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벗 소식] 온두라스에서 억류 중인 구스타보가 보내온 편지

• 베르타 카세레스가 괴한의 총에 맞아 숨진 지난 3일,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지구의벗 멕시코 활동가 구스타보 또한 총상을 입었다. 온두라스 정부는 구스타보에게 30일 출국 금지령을 내렸다. 현재 그는 본국인 멕시코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온두라스에 억류 중인 상황이다.
그리고 지난 16일, 그에게서 한 통의 편지가 왔다.
구스타보가 온두라스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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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벗 멕시코 활동가 구스타보 카스트로 소토. ©Friends of the Earth International[/caption]
온두라스 사람들에게
여러분께서 제가 쓰는 이 글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많은 희망을 품고 온두라스에 왔습니다. 이곳에 몇 번 오지 않았던 저를 베르타가 초청해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사랑하는 친구, 베르타와 그녀의 가족.
제가 겪은 모든 일들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으며, 저의 사랑하는 동료(베르타)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을 운명으로 생각합니다.
총격현장에서 입은 부상으로 여전히 고통스럽지만, 다행히 회복 중에 있습니다. 제가 입은 부상보다 저를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우리 중 누구도 겪지 않아야 할 이런 일을 친애하는 온두라스 사람들이 겪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차별 없이 정의로운 모두를 위한 곳, 모두의 존엄한 삶을 위해 싸워 온 숭고하고 용감한 이들을 항상 존경해왔습니다. 그것은 베르타의 삶 그 자체였습니다.
온두라스 사람들이 멕시코를 사랑하는 것 것처럼, 저도 이 아름다운 나라, 온두라스의 자연과 멋진 풍경, 카트라초스(온두라스의 영웅)를 자랑스러워하는 온두라스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살인과 벌레처럼 우리를 좀먹는 것들이 우리의 희망을 가리고, 아름다운 땅을 더럽히게 놔둘 수 없습니다.
멕시코에서, 우연히 온두라스에서 온 이민자들을 만납니다. 그들의 용기를 알면 그들에게 다가가 도움을 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조금이나마 나은 삶과 희망을 찾아 떠나며 버려야 했던 자신의 모든 것, 그곳까지 오면서 겪었을, 그 고통을 알기에. 그리고 제 자신과 그들에게 말합니다. 가지 말라고, 돌아오라고, 힘겨운 여정이라고, 우리의 사람들과 땅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고. 그리고 저는 베르타가 저에게 항상 했던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합니다. “Cheke!”(All right!)
우리의 땅은 너그럽고, 우리에게는 같은 피가 흐릅니다. 같은 메소아메리카(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북서부를 포함한 공통적인 문화를 가진 아메리카의 구역)인 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항상 하나로 묶어주며 베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보다 존엄하고 나은 삶을 위해 함께 싸우도록 합니다.
제 가족과 친구들과의 재회를 기다리는 동안, 정말 많은 온두라스 분들이 저에게 애정과 연대를 보내주었습니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에게 베르타가 무척 소중한 존재였던 것처럼 그녀는 저에게도 큰 의미였습니다. 베르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더 존엄하고 정의로운, 보다 나은 온두라스를 만들기 위해 싸워온 훌륭한 여성이었습니다. 그녀의 영혼은 온두라스 사람들 안에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을 준 그녀의 정신을 심었습니다.
저는 온두라스정부에서 요구하는 10번이 넘는 모든 법적 절차에 응하고 있으며, 정의를 위해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정부관계자는 저에게 수차례 제가 이곳을 떠나도 된다고 말했으며, 저를 헬리콥터로 라에스페란사(La Esperanza, 베르타와 구스타보가 피습당한 도시)에서 테구시갈파(온두라스의 수도)로 이송시켰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저에게 새로운 법적 절차를 위해 여기에 머물 것을 요청했고 저는 이번에도 늘 그랬던 것처럼 알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까지 저는 제 힘이 닿는 한 모든 것을 해왔습니다. 저에겐 제 삶과 가족이 있습니다. 멕시코에 돌아가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입니다. 그것이 멕시코와 온두라스 우리 두 나라가 상호형사사법공조조약을 맺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멕시코에서도 베르타와 그녀의 가족, 온두라스 원주민 위원회(COPINH)를 포함한 온두라스 사람들에 대한 저의 역사적 책임을 이어갈 것입니다. 평생 제 몸에 남을 상처들은 제가 이 약속을 결코 잊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제게 마음의 문을 열어준 온두라스 원주민 위원회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아름다운 사람들로 자신의 선조이자, 이 아름다운 땅의 주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과 터전을 보존하기 위해 끈질기게 투쟁하는 정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의 자연에 대한 존중과 온두라스를 향한 사랑은 감탄스럽기까지 합니다. 대단히 존경하고 또,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전 세계가 아는 온두라스의 경의이자 희망입니다. 여러분은 렘삐라(Lempira스페인 정복군에 맞서 싸웠던 온두라스의 영웅)와 선조들, 온두라스 사람들의 정신이 머물고 있는 씨앗이기에 더욱 강하게 자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온두라스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모범이 되었으며,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은 보다 나은 나라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사회, 농민, 토착민, 가리푸나(Garifuna, 중미 국가의 카리브해 연안에 거주하는 민족집단) 단체들에게 소중한 모범입니다. 여러분의 연대에 감사드립니다.
또한, 멕시코 대사와 영사의 귀중한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 맞서 저를 두 팔 벌려 보호해주었습니다. 온두라스 사람들과 전 세계 시민사회가 보여준 베르타를 위한 연대, 따뜻한 염려의 표현들. 제가 결코 보답할 길 없는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수천 장의 편지와 서명, 메시지. 이 모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정의는 곧 도래할 것입니다.
2016년 3월 15일 온두라스 테구시갈파에서
구스타보 카스트로 소토(지구의 벗 멕시코 디렉터)
(번역: 국제연대팀 김혜린 활동가)
원문 바로가기:http://www.foei.org/news/letter-gustavo-people-honduras 서명바로가기: http://www.foei.org/?page=CiviCRM&q=civicrm/petition/sign&sid=12&reset=1


