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바이든 정부는 한국내 일부 보수층의 과도한 우려와 경박한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핵심 동반자로 대우하기 시작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오른팔이며 최측근으로써 그의 ‘다른 자아(Alter Ego)’라고 부르는 국무장관을 스스로 태평양시대의 주역이라고 자처하고 있는 일본에 이어 한국을 우선 방문하도록 조처했다. 그와 함께 미 국방부장관은 유사시 대통령이 동승하여 핵공격 사령부 기능을 하는 군용 정찰기에 탑승하여 군사적 시위를 병행했다.
남의 집을 방문하면서 총칼을 차고 들이닥친 셈이 아닌가 싶은 정도이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조선과 미국간 최초의 접촉은 미국 배가 고래를 잡으러 동래현 용당포 앞바다에 나타난 1852년 (철종 3년) 음력 12월이었다. 그로부터 14년 뒤 미 해군과 해병대와 조선 사이에 최초의 전쟁인 신미양요가 1866년에 일어났다. 미국은 일본의 조선 침략을 인정해 주는 대신 필리핀을 차지하기 위해 1905년 7월, 태프트-카츠라 밀약을 맺었다. 이처럼 미국과 우리는 원만한 외교관계를 수립해 오지 못해온 게 사실이다. 그 뒤 미군정과 한국에서의 전쟁을 거치면서 한국과 미국은 피를 나눈 혈맹의 관계를 맺어오게 되고 말았다. 그래서 70년 이상 된 이 한미관계의 본질은 다름이 아닌 반공 군사동맹이었다.
어쨌든 이번 서울에서 열린 2 + 2 한미 외교 및 국방장관 합동회동은 여러모로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한미동맹에 금이 갔다고 설레발치는 보수우익 반공 친미주의자들이나 일부 언론 논조의 지적이 완전히 틀렸다는 점을 완벽하게 보여주었다. 한미관계는 지난 5년 동안 2 + 2 회담을 열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번 회동을 통해 한미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도 건재함을 확인했다는 게 2 + 2 공동성명이 잘 나타나 있다.
둘째, 이처럼 재확인된 한미동맹은 책임동맹, 전략동맹, 가치동맹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는데 대하여 양국 장관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대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우선 한미간 책임동맹은 한미동맹을 건전하고 호혜적이며 포괄적인 것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동안 불건전하고 일방에 특혜적이며 편파적 동맹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이다. 나아가 전략동맹은 주요 동맹 현안들에 대해 심도 있게 협의하고 상호보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것으로 발전시킨다는 것이다. 그동안 건성으로 협의하거나 상호 길항적이며 현상 고정적 동맹관계였다는 점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더 나아가 가치동맹은 민주주의와 인권 등 인류 보편적 가치 실현을 위해 동맹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한미관계에서 민주주의는 76년 전 미군이 북위 38선 이남지역을 무혈점령할 때부터 강조해 온 핵심이념이나 실제 현실정치에서는 제 역할과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온 게 사실이다.
셋째 이번 2 + 2 한미 외교안보장관 공동회담은 국내용 보여주기 외교였다. 미국 두 장관은 이번 회담에 앞서 지난 3월 15일 워싱턴 포스트(WP)지 의견란에 공동 명의로 기고하였다. 그 첫 문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 첫날 “미국은 돌아왔다”고 선언한 그 내용을 반복했다. 즉 “미국은 세계정치에 재개입(reengagement)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전임 대통령은 미국중심주의를 호소하며 지지세를 결집했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것을 뒤집고 그 이전 시기의 미국 패권으로 복귀하겠다고 천명한 셈이다. 바이든 정부 내부 역시 대외 강경파와 온건파, 현상유지파가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정치에서 이미 미국 패권주의가 먹혀 들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 시대는 대세에서 밀려나 고 있는 게 다수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2 + 2 한미회담이 국내용 보여주기 외교를 보인 건 미국에서만 그런 게 아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모습을 보였다. 한국 외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은 회담직후 동아일보에 공동명의의 기명 기고를 통해 회담의 의미와 성과를 요약해 주었다. 회담이 끝나는 날 저녁 공중파 텔레비전 뉴스프로그램 인터뷰에 응한 미국 외무장관 역시 한미동맹은 양국관계에 핵심축(linchpin)이라고 강조했다. 원래 이 말은 ‘바퀴의 비녀장’이나 한미군사동맹의 공고함을 의미하는 상징어가 되었다, 여기까지는 이미 드러난 양국관계의 현상으로써 ‘말의 잔치’였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외교는 수사(rhetoric)의 전쟁터이다. 그러나 이번 회동이 낳은 맹점 가운데 하나는 어마어마한 천문학적 규모의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부담하는 협상 결과에 가서명함으로써 한국측은 예전과 같이 미국 손님들을 만족시켜주어야 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다음날 미국 알라스카주 앵커리지에서 벌어진 미중 외교장관 회담 소식을 전하면서 한국외교의 미래를 걱정했다. 즉 중국은 대미 외교사 100년 만에 미국과 대등한 외교전을 벌였다면서 한국이 이들 두 나라사이에 끼여 어느 한 나라만을 위한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다고 우려했다.
