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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나 운동가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탈핵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변화, 발전해야

 

장재연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탈핵운동의 자성을 위한 비판

이번 신고리 공론화를 통해 소위 ‘숙의 민주주의’를 통한 시민 참여 확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탈핵’(읽는 사람 편의대로 ‘원전 축소’ 또는 ‘에너지 전환’이라고 읽어도 좋다)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크게 진전됐다.

시민 결정권 확대와 숙의 민주주의 효용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현 정권 최고 실세가 이번 공론화 결과를 두고 ‘위대한 국민들께 감사’ 운운하고 언론이 줄을 이어 공론화위원장을 인터뷰하며 칭송하고 있는 장면, 반면에 통곡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보면 이번 공론화 결과가 누구에게 이득이 됐고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봤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정권과 공론화를 주관한 사람들만 행복한 공론화가 과연 제대로 된 공론화인지 의문이고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다. 숙의 민주주의라는 이름의 이벤트를 통해 오히려 탈핵 운동에서의 시민 참여와 숙의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은 아닌지 비판적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시민참여단의 숙의는 진지했으나 결론은 시민참여단이 주관적으로 작성한 것이 아니다. 공론화위원회가 만든 몇 개의 설문 문항에 응답한 단순 비율을 갖고 공론화위원회가 자의적으로 평가, 해석한 것이다. 숙의 내용이나 토론 결과는 설문 문항이라는 고정된 틀을 거치면서 제한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다. 시민참여단의 구성, 설문 항목이 달라졌다면 시민참여단의 숙의 결과나 해석 또는 결론 역시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룬 신고리 공론화에 대한 평가와 비판은 이번에 참여한 시민참여단 또는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은 아니다. 공론화 여부와 의제를 일방적으로 결정한 정부, 그것에 순응하고 따른 공론화위원회에 의해 야기된 왜곡과 부실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탈핵 운동에 대한 자성이고 비판이다. 이번 공론화는 탈핵 운동 진영이 한 축을 담당했고, 의제나 규칙, 실제 운영 등에 대해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이다.

비판이나 비난을 하기는 쉬우나 실제 일을 하는 것은 어렵다. 따라서 유례가 없었던 공론화 과정을 단기간에 진행하느라 고생한 참여자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무리 치하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신고리 공론화에 대한 비판은 탈핵 운동의 한계와 과오를 평가하고 향후 전략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비판이다.

글의 성격상 긍정적 평가는 생략하고, 또한 중복을 피하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점 역시 가능한 거론하지 않으려고 한다.

[caption id="attachment_186082" align="aligncenter" width="640"]그림 1 ⓒ연합뉴스,민중의소리,한겨레 그림 1 ⓒ연합뉴스,민중의소리,한겨레[/caption]

 

여건 및 상황 평가

후쿠시마 사고와 경주 지진 이후 탈핵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비율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 지난 대선에서 대다수 후보들이 노후 원전 폐쇄나 원전 축소 입장에 선 것도 이런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고리 1호기 영구 폐쇄, 월성 1호기 재가동의 불법성 인정 등도 이런 국민 여론에 힘입은 것이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는 가장 최신 기술이 적용된 원전이며 더구나 공사가 상당히 진행됐기 때문에 공사 중단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사 중단에 동의하는 시민들의 비율이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공사 재개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또한 공론화에서 40%가 넘는 적지 않은 비율의 시민참여단이 공사 중단에 찬성했다. 탈핵 운동 입장에서 보면 조금만 더 시민들을 설득하면 원전의 신규 건설, 원전 확대 정책을 막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탈핵 주장이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았던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것이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원전 안전 신화에 대한 강고한 믿음은 이제는 무너졌다고 봐야 한다. 최근 극우 언론을 비롯한 일부 식자층에서 탈핵 운동에 대해 날을 세워 온갖 비방과 비난의 목소리를 집요하게 높이는 현상도 원전 산업계의 위기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 결과는 분명 탈핵 운동 진영의 참패다.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은 공론화가 끝나는 시점까지도 찬반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비슷했으나, 시민참여단에서는 4대 6으로 큰 차이가 났으니, 열심히 탈핵 논리를 설명할수록 오히려 설득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론화에 참여한 일부 환경 운동가들이 공론화 과정에서의 기울어진 운동장 탓을 하지만, 오히려 일반 국민들이야말로 보수 언론들과 한수원 노조, 국내외 원자력계 및 심지어 공대 학생들의 성명 등 기울어진 정보에만 집중적으로 노출된 것을 감안한다면 그런 변명은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공론화 결과에서 원전 축소 정책을 지지하는 비율이 확대 또는 유지보다 높았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뒤에 설명하겠지만, 여러 가지 측면에서 그것을 공론화 과정에서의 탈핵 운동의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

이번 공론화를 통해 확인된 것은 시민들은 탈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나, 탈핵을 현실화할 역량이 우리에게 부족했고 에너지 분야의 제반 여건이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우리의 역량이 부족했는지, 전략, 역량, 그리고 태도 등으로 나눠서 살펴보고 향후 탈핵 운동의 과제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전략 부재, 인식 부족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모험주의

탈핵 운동가들 입장에서는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으나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와 ‘탈핵 정책’은 전혀 다른 성격의 주제다. 탈핵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공사를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탈핵 정책을 지지하는 일반 시민들의 경우에는 상당수가 이런저런 이유로 이미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 공사는 그냥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만일 탈핵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비율이 60%라고 하더라도 그중 단지 6분의 1 (약 17%)만 공사 재개를 선택해도 5 대 5가 되고 그 이상이면 상황이 역전된다. 그만큼 공사 재개만을 결정하는 공론화는 탈핵 정책을 결정하는 공론화에 비해 탈핵 진영에 극히 불리하다.

