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지향)일기 시즌3]

비건 집밥 여행기

여현

 

비건을 지향하면서 제일 먼저 찾은 건 비건식당이 표시된 지도였다. 그렇다. 내가 처음 떠올린 비건의 이미지는 샐러드나 이국적인 음식이었고 나물 반찬 맛있다고 먹을 줄만 알았지, 집밥과 비건을 연결할 생각은 도저히 하지 못했다. 

 

하지만 외식도 한계가 있었으니, 비건식당은 가격대가 있는 편이라 매번 가기 부담스러웠고 가끔 한식이 미치도록 먹고 싶을 때 갈 수 있는 한식 전문 비건식당이 거의 없었다. 일반적인 한식당은 대체로 육식을 의미했기에 나는 서서히 밖에서 사먹는 걸 줄이며 비건 간편식을 집으로 주문해대기 시작했다. 비건 간편식으로 김밥, 떡볶이 같은 분식부터 만두, 카레, 비건돈가스, 콩고기, 두부카츠, 버섯으로 만든 고기까지.. 참 많은 걸 먹어보았지만 그것도 일주일에 한두 번이지, 모두 가공식품이라서 계속 먹으면 금세 물리게 된다. 그렇게 1단계 비건 외식, 2단계 비건 간편식을 거쳐 반찬가게에서 나물 반찬을 가짓수대로 포장해오는 3단계에 이르렀다. 동네에 조미료를 안 쓰고 나물 종류도 다양한 반찬가게가 있어서 한동안 반찬 고민 없이 잘 지냈으나, 어느새 가득 쌓인 플라스틱 포장재를 보고 비건과 제로웨이스트 그 사이에서 길 잃은 아이처럼 멈춰 섰다. (반찬가게 사장님께 다회용기에 포장 가능한지 여쭤보았지만 그때그때 요리해서 소분하기 때문에 힘들다고 답해주셨다. 진해에 살 때 자주 갔던 반찬가게는 스텐밧드 뚜껑 안에 반찬을 넣어두고 바로 담아줘서 참 좋았는데..)

 

돌고 돌아 비건 한식, 비건 집밥을 위한 종착지는 내돈내산보다 더 쉽고도 어렵다는 내집내손이었다.

 

황성수 박사님 책《현미밥 채식》을 읽고 잔뜩 흥분한 상태로 현미도 사고 유기농 채소 꾸러미 1kg를 2주에 한 번씩 정기구독하기 시작했다. 채소가 1kg나 생기니 얘를 어떻게 요리해먹을까? 궁리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로메인, 상추, 생채로 샐러드파스타, 볶음밥과 같은 한 그릇 메뉴만 해먹던 것이 나중에는 근대로 국을 끓여보기도 하고 시도가 점점 다양해졌다. 최근에는 말린 시래기 1kg를 구매해 보았는데 시래기밥으로 해먹고 무침으로 해먹고 감자 김치찌개에 넣어먹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공된 비건 식품은 육식의 대체품이 될 수는 있겠지만 일부는 건강에 그렇게 이롭지 않다고 한다. KBS 생로병사 [채식에 대한 오해와 진실] 편에서는 채식라면처럼 가공식품을 먹던 분이 직접 요리한 채식반찬을 먹은 뒤 중성지방 수치가 271에서 139로 크게 떨어져 정상수치가 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존 A. 맥두걸이 지은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에서도 정크비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동물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동물이 죽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바로 당신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의 충격이란. 물론 이 문장은 콜라와 포테이토칩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의 사례를 소개하며 쓴 다소 극단적인 표현이지만 책을 읽을 당시 간편식을 자주 먹던 때라 따끔한 잔소리로 받아들여졌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여전히 일이 바쁜 시기에는 비건 밀키트와 간편식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집에서 조리가 아닌 요리를 조금이나마 하기 시작하니 선택권이 훨씬 넓어진 기분이다. 영화 <줄리 & 줄리아>에서 요리 블로거 줄리가 프렌치 셰프 줄리아의 레시피를 따라 해보는 것처럼 나도 언젠가《오늘부터 우리는 비건 집밥》에 실린 김보배 님의 레시피를 하나씩 따라 하고 기록하는 게 버킷 리스트이다. 진짜 감자탕, 콩물 곰탕, 젓갈 없는 파김치, 닭 없는 콜라 찜닭, 노루궁뎅이버섯 강정, 포두부 진미채.. 모두 책에 실린 레시피들로, 다 너무 맛있을 것 같은데 시작이 어렵다. 나도 냉장고 파먹기 말고 한상차림 요리를 해보고 싶은데 영상을 찍어봐야 하나?  같이 할 사람을 모아 채식 스터디를 만들어봐야 하나? 아, 하고 싶다 비건 집밥 레벨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