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개헌에 국민참여는 필수적”

지역

“개헌에 국민참여는 필수적”

익명 (미확인) | 수, 2017/03/15- 15:25

“개헌 과정에서 촛불로 상징되는 민의를 수용하기 위한 법적 근거와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법안의 취지입니다”

지난 3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백년포럼 시즌1의 첫 번째 포럼 ‘개헌, 시민의회법, 시민의회의 제도화’에 발표자로 나선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개헌과 같은 중요한 일에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최근 국회 개헌특별위원회 산하에 시민의회(법안에는 ‘시민회의’)를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민참여에 의한 헌법개정의 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법안 다운로드는 여기(2017-백년포럼-시즌1_1st-자료집_1)를 클릭하세요)

이 법은 추첨으로 선발된 200-300명의 시민들로 시민회의를 구성해 개헌안에 대한 토론과 심의, 공론조사, 의견서 제출 등을 하도록 했다.

토론에 나선 이장희 외국어대 전 부총장은 “현재 개헌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국민투표 밖에 없다”며 “국민투표가 실질적인 국민참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시민들에 의한 의제 발의와 심의를 보장한 이번 법안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김상준 경희대 교수는 “지금과 같은 대결적 정치문화에서 정치권이 선거법이나 개헌 핵심 이슈에 대해 합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정치권과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시민의회가 개헌안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모아내고, 이를 정치권이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에는 연성수 2017민주평화포럼 공동대표, 이지문 추첨민회네트워크 대표 등이 참석했다.

한편 지난 7일에는 김상준 교수가 강사로 나서 두 번째 포럼 ‘왜 시민의회인가, 시민의회의 논리와 사례’가 열렸다.

오는 21일에는 신촌 르호봇에서 이지문 박사의 세 번째 포럼(‘왜 추첨인가, 시민의회와 추첨민주주의’)이 열릴 예정이다.

11-11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내년 예산을 염두에 두고 기획재정부에서 향후 경제운용계획에 제4차 산업혁명의 추진내용을 집어넣겠다고 뜬금없이 언론에 공표했다. 배경에 상관없이 한국 미래를 걱정하는 일단의 올바른 결정이다. 그러나 겉치레와 면피용 행정을 넘어서 제대로 방향을 설정하고 내실있는 성과를 만들어 가려면 치밀한 토론과 성찰이 필요한 주제이다.

이명박의 ‘녹색성장’과 박근혜의 ‘창조경제’같은 황당한 오류를 되풀이해서는 아니 된다. 마침 지난 2월, 제5회 백년포럼에서 다루었던 주제였기에 당시 보조 자료로 작성했던 내용을 약간 보완하여 다시 재구성 해본다.

수면 위로 떠오른 ‘4차 산업혁명’

올해 1월말, 스위스의 관광도시 다보스에서 2016년 세계경제포럼이 열렸다. 초기에는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경제인모임으로 시작되었던 다보스포럼은 매년 참여 범위를 넓히면서 정치인, 과학자들 그리고 많은 국가의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단체들이 함께하면서 논의 주제도 매우 다양하게 확대되어 왔다.

Jan-28th-Davos-798x498-820x417
(이미지 출처: http://www.gereports.kr/)

수많은 인사들이 참여하였고 매우 광범한 주제들이 논의되었으나, 그 중에서도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제가 단연코 핵심적 내용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단어는 새롭다기보다는 미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이미 여러 해 전부터 회자되었으나, ‘다보스포럼 2016’을 통하여 화려하게 세계적 관심을 받는 주제로 떠오른 셈이다.

4년 전, 2기 오바마 행정부는 세일가스(Shale gas) 채굴기술의 성공 등에 자신을 얻어 ‘USA제조업의 부활’을 선언하였다. 미국 내 주요 제조 산업체들은 자신들의 고유 분야에 전통적으로 강한 유통과 서비스 그리고 소프트웨어 산업의 경험과 기술을 재결합시켜 제조 산업분야의 혁신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유럽에서도 오비이락처럼 물리학박사 출신인 독일의 메르켈수상이‘Industrie 4.0’을 주창하고 강력하게 추진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대서양 양편에서 공식적으로 수면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첨단기술과 과학의 통합…새로운 차원의 산업혁명

제4차 산업혁명의 주요영역이 컴퓨터 기술과 인터넷 환경에 기인한다는 점에서 이를 제3차 산업혁명과 분리하여 별도로 지칭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기존의 제3차 혁명은 주로 공장자동화, 사무자동화, 금융과 물류시스템 혁신 등에 집중하여 이루어지고, 개별기업, 개별산업, 개별국가 단위에서 이루어진다.

201601285ch
(이미지 출처: http://news.kbs.co.kr/)

반면 제4차 산업은 기존의 컴퓨터에 로봇기술, 인공지능(AI), 감지기술(remote sensors), 무제한적인 데이터 저장, 사물인터넷( IOT)의 등장, 네트워크간의 새로운 결합 등 새로운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이 누적 결합되면서 개별적 영역에 머물던 제3차 산업의 영역에서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과학과 기술의 통합된 형태 (integrated system of all modern & advanced S&T)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디지털(digitalization), 자동화(automation), 전기전자(Electricity & Electronics) 등이 중심기술로 역할하게 된다. 동시에 전 세계를 석권한 금융 산업과 지구적 차원의 생산거점과 시장을 확보한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 미래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 이상 한 지역과 한가지 산업에 머물지 않고 국가경계와 산업별 장벽을 넘어서 전 세계를 기반으로 하게 된다(end to end loops in integrated space & industry ).

자본재 및 소비재 시장의 수요가 감지기술 등에 의해 축적된 빅데이터(big data)를 통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되면 이러한 통계가 기존 제품의 생산 및 새로운 제품의 기획자료가 되어 유연하게 자동화된 무인시설을 통하여 생산과정을 거치면서 역시 무인화된 물류체계와 거점을 통하여 시장과 수요자에게 공급된다.

이 과정에서 생산 및 서비스 설비의 운영상태와 조건이 실시간으로 확인되고 종합되어 최적의 관리와 적정한 정비를 사전적으로 시현하게 된다.

예컨대 하늘을 나는 점보 비행기의 엔진과 주요 기능품 상태가 1초 단위로 항공사와 공급업체에게 실시간으로 제공되어 언제 무슨 제품의 어느 부품이 교환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고 안전한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한국에 설치된 발전소의 GE 주요 설비에 대한 운용정보가 원공급자인 미국 GE의 종합진단센타에 실시간으로 제공되어 본사에서 원격으로 해결할 것은 즉시 조치되고, 한국 현장에서 조치해야 할 사항은 실시간으로 현장기술자에게 통보되어 처리지시가 이루어진다.

앞서 가는 미국

이러한 이야기는 단지 인건비가 비싼 선진국 뿐 아니라 임금이 싼 중국같은 국가에서도 발견된다.

세계철도산업의 40% 를 차지하는 중국의 차량바퀴를 생산하는 공장의 경우 각 차량의 운용상태에 대한 정보가 실시간으로 종합되어 매일 생산해야 할 수요량과 사양이 무인과정을 통해 생산에 투입된다. 대부분 공정이 자동화되어 14억 인구가 매일 이용하는 철도차량의 바퀴를 생산하는 현장에는 10명 남짓한 종업원만 일하면 충분하게 된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실현되면 이미 구축된 정보시스템과 결합되어 자가용이 필요없는 시대가 된다. 또 다양한 감지기능 기술과 데이터 분석기법이 보편화되면서 산업활동뿐 아니라 개인의 일상적 요구사항을 손 안의 모바일 콘트롤러 또는 핸드폰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1014_NI_santorini_FO
(이미지 출처: http://electronicdesign.com/)

미국은 이미 세계적인 독점을 형성한 소프트웨어 및 정보산업을 기반으로 대표적인 제조업체인 GE를 중심으로 Industrial internet consortium -IIC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GE 회장은 GE가 더 이상 전통 제조업체가 아닌 소프트 산업회사임을 선언한다. 반면에 아이폰 공급업체인 애플사는 자동차를 움직이는 컴퓨터(mobile computer)로 정의하면서 자율주행 자동차 생산을 암시하기도 한다.

지난 11월29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inancial Times)는 기술혁신이라는 특집을 통하여 한물 간 것으로 평가됐던 Microsoft 사를 재조명했다.

2015년 기준 120억불(13조원)이라는 엄청난 기술개발비를 인공지능(AI) 분야에 투자한 나델라(Nadella) CEO는 마치 빌 게이츠가 개인 컴퓨터 시대를 예측하고, 스티븐 잡스가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듯이, AI의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그는 모든 산업분야와 모든 일상생활의 영역(all walks of life, every industry & business process)에서 인간과 대화하고, 판단하고, 업무를 처리하는 AI 개발에 전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독일, 일본, 중국의 대응

미국기업들이 화려한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다면, 전통적 기술을 기반으로 착실하게 종합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독일의 대표주자인 지멘스(Siemens)사는 2015년 하노바 산업전시회에 ‘Industrie 4.0’에 기초한 중형 규모의 유연 무인화 방식인 생산공장(smart factory) 및 기업경영 모델을 소개하면서 새로운 도전의 문을 열었음을 선언했다.

paikshow_qEzVvGOMVAS
(이미지 출처: http://www.zdnet.co.kr/)

일본은 전통적으로 강세인 첨단로봇산업에 전략적으로 집중하면서 새로운 산업의 핵심 영역을 차지할 기세이다.

중국은 거대한 인구와 시장을 배경으로‘next 10years project’를 통해 세계 제조업의 중심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각종 자동화산업에 주력한다, 예컨대 산업용 표준로봇이 유럽과 일본에서 2억-3억원 대 가격을 형성하는데 비해 중국은 1억원 미만의 로봇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소수의 일부 학자들은 컴퓨터 산업 및 인터넷환경이 인류에 미치는 영향은 증기기관으로 움직였던 철도산업에 못 미치며, 제4차 산업혁명보다 제2차 산업기에 만들어진 세탁기 발명이 훨씬 중요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제 인류는 전대미문의 새로운 혁신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하며, 제4차 산업의 도래를 무시하는 태도는 기계화가 도입되던 시대의 러다이트운동처럼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이라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위협: 기술 격차의 확대

문제의 핵심은 이전의 산업혁명들은 노동과 일자리를 새로운 형태로 전환시켜 왔으나 (예컨데 제1차 산업혁명은 농업중심에서 공장제 제조업과 육체노동으로, 제2차 산업혁명은 근육질 노동에서 사무직 관리직업무로, 제3차 산업혁명은 서비스와 지식산업중심으로 이동시키면서도 과거보다 더 많은 일자리들을 만들어 냈다), 제4차 혁명은 기존의 일자리 형태를 바꿀 뿐만 아니라 많은 일자리를 단기간 내에 없앨 수 있다는 점이다. 

많은 논쟁과 토론이 진행 중인 주제에 섣부른 예단은 피해야할 것이지만,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몇가지 논쟁점들을 나열해본다.

1KW8GRW1XZ_1
지난 5월 서울경제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인공지능(AI)과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로봇 등이 이끌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최대 부작용으로 양극화 심화가 61.7%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대량실업, 인간 효용가치의 하락, 기계의 지배 등 순이었다. (이미지 출처: http://www.sedaily.com/)

‘Industry 4.0’의 통합적 종합적 기능은 기존의 산업체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효율과 성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그러한 성과가 마르크스와 케인즈가 예언하였듯이, 모든 국가와 개개인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인류의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진행 과정에서 기업간, 국가간 개별 단위의 생존전략과 결합되어 경쟁과 탐욕으로 상호 간에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릴 위험성이 매우 높다고 할 것이다.

우선 빅테이타를 처리하는 핵심 중앙정보센타의 투자 규모만도 수 억에서 수 십억 달러에 달하며, 전체 시스템 구성에 필요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개발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가 요구된다.

따라서 이를 감당하기 위해 기업간 연합과 합병이 불가피하다. 위에 예로서 언급한 세계 최대 규모의 제조업체인 GE 조차도 다른 분야의 기업들과 연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투자의 위험을 상쇄하기 위해 경쟁사였던 프랑스의 알스톰(Alsthom)사를 합병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독일의 거대기업인 지멘스(Siemens)그룹만이 독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하에 독자적인 실행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더구나 승자독식의 성격이 강한 핵심기술로서 정보산업, 소프트웨어 및 인터넷환경을 미국이 장악한 상태에서 새로운 기술제국주의의 위험성조차 내재되어 있다. 최근 구글 등 미국계 기업과 중국 및 유럽국가 간의 갈등은 이를 암시하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미국과 더불어 세계 5위권 경제대국인 독일, 중국, 일본 및 인도 그리고 한국 정도가 겨우 국가 단위의 지원과 전략을 통해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외 대부분의 국가와 기업들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부분적 영역에 한하여 하청 협력을 구해야 할 형편이다. 우리가 흔히 디지털 격차와 소외를 이야기하듯이 미래에 형성될 ‘industrie 4.0’은 그 규모와 기술적 수준에서 국가간, 기업간, 지역간 새로운 격차를 형성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4차 산업혁명의 위협: 사라지는 일자리

이미 언론에서 보도됐듯이, OECD 국가를 기준으로 500만명 정도가 수 년 안에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한다. 제3차 산업혁명의 진행과정에서 형성되어온 중간수준의 관리직의 약 50% 정도가 조만간 일자리를 잃고, 장기적으로는 반복적인 작업을 하는 육체적 노동 뿐 아니라 단순한 판단을 하는 관리직종 대부분이 사라질 위험에 있다고 전망된다.

문제는 기존의 산업혁명처럼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지면서 기존의 직업군을 대체하고 보충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로봇과 AI가 해낼 수 있는 영역에서는 더 이상 인간이 일할 기회가 없어진다고 보아야한다. 제4차 산업혁명이 만들어내는 기술영역과 인간영역 간 절충과 타협이 가능할 수 있을까?

표준적이지 않은 직업군으로 혁신(innovator), 발명(inventor), 전략분석(data interpreter), 경영판단(decision makers), 그리고 문화예술 활동 등은 별다른 영향없이 독자 생존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AI 기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답변일 것이다. 오히려 문제의 해결은 기존 방식이 아닌 새로운 개념으로 일자리를 재규정하는 것이다. 노예가 대부분의 생산 활동을 담당했던 그리스 도시국가 시절, 정치공동체 일원으로서 시민의 역할이 새로운 일자리에 대한 하나의 암시가 될 것이다.

낡은 관습과 제도를 버려라 

위에서 암시하였듯이, 미래의 교육에서 암기식, 주입식 교육은 완전 무의미해진다.

무심한 판사의 판결보다 AI의 사안처리 능력이 더 공정하고 투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단순한 회계학 역시 미래에는 on-line 방식의 회계시스템에 자리를 내주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교육은 제공된 정보와 지식을 재해석하고, 새롭게 창의하는, 한마디로 적용된 기술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영역으로 이동해야 할 것이다.

494_502_1217
세상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쏜살같이 날아가는데, 교육은 여전히 근대 초기의 교육 형태로 남아 있다. 흔히 한국의 교육현실을 21세기 아이들에게 20세기 교사들이 19세기 지식을 주입하는 것으로 묘사하곤 한다. (사진 출처: http://www.k-today.com/)

산업체계 내에서는 복잡한 시스템을 운용하고 분석하고 처리하는 고도 수준의 전문영역군과 전략적인 판단을 하는 책임자군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성과를 모두가 공유하게 된다면, 업무시간도 대폭 단축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생산과 서비스 산업 영역에서 해방된 영역 – 교육, 문화, 연구, 취미, 운동, 사회활동 등에 주로 시간을 보내게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될지 모른다.

문제는 급격히 변해가는 혁신 환경과 새로운 산업체계 속에서 쏟아지는 재화와 서비스를 소비할 수 있는 시장수요를 만들지 못하고, 공유하는 순환의 과정을 형성하지 못하면, 제4차 산업혁명은 백악기 공룡과 같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스스로 고립된 조직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해갈 것이라는 점이다.

소비처가 없는 생산과 서비스는 무의미하다. 또한 지구라는 제한된 지리적, 자연적 환경 요인 역시 명백한 한계로 작동할 것이다.

한국처럼 극심한 양극화를 보인 미국 대선에서 보여준 버니 샌더스의 예언과 같은 외침, 유럽 내에서 급속히 퍼지고 있는 기본소득, 건전한 시장질서와 함께하는 공동체로서 사회국가에 대한 갈망 등은 이러한 새로운 사태를 예감하는 시대의 자각이다.

다보스포럼의 주요 토론을 담은 유튜브 영상들을 보면, 한결같이 인류의 미래에 대한 각 단위별 지도자들의 책임에 무게를 두고 있다. 개인단위, 기업단위, 사회단위, 국가단위 그리고 국제단위의 지도자들의 책임지는 역할을 요청하고 있으며, 그 중에도 글로벌 기업들의 지배구조와 경영진 그리고 사회적 책임이 핵심적 주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는 주주중심의 편협한 경영에서 이웃과 함께 하는 사회공헌과 지구의 미래, 특히 지속가능한 에너지원과 환경조건을 기업경영의 본령이자 전략목표로 삼도록 하는 지배구조의 전환이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익실현이라는 자본의 탐욕을 기본 축으로 운영되는 기업의 속성을 감안하면, 과연 어떤 기업의 책임자가 스스로 자기 목에 동아줄이 될 방울을 달겠는가? 그나마 이러한 주제들이 국제 규모의 포럼에서 스스럼없이 토론되었다는 사실에서 새로운 희망은 시작된다고 위로를 삼는다.

혁신 친화적 사회시스템 만들어야

영국에서 제임스 와트가 만든 증기기관으로 인류역사의 전대미문의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에, 프랑스의 발명가인 파팽이 먼저증기기관을 발명했다. 그러나 당시 유럽사회는 이러한 혁신기술을 받아들일 준비와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파팽이 발명한 기관을 달은 화물 증기선이 라인강에서 운행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길드조합원들에 의해서 파괴됐다.

그의 아이디어가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시피 강의 화물선에 적용되었으나 기술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조만간에 자취를 감추고 만다. 산업적, 경제적 이해와 정치적, 사회적 제도의 차이가 증기기관의 발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둘러싸고 와트와 파팽의 운명을 갈랐다. 제4차 산업시대의 도래를 목전에 둔 한국사회에 매우 중요한 암시를 준다.

근세 유럽에 화약 종이 나침반 등 주요한 발명품을 선물한 중국은 자신들의 낙후된 봉건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채 한때 전 세계를 누볐던 정화(鄭和)제독의 선단 이야기를 전설로 묻고 세계 GDP의 30-40%를 차지했던 풍요로운 역사를 뒤로 한 채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승수적 발전을 거듭한 조그만 섬나라 영국에게 아편전쟁에서 패하고 무릎을 꿇는 치욕을 당한다.

한글이라는 독창적 문자를 만들고,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틀’이라는 손기구를 발명하고도 이를 대량인쇄가 가능한 구텐베르크 방식의 기계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한 조선의 이야기도 동어반복이다.

목전에 닥친 제4차 산업혁명의 거센 기류는 ICT 강국으로 알려진 한국사회에게도 분명히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다.

20121006015613013
한 나라의 정치, 경제체제가 포용적이고, 혁신 친화적인가에 따라 그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사진은 인종과 자연환경이 거의 유사한데도 국경 담장을 사이에 두고 빈부격차가 뚜렷한 미국 아리조나주의 마을과 맥시코 마을. 사진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실린 사진.

당연히 과학기술의 발전과 산업적 적용이 일차적인 당면과제로 다가오겠지만,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와 줄세우기 방식으로는 불가능하다.

정부는 일반적으로 개별기업과 혁신적 창업자들이 마음놓고 활동할 수 있는 개방된 산업 운동장을 만들어야 한다. 편향없는 적극적인 지원을 통하여 기술개발과 혁신활동을 일상화하는 환경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미국의 IIC 같이 경쟁을 보완하는 협력의 플랫홈을 유도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기술적 제국주의에 대응하여 국가간 수평적이며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기위한 정부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

종합적인 산업과 과학기술 정책에 더불어 입시와 서열중심인 현재의 양육식 초중등 교육제도를 핀란드 교육제도처럼 학생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창의적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치 제도와 절차를 모두가 참여하고 모두에게 공의로운 제도로 재정립해야 한다.

기술개발과 산업활동의 결과를 0.1% 만이 독식하는 현재의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을 폐기하여 99%가 함께하면서 창의와 활력을 담보할 협력의 네트워크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기본소득 개념처럼 내용의 성과물을 국민 모두가 함께 공유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등 새로운 시대 흐름의 요구를 시급한 과제로 받아들여 미래를 준비하고 실천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제4차 산업시대의 한국의 미래는 실패한 파팽의 증기기관, 그리고 손기구에 지나지 않는 조선시대의 ‘금속활자판’ 이야기에 머물 것이다.

 

“강력한 성장은 강력한 제도에서 비롯된다, 특히 개방되고 포용적인 민주적 제도라는 조건에서 형성되는 혁신을 통해 이루어진다(‘The strong growth is all about strong institutions, particularly the open inclusive institutions of democratic system, which create the condition of innovation’ – in ‘Breakout Nations’ written by Ruchir Sharma.)”

수, 2016/12/14- 11:09
1,126
0

“Hasta la victoria simple, Fidel!”

쿠바 공산당 기관지 그란마는 지난달 26일 90세로 영면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의 타계 소식을 전하며 “영원한 승리의 그 날까지, 피델!”이라는 말을 영전에 바쳤다.