실제로 이번 공론화 시민참여단 중에서 원전 유지 또는 확대를 지지하는 비율은 45%였는데 이들 중에서 88%라는 압도적 비율이 공사 재개에 찬성했다. 반면에 원전 축소를 지지하는 비율은 53.4%로 더 많았지만, 이들 중에서는 64%만이 공사 중단에 찬성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공사 재개가 더 많아져서 역전이 됐다.

[caption id="attachment_186083" align="aligncenter" width="640"]시민참여단 응답비율 시민참여단 응답비율[/caption]

탈핵 운동 진영이 시민 참여단을 대상으로 탈핵의 당위는 열심히 설명하고 주장했지만, 신고리 5,6호기 공사를 중단해야 하는 절박성을 논리적으로 설득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 원인은 어쩌면 운동가들이 두 주제의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다.

공론화를 시작할 때부터 '탈핵 정책'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의 차이에 의한 패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공론화 설계 협상 과정에서도 유의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를 발표했을 때 많은 탈핵 운동가들은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고 공론화에 임했다. 공론화의 결론이 공사 재개로 결정이 나면 탈핵 정책에 대한 판결로 확대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경고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번 공론화 대응에서 탈핵 진영은 근거 없는 낙관주의, 심각한 위험성을 간과한 모험주의에 빠져 있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caption id="attachment_184627" align="aligncenter" width="640"]합숙토론에 임하고 있는 시민참여단ⓒ연합뉴스 합숙토론에 임하고 있는 시민참여단ⓒ연합뉴스[/caption]

 

주객전도의 공론화 의제

문재인 대통령은 탈핵 정책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함께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탈핵 정책이 아니라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공론화에 붙였다. 신고리 5,6호기는 탈핵 정책에 종속되는 주제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것은 자기들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부수적인 것은 국민 여론을 묻는, 주객이 전도된 형국이다.

탈핵 정책은 수십 년이라는 기간 동안 추진되어야 하는 정책이어서 한 정권이 결정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탈핵은 원전 건설을 막는 운동만으로 달성될 수 없다. 에너지 소비량 증가를 막는 것, 신재생에너지의 확충 등은 필수적이다. 국가의 에너지 정책, 산업 구조, 재원 등의 큰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지금까지의 국가 에너지 정책이나 원전 정책을 정부나 일부 원전 종사자들이 독단적으로 정했던 방식을 지양해야 하는 것과 같은 논리로, 탈핵 정책 역시 국민들의 논의를 통해 결정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것이다. 사회적인 토론과 숙의 민주주의 과정을 거쳐서 단단한 국민적인 합의가 있어야 정권 교체에 따른 후퇴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혹시라도 보수 야당이나 언론, 그리고 원자력계에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대신 ‘탈핵 정책 공론화’를 주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탈핵 정책을 공론화하면 안 되는 근거는 될 수는 없다. 정당한 주장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상대와 반대 주장을 하는 것이 옳다는 사고는 과거 독재시대에는 몰라도 지금은 정답이 될 수 없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만일 탈핵 공론화를 했다면 탈핵 운동이 100% 승리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지면 관계상 논외로 하겠지만 그 근거는 얼마든지 댈 수 있다. 그랬다면 그 결과에 대해 모두 승복하지 않을 수 없고 지금처럼 보수 언론에서 탈핵 정책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5447" align="aligncenter" width="540"]원자력안전위원회 개혁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 원자력안전위원회 개혁을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caption]

탈핵 운동 진영 일부에서 문재인 정부가 탈핵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을 했으니 이것은 확보된 성과라고 생각하면서 공론화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었다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공론화를 통해서 확고한 국가 정책으로 확정하고 이에 대한 시비를 없애는 장점이 더 크다. 에너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만들어지면 노후 원전 조기 폐쇄, 신규 원전 중단 등은 저절로 합당한 조치가 되는 효과까지 있다.

사실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 정도는 정부가 판단해서 어느 쪽으로 집행해도 충분히 국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다. 불가피하게 공사를 계속해야 한다면, 노후 원전을 조기 폐쇄해서 실질적으로 탈핵 정책을 실현하겠다고 하면 될 일이다. 노후 원전 유지보다는 신규 원전 기술 개발과 적용에 관심이 높은 원자력계 역시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대통령이 설득하면 쉽게 될 일을 굳이 엄청난 비용을 소모하면서까지 공론화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신고리 5,6호기 공사 여부를 공론화에 붙인 것은 공약 파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고, 공론화위원들과 탈핵 진영은 그에 참여해서 정부에 큰 도움을 주는 자기희생을 한 모양새가 됐다. 특히 탈핵 진영은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듣지 못하면서 말이다.

