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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실과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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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사실과 수수께끼

admin | 토, 2021/06/19- 19:46

드디어 로베르토 M.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가 출간되었습니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전세계적으로 지식경제는 선진 제조업, (종종 선진 제조업과 결부된) 지식집약적인 서비스, 정밀공학, 과학적 영농 등 고립된 전위 부문들로 한정되어 있다. 지식경제는 제조업과의 독점적인 연관성을 상실했지만 각 부문에서는 여전히 프린지로 남았다.

지식경제와 여타 생산체계를 분리하는 경계선은 실제로 항상 다공성(多孔性)을 띤다. 전위 부문과 기타 부분의 차이를 완화시키는 경제활동 및 경제능력의 잠재 영역에서는 유출(leakage)이 존재한다. 많은 요인들이 그러한 누출에 기여한다.

지식경제 기업들이 판매하는 지식집약적인 제품과 서비스의 출시는 그러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숙련기술의 전파를 요구한다. 지식경제의 기술과 관행이 과학사에서 친숙한 유추와 일반화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산 라인과 새로운 소비 분야로 확장됨으로써 그러한 기술과 관행은 발전한다. 외국의 전위 부문을 모방하고 자신의 전위 부문을 발전시키려고 안달하는 정부는 지식경제를 그 다공성 주변영역으로 확산시키는 것을 우대하는 개방적이고 실험친화적인 규제접근을 학습한다.

이와 같은 보급의 촉진요소들을 감안할 때 지식경제가 번창하는 프린지들로 대체로 지속적으로 한정되고 또한 결과적으로 지식경제의 가장 심오한 속성들의 표현과 더 큰 잠재력의 성취가 억제되어 왔다는 사정은 더욱 더 주목할 만하다. 어떤 면에서는 내가 다음 절에서 주장하려는 바와 같이, 지식경제의 국한성은 축소되기보다는 오히려 증가하였다. 유출이 경제 전반에 걸친 생산방식과 생산역량의 향상을 위한 첫 번째 조치라고 판명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출은 새로운 생산방식의 심오하고 확산된 형태를 향한 운동의 출발점의 한 부분이 될지도 모른다. 유출은 자생적으로 그와 같은 출발점으로 복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안적인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행동해야만 한다. 이러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서 우리는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때까지 포용적 지식경제는 요원한 목표로 머문다.

지식경제의 상대적 고립성은 이제 너무나 오랫동안 지속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고립상태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립상태의 자연스러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의 제한성으로 인해 규모의존적인 기술과 대량생산의 절차를 흡수하지 못하게 된 전통적 소기업을 예외로 하고는 기계화된 제조업과 공장제 대량생산은 경제의 모든 부분의 변혁에 급속도로 영향을 미쳤다.

이전의 선진적인 생산방식과 달리 지식경제는 어떤 특정 분야에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특징적인 기술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거의 모든 규모에서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하는 지식경제의 역량은 소기업의 세계가 다른 사유들로 지식경제에 접근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기업의 세계를 지식경제에 개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식경제가 고립적인 전위 부문들에 국한되는 현상은 완고하게 지속되어 왔다.

지식경제는 고립성을 회피하지 않은 채 제조업에의 국한성에서 탈피하였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어떠한 경제체제들에서도 경제 전반적인 입지를 구축하지 않은 채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들과의 독점적인 관계도 극복했다. 대량생산의 절정기에 자본집약적 경제와 노동집약적 경제 사이의 교역은 국제적 노동분업의 축일뿐만 아니라 국제통상론의 핵심적인 분석 주제였다.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공장제 대량생산)은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에 집중되었다. 더 원시적인 노동집약적인 생산은 나머지 국가들(개발도상국이라는 광대한 주변부)에서 지배적이었다.

새로운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출현은 세계의 노동분업에서 현저한 변화와 동시에 일어났다. 새로운 생산적 전위는 세계의 모든 주요 경제체제들, 즉 가장 부유한 경제체제들뿐만 아니라 주요한 개발도상국들(중국, 인도, 브라질 등)에서도 발판을 마련했다. 이러한 경제체제들의 선진적인 부분들은 기술, 자원뿐만 아니라 사람, 절차,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크든 작든 서로 간에 직접적으로 교통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어떤 경제주체들과 세력들보다 이러한 전위들의 네트워크가 세계경제의 지배세력으로 간주될 자격을 더 잘 갖추고 있다. 그에 비해 국제금융은 부차적인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적인 노동분업에서 드러나는 지식경제의 국제적인 입지는 지식경제가 현재 국한되어 있는 프린지들에 포획된 상황이 제기하는 수수께끼를 심화시킬 뿐이다. 지식경제는 모든 주요한 경제체제뿐만 아니라 각 주요한 경제체제의 모든 부문에서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식경제는 여전히 엘리트들의 전유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식경제의 국한성과 연관된 세력들은 경제적 침체를 우대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데 협력한다. 생산성 증가의 둔화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지식경제의 고립성에 대한 대가다.

 

저자 : 로베르토 M. 웅거 (ROBERTO M. UNGER)

역자 : 이재승


지식경제, 체제 전반으로 확산하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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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vid-19 시대와 근대문명

코로나 시대의 삶이 어느덧 일상이 되어가며, 뉴노멀로 지칭된 새로운 사회 규범이 만들어지고 있다. 낯설게 경험하는 현상들 가운데 무엇에 주목하는지에 따라 뉴노멀의 내용과 방향도 설정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비대면’(untact) 상황에 주목할 경우 새로운 ‘행위규범’으로서의 뉴노멀에 관심하게 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의 위계’에 주목할 경우 ‘체제구상’으로서의 뉴노멀을 상상하게 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새로운 행위규범 못지않게, 근대문명의 청산을 기획하는 체제구상의 뉴노멀도 절실하다.

하지만 요청된 변혁이 근본적일수록 이루기 힘들다는 비관이 앞선다.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을 약탈해온 근대 자본주의 소비 문명이 언젠가는 삶 자체를 파괴하는 지점에 이를 것이라는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지구온난화를 가속해온 산업문명이 환경의 역습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경고, 사회적 갈등의 뿌리에는 양극화된 빈부격차와 새로운 신분제도를 도입한 자본의 악습이 있다는 인식은 이제 낯설지 않다. 우리 시대 고통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단지 자본의 재배치에 그치지 않으려면, 문명 전환을 겨냥한 상상이 구현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철학자 에롤 E. 해리스는 근대문명이 파국으로 귀결된 본질적인 원인을 근대과학의 사유방식에서 찾고, 인류의 과제를 낡은 정신적 편견을 떨쳐내는 것으로 봤다. 여기서 낡은 편견이란 뉴턴이 완성한 근대적 사유 패러다임에 담긴 특징들, 즉 물질주의와 기계론, 원자론과 개체주의, 외적(external) 관계방식과 환원주의, 선입견과 주관적 가치가 배제된 과학, 목적론적 설명에 대한 거부, 물질과 정신의 분리 등이다. 이러한 뉴턴 패러다임이 과학만이 아니라 인식과 실천의 전 영역에 만연하여 근대문명의 병폐가 깊어 파멸에 이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회의적 태도를 보인다고 그는 말한다.

근대문명이 세계를 이해할 때 ‘실체’(substance)에 착안하여, ‘자기 존재를 위해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개체적 존재에 관한 관념 위에 문명을 축조할 때부터 그 행로는 정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중시한 근대정신이 중세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과 인도주의적 가치를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각 유기체가 자신의 환경과 맺는 참된 관계를 무시”하고 “그 환경의 고유한 가치를 무시하는 습관”도 기르게 했다. 이렇게 상호연관 감각을 잃은 근대정신은 타인을 단지 ‘도구적’ 가치를 지닌 존재로 간주하고, “인간의 형제애에 유의하기보다는 부적격자를 근절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인도주의적 이상은 공동선(common good)을 향한 전체적 비전을 구성하기보다는 “소득, 여가, 그리고 안전이 더는 향상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일에 봉사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약탈로 구성된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점에서 터진 코로나 사태에서 우리는 길을 잃은 근대문명의 현실을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종교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중산층을 위해 진화해 왔기 때문에 문명 전환의 이정표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개신교와 같이 한국 현대사회에서 급부상한 종교일수록 코로나 사태를 맞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가 소위 ‘탈진리 시대’(post-truth era)로 불리는 상황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가짜뉴스마저 취향이 되어버린 탈진리 시대 환경에서, 윤리는 당위성에 대한 성찰보다는 심리적 취향이나 사회적 효용성에 함몰되어가며, 사회적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이 좀체 구성되지 않고 있다.

고통에 잠긴 삶을 구원으로 인도할 신성한(sacred) 무엇은 과연 있을까? 고통의 삶에는 혼돈과 신비가 교차한다. 아니 고통은 그저 혼돈일 뿐, 신비란 말은 어쩌면 실재의 깊이에 대한 암시라기보다는 현실을 은폐하는 현혹일지 모른다. 하지만 만일 고통의 심연에서 해방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을 수만 있다면, 적자생존의 삶으로 얼룩진 근대문명의 ‘힘의 철학’과 ‘번영의 복음’을 넘어서는 상상도 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시대 삶의 불안정성과 사회적 비탄 속에서 인류 공동체에 관한 새로운 감각, 약탈적 체제의 종식과 생태적인 삶에 관한 갈망이 거세게 일어나, 위기 속에서 새로운 인간이 태어나기를 기대한다.

사실 근대문명의 억압적 요소를 극복하기 위한 사유와 실천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것이 ‘탈근대’라는 이름을 가졌든 그렇지 않든 간에, 근대문명의 폐해를 극복하려는 진보적 주체는 여러 모습으로 등장했다. 이 글은 그것을 세 유형으로 분류하여 저항적 주체, 해체적 주체, 생태적 주체로 부를 것이다. 그들은 진보 담론의 세 가지 패러다임을 대변한다. 저항적 주체는 억압적 체제를 전복하고 역사를 발전시키려는 피억압자의 관심을 대변하며, 해체적 주체는 근대정신의 폭력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성과 관용에 주목한 탈근대적 주체이며, 생태적 주체는 유기체적 관계성을 중시하는 생태 문명을 지향하는 주체를 상징한다.

 

2. 근대문명 극복의 두 시도, 저항적 주체와 해체적 주체

근대문명의 정신적, 제도적 폭력성을 해결하려 한 ‘저항적’ 주체는 근대문명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났다. 억압적 체제를 변혁하기 위한 저항적 주체는 세계에 대한 ‘해석’만이 아니라, 세계 자체를 ‘변혁’하는 일에 관심했다. 이들은 공동체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종교와 국가 그리고 자본에 부여된 절대 권위를 전복하려 하였고, 이데올로기적 왜곡과 제도적 억압에 맞선 실천을 철저히 밀고 갔다는 점에서 이후 모든 진보적 양심은 이들에게 빚지고 있다. 이들이 가진 당파적 윤리는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서 세계를 해석하고 재편성하려는 해방의 이상을 대변하였기에, 그 역사적 한계와 실패에도 불구하고 저항적 주체가 추구한 해방 정신의 항구적 교훈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항적 주체의 대표적인 국가 실험이었던 사회주의 혁명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실패했고, 이제 국지적으로 남았다. 그 이유에 대한 여러 설명 가운데, 저항적 주체가 유기체적 사회의 복잡한 운동과 그 구성원의 포괄적 관심을 담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는 평가가 있다. 진보에 대한 절대적 낙관과 자기 이상의 당파적 실천이 결국 자기비평을 소홀하게 만들고, 사회라는 유기체 안에서 형성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포괄적인 고려를 제한했다는 것이다.

사상적인 면에서 보면 저항적 주체의 변증법적 사유에서 갈등과 투쟁이란 보다 고상한 종합의 전조로 이해되기 때문에 역사적 진보에 대한 낙관이 절대적이다. 그러나 ‘변증법적 발전이 역사 속에서 발견될 수 있음’을 부정할 수 없지만, 갈등과 투쟁이 고상한 종합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갈등 가운데 하나의 선(善)이 또 다른 선을 위해 파괴되는 것은 고차적인 종합으로서의 지양(aufhebung)이 아닌 항구적 상실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전의 사회를 파괴할수록 더 완벽한 사회가 더 빠르게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가치가 박멸되면 될수록 그것이 회복될 수 없는 위험이 높아질 뿐’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마르크스주의 운동 자체의 ‘오독’도 있었다. 이를테면 ‘소명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와 ‘역사적 상태로서의 노동자 계급’의 혼동을 말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프롤레타리아가 어느 특정한 사회계급인 노동자 계급과 동일시” 되면서 ‘혁명의 소명(klesis)을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유사한 딜레마가 역사에서 되풀이된다. 기독교 교회(ek-klesia)가 자신의 소명을 ‘실행’하기보다는 그것을 ‘소유’한 집단처럼 행세할 때 종교적 추락을 완성하듯이, 부처의 자비도 승가(僧伽)의 소유가 될 수 없고, 진보적 정신 역시 특정 집단의 ‘소유’가 되지 않는다. 소명을 활용하기보다는 그것의 특권적 소유에 집착하는 이들은 반드시 몰락한다.

오늘날 저항적 주체는 과거의 ‘계급투쟁’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과제를 맞고 있다. 노동가치이론의 ‘유통기한이 만료’되어 노동의 ‘부정적 존재론’이 널리 퍼져서 진리가 ‘노동의 힘’에 뿌리박혀 있다는 생각을 거의 깨졌으며, 돈이 ‘신비화’되어 이제 노동은 ‘착취’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배제’에 대한 대처를 먼저 해야 하는 시대를 맞았다. 공항노동자들의 정규직화라는 노동의 꿈이 바로 노동자들에 의해 위태로움을 겪었던 것처럼, ‘가난한 자들의 인식론적 특권’은 이제 상실감을 경험한 대중들의 ‘공정성’이라는 명분 앞에서 설득력을 잃었다. 네트워크나 기계에 의해 노동이 대체되는 4차산업혁명과 포스트휴먼(post-human)의 전망 또한 저항적 주체의 진화를 요청하고 있다.

한편 근대문명을 극복하려 한 탈근대성은 두 흐름을 가졌다. 이 글에서는,지난 삼십여 년을 주도한 탈근대적 흐름을 ‘해체적 주체’로 부르고, 그 대안으로서 ‘재구성적’ 특징을 가진 흐름을 가리켜 ‘생태적 주체’로 부르고자 한다. 저항적 주체가 억압적 ‘체제’의 전복에 관심했다면, 해체적 주체는 억압적 ‘정신’의 해체에 주목했다. ‘탈근대성’을 표방한 해체적 주체는 근대사상의 문제점을 ‘전체성에 대한 전쟁’(a war on totality) 또는 ‘거대담론’(meta-narratives)에 대한 회의’를 통해 극복하고자 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절대적 진리를 표방한 근대 이성의 병폐와 한계들, 즉 객관주의적 과학 이론, 토대주의적 인식론, 보편주의적 도덕과 문화 관념이 억압 기제로 기능하는 체계를 타파하려는 해방의 요소가 있었다. 또한 해체적 주체에게 진보담론을 구사하는 저항적 주체 안에 내장된 폭력성이 근대성의 잔재로 포착되었다.

해체적 주체는 차별에 맞선 연대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미덕을 인간 정신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상대화/파편화되어가는 사회에서 어떻게 담론과 투쟁을 위한 공통의 토대를 구성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어려움에 빠졌다. 여기서 저항적 주체가 ‘하나의 진리를 절대화’하는 극단에 치우쳤다면, 해체적 주체는 ‘모든 진리를 상대화’하는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쳤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말하자면, 해체적 주체는 새로운 문명을 향한 ‘동력’을 어떻게 제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자기 관심에 매몰되는 소아병을 극복할 수 있는지, 어떻게 상대성에 대한 인식이 편협성이 되지 않게 할 것인지, 어떻게 지식의 파편화를 방지할 것인지, 어떻게 허무주의를 넘어설 가치를 제공할 것인지.

포스트모던 감각이 진리를 향한 열정보다는 각자의 취향으로 미끄러지는 것은 아닌가? 때로는, 자기주장의 알리바이로 왜소화되어가는 탈-진리 시대의 흔적은 동료 이웃과 자연에 대한 ‘고통 감수성’을 갖는 일마저 버거워 보인다. 진리 자체가 아니라 감정과 자기 신념을 만족하게 하는 것을 진리로 여기는 ‘탈-진리’(post-truth) 시대를 맞은 오늘, 문제는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선동적/반동적 존재보다 그 흐름을 제어할 사상적 장치가 없는 데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그것은 다양성의 윤리를 권장해온 탈근대주의가 마주친 최대의 복병으로서, 당위성의 감각이 소실되거나 왜곡된 지점에서 경험하는 사회적 증후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근대의 이기적 주체 못지않게 탈근대의 해체적 주체도 이해관계나 자기 편견 속으로 잘게 부서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탄식이 생긴다. 해체되어 개인의 ‘취향’으로 미끄러진 진리는 묵시록적인 미래에 대한 순종의 지표처럼 읽히지만, 다행히 존재의 무게에 이끌린 영혼은 어느 시대든 미래의 그루터기로 남는다.

