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뉴스해설] 시간에 김환주 해설위원은 다시 확인된 군함도 ‘역사 왜곡’과 일본 정부가 국제기구의 시정 요구 조치에도 외면한다는 내용을 방영했다. 또 다른 매체는 일본 입장에서 반박하는 내용을 보도했다. 군함도 관련 유네스코 지적은 트집이라며 오히려 일본의 이미지를 떨어뜨리려는 한국의 정치공작이라는 것이다. 광복 76주년이다. 아직 식민통치의 고통을 고스란히 겪고 있는 피해자와 유족들이 많다. 일본군 위안부 외에 잘 알려지지 않은 강제동원의 역사가 바로 ‘군함도’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일본 근대 산업시설 등재 결정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은 철강·조선·석탄산업
세계유산은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으며 10가지 등재기준에 따라 인류가 공유할 만한 현저한 보편적 가치를 평가한다. 1~6까지는 문화유산, 7~10까지는 자연유산에 관한 기준인데 그 가운데 1가지 이상 부합하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다만, 모든 문화유산은 재질이나 기법 등에서 유산이 원래의 가치를 보유해야 하는 ‘진정성’, 유산의 가지를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충분한 제반요소를 보유한 ‘완전성’, 법적·행정적 보호제도와 완충지역 설정 등의 ‘보호 및 관리체계’를 갖추어야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기준 가운데 인간 가치의 중요한 전환점 기준 2, 문화적 전통 및 문명의 독보적 유산 기준 3, 역사의 중요한 단계 예증 기준 4를 들어 등재 신청을 했다. 그러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이코모스(ICOMOS)는 기준 3을 기각하고 기준 2와 기준 4만 유산 가치를 평가했다.
일본의 근대 산업시설들이 명백히 군사적 필요 때문에 만들어졌음에도 일본 정부의 신청서에는 이런 사실들을 강조하지 않았다. 세계유산위원회는 결정문에 각 시설의 역사 전체를 알 수 있도록 하라는 이코모스의 권고 사항을 각주에 부기하는 형식으로 명시했다. 일본은 1940년대 일부 시설에서 수많은 한국인과 여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에서 노역을 했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정부도 징용 정책을 시행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할 준비가 돼 있다. 또한 일본은 정보센터 설립 등 피해자들을 기리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이코모스가 권고한 해석전략에 포함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일본정부가 후속 조치와 관련해 2017년 12월 1일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경과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문화유산 등재 이후 2년마다 제출하는 이행 경과 보고서에서도 약속을 저버려 경고를 받았다 유네스코와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공동조사단이 지난달 7~9일 도쿄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결과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1940년대 해당 시설에서 한국인 등이 강제노역을 했다는 등의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조치 또한 미흡했다고 밝혔다.
군함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군함도’
일제강점기 조선인들이 강제동원되어 강제노동을 했던 슬픈 역사가 간직된 섬, 군함도의 공식 이름은 ‘하시마’다. 1974년 1월 탄광이 문을 닫아 아무도 살지 않는 섬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TV 예능프로그램 에 소개되고 영화 를 통해 이 섬에 관한 관심도 커졌다. 위치는 나가사키 항에서 약 18킬로미터 떨어졌으며 동서 160미터, 남북 480미터, 둘레 1.2킬로미터, 면적 0,063제곱킬로미터로 야구장 두 개 정도 크기에 불과한 작은 섬이다.
그런데 1960년에는 이 작은 섬에 5,267명이 살았다고 한다. 인구밀도가 도쿄보다 9배 높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구밀도를 기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유는 석탄 때문이었다. 1810년 근처에 살던 어부가 우연히 석탄을 발견한 뒤 1890년대부터 일본 기업 미쓰비시가 본격적으로 바다 밑에 묻혀 있던 석탄을 캐내기 시작했다. 석탄 생산량이 가장 많았던 1941년에는 41만 1,100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미쓰비시는 1916년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건물인 7층 아파트를 세웠다. 그 후 10층 아파트를 비롯하여 고층 건물들을 계속 지었고 좁은 섬에 근대식 아파트가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 마치 군함처럼 보여 그때부터 ‘군함도’라고 불렀다. “도쿄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은 모두 하시마로 모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쓰비시는 해저탄광을 개발하기 위해 최신 기술을 개발했다. 일본의 입장에서 하시마는 일본 근대화를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유산이다.
강제동원된 조선인들
군함도에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1943년부터 1945년 사이에 500~800명의 조선인들이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소설 『군함도』 의 한수산 작가가 실제로 만난 고 서정우 할아버지는 1944년에 16세였다고 한다. 그의 증언에 의하면, 해저탄광은 말 그대로 생지옥이었다. 탄광 바닥에 찬 물 때문에 습하고 후끈후끈한 공기를 마시며, 낮은 막장에서 거의 눕다시피 한 자세로 하루 10시간 이상씩 석탄을 캐냈다. 강제로 끌려와 강제노동을 하다가 병이 들어서야 그는 육지로 나갈 수 있었다. 탈출을 시도하다 잡혀서 죽기 직전까지 구타를 당하기도 하고, 바다에 몸을 던진 사람들이 시체로 발견되기도 했다. 희생된 조선인들이 40~50명에 이르렀다는 증언도 있다.
인류의 보편적 차원에서 군함도는 세계유산일 수 없다
오늘날 군함도는 연간 10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일본이 자랑하는 세계유산의 상징적 존재가 되었다. 세계유산의 공식 명칭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 철강·조선·석탄산업’이다. 군함도를 홍보하는 메시지 속에는 침략전쟁을 바탕으로 한 일본의 근대화 과정을 정당화하고 식민지의 희생을 감추고자 하는 일본정부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일본 최초의 철근콘크리트 아파트 등 그들이 환호하는 군함도 건축물의 대부분은 메이지시대 이후에 지어진 것이다. 더구나 일본정부는 세계유산의 범위를 1910년으로 한정하였으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섬을 둘러싼 호안의 일부와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 갱도 입구뿐이다. 일본정부는 강제노동의 어두운 역사를 가리기 위해 1910년으로 그 시기를 한정하는 꼼수를 부리고는 군함도 전체가 세계유산인 양 선전하고 있다. 이것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모습이다. 또한 역사를 왜곡하는 현장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기억될 수는 없다.
유네스코는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UNESCO(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1945년 설립되었으며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있다. 유엔의 전문기구로서 전 세계의 교육과 과학, 문화의 보급을 통해 빈곤국에서 문맹 퇴치 및 인류의 보편적인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고 국제 교류 증진을 통한 국제간의 이해와 세계 평화를 추구한다. 무엇보다 인류가 창조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다양한 유형의 문화적 아이템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알리고 있다. 프랑스의 에펠탑과 같은 건축물, 앙코르와트 같은 신전, 이집트 피라미드와 같은 고대 유적, 오만의 관개수로와 같은 구조물까지 실로 방대한 영역의 인류유산이 포함되어 있다.
유네스코는 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의 관리, 보호와 보존 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위험에 처한 곳이나 위협을 받고 있는 곳도 알리고 있다. 그래서 일부 세계유산 중에는 관리나 보존이 제대로 되지 않아 리스트에서 제외되는 곳도 여럿 있다.
박혜숙 기자 [email protected]
대한뉴스
☞기사원문: 군함도가 왜 세계문화유산인가! 잘못된 것은 시정돼야 마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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