00421F1B00000258-3592603-image-a-7_1463485048352
쿠바 혁명의 아이콘 피델 카스트로. 지금의 쿠바를 만든 장본인이지만, 독재자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사진 출처: http://www.dailymail.co.uk/)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끈 동지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볼리비아 게릴라전에 투신하기 전 남긴 이 문구만큼 카스트로를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을 듯하다.

“혁명을 뭔가 섹시한 것으로 만든 사람”

외신들에 따르면 무상 교육ㆍ의료로 대표되는 쿠바식 사회주의를 체험한 쿠바 시민들에게는 “카스트로가 곧 쿠바이자 혁명”이었다. 아흐레 동안 진행된 추모 기간 동안 “내가 피델이다”를 외치며 작별인사를 하는 시민들이 거리를 매웠다고 한다.

반면 카스트로를 바라보는 서구 언론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8일자 조간 1면에 “무수한 면을 가진 카스트로”라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내고, 카스트로가 쿠바를 50년 넘게 통치하며 혁명가에서 독재자로 퇴색해가는 과정을 설명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달 27일자에 실은 국제담당 칼럼니스트인 사이먼 티스달의 칼럼을 통해 카스트로를 “게릴라 지도자, 독재자 그리고 완고한 혁명가”라고 평가했다. 티스달은 그러면서 “체 게바라와 함께 혁명을 섹시한 무엇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1
지난달 26일, 쿠바 하바나에서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들은 대학생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왼쪽 사진). 그러나 같은날, 미국 마이애미주 쿠바 망명객 밀집 지역에서는 쿠바인들이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카스트로가 현대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중앙아메리카 카리브 해의 작은 섬나라의 지도자에 불과했지만 169㎞ 거리에 이웃한 세계 최강 미국의 역대 대통령 11명을 상대하며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했다.

투옥된 게릴라… 체 게바라와 쿠바 상륙작전

카스트로는 1926년 8월 쿠바 동부 오리엔테주 비란의 스페인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5년 아바나대에 입학, 법학을 전공하며 좌파 학생운동에 몸을 담았다. 1947년 쿠바인민사회주의당에 들어가면서 정치활동을 시작한 그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글을 읽으며 사회주의 혁명의 꿈을 키워간다. 

1
카스트로는 사탕수수 플렌테이션을 가진 부유한 아버지 덕분에 어린시절 카톨릭학교를 다니며 유복하게 자랐다(왼쪽). 그리고 사회주의 사상에 심취하기 시작한 대학시절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trinity.edu/)

운명의 날을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풀헨시오 바티스타의 쿠데타로 친미 군사독재정권이 세워진 1952년 그는 반독재 투쟁 선두에 선다. 이듬해 7월 26일 산티아고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면서 바티스타 정권 전복을 꾀했지만 실패하고 15년 형을 선고 받고 투옥된다.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인 ‘7월 26일 운동’일의 유래다.

직접 변론에 나선 카스트로가 “역사가 나의 무죄를 증명할 것”이라고 밝힌 당시 법정진술은 역사를 바꾼 명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운명적 만남도 곧장 이어진다.

정권이 안정됐다고 판단한 바티스타는 1955년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한다. 카스트로는 정치적 탄압을 피해 멕시코로 망명하고,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출신의 젊은 의사 체 게바라를 만난다.

3cc2298580bc372e286a8b5fbdc29844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무장게릴라 투쟁은 20세기 혁명사의 동화같은 이야기다. 이같은 수많은 사진은 그들의 무장투쟁을 더욱 로맨틱한 것으로 이미지화했다.

두 사람은 이듬해 11월 상업용 요트 ‘그란마’호에 몸을 싣고 82명의 ‘카스트로 혁명군’의 일원으로 쿠바로 잠입한다. 하지만 상륙 과정에서 교전으로 대부분이 희생되고, 피델 카스트로와 동생 라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등 생존한 10명은 내륙으로 숨어들어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2년 여에 걸친 무장투쟁 후 이들은 1959년 1월 1일 수도 아바나를 접수했다. 카스트로를 특별사면 했던 바티스타는 포르투갈로 탈출한다. 카스트로의 혁명이 성공한 것이다.

완고한 혁명가… 교육 개혁과 의료 보험 국영화

카스트로는 농지개혁, 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 혁명조치를 내걸었다. 1959년 5월 농장 주가 가지고 있던 농지는 농민들에게 무상 배분됐다. 카스트로의 아버지 안젤 카스트로가 평생 일군 비란의 농장도 당시 몰수 대상이 됐다.

교육 개혁과 의료보험 국유화 등의 정책을 펼치며 무상교육·무상의료 시스템도 만들어나갔다. 쿠바는 지금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사를 해외에 파견하는 나라다. 유아사망률은 1,000명당 4.7명으로 미국보다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수립 직후 미국을 방문하는 등 국제관계에서도 유연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카스트로는 대중 연설을 통해 “새로운 쿠바는 문명적이고 민주적 정부체제를 갖출 것”이라고 천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는 1961년 3월 미국이 쿠바 내 반란군을 지원한 ‘피그스만 침공 사건’이 발생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냉전 상황에서 쿠바는 소비에트연방(구 소련)과 급속히 가까워진다. 카스트로는 그 해 4월 쿠바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이라고 규정했고, 12월에는 자신은 마르크스ㆍ레닌 주의자라고 선언했다.

Khruschev-with-Fidel-Castro-Rolex-Day-Date-and-Submariner-
1963년, 모스크바 크레믈린에서 당시 후르시쵸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마주 앉은 카스트로. 당시 카스트로는 왼쪽 손목에 두 개의 로렉스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이 중 하나는 쿠바 현지 시간을 표시했다. 자신이 항상 쿠바 현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적 제스추어였다.

1962년 핵탄두를 쿠바에 배치할 것을 소련에 요청한 ‘쿠바 미사일 위기’로 카스트로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맞서면서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위기상황을 맞기도 했다.

1960년대 쿠바 아바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성지였다. 전 세계 좌파 진보 지식인과 정치인들이 성지 순례하듯 하바나를 찾았다. 프랑스의 지식인 부부 장 폴 샤르트르와 시몬느 보브와르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를 찾아 1960년 쿠바를 방문했다.

이들은 전세계 사회주의자가 고대하는 혁명을 이뤄낸 카스트로가 사회주의 실험에도 성공하길 기원했다. 카스트로는 “쿠바에서 불의와 불평등은 사라질 것”이라고 공언하며 전세계 사회주의 혁명의 대부로 자리매김해 나간다. 특히 중남미를 비롯한 제3세계 좌파의 맏형 노릇을 했다.

2014년 1월 쿠바에서 중남미카리브해국가연합(CELAC) 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각국 정상들은 앞다퉈 그를 찾을 정도로 적지 않은 영향력을 이어갔다.

독재자… 항구 개방이 쇄락 신호탄

카스트로는 하지만 쿠바 공산당 일당 독재 체제를 강화하며 장기 집권에 나선다.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고, 언론ㆍ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았다.

1959년부터 1976년까지 내각책임제 하의 총리를, 1976년부터 2008년까지 국가평의회 의장을 지내며 반세기 가까이 최고 통치권을 행사했다. 권력을 동생 라울에게 이양한 뒤에도 ‘헤페 막시모(jefe maximo•최고지도자)’로 남아 있었다.

경제도 좀처럼 활력을 찾지 못했다. 1962년 시작된 미국의 금수조치로 무너진 경제는 끝내 다시 세우지 못했다. 쿠바 경제는 냉전 시기 소련의 원조에 의존했고, 이후에는 중국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515125124
1980년 4월, 미국 마이애미주의 한 해변에서 이민수속을 기다리는 쿠바 난민들.

불만을 품은 쿠바인들은 미국으로 망명하기 위해 보트에 몸을 실었다. 카스트로 정부도 항구 개방으로 맞불을 놓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전과자 등 12만5,000여명을 미국으로 방출한 ‘마리엘 보트리프트’ 사건은 쿠바 쇄락의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쿠바 혁명 후 지금까지 쿠바를 떠난 사람이 100만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카스트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지난 2008년 은퇴한 이후 대중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올해 4월 19일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서는 죽음을 예견한 듯 “곧 90세가 된다. 아마 이번이 내가 이 홀에서 말하는 마지막 순간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세상의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하다면, 아무도 행복할 수 없다”

카스트로는 지난 4일 자신의 고향이자 혁명의 발원지인 산티아고 데 쿠바의 산타 이피헤니아 묘지에서 영면했다. 19세기 쿠바 독립영웅이자 그가 평생 존경했던 호세 미르티의 무덤 앞에 묻혔다. 묘지 옆에는 1953년 7ㆍ26운동 당시 그와 함께 몬카다 병영을 습격하다 숨진 반군 병사들의 묘지가 있다.

201611270106_61130011094037_1
2015년, 쿠바를 방문한 프란체스코 교황과 면담하는 카스트로. 그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삼선의 파란색 아디다스 점퍼가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 AP)

카스트로는 생전에“쿠바의 정체성은 단지 공산주의 이념만이 아니라 독립운동가 호세 마르티의 사상에서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마르티는 독립 투쟁을 벌이면서도 “단 한 사람이라도 불행한 국민이 있다면 그 누구도 편안하게 잘 수 있는 권리가 없다”며 소외된 약자를 챙겼다. 카스트로는 마르티의 철학을 무상교육과 무상의료 등 각종 정책을 통해 실현하려 애썼다는 평가를 받는다.

60년간 어긋났던 미국과 쿠바의 관계에 화해의 다리를 놓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역사는 한 인물이 그의 주변 사람들과 전 세계에 미친 엄청난 영향을 기록하고 판단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목, 2016/12/15- 15:13
672
0

시민의회란 국회 밖의 또 하나의 국민적 합의기구다. 시민의회는 국회가 해결해야 함에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의 주요 쟁점 사안들을 대안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제도다. 시민의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국회의 기능을 보완한다.

시민의회 구상의 계기

필자가 이런 생각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03년부터였다. 부안 방폐장 문제로 해당 지역이 소위 ‘민란’ 수준으로 뒤집어진 즈음이었다. 그 문제만이 아니었다. 그 이전 새만금 개발을 둘러싼 갈등도 심각했다. 또 그 이전 의약분업 사태는 어떠했던가.

1
왼쪽부터 의약분업, 새만금개발 반대 시위, 부안 방패장 반대시위 모습. 지난 30년 간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시민사회 내부의 이익, 가치 대립에 의한 공공갈등이 폭발했지만, 이를 효과적으로 조정해내고, 상호이익의 지점을 발견하는 민주적 합의 절차와 역량은 부족했다.

김대중, 노무현 연이은 ‘민주정부’ 시절이련만 봉합되지 않는 대형 사회 갈등은 심각했다. 이러한 사태에 정부는 무력했다. 국회는 더 심각했다. 사실상 부재(不在)했다. 자기 당의, 또는 국회의원 각자의, 정치적 이익을 위한 정략적 립 서비스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누구도 팔 걷고, 공적, 정치적 소명, 생명을 걸고 나서지 않았다.

고심의 첫 결과는 2004년 발표한 “성찰적 합의체제”였고, 2005년에는 이를 발전시켜 “시민의회”라는 법적 제도를 제안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광우병 사태까지를 보면서 나는 그 소회, 또는 시민의회 제안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썼다.

 

새만금 개발, 의약 분업 문제, 위도 핵폐기물 처리장 문제, 대통령 탄핵 문제, 광우병 관련 촛불 집회 등의 경과는 현재 우리 사회 공공정책과 정치적 결정 과정에 많은 문제가 잠재할 뿐 아니라, 이들 문제가 충격적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터져 나옴을 말해준다.

잠재한 문제들은 일상적 시기에는 어떠한 표현의 통로도 없다가 일단 문제가 제기되면 예기치 못한 방식과 경로를 통해 한꺼번에 분출하고, 이렇듯 분출한 흐름들은 상황의 압력 아래 잠정적으로 무마되거나 고형화한다.

하지만 그 귀결에 대해서는 문제의 당사자 어느 쪽도–‘진’ 쪽만이 아니라 ‘이긴’ 쪽도—진심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 진정한 토론도, 합의도, 승복도 찾을 수 없다. 법에 의한 강제적 합의나 결정은 승복이 아니라 오히려 원한의 무거운 찌꺼기들을 더 깊이 침전시키기만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들의 발생, 진행, 귀결을 돌이켜 볼 때, 사회 운영의 양대 축이라 할 효율과 정의 모두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위협받는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지의 민주주의』 2011년 증보판 196, 315 쪽; 2009년 초판 183, 290 쪽)

2004~5년 새로운 제도 구상을 고심하면서 가장 큰 참고가 되었던 선례는 ‘덴마크 시민과학회의(Danish Board of Technology)’였다. 주로 과학기술이 공공생활에 가져다주는 예상치 못한 결과(위험)에 대해 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미리 검토하고 그 결과(관련 분야 예비법안)를 의회에 제안하는 법적 기구였다.

내가 구상했던 시민의회의 핵심 원리인 ‘무작위 추첨 선발’은 주로 이 제도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나왔다. 민주주의 정당성의 두 기초는 선거와 추첨, 양 축에 있음을 정치사상사와 철학 공부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art_1455676882
고대 아테네는 추첨에 의해 공직자를 선출했다. 그들은 민주주의란 엘리트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보통사람의 자기 지배이기 때문에 누구나 공직을 맡아 나랏일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현재 한국의 녹색당도 이런 식의 추첨을 통해 대의원을 선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국회는 선거에, 시민의회는 추첨에, 그 정당성의 근거를 두고 있다. 국회와 시민의회는 두 정당성에 기초해 병립·보완할 수 있다.

그 당시 한국에서도 유사한 소규모의 실험이 있었다. 1998, 1999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는 ‘유전자 조작 식품의 안전과 생명윤리에 관한 합의회의’와 ‘생명 복제 기술에 관한 합의회의’를 열었다. 2001년 주요 시민단체들은 ‘개인 유전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유용성에 대한 합의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덴마크 시민과학회의와 한국의 합의회의들을 연구하면서 나는 같은 방법과 원리를 정치 분야, 즉 공공정책과 정치개혁에도 확장 적용할 수 있다고, 아니, 해야만 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2005년 시민의회는 헌법기구의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시민의회의 사례들

내가 생각했던 형태의 시민의회(The Citizens Assembly)가 실제로 이후 여러 나라에서 실제로 법제화되어 소집되었다. 이들 시민의회가 다루었던 의제는 크게 둘이다. 하나는 선거법 개정이고(캐나다, 네덜란드, 호주 등), 다른 하나는 개헌이다(아이슬랜드, 아일랜드).

현실적으로 이 두 문제 모두 국회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렵다. 중이 제 머리 깎을 수 없는 원리와 같다. 그 선거법으로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그 선거법을 제대로 고칠 리 없다. 한국을 봐도 마찬가지다. 지역주의와 대량 사표를 유발하는, 그토록 말 많았던 망국적 선거법이 의연히 건재하고 있다.

놀랐던 것은 과거 노무현 정부 탄핵 정국 이후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을 때조차도 선거법은 고쳐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대로 된 문제제기조차 없었다. 선거에서 이긴 이상, 자신을 국회로 보내준 그 선거법의 수혜자인 여당이 그리고 여야 막론 국회의원 개개인 모두가 그 선거법을 발본색원 고칠 생각을 할 수도 없고, 할 리도 없다.

다운로드
1980년 광주는 시민의 자기 조직화 및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형적 모습을 모여준다. 시민항쟁으로 공권력이 물러나자 시민들 사이에서 자치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스스로를 규율하고, 운영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개헌 역시 마찬가지다. 혁명 또는 혁명에 준하는 극히 비상한 상황이 아니면 국회에서 제대로 된 개헌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우리가 세계 역사에서 보는 이런 방식의 혁명적 개헌이란 기존 국회를 타도하거나 해산시킨 후, 혁명적으로 수립한 제헌의회에서 새로운 헌법을 채택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시민의회라는 제도적 통로를 통해, 혁명적인 또는 준 혁명적인 변화를 지극히 평화적인 방식으로, 더 나아가 가장 공정하고 공개적이며 이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내가 애초에 고심해 보았던 시민의회의 궁극적 기능이 그러한 것이었고, 실제 시행되었던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서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함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껏 그 생각은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가능하다’에 머물러 있었다. 과연 이 나라 이 땅에서 그것이 실제로 가능할 것인가? 현실이 될 수 있는가?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난 알 수 없었다. 그저 깜깜하고 차가운 땅 속에서 간신히 숨 쉬고 있는 한 알 씨앗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 한 달 동안 난 알게 되었다. 그것은 가능하다. 지난 10월 26일 (나는 ‘제2의 10·26’이라 부른다) 이후 불과 한 달 10여 일 간, 모든 잠재성이 현실성으로 바뀌었다.

주권적 국민의 출현, ‘유일한 실재’

이 놀라운 사태 변화의 핵심, 이 변화를 낳은 ‘실재’의 힘은 오직 하나다. 급격한 변화의 여러 현상에 헷갈려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현재 여러 사태 변화의 유일한 근거, 근원적 힘, 여기에 주목해야 한다.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여러 복잡한 부차적 사태 변화에 속지 않는다.

그것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듯, 그토록 거대하면서도 그토록 평화로웠던, 지금까지의 세계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진실로 특이한 ‘주권적 국민’의 출현이다. 이 거대한 몸체는 오직 한 곳에 집중했다. 국가의 핵심 문제, 국가권력의 문제, 주권 문제다. 대통령의 권력행사, 여기에 주목하고 집중했다.

지금껏 수없이 강조돼온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언명은 사실은 지극히 추상적이다. 선언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고작 대통령 뽑고(투표하고)…국회의원 뽑고(투표하고)…에 국한된, 그걸로 끝나는 권력이었다.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하는가, 그것이 어떻게 자신을 형상화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다.

그러나 동시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무소불위의 위력을 가지는 언명이기도 하다. 그 무소불위, 천수불의 의미를 이제 현실로 보여야 한다. 구현해야 한다.

지난 한 달 십여일, 우리가 여실히 목도하고 동시에 그 일부가 되어 함께 했던 것은 일몰의 어두운 지평선에 허리를 펴고 일어서는 거인의 모습, 그 측량할 수 없는 몸뚱아리였다. 지구를 딛고, 우주를 받치는 것만 같았던, 그 거대한 허리를 서서히 그러나 아무도 저항할 수 없을 것 같은 위력으로 쭈욱 펴고야 말았던, 바로 그 몸체였다.

628_556_4254
이번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들은 스스로 주권자임을 확인했고, 나라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세상을 지배하는 거인이 서서히 몸을 일으켜 자신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한 것과 같다. 그림은 스페인 궁중화가 프란시스코 고야의 ‘거인’

우리는 400년 전의 한 사람, 겁 많았던 영국인 토마스 홉스가 상상했던 그 바다 괴물, 리바이어던으로서의 국가 주권의 담당자, 절대적 권력자, 독재자로서의 왕권, 주권이 아니라, 그 세포를 이루는 모든 국민이 생생하게 살아 우뚝 선 주체가 되는, 권력자가 되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주권의 출현을 우리 눈으로 생생히 보았다. 한 방울의 피도 없었다.

지난 세계사를 돌아보자.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홉스 리바이어던의 국가 주권의 역사는 실은 피와 정복의 역사, 폭력과 지배의 역사였다. 그러나 지난 한 달여 이 땅에서 우리 온 몸으로 배운 새로운 주권의 역사는 깨어있는 평화의 놀라운 위력의 역사였다. 이 대비는 현저하다.

지난 한 달여 이 땅에서 일어난 모든 변화의 중심, 실로 ‘유일한 실재’는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이 힘을 믿고 가야 한다. 국회 탄핵 가결도 헌재 인용도, 그 이후의 일정도 마찬가지다.

국회 탄핵만 해도 그렇다. 탄핵 가결이든 부정이든 상관없었다. 가결, 그것도 압도적 가결이 되어 국회가 살았지만, 만일 부결되었다면 국회는 그 순간 날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날아간 그 국회의 자리에 그 가짜 국회가 아닌 진짜 국회, 전혀 새로운 국회를 세웠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헌법재판소 역시 똑 같다. 기각시키면 이번에는 헌재가 날아간다. 헌재의 헌법적 정당성이 공중 분해된다. 황교안 대행체제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 현란한 플레이를 펼치고 싶은 모든 정치인들, 정파들, 정치세력들도 꼭 마찬가지다. 이 유일한 실재에 충실하지 않으면 모두가 사라진다.

엄동설한이 왔다고 내심 기뻐하는 이들. 그래서 촛불은 꺼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두려워해야 한다. 여야 마찬가지다. 이미 일상은 당신들이 생각했던 세계가 아니다.

지극히 특별한 순간이다. 오직 하나의, 유일한 실재에 충실해야 한다. 그래야 살 것이다. 그 유일한 실재가, 우리 헌법 1조 2항의 그 추상적인 존재가, 현실의 몸체가 되도록 하는, 그 길에 나서는 개인, 세력, 집단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이러한 순간에야말로 추상적인 말은 필요 없다. 감상과 감흥도 일순이다. 그 유일한 실재를 현실화하는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이 중요하다. 그 유일한 실재, 국민적 주권의지가 현실로 될, 현실의 몸뚱아리, 뜻만 아니라 몸통과 손발과 힘을 가진 현실의 실체가 될,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 할, 그 경로와 방법이 무엇일까?

모두 이것 하나만 생각하고, 여기에 충실해야 한다.

