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콘텐츠로 건너뛰기

트럼프의 미국은 이란압박전략에 실패했다

지역

트럼프의 미국은 이란압박전략에 실패했다

admin | 수, 2021/05/05- 19:55

편집자 주:

트럼프가 핵합의JCPOA을 거부하고 이란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을 시행한 것이 오히려 이란의 핵개발을 부추기고 이의 명분을 제공하면서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하였다. 이에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2015년의 합의에 복귀하는 협상을 현재 제네바에서 진행 중에 있다. 이의 과정과 결과는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중단되어 있는 북미회담의 재개여부에 대한 예고편이다.


제목의 사안에 대한 지지자와 비평가들 모두에게 JCPOA로 알려진 미국과 이란 간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의 합의원칙으로 복귀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이 열려 있습니다.

2015년에 이란이 매우 염려스러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을 포기하고 강력한 사찰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세계 강대국들이 이란에 가해진 국제제재를 완화한다는 합의문에 서명했습니다. 핵협정은 물론 온전히 평화에 관한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단지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2018년 트럼프행정부는 상기 합정을 일방적으로 철회하면서 미국이 훨씬 강압적인 제재를 가하면 이란이 매우 모욕스럽지만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으로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도박은 실패했습니다. 새로운 제재는 이란경제가 마비될 만큼 고통을 주었지만, 그러나 그들은 합의에 의해 중단했던 핵개발 작업을 재개하도록 촉발시켰습니다. 이란과 핵협정을 위해 긴밀히 협력하였던 유럽 강대국과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주의에 실망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이란과의 교역의 재개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이든 대통령의 이란특사인 로버트 말리가 4월 첫 주간을 기존의 협약에 복귀하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하여 비엔나에서 보냈던 이유 입니다. 외교적 교섭의 관례대로, 유럽 외교관들은 미국과 이란 대표단을 왕복해서 오가며 별도의 호텔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건설적이고 결과지향적”으로 묘사되는 줄다리기의 회담은 다음 주에도 계속될 것입니다. 신중한 낙관론이 나오는 배경입니다.

미국의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을 세계경제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쌓은 방벽인 “최대 압력” 제재의 대부분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압력이라는 제재는 중앙은행, 석유부처, 이란의 국영석유회사를 포함한 다양한 국가기관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Araghchi 외무차관은 미국이 합의에 따라 약속된 제재를 해지하면 이란은 핵개발작업을 중단하고 취소할 수 있다고 암시했습니다. 물론, 애시당초 이란과 합의를 원하지 않았던 옛 방해자(spoiler)들은 미국이 협상을 재개하는 모습에 질색합니다.

가장 일반적인 비판의 내용은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압박 수단인 제재를 해제하는 것은 지난 3년 동안 축적된 레버리지를 포기한다는 주장입니다. 트럼프대통령의 이란특별대사를 역임한 엘리엇 아브람스와 같은 공화당 멤버와 상원의 외교위원회를 이끄는 뉴저지출신의 밥 메넨데즈와 같은 민주당 의원의 태도가 바로 그것입니다.

메넨데즈 의원은 43명의 상원의원들이 함께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및 중동지역의 시아파 민병대 지원에 대해 강력한 제약을 두는 새로운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현재의 강력한 제재를 유지하도록 요구하는 내용입니다. 서명된 서신은 대화의 재개를 기대하는 것보다는 제재를 요구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란이 그러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려고 했다면 이미 오래 전에 그랬을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미국의 이란에 대한 강경접근법은 상식에 어긋납니다. 첫번째 합의를 존중하지 않았는데, 이란인들은 왜 미국이 두번째 합의를 존중할 것이라고 믿겠습니까?

또 하나 불편한 사실은 “최대압력”의 제재가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철회가 이란의 행동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지 못했습니다. 정반대 입니다. 합의의 실천을 거부한 미국에 보복하기 위해 협상이 좌절된 상황이 어떤 사태를 가져올지 미국에게 경고를 보내며, 이란은 기존의 협정을 절도있게 위반하며 행동을 과시하여 왔습니다. 기존의 핵협정에 따르면 이란은 무기등급보다 훨씬 낮은 3.67 %의 순도까지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순도를 20 %까지 높여가고 있습니다. 핵협정에 의하면 이란의 우라늄생산은 202.8kg으로 제한되었습니다만, 현재 3톤 정도 비축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기존의 핵협정에 따르면, 국제사찰단이 사전의 예고없이 핵연료사이클이 진행되는 모든 횟수를 사찰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이제 사찰단은 이란의 허가없이 현장을 방문할 수 없습니다. 오는 5월까지 핵협정이 복원되지 못하면, 국제사찰단은 이란의 핵단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상황은 정체되어 있지도 않고 다른 방식으로 전개될 수도 없습니다. 처음부터 이란이 유럽 및 아시아 국가들과 거래를 못하도록 제재를 가한 목적은 이란이 협상에 응하도록 잠정적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제제를 항구적으로 가하여 경제전반이 위험에 빠지게 되면, 80백만 명의 인구를 지녔으며 상대하기 지난한 국가인 이란은 다양하게 암거래를 진행할 것입니다.

결국은 혁명수비대를 포함하여 자국 내의 강경한 테러집단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오는 8월에 임기가 만료되는 현재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을 포함하여 미국과 협상을 자산으로 삼는 온건파들이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제이콥 류 전직 재무장관은 2016년에 금융제재를 남용하면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습니다. 이란과 거래하는 타국의 은행 및 기업들을 처벌하겠다는 미국의 위협에 진저리를 내면서, 다른 국가들은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거치지 않는 대안을 찾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의 제재가 힘을 잃을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미국 금융산업과 기축통화로서의 달러의 지위도 약화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재가 너무 오래 지속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우리는 현재로써 경험하고 있습니다. 최근 중국이 이란에서 수입하는 대가로 4,000억 달러를 석유와 가스 생산 및 운송 인프라에 투자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은 이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부담스러운 제재를 준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란의 선량한 시민들에게까지 일상생활에 제재가 가해지고 있기 때문에 현상유지가 지속될 수 없습니다. 권위주의적 이란정부는 나름대로 제재를 우회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일반 사람들은 엄청난 고통을 겪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권력을 통제하는데 실패한 제재조치로 인해 50만 명 이상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영양실조로 사망한 사건이 1990년대 중반의 이라크에서 얻은 교훈이었습니다.

오늘날 이란시민들은 인슐린과 다른 약물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이란 정권이 미국에게 핑계를 댈 수 있는 죽음입니다. 이란에 대한 식품 및 의약품 판매에 대한 제재에 인도주의적 예외가 있지만 이란은행에 대한 제재의 광범위한 적용은 필수품의 조달노력을 어렵게 합니다. 이란은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비용을 지불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불에 필요한 외화가 해외은행들의 창구에서 동결되기 때문입니다. 이란을 코로나바이러스의 창궐지로 방치하는 것은 인류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제재로 인한 비참함으로 인해 언젠가는 이란국민이 일어나 종교권력을 버리고 서방을 포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같은 매파의 희망은 참으로 암담합니다.  리비아, 시리아 및 다른 곳에서 일어난 봉기는 장미빛 환상의 어리석음이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란국민은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찾을 자격이 있지만, 그것이 일어날 것이라는 일방적인 기대에만 의존할 수 없으며, 현재의 정권 이후에 오는 차기 정부가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중동의 다른 국가들은 이란의 시아파 민병대지원과 탄도미사일기술의 확산에 대해 근거있는 우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은 트럼프 시대처럼 강력한 제재를 통해 이란이 그러한 장난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현금을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봉쇄는 지금까지 효과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이란을 더욱 호전적인 이웃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평화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면, 지역국가들의 연합을 통하여 이란의 도발을 대응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회의 레버리지는 풍부합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트럼프 시대에 가해진 추가적 제재를 철회하더라도 여전히 미국제재의 대부분이 그대로 남아있어 후속합의를 체결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향후 협상의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바이든의 외교팀은 핵협정을 “길고 강하게” 그리고 가치있는 목표로 만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를 향한 첫 번째 단계는 기존의 핵합의로 되돌아 가는 것입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4-10.

시민들의 의견

댓글 달기

Plain text

  • 웹 페이지 주소 및 이메일 주소는 자동으로 링크로 전환됩니다.
  • 줄과 단락은 자동으로 분리됩니다.
  • 사용할 수 있는 HTML 태그: <a href hreflang> <em> <strong> <cite> <blockquote cite> <code> <ul type> <ol start type> <li> <dl> <dt> <dd>
이미지
무제한 수의 파일을 이 필드에 업로드할 수 있습니다.
50 MB 한계입니다.
허용된 유형: png gif jpg jpeg.
Enter the YouTube URL. Valid URL formats include: http://www.youtube.com/watch?v=1SqBdS0XkV4 and http://youtu.be/1SqBdS0XkV4.
CAPTCHA
스펨 사용자 차단 질문

두 개의 막강한 칼잡이 집단의 어지러운 검무(劍舞)에 매일의 신문과 방송을 보기가 두려워질 정도다.

법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의 검(檢)이라는 칼과 진실의 전달이라는 사명의 허울 뒤에 ‘진실을 제조’해내고 ‘사실을 가공’해내는 언(言)이라는 칼, 이 두 개의 칼이 한 몸으로 어울려 불러대고 추어대는 이중창과 2인무의 파열음과 광무(狂舞)가 귀를 찢고 눈을 산란케 한다.

