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로 선정된 성주골프장이 있는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12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지난 2월 28일, 성주골프장 일대가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되면서 소성리 할머니들은 밤잠을 못 이루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는 마을주민 120명의 고통은 무시해도 되는 것일까?
임순분 소성리 부녀회장은 목격자들 취재진에 이렇게 이야기했다.
국회의원을 우리 손으로 1번 찍어서 뽑아놨더니 사드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북 좌빨이라고 합니다. 이 동네 94세 할머니가 지금 연세가 제일 많은데 80, 90되신 할머니들을 종북 좌빨이라고 하면 우리가, 종북좌빨이 뽑은 국회의원은 뭡니까? 지는 왕좌빨 아닙니까? 왕좌빨, 국가 안보를 위해서는 조그마한 희생은 감수하고 그건 어쩔 수 없는 희생이다, 우리가 사드 배치지역 주민들을 만나면서 내가 설득을 하고 있다 그 작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런데 한 번도 찾아온 적 없거든요.
▲ 지난 4월 5일, 소성리에서 주민들이 사드반대 수요집회를 진행하고 있다. 집회에 나온 이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다.
지난 4월 초, 제주 국제항, 평소라면 주차장에 중국관광객을 태우고 온 전세버스가 80대 정도 빽빽하게 들어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세버스를 찾아볼 수 없었다. 중국관광객이 많이 찾는다는 바오젠거리도 한산했다. 중국관광객들에게 인기였던 사후면세점 역시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였다. 한 옷가게 상인은 매출이 1/10로 줄었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제주를 찾은 관광객 다섯 중 한 명은 중국인 관광객, 이른바 ‘요우커’였다.
▲ 4월 초 제주도 한 사후면세점의 모습, 중국인관광객의 발길이 끊긴 이후 개점휴업상태가 됐다.
4월 초순 주말 밤에 동대문 평화시장.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 몇 년간 내수경기가 침체된 상황에서 중국인 도소매상인들은 동대문 시장의 큰 손으로 통했다.하지만 3월 이후 중국인 도소매상인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고 있다.
▲ 최근 평화시장의 입구의 모습
5월 조기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사드 배치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은 정부가 안보라는 명분으로 사드 배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묻혀버린 국민들의 목소리를 취재했다. 또 5명의 주요 대선 후보를 대상으로 사드배치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쯔위 사건', 돈벌이에만 혈안인 K-팝에 '경종'
아시아에 대한 접근 방식 성찰해야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차장
국내 대형 연예 기획사 중 하나인 JYP가 2015년 말에 선보인 걸그룹 트와이스(TWICE)의 멤버 중 쯔위(본명 저우쯔위, 周子瑜)가 최근 대만 선거에서 이슈의 중심에 섰다. 1999년생 대만 출신 쯔위는 13살에 한국으로 건너와 JYP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였다. 쯔위는 한국, 일본, 중국, 대만 출신 멤버 총 9명으로 구성된 트와이스 내에서도 돋보이는 미모로 가장 큰 인기를 누려왔다. 그렇다면 왜 올해 한국 나이로 17살인 쯔위가 선거에서 이슈로 떠올랐을까? 바로 중국과 대만간의 특수한 관계 때문이다.
장개석의 국민당이 본토를 중국 공산당에 내주고 대만으로 물러 난 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국제무대에서 누가 중국을 대표하는 지를 두고 대립해 왔다. 결국 1971년, 유엔상임이사국 지위가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넘어간 다음, 보통 대만(Taiwan)으로 불리는 중화민국은 국제경기나 회의에 참석할 때, 자신들의 정식국호가 아닌 '중화타이베이(Chinese Taipei)'란 이름으로 참여해야 하고, 자신들의 국기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청나라 때부터 이어지는 '중국'은 어디까지를 포괄하는가의 문제를 두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국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정부는 자신들이라고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통해서, 체제가 다르더라도 국가는 하나라는 원칙(대만, 홍콩, 마카오)을 관철하면서, 티베트와 위구르의 독립시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대응하고 있다.
▲ 대만 총통 선거에서 승리한 차이잉원과 쯔위(오른쪽). ⓒ연합뉴스
돈벌이에만 치중해온 K-POP
대만은 오랫동안 국민당이 집권해왔다. 국민당은 중국 본토를 수복해야할 영토로 보고 현재의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국가 노선에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즉,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누가 중국을 대표할 것인가를 두고 경쟁을 벌여왔지만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은 공유해온 것이다. 이와 반대로 민진당은 현재의 대만이 그 자체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독립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에 쯔위가 한국의 한 텔레비전에 대만 국기를 들었다고 한 친중파 대만가수가 문제를 삼게 되었고,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이 쯔위를 비롯한 JYP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에 나섬으로써 이 문제는 순식간에 정치 쟁점이 되었다.
지난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행정부 수반)과 입법원(국회)선거에서 그동안 국민당이 추진해온 친중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민진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계속 나오던 중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하루 앞둔, 1월 15일 쯔위가 동영상을 통해, "자신은 중국인이며 중국은 하나" 라는 사과 영상을 올리면서 대만의 젊은이들은 이에 격분하게 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사과영상으로 인해 무려 134만 표가 민진당에 더 몰리게 되면서 결국 민진당이 최초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의 젊은 세대들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으로 통제하려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사회운동과 선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홍콩 지방의회선거에서 우산혁명에 참여한 8명이 의회진출에 성공했고, 대만과 중국과의 무역협정에 반대하며 대만국회를 점거했던 해바라기 운동의 주축인 "시대역량"은 이번 대만 입법원에 5석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대만과 홍콩 젊은 세대들은 17세 가수가 자국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사과 동영상을 올리자, 이 동영상을 SNS에 공유하면서 중국은 물론 JYP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중국시장에서의 수익악화를 이유로 JYP가 사과를 강요한 것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서는 인권위에 진정이 이뤄졌고, 대만에서는 JYP가 검찰에 고발되는 사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커지게 된 것은, 그동안 한국의 연예기획사와 방송사들이 K-POP을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만 인식했을 뿐, 진출하는 국가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와이스만 하더라도 중국, 대만, 일본, 한국 국적의 멤버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각 국가들은 과거사 및 영토문제로 언제든지 갈등상황에 치달을 수 있는 상태다. 한국사회는 중국과 일본, 대만의 소녀들이 한국 기획사에 소속되어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상황을 두고, K-POP이 아시아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할지 모르지만 K-POP이 아시아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은 만만치 않다.
일례로, 남성아이돌 그룹 '블락비'는 2012년에 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홍수 사태를 두고 장난스럽게 인터뷰해서 강력한 비난을 받고 활동을 8개월간 중단한 적이 있으며, 최근 해체한 여성 아이돌 그룹 '카라'도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내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로 인해 일본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중국시장이 한국보다 더 중요해지면서 중국인 멤버 영입과 중국활동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데, 과연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홍콩의 우산혁명이나 중국내 소수민족 이슈들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JYP의 대처는 더욱 아쉽다. JYP는 이미 홍콩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잭슨을 소속사 아이돌 그룹인 GOT7멤버로 두고 있고, 이에 앞서서 2PM에서 닉쿤을 앞세워 태국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바 있다. 그러나 쯔위 사건으로 인해 중화권 출신의 아이돌의 중국내 일정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돈벌이에만 치중해온 K-POP
대만은 오랫동안 국민당이 집권해왔다. 국민당은 중국 본토를 수복해야할 영토로 보고 현재의 영토를 기반으로 하는 독립국가 노선에 반대 입장을 취해왔다. 즉, 중국공산당과 국민당은 누가 중국을 대표할 것인가를 두고 경쟁을 벌여왔지만 '하나의 중국'이란 원칙은 공유해온 것이다. 이와 반대로 민진당은 현재의 대만이 그 자체로 완전한 주권을 행사하는 독립국가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지난 11월에 쯔위가 한국의 한 텔레비전에 대만 국기를 들었다고 한 친중파 대만가수가 문제를 삼게 되었고, 이를 본 중국 네티즌들이 쯔위를 비롯한 JYP에 대한 대대적인 보이콧에 나섬으로써 이 문제는 순식간에 정치 쟁점이 되었다.
지난 1월 16일 치러진 대만 총통(행정부 수반)과 입법원(국회)선거에서 그동안 국민당이 추진해온 친중정책에 대한 불만으로 민진당이 승리할 것이라는 전망은 계속 나오던 중이었다. 그러나 선거를 하루 앞둔, 1월 15일 쯔위가 동영상을 통해, "자신은 중국인이며 중국은 하나" 라는 사과 영상을 올리면서 대만의 젊은이들은 이에 격분하게 되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사과영상으로 인해 무려 134만 표가 민진당에 더 몰리게 되면서 결국 민진당이 최초로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최근 대만뿐만 아니라 홍콩의 젊은 세대들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으로 통제하려는 중국에 대해 비판적이며, 사회운동과 선거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 있었던 홍콩 지방의회선거에서 우산혁명에 참여한 8명이 의회진출에 성공했고, 대만과 중국과의 무역협정에 반대하며 대만국회를 점거했던 해바라기 운동의 주축인 "시대역량"은 이번 대만 입법원에 5석을 차지하였다.
이러한 대만과 홍콩 젊은 세대들은 17세 가수가 자국 국기를 흔들었다는 이유로 사과 동영상을 올리자, 이 동영상을 SNS에 공유하면서 중국은 물론 JYP에 대해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었다. 중국시장에서의 수익악화를 이유로 JYP가 사과를 강요한 것은 개인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것이라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서는 인권위에 진정이 이뤄졌고, 대만에서는 JYP가 검찰에 고발되는 사태로까지 번지게 되었다. 이렇게 문제가 커지게 된 것은, 그동안 한국의 연예기획사와 방송사들이 K-POP을 수익을 창출하는 상품으로만 인식했을 뿐, 진출하는 국가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노력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와이스만 하더라도 중국, 대만, 일본, 한국 국적의 멤버들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각 국가들은 과거사 및 영토문제로 언제든지 갈등상황에 치달을 수 있는 상태다. 한국사회는 중국과 일본, 대만의 소녀들이 한국 기획사에 소속되어서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상황을 두고, K-POP이 아시아에서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스러워 할지 모르지만 K-POP이 아시아에서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은 만만치 않다.
일례로, 남성아이돌 그룹 '블락비'는 2012년에 태국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태국 홍수 사태를 두고 장난스럽게 인터뷰해서 강력한 비난을 받고 활동을 8개월간 중단한 적이 있으며, 최근 해체한 여성 아이돌 그룹 '카라'도 2012년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일본내 극우세력의 혐한 시위로 인해 일본 활동에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중국시장이 한국보다 더 중요해지면서 중국인 멤버 영입과 중국활동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이돌 그룹들 사이에서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는데, 과연 한국의 연예기획사들은 홍콩의 우산혁명이나 중국내 소수민족 이슈들에 대해 인식을 하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이런 점에서 JYP의 대처는 더욱 아쉽다. JYP는 이미 홍콩 펜싱 국가대표 출신인 잭슨을 소속사 아이돌 그룹인 GOT7멤버로 두고 있고, 이에 앞서서 2PM에서 닉쿤을 앞세워 태국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바 있다. 그러나 쯔위 사건으로 인해 중화권 출신의 아이돌의 중국내 일정이 일방적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아시아를 이해하지 못하면 K-POP에 위기 닥칠 수도
중국 자본은 이미 한국 방송사와 연예기획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직접 한국 연예기획사의 지분을 확보하고 한국의 아이돌 관련 콘텐츠를 중국방송사가 공유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이 자체적으로 육성한 아이돌 그룹에 한국 아이돌 그룹이 밀려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연예기획사들은 앞으로 아세안을 새로운 타겟으로 잡고 적극 공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아직까지 아세안 국가들 중에서는 태국 출신 멤버들만 한국 아이돌 그룹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2PM을 제외하고 그리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멤버 선발에 있어서 피부색이나 외모에 있어서 차별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도 든다. 이것은 비단 기획사나 방송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종주의적 차별과 혐오에 무감각한 한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인도네시아와 미얀마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 K-POP이 향후 아세안 국가 출신 멤버의 영입과 활동을 기획하고 있다면, 지금보다 더 철저한 준비와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연예산업은 흔히, 정치·사회적 문제와 동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대중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아세안의 다양하고 복잡한 종교 및 민족 분쟁 등과 연계된다면 지역적 이슈로 언제든지 부각 될 것이고 그 후폭풍은 상상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JYP는 쯔위가 사과한 15일 당일에만 시가총액 78억 원이 증발하는 손해를 입었다. 이러한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서 연예기획사들도 최근 국제사회의 흐름인 '기업의 인권경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적극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기업의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협력사와 지역사회에서도 인권침해의 소지를 상세히 살피고 예방하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UN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연습생 선발과 훈련, 노래 제작 및 활동과 홍보에 이르기까지 인권침해 여지가 있는지 자문을 구하고 문제가 있다면 개선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정부도 K-POP을 국가홍보에 이용만 할 것이 아니라, K-POP과 관련되어 국가이미지가 훼손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과 예방조치 수립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AP통신, 한국 정부가 취할 선택지 제시 – 미사일방어 체계 등 4개 대안 제시 – 그 어느 것도 효과적이지 않다고 지적 박근혜는 국회 연설을 통해 한국의 개성공단 중단은 시작일 뿐이라고 했다. 이에 대한 외신 반응은 회의적이다. AP통신은 개성공단 이후 남한이 취할 선택지에 대해 언급했고, 뉴욕타임스는 이 기사를 받아 보도했다. AP통신은 개성공단 외 한국이 취할 수 있는 ...
