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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21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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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랑 2021년 08월호

admin | 목, 2021/08/26-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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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동원 배상판결 톱뉴스로 보도하는 일본 신문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정성조 기자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만 2년이 된 30일 시민사회단체들은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했다.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이날 서울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 정부는 여전히 피고 일본 기업의 판결 이행을 가로막으며, 한국 정부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동행동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계종, 한국YMCA,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20개 단체가 참여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가족인 이희자씨는 “신일본제철 사장은 본사에서도, 집에서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으며 ‘소송 결과를 지켜보자’고 했다”며 “재판이 끝나면 이행할 생각이 있구나 했는데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들은 시민 1천여 명의 사진이 들어간 현수막을 펼쳐 들고 “우리가 기억한다, 우리가 증인이다”라고 외쳤다. 일본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며 보내온 ‘인증샷’이다.

공동행동은 이날 시민 ‘인증샷’ 신문광고를 낸 데 이어 연말에 지하철 광고도 하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2020-10-30> 연합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 2년, 일본 여전히 책임 회피”

※관련기사 

KBS: [현장영상] ‘판결 후 2년째 침묵하는 일본’ 강제동원 배상판결 이행 촉구 기자회견

오마이뉴스: [오마이포토] 대법원 판결 벌써 2년 “일본은 사죄배상하라”

※뉴스영상

월, 2020/11/02-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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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이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은 10대의 어린 나이에 일본에 끌려가 90년대 후반 일본에서 소송투쟁을 제기할 때까지 어디에도 호소할 수 없었고,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피해와 고통을 일본의 법정에서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비록 소송에서는 패소했지만, 피해자들은 자신의 고통과 피해사실을 일본 사법부가 인정하게 했고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 야노 히데키(矢野秀喜,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역사적인 승소 판결을 내린 날로부터 2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2년 전 오늘을 떠올려봅니다.

법정에서 선고를 직접 지켜본 94세의 원고 이춘식 할아버지는 함께 소송의 원고로 싸웠지만 이미 세상을 떠난 세 명의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를 생각하며 회한의 눈물만을 흘릴 뿐이었습니다. 이춘식 할아버지는 1943년 1월부터 1945년 1월까지 일본제철 가마이시제철소에서 강제노동을 당했고, 1945년 1월부터 10월까지는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해방을 맞았습니다. 일본제철 오사카공장에서 강제노동을 당한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가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1997년 12월. 이들은 2003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최종 패소한 뒤, 이춘식, 김규수 할아버지와 함께 2005년 2월 한국 법정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 1997년 일본제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강제동원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1997년 12월 24일, 강제동원 피해자 여운택, 신천수 할아버지가 일본제철과 일본정부를 상대로 임금 지급과 사죄,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오사카지방재판소에 제소했다. ⓒ 민족문제연구소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때로부터 21년, 한국에서의 소송만으로도 13년의 세월이 지나 이들 피해자들은 마침내 승소판결을 받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20여 년의 소송투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기쁨을 누려야 할 여운택, 신천수, 김규수 할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난 뒤였죠. 그해 박근혜의 청와대와 외교부, 양승태의 사법부, 피고대리인 김앤장의 변호사들이 짬짜미로 판결을 지연시켰다는 ‘사법 농단’ 문건이 쏟아져나왔습니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저들의 ‘재판거래’가 이루어지는 동안 피해자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2년 동안 일본정부는 ‘국제법 위반’이라는 한마디만을 되풀이하며 배상판결에 따른 현금화가 실현되면 한일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며 ‘협박’을 일삼고 있습니다. 또한 판결을 빌미로 ‘혐한의 광풍’을 선동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한국 때리기’를 국내 정치에 철저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정부는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2018년 11월 30일 대법원 판결 확정) 등 가해기업에게 배상하지 말도록 공공연하게 압력을 가해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불법행위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책임도 다하지 않은 가해기업들은 일본정부 뒤에 숨어 사죄와 배상은커녕 피해자와의 그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2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애초에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것은 한국의 법원과 한국정부다. 법원은 한일청구권협정에 반하는 형태로, 일본의 개인청구권을 인정, 일본으로부터 격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위 글은 일본 보수언론의 기사가 아닙니다. 스스로는 ‘민족정론지’를 자처해 왔지만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일제에 부역한 <조선일보>(일본어판, 2019.7.11.)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강제동원 피해자의 인권보다 일본 가해기업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따른 아베정부의 역사인식을 최소책임으로의 퇴행으로 간주한 한국의 피해자와 피해자 지원단체는 ‘극단적인’ 최대책임을 주장했다. (중략) 이 발안은 기존의 책임론적 화해의 틀(‘가해자의 사죄->피해자의 용서->화해의 성립’)을 넘어서, 새로운 화해의 틀에 기반한 창의적인 해법을 제안하고 있다. 즉 98년 공동선언에 담겨진 사죄 이외에 또 다른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를 전제조건으로 제시하지 않고, 피해자의 선제적이며 주도적인 재단 설립을 통해 양국 간의 화해에 이르는 방식이다. 이를테면 가해자의 입장을 피해자가 포용하는 화해이다.” – 박홍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프레시안> “한일관계 3.0시대,’포용론적 화해’가 필요하다”)

‘한일관계의 파탄’을 누구보다 걱정하는 이른바 일본전문가는 아베의 역사인식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합니다. 아베는 퇴임 후 기다렸다는 듯이 침략신사 야스쿠니를 매달 참배하고, 강제노동 피해를 왜곡한 전시로 비판을 받고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찾아 “이유 없는 중상을 꼭 물리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이 전문가는 결론적으로는 ‘진정한’ 사죄는 필요 없으니, 피해자가 가해자를 먼저 포용하고 화해하는 것이 ‘창의적인 해법’이라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생전의 여운택 할아버지와 1997년부터 이 소송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시민들 1997년부터 여운택 할아버지의 소송투쟁을 지원해 온 일본제철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우에다 케이시, 나카타 미쓰노부 씨. ⓒ 민족문제연구소

그가 ‘극단적인’ 주장을 했다고 말하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은 피해자의 인권회복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20년이 넘게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싸워왔습니다. 비로소 공식적인 역사로 기록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그리고 그들과 기꺼이 손잡고 역사정의의 실현을 위해 함께 싸워 온 한국과 일본 시민들이 일궈낸 시민연대의 승리를 함부로 폄훼하지 말라!고 한 목소리로 외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모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합니다. 사법농단의 주역 양승태는 지금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거래에 가담한 판사, 외교부, 김앤장의 변호사, 그 누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다시 감옥으로 가는 이명박을 보며 역사정의의 실현에는 시효가 없다는 진리를 다시금 마음에 다져봅니다.

* 이 글은 식민지역사박물관 뉴스레터 6호(2020.10.30)에도 실린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 대외협력실장입니다.

<2020-11-05>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승리를 폄훼하지 말라!

금, 2020/11/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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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문인 김동인 기리는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 열려… 한국 문단의 역사정의를 기다리며

매년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열리는 10월이 되면 친일문인을 기리는 문학상 기념식에 대해 논란이 반복된다. 문학상을 제정해서 기념하는 이유는 미당 서정주든 금동 김동인이든 팔봉 김기진이든 한국근현대문학에 끼친 영향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일반민족 행위와 군사독재 모두 역사 청산이 좌절된 우리나라 현실에서 특정 인물을 기념하는 것은 상당히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특정 인물을 기리고 기념한다는 것은 자라나는 세대에게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감이 되기보단 오히려 본받지 말아야 할 부분이 훨씬 많다면 기념식이든 문학상이든 폐지해야 마땅하다. ‘춘원(이광수) 문학상’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이다. 같은 논리로 중앙일보가 제정해 추진하던 ‘미당문학상’이 그런 논란 속에 지난해 폐지된 이유이기도 하다.

‘동인문학상’은 김동인의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았던 시절, 다시 말해 역사정의가 바로 서지 못한 1955년에 <사상계>에서 처음 제정해 이듬해부터 기념했다. 경영난으로 중단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1987년부터 조선일보가 이어 받아서 ‘동인문학상’을 기념하고 있다. 그렇다면 김동인은 과연 이광수나 서정주, 김기진처럼 친일반민족행위에 가담한 적이 없는 인물일까?

그동안 김동인은 한국 사회 최초로 문예 동인지 <창조>를 발간한 인물로, 그리고 근대문학의 형식을 열어젖힌 인물로 높게 평가돼 왔다. 실제로 <창조> 창간호에 발표된 ‘약한 자의 슬픔’은 이광수의 ‘무정’처럼 3인칭 ‘그’의 사용, 과거형 서술, 구어체 등 근대문학의 형식을 싹틔운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일제강점기 자연주의 문예사조를 처음으로 한국 문단에 퍼뜨린 인물로 추앙받아 왔다.

그러나 ‘동인문학상’ 시상의 적절성 여부를 논하면서 문예비평가 늘샘(김상천)은 자신의 논문에서 이렇게 갈파한 적이 있다.

