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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국민건강보험공단 종로지사 |
ⓒ 연합뉴스 |
의료대란이 반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많은 이들이 ‘아프면 큰일’이라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고 특히 중증환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정부가 힘써 추진하는 일은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있는 개인의 질병정보를 민간보험사에 넘기는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는 실로 막대한 정보가 있다. 무엇보다 질병명과 진료일자, 투약일수, 진료받은 의료기관 등 개인의 일생에 걸친 의료정보가 있다. 알츠하이머, 우울증, 성 매개 감염, 임신과 분만, 자연 유산과 인공 유산, 성폭력 피해 정보 같은 극히 민감한 정보들이다. 또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기본정보, 소득의 종류와 금액, 신용카드 청구정보, 직장정보, 전월세 임대료 등 주거정보, 재산정보, 출입국 기록 등이 있다.
사실상 개인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기관 중 가장 방대하게 수집한 정보다. 정부는 이것을 개인 동의 없이 민간보험사에 넘기려 한다.
그들은 실명정보가 아니라 ‘가명정보’를 활용하는 것이니 안전하다고 한다. 하지만 가명정보는 개인정보 중 일부를 가린 데 불과하다. 예컨대 ‘홍길동’을 ‘홍OO’으로, ’35세’를 ’30대 중반’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얼마든지 개인이 드러날 수 있다.
개인정보보호법 상 가명정보는 “추가 정보의 사용·결합 없이는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는 정보”다. 바꿔 말하면 추가 정보와 결합하면 개인을 식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2015년에 가명화되어 불법적으로 외국에 팔려나간 한국인 처방전 데이터의 주민등록번호를 미국 하버드대학교가 손쉽게 전부 식별해서 논문으로 발표한 일이 있었다.
민간보험사들은 이 건보공단 정보를 끊임없이 노려왔다. 시민사회가 ‘개인정보 도둑법’이라며 반대했음에도 기업의 가명정보 활용을 허용한 ‘데이터 3법’이 통과된 배경 중 하나였다. 다행인 것은 아직까지 건보공단이 자료 제공을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정당한 우려를 들고 있다. 정부는 이런 공단에 자료를 넘기라고 압력을 넣는다.
보험사는 가입자 선별하고 등급 매긴다
민간보험사는 그 개인정보를 가져다 무엇을 하려는 걸까? 보험사들은 가입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데 쓴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실제 나이가 아닌 건강나이 대로 보험료를 부과해 건강한 사람의 보험료를 깎아준다’고 한다. 정부도 똑같은 주장을 한다.
그러나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믿더라도 반길 일이 아니다. 건강 수준에 따라 보험료에 차등을 둔다면 어떻게 될까? 건강하지 않은 이들이 가장 보험을 필요로 하지만 이들의 보험료는 오를 것이다.
사실 언제나 보험사는 가입자를 선택하고 등급을 매긴다. ‘언더라이팅’이라고 하는 그들의 일상 업무다. 예컨대 고혈압이 있는 사람은 심혈관계 합병증 위험이 높다. 누군가 병력이 있으면 보험사는 그의 보험료를 인상하거나 위험이 높은 질환에 대해선 보장을 거부하거나 심한 경우 보험가입 자체를 거절한다. 이를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한다.
국민건강보험은 전 국민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갖지만 개개인에 대한 위험평가를 하지 않는다. 오직 소득에 비례해 보험료를 걷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뿐이다. 반면 민간보험사는 보험금을 지급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만 쉽게 가입시키려 한다. ‘체리 피킹’ 즉 단물 빨아먹기를 하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개인을 분석해 건강한 사람들을 선별한다.
보험업계는 ‘모범사례’로 의료정보가 상품화된 나라 미국을 든다. 예컨대 이그잼원(Examone)은 의료정보로 개인의 사망률을 계산해 보험사에 제공하는데, 이미 보험에 가입한 사람에 대해 이 업체의 계산을 들이대면 84%만 가입 적합 대상자이고 나머지는 기준에 미달하거나 인수를 거절했어야 할 대상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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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험사들은 의료정보에 GPS 정보, 금융기록, 운전정보, 심지어 마우스 커서의 움직임까지 분석해서 개인의 건강수준을 평가한다. |
ⓒ 셔터스톡 |
보험사들은 의료정보에 GPS 정보, 금융기록, 운전정보, 심지어 마우스 커서의 움직임까지 분석해서 개인의 건강수준을 평가한다. 최근에는 여기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추세라고 한다. 자동화된 의사결정 시스템은 더 체계적으로 배제할 이들을 선별하기로 악명 높다.
정상적인 사회라면 취약하고 아플 가능성이 높은 이들일수록 보살핌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보험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아플 예정이고 죽을 예정인 이들’을 찾아내 배제한다. 이런 시도가 성공할수록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이들은 절박한 순간에 가장 차갑게 외면받을 것이다.
이처럼 민간보험사는 그 운영원리 자체가 건강보험과 반대로 사회연대를 해체한다. 그리고 보험사가 더 많은 개인정보를 가질수록 그 냉혹한 원리는 더 잘 작동하게 된다. 개인은 더 엄격한 감시와 통제에 놓이고 보험사는 건강을 담보로 이윤을 더 쉽게 뽑아낼 수 있게 된다.
미국식 민영보험 모델 추구하는 정부
민간보험사들이 건강보험 정보를 노리는 또 다른 이유는 당장의 돈벌이보다 더 큰 장기 목표에 따른 것이다. 2005년 폭로된 삼성생명 의료민영화 보고서에 의하면 민간보험 발전의 최종단계는 ‘건강보험을 대체하는 포괄적 보험’이다.
