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신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은 속셈을 드러내고 말았다. 미국을 또 다시 세계경제의 강자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이미 세계경제는 서로 물고 물리는 의존관계망에 갇혀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다극화 체제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표출하고 있다.
4월 12일 미 대통령 관저에서 매우 특별한 회의가 열렸다. 설리번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국가경제위 위원장이 주재한 회의에 19개 글로벌 기업 CEO들이 참여하였는데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과 지나 리만도 상무장관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바이든은 이헐게 선언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세계를 이끌어 가려고 한다. 우리는 21세기에 다시 한번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다.”(We’re going to lead the world again. We’re going to lead it again in the 21st century.)
이 회의는 표면적으로 미 연방정부가 미국내 컴퓨터 칩 산업을 살리기 위해 소집한 것이나 사실은 바이든 대통령이 미 정부의 현안인 일자리 창출과 이를 위한 투자 유치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바이든은 자신이 제시하는 계획이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미국을 재건하며 우리의 공급망을 보호하고 미국 제조업을 활성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런 이유와 사정 하나 때문이었을까?
반도체를 안보사안으로 다루는 바이든
이날 19개사 대표들은 화상회의를 통해 자사 입장을 전달했다. 한국 기업으로 유일하게 초청을 받은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장 최시영 사장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가 주최한 회의에 한국 기업이 불려간 이유는 한국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막강한 힘, 시장점유율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 대륙에 소재한 기업은 하나도 초대받지 못한 데 비해 대만의 반도체 기업이 참여한 것 역시 바로 대만도 반도체 강국이었기 때문이다.
이 회의 참석자와 내용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이 세계를 이끌어 가겠다는 점과 함께 21세기에 “다시 한번” 더 하겠다는 데 있다. 즉 바이든은 미국을 세계 지도국가로 다시 한번 더 진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문정인 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세계에 대해 다섯 가지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 II였다. 즉 미국을 통한 세계평화인데 이게 곧 미중 신냉전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이것은 곧 미국 중심의 패권을 통한 세계 평화의 재현을 뜻한다(문정인 2021 문정인의 미래시나리오 : 코로나 19, 미중 신냉전, 한국의 선택 청림출판. 129쪽). 이 ‘자유주의적 패권의 부활’은 ‘자애로운 패권국’, 다자주의를 내세워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을 고립시켜 나가는 길을 선호한다.
둘째, 바이든은 반도체를 안보 사안으로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바이든은 8밀리미터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반도체는 사회기반시설이라고 지적했다. 디지털 전환시대를 이끄는 핵심부품이 아니라 공항이나 항구와 같은 핵심 기반구조라면서 이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다룬 것이다. 그래서 바이든 대통령 안보보좌관이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이 함께 회의를 주재한 것이다. 바이든에게 미국은 군사강국미면서 경제강국이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경제 사안도 언제든지 안보사안으로 취급해서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반도체 수급 불일치에 대비함으로써 자국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자구책을 대통령이 직접 챙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세계를 덮친 돌림병(COVID-19) 위기는 세계적 차원의 경기 불황을 불러왔지만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반도체 경기의 초호황이라는 슈퍼 사이클에 진입하자 반도체 수요-공급 차질이 완제품 생산 정체 현상이 일어났다. 예를 들면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하여 완성차 공장들이 가동 중단사태가 일어났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현대차와 GM차 공장이 움직이지 않았다. 돌림병 때문도 아니고 노사갈등 때문도 아니었다. 바로 이 차량용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반도체 회사에 불이나고 지진이 덮치면서 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어 불확실성이 커져갔다. 반도체 부품 대란은 공급망 대란, 반도체 전쟁으로 격화되어 갔다.
