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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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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돈보다 어업

익명 (미확인) | 금, 2016/02/05- 23:00

tvN 예능프로 ‘꽃보다 청춘’의 ‘포스톤즈’는 결국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정상훈·조정석·정우·강하늘, 네 명의 연예인들이 추위를 뚫고 간 그곳은 아이슬란드. 영국의 북쪽,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북서쪽에 있는 북대서양의 섬나라다. 오로라는 물론 눈물 흘릴 만큼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이 나라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해 일어난 거대한 변화야말로 오로라만큼이나 눈물을 자아낼 법하다.

달콤한 금융자본의 유혹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그 거대한 변화를 겪은 아이슬란드 어부 발리 호스쿨드손의 이야기를 전한다. 어부인 그의 책장에는 리스크 관리와 국제금융 등 금융 관련 서적이 여전히 꽂혀 있다. 어부와 금융전문가라는, 두 개의 아주 다른 직업을 몇 년 사이에 옮겨가게 된 그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호스쿨드손은 많은 건강한 아이슬란드 청년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2000년대 중반 갑자기 고기잡이를 그만두고 투자은행에 취직해 투자자문을 하게 됐다. 어부가 하루아침에 금융전문가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와 있다.

그가 직업을 바꾼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아이슬란드는 국가 시스템이 두 번이나 크게 변화했다. 어업이 핵심 산업이던 인구 32만 명의 소국은 하루아침에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발돋움하며 전세계 큰손들의 놀이터가 됐다. 몇 년 만에 주요 은행 모두가 파산하고 자산 가치가 폭락하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다시 어업국가로 돌아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오랫동안 아이슬란드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고기잡이였다. 그리고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게 사는 나라 중 하나였다. 유엔이 세계 각국의 삶의 질을 조사해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ment Index)에서는 늘 세계 5위 안에 들던 나라였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시스템이 바뀌면서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은 송두리째 변화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무렵의 일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 등이 아이슬란드 은행들에 접근했다. 레버리지 차입, 인수·합병, 파생상품, 외환거래 등 그때까지는 낯설기만 하던 다양한 금융기법을 소개한 이 투자은행가들은 오랜 기간 섬에 갇혀 지내던 아이슬란드인들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보였다. 아이슬란드인들이 받아들인 메시지는 단순했다. 고기잡이처럼 힘들이지 않고도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큰 깨달음 이후, 아이슬란드는 외국 돈을 끌어들여 쉽게 돈을 벌어보기로 결정했다. 해외자본의 투자 관련 규제를 풀고 금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투자하기는 쉽고 이자는 높으니 해외투자자에게는 이렇게 매력적일 수가 없었다. 이미 국제적으로 유동성이 넘쳐 갈 곳을 찾아헤매던 시기였다. 국제 자금이 아이슬란드로 몰려들기 시작한다.

2003년 아이슬란드 3대 은행의 자산은 합쳐야 수십억달러(수조원)에 불과했다. 그런데 3년 뒤 이 3대 은행의 자산을 합치니 1400억달러(약 154조원)가 됐다. 전체 자금의 3분의 2를 외국에서 가져왔다. 영국에서는 아이슬란드에 투자하는 ‘아이스 세이브’라는 금융상품이 대히트를 기록한다. 얼음나라에 돈이 마구 쏟아져 들어왔다.

어부에서 투자자로

돈이 풀리자 자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은행들은 넘쳐나는 현금을 국민에게 뿌렸다. 고기잡이만 알던 이들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아주 쉽게 대출을 해줬다. 2003년부터 4년 동안 아이슬란드 주식시장은 9배 성장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의 부동산 가격은 3배가 됐다. 아이슬란드 평균 가정의 자산도 3년 만에 3배가 됐다. 이 기간에 금융산업 활성화로 한 해 7%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어부들은 이제 투자자로 변신해갔다. 어부들이 통화 차익거래를 알게 되고 그걸로 많은 돈을 벌었다. 은행에서 돈을 빌려 고급 주택과 주식을 사기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데 고기잡이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아이슬란드에서 발달한 학문 중 하나는 어업경제학이었는데, 아이슬란드 젊은이들은 더 이상 어업경제학을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 모두 금융을 배우겠다고 나섰다. 공대에서도 수학과에서도 금융공학을 개설했다. 청년들은 어업보다는 옵션가격 결정 모델에 심취했다. 아이슬란드 3대 은행에 취업해서, 세계적 투자은행가로 성장하겠다는 꿈을 키운다.