 

3. 생태적 주체와 종교

생태적 주체는 ‘저항과 해체’의 경험을 창조적으로 수렴한 존재로서, 타자와의 연관성을 내재화하여 자기 고립을 극복한 존재이다. 그는 근대문명이 ‘생존 경쟁을 증오의 복음으로 해석’한 사상적 잘못에 깨달은 존재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유기체적 연관을 실재의 본질로 알기에,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도구적 가치가 아닌, 생명의 ‘고유한’(intrinsic) 가치를 만들어가기 위한 요소이자 환경으로 서로 작용하는 것을 이해한다. 이것은 개인의 존엄과 자유를 과장한 개체주의적 편향과 공동체의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의 전체주의적 편향을 함께 극복하려는 것이며, 각 생명의 본원적 가치를 키우고 보호하는 ‘공동체적 환경’과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의 가치를 동시에 지지한다.

이러한 관계성에 대한 인식은 ‘우주의 본성에 대한 경외심을 일으키는 통찰’에 근거한 것으로서, “불굴의 합리성이 철저하게 깃들어 있는 하나의 세계관을 재창조하고 재가동”함으로써 뒷받침된다. 그럴 때 근대문명의 전제가 되는 실체철학의 개체주의적 관념, 즉 ‘모든 존재는 자기이해관계에만 관심할 뿐이다’는 생각이 실상은 추상적 이데올로기이자 전체 전망을 상실한 부분적 관찰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생태적 주체는 진리와 함께 아름다움과 평화의 중요성을 깨달은 존재이다. 해체적 주체가 이미 밝혔듯이,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계에서 자신의 진리를 구축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타자의 진리에 대한 인식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그러한 인식은 상대성의 관념에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의 윤리로 전진한다. 다시 말해서 세계를 설명하고 윤리적 행동을 하는데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의미를 아름다움에서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떠날 때 진리는 선도 악도 아니다. 진리가 없는 아름다움에 중후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없는 진리는 사소성으로 전락한다. 진리가 중요하게 되는 것은 바로 아름다움 때문이다.”

생태적 주체에게 평화는 궁극적 이상으로서 이상적 관계요, 이상적 상태이며, 이상적 목적이다. 이 평화는 웅대한 관계성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파괴적 격동을 가라앉히고, 문명을 완성하는 조화 중의 조화’이다. 이 평화는 현실의 아픔에 눈감지 않고 ‘비극에 대한 감수성’을 생생하게 간직한 채, ‘무한성의 파악’, 즉 ‘한계를 초월하는 호소’를 듣는다. 화이트헤드는 이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은 “수많은 아름다움과 무수한 영웅적인 행위와 무수한 대담성이 일어나고 지나가는 한복판에서 영원을 직관”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평화의 감각을 잃은 진리, 아름다움, 모험, 예술은 ‘무자비하고 딱딱하고 잔인한 것’이 되고 만다.

진보하는 사회는 약탈적 풍요 위에 세워진 안락한 사회가 아니다. 진보하는 사회는 인간의 관심사들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유혹을 받는 사회요, 그것을 이룰 방식으로 ‘비폭력/설득’의 길을 신뢰하는 사회이다. 역사의 진보란 단지 과학적 기술이나 철학적 신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의 감각과 종교의 전망이나 결단 없이 역사는 도약하지 않는다.

사실 종교가 중요하다. 근대문명의 비극은 종교적 전망을 잃은 과학에 의존한 데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분리된 종교 역시 근대문명을 질곡으로 이끈 원인이 되었다. 자신의 낡은 관념을 수정할 용기를 갖지 못한 종교는 과학에 패배하면서 결국 자신의 중요성까지 잃게 되었고 단지 ‘안락한 삶을 장식하는 형식신앙’이 되고 말았다. 평화(shalom)에 대한 비전으로 ‘직접적인 동의’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잃은 종교, 신의 분노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여 정서에 호소하여 연명하는 종교는 결국 외면 받는다. 그런 이유로 종교는 저항적 주체에게는 단지 ‘도구’였고, 해체적 주체에게는 ‘취향’이 되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익과 개체적 만족 너머로 뻗어가도록 충동하는 종교적 힘을 잃은 문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억압과 파괴로 얼룩진 문명을 싸매기 위해서는 생태적 주체가 필요하다. 자기 진리에 대한 충실만이 아니라 아름다움의 감각과 평화의 이상으로 충동질 당하는 영혼이 역사의 품에서 자라나야 한다. 자비로운 열정과 은혜로운 관계에 대해 겸손한 생태적 주체의 등장을 염원한다.

 

김희헌

향린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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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1/01/2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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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과 중국이 주요한 투자협정(CAI)에 합의하면서, 2021년을 새로운 기반 위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는 세계를 주도하는 강대국 간에 돌팔매질을 중단하고 함께 협력하여 팬데믹 상황을 종료하고 환경친화적 디지털기술에 기반한 지구회복의 토대를 마련할 시점이다.

뉴욕 – 중국과 새로운 투자협정의 협상을 완료한 유럽집행부에 찬사를 보낸다. 이에 더하여 유럽은 적극적인 외교 활동으로 최근 중국으로 하여금 탄소중립을 2060년까지 실현하겠다는 약속을 이끌어 냈고, 뒤이어 일본과 한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화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많은 일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럽과 중국 간의 투자협정(CAI)은 유럽과 중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그리고 이를 반대하고 경고를 보냈던 미국에게도 유익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이번 협정은 유럽과 중국이 서로 개방적 경제관계를 심화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상대의 경제권에 더욱 많은 투자의 기회와 시장접근을 보장한 것이다.

중국이 향후 수십 년간 환경과 디지털을 축으로 경제구조의 개혁을 추진하면서 형성될 거대한 내수시장에 유럽의 산업계가 보다 용이한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해당분야에 선도적 기술의 위상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이번 협상의 타결은 트럼프 행정부의 참으로 잘못되고 위험스런 방해를 물리치고 이루어졌는데, 트럼프의 미국은 중국을 첨단산업 분야에서 고립시키고,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과 태평양연안의 국가들과 동맹을 형성하여 중국의 성장을 억제하려고 시도하여 왔다. 물론 새로이 들어설 바이든 행정부 역시 같은 방향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보다 세련되고 덜 강압적인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미국 정책의 표면적 목표는, 미국의 설명을 그대로 따르면, 중국의 호전성을 봉쇄하고 인권침해를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양당이 공히 선호하는 외교정책의 실상이 해외에 800 개소 이상 군사기지를 운용하면서, 반복적으로 불법적인 전쟁행위를 벌리고, 역시 불법적인 제재를 가하고, 유엔의 헌장과 협약과 안보리 결정 등의 준수를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정부가 중국을 호전적인 당사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중국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유엔의 인권고등 위원회에서 문제를 제기한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의 상황을 개선해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미국과 유럽 인도 등 다른 국가들도 중국과 유사하게 개선해야 하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0년을 살펴보면, 특별히 중동과 서아시아 지역의 무슬림 민족들이 서구의 군사력이 저지른 잔인한 전쟁으로 고통을 받아 왔으며, 많은 국가들이 국내의 소요진압 과정에서 인권문제를 노출시켰고, 미국은 다양한 제재의 수단을 일방적으로 악용하여 왔다.

팩트로 보자면, 인권에 대한 보편적 선언을 제대로 준수하는 국가는 지구상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유엔이 정한 경제 사회 문화의 제 권리 헌장을 유럽27개국과 중국 등은 오래 전부터 준수해 왔던 반면에, 수치스럽게도 미국은 아직 이를 비준조차 하지 않고 있다.

인권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상대방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과장해서 비난하고 외교적으로 혹은 통상적으로 대화를 거부할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미래지향적으로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다. ‘죄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라는 가르침을 기억해야 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미국의 ‘반-중국’ 시도는 인권과 아무 관련이 없다. 특히 트럼프의 무법적인 행정부 하에서 미국의 정책은 강자의 지배력이라는 단순한 욕구에서 촉발되어 왔다. 미국의 의도는 중국이 기술과 경제분야에서 성장하는 것을 억제하여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인구가 전세계의 4%에 불과하다는 단순한 사실만을 고려하더라도, 세계경제 시스템을 미국의 헤게모니를 위해서 일방적으로 희생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2020년에 발생한 어려움에 대처하려면, 미국이 주도하는 새로운 냉전방식이 아니라, 지구전체를 대상으로 협력방식을 새로이 정립해야만 한다. 이제는 팬데믹을 극복하고 일상의 정상회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다. 당연히 중국도 이에 주요 파트너로 책임을 갖고 참여해야 하며, 새로운 도전에 힘을 보태야 한다.

한편, 미국과 유럽과는 달리 주변 아태 국가들과 더불어 중국은 코로나-19 전염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실패한 현재에, 의약품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국가군들은 자신들이 성공시킨 방식(테스트, 접촉추적, 그리고 방역기술)을 제공하여 세계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이에 더하여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증을 통해 자체 개발한 시노백과 시노팜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것이 인정되면, 중국은 곧바로 대량생산을 통하여 전세계에 이를 배분하여야 한다.

유럽과 중국 그리고 새로운 대통령으로 당선된 바이든의 미행정부는 서로 협력하고 참여하여 환경친화적 디지털 기술에 기반하여 세계의 정상회복을 위한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탄소 주요 배출국인 미국이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하겠다는 바이든의 계획에 더하여, 미국 역시 2050년까지 탈-탄소를 서약함으로써, 인류는 진정으로 광범한 환경기반의 회복이라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더구나 새로운 환경기술인 재생 에너지, 전기차량 그리고 에너지저장기술의 개발과 적용은 구체적인 협력을 통해서 크게 약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난 주에 중국의 리듐기반 축전기술 회사인 YaHua그룹이 미국의 전기차량 생산업체인 테슬러에게 밧테리 공급계약을 체결하여 양국의 산업체들간에 협력이 성사되었다.

유사한 기회들이 디지털 기술영역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 세계적 규모의 경제적 참여와 발전에 디지털 접근성이 매우 중요하며, 5G기반기술이 도전적인 영역의 해결에 지름길을 제공하면서 에너지의 효율증대와 e-Commerce, e-Health 등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다행히 유럽과 중국의 상호투자협정은 디지털 협력을 도모하면서 지속가능 발전을 크게 촉진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유럽이 ‘반-중국’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지속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트럼프의 중국에 대한 주요 전략은 첨단기술의 중국수출을 차단하여 화웨이 등 중국의 주요 기술선도 업체들을 굴복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헤게모니 유지라는 각본에서 나온 것으로 냉전시기에 소비에트에 적용한 과거방식의 반복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화웨이에 대한 보복의 명분으로 중국이 화웨이의 5G 장비를 이용하여 타국에게 스파이 활동을 한다는 주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실제로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면, 미국이 미국시민을 포함하여 해당국가에 대한 스파이 활동이 매우 어려워진다는 사실에 있다. 또 다른 배경에는 중국에 선진적인 기술의 도입을 차단하면 미국이 영구히 기술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는 한심한 판단이다. 그러나 실제의 현실은 중국이 조만간 첨단적인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면서 미국과 기술격차를 손쉽게 해결해 갈 것이다.

한편에서는 세계를 향해 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제기하면서, 중국과 적극적이며 깊이있게 그리고 미래지향적으로 개입(협력)하고자 하는 유럽의 판단이 올바르다.

바이든 행정부는 헤게모니라는 유혹에 빠져서는 안되며, 반대로 중국과 미래지향적 관계를 추구해 가야 한다.

유럽과 중국이 투자협정에 합의함으로써 2020년의 끝을 멋지게 장식하면서 미국과 별도로 독자적인 유럽의 외교정책 권리를 훌륭하게 시현한 셈이다. 이제 2021년의 수많은 도전에 대응하여 세계는 펜데믹을 종결시키기 위해서는 과거의 관행을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향후 지속가능한 발전경로를 찾아 전진해야 한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on 2020-12-31.

Jeffrey D. Sachs

뉴욕 콜롬비아 대학교의 공공정책 분야 교수이자. 해당대학의 지속발전연구소와 유엔지속발전해결네트워크(UN-SDSN)의 책임자 직위를 겸임하고 있다

금, 2021/01/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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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군사현대화 작업은 시진핑이 군사중앙위 주석으로 취임한 2102년 11월 이전부터 이미 오랫동안 추진되어온 사업이었지만, 그가 등장하면서 내용이 매우 과감해지고 신속하게 진행되어 왔다. 변화의 주요한 내용은 무기와 장비의 현대화, 인민해방군을 보다 효율적인 조직으로 전환하는 개혁, 그리고 부패를 근절하며 시주석의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이다.

과거의 인민해방군은 국내를 무대로 발발하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게릴라 전술과 지구전에 의존한 시대에 뒤떨어진 조직이었다. 등소평 시절에는 경제에 모든 국력을 집중하면서 소위 ‘4대 현대화’의 항목에서 군대의 문제가 한참 후순위로 밀려났다. 강택민의 집권1기 시절인 1989-2004년 동안에도 인민해방군은 지역의 적군에 대응하는 억지력을 전력의 핵심으로 삼았다.

반면에 현재 제기되고 있는 군대의 현대화라는 목표는 공군과 해군력의 강화라는 필요와 더불어 미사일 전력의 확충 그리고 훈련과 독트린, 인원보충과 교육에 대한 커다란 변화를 암시하고 있다.

강택민과 후임인 후진타오 주석의 군사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 있었으며, 인민해방군은 정치권에서 요구하는 개혁에 저항할 수 있는 자체의 자력이 있었다. 당시 인민해방군 문제점의 하나는 ‘거대 조직- Big Army’이라는 개념에 의존하면서 주요 지휘보직이 지상군에게만 주어졌고, 기타 조직은 지상군의 지휘권에 종속적 위치에 머물러 있었다.

또 다른 문제점은 공산당 상층 지도부가 만연한 군내부의 부패를 통제할 수 없었으며, 등소평에 의해 용인된 군대의 자급생산 체제는 1980년대 당시의 부족한 군사예산을 보충하는 일종의 대안이었다.

시진핑이 군사중앙위 주석으로 취임하면서, 전임자들이 방기했던 상기의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에 착수하는 동시에 현대화 작업을 가속화시켰다. 현대화 작업의 출발은 사실 이미 전임자들 시기에 이루어졌는데, 주요 시스템의 온라인(전산)화와 독자개발한 항공모함 산동호, 055형의 미사일격추 시스템, J-20형 스텔스 전투기, Y-20형 장거리 수송기, DF-21D형 대전함 미사일, 극초음속의 비행수단을 갖춘 DF-17형 미사일 등을 열거할 수 있다.

시주석 시기가 도래하여, 민간의 과학기술과 산업체가 긴밀하게 결합되면서 인민해방군은 새로운 역량을 갖추게 되었다 – 즉 인공지능, 양자 컴퓨터과 빅데이터 등을 배경으로 이제 인민해방군은 현대적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지능화-기능intelligentisation을 갖게 되었다.

전임자들 시기에 착수된 상기의 프로그램들을 신뢰하면서 이에 더하여, 시진핑은 강택민과 후진타오가 손댈 수 없었던 군조직의 혁신작업을 정치적으로 매우 신중하게 진행하였다.

취임초기부터 그는 인민해방군의 현안에 깊이 개입하였으며, 군부대를 자주 방문하여 군사에 관한 연설을 진행하였으며, ‘작은 붉은 책자 – little red book’라는 교본을 만들어 군대에 보급하고 교육을 시켜 왔다. 또한 사단 단위의 지휘관 인사까지 개입하여 그와 비전을 공유하는 인사들을 주요 보직에 배치하여 왔다.