“1917년에 부친이 별세하고 쌀 3천석에 해당하는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고 평양에서 제일 큰 집에 산 그는 조선의 귀공자나 다름없었다. 당시는 나라를 빼앗기고 그 울분을 삭이지 못해 일제의 총칼 앞에 맨손으로, 만세로써 저항하던 시대로, 유관순처럼 나이 어린 소녀들조차 분연히 일어났던 민족정신 대고취의 시기였다. 그러나 호텔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일본을 산보하듯 드나들며 기생오입을 밥 먹듯이 하고 돌아다닌 그는 남부러울 게 없는 조선의 방탕 부르주아 문사였다. 그런 그였으니 호가 또한 ‘금동琴童’이었거니와, 그에게는 그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호승심이 있었다. 그가 천재 작가 이광수와 호적수 염상섭을 그토록 의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 김상천(2020) ‘야비한 자연주의 – 김동인론’ 4쪽.

19살의 나이에 <창조>를 자비로 발간할 정도였으니 김동인의 재력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김동인의 재력은 1927-1929년 사이 사업 실패로 급격히 경제적으로 추락한다. 그 시기 김동인이 발표한 작품들 ‘송동이’, ‘죽음’, ‘구두’, ‘거지’는 하나같이 거대한 운명의 흐름에 내맡긴 약자의 삶, 바로 먼지처럼 사라져가는 존재에 대한 묘사이다.

▲ <동인문학상> 폐지를 위한 학술세미나 자료집 젊은 소장학자들 중심으로 김동인의 문학작품이 안고 있는 특징과 친일 성향을 연구한 자료집 표지 ⓒ 늘샘 김상천

10월 31일 열린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연구자 김춘규(서울대)는 그런 작품 경향을 이렇게 분석했다.

“점차 약자로 변모해 가던 1930년 초중반에서 진정으로 약자가 되어버린 이 순간, 그가 자신을 의탁하기 위해 달려간 장소가 조선총독부라는 것은 일제에 대한 그의 인식 변화를 극단적으로 반영한다. 당시 김동인이 여러 모로 궁지에 몰렸다고는 할 수 있으나 그가 도움을 청하고 의탁할 수 있는 장소가 일본 정부밖에 없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그의 선택은 강자-약자라는 이분법적 세계의 질서 속에서 과거 자신이 추구하던 강자의 모습을 당시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발견했기 때문이다. 김동인은 서양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의 대제국을 건설하자는 일제의 이상으로부터 한때 자신이 꿈꾸던 강자의 환영을 발견했던 것이다.” – 김춘규(2020) ‘김동인 소설의 변화와 제국주의 욕망의 동일화 과정’ 14쪽.

김동인이 자발적이고 적극적으로 친일의 길을 걸었던 시기는 중일전쟁(1937) 이후이다.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1938. 2. 4)에 기고한 ‘국기'(國旗)라는 산문에서 일장기를 극찬했다. 나아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은 지금은 합체된 단일민족이며 일본신민”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직 어린 자식들에게는 ‘일본과 조선이 별개의 존재’라는 것을 애당초부터 모르게 하겠다”고 다짐하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인류 역사를 재건하는 성전(聖戰)”으로 미화했다(김동인(1942) ‘감격과 긴장’ <매일신보> 1942. 1. 23).

계속해서 김동인은 ‘문학인의 책무’가 크고 중대하다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좌우할 수 있는 중차대한 열쇠를 잡았노라는 자각과 긍지 아래서 우리의 무기인 문필을 가장 효과 있게 이용할 것”을 역설했다(김동인(1944). ‘총동원 태세로-決戰下 文壇人의 決意’ <매일신보> 1944. 1. 1).

한 마디로 제국주의 일본에 대해 문필보국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논리였다. 강자인 제국주의 논리를 내면화함으로써 김동인 스스로 돌이킬 수 없는 친일의 길을 거침없이 걸어갔다. 이런 변절과 전향의 배반된 모습을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문학평론가 김영삼(전남대)은 이렇게 분석했다.

“전쟁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으로 확대되면서 조선을 대륙병참기지의 중핵적 지위로 격상하고 대동아공영권에서 조선인을 황국신민으로서 지도적 지위에 놓게 한다는 제국주의의 권력 작동 방식은 ‘식민지적 전향자’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편승하면서 제국의 논리를 내면화하기에 충분히 달콤한 인식적 유혹이었을 것이다. 김동인은 이에 일본인과 조선인 사이의 종족적 차이를 거세하고 동아시아제국 건설이라는 파시즘적인 국가주의 동일화의 전략에 근거하여 ‘단일민족’임을 선언한 것이다.” – 김영삼(2020) ‘제국과 친일의 생명정치 논리’ 22쪽.

근대문학의 형식을 개척한 선구적 인물로 한국문단사에선 김동인을 단연 높게 평가한다. 그의 자연주의 문예사조가 일본 명치학원 유학 시절 스승 시마자키 도손의 작품과 그의 영향 하에 형성된 것임은 독립연구자 늘샘(김상천)의 연구에서 이미 밝혀졌다. 카프의 수장 임화의 표현대로 한국 근대 문학이 일본으로부터 이식된 ‘이식문학’이었음을 김동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놀랍게도 김동인은 해방되던 날 오전에, 조선총독부를 찾아가 더 친일적인 문인단체를 만들어보겠다고 나섰던 인물이다. 사회적 약자를 경멸했던 문인으로 자신이 설정한 세계관과 강자의 논리 앞에 약자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 손짓을 보이질 않았다.

어떤 측면에선 당대 지식인들 세계에서 지배적 세계관으로 통용된 사회적 진화론에 기초해 있었다. 다시 말해 강자의 논리를 자신의 인격 속으로 내면화한 인물로 그 자신의 작품 속에 그대로 투영시킨 작가였다.

그런 연유로 민족문학작가회의(한국작가회의 전신)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선 김동인을 친일문인 42명의 명단에 수록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김동인은 무려 4쪽에 걸쳐 그 반민족 행위의 죄악상이 서술돼 나온다.

이렇듯 비루한 김동인의 작품세계를 두고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배포한 자료집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에서 임명선(<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소설 속 하층계급의 인물의 존재가 김동인이 자신의 계급적 지위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함을 반증한다면 여성 인물들은 김동인 자신의 뒤틀리고 문제적인 남성성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자라나는 다음 세대의 건강한 문학적 감수성을 위해서라도 ‘동인문학상’은 ‘미당문학상’처럼 폐지돼야 한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창간 주체인 ‘대정친목회’가 친일반민족 단체였음을 부끄러워하며 스스로 성찰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도덕적으로도 진정한 1등 신문은 한국 사회의 귀감이 되는 신문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족을 배반한 자를 기리는 문학상은 더 이상 한국 사회에 필요치 않다.

<2020-11-0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주장] ‘동인문학상’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

토, 2020/11/07-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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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식 파괴하는 ‘식민 잔재’… 치욕의 ‘역사 청산’ 훼방
日, ‘을사오적’ 신변 보호에 만전… 형법 조문도 사라져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친일청산 대상 ‘반민족’에 국한
해방 후 일제강점기 유·무형 일제 잔재 허무는데 실패
친일 인맥, 각계 주류로 행세하며 과거 청산 저지·방해

■ 왜 일제 잔재 청산인가

현실정치에 몸담은 인사들은 ‘토착왜구’라는 비판에도 자신들 기득권을 지키는데 너무나 의연하다. 지금도 우리 사회는 그런데 우리의 ‘일제 잔재’ 청산 논의는 흔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나치부역자를 처단한 사례와 비교한다. 나치에 의해 몇 해의 점령당한 프랑스는 부역자들 처단에 단호하고 철저했다. 우리는 몇 배나 긴 식민지배를 당하고 “왜 이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냐”고 개탄하기 급급하다. 식민지배가 길어질수록 부역자는 이에 비례하여 늘어나게 마련이다. 그런 만큼 저들을 처단하고 청산하는 작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1940년 당시 프랑스는 국민국가가 확립된 지 오래된 상태였다. 적국과 협력하는 반국가행위에 대한 형법상의 엄격한 처벌조항은 이미 완비하였다. 반면에 을사늑약 당시 대한제국은 근대적인 국민국가가 아니었다. 황제를 배반한 대신과 지도급 인사들은 ‘역적’으로 비판을 받았을 뿐이다. 이른바 ‘을사오적’에 대한 처벌은 의열투쟁 일환으로 암살시도가 전부였다. 통감부 설치 이래 일제는 이들 신변 보호에 만전을 기울이는 가운데 처벌할 형법 조문은 깡그리 사라졌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친일청산이 ‘반국가’ 아닌 ‘반민족’ 행위를 대상으로 삼은 이유도 이와 결코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 남북분단과 6·25전쟁은 일제 잔재의 가장 커다란 생채기이다

해방 이후 독립국가건설론은 이념적인 대립과 미국과 소련이라는 외세에 의하여 한민족이 바라는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다. 이념적인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은 ‘다수의 힘’에 의하여 역사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너무나 역부족이었다. 강화된 냉전체제는 결국 38도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각각 분단국가 수립하고 말았다. 이념적인 격화는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6·25전쟁으로 귀결되었다.