지난해 12월 4일 마이크론 대만 팹에서 정전사고가 일어났다. 이 결과 D램 현물가격이 상승했다. 그리고 대만 북동부 이란현 부근 해역에서 지난 해 12월 10일 저녁 9시에 6.7 강도의 지진이 발생했다. 바로 이 지진 발생 지역에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인 TSMC와 마이크론 공장이 있는 신주현, 타이중 등이 포함되었다.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발생 시 세계 전장반도체 3위 기업인 르네사스 일렉트로닉스사의 공장은 지진 피해를 입었다. 이 때문에 일본 완성차기업이 공장가동을 중단한 적이 있다. 당시 도요타는 일본 내 전체 공장 가동을 중지했으며 재개까지 약 1개월 정도 걸렸다. 이 르네사스는 2021년 2월 13일 후쿠시마현 앞바다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강진 피해를 확인하기 위해 자동차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이바라키현 나카시 공장의 운영을 중단했다. 보통 진도 3 정도의 지진이 발생하면 반도체 공장은 일단 공정 자체를 중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31일 대만 북부 신주(新竹) 과학단지내 TSMC 12 공장에서 화재가 일어나 정전사태로 이어져 공장이 멈췄다. 대만 TSMC 공장이 멈추게 되었다는 뉴스가 알려지자마자 세계 전자업체들이 긴장했다. 큰 화재가 아니라 오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래서 4월 12일 인텔의 새로운 CEO인 팻 겔싱어(Pat Gelsinger)는 말했다 : “우리는 6~
9개월 내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위해 차량용 반도체 설계업체와 논의하고 있다. 우리는 핵심 공급업체들과 전환 작업에 착수했다. 그래서 이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어 GM과 포드에 주겠다.”
그리고 이미 인텔사는 200억 달러를 투입하여 미국 애리조나 주 두 곳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넷째, 미 대통령 관저에서 열린 반도체 대책회의는 단순히 반도체 공급망 조정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날 회의에 전자제품, 인터넷 검색, 이동통신, 자동차 완성차제조, 의료기기뿐만 아니라 B2 스텔스 폭격기를 제조하는 군수기업 대표까지 참여함으로써 반도체산업이라는 일개 부품만이 사안이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반도체 산업을 미국이 주도하면서 예상되고 있는 ‘지각변동“을 보면 첫쩨, 바이든 취임이후 미국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계획에 반도체와 배터리를 포함하여 미화 500억 달러, 한화 56조원 상당 거액을 쏟아 넣고, 둘째, 이미 바이든은 반도체 공급망을 살피라는 대통령 행정명령을 발동했고, 셋째, 미국 반도체 공급망 확충 법안 발의를 예고하고 있다.
중국 패권국 부상을 꺾겠다는 바이든의 불가능한 꿈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해야 할 점은 바로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제압하고 세계경제에서 미국의 패권을 되찾겠다는 바이든의 야심이나 그 꿈은 실현가능하지 않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는 국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최강국이 되기 위해 막대한 투자를 서슴치 않고 있다.
미국측은 이번 회의에서 삼성에 신규 투자 또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는 반도체 공장 증설 속도를 더욱 가속화해 달라는 주문으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미 삼성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중 DRAM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2017년 3분기 기준 44.5%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27.9%로 2위를 차지한 SK하이닉스까지 합하면, 한국 기업의 DRAM 시장점유율은 72.3%로 압도적이다.[이승관 2017년 12월 7일). “반도체 코리아, 메모리 ‘절대강자’ 재확인…D램 점유율 72%”. 《연합뉴스》]. 특히 삼성전자는 2017년 2분기 영업이익 14조원을 벌어 지난 8년동안 영업이익 1위를 고수하전 애플을 제치고 영업이익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경쟁사인 애플로 삼성전자의 반도체를 공급받아 완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더욱이 삼성전자는 미국과 중국에서 반도체 공장을 운영, 반도체 제품을 생산하여 현지 판매를 하고 있다.( 참조)
반도체 투자액에 대한 국가별 세금 감면 비율을 보면 미국은 10~15%이나 일본은 최대 15%, 한국과 대만은 25~30%이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반도체 투자액에 대하여 무려 30~40%의 세금을 감면해 주고 있다(자료 SK증권). 그래서 바이든이 직접 나서서 미국 반도체 패권을 되찾겠다는 것이다.
바이든의 반도체 육성정책을 보면 첫째, 2024년까지 투자 대비 40%가량을 세금 공제하고, 둘째, 16조 6천억원 규모의 연방기금을 조성하여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공장 건설을 지원하고, 셋째, 연구개발을 확대하는데 8천억원을 지원하고, 넷째, 주정부는 삼성전자와 대만반도체(TSMC) 등 해외 기업 파운드리 공장을 유치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 국가안전보장위원회(NSC) 인공지능위원회는 미 연방의회에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과 격차를 확대하기 위해 일본과 네델란드 정부 등과 협력해 EUV와 ArF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
반도체 생산을 위해서는 전자공학과 광학 함께 정밀화학 및 정밀기계산업 등이 다같이 발전해야 하며 매우 고가의 조립장치 등을 완비해야 한다. 일본과 네델란드는 반도체 제조장비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다고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이들 두 나라에 관련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도록 그 뜻을 관철할 수 있다면 바이든의 꿈은 실현가능성이 높아지나 그럴게 되기엔 아직 이르다고 평가할 수 있다. EUV는 극자외선 방사(extreme ultraviolet radiation)의 약자로써 네델란드 AMSL사 리쏘그라피(lithography) 장비는 반도체생산의 필수 장비이다.
