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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무도 잊히지 마라” 제주4.3을 모르는 당신에게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 단재 신채호 -
장하나 환경운동연합 권력감시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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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유적지 한수기곶.ⓒ김은숙[/caption]
제주4.3이 뭐죠? 어쩌면 당연한 질문입니다. 제주4.3을 모르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를 빼앗긴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역사교과서는 점점 얇아져 가고, 역사를 몰라도 입시와 진학이 가능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민의 힘으로 국정교과서를 사실상 백지화시켰고 이제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을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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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제 69주년 4.3희생자 추념식이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 SA Yunsoo[/caption]
4월 3일은 69주년 제주4.3 희생자 추념일입니다. 저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씀을 오늘 되새기며, 제주사쩜삼이 아닌 제주사삼을 아는 것은 제주4.3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한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일 그리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3년 10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확정한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더라도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고, 당시 이승만 정부가 주도한 강경진압작전으로 제주도 중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만9285동이 소각됐다고 합니다.
왜 이런 대량학살이 일어났을까요? 어떻게 이런 엄청난 비극이 잊혀질 수 있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품은 채 4.3의 자취를 따라가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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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 4.3백비, 이름짓지 못한 역사. 백비(白碑), 어떤 까닭이 있어 글을 새기지 못한 비석을 일컫는다. ‘봉기.항쟁.폭동.사태.사건’ 등으로 다양하게 불려온 ‘제주4.3’은 아직까지도 올바른 역사적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분단의 시대를 넘어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그날, 진정한 4.3의 이름을 새길 수 있으리라.ⓒ김은숙[/caption]
1945년 8월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국권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미군과 소련군이 남과 북에 들어와 38도선을 경계로 주둔함으로써 원치 않는 분단 상황이 조성되고 말았죠. 미군이 제주도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28일, 실질적인 군정 업무를 담당할 제59군정중대가 도착한 것은 11월 9일이었습니다. 제59군정중대는 인력 부족과 정보 부재로 원만한 통치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향력이 강했던 인민위원회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민위원회란 어떤 조직일까요? 광복 직후 자주 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건국준비위원회(약칭 : 건준)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고, 제주에서도 45년 9월 10일에는 제주도 건준이 결성되었습니다. 9월 23일 건준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고 이를 계기로 45년 말까지 청년동맹・부녀동맹・농민위원회・소비조합 등 각종 사회단체가 속속 조직되었죠.
제주도인민위원회가 가장 주력한 것은 치안 활동이었습니다. 일본군 패잔병의 횡포를 막는 일, 토지・산업체 등 적산(敵産) 및 군수물자를 감시하는 일에서 지역별로 초등학교・중학원 등을 설립하여 자치교육을 실시하기까지 인민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도내 행정을 주도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미군정에 의해 행정이 실시되었지만 여러 마을에서 인민위원장이 이장이 되었고, 인민위원회는 주로 마을 향사를 사무실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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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 직후 상황을 표기한 미군 보고서 1948.4.9. ⓒ김은숙[/caption]
그러나 미군정이 인민위원회를 공식적인 행정기관이나 통치기구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미군정은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일제 때의 관리를 그대로 앉혔으며, 서서히 우익인사들을 조직화시켜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세력으로 키워갔습니다. 1946년 말부터 미군정은 인민위원회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제주4.3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은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1절로서 앞선 2월 17일에 관공서를 비롯한 사회단체・교육계・유교계・학교단체 등 각계각층이 망라 된 ‘3・1투쟁기념행사제주도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도적인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미군정은 3・1절 행사 때 시위는 절대 불허한다는 방침과 집회 사전 허가원칙을 정하였고, 미군정 당국과 수차례 협상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3・1절 행사는 시민주도로 강행될 수밖에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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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넓궤(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산90번지 일대)큰넓궤는 제주4.3당시 동광리 주민들이 2개월 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이다. 1948년 11월 중순 중산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시행된 이후 주민들은 야산을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40여일 후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되었다. 주민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으나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상포된 후 정방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됐다.ⓒ김은숙[/caption] 3・1절 기념대회는 각 읍・면 별로 치러졌고, 제주북국민학교에는 제주읍・애월면・조천면 주민 3만여 명이 모였습니다. 3・1절 행사가 오후 2시에 끝나자 군중들은 곧바로 가두시위에 나섰는데 이 때 관덕정 부근에 있던 기마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치여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고, 기마경찰이 다친 어린이를 그대로 두고 지나가자 흥분한 군중들이 돌을 던지며 항의, 무장경찰은 군중에게 발포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경나온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었고, 사망자 중에는 15세 국민학생과 젖먹이 아이를 가슴에 안은 채 피살된 여인도 있었습니다. ‘3.1발포 사건’으로 민심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미군정에 대한 불만 여론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미군정과 경찰은 사태 수습보다는 시위 주동자를 검거 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이것이 결국 제주4.3으로 가는 단초가 되고 맙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08" align="aligncenter" width="640"]
다랑쉬굴. 다랑쉬굴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길이 30m 인 용암동굴이다. 이곳은 4.3사건으로 피신해 있던 지역 주민 11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현장으로 1992년 발견 당시 유골과 당시 동굴 내부에서 쓰였던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물허벅,요강 등의 생활용품과 낫, 곡괭이, 도끼 등의 농기구가 발견되었다.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입구를 봉쇄했고 굴 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다. 다랑쉬굴은 잃어버린 마을을 조사하던 ‘주제4.3연구소’회원들에 의해 1991년 12월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으며,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만인 5월 15일 한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다. 다랑쉬굴은 유해들이 밖으로 꺼내진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는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김은숙[/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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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레못굴(제주시 애월읍 어음2리 706번지)이곳은 1949년 1월 16일, 토벌대와 민보단이 합동으로 대대적인 수색작전에 의해 동굴이 발각되면서 이 속에 숨어 있던 애월면 어음,납읍,장전리 주민 29명이 집단학살 당하였고 동굴 속에서 나오지 못해 굶어죽은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또 다른 어머니와 딸 4구가 발견된 비극의 현장이다. 