소련 지원으로 군사력을 키운 북한은 새벽에 남침을 개시하여 3일 만에 수도 서울을 단숨에 점령하였다. 국군은 병력과 열악한 무기 등으로 한 달만에 낙동강 부근까지 밀려 최후 방어선을 구축했다. 미국 주도로 개최된 유엔 안전보상이사회는 유엔군 파병을 결정하였다.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은 인천상륙작전 성공하여 서울을 되찾고 압록강까지 진격할 수 있었다. 북한의 요청으로 중국군이 개입하여 다시 서울을 빼앗겼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체결되는 순간까지 전투는 계속되었다. 전쟁으로 인명은 약 450만 명, 남한의 43%의 산업시설과 33%의 주택이 파괴되는 엄청난 인적·물적 손실을 초래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후유증은 인적·물적 손실과 더불어 불신감을 증폭시켜 적대감을 고조시켰다.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 지난 한반도는 영구적인 평화가 아닌 휴전 상태에 있다. 상호 신뢰에 의한 평화공존론 모색에 힘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에서 비롯된다.

■ 10월 유신은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이다

해방 이후 일제 잔재 청산에 실패했다. 이로 인해 일제강점기에 구축된 인적·물적 토대를 허무는데 실패했다. 반민족적·반민주적 지배구조나 의식은 온전히 유지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친일 인맥은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면서 과거 청산을 저지하는 방해꾼이었다.

일제는 식민지 노예교육과 우민화 정책으로 한국인에게 노예의식과 패배주의를 만연시켰다. 민족자존의 의식이나 의지는 원천 봉쇄하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폭압적인 관료제와 권위주의적인 법령체계로 헌병과 경찰 등은 한국인들에게 오직 순응과 복종만을 강요했다. 일제 잔재 중 가장 구조적이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큰 분야는 바로 법과 제도 의식 등이었다. 유신체제는 사상과 양심, 신체의 자유를 유린하는 가운데 획일적이고 억압적으로 사회를 통제하였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 시행된 각종의 국가주의적 시책은 식민지배정책을 답습한 결과였다. ‘황국신민의 서사’와 ‘교육칙어’를 모방한 ‘국기에 대한 맹세’와 ‘국민교육헌장’, 주민통제를 목적으로 한 반상회나 치안유지에 관한 여러 법령 등은 이를 방증한다. 10월 유신은 식민지 지배구조의 재현이자 천황제 이데올로기의 총화였다. ‘한국적 민주주의의 토착화’라는 미명하에.

■ 민족정체성을 일깨우는 가치기준이다

강제병합 110주년과 광복 75주년을 맞는 올해는 우리 근현대사를 성찰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야만적인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을 일으킨 장본인 일본은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 오히려 정당화에 급급하다. 양심적인 세계인들이 공분하는 현실에도 전혀 반성하려는 기미조차 찾을 수 없다. 급속히 우경화하는 현실은

결코 간과해서 안 된다. 일제 잔재는 우리 사회에 고스란히 남아 고착되는 경향마저 보인다. 나아가 민족의 의식세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등 우려를 자아낸다.

우리 사회에는 유·무형의 식민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다. 이는 언어·문화·교육·생활 등 일상사 전반에 걸쳐 민족의 의식세계까지 지배한다. 일제가 식민지배하면서 남겨놓은 부정적 유산을 너무 흔히 볼 수 있다. 의식하거나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일상사에 언저리에 잔존하는 현실이다. 황국신민서사탑·관청건물 등과 같은 건축조형물 형태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 무형의 형태이다. 광복 60주년 기념사업으로 문화관광부는 ‘일제문화잔재 지도 만들기’를 추진했다. 이는 식민지배 가해자인 일본의 위정자와 극우세력에 의해 역사 왜곡과 우경화가 노골화하는 상황에 대한 자구책 일환이었다. 우리 내부 자성에 의한 ‘자아 찾기’라는 사실에서 크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해방 75년 동안 우리는 이를 청산·극복하려는 노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친일파 청산을 위한 ‘대통령소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보수정권’ 출현으로 중단되어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일시적인 활동으로 과거 인적 청산을 위한 자료 수집에도 힘겨운 기간이었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는 정부가 하지 못한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하여 연구자는 물론 사회운동가 등에게 잘못된 인물 평가를 되새기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했다. 이리하여 국가기관과 민간단체의 긴밀한 협조도 물론 정부를 비롯한 범시민적인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을 각인시켰다.

▲ 1995년 3월1일 문민정부가 옛 조선총독부건물 철거 선포 이후, 같은 해 8월15일 청사 중앙 돔의 첨탑(노란색 원)을 시작으로 다음해에 철거작업을 완료했다. 당시 철거된 조선총독부 중앙 첨탑은 현재 천안시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올바른 정신적인 가치기준이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게 인식하는 분위기이다. 과거는 주목되지 않는 하찮은 것이나 현실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굴절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와 미래는 일상사와 관련하여 분명 중요하다. 올바른 현실 인식과 활동은 과거 잘못된 원인부터 밝혀내고 고쳐나가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만 한다. 특히 과거의 것들이 고쳐지지 않고 현실에 남아 있을 때에는 더욱 그러하다.

왜색은 시대와 상관없이 일본의 영향이 짙게 밴 문화 경향을 뜻한다. 저급하고 천박한 일본의 문화는 우리가 절대적으로 경계해야 할 대상임에 분명하다. 명백히 일제 잔재와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일제 잔재는 식민지시기에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로 벌인 모든 영역을 포함한다. 장기간에 걸쳐 구축된 식민지배구조의 유제라는 측면에서 엄연히 왜색문화와 차별성을 지닌다.

일제는 자신들의 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영속화시키기 위해 한민족 삶의 깊숙한 지배논리를 강요하고 합리화했다. 일본과 한국은 ‘과거청산’이라는 관점에서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일본은 종전 이후 군국주의 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반면 한국은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했다. 일본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나 의식과 생활적인 면에서는 한창 거리가 있다. 광적인 ‘집단주의’는 이웃 국가에 대한 비수로 성큼 다가온다. 한국은 민주화의 역동성에서는 일본보다 앞서고 있으나 ‘내부 분열’이 심각하다.

일제 잔재 청산은 올바른 정신적인 가치기준을 세우는 지름길이다. 이미 친일세력은 대부분 죽었으며 법적인 책임도 소멸된 상태이다. 처벌이 목적이 아니라 올바른 진상규명을 통해 학문적·역사적인 과거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향한 힘찬 진군에 동참할 수 있는 든든한 밑거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 남북통일을 향한 지렛대로 삼자

한국사회 발전상을 흔히들 ‘한강의 기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부상한 현실은 이러한 사실을 증명하기에 충분조건이다. 더욱이 1990년대 이후 진전된 정치·사회적인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한국문화의 세계화 등은 한국인의 저력과 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리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와 과정은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탄하게 진전되지 않았다. 많은 진통과 갈등이 수반되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기역할’에 충실하였다. 이는 오늘날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든든한 에너지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지 훌쩍 75년이나 지났다. 거족적인 3·1독립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1년을 맞았다. 그때 함성이 우리 귀에 메아리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가슴이 뭉클하다. 그런데 외형과 달리 이면에는 잘못된 과거사 생채기도 주변을 기웃거린다. 바로 식민지배가 남긴 일제 잔재는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고 장애물로 공존하는 현실이다. 이 중에서 가장 가슴 쓰린 현실은 남과 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라는 엄연한 사실에 누구나 공감하는 공통분모이다. 평화로운 남북통일을 제2의 독립운동이라고 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김형목 사단법인 선인역사문화연구소 연구이사

<2020-11-08> 경기일보 

☞기사원문: [생활 속, 일제 잔재를 청산하자] 일제 잔재 청산을 위한 시론 (1)

월, 2020/11/09-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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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현 성공회대 교수(왼쪽)와 박시백 화백 [임종국선생기념사업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임종국선생 기념사업회는 제14회 임종국상 학술부문 수상자로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를, 문화부문 수상자로 박시백 화백을 각각 선정했다고 6일 밝혔다.

강 교수는 한국과 동아시아의 사상통제와 공안, 국가폭력 등을 주제로 연구활동을 펼쳐왔다.

사업회는 강 교수의 책 `탈진실의 시대, 역사부정을 묻는다’를 수상 저서로 선정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중심으로 `반일 종족주의’를 비롯한 한일 극우연합세력의 역사부정론을 정면으로 논파했다”고 평가했다.

역사만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유명한 박 화백은 국내외 독립운동 현장답사와 자료수집을 통해 항일투쟁의 역사를 7권짜리 `35년’으로 펴냈다.

