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1년 1,2월호 – 우리들이야기(3)]

2021년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북클럽일지 모른다

 

조진석 나와우리+책방이음 대표

2020년에 이어 올해도 상상하지 못한 재난으로 수많은 사람이 경제적 곤궁에 처해있다. 또 사회적 고립감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답답증이 들고 무기력해진다. 자주 들렀던 카페가 폐업하고, 가끔 저녁 시간 홀로 갔던 술집도 저녁 시간 잠깐 문을 열고 곧 닫고 있다. 저녁 9시가 되면 거리에서 사람을 보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런 일들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성이 높다는 점이 자유로운 생활을 가로막는 문제의 근인이고 생활고로 인해서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것은 현상이다. 책방이음 역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서 작년 하반기 오프라인 매장은 문을 닫고 온라인 주문만 받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삶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앞날의 전망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하루의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데, 한 권의 책을 구입할 돈도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또 책을 읽고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책 읽기는 그저 여유로운 사람들의 사치에 불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책 읽기가 지금의 상황에서 필수 불가결하다는 점을 어떻게 설명할까.

이전과 달리 코로나19 이후 책 읽기는 우선 내가 지금 살아있고, 살아간다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지금까지 해온 것과 다른 것을 시도해보고 완성하는 것을 통해서 조그마한 성취감을 독서가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사람들과 함께 대화 나누고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비대면 공간도 중요하다. 덧붙여 책을 사서 각자 읽는 방식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전문가의 강의가 필요하다. 이런 생각을 작년 가을부터 펼치기 시작했다.

전국의 동네 책방들이 모여서 지난해 1월부터 박지원의 고전 『열하일기』를 12주 동안 완독하는 북클럽을 열고 있다. 한양대 박수밀 선생님이 매주 한 번씩 자신의 저서인 『열하일기 첫걸음』을 주교재로, 온라인으로 강의하고 질문하고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또 참여 책방별로 독서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기획의 초점은 조선의 사행단의 일원이 된 연암 박지원의 열하로의 여행에 맞추었다. 코로나19로 인해서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했고, 언젠가 연암이 다녀온 중국으로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는 뜻에서 여행서를 같이 읽는 독서동아리를 만든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 홀로 있는 사람들이 매주 화요일 저녁, 그동안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한 고전을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책과 강의를 통해서 이해하고 여럿이서 함께 읽는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있다. 18개 동네책방과 2개 도서관, 130여 명의 독자가 같이 열하일기에 담긴 “관습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망하는 한 지식인의 열정”과 “편견과 차별을 버리고 인간과 세계를 사심 없이 공정하게 바라본 경계인의 시좌(視座)”를 보면서 “우리 시대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되는 시간이 매주 화요일 저녁 펼쳐진다.

여기에 머물지 않고 독자들은 새로 출간된 저자의 『탐독가들』 강의를 신청해서 듣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들여다보는 행위가 아니다. 작가의 고심을 읽는 행위이고 이를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기에, “제대로 된 독서 행위를 통해 지식과 삶을 일치시키면서 가혹한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나간 고전 탐독가들-이덕무, 김득신, 세종대왕, 정약용, 홍길주, 홍대용, 이익, 이순신, 이이, 허균 등-에 관한 글”을 읽으면서 이들의 독서가 “나와 세계를 어떻게 바꾸고 현실에 맞서 갔는지를 듣는” 시간을 매주 보내고 있다.

은 종로문화재단 청운문학도서관의 주관으로 펼쳐졌다. 그동안 도서관은 수서와 도서대출 업무를 주로 하고, 독자는 도서관 공간을 활용해서 혼자 책을 읽고 자신의 업무를 보는 데 활용해왔다. 그런데 작년처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책을 빌릴 수 없고 공간을 쓸 수 없을 때, 도서관은 독자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은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온라인 공간을 활용했다. 도서관에서 좋은 책을 소개하고 사서는 독서를 촉진하는 새로운 역할을 맡았다.

도서관이 출간된 책으로 지역 주민과 호흡하는 곳이라면, 출판사는 좋은 책을 출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까지 카모마일북스는 출판과 출간 기념행사만 해왔는데, 『탐독가들』 연속 강좌로 처음으로 강의와 독서가 함께 하는 기회를 만들었다. 출판의 의미는 독자를 만날 때 완성된다. 그동안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이, 대부분 서점을 통해서 독자를 만나는 방식을 취해왔는데, 이번에 출판사와 15개 남짓의 동네책방이 출간 전부터 도서 예약과 강의 신청을 받아서 북클럽을 운영하는 방식을 취했다. 출판사에서 강의까지 준비하는 수고로움은 있었지만, 독자들과의 접점을 만들고 출판의 의미를 알리는 좋은 시도를 한 것으로 생각한다.

『열하일기』 같은 고전을 읽고 『탐독가들』처럼 독서하는데 머물지 않고 스스로의 사고로 오늘날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책 읽기가 필요하다. 리영희 선생님은 이점을 강조했다. “지난날의 독서 숭상은 지배자와 소수의 관료적 지식인(엘리트)을 위한 것이었다. 독서와 과거(科擧)의 관계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동·서양 모든 사회에 공통된 것이다. 즉 출세를 위한 목적으로 한 소수의 선택된 자의 행위였다.

지금의 독서는 다르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인(自由人)’을 목표로 하는 모두의 노력이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사람은 독서를 통해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유로운 결정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자기에게 필요한 상황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할 수 있다.” 또 “물질 현상에 대한 미신으로부터의 지적(과학적)자유인, 종교·윤리적 억압으로부터의 인간적 자유인, 정치·사회·경제적 예속으로부터의 사회적 자유인 등은 모두 독서를 통한 인간 능력의 해방의 결과였다.

그러나 자유인의 자격을 다 채우기 위해서는 그것들만으로는 아직도 부족하다. ‘지성’적 자유인을 위한 독서가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이제 인간의 ‘행복’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삶의 ‘내용’에 관해서다. 삶의 ‘질(質)’이다. 어느 때보다, 삶의 토대가 흔들리고 삶의 질이 추락하는 때를 맞아서 자기 스스로 현실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투명하게 관찰하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독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팬데믹의 사실(Fact) 확인을 넘어서, 그 속에 담긴 진실(Truth)에 다가가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것 역시, 책을 체계적으로 찾아서 읽고 강의를 듣고 북클럽을 통해서 심화시키는 과정이다. 2021년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북클럽일지 모른다.


[당신과 나를 이어줄 ㅊㅊㅊ]은 책방이음의 조진석 대표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책방이음은 시민단체 나와우리에서 비영리 공익 목적으로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2009년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문을 열었으며, 우리 사회를 밝게 만드는데 수익금을 써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