검란(檢亂)과 언란(言亂),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결과이자 원인이다. 한쪽이 다른 쪽을 낳고 그 다른쪽이 다시 상대를 키워주는 상인상과(相因相果)의 관계다.

그러나 한편으로 지금의 두 개의 칼의 등등한 기세는 또한 그 전성(全盛)의 마지막 순간을 향해 치닫는 것이기도 하니, 그 점에서 우리는 애써 낙관의 위안을 스스로에게 각오하듯 가질 필요가 있다.

‘亂’에 어지럽다는 뜻과 함께 다스리다는 정반대의 뜻이 함께 들어 있는 것은 어떤 문제든 그것이 극성해질 때 비로소 해결의 길로 나아가게 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역설의 이치다.

다만 亂이 어지러움에서 다스려지는 상태로 저절로 바뀌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난(亂)을 난(亂)으로 보는 눈이 없이는 난은 거의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두 개의 위험한 칼의 난무(亂舞)에 홀리지 않으면서 결국 우리 사회는 어떻든 진일보의 궤도를 걸을 것이라는 낙관, 그리고 그 길을 여는 것은 저 두 개의 칼잡이 집단의 광포한 흉기로서의 칼에 맞서고 제압할 수 있는 보통 시민들의 이성의 칼, 양식의 칼, 그럼으로써 모두를 살리는 활인(活人)의 칼을 벼리는 것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이명재

목, 2020/12/03- 23:45
2
0

1. 우리는 역대 모든 정부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하였습니다. 정부의 성공이 곧 나라의 평안과 주권자들의 행복으로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시대의 소명과 국민의 여망에 부응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2. 잠잠히 묻혀서 고요히 지낼수록 좋은 우리가 이렇게 나서게 된 것은 국민의 엄중한 명령인 ‘검찰개혁’이 좌초될 위기에 빠진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문제를 주목하는 것은 검찰이 그동안 힘없는 사람들의 생존과 운명을 쥐락펴락하면서 특권층의 비리와 범죄는 눈감아 줌으로써 공정한 법집행의 최대 걸림돌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검찰개혁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비웃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나서는 일들이 너무나 빈번해졌고 그러다보니 검찰개혁을 공언하였으면서도 번번이 실패하고만 지난 민주정부들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지 걱정스러운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3. 거기에는 검찰 자신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검찰이 검찰권의 독립 수호를 외치고 있습니다만 자신들이 저지른 검찰권 남용의 역사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사건을 조작해서 무고한 이를 간첩으로 내몰고, 멀쩡한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인생을 망치게 만들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욕망을 위해 약자들을 괴롭혔던 강자들의 죄를 가려주고 치워주는 범죄의 세탁부 또는 청소부가 되었던 한국 검찰의 역사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검찰개혁은 검찰로 하여금 이와 같은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더 이상 타락한 거래에 휘말리지 않도록 진정한 독립을 도우려는 일입니다.

수사와 기소에 관한 과도한 독점적 권한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도 우리 눈에는 어리석게만 보입니다. 통제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검찰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것입니다. 검찰 일부의 문제일 것입니다만 겉으로는 부패와 거악을 척결하겠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현직과 전관들이 서로의 이익을 챙겨주는 뒷거래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타락상입니다. 그동안 공익을 대변하기 위하여 일생을 헌신한 대다수 검사들의 명예와 긍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검찰은 공직자비리수사처, 검경 수사권 분리 등의 개혁 조치를 받아들이기 바랍니다.

4. 검찰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인 윤석열 총장의 참회를 촉구합니다. 임명 초기 그를 향한 국민의 기대와 신망은 참으로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의 개인적 처신과 검찰을 지휘하는 모습은 너무나 뜻밖이었습니다. 처와 장모를 둘러싼 가족의 대들보 같은 허물도 심각하지만, 아무리 티끌처럼 작은 일이라도 남의 허물에 대해서는 무섭게 달려들다가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는 기이할 정도로 관대한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는 경악스러울 정도입니다. 법무부 장관이 제기한 직무 배제와 징계 청구 사유에서 드러났듯이 검찰총장 본인이 하루빨리 물러나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금이라도 겸덕을 발휘하여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신이 말했던 “퇴임 이후 사회를 위한 봉사”일 것입니다.

5. 언론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입만 열면 나라가 망하는 것처럼 사실을 왜곡, 과장해서 기사를 쏟아내고 있으나 지금 우리는 건너야 할 다리를 힘겹게 건너고 있을 뿐 방향이 그릇되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불안을 부추기고 정부의 선의를 비트는 행실을 중단하기 바랍니다. 진실을 격려하고 거짓을 꾸짖는 언론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른바 ‘검언유착’, ‘검언일체’의 지경에 이른 부끄러운 현실을 직면하기 바랍니다. 진실의 장수가 되어야 할 언론이 거짓의 하수인 노릇이나 하는 현실을 우리는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6. 사법부의 책임 또한 조금도 가볍지 않습니다. 검찰에 의한 ‘재판관 사찰’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사법부는 뚜렷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검찰이 조직적으로 재판관을 압박하여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범죄를 태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나아가 검찰총장이 재판관에 대한 사찰과 정보정치를 업무상의 관행이라 우기는데도 묵묵부답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특히 법조의 나아갈 길은 언제나 그래야 한다고 믿는 것인지 한 번 묻고 싶습니다.

7. 제1야당 ‘국민의 힘’에게 묻습니다. 국민의 힘의 전신인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은 검찰개혁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탈의 방조자 또는 협력자 구실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배출한 대통령 2인을 감옥에 보내고 말았습니다. 이런 과오를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아울러 다시 집권해서 나라를 이끌게 될 때를 위해서라도 여당과 합심하여 국회가 검찰개혁에 일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8. 신앙인들과 시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가 당장 해야 할 일은 정작 다른 데 있습니다. 생태계 말기적 파국의 리허설이나 다름없는 코로나 사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서 머리를 맞대고 살길을 찾아야 하는 마당에 검찰개혁이라는 숙원을 놓고 분열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힘을 내서 어려운 사람들의 겨울을 돌보고 저마다 역량을 다하여 정의와 인권을 회복하는 데 힘을 보탭시다.

 

2020년 12월 일
인권주일을 앞두고
검찰개혁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수도자 1천인 일동

월, 2020/12/07- 19:48
2
0

세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에 규정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우리 헌법 제12조 3항에는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곧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이다. 이러한 조항이 헌법에 규정된 나라는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 우리 검찰이 과시하는 뜨거운 ‘권력의지’는 이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조항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의 이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헌법에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었을 뿐이다. 지금처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명문화된 것은 바로 박정희 군사쿠데타 직후 이른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개정한 헌법부터였다.

 

절대권력을 향한 유신권력과 검찰 권력의지의 결합

본래 ‘영장주의’는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한 것이다. ‘영장주의’란 수사기관의 강제 처분은 반드시 법관에 의하여 사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서 인신구속을 수사기관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으며, 영장발부 권한은 법관에게 전속되어 있다는 것이 그 본질이다. 이렇듯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영장주의를 천명하는 헌법 조항에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유일한 영장청구 주체로서의 검찰’ 규정은 ‘영장주의’의 본질로부터 벗어난 것이며, 그 취지와도 필연적 관계가 없는 규정일 뿐이다.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이러한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 규정은 한국 외에 세계 어느 나라 헌법의 영장청구 조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라는 규정은 박정희 유신헌법에서 한 발 더 나가 “검사의 요구에 의하여”로 다시 개정되었다. 검사의 영장청구 권한을 더욱 강화하고 상대적으로 법관의 영장발부에 대한 재량은 축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는 결국 검찰의 권력 의지와 절대 권력을 행사하려는 박정희 유신 체제의 권력 의지가 결합된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검사를 앞세워 영장제도를 배제한 조선형사령

검찰과 영장과의 깊은 관계, 그리하여 검찰이 지닌 그 뜨거운 권력의지의 기원은 멀리 일제 강점기의 조선형사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1912년 조선형사령을 제정했다. 그 핵심은 바로 영장제도의 배제로서 검사와 사법경찰에게 예심판사에 준하는 강제처분권을 부여한 것이었다. 세계 법률사상 일찍이 유례가 없는 악법 중의 악법이었다. 일제는 조선의 식민지 지배를 위해 인신구속과 구금이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파악하였다. 그리해 조선총독을 정점으로 총독이 식민지 검사를 임명하고 그 하부 보조기관으로 사법경찰관을 배치하여 인신구속과 체포를 무소불위로 자행함으로써 식민지통치 권력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 조선형사령이라는 악법에 의해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이 희생되었다.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돼 민주주의의 기본에 눈감아온 정치세력

10·26으로 열린 1980년의 ‘서울의 봄’, DJ와 YS의 신민당은 당연히 자신들이 권력을 손에 넣을 것으로 낙관했다. 이들은 그리하여 헌법 개정에서 이 영장청구 조항도 중시하지 않고 단순히 유신 헌법의 “검사의 요구” 규정을 이전의 “검사의 신청”으로 돌려놓을 것만 주장하여 관철시켰다. 당시 헌법 개정 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변협은 “검찰의 신청이나 요구” 규정 자체를 삭제하고 단순히 “법관이 발부한 영장”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뒤 6월 항쟁으로 다시 헌법 개정의 기회가 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에 권력에만 급급했던 야당 정치권은 오직 직선제 하나만 고치면 권좌에 오를 것이라고 다시 ‘착각’하면서 헌법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았다. 문제의 헌법상 검사의 영장청구의 독소 조항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라는 그야말로 미사여구의 수식어만 앞에 붙이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바꾸는 데 그쳤을 뿐이다.

