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지향)일기 시즌3]

비건을 통한 삶의 회복

위정윤

 

 나는 신체폭력과 성/감정학대의 생존자이다. 또한, 가정폭력으로 괴로워하는 누군가의 친구였고, 난 그를 자살로 잃었다. 나는 여러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어 살아왔고 한동안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폭력으로부터의 트라우마는 오랜동안 내 안에서 병을 키워왔다. 몇 해 전 발발한 정신병이 나의 삶을 무자비하게 삼키고 있을 무렵, 나는 매일같이 꿈을 꾸었다. 신기하게도 꿈은 학대와 폭력으로 고통받는 동물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숨이 막힌 몸은 발작하며 꿈에서 깨기를 반복했다. 꿈속에서 폭력으로 일그러진 동물들은, 폭력으로 짓밟히는 여성(소수자)의 삶으로 인지되었고–- 그건 나의 모습이었다. 공포와 불안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수퍼마켓에서 정육코너를 지날 때마다 숨을 쉬기 어려워졌고, 음식자체를 더이상 잘 먹지 못할 뿐더러 육류는 전혀 섭취할 수 없었다. 사체의 이미지들은 꿈 속에서, 꿈 밖에서 나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여러 증상들이 진행되면서 정신병은 심해졌고 나는 입원과 부분입원, 통원치료를 반복하며 병을 견뎠다. 치료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정신적인 고통은 지독했으나 그것과 함께 살아야만 했다. 무너진 일상을 세우기 위해 나는 천천히 노력했다. 그 중 하나는 내가 다시 제대로 먹는 것이었다. 내 몸 속에 무엇인가 넣는다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음식은 내가 먹는 것으로 인지되지 않았고 현실 저너머 다른 물체로만 생각되었다. 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나는 우선 동물성 재료를 최대한 피하고 곡식이나 야채 위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고, 과일을 먹기 시작했다. 동물성이 아닌 식재료는 그나마 색감과 식감을 느끼면서 조금씩 먹을 수가 있었다.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비건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뒤로 몇 년 간, 간간히 물살이와 유제품을 먹었던 것 외에, 나는 비건으로 살아가고 있다. 많이 좋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정육코너나 회센터 같은 곳은 지나기가 힘들다. 텔레비전에 바베큐를 하는 장면이 나오면 나는 채널을 돌리거나 시선을 피한다.

 

 난 비건이 되어 더 건강해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건강은 정신적인 그것이다. 물론, 몇 년에 걸친 여러가지 의학적인 치료도 도움을 주었지만, 그리고 회복을 위한 많은 개인적인 노력과 실패를 겪기도 했지만, 비건이 되어 하나의 폭력에 맞선 것이 나를 심리적으로 단단하고 좀 더 자유롭게 해 주었다. 비건이 된다는 건 나를 지키는 방법중에 하나였다. 어떤 이들은, 동물을 지키기 위해서 또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 비건이 되었냐 묻고, 당연히 그것이 지금은 내가 비건으로 살아가는 또다른 축이 되어 있기도 하다. 그러나, 간단하게 대답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그 전에 나는, 내가 겪은, 누군가가 겪은, 비인간 동물들을 포함한 많은 존재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폭력의 고통이 나의 것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논비건이 폭력적이고 비건이 비폭력적이라는 이분법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나는 폭력과 고통이 내 안에, 우리 삶에 너무도 가까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인식하고 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조금씩 변화하고 새로운 생각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위해 고기를 먹는다고 말한다. 과연, 학대를 받으며 평생을 살다가 살해된 그들의 육체가 우리를 건강하게 해준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들에게 억지로 투여된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제, 비정상적인 터전에서 살며 생겨난 과도한 스트레스 호르몬 등은 어디로 갈까. 우리가 먹는 것이 폭력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과연 편한 마음으로 그들을 먹을 수 있을까. 폭력으로부터 건강한 삶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안다.

 

 나는 여전히 때때로 꿈을 꾼다. 동물들이 처참히 죽어있다. 나는 앞으로도 이런 꿈을 꿀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꿈이 공포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다. 꿈을 통해서 나는 폭력이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누군가의 고통을 기억하고, 더 나아가서 폭력의 단면 단면을 줄여나가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 열심히 고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너무나도 아팠지만, 비건이 되어 살아남았고, 비건이 되어 삶을 회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