중국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전현직 위원 8명이 비밀 페이퍼컴퍼니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알렉사 올센(Alexa Olesen), 웬 유(Wen Yu) 기자
구카이라이(Gu Kailai)는 자신이 감춰온 비밀이 드러날까 싶어 몇 달 동안 좌불안석이었다. 이제 곧 중국 정치 지도부에 오르게 될 남편이 그 비밀 하나 때문에 자리를 잃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모종의 조치를 했다.
중국 남부 대도시인 충칭의 한 호텔방, 영국인 사업가인 닐 헤이우드(Neil Heywood)가 호텔 침대에서 술에 취해 멍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그녀는 작은 그릇에 차와 쥐약을 섞어 건넸다.
호텔 직원이 그의 시신을 이틀 뒤에 발견했다.
구카이라이는 결국 2011년 범죄에 대해 고백했다. 그녀는 헤이우드가 지구 건너편에 있는 페이퍼컴퍼니 계좌의 수백만 달러 부동산의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그녀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프랑스 남부에 있는 빌라의 소유권을 숨겼음을 헤이우드가 폭로한다면, 남편인 보시라이(Bo Xilai)가 중국 정치권력의 정점인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에 들어가는 것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고 구카이라이는 생각했다.
살인이 일어난 2주 후, (이에 대해서는 이제까지 알려진 바 없는 내용이다) 구카이라이의 페이퍼컴퍼니 소유권 구조가 갑자기 바뀌었다. 유출된 기록에 따르면, 그녀와 페이퍼컴퍼니의 관계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들 목적으로, 또는 일이 터지면 그녀의 동업자가 신속한 조치를 하도록 만들 목적으로 구카이라이의 주식이 동업자에게 이전되었다.
하지만 구카이라이는 자신의 비밀을 감출 수 없었다. 페이퍼컴퍼니를 숨기려던 노력은 헤이우드의 죽음, 그리고 남편과 구카이라이의 투옥으로 끝났다. 또한 중국의 엘리트들이 그들의 부를 숨기기 위해 어떻게 조세도피처를 이용하고 있는지에 관해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구카이라이의 해외 거래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드러낸 유출문서는, 그 밖의 중국 권력층 가족이 보유한 해외 재산에 관해서도 많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유출문서는 중국의 국가주석, 공산당 총서기 및 당 중앙군사위 주석인 시진핑(Xi Jinping)의 매형이 조세도피처에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규모가 매우 작은 상무위원회에 과거 혹은 현재 속한 인물 중 최소 그들의 친척 7명도 해외자산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해외자산을 가진 친척 중에는 서거한 중국 국가주석이자,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의 아버지인 마오쩌둥의 손녀사위도 포함되어 있다.
중국 혁명 영웅들의 자녀와 손자 손녀 중 많은 수가 사업에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 아니다. 중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경제 규모가 크고 억만장자도 수백 명에 이른다. 그러나 중국 내 가장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 중 얼마나 많은 이들이 페이퍼컴퍼니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자산을 숨기고 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이 네트워크를 이용하는지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 차이퉁(Süddeutsche Zeitung) 및 기타 미디어 파트너들이 기밀 자료를 입수했다. 전체 1천100만 건이 넘는 기록은 자산을 숨기는데 이용되는 기업 구조 설립 전문인 파나마 법무법인, 모색 폰세카(Massack Fonseca)가 내부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모색 폰세카의 크게 성공한 중국 고객 중에는 중국 최고 지도자이자, 반부패를 내세워온 시진핑의 매형인 덩쟈구이(Deng Jiagui)도 포함되어 있다. 덩쟈구이는 모색 폰세카를 통해 2004년 페이퍼컴퍼니 한 곳을 취득했으며, 2009년 두 곳을 더 취득했다.
이 페이퍼컴퍼니들의 이름은 슈프림 빅토리 엔터프라이즈(Supreme Victory Enterprises Ltd), 베스트 이펙트 엔터프라이즈(Best Effect Enterprises Ltd.) 및 웰스 밍 인터내셔널(Wealth Ming International Ltd.)이다. 이 회사들이 무슨 일에 쓰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슈프림 빅토리는 2007년 해산되었고, 나머지 두 회사는 시진핑이 2012년 공산당 서기가 되었을 무렵 휴면 상태에 들어갔다.
또 다른 유명한 고객은 1987년부터 1998년까지 중국 총리였던 리펑의 딸이다. 리펑은 1989년 톈안먼 광장 민주화 시위의 유혈 군사 진압을 이끌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리펑의 딸인 리샤오린과 그녀의 남편은 1994년 설립된 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인, 코픽 인베스트먼츠(Cofic Investments)를 소유하고 있다. 내부 이메일에서 리샤오린의 변호사들은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자금은 유럽에서 중국으로 산업 설비를 수출하는 일을 돕는데서 발생한다고 밝혔다. 유출 문서에 의하면, 이 소유관계는 이름이 등록되지 않은 소위 무기명주를 이용해서 수년 동안 은폐되어왔다. 무기명주는 오랫동안 자금 세탁 및 그 밖의 부정행위를 위한 도구로 알려져 왔으며, 검은돈을 막기 위한 규제가 각국에서 강화되면서 이제 전 세계적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다.
소위 붉은 귀족이라 불리는 새로운 세대는 젊은 시절 페이퍼컴퍼니의 세계를 알게 된 것으로 보인다. 2012년까지 중국 상무위원회 서열 4위였던 지아칭린(Jia Qinglin)의 손녀도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 재스민 리 지단(Jasmine Li Zidan)은 스탠포드 대학교에 1학년으로 재학 중이던 2010년 하베스트 선 트레이딩(Harvest Sun Trading Ltd.)이라는 페이퍼컴퍼니의 소유주가 되었다.
그 이후로 재스민 리는 20대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구축해왔다. 그녀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는 총 등록 자본 30만 달러로 베이징에 2개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용되었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 2곳이 베이징 회사들 내에 재스민 리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녀는 그녀 가족의 이름이 공식 명부에 등장하지 않도록 만들 수 있었다.
그 밖에 친척들이 페이퍼컴퍼니 거래와 연관이 있는 5명의 전,현직 상무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장가오리(Zhang Gaoli), 현 상무위원으로서 그의 사위인 리셩푸(Lee Shing Put)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3개 기업, 제논 캐피탈 매니지먼트(Zennon Capital Management), 시노 릴라이언스 네트웍스 코퍼레이션(Sino Reliance Networks Corporation), 글로리 탑 인베스트먼트(Glory Top Investments Ltd.)의 주주였다.
류윈산(Liu Yunshan), 현 상무위원으로서, 그의 며느리인 지아리칭(Jia Liqing)은 영국령 버진 아앨랜드에 2009년 설립된 페이퍼컴퍼니인 울트라타임인베스트먼트(Ultra Time Investments Ltd.)의 이사 겸 주주였다.
쩡칭훙(Zeng Qinghong),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중국 부주석이었으며, 그의 남동생인 쩡칭화이(Zeng Qinghuai)는 니우에(Niue)에서 처음 설립되었다가 2006년 사모아(Samoa)로 주소가 옮겨진 회사인 차이나 컬츄럴 익스체인지 어소시에이션(China Cultural Exchange Association Ltd.)의 이사였다.
고인이 된 후야오방(Hu Yaobang),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였으며, 그의 아들 후덴화(Hu Denhua)는 2003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회사인 포탈렌트 인터내셔널 홀딩스(Fortalent International Holdings Ltd.)의 주주, 이사이자 실질소유주이다. 후덴화는 그의 아버지가 공산당 총서기이던 시절에 살았던 전통 가옥인 본인의 집 주소를 이용해서 페이퍼컴퍼니를 등록했다.
마오쩌둥(Mao Zedong)은 1949년부터 1976년 사망할 때까지 공산주의 중국을 이끌었다. 그의 손녀사위는 2011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킨 베스트 인터내셔널 리미티드(Keen Best International Limited)를 설립했다. 천둥성(Chen Dongsheng)은 현재 생명보험회사와 미술경매회사의 대표이며 킨 베스트(Keen Best)의 1인 이사 겸 주주였다.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만나다
유출기록은 중국의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자산을 감추기 위해 어떻게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하는지 드러내고 있다.
모든 페이퍼컴퍼니 거래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와 기타 지역에 있는 페이퍼컴퍼니들은 정치 엘리트와 부유한 후원자들 간의 금융 거래를 숨겨주고, 자산을 감춰주며, 조세를 회피하고 익명 주식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세간의 주목을 받는 인물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자국에서 몰래 기업을 설립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공산주의 속성을 지닌 현대 중국의 자본주의 바퀴에 기름을 칠하는 기술 중 일부일 뿐이다.
모색 폰세카의 중국 고객들 중에는 중국 쇼핑몰 체인 인타임(Intime)을 설립한 셴구오준(ShenGuojun)과 같은 슈퍼부자도 포함되어 있다. 셴구오준은 쿵푸 스타인 성룡(Jackie Chan)을 비롯한 여러 인물들과 함께 2008년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에 설립된 드래곤 스트림 리미티드(Dragon Stream Limited)라고 불리는 회사의 주주였다.
Jackie Chan. Photo: Gage Skidmore (CC BY-SA 2.0)
또 다른 억만장자이자 음료수 재벌인 쫑칭호우(Zong Qinghou)의 딸인 켈리쫑푸리(Kelly Zong Fuli)는 2015년 2월 모색 폰세카의 도움으로 퍼플 미스테리 인베스트먼트(Purple Mystery Investments)라 불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다. 서신 기록에 의하면 해당 회사의 목적은 “중국 내 투자”인 것으로 드러났다.
셴구오준, 성룡, 켈리쫑푸리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코멘트 요청에 답변하지 않았다.
전 세계 페이퍼컴버니 설립 법무법인들 중 5위 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지는 파나마 법무법인인 모색 폰세카는 모색 폰세카 세크러테리즈 리미티드(Mossack Fonseca Secretaries Limited)라는 회사를 1989년 홍콩에 설립했다. 그리고 설립 초기에 박물관과 쇼핑으로 널리 알려진 침샤추이의 카오룽 센터에 사무실을 운영했다. 모색 폰세카는 2000년 중국 본토에 첫 사무실을 설립했다. 모색 폰세카의 웹사이트에 따르면, 현재 이 법무법인은 중국 본토 8개 도시(심천, 닝보, 청도, 다롄, 항저우, 난징, 지난)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유출기록 분석에 따르면, 2015년 말에 모색 폰세카는 홍콩과 중국 사무실을 통해 설립된 16,300개 이상의 페이퍼컴퍼니로부터 수수료를 거둬들였다. 이 회사들은 모색 폰세카가 전 세계에서 관리하는 활동 중인 기업들 중 29 퍼센트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 비중은 단일 시장으로서 모색 폰세카에게 독보적이다. 모색 폰세카의 지점 중 아시아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가장 바쁜 사무실은 홍콩에 있다.
자금 세탁에 관한 국제 규범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와 같은 중개인은 정부 관료와 그 가족의 자금이 부당한 이득을 통해 축적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더욱 엄격한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음료수 재벌, 쫑칭호우의 아내인 시유첸(Shi Youzhen)과 같은 일부 고객은 그녀의 페이퍼컴퍼니가 보유한 자산에 관해 “강도 높은 실사”를 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유출문서의 조사 결과, 모색 폰세카는 여러 중국 고객들에 대해 고위급 정치인들과 가족관계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고 등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례로, 시진핑의 매형인 덩쟈구이가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페이퍼컴퍼니들을 2004년과 2009년 설립하는 것을 도울 당시에 모색 폰세카의 그 누구도 덩쟈구이의 가족관계를 인지하거나 확인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색 폰세카는 또한 수년 동안 중국 전 총리 리펑의 외동딸인 리샤오린의 가족관계를 인지하거나 깨닫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색 폰세카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가 무기명주 사용을 금지하는 보다 엄격한 반(反)자금세탁 기준을 도입한 2009년까지 리샤오린과 그녀의 남편이 소유한 회사인 코픽 인베스트먼츠를 지배하기 위해 무기명주를 사용하는데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 유출문서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는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소유권 구조가 2010년 무기명주에서 또 다른 비밀 구조인 중부 유럽의 작은 리히텐슈타인 공국 내 재단으로 이전될 때도 해당 회사의 진짜 주주들의 배경을 파헤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 무렵, 리샤오린은 중국 내에서 유명한 정치 지도자의 딸 이상의 명망을 얻고 있었다. 그녀는 “중국의 전력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중국 에너지 분야의 최고 경영인이 되었고, 중국 입법부의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의 위원이 되었다.
