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재정추계의 의미와 과제
조영철 |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법률적 의미
국민연금법 제4조(국민연금의 재정계산 및 급여액의 조정)에 의하면 5년마다 국민연금 장기재정추계를 하고 제도발전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국민연금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도록 되어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재정계산은 2003년, 2008년, 2013년 3차례 있었다. 이번 4차 재정계산을 위해서 재정추계위원회, 제도발전위원회, 기금운용발전위원회 등 관련 전문가로 구성된 3개 위원회가 활동하였고, 재정계산 결과가 지난 8월 17일에 공청회를 통해 발표되었다.
국민연금법 제4조 제2항에 의하면 보건복지부장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 수지를 계산하고, 국민연금의 재정 전망과 연금보험료의 조정 및 국민연금기금의 운용 계획 등이 포함된 국민연금 운영 전반에 관한 계획을 수립하여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승인받은 계획을 국회에 제출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공시하여야 한다. 재정추계위원회, 제도발전위원회, 기금운용발전위원회가 이번 공청회에서 발표한 것은 참고자료일 뿐, 정부가 3개 위원회 제안을 반드시 수용해야 할 의무는 없다. 따라서 보건복지부는 공청회에서 발표한 위원회 재정계산을 참고하여 조만간에 국민연금의 장기재정 균형 유지가 가능한 국민연금 운용 전반에 관한 계획을 만들고 국무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하게 된다. 정부가 동 계획에 의해 보험료율과 급여 지급연령 조정 등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제출하는 경우엔 법률 개정 관련 국회의 논의도 시작될 수 있다.
4차 재정추계의 주요 가정과 방식
앞에서 보았듯이 정부가 3개 위원회의 제안을 반드시 수용할 필요는 없지만, 재정추계위원회의 장기 재정전망 결과는 지금까지 전례에 비춰 볼 때 그대로 수용되었다. 제도발전위원회나 기금운용발전위원회의 제안은 정부가 참고하여 선택적으로
수용하겠지만, 재정추계위원회 추계 결과가 특별한 문제점이나 오류가 발견되지 않는 한 정부는 추계위원의 전문성을 인정하여 추계 결과를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장기 인구전망과 장기 거시경제전망은 국민연금 장기 재정전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기초변수이다. 그동안 국민연금 1, 2, 3차 장기 재정추계를 할 때마다 통계청 장기인구전망 자료를 사용해왔고, 이번에도 2016년에 발표된 통계청의 장기 인구전망 중 중위 가정 자료를 기본 자료로 사용하였다. 통계청의 2011년 인구전망과 2016년 인구전망을 비교하면 <표 1-1>에서 보듯이 차이가 있다. 즉 통계청 2016년 인구전망은 출산율 하락과 기대수명 연장 상황을 반영하여 2011년 인구전망에 비해서 합계출산율 가정이 0.04~0.07명 정도 감소했고 기대수명이 최소 0.2명에서 최대 1.2명 정도 증가하였다. 그런데 통계청 인구전망에 비해 최근 출산율이 1.05로 더 낮게 나오고 있어 이를 반영하여 출산율 1.05를 가정한 시나리오에 의한 별도 전망을 추가하였다.
경제 변수들도 국민연금 장기 재정전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경제변수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전망자료를 기초로 총요소생산성, 금리, 임금, 물가, 경제활동참가율 전망에 대해 논의하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변수를 설정하였다. <표 1-2>에서 보듯이 국민연금 3차 재정추계에서 사용한 실질경제 성장률 등 경제변수들에 비해서 4차 재정계산에서 사용한 경제변수들이 좀 더 비관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최근 장기거시경제 전망 관련 기관들이 한국경제 장기잠재성장률을 대체로 기존에 했던 것들보다 하향 조정 전망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3차 재정계산 시에는 기금투자수익률을 회사채수익률 전망치의 1.1배를 국민연금 기금투자수익률로 가정하고 전망하였다. 반면 이번 4차 재정계산에서는 자산군별 수익률 전망 방법론을 사용하였다. 즉 재정계산 경제변수 중 기금투자수익률을
회사채수익률 기준 방식에서 자산군별 수익률 전망 방식으로 바꾼 것이 이번 재정계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표 1-2>에서 보듯이 3차 재정계산 전망에 비해서 4차 재정계산 전망의 실질금리가 하락하였다. 즉 2018~2088년 3차 재정계산 실질금리 평균값이 2.6%였는데, 4차에서는 1.3%로 절반 수준으로 하락했다. 이것은 3차 전망에 비해서 4차 전망
의 실질경제성장률 전망이 하락한 것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따라서 기금투자수익률 전망 방법을 3차 때까지 했던 회사채수익률 기준 방식을 사용했으면 재정수입 전망이 좀 더 악화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즉 4차 재정전망에서 자산군별 수익
률 전망 방식으로 전환한 것이 국민연금 재정수입 전망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4차 재정계산에서 기금투자수익률 전망 방식을 바꾼 것은 국민연금의 자산운용 구성이 채권 중심에서 점차 위험자산 비중이 증가하는 방향으
로 바뀌고 있는 추세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국민연금 자산운용이 과거에는 절대적으로 채권 비중이 높았기 때문에 회사채 수익률 기준으로 기금수익률 전망을 하는 방식이 타당했으나 최근 들어 위험자산 투자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향후에도 이런 추세는 지속·강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산군별 수익률 전망 방식으로 전환한 것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런데 향후 국민연금의 장기 자산운용 구성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4차 재정전망의 자산군별 수익률 전망에서는 최근에 결정된 중기 자산운용계획의 자산구성 비율이 지속된다고 가정하였다. 향후 국민연금 자산운용 방향이 위험자산 구성 비율을 높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측면에서 보면 자산군별 수익률 전망이 보수적으로 계산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4차 재정추계 전망에서 남녀 간 임금격차, 여성경력단절, 여성경제활동참가율 전망과 관련해서 상당히 보수적 가정으로 추계를 했다. 예를 들면 남녀 간 임금격차의 경우 현재 국민연금 직장 가입자의 남녀 간 임금 격차 비율이 향후에도 지속된다고