그리고 ‘촛불혁명’으로 다시 헌법을 바꿀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눈앞의 권력에만 도취된 채 우리의 국회는 결국 허송세월하면서 헌법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헌법 개정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보다 정확하리라.

이 땅의 정치세력은 항상 어김없이 눈앞의 권력에만 매몰된 채, 민주주의의 기본 체계, 국민주권주의와 국민 기본권에는 철저하고 완벽하게 도외시해왔다. 바로 이런 정치권의 자세와 태도 때문에 이 나라가 “나라도 아닌 나라”,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엉터리 시스템”, “시민의 민주적 통제가 전혀 갖춰지지 않은 나라”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의 이 왜곡된 비극의 족쇄는 언제나 풀릴 수 있을 것인가! 두말할 필요 없이 여기에는 이른바 ‘진보민주 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

 

소준섭

화, 2020/12/15- 20:33
5
0

벌써 4·3특별법 개정 촉구 국회앞 1인 시위가 9주차에 접어들었다. 1947년 3월 1일 제주시에서 미군정 산하 경찰에 의해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게 73년 9개월이나 된 일이다.

외롭고 지루하고 답답한 1인 시위였지만 다른 일도 일어났다. 특별한 유족 증언대회가 노상에서 열리는 것이었다. 88세 1934년생 유족이 울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세 형제가 참여했다. 벌써 네 번이나 참석한 다른 86세 1936년생 유족은 애월면 귀덕리 1구 구장아들이었다. 바보처럼 서 있는 나에게 50년 만에 중학생 동창이 찾아 와 자기 아버지가 대구형무소에서 15년형을 통지받고 복역하던 불법 수형인이었다고 고백했다. 너무나 놀라고 충격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1996년 조성봉 감독이 만든 “빨갱이 사냥”이라는 기록동영상에 경찰의 만행을 증언하기도 했지만 아쉽게도 2003년에 돌아가셨다고 했다. 모두 너무나 가슴이 저리고 뼈아픈 사연들이었다. 유족들의 이런 참여와 적극적 반응은 1998년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가 창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런 우리들의 행동에 대해 한 인터넷 언론은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1】

 

민간인학살의 대표적 사례인 제주학살(1947-1954)

다시 말하면 국가는 민간인 학살 피해에 대한 배상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부와 이행기 정의의 비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제주학살(1947-1954)은 어떻게 일어났나?

지난 2019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대한민국정부 100년을 기념하여 한국 현대사를 인권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3권짜리 한국인권사 총서를 냈다. 유사 이래 처음 있는 대역사였다. 여기에 필자는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이라는 글을 써 냈다. 그 골자는 다음과 같다 :

“제주학살(1947. 3. 1 – 1954. 9. 21)은 미소 강대국의 한민족 분단과 미군의 남한 점령에서 비롯되었다. 미군은 물리적, 사회경제적 민족분단을 통해 민족자결권을 전면 침해했다. 동시에 미군의 남한점령은 일본에 대한 간접점령 방식이 아닌 직접점령이었다. 특히 미군정 경무부의 철권통치와 미군정의 실정은 남한민중의 삶을 더욱 어렵게 했다. 미군정은 신탁통치와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의 추진, 좌우합작을 통해 조선문제 해결을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민족분단과 미군 점령하의 제주섬에서 제주인들은 아래로부터의 자치 기구로써 제주도인민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며 비교적 미군정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1946년 미군정은 제주섬을 중앙집권국가에 강제 편입시켜 억압적 국가기구를 강화, 증강했다.

미군정 4년 시대에 제주학살은 미군정 산하 경찰이 1947년 3월 1일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로부터 비롯되었다. 일제 강점기보다 더 많은 미군정 경찰 병력 증파와 통행금지 조치가 시행되었다. 미군 대위가 현장에 존재했던 관덕정 학살에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에 대해 미군정 경찰은 13개월 동안 2,500여명을 대량 검거하는 반인권 조치를 강행했다.

‘제2의 미국무부’라는 오명을 듣고 있던 국제연합 총회 결의에 의해 조선임시위원단 입국과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하는 ‘4월 3일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미군정 산하 경찰과 사설폭력단체의 억압에 대한 민심 폭발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군정은 이를 단순한 ‘소요’라고 상황을 오판했다. 더욱이 이후 일어난 학살들에 대한 미군정은 미군 연대장의 직접 지휘, 경찰 증강을 통한 물리적 진압, 미군의 군사상 지휘와 통제 책임을 들 수 있다.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 학살은 산간 지역 거점을 파괴하기 위해 1948년 10·17 포고령을 발동하면서 부터였다. 제주학살을 위한 군대와 경찰 출동, 피난민을 향한 군경의 가차(假借) 없는 총살형, 제주도경비사령부 창설과 공세적 운용은 중대한 인권침해 소지가 명백했다.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들은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하였고,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의 정당성을 위협받게 되자마자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통해 국내정치용 초강수로서 학살을 방조, 조장, 지휘한 책임을 모면할 수 없다. 드디어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이 계엄법도 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동되었다. 이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었고, 국기문란이었다. 불법 군사재판과 사체 유기가 빈발했다. 미군 철수 이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은 반공극우보수체제 강화를 위해 ‘잔비’ 소탕이라는 명분으로 주민학살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제주섬사람들은 애도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은 5·16 군사쿠데타 성공이후 국가 차원의 역사말살은 또다시 강화되었다. 30년이 지나 허위와 기만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이 나왔으나 망각을 강요하는 신군부 독재 등장으로 또다시 진실 찾기 시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나 박정희 시해이후 민주화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진실운동이 일어났다. 1980년대 대학생 민주화운동이 벌어지면서 대학내에서 ‘4·3항쟁’ 논의가 시작되었고, 사건발생 40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4월 운동이 일어났다. ‘4·3은 말한다’라는 제목으로 지역 언론 사상 최초의 제주학살 심층기획취재와 장기연재가 이뤄졌다. 평화적 정권교체 이후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는 제도화되기 시작했다. 4월운동의 전국화, 제주도민학살의 진실과 정의, 인권을 위한 법률 제정운동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명예회복특별법 제정으로 나아갔다. 3년간 조사한 뒤 제주4·3에 대한 사상 처음으로 진상조사보고서가 채택되고,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이 이루어졌다. 제주는 민주주의와 인권, 이행기 정의 확립의 전시장으로 탈바꿈되어 가고 있다.“【2】

많은 국민들은 제주학살(1947-1954)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필자가 지난 2020년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제주43특별법 개정 촉구 1인 시위를 9주째 진행해 왔다. 그런데 내 앞을 오가는 시민들이 툭 던지는 말이 “4·3은 다 되지 않았어요?”라고 물어오곤 했다. 말 그대로 제주학살에 대한 정부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어느 정도 진전되었으나 정작 이들 민간인 학살 피해 인사에 대한 피해회복은 전혀 실현되지 않았다. 그래서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를 이어오고 있다고 대답해 주면 “그러냐?”는 반응을 보였다.

 

국가 재정과 이행기 정의

지난 2020년 5월 12일 대한민국 제20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만심사소위원회가 열려 4·3특별법 개정을 위한 회의를 했다. 그러나 회의 막바지에 기획재정부 국장이 부처간 협의가 진척되지 않았다고 답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원들은 개정 반대를 노골화했고, 제20대 국회에서의 4·3특별법 개정은 무산되었다.

2021년 예산안은 555조8천억 원이다. 전년 대비 43조5천억 원, 8.5% 증액한 규모이다. 분야별 재원 배분에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국방비 예산은 2조7천억 원으로 전년 대비 5.5% 증액하였다. 정부는 스마트 강군 기반 구축 및 군 사기진작 지원을 위해 군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런 예산 규모만을 놓고 볼 때 대한민국은 이미 중견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그림 1> 2021년 정부 예산안

2020년 인류를 공포와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COVID-19 방역과 퇴치를 위해 엄청난 국가 재정이 투입되었다. 그런 국가 재정 운영에 많은 변화가 일어난 사실에 주목할 필요는 있다. 그런 사정 때문에 국가 채무에 일정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사정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는 대위기상황에서도 실물경제운영과 국가 채무관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결과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가입국가 가운데에서도 비교적 양호한 국가채무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을 봐도 그렇다.【3】

더욱이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상위 15 개국 (1980~2024)를 보아도 한국의 국가채무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사정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4】

우리가 생각하고 요구하고 있는 이행기 정의란 다른 게 아니다. 과거 공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국가범죄의 진상을 규명하고, 그 진상조사 결과에 따라 가해자는 책임을 져야 하며, 가해에 책임이 있다고 확인된 국가권력은 피해인사들에게 명예회복과 함께 피해회복을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주학살(1947-1954)에 대한 3년간의 정부 조사 결과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책임이 확인되었고, 이에 따라 대통령들이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이에 따라 제주학살 피해 회복을 위한 4·3특별법 개정을 서둘러 주었으면 한다는 게 이번 국회 앞 1인시위의 당면요구사항이다.

