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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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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비평]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익명 (미확인) | 일, 2016/09/04- 00:32

2008년 전국적으로 광우병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개최되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집회를 주최한 시민단체들의 모임인 광우병대책회의와 소속단체 및 활동가들에게 집회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로부터 8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6년 8월 19일에야 서울고등법원에서 2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결과는 1심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패소. 아직 정부는 상고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집회를 주최했다는 이유로 5억 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할 위험에서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언제쯤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요.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인 김선휴 변호사가 이번 2심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짚어봅니다. 

 

집회의 자유와 민주주의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은 이제 그만

[광장에 나온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손해배상(기)  (재판장 김상환 판사 이영창 판사 조찬영 )

 

김선휴

김선휴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 변호사)

 

2008년 촛불집회를 기억하십니까

 

"2008. 5. 2.부터 2008. 8. 15.까지(106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2398회 이상 개최되었고, 참가 연인원도 93만 2000여 명에 이르렀다."

 

지난 8월 16일 선고된 서울고등법원 2013나72574 판결문에 등장하는 사실관계다. 짧은 두 줄에서도 2008년의 촛불집회가 광범위하고 폭발적이었던 역사의 한 장이었음이 느껴진다. 수십만 명의 시민들은 당시 촛불집회에 대한 저마다의 기억을 지니고 있을 듯하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도 몇 차례 촛불집회에 참여했었다. 뉴스 댓글마다 여러 집회 일정들이 넘쳐났고, 누가 선동하거나 조직하지 않아도 시민들은 곳곳에서 모여 촛불을 들었다. 집회의 주최자가 누구인지, 누가 집회신고를 하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광화문 등 규모가 큰 집회 현장에는 무대 차량이나 진행자가 있었지만, 시민들은 주최 측의 진행과 무관하게 자발적으로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를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며 즉석 공연을 하였고, 스스로 만든 손팻말과 유인물을 나눠주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자발적으로 집회에 참여하고 스스로 '주체'가 되어 행동했던 많은 시민들을 주최자에게 구속되어 그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움직이는 '객체'로 전락시키려 했다. 일부 참여자의 폭력행위로 발생한 손해 책임을 집회 주최자에게 묻는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주최자가 참여자들의 행동을 지시하고 통제한다고 전제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발적이고 다양한 시민들의 모임, 그것이 집회의 본질

 

이번 판결은 정부 측의 그와 같은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비록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시간·장소 등을 제안하고 일부 장비를 준비하며 사회를 보는 등의 행위를 하였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피고들이 이 사건 집회·시위의 발생부터 진행, 소멸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지배하였다거나, 참가자가 피고들의 지휘·선동에 따라 이 사건 집회·시위에 참가하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물론 특정 단체가 소속 구성원들의 참여를 독려하여 개최하는 집회들도 존재한다. 그런 집회라 하더라도 일부 구성원의 일탈 행위에 대해 주최자나 단체 대표에게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자기책임원칙에 비추어 매우 엄격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물며 2008년의 촛불집회는 말할 것도 없다. 조직되고 통일적인 단일체가 아니라 다원적이고 자발적이며 큰 틀에서 동의를 이룬 개개인들의 모임으로서의 집회였기 때문이다. 판결은 그것이 바로 이 사건 집회의 특징이자 집회의 본질임을 아래와 같이 강조하였다.

 

"집회·시위를 통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공통의 의견이나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이 특정 장소에 일시적으로 모이는 것'이 집회·시위의 본질이자 현실적인 모습이다."

 

평화 집회를 원하는 다수를 보호하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이처럼 2008년 촛불집회의 특징에 비추어볼 때,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이 개별 참가자들의 폭력행위를 지휘하거나 선동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한 주장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부는 2심 소송에서 '과실에 의한 방조' 책임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즉 주최자가 집회참가자의 폭력행위를 예상할 수 있음에도 이를 방지하기 위한 질서유지의무를 다하지 못해서 폭력행위가 이루어지도록 돕거나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구체적 증거들을 통해 광우병대책회의가 평화적 집회를 계획하였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였던 점들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나아가 집회주최자에게 인정되는 '질서유지의무'의 내용을 설명하며 주최자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집회·시위 주최자가 마치 공권력이나 경찰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것처럼 집회·시위 참자가의 폭력행위를 미리 철저하게 차단해야 한다거나, 폭력시위자를 적극적으로 제지하고 억압하여 완전무결한 집회·시위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정도의 질서유지의무를 부담하는 것으로는 보기 어렵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적법한 집회 및 시위를 최대한 보장하고 위법한 시위로부터 국민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때 집회에서 발생하는 일부 위법적인 행위로부터 보호되어야 하는 국민은 집회 외부의 국민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있는 다수 집회참가자들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수의 일탈행위를 방지하여 평화적 집회를 보장할 책임은 당연히 경찰행정상 집회관리의무에 속한다.