일부에서의 공약이니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공약 파기에 대한 설명과 사과가 없는 것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공약이지만 사회적 합의를 거쳐 실행하겠다는 것에 대해서 비난하는 것은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 공약을 강행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납득하기 힘든 무리한 주장이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가 탈핵 운동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위치 이해 부족

신고리 5,6호기 건설 저지가 탈핵 운동에서 중요한 핵심 과제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 원전이 기존의 다른 노후 원전보다 훨씬 문제가 많아서는 아닐 것이다. 전체 원전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원전이 확대되는 결과, 지진 위험도가 가장 높은 지역에 원전 밀집도가 더 높아진다는 문제, 그리고 신규 건설로 인해 원전 완전 퇴출 지연 등을 생각할 수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6107" align="aligncenter" width="568"]대한민국 최고 지진 위험지대에 집중 건설된 원전 ⓒ환경운동연합 대한민국 최고 지진 위험지대에 집중 건설된 원전 ⓒ환경운동연합[/caption]

그렇다면 이런 문제는 이 지역의 기존 노후 원전 몇 개를 조기 폐쇄하는 것으로 상당 부분 상쇄시킬 수 있다. 이런 방안이 일부 탈핵 운동가들에게는 그 어떤 이유로든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일지 모르나,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그런 대안을 거부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이런 가정은 이미 헛된 것이지만 만일 ‘공사 중단’이 시민참여단에서 다수라 하더라도, 정부나 원자력계가 이 지역의 노후 원전 조기 폐쇄를 조건으로 내걸면 ‘공사 재개’가 다수 의견으로 뒤집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고, 일반 국민 여론 추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시민참여단 의견이 오차 범위 내의 백중세 결과였다면 아마도 정부는 이 지역 노후 원전 조기 폐쇄와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를 패키지로 결정하려고 했을 수 있다. 그러나 탈핵 진영의 힘이 부족해서 공론화에서 큰 격차가 나자 정부와 원전 산업계에서 그런 타협안을 내놓을 필요조차 없어졌다. 그것이 이번 공론화 패배의 대가이고, 그로 인해 지역주민들은 계속적인 일방적 희생 강요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됐다.

신고리 5,6호기 백지화는 ‘무조건 거부’ 방식으로 투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공론화라는 과정을 통해 공사 중지로 결론이 나기는 매우 어려운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참여 민주주의 확대 등의 또 다른 당위 때문에 탈핵 운동 진영의 불가피하게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해서 이 지역 노후 원전의 조기 폐쇄 등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는 공론화가 되도록 했어야 했고, 그것은 결코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는 아니었다.

탈핵 운동은 앞에서도 지적한 것과 같이 탈핵과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이라는 의제의 차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시민들의 높은 탈핵 지지 여론과 문재인 정부의 탈핵 의지를 근거로 공론화에서 당연히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넘쳤다. 때문에 잘못 선택된 주제의 불리함 때문에 공론화에서의 패배에 대한 대비는 전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거 없는 낙관주의와 모험주의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역량 부족, 잘못된 판단

다수결 결론 방식 공론화의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공론화는 일반 여론조사와 달리 학습, 토론 등의 숙의과정을 거치면서 참여자들이 생각과 판단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용성이 있다. 적절한 보완책이나 보상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지를 파악해서, 정책 결정에 따르는 반대나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 수도 있다.

두 가지 주장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절충안 또는 전제 조건을 도출해서 최대로 많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게 해야 의미가 있다. 공론화는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조정을 하는 과정이고, 따라서 결론도 다수결 찬반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승복할 수 있는 주관식 서술 방식으로 내야 한다.

처음에는 20% 정도만 동의했지만 공론화를 통해 충분한 설명과 토론이 있고 나서 동의 수준이 40%로 높아진다면, 또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보완책이나 보상 방안을 찾았다면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다수결 찬반 결정 방식에서는 이런 공론 과정에서 얻어진 지혜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번처럼 정부로부터 다수결 방식으로 그리고 가부간 결정을 강요받는 공론화는 공론화라고 하기 어렵다. 갈등 조정이 아니라 승부가 되는 것이고, 따라서 공론(公論)라기보다는 공투(公鬪)라고 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정부의 부탁으로 만들어진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의 숙의 과정에서 나오는 절충점이나 조건 등을 결론에 담을 생각은 하지 않고 찬반을 분명하게 가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공사 중단에 대한 찬성과 반대 둘 중의 하나를 강요하는 방식의 설문을 만들었고, 탈핵 진영은 그것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끌려갔다.