토벌대는 전날(1949년1월15일) 봉성리 구몰동이 무장대에 의해 습격을 당한 후 토벌대와 민보단이 대대적인 수색을 벌여 빌레못굴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는 겨울이어서 김이 올라오는 것을 보고 동굴 입구를 찾은 토벌대는 굴 속에 숨어 있는 주민 29명을 집단총살하였다. 또한 남자 아이의 발을 잡고 휘둘러 돌에 메쳐 죽이는 참혹한 일도 일어났으며 이 아이의 어머니와 젖먹이 여동생은 동굴 안으로 깊숙이 숨어들었다가 어둠속에서 길을 잃어 굶어죽은 시신도 1971년 3월 13일부터 15일까지 빌레몰동굴탐사반에 의해 발견되어 유족에게 인도되었다. 이 빌레못굴은 총 길이 11,749로 세계 최장의 용암동굴이며, 천연기념물 342호로 지정되어 있다. ⓒ김은숙[/caption] 제주도민들은 미군정과 경찰의 탄압을 폭로하며 희생자 구호금 모금에 나섰고, 이어 3월 10일에는 제주도청을 시발로 민・관 총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청 등 관공서는 물론 은행・회사・학교・운수업체・통신기관 등 도내 156개 기관, 단체, 회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현직 경찰관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전도적인 파업이었습니다. 3월 14일, 미군정 경무부장 조병옥이 제주도에 와서 총파업을 와해시켜 나갔습니다. 미군정은 3월 15일 전남・북 응원경찰 222명, 3월 18일 경기도 응원경찰 99명을 증파하여 총파업에 강경 대응하였고, 조병옥 경무부장은 3월 19일 담화문을 통해 경찰의 발포는 정당방위였으며 3.1절 집회가와 총파업이 북조선과의 통모로 발생했다는 내용을 공표하여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조작하였습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9" align="aligncenter" width="640"]
3.10총파업이 좌익에 의해 선동되었다고 기술한 미군보고서(1947.3.14.)ⓒ김은숙[/caption]
이 사건 직후 미군정 보고서에는 “제주도는 70%가 좌익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해 있을 정도로 좌익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었으며, 미군정은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3・1발포 사건 이후 1948년 제주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검속되었고, 이것이 ‘Red Hunt’ 즉 빨갱이 사냥의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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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 양민학살터섯알오름 탄약고터는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전국적으로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할 때 모슬포 경찰서 관내의 예비검속된 사람들, 모슬포지역 132명, 한림지역 63명을 학살했던 장소이다. 예비검속이란 ‘사건을 일으킬 사람이라 예상하여 미리 잡아놓는다’라는 뜻이다. 섯알오름 탄약고 터에서 희생된 사람들은 6년 뒤인 1956년에 시신을 수습하여 백조일손지지(조상이 다른 백서른 두명이 죽어 뼈가 엉키어 하나되었다)에 132구, 만뱅듸 공동장지에 62구가 안장되었다. 이분들이 돌아가신 음력 7월 7일에 합동위령제를 이곳에서 올리고 있다.ⓒ김은숙[/caption] 1948년 1월 남한 단독선거안이 명백해지자 남한 내의 많은 정당과 단체에서 잇따라 반대성명을 발표하면서 격렬하게 반발하였습니다. 한반도 영구 분단에 대한 우려로 단선 반대 대열에는 좌파 진영만이 아니라 우파 일부와 중도파까지도 가세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단독선거 찬반 문제를 놓고 우파 진영도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던 상황이구요. 이런 정치 흐름 속에서 남조선노동당(약칭 : 남로당)은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계획을 세웠고 48년 2월 7일의 전국적인 총파업 ‘2.7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제주도내 좌익진영은 47년 3월 10일 총파업 이후 이미 핵심 간부들이 대거 검거되었고 궤멸상태에 있었는데, 미군정은 ‘2.7사건’을 구실로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연행과 취조를 실시했습니다. 48년 3월 학생 박용철이 경찰 고문에 의해 사망, 대정리 출신 양은하씨가 경찰 구타로 사망, 청년 박행구가 서북청년단에 끌려가 구타 후 총살당하는 등 한 달 새 3건의 사망사건이 발생하고, 이는 제주4.3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 맙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5" align="aligncenter" width="640"]
이덕구 산전, 교래 북받친밭(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산 137-1번지)1949년 2월 4일 제주읍 동부8리 대토벌을 계기로 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하고 봉개리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주민들은 당장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더욱 깊은 산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주민들은 은신하기 좋은 곳을 찾아 헤매다 더욱 산속 깊숙이 들어갔으며 이곳 ‘시안모루’,‘북받친밭’까지 와서 은신생활을 했었다. 이곳은 피난 주민들이 귀순한 1949년 봄 이후에는 무장대사령부인 이덕구부대가 잠시 주둔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곳 일대를 ‘이덕구산전(山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엔 당시 움막을 지었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고 음식을 해 먹었던 무쇠솥과 그릇들이 그대로 널려 있다.ⓒ김은숙[/caption] 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 중허리 오름마다 봉화가 붉게 타오르면서 남로당 제주도당이 주도한 무장봉기가 일어났습니다. 350명의 무장대는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 지서를 일제히 공격했고, 경찰과 서북청년회 숙소, 독립촉성국민회, 대동청년단 등 우익단체 요인의 집을 지목해 습격했습니다. 4월 3일 하루 동안에 △경찰=사망 4명, 부상 6명, 행방불명 2명 △우익인사 등 민간인=사망 8명, 부상 19명 △무장대=사망 2명, 생포 1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니 이 날의 참사는 잊지 말아야 할 비극이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제주4.3은 이 날의 무장봉기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는 제주4·3에 대해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북청년회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남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
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제주4・3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우리나라 건국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여에 걸쳐 지속된, 한국 현대사에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입니다. 1947년 3・1절 발포사건과 1948년 4・3 무장봉기로 촉발된 제주4.3은 무장대와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3만여 명의 인명 피해를 가져왔고, 이는 당시 제주 인구의 9분의 1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인원입니다. [caption id="attachment_176116" align="aligncenter" width="640"]
북촌리 너븐숭이 옴팡밭.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일대는 1949년 4.3사건 당시 443명이 희생되는 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옴팡밭은 ‘오목하게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4.3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1949년 1월 17일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당시 이 일대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 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이 밭의 가운데 작은 봉분도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김은숙[/caption] [caption id="attachment_176117" align="aligncenter" width="640"]
너븐숭이 애기무덤. 북촌리 주민 학살 사건 때 어른들의 시신은 살아남은 사람들에 의해 다른 곳에 안장되었으나 어린아이들의 시신은 임시매장한 상태 그대로 지금까지 남아 있다. 현재 20여기의 애기무덤이 모여 있는데 적어도 8기 이상은 북촌 대학살 때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너븐숭이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을 소설가 현기영은 ‘순이삼촌’이라는 소설로 세상에 알렸다. ⓒ김은숙[/caption]
48년 5월 10일, 통일정부의 건설을 바라는 여러 정치세력들의 반대 속에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세우기 위한 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총선거에는 김구와 김규식을 비롯한 남북협상 참가 세력과 많은 중도계 인사들이 참여를 거부함으로써 이승만과 한국민주당, 그리고 일부 중도세력만 출마하였습니다. 초대 국회는 3권 분립과 대통령중심제, 국회의 간접 선거에 의한 대통령 선출 등을 요지로 하는 제헌 헌법을 만들고,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여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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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7월 20일 국회의원들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에 선출됐다. 해방된지 3년째가 되는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선포식이 열렸다.ⓒ김은숙[/caption]
이승만 정부는 10월 11일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본토의 군 병력을 제주에 증파시켰습니다. 그런데 10월 19일 제주4.3 진압을 위해 파견하려던 여수의 국방경비대 제14연대가 반기를 들고 일어남으로써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당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여수순천사건으로 민간인 439명이 경찰과 국군에 의해 집단 희생되었고, 희생자가 2천 여 명에 달할 것으로 조사 보고하였으니 제주4.3과 함께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역사일 것입니다.