사업회 측은 “국내외에서 역사 왜곡이 자행되고 있는 시점에 창작을 통해 역사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35년’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임종국(1929∼1989) 선생은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는 등 친일문제 연구와 과거사 청산에 앞장선 인물이다.

시상식은 오는 9일 오후 6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리며 페이스북에서 실시간 중계된다.

[email protected]

<2020-11-06> 연합뉴스

☞기사원문: 14회 임종국상 수상자에 강성현 교수·박시백 화백

※관련기사 

한겨레: ‘임종국상’ 강성현 교수·박시백 화백

서울신문: 올해 ‘임종국상’에 강성현 교수, 박시백 화백

월, 2020/11/09-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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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철거요청에 엄태준 이천시장 수용

▲ 경기 이천시의 시민단체가 관내 설봉공원 내에 있는 이인직?서정주 등 친일행적 문인 2명의 문학비 철거에 나섰다. ⓒ 이천시

경기 이천시의 시민단체가 관내 설봉공원에 있는 이인직‚ 서정주 등 친일행적 문인 2명의 문학비 철거에 나섰다.

앞서 엄태준 이천시장은 “친일 행적 문인들의 문학비를 철거해 달라는 시민들의 뜻에 따라 하루 빨리 친일 문학비를 철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따라 이천시는 11월 친일 행적 문인들의 문학비 2개를 별도로 제작한 표지석과 함께 땅에 묻기로 결정했다.

관내 시민사회단체인 미래이천시민연대, 이천시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천역사문화연구회, 이천거북놀이보존회는 지난 9일 설봉공원 문학동산 내에 자리한 이인직 문학비 앞에서 친일작가 문학비 철거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행사에 참여한 시민연대 황인천 공동의장은 “이천의 정기서린 명산 설봉산 자락에 자리한 문학동산에 반민족 친일파 이인직, 서정주 기념비가 있다는 것은 이천은 물론 전 민족적 차원의 수치”라며 “하루 속히 철거됨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4개 시민사회단체를 대표하여 시민연대 김동승 공동의장은 퍼포먼스가 끝난 뒤 진행된 임시총회에서 이천시장에게 친일작가 문학비 철거 요청서를 전달하며 이천시민의 친일잔재 청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밝혔다.

표지석에는 이들의 친일 행적을 기록하여 설봉공원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낼 예정이다.

설봉공원 문학동산에는 이육사 기념비, 윤동주 시비를 비롯해 문인 10여명의 작품비가 설치돼 있다.

이인직, 서정주는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선정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학 부문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2020-11-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이천시, 이인직·서정주 친일 행적 문학비 철거

수, 2020/11/1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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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_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수, 2020/11/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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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전쟁 선포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주최 : #근현대사기념관
주관 : #민족문제연구소
후원 : #강북구 , #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개회식 / 기조발제 “독립전쟁과 신흥무관학교의 역할”
-개회사 :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환영식 : 박겸수(강북구청장)
-기조발제 : 서중석 (성균대학교 명예교수)

[제1주제] 1910년대 유교계의 독립운동과 신흥무관학교
-발표자 : 서동일(국가보훈처) / 토론자 : 박성순(단국대학교)

[제2주제] 신흥무관학교 ‘출신(자)’ 현황 분석과 독립운동
발표자 : 이용창(민족문제연구소) / 토론자 : 황민호(숭실대학교)

[제3주제] 일본의 ‘간도 출병’ 배경 검토
발표자 : 한성민(대전대학교)/ 토론자 : 이명종(강릉 원주대학교)

[제4주제] 청산리 전역과 절반의 작전
발표자 : 신효승(동북아역사재단) / 토론자 : 이승희(동덕여자대학교)


[종합토론] 발표 및 토론자 전원
좌장 : 윤경로(신흥무관학교기념사업회 상임대표)

토, 2020/11/14-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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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나의 스승 212]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는 아이들, 이렇게 길러진다

▲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모습. ⓒ wiki commons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요? 이득은커녕 손해 볼 게 뻔한 일을 누가 하겠어요?”

요즘 아이들은 참 영악하다. 워낙 이재에 밝아 본능적으로 이해관계를 따진다. 이익이 된다고 판단이 서면 앞장서 달려들지만, 손해 볼 일은 애초 거들떠보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요즘 아이들,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다고.

교과 수업에서든, 비교과 활동에서든, 아이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주판부터 튕기는 그들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아서다. 그들이 가장 어처구니 없어 하는 사자성어가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수업 시간 모둠 활동을 싫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모둠을 편성할 때면 다른 친구들 때문에 자신이 손해를 보지나 않을지 노심초사한다. 자신이 남에게 폐가 될 수도 있다는 건 아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몇몇 아이들은 대놓고 모둠 활동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한다.

봉사 활동도, 동아리 활동도 별반 다르지 않다. 활동 특성상 자발성이 핵심인데, 오히려 교육과정에 연간 이수 시간을 지정해 강제하고 있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지만, 취지와는 달리 학교마다 대부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이들은 십수 년째 ‘이(利)’와 ‘의(義)’가 충돌할 때 ‘이(利)’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은연중에 깨달아왔다. 혹 시험에 출제되었을 때야 당연히 ‘의(義)’를 고를 테지만, 일상 속에서는 조금도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의(義)’를 좇으면 득 될 게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의보다 이를 따르는 아이들

국가의 교육 목표와 학교의 존재 이유는 수만 가지일 테지만, 교사인 내게 한 가지만 꼽으라면 ‘정의로운 인간의 육성’이라고 답할 것이다. 사회화도 좋고 지식의 전달과 전통문화의 계승도 좋지만, 모든 영역에서 발군일지언정 정의롭지 않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여기서 ‘정의’란 인식이 아닌 행동의 영역이다. 적어도 고등학생이라면, 자신의 말과 행동의 옳고 그름을 모르는 아이는 없다. 옳다는 걸 알지만 실천하지 않고, 잘못된 짓임을 빤히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행동한다.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확신 때문이다.

도덕 교과 시험 성적만 놓고 보면 아이들 대부분은 성인군자다. 성취 기준과 성취 수준으로 해석하면, 정의를 수호하고 불의에 저항할 줄 아는 올곧은 시민임이 분명하다. 교과의 학습 목표를 넘어 학교 교육의 목표가 달성된 셈이다. 다른 교과라고 다를까.

그런데도 학교 곳곳에는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고, 절도나 폭력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며, 교권 침해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교사 앞에서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지만, SNS에다가는 온갖 욕지거리를 쏟아낸다. 그들끼리 센 척하며 서열 짓는 건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를 바도 없다.

지금껏 우리 교육은 겉과 속이 다른 아이들을 양산해왔는지도 모른다. 핑곗거리 찾아봐야 소용없다. 그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한계다. 아이들에게 교과서 속 내용은 시험을 치르기 위한 도구일 뿐이고, 교사의 훈화는 부모의 잔소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우리 교육이 정의로운 인간을 육성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온존한 학벌 구조와 입시 제도 탓이 크다는 건 삼척동자도 안다. 이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당연시하는 우리 사회의 냉혹한 엘리트주의와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일까. 그것이 제도의 문제라면, 가랑비에 옷 젖듯 아이들의 심성을 검게 물들이는 관행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제도는 토론을 거쳐 보완하고 수정할 수 있지만, 오랜 관행은 어디서부터 손써야 할지 난감하다. 관행은 왜곡된 역사의 다른 이름이다.

아이들은 역사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까

“승자는 진실을 추궁당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선전 장관이었던 괴벨스의 말이다. 극악한 나치의 만행을 거론할 때마다 등장하는 경구인데도, 아이들은 단지 괴벨스가 문제일 뿐, 그의 말에는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의 나치 버전일 뿐이라는 거다.

그것이 역사 해석의 맹점을 지적하고, 나아가 정의를 조롱하는 망언이라는 진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수업 때마다 역사를 배우는 이유를 재차 강조하지만, 이를 가슴에 새기는 아이는 거의 없다.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기에는 그들이 직면한 현실이 너무 강퍅하다.

누군가 우리 현대사를 두고 역사가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고 파란만장했다는 뜻이다. 솔직해지자면, 보편적인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뒤틀린 역사라는 의미의 우회적인 표현이다. 한마디로 ‘악’이 ‘선’을 이긴 역사라는 거다.

아이들은 이를 통해 어떤 교훈을 얻을까. 잘못된 과거사를 거울삼아 ‘선’이 ‘악’을 몰아내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다짐하는 건, 교과서 학습 목표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그들에게 ‘사필귀정’은 ‘견리사의’만큼이나 황당해하는 사자성어일 뿐이다.

요즘 아이들을 단군 이래 가장 학력이 높은 세대라고 상찬한다. 하지만, 정의에 대한 감수성은 아마도 가장 낮은 세대가 아닐까 싶다. 그들이 절대시하는 공정이란, 특권 의식에 반대하고 기회의 평등만을 의미할 뿐, 타인이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사회적 불의에 맞서는 정의감과는 결이 사뭇 다르다.