이번 공론화가 공약 강행이나 파기를 합리화하려는 목적이 아니고 갈등을 조정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목적이었다면 설문 항목을 공사 재개 찬성과 반대 둘 중 하나를 강요하는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건부 결정도 가능하도록 구성해야 하고, 공사 재개 찬성 측이나 반대 측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조치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의 조건들이 제시되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는 무턱대고 시민 참여단에게 최종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느냐 묻는 수준에 그쳤는데, 이 정도로 일반 국민들이나 당사자들의 수용을 얻으려고 생각했다면 지극히 순진한 발상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시민참여단 설문에 원전 정책에 대한 설문 항목이 하나 포함되어 있었고, 그 응답 결과가 원전 축소 응답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절충이 된 듯 공론화의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모습이 됐다. 이 점이 공론화에 대한 비판을 상당 부분 잠재우고 마치 공론화가 성공적인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실제 설문을 살펴보면 수십 개 설문 항목 중에서 원전 정책에 관해서는 원전 ‘축소’, ‘현상 유지’, ‘확대’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항목 단 한 개에 불과했다. 시기나 내용 등 구체성도 결여된 설문이었고, 그런 판단의 근거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기 때문에 지나가다 묻는 장식용 설문에 불과하다고 평가해도 반박할 여지가 없다. 정부나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축소도 이번 공론화의 중요한 결론이라고 주장해봐야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그 의미를 과소평가하거나 무시하면서 지속적으로 탈핵 정책에 시비를 걸게 만드는 근본 원인을 제공했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0" align="aligncenter" width="640"]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연합뉴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연합뉴스[/caption]

 

문제의 핵심을 무시한 공론화

이번 공론화가 시민참여단 숙의과정에 의해 결정된 것처럼 말하지만,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설문 문항에 대한 응답률 결과를 공론화위원회가 해석한 방식이었다. 따라서 설문의 문구나 내용의 공정성과 합리성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한수원이나 원자력계, 공공기관의 연구원 참여, 정부나 정치권의 태도 등에 대해 ‘기울어진 운동장 운운’ 논란은 이 문제에 비하면 그야말로 조족지혈에 불과한 것이다.

신고리 5,6호기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는 에너지의 안정 공급이 중요하다고 해서 특정 지역 주민의 일방적 희생을 요구하는 정의롭지 못한 강요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 그것을 보상할 방안은 무엇인지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 구성부터 최종 권고안 작성에 이르기까지 이에 대한 인식이 있었거나 고려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공론화위원회는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여부라는 좁은 결론에 집착해서 이런 문제를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민참여단 상대로 실시한 설문을 살펴보면 신고리 5,6호기의 가장 핵심적 문제점인 경주 지진 이후 급격히 높아진 지역 주민들의 불안감, 특정 지역 주민의 일방적 희생 강요에 대한 문제점, 그리고 원전 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노후 원전 조기 폐기 대안 등에 대한 항목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시민참여단이 올바른 판단을 하거나 공사 중단과 재개 사이의 절충점을 찾아내서 제안하는 것에 대한 고민과 숙의 등이 가능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거나 시정하지 못한 탈핵 진영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이번 공론화 결과가 지역 주민들에게 슬픔이고 재앙이었던 원인은 이처럼 신고리 5,6호기 문제의 핵심을 무시한 공론화 설계부터 시작된 것이다.

공론화 과정에서 공사 재개 찬성 비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최종적으로 상당한 수준으로 벌어짐으로써 이런 심각한 오류들이 드러나지 않은 것은 공론화위원회나 정부 입장에서는 매우 큰 행운이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엉터리 공론화는 다시는 있어서도 안 되고, 특히 힘없는 사람들은 이런 기만술에 두 번 다시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1" align="aligncenter" width="550"]경주지진 이후 높아진 시민들의 불안감 ⓒEBN 경주지진 이후 높아진 시민들의 불안감 ⓒEBN[/caption]

 

다자 공론화 사안을 양자 게임으로 전락시켰다

공론화 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을 국민대표성을 반영한 집단으로 구성했다. 그러나 앞에서도 지적한 대로 특정 지역에만 원전을 집중해서 건설함으로써 희생을 강요하는 정의의 문제, 그리고 후쿠시마 사건과 경주 지진 등으로 인해 높아진 지역주민의 불안감과 공포 등 역시 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 그런 점에서 국민대표성만을 고려한 시민참여단 구성 방식은 설득력이나 합리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공론화의 학술적 의미는 학자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어 의미 그대로 함께 논의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는 국민대표성이라는 명분으로 결론을 도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당사자들이 배제되거나 빠진 논의 구조로 진행됐다.

국가 에너지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탈핵 공론화라면 정부는 객관적인 위치에서 논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이 맞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문재인 정부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공약으로 채택한 이유와 막상 정권을 잡고 나서 보니 공약을 준수하기 어려운 이유를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설명해야 마땅하다.

진행하던 공사를 중단하려고 하면 무리가 따르고, 그에 대한 보상은 불가피하다. 공사에 참여한 기업과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과 보호 수준, 또한 지역 주민들의 경제적 피해나 요구 사항에 대한 수용이나 보상 등의 조건에 따라 결론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공사 중단을 할 경우에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보상안이나 대안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그것이 공사 재개를 주장하는 측에서 수용 가능한 지가 논의됐어야 한다.