국회의원들에게 피눈물을 쏟으며 지나온 한의 세월을 이제 끝장내게 해 주십사 호소한다. 더 이상 이런 노상에서 힘들게 이루어지는 4·3 유족증언을 끝내고 싶다. 국가는 과거 공권력에 의해 정당한 이유도 없이 목숨을 빼앗긴 이들의 학살피해를 구제해 줘야 한다. 그래서 불미스런 과거사를 털어내고 미래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75년 된 분단과 냉전의 깊은 상처와 고통, 70년 된 전쟁의 참극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이번 4·3특별법 전면 개정은 그런 이행기 정의 확립의 일대 전환점이 될 것이다.

국가공권력의 잘못된 집행으로 희생된 이들의 피해 구제 입법선례들을 찾아보자. 부산·마산뿐만 아니라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이들에 대한 보상법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피해구제 입법도 있다. 거창·산청·함양민간인학살사건 배상법은 2004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에 관한 특별조치법’으로 발의되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었다.

그러므로 이제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와 정부가 응답해야 한다. 국회가 제주도 민간인 학살피해회복을 위한 4·3법 개정 행동에 적극 나서 주어야 한다. 말과 구호가 아니나 행동과 실천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제주4·3”은 중대한 인권침해사안이다. 국회의원들은 이“제주4·3의 중대한 인권침해문제”를“정당과 정파, 이념과 입장을 초월해서 피해 배상하자”는 개정 법안에 대해 동의해 주어야 한다. 인륜에 반하는 범죄 피해에 대한 원상회복조치를 시행하는 일은 대한민국 헌법과 국제인권규범의 법률 가치와 정신에 밀접히 부합하는 일이다.

“4·3 해결”은 더 이상의 정쟁의 제물이 아니다. 경상도를 제외한 다른 모든 14개 전국시도의회와 전국교육감협의회가 4·3법 개정 촉구 건의안을 채택, 발표했다. 따라서 국회의원들도 제주4·3특별법 개정안 심의에 조속히 참여하여 인사치레나 말뿐이 아니라 행동과 실천으로 대한민국이 인권국가, 정의국가, 공정한 국가임을 확인해 주어야 한다. 부디 올해 2020년 이내에 제주4·3특별법 개정이 성사될 수 있도록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여 주실 것을 간곡히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제주도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이 지체되거나 부실해서는 곤란하다. 더 이상 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대비극의 참상이 가해자 측에 의해 왜곡되거나 부정, 폄하되는 몰골을 방치할 수 없다. 피해인사 유족들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더 이상 정의 실현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다.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하는 이유

2020년 12월 14일부터 제주4·3유족회는 제주와 서울의 시민단체와 함께 4·3 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돌입하였다. 추운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는 엄동설한의 날씨에 연세가 많은 제주4·3유족들은 왜 뜻있는 시민들과 함께 4·3보상요구행동을 선언, 추진하고 있는 것일까?

첫째 지난 10월 20일부터 국회 앞에서 4·3특별법 개정촉구 1인 시위를 해 왔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4·3유족들이 직접행동을 해야 할 절박한 사정에 닥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지난 9주 동안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온 덕분인지 제21대 국회에서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서 11월 17일, 18일 양일간 여야 의원들이 깊이 심의하여 많은 합의를 했다. 그런데 4·3 학살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조문은 잘 되지 못했다. 이걸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2005년 국제연합 총회에서 의결된 피해자 권리장전은 민간인 학살이나 강제실종, 고문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받은 이들은 피해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음을 선언했다.

둘째, 이번 4·3특별법 개정의 핵심 중 하나는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민들이 당한 학살 피해에 대해 경제적 보상을 받아내자는 것이다. 국가는 민간인 학살을 가한 이승만 정권시절 공권력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4·3학살 피해 유족은 당연히 국가를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이번 4·3 보상 요구는 학살 피해 유족이 지닌 채권자의 권리를 정당하게 행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과거 공권력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피해 보상을 해야 하는 채무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셋째, 이런 4·3 보상 요구에 대해 기획재정부 담당자는 국가 재정 탓을 하면서 다른 지역의 과거사가 많은데 제주 유족에 대해서만 보상을 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공무원 말은 학살 피해 유족을 위한 국가의 보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매우 부적절하고 옳지 못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피해 유족들이 4·3보상 요구 비상행동에 나서게 된 가장 이유요 배경이다.

넷째, 4·3 유족에게 보상이 이루어지려면 문재인 정부와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함께 4·3보상을 약속한 공약을 지켜줘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제주4·3평화공원에서 유족에게 거듭 사과하고,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국무총리시절 추념식에 참석하여 “제주도민 여러분이 “이제 됐다”고 하실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겠다고 약속했다. 나아가 이 대표는 지난 11월 3일, 4·3특별법 개정을 “미래입법과제”에 포함시켜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므로 이제 4·3유족들이 나서서 이런 약속들이 지켜져 서둘러 4·3 보상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되어야 한다고 외쳐야 할 때라고 보았다.【5】

다섯째, 1947년 3월 관덕정학살이 일어난 지 벌써 73년 9개월이 지나고 있으니 이번처럼 좋은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4·3보상법으로 개정이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유족들이 살아 온 너무나 서럽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을 이제 끝날 낼 때이다. 어떤 이들은 4·3보상이 피해 인들의 희생당한 대가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게 그렇게 필요한 것이냐고 반문하고 있다. 보상을 하게 되면 집안싸움도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런 걱정을 할 수는 있겠지만 4·3학살 보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지금은 4·3보상권리를 주장해야만 할 호기이다.

 

【1】 박진우 2020 “70여 년의 한, 4·3특별법 개정 통해 풀어 달라” [현장] 국회 앞에서 40일 넘게 하고 있는 1인 시위자들의 외침

“야만적인 제주4·3학살의 주범이 미국임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연구를 하는 학자이자 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는 허상수(65)씨는 지난 10월 20일부터 하루도 빠지지 않을 정도로 매일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씨는 “불행했던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많은 나라들이 전환비용을 부담해 온 게 사실”이라며 정부 재정 탓을 하며 보상금 지급에 난색을 표하는 관료들의 생각과 발언에 대해 많은 우려를 하고 있다. “두 분의 대통령이 네 번씩이나 사과하면서 국가의 책임”을 선언한 마당에 “이제는 기재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이행기 정의 확립에 나서야 한다”고 정부의 대승적 조치를 주문하였다.“

【2】 허상수 2019 “인권의 관점에서 본 제주 4·3학살과 권리회복운동” 국가인권위원회 『대한민국 인권 근현대사 제2권 국가폭력을 넘어 자유와 평화를 향하여』 pp. 39-79.

목차

1. 민족분단과 미군정 치하의 제주도

 

I. 제주인민위원회

II. 제주도민족민주주의전선

III. 미군정, 제주도를 중앙집권국가에 강제편입

2. 미군정 3년 시대의 제주학살

I. 시위 구경꾼을 죽인 관덕정학살

II. 관덕정학살에 거도적으로 항의하는 3·10 민관총파업

III. 미군정 산하 경찰의 2,500여명 대량검거와 3건의 고문치사

IV. 미군정의 남한단독선거 강제 시행에 반대한 ‘4월 3일 인민봉기’

V. 제주학살에 대한 미군정의 책임문제

3. 이승만 시대의 제주도민학살

I.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과 10·17포고령

II. 제주학살 출동명령을 거부한 대한민국 육군 제14연대 장병

III. 제주도민 학살 광풍을 불러일으킨 1948년 11월 17일 ‘계엄’

IV. 미군 철수 전후 한국 군경의 제주도민학살

4. 개발독재시대의 범죄 은폐와 왜곡, 허위와 기만

I. 5·16 군사쿠데타와 망각의 강요

II. 국가 망각과 연좌제

III. 허위와 기만 그리고 금기의 장벽을 허무는 소설작품

5. 민주화 이후의 제주학살에 대한 이행기 정의 실현 운동

I. 사건발생 40년 만에 시작된 4월 운동

II. 평화적 정권교체와 제주학살의 진실 찾기 제도화

III. 제주4·3에 대한 사상 첫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국가 추념일 지정

【3】 중앙일보 2019. 05. 23 국가채무비율 40% 논쟁, 정해진 기준은 없다. 종합 5면.

【4】 국가별 국가부채 순위 TOP 15 (1980~2024)

【5】 이낙연 대표는 당대표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통해 거듭 4·3특별법 연내 개정을 약속했다.

 

허상수

화, 2020/12/22- 20:09
3
0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이 그 양심에 따라 심판한다”는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이미 ‘상식’처럼 굳어져 있기 때문에 이 말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헌법의 법관 양심 조항’, 일제와 박정희 잔재

하지만 사실 이러한 “법관의 양심 조항”을 헌법이나 법률에 규정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에서 오직 우리나라와 일본밖에 없다. 예를 들어, 독일 기본법 제97조는 “법관은 독립하여 법률에만 구속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 헌법에 이 ‘법관의 양심 조항“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헌 헌법은 제77조에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쿠데타 후 1962년 개정 헌법에서 ‘양심’이라는 용어가 추가되었고, 이 조항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일본 헌법을 그대로 베낀 것이었다. 일본 헌법 제76조는 “모든 재판관은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그 직권을 행사하며 이 헌법과 법률에만 구속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독일 기본법 제97조도 초안에는 양심이라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법관의 양심을 법률과 동위, 또는 상위에 있는 하나의 법원(法源)으로 오인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삭제하였다.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사법농단 체제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일반인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은 적지 않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현상은 마치 하나의 상식처럼 이미 우리 사회에 자리를 잡았고, 재벌이나 고관대작 등 힘 있는 자에게는 ‘양심’이라는 재량권을 적용하여 법률을 자의적으로 폭넓게 해석하여 너그럽게 적용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법관이 헌법이 부여한 그 ‘양심’을 기반으로 하여 결과적으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하는듯한 모습이다. 독일 헌법에서 법관의 ‘양심’이라는 문구를 삭제했던 이유가 되었던 바로 그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이 끼친 엄청난 피해가 엄연하게 존재하지만, 정작 어느 그 누구도 책임을 지는 사람은 없다. 사법농단 관련자들에 대한 ‘직권 남용’의 그물은 너무나 성겨서 유명무실할 뿐이다. 이러는 사이, 법원은 법원행정처를 비롯하여 사실상 아무 것도 변한 것 없이 ‘사법농단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회는 왜 단 한 번도 법관탄핵을 하지 않았을까?

