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춰진 ‘의료 개혁’의 실체, 의료 대란 틈 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 유감
▲  ‘의료개혁, 어디로 가는가’ 토론회가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의대 융합관에서 장상윤 대통령비서실 사회수석비서관, 정경실 보건복지부 의료개혁추진단장, 강희경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장, 하은진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비대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대위 주최로 열렸다. 한 사직 전공의가 질문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킬 의료 개혁 완수하겠다.”

대통령이 최근 입만 열면 하는 말이다. 의료대란에도 제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 한해 초과 사망자가 6천 명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런데 대통령은 “응급실 대란은 과장”이라 일축하고, 총리는 국민이 죽어간다는 건 “가짜뉴스”라고 호통쳤다. “의료 개혁 내용은 대다수 국민이 찬성한다”며 밀어붙인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고통스러운 개혁의 과정을 겪고 있다”면서다.

그런데 미심쩍다. 국민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정부, 정말 그 고집의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건강일까?

의대 증원이 곧 의료 개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2020년 코로나19 유행 와중 겨우 연 400명 증원에 반대해 파업한 의사들이 이 문제를 국민의 관심사이자 개혁의 우선순위로 만들었다. 정부는 ‘의사 카르텔’과 대결하는 모습으로 지지를 얻으려고 의대 증원을 앞세웠다.

하지만 실상 의대 증원만으로 의료 공백은 해소되지 않는다. 지역이나 중증·응급 환자를 돌볼 자리엔 의사가 없지만, 지금도 도심엔 미용·성형이나 비만 진료 간판이 즐비하다. 의사 숫자만 늘려선 이런 어이없는 현실이 재생산될 것이다.

실제 정부가 발표한 ‘의료 개혁’ 가운데서도 의대 증원은 일부에 불과하다. ‘의료 개혁’은 윤석열 정부가 한국 의료를 특정 방향으로 이끌겠다며 내놓은 정책 묶음이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방향과 정책의 내용을 국민은 잘 모른다. 의정 갈등 블랙홀 때문이다. 이목이 온통 의대 증원에 집중된 틈에 정부는 정작 중요한 문제들을 감춰둘 수 있었다.

이제라도 본질적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정부가 의료 대란에도 불구하고 밀어붙이겠다는 ‘의료 개혁’, 그 진짜 내용은 무엇인가?

시장 만능주의 정부, 건강보험마저 노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 ‘의료 개혁’은 한국 의료를 미국식 의료시스템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다. 윤석열 정부는 의료를 민영화해 시장에 맡기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먼저 건강보험 제도를 표적으로 삼는다.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하고 환자 의료비 부담을 높이겠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환자 과다 의료 이용’을 유발해 재정에 악영향을 줬고 ‘필수 의료 투자 부족’을 낳았다는 진단을 내린다.

조금만 따져도 잘못된 분석이다. 한국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낮은 편에 속한다. 환자들이 과다 이용을 할 만큼 의료비가 낮지 않다. 과잉 진료는 90% 이상을 차지하는 민간 병원들이 수익 추구에 혈안인 탓이다.

그런데 정부는 애꿎은 환자들을 비난하면서 건강보험 제도를 공격한다. 정부 말대로 되면 오히려 의료 공백은 더 심해질 것이다. 큰 병원에서 사람을 살리기보다 동네 의원을 개설해 수익을 추구하는 의사들이 많은 것이 의료 공백의 주된 원인이다.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아 부르는 게 값인 비급여 시장이 넓어서다. 정부의 건강보험 축소는 이 시장을 확대해 더 많은 의사들을 돈벌이로 유인하는 꼴이다.

정부는 건강보험 보장을 축소해 아낀 돈으로 ‘필수 의료’ 수가를 높이겠다고 한다. 병원에 보상이 적어서 문제였다는 것이다. 연간 5조 원이 넘는 막대한 돈을 건강보험 재정에서 끌어다 퍼붓는다고 한다.