가정하였고, 여성경력단절과 여성경제활동참가율도 60~70년 뒤에도 현재의 유럽연합 수준을 밑도는 것으로 가정하는 등 보수적 가정 아래에서 재정추계를 하였다. 저출산에 의한 인구 감소로 노동력이 부족해지면 임금이 그만큼 상승할 가능성
이 높은데, 이에 대해서도 상당히 보수적 입장에서 경제전망을 했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재정추계 전망 결과와 의미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은 3차 때와 마찬가지로 향후 70년 기간으로 잡았고, 그에 따라 추계기간은 2018~2088년 동안이다. 추계는 기본적으로 현행 제도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상태를 전망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4차 재정계산은 3차 재정계산과 비교해서 수지적자와 기금적립금 소진 시점이 각각 2년, 3년 당겨졌다. 국민연금의 적립금은 2041년에 최대 규모로 증가하여 1,778조 원이 되고, 2042년부터 수지적자가 발생하여 2057년에 적립금이 소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3차 재정계산에 비해서 4차 재정계산의 최대적립금 규모가 783조 원 감소한 것은 경제성장률이 3차에 비해서 낮게 전망한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GDP 대비 적립금 규모 비율은 2034년 48.2%까지 증가한 후 감소하는 것으로 전망되어 3차 때의 GDP 대비 적립금 비율 최대치 49.4%와 큰 차이는 없다. 최근의 저출산 현상을 반영하여 출산율 1.05라는 별도 시나리오로 추계를 한 전망 결과도 수지적자와 적립금 소진시점이 동일하였다.
재정계산에 의한 국민연금 고갈 전망으로 국민연금에 대한 불안감과 불신이 퍼지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재정계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비롯한 것이다. 재정계산은 기존의 제도, 특히 기존의 보험료율과 그에 따른 재정수입 추이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을 전제로 추계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법 제4조는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균형 유지를 위한 종합운용계획을 마련하도록 책무를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2057년에 국민연금 적립금이 소진된다는 것은 향후 40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이 있을 텐데, 5년마다 재정계산
을 하고 국민연금 적립금이 소진되고 있는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8명의 대통령 중 어느 누구도 재정 안정화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바라만 본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향후 선출될 8명의 대통령이 모두 국민연금법 제4조의 규정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무책임한 대통령이 아닌 한, 이런 일은 절대로 발생할 수 없다. 따라서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적립금 고갈 전망은 향후 문제가 발생해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현 제도 그대로 방치하고 있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전망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국민연금 고갈, 국민연금 지급 불능, 국민연금 폐지 불가피 등으로 국민연금 가입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재정계산 원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적립금이 소진된 이후 급여 지출에 필요한 재원을 부과방식으로 마련하는 부과방식 비용률은 <표1-4>와 같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대비 국민연금 급여비 지출 비율을 의미하는데, 2060년 26.8%에서 2088년 28.8%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었다. 이것은 3차 재정계산 전망 시 부과방식 비용률 전망치 보다 각각 5.5% 포인트, 5.2% 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부과방식 비용률은 2070년 29.7% 수준까지 올라가 국민연금 가입자가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것으로 보이지만, GDP 대비 급여지출 비율은 2070년 8.9%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될 것이기 때문에 2070년 한국은 고령화 수준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유럽의 복지국가들의 고령화 수준은 2070년 한국보다 훨씬 낮은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GDP 대비 공적 연금지출 비율이 이미 8~9%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2070년 국민연금의 GDP 대비 급여지출 비율 8.9% 수준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정부가 일반재정을 통해서 일정 부분 국민연금 재정을 지원한다면 국민연금 적립금이 고갈된 이후 부과방식에 의한 작동이 불가능하다고 단언하기는 곤란하다.