‘사회개혁기구’ : 사회개혁 아젠더 제기

그 경로와 방법 역시 그 ‘유일한 실재’가 결정할 일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을 나는 모른다. 다만 보잘 것 없는 필자가 우둔한 머리로 지금 생각해 보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선 ‘사회개혁기구’를 범정파적으로 출범시켜야 한다. 유력한 야권 대선 주자들이 손을 잡고 앞장 서 주면 좋겠다. 실제로 한 야권 유력 후보가 실제로 제안했던 것이기도 하다. 다만 크게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고 조그맣게 자신 없게 말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다. 이 안은 그의 조그만 입안의 것만이 아니고, 이 나라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

신망 받는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먼저 정치 지도자들에게 권고하고 동참해 주셔야 할 일이기도 하다. 이번 탄핵에 ‘가(可)’ 표를 던진 소위 ‘비박’의 양심 있는 국회의원들이라면, 그들의 리더들이라면 왜 그 일에 빠질 일이겠는가. 다가오는 대선은 앞서 말한 ‘유일한 실재’인 수백만 촛불 민의로 현전(現前)한 ‘국민적 주권의지’의 선택에 의해 결판난다. 그 의지 앞에 가장 깨끗하고 충직한 심장을 열어 보이는 자가 선택될 것이다.

‘87년 개헌’이란 결국 개헌특위 여야 8인 간사의 ‘밀실타협’의 결과였다. 이번엔 그럴 수 없다. 주권적 국민의 의지는 우선 범 정파적 ‘사회개혁기구’에서 첫 번째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의지에 몸체를 주는 기도(祈禱), 공덕(功德)의 제1 단계다. 새 나라 ‘아젠다 설정(Agenda setting)’ 이라 해도 좋다.

범정파의 논의를 통해 헌법상의, 또는 하위 법률상의 시급한 주요 개혁 항목들이 정리될 것이다. 여기에 필자가 생각하는 셋 또는 넷의 굵직한 축이 있지만, 여기서 그럴 것을 늘어놓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기구 내에서 정리될 문제다.

‘사회개혁기구’에서 제기된 아젠다들은 각 항목마다 둘 또는 셋 정도의 입장들로 정돈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범정파+시민사회의 의견이 다채롭게 제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들 들어, 대통령제 4년 중임이냐, 내각제냐, 아니면 프랑스식 이원제냐는 식의 선택지다. 또는 선거제도에 관해서는 우선 대통령 결선투표제 문제의 가부가 있겠고, 어쩌면 그보다 중요할 국회 선거법에 관해서는 현행 소선거 다수득표제냐, 독일형 연동비례대표제냐, 아니면 또 다른 대안적 제도냐(예를 들어 Single transferable vote와 같이 많은 정치학자들이 이상적인 선거제도로 생각하는 경우들)와 같은 선택지가 주어진다.

참고로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시민의회를 헌법적 기관으로 둘 것이냐, 아니면 법률적 제도로 둘 것이냐와 같은 선택지도 있다.

시민의회: 개혁 아젠더의 심의, 의결

마지막 남은 문제는 이렇게 나열된, 각 주요 사항마다 복수로 제출된 그 아젠다들을 어떻게 최종 결정하여, 그것을 현실로, 법안으로, 제도로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다. 방법이 중요하다. 현실화시킬 구체적인 방법의 문제다.

기존 의회제도는 이 마지막 단계에서 늘 주저앉았다. 우리 국회도 마찬가지다. 내부, 각 당, 그리고 각자의 이해관계 때문에 말만 무성할 뿐 결국 결정할 수가 없다. 개헌적 사항이 반드시 포함될 이 결정은 개헌선의 3분의 2 다수를 반드시 요청한다. 과연 현재의 국회 내 이합집산, 동상이몽으로 보아 그 수준의 합의를 이루어내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반드시 통과해야 하지만, 현재 국회의 내적 특성상 해결하지 못할 이런 상황을 타개할, 현재로는 유일하게 실현가능한 경로, 방법이 시민의회다.

‘사회개혁기구’에서 정돈한 아젠다의 심의(deliberation)를 국회가 소집한 시민의회에 부쳐라.

1-36
캐나다 온타리아주의 시민의회(왼쪽)와 아일랜드의 개헌을 위한 시민의회 참가자들.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 공통적으로 확인된 시민의회 심의과정의 두드러진 강점은, 초기에는 여러 의제가 경쟁하다, 중반에는 둘로, 종국에는 하나로 초다수가 모아진다는 점이다.

또한 시민의회의 논의 과정은 공정하고, 공개적이며, 이성적이다. 이미 입증되어 있다.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국민이 믿고 동의할 수 있다.

이렇게 모아진 합의는 국회의 심의·결정에 부쳐질 것이다. 개헌에 관한 사항은 3분의 2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게 모아진 합의를 국회는 (국민이, 여론이 동의할) 부수적 보완을 할 수 있겠지만, 부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개헌에 관련되는 사항은 모아서 개헌안이 될 것이고, 이는 최종적으로 국민투표에 부쳐진다.

이 시나리오는 대선과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선을 정말 대선답게 만들 것이다. 국민이 후보를 바라보는 대선이 아니라, 대선후보가 국민을 바라보는 대선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세스가 대선 투표 이전에 완료될지, 그리하여 차기 대선이 새 헌법에 따라 치뤄질지, 아니면 대선 이후까지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어느 경우든 상관없다. 어떤 경우든 대선은 현 상황에서 오직 유일한 실재, 즉 국민적 주권의지의 강력한 몸체 속에서 치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금, 2016/12/16- 12:13
159
0

트럼프 정부 초기의 동아시아 및 한반도 정책을 전망하기 위해 주요하게 조명해야 하는 요소는 ‘인물’이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당의 지원을 거의 받지 않고 ‘개인기’에 의존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나 유대계의 입김에 좌우되는 미국 대외정책의 근본 틀까지 넘어서지는 못하겠지만, 적어도 공화당의 기존 정책노선에 얽매일 필요는 없는 조건이다.

특히 트럼프는 핵심 지지층의 바람과 거리가 있는 정책을 펴도 용인될 정도로 상대적인 자율성을 획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결국 중요한 것은 트럼프 자신과 외교안보 참모진이 중국과 북한, 한국‧일본 등을 보는 시각이다.

1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을 가늠할 수 있는 외교안보라인 주요 인물. 왼쪽부터 플린 국가안보보좌관, 틸러슨 국무장관, 매티스 국방장관, 폼페오 CIA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외교안보 진용 구성에서 나타난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중‧대북 강경파를 기용했다. 마이클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내정자, 마이크 폼페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내정자 등은 중동 및 동아시아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지향한다.

둘째, 군 출신 인사를 중용했다. 플린 보좌관과 매티스 지명자는 전형적인 군인이고, 폼페오 국장도 육사를 나왔으며, 존 켈리 국토안보장관도 해병대 장성 출신이다. 군사자원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외교정책이 입안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셋째, 트럼프 당선자 개인의 선호와 ‘고집’이 관철됐다. 대통령의 아젠다인 외교안보 분야 인사에서 당선자의 뜻이 최우선 반영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국무장관 정도는 공화당 지도부가 천거하는 인물을 앉히려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랜 저울질 끝에 선택한 이는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였다. 공화당 지도부가 뜨악해 하고 언론들도 반대하는 친러시아 성향 인물이다. 대러 제재 중인 유럽도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가 자신의 색깔대로 대외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마이클 플린 안보보좌관의 ‘위험한 편견’

가장 주목해야 하는 인물은 안보보좌관 플린이다. 한때 부통령 후보로 뛸 것이란 예측이 나왔을 정도로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가장 신뢰하는 사람이다. 지난달 트럼프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첫 회동에도 트럼프의 딸‧사위와 함께 배석했다.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에 상주하는 안보보좌관으로서 초기의 대외정책은 그의 손으로 빚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시아에 대한 플린의 인식은 그가 공동저자로 참여해 지난 7월 출간된 책 ‘전쟁터’(The Field of Fight)에 나타나 있다.

플린은 이 책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과 북한, 중국 등의 정부가 맺은 ‘동맹’에 대해 미국이 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북한과 중국에서부터 러시아, 이란, 시리아, 쿠바, 볼리비아, 베네수엘라, 니카라과까지 확장되는 연합체와 마주한다”며 “국가뿐만 아니라 알카에다, 헤즈볼라, 이슬람국가(IS) 등 수많은 테러단체로부터 공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2
트럼프의 한반도정책에 가장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플린 국가안보보좌관과 그의저서 ‘the Field of Fight’

플린이 열거한 국가나 테러단체가 미국에 적대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동맹을 맺고 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억측이다. 하지만 플린이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현실이다.

중국사와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존 딜러리 연세대 교수는 “이슬람 극단주의를 제거해야 한다는 플린의 집착이 중국의 부상, 일본의 재기, 북핵 등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그의 시각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에 논평했다.

플린은 10월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북한의) 현 체제를 오래 존속시켜서는 안 된다. 김정은과 경제적 거래를 할 생각은 없다”고 단언했다.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강조하면서도 “일본과 한국은 전화(戰禍)에 휩싸였던 70년 전과 같은 경제 상황이 아니다. 경제 대국으로 성장했다”고 언급했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더 내야 한다는 뜻으로, 트럼프와 꼭 같은 생각이다.

캐슬린 맥파런드 국가안보부보좌관 역시 매파다. 그는 지난 8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중국이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의 군사력 증강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활용해 한다. 중국이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과 무역을 하는 다른 나라의 기업들에 대한 제재도 강화해야 한다”며 이른바 ‘세컨더리 보이콧’을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외교 총사령탑인 국무장관에 렉스 틸러슨을 기용한 것은 적어도 동아시아 정책만큼은 플린 안보보좌관이 있는 백악관이 주도할 것임을 시사한다. 틸러슨은 공직 경험이 없고, 대외 문제에서의 경험은 주로 러시아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틸러슨은 장관 지명 후 성명에서 “우리는 동맹을 강화하고 공통의 국가이익을 추구하며 미국의 힘과 안보, 주권을 향상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강조점이 없는 지극히 원론적인 언급이다. 그가 한반도 문제를 인식하는 데 있어 러시아의 입김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정부 내 수많은 강경파들을 뛰어넘어 그의 생각이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란-북한 연계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

국방장관에 내정된 매티스는 ‘미친 개’라는 별명처럼 터프한 군인이다. 중동지역을 관장하는 중부군사령관을 지내던 중 이란 핵협상 등 그 지역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표하다가 해임됐는데, 동아시아 문제에 대한 특별한 입장이나 언급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매티스는 2013년 상원 청문회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동맹을 지지하고 역내 주둔 미군의 확대를 주장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이란처럼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으며, 중국이 남중국해 등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간다면 중국을 견제하는 정책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군 출신 인사의 전형적인 시각이다.

북핵실험 위력비교
(이미지 출처: 연합뉴스)

폼페오 CIA 국장 내정자는 3선 하원의원을 지낸 군 출신 정치인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초강경 우파나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으로 분류되는 만큼 북한에 대해서도 매파적인 태도를 견지해 왔다. 그는 지난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미국을 매우 위험한 길로 끌고 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새로운 제재로 즉각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북한은 오바마 대통령이 맺은 이란 핵협정의 끔찍한 미래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란과 북한이 서방에 대항하는 ‘악마의 파트너십’을 맺어 핵 관련 기술과 물질을 불법적으로 공유해 왔다고 주장했다. 며칠 후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경제력‧군사력을 모두 동원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폼페오는 이어 2월 북한이 ‘광명성 4호’ 장거리로켓을 발사한 직후에도 성명을 발표해 이란과 북한을 ‘미친 정권’이라고 표현했다. 북한의 두 차례 도발 모두 당일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점은 그가 한반도 동향에 꽤나 민감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에 대한 양립 불가능한 요구

물론 그 누구보다 중요한 인물은 대통령이다. 트럼프의 입장은 비교적 오랫동안 노출되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다.

동북아 정책과 관련해 선거 기간과 당선 후 일관되게 보여준 방향은 △뚜렷한 친러·반중 노선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이익 중심의 접근 △한국·일본이 안보비용을 더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 등으로 요약된다.

200943777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북핵, 사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등이 한미 간 현안으로 등장할 것이다. 북한은 새 행정부에 맞춰 북미관계에서 이니셔티브를 쥐려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이같은 트럼프의 기조와 외교안보 참모진들의 성향을 볼 때 트럼프 정부 초기 한반도 정책의 특징은 네 가지로 전망할 수 있다.

첫째,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를 부정하며 북한에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겠지만, 기본적으로 한반도 정책은 대외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릴 공산이 크다. 트럼프와 참모진 대부분이 우선 천착하는 이슈는 이슬람국가(IS) 대응을 비롯한 중동 문제다.

그 다음은 러시아 문제다. 동북아에서는 중국과의 관계 재설정을 우선 추진할 것으로 보이는데, 한반도 문제는 그 하위 이슈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둘째, 북한 핵·미사일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군사적 수단과 대화·협상 사이에서 출렁거릴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때 “김정은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는 말과 “김정은은 미치광이 같다”는 말 사이를 오갔다. 적어도 정부 출범 초기에는 갈피를 잡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지난 2일 대만 총통과의 통화를 통해 ‘하나의 중국’ 원칙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며 미중관계의 근간을 흔든 바 있다. 그러면서도 지난 11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미국이 대만 이슈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리면 중국은 북한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고 대북제재를 위한 국제공조는 붕괴된다. 그러면서도 중국에 대북 압박을 요구하는 그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트럼프 정부의 대북 갈지자 행보는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셋째, 미중관계 재설정을 위한 대 중국 압박 차원에서 한국에 ‘미국이냐 중국이냐’ 양자택일적 결단을 강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 과정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어체계)의 한반도 배치를 밀어붙이고 나아가 동북아 미사일방어(MD)의 통합을 재촉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한·일 위안부 합의 등 한·미·일 3각 협력 강화를 위해 미국의 배후 지원으로 추진됐던 사항들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최근 이같은 요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넷째, 한국을 더 강하게 포섭하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올려달라는 상충되는 요구를 할 것이 확실시된다. 주한미군 철수 혹은 축소 위협을 하면 한국이 결국 받아들일 것이라는 자신감이 미국에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MD를 통합하는 과제도 트럼프의 MD 회의론이 변수로 꼽히지만, 비용을 한국이나 일본에 부담시킨다면 추진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월, 2016/12/19- 10:58
537
0

일요일 아침 조선일보 온라인 판에 실린 주간조선 편집장의 글 (혁명이 지나고 나면…)을 읽고 나서, 필자는 그동안 써왔던 ‘다른백년을 꿈꾸며’라는 미래구상적 칼럼을 일단 중단하고 당장의 현실을 비판하는 시론의 형식으로 글을 올린다. 상기의 글에서 차마 쓰지 못한 주간조선 편집장의 속내는 다음과 같을 것으로 추론해본다.

“황교안 대행체제가 잘 버텨주고, 시민들의 촛불 열기가 점차 수그러들면서 생활과 경제가 어렵다는 공론이 돌고, 헌재의 탄핵 인용이 시간을 끄는 과정에서 반기문과 결합한 새누리당이 다시 부활해 차기 재집권에 성공하면 기득권 체계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것이 무지몽매한 군중들이 야기한 사회적 혼란을 피하는 현실적 방책이다. 친일파 조상을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초안대로 시행하고,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합의를 인정하고, 미군의 군사적 식민지임을 자인하는 사드배치를 강행하고, 탈법과 정경유착의 비리부정을 일삼았던 재벌의 행태를 눈감아 주는 것이 프랑스 혁명에서 보여준 마녀사냥과 집단광기, 그리고 혼란을 방지하는 길이다.”

Shot
혁명의 카니발이 끝나고 나면, 대중들의 마음 속에는 무질서와 폭력에 대한 염증이 자라나고, 정치엘리트들의 권력투쟁으로 반혁명이 시작된다. 사진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테르미도르 반동을 묘사한 그림. 한 병사가 로베르스피에르에게 권총을 쏘고 있다.

촛불을 끄려는 보수세력

참으로 적반하장 격의 황당한 논리이다. 프랑스 혁명은 근대 세계를 열어준 인류의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물론 역사에서 배워야 할 대목은 있다고 인정하자. 우선 21세기에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는 지난 8주간 한국 시민들의 광장에서 보여준 열기와 요구를 복잡계라는 이론적 시각에서 분석하였던 필자의 지난 칼럼(제도정치와 시민정치가 손잡아라)을 다시 반복한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창발적 격변의 방식보다는 일상적 혁신을 통한 진화적 과정이며 이것이 성숙된 정통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이고 향후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최순실 게이트’를 넘어서 지난 9년간 이명박근혜의 황당한 국정운영과 약탈행위의 누적은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로 진화(evolution)하는 과정을 원천 봉쇄하였다. 광장의 시민적 열기와 요구로 대변되는 격변의 모습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해 가는 창발(emergence)의 과정이 우연적 필연처럼 현재 우리에게 과제상황으로 다가온 셈이다.

기존체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기득권 연합은 시민적 동력이 쇠잔할 때까지 온갖 구실로 지연과 핑계와 김빼기를 시도하다가 허점을 보이면 언제라도 공세로 돌변할 것이다. 만만치 않은 사태이다. 기본적으로 법적 절차와 과정을 존중하고 지켜야 하지만, 명백한 범죄자가 형해만 남은 법적 절차를 핑계로 사태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한다면, 당연히 절차적 법의 기능을 뛰어넘어 정치적 상황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

절차와 인내의 과정이 있겠지만, 불가피하다면 촛불시위를 시민적 혁명으로 전진시켜 나가야 한다.“

법과 제도라는 가증스런 포장 때문에 시민적 요구가 외면당하고 다른 절차적 대안 모두가 봉쇄되고 거부당한다면, 당연히 시민적 권리와 의무로 국회와 헌법재판소를 포위하고, 더 나가서 청와대를 점거하여 박근혜를 끌어내려야 한다.

때로는 역사적, 정치적 사건을 통해 법적으로 규정당한 시민권적 절차를 뛰어 넘어야 한다. 왜 시민혁명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이는 오로지 기득권과 권력적 탐욕 때문이다.

1479460687320
이제 촛불혁명의 에너지를 질서있는 사회개혁으로 마무리해야 할 단계에 진입했다. 시민혁명의 에너지가 정치적 반동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체계적이고, 질서있는 개혁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 (사진 출처: http://weekly.donga.com/)

현재 진행중인 광장의 창발적인 시민 열기는 제도정치권의 명백한 한계와 무능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시에 지난 30년간의 답답했던 정치시스템에 대한 평가이자 대폭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제안이기도 하다.

김영삼의 삼당합당이라는 황당한 논리의 귀결로 온국민이 고통을 당했던 IMF 사태, 기대에 찼던 국민들의 열망을 배신하고 일상생활에 어려움만 가중시킨 민주정부 10년,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선거를 통하여 위임한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오로지 사익을 위해 악용하고 은폐하였던 사기꾼 이명박 정부의 교활함.

이에 더하여 마치 대통령직을 봉건제의 황제로 착각하고 국민위에 군림했던 박근혜와 내시들에 대해 참고 참았던 실망과 분노의 거대한 표출이다.

대한민국을 젊은 세대의 희망에 배반하는 금수저의 나라로 만들고, 합의된 원칙과 공의가 무너진 채 온 국민을 빚더미 위에 올려놓은 현실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질서있는 혁명을 하려면…

주간조선 편집장의 우려를 긍정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가 이야기하는 질서있는 격변의 과정을 그려본다.

첫째, 박근혜, 최순실 그리고 이들에게 협조했던 주변의 부역자들을 역사적 심판대에 세워 처벌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는 해방 이후 이루지 못한 민족의 정기를 바로 찾는 일이요, 국가의 기강과 공의를 굳건하게 세우는 일이다. 헌법재판소가 이를 거부하면 역사의 흐름을 거슬리는 민족적 반역행위에 해당한다. 당연히 해체시키고 재구성해야 한다. 역사는 체제와 법적 논리를 훌쩍 뛰어 넘는 것이다.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둘째, 이명박근혜의 사익적 약탈정권에서 이루어졌고 진행 중인 잘못된 제도와 결정들에 대한 권한과 시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당장 사드배치를 보류하고 국정교과서를 취소하고, 강요된 공공영역의 업무평가제를 중단하는 일들이 이에 해당할 것이다.

셋째, 국민적 역적인 이명박과 박근혜를 배출한 새누리당을 거부하고 개혁과 진보라는 가치로 연대한 세력을 통하여 새로운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

기득권세력은 아직도 제도적, 물적으로 강력한 기반을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수구와 개혁 간의 세력대결이라는 차기 대선의 역사적 중요성을 깨닫고 시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진보적 개혁을 공유가치로 매개하여 광범한 연대를 구성해야 한다.

한 개인의 정권에 대한 야심이나 특정 정파의 탐욕으로 일을 그르쳐서는 안 될 일이다. 정치세력 간의 공명정대하고 당당한 경쟁에는 당연히 박수와 지지가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치적 식견과 프로그램과 미래의 비전을 내팽겨치고, 정치셈법으로 비방과 꼼수와 속좁은 계산 등 온갖 구정물로 오염된 소인배식 한국 정치사의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당당한 내부 경쟁을 통하여 가능한 개혁세력 모두가 함께하는 연합정부를 구상하여 예비적 내각의 명단을 국민들에게 미리 제시하고, 더 나가서 건전한 보수세력도 참여하는 거국적 정부를 실현해 낼 수 있다면 더욱 환영할 일이다.

