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경실련 2020년 11,12월호 – 우리들이야기(3)]

여러분은 페이커를 아시나요?

– 더 나은 프로게이머들의 삶을 위하여

 

이성윤 회원미디어국 간사

얼마 전, 2020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이 우리나라 팀인 담원게이밍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롤드컵이라고 불리는 이 대회의 결승을 지켜본 동시 접속자가 무려 380만 명에 달했고, 중국에서만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경기를 보았다고 합니다. 20년 전, PC방의 등장과 함께 사회적 문제로 취급받던 e스포츠의 위상은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며 비웃던 사람들도 이제 e스포츠라는 이름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프로게이머 등장, 그리고 e스포츠의 시작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출시, ADSL의 등장, PC방의 출현은 세상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이 게임의 인기는 전국적으로 퍼져나갔고, 방송에서 이 게임대회를 중계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면서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직업의 탄생을 알렸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게임들이 중계되었고, 시장은 점점 커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단순히 게임이 아닌 e스포츠라는 이름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성장했던 만큼 그 기반은 불안했고, 쉽게 흔들렸습니다. 또한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아직은 생소했고, 뜬구름 같은 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게임이 무슨 스포츠냐는 조롱은 언제나 댓글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당시 다른 게임에서 나타난 문제였던 현피, 아이템 거래 등의 사회적 문제와 동일하게 취급당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KBS <아침마당>에서는 당시 최고의 프로게이머였던 임요환을 불러 게임중독자 취급하는 무례한 질문을 남발해서 큰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이는 당시에 프로게이머라는 직업이 어떤 대우를 받고 있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위태로운 직업, 프로게이머
실제로 그 당시 프로게이머들의 생활은 참으로 어려웠다고 합니다. 제대로 된 계약도 없었고, 2군에 소속된 선수들은 연봉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임요환 같은 걸출한 스타가 등장하고, 수만의 관객을 동원하는 등 겉으로는 점점 화려해졌지만, 그 이면에는 짙은 어둠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프로게이머들의 나이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정도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막 태동한 e스포츠 시장은 그들을 보호할 아무런 준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선수들은 피해를 제대로 인식하기도 힘들었고, 선수협의회를 구성하기에도 그들은 아직 너무 어렸습니다. 게다가 선수의 수명은 짧았고, 미래는 불투명했습니다. 학업 대신 프로게이머의 길을 택한 선수들에게는 어쩌면 가혹한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렇게 보호받지 못했던 일부 프로게이머들의 선택은 승부 조작이었습니다. 당시 유명 프로게이머가 포함된 승부 조작 사건은 e스포츠에 큰 타격을 가져왔습니다. 젊은 선수들의 열정과 순수함을 지켜보던 팬들도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한 큰 책임은 이들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 협회와 구단에게도 있을 것입니다.
작년 한 프로게이머의 계약 문제가 큰 이슈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국회의원까지 개입하면서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20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선수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선수들을 보호하는 제도들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건이 터진 이후에 이루어진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 e스포츠와 프로게이머의 삶은 불안합니다.

여러분은 페이커를 아시나요?
지금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롤’이라는 게임과 ‘페이커’라는 아이디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입니다. 수십억 원에 달하는 연봉, 전 세계적인 팬덤을 보유한 게이머, e스포츠계의 마이클 조던 등 그를 수식하는 단어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얼마 전에는 유명 아이스크림의 모델로 등장하기도 했었죠. 국내의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를 보면서 프로게이머를 꿈꾸기도 하고, 해외에 있는 누군가는 한국 하면 페이커를 떠올리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페이커’는 이미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그는 20년의 역사를 다져온 한국 e스포츠의 정점이자, 상징이 되었습니다.
최근 MBC <라디오스타>나 방탄소년단의 <달려라 방탄>에 출연했던 페이커를 본다면 지난 20년간 프로게이머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e스포츠 시장이 성장했습니다. 페이커로 상징되는 지금 세대의 프로게이머들은 이전 세대의 고통과 실패를 발판삼아 이만큼 성장하고, 자리 잡았습니다. 페이커가 보여주는 위상은 지난 20년의 역사가 만들어낸 가장 빛나는 지점일 것입니다.

종주국의 이름으로
한국을 e스포츠의 종주국이라고 합니다. e스포츠라는 단어를 만들어내고, 그 기반을 만들어낸 곳이 한국입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활동하는 프로게이머들은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고 있지 못했습니다. 임요환, 홍진호, 페이커처럼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들이 e스포츠의 빛나는 한 면이라면, 그 눈부심에 가려져서 보지 못한 어둠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전 세계에서 당당히 e스포츠의 종주국이라고 말하려면 그 어둠을 걷어내고, 선수들의 건강한 현재와 미래를 보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e스포츠가 더욱 성장하고,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