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은밀하고 악랄하게
활개치는 가해자의 플랫폼 세상
복수의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성착취물
: 텔레그램에서 디스코드, 유튜브, 트위터까지
몸사리는 가해자들, 돈 대신 성착취물 ‘물물교환’
심지어 상위방에 입장하기 위해 교환해야 하는 영상에도 이전보다 까다로운 기준이 붙었다. ‘아무거나 보내면 안 된다’는 뜻이다. 피해자 얼굴이 꼭 나와야 한다던가, 얼굴이 나오더라도 ‘신작’이 이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신작’이란, 널리 알려진 ‘n번방’이나 ‘박사방’ 사건 피해 영상이 아닌, 그 이후에 만들어진 새로운 성착취물을 말한다.
한국 넘어 아시아 위협하는 디지털 성범죄
: 텔레그램 ‘중국방’ 속 전세계 피해 여성들만 수만명
우리나라 디지털 성범죄 가해자들은 국내 성착취 피해 영상을 찾기 어려워지자, 해외 성착취 피해 영상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모여있는 ‘해외방’ 수십 곳의 링크가 한국인들이 활동하는 ‘링크 모음’ 대화방에 수시로 올라왔다. 그중 가해자 대부분이 중국어를 사용하고, 올라온 성착취 영상은 중국인 피해자로 추정되는 일명 ‘중국방’이 가장 활발히 운영됐다. 3월 18일 낮 12시 기준, ‘중국방’에는 22만여 명이 참여하고 있었으며, 이 방에서 공유된 성착취물 개수는 2만 2,694개였다.
‘중국방’에 올라오는 영상은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화장실 불법촬영물, 성관계 불법유포물,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에 해당하는 온갖 불법물을 망라한다. 전세계 가해자들이 모여 있는 방인 만큼, 업로드 되는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아 시도때도 없이 새로운 영상이 올라온다. 놀라운 것은 22만 명이 들어있는 이 방의 개설시점이 2년 전이라는 것이다. 이 방은 2019년 3월 31일에 개설되어 현재까지 폭파되지 않고 운영되고 있다.
텔레그램 ‘중국방’은 지금도 계속해서 몸덩이가 불어나는 중이다. 3월 3일 참여자가 21만 7,000명이었는데 불과 2주만에 7,000 명이 늘어나 총 22만 4,000명이 되었다. 이 방 외에도 6만 명, 4만 명 등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대화방들이 계속해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이 방의 가해자들은 중국어와 태국어, 한국어를 사용한다. 단, 피해자는 아시아권에 국한되지 않았다. 아시아 말고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피해자가 등장하는 성착취물이 마구잡이로 업로드 된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더는 한국만의 문제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이는 이미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국경없는 인권 침해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생존자 A씨 이야기
신고한 지 3년, 여전히 돌아다니는 사진들
‘신상털기’에 얼굴도, 이름도, 학교도 바꿨어요.
“다음 주에 또 경찰서를 가야해요. 또 유포가 돼서. 계속해서 유포가 되고 또 지우지 않는 사이트도 있으니까. 걔네(가해자들)가 계속해서 재유포 할 수 있는 거니까요.”불법 유포 피해를 입은 피해자 A씨가 범죄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건, “미안한데 너 사진을 본 것 같다”며 지인들에게 연락이 오면서부터였다. 2019년 여름을 회고하던 A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사진은 다수의 불법 사이트에 유포 돼있었다. 처음부터 이렇게 광범위하게 유포된 건 아니었다. 최초 유포자가 또 다른 가해자들과 피해 사진을 교환하고, 판매하면서 유포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최초 유포 시점은 모르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피해자가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3년째 유포 피해가 지속되는 것을 보아 A씨의 피해 사진을 소지한 가해자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짐작됐다.
다음 주에 또 경찰서를 가야해요. 또 유포가 돼서. 계속해서 유포가 되고 또 지우지 않는 사이트도 있으니까. 걔네(가해자들)가 계속해서 재유포 할 수 있는 거니까요.
