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이 자부심으로, 음식물 흙퇴비화
장보민 | 경상남도 경주시
관리되지 못한 음식과 식재료들에 매번 좌절하고, 개선되지 않는 상황 되풀이
안녕하세요. 저는 경주에 살고 있는 장보민입니다. 이번에 경주법당에서 자발적으로 진행한 흙퇴비화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 흙퇴비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희 가족은 4명이고 큰 애는 서울에 있고, 3명이 아파트에서 살고 있습니다.
코로나 상황으로 외식보다는 집밥을 선호하고, 집에서 음식을 해 먹는 경우가 많아서 저의 고민은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나온다는 거였어요. 포살(정토회 회원들이 함께 지키기로 한 계율에 비춰 자신을 돌아보고, 드러내어 참회하는 장)을 하면 항상 ‘음식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에 걸려서 참회를 하지만, 관리되지 못한 음식과 식재료들에 매번 좌절하고 개선되지 않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더럽다는 생각으로 흙퇴비화를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음식물쓰레기 흙퇴비화 1,2기가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선뜻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가 더럽다는 생각이 드니까 집안에 두면서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 큰 맘 먹고 참여했는데 대박!! 저에게 딱 맞는 감사한 흙퇴비화 작업이였습니다.
2월 8일 교육을 받고 14명이 시작했습니다. 정토회에서 진행한 흙퇴비화 1,2기를 진행했던 경주법당 환경꼭지 강순자님이 ‘음식물 쓰레기 흙퇴비화’를 알리고 싶으신 열정으로, 이번에는 전체 정토회에서 진행하지 않는 기간임에도 경주법당에서 자발적으로 흙퇴비화 활동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죠.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큰 맘 먹고 참여했는데!! 나에게 딱 맞는 흙퇴비화!!
함께 하시는 분들은 거의 각자의 텃밭을 가꾸며 친환경 농법으로 자급자족하는 분들이고, 경주의 분위기는 환경열정 가득입니다.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분들이고, 로컬 푸드에 깨어있고 환경이 곧 삶이신 분들이 많아서 항상 좋은 영향을 받고 감사하며 배우고 있습니다. 흙퇴비화 소통방은 여러가지 경험담과 고민들이 활발하게 올라오고 중간 모임도 여러번 가졌습니다.
교육 받은대로 시작해 보았습니다. 공동구매로 분갈이 흙과 발효제 구매해서 준비!
음식물쓰레기 흙퇴비화 과정 – 일지
2월 8일(월)
교육 받고 음식 생쓰레기 잘게 썰어 놓기
흙퇴비화할 밀폐통 준비(2개) / 음식물 쓰레기 플라스틱 통에 담기
– 천혜향 껍질, 오이 (84g) / 삶은 고구마, 빵(44g)
2월 9일(화)
발효제 섞은 음식물 쓰레기 (이하 음쓰) 흙으로~
두가지로 나눠서 실험 : 익힌 것(흰통) / 생 것(검은 통)
2월 10일(수)
흙퇴비화 일지 만듬
분갈이 흙에 음쓰 넣음 / 2차로 넣을 음쓰와 발효제 섞음
– 천혜향 껍질(30g) / 싱크대 모인 음쓰(48g)
며칠 안 됐는데 어떤 음식 쓰레기가 나오는가 살펴보게 되니, 전체 일상에 깨어 있게 됩니다. 적게 먹고 적게 쓰게 됩니다. 발효시키는 양은 적지만 음식쓰레기 양이 확 줄었어요.
2월 11일(목)
음쓰 정리. 양을 늘려서 해봄
3차로 넣을 음쓰와 발효제 섞기
– 천혜향 껍질, 오이껍질, 당근껍질 등(400g)
– 싱크대 모인 음쓰, 싹난 생감자(300g)
2월 13일(토)
묻어 놓은 음쓰의 상태 확인 : 익힌 것은 형태가 없어지고 작은 망울들이 있음
생것은 익힌 것보다 망울져있는 덩어리가 크고 천혜향 껍질 형태 남아있음
3차 음식물 쓰레기 투하~ / 환기함
1차, 2차 음식물 쓰레기가 사라졌다. 너무나 신기하다. 냄새도 없고 발효의 강한 힘이 느껴진다. 음식물 쓰레기에 깨어있기 하니 냉장고 음식에도 깨어있게 된다. 꾸준히 해보고 싶다.