이번 2 + 2 회담을 통해 드러난 이견가운데 하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용어 사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즉 미국측은 일관되게 ‘북한 비핵화’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비해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하여 한국측은 ‘한반도 비핵화’라고 표현했다. 국내에서도 친미보수반공주의자들은 일관되게 ‘북한비핵화’라고 목청을 높인다. 따라서 누가 머리털은 검은데 ‘북한 비핵화’라고 들먹거리면 그런 자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가 있는지 잘 알 수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2일 역사적으로 처음 가진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새로운 북미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이고 강건한 평화체제 건설에 관한 의제에 대하여 포괄적이고 면밀하며 진실성 있는 의견교환을 했다. 그리고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했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서의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미국은 툭하면 핵전략 자산의 한반도 전개 등 한미군사훈련을 멈추지 않았고, 북한 체제안전보장을 도모하지 않았고, 대북제재를 강화하는 등 북한에 대한 적대시정책을 유지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긴장과 대립, 갈등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전임자의 정책 대부분을 용도 폐기했다. 그러나 외교주의자·의회주의자로써 바이든 대통령은 싱가포르에서 이루어진 양국간 회담을 선선히 인정한 바탕위에서 다음 정책을 입안, 추진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게 태평양시대에서 미국이 강자로써 생존할 수 있는 지혜이다.
2018년 6월 12일
미합중국 도널드 J.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의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공동합의문
발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에서의 지속적이고 강건한 평화체제 건설에 관한 의제에 대하여 포괄적이고 면밀하며 진실성 있는 의견교환을 이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하였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단호하고 확고하게 한반도에서의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이제 한국은 국익우선 외교정책을 과감하게 전개해야 한다. 한미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낡은 시대의 군사동맹을 과감히 넘어서서 21세기 COVID-19 이후에 걸 맞는 평화동맹을 구축할 수 있는 국익최우선정책을 수립, 시행해야 한다. 이번 2 +2 회동에서도 미국측은 우리와 함께 조율된 대외정책 수립에 뜻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동아시아의 새 질서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외교활동이 필요하다. 한류, K-Pop, K-방역 등 세계 수준의 소프트 파워를 세계화함으로써 인간안보, 지속가능성, 이행기 정의, 지속가능한 발전 등 인류 보편의 의제를 선점함으로써 국제무대에서 중견국가의 국력에 걸맞는 공공외교를 전개해야 한다. 신기욱이 제안하는 대로 중국과 미국이라는 거대한 고래싸움에 끼어서 시달리는 새우 신세가 아니라 열리한 돌고래처럼 운신해야 한다.
이제는 졸렬한 방식의 친미나 친중 외교정책을 넘어서야 한다. 완고한 반미나 반중정책은 구시대의 소모적 발상이다. 원교근공(遠交近攻)과 같은 춘추전국시대 범저(范雎)의 외교정책은 불필요하다. 지금은 그런 외교책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원교근린(遠交近隣), 멀건 가깝건 이웃나라들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한중관계뿐만 아니라 한일관계 개선과 정상화를 추구해야만 하는 사연이 바로 여기에 있다. 19세기 민족주의나 어설픈 민족감정만 내세울 때가 아니다.
문정인의 제안대로 한국의 미래를 위해 참으로 명민한 외교와 결기 있는 외교가 필요하다. 명민한 외교는 주어진 내외 정세와 국가 안보환경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부터 해야 한다. 올바르고 적정한 정보 획득이야말로 외교의 출발이다, 그 바탕위에서 현명한 정책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확한 정세판단은 정책실패를 자초한다. 결기 있는 외교는 담대한 외교, 어떤 경우에도 굴하지 않는 배짱이 두둑한 외교를 벌여야 한다. 따라서 국가이익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기본 원칙을 분명히 하고 대담한 외교를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연 무엇이 국익 최우선정책일까?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런 우리나라의 최우선 국가이익은 무엇인가? 전쟁이 없는 나라,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 지속가능한 국가, 공정한 책임국가일 것이다. 이런 국가이익들을 쟁취하려면 군비축소, 군비통제, 전쟁예방, 평화조성과 유지 등이야말로 최우선순위의 국익일 것이다.
앞으로 복지국가를 바로 일으켜 세우려면 무조건 군사비를 축소, 재조정해야 한다. 군사비를 많이 줄이면 줄일수록 국가의 미래를 밝아질 것이다. 일부 인사들이 한반도 중립화론을 본격적으로 제안, 추진한다는 일은 대단히 의미심장하고 반가운 일이나 국방비부터 증액하여 강병책을 쓴다고 하니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평화외교 중재역량을 최대한 끌어 모아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를 재개, 발전하기 위한 특사외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남북관계가 전면적으로 과감하게 개선될 수 있다면 이를 지렛대로 해서 한국은 한중관계와 한미관계를 동시에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이때 한국은 동아시아지역안정의 중심축이며 통과지대를 자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미중간 조성된 신냉전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면서, 그 선택의 위험성과 딜레마를 기회요인으로 전환시키면서 양대 강국을 이웃나라로써 공존할 수 있을 것이다.
허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