물론 영악한 아이들만 탓할 순 없다.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며, 나아가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를 닮는 법이다. 아이들은 부모 세대의 공통된 정서와 우리 사회에 온존한 가치관을 그대로 보여주는 바로미터일 뿐이다. 그들에 대한 일말의 서운함을 토로하다 여기까지 왔다.

▲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안익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내용에 따르면 안익태는 나치 정부의 제국음악원 회원으로 활동하며 1942년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경축하는 만주국 축전곡을 의뢰받아 완성했다. ⓒ 김종훈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를 맞아 이번 주 내내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삶’을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그의 이름과 희생을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저 수험용 지식 정도로만 받아들이는 눈치다.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뒷맛이 개운치 않다.

다시 아이들을 감화시킬 수 있는 여러 전태일 열사 관련 자료를 찾아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어이없는 뉴스를 보게 됐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후손이, 지난 8.15 기념식 행사 도중 그를 민족반역자라고 칭한 김원웅 광복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는 기사다.

지난 8일, 안익태의 친조카인 미국 국적의 데이비드 안씨는 김원웅 광복회장이 안익태를 민족반역자로 규정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해 사자 명예를 훼손했다며 고소 이유를 밝혔다. 나아가 광복회의 공식 입장인 만큼 광복회에 대해서도 거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알다시피 안익태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1940년대 초 나치 독일에서 <일본 축전곡>을 연주했고,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축하하는 <만주 환상곡>과 <만주 축전곡> 을 작곡하는 등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음악 활동에 두루 참여했다.

그는 나치가 패망하자 도망치듯 스페인으로 건너가 그곳에 정착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스페인이다. 미국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가려 했으나 나치에 적극 협력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제자라는 이유로 거절당한 사례도 있다. 이쯤 되면 억울할 것 하나 없는 명백한 친일반민족행위자 맞다. 대체 무엇이 허위사실 유포고, 사자 명예 훼손일까.

김원웅 광복회장이 언급한 내용은 모두 이미 드러난 역사적 사실이거나 정황상 사실일 개연성이 높다. 백 보 양보해서 일부 쟁점이 남아있다고 할지라도 그가 제국주의에 협력하고 친일반민족행위를 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이마저 인정할 수 없다면, 광복회장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야 옳다.

▲ 안익태 ⓒ 오마이뉴스

우리의 고민은 그가 친일반민족행위자이냐 아니냐의 여부가 아니다. 이미 오래전 역사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표절 시비를 떠나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작곡한 곡이 해방된 조국의 애국가로 채택된 참담한 역사에 대해 성찰 중이다. 광복회장의 말마따나,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다.

요즘 아이들이 배우는 음악 교과서에 안익태는 물론 현제명, 홍난파 등 익숙한 이름들이 모두 지워졌다.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이유에서다. 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면, <희망의 나라로>나 <봉선화>는 음악 시험의 단골 메뉴였다. 나이 30대 중반 정도만 돼도 공감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러잖아도 영악한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후손이 독립운동가의 후손을 욕보이는 현실은 정의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기는커녕 우리 역사에 대한 환멸을 부르기 십상이다. 만에 하나, 광복회장이 기소된다면 우리 역사의 더없는 치욕이 될 것이다.

역사 교사로서 아이들을 감화시키지 못한 교육의 지리멸렬함을 겸허히 인정한다고 해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난맥상에 더 큰 책임이 있지 않을까. 하필이면 전태일 열사 분신 50주기 즈음이라 더더욱 얄궂다.

<2020-15-10>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안익태 후손이 광복회장 고소? 아이들이 알까 두렵다

화, 2020/11/17-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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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성 화백,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사전 이름 올라
현충사사무소, 지난 6월 표준영정 해제 심사 요청
유족 탄원서 제출 “친일 매도는 억울”

[앵커]
화폐나 교과서에 실리는 정부 공인 초상화를 표준영정이라고 하죠.

표준영정 1호 이순신 장군 초상화가 3번째 지정 해제 심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표준 영정, 나아가 화폐 도안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승은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이순신 장군 표준영정을 그린 장우성 화백은 민족문제연구소 발간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라 있습니다.

조선총독부 주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특선을 했고, 관제 미술전을 위해 일제가 전쟁의 신으로 여긴 부동명왕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주된 이유입니다.

과거 두 차례 정부 심의위는 각각 친일 여부는 규정상 검토 대상이 아니고, 복식 오류는 단정할 수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며 반려했습니다.

현충사사무소는 지난 6월 세 번째 신청에서 친일과 복식 오류 모두를 심사 요청했습니다.

[임오경 의원 / 지난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국감 : 3회에 걸쳐 지정해제를 요청한 바도 있습니다. 소장처에서 요청하는 표준영정 지정 해제 요구 10년 동안 교체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문체부는 심의 규정을 바꾸고 심의 분야를 확대해 검토에 들어갔습니다.

[박양우 /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 (영정동상심의위에) 근대사, 현대사 관계되는 분들도 보강을 했고요. 복식 측면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를 하도록 일단 제도는 갖춰놨다….]

장 화백 유족은 친일 매도는 억울하다는 탄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당시 미술계 입문 통로였고, 마귀를 쫓는 불교 신으로서 부동명왕을 그렸지만 결국 출품도 못 했다는 겁니다.

[장학구 / 장우성 화백 아들 : (일제) 너희가 참 마귀다 이런 뜻을 품은 내 뜻을 나 혼자나 알지 누가 알겠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위당 (정인보) 선생의 제자가 됐고 함석헌 선생을 비롯한, 장기려 박사 이런 분하고 75년 동안 우정을 나눴습니다.]

표준영정이 바뀌면 교과서는 물론 백 원 동전 속 영정도 바뀌게 됩니다.

표준영정 98점 가운데 작가의 친일 논란이 있는 것은 14점에 이릅니다.

특히 2009년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에는 김은호, 김기창 화백의 이름이 올라있습니다.

이들이 그린 표준영정이 담긴 지폐 세 종류를 바꾸려면 4천7백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참에 화폐 도안을 독립운동가 영정으로 바꾸자, 표준영정 제도를 폐지하자는 의견도 나오면서 논란은 확산하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email protected]]입니다.

<2020-11-15> YTN

☞기사원문: 세 번째 심의…백 원 동전 이순신 장군 영정 바뀌나

수, 2020/11/18-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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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군가 우리 군가로 지정, 친일잔재 군가는 삭제를”

associate_pic [광주=뉴시스] 류형근 기자 = 17일 오후 광주 서구 광주시청 3층 중회의실에서 열린 광주시·국회의원 선거 당선인 정책간담회, 이용빈 광주 광산구갑 당선인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4.17.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 배상현 기자 =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인 이용빈 의원(광주 광산구갑)은 16일 서욱 국방부장관을 만나 “광주 군공항 이전 문제에 대해 국방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17일 밝혔다.

이 의원은 서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군 공항 이전 문제에 대해서는 시·도지사와 정치권이 지역과 주민의 상생을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한다는데는 뜻을 같이 했다”며 “서 장관이 군 공항 이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 의원은 서 장관이 광주 출신이자 광산구에 연고가 있는 만큼, 더욱 애정을 갖고 광주 군 공항 이전을 위해 애써 달라고 당부했다.

또 이 의원은 서 장관에게 광복군이 우리 국군의 뿌리인 만큼, 광복군의 호국정신을 선양할 수 있도록 광복군동지회에 대한 예우를 잘 이어가고 친일잔재를 청산하는데도 노력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 의원은 그 일환으로 광복군가를 비롯한 항일군가를 우리 군 공식 군가로 즐겨 부르도록 지정하고 친일잔재인 군가를 삭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안했다.

국방부 청사 현관에 걸렸다가 철거된 김기창의 자기표절 그림 `적영’에 대해 대표적인 친일 반민족 미술 작품의 표절임을 알릴 수 있도록 민족문제연구소 전시관에 기증 또는 영구 전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다.

이에 대해 서 장관은 “확답은 할 수 없으나 잘 검토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2020-11-17> 뉴시스 

☞기사원문: 이용빈의원, 서욱 국방장관에 “군공항 이전 적극 추진 요청”

※관련기사 

아시아경제: 이용빈 의원, 서욱 국방부장관에 ‘군공항 이전 문제’ 노력 요청 

광주매일신문: 이용빈, 국방부장관에 “군공항 이전 적극 나서달라”

목, 2020/11/1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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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빵-바로듣기] [다운로드] 

☞ (11.17) ‘내역사’ 시즌 5: 19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박헌영편

☞ (11.10) ‘내역사’ 시즌 5: 18화 “해방 후 3년” _그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_여운형편

☞ (10.27) ‘내역사’ 시즌 5: 17화 2부 “해방후 우리군은 숙군과정을 통해 어떻게 정치군인이 되었는가?