이메일 기록을 보면 모색 폰세카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의 금융 규제 당국이 보낸 질의에 대한 회신에서, 2014년이 되어서야 리샤오린과 그의 남편이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실제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질의가 무엇이었는지 문서 상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지만, 심지어 그 때도 적어도 법무법인의 직원 중 일부는 리샤오린이 중국 정치 및 재계에서 중요한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코픽 인베스트먼츠의 이사이자, 제네바에 기반을 둔 변호사인 찰스-앙드레 주노드는 이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했지만 그는 항상 관련법을 준수해왔다고 말했다.
리샤오린은 거듭된 코멘트 요청에도 답하지 않았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에 보낸 편지에서 모색 폰세카는 정치인들이나 이들과 관련된 사람들과 연관된 사례를 발견하고 다루는 “정책 및 과정을 적절한 절차에 따라 확립”했다고 밝히고 있다. 모색 폰세카는 이런 사례는 “고위험” 사례로 간주하고, 강도 높게 체크하고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으며, “우리 회사를 비롯한 기타 법무법인들이 지켜야 하는 기존 규칙과 기준의 엄격한 수준을 자주 벗어나는 모든 신규 및 유망 고객에 대해서 꼼꼼하게 자산실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Identity documents from the Panama Papers. Clockwise from top left: Patrick Henri Devillers, Jia Liqing, Hu Dehua, Deng Jiagui and Li Xiaolin.
1 달러짜리 회사
큰 주목을 끌지 않고 모색 폰세카의 조사 절차를 뚫고 들어온 또다른 군주는 전 상무위원의 손녀인 재스민리(Jasmine Li)이다. 페이퍼컴퍼니를 처음 만들었을 때 그녀는 스탠포드 대학교 학생이었다.
모색 폰세카의 유출문서를 보면 사진이 담긴 신분증 사본을 확보하는 것이 표준 절차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사진이 담긴 신분증 사본을 법무법인에서 확보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만약 모색 폰세카 직원들이 좀 더 면밀하게 확인했다면, 또다른 모색 폰세카 고객인 중국 고급시계유통업체인 형득리(Hengdeli)의 대표이자 창업자인 장유핑(Zhang Yuping)과 그녀 사이의 금융 관계를 발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장유핑은 하베스트 선 트레이딩 리미티드(Harvest Sun Trading Limited)라고 불리는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의 1인 주주였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하베스트 선은 2010년 4월 차이나 스트레티직 홀딩스(China Strategic Holdings)라 불리는 홍콩 상장회사의 주식을 매수하는 데 이용되었다. 홍콩 증권거래소 기록에 따르면,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8월에 하베스트 선은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고 9월에는 나머지 보유 주식도 매각했다.
2010년 12월, 모색 폰세카 기록에 따르면, 장유핑은 당시 비어있는 페이퍼컴퍼니의 소유권을 (재스민리의 링크드인(LinkedIn) 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당시 스탠포드 대학교 1학년생이었던 재스민리에게 이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매매 가격은 1달러였다.
모색 폰세카의 기록에 따르면 재스민리는 신 셩 인베스트먼트 리미티드(Xin Sheng Investments Limited)라는 두 번째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회사도 소유하고 있다. 재스민리는 하베스트 선과 신 셩을 엔터테인먼트 및 부동산과 관련된 두 곳의 비슷한 이름을 지닌 베이징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용했다. 페이퍼컴퍼니들은 그녀의 정체를 감추는데 이용되었다.
장유핑의 변호사인 빅터 리(Victor Lee)는 하베스트 선이 장유핑으로부터 재스민리에게 2010년 이전되었다는 사실을 이메일을 통해 확인해주었다. 빅터 리는 이전 당시 하베스트 선은 자산이 전혀 없었으며, 장유핑은 그 회사가 “자산을 전혀 보유하고 있지 않은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전이 “합리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우리 고객은 재스민리와 전혀 관계가 없고, 어떤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우리 고객에게 그녀를 소개해준 것”이라고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밝히지 않은 채, 빅터 리는 적었다. 그는 해당 이전 거래는 재스민리가 “스스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할 필요 없이” 회사를 보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사업가들은 고위급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들의 배우자, 자녀, 손주 및 기타 가까운 친척들을 돕는 일이 자주 있다. 이와 같은 은밀한 유대관계의 속성은 구카이라이와 그녀의 남편 보시라이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다. 이 부부는 중국 북동부 출신의 플라스틱 재벌인 수밍(Xu Ming)에게 상당히 의지하고 있었다. 보시라이는 2013년 8월 그의 부패 혐의에 대한 재판 중에 “수밍은 나의 가족에게 막대한 규모의 재정지원을 해줬다… 나는 그가 ‘신속하게 성장’을 할 수 있도록 도왔고, 그는 내 아들을 도와줬다” 고 언급했다.
흰 장갑
10년 이상 구카이라이는 페이퍼컴퍼니 지분을 캐러비안의 비밀로 유지하면서 그녀의 지중해 빌라를 노출되지 않도록 관리해왔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 보시라이는 중국의 권력자 부부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었다.
The luxury French villa of Bo Xilai. Photo: Fine and Country
구카이라이는 전 중국인민해방군 장군의 딸로서 문화혁명 시기에 정육점 직원으로 일했지만 나중엔 성공적인 변호사가 되었다.
보시라이는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8대 혁명원로” 중 한 명의 아들이며, 확장해가는 주요도시인 충칭을 2011년까지 운영했고, 상무위원회의 유력한 후보였으며, 중국의 차세대 국가안보 지도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구카이라이는 남편이 유력한 지도자로 부상하기시작할 때쯤, 프랑스 리비에 근처 칸 지역에 방 6개짜리 빌라를 샀다. 그 집은 2011년 수밍의 자산으로 매입했다. 수밍은 강철 작업장을 구입하기 위해 320만 달러를 이체하는 것으로 꾸며 중국의 엄격한 자본 통제 망을 피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강철 작업장을 판 회사는 320만 달러 중 적은 금액만 가져가고 나머지 금액은 구카이라이와 동업자인 프랑스 건축가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Patrick Henri Devillers)가 비밀리에 공동 소유하고 있는 러셀 프로퍼티즈 S.A.(Russell Properties S.A.)로 이체했다. 러셀 프로퍼티즈 S.A.는 해당 자금을 빌라를 구입하고 관리한 프랑스의 한 회사로 이전했다.
문서상으로 러셀 프로퍼티즈는 구카이라이와 그녀의 막강한 남편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나있다.
구카이라이는 빌라 퐁텐 상 조르쥬(Villa Fontaine St. Georges)로 임대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투자했다. 이후 그녀는 세금을 “최소화”하고 싶어서 회사와 빌라의 소유권을 숨겼다고 증언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해외 자산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했다.
빌라를 관리하기 위해, 그녀는 번드르르하고 비밀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친구인 헤이우드에게 의지했다. 그는 “007”이란 번호가 적힌 번호판을 단 재규어를 베이징 시내에서 몰고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디언(Guardian)은 그가 구카이라이를 용서를 잘 하지 않는 “여제”라고 지칭했다고 보도했다.
구카이라이를 도우면서 헤이우드는 해외 자산을 비밀로 유지하기를 원하는 부유한 중국인들의 간판 대리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흰 장갑”이라고 알려진 대리인들은 종종 부동산 등의 실소유자 지분을 가지고 있다.
기업 및 당 엘리트들을 위해 흰 장갑 역할을 하는 것은 중국에서 수익성이 좋은 사업이다. 그러나 헤이우드에게는 이 사업이 치명적인 일로 변했다.
수수께끼가 풀리다
모색 폰세카는 2011년 중반 또 다른 등록된 중개인을 통해 이전된 페이퍼컴퍼니들 몇몇의 일부로서 러셀 프로퍼티즈 S.A.를 “상속”받았다.
당시에 해당 회사의 지분은 채널 제도의 저지(Jersey)에 위치한 대리인인 IFG 트러스트(IFG Trust)와 IFG 세크러테리즈(IFG Secretaries)가 보유하고 있었다. 등기부상에 이사와 주주로 드빌리에나 구카이라이는 언급되지 않았고 중국과의 뚜렷한 연결고리도 없었다.
그때 미스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구카이라이는 프랑스 빌라를 관리하고 있던 헤이우드에게 충칭의 부동산 거래에서 생겨나는 수익을 일부 떼어주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헤이우드는 그가 정당한 지분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2011년 초에 헤이우드는 그녀의 아들인 보과과(Bo Guagua)에게 접근해 그의 가족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했다고 그녀는 이후 증언했다. 헤이우드가 그녀의 빌라 소유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위협했다고 구카이라이는 주장했다.
Gu Kailai, the wife of disgraced politician Bo Xilai, listens to the verdict during her trial. Photo: AP Photo / CCTV via APTN
구카이라이 재판의 보고서에 따르면, 구카이라이와 헤이우드는 이 분쟁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2011년 11월 13일 충칭의 럭키 홀리데이 호텔에서 만났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고, 술을 마시기 위해 그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는 로얄 살루트 위스키를 반병 마신 후 보시라이 가족의 보조원인 장시아준(Zhang Xiaojun)이 그를 침대까지 끌고 가기 전에 구토했다. 헤이우드는 구카이라이에게 물을 청했다.
그녀는 쥐약과 차를 간장 종지에 섞어 그가 조금씩 마시도록 줬다.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의 맥박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의 호텔방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다.
유출문서의 내용에 따르면, 그 일이 있은 지 2주가 약간 더 지나, 모색 폰세카는 빌라를 통제하는 페이퍼컴퍼니인 러셀 프로퍼티즈 S.A.의 소유자 지분을 IFG 대리인으로부터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에게 이전하는 것을 도왔다.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는 2000년 이 회사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던 건축가이다.
드빌리에는 구카이라이의 전 베이징 법무법인 파트너의 주소를 이전을 위한 문서 작업에 이용했다. 법원 문서에 따르면, 러셀 프로퍼티즈는 초기에 두 곳의 채널 제도 대리인을 통해 구카이라이와 드빌리에가 50/50으로 소유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이전 작업이 살인 후에 이렇게 빨리 이뤄진 이유 또는 구카이라이의 지분이 드빌리에에게 이전된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사실, 드빌리에가 그의 실제 이름을 회사에 올리고 구카이라이의 전 직장 주소를 문서에 사용하면서 본질적으로 그와 그녀의 지문을 회사에 남긴 것은 이상해 보인다.
이 이전 작업 덕분에 ‘중개인’으로서 IFG는 사라졌다. 그 결과 드빌리에는 모색 폰세카와 직접 연락할 수 있게 되었고, 회사에 대한 강력하고 직접적인 통제가 가능해졌다.
2012년 초까지 드빌리에는 중국, 영국, 프랑스, 호주 및 미국의 뉴스에서 구카이라이의 살인 재판 및 보시라이의 부패 스캔들과 그의 연결고리 때문에 자주 거론되었다. 그러나 유출문서에 따르면 모색 폰세카는 2012년 초 몇 달 동안 이 사건에 대해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시기 동안 드빌리에는 모색 폰세카에게 러셀 프로퍼티즈에서 또 다른 페이퍼컴퍼니인 모건 앤 모건 (Morgan & Morgan)으로 이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2012년 6월 7일,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규제 당국이 러셀 프로퍼티즈 S.A.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면서 모색 폰세카에게 해당 회사의 소유주, 이사 및 기타 상세 내역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4일 후, 모색 폰세카의 특별 감사 책임자는 내부 이메일로 그녀의 동료들에게 드빌리에가 중국 조사와 관련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알렸다.
