공하여 할머니가 화상을 입었던 사건)에서 배심원의 평결은 286만달러(약 35억원)로 한국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의 큰 액수지만 이는 미국 내 맥도널드의 이틀치 커피 매출액에 불과하다. 미국 등의 국가에서 징손액의 결정요인은 그 사회정서상 얼마나 비난받을 짓을 했느냐, 타인의 건강과 안전을 무시했느냐, 그 악의적·의도적 행위가 정형화된 패턴인가를 고려하는 동시에 가해자의 재정상황을 감안한다. 징손의 목적은 가해자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악함을 계도하는 것이다.

 

징손에 따른 한탕주의 남소 횡행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징손의 요건은 매우 까다롭다. 법 전문가가 아닌 배심원이 징손의 액수를 결정하는 국가에서도 한탕주의를 보기 힘들다. 법률의 전문가인 판사가 징손의 액수를 주어진 법률의 틀에서 결정하는 국내의 경우 이러한 한탕주의 가능성은 더 희박하다. 개인적으로 그 한탕주의가 영화에서처럼 멋지게 성공했으면 좋겠다. 사회적 강자의 조직적이고 악의적인 불법행위를 방지하여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기존 법제도가 이룩하지 못한 인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면, 한탕주의의 성공은 귀여움을 넘어서 적극 추천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징손이 국내 민법의 실손해배상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은 어떠가? 국민의 권리를 더 지켜줄 수 있는 방안이 있는데 기존 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안된다? “일반인들이 모르는 그런 법적인 측면이 있어”라는 엘리트주의적 발언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사람을 위해서 고치지 못하는 법은 없다.

 

오랜 기간 법적 싸움에 지친 일부 옥시의 피해자가 김앤장의 제안에 따라 옥시와 합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거대한 조직적 악마의 벽 앞에서 얼마나 겁이 나고 불안했을까?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게 느껴졌을까? 쥐꼬리만 한 합의금을 받고 얼마나 억울하고 자괴감이 들었을까? 그들에게 그 벽을 부수고 세상을 바꿀 위대한 한탕주의제도가 생겼으니 꼭 이용하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이 글은 5월 27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신문보기->>http://bit.ly/1TDyWj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