개헌은 차기 정부로 넘겨야

다원적 민주주의에서 개헌논의는 누구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헌정사가 보여 주듯이, 제도 정치권의 유력인사들에 의해 개헌 논의가 진행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더구나 이 엄중한 시기에 개인적 욕심으로 졸속 처리돼서는 절대 안 된다. 차라리 유력한 대선주자들 모두가 반드시 차기정부 임기 내에 개헌을 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대선 이후 충분한 논의와 시민적 공론의 과정을 통해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된 헌법개정을 해내는 것이 순리이다.

개헌
촛불혁명의 마무리를 지금 당장의 개헌으로 하자는 주장에 반대한다. 개헌처럼 중차대한 문제는 좀 더 오랜 기간, 더 많은 의견을 담아내는 대대적인 작업이 돼야 한다. 따라서 개헌은 차기 정부에서 질서있게 진행하는 것이 맞다. (이미지 출처: http://www.hyongo.com/)

권력구조 뿐 아니라 국민의 기본권, 지방자치와 분권, 경제민주화와 사회보장 등 광범한 주제를 검토하고, 논의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 당장 개헌하자는 세력은 반시민적 반역사적으로 정권의 사취를 시도하는 사악한 집단이다.

넷째, 차기정부는 시대개혁적 과제를 혁명적 관점에서 검토하되,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부터 질서있게 추진해야 한다.

주요한 과제들을 사안별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중요도와 완급을 따져서 분류하고 현재의 조건과 실력으로 실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부터 순서대로 처리해 나가야 한다.

시민적 지지를 확고히 하고 명분과 기반과 힘을 갖추지 못한 채 한꺼번에 모든 것을 다 처리하고자 하면 주간조선 편집장의 우려대로 테르미도르의 반동과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대체로 당장 시급하게 처리해 내야 할 사안과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주제, 장기적으로 연구하고 토론하고 합의해 내야 할 미래과제로 나누어 보는 것이 방안이 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공론장에서 형성되는 집단지성을 기초로 하여 검증된 시민단체의 대표자들, 학계 및 각계의 전문인들, 책임있는 정치인과 공직자들이 입체적으로 결합하여 역사적 작업을 진행하여야 한다.

차기정부의 핵심 과제들

필자가 제안하는 차기정부의 시급한 우선적 현안과제는 다음과 같다.

우선적으로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 단순 다수제에 의한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기득권을 지키는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은 것이다. 정상배들의 친목회 같은 현재의 무능한 정당제를 혁파하여 전문적인 정책정당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당명부제를 도입하여 경험있고 헌신적인 전문적인 인사들의 비례대표 선출을 지역구 의원과 동수로 확대하는 등 민의를 비례적으로 반영하는 의원선출 방식으로 개정해야 한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소수정당의 우선배려 제도와 대통령을 포함한 주요 인사들의 투표에 결선제를 도입하는 것 등을 깊이 토론해야 한다.

개헌은 이미 앞서 언급했다. 다만 선거법개정과 함께 개헌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시민의회를 강력히 제안하고자 한다.

한국의 헌정사를 살펴보면, 제헌헌법이 이승만이라는 유력 정치인에 의해 농락을 당했고, 4.19혁명 헌법을 제외하고는, 모든 개헌과정은 부당하고 불법적 집권을 정당화 하기위해 이루어 졌거나, 정권적 탐욕에 눈이 어두워 야합적으로 이루어져 왔다.

따라서 개헌과 선거법 개정과정은 직업정치인들을 배제하고 중립적 전문인 집단과 시민적 집단지성이 결합된 방식과 절차로 이루어져야 한다. 차기정부에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서둘러 진행할 일은 아니다. 국가운영의 대원칙을 세우는 일답게 진행해야 한다.

1
정치를 바꾸고 싶으면 먼저 선거법을 바꿔야 한다.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하고 싶으면 국회의 권능을 강화하고,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차기 정부에서는 이들 과제를 최우선 개혁과제로 추진해야 한다.

무소불위한 대통령의 권력 집중의 폐해를 이미 충분히 경험한 바, 삼권분립(필요하다면 사권, 오권 분립도 검토해야)의 확립을 위하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검찰총장 등 주요 인사를 국민이 직접 선출하거나, 대통령을 배제한 채 최소한 국회가 지명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을 국회 아래로  이동시키고, 검사의 기소권 독점을 제한하고, 지역의 주요 검사장과 경찰청장은 반드시 지역 선거를 통해서 선출하는 것을 검토해야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기무사, 정보사령부 등 공안과 정보기관들이 깊숙이 개입한 것을 우리 모두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 파동에서 보듯이, 일부에서는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훔쳐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휴전이 되었지만 분단 상황이 지속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을 무식하고 무지한 냉전와 반공의 논리를 앞세워 정보기관들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한국 정치를 감시하고 때로는 협박하며 좌지우지해온 것이 사실이다.

차기정부는 반드시 공안과 정보기관을 재정립하여 국내정치에 일체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만의 하나라도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반드시 탄핵과 내각총사퇴 요구로 대응해야만 한다.

위에 언급한 내용들은 주로 정치적 제도와 절차에 관한 것으로, 이러한 제도에 새로이 담겨질 사회경제 시스템의 민주화와 사회보장제도의 강화, 재벌에 대한 국민통제권 강화 등의 사안은 보다 많은 토론과 지혜와 합의가 필요한 주제들로 차기정부의 미래전략과 연계하여 중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한다.

반드시 시민의 힘으로 시민적 합의를 통하여 새로운 제도와 질서를 만들어 가자!!

월, 2016/12/19- 12:04
352
0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이후 줄기차게 시민의회를 주창해온 김상준 다른백년 이사가 지난 19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시민의회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촛불 시민 헛수고하지 않게 할 최강대안)

시민의회 저작권자인 김상준 교수의 육성을 통해 시민의회의 이모조모를 살펴봅니다. 

1

◇ 정관용> 87년 6월항쟁으로 민주주의는 이루었다고 했지만 그 해 연말 대통령 선거에서는 노태우 후보가 당선이 됐습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뭔가 이룬 것 같은데 이것이 다시 또 5. 16이나 노태우의 당선과 같은 걸로 되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촛불 들게 했던 민심이 제대로 정치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 방법이 있다, 바로 시민 의회라고 주장하시는 국내의 시민의회에 대한 개념을 가장 먼저 제기하고 지금 계속 전파하고 계신데요.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에 김상준 교수를 오늘 초대했습니다. 교수님, 어서 오십시오.

◆ 김상준> 안녕하세요.

◇ 정관용> 교수님은 4.19와 87년하고 지금을 비교하는 것에 동의하세요?

◆ 김상준> 비슷하지만 큰 차이가 하나 있는 것 같아요.

◇ 정관용> 어떤 겁니까?

◆ 김상준> 지난 토요일까지 8차 촛불집회가 있었죠. 도합하면 800만이 넘는다. 800만이 그렇게 움직이면서 커뮤니케이션 내용이 굉장히 높다, 그러니까 대통령, 어떤 대통령이어야 되냐? 국회? 어떤 국회여야 되냐? 검찰. 검찰은 어떤 검찰이 되어야하는가? 다시 말하면 어떤 나라가 되어야 되냐? 이런 생각으로 모아지는 대중이었다는 말이죠.

◇ 정관용> 그러네요.

◆ 김상준> 저희가 광화문 나갈 때 특히 많이 합니다만 SNS. 저는 별로 하는 편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날이 되면 좀 많이 하죠. 10번 하다가 20번, 30번 하고. 그런데 800만이 모인. 나온 사람들만 계산하더라도 그걸 10번씩 했다고 하면 8000만 개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잖아요? 나오지 않은 분들.

◇ 정관용> 전부 또 그걸 퍼 나르기 해서 또 갑니다. 몇 억 개가 되는 거예요.

◆ 김상준> 빅데이터로 하면 엄청난 양의 의견, 커뮤니케이션이 그것도 아주 국가권력의 핵심문제, 헌법 핵심문제. 즉 주권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했다는 사실. 11월 넘어선 순간부터는 저는 국회에서 탄핵을 가결시킬까? 부결시킬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게 부결이 된다면 더 깊게 들어갑니다. 국민의 주권의지가요. 그렇다면 현재의 국회의 정당성을 의심하고 지금 헌재 문제 남아있습니다만 모르죠, 그것을 헌재가 그걸 인용을 안 할지, 기각시킬지.

◇ 정관용> 그럼 또 헌재.

◆ 김상준> 기각시키면 헌재의 정당성이 깊게 의심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국민의 무섭고 또 굉장히 진화된 형태의 굉장히 스마트하고 앞서 있는 intelligent. 이런 국민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점점 더 그 쟁기는 깊게 들어간다. 정치권이나 헌재가 이상하게 움직일수록 더 깊게 들어갈 것이다. 저는 그 점에 대한 어떤 믿음 같은 것을 느꼈어요. 현장을 쭉 보면서.

◇ 정관용> 그래도 불안하잖아요? 헌재가 혹시 이걸 또 기각시켜버리면 어떻게 할까라는 불안함. 아니, 그건 좋다. 그러면 헌재에서 인용이 돼서 탄핵이 성사되면 두 달 후 대통령 선거 치르는데 또 저당한테 권력 줄 거 아니야? 야당 또 분열해서 싸울 거고. 이런 불안함들이 있잖아요. 그 분들한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습니까?

◆ 김상준> 제가 말씀드리는 시민의회라고 하는 것은 그러니까 제도, 법 밖의 국민들의 직접행동을 넘어서서 제도, 법 안에서도 국민들의 직접행동이나 의지를 모을 수 이것은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겁니다. 그게 저는 시민의회라고 2005년부터 이름 붙였습니다마는 사실은 지금 세계적으로도 이런 제도가 법 안에서 국민들의 의지를 직접 어떤 형태로 반영하면서 개헌도 하고 또 선거법을 바꾸었던 사례들이 많이 있습니다.

◇ 정관용> 어떻게 하는 거예요? 민주주의 정당성 근거는 하나는 선거다. 그러나 또 하나가 있다. 그 하나가?

◆ 김상준> 추첨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그리스 고대 아테네에서는.

◇ 정관용> 추첨했어요, 맞아요.

◆ 김상준> 공직자의 10%는 선거했습니다. 그런데 90%는 추첨했습니다.

◇ 정관용> 재판의 배심원단도 무작위 추첨?

◆ 김상준> 그렇죠. 추첨했었죠. 사실은 우리 역사도 보면 마찬가지예요. 그러니까 왕이 잘못하면 우리나라 사람들 모여서 천인소, 만인소 이런 거 올리잖아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 이랬습니다, 100명 모였다 그러면 거기서 이따 봐서 저기 최 생원, 자네가 제일 초를 잘 잡을 것 같네. 이런 식으로 결정한단 말이에요. 이런 방식은 사실은 어떻게 보면 모든 나라에 상당히 익숙한 겁니다.

◇ 정관용> 그래서요. 어떻게 추첨한다는 거예요. 누구로?

◆ 김상준> 그래서 현대국가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했죠. 우리는 사실 추첨 굉장히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여론조사 할 때 보면 전부 그런 거거든요. random sampling.

◇ 정관용> 무작위 표본추출.

◆ 김상준> 그렇죠. 그러니까 이런 방법을 실제로 제도화하자. 그러니까 이번에 촛불민의라고 하는 것도 그런 방식으로, 지역, 성별, 연령 이런 것들을 고르게 반영하는.

◇ 정관용> 지역, 성별, 연령 반영해서.

◆ 김상준> 반영하는 random sampling을 하자.

◇ 정관용> random sampling. 추첨을 하자. 몇 명 추첨하는 거예요?

◆ 김상준> 저는 국회의원과 동수로.

◇ 정관용> 300명?

◆ 김상준> 그렇죠. 우리 같은 경우에는.

◇ 정관용> 일반 시민을 지역, 성별, 연령 별로 300명 추첨하자?

◆ 김상준> 300명을 추첨하자.

◇ 정관용> 그래서 본인이 싫다고 그러면?

◆ 김상준> 한 2배수 정도합니다.

◇ 정관용> 600명 정도 추첨해서?

◆ 김상준> 그래서 저는 도저히 못하겠습니다, 바빠서. 그러면 이제 거기서 하나하나 2배수 뽑은 수로 넘어가는 거고요. 그리고 그 안에서는 걸려야 될 대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하자면 최순실 회사 직원을 거기다 넣을 수는 없잖아요. 이런 방식이 있죠.

◇ 정관용> 제척사유가 있으면 빼고?

◆ 김상준> 직접적인 인과가 관계가 되어 있는 부분들을 제하는 거죠. 이게 다른 나라에서 하는 그런 시민의회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 정관용> 한 600명 정도를 이렇게 지역, 성별, 연령별로 뽑아서 몇 가지 제척사유가 있는 사람들을 빼고 또 동참하겠다고 하는 사람들로 시민의회를 구성한다? 이렇게 구성한다는 걸 국회에서 법으로 만들어서 법적 권위를 부여한다?

◆ 김상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 시민의회의 권한은 뭐예요, 그러면?

◆ 김상준> 국가의 중대한 사안에 대해서 시민들이, 그런 방식으로 모인 시민의원들이 공정하고 또 공개적이고 합리적인 토론 과정을 통해서 의견을 모아서 그 방향을 결정한다는 게 되겠죠.

◇ 정관용> 의견 모아서 방향을 결정하면 예를 들어서 선거법개정안을 만들면, 개헌안을 만들면 그러면 어떻게 돼요?

◆ 김상준> 그건 우리가 법을 만들기 따름인데요. 대체로 지금까지 했던 사례들은 그렇습니다. 그렇게 합의가 되면 흥미로운 것은 시민의회에서의 논의과정은 처음에는 늘 그렇습니다. 아젠다가 선거법이다. 그러면 선거법도 지금 우리 현행 선거법이 있고 또는 그보다 나은 A, B, 이런 식으로 세 개 처음에는 병립을 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쭉 해가다 보면 점차 두 개로, 나중에는 하나로 다수가 모아집니다.

◇ 정관용> 그래야지 결론이라고 할 수 있죠.

◆ 김상준> 그리고 실제로 이렇게 합니다. 모든 사례가 다 그래요.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모아지잖아요. 우리가 크게 아이템이 세 개가 있었다, 네 개가 있었다. 이 아이템으로 하나씩 모아지게 되면 이 결정된 것을 다른 나라들은 지금까지 그래 왔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게 좋을 거라고. 이걸 바로 국회에 보내는 겁니다, 그 안을. 권고사안일수도 있고 아니면 준결정사항일 수 있고. 그러면 국회 안에서는 이걸 놓고 논의를 하겠죠. 그러나 시민의회와 같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논의과정을 거쳐서 된 의견을 국회에서 그대로 거부해 버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특히 현재 우리 국회 구성과 같이 야당이 더 다수인 그리고 또 비박계열도 소위 많이 흔들리고 있고.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의회에서의 논의 결과, 결정된 사항들을 국회가 뒤집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이렇게 되면 또 한 번 국회의 정당성을 의심 받을 수 있다.

◇ 정관용> 외국의 사례는 대체로 그런 시민의회에서 결론을 내려서 국회로 보내면 국회는 그대로 시행을 했습니까?

◆ 김상준> 거의 그대로 합니다.

◇ 정관용> 자꾸 외국의 사례, 외국의 사례 그러는데 진짜 이렇게 하는 나라가 있어요?

◆ 김상준> 지금도, 현재도 아일랜드는 시민의회가 구성돼서 활동 중인데요.

◇ 정관용> 그것도 법적으로 권한이 있는 시민의회? 추첨을 통해서?

◆ 김상준> 그렇습니다.

◇ 정관용> 그리고요, 또?

◆ 김상준> 아일랜드 조금 더 말씀드리면 거기도 의원 수하고 비슷한 100명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일랜드 모델을 굉장히 주목해야 된다라고 생각하는데 시민의원들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는 그런 아젠다들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할 수 있는 시민, 주요한 시민단체들이라든지 여러 조직들의 대표자들 그리고 주요 정치 세력의 대표자들이 충분히 참여해서 자신의 입장을 시민들 앞에서 충분히 개진하라고 했습니다.

◇ 정관용> 그래야죠, 그래야죠.

◆ 김상준> 그래서 두 개가 결합된 형태의 시민의회로 지금 진행하고 있고요. 그 논점이 이를 테면 낙태문제가 있는데 아일랜드 같은 경우에는 가톨릭 국가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국시에 해당하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들이죠. 이런 중요한 사안들을 지금 논의하고 있습니다.

◇ 정관용> 언제 만들어졌어요, 아일랜드는?

◆ 김상준> 이번에 소집이 됐습니다. 그러니까 대체로 모든 시민의회가 소집됐던 사례들을 보면 그 전에 총선에서 시민의회를 내겁니다, 어떤 의제를 가지고. 이런 정당들이 수권을 하면서, 수권 정당이 되면서 시민의회가 소집되는 그런 프로세스를 거쳐왔죠. 그리고 아일랜드는 이미 2012년에도 한번 이런 과정을 거친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 번 개헌 후 주요한 조항들을 몇 개 고친 적이 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 정관용> 2012년에 개헌을?

◆ 김상준> 한 적이 있습니다.

◇ 정관용> 성공까지 갔다?

◆ 김상준> 성공했습니다. 이번에게 그 개헌 조항들이 통과되려고 합니다.

◇ 정관용> 또 다른 나라 사례들도 있어요?

◆ 김상준> 아이슬란드하고 그렇게 했고요. 그리고 또 시민의회가 했던 주요 사례들은 선거법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선거법 얼마나 문제가 많습니까?

◇ 정관용> 선거법 개정에 성공한 시민의회 사례가 어느 어느 나라입니까?

◆ 김상준> 지금은 선거법 사례에 대해서는 논의중입니다

◇ 정관용> 결론까지 난 건 아니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 김상준> 그렇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개헌사항도 그렇습니다만 특히 선거법 같은 경우도 보면 우리가 보통 그래요. 선거법 우리 문제 많다, 문제 많다 하지만 지금 선거법이 그렇지 않습니까? 사표는 너무 많이 나오고 또 지역주의를. 반드시 지역주의가 나올 수밖에 선거제도입니다. 그런데 제가 재미있게 생각했던 것은 옛날에 탄핵 이후에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이 됐어요. 그런데도 선거법을 안 고치더라고요.

◇ 정관용> 못 고쳤죠, 또.

◆ 김상준> 그러니까 그게 두 개 다지만 사실은 보면 그런 열린우리당도 의원들이 생각할 때는 이 선거법은 내가 당선됐는데.

◇ 정관용> 자기 기득권이죠.

◆ 김상준> 그렇죠, 그걸 왜 고치려고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사실은 그런 방식으로 대안적으로 시민의 의지를 모아서 그 논의를 가장 합리적으로 진행할 때 실제로 변화고 가능하더라는 걸 보여주는 거죠.

◇ 정관용> 우리나라의 정치나 이런 쪽에 전문가들은 모두가 합리적인 선거제도,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야 된다. 당선인 소선구제 문제 많다, 이 말을 공통적으로 합니다. 그리고 조금 아까 언급하신 2004년 총선 이후 선거법 개정 논의, 제가 그때 특집 사회를 제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봤는데요 국회의장 직속으로 걸핏하면 전개특위 만들고 전개특위 옆에 시민사회단체니 뭐니. 전문가들 모아서 권고안 만드는 위원회 또 만듭니다. 그 위원회는 반드시 의원 수 절반은 비례대표로 합시다. 이런 안을 내요. 그러나 다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요. 저는 그걸 여러 번 경험하면서 다른 건 몰라도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선거법만큼은 어떻게 시민의 힘으로 바꿀 수 없을까 했는데 방법이 이거네요?

◆ 김상준> 그렇습니다. 저는 그것이 현재로는 현실적이기도 하고 또 가능하고요, 우리도.

◇ 정관용> 지금 정당들이 이 시민의회를 만듭시다라는 이 법 개정을 할까요? 법 제정을 할 수 있을까요?

◆ 김상준> 그걸 제가 처음 제기했을 때부터 많은 분들이 고개를 흔드셨죠. 에이, 그걸 주겠어요? 그런데 제가 이번에 11월 한 후반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여러 군데 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20여일 정도지만 분명히 변화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 정관용> 반응이 확 와요?

◆ 김상준> 일단은 그 문제들을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일단 외곽부터 시작이겠습니다마는 이를 테면 제가 며칠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마는 민주당 정책위원장, 국회의원 이름을 잘 모릅니다마는 윤호중 의원인가 그렇습니다. 시민의회법을 제정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 정관용> 언급하더라고요.

◆ 김상준> 그래서 이게 이제 듣는 사람들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 정관용> 우선은 말이죠. 더 좀 김상준 교수가 많이 다니셔야 될 것 같아요. 우리 이 방송 들으시는 청취자 분들 가운데도요, 뭐라고? 무작위 추첨으로 해서 무슨 의회를 뽑아?

◆ 김상준> 처음에는 낯설죠.

◇ 정관용> 그게 말이 돼? 그런데 거기서 뭐 선거법 개정을 논의한다고? 아니, 뭘 안다고 선거법 개정을 논의해? 이런 반응이 금방 나올 겁니다. 그런데 된다는 거죠.

◆ 김상준> 된다는 거죠. 그리고 제가 처음에 이걸 궁리했을 때는 철학이나 이론이나 이런 것까지 많이 이야기해서 참 어려워했지만 이제는 이미 그 뒤로 아주 여러 나라들에서 이런 게 있었고. 저는 당장 여러 언론들에서, 당장 아일랜드에서 하는 그런 시민의회, 많이 취재하고 말이죠, 방송도 나가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일반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것 같아요. 그게 전혀 낯선 게 아니네라고 말이죠.