6월 12일과 13일, 모색 폰세카는 드빌리에에게 직접 이메일을 보냈다. 그 메일을 통해 보시라이-구카이라이 스캔들과 드빌리에의 역할에 대한 뉴스 링크들을 보내면서 걱정되는 점들을 지적했다. “기사가 당신의 이름과 국적을 가진 인물을 언급하고 있다”고 모색 폰세카는 적었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이 당신과 동일 인물인지 확인해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드빌리에는 이에 대해 회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당국에 대한 회신으로, 모색 폰세카는 패트릭 앙리 드빌리에라는 이름의 인물은 러셀 프로퍼티즈의 1인 주주이자 이사이자, “이 회사와 관련하여 마지막으로 연락한 인물”이라고 답했다. 모색 폰세카는 더 자세히 조사하고 드빌리에와 회사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나중에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중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스캔들과 해당 회사의 분명한 연관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집 팝니다
드빌리에는 현재 캄보디아에 살고 있다. 그의 증언은 구카이라이와 보시라이의 재판에서 모두 사용되었지만, 그는 어떤 범죄로도 기소되지 않았다. 그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의 거듭한 코멘트 요청에도 답하지 않았다.
보시라이는 언젠가 그의 무죄가 입증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현재 뇌물수수, 횡령 및 권력 남용으로 종신형을 살고 있다.
구카이라이는 헤이우드를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2015년 12월 중국 당국은 그녀의 형벌을 종신형으로 감형했다.
중국 법원은 보시라이에 대한 판결에서 중국 정부가 해당 빌라를 몰수하라고 명령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2014년 빌라가 매물로 나와 있다고 보도했다.
봄이 왔지만 봄을 맘껏 누릴 수 없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16개월 된 아이를 둔 나로서는 먼지가 많은 날에는 외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발암물질'인 초미세먼지가 특히 어린 아기의 건강에는 더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서다. 따뜻한 햇살과 꽃구경은 공기가 좋은 날로 미루기로 했다.
출근길은 매일 혼잡하다. 나쁜 공기를 염려하는 뉴스가 연일 나오지만, 사람들이 승용차로 출근하는 습관에는 변화가 적은 것 같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도로에 길게 늘어선 자동차를 가만히 보면 이른바 ‘나홀로 차량’이 상당수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세먼지가 심각해질 경우 차량 2부제를 실시하자는 것에 대다수가 동의했다고 하지만, 공기를 걱정해서 자동차 이용을 스스로 억제하는 사람은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자가용이 있기 때문에 미세먼지를 덜 걱정하지 않는 게 아닐까.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 외부의 대기오염에 노출되는 시간이 적다. 반면, 대중교통이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배출하는 책임은 낮지만 오히려 거리에 오래 머물며 오염물질을 더 많이 들이마시게 된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아니면, 공기청정기를 사듯, 구매력을 갖춘 사람들이 ‘깨끗한 공기’를 사는 시대에 살아야 할까.
우리가 ‘중국발 미세먼지’를 탓해왔지만, 그나마 중국에서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언젠가부터 베이징의 이미지는 흡사 SF영화의 장면의 모습이었다. 스모그로 시야가 불과 몇 미터 앞까지밖에 안 되는 거리에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묵묵히 걸어 다니는 풍경 말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은 사람들의 환경 의식을 일깨웠고, 중국 정부가 ‘대기오염과의 전쟁’을 선포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몇 가지 통계를 보면 중국의 변화는 괄목할 만하다. 대기오염의 주범인 석탄 소비량은 줄어드는 추세인 반면 재생에너지는 세계 최대 규모로 늘어나고 있다. 2015년 석탄 소비량은 전년 대비 3.7% 줄어든 반면 재생에너지 확대량은 기록을 갱신해 풍력과 태양광은 각각 34%와 74% 증가했다.
미세먼지 탓인지 최근 한국 언론은 전력 상황을 다룬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주요 논조는 한국의 석탄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넘었고 앞으로 당진, 태안, 삼척, 강릉을 비롯한 지역에서 추가로 늘어날 계획이다. 기후변화와 대기오염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국가들이 석탄화력발전소를 전면 폐쇄해나가는 흐름과 역행한다는 비판이다.
미세먼지 걱정만이 아니다.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가 줄줄이 들어서면서 전력 가격이 하향세를 유지하고 있다. 덕분에 전력을 판매하는 한국전력은 전례 없는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재생에너지 사업자의 곡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얼마 전 태양광 발전사업을 하고 있거나 새롭게 투자하려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태양광 확대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불안정하고 낮은 전기 가격을 꼽았다. 석탄화력발전소가 일으키는 심각한 대기오염 피해에도 불구하고 석탄은 여전히 '값싼 에너지원'으로 보호 받는 반면, 태양광 사업자들은 불안정한 정책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정부가 대기오염 개선을 위해 해마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지만, 효과는 더디고 미미하기만 하다.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깨끗한 전기를 공급하는 태양광 발전을 늘리려는 시민들의 노력은 꾸준히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런 시민의 노력을 더 지원하기는커녕 정부가 이를 모른 척하거나 오히려 방해를 하고 있는 상황은 답답한 노릇이다. 우리에겐 미세먼지 걱정을 줄이고 건강을 지켜줄 수 있는 정부와 정치인이 필요하다. ‘미세먼지의 정치’를 요구해야 한다.
이 글은 <레디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조 단위 규모의 적자가 조선업과 전방 산업인 해운업에서 발생하였다. 한때 단일 업종 수출액 1위를 차지하기도 했었던 한국 조선업 빅3의 엄청난 적자도 놀랍지만, 앞으로 수만 명의 노동자들이 울산과 거제에서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더욱 당황스럽다. 그리고는 마치 을씨년스러운 유령 도시가 된 것처럼 현지 르포 기사들이 언론사마다 쏟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 정부와 대우조선해양의 최대 주주인 산업 은행의 무능과 고용 보험 이외에 변변찮은 실업 대책 하나 준비하지 못한 무대책에 대한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 한국 조선업을 미래 전망이 암울한 사양 산업으로 규정하고 통폐합 방식의 강력한 구조조정과 불황에 대비한 설비 축소 방식의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한국 조선업이 사양 사업이라는 무책임한 규정
한국 조선 산업에 대한 일련의 논의들을 한국 조선 산업의 현재 경쟁력과 고용의 관점에서 바라봤을 때 진보와 보수 모두 너무나 무책임한 말들이 난무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조선 산업 위기 및 한국 조선 산업의 현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 조선 산업의 진전을 위한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 조선 산업이 사양 산업이라는 주장들을 살펴보자. 세계 경제의 침체라는 구조적인 요인으로 인해 한국 조선 산업이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현재 조선 산업의 위기는 한국만의 위기가 아니며, 세계 조선 산업을 주무르고 있는 한중일 조선 산업 모두의 위기이다. 그리고 '사양산업론'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근거는 "한국 조선 산업은 기술력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선박) 가격경쟁력은 저임금의 중국에 밀린다" 또는 "일본이 한국에 조선업 주도권을 넘겨줬듯이, 한국도 중국에 넘겨줄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두 진술은 모두 구체적인 실체를 찾을 수 없는 막연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일본 조선 산업에 대한 과대평가
먼저 일본 조선 산업의 역량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심각하게 과대평가되어 있다. 일본 조선 산업은 1970년대 이후 두 차례의 구조조정을 거쳐 1990년대 이후 간신히 연명해오고 있으며, 구조조정 결과 설계 인력과 숙련공 부족으로 한국 대형 조선 업체들과 같은 제품 생산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맞춤형 주문 생산'이라는 조선 산업의 특성을 정면으로 무시한 범용 '표준선' 전략으로 해외 선주사들의 외면을 받았고, 그나마 자국 해운업 수요로 버텨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선박 대형화, 메가블록 공법 등의 혁신을 주도한 빅3와 달리 중소형 선박, 그 중에서도 수요는 가장 많으나 가장 단순한 선종인 벌크선만을 자동차 찍어내듯이 만들어 왔다. 그런 일본 조선 산업은 반복 제작 경험을 통해 확보한 연비 절감 등 일부 친환경 기술력은 보유하고 있지만, 초대형 선박, 고부가가치 선박 경험 자체가 일천한 일본 업체들이 왜 한국 조선 업체들보다 기술력이 낫다고 하는지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일본 조선 산업의 쇠락 과정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설비축소 방식의 구조조정,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이 조선 업종을 떠나게 하는 구조조정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조선 산업을 사양 산업으로 규정했다가 2000년대 이후 한국에 추월당한 이후 2003년에 조선업을 '필요 산업'으로 재규정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더 나아가 중국 조선업에도 추월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일본 사례를 통해 조선 산업에서 설비 축소,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에 대한 인력 감축이 일단 진행되고 나면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허비해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한다. 과거 일본 조선 산업의 전성기를 주도했던 미쓰비시, 가와사키, 히타치 중공업 등이 조선업에서는 거의 발을 빼고 나서, 최근 이마바리조선과 같이 과거에 들어보지 못했던 중형급 조선 업체들이 일본 조선 산업의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조선업 불황이 무색하게 지난 1~2년 동안 수백억 엔 설비 투자로 조선업 전성기 회복을 시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1990년대 이후 인력 감축의 여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엔저를 무기로 수주가 늘어나면서 중국에 빼앗겼던 벌크선 시장을 되찾고는 있으나 인력 부족으로 추가 수주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만큼 조선 산업에서 숙련 인력의 확보는 중요하다.
아직 낮은 수준의 중국 조선 산업
다음 중국 조선 산업의 경쟁력에 대해서도 한국에서는 마찬가지로 과대평가되고 있다. 중국 조선 산업은 국수국조 원칙에 기반을 둔 노후 선박 해체와 신규 선박 발주에 대한 자금 지원, 해외 선주사들에 대한 초저리 선박 금융 혜택 등 국가 차원의 강력한 지원을 통해 국제 경쟁력 기준으로는 이미 망했어야 할 조선 업체들을 억지로 끌고 가고 있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조선 업체들에 물량을 몰아주면서 선박 건조 경험을 축적하게 하고 있으나 여전히 한국 및 일본과 큰 차이가 나고 있다.(일본이 엔저로 조선업 부활 기미가 보이면서 중국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더욱이 중국 조선업은 한국과 일본 조선 업체들이 '혁신'(일본 조선 산업은 용접공법의 도입, 한국은 메가블록공법, 선박 대형화 주도)을 통해 조선업종 주도권을 장악했으나, 중국은 이와 같은 한일 조선 산업의 혁신이 보이지 않는다. 더 나아가 한국과 일본 조선 산업이 기능 인력 측면에서 '직영 숙련공 양성->사내하청 활용 확대' 방식으로 성장해 왔는데, 중국 조선 산업은 2000년대 이후 한일 조선 산업의 '사내 하청 활용 확대'만 모방을 하면서 중국 조선 산업은 숙련공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농민공 출신의 하청-파견 노동자들이 높은 이직률을 기록하고 있는 상태에서 앞으로도 고품질의 고부가가치 선박 생산은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고용 측면에서의 성장 전략으로 한동안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조선 산업은 숙련 노동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작업관리 수준이 매우 낮아서 더 많은 인력을 투입하고, 선박 제작 기간도 길어서 저임금의 가격 경쟁력도 없을 뿐 아니라 제품 품질의 저하로 이어지고 있다. 이미 해외 시장에서 중국 조선 업체들이 제작한 선박들은 한국 일본산 선박들보다 보험 수리 청구 비율 등이 매우 높아 선주사들과 보험 회사들의 불신이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세계 조선 산업의 약 90%를 한중일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과 일본 조선 산업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 알게 되면 당분간은 중국과 일본이 한국 조선 산업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이 지금 조선 산업을 접거나 '빅3'를 '빅2'로 인위적으로 재편하는 일본식 구조조정을 할 이유가 없다. 이미 2009년 이후 20여 중형급 조선 업체들이 시장논리에 의해 대거 몰락하면서 한국 조선 산업 생산 능력은 크게 축소된 상태이다. 지금 상태에서는 더 이상 일본식으로 설비 축소 구조조정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다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조선 산업은 위기가 분명하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세계 1위 자리를 유지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조선 산업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 이미 중국과 일본 정부는 중앙 및 지방 정부 차원에서 발전전략을 제시하고 있는 상태이다. 중국 정부는 2015년 'made in china 2025', 일본 정부는 2011년 '조선업의 활력 재생을 위한 기본 지침'을 통해 조선 산업 성장 전략을 제시하고, 이에 중국 일본 조선 업체들은 설비 투자를 하고 있다. 정부는 잘못된 사양산업론에 기반을 둔 구조조정 시도보다는 지금이라도 노동자와 사용자들을 불러 제대로 된 발전 전략을 고민을 통해 한국 조선 산업의 질적인 도약을 고민해야 한다.