시주석의 군대에 대한 정치적인 핵심전략은 후진타오 시절부터 시작된 반부패 사업을 ‘호랑이에서 잔챙이까지tigers & flies – 지위 여하를 막론하고’ 뇌물죄에 대하여 강력하게 숙청을 단행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패청산 작업은 표면상 군대의 전문성을 고양시킨다는 명분을 지니고 있지만, 강택민에 의해 임명된 군사중앙위 부주석인 Xu Caihou(西才厚)와 Guo Boxiong(郭伯雄).를 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이들 강택민의 측근들을 제거함으로써, 시주석은 조직개혁에 저항하는 수구파들을 선택적으로 격파하고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했을 뿐만 아니라, 조직개혁에 대한 반대의 논쟁을 종식시켰다.

시주석은 조직개혁에 저항하려는 반대파들의 논쟁을 인민해방군의 효율적 운용을 증진시킨다는 논리로 대응하면서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1950년대의 소비에트 방식을 모델로 하였던 최고사령부 중심의 일방적 조직을 현대적인 미군의 연합군 편제로 대체시켰다.

합동참모부는 5개의 지역군 사령부를 총괄한다. 각 지역군 사령부는 각자의 지역과 임무에 전적으로 부여된 군사계획과 훈련 그리고 조직을 운용하도록 하였다. 예를 들어 동방지역군 사령부는 대만문제를 전담하고, 서방지역군 사령부는 남중국해 지역을 맡는다. 합동참모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해군과 공군에 중점을 두는 것으로 이들이 각 지역군 사령부의 핵심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조직편제 내에 2개의 지원군이 창설되었다. 전략지원군은 우주공간과 사이버 그리고 전자전과 심리전 분야에서 인민해방군의 역량을 강화시킨다. 이러한 발전은 인민해방군이 정보의 영역에서 작전을 수행할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또 하나의 지원조직은 합동군수지원군으로 지역군 단위사령부의 군수지원을 종합하여 집중적이며 효율적으로 취급한다.

동시에 하부단위(below-the-neck) 조직에도 큰 변화가 있었는데 지상군과 공군력을 사단에서 여단 단위로 세분화하여, 인민해방군 내부의 운용역량과 상호지원능력을 향상시켰다. 2015-2019 사이에 인민해방군의 관심은 내부의 현안에 집중되었고, 새로운 조직개편에 따라 대규모의 훈련은 축소 연기되었으며, 이웃 국가들과 우발적인 사고에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후 개혁의 결과로 중국군대는 현대적으로 편성 조직되었고, 중국의 전략을 국내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보다 효과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

2020년에, 인민해방군 창설 100주년이 되는 2027년을 ’군사현대화 완수 fully modern military의 해’로 설정하였다.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추가적인 항공모함의 건조와 현대화된 장거리 폭격기의 개발을 포함한 야심찬 계획이 도입되었다. 연구개발과 혁신적인 기술을 군사조직에 도입하는 한편, 이들 현대적인 노하우를 운영할 수 있는 인적 지원의 보충을 계속하고 있다.

이는 인민해방군의 운용능력 범위가 중국과 지역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군의 현대화라는 목표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지역 내의 미군사력과 충돌을 대비하는 것이며, 중국군대의 능력과 원칙에 따른 작전범위의 확장을 포함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의 향방은 전방위적인 위험의 증가를 억지하고자 하는 정치지도력의 결정에 달려있다.

 

출처 : EastAsiaForum in Sydney on 20-12-17.

Joel Wuthnow

미국 워싱턴 소재 국방대학의 중국군사 연구센터 책임 연구원

월, 2021/01/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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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에 선언한 소득주도의 경제운용 입장은 절대적으로 옳았으나, 집권 일년도 지나지 않아 서민층을 위한 최저임금과 노동시간에 대한 정책을 너무나 손쉽게 포기하면서, 양극화를 가속시키는 대기업 주도의 산업과 반서민적 자산버블중심의 성장정책으로 전환하고 말았다. 커다란 패착이다. 양국 산업과 경제에 구조와 성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정부는 중국이 추구하고 있는 쌍순환과 수요중심의 장기적 사회경제 발전 전략을 배우고 참조해야 한다.


중국은 수요중심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하여, 소득의 불평등을 줄이고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며 토지사용과 주택소유권을 개혁하면서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유지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환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바람직한 것이며, 전통적인 촉진정책이 야기할 수 있는 과다한 부채의 문제나 경기의 부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코로나-19가 야기하는 불황 속에 민간기업과 가계를 지원하기 위하여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GDP대비 정부부채 비중이 늘어나며, 이는 장래에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소득을 재분배하면 재정지출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도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늘리지 않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낸다.

통상, 정부가 진행하는 경제촉진(구제) 팩키지는 통화정책과 함께 재정확대를 동반하면서 정부의 부채를 증가시키고, 중앙은행을 통한 통화량을 풀면서 경제회복을 위해 자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정부의 부채가 증가하게 되면, 미래에 닥칠 수 있는 경제의 하강에 대응할 수 있는 자원(역량)이 줄어들기 때문에, 재정정책의 효과를 제한한다.

통화량을 증가시키면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서 국내에 인플레를 자극하면서 사재기(매석)과 경제운영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 (편집자 주: 필자의 염려와는 달리, 단기적 측면에서 주요 경제권에서는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인플레가 발생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디플레를 염려하는 지경에 있다). 따라서 경제회복을 위한 재정과 통화정책의 효과는 장기적으로는 회의적이다.

국가의 부채를 분석하고 다른 국가들의 경제지표를 비교하는 통계부처Statista는, 중국 GDP대비 정부부채는 2020년 기준으로 61.7%에 이를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2017년의 46.36%에 비해 상당히 증가한 수치로, 대부분 중미통상전쟁과 뒤를 이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경제적 하락을 보상하기 위하여 정부가 지출을 늘렸기 때문이다.

다른 주요 국가들의 정부부채가 평균적으로 100%를 넘어서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양호한 것이기는 하지만, 증가의 속도가 빨라 미래의 재정적 불확실성을 염려하게 한다.

더구나 61.7%는 유럽연합이 마스트리히트Maastricht 협약에서 제시한 60%를 넘어선 것으로, 60% 기준은 잠정적인 재정부담의 적신호로 제시되고 있다 (편집자 주: 반면에, Maastricht 협약 당시의 이자율2-5%에 비하여 현재의 이자율0-1%은 제로에 가까우며, 이에 따라 염려하던 재정부담이 발생하지 않고 있다).

상기의 후유증에 대한 염려와는 달리, 수요중심으로 개혁을 추진하면 재정의 과다한 지출과 양적완화의 조치 없이 경제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소득의 재분배는 정부가 부유층에게 세금부과를 증대하여 이를 빈곤층의 구매력을 확대하는 것으로 전환시키는 것으로 재정의 과다한 지출을 피할 수 있다.

중국의 저개발된 농촌과 저임의 농민공 때문에 적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을 축젛하는 지표로 지니계수를 도입한다. 지니계수는 0에서 1까지 표시되는데, 1은 절대적 불평등을, 0은 절대적 평등을 뜻한다.

통계부처Statisca에 따르면, 중국의 지니계수는 2019년 기준으로 0.46으로 이는 2009년의 0.49에서 개선되고 있지만 유엔이 제시한 위험기준인 0,40을 초과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다 공정한 소득의 재분배는 중국의 장기적 경제발전 전망을 개선시킨다. 14억 인구를 가진 거대국가로서 내수의 기반을 확대하면, 복합적인 승수적 수요를 유발하면서 GDP성장과 장기적 안정에 기여한다. 시장이 확대하면 추가적인 국내 및 외국 투자를 유인할 것이며, 이런 이유가 많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2019년 중국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증가한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토지사용과 주택소유개혁과 관련한 정부의 정책은 투기를 억제하고 주택가격을 더욱 낮추어 국내의 수요자들에게 접근이 용이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경우, 몇 년 전부터 투기행위와 빈집에 대하여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여 주택수요(대부분 외국의 부유층)에 대한 투기와 가격상승을 억지하였다. 이에 따라 외국의 수요자들, 특히 다주택에 대한 투기가 대부분 사라졌고, 주택가격이 내려갔다.

이에 더하여 주택소유권에 대한 개혁은 쌍순환Dual-Circulation 전략을 보완하는데, 쌍순환 전략의 주요 내용에는 도시화를 통한 소득증대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전지역을 대상으로 대규모의 주택건설 및 필요한 사회간접시설의 확충은 매우 중요한 승수적 효과를 가져오는데, 주택건설과 관련후방의 산업에 대한 새로운 투자를 유인한다.

도시화는 인민들이 농촌에서 거점도시로 이동하는 것을 의미하며, 거점도시 내의 소득편차가 좁아지면, 소득의 불평등 역시 줄어든다. 이에 더하여 새로운 도시와 간접시설의 건설에서 발생하는 정부의 부채는 주택매매와 경제활성화에 따른 세수증가로 상쇄된다.

사회안전망의 확장은 보다 많은 공공재와 공공 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한 가격으로 인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적정하고 공정한 교육과 의료제공은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교육은 양질의 노동력을 보장하고 생산성을 높여 주며, 의료서비스를 무상 또는 저렴하게 제공하면 인민들은 일반재화와 민간서비스를 구매할 여력을 갖게 되면서 경제전망을 밝게 한다.

종합적으로 정리하자면 수요중심의 개혁은 정부의 과다한 부채에 의존하지 않고, 중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사회안정을 고양시키고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실제로 수요중심으로 정책의 전환은 국내소비를 창출하여 경제성장을 도모하고자 하는 쌍순환 전략을 측면 지원하게 될 것이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CGTN) on 20-12-24.

Ken Moak

지난 33년 간 국내외의 유수 대학에서 공공정책과 세계화에 대하여 강의를 진행하였으며,  2015년에 ‘중국경제굴기의 세계충격’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수, 2021/01/27-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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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눈풀꽃’에게 배우는 생명의 지혜

내가 어떠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가./절망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은/분명 겨울의 의미를 이해하리라.//나 자신이 살아남으리라고/기대하지 않았었다,/대지가 나를 내리눌렀기에./내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는/예상하지 못했었다./축축한 흙 속에서 내 몸이/다시 반응하는 걸 느끼리라고는./그토록 긴 시간이 흐른 후에/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나는 지금 두려운가./그렇다. 하지만/당신과 함께 다시 외친다./‘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미국 시인 루이스 글릭(Louise Glück)의 <눈풀꽃>(류시화 옮김)이다.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는데, 아직 봄이 오려면 멀었는데, 차가운 눈밭 위로 꽃 한 송이가 고개를 내민다. 안쓰럽게도, 아니 장엄하게도 눈 내린 땅 꽁꽁 언 흙을 뚫고 나와 봄을 부른다. 영어로 ‘스노우드롭’(Snowdrop), 한자로 ‘설강화’(雪降花), 우리말로 ‘눈풀꽃’이다. 코로나(COVID-19) 때문에 지친 지구인에게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로는 이만한 시가 없겠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건 자연의 이치다. 또 봄이 되면 어차피 천지가 꽃으로 뒤덮일 테다. 한데 시인의 눈은 하고많은 꽃 중에 ‘눈풀꽃’을 바라본다. “가장 이른 봄의/차가운 빛 속에서/다시 자신을 여는 법을/기억해 내면서” 길고 긴 겨울의 절망을 마침내 이겨냈다고 말을 거는 꽃. 연약한 자기가 그리했으니 당신도 그리할 수 있다고 손 내미는 꽃.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1】이어서 생명에 대한 기대를 손톱만큼도 허용하지 않는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겨울에 압도당하고, 차갑게 내리누르는 대지의 무게에 짓눌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절망에 포획되어 죽음 속으로 봉인되는 법이다. 이 봉인은 저절로 해제되지 않는다. 여전히 “축축한 흙 속에” 감금된 몸이지만, 저 멀리서 오는 봄의 발걸음에 “다시 반응”할 줄 아는 예민한 감각이 살아 있어야 한다. 한데 이 감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두려움’이라는 감정의 늪을 건너지 않으면 안 된다. 눈풀꽃이 위대한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자기 안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이겨냈기 때문이다. “‘좋아, 기쁨에 모험을 걸자.’//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에서.”

두려움의 힘이 얼마나 세면 기쁨을 느끼는 일이 “모험”이란 말인가? 낡은 세상의 힘이 얼마나 강하면 “새로운 세상”을 마중하기 위해 “살을 에는 바람”을 견뎌야 한단 말인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감정과 윤리 그리고 정치의 삼각관계를 만난다. 두려움이 정치와 결부되면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쉽사리 좌절되기에, 두려움을 극복하는 일은 단순히 심리학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윤리학의 과제이기도 하다.

 

2. 사피엔스, 그는 누구인가

지구의 진화과정에서 오랫동안 ‘미물’(微物)에 불과했던 인간에게 자연은 두려운 존재였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인간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공격하거나 도망치거나! 지구 드라마의 ‘엑스트라’ 시절, 인간은 도망 다니기에 바빴다. 그러다가 서서히 ‘주인공’ 자리를 꿰차게 되면서 드디어 공격 스위치에 불이 들어왔다. 때마침 “땅을 정복하라. …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세기 1:28)는 성경 말씀이 자연을 식민지화하려는 인간의 제국주의적 심성에 불을 질렀다.

기계론의 유명한 은유, 곧 우주를 하나의 거대한 시계장치에, 그리고 하나님을 시계공에 빗대어 설명하는 방식은 14세기 프랑스 주교 니콜 오렘(Nichole Oresme)이 제안한 것이다.【2】 요컨대, 자연을 기계론적 세계관 아래 포섭하여 인간이 알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죽은 물질’로 보는 시도가 대체로 경건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취해졌다. 그 한 보기가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이다. 그가 주도한 18세기 물리학은 자연을 결정론 법칙에 종속된 수동의 대상으로 파악하는 게 주요 업무였다. 그렇게 해서 막스 베버(Max Weber)가 ‘세계의 탈마법화(disenchantment)’라고 부른 일련의 과정이 완성되었다. 근대인 대부분은 인간이 자연법칙까지도 틀어쥐고 있다는 착각에 병적으로 매료되었다.

자연이 ‘생명을 부양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사악한 마녀’의 이미지로 재현된 시기는 공교롭게도 셰익스피어의 희곡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안데르센의 동화 <분홍신> 따위가 인기를 끌던 시대와 상응한다. 다시 말해, 계몽(Enlightenment)이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여성에 대한 남성의, 유색인종에 대한 백인종의, 육체에 대한 정신의, 감성에 대한 이성의, 죽을 수밖에 없는 숙명에 대한 영생의 자유를 도모하는 “주체의 자아 강화 과정”【3】에 다름 아니었다.

노자(老子) 가라사대, 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고 했던가?【4】 그동안 지구가 여러 차례 경고음을 냈는데도 인간은 듣지 못했다. 아니 들을 마음조차 없었다. 인간의 이러한 오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 팬데믹, 그중에서도 문명의 성취를 마음껏 뻐기는 오늘날 인류를 속수무책으로 쓰러뜨리는 코로나 역병이다. ‘2020년 지구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연 ‘코로나’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코로나로 인한 혼돈은 인간이 주어가 아니라 목적어가 된 최초의 시간에 관한 반응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인간의 왕성한 지배욕과 지배력에 제동이 걸렸다. ‘알파고’를 만든 구글(Google)이 인간에게 영생·불사·불멸을 가져다줄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착수했다는데, 그래서 인간 종(種)이 ‘호모 데우스’(Homo deus)로 진화할 날이 코앞에 닥쳤다는데,【5】 바이러스 하나 제어하지 못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가 무색하기 그지없다. 그러니까 코로나는 인간에 대해, 나아가 지구 이야기에서 인간의 등장이 지닌 함의에 대해 뿌리에서부터 다시 생각할 때가 왔다는 신호다.

과학-산업혁명 이전까지만 해도 지구는 놀라운 항상성(homeostasis)을 유지했다. 항상성이란 ‘일희일비하지 않는 뚝심’이다. 어림잡아 46억 년을 지내는 동안 소행성 충돌이나 빙하기 같은 별의별 큰일을 겪으면서도 지구가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밑힘이 ‘항상성’이었다. 그러던 중 지구의 항상성에 치명적인 위협이 되는 ‘악당’(villain)이 등장했으니, 바로 ‘사피엔스’(sapiens)다.

