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늘 진심이고 싶다.

비건지향일기 – 피카츄희

 

 오랜만에 비건지향일기를 쓴다. 그 동안 비건지향일기의 독자로서 훌륭한 필진 분들의 일기를 많이 읽었다. 매일 밥상을 차려야 하는 엄마의 고민, 동물권에 대해 고민하는 동시에 나의 반려견에게는 동물성 사료를 줘야 하는 (금강) 양육자, 얘기만으로도 설레고 즐거운, 비건 맞춤 술집 추천 등등.

 그리고 나의 차례가 왔다. 올해 나의 마지막 비건지향일기인 만큼 잘 마무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건을 지향하며 내가 가졌던 고민들에 대해서는 거의 다 썼는데 새로운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막막했다. 책이나 영화를 보고 감상을 나눌까? 비건 요리를 추천할까? 일주일 동안 틈틈이, 핸드폰 배경화면에 적어놓은 메모를 보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선뜻 주제를 고르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내 머릿속에 굴러가는 주제는 모두 온전한 나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왜 이렇게 내 이야기가 쉽게 써지지 않았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순간에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는 나 자신이 싫었던 것 같다. 내가 페스코테리언을 실천한 지 거의 3년 반이 다 되어 간다. 이 일은 이제 나에게 일상이 되었다. 대부분의 지인들은 나의 식생활을 알고 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익숙한 설명을 반복한다. 환경단체 활동가라는 직업이 긴 설명을 대신하기도 했다. 생활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내가 좋아하는 회와 가족들이 사다놓은 유제품은 여전히 먹는다. 그리고 비건 지향을 결심했던 그 때처럼 동물이 착취되는 과정이나 비윤리적인 축산에 대해 깊이 찾아보지 않는다. 나를 설득하는 과정들은 이미 충분히 거쳐왔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일기를 쓸 때는 마치, 내 스스로가 비건 지향에 대한 고민을 늘 갖고 있는 사람처럼 보여야할 것 같았다. 그건 나의 진심이 아닌데.

 나는 늘 진심이고 싶었다. 적어도 활동가로서의 나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전 옆에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는 내가 그들의 입장에서 탈핵을 이야기해야 할 때, 나는 스스로 되묻곤 했다. 나는 지금 이 메시지에 진심인가? 활동가로 살다 보면 꽤 자주 이런 고민들이 들곤 한다. 나는 당사자도 아니고 당사자만큼 피해를 받지도 않았지만, 내가 아닌 그들의 이야기로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지 못한 동물들의 고통으로 비건 지향의 이유를 설명해야 할 때처럼 말이다. 그 순간들에 나는 진심이었나?

 물론, 매일 이렇게 스스로를 검열하듯 생각하며 살 수는 없다. 내가 매번 동물들의 고통을 되새기면서 음식을 먹지는 않는 것처럼.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생각은 변하고 자라는 반면 예전의 진심은 희미해질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는 생각이 든다. 동물들의 고통을 소비하지 않겠다는 처음의 결심이 체화되고 나니 점점 생각의 범위나 깊이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나의 진심을 자꾸만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일기를 쓰며 ‘이럴 때도 있는 거겠지’, 하고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사람의 마음이 늘 똑같을 수는 없는거니까. 그러다 언뜻 비건지향일기 시즌 1을 마칠 때 써내려갔던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지 않은 나의 실천이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고민이었다.

 다행히도 이런 나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생겼다. 비건 지향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위한 수다모임인 <비건은 처음이라>를 준비하고 있다. 나의 진심은, 곧 만나게 될 비건지향 수다모임에서의 소중한 인연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