아울러 한국 조선 산업은 지금 '다른' 구조조정, 고용과 인력 차원에서 업그레이드를 할 필요가 있다. 설비 구조조정으로 빅3와 6~7개 중형급 조선소로 재편된 한국 조선 산업은 벌크선과 같은 단순 선종 중심의 성장 전략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조선(해양)산업은 고부가 가치 제품 생산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잠시 고용의 관점에서 한국 조선 산업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요 대형 조선 업체들이 모두 회원사인 '조선해양플랜트협회'의 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1990년 직영(원청) 기능직 인력은 3만5000여 명이었는데, 2014년도에도 여전히 3만5000여 명으로 그대로이다. 반면 사내하청 기능직은 1990년 7천여 명에서 2014년 12만 7000여 명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즉, 한국 조선 산업은 인력 면에서 봤을 때 사내하청 중심으로 성장해서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조선 해양 산업이 향후 고부가가치 제품 생산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이 사내 하청 노동자를 대거 활용한 생산 시스템에 대한 발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사내 하청 중심 생산 시스템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2000년대에는 성공적이었던 사내 하청 중심의 생산 시스템이 이제 한계에 봉착했다는 신호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탈도 많은 해양플랜트 사업부에서는 제작공정의 90~95% 가량을 사내 하청 노동자들에게 맡기다 보니 품질에 문제가 생기고 공기가 지연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얼마 전 사보에서 작년에 공기 지연, 불량률 증가 등으로 인한 손실이 6000억 원이 넘었다고 밝혔다. 작년 대우조선해양 정성립 대표이사는 사내 담화문에서 해양플랜트 쪽에서 (하청) 인력 관리에 실패했다고 실토했다. 이처럼 조선 업체들이 작업장 관리에 실패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내하청을 너무 많이 투입하다 보니 정상적인 작업 관리가 안 되고 있다. 그나마 제작 경험이 풍부한 상선은 낫겠지만 제작 경험이 부족한 해양 쪽은 작업장 관리 노하우도 부족한 데다 사내 하청은 더 많이 활용하면서 관리의 실패, 공기 지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는 또한 적자로 이어진다. 나아가 외국 선주사들 중에서도 직영과 하청의 기량과 품질의 차이를 인지하고서 문제제기하고 있다.
이번 위기를 계기로 한국 조선 업체들의 '사내 하청 중심의 생산 시스템' 운영을 재검토하여,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라도 직영 기능직 인력들을 기반으로 작업장 및 품질 관리 전략을 다시 세워야 한다. 중국과 일본 조선 산업이 추격하고 있는 현재, 이와 같은 조선 산업 고용 및 제품 업그레이드 전략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한국 조선 산업은 외부 경쟁 때문이 아니라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몰락할지 모른다. 우리 스스로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할 이유는 없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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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전례 없는 인권활동가 탄압이 시작된 지 1년째, 국제앰네스티는 중국 정부가 인권변호사와 활동가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을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인권변호사들은 중국의 비밀스런 억압 체제로 인한 분노에 직면했다. 구금된 변호사들은 즉시 석방되어야 하고, 중국 국민의 인권을 옹호한 개인에 대해 이와 같은 제도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도 중단되어야 한다.”
– 로젠 라이프(Roseann Rife),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국장
2015년 7월 9일 전국적인 탄압을 시작하며 최소 248명 이상의 인권변호사와 활동가들이 표적이 되었다. 1년이 지난 지금, 체포된 17명은 여전히 구금되어 있으며, 그 중 8명은 “공권력 전복” 혐의로 기소되어 종신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
로젠 라이프(Roseann Rife)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조사국장은 “인권변호사들은 중국의 비밀스런 억압 체제로 인한 분노에 직면했다. 구금된 변호사들은 즉시 석방되어야 하고, 중국 국민의 인권을 옹호한 개인에 대해 이와 같은 제도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도 중단되어야 한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 정부가 법치주의를 수호한다고 주장하지만, 그 말대로 법치주의를 옹호하려 한 것만으로 변호사들이 종신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인 것은 뻔뻔스러운 일”이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변호사들을 탄압하기 위해 수많은 억압 수단을 모두 동원했다. 당시 구금된 사람 대부분은 법적인 자문이나 가족과의 연락이 거부되었으며, 이는 명백한 인권 침해다.
국가적 탄압의 시작을 알린 중국의 유명 변호사 왕위(Wang Yu) 등 변호사와 활동가들이 실종되는 것은 “지정된 장소에서의 주거 감시”로 알려진 비밀 구금 형태로 이뤄진다. 경찰은 공식적인 구금 제도를 벗어나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용의자를 6개월까지 구금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용의자들이 고문과 부당대우 위험은 매우 커진다.
중국 정부는 또한 다수의 민감한 사건을 도맡았던 법무법인인 펑루이를 “거대 범죄조직”의 중심이라는 이유로 기소하며 국영매체를 통해 빠르게 선전전에 나섰다. 왕위를 포함한 펑루이 소속 변호사 4명은 국가안보 관련 혐의를 받고 여전히 구금되어 있다.
중국의 탄압. 표적이 된 인권변호사와 활동가 숫자: 248명
감시
왕위의 남편이자 동료 변호사인 바오룽쥔은 “공권력 전복 사주” 혐의로 최대 징역 15년까지 처해질 수 있다. 두 사람의 자녀인 10대 소년 바오줘시안은 2015년 10월 미얀마 국경을 넘으려다 체포된 이후 지금까지 경찰의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다. 바오줘시안은 앞서 해외유학이 무산된 이후 중국을 떠나 망명을 시도했다. 정부가 가족들을 이용해 용의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명백한 패턴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다.
로젠 라이프 국장은 “최근 중국의 인권은 침체기이다. 정부는 현존하는 모든 억압적이고 더러운 수단을 이용해 공산당의 권력을 위협하는 것처럼 보이는 주요 유명 변호사들을 탄압했다. 인권과 법치주의를 수호하는 데 변호사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중국 정부는 수십 가지의 국가안보법을 동원하고 오용하며 이들을 체포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변호사 탄압은 중국정부가 시민사회를 억압하려는 계산된 작전 중 일부다. 중국 정부는 정부와 그 정책을 비판한 것으로 간주되는 개인과 조직을 노려, 새로운 법과 법안으로 막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허용된다.
2015년 12월 통과한 신규 테러방지법에는 자신의 종교를 관철하거나 정부 정책을 비판한 사람들이 “테러” 또는 “극단주의”죄로 기소되는 일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사실상 거의 포함되어 있지 않다. 새로 제정된 ‘외국NGO법’은 정당한 활동도 심각하게 제한할 수 있으며, 결국 시민사회를 경직시킬 것이다.
배경
중국의 유명 인권변호사 왕위가 친구들에게 극심한 공포에 빠진 메시지를 남기고 실종된 2015년 7월 9일 이른 시간부터 변호사에 대한 무더기 탄압이 시작됐다. 왕위는 메시지를 통해 인터넷과 전기가 모두 끊겼고, 사람들이 집으로 침입하려 한다고 남겼다.
이후 며칠 사이 전국 수백여 명의 변호사와 활동가가 탄압의 표적이 되었으며 수십 명은 경찰에 체포됐다. 모두 중국에서의 인권침해 피해자를 지원하고,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의 변호를 맡았던 사람들이었다.
*7월 7일 톈진 경찰은 구금된 변호사 중 하나인 자오웨이가 보석으로 석방되었다고 발표했다.
China: End relentless repression against human rights lawyers on first anniversary of crackdown
Chinese authorities must end their ruthless assault against human rights lawyers and activists, Amnesty International said ahead of the first anniversary of the start of an unprecedented crackdown.
At least 248 human rights lawyers and activists were targeted during the nationwide sweep which began on 9 July 2015. One year on, 17 individuals caught up in the onslaught remain detained, eight of whom could face life imprisonment after being charged with “subverting state power”.
“Human rights lawyers have faced the full wrath of China’s secretive machinery of repression. The detained lawyers must be released and this systemic assault against individuals defending the rights of Chinese people must end,” said Roseann Rife, East Asia Research Director at Amnesty International.
“President Xi Jinping has the gall to claim the Chinese government upholds the rule of law even when lawyers face life in jail for trying to do just that.”
The authorities have used an armoury of repression in an attempt to break the lawyers. Most of those detained in the crackdown were denied legal counsel and contact with their family, a clear violation of their rights.
Secret Detention
Missing lawyers and activists – including prominent Beijing lawyer Wang Yu whose vanishing marked the start of the crackdown – were placed under a form of secret detention known as “residential surveillance in a designated location”. This allows the police to hold suspects for up to six months outside of the formal detention system, without access to anybody outside, and places suspects at great risk of torture and other ill-treatment.
The authorities were also swift in unleashing a propaganda war in state media, accusing the Fengrui law firm in Beijing, which has worked on many sensitive cases, of being at the centre of “a major criminal gang”. Four lawyers from the firm, including Wang Yu, remain in detention on state security charges.
Surveillance
Wang Yu’s husband and fellow lawyer, Bao Longjun, faces up to 15 years in prison for “inciting subversion of state power”. The couple’s teenage son, Bao Zhuoxuan, remains under close police surveillance after he was captured across the border in Myanmar in October 2015. Bao Zhuoxuan was attempting to leave China after being previously blocked from studying abroad. There has been a clear pattern of the authorities using family members as leverage against suspects, a clear violation of international law.
“These are dark days for human rights in China. The authorities have used every repressive and dirty trick in the book to crush this respected group of lawyers, who they apparently see as a threat to the power of the Communist Party,” said Roseann Rife.
“Lawyers play a crucial role in protecting human rights and the rule of law, and the authorities must stop arresting them by the dozens and misusing state security laws against them.”
The crackdown against human rights lawyers is part of a calculated operation by the Chinese government to suppress civil society. New or proposed laws give the authorities unchecked powers to target individuals and organizations that are seen to criticize the government and its policies.
A new Anti-Terrorism Law, passed in December 2015, includes virtually no safeguards to prevent those who practice their religion or criticize government policy from being prosecuted for “terrorism” or “extremism” offences. A new Foreign NGO law will severely restrict legitimate activities and ultimately stifle civil society.
Background
The crackdown against lawyers began in the early hours of 9 July 2015, when prominent Beijing lawyer Wang Yu went missing after she sent panicked phone messages to friends. The messages stated her internet and electricity had been cut off, and that people were trying to break into her home.
In the following days hundreds of lawyers and activists across the country were targeted with dozens of individuals taken away by police. All had supported victims of human rights abuses in China and represented these victims in the legal process.
*The number of those still detained in this story was updated on 7 July, after Tianjin Police announced that one of the detained lawyers, Zhao Wei, was released on bail.
일시 및 장소 : 7월 13일(수) 오전 10시, 참여연대 아름드리홀(2층) 공동주최 : 참여사회연구소, 코리아연구원, 한국정치연구회
취지와 목적
지난 7월 8일 한-미 양국 정부가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전격 발표했습니다. 배치 예정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 결정의 배경과 절차, 그 영향력에 대한 문제점이 연일 지적되고 있습니다. 특히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대외관계 그리고 남북관계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번 [전문가 라운드테이블]을 통해 한미 사드 배치 결정의 배경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대외관계와 한반도 정세에 대해 전망해보고자 합니다.
참가자
- 사회 : 서보혁 (코리아연구원)
- 발표
• 한미 사드 배치 결정의 배경과 그 의미 – 김준형(한동대)
• 정부 사드배치 근거와 주장에 대한 반박 – 정욱식(평화네트워크)
• 중국과 일본 등 동북아 정세 전망 – 이남주(성공회대), 이경주(인하대)
• 남북관계 등 한반도 정세 전망 – 김용현(동국대)
미 WSJ, “중국, 사드 보복으로 한류 콘텐츠 겨냥” – 사드 배치에 따른 보복 조치로 한류 콘텐츠 지목한 점 집중 보도 – 한국 연예 산업이 지역분쟁에 취약한 점 지적하기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즉 사드 도입 결정이 발표된 직후 중국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중국 관영매체에서는 한국에 대한 보복을 주문했고, 관영매체의 입장은 중국 정부의 입장이기에 이 같은 보복은 현실화 되리라는 ...
중국 최악의 산업재해로 알려진 톈진항 물류 사고 1주기를 앞두고 산업현장에서 또 안전사고가 일어나 수십 명이 사망했다. 사고가 일어난 곳은 중국 후베이성 당양의 화력발전소로, 후베이 지역 언론에 따르면 11일 오후 3시 20분(현지시간) 발전소 내 고압 증기관이 폭발해 21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으며 당국은 사고 현장을 집중 수색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정확한 원인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동안 ‘세계는 지금’에서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세계는 지금 이번 화에서는 중국 후난대학교 디자인과 조은지 조교수께서 중국 사회혁신을 주도하고 있는 디자인대학들의 사례를 중국 현지에서 전해드립니다.