신고리 5,6호기 문제는 지역의 문제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해당 주민들을 공론화의 주체에서 배제시켰다. 이런 것이 제대로 된 공론화일리가 없다. 피해 당사자를 배제하고 국가라는 이름으로 전체주의 방식으로 정책을 결정한다면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번 공론화는 정부, 지역 주민들도 참여하는 다자 논의 구조였어야 한다. 혹여 양자 게임의 승부라고 하더라도 공사 중단 측은 공약을 했던 정부여야 하고, 공사 계속 측은 한수원이나 원자력계가 되었어야 마땅하다. 정책 결정을 사회적 합의에 맡기겠다는 명분으로 재정적, 물적 토대가 가장 취약한 환경 단체에 책임을 떠넘기고 자기들은 완전히 빠진 것은 기계적 공정성을 핑계로 책임 회피를 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론화의 한 축을 자처하며 참여한 탈핵 운동 역시 자신들의 역량을 과대평가한 소영웅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자성적 평가가 필요하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2" align="aligncenter" width="500"]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한수원노조 ⓒNEWSIS 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반대하는 한수원노조 ⓒNEWSIS[/caption]

 

시작부터 지고 들어간 게임

이번 같은 다수결 결론 방식의 공론화는 옳지 않은 방법이지만 일단 어쩔 수없이 그런 방식으로 진행해야 한다면, 두 가지 조건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이다. 즉 구성하는 시민참여단이 정말 공정하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것과 그들에게 설명과 설득의 기회가 공정해야 하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외면적으로 모두 드러나는 것이어서 이번 공론화에서 큰 문제는 없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시민참여단 구성은 다른 모든 여론조사에서의 국민들의 공사 중단 찬반 비율과 현저히 다르게 구성된 사실이 공론화가 끝난 후에 확인됐다. 공론화위원회 주장은 자기들의 여론조사 결과대로 구성했다는 것인데, 이 여론조사의 결과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국민 여론과는 매우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한국 갤럽 여론 조사 결과는 8월 말에는 건설 재개가 42%, 중단이 38%였고 의견 유보가 20%였다. 9월 중순에는 반대로 건설 재개가 40%, 중단이 41%였다. 그러나 항상 오차 범위 내였고 다른 여론 조사기관들의 결과도 모두 같다. 그러나 공론화위원회 여론 조사 결과만 유독 건설 재개가 37%로 중단 28%에 비해 무려 9%나 높았고 유보 역시 36%로 다른 조사에 비해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공론화위원회는 이 비율대로 시민참여단을 구성했기 때문에, 탈핵 진영 입장에서는 출발부터 큰 차이로 진 절대 불리 상태에서 게임을 시작한 꼴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3" align="aligncenter" width="650"]신고리5.6호기 국민여론조사 신고리5.6호기 국민여론조사[/caption]

공론화 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시민참여단을 구성하기 위해 실시한 자기들의 여론조사 결과가 다른 모든 여론조사와 달리 유독 공사 재개 찬성 비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거나 수정하려는 노력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다른 모든 여론조사 결과는 국민 여론과 다른 것이고, 공론화위원회 자신들의 조사만이 제대로 국민 여론을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인데, 그 어떤 여론 조사 기관도 그들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로부터 많은 예산을 받아 다른 여론조사보다 숫자를 크게 늘렸기 때문에 자신들 결과만이 맞는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독선적인 주장에 불과하다.

공론화위원회 조사는 발신번호에 자신들을 표시한다던가, 금품 제공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다른 조사에 비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접촉 성공률과 통화 성공률을 기록했다. 원자력과 건설업과 관련된, 수십만 명 이상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중에서 적극 참여하려고 했거나 했을 가능성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공론화위원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처음부터 공사 재개 찬성 비율이 훨씬 높았던 사실을 공론화가 끝날 때까지 공개하지 않았다. 탈핵 운동 진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 대한 문제의식이나 대응이 전혀 없었다. 눈뜨고 코 베인 꼴이다.

이번에는 탈핵 운동 진영이 순진하게 속아 넘어갔지만, 다음부터 그 어떤 공론화를 할 경우에도 시작 당시의 여론 비율이 불리한 측은 역전 가능성을 확신하거나 다른 목적을 위한 희생을 각오하지 않는다면 이런 다수결 방식의 공론화에는 참여할 리가 없을 것이다.

 

숙의에 대한 이해 부족

숙의 민주주의의 장점으로 정보의 제공과 토론 등 학습을 통한 의견의 조율이나 변화 등을 꼽는다. 그러나 이번 공론화에서는 찬반 의견을 갖고 있었던 시민들은 숙의 과정에서 자기 의견을 바꾸는 경우는 사실 미미했다.

건설 중단 의견을 갖고 있던 130명 중에 재개 찬성으로 바꾼 숫자가 25명, 건설 재개 의견을 갖고 있었던 172명 중 중단으로 의견을 바꾼 숫자는 5.8%에 불과한 10명이었다. 애초에 공론화 위원회가 시민참여단 구성을 공사 재개 찬성자가 46명이나 많게 구성한 것과 비교하면, 숙의에 의한 변화는 무시할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단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었던 169명이 재개(93명, 55%)와 중단(76명, 45%)으로 최종 의견을 결정하는 변화가 있었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4" align="aligncenter" width="605"]숙의과정을 통한 변화 숙의과정을 통한 변화[/caption]

이번 공론화에서는 자기 입장이 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의 변화는 미미했고, 단지 유보층이 최종 의견을 결정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것조차 전적으로 공론화, 그리고 숙의의 효과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공론화위원회가 시민참여단에게 실시한 설문이 조건부는 허용하지 않는 찬반을 강요하는 형식이었다. 또한 공사 중단에 소요된 비용은 논외로 하더라도 공론화에만 무려 46억 원이 투입됐으니 시민참여단 1인당 약 1천만 원이 소요된 것인데, 공론화 시민참여단으로서 둘 중 하나의 결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라고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런 문제점도 이번 공론화의 원래 의미대로 갈등 조정 방안을 찾아 제시하고 상대 의견도 수용할 수 있는 조건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공사 재개 여부를 다수결로 결정해달라는 정부의 요청이 불러온 부작용이다.