법관의 양심에만 시민의 운명을 맡기는 것은 결코 민주주의가 아니다. 마땅히 시민의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다. 현재 법원행정처 등 자신들만의 손으로 독점되고 있는 법원 행정사무를 유럽국가의 보편적 방식처럼 반드시 다수의 시민이 참여하는 사법평의회에 의해 운용되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헌법상 “법관의 양심 조항”도 폐지되어야 한다.

또 재판과정에서 법을 왜곡한 법관 및 검사 등 관련자들은 ‘법왜곡죄’를 제정하여 엄벌해야 하고, 엄중한 잘못을 범한 법관은 탄핵되어야 한다.

법관탄핵은 헌법에도 명문화되어 있지만 이제껏 단 한 번도 시도조차 되지 못했다. 사법후진국인 일본에서도 법관탄핵은 대단히 흔하게 실시되고 있고, 실제로 여러 차례에 걸쳐 법관 탄핵이 실행되었다.

우리 국회는 법관탄핵이 한 번도 없었던 것에 대하여 삼권분립 정신을 중시한다든지 사법부 독립을 존중해서라는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재판과 판결에 의해 언제든 자신들의 정치적 운명을 손에 쥘 수 있는 법원의 눈치를 보고 최소한 법원과 우호적인 관계를 갖고 있으려는 국회의원들의 본능으로부터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혹은 스스로 얽힌 비리 때문에 도둑이 제 발 저린 격으로 몸을 낮추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중앙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을 대법관이 맡고, 각급 선거관리위원회의 경우에도 판사가 위원을 겸직하고 있는 점도 선거에 목매는 국회의원에 대한 법원의 영향력을 키우는 한 요인이라 할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법원에 대해 국회의원들이 ‘몸을 낮추는’ 이러한 관계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기에 추진했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한 법원조직법 등 6개 법안 개정안이 아직 국민들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전체 국회의원의 과반수를 훨씬 넘는 168명의 서명으로 발의되었던 점에서도 명백히 입증된 바 있다.

사실 지금처럼 검찰과 법원의 힘을 막강하게 만든 데에는 정치권의 행태도 큰 몫을 담당했다. 정치권은 자신들이 정치적으로 그리고 입법자로서 스스로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을 언제나 그리고 반드시 고소고발만을 일삼아 자신들의 운명을 검찰과 법원의 손에 넘기는 행태를 보여왔다. 이는 스스로 입법부 자신들의 권위를 추락시킨 행위일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스스로 삼권분립의 정신을 무너뜨린 것이다. 본래 법률해석에서는 입법자의 취지라는 측면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정작 스스로 입법자이면서도 아무런 주체적 의식과 노력도 없이 그 무능과 무책임성만을 여실히 드러내왔다. 삼권분립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은 다름 아닌 국회의원 자신들이다.

 

소준섭

화, 2021/01/05- 20:02
6
0

농활이라고 있었다.

농촌활동을 줄여서 그렇게 불렀다.

70년대에는 농촌봉사활동, 줄여서 「농봉」이라고 했다. 대학생들이 여름방학을 이용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의 수고를 같이 느끼고 부족한 농촌일손을 도와주는 활동을 농촌봉사활동이라고 했다.

80년 광주항쟁을 거치면서 각성한 농민운동가들 사이에서 변혁적 농민운동론, 군부독재와 재벌독점경제에 맞서서 싸우는 계급적 농민운동론이 전개되었다. 노동자와 농민과 학생과 지식인 그룹이 민중운동의 주체가 되어 반외세, 반독재, 반독점재벌의 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정리하면서 여름에 대학생들이 농촌으로 가서 농민들과 일을 하는 것은 농촌에 봉사활동을 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혁명의 주체인 농민과 학생이 만나서 함께 대중을 교양하고 대중을 조직하는 활동이라고 새롭게 정리하였고 그래서 해마다 여름방학에 농촌으로 가는 대학생들의 활동은 ‘농촌활동’ 즉 「농활」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대부분 ‘농활’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대학생들에게 학생운동과 함께 농촌활동은 필수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번쯤은 가 본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당시 여름방학에 가는 여름농활이 기본이었지만 학생운동에 좀 더 적극적인 학생이거나 향후 진로를 농촌에 가서 농민운동을 하겠다는 친구들은 봄과 가을, 겨울에도 가는 사계절 농활에 참여하였다.

농촌활동을 가면 새벽에 일어나 식사조는 식사를 하고 일감을 받아오는 친구들은 대원들을 보낼 농가들을 확인해서 작업배치를 하고 매일 아침 듣는 주의사항을 다시 들은 후 조별로 배치받은 작업현장으로 길을 나섰다. 지나가는 동네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를 하고, 조금 전에 본 사람에게도 인사를 하고 아이도 젊은이도 장년이나 노인 가릴 것 없이 먼저 인사를 하는 게 농활 수칙이었다. 일을 가서는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참이나 식사도 거절하고 보통 숙소로 사용하는 마을회관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다시 오후에 가서 빡세게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저녁밥을 먹은 후 마을의 농활 주체가 지정해주는 집이나 장소로 가서 ‘장년반’, ‘부녀반’, ‘청년반’, ‘아동반’ 등의 분반활동을 하였다. 농활은 복더위가 시작되는 7월 중순에 가서 일을 하는 것도 엄청 힘들었지만 저녁먹고 진행하는 분반활동도 꽤 괴로운 일이었다. 농활자료집에 나와있는 매뉴얼화된 질문을 던지면 역시 끌려나오듯 참여하고 있는 마을주민들은 때론 현실감 떨어지는 질문에 시큰둥하게 대답하던가 때로 핀잔도 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식은 땀 흘리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분반활동이 끝나면 분반활동 보고가 있고 하루 일과를 평가(비판)하고 농촌과 농업의 문제에 대해 발제를 듣거나 현장 농활 주체들로부터 강의를 듣고 하루 일과는 보통 11시가 넘어야 끝났다.

이런 전형적인 농활은 9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여기서 새삼스럽게 농활얘기를 다시 꺼낸 것은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의 아련한 추억거리를 소재 삼으려는 것이 아니다.

80년대를 지나 90년대까지 이어져온 농활의 분반활동으로 만났던 아저씨, 아줌마, 형, 아이들은 이제 그 마을에 살지 않는다.

지금은 여러분들처럼 도시의 어딘가에서 도시 주민으로 살고 있다. 장년들은 대부분 남아서 고령화된 농촌의 마지막을 지키고 있지만 그 때 그 아이들은 물론이고 청년들의 대부분도 농촌을 떠나고 아주 일부만 농촌에 남아있다.

농촌을 떠난 사람들은 농지를 도시민들에게 팔거나 남아있는 농민들에게 소작을 주고 떠났다. 남아있는 농민들은 떠난 사람들의 농지를 사거나 빌려서 농사규모를 늘렸다. 농업으로 얻는 평당 소득은 줄어들어서 어쩔 수 없이 농지를 늘리기는 했지만 농업 생산비는 해가 갈수록 늘어나서 경영악화가 심해지고 있다.

농가 호당 평균 농업총수입은 1990년에 907만8천원에서 2019년에는 3,444만원으로 4배가량 증가했지만 농업소득은 626만원에서 1026만 원으로 2배도 늘지 않았으며 농업 경영비는 281만원에서 2,417만원으로 9배 가까이 늘어났다.

농사 규모를 늘려서 총 수입은 늘어났지만 경영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실질 소득 증가는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

‘억대 농민’이라 하면 농사지어서 총수입이 1억원 이상 올리는 농민을 말하지만 이들도 허울만 좋아 억대 농부이지 총수입이 1억원을 넘긴다 해도 경영비를 제외하면 실질소득은 3천만원 남짓이다. 실상은 연봉 3천만원 짜리 농민인 것이다.

올해는 자영업자, 소상공인도 어려운 해이고 공부하는 학생들도 모두 어려웠지만 농업은 긴 장마와 코로나19로 인한 노동력 수급 부족으로 특히 힘든 한 해 였다.

내년에도 기상이변과 코로나19 상황이 올해처럼 지속된다면 농업은 더 어려운 해가 될 것이다.

생산성을 높이고 주・부식 농산물 생산과 공급 계획을 잘 세워야하겠지만 농업 소득을 올리고 농민들이 영농의욕을 잃지 않도록 농민수당을 전면 시행하고 공익형 직접지불금을 올려서 농가 호당 평균 실질 소득이 3천만원 이상 보장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아 있는 농민들도 더 이상 버티기 힘든다.