◇ 정관용> 그리고 그렇게 추첨일반 시민을 뽑았지만 제대로 된 논의가 되더라?

◆ 김상준> 충분히 되더라.

◇ 정관용> 그리고 정말 좋은 안이 나오더라.

◆ 김상준> 네, 그렇죠.

◇ 정관용> 국회에 맡겨놓는 것보다 더 좋은 안이 나오더라.

◆ 김상준> 맡겨놓는 것보다 국회는 문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그럴 듯한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결국은 결정을 못 합니다. 이해관계가 서로 너무나 갈라지기 때문에 결정을 못 하거든요. 그런데 시민의회라고 하는 방식을 통해서는 어떤 하나의 결론에 도달을 합니다. 그런데 그걸 다시 국회로 넘겼을 때 국회에서 거부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합의에 도달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 정관용> 네. 어찌 보면 지금이 절호의 기회라고도 볼 수 있네요?

◆ 김상준> 저는 아주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 정관용> 여소야대 상태이면서 비박계 아까 언급하신 국회 내의 정치구도로 보면 일단 시민의회법 제정까지는 좀 어떻게 밀어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 김상준> 그렇게 되지 않겠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 정관용> 누가 지금 확실히 총대 메고 나섰으면 좋겠네요. 오늘 새로운 공부를 했고요. 이 공부가 귀중한 것은 아까 처음은 우리 시작했던 4. 19 이후, 87년 이후 그런 일들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번에 우리가 만약에 조기 대선이 치뤄진다고 그냥 멍하니 각 후보 공약만 쳐다보고 있지 맙시다. 우리도 이런 방법이 있습니다. 그걸 배우게 되네요. 좀 더 자주 다니세요. 여기 저기.

◆ 김상준> 노력하겠습니다.

◇ 정관용> 오늘 시민의회에 대해서 아주 흥미로운 공부를 했습니다. 경희대학교 공공대학원의 김상준 교수 고맙습니다.

◆ 김상준> 감사합니다.

화, 2016/12/20- 11:50
269
0

그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그는 지난 50여 년간 검사·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검찰총장·법무부 장관, 국회의원·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내며 한국 현대사의 오욕의 순간 어디에나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미국 현대사 곳곳에 흔적을 남긴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주인공처럼.

하지만 솔직하고 성실했던 포레스트 검프와 달리 그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몰랐다”는 류의 해명으로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해왔다. 형사처벌을 피해가며 자신의 과오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

35살에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 올라 75살에 청와대 비서실장까지 지낸 그가 “아무것도 모른다”며 자신의 존재를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는 것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만큼 초현실적이다.

김기춘 ?€?µë ¹ë¹„서?¤ìž¥??21???œìš¸ê³µí•­?ì„œ 5ë°???간의 ?°ì¦ˆë² í‚¤?¤íƒ„, 카자?ìФ?? ?¬ë¥´?¬ë©”?ˆìФ????중앙?„시??3개국 ?œë°©??마치ê³?귀êµ?•œ 박근???€?µë ¹??바라보고 ?ˆë‹¤.  ?žì„œ ë°??€?µë ¹?€ ?°ì¦ˆë²¡ì„ êµ?¹ˆ 방문 중이??지??18??문창ê·?êµ?¬´ì´ë¦¬ ?„ë³´???„명?™ì˜?ˆì˜ êµ?šŒ ?œì¶œ 문제?€ 관?¨í•´ "(?¬ê? ?¬ë?ë¥? 귀êµ??„에 검? í•´ 결정?˜ê² ??ê³?밝힌ë°??ˆë‹¤. 2014.6.21/?´ìФ1
김기춘은 지난 40년동안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장면에서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리고 박근혜정부 들어 공작정치의 막후설계자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현대사에 신화적 존재로 남을 것만 같았던 김기춘(77)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다시 국정 농단 사태로 국회와 국민에게 호출되고 있다.

‘내부자’ 로서 수 십년간 권력을 누려온 그의 잘잘못이 이번엔 제대로 드러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흑역사’가 고스란히 녹아든 지금의 사태를 명명백백 밝히기 위해서도 그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은 중요한 일이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유신 헌법, 간첩 조작 등 주도한 유신독재의 앞잡이

1939년 11월 경상남도 거제에서 태어나 그는 “머리가 비상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인 1960년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한 그는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의 1기 장학생이 되며 박정희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을 맺는다.

“가치 중립적 타협, 화합은 없다…회색 지대 無(무)…강철같은 의지로 대통령, 대한민국 보위.”, “국가 정체성과 헌법 가치 수호 노력.”, “전사들이 싸우듯이.”

1
김기춘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건재할 수 있었던 것은 법률지식에 능통하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잡은 것은 오히려 죽은 김영환 전 민정수석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잡은 것과 같다. 그렇지만 김영환의 업무일지에 대해서도 김기춘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이미지 출처: sbs)

최근 공개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기록된 그의 말이다. 실제로 박 대통령 일가와 인연은 맺은 뒤 그는 ‘대통령과 대한민국의 보위’에 온몸을 바친다. 물론 그가 강철같은 의지를 보이며 보위했던 대상은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등 특정 정권과 반공주의라는 일그러진 가치였다.

그가 현대사에 본격적으로 자신의 발자취를 남긴 것은 1972년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하면서다. 1967년 부산지검 검사, 1969년 서울지검 검사를 거쳐 1971년 법무부 법무과 검사로 출근한 김 전 실장은 신직수 당시 법무부 장관의 눈에 들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사단장 시절 법무 참모를 지내기도 했던 신 장관은 이후 요직마다 김 전 실장을 데리고 다니며 그의 ‘후견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부정하지만,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했던 헌법학자 한태연은 2001년 한국헌법학회가 연 ‘역사와 헌법 학술대회’에서 “신직수 장관과 김기춘 과장이 주동이 돼 안을 모두 만든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언론 본도를 보면 김기춘은 텔레비전에 나와 유신헌법을 해설했다고도 한다.

5.16장 학생이 박정희 정권의 근간이 됐던 유신체제의 설계자 역할을 한 것이다.

그는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 똘똘’이라는 별명을 지어줄 만큼 정권의 보위에 최선을 다했다. ‘후견인’ 신직수 장관이 1973년 중앙정보부장이 되며 불러들인 김 전 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 부인 고 육영수 여사에게 총을 겨눈 문세광의 자백을 하루 만에 받아내 35살의 나이에 대공수사국장에 오른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 전 실장을 신뢰하는 계기가 된 일이었다.

2-6
김기춘은 유신헌법 제정에 기여한 공로로 30대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에 올랐다. 그리고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유신독재정권의 첨병 역할을 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사람들은 아직도 당시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공수사국장시절의 김기춘의 모습.

대대적인 간첩조작 사건을 지휘하며 박정희 체제를 유지하는데도 핵심적인 열할을 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자백>이 다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한국에 있던 재일동포 유학생을 간첩으로 몰아간 사건으로 사건 관련자들은 중앙정보부에서 엄청난 고문을 당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재심에서 이들은 무죄판결을 받았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여러 인터뷰와 글에서 “김기춘은 유신정권 7년 중 4년 반을 중정 대공수사국장을 지내며 본격적인 조작 간첩 사건의 시대를 열었다”고 지적했다. <자백>에서 이를 묻는 말에 김 전 실장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유서대필 사건 기획…초원복집 사건에도 기사회생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뒤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과정에서도 김 전 실장은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는 부인하지만 5공화국 실세 허화평에게 장문의 충성맹세 편지를 보낸 일화는 세간의 입에 오르내린다. (‘법 주무르며 누린 ‘기춘대원군’의 40년 권력’)

심재륜 전 고검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런 그에 대해 “높이 평가할 만한 면이 있기는 하더라. 검사 때 법무부 장관 눈에 띄려고 날마다 장관 집 앞 언덕에 올랐던 노력, 남들 잠자는 시간에 일어나 하염없이 벌인 그 노력이 놀라웠다” 고 평가하기도 했다. (“식물정부 수사에 눈치 볼 이유 있나?“)

전두환 정권에서 와신상담하던 그는 노태우 정권 출범 뒤 검찰총장에 오르며 다시 칼을 휘두른다. 그는 유신헌법 대신 반공주의라는 무기를 들고 민주화 운동 탄압의 선봉에 섰다.

당시 언론 보도를 보면 그는 “좌경세력은 무좀과 같아서 약을 바르면 일시적으로 치유된 듯하다가도 다시 나타나곤 한다. 체제수호에 검찰의 모든 역량을 투입하라”고 검찰 간부들에게 역설했다고 한다.

그는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뒤 법무부 장관에 올라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을 지휘하기도 했다. 물론 이 사건은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악명’을 전국에 떨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1992년 12월11일, 그는 초원복집에 김영환 부산시장, 박일룡 부산경찰청장 등을 불러모아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등의 말을 하며 제14대 대통령 선거 관권 개입 방안과 지역감정 조장 계획을 집중적으로 논의했다.

김기춘1
1995년 11월, 초원복집 사건과 관련해 검찰해 출두하는 모습. (사진 출처: 경향신문)

한국 정치사에 치욕적인 사건으로 기록된 초원복집 사건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도 이 자리에서 나왔다 (참고로 그의 아내는 광주 출신이다.). 이때 검찰이 김 전실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가 1993년 4월 위헌심판제청 신청을 내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검찰의 공소가 취소됐다.

‘기춘대원군’…현대사의 살아있는 악마

초원복집 사건이 발목을 잡을 듯했지만 ‘처세의 달인’으로 불릴 만큼 그는 이후 국회의원으로,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복귀하며 노년까지 권력의 정점에 선다.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사태에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헌법재판소에 탄핵안을 접수하고, 이후 박근혜 대통령 원로자문그룹인 ‘7인회’의 멤버로서 정권창출의 일등 공신이 되는 등 2000년대 이후에도 한국 정치사의 굵직한 사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김기춘7인회01
무능하고 퇴행적인 박근혜정부의 배후에는 김기춘이 있었다. 그는 7인회 멤버로 박근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고, 이후 비서실장으로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후에서 주도했다. 그는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권력 주변에 기생하며 온갖 반민주적 악행을 저지른, 현대사의 전무후무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까지도 최순실도,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도 “몰랐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김영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비망록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언론 탄압 등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말이다.

비망록에서 엿보이는 그의 사고는 여전히 50여 년 전 유신체제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계속 자리를 유지한 것은 한국 사회 과거 권위주의 정치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가 자신이 한 일에 대한 응분의 책임을 질지, 역사로부터 유죄 판결을 받을지는 아직은 불투명하다. 하지만 광장에 타오른 수백만의 촛불을 통해 한국 사회는 변화를 선택했다.

최근 국회 국정농단 의혹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최순실 씨를 모른다”고 시종일관 주장하던 김 전 실장이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누리꾼의 제보에 당황하며 “죄송하다. 저도 나이 들어서…. 최순실이라는 이름은 이제 보니까 제가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고 말을 바꿨다.

그의 신화에 균열이 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인 장면인듯싶다.

화, 2016/12/20- 17:42
489
0

 

백년포럼이 지난 15일이 열린 열번째 포럼 ‘다음세대가 꿈꾸는 민주공화국’을 마지막으로 올해의 일정을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백년포럼에 참여해 귀중한 의견을 주신 분들, 그리고 관심을 가져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보다 새롭고, 참신한 주제로 찾아뵙겠습니다. 

 

KakaoTalk_20161221_152128502
지난 15일 열린 10회 백년포럼에서 조성주 정치발전소 기획위원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일시: 12월 15일 오후 7시 30분

장소: 국민TV 지하카페(서울 마포구 합정동)

발제: 조성주(정치발전소 기획위원)

토론: 이수호(청년유니온 기획팀장)

10회 백년포럼 자료집

수, 2016/12/21- 15:37
287
0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페스트라이쉬 교수가 (사)다른백년의 고정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여기서 부정기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말할 것입니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실린 글(중국의 꿈’은 미국인가’)을 저자의 요청에 따라 전재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어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중국 남경에 다녀왔다. 거기서 안내를 해주는 학생에게 그 유명한’부자묘(夫子廟)’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도심이 아닌 외곽의 옛 정취가 남아 있는 찻집에서 차라도 마시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경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 명나라 때까지 ‘금릉(金陵)’이라 불렸던 ‘남경’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연구를 해왔다. 도쿄대학(東京大学)과 하버드대학에서 중국문학을 공부했을 때 남경을 무대로 지어진 시를 많이 읽었다. 17세기의 산문 잡기에 등장하는 진회하(秦淮河)의 아름다운 풍경과 대학시절 소설 『홍루몽(紅楼夢)』을 읽을 때 상상했던 18세기 남경의 죽 늘어선 저택들의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스치고 있다.

DSC00358
공자를 모신 남경부자묘. (사진 출처: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greatwal88&folder=2…)

그러나 시끌벅적한 거리를 걸으며 옛 금릉의 모습을 찾아보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부자묘 주변의 옛 건물은 이미 철거되었고, 그 자리에는 패스트푸드점과 양복점 등이 들어선 볼품없는 콘크리트 구조물들로 채워져 있었다. 질 좋은 고급 차를 파는 곳도 몇 집 있었지만 길가 상점에서 팔고 있는 음식과 기념품들은 방콕이나 L.A에서 파는 것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쉽게도 남경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것들은 끝내 찾지 못했다. 시인, 소설가는커녕 장인과 기술자들의 모습까지 이젠 사리지고 없었다.

옛 정취 사라진 전통 도시

부자묘의 내부도 옛 정취가 사라졌다. 벽은 석벽과 토벽 대신 콘크리트가 발라져 있었고, 목수의 실력이 나빴는지 벽과 바닥을 잇는 접합부의 마감은 허술했다. 진열된 가구들도 싸구려 느낌이 들었고 벽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식상한 그림들이 여기 저기 걸려 있었다.

나는 남경에서 파리의 노틀담 대성당과 일본의 나라(奈良) 동대사(東大寺)에서 볼 수 있었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사의 흔적과 끝내 조우하지 못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나가 남경의 과거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는데, 거리를 다녀 보니 그 화려했던 남경의 역사와 문화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지금의 남경은 과거와 단절된 낮선 도시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랜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그나마 옛 정취를 조금 간직하고 있는 어느 찻집을 찾았지만, 찻집을 나오면서 이내 가슴 한가득 슬픔이 밀려왔다.

중국의 역사와 전통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그것은 문화대혁명의 탓이 아니라 소비문화의 성장이 초래한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이 슬픔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에 가까운 한숨이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것은 고대 중국은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을 통해 세계 제일의 농경시스템을 만들어내었지만, 복잡한 관료 제도를 지탱하고 많은 인재들을 길러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훌륭한 유기농업의 전통을 버렸다는 것이다.

미국의 농학자 프랭클린 하이럼 킹(F·H·King)은 그의 저서 『동아시아 사천년의 영속농업 -중국・조선・일본』(Farmers of Forty Centuries, or Permanent agriculture in China, Korea, and Japan)에서 “동아시아는 확실한 영속농업의 모델을 만들어냈으며 미국은 그것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치명적인 화학비료와 농약을 도입한 탓에 약탈농업으로 탈바꿈해 가고 있어서 더 이상 영속농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고대 중국 농업문명의 눈부신 지혜가 가장 필요한 지금 그것을 이어받은 그 무언가를 찾기 어렵게 되었다.

만약 소비사회의 잔혹한 가치관의 이면에 중국인들의 소박, 절약, 효행, 겸손한 인품은 아직도 매우 매력적이 아닌가 생각하며 이들 미덕을 찾아 중국을 찾는다면 당신은 그나마 약간의 위안을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옛 전통의 힘 잃어버린 중국

서구문화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그 이상적인 모습의 모델을 찾아 많은 서양인들이 중국을 방문한다. 미국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제도를 좀먹고 있는 물질주의와 군국주의에 절망감을 갖고 있던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중국의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중국의 유학, 불교학 및 도학사상(道学思想)은 인간의 모든 부분을 금전적으로 평가하는 미국사회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1319019539
유불선 사상의 조화로운 공존을 묘사한 김홍도의 군선도.

중국문화의 근면, 절약 및 지행합일 정신이 학생시절 나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많은 위대한 유학자들은 비록 유복한 가정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라 할지라도 넘치지 않는 소박한 식생활을 실천하였고, 문학과 철학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설정했었다. 옛 중국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문화를 소중히 여기고, 인간사회와 자연계의 조화를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영속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중국 방문에서 나는 내가 미국에서 버리려 했던 가짜 ‘신(神)’에게 앞 다투어 머리를 숙이는 중국인들을 보았다. 식당에서는 다 먹지 못해 남겨지는 엄청난 음식에 놀랐고, 즐비한 상점에서 액세서리 등을 충동 구매하는 중국인들을 보고 나는 꽤 놀랐다.

백 년 전의 중국인들이라면 아마도 이와 같은 삶의 태도를 분명 부끄럽게 여겼을 터이다. 기후변동이 급격한 시대에 이와 같은 과소비는 분명 부끄러운 행동임에 틀림없다. 중국의 많은 젊은이들은 미국인들처럼 환경에 대한 영향을 생각지 않고 페트병이나 비닐봉지를 아무렇지도 않게 길에 버린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것은 중국의 정부조차 이러한 왜곡된 경제논리와 물질주의를 잣대로 삼아 관료들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SONY DSC
한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 열광하는 중국 젊은이들. (사진 출처: http://m.blog.daum.net/2yalove/17953803?categoryId=421641)

이와 같은 평가기준은 이미 서구사회에 막대한 파괴를 초래했다. 또한 많은 중국인들은 일회용 상품이 넘쳐나는 고급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는 것을 아주 좋아하며 화려한 전투기를 국력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있다.

내가 이와 같은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모국인 미국이 발전 방향성을 잃고 국민들이 소비에 대한 환상에 빠짐으로서 현실로부터 도피하려 했던 모습을 이미 오래 전부터 충분히 봐 왔기 때문이다.

세계의 도덕 모델로서 미국은 참패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최근 20년 동안 일련의 불법전쟁에 가담해 왔다. 미국인들은 전쟁에서의 승리로 인한 우월감에 빠져 환경보호나 빈곤층에 대한 관심 등에 관한 세계적 기준을 만들려 하지 않았다.

반면 중국은 세계의 개발도상국을 견인하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은 중국의 발전을 성공 모델로 삼고 중국 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세계 인구의 5분의 1은 중국인이고 중국의 영향력은 압도적이다. 또한 중국의 문화는 아프리카와 남미의 여러 나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개발도상국의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지금 세계 각국에서는 중국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고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지혜를 구하고 있다. 역사가 길지 않고 소비를 바탕으로 새로운 발전 모델 창조를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미국과 비교해 중국은 새로운 발전 모델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지속가능했던 농경문화의 긴 역사와 절약의 전통이 새로운 발전 모드의 문화적 기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처럼 되려는 중국의 꿈

많은 중국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들의 강점은 아편전쟁(1839-1842)과 애로호전쟁(1856-1860 ; 제2차 아편전쟁이라고도 함)과 같은 전쟁이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자신들의 힘으로 국가의 이익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데 있다. 물론 국력을 키워 외적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그들의 소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국력의 향상이 기후의 변동 등, 인류의 존재와 관련된 과제 해결을 통해서가 아닌 항공모함과 전차의 제조 등과 같은 미국이 추구하고 있는 군비확장의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그 방향이 틀렸다는 것이다.

20091002212311
근대화과정에서 서구에 침략당했던 중국은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군사대국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의 하드파워만으로는 21세기의 세계를 리드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 출처: http://blog.donga.com/sunlim1102/archives/281)

중국 국내에서는 한층 더 강화된 신자유주의의 추진과 모택동 사상의 부흥에 대한 논의가 동시에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전통적 방식으로 경제, 생태 및 정치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자 하는 방식은 한 번도 논의된 바가 없다.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중국의 꿈’이라는 구상을 발표해 21세기 중국의 글로벌화를 어떻게 모색해 나갈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했다. 시진핑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의 실현이야말로 중화민족의 꿈이며, 중국인 한 사람 한 사람의 꿈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시진핑이 말한 꿈은 중국인의 정신적 성숙을 촉구하는 것으로, 국가와 세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서로 힘을 모으자는 호소였음에도 대다수 중국인에게는 셀 수 없을 만큼의 고급차, 편리한 교통망, 즐비한 고층빌딩과 상품이 넘쳐나는 백화점 등 유복한 국가를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값비싼 요리를 잔뜩 주문하고 다 먹지 못해 남긴 음식이 산처럼 쌓이는 것을 꿈꾸고 있다. 중국인은 서구화된 생활양식을 부러워하지만 우리들 서양인들에게 그것은 좋지 않은 전조로 여길 뿐이다.

고대 중국 말기 유학사상 가운데는 특히 여성에 대한 속박이 가혹했던 것도 있고 해서 서양인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중국의 모든 전통을 긍정할 수는 없지만, 중국인이 그들의 과거를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보지 말고 과거 속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어떤 깨달음과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견해 냈으면 한다.

중국의 전통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비즈니스 마인드나 마케팅보다는 시집, 논리와 철학 공부를 우선하였다. 국민들로부터 지식인은 사회와 정부에 충성을 다하고, 관료는 그 무엇보다도 인덕을 중시해야 한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지금 중국에 필요한 것은 에른스트 프레드릭 슈마허(E. F. Schumacher)의 저서 『S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다루었던 ‘물질지상주의materialist heedlessness)’와 ‘전통의 고수(traditional immobility)’의 ‘절충방법’이다.