![[토론회 썸네일]한강, 복원과 개발의 기로에 서다](http://kfem.or.kr/wp-content/uploads/2017/06/토론회-썸네일한강-복원과-개발의-기로에-서다.jpg)

























한강의 흐름을 막고 선 작은 댐, 신곡수중보. ⓒ박평수[/caption]
얼마 전에는 상괭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활동가를 만났습니다. 상괭이는 한강에서 볼 수 있었다는 토종 돌고래의 이름입니다. 일반 돌고래와는 달리 등 지느러미가 없고, 입이 웃는 상이라 얼굴에서 감정이 느껴져요. 가까운 바다에 주로 살지만, 썰물 때 바닷물이 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그 물살을 따라 상괭이도 강으로 들어오곤 합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한강에서 상괭이가 죽은 채로 발견된 적이 있습니다. 88년에 댐이 생기고 나서는 한강에서 상괭이를 봤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은 채로 모습을 드러낸 거예요. 이유 중 하나로 썰물 때 물에 잠긴 댐을 넘어서 강으로 왔다가 밀물이 되어 다시 드러난 댐을 넘지 못해 한강에서 표류하다 죽은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저는 여기까지만 알고 더 이야기해줄 수 있는 상괭이 프로젝트 담당자를 만났습니다. ‘엇지’라는 이름으로 환경 운동을 하시는 활동가예요.
신곡보 바깥의 습지에서 ‘점박이물범’ 발견 기사. 인터넷 뉴스 캡쳐 ⓒ쿠키뉴스[/caption]
1961년의 한강. 보가 설치되기 전 한강에는 좋은 모래밭이 많고 물이 깨끗해 시민들이 강수욕을 즐겼다. ⓒ조선일보[/caption]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caption]

한강 하류 전류리 포구 입구ⓒ김준성[/caption]
한강 하류의 신곡보를 기점으로 위에는 고양시 어촌이 아래에는 김포시 어촌이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김포시 어민 한 분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백성득 님은 김포시 어촌에서 계장을 지냈던 어부입니다. 한강에서 고기 잡는 걸 보고 자라 여태까지 어업을 유지하고 있으니 그 시간만 이제 50년이 되었습니다. 50년을 강에서 보낸 사람에게 제 첫 질문이 얼마나 우습게 느껴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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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전류리에서 잡힌 바다물고기 숭어ⓒ김준성[/caption]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직접 판매하는 어민들ⓒ김준성[/caption]
한강 어업의 어려움을 묻는 말에 백성득 님은 부족한 수량을 꼽습니다. 서해가 몰고 온 펄을 씻을 강물이 흘러야 하는데, 신곡보가 상류에서 흘러오는 물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폭파되기 전의 밤섬ⓒ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밤섬은 본래 사람이 사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한강을 오가는 목조선을 만들고 수리하는 뛰어난 기술자들이 있었습니다. 한강에 떠다녔던 배의 95%는 거진 밤섬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합니다. 밤섬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밤섬에서 태어나 폭파되기 전까지 사셨던 유덕문 밤섬보존회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얼어 붙은 한강을 걸어서 건너는 사람들ⓒ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밤섬 실향민들이 이주했던 와우산 자락ⓒ 영등포구 포토소셜역사관[/caption]
한편, 폭파되어 수면 아래로 잠겼던 밤섬은 1980년대 중반부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회복했습니다. 지금은 원래 밤섬보다 더 커졌습니다. 강이 옮기는 모래와 펄이 밤섬에 쌓이고 떠내려온 씨앗들이 스스로 싹을 틔워 초목을 이뤘습니다. 되살아난 밤섬은 새들의 쉼터가 되었고 99년에는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2012년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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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적으로 되살아난 밤섬 ⓒ 뉴스토마토[/caption]
밤섬보존회 회장님과 밤섬부군당 사당ⓒ김준성[/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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