전 국민에 대한 공적 의료보장 없이 민영보험이 시장을 장악하는 미국 체계를 목표로 하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결론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한다. “의료정보를 수집해 보험사 중심의 의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관리 의료’ 서비스를 실시한다.”
관리 의료는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미국 의료민영화를 상징하는 건강관리기구(HMO)는 민간보험사-병원 복합체다. HMO는 영리기업인 보험사가 의료기관을 소유·통제하는 ‘보험사 중심 의료 네트워크’다. 보험사가 건강관리에서부터 질병의 치료까지 의료의 전 과정을 장악한다.
영화가 잘 묘사하듯 보험사는 병력이 있는 사람들을 보험 가입에서 배제하고, 운 좋게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의료 이용을 거부하면서 죽음과 고통으로 내몬다. 비용을 아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의 건강관리기구와 내용은 물론 이름마저 비슷한 ‘건강관리서비스’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삼성생명과 KB손해보험 등 거대 보험사가 대상이다. 이들 보험사가 건강관리에서 경증질환 치료까지 직접 하고, 보험사 중심으로 병의원과 연계한다.
한국에서 기업은 지금까지 의료행위를 직접 할 수 없었는데 건강관리서비스로 가능해진다고 환호한다. 사실상 영리병원이 허용되는 것이다. 특히 보험사가 그 영리의료의 정점에 오르는 것이 미국 체계다. 정부가 미국식 민영보험 모델을 노골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필요조건이 있다. 보험사가 의료에 진출하려면 개인의 일생에 걸친 질병기록이 필요하다. 보험사에는 아직 그런 정보가 없다. 보험사들이 공단에 쌓인 방대한 정보를 노리는 이유다.
“데이터가 돈”이라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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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11일 윤석열 대통령이 강원특별자치도 춘천 강원도청 별관에서 열린 열아홉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보건의료 데이터를 풀겠다”고 밝혔다. |
ⓒ 연합뉴스 |
오늘날 민영보험은 공적 보험인 국민건강보험의 취약성 때문에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한국의료패널에 따르면 2021년 민간의료보험 가입률은 81.1%에 달하고 가구당 4.8개의 보험에 가입해 월 29만 원 이상을 낸다. 이를 추계하면 시장규모가 55조 원에 달한다. 보험사들은 이런 자본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려 한다.
최근 KB헬스케어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올라케어를 인수했다. 삼성생명도 비대면 진료를 하는 굿닥과 연계를 시작했다. 재벌 등이 운영하는 보험사가 비대면 진료를 장악하면 의료부문에서도 ‘배달의 민족’이나 ‘카카오 택시’ 같은 플랫폼이 될 것이다.
게다가 두 보험사는 정부의 건강관리서비스 인증기업이다. 보험사가 건강관리부터 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장악력을 가지려 하고 정부는 이를 물심양면 돕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화된다면 공공의료나 건강보험제도는 설 자리가 없을 것이고 평범한 이들의 권리는 짓밟힐 것이다.
이런 민간보험은 애초 공적 보장체계가 제 역할을 하는 나라에서는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은 건강보험 보장성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수준으로 공보험이 보험 역할을 못 하는 나라다. OECD 대부분의 국가가 입원 시 90% 의료비를 보장하고 와병 시 소득보장까지 해주는 반면 한국은 입원비의 68%만 보장할 뿐 아니라 소득보장제도는 전혀 없다.
민간보험은 그러나 의료비 문제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한다. 보험사의 지급률이 로또나 카지노보다 못하다는 통계분석 결과가 과거 발표되기도 했을 정도다. 의료비에 대한 걱정을 자극해 국민 1인당 보험료를 건강보험보다 약 3배나 더 걷어가지만, 실제 보장은 건강보험보다 5~10배 적게 한다. 특히 고액 보험금 수령 대상인 암·희귀질환 등 중증환자들은 보험사들의 터무니없는 거절 조치에 피눈물을 흘린다.
게다가 민간보험의 성장은 공적 건강보험을 약화시키는 주범이다. 민간보험의 존재가 비급여를 늘리고 과잉진료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필수의료’ 공백의 주범이기도 하다. 의사들이 병원에서 생명을 살리기보다 실손보험에 기대 비급여 돈벌이에 나서는 것이 ‘의사부족’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부라면 건강보험을 강화해서 민간보험이 필요 없는 나라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역사상 최초로 건강보험 보장성을 약화시키겠다고 선언한 정부다. 게다가 이제는 건강보험 업무에 쓰라고 허락한 개인 질병정보까지 넘겨주면서 민간보험 돈벌이를 장려하기에 여념이 없다.
역대 정부가 모두 규제를 완화하고 의료로 수익을 내라고 부추긴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더 노골적으로 ‘보건복지부는 보건복지 산업부로 봐야 한다’고 말하는 시장만능주의자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민생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건의료 데이터 풀 겁니다. 데이터가 다 돈입니다. 언제 개인 동의를 받아 가면서 이 정보를 활용하겠습니까?”
대체 누구의 정보이고 그 정보로 누가 돈을 버는가? 오직 기업의 이익을 만능으로 생각하는 천박한 인식의 정부가 개인의 인권과 존엄, 그리고 건강보험 제도를 위협하고 있다.
원문보기
: https://www.ohmynews.com/NWS_Web/Series/series_premium_pg.aspx?CNTN_C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