사람들이 의견을 바꾸려면 대부분 그에 합당한 조건이나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 학습이나 설득으로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따라서 애초에 이번과 같은 공론화 방식에서는 처음 구성 비율과 합숙 기간 중에 의견 유보층이 어느 쪽 분위기로 다수 옮겨가는가 하는 것이 승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

탈핵 운동 진영은 이런 시민참여단에 대해 세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시민참여단 이 이미 9%나 불리하게 구성된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또한 결과적으로 보면 공론화 과정에서의 토론이나 정보 제공에 의해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인구 집단은 오히려 2, 30대 의견 유보 층이었는데, 탈핵 운동 진영은 이들을 타깃으로 고려하지 않았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공론화 결과도 노년층의 영향이 매우 크다. 그러나 워낙 탈핵 여론이 원전 확대 여론보다는 크게 높기 때문에, 최초 잘못된 시민참여단 구성 비율을 바로잡고 이들 젊은 연령층의 다수가 공사 중단에 찬성하게 만들었다면 오차 범위 이내로 접근할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공론화에서의 승부만 놓고 보면, 효과가 없는 집단을 타깃으로 다소 핀트가 맞지 않는 논리로 설득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5" align="aligncenter" width="605"]시민참여단 의견 추이(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 시민참여단 의견 추이(신고리5.6호기공론화위원회)[/caption]

상식적인 것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기 의견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노년층은 정치적인 성향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되면 강고한 보수화 성향으로의 쏠림을 보인다. 다수결 결정 방식의 공론화에서도 이들 노년층의 영향력이 막대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도 60대 이상 연령층의 절대적 영향력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의 차이는 다른 모든 연령층에서의 찬반 비율이 뒤집어져도 극복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공론화 위원회 최종 보고서는 불친절해서 모든 결과가 비율로만 나와 있고, 더구나 기본 정보로 제공해야 하는 최종 471인에 대해서도 성별, 연령별, 지역별 수치조차 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비율 자료들을 비교 이용해서 실제 숫자를 산출해 보니 20대는 건설 재개가 41명으로 중단 31명보다 10명 많았고, 30대는 건설 재개가 42명으로 중단 38명으로 4명 많았으며, 40대는 반대로 건설 재개 47명보다 중단이 57명으로 10명 많았다. 50대는 건설 재개가 64명으로 중단 42명보다 22명이나 많았고, 60대는 건설 재개가 85명으로 중단 25명보다 무려 60명이 많았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6" align="aligncenter" width="605"]시민참여단 연령별 결과. 설사 20대, 30대, 그리고 50대 의견이 정반대로 바뀌어도 60대 이상의 의견이 바뀌지 않으면 합계는 건설 재개가 여전히 15명 많다. 시민참여단 연령별 결과. 설사 20대, 30대, 그리고 50대 의견이 정반대로 바뀌어도 60대 이상의 의견이 바뀌지 않으면 합계는 건설 재개가 여전히 15명 많다.[/caption]

공론화 결론을 다수결로 하면, 특히 정치적인 것과 조금이라도 연결이 되는 주제일 경우 다른 모든 연령층의 의견과 상관없이 60대의 의견 분포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앞으로 다른 주제에 대해 공론화를 하려고 할 때 고려해 볼 사항이다.

 

에너지 분야 여건의 미숙

일반 시민들에게는 원전 안전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에너지 안정 공급은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탈핵 정책에 정서적으로 동의하더라도, 에너지 공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과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대한 실증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탈핵을 현실화할 수 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만일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서울시에서 지난 5년간 실행했던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이 실질적으로 서울시 에너지 소비량을 크게 줄인 것만 입증할 수 있었다면 이번 공론화 결과는 뒤집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원전 건설이 아니라 다른 방안으로 에너지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실증적인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전에 쓴 글(서울시 '원전하나줄이기' 사업 성과는 어디로 숨었나?)에서 밝혔듯이 서울시는 지난 5 년간 원전하나줄이기 사업을 통해 원전 2기에 해당하는 에너지 소비를 줄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시도별 에너지 소비량 통계를 보면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또한 우리나라가 신재생에너지 비율이 극도로 낮은 이유와 공사 재개 측의 부정적 논거들을 극복할 수 있는 납득할 수 있는 논리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었으면 그 역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현재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여러가지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업 초기이고, 원전이나 다른 발전소를 강행하는 식의 전력을 기울이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추진력이나 지원책이 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하튼 이번 공론화에서는 에너지 소비량 통제나 신재생에너지 확대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해 시민참여단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한 것 같다. 그것이 시민들은 탈핵을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원전 확대를 당장 중지하자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지 않은 이유라고 보인다.