2월 14일(일)
4차 투하 음쓰 준비+발효제 섞기
– 생음쓰(200g) / 익힌 음쓰(300g)
1.2차 적은 양의 음쓰가 하루만에 형체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3차에 양을 늘려서 투하한 것 관찰해봄. 하루만에 작은 덩어리들은 없어지고 큰 덩어리는 남아 있음. 생음쓰보다 익힌 음쓰가 빨리 발효되는 듯. 두 통에 모두 습기가 있는 것은, 발효되면서 습기가 나오는 거라 여겨짐. 덩어리를 흙삽으로 풀어주고 섞어줌
2월 15일(월)
흙퇴비화로 나의 죄가 사해지는 듯한 가벼운 마음. 음식물 쓰레기가 내 친구가 되고 자부심이 되어
1시간 환기하고 덩어리들 풀어주며 관찰. 덩어리가 크면 많이 남아있음. 나머지는 많이 분해되어 거의 없어짐. 와인냄새 같은 휘발성 발효냄새가 남.
여러 활동을 하다가, 틈나면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거리며, 쉬는 시간을 가집니다. 음식물 쓰레기로 휴식을 갖는다니….불구부정.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다는 불법의 이치를 여기서 느끼네요. 모두 마음 먹기 나름이였어요. 음식물 쓰레기가 내 친구가 되었습니다 ㅎㅎㅎ
나름대로 실험을 다르게 해보고 있어요. 같은 양을 하루 발효한 것/이틀 발효한 것//발효제를 두배로 넣은 것(6차 투하 예정) 등으로 나눠서 해 보려고 합니다.
자발적인 건 재미있다는 거겠죠. 신기하고 재미있어요. 그리고 많이 버려졌던 음식물 쓰레기에 항상 죄책감처럼 부담감이 있었는데, 흙퇴비화하면서 나의 죄가 사해지는 듯한 가벼운 마음입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죽으면 쓰레기만 남기는 인생은 아닐지 되돌아보며… 최소한의 쓰레기를 남기자. 그리고 좋은 흙퇴비로 변한 쓰레기라면… 음식물 쓰레기는 저에게 자부심을 심어주는 존재가 되어갑니다.
2월 16일(화)
5차 음쓰 투하(이틀 묵혀놓은 것)
– 생음쓰 200g / 익힌 음쓰 300g
관찰 – 생음쓰통과 익힌 음쓰통의 흙색깔 다름.
– 콩나물대가리, 마늘, 파 겉껍질, 한라봉 겉껍질 등 남아있음.
– 깊은 통이 발효가 잘되는 듯함.
– 자주 뒤적여주고 환기해주면 빨리 발효됨
– 집안에서보다 베란다로 보낸 후 발효 느려짐
내 욕심과 부채의식으로 많은 음식을 하고 있었구나
적게 사고 적게 먹고 흙퇴비화로 배출량 제로로~
이렇게 오늘(3월 20일)까지 매일 일지를 쓰며 음식물 쓰레기를 관리하고 뒤적이고 흙퇴비화하면서 19차 음식물 쓰레기까지 넣어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이틀에 한번은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 버려야 했는데, 이제는 거의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일반쓰레기로 분류되는 계란껍질, 양파껍질, 동물 뼈 등은 넣지 않고 미련 없이 버렸구요. 안되는 걸 하려고 하지 않고 지금 제가 못하는 음식물 관리에 집중했습니다.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를 살펴보니 너무 많은 양의 음식과 반찬 종류가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적은 양을 먹고 한번 한 음식은 여러 번 안먹는 가족인데, 제 욕심에 많은 음식을 하고 있었구나 알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정토회 체제가 바뀐 후 저녁에 방에서 못나올 때가 많으니, 부채감정으로 많은 음식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간식도 필요 이상으로 사다 놓고 식재료도 많이 사놓고…이런 내 모습을 알게 되니, 일단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다 소진하면 최소한의 장을 보고 식단을 짭니다. 냉동실에 있는 재료도 잘 살펴서 먹을 수 있는 걸 해 먹고 단순하게 먹습니다. 좀 적게 사고 좀 적게 먹는 게 제일 좋은 방법임을 흙퇴비화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냉장고 파먹기 할 때보다 흙퇴비화할 때 냉장고에 더 깨어서 관리하게 되는 게 놀랍고 신기합니다.
하루에 20분!! 죄책감을 자부심으로 바꾸는데 드는 충분한 시간
하루에 20분!! 흙퇴비화에 드는 제 시간입니다. 음쓰준비 10분+ 뒤적뒤적 10분!! 죄책감을 자부심으로 바꾸는 충분한 시간!! 흙퇴비화의 세계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에코붓다 소식지 2021년 3·4월호에 실린 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