48년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이때부터 제주도 중산간 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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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대통령의 계엄령. 토벌대는 1948년 11월 중순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4개월 동안 중산간마을에 들이닥쳐 집집마다 불을 지르고 남녀노소 가림없이 무차별 학살하는 ‘초토화작전’을 자행했다. 학살극은 제9연대장 송요찬이 1948년 10월 17일 ‘정부의 최고 지령’에 따라 ‘해안선에서 5km이외에 있는 사람은 이유여하를 불구하고 총살하겠다’는 포고령을 발표하면서 예고됐고, 11월 17일 계엄령이 선포됨에 따라 본격화됐다. ⓒ김은숙[/caption]
이와 관련한 미군 정보보고서는 “9연대는 중산간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모든 주민들이 명백히 게릴라부대에 도움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는 가정 아래 마을 주민에 대한 ‘대량학살계획(program of mass slaughter)’을 채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8년 10월 당시 9연대 군수참모를 지냈던 김정무는 중산간 마을에 불을 지른 작전을 군 내부에서 ‘초토화작전’이라고 불렀다고 증언한 바 있습니다. ‘제주4・3사건을 완전히 진압해야 미국의 원조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이승만 대통령은 제주도에 대한 가혹한 탄압을 군에 지시했고 이른바 ‘초토화작전’은 미국과의 교감 속에 진행됐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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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제주4.3사건 등에 대해 “가혹하게 탄압하라”고 명령했을 뿐만 아니라, 모슬포 경찰서와 성산포경찰서를 신설했고, 서북청년회 단원들을 경찰과 군대에 편입시켰다.ⓒ김은숙[/caption]
‘초토화작전’에 의해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참혹한 집단 양민 학살이 행해졌으며 4・3사건 전 기간 동안의 희생자 수는 3만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의 연계를 막기 위해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 마을로 강제 소개(疏開)시키고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 태웠습니다.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병자・노인・어린이 등을 포함한 일부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그대로 남아있는 경우도 허다했는데, 이승만 정부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들에 대한 무차별 학살을 자행했으며 소개령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채 방화와 학살이 이뤄진 마을도 많았습니다.
1949년 4월 1일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1948년 한 해 동안 1만 5,000여 명의 주민이 희생되었습니다. 그 중 80%가 토벌군에 의해 사살됐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부터 1949년 봄까지 겨우 몇 달 사이에 군・경 토벌대의 진압작전과 무장대의 보복 살상으로 수만 명의 희생되었고 130여 마을이 소개령 등으로 초토화됨으로써 제주공동체는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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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은 정권의 탄압을 받아 필화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1970~80년대 학살극을 폭로한 소설가와 시인들이 공안당국에 끌려가 고문을 받거나 구속됐다. 이승만의 양아들은 ‘불법 4.3게엄령’을 보도한 언론에 대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1978년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이 발표돼 4.3의 참혹상을 정면으로 폭로하면서 4월 혁명 이후 18년만에 4.3논의의 물꼬를 텄으나 소설은 곧 판금되고 작가는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었다. 1987년엔 이산하 시인이 4.3을 소재로 '한라산'이라는 시를 썼다가 구속됐고, 김명식은1988년 4.3자료집을 펴냈다가 옥고를 치렀다.ⓒ김은숙[/caption]
이것이 제주4.3입니다.
1999년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약칭 : 4・3위원회)가 출범했습니다.
2003년 10월 4・3사건의 진상을 담은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보고서가 확정되었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하여 진상보고서에 근거해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 사실을 정부가 비로소 인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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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10월 15일 '국가 공권력의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고, 10월 31일 노무현대통령은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김은숙[/caption]
그리고 지난 2014년부터는 제주4.3이 국가추념일로 지정되어 정부가 주관하는 행사로 치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않는 제주4.3은 한없이 처량하고 무의미합니다. 바로 당신이 이 글을 읽는 순간 비로소 제주4.3은 역사가 되고 우리의 내일이 되는 것입니다.
어제는 69주기 제주4.3 추념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부터 일 년 동안 제주4.3 70주년을 준비하려 합니다.
지난 3월 1일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 범국민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환경운동연합도 뜻을 모았습니다. 국가공권력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들의 개별적인 배・보상 문제, 재판도 없이 감옥에 끌려 간 이들에 대한 명예회복 문제, 생사조차 알 수 없는 4·3 행방불명인 문제, 제주4·3을 폭동이라 주장하고 제주를 '반란의 섬', '빨갱이들의 천국'으로 매도하는 역사왜곡 세력의 문제, 미군정 시기에 발발한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과 사과 문제 등 제주4.3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모든 생명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생태민주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오늘 제주4.3을 이야기합니다.