중국 전통 속에 지난 100년 서구화의 대안 있어

과거 중국의 경제발전은 서구와 같이 세계 각국의 사람들을 착취하여 그들의 자연자원을 약탈했던 패턴과는 다르다. 탐욕스런 글로벌주의자의 일원이 되지 말고, 인문과 지혜를 소중히 여기는 지속 가능한 경제발전의 길로 다시 돌아와 중국 내지는 전 세계에 진정한 ‘중국의 꿈’을 펼쳐나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중국인은 유교와 도교의 전통사상을 담은 장기적 경제적 정의와 환경적 정의를 중국의 꿈속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리고 생태와 정치논리의 전통사상을 되살려 새로운 세계관의 기초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의 평가 기준 및 소비활동지수의 새로운 선택지를 제공해야 한다.

중국에는 이와 같은 사상체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미학’이라는 철학적 기초가 있다. 명과 청 시대의 중국인들은 몇 세기 전부터 시도되었던 농업관개계획 수립을 마무리하는 데 성공했었다.

282110_49702_3219
서구의 학자들은 끊임없이 자연을 약탈하는 서구의 농업과 달리 수 천년동안 자연과 어울리며 자급자족했던 중국의 유기농법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 출처: http://www.hyunbu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2110)

존 페퍼(John Feffer)가 그의 저서 『The New Marx』에서 주장했듯이, 중국의 지속가능한 농업발전의 전통이념을 다시금 연구함으로써 경제학과 환경론을 융합하는 종합적 개념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이 두 과학의 발전방향의 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인 자신들이 이런 보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중국의 발전방향을 재고함에 있어 학술전통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치평편(治平篇)』을 쓴 홍량길(洪亮吉)과 『농정전서(農政全書)』를 쓴 서광계(徐光啓)의 경제, 농업, 생태의 융합에 관한 노력이 환경요소를 무시한 경제이론에 진력했던 아담 스미스, 칼 마르크스 또는 존 케인즈 처럼 세상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날이 언젠가는 꼭 올 것이다.

중국이 세계를 선도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은 이젠 의미 없는 물음이다. 중국은 이미 글로벌 무대 위에 서 있다. 최근 30년 동안 미국문화의 현격한 후퇴와 놀랄 만큼의 지식인들의 무책임이 미국사회에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미국의 미디어가 이를 어떻게 해석하든지 간에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이 방해받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눈부신 경제력, 과학, 정치력과 심오한 문화를 지닌 중국이야말로 국제무대의 한가운데에 서는 유일한 나라가 될 것이다.

과거 아시아에서 가장 강했던 중국은 영국, 프랑스, 스페인, 독일과 같이 식민지 개척의 길을 걷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이 공평한 ‘세계 경기장’구축에 공헌할 수 있으리라 기대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기대이지 확실한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왕성한 창조력과 도덕성을 갖추고 경제력과 권력 추구를 냉정하게 절제하고, 자신들의 전통문화가 어떻게 국가와 세계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을 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법률준수, 세계 평화와 세계의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기대가 기회제공만의 무대가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기도 하다는 것을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혜택을 받는 나라도 있는가 하면 부담을 져야 하는 나라도 있다. 중국은 분명 부담을 져야 하는 쪽이다. 지금 중국의 결정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일대일로(一帯一路)’의 전망

글로벌 경제발전이라는 무대의 주역인 중국은 아시아와 유럽 각국의 일체화와 협력관계를 추진하기 위해 ‘일대일로(一帯一路)’라는 전략을 발표하고 세계 각국의 지지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여태껏 ‘일대일로’전략은 인프라 건설과 자원개발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 이와 같은 프로젝트는 지속가능한 미래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경제성장과 투자확대를 위해 이들 프로젝트는 중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그리고 그 밖의 원재료 공급을 중점으로 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실크로드기금(NSRF), 상해협력기구(SCO), 실크로드 골드기금, 광업산업발전기금 등은 환경보호와는 거의 무관한 것들이다. 에너지 소비의 정도를 국력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레스터・R・브라운(Lester Brown)의 저서 『누가 중국을 먹여 살릴 것인가? 닥쳐올 식량위기의 시대(Who will Feed China?)』에서 말하고 있듯이 중국의 식량과 연료 소비상황은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전략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이것을 바탕으로 중국은 최종적으로 새로운 조직, 정책 및 습관을 만들어 낼 것이고, 이로써 세계를 올바른 방향으로 선도해 나갈지도 의문이다.

실크로드

‘일대일로’는 지금까지는 없었던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를 계기로 이미 서구사회에서는 잊혀진 『국제연합헌장』을 기반으로 삼아 새로운 국제질서의 구축이 현실화될 수 있으리라. 또한 프라이빗 엑티 펀드와 다국적기업의 영향 하에 있는 세계은행과는 다른, 세계의 고도 일체화 동향에 적합한 글로벌 관리기구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다.

‘일대일로’전략은 중국의 독재가 아닌 세계의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초강대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국제합의시스템을 낳는 소중하고도 보기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또한 이 전략을 경제적 이익의 측면에서가 아닌 ‘인류를 위한 구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결코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중국은 ‘일대일로’전략에서 제시하고 있는 ‘신 실크로드’라는 말을 깊이 음미해야 한다. ‘실크로드’라고 하면 당 나라 때 중국과 아시아, 유럽의 각국을 연결하는 사마칸드, 안디잔과 같은 무역중심으로 대표되는 ‘오아시스의 길’과, 중국과 인도, 페르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바닷길’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중국과 중앙아시아, 인도, 페르시아 간의 깊은 문화교류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화교류는 불교사상의 융성을 촉진시켰고, 돈황의 아름다운 벽화, 장안의 멋진 조각과 자기(磁器), 그리고 그 후의 중국문학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이백(李白)과 두보(杜甫)의 시집을 탄생시켰다.

신 실크로드 구상은 서구의 경제발전을 위한 길이 아닌 문화 창조에 중점을 두어야 하고, 새로운 공항 건설을 대신해 유기농업 추진에 얼마만큼의 힘을 쏟을 수 있는 지가 중요하다. 또한 협력 프로젝트에 의한 연료, 광물의 채굴에서 지속가능한 에너지 개발로의 전환을 기대하고 있다.

어느 국가든 경제발전계획은 정신적 요구를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의 사회개혁주의자 리차드 핸리 토니(R. H. Tawney)는 가장 분명한 사실은 이러한 요소가 언제나 무시된다고 했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영혼이 있다. 경제계획은 인간 존엄성에 상처를 주고, 영혼의 자유로움을 방해하는데, 이는 물질적 풍요로써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경제 질서와 그것을 재고하고자 하는 여러 대책들이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을 경시하는 공업은 언젠가 반드시 인간 영혼에 분노의 불을 붙이고, 틀림없이 경제발전의 주기적인 파괴 내지 붕괴를 초래할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경제적 가치 이외에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해야만 한다.

이 ‘신 실크로드’구상은 과연 서구 경제발전의 파괴의 길을 피해 인류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문화로 눈을 돌리게 할 수 있을까? 또한 공항의 대량 건설과 석유연료 및 광물을 채굴하는 대신에 지속가능한 유기농업의 발전과 에너지 개발 협력 프로젝트에 힘을 쏟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재는 이와 같은 동향을 찾아볼 수가 없다. 중국은 이전에도 급격한 개혁과 변화의 시기를 경험한 적이 있다. 많은 중국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바로 중국의 과거 유산에서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해답이 숨어 있다는 점을 깨우쳐야 할 것이다.

목, 2016/12/22- 15:45
276
0

(이 칼럼은 경향신문(2016. 12. 28) 칼럼을 전재한 것입니다)

드디어 새누리당 탈당파가 개혁보수신당의 깃발을 올렸다. 4당 체제의 시작이다. 누구는 좋다고 한다. 다양한 경쟁과 협력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누구는 나쁘다고 한다. 정국 혼란을 부른다는 것이다.

이 4당 체제는 1987년 지역주의 4당 체제의 재현도 아니지만 이념과 노선의 차이로 경쟁하는 정당 체제의 출범도 아니다. 밀물이 오면 배들은 모두 뜬다. 촛불 혁명이 보수 기득권 체제에 균열을 내면서 모든 정당을 민심의 바다 위에 띄워 놓았다는 것은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뜨기만 했지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모두 기우뚱하다. 무엇을 할지 알 수 없는 불안정 체제. 민주화 30년의 정치적 결과라고 하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20161227000534_0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29명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집단탈당하면서 가칭 개혁보수신당 창당을 선언했다. 좀처럼 깨지지 않는 보수세력의 신화도 함께 깨졌다. 이로써 1990년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다시 4당 체제가 됐다. (사진 출처: http://biz.heraldcorp.com/)

국민의당 전도는 안갯속이다. 민주당, 보수신당, 반기문 모두와 연대·통합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보수신당이 국민의당, 반기문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 역시 미지수다.

새누리당은 새 출발도 못했다. 그동안 여러 정당·정파는 개헌, 제3지대, 반기문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였다. 개헌론은 여러 정당을 교차하는 새로운 균열의 축, 연대의 명분으로 기능하고 제3지대론은 제 정당·정파를 흔들고 있다.

중첩되는 4당 체제는 정치공학적 신경전을 펼칠수록 그들 사이의 경계 또한 더 흐릿해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물을 것이다. 4당 체제는 무엇에 쓰이는 물건인가.

4당 체제는 가짜 균형이면서 일종의 눈속임이다. 최적의 조합을 찾는 짝짓기 시도가 계속되는 한 4당 체제처럼 보이겠지만 짝짓기에 성공하는 순간 거품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걸 보수신당이 깨야 한다. 유동하는 4당 체제에 가장 취약한 쪽은 입지가 불안한 보수신당이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 사이에서 길을 잃고 싶지 않으면, 중도보수로 쏠린 불안정한 4당 체제를 바꿔야 한다.

지름길은 새누리당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민주당을 보지 말고 뒤에서 거목처럼 버티고 있는 새누리당을 돌아보라. 이 당의 2중대처럼 보이는 한 보수신당은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 진정한 보수를 찾다가 마음은 국민의당으로 기울고 몸은 새누리당의 중력에 이끌려 산산조각 나는 수가 있다.

201612220652250595_t
지금의 4당 체제가 오래 갈 것 같진 않다. 대선, 개헌 등으로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범하는 보수신당이 보수의 적통이 되려면 단순히 ‘비박근혜’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명한 보수개혁노선으로 새누리당을 압도해 친박결사체로 남은 새누리당을 M&A해야 한다. (이미치 출처: YTN)

보수신당의 언명대로 개혁적 보수의 새 장을 여는 일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신보수의 기치를 내세운 정당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 구보수를 탈피하겠다는 뉴라이트 운동의 실패를 세상이 벌써 잊은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급한 김에 또 간판을 바꿔 단 것 아니냐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그동안 보수정당은 재벌, 공안세력, 보수언론과 함께 기득권 동맹의 일부이면서 그 동맹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치 사령탑이기도 했다. 보수 헤게모니의 핵심은 집권했든 안 했든 공고하게 결속된 권력집단으로서의 보수당이다.

외환위기, 차떼기, 노무현 대통령 탄핵의 역풍과 같이 어떤 큰 도전에도 하나로 결집해 재기해온 역사는 보수당의 끈질긴 생존력을 잘 말해 준다.

새누리당은 이 성공담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해 이미지를 개선하고, 이미 신물 나게 해본 것이라 더 이상 감흥이 없는 반성과 혁신을 내세우는 기계적, 조건반사적인 대응으로 위기를 넘기기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위기 불감증일 수도 있지만 수많은 위기를 극복해낸 자신감의 발로일 수도 있다.

이게 새누리당이 친박 결사체로 남음으로써 닥칠 위험성을 다수 의원들이 무릅쓴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 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보수당의 신화가 깨졌다. 보수의 정치 사령탑인 당이 유일성을 잃고 둘로 쪼개진 것은 새누리당의 미래가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으리라는 신호와 같다. 게다가 대선 국면에 유력 주자의 부재라는 우연적 요인까지 겹쳤다. 천재일우의 기회다.

보수신당이 가짜 보수의 약점을 공략해서 새누리당을 흔들어야 한다. 보수개혁에 성공함으로써 새누리당을 유혹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수신당이 먼저 철저한 과거 청산을 통해 보수개혁이 뭔지 똑똑히 보여줘야 한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누가 잘못했는지 밝히고 그걸 어떻게 바로잡을지 대안을 내고 그에 합당한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

그리고 최순실과 협력하지 않은 것만 빼고 박근혜 정권의 모든 문제 정책의 선봉장 노릇을 한 김무성 같은 이가 당의 상징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새누리당의 붕괴는 보수신당에만 좋은 게 아니다. 세상의 변화에 아랑곳 않는 부동의 승자가 있다는 것은 한국 정치의 불행이다.

우리에게는 시민의 요구에 종속되고 반응하는 정당만 필요하다. 시민을 올바로 대표하지 못하면 언제든 실권을 하고 무너지는 긴장감 있는 정치는 바로 한국의 미래를 위한 것이다.

수, 2016/12/28- 11:03
191
0

‘브렉시트’에 이어 ‘이탈리브(Italy+Leave)’도 올 것인가. 지난 5일 이탈리아 시민들은 국민투표에서 개헌안을 부결시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부결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던 마테오 린치 총리는 사임을 표명했다.

개헌안에 반대 목소리를 높였던 포퓰리스트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정당 북부동맹은 승리의 깃발을 치켜 올렸다. 부패와 성추문으로 물러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마저 이 틈을 타고 부활할 기세다.

오성운동과 북부동맹은 집권하면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당장 오성운동은 조기 총선을 요구하고 나섰다.

beppe-grillo-urla
미국의 트럼프 현상, 브렉시트, 프랑스의 국민전선 등 미국과 유럽에 반기득권정치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오성운동이 이를 대변한다. 최근 현직 총리가 추진한 국민투표에서 부결표를 던질 것을 호소하는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www.blitzquotidiano.it/)

정치 풍자로 TV 퇴출

개헌안은 상원을 축소하고 지방분권을 축소하는 등 국정 운영을 효율화하자는 내용이었다. 그 자체로는 반대 의견이 클 이슈는 아니었다. 연초만 해도 개헌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런 결과가 나온 이유는 뭘까? 시민들의 반대는 개헌안 자체가 아니라 현 린치 정부, 나아가 기성 정치세력에 대한 반감에서 비롯됐다. 그 중심에 오성운동의 탄생 주역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베페 그릴로(68)가 있다. 그릴로 대표는 이번 투표를 앞두고 “이탈리아는 진흙탕에 빠졌다”며 린치 정부에 대한 심판을 호소해 결국 승리했다.

그릴로 대표는 1948년 이탈리아 제노바 리구리아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회계학을 공부했으나 학업을 끝까지 마치진 않았다.

고교 졸업 후부터 우연히 코미디언의 길로 들어선 그는 이탈리아의 유명 TV 진행자 피포 바우도에게 발탁된다. 이후 각종 버라이어티 쇼에 출연해 활발하게 정치·사회 풍자를 하며 이름을 알렸다.

1
1970년대 코메디언으로 활약할 당시의 모습 (사진 출처: http://foto.ilmessaggero.it/)

1986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담은 ‘그릴로 메트로 쇼’를 맡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인 1987년 당시 총리였던 베티노 크락시 당시 총리를 TV 쇼에서 비판했다가 공영방송 RAI 등에서 퇴출당한다.

그릴로 대표는 1993년 잠깐 RAI의 라이브쇼에 출연했다가 1500만 명의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그의 풍자를 참지 못했고 결국 1990년대 이후 거의 TV 방송에 나오지 못하고 만다.

그릴로 대표는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집권 정당의 선전 목적에 따라 남용된다고 비판했다. 결국 TV로부터 타의로 ‘망명’한 그가 선택한 것은 국내외 거리 공연이었다. 그는 욕설을 섞은 거침없고 자유로운 화법으로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무능을 신랄하게 비판해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공연은 많을 때 1년에 100회 이상 열렸다.

‘키보드 선동가’로 명성

인터넷이 본격적으로 보급되자 그릴로 대표는 소셜미디어를 또 하나의 무기로 삼았다. 2000년 즈음 블로그를 개설했다. 암울한 시대는 역설적으로 그릴로 대표의 주가를 더 높여줬다.

2001년 미디어 재벌이자 기업가 출신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다. 베를루스코니는 공영방송까지 장악해 실질적으로 주류 언론 거의 전부를 틀어쥐고 여론조작에 나선다.

언론이 기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를 수렴하지 못하고 진실조차 뭉개자 그릴로 대표의 블로그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는다. 그릴로 대표가 종종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의 ‘나는 꼼수다’와 비교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의 블로그는 정치·경제이슈부터 환경·노동문제까지 모두 다뤘다. 언론은 그를 ‘키보드 선동가’로 부르기도 했다. 블로그 내용은 이탈리아·영어·일본어 등 3개 국어로 제공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008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중 하나로 그의 블로그를 꼽았다. 방문자 수 기준으로 세계 10위 안에 들기도 했다. 그의 트위터 역시 200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다.

그릴로 대표의 블로그를 찾던 사람들은 단순한 팬덤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블로그에서 각종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던 시민들은 각 지역 공동체에서 오프라인 모임까지 갖게 된다. 지역별로 작은 모임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논의하는 그룹은 2년 만에 전국적으로 650개나 생겨난다.

2006년 총선에서 베를루스코니 정권이 물러나고 로마노 프로디 총리가 이끄는 좌파가 집권한다. 그러나 프로디 정권은 경제회복에도 실패하는 등 신통치 않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릴로 대표는 2007년 기성 정치인들에게 욕을 퍼붓자며 ‘V-day’ 축제를 기획한다. ‘V’는 ‘Vaffanculo’이라는 이탈리아어의 약자로 ‘빌어먹을’ ‘썩 꺼져’ ‘엿 먹이다’라는 뜻이다. 이 집회에는 2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블로그와 소셜미디어로 조직된 최초의 이탈리아 정치 집회로 꼽힌다.

product.product-image-246212-600x0-q85
2007년 베페 그릴로가 기획한 V-day 포스트.

하지만 2008년 총선에서 또다시 베를루스코니가 승리한다. 심지어 부패 비리 혐의로 재판 중이었던 베를루스코니의 승리에 이탈리아는 충격에 빠진다.

결국 그릴로 대표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은 기성 정치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시민들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자는 운동을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오성운동’이다. 기성 정치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이름조차도 ‘정당’이 아니라 ‘운동’이라고 붙였다.

반기득권 풀푸리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 확대와 반부패, 유럽연합(EU) 탈퇴를 기치로 내건 오성운동은 2009년 10월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진다. 오성이란 좌우 이데올로기를 거부하고 오직 시민들을 위한 일을 하겠다는 그들이 내세운 다섯 가지 새로운 목표 ▲공공수도 ▲인터넷 접속권리 ▲지속가능한 교통수단 ▲지속가능한 개발 ▲생태주의를 뜻한다.

오성운동은 부패한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반감이 크다. 국회의원 임금을 일반 노동자 임금 수준으로 삭감하고, 국회의원도 2선까지만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패정치인들은 출마를 금지하고, 국회의원들에게 헌법교육 및 시험을 의무화하자는 방안도 내놓는다. 정당 보조금도 중단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성운동은 실제로 선거자금 국고보조를 거부하고 시민들에게 크라우드 펀딩 방식으로 지원을 받았다.

이와 함께 오성운동은 기성 정치권으로서는 다소 황당하게 들릴 만한 정책들도 내놓는다. 전 국민 인터넷 무료 사용, 전 국민 기본소득 보장, 근로시간 20시간으로 단축, 자유무역 반대 등이다. 이런 정책들에 대해 우파는 ‘과대망상’ 좌파는 ‘무정부주의자’라는 비난을 쏟아낸다.

다소 거칠어 보일지는 몰라도 그들의 정책은 인터넷을 통해 3년간 이어진 토론과 투표의 결과물이었다. 1000여 개의 지역 모임 50만 명의 참여자들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다. 이 정책을 만든 오성운동 당원들은 2013년 총선에서 후보로도 직접 나선다. 이 후보들 역시 인터넷을 통한 경선에서 최종 선출됐다.

o-GRILLO-facebook
2013년 총선에서 오성운동은 창당 4년 만에 제1 야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고무보트를 타고 환호하는 군중의 바다 위에서 즐거워 하는 베페 그릴로의 모습.

선거 결과는 놀라웠다. 창당 4년 만에 제1야당이 된 것이다. 전체 유권자의 25.5%에 해당하는 870만 표를 얻었고 무려 163명이 의회에 진출한다. 스튜어디스, 싱글맘, 남자 간호사, IT 기술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30~40대가 무더기로 당선됐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도 오성운동은 로마(비르지니아 라지)와 토리노(키아라 아펜디노)에서 시장을 배출했다. 정당 지지율은 30%에 육박한다.

1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로마 역사상 첫번째 여성시장으로 당선된 비르지니아 라지(왼쪽)와 토리노 시장으로 당선된 키아라 아펜디노. 

오성운동의 인기에는 이탈리아의 암울한 상황도 한몫하고 있다. 유로존 3위의 경제 대국인 이탈리아는 정부 부채 비율이 133%에 이르고, 은행 부실대출은 3600억 유로나 된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7년보다 낮아졌고, 실업률도 11%를 웃돌아 고용률이 그리스를 제외하면 EU에서 가장 낮다. 청년실업률은 40%대에 육박했다.