호스쿨드손이 어부 일을 그만두고 금융업에 뛰어든 것은 그 무렵이었다. 위험관리와 국제금융 책을 들여다보며 투자자문을 시작했다. 그는 회고한다. “한 농부가 찾아와 20년이나 된 농기계를 담보로 잡아 6만5천유로를 빌려달라고 했어요. 직장 상사에게 이야기했더니 그냥 주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 2배를 원하면 2배를 줘도 된다고요.” 그는 당시를 높은 보너스에 눈이 멀어 광기에 동참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그 아이슬란드가 2008년 갑자기 국가부도를 선언한다. 은행들이 무분별하게 빚을 늘려놓았다가 상환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예금이 인출되고 지급불능 사태가 벌어진다. 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파산 뒤 한 여론조사에서는 아이슬란드 국민의 3분의 1이 ‘이민을 원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였다.

이때 아이슬란드는 다시 한번 정책 방향을 크게 전환한다. 다른 나라들이 금융위기 때 은행에 세금을 넣어 되살린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는 3대 은행을 모두 파산시킨다. 그리고 미국 등 다른 나라에서 금융사들이 부실 책임을 지기는커녕 금융위기 기간에도 고액 연봉과 보너스를 챙긴 것과 반대로, 아이슬란드 은행 경영자들은 부실에 책임을 지고 감옥에 가게 된다. 또 아이슬란드는 이번엔 거꾸로 외국 돈을 쫓아내기로 했다. 아이슬란드인들의 은행 계좌는 보호해주지만, 외국인들은 돈을 인출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버린다.

이렇게 하면 나중에 다시 투자받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아이슬란드 투자자가 많은 영국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한다. 글로벌 금융 허브 국가로 돌아가기는 아예 어려워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정부는 몇 년 만에 다시 한번 유턴을 단행했다. 금융이 아니라 어업으로 유턴을 한 것이다.

냄비와 솥으로 막은 채무 상환

이 시기 아이슬란드 정부로부터 상징적 정책이 하나 더 나온다. 위기 직후에 모든 고기잡이 장소를 개방하고 시민 누구나 하루 650kg까지 물고기를 잡고 팔 수 있게 규제를 푼 것이다. 돈에 대한 규제는 묶고 고기잡이에 대한 규제는 푼 셈이다. 몇 년 전 금융 규제를 풀었던 것과 정반대 방향의 정책이다.

다시 한번 진행한 유턴의 결과는 어땠을까. 놀랍게도 아이슬란드 사회는 다시 변화한다. 자산 가치는 추락하고 금융산업은 쪼그라들었다. 대신 시민들은 너도나도 주중 저녁 시간이나 주말에 물고기를 잡으러 몰려나온다. 몇 년 동안 추락하던 어업은 다시 아이슬란드의 주력 산업으로 자리잡았다. 어업이 아이슬란드 수출의 42%를 다시 차지하게 된다. 이 시기에 호스쿨드손도 투자은행을 떠나 다시 어부의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아이슬란드인들의 삶의 변화, 호스쿨드손의 삶의 변화는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도 하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2009년 국가채무 35억유로를 영국과 네덜란드에 15년 동안 5.5%의 금리로 갚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 1인당 매달 100유로씩이나 되는 액수다. 위기를 맞은 은행들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다른 나라 정부들이 대부분 채택한 계획이다.

그 계획을 무산시키고 지금의 길을 가게 만든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다. 세금으로 국가빚을 갚는 것을 반대한 아이슬란드인들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2009년 초 수도 레이캬비크에서는 연일 최대 규모의 시위가 열렸다. 시위대가 냄비와 솥을 들고 두드리며 시위를 벌여 ‘프라이팬 혁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결국 당시 게이르 하르데 총리는 사퇴했다.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대로 국민투표를 통해 채무 상환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2010년 3월6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93%의 압도적인 다수가 채무 상환안을 거부했다.

한때 규제를 풀고 어부의 길을 버리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어보겠다는 선택은 아이슬란드인들이 했던 것이다. 결국 그 꿈이 허황된 것이라 판단하고 어부의 길로 되돌아온 것도 그들이 했던 선택이다. 그 선택 과정에서 정치가 있었고 선거가 있었고 시위가 있었고 국민투표도 있었다. 그 선택을 뒷받침하는 정책을 놓고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결국 그들이 선택한 정책과 사회시스템이 가동됐다.