 

그 점을 이번 판결이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집회·시위 과정에서 일부 소수 참가자가 폭력·불법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사실상 예견할 수 있더라도, 집회·시위 자체가 집단적인 폭력·불법행위를 목적으로 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지 않는 한,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는 보호되어야 한다. 소수의 폭력·불법행위가 사실상 예견된다는 사정만으로 평화적 집회·시위의 기회가 처음부터 박탈된다면, 폭력적인 소수가 자신들뿐만 아니라 평화적 참가자의 기본권행사 여부를 결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평화 집회를 계획하고 유지하려고 노력한 주최자에게 질서유지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정부에게, 과연 공권력은 본래 자신의 책임인 평화집회 보장의 의무와 책임은 다하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경찰의 과도한 통행제한, 인권침해적인 과잉진압이 국가인권위에 의해 인정된 바 있다.

 

여전히 정부는 평화적으로 진행하려는 집회를 과잉통제하고 일부의 일탈행위를 이유로 전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여 엄단을 선포하면서 평화적으로 집회를 하고자 했던 수많은 이들의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 평화적으로 집회의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다수의 기본권행사를 보호해야 한다는 이번 판결의 내용이 경찰에 의해 존중되기를 바란다.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축시키는 전략적 봉쇄소송

 

이 사건의 1심 판결에서 반복하여 등장한 표현이 있다. '증거는 수집되지 아니하거나 그 증거가 극히 미미하다',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다', '증거가 부족하다'와 같은 표현들이다. 2심인 이 사건 판결에서도 역시 '원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 인정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증명이 필요하나 (...) 증명이 부족하다'는 등의 표현이 반복된다. 

 

이러한 판결의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집회 주최자에게 제3자의 행위로 인한 피해의 책임을 물으면서, 일단 구체적인 피해의 주장이나 증명부터가 너무 부족하고, 이를 주최자에게 책임 지우기 위한 여러 인과관계들에 대한 증명의 노력도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청구한 피해 중에는 출동하려고 방패를 꺼내다 너무 세게 잡아당겨 자신의 방패에 부딪힌 경찰의 타박상, 경찰이 시위대에게 발사한 물대포를 전투경찰이 맞아서 입은 피해, 장소와 경위가 전혀 특정되지 않은 채 분실하거나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방패, 군화, 이불, 카트, 아이스박스, 우산, 보온물통 등까지 포함되어 있다.

 

과연 정부의 소송이 모든 피해와 주최자의 과실을 입증하고 시민단체나 활동가들로부터 5억 원의 배상을 받아내 정부의 손해를 보전하기 위함이었는지 그 목적이 의심스러워짐은 당연하다. 손해를 배상받겠다는 표면적인 목적 뒤에 숨은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이 사건 판결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폭력시위자뿐만 아니라 집회·시위 주최자에 대해서까지 손해배상책임을 확대한다면, 집회·시위 주최자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정치현상에 대한 불만을 느끼는 소수집단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데 큰 부담을 갖게 되고, 종국적으로 소수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적 의견표명을 통해 공론의 장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게 된다."

 

