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생계를 위해 일식 레스토랑에서 웨이터 일을 한지도 어느새 6개월이 넘어섰다. 꽤 많은 손님들이 채식 메뉴나 글루텐 프리로 조리가 가능한지 물어온다. 다른 식당에 가도 베지테리언이나 비건을 뜻하는 ‘V’표시가 된 메뉴들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딱히 전문 식당이 아닌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매장에도 베지테리언 햄버거나 피자 메뉴가 준비되어있다. 한국에 있는 채식을 하는 주변인들로부터 채식 메뉴가 흔치 않아 곤란을 겪었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체 회식 혹은 외부 행사 진행 중 지급된 도시락이나 식단이 채식이 아니었는데 따로 뭔가를 요구하기에는 눈치가 보여 굶거나, 자비로 다른 음식을 먹었다는 내용이었다. 아마도 채식을 하는 사람들이 호주에 오면 이것저것 시도해볼만한 새로운 메뉴들이 많아 꽤 멋진 식도락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 호주 프렌차이즈의 베지테리언 메뉴들
사람들이 채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개인의 건강을 위해서, 환경을 위해서, 동물 복지를 위해서, 혹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어서.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의 주인공은 루마니아에서 온 Cosmin이다. 그가 몇 년 전 영국에 머물 때, 어느 날 눈을 뜨자 고기를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평소 육식에 대한 반감이 있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고기를 보니 무언가 역한 느낌이 들어 채식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 고기를 먹으려고 몇 번 시도 했지만 거부감이 들어 결국은 포기하고 채식주의자로 지내오고 있다. 자신도 갑자기 그냥 그렇게 된 것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반감은 없다고 Cosmin은 말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사람이 이렇게도 변하는 구나’ 하고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온 Hannah는 고등학생 때 공장제 축산에 대한 다큐를 보고 채식을 선택했다. 공장제 축산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반대라는 의식적인 측면 보다는 심적으로 동물이 죽는 것에 마음이 아픈 것이 이유가 되었다고 한다. 채식을 하는데 있어서 말레이시아와 호주에서 체감 되는 차이점이 있나 물어보자 자신은 항상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기에 차이를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집에서 다른 가족들이 채식을 하지 않는데 마찰은 없었냐는 질문에는 고기를 조리한 음식 냄새에 반감이 없고, 고기와 함께 조리한 야채도 먹는 편이라 크게 불편함은 없었다고 한다.
호주에서 태어난 모리셔스인 2세인 Nazaar는 건강의 문제로 채식을 선택하게 된 케이스이다. 채식을 하기 전까지 자주 아프고 피부에 반점이 자주 올라왔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이 닭고기를 먹으면 피부 반점이 올라오는 것 같아 닭고기를 한동안 먹지 않았더니 같은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체질적으로 채식이 맞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채식으로 전향하자 소화불량 등 평소에 만성으로 지니던 증상들이 사라지고, 몸도 가벼워지며 스트레스도 덜 받고, 집중력도 올라가는 것을 체감했다고 한다. 이후로 Nazaar는 지금까지 채식을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채식주의 까지는 아니더라도 육류 섭취를 좀 줄여보려고 생각하는데, 먹는 것을 좋아하고,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나로서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에 자꾸 손이 가는 것을 멈추기가 어렵다. 공장제 축산을 생각하면서 세 네 번에 한번은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를 선택하려고 노력한다. 잡식인 인간이 고기를 먹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거대화, 집적화된 고기 공장에서 소비되기 위해 길러지는 동물을 생각하면 지금 인간은 동물을 과하게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린피스를 비롯해서 몇몇 환경단체들은 건강 문제를 비롯해 산림 파괴, 동물 복지, 탄소 배출, 토양 및 물 오염을 이유로 채식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동물 보호 단체들의 캠페인으로 인해 동물 복지 문제에 대한 이슈는 꽤 널리 알려져 있다. 공장제 축산업의 경우 최소 투입 최대 산출이라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생물이 다루어진다. 그렇기에 가축이 태어나서 상품이 되는 과정 중에 동물 복지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같은 공간에서 더 많은 동물을 길러내고, 짧은 시간에 더 큰 고기를 얻기 위한 기준으로 유전자, 사육장, 먹이를 결정한다. 동물 복지와 건강한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방목형(Cage free) 농장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대세가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집적화된 축산업은 토양과 물을 소비하고, 사료로 쓰일 작물을 재배하기 위한 과정에서 탄소를 배출한다. 예를 들어 두부 120g을 생산하는데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0.47kgCO₂ eq.* 인데 반해 같은 양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5.365kgCO₂ eq. 가 배출된다.