이 글을 쓴 저는 제주도가 고향입니다. 제주4.3의 이야기를 들어주신 당신께 정말 감사드립니다.(사료 출처 : 제주4.3평화재단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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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공간 re:born + 벨롱장[/caption]


이번 캠페인은 시민이나 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캠페인이 아닌 새 출발을 앞둔 민선 7기 지방정부에게 일회용품 없는 지방정부 선언 등을 요구하는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환경운동연합은 서울환경운동연합이 “빨대 이제는 뺄대”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광주환경운동연합 ‘1회용품 안쓰기 시민 도전단’,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은 수협과 산하 금융기관에서 사용하는 1회용품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수협 협약’을 체결 예정이며, 당진, 통영거제, 광양, 천안아산, 화성, 광주, 전주, 제주, 창원, 성남환경운동연합 등이 7월 2일 민선7기 지방정부 출범과 더불어 ‘1회용품 없는 지방정부’ 선언을 요구하고 있다며, 전국 51개 지역조직이 함께 “플라스틱 Zero”캠페인에 돌입한다고 설명했다.
최준호 사무총장은 환경을 지키는 것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다수 불편할 수 있지만, 일회용컵 사용을 줄이기 위해 덤블러나 머그컵 등의 사용을 부탁했다.
김춘이 사무부총장이 낭독한 기자회견을 통해 환경운동연합은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를 요구했고, 지방정부에는 1회용품 사용하지 않을 것과 더불어 커피전문점 등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관리, 감독을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했다.
7월 2일 새롭게 출발하는 민선 7기 지방정부에는 일회용품 없는 지방정부 선언을 요구했다.
환경운동연합은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발적 협약한 16개 커피전문점과 5개 패스트 푸드점의 일회용품 사용 감시활동에 동참할 것과 공공기관의 일회용품 감시 활동을 제안했으며, 정기적으로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 후 커피전문점으로 이동하여,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문구를 붙이고, 매장 내에서 음료를 마시는 모습을 통해 시민들에게 일회용컵 사용 자제를 홍보했다.
캠페인을 진행한 커피전문점은 자발적 협약을 체결한 기업의 매장이다. 매장 내에는 환경부의 안내판 배치되어 있고, 직원이 다회용컵 사용을 물어보았지만, 매장 내에는 일회용 플라스틱컵 사용자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플라스틱 Zero 캠페인의 시민의 참여는 아래 링크를 통해 참여할 수 있다.
-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나쁜 매장 신고는 ‘ bit.ly/cafemoniter ’
- 일회용품 사용 나쁜 공공기관 신고는 ‘ bit.ly/00moniter ’

서울시장 후보 중 유일하게 미세먼지를 주요 공약으로 제시하지 않은 박원순 시장.(한겨레, KBS 화면 갈무리)[/caption]
문제는 지금부터다. 박 시장이 앞으로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과거 지키지 못한 공약을 만회할 수도 있고, 해결할 자신이 없거나 다른 이유로 미세먼지 문제와 거리를 둘 수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박 시장은 미세먼지 해결을 주요 공약에 포함하지 않았다. 전기차 보급, 자동차 환경등급제, 실내 공기 질 관리 강화 등 지엽적 대책 몇 가지를 열거한 대기 질 공약은 비전도 목표도 결여된, 논평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박원순 시장은 2013년에 미세먼지 외교 명분으로 베이징을 방문했다. 왕안순 시장은 팔을 잘라내는 용기로 대기오염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서울시의 대기오염 정책을 배우고 싶다 했다. 2013년 당시 베이징시의 미세먼지가 PM2.5(1000분의 2.5마이크로미터보다 입자가 작은 먼지) 기준으로 89㎍/㎥(마이크로그램 퍼 세제곱미터)였고 2017년까지 60㎍/㎥ 이하로 낮추는 것이 목표였다. 같은 해 서울시는 25㎍/㎥였다.
베이징시는 석탄 사용 억제, 난방용 보일러 개조, 자동차 총량 규제, 생산설비 축소, 숲 조성 등 강력한 정책을 실시하며, 2017년에 58㎍/㎥로 목표를 달성했다. 과거 가장 오염이 심했으나 지금은 가장 깨끗한 미국, 유럽, 일본의 도시들과 비슷한 방법이다.
일부에서 베이징시 미세먼지 오염 감소가 배출 시설을 우리나라와 가까운 산둥성으로 옮긴 덕분이라는 낭설을 퍼뜨리고 있지만, 산둥성의 미세먼지도 2013년 98㎍/㎥에서 2017년 59㎍/㎥로 더 큰 폭으로 개선됐기 때문에 일고의 가치가 없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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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caption]
베이징 시장의 부러움을 샀던 서울시는 2017년에도 25㎍/㎥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몇 배나 차이가 있던 서울시와 베이징시의 미세먼지 오염도가 급속도로 좁혀지고 있다. 서울시에는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까?
도시 대기 중 미세먼지는 대부분 난방, 산업, 교통, 기타 각종 소비를 위한 연료 연소로 직접 또는 2차 생성으로 발생한 것이다. 또한 대기오염 물질은 먼 거리를 통해서도 확산되지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농도는 급격히 희석된다. 그래서 모든 국가와 도시는 자기가 통제할 수 있는 오염원 관리를 최우선 대책으로 하고 있고, 주변 지역과의 공동 대책은 그다음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중국 등 외국 영향이 55%, 인천과 경기 그리고 다른 국내 영향이 23%이고, 서울시의 책임은 불과 22%라고 믿고 있다. 이처럼 남 탓을 하고 있으니, 공기청정기나 마스크 지원 또는 미세먼지 오염이 높은 날 세차비 지원 등 대기 질 개선과는 아무 관련 없는 대책을 시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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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미세먼지 발생원에 대한 서울시 주장ⓒ한국일보[/caption]
뒤늦게 서울시가 자동차 교통량 감축을 미세먼지 대책으로 거론해서 제자리를 찾나 싶었다. 그러나 교통 체계 혁신이 아니라 ‘고농도 오염이 예상되는 날의 대중교통 무료 대책’을 실시하는 것을 보니, 아직도 미세먼지 오염의 원인을 모르고 있다. 평상시 미세먼지 오염도를 줄이는 것이 건강에 끼칠 악영향을 줄이는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는 사실에도 배치된다.