사피엔스는 등장부터 시끄러웠다. 같은 ‘호모’(Homo, 사람) 속에 속한 네안데르탈렌시스(neanderthalensis), 솔로엔시스(soloensis), 플로레시엔시스(floresiensis), 데니소바(denisova), 루돌펜시스(rudolfensis), 에르가스테르(ergasther) 등 사촌들을 단박에 제치고 독무대에 올랐다.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이전까지 별 볼 일 없던 인간의 지위가 단숨에 맨 윗자리로 뛰어오르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사피엔스는 가는 곳마다 멸종의 기록을 갈아치웠다.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킬로그램이 넘는 대형동물 약 2백 속이 살고 있었다.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 이들 중 남은 것은 약 1백 속에 지나지 않는다. …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6】

그리하여 ‘사피엔스’의 별명은 ‘터미네이터’(Terminator)가 어울린다. 사피엔스가 지구별에 등장해 문명을 건설한 이래, 지구별의 뭇 생물·무생물이, 나아가 지구별 자체가 종말로 치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 세대는 “자신들이 마지막 세대에 속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첫 번째 세대”【7】라는 지적이 적확하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는 ‘인류세’(Anthropocene)【8】의 끝에 와 있는 것이다.

 

3. 코로나라는 이름의 예언자에게 귀 기울이기

코로나는 사피엔스가 지구의 생리를 다 안다는 ‘착각’이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여실히 폭로한다. 사피엔스는 이름만큼 그렇게 슬기롭지 않다. 게다가 지구는 살아 있다! 살아 있는 생명체에 대해, 그가 설령 연인이나 부부 혹은 자식일지라도, 다 안다는 망상은 언제나 폭력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모르는 것을 모른 채로 놓아둘 줄 알아야 슬기롭다. 다른 말로 하면, 타자의 타자성을 인정해야 한다. 평화의 첫걸음은 여기서 시작될 것이다. 평화는 상태가 아니라 관계의 언어이기 때문이다.【9】

그러니까 코로나는 근대 인간(Modern sapiens)이 욕망한 ‘관리자’(manager) 이미지를 반성하도록 촉구한다. 인간은 지구를 ‘관리’하기에는 너무나도 무지하고 무능하다. 그래서 서구 기독교가 ‘청지기’(steward) 신학을 들고 나왔지만, 이 역시 오만하기는 마찬가지다. 속물적인 인간은 자본과 권력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기가 불가능하다. 한편, 에코페미니즘(ecofeminism)은 ‘돌봄이’(caretaker)라는 단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도 그다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지구가 인간을 돌보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이렇게 인간이 ‘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주제 파악’을 하지 못한 채 헤매는 사이에 코로나가 닥쳤다. 특정 국가의 국민 또는 아시아 사람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재난 인종주의’는 두려움의 다른 표현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이라는 이 원초 감정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두려움이라는 이름의 군주제: 한 철학자가 바라본 우리 시대의 정치 위기』(The Monarchy of Fear: A Phiosopher Looks at Our Political Crisis, NY: Simon & Schuster, 2018)【10】에서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은 두려움이 항상 지배욕 혹은 제국주의와 결부되는 현상을 분석한다. 그리고 이 질곡에서 벗어날 실마리로, 두려움이 사실상 지독한 ‘자기애적 감정’(narcissism)이라는 데 주목한다. 아기뿐만 아니라 전투를 앞둔 군인이나 진단을 앞둔 환자도 마찬가지다. 관심이 온통 자기 내부로만 쏠린다. “자신의 신체가 그들의 세상 전부가 된다.”【11】

하여 두려움을 극복하는 문제는 유치한 나르시시즘을 떨치는 과제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사랑이 들어선다. 사랑은 자기라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경험이다. 누스바움의 말에 기대면,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12】을 경험하는 길은 오직 사랑을 믿는 길밖에 없다. 그녀는 “타인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 감사하는 마음과 (받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속에 진화의 근거가 있을”【13】 거라고 말을 건넨다. 나의 말로 바꾸면, 사피엔스가 심비우스(symbious)로 변태하지 않고는 답이 없다.【14】

심비우스는 단순히 ‘민주(民主) 자아’(democratic self)가 아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코로나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깨닫게 된 것, 깨달아야 하는 건 바로 이 지혜다. ‘사회’ 안에서 ‘타인’과 공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선결되어야 할 과제는 ‘지구’ 안에서 함께 몸 붙여 사는 ‘모든 피조물’과 더불어 잘 지내는 법을 배우고(學) 익히는(習) 일이다.

그러니 심비우스는 ‘생주(生主) 자아’(biocratic self)라 할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을 행동강령으로 삼지 않을뿐더러, 지구생태공동체에서 오로지 인간만 번성해야 한다는 망상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민주적 자아의 필요조건이 ‘자기애’를 넘어서는 일, 타인을 걱정할 수 있는 능력,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인류애’마저 넘어 ‘신의 지문’이 새겨진 우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피조물의 복지에 헌신하는 이가 심비우스다.【15】

유대인 사상가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우리는 사람의 ‘본성’을 서술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만든다”【16】는 점에서 여타 사물이나 동물과 구별된다고 지적했다. 달리 표현하면, 자연계에서 오직 인간만이 ‘문화’를 창조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이유가 “땅을 갈 사람”(창세기 2:5)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는 성서의 보도가 이를 잘 말해준다. 문화라는 영어 단어(culture) 자체가 ‘경작’을 의미하는 라틴어(cultura)에서 유래한 점을 기억하면, 인간의 독특성이란 바로 신에게 받은 ‘문화 명령’을 가리키겠다. 즉, 현생인류와 5만 년 전 조상 사이에 존재하는 주요한 차이는 유전자가 아니라 문화다.

심비우스는 자신이 지구별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자각한다. ‘지구의 자의식’으로 깨어있어야 함을 안다. 지구가 얼마나 연약한 별인지, 얼마나 아픈 몸인지 절절히 느낀다. 열이 나고 숨을 쉬기 힘든 코로나의 증상이 기후 변화에 시달리는 지구별의 증상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두려움에 포획되어 ‘티나’(TINA: There Is No Alternative)를 입에 달고 사는 대신에 “기쁨에 모험을” 거는 쪽을 택한다. ‘타타’(TATA: There Are Thousand of Alternatives)를 노래하며 “새로운 세상의 살을 에는 바람 속”으로 들어간다. 아니 차라리 심비우스가 바람이다. 심비우스의 눈길이 머무는 곳, 발길과 손길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바람이 일어난다.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인간이 아니다. 나는 다이너마이트다.” 니체(Friedreich Nietzsche)의 세기말적 선언을 이렇게 수정하자. “나는 내 운명을 안다. … 나는 사피엔스가 아니다. 나는 심비우스다.”

 

<각주>

【1】 이 용어는 당연히 쇠렌 키에르케고르의 책(1849)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2】 찰스 버치/존 캅, 『생명의 해방: 세포에서 공동체까지』, 양재섭/구미정 옮김(나남, 2010), 168쪽.

【3】 마르틴 하이데거의 표현이다.

【4】 노자, 『도덕경』(현암사, 1995), 제41장.

【5】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김명주 옮김(김영사, 2018), 44쪽.

【6】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김영사, 2015), 30-31쪽.

【7】 프란츠 알트, 『지구의 미래』, 모명숙 옮김(민음인, 2010), 233쪽.

【8】 2016년 8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국제지질학총회(International Geological Congress) 참석한 ‘인류세 워킹 그룹’은 지구가 1950년 즈음부터 새로운 지질학의 시대, 곧 ‘인류세’에 접어들었음을 공식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황금 못’(golden spike: 각 시대를 구분하는 주요 기준)으로는 방사성 물질, 플라스틱, 닭뼈 등이 지목되었다. 『유네스코뉴스』 747(2018), 7쪽.

【9】 구미정, “평화의 카이로스: 일상의 폭력 극복을 위한 기독교윤리학적 성찰”, 『신학논단』 65(2011).

【10】 이 책은 원제와 달리 다음의 제목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임현경 옮김(알에이치코리아, 2020).

【11】 윗글, 60쪽.

【12】 윗글, 62쪽.

【13】 윗글, 63쪽.

【14】 이하의 논의는 구미정, “코로나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하나님의 형상’”, 『신학연구』 76집(2020) 참고; 구미정, 『호모 심비우스: 더불어 삶의 지혜를 위한 기독교윤리』(북코리아, 2009)도 볼 것.

【15】 이 대목에서 나는 백여 년 전 이 땅,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제국주의 열강의 각축장이 된 한반도에서 ‘대동’(大同)을 꿈꾸었던 선각자들이 떠오른다. 백암 박은식, 수운 최제우 같은 이가 그들이다.

【16】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 『누가 사람이냐』, 이현주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 2008), 15쪽.

 

구미정

숭실대 초빙교수, 윤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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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1/2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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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행정부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까다로운 외교정책 과제 중 하나는 핵무장한 북한입니다. 미국과 북한 간의 기나긴 회담은 2019 년 이후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북한은 최근까지 핵무기 무기 개발을 계속하면서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무기를 공개하였습니다.

은퇴한 미육군 대령이자 40 년의 경험을 가진 미 외교관으로서 저는 미군의 행동이 어떻게 전쟁으로 이어지는 긴장으로 악화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속한 조직인 평화를 위한 참전용사단체는, 미국과 한국 등 수백의 시민 사회 단체의 일원으로, 바이든 행정부에 올해 다가오는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을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합니다.

대대적인 규모와 도발적인 성격으로 인해 연례의 한미군사연합훈련은 한반도의 군사적 정치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계기가 되어 왔습니다. 이러한 군사훈련은 2018 년부터 중단되었지만, 로버트 에이브람스 주한미군사령관은 한미합동 군사훈련의 재개를 주장하고 있으며, 미국과 한국의 국방장관들도 기본적으로 합동훈련을 계속하기로 합의했고, 새로 임명된 국무장관 안토니 블링컨(Antony Blinken)은 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실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긴장을 고조시키고 북한의 도전적인 대응조치를 유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보다는, 블링컨은 북한과의 화해조치로서 훈련을 중단하는 것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수십 년간에 걸친 대북제재의 효과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가 채택한 최대압력전략이 실패로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블링컨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압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CBS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는 북한을 압박하여 협상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경제적 제제를 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바이든 정부가 오는 3월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할 경우, 이는 곧바로 북한과 외교적 타협의 가능성을 훼손하고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키며 남한과 긴장을 재점화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상황이 도래하면 한반도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1950년대 이후 미국은 북한의 남한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군사 훈련을 “무력의 과시”용으로 진행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한미군사훈련을 “최고 지도자의 살해작전”으로 간주하고, 체제전복을 위한 리허설처럼 평가합니다.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은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B-2 폭격기, 핵공격이 가능한 항공모함 및 핵잠수함의 참가, 장거리사격이 가능한 대형구경의 무기 등을 동원합니다. 따라서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은 매우 절실한 신뢰구축의 조치이며 북한과의 대화 재개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세계가 긴급한 인도주의적, 환경적,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군사훈련에 동원되는 절실한 자원을 의료제공과 환경보호를 통한 생명과 안전을 제공하려는 노력으로 전환시켜야 합니다. 또한 한미군사합동훈련은 또한 미국 납세자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부담시키면서 현지 지역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히고 한국의 환경에 큰 피해를 가합니다. 한마디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긴장을 계속 유지시키면서, 이를 막대한 군사지출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여 왔습니다.

북한은 GDP 대비 군사비 지출에서 세계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총액 규모로 보면 한국과 미국이 국방에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지출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군비 지출 1 위 (7,320 억 달러)로 다음 10 개국을 합친 것보다 많고 한국은 10 위 (439 억 달러)에 해당합니다.  반면에 한국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전체 국방예산은 84 억 7 천만 달러(2019 년 기준)에 불과합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궁극적으로 위험하고 값비싼 군비경쟁을 막고 전쟁재개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그리고 70년의 기간이라는 오랜 한국전쟁의 근본 원인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군사훈련을 즉시 중단하는 노력을 통하여 북한과의 긴장을 줄여야 합니다. 군사훈련과 오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비핵화를 이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For Peace With North Korea, Biden Must End the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One of the thorniest foreign policy challenges the Biden administration will need to face is a nuclear-armed North Korea. Talks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have been stalled since 2019, and North Korea has continued to develop its weapons arsenal, recently unveiling what appears to be its largest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As a retired U.S. Army Colonel and U.S. diplomat with 40 years of experience, I know all too well how actions by the U.S. military can exacerbate tensions that lead to war. That’s why the organization I am a member of, Veterans for Peace, is one of several hundred civil society organizations in the U.S. and South Korea urging the Biden administration to suspend the upcoming combined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Due to their scale and provocative nature, the annual U.S.-South Korea combined exercises have long been a trigger point for heightened military and political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These military exercises have been suspended since 2018, but Gen. Robert B. Abrams, Commander of U.S. Forces Korea, has renewed the call for the full resumption of the joint war drills. U.S. and South Korean defense ministers have also agreed to continue the combined exercises, and Biden’s secretary of state nominee Antony Blinken has said suspending them was a mistake.

Rather than acknowledge how these joint military exercises have proven to raise tensions and provoke actions by North Korea, Blinken has criticized the suspension of the exercises as an appeasement of North Korea. And despite the failure of the Trump administration’s “maximum pressure” campaign against North Korea, not to mention decades of U.S. pressure-based tactics, Blinken insists more pressure is what’s needed to achieve North Korea’s denuclearization. In a CBS interview, Blinken said the U.S. should “build genuine economic pressure to squeeze North Korea to get it to the negotiating table.”

Unfortunately, if the Biden administration chooses to go through with the U.S.-South Korea joint military exercises in March, it will likely sabotage any prospect of diplomacy with North Korea in the near future, heighten geopolitical tensions, and risk reigniting a war on the Korean Peninsula, which would be catastrophic.

Since the 1950s, the U.S. has used the military exercises as a “show of force” to deter a North Korean attack on South Korea. To North Korea, however, these military exercises — with names such as “Exercise Decapitation” — appear to be rehearsals for the overthrow of its government.

Consider that these U.S.-South Korea combined military exercises have involved the use of B-2 bombers capable of dropping nuclear weapons, nuclear-powered aircraft carriers and submarines equipped with nuclear weapons, as well as the firing of long-range artillery and other large caliber weapons.

Thus, suspending the U.S.-South Korea joint military exercises would be a much-needed confidence-building measure and could help restart talks with North Korea.

At a time when the world is facing urgent humanitarian, environmental and economic crises, the U.S.-South Korea military exercises also divert critically needed resources away from efforts to provide true human security through the provision of health care and the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These joint exercises cost U.S. taxpayers billions of dollars and have caused irreparable injury to local residents and damage to the environment in South Korea.

On all sides, the ongoing tensions on the Korean Peninsula have been used to justify massive military spending. North Korea ranks first in the world in military spending as a percentage of its GDP. But in total dollars,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spend vastly more on defense, with the U.S. ranking first in military spending worldwide (at $732 billion) — more than the next 10 countries combined — and South Korea ranking tenth (at $43.9 billion). By comparison, North Korea’s entire budget is just $8.47 billion (as of 2019), according to the Bank of Korea.

Ultimately, to stop this dangerous, expensive arms race and remove the risk of renewed war, the Biden administration should immediately reduce tensions with North Korea by working to resolve the root cause of the conflict: the longstanding 70-year-old Korean War. Ending this war is the only way to achieve permanent peace and denuclear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출처 : 전쟁없는세상(WorldBeyondWar) on 2021-01-28.

Ann Wright

공수부대 참전 경력을 지닌 미육군대령출신의 여성으로 예편 이후, 미국무부에 근무하다가 중동정책에 반대하면서 이라크 침공 하루 전에 공개적인 사임을 한 이후, ‘반전평화를 위한 참전용사단체’와 ‘Pink-Code’ 등에 참여하면서 왕성한 평화운동과 기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토, 2021/01/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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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을 추진하면서 세계를 다시 한번 놀라게 하였다. 시험적 사용이 이미 4개 주요 도시에서 착수되었고, 2022년에는 국제동계올림픽의 개최지역에 공식적으로 도입 적용될 예정이다. 이는 국제금융시장을 향한 ‘중국의 벽돌쌓기’ 작업 중 하나이며, 세계경제의 새판짜기에 깊이 개입하고자 하는 포석이기도 하다.

Q1) 디지털-위안화(eRMB)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일까?

이는 단순히 현재 중국의 실물(physical)화폐를 디지털화하는 것이며,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PBOC가 제1 금융권인 국유은행들과 온라인-지급포탈 조직인Alipay와 Wechat Pay 등을 통하여 시중에 공급하는 것이다.

이들 은행들과 포탈기업들은 디지털-화폐를 개인과 민간기업에게 배포하는 권한을 정부로부터 부여받아 디지털-지갑방식으로 지불할 수 있게 된다.

Q2) 그렇다면 왜 굳이 실물화폐 대신에 디지털-화폐를 도입하려 하는가?