4차 재정계산의 부과방식 비용률과 GDP 대비 급여지출 비율 모두 3차 전망치보다 상승했다. 그런데 3차 대비 4차 전망치의 상승 정도를 보면 부과방식 비용률이 GDP 대비 급여지출 비율보다 더 급속히 올라갔다. 2070년 기준으로 GDP 대비 급여지출 비율은 3차에 비해 1.16배 상승했는데, 부과방식 비용률은 3차에 비해서 1.3배 증가했다. 이것은 4차 재정계산의 GDP 대비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비율이 3차보다 하락했기 때문이다. 2070년 기준 GDP 대비 보험료 부과대상 소득 비율은 3차 때 33.8%였는데 4차에서는 30.0%로 3.8% 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표 1-2>에서 나타나듯이 4차 재정계산에서 가정한 실질임금 상승률이 3차에 비해서 하락했지만 4차 재정계산 실질 경제성장률이 3차 때보다 더 크게 하락했기 때문에 실질임금 상승률 하락이 주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4차 재정계산 시 소득상한선 도입의 영향으로 보기에도 차이가 상당히 큰 편이다.
국민연금 재정계산의 과제
재정추계위원회의 재정전망 결과가 나오면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 장기재정 균형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제안하도록 되어 있다. 3차 재정계산 제도발위원회는 장기 재정 안정화 방안에 대한 구체적 합의를 하지 못했는데, 이
번 제도발위원회도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가안과 나안 두 가지 안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4차 재정계산 제도발전위원회는 장기 재정목표에 대해서는 합의를 보는 중요한 성과를 냈다. 즉 재정추계 기간인 70년 이후 급여비 대비 1배의 적립금을 보유하는 재정목표를 설정하는 데 합의를 본 것이다. 그리고 재정목표 달성은 일회의
전면적 요율 조정 방식보다는 향후 70년 동안의 인구학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환경 변화를 반영하면서 단계적 연속 개혁 방식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안하고 있다.
제도발전위원회가 제안한 2088년 적립배율 1배의 재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방안을 재정추계위원회가 시나리오별로 전망했다. 2088년 적립배율 1배 달성을 위해서 보험료율을 2020년에 인상하면 16.02% 올리면 가능하
지만 2030년에는 17.95%를 올려야 하고, 2040년에는 20.93%를 올려야 적립배율 1배가 가능해지는 것으로 추계되었다. 즉 보험료율 인상 시기를 늦출수록 인상률도 더 올라가고 그만큼 미래세대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이다.
보험료율 인상 시기를 당길수록 미래세대 부담은 줄어들지만, 현 보험료율에서도 GDP 대비 적립금 규모가 2034년 48.2%까지 올라가는 상황에서 적립금 규모를 더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는 검토가 필요하다. 즉 지금도 국민연금 적립금의 급
속한 증가로 해외투자 비중을 늘리고 있는데,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 증가는 국민연금 저축과 국내 투자와의 연계성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을 의미하고 총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더욱이 지금처럼 내수 부족으로 고용 상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저축의 성격을 지니는 국민연금 보험료율까지 올리면 경제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보험료율 인상은 경제상황과 적립금 규모의 적정성, 세대 간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 국민연금 수지 적자가 2042년부터 발생하는 것으로 전망되었는데, 이때부터 국민연금이 급여 지급을 위해 적립자산을 매각해야 한다. 현 제도 유지 시 2057년에 적립금이 고갈되는 것으로 전망되므로 2042~2057년까지 16년이란 짧은 기간 동안 국민연금은 자산을 전부 매각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국내 자본시장은 금리 상승, 주가 하락 등 심각한 영향을 받게 되고 금융자산 가격 하락으로 국민연금은 대규모 자산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적립금이 고갈되면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이것은 적립금 소진 및 자산 매각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융시장의 혼란과 국민연금이 입게 될 자산 손실 문제를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70년 이후 적립배율 1배 재정목표를 설정하면 보험료율 인상 시기를 언제로 잡는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국민연금 수지적자 시기가 그만큼 뒤로 연장된다. 그리고 재정목표 설정은 5년마다 하는 재정계산 최종연도까지 국민연금 적립금을 고갈시
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재정계산 기간 동안 적립금을 고갈시키지 않고 현재와 같은 부분 적립방식으로 국민연금 장기재정을 운영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고갈과 관련한 가입자 불안을 줄이는 데 기여할 것이다. 또한 그동안 장기 재정목표 부재로 인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기금자산운용 계획의 방향성을 세우기 어려웠는데, 장기재정목표를 설정하면 국민연금 전략적 자산배분 등 자산운용의 장기적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적립배율 1배의 장기 재정목표 설정은 3차 재정계산과 비교하여 분명히 진일보한 것이다. 그러나 적립배율 1배 재정목표는 부분 적립방식을 유지하는 타협안으로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운영과 관련한 미래 불확실성을 근원적으로 해소하는 것은 아
니다. 재정계산이 기존의 국민연금법 틀 내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기존 국민연금법 규정을 넘어서는 제도 개선안을 합의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국민연금의 장기 재정 안정화와 제도개선을 담는 구체적인 종합운용계획은 정부와 국회의 논의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