☞ (10.20) ‘내역사’ 시즌 5: 17화 1부: “해방후 우리군은 어떻게 창설되었나?

☞ (10.13)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2부

☞ (10.09)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_한글날 특집 ‘일제강점기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지켰나?’

☞ (10.06) ‘내역사’ 시즌 5: 16화: 선출되지 않는 권력, 대한민국 판검사의 뿌리는? 1부

☞ (7.28)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2부

☞ (7.21) ‘내역사’ 시즌 5: 15화: “평화로 가는 한국, 제국으로 가는 일본” 서승교수와 함께 1부

☞ (7.14)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2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7.07) ‘내역사’ 시즌 5: 14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좌초위기_그 원인과 해법은? 1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함께

☞ (6.30) ‘내역사’ 시즌 5: 13화: “일제 침략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 대표적인 7곡을 소개합니다”

☞ (6.25)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2부

☞ (6.23) ‘내역사’ 시즌 5: 12화: 한국전쟁 70주년 특집 “옹진의 민간인 학살과 동키부대”

☞ (6.19) ‘내역사’ 시즌 5: 긴급편성 최근 개관한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 강제동원을 부정하고 왜곡하다”

☞ (6.1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5편 조정래 1부

☞ (6.16) ‘내역사’ 시즌 5: 11화: 조선 정판사 위조 지폐사건의 진실 “정판사 위폐”사건은 조작되었다

☞ (6.09) ‘내역사’ 시즌 5: 10화: 제국대학의 조센징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은 돌아와서 무엇을 하였나?”

☞ (6.04)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4편 남정현

☞ (6.02) ‘내역사’ 시즌 5: 9화: 김원웅 광복회장 “친일찬양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겠다”

☞ (5.26) ‘내역사’ 시즌 5: 8화: 만화로 보는 민주화 운동(유승하, 마영신 작가)

☞ (5.22)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2부

☞ (5.21)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3편 이병주 1부

☞ (5.20)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3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광주항쟁의 정신은?”

☞ (5.19)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2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8) ‘내역사’ 시즌 5: 7화: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특집 1부 “그들은 왜 시민군이 되었나?”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베트남전 당시 퐁니퐁넛에서 벌어진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작품들_영화 “기억의 전쟁”과 만화 “붉은돌단풍”

☞ (5.12) ‘내역사’ 시즌 5: 6화: ” 베트남전을 어떻게 기억해야 하나?_4월 21일 베트남 피해자 최초로 한국 정부를 상대로 배상소송을 제기하다”

☞ (5.08)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2부

☞ (5.0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2편 최인훈 1부

☞ (5.05) ‘내역사’ 시즌 5: 5화: 소설 『명시』작가 안재성이 쓴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김명시의 삶

☞ (4.28) ‘내역사’ 시즌 5: 4화: 『여행자를 위한 에세이 北』 가수 이지상과 함께

☞ (4.27) ‘내역사’ 시즌 5: 특별편성 임헌영 소장의 『한국소설,정치를 통매하다』 1편_이호철

☞ (4.21) ‘내역사’ 시즌 5: 3화: 『압록강은 휴전선 너머 흐른다』강주원 박사와 함께

☞ (4.14) ‘내역사’ 시즌 5: 2화: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푸순의 기적’ 김효순 전 한겨레 기자와 함께

☞ (4.07) ‘내역사’ 시즌 5: 1화: 『한국 첩보 현대사』”고지훈 연구원과 함께”

☞ (3.31) ‘내역사’ 시즌 5: 프롤로그: 민족문제연구소 상근활동가들과 함께

목, 2020/11/19- 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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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투쟁의 숭고한 불꽃을 피운 안성의 정신 계승

6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안성 공도중학교(교장 한지숙)는 친일잔재 청산과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의 사업으로 친일 작곡가 이흥렬이 만든 교가를 교체 완료했다고 지난 20일 발표하였다.

이흥렬은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친일음악 단체인 ‘대화악단’과 ‘후생악단’에서 활동한 인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친일 음악가로 등재됐다.

학교는 지난해 대토론회를 통해 도출된 다양한 학내 일제 잔재를 민주적 절차를 통해 청산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는데 이번 교가 개정도 그 작업의 일환으로 실시되었다.

공도중학교는 학교 교육공동체 구성원들과 심도 있는 협의 끝에 지난 7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여, 재학생과 학부모, 교직원, 동문 등 전문가 및 시민들을 대상으로 30일간의 가사를 공모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응모한 79편의 작품 중 예심을 통과한 9편을 대상으로 치열한 논의를 거쳐 학생들의 꿈과 희망이 담긴 서정적인 가사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음악 교사의 주도로 다양한 스타일의 작곡 작업을 진행하였는데, 그중에서 참신하고 아름다우며 부르기 쉬운 미래지향적인 곡이 학생들의 전폭적인 선택을 받아 새로운 교가로 결정되었다. 새로운 교가를 들은 학생들은 기상과 정기를 강조했던 특색이 없고 획일적인 군가식 교가와는 달리, 다양한 선율과 아름다운 가사로 오래 간직하고 싶은 교가라며 입을 모아 자랑하고 있다.

한지숙 교장은 “친일 작곡가의 곡이 교가로 불렸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며 친일잔재를 청산하는 교가 교체 작업에 함께한 공도 교육 가족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새로운 교가는 참신하고 부르기 좋아서 행사곡에 머물지 않고 평소에도 즐겨 부르며 애교심은 물론 학생 스스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도전 의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안성/서태호 기자 [email protected]

<2020-11-23> 수도권일보 

☞기사원문: 안성 공도중학교. 친일 음악가 작곡 교가 교체

수, 2020/11/25-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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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대전 골령골 유해발굴현장 ‘긴급’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이유

제 고향은 대전입니다. 가끔 내려가서 야구를 보거나 쇼핑을 하고 빵집을 갑니다. 11년간 했던 일이죠. 그러나 이번에 내려간 고향은 달랐습니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단일지역 최대 민간인 학살 현장, ‘대전 산내 골령골’입니다.

생각해본 적도 없는 대전 학살의 현장에 간 이유는 심규상 <오마이뉴스> 기자의 기사 때문입니다. 15일 대전산내골령골대책회의(상임대표 박규용)는 긴급 공지를 통해 “공동조사단에서 긴급히 일손을 찾고 있다”고 참여를 호소했습니다. ‘긴급’과 ‘호소’라는 단어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관련 기사] “16일 대전 유해 발굴 현장보존 자원봉사자 찾아요” http://omn.kr/1qir2)

아버지의 금니

▲ 유족 박귀덕 할머니 ⓒ 홍승주

16일 낮 12시,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30분을 가서 ‘동구 낭월동 13번지’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단풍이 물든 평범하고 낮은 산입니다. 내리자마자 새 소리가 들립니다. 심지어 평화롭게 느껴졌습니다. 서울에서 왔다고 말하자 할머니 한 분이 사탕을 주며 꼭 안아줬습니다.

“아따, 고맙소잉. 돈 있으면 맛난 거 사주고 싶소잉. 젊은이들이 참 순해서 좋소. 내년에도 보소. 오메~ 참말로 이런 가슴 찢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소.”

대전에서 들은 광주 사투리였습니다. 박귀덕 할머니의 아버지는 민간인 학살 당시 광주에서 대전까지 끌려와 희생을 당했습니다. 지금도 광주에 살고 있는 할머니는 자주 대전에 방문해 위령패 옆 꽃을 바꿔놓습니다.

청년 자원봉사자들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박귀덕 할머니의 손에는 ‘치아 유골’이 있었습니다. 치아의 금니를 만지며 ‘자신의 아버지도 금니를 했다’고 말했습니다. 혹시 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할머니의 말에 제가 어디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금니가 달린 치아는 살아있는 사람의 그것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유골을 말리고 있습니다. ⓒ 홍승주

“교회 문 열지 마세요”

“자원봉사에 오신 분들에게는 현장 설명을 먼저 합니다. 하지만 현장 설명보다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뼈더미를 보면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충격에 직면하죠.” (공동조사단 임재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팀장)

도착하자마자 오후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발굴지에서 나온 유골들은 세척 작업 후 아세톤이 가득 든 통에 담가둡니다.

저는 유골들을 아세톤 통에서 꺼내 건조 쟁반에 놓아두는 일을 했습니다. 길고 속이 빈 다리뼈를 통에서 들어 올리니 찬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아세톤 냄새도 훅 덮쳐왔습니다. 쟁반이 부족할 정도로 유골이 많았습니다. 거리를 약간만 떼어 두고 번호가 붙여진 쟁반에 최대한 많은 유골을 배치했습니다.

쟁반이 다 차면 햇볕 좋은 곳으로 옮깁니다. 70년 만에 햇빛을 보는 희생자의 유골은 정말 많았습니다. 모닥불을 피우려 모아 놓은 장작 나무 같던 다리뼈, 두개골 뼈, 잘 부서지는 잔뼈, 그리고 단추, 신발 밑창, 옥색의 탄피, 탄피들.