따라서 향후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얼마나 높일 수 있는가, 에너지 수요를 얼마나 통제하고 줄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은 향후 탈핵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가 될 것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7" align="aligncenter" width="740"]서울시 에너지 사용량 연도별 변화. (출처:지역에너지통계연보,산업통상자원부) 서울시 에너지 사용량 연도별 변화. (출처:지역에너지통계연보,산업통상자원부)[/caption]

 

참여자가 아니라 경연자에 머문 공론화

적어도 이름을 ‘함께 논의’하는 의미의 공론화라고 붙였으면, 탈핵 운동 진영은 당연히 논의의 참여자로 공론화에 참여했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당연히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공론화를 꺼낸 정부도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개념이나 방법을 확정하고 있지 않았고, 모든 것은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공론화위원회는 상호 조율과 합의를 통한 합리적인 공론 방식 설계를 이해관계자와 소통 협의를 하면서 진행하려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탈핵 운동 진영은 시민참여단 구성 비율이 어떻게 되었는지, 설문 내용은 무엇인지, 설문 결과를 어떻게 해석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하지 못했고 관여하지도 못했다. 공론화위원회가 보고서에서 ‘공론 방식 설계를 소통하기 위해 구성했다’고 밝힌 소통협의회는 7차례에 걸친 회의에서 일정 협의, 자료집 목차와 내용 및 제작 등 주로 실무적인 내용만 의논이 됐을 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 등 형평성 시비도 이런 문제에 관한 논란이었던 것이 공론화 이후 명백해졌다.

외부에서는 탈핵 운동 진영이 공론화의 당사자로서 적극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실제 내용을 확인해 보면 시민참여단을 상대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하는 위치에만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소통협의에 참여한 공사 중단 측 인사들이 나태하거나 적극적이지 않아서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순진했거나, 공론화위원회를 전적으로 신뢰했거나, 아니면 공론화 자체가 파국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피해서일 수 있다.

그러나 나중에 정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는다던가, 자료 제작 등에서 목차 등에서 불공정하다고 공론화 참여 자체를 재검토하겠다고까지 했던 것을 생각하면, 정작 진짜 허용해서는 안될 불공정한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다면 설문 항목 등 핵심적인 문제는 관여하지 못하고 시민참여단 구성이나 내부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면서, 왜 계속 공론화위원회에 끌려갔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공론화에서 시민 결정권 확대와 숙의민주주의라는 의미가 너무 강조되면서, 탈핵 운동 자체가 소홀히 다뤄진 것 아닌가 판단된다. 매우 불리한 의제인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 의제에서는 패배 또는 양보하는 한이 있더라도 탈핵 정책에 대한 확고한 승리나 시민 지지를 얻어내거나, 아니면 다른 노후 원전 조기 폐쇄라는 대안을 확보했어야 하는 공론화였다. 그래야 탈핵 운동 진영에 의미가 있는 공론화가 될 수 있었고, 그럴 수 있었다고 믿는다.

공론화위원회가 발표문에서 원전을 축소하는 방향의 권고를 했다고 해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만 그것에 대한 동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동의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이번 공론화가 탈핵 정책에 대한 공론화를 한 것처럼 해석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시민참여단이 작성한 설문 항목이나 공론화 결과 보고서를 보면 상당한 무리라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단 한 개의 설문 항목에 불과하고, 시기도, 구체적 내용도, 근거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더구나 탈핵 정책에 대한 일반 여론의 지지율에 비해서도 낮은 53%에 불과했다.

결국 탈핵 운동 진영 입장에서는 공론화를 통해 추가적으로 얻은 것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숙의민주주의를 통한 시민 결정권 확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실체적인 내용과 상관없이 무사히 공론화가 끝났고, 이런 공론화를 사회적으로 확대하자는 여론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매우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싶다. 그래서 탈핵 운동 진영에 미친 타격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하는 경향까지 있다.

물론 탈핵, 환경의 가치 못지않게 시민참여 확대도 매우 중요한 가치다. 환경운동도 시민운동의 일부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전체 시민운동의 대의에 맞춰 그런 성과도 의미 있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 운동과 가치를 희생시키면서까지는 곤란한 것이다. 누구도 그런 강요를 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 이번 신고리 5,6호기 공론화는 이름만 숙의민주주의였지 실제로는 참여 주체, 참여 수준과 권한, 결론 도출 방법 등에서의 심각한 문제로 인해 진짜 숙의민주주의가 아니었으며, 따라서 탈핵 운동에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큰 악영향을 미친 것은 필연이었다고 판단한다. 처음 접하다시피 한 숙의민주주의라는 명분 앞에,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견지하지 못하고 공론화 전문가들에게 휩쓸려 간 측면도 없지 않다.

애초에 시민참여단 구성 방법, 시민참여단의 최종 의견을 확인하는 설문 구성이나 설문 내용에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고 모두 공론화위원회에게 권한을 넘기는 조건이었다면, 그것이 확인된 순간 당연히 공론화 참여를 중단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소한 것에서 불리함은 모두 양보하더라도 핵심은 양보할 수가 없는 것이며, 그것은 탈핵 운동 진영을 ‘참여자’가 아니라 ‘공연자’로 전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caption id="attachment_186098" align="aligncenter" width="640"]ⓒSBS방송화면 ⓒSBS방송화면[/caption]

 

태도의 문제

이번 공론화 과정에서 원자력 산업계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소위 죽기 살기로 대응했지만, 탈핵 운동 진영은 이에 맞서 역량을 총동원하기는커녕, 소수가 그 짐을 떠맡는 것을 자처했다고 할 수 있다.