이미 전세계에 통용되는 디지털-화폐량의 44%를 중국이 주도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선도하는 것은 자연스런 발전의 추세이며, 이를 국가가 책임지는 주권디지털-화폐로 전환하여 중국 정부가 디지털 화폐의 순환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Q3) 주권(국가발행)디지탈-화폐의 장점은 무엇일까?

현재 시중에 인기를 끌며 사용 중인 Alipay그리고 Wechat과는 달리, 디지털-화폐는 인터넷이 없어도 거래가 가능하며 은행에 계좌를 별도로 개설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현재에도 은행계좌가 없는 중국 성인의 20%에게 큰 도움을 제공한다. 이는 빈곤퇴치라는 중국정부의 큰 밑그림이다.

디지털-위안화는 국가발행 화폐로서 불법적인 행위를 방지하기 때문에, 돈세탁, 사기, 불법적 금융거래, 탈세 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블록체인 기술이 이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발권과 기장(book-keeping) 등 화폐의 유통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통화정책을 펼치는데 참조할 유용한 자료를 제공한다. 경제 흐름의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제공하면서 국가의 정책품질을 개선시킨다.

Q4) 디지털-위안화를 중국 밖의 해외에서도 사용이 가능할까?

물론 현재 단계에서는 중국 국내에서만 통용된다. 하지만 가까운 장래에 개인들이 해외에서 구매결제에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며, 중국의 수출입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국제거래 역시 디지털-위안화 사용이 가능할 것이다.

대외무역에 있어서, 디지털-위안화는 특히 결재의 시간을 단축하고, 상대적인 위험을 감소시킨다. 현재 다양한 지불수단을 사용하고 있는 일대일로BRI 사업의 무역거래도 손쉽게 성사시킬 수 있다. 결제과정에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제3국의 화폐(예건데, 미국달러)를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된다.

따라서 디지털-위안화는 중국의 국제적 위상을 강화시키면서, 국가 간(cross-border)의 결제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오게 할 것이다. 현재 다국가 간의 거래에는 미국의 SWIFT시스템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현행의 다국적 간 결제수단과 은행시스템을 미국이 정치적으로 무기화하여 많은 국가들에게 제재수단으로 악용하여 왔다. 디지탈-위안화는 다국적 거래에 있어서 SWIFT 시스템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Q5) 디지탈-위안화가 중국정부가 추진하는 쌍순환 경제정책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디지털-위안화는 중국기업과 외국기업 간의 연계(거래)에 틈새를 없애고, 외국의 간섭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해 주면서, 쌍순환의 경제활동이 더욱 왕성하도록 돕는다. 디지털-위안화는 자체로서 결제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미국달러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디지털-화폐는 중국산업의 혁신과 디지털 경제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그리고5G 기술을 수용한다.

Q6) 그렇다면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이 중국을 세계로부터 격리시키게 되지 않을까?

전망은 정반대이다. 디지털-위안화의 도입은 중국이 국제무역의 상대국가들과 관계를 쉽게 확장하도록 지원하며, 세계경제의 관리체계를 개혁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돕는다.

 

출처: 중국국제방송(CGTN) / Cartoon program on 2020-12-12.

월, 2021/02/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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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집권 4년은 세계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의 ‘완벽한’ 절차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그것도 전통에 빛나는 미국 공화당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권 이후 백인우월주의의 인종차별 정책과 극단적 미국 이기주의에 토대한 국제질서 부정으로 일관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켜왔다. 마침내 극우파 시위대의 의회 난입이라는 폭거는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리는 신호탄이다.

 

미국,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간 이주민들은 같이 배를 타고 와 정착한 동료들과 생활의 근거지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곧 town이었다. 인구가 약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르렀던 town에서 주민과 밀접한 업무는 자신들의 손에 의하여 마을집회(town-meeting)에서 직접결정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업무는 마을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하여 처리되었는데, 그들은 주민들이 위임한 실무적인 일만 처리하였을 뿐, 공적인 일에 대한 판단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였다. town에는 주요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마을집회에서 직접 선출되었고 그 공적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책임이 뒤따랐다.

이러한 주민 자치제도는 특히 뉴잉글랜드에서 1650년에 확고하게 정착되었고, town의 독립성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이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그 직접민주주의의 힘에 기초하고 있었다.

 

차별성 없는 미국의 두 정당, 양당제의 역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의 정당 체제에 대하여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체제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체제 하에서 일반 대중들은 통제당하고 주변화 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상은 특히 미국과 같이 기업들의 주도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욱 뚜렷하다면서 선거에서 홍보 대행 산업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하고 주변화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는 1970년대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금융화와 상품 수출이 강화되는 방향이었다. 여기에 부의 집중, 인구의 1%에 부가 몰리는 과격한 악순환을 조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력 집중도 초래되었으며, 경제 집중을 유도하는 국가 정책들이 쏟아졌고, 그러면서 정당들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휘하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촘스키 교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미국의 차별성 없는 양당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회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도 일찍이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언론 등 정치 선동의 수단을 지휘하면서 은행과 부동산,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권력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미국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전된 국가로서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국가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 의회 의원 대부분은 선출되는 순간 상위 1%의 돈으로 유지되는 상위 1%의 멤버들이 되며, 무역과 경제정책의 핵심 고위관료들은 대체로 상위 1% 출신들이다. 또한 미국의 대법원은 선거비용 지출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기업이 정부를 돈으로 움직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驕兵必敗, 교만한 병사는 필패한다

이제까지 미국의 양당 제도는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미국 정치의 장점으로 역할 해왔다.

하지만 그 장점은 이제 다원화되는 사회계층의 이해와 다양화되는 사회문제를 포괄해내는 데 경직성을 노정시키면서 오히려 미국 쇠퇴의 중요한 단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광범한 대중에 토대한 사회(민주)당의 존재에 의하여 대중들의 이해가 보다 강력하게 정당정치에 반영됨으로써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역시 중요하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의 존립 근거를 마련해줌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의 소수 그룹을 존중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레이건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내게 하고, 군사비 등을 제외한 공공 서비스와 공공 투자를 줄였다”라며 미국 사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레이거노믹스 시대 이래 상위 1%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나머지의 소득은 계속 정체되고 끔찍한 실업에 시달렸다고 비판한다. 그는 “다가올 시대의 중요한 도전은 99%의 번영을 이룩하고 그들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에 대한 금권의 지배는 이미 구조화되었다. 개방형 경선과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므로 특혜 정책을 위하여 돈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가 기부 액수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 정치제도는 기업들의 로비 자금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정작 교육, 의료, 에너지 등 대중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경제 분야는 점점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이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 19 환자와 사망자가 많은 나라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건강한 신대륙의 건국 정신은 사라지고 패권국가로 너무 오래 교만하게 군림해왔다. 미국은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니다. 쇠락의 추세는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그간 미국이 자랑하던 외교, 인권, 경제 그리고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더 큰 비극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그다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소준섭

화, 2021/02/02-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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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바야흐로 국제질서가 다자주의에 기반한 다극체제로 진입하는 과정의 향배는 미국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 유럽연합의 움직임에 달려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가장 시급한 지구적 현안인 기후문제에 대한 유럽연합의 과감한 (주도적) 구상을 살펴본다.


기후위기의 긴급함을 고려해 볼 때, 이제 유럽연합이 지구적 현안인 기후문제를 국제외교의 핵심주제로 전환시켜야 한다. 금융과 시장 기술과 외교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유럽사회는 파리기후협약에서 결정한 것처럼 전세계를 지속가능한 미래로 이끌어갈 주도적 역할을 자임해야 한다.

브뤼셀 – 이제 세계는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기 시작하면서, 일년 가까이 봉쇄되었던 사회를 원상으로 회복시키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인류에게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오는 기후변화에는 이를 정복할 백신조차 없다.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림화재와 방글라데시를 황폐시킨 홍수 등의 혹독한 장면들은 인류가 기후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맞을 재앙적 미래에 대한 일종의 예고편이다.

엄청난 반전의 노력이 뒤따르지 않으면 이러한 자연재해는 빈도를 더하여 자주 발생하고 더욱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는 현재 인류가 당면한 가장 커다란 지정학적 현안이 되었다.

상황이 더욱 악화되면, 사회정치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대규모의 인구(난민)이동이라는 압력을 형성하는 동시에, 지구적 규모의 불공정을 확대시키며, 특히 취약한 국가군을 중심으로 인류에게서 인간다울 권리와 평화를 빼앗아 갈 것이다.

기후과학자들은 ‘파리협약에서 제시한 목표인 산업시대 이전의 지구평균기온 상승범위를 섭씨 1.5도 이내로 제한’하기 위해서는 대기 중 탄소산화물의 누적량을 최대 580기가 톤으로 억제해야 한다고 분명한 어조로 선언하였다. 이것이 인류가 존재하는 한 영구히 지켜내야만 하는 ‘대기 중의 탄소할당량’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매년 37기가 톤을 배출하고 있어서, 이대로 진행되면 2035년에 주어진 할당량을 초과하게 된다. 이제는 지체함 없이 탈-탄소화의 조치를 취해야만 한다. 이미 지구온난화가 한참 진행되어서 산업화 이전에 비하여 평균 섭씨 1.1도가 상승되었고, 지역에 따라서는 훨씬 높은 수준으로 악화되었다. 문제를 해결할 마지막 기회는 앞으로 남은 불과 수십 년뿐이다.

유럽연합은 기후현안에 대하여 지난 수십 년간 국제사회를 주도하여 왔으며, 코로나-19라는 위기를 맞이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도의 야심찬 대응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여러 가지 준비사항 중에는, 유럽집행부 부위원장인 Frans Timmermans가 적절하게 지적하였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그린촉진 계획인 ‘유로-그린딜’을 추진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55%까지 낮추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2050년에는 탄소중립화를 실현하는 것을 약정하고 있다.

이러한 야심적 계획을 지원하기 위하여, 유럽연합 가입국가들은 유럽투자은행EIB를 유럽기후은행(EU Climate Bank)으로 전환하는 것에 동의하였다. 기후운행은 2021-2025년간의 로드맵을 작성하면서 EIB가 향후 10년간 1조 유로(1.2조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기후관련 분야와 환경지속의 영역에 투입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로써 EIB는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파리협약에 연계하여 조직을 운용하는 최초의 다자적 투자개발은행이 되었다.

이를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시행하기 위해서, 유럽은 자신들의 이러한 내부적인 노력을 적극적인 외교전략과 함께 병행해야 한다. 실제로 유럽은 지구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량의 겨우 8% 수준에 책임을 지고 있기 때문에 기후대응의 노력이 유럽에만 국한되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만약에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향후 추가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 수요를 석탄과 가스 발전소에 의존하여 공급하는 것을 허용한다면, 지구온난화를 제한하겠다는 우리들의 희망은 대기로 흩어지는 연기처럼 허망하게 사라진다. 우리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유럽의 야심찬 계획에 동참하도록 설득시켜야만 하고 이들도 필요한 대응조치를 취하도록 강제하고 함께 도와야 한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럽이 기후외교에 대한 국제적인 주도권을 행사하여 필요한 만큼 경제적 외교적 무게를 실어야 한다. 기후에 대한 노력을 현실정치와 결합시키고, 기술혁신과 지속가능발전을 불가역적으로 연계해야만 한다.

오로지 혁신을 통해야만 유럽의 미래경쟁력을 보장하고 유럽국경의 안팎에서 기후도전에 대응할 수 있다. 오로지 기술혁신과 그린분야에 대한 투지를 지속해야만 아프리카와 제3 지역에서 회복탄력적resilient 경제를 촉진시킬 수 있다.

유럽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시장과 무역의 지역단위로서 유럽은 수입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규칙과 기준을 설정할 힘을 가지고 있다.

이미 전세계의 주요한 국가들과 지역 간의 통상협약과 전략적인 파트너-십의 체결을 진행하여 왔다. 동시에 유럽연합과 회원국가들은 제3세계에 대한 개발공여와 인도적인 지원에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왔다. 이에 더하여 EU는 유럽투자은행EIB를 통하여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자적 원조의 제공주체이다.

유럽투자은행EIB의 자금투입력(firepower)이 절대적으로 긴요한 상황이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설정한 기후목표와 지속가능의 개발목표를 실현하려면, 향후 매년 2.5조 달러규모의 투자액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는, 특히 개발도상국가군에서는, 공적 영역에만 의존할 수 없다. 그린-채권(bonds)분야의 공적 금융기구이자 국제사회의 선도자로서 유럽투자은행EIB은 지속가능 투자사업 분야에 대한 민간금융영역의 재정렬(redirecting)과 모든 사업의 경제성을 확인하고 보증하는 이중의 역할을 주도해야 한다.

국제사회에 자극을 주기 위하여, 유럽연합은 가용이 가능한 모든 조직과 수단을 과감하게 동원하여, 유럽과 인근 지역에 코로나-19로 발생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대처하는 노력을 공유하면서 동시에 보다 광범하게 기후현안을 함께 대처하도록 계획하고 추진해가야 한다.

이에 더하여 타 지역의 개발은행들도 유럽투자은행과 발맞추어 파리협약에 부응하는 운용방식을 채택하여 저-탄소와 기후회복 등의 발전경로를 구축해 나가야 하며, 최소한 그린전환 활동을 저해하는 일을 방지해야 한다.

차기의 유엔기후회의(COP26)가 오는 11월에 영국의 글래스고우에서 열릴 예정이며, 이는 지구적 규모의 야심찬 구상을 추진할 절대적인 기회(crucial milestone)이다. 기존의 기후회의처럼 구속력이 없는 다자적 협의가 아니라, 가능한 모든 국가들 특히 주요 배출국가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확약하고 강제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조만 간에 유럽의 외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글래스고우 기후회의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와 유럽-그린딜의 구상을 국제적으로 확대하는 기후에너지의 외교전략을 협의할 것이다.

기후행동을 가속화하고 에너지전환을 추진하는 것이 유럽연합의 외교전략 및 파트너 국가들과 협력의 핵심사항이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조 바이든 미국대통령이 업무개시 첫날에 파리협약의 재가입을 결정한 것을 환영한다.

오늘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미래 수십 년의 향배를 좌우한다. 유럽연합은 2021년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지구적 싸움을 지원하는데 모든 외교적 금융적 가중치를 부여하는 ‘한해’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이는 또한 유엔 사무총장인 António Guterres가 강조하였듯이 ‘우리의 시대를 가름하는 현안-defining issue of our time’이기도 하다.

 

출처: Project Syndicate on 2021-01-24.

Josep Borrell

유럽연합 집행부의 부위원장이며 외교안보분야의 최고위직 책임자

Werner Hoyer

유럽투자은행EIB 총재

 

수, 2021/02/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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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 두 대통령 스캔들로 2019년을 뜨겁게 달군 베네수엘라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국회도 아닌 광장에서 스스로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한 야당 과이도 의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일이다. 그는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 직후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대미문의 정치권 ‘희극’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어설픈 시나리오와 기획,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발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인 ‘작품’이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라는 설정으로 일정부분 ‘흥행’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을 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이에 보조를 맞춘 외신들의 호들갑스러운 ‘공모’ 덕이다.

과이도 의원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셀프임명’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쏟아냈고, 아쉽게도 한국도 그중의 하나였다. 애초부터 적법한 절차나 정당성을 상실한 이 같은 ‘선언을 위한 선언’은 그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명분’있는 개입, 더 나아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야당조차 국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베네수엘라 야권이 지난 2년간 보여준 행보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다.

게다가 민주적 해결이라면 대화 혹은 선거라는 장치를 통하는 것인데, 야당은 여당 지지층의 결집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가 더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야권과의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마두로 정권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합의된 대화에 불참하거나 불이행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의 진전도 허용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G4의 야당 연합은 줄곧 국내적으로는 폭력적인 가두시위를 선동하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미국의 군사개입을 노골적으로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이는 같은 해 9월 미주연합기구(OEA)의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을 발효,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공식화하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사태의 정점에 있던 자칭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홀로 ‘군림’했던 과이도 의원의 퇴장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선,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277석 중 256석을 얻어 의회 권력을 다시 회복했고, 의회 권력을 통해 현 정권을 사보타지 했던 야당은 이제 국회라는 ‘합법적’인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네수엘라 야당 내에서는 물론 일반 야당 지지층 국민 사이에서도 처음부터 지지가 높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가장 큰 기반은 미국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 뿐이다. 국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상태로, 명분은 고사하고 적법한 정치적 절차나 정당성 상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는 콜롬비아 마약 범죄조직과의 연루설과 불법 자금 유용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산적하다.