▲ 건조 중인 뼈들 ⓒ 홍승주

함께 작업하던 박정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국장이 말합니다.

“제가 간호학과를 나왔는데, 그곳에서 보던 것보다 이곳에서 훨씬 많은 뼈를 봤어요.”

임마누엘 교회에 딸린 화장실을 쓰면 된다는 안내를 받고 교회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준비 없이 보게 된 광경입니다.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 임마누엘 교회 안 뼈 사진 ⓒ 홍승주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개미들

“성미산학교, 지역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단체 등 많은 분이 자원봉사로 다녀갔어요. 발굴장에 사오십 명이 바글바글할 때도 있죠. 공동 발굴단은 멤버가 딱 정해져 있지는 않아요. 하루를 와서 조사해도 공동 조사단의 일원입니다.” (공동조사단 총괄 담당 안경호 4.9 평화재단 사무국장)

저는 올해 발굴작업이 다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골령골로 갔습니다. 유해 발굴은 겨울 동안 잠시 멈췄다가 2021년에 다시 시작합니다. 봉사자들은 내년에 있을 추가 유해발굴을 위해 파헤친 구덩이를 보존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뼈가 있는 부분은 천으로 단단히 감쌌습니다. 큰 비닐 포장을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붙잡고 구덩이 바닥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비닐 포장이 바람에 날리지 않게 모래주머니를 포장 이것 저곳에 올려놓았습니다.

▲ 구덩이 보존 작업을 하는 중입니다 ⓒ 홍승주

서울에선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던 제가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모래주머니를 날랐습니다. 집에 와서야 중노동의 현장이었다는 걸 쑤신 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휴우’ 소리 한마디가 사치스러운 곳이었지요.

공동 발굴단은 호흡이 척척 맞았습니다. 자신의 몸보다 더 큰 짐을 지고 나르는 개미처럼 힘을 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여기 있는지 확실히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발굴단을 이끄는 안경호 사무국장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파스를 붙이는 사람이 많아요. 온종일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해야 하니깐요. 흙벽을 깎고 나르는 일이 상당히 고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발굴 현장에 참여하는 이유가 궁금해졌습니다. 임재근 팀장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희생된 분들의 한을 풀어 드려야 하겠다는 부채감과 책임감이 큽니다.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재발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극이 또다시 벌어진다면, 나와 내 가족들도 그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 공동조사단 모두는 자신의 가족 유골을 추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산속이라 오후 4시가 넘으니 해가 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할 일이 많기에 누구도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걱정도 미뤘나 봅니다. 유골을 꺼낼 때 마다 묻혀있던 아픔이 고스란히 제 마음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죽은 이로부터 배우는 인권

▲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 ⓒ 홍승주

해가 완전히 졌음에도, 조사단은 작은 불빛에 의지해 세척, 분류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발굴 현장 한구석에 마련된 오두막에서 감식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도 있었습니다.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유가족을 찾아주는 게 문제 해결에 대한 대답이 될 수 있을까요?
“유골이 집단으로 섞였기 때문에 디엔에이 검사할 필요도 없고 나오지도 않아요. 유족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검사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공동조사단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세요?”
“각기 다른 정치 이념을 갖고 있던 남북한이 한국전쟁을 하며 발생했죠. (…) 유해발굴을 통해 죽은 자들의 인권을 우리가 어떻게 해줘야 하는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70년 전 골령골에서 벌어진 일

1950년 골령골에서 특별경비대원으로 학살 현장에 있었던 김아무개씨는 2009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나와 당시 지휘관이었던 심용현 중위가 ‘사격 개시’ 명령을 내렸다고 증언했습니다. 심 중위의 명령에 따라 경찰과 헌병이 각각 10명씩 조를 짜서 재소자들의 등을 발로 밟고 뒷머리에 총을 쏘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재소자들을 앉혀서 구덩이 쪽을 바라보게 하고, 재소자 뒤통수에 대고 쏘는 거야. 한 10m 뒤에서 쏘면, 피와 골 허연 것이 튀어서 바지가 엉망진창이 돼. 나중에는 군복을 새로 갈아입히고, 바짝 들이대라고 해.

총구를 머리에 바짝 들이대면 안 튀어. 그렇게 한 번 쏘고 나서, 꾸무럭거리고 있으면 권총으로 또 쐈어. 얼마 안 돼서 구덩이에 시신들이 거꾸로 쑤셔 박혀서 다리가 위로 서고, 별거 다 있었어. 헌병지휘관이 청년방위대에 산 위에서 돌을 굴려와 시신들을 눌러 버리게 했어.”

▲ 1950년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현장입니다. 미국 장교 애버트 소령이 찍고, NARA가 발굴했습니다. ⓒ 미국립문서보관소

오후 7시. 공동조사단 숙소로 돌아가는 조사 단원 한 명과 함께 대전역으로 가는 택시를 탔습니다. 솔직히 얘기하면 너무 힘들어서 집에 갈 기회다 싶었죠. 대전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주용성 사진기자에게 조사단 전원의 넘치는 열정에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한 번 오면 계속 오게 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몸 힘든 것만 생각했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2021년에 발굴이 다시 시작되면 한 번 더 오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달리는 택시 창문으로 보이는 산속 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로등 천국 서울에 사는 저는 갑자기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70년 전, 오늘 제가 만진 유골의 주인들도 이런 어둠 속에 있었겠지요. 구덩이 밖에서 무릎을 꿇고 죽음을 기다리던, 그리고 구덩이 안으로 떨어지던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남겨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 공포와 억울함, 그리고 한. 지난 70년이 흐르는 동안 골령골의 어둠 속에는 영혼의 울음이 잠겨 있습니다.

남겨진 사람들

보도연맹은 좌익 전향자를 계몽지도를 하기 위해 설립된 단체입니다. 남한 정부는 보도연맹을 적으로 판단합니다. 한국전쟁 직후 1950년 6월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이승만 정부의 군인과 경찰은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대전형무소 재소자를 비롯한 보도연맹원 등을 학살했습니다.

희생자는 최소 1800명에서 최대 7000명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이는 한국전쟁 당시 단일지역 민간인 피해 최대 규모입니다. 그들은 무참히 학살되어 암매장되었습니다.

학살 후에도 남겨진 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연좌제 때문입니다. 유가족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고 아픔은 계속되었습니다. ‘죽인 자’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들은 권력을 틀어쥐고 있었습니다.

국가는 50여 년 간 이 사실을 덮었고, 진실은 2007년이 되어서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희생자들은 어두운 땅속에 묻혀 있다가, 70년 만에 유해발굴을 통해 볕을 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11월 8일에는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에 의해 민간인학살이 이뤄진 대전 골령골에서 여성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처음으로 발굴됐습니다.

올해 40여 일간 진행된 유해발굴은 마무리되었고 2021년에 추가 유해발굴이 진행됩니다. 2022년부터 이곳 산내 골령골에 평화역사공원(진실과 화해의 숲)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평화역사공원이 들어서기 전까지 공동발굴단이 될 기회는 1년 조금 넘게 남았습니다.

발굴이 다시 시작되면 그때 <오마이뉴스>를 통해 한 번 더 알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사단원 선배들이 남긴 편지를 소개합니다.

“이 순간에 함께 한 증인으로서 앞으로도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함께 하겠습니다.” – 성미산 학교 학생들

▲ 성미산 학교 학생들의 편지 ⓒ 홍승주

홍승주(hongsam3503)

<2020-11-23>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할머니가 손에 쥔 치아 유골… “교회 문 열지 마세요”

수, 2020/11/25-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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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법제화와 법을 통한 친일청산

민족문제연구소가 많은 어려움을 딛고 2009년 <친일인명사전>을 발간, 그해 11월8일 국민보고대회를 열었다. 대회 참석자들이 서울 효창동 백범 김구 선생 묘소로 향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토지부 등재를 ‘사정 추정’ 판결
등기명의자인 국가 물리치고
친일 후손이 토지 찾는 일 빈번
‘친일재산 포함이 타당’ 반론도

외국의 통치를 경험한 민족이 해방되었을 때 많건 적건 외세에 부역한 사람들을 단죄하려고 한다. 청산의 폭과 성격은 기억을 동원하는 양상과 방식에 좌우되는데 기억의 동원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체계에서 그 민족이 차지하는 지위 그리고 외세와 그 민족의 국제정치적 관계 등 거시적 조건이 과거청산을 둘러싼 정치적 여건과 함께 기억의 내용과 강도를 결정하는 데 크게 작용한다. 과거청산에는 민중의 일상적 기억이 중요하지만 정치적 지도세력의 기억, 그에 의해 정치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취하는 역사에 대한 정의가 결정적이다.

