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책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를 읽고 나서

책 <타자를 위한 경제는 있다>(J.K. 깁슨-그레이엄, 제니 캐머런, 스티븐 힐리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2014)의 원제는 <경제를 탈환하라: 우리의 공동체를 전환하기 위한 윤리적 안내서>다. 이 책은 생태계와 공동체에 의존하는 경제의 특성과 그것을 정의롭고 지탱 가능한 것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을 안내하는 놀라운 교과서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경제사회 생태 시스템의 이야기를 쉽고 분명하게 정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환의 구체적인 방법까지 자세히 제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흔히 분리되어 논의되기 쉬운 생태경제와 공동체 경제의 내용도 유기적으로 통합하는 데 성공했다.

책의 말머리는 ‘기계’란 이미지를 가진 거시경제 개념을 인간의 개입을 통해 전환시킬 수 있는 ‘그 무엇’으로 개념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책의 모든 부분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많은 학자들이 거시적인 구조 개념으로 자본주의 경제를 해부하고, 소비주의 이데올로기에 포획된 개인들이 구조의 수인이 되어 탈출구가 없다고 본다. 하지만 저자들은 원래 공동체와 자연 안에 있던 경제를 다시 찾아오기 위한 작은 미시적 행동이 큰 전환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책 곳곳에는 여성주의 시각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남성 노동자와 그 부인의 하루 일과를 정리한 그림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삶이 어떻게 다른지, 경제시스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저자들의 이론과 경험적 사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면서 이를 표와 그림으로 정리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더욱이 저자들은 인간중심의 공동체 경제에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비인간의 존재를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함께 보고 있다. 책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사람들은 다른 종이나 자연과 협력하여 공유재를 관리하기도 한다. 이런 공유재를 만들고 공유하는 ‘우리’는 인간 연합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강과 수역, 식생과 산림, 어류와 동물 등 소위 천연자원을 포함하는 인간과 비인간존재로 구성된 공동체이기도 하다. 이런 공유재는 토양, 물, 동식물과의 예의바른 관계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210쪽)

이 같은 내용은 실로 파격적이다. 인류중심적 관점의 환경사회학이나 환경경제학에서 다루는 논의보다 훨씬 급진적이고 생태적이며, 공감적(empathetic)이다. ‘예의’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를 넘어 비인간 존재와의 관계에서도 필요하며, 필수적인 시대가 되었다.

눈여겨 볼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저자들은 작은 마을이나 지역 사례에 국한돼 있지 않고 노르웨이의 국부펀드 사례를 언급하며, 국가차원에서도 대안적이고 윤리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향후 그렇게 강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한계도 있다. 대안으로 내세운 사례들이 협동조합, 마을, 지역 차원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또 폭주하는 기관차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이 책은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못하다.

무엇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희망으로 가득 찬 젊은이들의 ‘팸플릿’ 같다는 느낌이 든다. 꼭, 사회주의의 대문자 혁명(The Revolution)이 사라진 시대에 소문자 마을 혁명들(revolutions)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점은 이 책의 미덕이면서 동시에 약점이다. 저자들은 어렵사리 실험적 대안을 제시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구 산업자본주의 시스템은 개별 사례들의 합으로는 바꾸기 힘든 <권력-기술-자본>의 총합이다. 이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서나 빼앗긴 경제를 다시 찾아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런 점에서 저자들이 권력의 문제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미시적 변화의 합은 거시적 구조변화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남은 과제는 다시 거시정치에 대해 연구하고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구도완 환경연합 정책위원장의 [책으로 말 걸기] 코너는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