정책 실패는 할 수 있다. 깨끗하게 인정하고 원칙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러나 서울시는 ‘마중물 역할’ 운운하며 차량 강제 2부제를 주장하면서 실패한 정책을 합리화하려고 애쓴다. 이웃 지자체와도 갈등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박 시장은 미세먼지 문제와 관련해 경기도와 논쟁이 벌어지자, 호흡공동체라며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서울시는 수도권대기질개선특별법 등을 통해 중앙정부의 혜택을 가장 많이 받았다. 이제는 서울시가 서울시 때문에 혐오시설을 비롯해 각종 부담을 떠안고 있는 이웃 지자체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연대가 되어야 한다. 자기주장에 동조하라는 의미의 연대, 차량 진입 금지 등 배타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식은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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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 혁신을 강조해 온 박원순 시장ⓒ뉴스1[/caption]
미세먼지 대책의 핵심 원칙은 화석연료 사용을 근본적으로 줄이고, 상대적으로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하며, 불가피한 오염물질은 공기 중 배출량을 줄이는 것이다. 미세먼지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저에너지·고효율 사회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된다. 교통, 에너지, 도시 정책의 근본을 바꾸는 혁신과 연결되어야 한다. 박 시장은 “지난 7년은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혁신의 나날들이었다”고 회고했다. 미세먼지 문제야말로 혁신이 필요한 과제다.
박 시장은 대중교통 무료화 정책이 공격받자, 미세먼지로 시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기 때문에 효과가 미미하고 돈이 많이 들어도 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시행착오로 인한 비판을 두려워하며 후퇴할 것이 아니라, 정면 돌파하듯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서울시 미세먼지 문제 해결 여부는 박원순 서울시정의 성공은 물론 박 시장의 더 큰 꿈이 가능할지 결정할 것이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지난 4월 폐기물 대란 이후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대형마트가 '자발적 협약' 체결하여, 1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한데 이어 제과업체도 1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2018년 7월 2일(월) 오전 10시 한국프레스클럽 19층 목련실에서 진행된 '1회용품 사용 줄이기 및 재활용 촉진을 위한 자발적 협약' 협약식에는 환경운동연합 이철수 대표, 환경부 안병옥 차관, 파리바게뜨 권인태 대표이사, 김찬호 씨제이(CJ)푸드빌 베이커리본부장(뚜레쥬르)이 참석했다.
파리바게뜨는 전국에 매장 3,367곳을 보유한 에스피씨(SPC)그룹 소속 제과 브랜드이며, 뚜레쥬르는 매장 1,306개를 보유한 씨제이(CJ)푸드빌 소속 제과 브랜드다.
현재 제과점은 1회용 비닐쇼핑백 무상제공금지 대상 업종 등의 규제를 받고 있지 않으나, 두 업체는 비닐쇼핑백으로 인한 환경오염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비닐쇼핑백을 퇴출하기 위해 이번 자발적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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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 이철수 대표는 " 그 동안 '자발적 협약'을 체결했던 일부 기업의 협약 이행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자발적 협약은 기업의 선의가 아닌 국민과의 약속이라 생각하고, 꼭 이행해 주시기 바란다." 당부했다. 또, 환경부는 자발적 협약으로 끝이라 생각하지 말고, 이행점검이 잘 되고 있지는 점검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는 제과업계가 자원절역과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기로 결정해 준 부분에 대해 감사 인사를 전했다. 환경운동연합은 완화된 규제를 강화하기 위해 환경부와 협력할 것이고, 시민의 생활 깊숙이 스며든 1회용품 사용하는 문화를 바꾸기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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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caption]
환경운동연합 이철수 대표와 환경부 안병옥 차관, 파리바게뜨 권인태 대표이사는 파리바게뜨 명동본점에서 비닐쇼핑백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진행했다.
환경운동연합 51개 지역조직은 지난달 28일 "플라스틱 Zero"를 선언하고, 커피전문점과 패스트푸드점 그리고 공공부문에 대한 1회용품 사용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caption]
우리는 편리성을 추구하는 판대 및 소비행태로 1회용품의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자원의 낭비는 물론 소중한 삶의 터전이 훼손되어 가고 있음을 인식한다.
이에 제과업체를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건전한 소비 문화를 정착시켜 자원을 절약하고, 1회용품으로 인한 폐기물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이는데 적극 동참하고자 한다.
이러한 의지를 실천하기 위하여 실천하기 위하여 1회용품의 사용을 줄이고 사용된 1회용품의 회수 및 재활용을 촉진하고자 "1회용품 사용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다음과 같이 체결한다

‘60초 물환경영화제’는 미래를 책임질 학생과 시민에게 물과 생태환경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마련되었습니다. ‘60초 물환경영화제’는 SBS, 환경부, 환경운동연합에서 주최하는 ‘2018년 ‘제10회 SBS물환경대상’의 부대행사입니다. 각 교육현장에서 환경교육 및 환경보호활동을 담아 적극적인 참여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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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원회는 6일 오전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낙동강 상류를 심각히 오염시켜온 영풍제련소의 만행 고발하고 조업중지 행정처분을 즉각 이행할 것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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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제련소봉화군대책위원회 신기선 회장은 "영풍이 48년 동안 얼마나 심각한 수질오염을 자행했는지 지금까지 밝혀진 것만도 2013년부터 46건이나 되고 최근에도 매년 평균 8건의 오염사고를 일으켜왔다"면서 "영풍제련소 뒷산은 제련소가 매시간 뿜어내는 아황산가스로 인해 나무가 고사해 숲이 사라지고 산성화된 산이 무너져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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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올해 2월엔 처리되지 않은 오수 70여 톤을 낙동강으로 무단 방출시키는 등의 오염행위가 적발되어, 지난 4월 경북도로부터 48년 역사상 처음으로 조업중지 20일의 행정처분을 받았다"면서 "상황이 이런데도 반성은커녕 영풍은 되려 행정소송으로 맞서고 있다"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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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농민회 최만억 회장은 "산좋고 물좋은 봉화마을로 귀농해서 보니 상류에 거대한 공장이 있는 것이 의아했다"면서 "아무리 농사를 지어도 석포제련소 오염덩어리 공장 때문에 농산물의 가치가 하락하여 제값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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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영풍제련소 공대위 소속 지역 주민과 단체들은 영풍문고 대구점 앞에서 62일째 1인시위를 이어오고 있으며 영풍문고 종로점 앞에서는 봉화농민들이 일인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기자회견이 끝난 후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청와대 분수대 앞 1인시위, 영풍문고앞 1인시위 등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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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원회[/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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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원회[/caption]
7월 10일에는 중앙행정심판위원회의 행정심판 심의일에 맞춰 세종시 국가권익위원회 앞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영풍 공대위는 지난 6월 18일부터 '영풍제련소 폐쇄촉구 청와대 국민청원'도 진행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 청원하러 가기 --> 