세계는 지금(16)
중국 사회혁신을 움직이는 디자인대학들
중국의 사회혁신 사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의외’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중국에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회혁신 활동들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중에는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궈낸 공동체 지원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처럼 시민주도로 시작된 사례도 있고, ‘빈곤 완화’처럼 중앙정부가 주요 의제로 삼은 사회 문제에 대해 G-NGO(Governmental NGO라는 다소 모순적인 이름의 NGO)가 지자체와의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하는 민관협력 형태의 사례도 있다.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분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는 사회혁신을 주제로 한 중국의 디자인 콘퍼런스나 강연, 연구 프로젝트에 자주 초청되어 지난 15년간 거의 매해 중국을 방문했는데, “다년간의 관찰과 토론에 비추어볼 때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중국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 뿐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외국인이 중국의 사회혁신에 대해 섣불리 논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목할만한 점을 하나 꼽자면, 최근 몇년간 중국에서 사회혁신에 의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주체 중 하나가 디자인대학이라는 점이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예쁜 물건이나 그래픽을 만드는 작업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다 보니 ‘디자인’과 ‘사회혁신’이라는 조합이 누군가에겐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움직임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책임있는 디자인을 강조한 1970년대의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1)부터, 1990년대의 나이젤 화이틀리(Nigel Whiteley)2), 디자인 액티비즘(design activism)을 강조한 2000년대의 알라스테어 풔드 루크(Alastair Fuad-Luke)3)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을 주창한 대표적 인물이 에지오 만지니인데, 만지니는 특히 디자인대학(디자인 전문가인 교육자, 열정과 창의력을 갖춘 학생들, 연구시설 등의 사회적 자원이 모여있는 기관)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2009년 데시스(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 DESIS)라는 국제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데시스는 사회혁신을 주제로 한 디자인 프로젝트나 수업,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디자인대학들의 네트워크로, 전세계 40개가 넘는 대학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중국의 데시스 회원들은 중국 내 사회혁신 디자인을 연구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데시스 차이나(DESIS China)라는 하부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중국 디자인계에서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칭화대학교(Tsinghua), 통지대학교(Tongji), 후난대학교(Hunan), 장난대학교(Jiangnan), GAFA(Guangzhou Academy of Fine Arts), 홍콩 이공대학교(Hong Kong PolyU) 총 6개의 대학교 디자인학과가 창립멤버다.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와 인적, 물적자원을 토대로 중국 사회의 현안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디자인 활동을 펼치면서 포럼이나 콘퍼런스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통지대학교는 디자인 하베스트(Design Harves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상하이 인근의 총밍섬 지역주민들의 소득에 보탬이 되면서 인근 대도시(상하이)와 농촌이 상생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속가능한 관광 서비스를 지역주민, 지자체와 함께 개발하고 있고, 후난대학교는 매년 여름방학에 현지조사와 디자인 워크숍을 결합한 형태의 소셜 이노베이션 섬머 캠프(Social Innovation Summer Camp)를 조직하여 농촌 활성화 및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디자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난대학교는 지역 내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센터와 협업하여, 단순 작업을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들에게 경제활동 및 사회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가령, 지적장애인들이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여 지역주민에게 판매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디자인(Social design)’4) 혹은 ‘착한 디자인’5)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혁신’이라 여겨질 만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프로젝트들이 지닌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과대포장되는 일은 경계해야 하고, 영국 네스타(The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 NESTA)의 최고 책임자 제프 멀건(Geoff Mulgan)의 지적처럼 사회혁신에 있어 디자인 활동이 지닌 약점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혁신이 디자인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비영리단체, 지자체, 디자이너의 협업이 늘고 있는 중국의 추세는 주목할 만하다.
■ 각주
1) Victor Papanek, Design for the Real World: Human Ecology and Social Change, Pantheon Books, 1971
2) Nigel Whiteley, Design for Society, Reaktion Books, 1994
3) Alastair Fuad-Luke, Design Activism: Beautiful strangeness for a sustainable world, Earthscan publications, 2009
4) 에지오 만지니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 종종 ‘사회적 디자인’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디자인이 윤리적 동기에서 시작해(가령, 빈곤이나 자연재해, 재난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기부 형태로 진행되는 디자인 활동이라면,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은 지속가능성을 향해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 활동이기 때문에, 이 둘은 출발점도 결과물도 다르다는 것이다.<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입문서>, 에지오 만지니 지음, 조은지 옮김, 안그라픽스, 2016
5) 김상규 교수는 공익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착한 디자인’이 가치 있는 활동이긴 하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더욱이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구조적 문제를 가려버린다고 지적한다. 가령,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 주민들을 위해 빨대 형식의 작고 편리한 휴대용 정수기를 디자인하여 주민들이 깨끗하지 않은 물도 식수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거나, 먼 곳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 어린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쉽게 끌고다닐 수 있는 바퀴모양의 식수통을 만드는 식의 ‘착한 디자인’은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의 본질을 가려버리고, “정서적으로만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다루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착한디자인>, 김상규, 안그라픽스, 2013
6) 제프 멀건은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 지닌 강점으로 시각화 스킬, 새로운 통찰력,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 짧은 시간에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능력 등을 꼽은 반면, 약점으로는 예산과 조직 운영 스킬 부족, 아이디어 구현 과정을 이끄는 능력의 부족, 디자인 전문가들의 높은 인건비 등을 지적했다. Geoff Mulgan, Strengths, Weaknesses and a Way Forward?, 2009 (SIX – Social Innovation Exchange –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던 이 글은 현재 원문을 찾을 수 없지만, 몇몇 학자들의 논문에 요약되어 있다.)
대한민국 밖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동안 ‘세계는 지금’에서는 희망제작소 연구원들의 눈길을 끈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새로운 움직임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세계는 지금 이번 화에서는 중국 후난대학교 디자인과 조은지 조교수께서 중국 사회혁신의 주체로 나선 디자인대학들의 사례를 중국 현지에서 전해드립니다.
세계는 지금(16)
중국 사회혁신의 주체로 나선 디자인대학들
중국의 사회혁신 사례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의외’라며 놀라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사회주의 국가라는 인식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과 달리 중국에는 생각보다 다양하고 흥미로운 사회혁신 활동들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중에는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일궈낸 공동체 지원농업(community-supported agriculture)처럼 시민주도로 시작된 사례도 있고, ‘빈곤 완화’처럼 중앙정부가 주요 의제로 삼은 사회 문제에 대해 G-NGO(Governmental NGO라는 다소 모순적인 이름의 NGO)가 지자체와의 협력을 토대로 새로운 해결책을 시도하는 민관협력 형태의 사례도 있다.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분야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인 에지오 만지니(Ezio Manzini)는 사회혁신을 주제로 한 중국의 디자인 콘퍼런스나 강연, 연구 프로젝트에 자주 초청되어 지난 15년간 거의 매해 중국을 방문했는데, “다년간의 관찰과 토론에 비추어볼 때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중국에 대해 여전히 잘 모른다는 것 뿐이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한다. 정치적, 문화적으로 매우 다른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외국인이 중국의 사회혁신에 대해 섣불리 논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디자인을 연구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주목할만한 점을 하나 꼽자면, 최근 몇년간 중국에서 사회혁신에 의욕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주체 중 하나가 디자인대학이라는 점이다.
‘디자인’이 세련되고 예쁜 물건이나 그래픽을 만드는 작업으로 여겨지는 일이 많다 보니 ‘디자인’과 ‘사회혁신’이라는 조합이 누군가에겐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디자인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움직임에 기여할 수 있고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전부터 꾸준히 있었다. 사회적으로 환경적으로 책임있는 디자인을 강조한 1970년대의 빅터 파파넥(Victor Papanek)1)부터, 1990년대의 나이젤 화이틀리(Nigel Whiteley)2), 디자인 액티비즘(design activism)을 강조한 2000년대의 알라스테어 풔드 루크(Alastair Fuad-Luke)3)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논의는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social innovation)을 주창한 대표적 인물이 에지오 만지니인데, 만지니는 특히 디자인대학(디자인 전문가인 교육자, 열정과 창의력을 갖춘 학생들, 연구시설 등의 사회적 자원이 모여있는 기관)의 역할에 주목하면서 2009년 데시스(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 DESIS)라는 국제 네트워크를 설립했다.
데시스는 사회혁신을 주제로 한 디자인 프로젝트나 수업, 연구활동을 하고 있는 디자인대학들의 네트워크로, 전세계 40개가 넘는 대학교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중 중국의 데시스 회원들은 중국 내 사회혁신 디자인을 연구하고 확산시키기 위해 데시스 차이나(DESIS China)라는 하부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중국 디자인계에서 소위 명문대라 불리는 칭화대학교(Tsinghua), 통지대학교(Tongji), 후난대학교(Hunan), 장난대학교(Jiangnan), GAFA(Guangzhou Academy of Fine Arts), 홍콩 이공대학교(Hong Kong PolyU) 총 6개의 대학교 디자인학과가 창립멤버다.
이들은 각자의 관심사와 인적, 물적자원을 토대로 중국 사회의 현안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디자인 활동을 펼치면서 포럼이나 콘퍼런스를 통해 자신들의 경험을 공유한다. 예를 들면, 통지대학교는 디자인 하베스트(Design Harvest)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상하이 인근의 총밍섬 지역주민들의 소득에 보탬이 되면서 인근 대도시(상하이)와 농촌이 상생하기 위한 방안으로 지속가능한 관광 서비스를 지역주민, 지자체와 함께 개발하고 있고, 후난대학교는 매년 여름방학에 현지조사와 디자인 워크숍을 결합한 형태의 소셜 이노베이션 섬머 캠프(Social Innovation Summer Camp)를 조직하여 농촌 활성화 및 경제적, 문화적으로 소외된 중국 내 소수민족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디자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장난대학교는 지역 내 지적장애인들을 위한 서비스센터와 협업하여, 단순 작업을 할 수 있는 지적장애인들에게 경제활동 및 사회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사회적 비즈니스 모델(가령, 지적장애인들이 서비스센터에서 함께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여 지역주민에게 판매하는 방식)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프로젝트들이 ‘사회적 디자인(Social design)’4) 혹은 ‘착한 디자인’5)의 한계를 넘어서 ‘사회혁신’이라 여겨질 만큼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또한, 이런 프로젝트들이 지닌 가치를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로 ‘사회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치게 과대포장되는 일은 경계해야 하고, 영국 네스타(The 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the Arts, NESTA)의 최고 책임자 제프 멀건(Geoff Mulgan)의 지적처럼 사회혁신에 있어 디자인 활동이 지닌 약점도 비판적인 시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회혁신이 디자인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비영리단체, 지자체, 디자이너의 협업이 늘고 있는 중국의 추세는 주목할 만하다.
■ 각주
1) Victor Papanek, Design for the Real World: Human Ecology and Social Change, Pantheon Books, 1971
2) Nigel Whiteley, Design for Society, Reaktion Books, 1994
3) Alastair Fuad-Luke, Design Activism: Beautiful strangeness for a sustainable world, Earthscan publications, 2009
4) 에지오 만지니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 종종 ‘사회적 디자인’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둘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디자인이 윤리적 동기에서 시작해(가령, 빈곤이나 자연재해, 재난으로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기부 형태로 진행되는 디자인 활동이라면,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은 지속가능성을 향해 사회적 차원의 변화를 만들어 내는 디자인 활동이기 때문에, 이 둘은 출발점도 결과물도 다르다는 것이다.<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입문서>, 에지오 만지니 지음, 조은지 옮김, 안그라픽스, 2016
5) 김상규 교수는 공익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착한 디자인’이 가치 있는 활동이긴 하지만 사회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더욱이 눈에 보이는 현상 이면의 구조적 문제를 가려버린다고 지적한다. 가령, 식수 부족에 시달리는 아프리카 시골 마을 주민들을 위해 빨대 형식의 작고 편리한 휴대용 정수기를 디자인하여 주민들이 깨끗하지 않은 물도 식수로 활용할 수 있게 해주거나, 먼 곳에서 물을 길어와야 하는 어린이들의 고단함을 덜어주기 위해 쉽게 끌고다닐 수 있는 바퀴모양의 식수통을 만드는 식의 ‘착한 디자인’은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의 본질을 가려버리고, “정서적으로만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을 다루는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착한디자인>, 김상규, 안그라픽스, 2013
6) 제프 멀건은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이 지닌 강점으로 시각화 스킬, 새로운 통찰력, 사용자 중심의 접근법, 짧은 시간에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능력 등을 꼽은 반면, 약점으로는 예산과 조직 운영 스킬 부족, 아이디어 구현 과정을 이끄는 능력의 부족, 디자인 전문가들의 높은 인건비 등을 지적했다. Geoff Mulgan, Strengths, Weaknesses and a Way Forward?, 2009 (SIX – Social Innovation Exchange – 웹사이트에 게시되었던 이 글은 현재 원문을 찾을 수 없지만, 몇몇 학자들의 논문에 요약되어 있다.)
