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이 누군지 알아요?” 얼마 전 성당 주일학교 초등학생이 낸 퀴즈다. 나는 스무 살부터 집 근처 성당에서 13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답을 맞히려 끙끙대는 나를 올려다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을 흘리는 아이에게 역으로 퀴즈를 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숫자는?”, “십구만(190,000)이요” 나의 완패다. 아이는 답을 생각해보라며 뒤돌아 가버렸다.
‘희망다반사’는 희망제작소 연구원이 전하는 에세이입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시선이 담긴 글을 나누고, 일상에서 우리 시대 희망을 찾아봅니다. 뉴스레터, 김제선의 희망편지와 번갈아서 발송되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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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이 누군지 알아요?”

얼마 전 성당 주일학교 초등학생이 낸 퀴즈다. 나는 스무 살부터 집 근처 성당에서 13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답을 맞히려 끙끙대는 나를 올려다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웃음을 흘리는 아이에게 역으로 퀴즈를 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쉬운 숫자는?”, “십구만(190,000)이요” 나의 완패다. 아이는 답을 생각해보라며 뒤돌아 가버렸다.

긴 시간을 아이들과 만나왔기 때문일까? 가끔 사람들이 묻는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친해질 수 있냐고. 그럼 답한다. 아이들이 마음을 열어주면 친해질 수 있다고. 어떻게 하면 마음을 열어주냐는 질문이 이어진다. 우선, 아이들에게는 무엇보다 같이 놀아주는 사람이 최고다. 시간을 내서 함께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유치함과 더불어 5개 정도의 아재개그를 장착하면 이미 어린이들의 대통령이다. 또한 아이들과 만날 때 ‘성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의외로 어른보다 성숙한 마음을 지닌 어린이들이 많다. 괜히 어떤 이미지로 보여야겠다는 생각으로 다가가면 제대로 친해질 수 없다. 즉, 정신을 놔야 한다. 아이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어른이라는 권위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친해졌더라도 다시 멀어진다. 안 그럴 것 같지만, 아이들은 꽤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다. 가끔 과도하게 고집부리는 일도 있지만 이는 감정의 영역이라 비상식적인 모습이 발현되는 것일 뿐, 공감과 이해를 바탕으로 다가가면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다.

후후. 적고 보니 뭔가 아동심리를 전공한 사람 같다. ‘제법인데’라는 자뻑 증상이 올라온다. 실은 내가 아이들에게 돌봄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사회생활 6년 차, 어른들의 세계에만 머무르다 보니 과도한 진지함에 종종 나 자신이 딱딱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굳어가는 마음에 빛이 되어주는 것은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울타리 없는 관계를 맺고, 그들의 따뜻하고 맑은 표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장해제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더 ‘아이처럼’ 되려고 한다. ‘어른스럽게’라는 말은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고, 아이들에게서 내가 찾아야 할 내면의 모습을 발견한다. 기쁘면 배꼽이 빠져라 웃고, 놀 때는 근심걱정 다 내려놓은 채 미친 듯이 놀고, 일할 때는 열심히 업무에만 집중하는… 현재에 충실하며 순간을 깊이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닮고자 한다. 이를 위해 오늘도 아재개그(ㅋㅋ)를 열심히 연구한다.

그런데 도대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임금은 누구일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검소하게 살고 계신 프란치스코 교황님? 503호의 그분? 백성을 사랑했던 세종대왕? 거지 왕초? 벌거벗은 임금님? 여러 답을 준비해 그 녀석을 찾았다. 내 기세가 당당해 보였던 걸까? 아이는 다소 긴장한 것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 답을 꺼낼 때마다 승부의 축은 아이 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모두 틀리고 말았다. 답이 뭐냐는 질문에 아이는 “최저임금이요.”라고 말한다. 또다시 나의 완패.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한참을 웃었다.

– 글 : 박정호 | 커뮤니케이션센터 연구원 ·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