ⓒ환경운동연합[/caption]
2018년 7월 9일(월) 오후 2시 광화문정부청사 별관에 위치한 광화문1번가 '열린소통포럼'에서 남북환경협력을 고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한반도 생명.평화 공동체를 위한 과제와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는 환경운동연합과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국회의원의 공동주최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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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4.27남북정상선언과 6.12 북미공동성명 이후 한반도는 변화하고 있다. 환경분야에서 환경운동연합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고, 남북환경협력의 방향은 어떻게 흘러가야 하는지 논의가 필요했다. 2002년 12월 환경운동연합은 북측 국토환경보호성과 함께 남북간 환경분야 합의문인 '남북 환경협력사업 추진안'을 합의했다. 남북관계 경색되어 더 이상 사업이 추진되지 못했다. 한반도 평화로 나아가는 지금이야말로 남북환경협력의 중요한 시기이다" 라며 토론회를 준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권 대표는 "남측의 개발논리로 북측의 환경과 산림을 황폐화하는 발전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남북한의 환경, 생태, 주민, 생명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미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토론이 필요하고, 오늘 토론회를 통해 그런 고민을 나누는 시작점, 뭇생명이 더불어사는 한반도로 나아가는 이정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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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원식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은 축사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됨에 따라 남북 교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철도, 교통 등 경제협력뿐만 아니라 환경 분야의 협력 또한 핵심적인 과제이다. 1980년대 서독저부는 정치체제를 초월하여 "독일땅, 독일인"이라는 동질성과 특별한 관계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통일의 기초를 마련했다. 남북한은 환경공동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남북 환경협력을 추진해야 한다.
2007년 10.4선언에 따른 12월 남북정상회담 후속회의에서 백두산 화산공동연구, 대기오염측정시설 설치, 산림녹화사업 등에 대해 합의했다. 남북관계의 악화로 이런 협력 사업은 이행되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10년이 넘게 단절된 남북한의 환경협력의 물꼬를 다시 터야 한다.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번영을 위해 환경협력은 필수적이다. 공업지역, 광산 등 오염된 국토의 환경복원사업을 추진해 나가는 한편, 북한지역 내 대규모 개발사업의 추진에 따른 한반도 환경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공동 검토하는 등 지속가능한 환경 공동체를 만드는데 협력해야 한다. 토론회가 남북한 환경협력을 포함한 한반도 생명. 평화 공동체 실현의 초석을 마련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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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 박천규 기획조정실장은 "환경부는 협력 초기 남북 공동 환경조사를 바탕으로 자연, 대기, 물 등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가는 방안에 대해 관계부처와 함께 준비 중이며, 남북 사업이 한반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실장은 "한반도 지속가능성을 어떻게 담보할 것인가에 문제가 중요하다. 모든 부처와 연구소가 협력과제를 발굴하고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지속가능한가? 한반도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한 관점으로 봤을 때 우려가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DMZ 관광 사업의 경우 생태축의 단절 우려 등으로 인해 환경부 입장에서는 동의하기 어렵고, 대규모 오락시설, 대규모 주차장을 추진에 대해 걱정했다. 그래서 남북협력의 적용되는 원칙과 기준은 필요하며, KOICA 환경.사회 세이프가드와 같은 원칙이 남북간에도 적용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환경운동연합이해정 현대경제연구원 통일경제센터장이 "남북경협 30년 현황과 전망" 에 대해 발표했다.
이해정 센터장은 "남북경협은 정치군사적 요인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1988년 7.7 선언 이후 30년이 지난 2018년은 남북경협 30년, 금강산 관광 20년, 금강산 관광 중단 10년이 되는 해이고, 남북경협의 추진 목적은 '민족 경제의 균형발전 추구'에 있다"고 설명했다.
남북경협 단계별로 구분해 보면, 1988년 7.7 선언 이후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도입기 /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성장기 /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정체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1988년 남북경협이 시작되어, 2018년 30년이 지난 지금 남북경협은 0(제로)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남북경협 재개를 위해서는 고도의 정책적 결단 / 남북관계의 근본적 변화 / 남북 간 합의 /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 남북경협 재개에 대한 국민적 합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해정 센터장은 한반도 생명. 평화 공동체를 위한 과제로 이미 10.4 선언에서 '환경보호'분야에서 협력을 진행하기로 합의했고,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 협약서에서도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며, 10.4 선언 및 4.27 판문점 선언의 이행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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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와 생명의 터' 나일 무어스 박사는 DPRK(북측)와 보전활동에 대해 발표했다.
나일 무어스 박사는 2014년 한스자이델재단과 함께 북측 국토환경보호성, 나선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아 2014년~2018년 서해안 3차례, 나선 5차례, 동해안 3차례 조사활동을 펼친 바 있으며 DMZ 북쪽, 남쪽, 백령도와 고성지역 조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면서 '새와 생명의 터' 남측과 황해생태지역에서 새와 새들의 서식지 보호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 새 중 90%가 철새이기 때문에 남측 지역의 새 보호는 의미가 없고, 북측의 새 보호 활동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면서 "새는 해당 지역의 생태적 다양성, 건강성, 생산성을 가장 잘 나타내는 (정직한) 생물학적 지표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은 자연, 갯벌, 숲에서 많은 생계를 의존하고 있다. 숲에서 땔감과 식량을 얻는다. 북에서의 조사활동의 목적은 람사르 습지 지정 가능한 습지를 확인하고, 연구자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북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 중에 하나는 10월 람사르 개최되는 총회가 있는데, 많은 서류를 영어와 한국어로 번역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나일 무어스 박사는 남과 북이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만 정치 및 경제적 제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반도의 생물 다양성 보호와 지속가능한 환경을 위해 남북의 공동행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북의 국토환경보호성과 파트너들은 제한된 자원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북에서 큰 진전을 이뤘고, 중국의 급속한 경제발전과 인구 증가로 북의 자연자원에 대한 압박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제안하기 전에 보존 인프라와 북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자 하는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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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 평화의 숲 사무처장은 남북환경협력도 철도, 도로, 경제협력 등과 함께 재개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몇가지 제언했다.