이 인터뷰는 지난 3월 15일,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워싱턴 D.C.에 있는 후쿠야마 교수와 전화통화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후쿠야마 교수는 미국에서 태어난 일본인 3세로, 현재는 스탠퍼드대 민주주의ㆍ개발ㆍ법치주의 센터에 있다. 1989년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라는 논문을 통해 인류의 역사의 진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최종 승리로 종착점에 도달했다고 주장함으로써 세계적 유명세를 탔다. 주요 저서로는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 ‘정치질서의 기원’ 등이 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들은 요즘 덫에 걸린 느낌입니다. 불리한 시스템에 갇혀 있고, 나갈 방법도 없어 보입니다. 청년이 할 수 있다고 믿는 기대와 현실 사이에 심각한 간극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요? 청년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우선순위와 실제 정책 사이 격차가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노동시장의 변화…청년세대의 불안감 가중
후쿠야마: 그 질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대답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청년 세대는 체제로부터 항상 소외감을 느껴왔습니다. 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정치에 직접 참여할 만한 사회적 지위와 자격이 없습니다. 사회 문제를 생생하게 느끼는 청년들이 정작 의사결정 과정에는 참여하지 못합니다. 역사상 항상 그랬고, 현대에 들어서는 특히 그랬습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포드대 교수 (사진 출처: 오마이뉴스)
그러나 노동시장 자체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변화가 가장 두드러진 국가는 미국이지만, 아시아도 예외는 아닙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어지고, 기업이 내세우는 조건은 꾸준히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기본적으로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 mathematics) 역량을 갖추지 않으면, 지원조차 하지 못하는 일자리가 많아졌습니다. 원하는 전공이 아니면 이력서를 검토해 주지도 않는 세상이 된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면서 청년들은 엄청난 불안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혹시라도 기회를 잃지 않으려고 종일 공부만 하는 청년도 생겼습니다.
아시아의 경우 이런 현상이 더 심하죠. 이에 더해 전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 변화와 격동이 몰아쳤습니다.
아직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만큼의 파괴적 정치 변화를 겪지 않았죠.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중의 참여가 제한되었고, 청년층 대부분이 적극적인 정치 참여를 우선순위로 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탄핵 시위를 보면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황도 빠르게 변해갈 수 있습니다. 정치에 관해 보편적 진실이 하나 있다면, 모두가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여도 어느 순간 영감을 받으면 갑자기 열렬히 참여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표면만 보고 아무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지난 두어 달 동안 정치 및 사회 흐름에 대한 한국 학생의 관심이 증가하는 걸 지켜봤습니다. 자발적으로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지를 느꼈는데요.
후쿠야마: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그런 변화를 일으켰을 거라 확신합니다.
페스트라이쉬: 흔히들 ‘변화’라고 하면 정치적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러나 정치를 몰아가는 건 거침 없는 기술의 발전입니다. 정보를 기록∙이전∙조작하는 기술이 폭발적 속도로 진화를 거듭했습니다.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라는 보편적 추세는 정치와 사회의 작동 원리에, 그리고 이와 관련해 기업과 가족이 기능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나요?
가짜 뉴스 판 치는 세상…정보 옥석 가리는 능력 갖춰야
후쿠야마: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을 살펴 보도록 하죠. 1990년대 인터넷이 대중화됐을 때에는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가 확대되어 민주주의가 발전할 것이란 낙관적 시각이 대다수였습니다. 정보도 일종의 권력이기 때문에 정보에 대한 접근권이 확대되면 대중이 더 많은 힘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분명, 인터넷이 정치적 결집과 행동을 위한 도구로 사용된 적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대중의 참여를 이끌어 권위주의 정부를 반대하는 시위를 조직했던 사례도 있었죠.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부상하는 걸 보게 됩니다.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바로 ‘가짜뉴스’죠. 정보를 걸러주는 문지기(gatekeeper)나 사실을 확인해주는 기관, 전문 기자 등 중간 매체가 인터넷 때문에 자취를 감추면서 나타난 결과죠.
완전히 거짓인 글이 섞여 있는데도 사람들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이면 다 타당하다고 믿어 버리는 거죠.
특정 정치인의 이익에 부합하기 위해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확산시키는 정치적 프로세스가 각국에서 등장했습니다. 이런 정치 공작의 선구자 중 한 명이 바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죠. 그는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 체제에 대한 불신을 조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소셜 미디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죠. 미국에서도 지난 1년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동시에 언론의 데스크나 정보를 선택하는 문지기 역할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습니다. 언론 권력이 사회적 논의를 제한하고 미국 국민의 생각을 단순하게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이 주장은 어떻게 보시나요?
후쿠야마: 문지기 없이 개인이 정보를 직접 생성하고 공유∙배포할 수 있게 된 건 분명 인터넷 덕분입니다. 따라서 인터넷의 파급력을 전체적으로 분석하면 복잡한 그림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뉴스를 만들게 된 건 분명 좋은 일이죠. 그러나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뉴스 내러티브를 마음대로 조작하게 된 건 인터넷이 도입됐을 때만 해도 생각도 못한 부작용일 겁니다.
페스트라이쉬: 인터넷을 통해 세상을 알아가는 청년들을 위해 해줄 말이 있나요?
후쿠야마: 동시대의 흐름과 이 흐름이 내게 줄 영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웹서핑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보다 진지한 교육적 노력이 필요하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탐색하려면 정보의 신뢰도를 판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정보 출처를 평가할 수 없고 독자를 조종하기 위해 어떤 술수를 부리는지 파악할 수 없다면,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일단, 정보의 출처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실의 진위를 파악하고 어떤 정치 논리와 수사학을 이용하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사실 확인에 대해서는 대학교 때 받은 교육이 도움이 되죠.
그런 과정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주에서 어떤 사실을 알 수 있고, 신뢰할 만한 인용구가 무엇인지 눈치채는 능력은 인터넷에 산처럼 쌓인 가짜뉴스를 마주쳤을 때 큰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도 변화를 가져왔죠. 스마트폰은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방식을 크게 바꿔 놓았습니다. 데이트를 하면서 스마트폰만 보는 커플을 많이 봤습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로맨틱한 카페에 함께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를 쳐다보지 않더라구요.
기술이 인간 사회와 인간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 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분명 사람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얼굴을 맞대고 상호작용하지 않습니다. 이런 행동 변화는 앞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분명 변화가 있을 겁니다. 이를 정확히 예측하는 게 힘들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상당히 심오한 변화가 있을 걸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관련해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세계 최고의 대학에 가서 인문학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그보다 좋을 순 없겠죠. 철학이나 역사, 문학, 예술을 제대로 공부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모두에게 그런 기회가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우리 시대 정치적 변화와 급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배움을 이어갈 방법은 무엇일까요? 배움이나 독학을 위해 필요한 태도나 전략이 있다면?
후쿠야마: 요즘은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이 어느 때보다 많죠. 의욕만 확실하다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온라인 학습자료가 풍부합니다.
칸 아카데미와 에드엑스(EdX), 코세라(Coursera) 등의 온라인 프로그램은 수준이 아주 높고, 원하는 수업은 무엇이든 들을 수 있습니다. 단,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거나 확인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목적의식이 확실하고 본인을 다잡을 수 있다면, 유튜브에도 도움되는 자료가 많습니다. ‘하우 투(How to)’ 동영상 시리즈도 꽤 도움이 되더라구요. 뭘 찾고 싶은지 확실히 안다면 인터넷에는 많은 보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다면, 혼자서도 배울 수 있는 길이 어느 때보다 많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상세하게 들어가는 정보는 많지 않다는 걸 감안해야 하죠.
도전받는 민주주의…청년세대의 정치참여 중요
페스트라이쉬: ‘민주주의’라는 용어 자체도 어려움을 가중시킵니다. 정치인이나 학자들이 자주 쓰는 말인데, 민주주의가 의미하는 바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지금의 지정학∙기술적 변화가 계속된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민주주의는 어떻게 규정될까요?
우리는 뚜렷한 정의 없이 ‘민주주의’란 말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선거를 한다고 민주주의는 아니죠. 스탈린도 선거를 했습니다만, 자유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았죠.
후쿠야마: 구체적으로 말해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적 절차 문화를 만들어가기 위해 상호작용하는 다음의 세 가지 제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선, 정부가 필요합니다. 현대적 의미의 정부죠. 어떤 성격도 없는 중립적 체제입니다. 정부는 사회를 보호하고 법을 집행하며, 기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권력 분배 제도입니다. 특정 정치인의 지배력에 대한 의존 없이, 모든 시민을 상대로 평등하게 해당 작업을 수행해야 하죠.
두 번째는 법치주의입니다. 행정부 권한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걸 막기 위해 권력을 제한하는 투명한 법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견제가 분명히 이루어지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모두에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선거 등의 투명한 절차를 통해 지도층이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막는 민주적 절차가 필요합니다.
이 세 가지는 자유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구성요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만 빠져도 체제 전체가 흔들릴 수 있죠.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는 강력한 정부, 법치주의와 함께 민주적 절차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제도가 조합이 되어야 합니다.
정부가 입법 및 집행을 할 수 있는 충분한 권한과 역량을 가지되, 법과 민주 선거를 통해 제약을 받음으로써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견제하는 균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균형점을 찾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가장 개방적인 사회라도 끊임 없이 노력을 해야 가능한 일이죠.
페스트라이쉬: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많은 도전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우선, 현대적 정부를 구성하는 일 자체가 어렵습니다.
아프리카와 남미의 경우 특히 그렇죠. 부패는 전세계 많은 정부의 정통성을 갉아 먹는 보편적 문제입니다.
동북아시아는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나은 성과를 이루었습니다. 법을 제정하고 대통령을 선출한다고 해서 조직적으로 부패한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건 아니죠. 이를 위해서는 수 세대에 걸쳐 장기적으로 정치∙문화적 투쟁을 이어가야 합니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새롭게 부상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은 개도국의 부패 문제와 성격이 매우 다르다 하겠습니다.
제가 설명했던 자유민주주의의 3대 요소를 다시 보자면, 요즘 서구에서는 정치 시스템 내에서 민주주의가 법치주의를 공격하는 새로운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우선, 국수주의적 포퓰리즘 정치인이 정부를 시원하게 공격한다는 이유로 당선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정부가 국민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러시아의 푸틴이 시작한 포퓰리즘 논리는 터키의 레제프 에르도안과 헝가리의 빅토르 오르반이 뒤를 이어 사용했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습니다. 모두 선거를 통해 당선된 지도자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정통성은 가지고 있습니다. 유권자 층에서 폭 넓은 지지를 얻어 당선이 되긴 했지만, 이후 주어진 권한을 남용하며 법치주의를 훼손하고 있습니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인들은 권력의 한계에 순응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를 이용해 정부의 권위를 끌어내릴 겁니다.
이들은 언론과 야당을 공격해 손발을 묶으려 합니다. 자신의 권위와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사법부 권위를 훼손하고 타락시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모범 사례였던 국가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봐 두렵습니다.
페스트라이쉬: 그럼 청년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고, 언론을 통해 정치 뉴스를 들으며 상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말고 또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청년들이 일상에서 좀더 투명하고 책임 있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데 어떤 식으로 기여할 수 있을까요?
후쿠야마: 역사적으로, 학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학생 운동이 있었습니다. 국가 개혁과 민주화 운동에 학생들이 앞장 섰던 사례가 많습니다.
요즘 정치 참여절차가 정도를 벗어나는 건 학생들이 어떤 정치적 목적을 지지할 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변화를 만들어 가고 싶다면, 정치적 인식과 함께 효과적인 정치조직 구성이 필요합니다.
청년들은 모래 속에 얼굴을 묻고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척 하거나 출세만 맹목적으로 따라가선 안 됩니다. 끈을 놓지 않으면서 내가 참여해야 사회의 정치적 절차가 완전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대학
페스트라이쉬: 그러나 취직을 하려면 경영이나 기술 관련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엄청납니다. 정치나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도 생존을 위해 관심을 접고 학문의 범위를 넓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1960년대만 해도 (일본과 한국, 중국에서) 생활수준은 지금보다 훨씬 낮았습니다. 그러나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죠. 왜 우리는 점점 인문학과 멀어지는 걸까요?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회계에 대한 강박적 집착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십니까?
후쿠야마: 노동시장의 성격이 변한 것이 주요 원인입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컴퓨터와 자동화 기술이 저숙련 일자리를 대체하며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있습니다. 보다 최근에는 자동화 기술이 한때 아주 안정적이었던 중산층 일자리까지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동화 흐름 때문에 STEM 역량에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게 된 거죠.
