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기(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교수, 생태학)

 

풍수지리는 오래전부터 땅의 형상과 주변 환경, 방향을 고려하여 대지의 특성을 읽어내는 일종의 지리학의 하나로 발전해 오고 있다. 중국에서는 남방풍수, 북방풍수로 구분되어 건조 지역의 북방과 양자강 등 대하천 주변의 남방 지역 풍수로 분파되어 대만, 베트남, 오키나와까지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또한 오래전부터 중국 도교의 영향으로 중국 풍수를 받았으나, 조선 땅 자체의 특성을 살린 자생풍수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뒤로 산을 등지고 앞으로 물을 내려다보는 지세’를 나타내는 배산임수(背山臨水), ‘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는 뜻’의 장풍득수(藏風得水) 등의 기본적인 풍수 개념은 중국이나 한국에서만 발전한 것은 아니다. 힌두교 지역인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도 매우 유사한 특성을 보이는 전통지리 개념이 있다. 특히 풍수의 핵심적인 요소인 물(水)의 활용과 관련된 사상은 발리의 힌두철학 속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210596" align="aligncenter" width="700"] 농경지 주변에 설치된 작은 탑들. 작은 신전의 역할을 한다. (2008년 11월 5일 필자 촬영)[/caption]

 

힌두 철학에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라는 개념이 중요한데, 행복의 근거는 신·인간·자연이 상호 조화로운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Tri Hita Karana’의 ‘Tri’는 3가지, 3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고, ‘Hita’는 행복(happy), 번영(prosperous), 선함(good)을 나타내며, 마지막으로 ‘Kanara’는 이유, 원인(cause)의 뜻이다.

우리나라는 풍수 지세와 향방, 음양에 따라서 도읍, 주거지, 묘지, 우물의 위치와 주변 토지 이용과의 관계 등을 통해 인문지리와 자연환경 관련된 혈(穴)이나 명당을 탐색하는데 사용했다면, 발리의 트리 히타 카라나는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세 가지 요소의 상호작용에 의하여 물과 땅의 조화와 지속가능성을 추구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원리는 각각 영적인 조화, 사회적 관용, 환경적 협력의 의미를 간직하고 있다. 이처럼 트리 히타 카라나에 의한 농경지의 선정과 위치, 농경 방식 등은 신과 자연의 축복이라 할 수 있는 수자원의 효율성을 높여서 발리의 농업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한 생태 정신의 문화적 장치 역할을 해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210603" align="aligncenter" width="700"] 발리의 농경체계인 수박(subak)의 계단식 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2018년 1월 6일 필자 촬영).[/caption]

 

발리의 농업 경관은 계단식 논이 특징인데, 수로와 둑의 관개시설 협동조합 체계를 갖춘 형태로서 이것을 수박(subak)이라고 부른다. 이 수박 농업체계 속에는 영혼과 인간, 그리고 자연 등 세 가지 세계가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고 표현한다. 이러한 세 가지 다른 세계가 균형 있게 발현되는 농업 방식인 수박에 의하여 발리 주민들은 단결하여 생업을 하고 있으며, 현대에까지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의 철학을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발리의 수박체계 속의 관개시설은 거의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으며, 농장 주변에 있는 수상 사원을 중심으로 유역 전체를 생태적으로 관리해 오고 있다. 쌀농사가 쉽지 않은 발리의 화산지질 토양이지만, 일찍 수리체계를 개발함으로서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이모작의 농업을 실현하였다.

현대 과학사회에서‘풍수’에 대한 다양한 반론이 제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풍수가 가지고 있는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움을 추구하는 철학적 배경을 통해 미래 지속가능성 이론에 이르기까지 확장되는 생태적 개념은 미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에서 오히려 그 의미를 인정받고 있다. 발리 문화에 함유된 ‘트리 히타 카라나’의 철학적 배경 속에도 인간과 자연의 조화, 제한된 섬 자원의 효율적 이용, 화산섬(일종의 신의 땅)의 한계 속에서 근검하고 협력적인 노동환경을 유지시킴으로서 발리섬 힌두교 공동체의 고유성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이 함축되어 있다. 또한 신과 자연, 인간의 세계가 함께 어우러져서 형성된 생물문화경관으로서 수박(subak)이라는 독특한 농업체계를 창조해 냈다.

 

[caption id="attachment_210602" align="aligncenter" width="700"] 인도네시아 발리 브라탄 호수에 위치한 울룬 다누 브라탄 사원(Pura Ulun Danu Bratan) (2008년 11월 3일 필자 촬영).[/caption]

 

풍수와 트리 히타 카라나 모든 세계가 소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물이다. 물이 통하는 곳에 숲이 있고, 계단식 논, 수로, 터널, 둑을 지나 마을과 평지 논이 펼쳐진다. 발리섬에는 모두 1,200여개 이상 물 관리 공동체가 조직되어 있다고 한다. 한 조직에 50~400명이 수원지로부터 물 공급을 받으며, 발리에는 이 수원지를 관리하는 사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울룬 다누 브라탄 사원(Pura Ulun Danu Bratan)이다. 이 사원은 시바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는 곳으로 브라탄 호수에 위치한다. 호수의 모든 물은 이 사원에 모이고, 관계시설을 통하여 작은 사원으로 다시 공급이 된다.

섬에서 물은 생명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요소이다. 사람이 섬에 입도하여 정주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청정한 물의 유무에 의하여 결정된다. 더욱이 발리와 같이 화산섬의 경우, 물이 부족한 상황이지만, 우기에 내린 물을 잘 담아서 활용할 수 있다면 수자원 확보에 큰 도움이 된다. 발리의 힌두철학인‘트리 히타 카라나’개념에서 성립된 독특한 농경 시스템인 수박(subak)을 보면서, 자연이라는 자원을 이용하여 살아온 인류의 생존 방식은 동서양을 떠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명확하게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동양에 풍수지리가 있다면, 인도네시아에는 ‘트리 히타 카라나’라는 철학이 있어서 자연과 대지의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