그런데 대형 병원들은 지금도 수익이 높다. 쌓아둔 돈으로 수도권에 6천 병상 분원을 짓고 있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 비급여와 과잉 진료로 수익을 내기 쉬운 부분에 우선순위를 두는 자본의 행태가 문제인 것이다. 수가를 높이면 병원에 쌓이는 이윤만 늘어날 뿐이다. 그 돈은 결국 시민들이 건강보험료 인상이나 의료비 부담으로 메워야 한다.

의료 공백의 진정한 원인은 취약한 공공 의료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의료를 국가가 책임진다. 공공병원이 대부분이어서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도 수익성과 무관하게 아픈 이들에게 필요한 진료를 제공한다. 반면 한국은 공공병원 비율이 5%에 불과하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고 공공의료를 확대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경제성’이 없다며 공공병원을 짓지 않고 기존 공공병원도 예산을 삭감해 경영난을 유발한다.

따라서 정부 의대 증원은 결코 생명을 살리지 못한다. 정작 지역에서 환자를 돌볼 병원들을 말려 죽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역·공공의료기관에 의사를 배치하자는 ‘공공의대’나 ‘지역의사제’ 같은 정책도 정부는 반대한다.

“의료 산업 위해 의대 증원” 한다는 대통령

▲  2024년 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KBS ’특별대담 대통령실을 가다’에서 박장범 KBS 앵커와 대담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그럼 정부는 대체 무엇을 위해 의사를 늘리겠다는 것일까. 몇 차례 속내를 짐작할 만한 발언이 있었다. 예컨대 의대 증원 발표 다음 날 방영된 KBS 신년 대담에서 대통령은 “의료 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이나 바이오 헬스케어 분야를 키우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정부는 “바이오 헬스케어” 기업의 이윤을 환자 안전보다 우선한다. 상식적으로 의료 기술은 엄격한 검증이 완료된 이후에 도입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신의료 기술 평가 제도를 ‘킬러 규제’로 낙인찍었다. 정부는 검증이 충분치 않은 의료 기술을 바로 ‘실사용’하다가 “환자 사고 등 안전 문제 발생 시”에야 제품을 퇴출한단다. 환자를 실험 대상 삼겠다는 것이다. 기업과 병원들의 돈벌이 비급여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의사들을 달래며 “바이오, 신약, 의료기기 시장에서 의사들에게 더 큰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 배경이다.

민영 보험사를 위한 선물도 ‘의료 개혁’에 빠지지 않는다. 정부는 건강보험공단에 쌓인 개인 의료정보를 보험사에 넘기겠다고 한다. 공단에는 질병명과 진료 일자, 투약 일수, 진료 받은 의료기관 등 개인의 일생에 걸친 의료정보가 있다.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보건의료 데이터 풀 겁니다. 데이터가 다 돈입니다. 언제 개인 동의를 받아 가면서 이 정보를 활용하겠습니까?”

정부 ‘의료 개혁’의 화룡점정은 미국식 민영보험제도 도입이다. 보험사들의 목표는 건강보험과 경쟁하다 나아가 대체하는 것이다. 2005년 유출된 삼성생명 ‘의료민영화 보고서’는 그 목표를 위해 의료 공급에 관여하는 길을 열라고 제시한다. 정부는 이를 실현해 주려고 한다.

보험사가 진료 기준과 가격을 결정하고 의료 행위를 심사·평가해서 의료 기관에 직접 지불하는 미국 같은 모델을 만들어 주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보험사들이 의료를 장악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가며 이윤을 축적해 온 방식을 한국에 고스란히 이식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 ‘의료 개혁’은 민영보험 자본, 바이오·헬스케어 자본, 병원 자본을 위한 것이다. 이것이 응급실 뺑뺑이로 국민이 죽든 말든 추진하겠다는 ‘의료 개혁’의 실체다. ‘국민들이 지지한다’고 정부가 떠들어대는 이 ‘의료 개혁’이 성공하면 지금도 휘청이며 존속하는 이 나라의 공적 의료 안전망은 완전히 붕괴할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단지 의료 대란을 초래한 책임자일 뿐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위한다는 거짓말 뒤에서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는 정부다. 국민의 죽음에 무관심한 의료 대란 대처는 이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 개혁’의 성격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정책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