20여 년 전 내가 사는 마을인 자기 고향으로 농사를 지으러 들어와 유기농업으로 가족농의 소농규모 농사를 짓던 진효가 농업수입을 올리기 위해 비닐 하우스 등 시설을 늘리고 인삼농사를 시작하는 등 농사규모를 늘려왔다. 올해는 농사짓는 것도 힘들었지만 농지면적과 노동시간을 늘려도 수입이 기대한 것 만큼 늘지 않자 다시 소농으로 돌아가야겠다고 한다. 소농으로 알뜰하게 농사지어서 적은 수입으로 소박한 삶을 살 수 있으면 이 친구의 농업은 지속되겠지만 앞으로 대학교, 고등학교 진학할 아이들이 셋이나 대기하고 있는데 잘 버티며 농사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마지막 ‘농활’의 마지막 동네 형이었던 이 친구마저 농업을 포기하고 마을을 떠난다면 우리 농업은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지 않을까?

코로나 3차 대유행이 진행되면서 여러 가지 걱정과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로 격상되면 자영업자들은 더 힘들어 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식품 사재기로 식료품 매대가 텅비는 공급붕괴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지만 올해 쌀 생산 부족이나 곡물 및 농산물 수입과 공급이 끊기면 TV에서나 보던 남의 나라 슈퍼마켓에서 식품과 농산물, 축산물이 바닥나는 상황을 우리가 볼 수도 있다.

위드 코로나(with Coroak19) 시대가 곧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2021년에도 농업을 둘러싼 위기 환경이 이어진다고 예상되면 국민 먹을거리 생산 안정에 대해 지금부터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농업의 스토브리그인 겨울동안 내년도 생산과 수요조절을 잘 계획하지 않으면 절망적인 상황이 올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농업정책’을 ‘식량정책’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식량계획정책’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올 겨울을 잘 준비하여 해외농산물 수급 계획과 국내 농산물 자급계획 제고를 통해 먹을 거리 위기가 오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이재욱

화, 2021/01/12- 20:17
6
0

벡은 위험사회에서 성찰적 근대성을 선택하지 않으면 자멸만이 있을 뿐이라고 경고했다. 성찰적 근대성이란 애초 근대성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근대성이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사회문화적 의미론으로서, 자본주의의 상부구조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사실상 탈근대주의 담론으로까지 이어져서, 자본주의가 생산노동을 둘러싼 소유관계뿐만 아니라 몸과 성에 대한 물질-담론적 지배를 포괄한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에서 자본주의 비판은 탈근대성 주장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에서는 근대성을 자본주의의 가면으로만 본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와 변증법적 관계 속에 있는 독립된 차원의 문제로서 보았다. 근대성의 핵심은 인간 이성의 발견과 계몽을 통한 자유 주체의 형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근대성은 봉건적 지배구조 속에서 신분제적이고 종교적인 방식으로 ‘선천적이라고’ 정당화된 사회 불평등에 대한 자각이자 그로부터의 주체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 계몽이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역설로 귀결되는 문제에 대해 천착했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제도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몽이 더는 주체의 해방이 아니라 과학주의, 전문가주의, 관료주의 등의 권위주의로 굳어지는 현상을 비판한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근대성 이념 간의 이러한 변증법적 관계는 19세기 독일 사회학자인 짐멜에 의해서도 논의되었다. 『돈의 철학』이라는 저서에서 짐멜은, 돈이 처음에는 기성 권력으로부터 주체를 자유롭게 하지만, 어떤 임계점을 넘으면 그때부터는 소비욕의 생산을 통해 다시 주체를 지배한다고 분석했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체제와 이성에 의해 해방된 주체 간의 관계는 단선적이거나 일면적이지 않고, 매우 양면적이고 역설적이라는 것이다. 즉 해방된 주체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가 열어준 해방의 기회에 몸을 맡겨 그 흐름을 마냥 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언제 해방이 지배로 전환할지를 비판적으로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돈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주체적 삶을 살기 위해 요구되는 소명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생산중심주의와 사적소유 제도를 헌법의 기본 정신으로 규정하는 집단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들에게 근대적 주체란 쉼 없는 경제성장의 행군 속에서 부를 축적하는 소유자로 이해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독일 사회학의 전통에서 보면, 이런 관점은 근대성을 자본주의 산업사회와 동일시하는 마르크스주의 유물론과 전혀 다르지 않다. 극좌와 극우는 통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다.

아도르노는 자본주의 산업사회 형태로 제도화한 ‘계몽변증법’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 나치즘과 같은 ‘근대적 야만’으로 가는 행보가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숙명과도 같다고 보았다―물론 이후 『부정변증법』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나 이는 『계몽변증법』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하버마스는 근대 민주주의 공론장이 정치체계로 제도화하면서 생활세계 속에서 새롭게 공론장이 등장해야 할 테지만, 생활세계 역시 식민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에 벡은 산업사회가 스스로 생산한 부산물인 위험에 의해 위험사회로 탈바꿈함으로써, 근대성이 자본주의 산업사회 이외의 ‘또 다른’ 제도적 형태로 변화할 것이라고 보았다. 말하자면 짐멜이 말한 ‘돈의 지배’로 이미 진입한 후기 산업사회에서, 새로운 주체의 출현은 인간의 혁명 아니라 ‘부작용의 정치’에 의해 주도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부작용의 정치

부작용의 정치란 시장 논리가 이미 어떤 임계점을 넘어서 ‘돈의 지배’ 단계로 들어간 사회에서, 해방적 주체가 과거 시민혁명 당시처럼 계몽이나 인간 이성에 기대어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주장하지 못함을 이르는 개념이다. 시민혁명 당시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구체제에 주체적으로 저항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논리가 구석구석 제도화하여 부산물로 새로운 위험을 생산하고 외부화할 뿐만 아니라 그런 위험 생산에 ‘제도화한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 개인들의 주체화가 혁명적 양상을 보이기는 어렵다. 오히려 개인들이 위험의 당사자가 됨으로써, 주체화되도록 떠밀리는 형편이다. 의식과 이성의 주도로 주체화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주체가 되도록 강요받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문제는 이익의 사적소유와 위험의 공유(공동 책임) 간의 모순이다. 위험을 단지 감수할 만한 리스크로 축소하여 이익만을 계산에 넣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회계장부에서, 이익의 분배는 철저히 생산자 책임주의 원칙에 기초한다. 즉 능력주의이다. 이익 생산에 기여하는 능력―물론 여기에는 ‘능력’으로 번역되는 ‘권력’ 역시 포함된다―에 따라 이익이 분배되어 사유재산이 된다. 반면에 회계장부에 누락된 위험의 분배에는 생산자 책임주의가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분배의 원칙은 약자 우선주의이며, 익명화한 공동책임주의이다. 여기서 정의와 공정성의 문제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산업사회는 회계장부상 이익의 측면에서는 사유재산제도에 기초하지만, 그 이면에서 ‘리스크’로 무시되는 위험의 측면에서는 공산주의 사회이다. ‘누가 위험의 생산자인가?’, ‘누가 위험 생산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라는 생산자 책임주의 또는 능력주의 원칙은 위험 분배의 문제에서는 전혀 거론되지도 않는다. ‘모두가 똑같이’ 또는 ‘운이 나빠서 위험 취약자가 되어서’라는 매우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이유에 의해서, 위험의 공산주의가 당연시되는 것이다. 이것이 벡이 말한 ‘반쪽 근대성’이다. 근대적 이성과 계몽, 과학과 전문성이 ‘이익’이라는 일면에서만 적용되고, ‘위험’이라는 이면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위험 생산과 분배라는 이면에서는 여전히 ‘운’과 ‘재수’, ‘우연성’이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위험이 발생하면 갑자기 근대적 ‘사회’가 ‘공동체’로 돌변한다. 전근대적 공동체 원칙을 붕괴하여 시장이 형성되었고 그 기초 위에서 근대적 사유재산제도가 생긴 것인데, 위험이 발생하면 마치 처음부터 ‘사회’가 ‘공동체’여야 하는 것처럼 부산을 떠는 것이다.

 

헌법의 핵심은 민주주의 가치이다

현재 코로나19 아래 한국 민주주의의 상황이 보여주듯이, 위험사회의 정치는 논쟁정치이다. 그 이유는 ‘리스크’라는 개념 자체에 있다. ‘위험사회’는 ‘리스크 사회’를 번역한 것인데, ‘리스크’란 객관적으로 발생한 위험을 이르는 존재론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발생할 위험에 대한 예측, 특히 계산되는 예측을 의미한다. 즉 리스크는 과학적 인식론 차원의 개념이다. 이것은 위험의 객관성에 대해 과학적 합의가 어려움을 말한다. 위험 생산이 이익 생산의 이면에서 베일에 싸였듯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 예측 역시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의 논쟁 속에 묻혀버린다. 산업사회의 주류 사회학이던 ‘기능주의’가 전제했던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해진 사회가 된 것이다.

과학적 합리성에 기초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지 않은 사회라면, ‘그것이 여전히 근대적 사회인가?’라고 자문할 수 있다. ‘탈근대주의’ 관점에서 제기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독일 비판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근대성’의 핵심은 과학주의가 아니라 주체의 해방, 즉 민주주의이다. 다시 말해서, 위험사회에서 민주주의는 새로운 상황에 돌입한 것이다.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난제에 봉착한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촉구한다. 벡이 제안한 ‘성찰적 근대성’의 길이다.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위험사회에서는 모든 제도적 경계들이 유동화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정치/경제 체계 간의 경계, 과학/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전문성/정치 또는 경제 간의 경계, 가족/일터 간의 경계 등이 고정성을 잃고 상황 의존적으로 변화한다. 삼권분립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재 한국의 행정부는 거의 마비 상태인데, 의회의 마비와 사법부의 절차 위주 판결이 거기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마치 절차가 곧 민주주의의 핵심인 것처럼 모든 문제가 절차에 대한 논쟁으로 귀결되고 있다.