A씨는 경찰에 신고해 가해자를 잡기 위해서는 어떤 사이트에, 무슨 내용으로 피해 사진이 유포됐는지 일시와 URL 주소를 함께 채증해둬야 한다는 걸 안다. 그렇기에 요즘도 매일 밤 불법 사이트를 뒤져가며 본인의 사진을 찾는다. “불법 사이트 중에서도 돈을 내야 볼 수 있는 게시판을 운영하는 곳이 있어요. 그런 게시판을 모니터링하려고 쓴 사비만 20만원이 넘어요.”A씨는 본인이 피해자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피해에 맞서 당당하게 살고자 노력했다. “고소와 모니터링을 계속 하면서 학교도 다니고, 일도 하고, 삶의 끈을 놓지 않으려 엄청 노력했어요. 사실 제정신은 아니었죠. 겉으로만 멀쩡했어요. 시간이 지나도 가해자들은 유포를 멈출 기미가 없고, 오히려 더 (유포 횟수가) 확대되는 것을 보고 모든 걸 버리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겠다고 택했죠.” 그렇게 A씨는 성형수술을 했고, 이름을 바꾸고,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근래에는 A씨의 피해 사진뿐 아니라 신상을 유추하려는 댓글도 달린다고 한다. “처음엔 다 틀린 정보의 댓글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진짜 사실이 적혀 있는거죠.” 그저 텍스트라고 생각했던 위협들이 자신의 실제 신상 정보인 것을 확인하자 A씨의 두려움이 배가됐다. 이른바 ‘신상털기’였다. A씨가 불법 유포와 별개로 맞닥뜨린 또다른 명백한 디지털 성폭력이었다.
삭제했지만 삭제되지 않은 이유를
플랫폼에 묻다.
지난 1년 간 정부와 국회, 법원, 그리고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와 일부 미디어 등 여러 주체가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이야기했다. 정부는 수사 및 피해영상물 삭제 지원을 확대했고 국회는 처벌의 범주를 넓혔으며 법원은 가해자에 대한 엄벌을 약속했다. 여성단체는 이러한 약속이 실제로 이행되는지를 끊임없이 감시하며 누구보다 가까이서 피해생존자의 일상회복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우리의 추적이 확인한 피해자들의 1년 후는 여전히 암흑이다. 피해자들은 여전히 자신의 ‘검색어’를 각 종 사이트에 입력해보며 살아가고, 가해자들은 새로운 희생양을 찾아 온라인을 활보한다.
이것이 바로, 국제앰네스티와 추적단불꽃이 올해, 가해자들이 사실상 무법지대 삼은 이 ‘온라인 공간’에 주목하려는 이유다.
피해생존자 정의회복의 기본 전제는 결국 어딘가에서 돌아다닐 성착취물의 온전한 삭제에 있다. 피해생존자가 원하는 지원이란 ‘불법 사이트 차단’과 ‘유포자 강력 처벌’뿐 아니라 무엇보다 피해영상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돌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가해를 영속화 하는지, 제도의 변화에도 왜 피해생존자의 고통이 멈추지 않고 삭제된 영상은 왜 되살아 나는지에 사회는 아직 뚜렷한 답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질문한다. 이 모든 디지털 성범죄가 자행되는 실질적인 판으로 기능하는 온라인 공간에 대해 우리는 어떤 이해를 갖고 있을까? 온라인 공간을 운영해 이윤을 취하는 기업들은 이 사건에 대해 어떤 응답을 갖고 있을까? 사진과 동영상 등의 시각 콘텐츠로 광고 수익을 얻는 소셜 플랫폼 기업 또는 수십 테라바이트에 달하는 불법 성착취물을 압축한 대용량 파일 링크를 서비스하는 클라우드 기업은 어떤 책무를 절감하고 있을까?
이를 둘러싼 기존의 담론으로는 이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유엔 비즈니스와 인권 가이드라인[1]에 따르면, 모든 기업은 그들의 운영과 공급망 전체를 포함하여 그들이 운영하는 모든 곳에서 모든 인권을 존중할 책임이 있다. 기업은 자신의 활동이 인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거나 기여하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그러한 영향이 발생할 때 이를 해결해야한다. 또한 기업이 직접 영향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기업의 영업 활동이나 제품 혹은 서비스 등과 연결된 관계에서 인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 이를 방지하고 완화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2017년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일반 권고 35호[2]에 따라 각국의 기업과 초국가적 기업 등이 여성에 대한 폭력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차별을 없애고 이에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가능한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르면 온라인과 소셜 미디어는 성 고정관념 근절에 초점을 맞춘 메커니즘을 만들거나 강화해야 하고, 그들의 플랫폼에서 저질러지는 모든 성차별에 의한 폭력이 근절되도록 적극 장려해야 한다.
이를 둘러싼 플랫폼 기업 그리고 새로운 기술의 ‘책무responsibility’에 대한 새로운 논의가 시급하다. 오는 4월 말 게재되는 2번째 콘텐츠에서 우리는 그 책임의 주체를 따라가본 추적기를 이어간다. 피해생존자들의 정의를 가로막고 있는 눈 앞의 방해물은 과연 무엇이었는지 파헤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