전반적인 일자리 부족 현상과 함께 특정 분야, 특정 기술에 대한 수요가 교육 체제를 뒤흔들었습니다. “어디서 일자리를 얻어야 하나?” 불안감에 휩싸인 학생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니던 40년 전만 해도 영어나 철학을 전공해도 졸업 후 기업에서 괜찮은 관리직으로 취직할 수 있었죠. 그러나 지금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정량적 기술을 갖추지 못했다면, 설사 인문학이 최고의 대학 교육이라 해도 기업 문턱을 밟아볼 기회조차 얻지 못합니다.
전반적으로 STEM에 대한 집중은 한때의 유행으로 볼 수 있고, 지나치게 강조된 면도 있습니다. 수요의 원칙이 가지는 압박 때문에 학생들은 인문학을 외면했습니다. 동시에 인문학 교수진도 상황 개선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죠.
그 동안 인문학은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여성학이나 민족학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인문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정치적 편향이 작용하면서 문학과 철학의 해석은 학생들의 불안감을 해결해 주지 못하고 다른 세상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을 겁니다.
학생들이 17세기 스페인 연극에서 나타났던 퀴어 문화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죠.
페스트라이쉬: 교수로서 저는 아시아연구 저널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읽고 싶은 논문이 별로 없더군요. 글이나 주제가 현실이나 일상적 경험과 너무 동떨어져서 학문을 업으로 하는 저 조차도 논문을 읽는 게 재미가 없었습니다.
후쿠야마: 그런 추세가 갈수록 심해진다고 생각합니다. 학계는 자신의 학문 분야와 권위를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나치게 기술적이거나 방법론적으로 굳어지고, 애매한 전문용어로 논문을 가득 채우죠.
그 결과 일반 대중과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학자들 사이에 이런 경향이 심해지면서 교육에 큰 부작용을 가져온 것이 사실입니다.
아시아적 가치는 대안이 될 수 있나
페스트라이쉬: 아까 말씀하신 법치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개념과 관련된 서구 문화는 전세계 공통의 가치와 원칙을 수립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경제학과 정치학 이론부터 호텔 장식과 기내식에 이르기까지, 서구 문화는 그대로 글로벌 표준이 되었죠.
그러나 동아시아도 역사적으로 뒤처진 지역은 아니었습니다. 지난 2000년을 보면 동아시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은 경제∙문화적으로 대부분 다른 지역보다 앞서 있었습니다. 유교와 불교 전통 안에서 나름의 보편적 가치와 정치 원칙을 수립하고 있었으며, 일부 가치는 대단히 정교한 수준으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아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할수록 글로벌 기준 또한 변화할 거라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불교나 유교 전통은 어느 정도까지 세계 공통의 기준 및 규범으로 통합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절대적인 한계점이 있다고 보십니까?
1994년, ‘포린어페어’지에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리콴유 싱가폴 총리가 ‘문화는 운명’이라며 아시아적 가치의 특수성을 주장하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를 반박하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의 병행발전’을 주장했다.
후쿠야마: 아시아 문화가 궁극적으로 어떤 지위를 누리게 될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아시아의 문화적 규범은 아시아 외 지역에서 영향력이 미미했습니다. 물론 인도 아시람으로 여행을 가거나 바둑을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거대한 문화 담론이 전세계에 미치는 영향력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 아시아는 제가 있는 지역의 주류 문화에서 별다른 힘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중국의 모호한 정체성이 그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은 아시아 문명에서 지배적 위치를 차지하면서도 고유의 문화 정체성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의 국가적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중국의 지도층이 19세기 백인 남성 두 명의 생각을 지도로 삼아 정책을 만드는 겁니다.
유교적 가치관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건성으로 하긴 했지만, 중국 지식인과 정치인은 유교적 가치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압니다. 엄청나게 간극이 큰 두 개의 지적 전통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거죠. 그래서 중국 문명에 대해 일관성 있는 시각을 제시하기 힘든 겁니다.
일본과 한국은 지난 60년간 미국 및 서구 제도와 훨씬 많이 접촉하면서 서구의 가치관과 관습을 중국보다 많이 흡수했습니다. 이를 자국의 전통적 가치관과 결합하기도 했죠.
그렇다면 서구인들은 요즘 일본에 대해 어느 정도나 알고 있을까요?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물론 압니다. 이들 문화 장르에 일본적 요소가 들어가 있긴 하지만, 장르의 시작점 자체는 서구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이죠.
이제 세계 어디에서든 100% 고유한 문화라는 건 더 이상 찾기 힘듭니다. 모든 전통이 복잡한 방식으로 진화를 거듭했죠. 이제는 어떤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지에 대해 아시아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이들 가치가 전세계에 폭넓게 영향을 미치는 지 여부는 그 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이고, 아직은 그 단계에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중국의 부상과 동아시아의 미래
페스트라이쉬: 중국의 경제 발전은 새로운 차원으로 접어들었고, 비즈니스나 문화 상품에서도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은 여전히 제한적입니다. 중국과 중국의 의도에 대해 서구가 아직 깊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어서라고 보는데요.
어쨌든 전세계 인구의 1/6을 차지하는 중국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후쿠야마: 미국이나 유럽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나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지금 권력의 이동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죠. 역사적으로 봤을 때 권력의 이동은 끝이 좋았던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신흥 강대국이 자신의 중요성을 과대 평가하거나 ‘지는 해’가 된 기존 강대국이 힘을 잃지 않기 위해 버티면서 갈등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지정학적 게임은 미묘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오판하기 쉽습니다. 자국의 이익을 내세우면서도 새로운 강대국의 평화로운 부상을 수용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중국이 이 문제를 의식하면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입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전의 신중함이 줄어들긴 했지만요.
페스트라이쉬: 최근 중국이 미국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면서 미국이 다른 국가를 평가했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미국을 평가하겠다고 나섰는데요.
후쿠야마: 전반적으로 중국은 인내심을 가지고 사안을 다루고 있으며, 너무 성급하게 움직이면 격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사태가 어떻게 흐를 지는 일단 지켜봐야겠습니다.
페스트라이쉬: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 청년들이 국수주의 논리를 가져다 쓰는 경우가 이전 세대보다 많아졌습니다. 걱정되는 현상입니다.
국가에 대한 새로운 자의식과 타국에 대한 적대감을 일깨워 권력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결과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 국가가 국수주의적 미사여구와 정치 논리를 앞세운다면, 다른 국가도 이에 반응하게 됩니다. 그럼 논의는 엉망이 되고 비생산적이 되죠.
그렇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국수주의적 주장을 통제할 의무를 가집니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역사적 기록을 남기기 위해 밟아나갈 단계들은 분명합니다. 역사적 진실을 밝히고 기록하기 위한 독일과 폴란드의 노력이 가장 좋은 예입니다.
1939년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은 이후 폴란드를 점령하며 곳곳을 파괴했죠. 복구는 길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고, 공산주의 지배를 받으며 이데올로기 투쟁을 벌인 시간도 있었습니다.
1990년대 폴란드는 드디어 온전한 독립국이 되어 유럽연합에 가입했습니다. 독일과 폴란드는 과거의 슬픈 원한을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죠. 양국의 역사 교과서 공동편찬위원회를 설립한 겁니다. 양국의 동의를 바탕으로, 당시 있었던 사건의 순서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설명해줄 공통 역사 교과서를 집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함께 모여 역사를 연속적으로 논의하는 일이 불가능할 겁니다. 중국과 일본, 한국은 공통의 역사 논의를 위해 같은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하지 못하니까요.
페스트라이쉬: 중국과 일본, 한국에서도 공통의 역사 교과서 편찬을 논의한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후쿠야마: 물론 있었겠죠. 그러나 중국과 일본, 한국의 지도자들이 공동으로 편찬∙감수한 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동북아시아에 필요한 일이 바로 이거죠. 지금 각국은 자신의 편향적 시각에 따라 역사를 기술하고 있습니다. 서로 다른 내러티브를 맞춰가기 위한 노력 없이는 3국 간에 어떤 실질적 이해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역사적 담화는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달려가고 있습니다.
아베 행정부는 역사적 사건의 상당수를 은폐하는 교과서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기존의 역사 교과서도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벌인 일을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은데 말이죠.
다른 국가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중국 또한 지난 15년간 역사적 내러티브에서 일본을 공격하는 표현을 늘려왔습니다.
간극은 점차 증가하고 있는데요. 어떤 국가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촛불시위, 한국 민주주의의 저력
페스트라이쉬: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습니다. 탄핵 결정으로 한국에서는 희망적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국내 사태에 미국과 중국의 지정학적 대립이라는 국제 정세까지 더해지면서 불안이 가중되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깊어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한국 청년에게 줄 조언이 있나요?
(사진출처: YTN)
후쿠야마:저는 한국을 지켜보며 큰 희망을 얻었습니다. 2016년 11월 한국을 방문해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이끌었던 대규모 거리시위를 직접 봤습니다. 그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시민이 참여를 해야 합니다. 시민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정부는 법치주의의 원칙에 따라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안정을 회복할 절차는 이미 제자리에 있습니다. 대선을 진행하면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고, 개혁안도 새로 마련될 겁니다.
한국 국민은 지금까지의 일에 대해 자부심을 가져야지, 수치심을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정부는 엄청난 부패 사건에 휘말렸지만, 결국 의미 있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나갔으니까요.
그것보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더 걱정입니다. 아직 어린 김정은은 아주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보입니다. 미국에서는 위기관리 능력을 검증 받지 못하고 동북아시아 상황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는 행정부가 취임했죠.
이 상황에서 북한의 위협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수 개월간 침착하게 상황을 유지해갈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페스트라이쉬: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중요한 건 무엇일까요?
후쿠야마: 청년을 위한 글을 쓸 때 제가 좋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 자신도 청년을 위한 글을 잘 쓰지 못했거든요. 아무래도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년들은 이제 책이나 신문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우리 세대가 했던 방식대로 정보를 소화하지 않죠.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성공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청년들과 효과적으로 소통할 방법을 찾아서 전달 방식을 결정하는 것이 책의 내용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14년 중국 정부가 홍콩 민주화시위를 지지했던 2명에게 최근 유죄를 선고했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에 대해 그들을 조건 없이 즉시 석방하라고 촉구했다.
여성인권활동가 수 창란(Su Changlan)
중국 정부는 계속해서 인권활동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다. 중국 남부 포산시의 한 법원은 지난 3월 31일, 여성인권활동가 수 창란(Su Changlan)에게 “체제 전복 선동”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같은 혐의로 동료 활동가인 첸 치탕(Chen Qitang)에게도 4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두 사람은 홍콩 민주화시위를 지지했다가 2014년 10월에 구속돼 지금까지 구금되어 있다.
검사의 기소장에 따르면 수 창란은 해외 웹사이트와 소셜미디어, 스카이프(Skype), 지메일(Gmail) 등 온라인에서 중국 공산당과 정부를 비판한 것 때문에 기소되었다.
단지 평화적으로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패트릭 푼(Patrick Poon) 국제앰네스티 중국 조사관
2014년 9월과 11월 사이 두 사람은 중국 본토에서 전국적으로 이루어진 활동가 탄압의 대상이었으며, 100명 이상이 홍콩의 민주화운동인 ‘우산 혁명’에 지지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구금되었다. 이때 함께 구금됐던 왕 모(Wang Mo), 셰 웬페이(Xie Wenfei), 장 셩유(Zhang Shengyu), 순 펑(Sun Feng) 등 4명은 “체제 전복 선동” 혐의로 각각 4년에서 5년의 징역형이 선고된 바 있다.
패트릭 푼(Patrick Poon) 국제앰네스티 중국 조사관은 “중국 정부가 수 창란과 첸 치탕을 하루라도 더 감옥에서 보내려고 한 것은 그야말로 냉혹하기 그지없는 일이다. 정부는 이미 지난 2년 반 동안 부당한 불법 구금으로 두 사람과 가족을 괴롭혔다. 단지 평화적으로 의견을 표현했다는 이유만으로 유죄를 선고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말했다.
“끔찍한” 구금 환경
한편 수 창란은 “끔찍한” 환경 속에 구금되어 있다. 중국 남부의 난하이 교도소에 구금된 수 창란은 80m² 크기의 감방에 50~70여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몰아넣어진 상태로, 잠을 잘 공간은 50cm가 조금 넘는 너비에 불과하다. 이는 일반적인 국제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환경이다.
전직 초등학교 교사였던 수 창란은 이처럼 최악의 환경에서 불필요하게 오랜 기간 구금된 탓에 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변호사의 말에 따르면 적절한 치료도 못 받고, 가족들의 면회도 금지됐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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