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사고였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달라졌다.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 이제 두 발로 세상에 나설 수 없다는 끔찍한 현실. 차갑고 낯선 휠체어에 평생 의지해야하는 인생. 20대 중반, 꿈 많던 청년 박경석 씨는 장애인이 되었다. 세상은 지옥이었다. 숱하게 자살을 시도했다. 의지대로 장애인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죽음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5년 만에 세상으로 나섰다. 여전히 낯선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이번 뉴스포차 손님은 박경석 장애인차별연대 대표다. 흰머리와 흰 턱수염이 트레이드 마크. 휠체어를 타고 어렵사리 (뉴스타파가 세들어 살고 있는 건물은 오래된 건물이라 장애인을 배려한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 포차에 들른 박 대표는 술 좋아하고, 노래 좋아하고, 랩도 좋아하는 유쾌한 어른이었다. 하지만 박 대표가 들려준 이야기들은 세상의 아픈 구석에서 벌어진 슬프고도 긴 싸움에 관한 것이었다.
노들장애인 야학의 교장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 공동대표로 그는 장애인 권리를 위해 세상과 싸웠다. 서울역 지하철 선로에 드러누워 장애인 이동권을 외쳤고, 한강대교를 맨 다리로 기어가며 활동보조인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했다. 삭발도 했고, 단식도 했다. 천막도 치지 못한 농성장에서 비닐 한장만 덮고 숱한 밤을 보냈다. 과격한 투쟁 방식에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해야만 겨우 기사 한 줄 나가는 현실, 투쟁 방식은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겨우겨우 생겼고, 활동보조인서비스가 겨우겨우 전국화가 됐다. 하지만 장애인들의 세상은 너무 느리게 바뀌었다. 한 장애인은 집에 불이 났지만 현관까지 불과 5m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불타죽었다. 자식을 장애인이란 이유로 때려 숨지게 한 부모는 선처를 받았다. 엄마를 기다리며 저녁밥을 짓다 화재로 목숨을 잃은 장애아들, 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맞아 죽어간 장애인들, 고통 속에 끝내 자살을 택한 장애인들. 그 죽음들이 광화문 농성장 18개 영정이 되었다.
어차피 깨어진 꿈. 스스로를 ‘어깨꿈’이라 부르는 박 대표는 이제 다시 꿈을 꾼다. 1842일 만에 광화문역에 세워졌던 농성장을 접었던 그날, 어쩌면 세상이 조금은 바뀔지 모른다는 꿈을 떠올렸다. 처음으로 복지부장관이 농성장을 찾아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폐지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지금은 협의체를 구성해 실질적인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어차피 깨어진 꿈’의 자리에, 그가 그리고 있는 또 다른 꿈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