41살의 젊은 린치 총리는 2014년 집권하면서 이탈리아의 전 분야를 개혁하겠다고 나섰다. 공공부문 감축, 재정지출 축소 등 긴축정책을 펼치며 ‘제2의 토니 블레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경제는 개선되지 않았고 도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완전히 망가졌으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기존 시스템을 버리고 시민혁명으로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는 그릴로 대표의 주장은 설득력 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오성운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앞서 로마 시장으로 당선된 라지는 공약으로 내걸었던 쓰레기와 교통문제 개선은커녕 시정 장악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릴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인터넷을 기반으로 이뤄지는 오성운동의 직접민주주의 시스템을 남용하고 당 내부의 반발을 묵살한다는 비판도 제기돼 왔다. 실제 2013년 당선된 의원 163명 중 37명이 축출되거나 탈당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다시 코미디언으로 돌아가나?

그릴로 대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그것이 인기의 비결이었겠지만, 때로는 거센 비난도 함께 몰고 온다. 지난 5월 무슬림으로 신임 런던 시장이 된 사디크 칸을 두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자살폭탄을 터뜨리는 광경을 보고 싶다”며 저열한 농담을 던졌다가 뭇매를 받았다.

세상은 그의 발언에서 불안함부터 읽어낸다. 유로존을 탈퇴하겠다, 국가 채무를 재조정하겠다는 등 세계 금융시장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의 모습에 2013년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로 그릴로 대표를 지목했다.

beppe-grillo-satira
베페 그릴로는 기성 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을 배경으로 인기를 얻었다. 기성정치에 대한 거침없는 야유와 조롱에 대중들은 환호했다. 정치판에 감자를 먹이는 시늉을 하는 그의 모습.

그릴로 대표는 과거 차량 운전 사고를 내 3명을 숨지게 해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도 있다. 2013년 총선에도 이 때문에 출마하지 않았다. 총리가 될 생각도 없다고도 밝혀 왔다. “정치에 직접 몸을 담그지 않으면서 훈수만 두는 비겁한 사람”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모습에서 결국 정치인은 어디에 발을 딛고 서 있어야 하는지를 느낄 수 있다.

“군중의 초현실적 환상을 활용할 줄 알고 손쉽게 분위기를 바꾸며 필요한 순간에 가장 정확한 말을 할 줄 아는 사람” 그릴로 대표의 멘토였고 최근 타계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다리오 포는 그를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릴로 대표가 인기를 끌고 이탈리아 정치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한국의 모습과 흡사하다. 보수 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주류 언론은 정권에 장악 당했고 정치는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지리멸렬한 모습만을 반복하고 있다.

그릴로 대표는 종종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비견되기도 하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방송에서 멀어지면서 오히려 더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 김제동의 ‘거친 버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들은 개헌 국민투표 이후 그릴로 대표가 정계은퇴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릴로는 지쳤고, 본업인 코미디 무대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릴로 대표는 2014년에도 젊은 간부들에게 당을 맡긴 뒤 떠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큰 지금,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목, 2016/12/29- 17:47
509
0

지난 6월 공식 출범 이후 (사)다른백년은 논평 활동을 통해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론 정립 △전문가 네트워크 구축 △정론의 유통과 확산 등을 목표로 많은 글을 공개해왔습니다.

지난 6개월 동안 공개된 글은 주간논평 15개, 금주의인물 25개, 그리고 백년칼럼 4명(이래경, 김동춘, 김상준, 이대근)이었습니다.

1

<주간논평>은 다음과 같이 해당 시기에 가장 핫한 이슈를 선정해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의 글을 실었습니다.

 

안병억 대구대 교수

브렉시트, 푸틴, 트럼프, 그리고 ‘우리’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

좋은 헌법은 없다

김주언 전 KBS이사

그 분이 KBS 보던 날

서재정 일본 국제기독교대 교수

사드, 되돌아온 구한말

성상희 변호사

성주의 반란, 민주주의의 축제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삼성이 망해도 한국경제가 사는 길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경희대 교수

정책혁신가인가, 사익의 대변자인가?

다른백년은 동아시아에 있다

정상호 서원대 교수

문재인의 ‘국민성장’ 무엇이 문제인가

김창환 미국 캔자스대 교수

트럼프, 출구없는 시대의 선택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

최순실 주머니 채운 국가 예산

최 선 연세대 연구교수

박근혜 탄핵이 마땅한 이유

정재원 국민대 교수

탄핵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들

황준호 프리랜서 기자

트럼프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전망

홍일표 더미래연구소 사무처장

대한민국 관료, 군림하는 심부름꾼

<금주의 인물>은 매주 국내 인물과 해외 인물을 번갈아 가면서 소개했고, 화제의 인물을 통해 시대변화의 흐름을 읽고자 했습니다. 황경상 경향신문 기자, 이동현 한국일보 기자, 이승준 한겨레신문기자가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돌아가며 매주 화제의 인물을 소개했습니다.

 

국내 인물

해외 인물

극강 보수의 아이콘, 박승춘 보훈처장

‘브렉시트’의 선동가, 나이젤 파라지 영국독립당(UKIP) 당수

13번째 ‘지혜의 기둥’, 김재형 신임 대법관 후보자

브렉시트 구원투수, 테레사 메이 신임 영국 총리

반부패 잔다르크, 김영란 전 대법관

한국 불교의 죽비소리, 현각 스님

‘제2의 조응천’,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아베의 ‘적’ 혹은 ‘보완재’, 아키히토 일왕

마운드에 오른 폐족, 안희정 충남도지사

탄핵된 좌파의 실험, 호세프 전 브라질 대통령

‘친박’이 된 세계 대통령, 반기문 UN사무총장

술탄이 되려는 남자,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SNS를 든 싸움닭, 이재명 성남시장

홍콩의 ‘젊은 그들’

불안한 황태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노벨상을 받은 록스타, 밥 딜런

박근혜의 승부수, 최재경 민정수석

반기문과는 다를 사람, 구테헤스 차기 UN사무총장

“국민이냐 대통령이냐” 박원순 서울시장

거부당한 기득권 정치인, 힐러리 클린턴

박근혜 탄핵 심판관,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프랑스판 트럼프’,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

시대를 역행한 법 기술자,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

“아듀,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전 의장

 

정치를 엿먹인 선동가,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대표

<백년칼럼>이래경 칼럼, 김동춘 칼럼, 김상준 칼럼, 이대근 칼럼 등 (사)다른백년의 이사들이 정기적으로 기고했습니다.

2017년 새해가 시작됩니다. 새해에도 정론의 정립과 확산, 전문가 네트워크의 구축 등을 위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금, 2016/12/30- 12:06
571
0

‘당대 최고의 칼잡이’ ‘재벌총수 저승사자’로 불렸던 박영수 특별검사가 다시 ‘칼’을 잡았다. 27년간 들었던 사정의 칼을 놓은 지 7년 만에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로 돌아온 것이다.

박 특검의 앞에는 최고 권력자 박근혜 대통령이 “완전히 엮은 것”이라며 버티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 경제권력 집단인 삼성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최순실 게이트 중심에서 “우리도 피해자”라고 강변하고 있다.

01.12981334.1
연초 정국은 특검의 수사결과에 의해 좌우될 공산이 크다. 연초부터 대통령이 “엮였다”며 반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뿐 아니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의 신년 운세가 박영수 특검의 손에 달려 있다. (사진 출처: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612130717g)

특검팀의 1차 수사 시한은 70일로 2월 28일까지다. 1톤 트럭 한 대 분, 2만쪽에 달하는 검찰 수사기록을 살펴보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 정공법을 택한 당대 최고의 칼잡이 ‘검사 박영수’가 과연 어떤 승부를 보여줄지 ‘1,000만 촛불’을 비롯한 시민들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엮였다”는 박근혜

박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삼성그룹-국민연금으로 이어지는 제3자 뇌물수수 의혹을 정조준하고 있다.

특검팀이 공식 수사에 착수한 이래 처음으로 지난달 28일 신병을 강제로 확보한 피의자도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문형표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다. 문 이사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을 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등)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의 뇌물죄 혐의 입증을 위한 첫 단추를 끼운 것이다.

문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 특검 1호 구속자라는 불명예를 안고서야 “삼성 합병 찬성 압력은 박 대통령 지시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박 대통령이 직접 나섰지만 여론의 비난만 자초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뇌물죄 의혹과 관련해 “(특검이) 완전히 엮은 것입니다. 누구를 봐줄 생각, 이것은 손톱만큼도 없었다”고 강하게 부인했다.

재벌 저승사자…삼성 잡을까

재계의 긴장감은 더하다. 박 특검은 검사 시절 ‘재벌총수 저승사자’로 불렸을 정도로 대기업집단 수사에 정통한 인물인 때문이다.

박 특검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 검사로 있던 2003년 SK그룹의 부당내부거래 및 분식회계 수사를 지휘하며 최태원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1조5,000억원 규모의 분식회계가 드러났고, 이는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최돈웅 의원과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대한 거액의 비자금 제공 의혹으로 번지면서 대선자금 수사로 번졌다.

당시 재계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국가부도가 우려된다”는 거센 압력이 거셌고, 검찰 내부에서도 수사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지만 박 특검은 굴하지 않았다.

박 특검은 오히려 수사 착수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이례적으로 수사 소회를 밝히며 안팎의 우려와 비판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그는 “검찰은 이번 수사를 통해 우리 나라의 기업이 지배구조나 투명성에 있어서 치유할 수 없을 정도의 ‘도덕적 암’에 걸려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더 이상 묵과하는 것은 검찰다운 자세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박 특검은 하지만 SK그룹 수사 직후 부산 동부지청장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경제권력에 칼을 댄 데 따른 좌천 인사였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동부지청 차장검사로 잠시 휘하에 있기도 했다.

1
박영수 특검은 현직 검사시절, 재벌회장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다. 사진 왼쪽부터 2003년 SK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된 최태원 SK회장, 2005년 해외도피에서 귀국해 공항에서 검거된 김우중 전 대우 회장, 2006년 비자금 조성 혐의로 구석된 정몽구 현대차 회장. 이번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초조하게 수사결과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던 2005년 해외도피 5년 8개월간에 귀국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수사를 지휘했다.

김 전 회장의 정ㆍ관계를 상대로 한 대우그룹 구명로비 의혹을 밝히는 데 실패했지만, 41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규모의 분식회계를 밝혀내는 등 성과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에는 현대차그룹의 1,000억원대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를 밝혀내 정몽구 현대차 회장을 구속기소 했다.

당시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대글로비스 건물 9층 사장실과 재경팀 사이 벽 속에 숨겨져 있던 비밀 금고를 찾아낸 일화는 지금도 법조계에서 회자된다. 50여억원의 현금과 미 달러화,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비자금과 기밀 서류를 비밀 금고에서 찾아내면서 정 회장의 혐의 입증의 결정적 단서를 확보했었다.

금융권 로비스트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대표의 정ㆍ관계 불법로비 사건과 미국계 펀드 론스타의 외환은행 헐값 매입 사건 등도 박 특검의 손을 거쳐갔다.

박 특검이 야인으로 물러난 뒤 2010년 대기업 집단의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재벌의 부당 내부거래의 문제점을 파헤친 ‘부당 내부거래의 위법성 판단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박 특검은 후배 검사를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도 충실히 했다.

중수부장이던 당시 수사기획관이 채동욱 전 검찰총장, 중수부 1과장이 최재경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다. 일선 수사 검사로는 이번에 특검 수사팀장을 맡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로 유명세를 탔던 윤석열 대전고검장이 있었다. 또 다른 ‘박근혜 정권 게이트’로 번지고 있는 이영복 엘시티 회장 로비 의혹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윤대진 부산지검 2차장 검사도 당시 중수부에서 활약했다.

조폭, 마약, 유사종교 다룬 ‘강력통’ 

박 특검이 주로 정ㆍ재계 유력 인사들의 주요 범죄를 다루는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1983년 서울지검 북부지청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한 박 특검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1년 청와대 민정수석실 사정비서관을 맡기 전까지는 조직폭력배 등을 상대로 주로 총기ㆍ마약ㆍ도박 사건을 해결하는 ‘강력통’으로 활약했다.

수원지검 강력부장, 대검 강력과장, 서울지검 강력부장 등 그의 이력에 ‘강력’이라는 두 글자가 빠지지 않았다.

1998년 소음기와 조준경까지 갖춰 저격용으로 쓸 수 있는 22구경 소총과 권총 등을 불법 제조ㆍ밀매한 조직을 적발해 유명세를 탔다.

현역 국회의원의 아들이자 가수로 활동하던 A씨 등이 포함된 연예계 상습 마약 투약 사건, 8개국 4개 마약밀재조직 조직원 22명 적발 등 마약 범죄 수사에도 큰 성과를 냈다.

슬롯머신 업계 대부 정덕진씨의 해외 원정도박 자금 455만달러를 밀반출 사건, 봉은사 호법국장 등이 서울 강남 일대에서 수십억원대 판돈을 걸고 포커게임을 벌인 ‘스님도박단’ 사건, 일본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탤런트ㆍ모델 등이 포함된 기생 관광 조직 적발, 재개발ㆍ재건축 인허가 등에 개입해 200억원대 재산을 부정축재한 서울시 행정주사 비리 사건 등 크고 작은 사건이 박 특검의 손을 거쳐갔다.

박 특검이 유사 종교 수사와도 인연이 깊다는 점은 최순실 게이트 수사가 국민적 의혹을 사고 있는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대 될 수 있음을 사시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images
1987년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은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당시 수사검사로서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박영수 특검의 모습. 유사종교 사건에 특기가 있는 박영수 특검은 박근혜 대통령의 멘토였던 최태민의 유사종교 관련성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일례로 박 특검이 처음으로 이름을 드러낸 사건은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이다. 경기 용인의 공예품 회사 오대양 공장 식당 천정에서 이 회사 대표 박순자씨와 가족 종업원 등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히 감긴 채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박 특검은 당시 수원지검 평검사로 사건 현장을 가장 먼저 찾았다.

박 특검은 대학 시절 종교철학을 공부한 때문인지 몰라도 검찰 내에서 유사 종교 범죄를 가장 많이 다룬 검사라는 이색 경력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1994년 신흥종교 연구가인 탁명환 한국종교문제연구소 소장 피습 사망 사건의 수사 검사를 맡기도 했다. 탁 소장은 오대양 사건의 배후에 구원파가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 수사를 비판해 박 특검과 스친 전력이 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좌고우면 않을 것”

다른 한편으로는 1970년대 최순실씨 부친인 최태민씨의 행각을 최초로 추적ㆍ고발한 인물이기도 해 묘한 인연의 고리가 있다.

박 특검은 지난달 2일 수사방향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최태민씨와의 인연이 ‘최순실 게이트’로 연결됐다는 지적과 관련해 “유사종교 연루 부분도 자세히 볼 것”이라며 탁 소장 피살사건 수사 경험을 언급하기도 했다.

다양한 초식(招式ㆍ무술의 일정한 동작)을 섭렵한 박 특검에게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물론 ‘당대 최고의 칼잡이’라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 평가다.

검찰이 지난 2008년 창립 60주년 맞아 일선 검사 등을 상대로 조사한 ‘검찰 60년 20대 사건’ 중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 SK그룹 분식회계 사건 등 3건을 박 특검이 직접 당당하거나 지휘했다.

1
이번 특검의 1호 구속자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장관이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에 부당한 압력을 넣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도왔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삼성-최순실의 연결고리 중 한 곳이 찔린 것이다. 최종 칼끝이 박근혜 대통령을 향할지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박 특검은 후배 검사들에게 ‘회사후소(繪事後素)’ 정신을 강조해 왔다. 지난 2009년 서울고등검찰청장을 끝으로 법복을 벗을 때도 이 말을 남겼다. 회사후소는 논어 팔일에 나오는 말로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흰색 바탕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그러면서 “검찰권을 행사할 때는 절제가 필요하다. 검찰권은 시류에 편승하거나 그렇게 비쳐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박근혜 대통령 수사 결과 어떤 그림이 그려질 지, 1차 수사 시한인 2월 28일까지 모든 국민이 숨 죽이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박 특검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목, 2017/01/05- 17:42
535
0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 최근 결선투표제가 제도개혁의 큰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

결선투표제란 (일반적으로)(각주1) 투표결과 과반을 넘는 후보가 없는 경우, (일반적으로)(각주2) 1, 2위에 한해서 2차 투표를 실시해서 과반 득표자를 당선시키는 제도이다.

도입과 관련해서 개헌여부, 정당 간 합의 여부 등 여러 난관이 지적될 뿐, 이 제도가 바람직하다는 데 대해서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¹®ÀçÀÎ-¾Èö¼ö, '¾î»öÇÑ Á¶¿ì'     (¼­¿ï=¿¬ÇÕ´º½º) ÀÌ»óÇÐ ±âÀÚ = Á¶±â ´ë¼±ÀÇ ÃÊÀÔ¿¡¼­ ¾ß±ÇÀÇ ÀáÀçÀû ´ë±Ç ÁÖÀÚÀÎ ´õºÒ¾î¹ÎÁÖ´ç ¹®ÀçÀÎ Àü ´ëÇ¥, ±¹¹ÎÀÇ´ç ¾Èö¼ö Àü ´ëÇ¥°¡ 22ÀÏ ¿ÀÀü ¼­¿ï ¿©Àǵµ Áß¼Ò±â¾÷Áß¾Óȸ¿¡¼­ ¿­¸° 'º¸¼ö¿Í Áøº¸ ÇÔ²² °³ÇõÀ» ã´Â´Ù' Åä·Ðȸ¿¡¼­ ¸¸³ª ÀÚ¸®Çϰí ÀÖ´Ù. 2016.12.22     leesh@yna.co.kr/2016-12-22 12:37:38/
올해 조기대선이 가시화되면서 결선투표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제도 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 없이 각 대선 후보, 또는 정파의 유불리에 따라 제도 도입에 대한 입장이 갈리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 출처: http://www.huffingtonpost.kr/2016/12/23/story_n_13809718.html)

그리하여,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라는 물음은 우문으로 들린다.

결선투표제는 만병통치약?

최근 프레시안이 마련한 대담(“결선투표제가 개헌 사항? 점쟁이 독심술하나?”)에서 사회자는 “결선 투표제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선 이견이 없지만, 난관은 이를 어떻게 현실화시킬 것이다”라며 토론을 시작했다.

결선투표에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결선투표제를 하면 단일화 게임에 매몰된 대선 과정이 뒤바뀌어서 정책경쟁이 활발해진다.
  • 사생결단식의 상호적대를 벗어나서 정당 간 연합이 활성화되어 협치가 자리 잡는다.
  • 소수 정당도 자신의 정책노선을 앞세워 선거완주를 할 수 있다.
  • 더 많은 선택지를 갖게 된 유권자는 종전처럼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고통 없이 자신의 진정한 선호에 따라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대의제도에 대한 효능감도 올라가게 될 것이다.
  • 당선된 대통령은 50% 이상의 지지로 당선된 만큼 지금보다 한층 높은 정통성(legitimacy)을 가질 수 있다.

이런 기대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우리 현실에서 정언명령이요, 만병통치약이 아닐 수 없다.

전혀 다른 학계의 논의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 대통령제 연구는 사실상 우리와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를 경험한 신생민주주의 연구의 일환으로 발전해 왔다.

대통령제를 비교연구하는 학문 공동체 안에서 “결선투표제는 좋은 제도인가?”라고 묻는다면 이 또한 우문으로 들릴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경험분석에 따르면 “결선투표제는 정말 나쁜 제도인가?”가 오히려 적절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14.3
결선투표제는 과반 이상의 득표자가 없을 때, 한 번 더 투표를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제도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사례에 대한 비교정치학적 분석이 요구된다. (이미지 출처: http://www.redian.org/archive/46829)

후안 린즈(Juan Linz), 아르투로 바렌주엘라(Arturo Valenzuela), 마크 존스(Mark Jones), 아니발 페레즈-니난(Aníbal Pérez-Liñán) 등 절대 다수가 결선투표제는 대통령 선출방식으로 위험하다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이들의 반대논리를 살펴보기 전에 결선투표제가 부각된 이유를 우선 살펴보자.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은 우리만의 일은 아니며, 실지로 많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도입했고, 그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선투표제 도입의 배경

(대통령 선출방식이 아니라) 선거제도 일반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결선투표제는 단순다수제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평가돼 왔다. 1등만 하면 득표율과 무관하게 당선되는 단순다수제에서 이른바 ‘콩도세 승자’가 당선자가 되지 못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콩도세 승자(Condorcet winner)란 일대일로 붙였을 때 다른 모든 후보를 누를 수 있는 후보를 말한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서는 상대 진영의 분열로 인해 어부지리로 1위가 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민주화 이후 첫 대선이었던 1987년 선거이다. 민주정의당 노태우 36.64%, 통일민주당 김영삼 28.03%, 평화민주당 김대중 27.04%를 각각 득표했다. 노태우 후보는 과반은커녕 채 40%도 안 되는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2위, 3위의 지지층이 공통적으로 싫어하므로 당선의 정통성과 집권의 통치력이 모두 낮을 수밖에 없었다.