독일 현대 사회학자 루만이 주장하듯이, 모든 제도적 경계들은 사회적 소통에 의해 구성된 것들이다. 그것들은 절대적 객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행위들에 의해 의미론적으로 ‘기정사실화’한 것들이다. 그런데 위험사회에서 이익 생산뿐만 아니라 위험 생산의 문제가 부각하면서, 제도적 경계들 역시 새롭게 규정되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하는 것이다. 절차는 제도적 경계와 핵심적으로 관련된 문제이다. 따라서 절차는 절대성이나 객관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소통의 문제이자 정치적인 문제이다. 절차의 정당성을 판결하는 기준은 절차 자체가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가치이다.

따라서 현재 ‘전문성’이라는 명목으로 주장되는 모든 절차 절대주의는 의심받아야 한다. 그것은 위험사회의 성찰적 근대성 명령에 따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성찰의 원칙은 헌법의 핵심 가치인 민주주의이다. 특히 위험사회로 탈바꿈하는 현대사회에서, 헌법의 핵심은 사유재산제도도 아니고 절차 자체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급진화

위험사회의 정치는 사회적 합의 도출이 불가능한 상태의 논쟁정치이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급진화만이 해독제를 제공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직업적으로 독점될 수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제도화한 정치체계를 형성한다. 그러나 벡이 설명하였고 또 우리가 경험했듯이, 제도화한 정치체계는 위험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위험의 책임을 규명하지도 못한다. 위험 자체에 대해서는 밑도 끝도 없는 논쟁의 나락으로 빠져 버릴 뿐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더 많은 일반인, 더 많은 당사자들의 직접적 목소리를 통해 지켜질 수밖에 없다. 이제 전문가든 국회의원이든, 누군가를 대변하는 방식의 정당성은 약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익의 분배라는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일면이, 위험 생산의 이면을 외부화하기 위해서 제도적 경계를 유동화하며 세력을 굳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합의가 없는 논쟁 속에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여기서 민주주의의 가치가 무엇인지가 다시금 논의되고 성찰되어야 한다. 민주주의는 만인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주체화가 독점되는 방식이 지양되어야 한다. 대의제 속에서 선출된 의원이, 전문가인 사법기관이, 과학자가, 또는 특정 이념 세력이 타인의 주체성을 압박하거나 혐오하고 주체성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유주의자 존 롤스는 공정한 자유와 공정한 평등을 주장하고 그것을 절차화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설명한 자유란 주체적 자유를 말한다. 공정한 자유란, 자유의 격차를 없앨 수 없으나 최소한의 자유를 누리는 위치의 사람 역시 최대한의 자유를 누리도록 그 격차가 제한되어야 함을 말한다. 아무도 타인의 자유를 침해할 자유는 없는 것이다.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의 자유가 보장되기 위해서는, 그가 주장하는 자유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필자는 자유주의적 헌법이 위험사회에서 ‘위험의 공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현재의 민주주의 헌법은 자유주의 헌법의 형태이다. 따라서 적어도 헌법의 가치를 거론하려면, 공정한 자유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롤스가 보여주듯이, 민주주의의 절차는 민주주의의 가치로부터 도출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절차의 전문성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이 공정하게 주체성을 인정받는지의 문제이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절차는 오히려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판단 및 참여의 기회를 보장하는 것이다. 정보를 언론이라는 정보수집 전문가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판단을 법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그리고 정치적 발언을 정치 전문가들이 독점하지 못하도록, 민주주의의 혈관을 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절차이다.

 

홍찬숙

목, 2021/01/14- 19:36
3
0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린 것은 엄동설한 추위에도 굴하지 않고 굳굳히 광장을 지켜냈던 촛불시민들이었다. 하지만 그 항쟁의 과실은 고스란히 야당 정치세력에게 돌아갔다. 이후 시민들에게는 단지 선거 당일의 투표와 자신들에 대한 지지 그리고 상대당에 대한 반대만이 요구되었을 뿐, 더 이상의 어떠한 정치적 권리도 허용되지 않았다.

대의민주주의는 요술방망이였고, 이 대의민주주의라는 이름 하에 ‘정당’만 쥐고 있으면 누가 싸웠든 누구의 희생으로 획득되었든 권력은 언제나 그리고 철저하게 그들의 소유물이었다.

동지는 간 곳 없고, 탄식만 남았다.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대표자만이 정책결정 권한을 독점한다

흔히 대의제는 민주주의와 등치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말하면 대의제는 하나의 통치기구의 구성 원리, 또는 국가의 의사 결정 원리로서 단지 민주주의의 하위 체계일 뿐이다. 그것은 권력분립, 선거제도, 정부 형태, 지방자치제도 등과 같은 민주주의의 여러 형식 원리 중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용어법상 직접 민주주의는 직접 결정방식, 대의제의 간접 민주주의는 간접 결정방식이라고 불러야 정확하다.

한편 의회민주주의란 의회 중심의 통치 질서에서 파악되는 것으로서 엄밀한 의미에서 정부 형태와 관련된 개념이며, 이는 단지 대의제의 한 형식에 속할 뿐이다.

특히 선거로 선출된 의원은 특정 선거구민이 아니라 전체 국민을 대표하고 전체적인 공공복리를 추구해야 한다는 대의제의 이론은 명령 위임을 부정하고 자유 위임을 주창하고 있는 바, 이는 시민 세력을 배제시키면서 그와 유리되어 결국 부르주아 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이데올로기로 기능해왔다.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프랑스와 영국 대의제의 역사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대의제라는 간접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고착되었다. 부르주아 세력은 국민세력을 동원하여 군주를 타도한 뒤 자신들의 정파 간의 무력적 권력 투쟁을 선거를 통한 정당 간의 권력 교대 혹은 경쟁이라는 ‘대의제’의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기제를 창출해낸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표자(의원)는 특정 선거민이 아니라 ‘추상적으로’ 전체 국민을 위한 전체 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국민에 책임을 지는 명령 위임을 배제하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명령 위임을 배제시킨 바로 그 순간 선출된 대표자는 국민에 봉사하는 위치로부터 국민 위에 군림하는 위치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대표자의 결정은 언제나 ‘전체 국민’의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전체 국민’이라는 실체가 없는 관념적 존재일 뿐이다.

대의 관계에서 대표되는 실체는 없으며 대표하는 행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대의 관계에서 존재하는 것은 오직 국민이 대표자를 선출하는 행위와 대표자가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행위뿐이다. 그리고 대표자의 이러한 행위는 ‘전체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그리하여 국민을 구속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의제에서의 대표자란 더 이상 선거민의 단순한 대변자가 아니며 대리인(Agent)이나 수임자(Kommissar)도 아니다. 그는 ‘전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에 언제나 ‘공명정대’하게 행동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의 결정과 판단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힘으로부터도 독립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물론 이러한 논리의 배경에는 탁월한 인물이 무지몽매한 국민의 의사나 명령에 따른다는 것은 당치도 않다는 우월적 의식이 깔려 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시각에서 보면, 국민들은 오직 자신들을 선출할 ‘권리’ 혹은 ‘자유’가 있을 뿐 통치는 자신들처럼 탁월하고 고귀한 사람들만이 담당할 고유 영역이다.

역사적으로 시민혁명은 부르주아혁명으로 마무리되었고 시민 세력은 탄압을 받아 그 힘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의제는 굳건한 통치원리로 정착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하여 국민이 직접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대표자를 통하여 간접적으로만 정치적 결정에 참여하며, 따라서 당연히 통치자와 피치자가 별개의 존재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렇게 통치자와 피치자가 구별된다는 사실은 결국 대의제가 국민의 자기 통치를 통하여 민주주의를 실현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의제는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대의 기관을 통한 통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대의제에서 무엇보다도 대표자의 독립성 보장이 강조된다. 왜냐하면 대표자는 국가의사 결정에 있어서 항상 피치자(被治者)보다 탁월한 능력이 있으므로 대표자가 피치자로부터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표자의 올바른 결정에 장애가 초래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시민의 특수 이익보다는 일반 이익 즉, 전체 이익이 존중되며, 무엇이 전체 이익인가에 대해서는 오직 대표자만이 결정할 수 있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이 과정에서 대표자에 대한 시민의 통제는 철저하게 관심 밖의 문제로 전락된다. 대중이란 기껏 무지몽매한 존재이므로 애초부터 일체의 정치적 권한을 줄 필요가 없거나 혹은 체제 질서를 파괴할 수 있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 어떠한 정치참여의 기회도 제공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리하여 대의제는 이른바 ‘대의 원리’에 근거하여 시민을 정치적 권한으로부터 배제시킨 채 대표자만이 정책 결정의 권한을 가지고 있게 됨으로써 정치적 의사 결정 과정은 명망가인 대표자에게 독점되었다. 결국 이러한 명망가 중심의 이른바 ‘명망가(혹은 명사, 名士) 민주주의’의 통치가 대의제의 근간을 이루게 되었다.