그 결과 그들의 경제는 완만하지만 회복 중이다. 일확천금의 투자 비즈니스는 사라졌지만 어업과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과 건강한 민주주의가 자라났다. 젊은 층은 자라나 H&M 같은 브랜드 쇼핑을 덜 하게 됐다. 대신 뜨개질 붐이 뜨겁게 일어났다. 뜨개질 산업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여기에 풍력·수력·지력 같은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조차 아이슬란드 경제가 건전하게 회복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 모든 것은 ‘호스쿨드손’들이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금융전문가의 꿈을 꾸는 대신 어부가 되는 길을 다시 선택했고, 그 길을 가는 데 맞는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을 선택했다. 그 과실을 얻으며 책임도 지는 중이다.

우리도 선택할 권리가 있다

경제는 빠르게 본궤도에 올랐다. 다만 금융 방식이 아니라 고기잡이의 방식으로. 쉽게 돈 버는 길을 포기한 대신, 땀 흘려 일한 만큼 보상받는 삶을 살게 됐다. 인생의 모든 것이 그렇듯이, 정책과 사회 패러다임도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법이다. 중요한 것은, 아이슬란드인들이 어떤 사회에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선택을 하는 순간 사회 패러다임이 달라지고 삶의 양상이 뒤바뀌었다.

한국 사회는 점점 더 굳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모든 게 주어진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헬조선’과 ‘흙수저’론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유행어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슬란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늘 사람들에게는 선택권이 있고 변화할 수도 있다. 이를 깨닫는 데서 희망은 시작된다. 아이슬란드가 아름다운 것은 오로라 때문만은 아니다.

[ 한겨레21 / 2016.02.05 / 이원재 희망제작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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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2015/11/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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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소파·프라이팬에도…곳곳에 발암물질

기사입력 2015-11-15 21:51 | 최종수정 2015-11-15 22:13

<앵커 멘트>평소 발암물질에 노출되지 않기위해 신경 많이 쓰실 텐데요.그런데 집에 있는 접시나 소파, 프라이팬에도 발암물질이 함유된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엄진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주부 김민선 씨는 지난 3월, 집안 내 독성물질이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한 민간연구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가구와 전자기기 등 107개 제품 가운데 접시와 소파, 피아노의자 등 60%에서 납 성분이, 30%에서 플라스틱의 일종인 PVC가, 20%에서 카드뮴이 검출됐습니다.

발암물질로 분류된 성분입니다.

<인터뷰> 김민선(주부/서울 송파구) : “유기농 같은 걸 먹고 있는데 설마 장판이? 설마 벽지가? 발암물질이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상 생활 속 발암물질은 약 5백여 종.

아직 공식 규정되진 않았지만 새로 그 유해성이 확인되는 성분도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프라이팬이나 아웃도어 의류 등에 방수코팅제로 주로 쓰이는 과불화합물, 일명 PFOA라는 것입니다.

미국은 내년부터 과불화합물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녹취> 고금숙(여성환경연대 팀장) : “특히 조리도구를 다루는 비중이 큰 여성들에게는 또 영향이 많은데요. 몸에 한 번 들어오면 반감기가 5년 정도 됩니다. 오래 체내에 머무르는 거죠.”

생활 속 발암물질에 노출된다고 모두 암에 걸리는 건 아니지만, 노약자들은 피하는 편이 좋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KBS 뉴스 엄진아입니다.

엄진아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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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56&aid=0010248486&sid1=001&lfrom=kaka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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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23-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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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수 감소’ 프탈레이트, 어린이 소변에서 검출

아토피 어린이 13명의 소변 내 프탈레이트 농도 일반 어린이의 2배, 미국 어린이의 4배

오마이뉴스|고금숙
입력 15.11.21. 20:48 (수정 15.11.21. 20:48)

유럽은 ‘가습기 살균제’ 비극도 없었지만 우리보다 일찍, 그리고 더욱 강력한 화학물질 관리법을 시행했다. 이른바 화학물질 등록과 평가, 인가에 대한 법(REACH, 아래 리치)이다.