아래 사진[사진1]은 얼마 전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점령’한 일을 풍자하며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베네수엘라의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태그를 달고 SNS로 공유되는 사진의 일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과 과이도 의원이 2020년 베네수엘라 의회로 들어가기 위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과이도 의원은 이미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를 빗댄 풍자와 해악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진1] 베네수엘라에서 공유되는 과이도와 미국을 풍자하는 SNS 캡쳐화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9년 국회의원 의장 임기가 끝나는 과이도 의원을 이어 새로운 의장을 선출해야 했던 2020년 초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일어난 진풍경이다. 새로운 국회의장 선출을 ‘보이컷’한 과이도 의원이 뒤늦게 의회로 진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2019년 과이도 의원이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16년 거대 야당 연합으로 차베스 진영에서 국회 권력을 가져온 야당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즉 국회의장 자리를 주요 거대 4개 야당(G4)에서 번갈아 맏기로 하였고, 그 결과 과이도 의원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Voluntad Popular)당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월 그는 국회의장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의석수 불충분이라는 핑계로 선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수의 과이도 지지자를 제외한 야당 연합 G4은 정의제일당(Primero Justicia)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며, 지난 1년간 ‘명실상부’하게 두 명의 국회의장을 두는 초법적 선택을 하며, 야당의 끊임없는 자중지란이 이어졌다.

스스로 국회의장이라는 자격을 내세워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하고 1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야당 내 자중지란으로 귀결되었으나, 과이도 의원의 ‘위상’에 이만저만한 생채기가 적지 않았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과이도 의원은 베네수엘라 야권과 그 지지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쏟아진 지나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기실 베네수엘라 사회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이나 헤게모니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어쩌면 베네수엘라 야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줄곧 ‘무대’에 올랐던 그는 국제사회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의 그림자가 강력히 드리워진 베네수엘라의 주요 4대 야당 연합은 속칭 G4라 부른다. 과이도가 속한 소수정당인 민중의지당을 포함, 민주행동당, 새 시대, 정의제일당 등을 포함한 이 연합은 가장 극우적 성향의 집단이다.

한편, 과이도 의원의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당의 실세는 레오폴도(Leopoldo)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이도 의원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다. 차베스 사망 이후 끊이지 않았던 폭력사태(병원건물방화, 길거리 폭력시위 등)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법원판결에 따라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얼마 전 일어난 군부 쿠데타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자 주베네수엘라 스페인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 지금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레오폴도 길(Leopoldo Gil)은 지난 2015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 현재스페인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인민당(Partido Popular)소속으로 2019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이도 의원의 대통령 ‘셀프선언’ 이후 스페인이 과이도 ‘체제’를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레오폴도는 법의 심판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으나, 외신들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잠시 해외로 몸을 피한 ‘애국자’인 듯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이 궁금한 것은 그의 ‘애국행위’가 아니라, 그가 마드리드 고급 아파트에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만유로(한화 1300만원)의 출처다.

최근 치러진 총선의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핑크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의 야당 연합 G4의 계속되는 정치권 사보타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은 바이든의 민주당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상기해보면,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의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2015년 오바마 시절의 일이다.

과이도의 등장으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할 때, 카라마스 도심의 한 공원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모습

지금까지 베네수엘라를 다루는 거대 자본의 미디어들은 대부분 진실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왜곡된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사실관계 파악이 아닌 외신을 번역해서 나르는 일이 전부였다.

2019년 과이도 의원의 등장으로 야단법석을 떤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였을 뿐 정작 베네수엘라는 평온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이를 희망하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한, 그들의 시간은 묵묵히 그들의 편에서 흐를 것이다. 비록 국제사회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선택을 끊임없이 막아설지라도.

이제는 그만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정이나

목, 2021/02/04-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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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며: 인성과 순환경제의 관계

인성(人性)은 인간의 기본이 되는 정신적인 전제이고 순환경제는 사회경제의 대안적인 틀을 말하는데, 이 둘을 연결시키는 것은 사회과학에서는 환영 받을 수 없다. 인간이 자연생태와 관계를 가지는 방식 자체가 문화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물질적 측면을 말하면 경제이고, 그 중에서도 산업과 노동은 사람이 자연의 물질들을 직접 대하는 활동이다. 산업은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사람은 자연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으로 존재한다. 노동하는 방식과 형태를 통해서 삶을 영위하고 자신을 표현한다. 산업의 조직이 자연에서 벗어난 것일 때 이는 노동을 폭력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람의 인성을 파괴하고 건강을 소진시킨다. 이러한 타율적인 노동에서는 창조적인 결실도, 노동방식도 나올 수가 없다. 노동이 문화로부터 소외되고 자연이 산업과 노동의 과정에서 파괴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발상의 전환이다. 그것은 경제와 경제학의 전제로 되어 있는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이다. 첫째는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아까워하지 말고 빨리 처분해야 한다는 생활 관념이다. 그럴 때 생활공간이 확보될 수 있고, 물자의 유동성이 커지고, 수요도 창출되고 경제의 흐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인구 또는 노동력은 생산에 필요한 소비 수요의 원천으로서는 중요하지만, 생산요소로서는 별로 능률적이지 못하고 사용을 줄여야 할 대상이라는 관념이다. 이러한 생각에서 두 흐름이 나타난다. 생태주의자들은 물질과 에너지 사용량이 지금의 생태환경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크게 넘으므로 인구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인즈주의자들은 시장이 커야 규모의 경제가 성립하고 산업이 안정적으로 발달할 수 있으므로 나라의 인구 규모가 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둘 모두 인구를 가치창출의 주체로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두 고정관념으로부터 사람을 가치창출의 원천으로서 소중히 여기고, 물자의 취득과 처분도 능률보다는 그 쓰임새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가치의 원천이 노동에 있다는 노동가치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의 창조적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결정적인 생산요소이며, 건강한 생태환경에서 사람을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노동자가 존중을 받으며 창조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작업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투자가 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사회의 제도적 뒷받침이 이러한 사람과 노동과정을 도와주는 것을 가장 중요한 목표를 삼는다면, 지금과 같은 산업의 형태는 달라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의 경제사상은 이런 측면에서 재해석될 수 있다.

동학의 가르침에는 물건에 대한 존중이 경물(敬物)이라는 개념으로 강조되고 있다. 더 이상 쓸모 없게 된 물건을 과감하게 정리하여 버리는 것이 최근에 생활의 지혜로 강조되고 있고, 여기저기서 물건들을 끌어 모아서 집에 발 디딜 틈 없이 채워놓는 사람들이 정신적인 결함을 가진 이상한 사람들로 화제가 되는 경우도 간혹 있다. 이런 세태와 경물(敬物)의 사상은 서로 상충되어 보인다. 형체를 가진 물건, 삶에 도움을 주어온 물건에 대한 애착심이나 버려진 물건에 대한 연민은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감정일 수가 있고, 창조적인 쓸모를 생각하게 하여 새로운 창조의 원천이 될 수가 있을 것 같다. 원천적인 사용 및 폐기량 절감(Reduction) → 재사용(Reuse) → 물질재활용(Recycle)의 3R 또는 폐기물 제로의 운동은 쓰고 버리는 자본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이면서 돈을 떠나 물건을 아까워하는 사람의 고유하고 선량한 본성을 되찾는 운동으로 볼 수가 있고, 버려진 물건을 재료로 한 창조적 용도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깨어 있는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3R 또는 폐기물 제로 운동은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대량폐기의 산업문명의 부작용을 완화해 주고, 그 산업체계의 일부를 이루는 재생산업의 재생비용을 절감해 주는 선량한 소비자의 산업경제에 대한 책임 분담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에 그치지 않고, 시간을 들여 재활용을 위한 분리배출을 실천하고, 재사용과 원천적 절약에 노력해 가면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 간다면, 이는 인구 전체의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다. 물건을 낭비하고 폐기하는 생산소비 문화는 사람 역시 값싼 생산의 요소로서 남용하게 되고 이에 따라 풍요한 물질 생활 속에서도 삶의 질과 환경의 질은 점점 악화되고 자원의 고갈과 지구환경의 황폐화, 사회갈등의 폭발은 피할 수 없는 미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의식의 변화와 문화적 변혁이 토대가 되어 민주적인 정치를 통해 생태위기를 극복해 갈 수 있는 정책들이 개발되어 갈 수가 있다.

순환경제라는 용어는 자원재활용에서 자원순환을 거쳐 경제 체제 자체로 더욱 확장된 개념이며, 사실은 과거의 전통시대의 경제에서 유사하게 구현되었던 형태로서 현실의 경제 체제가 아니라 관념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R운동에서 확장된 관념이고, 이러한 관념적인 체제를 목표로 하여 여러 가지 제도들과 정책들을 설계해 갈 수 있다.

적어도 순환경제는 근대 경제학의 성장 중심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생태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건강한 먹을거리와 주거지, 대자연 속에서 배움과 치유와 재충전을 하게 하는 문화 활동의 터전을 마련해 주는 것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수계(水系)를 단위로 한 순환경제가 이러한 원리에 따라 운영될 때 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동은 건강한 노동이 될 것이고, 이러한 노동자들의 노동과 삶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으로서 생태적 영성이 중요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2. 산업사회에서의 자원사용 관행

산업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학에서 투자의 가장 중요한 결정요인은 수익률이다. 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하여 노동이란 생산요소를 최소화하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며 저렴한 에너지와 원재료를 투입하여 원가가 낮고 부가가치가 높은 제품을 생산하려는 노력이 경주된다.

저렴한 비용으로 에너지와 원재료를 마련하기 위하여 생태환경이 착취되고 고갈된다. 생산과정에서는 끊임없는 노동절약적 기술혁신과 구조조정으로 노동자들의 지위가 하락하고 소모품처럼 과도하게 사용되다가 버려지며, 또한 시간적인 능률을 극대화하여 다량의 물자가 아낌없이 산업폐기물로 버려진다. 그리고 생산된 많은 제품들이 인위적으로 짧은 수명을 가지도록 조정되어 대량으로 폐기되도록 한다. 이를 통해 2차 제품, 중고품 시장도 생겨나며, 폐제품과 포장에서 원료물질을 회수하는 자원재활용이 하나의 산업으로서 자리 잡는다. 폐제품과 포장의 전량 소각과 매립으로는 생태환경뿐 아니라 주민들의 생활환경 자체가 보장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자원순환 또는 재활용 정책은 이러한 자원회수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관리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며, 이를 잘 관리하는 것은 소각과 매립의 허용 용량이 제한된 상태에서 환경을 보전하는 데 큰 중요성을 가진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구매가 늘어 택배를 위한 포장재가 대량으로 발생한 반면에 세계 전체적으로 경제활동은 침체되어 원재료 가격이 하락하고, 이에 따라 재생원료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어 폐자원 수거의 동기가 약화되면서 폐제품의 재활용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적체 현상을 보이게 되었다.

자원재활용 또는 자원순환은 경제 자체가 무한경쟁의 산업 논리로 운영되는 가운데 하나의 작은 고리를 담당하면서 경제 시스템의 작동 불안에 따라 가장 먼저 침체되는 부문이고, 이에 종사하는 많은 인력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으로서 이에 따라 가장 큰 피해를 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자원재활용이나 자원순환은 자본주의적 산업경제의 논리를 극복하는 활동이라기보다는 그 경제의 부산물로서 발생하는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는 부속물로서 기능한다는 한계점을 가진다.

그렇기는 하지만, 자원재활용 사업은 소비자들의 분리배출 노력에 상당히 많이 의존하며, 분리배출의 노력 여하에 따라 재생자원의 품질과 부가가치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분리배출 방법에 대한 교육과 자원의 순환을 통한 생태환경의 보전 원리에 대한 교육이 환경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실시된다. 이러한 교육과 분리배출의 체험을 통해서 자원 순환과 생태 환경보전에 대한 의식을 많이 가지게 되는 교육적 측면이 있다.

 

3. 순환경제 개념의 등장

중국에서 2008년도에 순환경제촉진법이 시행되면서 순환경제가 제도적인 용어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전통적인 농경문화에서 발달되었던 중국의 전통 철학사상, 마르크스를 중심으로 한 19세기 사회주의 사상과 관련이 깊은 변증법적 유기적인 자연관과 연결되며, 중국의 산업발전 과정에서 직면하는 자원과 환경오염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물질흐름의 순환 고리를 형성하는 지혜를 동원하는 지식경제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발상이다. 중국에서는 환경보호부가 아닌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라는 경제계획 단위에서 순환경제 정책을 담당하고 있다.

그 후 유럽연합에서 순환경제를 표방하면서 포장재, 전자제품 등의 획기적인 재활용 증대 노력에 순환경제(circular economy)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생물경제(bio-economy)의 이니셔티브가 가동되고 있다. 이는 산업에 필요한 원재료와 에너지를 화석연료와 지하자원에서 얻는 것을 대체하여 지상에서 재배하는 식물과 육상과 수중의 동식물 등 바이오매스를 가공하여 확보해 가는 노력을 말하는 것이며, 그린 케미스트리(green chemistry)라는 이름으로 화학 등 소재산업과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많은 노력이 행해지고 있다. 이러한 생물경제에서 나오는 부산물이나 폐기물은 자연스럽게 토양으로 돌아가 자연으로 환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서 순환경제와 생물경제를 합하여 순환형 생물경제라는 용어를 중요한 노력의 방향으로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같은 순환경제, 생물경제 그리고 순환형 생물경제의 노력들은 자본주의적 산업 문명이 초래한 화석연료의 다량 사용에 의한 온실가스 문제와 환경 중으로의 폐기물의 확산으로 인한 오염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들로서 현재 많은 주목을 받고 기술적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다만 유럽을 중심으로 본다면 순환경제는 주로 금속과 화석연료계통의 플라스틱 원료, 종이, 유리 등의 물질을 대상으로 하는 반면에 생물경제는 농업, 임업, 수산업 등에서 생산되는 바이오매스 물질을 대상으로 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순환경제라는 용어가 법령에 도입되지 않고 있지만, 2018년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하여 폐기물의 발생을 최대한 억제하고 발생된 폐기물의 순환이용 및 적정한 처분을 촉진하여 천연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임으로써 환경을 보전하고 지속가능한 자원순환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함”을 목적으로 하는 자원순환기본법이 시행되면서 “자원순환사회”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법령은 독일의 “순환경제 및 폐기물의 친환경적 처리를 위한 법률”(1994)이나 일본의 “순환형 사회형성을 위한 기본법”(2001)을 모델로 삼고 있고, 자원순환을 넘어서 자원순환사회 또는 순환경제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일정하게 담고 있다. 그러나 제도적으로는 여전히 폐기물관리법의 제도를 근간으로 이를 일정 부분 보완하는 성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의 행정이 여전히 기계적 관리의 사고방식을 가진 관료기구의 행태에서 달라지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4. 생태계와 노동을 존중하는 순환경제의 필요성

지금의 생태계 위기를 초래한 산업의 운영 논리를 바꾸지 않으면, 자원재활용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구와 그 안의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쇠퇴해 갈 것이라는 전망이 점차 강하게 대두하고 있다. 이에 대응하여 인간과 토지, 원재료, 에너지 등의 생산요소들의 조합을 전체적으로 다시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현재의 자본주의적 산업사회의 경제 패러다임에서도 경제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구집단의 교육수준과 건강, 정신적 역량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고전경제학의 애덤 스미스와 프리드리히 리스트의 경제학 체계에서 모두 강조되었다. 이러한 요인이 역사적으로 여러 나라들 간에 경제적 수준의 차이를 발생시켜 왔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의 관점을 떠나서 보더라도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환경의 불확실한 변동의 가능성 앞에서 이에 창조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은 외부에서 도입되는 기술이나 자금이 아니라 역시 인구집단의 능력에서 나온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는 노동을 지혜나 지식, 창조적 능력에서 소외되어 피동적이고 지시 받은 대로 행하는 단순 작업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이는 노동을 최대한 절약해야 할 비능률적인 생산요소로 취급하는 금융자본의 논리에 길들여진 결과다. 이러한 금융자본의 논리에 따른다면 불확실한 자연여건의 변화에 대응할 유일한 길은 첨단 기술을 국내의 역량으로 개발하거나 외부에서 도입하여 자본투자를 통해 돌파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적응 방식은 지구환경을 더 악화시키며 사회의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창조적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인적 자원으로서의 노동자의 새로운 위상정립을 통해 집단적인 힘으로 기후변화의 진행에 적응해 가야 하는데, 이는 생태환경의 건강과 일하는 사람의 건강을 같이 중시하는 산업 운영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노동자들의 의사결정 상의 지위가 확보되어야 하고, 건강과 생태환경에 대한 이해를 돕는 지식과 문화가 노동 문화로서 자리 잡아야 한다. 이를 통해 엘리트나 자본가들이 아니라 다수 인구집단의 의사에 의해 순환경제로의 전환을 향한 노력이 진행되어야 한다.