한국은 국제평화레짐이 형성되어간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주권국가로 인정되어 근대 국제법질서에 참여했다. 따라서 항일운동은 주권회복을 표방했고, 외세에 불법점탈된 영토를 회복한 주권국가의 부역자 처벌과 유사한 논리로 인적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동력을 생산해냈다. “친일”은 의연히 존재하는 국가에 대한 반역이며, 근대화에 기여했음을 내세워 반역을 정당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는 외세의 지배가 35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 계속됐고 상당한 동화가 진행됐다는 현실이 있었다. 반역을 단죄하려 할 때 단죄의 근거가 되는 과거의 유효한 법질서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한 사정은 반역에 대한 처벌에 저항하는 힘과 논리를 만들어냈다. 반제국주의적 성찰성을 결여한 또 다른 외세의 개입, 분단, 공산체제와의 전쟁이라는 상황 속에 인적 청산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프랑스처럼 부역자를 숙청하는 법과 재판소를 만들어 운영한 나라를 보고 그 나라의 엄정한 기강을 칭찬하곤 한다. 그러나 국가에 의한 숙청은 민간에서 벌어지는 초법적 징벌을 종식시키는 의미를 가진다. 제도화된 숙청은 제도화되지 않은 폭력에 재촉되는 한편 그것을 다스리기 위해 등장한다. 한국에서는 미군정의 철저한 폭력관리로 인해 초법적 징벌이 어려웠기 때문에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법적 처벌을 재촉하는 동력이 제한되었다. 1947년 조선과도입법의원의 ‘부일협력자-민족반역자-전범·간상배에 대한 특별법률조례’가 좌초되고 1949년 제헌의회가 제정한 ‘반민족행위처벌법’이 무력화된 것은 반공을 구실로 한 조직적 방해를 넘어설 만큼 민간의 보복 동력이 크지 못했기 때문이다. 잘못하면 일제의 폭력기구에 종사하면서 탄압의 기법을 체득한 공안세력에 의해 공산폭도로 몰리기 십상인 상황에서 불만을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응보를 위한 민간의 열기에 뒷받침되지 못한 채 단 한 명도 단죄하지 못하고 종료된 반민특위의 경험은 대한민국을 만성적인 정당성 결핍에 빠지게 했다. 반공과 경제성장의 이데올로기가 그 결핍을 메우기 위해 동원되었지만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가져오고 그에 따라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게 되자 오히려 과거청산의 요구가 더욱 강렬히 분출되었다.

역사기억은 구조적 동력에 의해 자동적으로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기억활동가”들의 실천을 통해 동원된다. 권위주의시대, 재야에서 널리 읽힌 <친일문학론>의 저자 임종국의 유지를 이어 1991년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되었고 1995년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하면서 “친일과거청산”은 시민운동으로 발전했다. 기억을 동원하는 행위는 계보를 달리하는 사건들에 매개되면서 동시에 그것들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간다. 그 과정에서 역설적 상황도 발생한다. 지방자치의 발전은 친일행위자를 기념하는 행사들 또한 활성화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친일과거를 공론화했고, 기념대상자의 행적조사가 민족문제연구소의 기능을 강화해주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2003년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자 했는데 예산 지원을 당시 한나라당이 거부하자 대중의 비난이 일었다. 이것이 이미 발의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연료를 제공했다. 이 법안을 발의한 154인의 국회의원 중 49인이 한나라당 소속이었음에서 보듯이 친일과거청산의 명분은 거역할 수 없었다. 이 법안은 2004년 3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외세 지배 길어져 상당한 동화
반역 단죄 유효한 법질서 부재
‘반민족행위처벌법’도 무력화
“대한제국 형법대전 있었는데…”

기억활동가 덕분 시민운동 번져
반민족행위규명법 등 제정돼
친일행위자 기념 행사 활성화
되레 친일과거 공론화 불붙여

반민족행위규명법은 18개의 “친일반민족행위” 유형을 열거하고 위원회를 설치해 조사대상자를 선정해 조사한 후 그 결과를 공표하도록 했다. 2004년 말 법률이 개정되어 행위 유형이 20개로 늘어났으나, 일본 귀족원 또는 중의원 의원 및 조선총독부 중추원 부의장, 고문, 참의 외에는 직책을 중심으로 행위를 규정하지 않았으며 “탄압에 앞장선” “집행을 주도한”과 같은 용어로 행위 요건을 강화했다. 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2005년 5월부터 4년반 동안 가동하여 1006명에 대해 반민족행위 결정을 내렸다.

반민족행위규명법과 자매관계에 있는 법률이 2005년 12월 제정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이다. 사실 친일재산귀속법은 다른 배경에서, 더 일찍 논의되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친일파”의 땅 찾기가 발단이었다. 법원은 원래 조선토지조사사업에 따라 사정(査定)을 받은 토지는 그 사실을 입증하면 등기명의와 무관하게 소유권을 인정했는데, 1986년 대법원은 토지조사부에 등재되었다면 사정이 추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친일파”의 후손이 등기명의자인 국가를 물리치고 토지를 찾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1995년부터는 지적전산화에 힘입어 행정자치부와 지자체가 “조상 땅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그런 일이 더욱 쉬워졌다. “반민족행위자 재산환수”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1990년대 전반기에 대두한 것은 이를 배경으로 했다. 그렇기 때문에 친일재산귀속법은 친일파의 공격적 땅 찾기에 대항하는 방어적 성격을 갖는다는 평가도 있다.

이 법률은 반민족행위규명법이 열거하는 행위 가운데 정도가 중한 것을 추출해 그것을 범한 자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정의하고,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러일전쟁 개전 시부터 1945년 8월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한 대가로 취득하거나 이를 상속받은 재산 또는 친일재산임을 알면서 유증·증여를 받은 재산”을 취득의 원인행위 때로 소급하여 국가에 귀속하도록 했다. 이 기간에 취득한 재산을 “친일행위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으로 추정”했기에 귀속결정은 비교적 용이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재산조사위원회는 4년간 활동해 168명이 남긴 2359필지(1113만9645㎡, 시가 2107억원 상당)의 국가귀속을 결정했다.

반민족행위 결정과 친일재산의 국가귀속은 많은 쟁송을 야기했다. 결정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과 국가귀속에 대항해 소유권이전등기말소소송이 제기되었고, 반대로 친일재산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 또는 제3자에게 매각한 경우 매매대금의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하는 국가의 소송도 있었다. 반민족행위규명법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작위를 받은 행위를 규정했는데, 한일합병의 공으로 수작(受爵)하지 않았음을 주장하면서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이 성공을 거두자 2011년 국회가 법을 개정해 한일합병의 공과 무관하게 작위를 받은 것 자체를 반민족행위로 규정한 것도 드라마틱한 사건이었다. 확정판결이 있는 경우 새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개정법률 부칙은 “한일합병의 공”으로 수작한 것이 아니라는 판결을 받은 사람의 재산을 국가귀속으로부터 보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소유권이전등기를 청구한 국가가 하급심에서 패소해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사건도 있다. 이 사건 항소심에서는 광복회가 보조참가를 시도해 사회적 여론을 환기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쟁송에서 사법부는 반민족행위 결정 및 재산귀속을 옹호했다. 헌법재판소도 개정 전후에 걸쳐 두 법률의 합헌성을 확인했다. 헌재는 사자(死者)와 유족의 인격권 침해가 과잉금지에 해당하지 않고, 소급입법에 의한 재산환수도 헌법이 표현하는 역사적 정신에 비추어 볼 때 예상할 수 있었으며 달성되는 공익이 중대하므로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다. 토지조사사업에 따라 사정을 받은 토지를 친일재산에 포함시키는 것의 타당성은 한말·일제하 토지소유에 대한 역사 연구에 비추어 검토해봄직하다.

한 헌법재판관의 의견은 다수의견은 아니지만 친일청산을 위한 역사적 기억과 그것을 법제화할 때의 난점을 잘 보여준다. 그는 친일반민족행위를 대한제국기의 형법대전(刑法大全)이 처벌한 반역 행위로 규정하고, 반역의 대가로 취득한 재산을 환수하는 것의 정당성을 그로부터 찾았다. 동시에 일제에 의해 토지·임야사정부가 작성되기 이전에는 토지소유권에 대한 대세적 공시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달리 증명할 방법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토지조사사업에 의한 사정을 친일재산임이 추정되는 재산 취득에 포함시킨다면 위헌이 된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해방 후 60년 넘게 지나 법을 통해 과거를 청산하려는 시도는 친일에 대한 역사적 기억과 일제 지배의 결과를 수용해야만 하는 현실 및 그에 터 잡아 쌓인 법원의 기관기억(institutional memory) 사이의 모순을 노출한다.

이철우 |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20-11-24> 경향신문

☞기사원문: [기억전쟁, 미래가 된 과거](24)일제 토지조사 때 받은 땅, 친일 후손 소유권 인정 ‘법과 기억의 모순’

수, 2020/11/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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