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센터 김조은 활동가
2021년 6월 23일부터 정보공개 제도에는 주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 그동안 공공기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마다 제출해야 했던 청구인의 주민번호를 더 이상 기재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 정보공개청구를 할 때는, 주민번호가 아닌 생년월일 정보를 기입하면 된다.
시민사회는 오래전부터 의무적으로 주민번호를 쓰라는 것은 개인들의 민감정보를 과도하게 수집하는 것일뿐더러, 개인정보 유출의 우려를 키운다는 점을 지적해왔기에, 이번 개정은 매우 소중하고 반가운 변화다(이미 2015년 개인정보위원회에서 이 같은 주민번호 수집이 불필요한 절차임을 의결한 바 있음에도 불구하고 6년 만에 개정이 이뤄진 것은 안타까운 속도긴 하지만 말이다).
새로운 제도가 시행된 이후, 기대되는 마음으로 정보공개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직접 청구를 해봤다. 그런데 이게 웬걸. 행정의 변화를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걸까? 법에서 생년월일만 기입하면 된다고 했던 것과 달리 청구를 하려면 생년월일 이외에 주민번호 뒷자리의 첫 숫자, 즉 성별 정보까지 기입해야 했고, 이에 더해 '본인인증' 절차를 거치라는 문구가 튀어나와 청구서 접수를 가로막았다.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하고 회원가입을 하다 보면 본인인증을 하라는 요구가 별 것 아니라고 느껴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이 절차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왜 필요한 것인지 좀 더 따져 물을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본인인증
지난해 1월, 도서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시민이 '공공도서관에서 본인 명의의 휴대폰이나 아이핀이 없는 사람들도 가입할 수 있게 해달라'는 청원을 국민청원사이트에 올렸다.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이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려면 '본인인증'을 통해 먼저 회원가입을 하도록 하고 있는데, 복잡할 절차를 통과하기 힘든 노인이나 장애인, 본인 명의의 휴대전화가 없는 어린이, 빈곤으로 휴대폰이 정지된 사람들은 도서관을 이용하기가 너무나 힘든 현실을 목도한 것이다. 청원인은 ‘모든 사람에게 누구나의 책을’ 이 도서관학 다섯 법칙 중의 하나이지만,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본인 명의 휴대폰이 없는 사람은 ‘모든 사람’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에게, 어린아이에게, 장애인에게, 가난한 이들에게 모두 장벽을 가지고 있는 시스템이라면, 그 시스템이 어찌 공공성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본인인증은 개인정보보호법이 강화된 자리에 대체적인 수단으로 손쉽게 도입된다. 그러나 본인인증이라는 절차는 답답하고 불편하다는 차원을 넘어서 어떤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와 목적을 포기할 만큼 험난한 장벽이다. 이는 이미 현존하는 차별이며, 때문에 본인인증을 도입할 때에는 그것이 꼭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면밀히 검토해 최소한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고, 필수적으로 필요한 경우라면 배제된 사람들에게 접근권을 보장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보공개 청구를 할 때 본인인증은 정말 꼭 필요한 걸까?
다른 나라는 '누구나' 할 수 있는데... 유독 '자격'에 집착하는 한국?
행안부는 '청구권자 인증'이 필요하기 때문에 본인인증 절차를 두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우리가 청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자격을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현행 정보공개법은 정보공개 청구권자를 국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국내에 사무소를 둔 법인/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청구인이 혹시 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모두가 본인인증을 먼저 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본인인증을 요구하는 관행은 정보공개청구를 하려는 사람들을 번거롭게 할 뿐 아니라, 청구인들에게 신원 추적에 대한 불안감을 주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앞서 보았듯 어떤 사람들은 인증의 장벽을 넘지 못해 직접 공공기관을 방문하거나, 우편으로 청구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청구권자의 자격을 확인하는 것이 이 모든 것을 감수할 만큼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지 생각해본다면, 득에 비해 실이 너무나 크다.
사실 정보공개 청구는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공개해달라는 요청이기 때문에, 누가 그 요청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축적된 많은 판례와 운영지침에서도 청구인이 누구인지나, 청구 목적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공공기관은 청구 내용을 보고, 요청한 정보가 혹시라도 비공개 대상에 해당하는지 판단하여 공개 여부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예외적으로 본인에게만 공개해야 할 정보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 한 해 자료를 공개하는 시점에서 본인인증 절차를 활용하면 될 일이고, 정보공개포털은 이미 그렇게 운영되어왔다.
게다가 공익적으로 중요하고 사회 구성원들이 알아야 할 정보라면 그것이 외신 기자든, 한국 시민이든 누구의 요청이든 상관없이 공개되어 널리 활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정보공개 제도가 있는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적이나 나이 등 다른 조건 없이, '누구나' 정보공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물론 언어나 문화의 장벽으로 외국인의 청구는 어쩔 수 없이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 말이다. 많은 이웃 나라들과 달리 유독 요청할 수 있는 자격을 제한하고 나아가 주민번호를 바탕으로 손쉽게 그 자격을 검증하려는 관행은 시민들의 알 권리를 위축시키고 불신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의 영역에서 불필요한 본인인증으로 불합리하게 시민들이 부담을 떠안는 일이 하루빨리 사라지길 바란다.
* 정보공개센터가 매 달 민중의소리에 연재하고 있는 공개사유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