 

5. 순환경제의 과제

순환경제는 전통적으로 생활과 역사, 언어 특색, 문화에서 동질적인 지역이었던 유역 내지 수계(水系)를 단위로 그 지역의 풍토와 자원, 인력을 활용하여 그 지역의 문화에 부합하는 의식주 형태를 이루어 가면서 그 지역의 독특한 생물자원을 활용한 건강과 의료, 교육, 문화예술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순환경제 권역은 지형과 수계(水系)에 따라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우리나라에는 수계를 중심으로 대권역 21개, 중권역 117개, 표준권역 840개로 수자원지도가 그려져 있으며, 이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순환경제의 권역이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해외에서 도입하는 화석연료와 지하자원, 원거리에서 끌어오는 전기 에너지의 사용은 최소화하고 지역에서 확보되는 재생에너지원과 생물재료를 개발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전통지식을 발굴하여 응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금융자본에 따른 엘리트주의적 산업 운영 방식이 아니라 가능한 최대다수의 사람들이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협동조합 등의 대안적 기업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 현재의 토지이용 형태가 생태계의 온전성(integrity)을 저해하는 형태였다면, 순환경제에 따른 물질 흐름에서는 지역의 에너지원과 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므로 토지 이용 형태가 크게 달라져야 하고, 생태적인 측면에서도 토지가 효율적, 경제적으로 이용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토지 사유제도의 개혁도 필요하다.

각 단위지역별로 자치단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게 되는데, 특히 이러한 순환경제의 패러다임에 맞는 교육기관을 세워서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이 중요하다. 중등 및 고등교육 기관의 기존 교육 형태를 절반 정도는 전환하여 해당 지역의 의식주 문화와 공예, 기술을 담당하는 인재를 양성하도록 하여야 한다.

산업 사회에서 중심이 되어 온 상품인 자동차 등의 운송수단, 통신수단, 전자기기 등의 생산부문은 기존의 방식대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추구하는 대기업 중심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지만, 생태환경 보전의 조건이 더욱 엄격하게 지켜져야 하고, 노동자 사용의 관행은 지금과는 달라져야 한다. 그리고 공장부지 등을 위한 방만한 부동산의 확보는 규제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녹색전환은 지금의 자본 중심 체제에서는 시도하기가 물론 어렵다. 예컨대 이에 필요한 토지 부동산 개혁 자체가 지금의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성공할 가능성이 낮다. 상당한 정도의 지방분권이 가능해야 하고, 지금보다 훨씬 강한 토지 공개념, 경제학 지식 및 교육내용의 전면적인 재검토,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되는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와 교육 체계의 수립, 국가의 산업정책, 에너지 정책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적자원의 역량 수준을 높이는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특히 기후 위기와 기후 변화로 인한 생태환경의 대변동의 시대에 적절하게 적응하기 위해서는 엘리트 중심적이고 자본 중심적인 지식생산과 기술적 응용 체제만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고 노동하는 인구 저변의 지식과 의식 수준, 그리고 창조적 역량을 높이는 데 정책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노동정책과 교육정책, 보건복지정책,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농림수산식품 정책, 깨끗한 물과 공기, 생태환경을 보호하는 환경정책, 건강하고 충분한 주거환경을 보장해 주는 주택정책, 에너지 공급정책 등이 인적 자원의 건강과 능력 향상을 중심으로 통일적으로 수립되어야 하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치와 정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

전자제품, 화학제품, 자동차, 금속제품 등을 생산하여 국제 시장을 상대로 활동하는 대기업 중심의 산업 체제를 지원해 주는 자본 중심적 엘리트주의 산업 정책은 청년인재들의 신규 창업과 창조적인 사업활동을 도와주는 산업 정책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것은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과제다. 민주주의는 최대다수의 사람들이 주인으로서 참여하는 정치이므로 인구 전체의 고른 발전과 복지를 목표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는 기후위기의 시대에 대처하는 데서 더욱 더 절실하다.

 

이승무

순환경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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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2021/02/05-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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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백악관 내 바이든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조언하는 설리번 안보보좌관은 첫 번째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국이 다루어야 할 주요 상대국가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이란을 지목하였다. 상기 설리번의 언급에 대하여 이를 분석한 제3국 외교관 출신의 관점을 아래의 칼럼을 통하여 소개한다. 동시에 이는 전반적인 국제외교의 이슈들은 국무부가 주관하되, 상기의 3개국에 관한 현안은 백악관이 직접 개입한다는 암시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현안은?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US National Security Adviser Jake Sullivan)은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러시아, 이란, 중국에 대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에 대해 프리뷰를 제공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는 선별적 관여(selective engagement of Russia)를 하는 반면 중국과 이란에 대한 외교정책은 트럼프 시절에 대비하여 대변화가 예상된다.

 

러시아

설리번은 미국정부의 시스템뿐만 아니라 주요한 기간시설 그리고 최근 밝혀진 민간기업에 대한 대규모 사이버 공격에 대하여 러시아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이 “러시아가 눈치채도록 미국의 보복조치를 공개적으로 진행하기를 원치 않았지만(He didn’t want to “telegraph our punches)” 러시아에 반드시 “실질적인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임을 경고했다.

사이버 공격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얼마나 깊고 광범위하게 공격을 받았는지, 그리고 정확하게 그러한 사이버공격의 결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면밀한 평가가 이뤄지는 동안 바이든은 러시아가 대가를 치르게 될“적절한 시기와대상을 결정할(choose his time and place)”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는 “러시아에 대한 일시적인 첩보 활동의 가능성”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 파괴적인 공격행위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바이든은 첫날부터 보좌관들에게 사이버보안이 “바이든 행정부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국가안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과 구-소비에트가 서로를 겨냥한 수천의 핵탄두를 배치하고 서로의 경쟁에 대해 존재론(사생결단)적 용어로 말을 하던 시절인 냉전시대에도, 협력의 영역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군축과 핵확산방지에 관해서는 협력했음을 지적하면서, 설리번은 냉전시대와의 유사성을 언급했다.

따라서 미국과 러시아는 오늘날의 긴장관계 속에서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 군축과 전략적 안정성이라는 의제에 대한 논의를 진척시키기 위해 “행동할 수 있다”. 바이든은 새로운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ies)의 재개를 1월 20일 취임식이 끝나는 즉시“바로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고 설리번이 밝혔다. 그는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는 START협정을 연장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임을 인정했다.

설리번은 러시아와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다른 이슈들을 포함하거나 러시아가 배후인 도전들에 맞서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를 “수정주의 국가(revisionist power)” 등으로 부르는 것 말고는 “러시아의 공격”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의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언급도 하지 않았다.

설리번의 이러한 신중한 발언은 지난 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바이든에게 성탄 및 신년 인사를 전한 며칠 뒤에 이어진 것이다. 푸틴 대통령은 “세계가 코로나-19팬데믹과 여타의 도전들”을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서 “폭넓은 국제협력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했다.

푸틴은 “러시아와 미국은 동등하게 서로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지역과 전세계적 수준에서의 안정과 안보 증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나타냈다.

 

중국

중국에 대한 설리번의 발언을 통해 짐작할 수 있는 것은 바이든의 접근방식이 트럼프행정부와는 완전히 다를 것이라는 점이다. 설리번은 트럼프가 지난 4년 동안 동맹국과 협력국들에게“싸움을 걸면서” 미국 혼자서 중국을 떠맡았다고 비판했다. 이와는 달리, 바이든은 심각한 중국의 나쁜 무역관행, 즉 미국 노동자와 농부, 그리고 기업에 손해를 입히는 덤핑, 국영 기업에 대한 불법 보조금, 강제노동 및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활동 등에 미국이 어떻게 함께 영향력을 행사하면 좋을지에 관해 “동맹국 및 협력국과 협의”하고자 한다.

설리번은 바이든이 연방의회의원들과의 광범위한 접촉을 통하여 바이든 행정부의 중국정책을 추진하는데 도움을 유도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감을 드러내었다. “바이든은 중국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분명히 내세우고 있으며 정치나 국내 유권자들에 휘둘리지 않고 미국의 국익에 근거한 전략을 추진해 나갈 것이다.”

설리번은 이를 두고 “명민한 전략(clear-eyed strategy), 즉 중국이 통상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서 미국의 이익에 대립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심각한 전략적 경쟁자임을 인식하는 전략”이라고 묘사했다. 동시에 환경위기의 문제처럼 “중국과 협력하는 것이 우리에게 이익이 될 경우, 협력을 모색하는 전략이기도 하다.”

설리번의 말을 인용하면, 바이든의 전략은 “미국의 강점인 자원들(our sources of strength)에 집중해 테크놀로지, 경제활성화, 혁신 분야에서 중국과 보다 효과적으로 경쟁하고 동맹국들에 보다 효과적으로 투자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레버리지(영향력)을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은 국제기구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중국보다 먼저 미국과 그 협력국가들이 “핵확산방지에서부터 국제경제에 이르는 이슈들에 관한 주요 협상 테이블에서 주도권을 잡을 것이다.” 설리번에 따르면 바이든의 전략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과 미국의 국익, 그리고 “이러한 경쟁상황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점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분석에 기반할 것이다.

설리번은 특정 사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그는 트럼프의 인도-태평양전략 또는 4자안보대화(Quad, Quadrilateral Security Dialogue)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중국에 대해서 일체의 비판적인 발언을 하거나 대만, 홍콩, 신장이나 티벳 등의 논쟁적인 사안들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이 “중대한 전략적 경쟁자(serious strategic competitor)”라는 설리번의 규정은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단순하게 적수(rival), 타협불가능한 적(irreconcilable enemy), 침략자(aggressor)로 공격한 것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설리번은 실제로 양국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면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 거듭 강조하였다.

 

이란

이란이 과거보다 현재 핵무기의 개발에 더욱 다가서게 만들었고, 이란의 정책들이 “계속해서 끊이지 않는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 트럼프의 최대 압박 정책(maximum pressure policy)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정도의 실패작이었다고 설리번은 노골적으로 강조해 말했다.

미국이 보다 강화된 핵협상 타결을 이끌어내고 이란의 악의적인 행동 등을 중단시키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약속들은 확실히 지켜지지 않았다. 카셈 솔레이마니(Qassem Soleimani)의 암살은 “미국이 지닌 파워를 한가지 요소에만 집중하고 외교를 완전히 제쳐둔 패착”으로 미국의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궁극적으로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만일 이란이 핵원료의 대량비축을 축소하고 원심분리기의 일부를 해체한다는 ’2015년 핵협정준수’라는 합의로 돌아온다면 미국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바이든의 입장을 설리번은 재확인시켜주었다. 이에 덧붙여 설리번은 “상기 입장이 후속협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다음의 사항을 강조했다.

▪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후속협상의 일부로서 “검토되어야 한다.”

▪ P5+1(JCPOA협상참여국)을 뛰어넘어 “지역의 국가들을 참여시키는” 대화가 있을 수 있다.

▪ 상기의 “보다 광범위한 협상”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이란의 탄도미사일 기술을 확실하게 제한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바이든 행정부가 핵개발과 지역 현안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제들을 외교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 협상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온 설리번은 2015년 핵협상의 주된 논리가 합의를 통해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묶어두면서, 다른 현안에 대해서는 이란을 이전의 출발점으로 되돌리기 위해 제재나 정보수집능력, 억제력(deterrent capacity) 등 모든 사항에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미국은 2015년의 핵협정을 통해 다른 현안들에 대한 이란의 행동을 변화시킬 것을 미리 설정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예상했던 것은 만일 미국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합의된 협정으로 단속할 수 있다면, 덕분에 다른 현안들을 조금씩 개선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이라는 열매를 맺게 한 특징인 “전쟁억제력이 뒷받침된 명민한 외교술(clear-eyed diplomacy backed by deterrence)”을 트럼프 시기에 미국이 추구하지 않았음을 설리번은 유감스러워 했다.

그렇긴 해도 “우리가 기대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핵협정에 여러 사항들을 함께 연동시킨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핵협상이 진행되면서 상황의 진전이 이루어지면 다른 현안들에서도 당연히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으며 다만 그 과정에서 각자 현안들이 지닌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문제를 살펴보려고 했던 것이다.”

트럼프의 “최대압박” 전략이 인정사정 없이 폐기처분되고 미국과 이란의 새로운 관계가 가능해지면, 이스라엘, 사우디, 아랍-에미리트는 분명 실망할 것이다. 바이든은 앞으로 이란과의 협상과정에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를 함께 연동시키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이란이 지닌 미사일 능력이 이스라엘의 호전성뿐 아니라 이들 두 나라에 의한 대규모의 군사력 증강을 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충돌하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란은 자국의 전쟁억제력을 일방적으로 포기하는데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이스라엘이 군비를 축소하거나 사우디 혹은 아랍에미리트가 과도한 무기구매를 줄이는 데 합의할 것 같지도 않다. 아마 틀림없이 서구 강대국들 스스로 수익성 좋은 서아시아의 무기시장이 고갈되는 것에 그다지 열광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란의 방어능력에 관해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앞으로도 그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라는 설리번의 발언에 대해 이란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미국은 이란을 다독거려야 할 것이다. 포괄적 공동행동계획하에 미국의 제재를 점차 완화하는 것이 그러한 방향으로 가는 조치가 될 것이다. 요컨대 설리번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대한 공식적인 재협상을 요구하는 것을 꺼려했다. 설리번은 그것을 “후속 협상(follow-on negotiation)”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제부터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는 상당한 긴박감이 있을 것이다.

현재 이란의 농축우라늄 비축은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이 정한 한도를 이미 상당히 초과한 상태다. 마침 오늘, 이란은 포르도(Fordow)지하 핵시설에서 가스주입 전 처리 단계를 시작했고 UF6형 농축우라늄이“몇 시간 후에” 처음으로 생산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출처 : 글로벌리서치(Global Research, 캐나다 소재) 2021-01-17.

M.K.Bhadrakumar

30년 경력의 인도출신 외교관으로 독일 스리랑카 한국 그리고 러시아 등 지역의 대사를 역임한 후 외무부 부장관을 지냈으며, 지금도 아시아 지역과 러시아에 관하여 왕성한 기고활동을 하고 있다

번역 : 김소형

토, 2021/02/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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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의 정치분석가들은 새로운 바이든 행정부를 오바마와 바이든의 합성어인 Obiden 정부라고 부르면서 오바마 시절과의 연속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은 비록 당시의 많은 인사들이 다시 복귀하여 활동을 개시하고 있긴 하지만, 이들은 4년 전과 이미 많이 달라진 세계와 대면하고 있다.

국제사회라는 무대에서 지난 4년 동안 ‘자국우선주의’를 추구하면서 미합중국은 다자적인 국제기구들에서 탈퇴하였고, 기존의 공고했던 대외관계를 재검토하게 만들었다. 어째든 조 바이든이 46번째 미합중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러한 흐름에 종지부를 찍었다.

비록 국제사회가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에 안도의 숨을 쉬고, 다자적 포용정책과 보다 투명한 예측을 기대하겠지만, 오바마 시절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어려울 듯 하다. 바이든이 집무를 시작하기 직전, 독일의 수상인 Angela Merkel은 다음과 같이 경계를 표하였다 “당장 내일부터 양국 간의 대단한 화합이 이루어지길 기대하지 말 것.”

미국은 이미 이란핵합의와 파리기후협약에서 철수하였고 중국과는 통상정쟁을 시작한 상태이며, 이에 대응하여 독일을 포함한 유럽연합은 과거와는 다른 경로를 추구하며 상기의 두 가지 합의 사항을 견지하면서, 별도로 중국과는 투자에 대한 포괄적 협정CAI이라는 역사적 계기landmark에 서명하였다.

트럼프의 시절 동안, 독일과는 나토의 분담금에 관하여 자주 충돌하였으며, 전직 대통령은 분담금과 관련하여 독일을’ 직무태만 – 채무자’라고 몰아 부쳤다. 러시아와 유럽을 잇는 Nordstream-2 (러시아 천연가스를 북해를 통과하여 유럽으로 공급하는 대규모 공사) 파이프라인 사업에 대하여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상기 사업에 대하여 미국이 방해의사를 밝히고 제재를 가하면서 개입하자 독일의 여수상은 퉁명스럽게 “not okay”라고 응수하였다.