이 법이 시행되기 전에는 유럽도 신규 화학물질을 우선 사용하다가 피해가 발생하면 그제야 규제가 따라오는 식이었다. 리치가 시행되면서 생태계와 인체 건강으로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간’ 보던 관행이 뒤집히게 됐다. 이제 신규 화학물질은 용도와 노출경로에 따라 구구절절 그 안전성을 입증해야 정식으로 시장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당연히 ‘데이터가 없으면 장사도 못하는 거야(no data, no market)’를 원칙으로 삼은 리치 법은 기업의 득달 같은 반발에 부딪혔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드라큘라’였다. 유럽 내 시민단체들은 정치인과 시민들의 혈액을 뽑아 그 속에 든 유해화학물질을 검출했는데, 그 종류와 농도가 피가 주식인 드라큘라도 ‘노 땡큐’로 사양할 거라며 농을 쳤다. 결국 ‘깨끗한 피를 달라’며 생존을 위한 ‘먹부림’을 요구한 드라큘라의 공로로 리치는 무사하게 시행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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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큘라의 칫솔질 유해물질로 오염된 피를 마시고 이빨 닦는 드라큘라.
ⓒ Riccardo Cuppini (CC)
국내에서도 국립환경과학원이 일정 기간마다 시민들의 혈액과 소변 내 유해물질을 측정하여 공개한다.

올해 9월에는 지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전국의 3~18세 어린이와 청소년 약 2400명의 혈액과 소변 내 유해물질을 검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체내 환경오염물질 농도는 어릴수록 높았고, 특히 납과 카드뮴, 그리고 환경호르몬인 프탈레이트 일부가 미국과 캐나다 어린이들에 비해 약 2~3배 높았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어린이는 성인에 비해 환경오염물질 노출에 취약하고 영유아기의 노출은 평생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의를 촉구했다.

이 결과가 나오자 올해 5월에 나온 어린이 교육용품 조사 결과가 퍼뜩 생각났다. 악기 케이스, 지우개, 문구 케이스, 줄넘기, 필통 등 어린이들이 만지고 노는 제품 48개를 조사한 결과, 조사 대상의 60%에서 프탈레이트가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프탈레이트는 바로 ‘남자의 정자 수가 줄어들었다, 불임과 성조숙증이다’할 때 언급되는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화장품과 가정용 화학제품에 들어 있다.그 프탈레이트가 또한 PVC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어린이 교육용품에서도 이렇게 떡 하니 들어 있었다.

프탈레이트는 생식계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아토피에 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기도 하다. 이 점을 고려해 서울 시내 6개 학교의 유해물질을 조사하면서, 아토피를 경험한 초등학생 13명의 소변에서 프탈레이트 농도도 함께 알아보았다. 워낙 조사비가 비싸서 13명 만을 참여했지만, 하나의 경향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프탈레이트 중 가장 흔히 사용되는 DEHP, DBP, BBP의 대사체를 기준으로 아토피 어린이(본 조사), 국내 초등학생 조사, 미국 초등학생 조사, 그리고 다큐멘터리 <독성가족>의 결과를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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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탈레이트 (DEHP) 대사물질 농도 아토피 어린이, 국내 초등학생, 미국 초등학생, 다큐먼터리 ‘독성가족’의 결과비교
ⓒ 여성환경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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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탈레이트 3종류 검출결과 비교 아토피 어린이, 미국 초등학생, 국내 초등학생 결과 비교
ⓒ 여성환경연대
그 결과 프탈레이트 농도가 국내 초등학생은 미국 초등학생의 약 2배, 그리고 아토피 초등학생은 미국 초등학생의 4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프탈레이트 농도와 아토피와의 인과관계를 따질 수는 없다. 하지만, 아토피에 영향을 주는 유해물질이 바로 아토피에 걸린 어린이들의 몸 속에서 더 많이 발견됐다는 경향성을 볼 수 있다.

프탈레이트는 몸에 들어온 지 2~3일 만에 소변으로 배출되므로 새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매니큐어를 바르는 등의 활동으로 일시적으로 높아질 수 있다. 그러므로 체내 프탈레이트가 높게 검출되었다고 질병에 바로 영향을 주거나 건강에 이상이 생긴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기준치 이상의 프탈레이트에 노출되는 생활이 계속될 때, 그리고 아토피처럼 환경에 민감한 경우에는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만약 유럽의 드라큘라가 여기 오면 뭐라고 할까. 이 땅에서도 유해물질로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피는 찾을 수 없었다고 불평할 것이다. 다행히도 올해부터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이 처음으로 시행되고 있고, 몇몇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유해물질을 제품에서 걷어내고 있으니 그래도 미래의 드라큘라 ‘먹거리’는 좀더 안전해지지 않을까.

프탈레이트와 중금속이 들어있지 않은 어린이 안심 제품은 발암물질 없는 사회 말든기 국민행동(http://nocancer.kr/nopvc)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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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2015/11/23-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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