이정민 처장은 지속적인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논의와 제도적 장치 마련이 필요하고, 정부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남북실무회담에서 민간단체의 경험과 역량이 활용될 수 있도록 민간단체의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 주민 생활에 가장 밀접한 생활환경 개선이 우선돼야 하며, 산림, 식량, 수질, 보건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단체들이 참여하여 종합적, 체계적으로 계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너지환경지속가능발전연구소 심숙경 박사는 남북환경협력에서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추진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다음과 같이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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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은 남북환경포럼을 구성하였고, 이후 지속적인 논의를 위해 정례적인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4대강사업에 찬동했던 대표적 인사들과 발언ⓒ한겨레신문[/ca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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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오전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환경회의 등 5개 시민환경단체와 이상돈국회의원은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흑산도 공항건설 사업의 백지화를 촉구했다.
이상돈 의원은 “흑산 공항 건설은 가장 중요한 안전성부터 의심 받는 상황”이라 며, “취항 기종과 활주로 길이 등 근본적인 문제부터 재검토하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명박 정권이 추진하고 박근혜 정권이 산하 연구기관의 반대를 무릅 쓰고 졸속으로 승인한 흑산 공항 건설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돈 의원에 따르면, 환경부와 소속 검토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국립환경과 학원, 국립생태원, 국립공원연구원 철새연구센터는 지난 2015년 3월 국토교통부가 제출 한 전략환경영향평가서에 대해 ‘입지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각각 제출한바 있다.
같은 해 6월 국토교통부가 제출한 보완협의 자료 역시 환경부에 의하여 반려되었다. 사업계 획지역인 흑산도 예리 일대가 철새의 중요 서식지 및 도래지로서 이를 감안해서 공항 입지가 결정되어야 하나, 이에 대한 대책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위 일대는 공항 건설로 마을의 산이 잘려나갈 경우, 흑산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는 예리마을이 태풍으로부 터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지역이기도 하다.
국토교통부는 2015년 10월 다시 재보완협의자료를 환경부에 제출하였다. 그런데 국책 연구기관들의 ‘입지 부적절’이라는 계속된 지적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의 환경부는 돌연 해당사업을 ‘조건부 허가’하였다. 불과 4개월 만에 환경부는 ‘입지 부적절’ 입장에서 ‘조건부 허가’로 돌변했다.
한국환경회의 등 5개단체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 흑산도 공항의 실체는 작년 국정감사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부분적이나마 드러났고, 오늘 이상돈 의원이 배포 한 보도자료를 통해 추가적인 문제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과거 정권의 비호 아래 자행된 불법과 특혜의혹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추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국립공원위원회 심의가 아닌, 감사가 실시되어야 한다"며 " 국립공원위원회 심의를 당장 멈추고 흑산도공항 건설사업을 백지화하라"고 촉구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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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8일 오늘은 5년전 서울대공원 수족관에 갇혀있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고향인 제주바다로 돌아간 날이다. 이보다 앞서 6월13일 ‘삼팔’이가 방류되었고, 제돌이와 같은 날 ‘춘삼’이도 고향으로 돌아갔다. 국내 최초로 수족관 돌고래에서 자연으로 방류된 제돌, 삼팔, 춘삼은 제주 연안에 서식하는 돌고래 모니터링에서 동종의 무리 속에서 발견되어 자연 적응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후 2년 간격으로 2015년 ‘태산’과 ‘복순’이, 2017년 ‘대포’와 ‘금등’이 수족관 감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고향 바다로 자유를 찾아갔다.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는 지난해 7월 18일 제주에서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로 자연에 방류된 ‘대포’와 ‘금등’을 계기로 전국 수족관에 갇혀있는 돌고래 현황을 파악한 결과, 총 7개 시설에 모두 39마리의 돌고래가 억류된 사실을 확인했다.
그후 제주에서 ‘대포’와 ‘금등’의 방류에 앞서 전국 수족관에 갇혀서 학대와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39마리의 돌고래 모두를 고향 바다로 보내는 일명 ‘전국 수족관 억류 돌고래 구출작전’ 캠페인을 진행하였다. 수족관에 억류된 돌고래를 고향바다로 돌려보내는 일은 자유를 억압당한 채 고통받는 돌고래에게 야생성을 회복하고 자연으로 회향시키는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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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수족관 돌고래 및 흰고래 현황 (2018년 7월 15일 기준)[/caption]
이와 함께 자연 생태계에서 전통 문화라는 미명으로 다른 야생동물과 달리 고래고기의 식용과 유통을 목적으로 불법 고래 포획 및 혼획의 성횡을 차단하는 것이 바로 ‘고래고기 유통 금지’ 캠페인이다. 우리나라의 포경 역사가 100년 남짓한 것을 볼 때 고래고기가 전통 문화라는 이유는 군색하다.
오히려 육상 야생동물의 식용을 금지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의 취지와 형평으로 볼 때 멸종위기종이자 해양 포유동물인 고래류의 식용과 유통의 허용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국제사회에서 규정한 포경 금지 국가임에도 고래고기의 식용과 유통은 허용되는 이상한 포경금지 국가로서 자기모순이 지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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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위와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올해 제돌이 방류 5주년에 맞추어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뷰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35명을 대상으로 ‘고래고기 식용’과 ‘수족관 돌고래 방류’에 대한 여론조사를 진행하였다. 이번 조사는 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3.8% 응답율이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수준이다.
우선 ‘고래고기 식용’에 대한 조사에서 전체 대상 중 약 72.3%가 ‘반대’ 의견을 보였고, 나머지 27.7%는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래고기 식용에 대한 ‘반대’ 입장이 ‘찬성’보다 무려 44.6%P 높은 압도적인 우위를 보였다. 고래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긍정적인 인식에 비해 약 2.3배나 높아 전통문화라는 이유는 국민 정서와는 괴리가 큰 것으로 드러났다.