새로운 미행정부가 시작되면서 주변에서 찬사가 쏟아지는 가운데, 급반전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는 낙관이 팽배하지만, 그러나 단기적 측면에서는 변화는 기대하는 만큼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중국과 관계에서 도날드 트럼프는 양당의 합의적 지지를 받으며 중국에 대한 부정적 회의론을 확고히 고착시켰으며, 베를린(독일) 및 브뤼셀(유럽연합)과 불편한 관계를 키워 왔다.

Nordstream-2 파이프라인 사업과 관련하여도 급반전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에 상기에 언급한 것처럼 여러 사안들이 어렵게 서로 엉켜있지만, 메르켈은 ‘정치적 합의를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크게 열렸다’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띄었다.

신임 대통령 바이든은 지체없이 행정명령을 통하여 국제보건기구WHO의 탈퇴를 취소시켰으며 파리기후협약의 복귀를 지시하였다. 그러나 향후, 미국은 자신이 차버렸던 기존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협상테이블에 합석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이미 자신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합의 사항들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세계의 현안에 주요 국가로서 미국이 참여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지만, 미국의 복귀가 예전처럼 자신들이 주도하면 국제사회가 이를 뒤따를 것이라는 희망사항대로 복원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베를린과 브뤼셀에는 양 진영 간에는 공동의 믿음이라는 광범한 기반 위에 협력이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희망이 존재하지만, 동시에 유럽이 안보와 외교에 관하여 과거보다 커다란 책임과 결정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장래에는 유럽이 유럽연합군을 기반으로 “전략적 독자성’’을 가져야 한다’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비전에 메르켈은 크게 동조하고 있다. 과거 미국은 나토를 경유하던지 혹은 독자방식이던지 군사적 방어라는 안보우산을 주춧돌로 삼아 지역에 큰 영향을 행사하여 왔다. 따라서 유럽의 ‘전략적 독자성’은 미국과 유럽연합 간의 관계와 성격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미국 국방성의 인적 자료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독일에만 68,000명 이상의 미군기동병력이 주둔하고 있으며, 유럽연합의 독자군대 구상은 분명히 겨우 시작단계에 있을 뿐이지만, 유라시아 안보그룹의 Mujtaba Rahman은 블룸버그 통신에 다음과 같이 언명하였다 “로마는 하루 만에 건설되지 않았듯이, ‘유럽의 독자전략’이라는 주제는 장기적인 구상이다.”

반면에 이러한 비전이 모두에게 공유되고 있지는 않으며, 독일의 국방장관 Annegret Kramp-Karrenbauer(최근 기민당 당수 경선에서 낙선했다)은 유럽인들은 미국이 제공하는 핵심적인 안보역할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마크롱의 주장은 유럽역사에 대한 오해라고 신랄하게 비난하고 이에 결코 동의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미국과 과거 관계를 복원하고자 하는 일단의 유럽연합 의도는 바이든에게 동맹과 단결하여 국제적 현안에 대한 부담을 경감하면서 새로운 행정부가 마주한 국내의 산적한 문제해결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유럽과의 새로운 관계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국의 국제사회에 대한 영향력(부담)을 줄여갈 조정의 유예기간을 부여하고 있다. 동시에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미국이 국제사회의 보호자protector에서 협력자로partner 역할을 이동시킬 수 있을 것인지 또한 적정한 파워의 균형을 이룰 수 있을 것인지 질문을 야기한다.

 

출처 : 중국국제방송(CGTN) on 2021-01-23.

Freddie Reidy

런던에 거주하는 자유기고자이며, 켄터베리 켄트 대학 등에서 러시아 역사와 국제정치학을 연구하였다

월, 2021/02/0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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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즉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19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의학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이동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 모임 제한’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또한 사회학적 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어떤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발병 및 확산 초기에 그 ‘어떤 무엇’은 사회적 심성 또는 지배적 규범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의 ‘순종적’ 국민 덕에 방역이 잘 된다고 해석되었다. 물론 신천지 등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전체 사회보다 자기 집단에 ‘순종적’인 문화가 방역에 가장 큰 장애가 됨이 곧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질서에서 ‘집단도덕’이 핵심이라고 보는 견해는 근현대 주류 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인 ‘어떤 무엇’은 공공의료제도라는 ‘제도’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특히 한 국제기관에서 독일의 공공의료제도를 높이 평가하여 한국보다 방역에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공공의료제도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와 같은 의견이 대두했다. 그러나 스페인 등 여타 유럽 국가의 환자까지 실어와 병상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여 사회폐쇄가 연장되면서, 이런 관점은 설득력을 잃었다. 또 공공제도가 잘 갖춰진 대표적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난데없는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렇게 의료제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경우는 의료사회학적인 입장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의 감염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인 ‘어떤 무엇’의 핵심은 역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회폐쇄 여부, 즉 개인들의 이동량 통제 문제로 넘어갔다. 결국 3차 유행에 와서는, 역학조사 중심의 초기 감염병 대응에서 실패하여 익명적, 집단적 자유제한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구와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회폐쇄에도 불구하고 이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파티와 사적 모임에서의 감염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학교나 직장과 관련된 이동량까지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동량 감소로 상당히 잘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왔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결국 사회적인 ‘어떤 무엇’에서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정부 방침에 잘 따라주는 ‘순종적’ 심성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사회적 거리’의 표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아파트 경비원 폭행 주민, 정인이 사건 등의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분노를 통해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공감은 인간적 공감의 형태로만 표출될 뿐, 과로를 강요하는 산업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간호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적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에 대한 분노 역시 노동권의 문제보다는 개인 인권의 측면에서 공감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살인과 구별되기 힘든 양상의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인격적 분노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불능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제대로 따른 행위자가 시민들 개인에 한정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찰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조직적 행위자는 모두 책임회피와 무시로 일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학대 부모에 대한 인간적 분노 못지않게 컸다. 그러나 정인이에 대한 젊은 부모들의 진정성 있는 추모의 물결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경이기도 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인이에 대한 추모가 ‘남에 대한 추모’라는 거리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감의 변화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2차 집단’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은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정’은 인연 맺기와 유관한 친밀감이다. 일회적이거나 익명적인 성격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감이 아니라, 인연 지속의 기대감 속에서 호혜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연고가 배제된’ 공감으로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2차 집단’적인 관계에 가깝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2차 집단’ 관계의 핵심은 이익이라고 보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합한 ‘차갑고’ ‘계산적인’ 관계라고 규정했다. 물론 거기에도 호혜성이 성립하나, 그것은 ‘인격적 친밀감’이 아니라 ‘공적 의무’에 기초한다. 즉 만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층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이다.

서구에서는 그런 시민적 공감이 공적 제도화를 낳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절차들이 확립되었다. 즉 서구에서 제도화는 곧 규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현 역시 의미한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나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를 통해 보이듯이, 한국에서 공적 공감은 제도화로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공감되는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기대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제도화가 어려운 이유는 규범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자의 산업 논리가 더 우선인지, 아니면 피고용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어서 규범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규범의 상태이다. 또는 정인이 사건에서처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에게 공감하는 개인들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그 규범에 동조하지만, 제도를 지켜야 할 권력기관은 제도를 무시할 만큼 규범에 무지한 것이다.

시민 개인의 시민적 공감과 제도 규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마도 민주주의 절차를 권위적으로 제도화한 한국 정치사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즉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표된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중간 과정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단순 절차적으로만 적용되어왔다. 권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유대상이 되어 그 자체가 이익으로서 분배된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권력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들은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의 수준을 넘어 사무치게 인격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제도화가 개인들의 마음과 괴리되어 있는 만큼, 그리하여 제도화가 규범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 되고, 그리하여 사회적 규범이 무엇인지 확인이 안 되는데 개인들의 감정만 확인되는 상태에서, ‘남’에 대한 격한 인격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내 집단’과 ‘남의 집단’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질적으로 집단 관계를 규정하던 고전적인 사회적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나’, ‘공감되는 다른 개인’, ‘권력기관’으로 상호작용의 대상을 삼분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나’를 포함한 ‘개인’과 ‘권력기관’ 간의 권력 비대칭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시민 개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서의 방역 성공은 권력기관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쌍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주권자로서 미약한 개인의 처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마주하여,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방역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방역이 성공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방역 역시 서구의 방역 못지않게 위태로울 수 있다. 서구의 경우 개인 주권자 의식이 강한 개인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을 불신하여 방역이 어렵다면, 한국에서는 제도적 권리가 약한 개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역 정책을 따르기 때문이다. 시민 개인들의 이런 자발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솔선수범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한 권리’의 형태로 보상받아야 한다. 현재의 방역 성공은 한국의 의료제도, 경제 제도, 이익분배 방식 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타인에게 마음 깊이 공감하여 ‘시민적 동원’의 최고치를 만들어낸, ‘좋은 시민’들 덕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화, 2021/02/09-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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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와 인도 일본 그리고 미합중국은 완벽하게 중국에 대항하는 나름대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굴기하는 중국과 공존하는 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위 Quad라고 알려진 방식의 동맹에 4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여 지역안보에 협력하는 위험회피hedge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이다.

그러나 필자는 2가지 이유로 Ouad가 아시아의 역사적 흐름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는데, 첫째는 4자가 서로 다른 지정학적 이해를 갖고 있는 취약성이며, 둘째는 보다 근본적인 것으로 이들은 잘못된 게임을 벌리고 있다는 점이다. 아시아에서 파워게임의 핵심은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에 달려 있다.

우선 호주가 가장 취약하며 경제에 대한 중국의존도가 매우 높다. 호주는 지난 수십 년간 불황을 모르는 안정적 번영을 자랑하여 왔는데 이러한 성공의 배경에는 호주경제가 중국과 기능적으로 같은 지역에 속하여 있다는 지정학적 조건이 있다. 2018-2019년의 통계만 보아도, 호주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33% 이상을 차지하는데 반하여 미합중국은 겨우 5%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COVID-19에 대한 중국의 관련성 여부를 국제사회에 공개적으로 요구함으로써 면전에서 중국의 따귀를 때린 호주의 행동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다. 설사 혐의가 있더라도 이를 신중하게 비공개적이며 개별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이제 호주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진 처지가 되었다. 현재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 호주의 대결상황에서 과연 누가 궁지에 몰릴 것인지 주의깊게 지켜보는 국면이다.

여러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중국이 궁지에 몰리면, 아시아의 국가들이 호주의 행적을 따라 중국을 경멸할 것이고, 그런 사태가 벌어지면 호주 자신도 함께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반면에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여유가 있다. 호주의 賢者인 Hugh White가 지적하였듯이, Canberrra(호주의 행정수도)가 처한 어려움은 현실적으로 중국이 게임의 모든 패를 한 손에 쥐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관계에서의 파워는 자신의 최소희생으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국가가 갖게 된다.

중국이 호주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파워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호주의 현직 수상인 Scott Morrison과 동료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미 2019년 11월, 전직 수상이었던 Paul Keating은 Quad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호주 국민들을 향해 심각하게 경고한 바 있다. “광의적으로 표현하자면, Quad는 출범조차 못하고 있다”고 그는 호주의 한 전략포럼에서 지적했다. “인도는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접근에 대해 이중적인 입장을 갖고 있으며, 중국에게 실제로 위협을 가하는 행동을 회피할hedging 것이다.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중국과 일본 간의 화해분위기 역시 또 다른 증거이다…. 일본은 중국에 대한 봉쇄의 실행프로그램에 여전히 서명하지 않고 있다.”

비록 최근의 국경분쟁으로 인도가 중국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미국의 동맹국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은 다른 측면에서 역시 취약점을 지니고 있다. 호주는 다행스럽게 주변에 매우 우호적인 동남 아시아 국가들로 둘러 쌓여 있지만, 일본의 주변에는 비우호적인 이웃들인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역사적 앙금을 남아있는 한국이 있다. 일본은 이들과 어려운 관계를 맺고 있으며 때로는 긴장을 형성한다. 상대적으로 경제의 규모가 작은 러시아와 한국과 관계는 어려움에 빠지더라도 일본은 이를 관리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신형강대국으로 등장한 중국과는 관계를 상호 조정해 가야만 한다는 것을 일본자신이 너무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군국주의 시절인 20세기 전반기를 예외로 하다면, 일본은 줄곧 강대한 중국과 항상 평화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여 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4개 국가들은 서로 다른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으로 Quad라는 동맹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점점 어려워 질 것 이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전공한 Eaza Vogel은 2019년 저술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중국과 일본 간의 1,500년이라는 장구한 역사기록은 이에 비교할 만한 사례가 없을 만큼 독특하다” 중국과 일본의 관계사를 기술하면서 그는 양국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깊은 관계를 유지하여 왔지만, 문명의 규모와 발생에 있어서 중국이 항상 우위를 지켜왔다고 주장한다. 양국의 관계가 지난 1,500년간 대체로 평화롭게 유지되어 왔다면, 향후 1000년의 역사도 같은 패턴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유명한 가극인 ‘가부끼’처럼 관계의 변화는 매우 세밀하고 조금씩 변화를 보이면서 점차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새로운 양상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들 양국의 관계는 하루아침에 우호적으로 변해가지는 않을 테지만, 일본은 은밀한 방식으로 중국의 핵심적인 이익을 이해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물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앞으로 많은 현안과 사건들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양국은 이를 시간을 두고 점차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와 중국 간에는 전혀 다른 문제들이 개입되어 있다. 오랜 문명을 지닌 대국으로 이들 양국은 수천 년을 지리적으로 이웃하여 지내왔지만,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지형적 조건으로 사실상 분리되어 직접적인 접촉은 거의 없었다. 불행하게도 현대의 기술로 인하여 히말라야가 더 이상 차단의 장벽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따라서 접경지역에서 양국의 군인들이 서로 직접 대면하는 기회가 빈번해졌다.

이러한 대면의 접촉은 대부분 충돌이라는 사건으로 발전하였는데, 2020년 6월에도 예처럼 충돌하는 일이 벌어졌으며 이후 중국에 대한 혐오감이 인도 전역에 휘몰아 쳤다. 향후 수년간 양국의 관계는 악화의 길을 걸을 것이며, 사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해결해줄 때가지 중국은 차분히 기다릴 것이다. 1980년에는 양국 간의 경제규모가 대등하였지만, 2020년 현재에는 중국경제가 인도의 5배 규모로 성장하였다. 이들 대국의 장기적인 관계는 결국은 경제의 규모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1980년대에 미국의 경제가 압도하면서 냉전시대의 소비에트는 사라졌다. 참으로 우연하게, 미합중국이 2017년에 이루어진 CPTPP에 불참하면서 중국에게 의외의 선물을 안겨주었듯이, 인도는 동아시아 지역의 포괄적 경제협력기구인 RCEP의 참여를 포기하면서 중국에게 지정학적 利點을 제공하였다. 경제는 거대한 게임이 진행되는 곳이다. 미국이 CPTPP에서 발을 빼고 인도가 RCEP을 포기하면서 해당 역내의 거대한 경제의 생태시스템이 중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여기서 심각하게 참조할 통계자료가 있다. 2009년 당시 내국의 소비 사장 규모가 중국은 1.8조 달러이었던 반면에 미국은 4조 달러이상 이었다. 10년이 지난 2019년에는 상황이 역전되어 중국의 규모가 6조 달러, 미국은 5,5조 달러가 되었다. 더구나 향후 10년간 중국의 수입물량은 22조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1970-1980년대의 미국의 대량소비 경제가 소비에트를 몰락시켰듯이, 향후에는 중국의 엄청난 내수시장의 규모가 국제지정학의 지형을 결정하는 잣대가 될 것이다.

이러한 배경이 Quad동맹의 해군함대가 인도양에서 훈련을 실시한다 해도 아시아 역사의 방향을 되돌리지 못하는 이유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Quad 4개 국가들이 경제적 이해와 역사적 배경을 달리하면서 정상적인 동맹관계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여기 하나의 뚜렷한 징후가 있다: 미합중국의 가장 강고한 동맹국인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의 어떤 나라도 Quad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 아시아의 미래는 Quad라는 4개의 영문자가 아닌 RCEP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출처 : 포린폴리시(ForeignPolicy) on 2021-01-27.

KISHORE MAHBUBANI

동남아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외교관으로 싱가포르 외무장관을 역임하고 유엔주재 대사를 지내면서 안보리이사회의 의장직을 2년간 맡았으며, 이후 14년간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의 학장을 지냈다. 최근 “Has China Won”을 출간하여 세계의 관심을 모았다.

수, 2021/02/10-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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