공론화에 직접 참여한 당사자들은 막대한 중노동과 부담에 시달렸지만, 공론화 시민참여단에 제공할 자료 작성과 합숙토론에 집중하는 것이 운동의 전부가 되면서 다른 사람들은 참여하거나 도와줄 기회가 없었다. 더구나 900여 개가 모인 범국민기구를 만들고 의사결정구조를 별도로 가져가면서, 개별 단체들은 의견을 내거나 결정에 참여할 기회가 없이 단순 동원되는 대중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공론화만 있고 운동은 없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수고한 사람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아무리 위로하고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전 국민적인 관심 과제를 소수의 참여와 게임으로 끌고 갔고, 그래서 듣기에는 잔인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나 운동의 일개 구성원들이 자기가 운동 그 자체인 줄 착각하는 소영웅주의에 빠진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도 가능할 수 있다.

시민과 시민참여단을 설득해야 하는 시기에, 따로 자기들만의 만족에 그치는 행사를 하거나 내부 논쟁에 빠져서 일을 그르치지는 않았는지 자성할 필요도 있다. 결과적으로 조직적으로 모든 역량이 동원된 원자력 산업계에 비해 물적, 인적 역량과 전략과 전술 등 모든 부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당사자인 정부가 기계적 중립을 핑계로 빠지고, 환경단체에 모든 부담을 떠넘기면서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환경과 탈핵을 지지하는 시민들 입장에서는 탈핵과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관심이 참여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끝났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향후 방향

탈핵운동은 이번 공론화를 통해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목격했다. 탈핵 운동 진영의 많은 실수와 허점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다수가 탈핵 정책을 지지했고,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대해서도 40% 이상의 지지가 있었다. 탈핵 운동이 본격적으로 성숙 발전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앞으로 엄청난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시민들은 에너지 공급 불안 역시 염려하고, 선언적 당위나 구호가 아닌 현실적인 대안이나 확신을 원했음에도 불구하고 확신을 주지 못했다. 탈핵 운동을 탄압 억압했던 역대 정부와 달리 현 정부가 최소한 중립은 지키고 시민참여단에 대해 설득의 기회를 동등하게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공론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일반 국민 여론보다 더 큰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은 불길한 징조다.

탈핵이 불가피한 상황, 즉 에너지 소비량 저감, 신재생에너지 증대 등을 현실화하는 것이 탈핵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길이라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탈핵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정부의 5년 집권 기간 동안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얼마나 높이고 에너지 수요를 얼마나 줄이는가 하는 것은 향후 대한민국 탈핵 정책의 성공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따라서 탈핵 운동은 지금까지의 원전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 고취에만 그치지 말고, 에너지 영역의 운동 역시 중요한 과제로 설정해야 한다. 또한 국가 정책이란 명목으로 특정 지역 주민의 생존권을 무소불위로 훼손하는 전체주의적인 에너지 정책이나 관련 법률을 개정하고 원자력 안전과 감시의 완전한 독립 등을 위한 노력도 필수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공론화가 시작되기 전에 썼던 글로 대신하고 상세한 서술은 생략하고자 한다.

탈핵운동은 도약을 위한 재출발과 하락의 길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탈핵운동이 하기 나름이다. 운동을 위한 운동, 단체나 운동가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탈핵을 위한 시민운동으로 변화, 발전해야 한다.

 

공론화 보고서 약평

공론화위원회 보고서에 대한 평가는 사실 할 것이 너무 많아서 지면 관계상 훗날로 미루고 이번 글에서는 일단 생략한다. 다만 가장 기본적인 것만 지적하고자 한다.

공론화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을 대상으로 많은 설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중 권고안 작성에 사용된 설문은 몇 개에 불과하다. 신고리 5,6호기를 건설 재개 또는 중단해야 하는 이유, 양측이 제시한 각종 주장에 대한 동의 수준, 정보 제공자에 대한 신뢰도 등 매우 중요한 결과조차 밝히지 않고 있다.

또한 이런 조사에서 기본적으로 밝혀야 할 정보인 시민참여단의 인구사회학적 통계 역시 나이와 성별 이외에는 조사한 결과를 전혀 밝히지 않고 있다. 결과도 공개하지 않고, 결론 도출에도 활용하지 않을 수많은 설문은 왜 했고, 왜 결과는 밝히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공론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최소한 모든 설문 항목에 대한 시민참여단의 응답비율을 빠른 시일 내에 공개하기를 바라며, 또한 관련 학자들의 연구를 위해서 통계 분석이 가능한 데이터를 만들어 공개하는 것은 막대한 세금을 투입한 조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조치로 보인다.

글을 시작하며 밝혔듯이 이 글은 함께 감수해야 할 자성을 위한 비판의 글이어서, 칭찬할 부분이나 긍정적 부분은 생략했다. 공론화 과정에서 수고한 모든 분들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