* 온실가스 인벤토리란 온실가스 배출원과 배출량을 체계적으로 구성한 리스트를 뜻합니다. 단순히 온실가스 배출량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이 되므로 각 배출원 또한 명확히 파악이 되어야 합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산정의 대상이 되는 온실가스는 교토의정서 상의 6대 온실가스로, 직접 온실가스로 알려져 있는 CO2, CH4, N2O, HFCs, PFCs, SF6 입니다. 이 온실가스들은 각 온실가스 별로 배출량이 산정된 후 지구온난화 지수를 곱하여 CO2를 기준으로 환산됩니다. 주로 ton(kg) CO2 eq.로 표시됩니다. - 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홈페이지 |
온실가스 중 하나인 CH4는 메탄을 뜻하는데 이 메탄은 방귀의 성분에도 포함되어 있다. 2003년 뉴질랜드에서는 정부가 소나 양 등의 가축이 뀌는 방귀에 대해서 방귀세를 부과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농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에스토니아에서는 실제로 소 한 마리당 한화 약 14만원 정도의 방귀세를 부과하고 있다고 한다. 방귀에 세금을 부과하는 우스우면서도 결코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에서 축산업에서 생산되는 메탄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추동물(되새김동물)은 위가 4~5개 되는데 이들의 위에서 미생물들이 음식물을 분해할 때 메탄이 생성된다. 전 세계의 소와 양, 염소 등 모든 가축이 발생시키는 메탄가스는 전 세계 메탄가스 배출량의 약 37%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메탄가스는 동일 부피의 이산화탄소보다 열을 가두는 능력이 21배 높기 때문에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사실들을 미루어 생각하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지속가능한 지구를 꿈꾸는데 꽤 도움이 되는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메인 요리라고 하면 대부분 고기가 들어간 것이 많다. 그리고 회식과 같이 무언가를 함께 먹으면서 하는 사회적 활동이 잦기 때문에 채식을 접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사회적으로 채식에 대한 인식의 폭이 확장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당장 나 스스로도 입맛을 바꾸기 어려운 마당에 모두가 채식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채식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폭과 기회가 늘어나면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채식주의자들이 겪는 불평들을 줄이기 위해서든, 동물을 위해서든, 환경을 소모하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든 그것이 결국 사람을 위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육류소비를 줄이기 위해 반드시 채식‘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비틀즈의 멤버로 잘 알려진 폴 메카트니는 코펜하겐 2009년 기후변화 협약 전에 있었던 벨기에 토론회에서 ‘고기 없는 월요일(Meat Free Monday)’* 운동을 제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많은 이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는 산하 161개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일주일에 하루 채식 식단을 마련해서 이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다. 환경 보호, 동물 복지, 건강 등 뭔가 무거워 보이는 내용들이 줄줄이 엮여 있지만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 주 월요일 친구와 함께 맛있는 채식 식당을 찾아가보는 것은 어떨까?
* www.meatfreemonday.co.kr : ‘고기 없는 월요일’ 홈페이지에서는 채식에 관련한 소식뿐만 아니라 채식 레시피를 공유하는 공간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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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필자가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하며 바라본 일상에서의 환경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재욱 전 생태지평연구소 연구원
생태지평연구소 전 연구원이자 전 프리랜서 기타 강사.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할지 모르겠다며 무턱대고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온 33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