또 ‘수족관 돌고래 방류’에 관한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 중 ‘찬성’이 약 71.3%이고 나머지 28.7%가 ‘반대’ 입장을 보였다. 고래고기 식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고래를 수족관에 가두어 쇼나 체험의 대상으로 이용해서는 안되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두가지 설문에서 확인되듯이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은 고래류에 대한 공통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고래류는 더 이상 식용으로 유통하거나 수족관에 가두어서도 안되며 자연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인간과 공존해야 하는 대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고래고기의 유통은 전통문화로 유지하기에는 역사가 너무 짧고, 멸종위기종의 식용과 유통을 허용함으로서 오히려 국제적 비난과 자기모순을 자초하고 있다.
이제 국민 다수가 고래고기 식용에 반대하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해수부는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를 근거로 소수 고래 유통업자의 이익을 보장할 것이 아니라, 촛불정부로서 국민 대다수의 뜻을 즉시 정책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고래고기 식용과 유통은 명분도 약하고 정당성도 없다. 즉각적인 금지 조치를 위한 공론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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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수족관 돌고래 방류도 마찬가지다. 이미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돌고래 쇼장을 폐쇄하는 추세로 접어들었고, 포경국가인 일본의 수족관협회도 타이지에서 잔인하게 포획, 유통되는 돌고래의 반입을 금지한 바 있다.
우선 서울시와 울산 남구는 서울대공원에서 제주 퍼시픽랜드로 이송된 큰돌고래 ‘태지’와 고래체험관에 억류되어 있는 큰돌고래의 방류를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방류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일본과 국가간 외교영역을 포함해 큰돌고래의 생태적 평화를 실현하는 자연 방류에 머리를 맞대 협의와 협력에 나서야 한다. 흰고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러시아와의 국제적 협력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한 사안이다.
이제 국민들은 고래류의 평화와 자유를 원한다. 고래고기 식용과 유통을 금지하여 완전한 포경 금지 국가로서 위상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다. 아울러 전국 수족관 돌고래 39마리의 회향을 위한 국가간 공조를 포함해 구체적인 로드맵과 이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바이다.
-. 국민 다수가 원한다. 고래는 생선이 아니다. 고래고기 식용과 유통을 금지하라!
-. 대다수 국민의 뜻이다. 전국 수족관 억류 돌고래 방류하라!



피니시(Pinisi)를 타고 인도양을 누볐던 부기스인들의 모습 (Museum La Galigo, Makassar) ⓒ홍선기[/caption]
피니시(Pinisi)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Sulawesi) 남부 불루쿰바(Bulukumba)에 거주하는 부기스-마카사르(Bugis-Makassar) 계통의 하위 부족인 콘조(Konjo) 부족에 의해 전수되고 있는 전통 항해 보트이다. 현재도 해양부족인 부기스 부족, 마카사르 부족에 의하여 인도네시아 전 해역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으며, 관광용으로 일본이나 필리핀 등 각지에서 주문을 받고 있다. 피니시 선박 제조방법은 2017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전통 목조 선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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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소 주변 해안가 풍경. 주변 조선소에서도 피니시를 건조하고 있음 (술라웨시 불루쿰바 조선소에서 촬영)ⓒ홍선기[/caption]
피니시는 순수하게 나무로 건조하고 있고, 길이는 보통 20~35미터, 무게는 350톤 정도 되는데, 2011년에 50미터 길이(폭 9미터), 500톤의 피니시를 건조한 사례가 있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기동성 있는 모터를 장착한 동력 선박이 유행하기는 하지만, 피니시의 인기는 여전하고, 오히려 세계 선박 애호가들의 수집품이나 관광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조상이 세계 7개 대양을 누비며 살아왔음을 의미하는 7개의 주 밧줄을 이용한 닻과 2개의 마스터가 기본으로 되어 있으며, 쇠못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목재를 이용하여 이음새를 맞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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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중인 피니시. (술라웨시 불루쿰바 조선소에서 촬영)ⓒ홍선기[/caption]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이곳 술라웨시 불루쿰바(Bulukumba)의 전통선박 제조에도 어려움이 다가오고 있다. 첫째, 규모에 맞는 대형 목재를 조달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되어 인근 섬에서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다. 둘째, 전통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선박업체들의 인력난이다. 이곳에도 역시 전통제조업은 어려운 것 같다. 셋째, 오랫동안 맨투맨 방식의 전통지식(traditional knowledge)으로 이어져 온 전통산업이라 선박 제조 매뉴얼 체계가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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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선박 재능보유자, 무하마드 아리프 새농(Muhammad Arief Saenong)씨와 인터뷰. ⓒ홍선기[/caption]
다행히 불루쿰바(Bulukumba)에서 오랫동안 피니시를 제작했던 노인을 만나서 인터뷰를 했다. 무하마드 아리프 새농(Muhammad Arief Saenong)씨. 아쉽게 나이, 가족 상황을 자세히 여쭙지 못하였지만, 고령임에도 불고하고 본인이 평생 정리해 온 피니시 선박 건조 방법을 그림과 사진으로 남겨 놓았다. 타인에 의하여 그의 관한 기록이 인도네시아 책으로 남겨졌지만, 그것과 관계없이 새농씨는 평생 피니시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그냥 노트에 펜으로 남긴 기록물을 보여주면서 아쉬워하는 노인을 보고, 인도네시아 동료 교수에게 정리의 필요성을 설명하였고, 자신의 제자들과 함께 내용을 정리하겠다고 약속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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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하마드 아리프 새농(Muhammad Arief Saenong)씨가 기록한 노트, 사진 그리고 새농씨를 소개한 책. ⓒ홍선기[/caption]
언젠가 인도네시아에 가면, 100루피아 지폐 뒷면에 피니시 그림이 있음을 확인해 주시기 바란다.
전통지식은 참으로 대단한 인류의 삶의 지혜이고 저장창고이다. 인도네시아 멋진 피니시 목선의 제조과정과 스토리를 접하면서 전통지식을 유지, 전승하기는 어렵지만, 해양관광이라는 새로운 국제시장에서 활성화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전통 조선 산업을 보니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에서 수십년 쓰던 중고 여객선이 들어와서 사용되고 있고, 2-3인용의 조그마한 선외기까지 FRP로 만들어 내는 우리나라 소형조선업계의 새로운 판로는 없는 것일까.
도시와 섬을 연결하는 첨단 스마트 선박이 악천후에도 불철주야 목포에서 흑산도, 인천에서 백령도, 포항에서 울릉도로 내달릴 수 있는 시대는 언제쯤 올 것인가.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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