정부의 이 소송이 "공공영역에 대한 비판적 참여를 봉쇄하기 위한 전략적 소송행위"(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흔히 말하는 "전략적 봉쇄소송"의 전형에 해당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기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소송으로 인한 비용, 시간, 정신적 부담을 부과함으로써 공공 영역에서 발언하고 참여하는 것을 위축시키기 위한 소송인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 국정원, 청와대 등 정부기관이나 고위공직자들이 언론인, 시민단체, 정치인, 인터넷에 글을 올린 누리꾼들에 대해서까지도 빈번하게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고소하거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였지만 상당수가 무혐의나 고소취소, 손해배상책임 없음의 결과로 이어져 전략적 봉쇄소송의 남용을 보여주고 있다(대표적인 사례는 박근혜정부의 국민입막음 사례 22선 http://goo.gl/uYQWKF 참조). 이와 같은 소송은 당사자 뿐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발언과 표현도 위축시킨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의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미국 여러 주에서는 이처럼 법적, 사실적 근거 없이 제기된 전략적 봉쇄소송을 각하나 약식판결을 통해 소송절차를 조기에 종료시켜 피고들을 소송으로 인한 부담에서 빨리 벗어나게 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그와 같은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1심과 2심에 걸쳐 무려 8년 동안 소송절차가 진행된 것은, 피고들이 불합리한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법원이 현 제도 아래에서 가능한 노력을 충분히 기울이지 않은 것이어서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부의 주장과 증명이 법적으로도 사실적으로도 매우 부족하고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기 위한 의도로 제기되었음이 충분히 드러남에도 말이다. 이미 광우병대책회의 소속 시민단체와 활동가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억 원의 배상책임의 불안함 속에서 8년 넘게 고통받았다. 정부의 목적은 패소결과에도 불구하고 상당 부분 달성된 것이다. 전략적 봉쇄소송의 피고는 소송에서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다. 

 

대법원이 최근 전략적 봉쇄소송의 요건과 규제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략적 봉쇄소송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집회의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가져오는 침해의 심각성을 대법원도 인지한 것일까. 너무 늦게 내려진 이번 판결과 달리 앞으로는 부디 전략적 봉쇄소송이 더 빨리 봉쇄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최근 판결 중 사회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된 판결, 기본권과 인권보호에 기여하지 못한 판결, 또는 그와 반대로 인권수호기관으로서 위상을 정립하는데 기여한 판결을 소재로 [판결비평-광장에 나온 판결]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로 법률가 층에만 국한되는 판결비평을 시민사회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어 다양한 의견을 나눔으로써 법원의 판결이 더욱더 발전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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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18/07/2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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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운 촛불집회를 가능케 한 힘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 포럼을 다녀와서

 

이미현 참여연대 정책기획실 선임간사

 

또 다시 쓰나미 악몽이다. 인도네시아 지진 피해 사망자가 1500명을 넘어섰다. 2004년 말 발생한 역대 최악의 쓰나미가 떠오른다. 지진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국제기구와 주변 국가들, 시민들도 수색과 복구를 돕겠다고 나서고 있다. 긴박한 상황에 국경을 넘어 전해오는 도움의 손길과 관심은 아픔을 이겨내는 큰 힘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처참한 상황에 절망하는 피해자들을 일으키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저항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

 

자연재해에만 사람들의 도움이 모아지는 것은 아니다. 국가폭력과 인권침해 상황에도 사람들은 나선다. 나에게 닥친 일이 아닐지라도 함께 분노하고 행동을 한다. 2014년 3월 한 인권운동가가 갑자기 테러금지법 위반으로 체포된다. 정부가 꺼려하는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조사에 나섰다는 이유였다. 그의 가족은 그가 어디로 끌려갔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스리랑카의 인권운동가 루키 페르난도(Ruki Fernando) 이야기다.

 

국제사회는 즉각 2년 전의 악몽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2012년 라오스의 저명한 인권운동가 솜바스 솜폰(Sombath Somphone)은 비엔티엔 길 한복판에서 경찰에 납치되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행방불명 상태다. 그때도 솜바스 솜폰의 구명을 촉구하는 캠페인이 있었지만 그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다시 동료 활동가를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전 세계 인권단체들과 운동가들은 절박하고 긴박한 마음으로 행동에 나섰다. 성명을 발표하고 서명을 받아 스리랑카 정부에 전달했다. 루키 페르난도의 체포 사실이 알려진 지 이틀 만에 한국에서도 31개 인권시민사회단체가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압박을 받은 스리랑카 정부는 3일 만에 루키 페르난도를 석방했다. 국경을 넘는 연대의 승리였다.

 

평화로운 촛불집회가 가능하기까지

 

한국 시민사회가 국제사회로부터 도움을 받은 일도 있다.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니다. 2015년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졌다. 그러자 많은 국제기구, 인권단체들이 정부의 폭압적인 대응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국제사회가 표한 심각한 우려와 한국 인권시민단체의 호소는 결국 2016년 1월 마이나 키아이(Maina Kiai) 유엔 집회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의 방한으로 이어졌다.