7d478f72fcd399de6c452a32a123268a
진보진영에서 결선투표제에 대한 찬성 의견이 높은 것은 1987년 대선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야권 분열로 노태우 후보가 당선된 경험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선투표제의 도입 여부는 단순히 대선의 승리 여부 뿐 아니라 정당체제 등 정치질서 전반에 대한 검토를 필요로 한다. (사진 출처: https://kr.pinterest.com/kiss7kiss/?redirected=1)

당시 콩도세 승자는 김영삼이었으며 결선투표제가 있었다면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각주3)

세계적으로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민주주의가 무너진 사례가 있는데, 바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이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인민연합(Unidad Popular)의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는 36.6%로 당선되었는데, 2위가 35.3%, 3위가 28.1% 득표했다. 대통령이 된 아옌데는 선거과정에서 제시한 주요공약을 이행했다.

물가동결, 임금인상, 석탄 및 철강산업 국유화, 주요 구리광산과 시중은행의 국유화 등. 그 결과는 기득권층의 강력한 반발이었고, 3년 뒤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선거연구자들은 이를 ‘아옌데 신드롬’이라면서, 단순다수제에서 취약한 지지기반으로 승리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사태로 이해한다.

아옌데 신드롬은 이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이 대거 민주화되면서 선거제도를 설계할 때 중요한 고려사항이 되었다.

과반, 즉 절대다수(majority)에 이르지 못하고, 상대다수(plurality)에 그칠 경우 상위권에 대해 재선거를 하는 것이 결선투표제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한적’(qualified) 상대다수 제도를 취하기도 했는데, 꼭 50%가 아니라 40%로 관문을 낮춘 경우도 있고, 1위가 30% 득표하더라도 2위와의 격차가 10%p. 이상이면 승자로 선언하는 경우도 있다. 재선거를 하더라도 다른 결과가 나오기 어렵다면, 또 한번 선거를 치르며 많은 비용을 지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더불어, 2차 투표의 가능성이 열려 있게 되면 후보난립으로 정당의 파편화(fragmentation)가 우려되기도 한다.(각주4)

아래 <표>에서 절대다수나 제한적 상대다수제를 취하는 경우는 모두 결선투표를 갖고 있는 제도이다. 반면, 상대다수제도가 한번 선거에서 1표라도 많은 1위 득표자가 승리하는 단순다수제이다.

1

결선투표제의 문제점

만약 결선투표제를 했다면 1987년 한국과 1970년 칠레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노태우와 아옌데는 당선되지 않았거나, 정책노선을 한결 온건화해야 했을 것이다.

사실상 어부지리로 당선된 노태우는 1988년 총선에서 여소야대 상황을 맞이했고, 국회에 끌려 다니다 급기야 3당합당을 추진했다. 남북기본합의서, 북방외교 등 당시 보수정권으로서는 상당히 개혁적인 조치도 취한 것도 이러한 수세적 상황과 관계돼 있다.

아옌데가 결선투표에 가야했다면, 2위였던 호르헤 알레산드리(Jorge Alessandri)와 재대결하고, 3위 기독민주당의 토믹(Radomiro Tomic)이 획득한 표(28.1%)를 서로 가져오려고 경쟁을 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옌데는 당선을 위해 공약을 대폭 수정해서라도, 산토끼를 가져오고 집토끼를 어느 정도 잃어버리는 모험을 감행했을지 모른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되고 정치안정과 지속가능한 개혁이 가능하다고 기대할 수 있다.

(1) 결선투표제는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킬까?

앞서 보았듯이, 단순다수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못할 개연성이 있다.

메릴 3세(Samuel Merrill Ⅲ)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두 제도를 비교했는데, 결선투표제에서는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각주6)

하지만, 확률이 높아질 뿐 결선투표제가 언제나 콩도세 승자를 당선시키는 건 아니다. 더군다나, 메릴 3세의 연구는 후보자수가 같다는 가정을 하고 있는데, 결선투표제는 후보자를 증가시키기 마련이고, 이 경우에는 오히려 콩도세 승자가 당선될 확률이 낮아질 수 있다.(각주7)

(2) 결선투표제와 후보자 증가, 정당파편화

결선투표제는 유효한 득표를 하는 후보자 수를 증가시킨다.

단순다수제라면 어차피 당선되기 어렵다는 전망 때문이거나, 괜히 완주했다가 자신보다 이념거리가 먼 후보가 당선되는 결과를 우려해서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는 이러한 걱정이 한결 줄어든다. 소수정파로서는 1차 투표에서 자신의 세를 보여주기만 하면, 2차에서 구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경험연구에서 결선투표제는 후보자수를 증가시키고 정당파편화를 가져온다고 밝혀왔다.

content_1454032093
선가가 있을 때마다 소수 정당들을 거대 여당에 맞서 야권단일화의 압력을 받았으며, 이는 소수 진보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로 인식됐다. 그러나 다양한 정당의 출현이라는 잇점이 있지만, 동시에 다당제 하에서 대통령의 통치가능성 저하라는 문제가 동시에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 결선투표제 도입은 결국 우리 정치체제가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느냐의 문제이다. (이미지 출처: http://www.ziksir.com/ziksir/view/2918)

소수정당에게는 세력을 확대하고 자신의 의제를 내세울 기회가 되지만, 집권세력에게는 통치에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제와 민주화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관심사는 헌정위기이고 정당파편화와 대통령-의회 간 교착이야말로 최대의 위험으로 간주돼 왔다. 이런 맥락에서 관련 학자들은 다수가 결선투표제를 반대해 왔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담론에서는 양대 정당의 독식구조가 주로 문제시돼 왔고, 이를 해체하기 위한 제도개혁으로 결선투표제가 제시되고 있다.

“정치안정과 통치력의 확보”와 “다양한 세력의 진출 허용”이라는 두 목표는 서로 대체 관계(trade-off)에 있다. 하나가 강화되면 다른 하나는 약화된다.

현재는‘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한다는 명분 때문에, 집권 대통령의 통치력 부족 사태에 대해서는 너무 무관심하다.

(3) 정통성 제고

30, 40%로 당선되는 것보다는 50%를 넘는 득표를 통해서 당선되면 유권자의 절반이상의 지지이므로 대표로서 정통성(legitimacy)이 확보될 수 있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경험분석(각주8)에 따르면 1979년부터 2002년까지 모든 대통령선거를 통해서 단순다수제에서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율은 48.4%이며, 결선투표제의 승자가 1차에서 득표한 비율은 44.2%이다. 별 차이가 없는 것이다.

이런데도 굳이 결선투표를 해야만 하는가에 의문이 든다.

결선을 치르는 한 과반이 뽑히기 마련이지만, 1차 투표에서는 오히려 득표기반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당선자는 오히려 자신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2차 결과는 제조된 과반(manipulated majority)일 뿐, 진정한 의미의 과반은 아니며, 2차에서 연합하는 인센티브는 특정 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 모이자는 부정적 합의(negative consensus)이기 십상이다.(각주9)

당선자의 취약한 기반을 확인하는 것은 한편으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전체 유권자 가운데 소수의 선택을 갖고도 전체를 대변하는 양 정부를 운영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하지만, 단순다수제에 비해 결선투표제의 제조된 과반이 질적으로 다른 정통성을 제공한다고 보기 어렵다. 애초에 지지세가 약하므로 다른 후보들의 지지를 가져와서 통치기반을 확대할지 모르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지지기반을 갖게 되기도 한다.

더구나 2차투표에서 투표율이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 만큼, 이렇게 제조된 과반이 부여하는 정통성에 대해서도 의문부호는 남는 것이다.

(4) 순위 변경의 효과

일반적으로 단순다수제나 결선투표제나 실제 선거결과에 별 차이가 없다 하더라도, 드물게라도 두 제도에서 결과가 달라진다면 결선투표제는 이런 상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일 수 있다.

단순다수제였다면 끝나버렸을 1차 투표에서 2위에 머무른 후보가 2차에서 1위로 올라선다면, 이것을 결선투표제의 진정한 효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페레즈-니난의 연구에 따르면 이런 경우가 결선투표제가 낳는 진정한 위험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 1979-2002년 사이에 1차 결과가 2차에서 뒤집힌 경우는 7차례에 불과한데, 많은 경우 헌정위기로 이어졌다. 그의 통계분석에 따르면 헌정위기를 초래하는 것은 결선투표제 자체보다 1, 2차의 1위자가 뒤바뀌는 경우이다.

에콰도르에서 1996년에 당선된 부카람(Abdalá Bucaram)은 1차에서 23%만 득표하고도 2차에서 54%를 얻어 당선되었다. 부카람의 롤도시스타당(Partido Roldosista Ecuatoriano)은 의회에서 23%의 의석만 갖고 있었고, 연합을 구성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그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취임 6개월 여 만에 8%까지 내려앉았다. 의회 반대파와 대규모 시위가 결합되어 결국에는 탄핵되고 말았다.

페루의 후지모리도 1990년 선거에서 1차 33%, 2차 62%로 당선되었지만, 의회와 끊임없이 갈등하다가 1992년 스스로 쿠데타를 일으켰다.

과테말라의 엘리아스(Jorge Serrano Elías)도 1991년 1차 26%, 2차 68%로 당선되었고 의회와 교착이 지속되었다. 그는 후지모리와 같은 해법을 모색하다가 국내외 압력에 직면해서 1993년 중도사퇴하고 해외로 망명하였다.

(5) 전략투표가 아닌 진심투표

단순다수제에서 소수정파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경우 진정한 선호대로 투표하는 진심투표(sincere voting)를 하게 되면 사표가 될 공산이 크다. 이런 성향의 유권자는 할 수 없이 차선이나 차악을 전략적으로 선택하게 되거나, 기권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결선투표제에서는 적어도 1차 투표까지 소수파도 완주할 수 있으므로, 유권자의 선택지는 넓어진다.

하지만, 이는 앞서 지적했듯이 동전의 양면처럼 후보난립을 수반한다. 더구나 2차 투표에 가서 전략적 투표를 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이 과정에서 1차에 비해 투표율 하락이 일어나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6) 정략적 합종연횡 문제

현재와 같은 단순다수제에서도 누굴 당선시키느냐보다 누굴 떨어뜨리느냐하는 부정적 연합이 일어날 수 있다. 이른바, 단일화 게임이 선거과정을 지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선투표제에서도 1차 이후 2차 선거를 앞두고 보다 노골적인 연합게임을 하게 된다.

2012년_프랑스_대선_결선투표-1
(이미지 출처: http://politicstory.tistory.com/770) 2012년 프랑스 대선은 ‘제조된 과반’이라는 결선투표제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자 2차 투표에서 범진보연합과 범보수연합이 결성됐고, 결국 범진보연합의 올랑드가 51.6%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렇게 제조된 과반으로 구성된 정부는 내부에 비토세력을 갖게 된다. 이것은 좋게 말하면 다양성이 대변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통치안정성이 낮은 것이기도 하다.

바깥으로는 의회가, 안으로는 연합상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현행 제도에 비해 소수정당이 정책의제나 공직진출을 노릴 수 있게 되지만, 통치력이 약해지는 것 또한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불안정한 정당체제와 결선투표제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분명히 있다. 소수정당에게는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가 생길 것이고, 1차 투표에서는 지금보다 정책을 둘러싼 경쟁이 활성화될 수 있다.

우려되는 효과도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후보난립, 정당난립의 가능성이 크다.

개별 유권자 입장에서는 선호에 꼭 맞는 후보를 가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지만, 당선 후의 통치가능성을 낮출 확률 또한 높아진다. 특히, 1, 2차 선거에서 순위변경이 통치력 약화를 가져오는 게 중대한 위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페레즈-니난의 연구는 정당체제가 불안정할수록 이럴 확률이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비교연구에서 정당체제의 제도화 내지 안정성을 측정하는 지표는 선거변동성(electoral volatility)이다. 선거 간 정당에 대한 지지가 이동한 정도를 말하는 데,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이 지지정당을 바꾼다면 그만큼 정당체제는 불안정하다고 볼 수 있다.

아래의 <그림>(각주10)은 1945년 이래 현재까지 67개 민주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618번의 선거기간 선거변동성을 보여준다.(각주11)

1

<그림>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정당체제는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정당체제가 불안정하다.

일반적으로 정당체제의 안정은 민주주의의 지속기간에 비례하는 데 한국은 민주화 이후 시간이 흘러도 정당 체제의 안정성은 크게 강화되지 못하고 있는 예외적인 국가 중의 하나이다.

현행 제도에서도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당을 깨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며, 새로 만들기도 하며, 없애기도 한다. 오로지 선거승리를 위해서 정책과 이념은 뒷전이고 후보와 세력 간 합종연횡을 추구한다.

이러한 정당체제의 불안정은 한국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선투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결선투표제가 도입되면 이로 인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소수파들에게는 결선투표제는 매력적인 대안이다. 주로 원내․외 진보정당들이 결선투표제 도입을 주장해 왔다. 이들 세력은 진보적인 의제를 실천할 기회를 갖기 위해 오랜 기간 고투해 왔으며, 현재까지 이룬 성과도 대단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럼에도 선거 때면 급부상하는 정치적 아웃사이더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의 등장으로 진보정당이 어렵사리 쌓은 공든탑은 번번이 침식되어 왔다. 언론과 재벌, 관료 사회는 정치적 회의주의 확산을 주도해 왔고, 이는 언제나 현재의 정치세력 바깥에서 대안을 찾게 만든다.

결선투표제로 열리는 공간은 사실 현재의 정당행위자보다는 정치적 아웃사이더들에게 훨씬 넓게 열릴 것이다.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해서 등장하는 신생정당이라면 오로지 대통령 권력을 겨냥한 “떴다방” 같은 정당일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정당이 늘어나는 다당제가 바람직하다고 할 수도 없다.

양대 정당의 독점구조를 해체하고 다양한 이념과 정책이 대표체제에 반영되도록 하려면 차라리 의회 선거제도의 비례성을 높이는 게 바람직한 방향이다.

화, 2017/01/10- 15:30
804
0

2016년 8월21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폐회식에 빨간 모자를 쓴 한 남자가 등장했다. 아베 신조(63) 일본 총리였다. 

일본의 대표적인 게임 캐릭터인 ‘슈퍼마리오’ 차림을 하고 2020 도쿄올림픽을 알린 그의 변신은 뜨거운 화제가 됐다. 

언론은 “일본이 리우올림픽 폐막식을 빼앗았다”고 평가했고, 그에게 감정이 좋지 않은 국내 누리꾼들마저 “신선하다”, “재밌다”는 호평을 쏟아냈다. 1985년 일본 닌텐도사가 창조한 슈퍼마리오는 배관공 마리오가 쉬지 않고 앞으로 달리며 장해물을 넘고 괴물을 쓰러트리며 공주를 구하는 게임이다.

거침없는 아베, 전후 최장수 총리

2012년 일본 총리에 오른 그는 이제 자신의 별명이 된 슈퍼마리오처럼 거침없이 달리고 있다. 

2016년 연말 64%로 3년 2개월 만에 국내 지지율 최고치를 기록한 그는 지난해 2021년까지 집권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새해 벽두부터는 전쟁을 금지한 현행 헌법 9조의 개정을 포함한 개헌을 천명했다. 자신의 장기집권을 바탕으로 ‘전쟁 가능한 일본’을 만들겠다는 그의 포부는 2017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과거사 문제로 아베 총리 임기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새해부터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로 일본 정부와 충돌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통화스와프 협의를 중단하고,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 총영사의 귀국을 결정하는 등 강경 모드를 밀어붙이고 있다. 

2017년 아베 총리가 거침없이 달려갈수록 과거 일본 침략전쟁 피해자들의 고통은 더욱 커지고, 한국 정부는 계속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PYH2017010423600007300_P2
아베 총리가 지난 4일 이세신궁에 참배하기 위해 각료들과 신궁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세신궁은 일본 전역에 있는 신사의 최정점에 있는 신사로, 일본의 건국신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를 모신 곳이다. 일본 천황은 이 건국신의 후손이라고 믿어진다.

아베는 1월4일 미에현 이세시에 있는 이세신궁을 참배한 뒤 신년 기자회견을 열고 2017년 국정운영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 자리에서 개헌과 장기집권에 대한 의욕을 감추지 않았다. 아베는 2017년이 “일본 헌법 시행 70년이 되는 해”라고 강조하며 “앞으로 70년을 내다보며 지금이야말로 새로운 나라 만들기를 진행해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우리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갈 것”, “아이들과 손자의 미래를 내다보며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를 포함한 일본 우익들은 현재 일본의 평화헌법이 2차 세계대전 뒤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압박 때문에 만들어진 것으로 ‘자주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즉 ‘우리 자신의 손’을 언급한 것은 이제 더는 ‘전범국가’ 일본으로 남아있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정일 회담에서 스타 부상

이러한 아베의 행보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와 떼려야 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1954년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딸인 요오코와 아베 간의 아들 아베 신타로 전 외상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200609200620_01
아베는 정치명문가 출신이다. 외할아버지(왼쪽 4번째)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였고, 아버지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오른쪽 첫번째)이다. 특히 이 집안은 일본 야마구치현에 정치적 기반을 두고 있는데, 이는 근대 일본 정치체제를 만든 메이지유신이 지금의 야마구치현(옛 조슈)과 가고시마현(옛 사쓰마) 출신 하급무사들의 반란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친할아버지 아베 간은 중의원 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도조 히데키(1884∼1948) 내각의 퇴진과 전쟁 종결을 주장한 인사다. 외할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로 투옥된 적이 있는 우익인사다. 

기시는 ‘평화헌법’을 대체하는 ‘자주 헌법’의 완성을 ‘일본의 진정한 독립’이라고 주장했다. 아베 총리는 정치적으로 친가 대신 외가의 피를 이어받았다. 스스로 “나는 아베 신타로의 아들이지만 기시 노부스케의 DNA(유전자)를 이어받았다”고 말해왔다. 

실제로 정치인으로서의 아베가 걸어온 길은 외할아버지의 유지를 잇는 것을 방불케 한다. 실제로 아베 총리는 유년시절 외할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치인이던 아버지와 지역구 관리에 힘을 쏟은 어머니 대신 그를 돌본 건 유모와 주말마다 손자를 부른 외할아버지라고 한다. 

외조부를 롤모델로 정치인을 꿈꿨던 그는 세이케이대학 정치학과를 졸업, 미국 유학 뒤 귀국해 고베 제철소에서 3년 반 회사원 생활을 했다. 1982년 외상이었던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재직하다 1993년 37살에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에서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외할아버지, 아버지의 후광에 비해 다소 평범한 정치 이력을 보인 그는 2002년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로 열린 김정일 국방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를 수행하며 스타로 떠올랐다. “타협은 안 된다”며 강경론을 주장하며 ‘용기 있는 정치인’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htm_2014090315173320102011
2002년 9월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왼쪽)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오른쪽)과 인사하는 모습. 당시 관방부장관이었던 아베 신조(왼쪽 세번째)가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이에 그는 2003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지지를 업고 젊은 나이에 파격적으로 자민단 간사장으로 발탁되고, 2005년 10월 관방장관으로 내각에 들어가며 탄탄대로를 걷는다. 

결국 고이즈미 퇴임 후 아베는 자민당 총재직에 오르고 2006년 9월 최연소이자 전후 세대 첫 총리를 맡으며 꽃가마를 타게 된다. 하지만 1년 만인 2007년 9월 건강 악화를 이유로 사임했다.

펄펄 나는 일본, 손 놓은 한국

총리 재직시절인 2007년 3월, 위안부 동원 과정과 관련해 “강제성이 없었다”고 발언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 그는 총리직에서 내려온 뒤에도 과거사와 관련한 다양한 망언을 쏟아내며 일본 우익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하지만 그를 다시 불러낸 건 민주당의 저조한 지지율과 침체에 빠진 일본 경제였다. 총선에서 자민당이 압승하고 5년만인 2012년 12월 다시 96대 총리에 오른 그는 경제 회복을 외치며 집권을 이어오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강력한 양적완화 정책으로 일본 경제의 고질적 문제였던 디플레이션을 다소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그는 재집권에 성공하고 다시 자신의 우익 DNA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2015년 ‘전쟁 가능한 일본’의 디딤돌이나 마찬가지인 안보법 국회 처리를 밀어붙인 그는 지난해 자민당의 당규 개정으로 2021년 8월까지 자신의 집권 가능성을 열어놨다. 

이제 개헌이라는 마지막 퍼즐을 통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어 과거사에서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일본 국민 사이에서는 안보법에 대한 반대 여론이 여전히 높아 지난해 안보법을 이유로 아베의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i
지난 4일 부산 동구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에서 시민단체 회원이 아베 총리의 가면을 쓰고, 소녀상에 무릎 꿇고 사죄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사진 출처: 한국일보)

하지만 아베는 이를  외교를 통해 정면 돌파하려는 모양새다. 미·일 동맹을 중심에.두고 과거 식민지 침략을 부정하며 한국과 중국과 충돌하는 것이 아베 외교 전략의 뼈대다. 

그는 2016년 연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연이어 만나며 뜨거운 연말을 보냈다. 국내에는 ‘망언’으로 대표되는 우익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아베는 실용적인 입장을 취하며 국익을 극대화 시키는 면모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아베의 거침없는 행보에 한국 외교는 속수무책으로 쩔쩔매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 일본대사관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대한 아베의 강경책에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한 합의가 발목을 잡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확인한 당시의 합의를 근거로 아베는 1월6일 “10억엔(위안부 재단 기금)을 냈으니 한국이 제대로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계속 안기는 것은 물론이고 ‘주권국가’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까지 추락한 것이다. 

아베는 오늘도 거침없는 발걸음을 내딛고 있지만, 한국은 박근혜 정부의 잘못된 합의에 발목을 잡힌데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로 인한 국정 공백으로 계속 헤매고 있을 뿐이다. 

목, 2017/01/12- 11:37
58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