일부에서는 삼성전자가 미 정부의 지원만 뒷받침된다면 글로벌 회사들이 포진해 있는 미국에서 반도체 사업을 키우는 제2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고 있다. 이미 삼성은 미국에 20조원 투자를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잘 알다시피 현재 삼성기업집단의 최고 총수는 기업집단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전임 대통령의 개인 측근 딸에게 경주용 말을 사 주는 뇌물을 주었다가 적발되어 감옥에 갇혀 있는 ‘오너 리스크’에 빠져 있다. 혹여 한국 재벌 특유의 ‘오너 리스크’ 상태라고 하더라도 삼성기업집단은 ‘관리의 삼성’, ‘시스템의 삼성’이라는 말이 나도는 것처럼 비교적 위기관리나 성과관리에 능하기 때문에 큼 문제없는 의사결정과 기업집단운영을 해 나갈 것이다. 이씨재벌은 1990년대 자동차업계의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카 일렉트로닉스를 강조하며 무리하게 자동차산업에 진출하였다(허상수 1994 삼성과 자동차산업 도서출판 새날 161쪽).
삼성기업집단은 반도체에 관한 한 미국 시장 못지않게 중국시장도 중요하게 여기고 이에 합당한 생산과 판매전략을 구사해 나갈 것이다. 일방적으로 어느 나라에 끌려 다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포드자동차는 1908년 9월 30일부터 ‘T형 포드(T카)를 생산하기 시작하여 자동차의 대중화시대를 개척하면서 미국인에게 국민기업으로 인정받았다. 고된 일을 하고나서 T카를 몰고 귀하가여 라디오로 야구중계를 들으며 맥주를 홀짝였던 시대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사회를 만들었다. 삼성기업집단 역시 이얼 만큼의 국민기업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산업통상자원부 소재융합산업정책관의 주요업무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섬유, 탄소, 나노, 철강, 세라믹 등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육성 및 진흥을 위한 정책을 수립·시행하는 데 있다. 그 산하 반도체디스플레이과의 주요업무는 반도체 산업, 디스플레이 산업, 영상표시장치 산업, 전자부품 산업 및 인쇄전자 산업의 육성 및 진흥을 위한 정책의 수립ㆍ시행과 반도체 산업, 디스플레이 산업, 영상표시장치 산업, 전자부품 산업 및 인쇄전자 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 유치, 해외투자 지원, 통상 현안 대응 등 대외 협력에 관한 사항, 내장형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술개발 지원 및 육성 정책의 수립ㆍ시행 등이다. 기업인들이 사활을 걸고 현장을 뛰고 있을 때 장관 등 이들 공직자들 역시 최선을 다해 모든 행정력을 투입하여 기업을 지원해야 마땅할 것이다.
반도체 전쟁과 한국
반도체는 과학기술혁명시대를 선도하고 있는 전자공학산업의 쌀이라고 불린다. 미중 신냉전은 미국의 패권 회복과 중국의 패권국 진입을 둘러싼 극한 경합으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기술패권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반도체 공급망을 둘러싼 최근의 혼란상은 이 기술패권전쟁을 격화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반도체는 2021년 한중외무장관 회담에 의제가 될 만큼 중요한 외교안보사안이며 중요한 경제재이다.
한국은 미국 대통령의 한국 기업 초청과 거액의 투자요청 사실을 직시하고 그에 걸맞는 행보를 보여야 한다. 이미 한국은 2020년 1인당 GDP3만1천497달러로 이탈리아(3만1천288달러)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그리고 브라질과 러시아를 체치고 세계 경제 10위의 중견강국 지위에 진입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에 걸맞는 외교안보역량을 십분 발휘해야 한다. 특히 한미동맹을 들먹거리며 미국에게만 쫄리는 듯한 졸속외교에서 어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한미 군사동맹에 중독되었던 구냉전시대의 신화를 극복해야 한다. 바이든이 벌이는 세계패권국가로의 복귀라는 불가능한 꿈에 헛발질하지 않는 한국인의 슬기로운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야만 한다.
허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