 

특별보고관은 방한 조사를 마치고 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심각한 우려와 권고를 발표했다. 특히 "경찰이 집회신고를 사실상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으며 교통방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집회를 불허하는 것은 평화적 집회를 보호해야하는 국제인권기준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권리를 보호해야 할 법원이 권리를 제약하는 방식으로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경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명했다.

 

이러한 우려는 이후 약 5개월 뒤 발표된 최종 보고서에서도 그대로 담겼다. 경찰의 물대포와 차벽 사용이 오히려 집회 때 긴장을 높일 수 있다는 점, 물대포가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거나 특정인을 겨냥하는 점, 불법 집회를 주도했다고 처벌하는 것은 집회 및 결사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 등도 언급됐다. 이것이 2016년 10월 첫 번째 촛불집회가 열리기 4개월 전이었다.

 

2016년 겨울 촛불집회는 평화적으로 열릴 수 있었다. 물대포는 없었고 차벽은 차츰 줄어들었다. 경찰의 행진 불허는 법원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기까지는 분명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의 '평화 집회'에 대한 열망, 집회를 주최한 측의 준비와 노력이 물론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나는 2015년 말부터 국내외 인권시민단체들이 꾸준히 제기했던 평화로운 집회에 대한 요구 역시 중요한 요인 중에 하나라 꼽고 싶다. 한국 정부는 당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제기되는 평화적 집회와 시위 보장의 압박을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대는 이렇게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한국에 인권침해가 발생하고 민주주의의 후퇴가 있을 때마다 함께 분노하고 연대의 목소리를 내주었던 아시아 지역의 인권활동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9월 26일부터 3일간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human rights defenders forum)이 그것이다.

 

2018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2018년 9월26일~2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2018 아시아인권옹호자포럼 ⓒ참여사회연구소>

 

 

정부에 불법 체포를 당해 국제사회가 석방촉구 운동에 나섰던 스리랑카의 루키 페르난도, 지난 수년간 공정한 선거를 위한 개혁을 외치다 정부의 압수수색, 보복기소로 고통을 받았던 말레이시아 인권운동가 마리아 친 압둘라(Maria Chin Abdullah)도 함께 했다. 그녀는 2016년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한국을 방문하려다 자국의 출국금지 조치로 방한하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61년만의 정권 교체로 출국금지가 풀리고 이번 포럼에도 올 수 있었다. 다만 더 이상 인권운동가가 아닌 정치인의 자격이었다. 그녀는 지난 기간 탄압과 어려움 속에서도 선거개혁 운동 버르시(Bersih)가 어떻게 말레이시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는지 발표하러 포럼을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이 포럼은 인권옹호자들이 처한 위험과 이를 극복한 경험을 공유하고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활동의 다양한 사례를 서로 배우는 자리다. 유엔 인권옹호자 특별보고관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아시아 담당관도 참석해 각국 인권현장의 생생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혐오 세력에게 온오프라인에서 공격을 받는 여성활동가들의 이야기는 다수의 참가자들에게 연대와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한국 참가자로서 참여연대는 2016년 겨울의 촛불집회의 경험에 대해 발표할 기회를 가졌다. 야간임에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집회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연대는 계속되어야 한다

 

참가자들이 궁금해 했던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과연 포스트 신자유주의 시대 극단주의와 근본주의, 민족주의의 범람 속에서 민주주의와 인권 향상을 위해 인권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포럼 기간 내내 비슷한 질문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2박 3일 동안 토론의 끝마다 강조되었던 결론은 비슷하다. 변화는 결국 온다. 시민사회가 깨어 있고 다른 세력과의 연대의 끈을 놓지만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힘이고 변화의 가능성이라는 거다. 서로의 경험과 실패에서 배우고,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이번 포럼과 같은 자리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는 이야기였다.

 

한국 사회는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경험으로부터 민주주의는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국경을 넘는 연대가 인권과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긴 노정에 서로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것도 알았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한 걸음 전진했다고 해서 아시아 다른 지역 인권옹호자들과의 연대에 소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대의 끈을 이어가는 한 지금 우리가 경험한 한 걸음의 진전이 여전히 민주주의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각국에, 그리고 난민, 소수자 혐오라는 우리 사회 또 다른 난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어질 것이라 믿는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 본 내용은 참여연대나 참여사회연구소의 공식 입장이 아닙니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연재합니다. 

 

월, 2018/10/08-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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