명망가에 독점된 이러한 배타적 결정권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기초하여 행사되기보다는 대표자 개인의 시각에서 그리고 자신들과 관련된 이익에 의하여 행사된다. 나아가 이들 대표자는 반드시 뛰어난 자질에 의하여 대표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재산과 사회적 영향력 혹은 이른바 ‘이너서클’의 인간관계 그리고 그를 앞세운 배후 세력의 사회경제적인 힘에 의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대 대의제가 지니는 이러한 성격은 과연 대의제가 사회 구성원 전체 이익의 공공가치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즉 대의제 하에서 특수 기득권의 부분 이익(특수 이익)의 지배로부터 공적(公的) 업무의 공공성 보장이 가능한가라는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대의제란 대표자의 활동에 따르는 위험성에 대한 담보가 오직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에만 맡겨지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그 대표자의 양심과 인격은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이익 추구로 변질된다(여기에는 선거와 당내 주도권 장악을 위한 갖가지 정치공학도 당연히 포함된다). 대의제가 지니는 근본적인 제도적 허약성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루소는 대의제 하의 국민은 대표자를 선출할 때만 자유로울 뿐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노예상태로 전락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었다.

 

직접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다

그러므로 대의제 민주주의는 공공선(公共善)이나 일반 의사의 지배가 아니라 정당 또는 정치인의 ‘부분 의사’가 지배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다. 다시 말하면, 현대 자유민주주의는 특정 집단의 이익과 가치가 특정 정당에 의하여 대표되는, 즉 ‘부분 의사’가 대표되는 정치 제도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최소주의적’ 대의제 민주주의 개념은 민주주의 가치를 축소시켰으며,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을 결코 보장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란 시민의 정치 참여에 의하여 자유, 평등, 정의라는 기본 가치를 실현시키고 시민으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에 대하여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시민의 통치 형태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정신을 정확하게 실현하는 방식은 바로 직접 민주주의이다.

화, 2021/01/19- 19:14
3
0

트럼프의 집권 4년은 세계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트럼프는 미국식 대의 민주주의의 ‘완벽한’ 절차를 통하여 합법적으로 선출된, 그것도 전통에 빛나는 미국 공화당의 후보로서 대통령에 취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집권 이후 백인우월주의의 인종차별 정책과 극단적 미국 이기주의에 토대한 국제질서 부정으로 일관하면서 전 세계를 경악시켜왔다. 마침내 극우파 시위대의 의회 난입이라는 폭거는 ‘미국 자유민주주의’의 조종을 울리는 신호탄이다.

 

미국, 직접민주주의를 기반으로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했다

처음 미국에 건너간 이주민들은 같이 배를 타고 와 정착한 동료들과 생활의 근거지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곧 town이었다. 인구가 약 2천 내지 3천 명에 이르렀던 town에서 주민과 밀접한 업무는 자신들의 손에 의하여 마을집회(town-meeting)에서 직접결정 방식으로 처리되었다.

주민들이 직접 처리할 수 없는 업무는 마을에서 선출된 사람들에 의하여 처리되었는데, 그들은 주민들이 위임한 실무적인 일만 처리하였을 뿐, 공적인 일에 대한 판단은 주민들의 직접 투표로 결정하였다. town에는 주요 행정기능을 수행하는 다수의 관리들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마을집회에서 직접 선출되었고 그 공적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면 책임이 뒤따랐다.

이러한 주민 자치제도는 특히 뉴잉글랜드에서 1650년에 확고하게 정착되었고, town의 독립성 역시 확고부동하게 자리 잡았다.

미국이 세계적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듯 그 직접민주주의의 힘에 기초하고 있었다.

 

차별성 없는 미국의 두 정당, 양당제의 역설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명예교수는 민주당과 공화당으로 나눠진 미국의 정당 체제에 대하여 “기업의 이익을 대표한다는 측면에서 사실 1당 체제다”라고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그는 미국을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체제로 규정하면서 이러한 체제 하에서 일반 대중들은 통제당하고 주변화 한다고 분석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양상은 특히 미국과 같이 기업들의 주도력이 강한 사회에서 더욱 뚜렷하다면서 선거에서 홍보 대행 산업이 활개를 치는 것은 대중을 통제하고 주변화 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역설한다.

그에 따르면, 미국의 경제는 1970년대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바로 금융화와 상품 수출이 강화되는 방향이었다. 여기에 부의 집중, 인구의 1%에 부가 몰리는 과격한 악순환을 조장하는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었다. 이에 따라 정치력 집중도 초래되었으며, 경제 집중을 유도하는 국가 정책들이 쏟아졌고, 그러면서 정당들은 자연스럽게 자본의 휘하에 끌려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촘스키 교수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별로 다르지 않다면서 미국의 차별성 없는 양당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사회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도 일찍이 “정치란 대기업들이 사회에 던진 그림자”라고 규정하고 이러한 상황은 “언론 등 정치 선동의 수단을 지휘하면서 은행과 부동산, 산업을 사적으로 통제함으로써 사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에 권력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석학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ugene Stiglitz)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미국 사회가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가장 잘 발전된 국가로서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서 자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국가일 뿐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그는 이 글에서 “미국 의회 의원 대부분은 선출되는 순간 상위 1%의 돈으로 유지되는 상위 1%의 멤버들이 되며, 무역과 경제정책의 핵심 고위관료들은 대체로 상위 1% 출신들이다. 또한 미국의 대법원은 선거비용 지출 제한을 철폐함으로써 기업이 정부를 돈으로 움직일 권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驕兵必敗, 교만한 병사는 필패한다

이제까지 미국의 양당 제도는 장기적으로 오랫동안 미국 정치의 장점으로 역할 해왔다.

하지만 그 장점은 이제 다원화되는 사회계층의 이해와 다양화되는 사회문제를 포괄해내는 데 경직성을 노정시키면서 오히려 미국 쇠퇴의 중요한 단점으로 작동하고 있다. 반면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광범한 대중에 토대한 사회(민주)당의 존재에 의하여 대중들의 이해가 보다 강력하게 정당정치에 반영됨으로써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 안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의 원칙 못지않게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역시 중요하다. 이 점에서 독일의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는 소수 정당의 존립 근거를 마련해줌으로써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회의 소수 그룹을 존중하기 때문에 바람직한 제도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제프리 삭스(Jeffrey Sachs) 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는 “레이건 정부는 부자들에게 세금을 덜 내게 하고, 군사비 등을 제외한 공공 서비스와 공공 투자를 줄였다”라며 미국 사회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레이거노믹스 시대 이래 상위 1%의 소득은 지속적으로 증가한 반면 나머지의 소득은 계속 정체되고 끔찍한 실업에 시달렸다고 비판한다. 그는 “다가올 시대의 중요한 도전은 99%의 번영을 이룩하고 그들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정치에 대한 금권의 지배는 이미 구조화되었다. 개방형 경선과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므로 특혜 정책을 위하여 돈을 제공할 능력이 있는 대기업의 정치자금 기부가 기부 액수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되어 있다. 미국 정치제도는 기업들의 로비 자금에 의하여 운용되고 있고, 이로 인하여 정작 교육, 의료, 에너지 등 대중들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회경제 분야는 점점 관심을 받지 못하게 된다. 미국이 현재 세계에서 코로나 19 환자와 사망자가 많은 나라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병필패(驕兵必敗), 건강한 신대륙의 건국 정신은 사라지고 패권국가로 너무 오래 교만하게 군림해왔다. 미국은 더 이상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니다. 쇠락의 추세는 비단 정치만이 아니라 그간 미국이 자랑하던 외교, 인권, 경제 그리고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현시되고 있다.

더 큰 비극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그다지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소준섭

화, 2021/02/02- 19:44
6
0

한 나라 두 대통령 스캔들로 2019년을 뜨겁게 달군 베네수엘라 사태가 일어난 지도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국회도 아닌 광장에서 스스로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한 야당 과이도 의원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일이다. 그는 2019년 1월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으로 선출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재선에 성공한 마두로 대통령 취임식 직후 자신이 ‘합법적’인 대통령이라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라틴아메리카 전대미문의 정치권 ‘희극’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어설픈 시나리오와 기획, 그리고 무엇보다 ‘배우’들의 ‘발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인 ‘작품’이었다. 국제사회를 상대로 베네수엘라 민주주의 ‘위기’라는 설정으로 일정부분 ‘흥행’을 일으키는 데는 성공을 했다. 미국이 주도하고 이에 보조를 맞춘 외신들의 호들갑스러운 ‘공모’ 덕이다.

과이도 의원이 자신을 대통령으로 ‘셀프임명’하자, 미국을 비롯한 서구 유럽 열강들은 앞다퉈 그를 대통령으로 인정하는 발표를 쏟아냈고, 아쉽게도 한국도 그중의 하나였다. 애초부터 적법한 절차나 정당성을 상실한 이 같은 ‘선언을 위한 선언’은 그저 베네수엘라에 대한 국제사회의 ‘명분’있는 개입, 더 나아가 직접적인 군사개입을 위한 시작이었을 뿐이다. 야당조차 국내의 제도적 장치를 통해 민주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애초부터 없었다. 베네수엘라 야권이 지난 2년간 보여준 행보는 이를 증명하고도 남음이다.

게다가 민주적 해결이라면 대화 혹은 선거라는 장치를 통하는 것인데, 야당은 여당 지지층의 결집에 대항할 세력을 만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거가 더는 해법이 되지 못했다. 야권과의 정치적 합의를 끌어내려는 마두로 정권의 끊임없는 시도에도 불구하고, 야당은 합의된 대화에 불참하거나 불이행하는 방식으로 한 걸음의 진전도 허용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부르주아 지배계층을 대변하는 G4의 야당 연합은 줄곧 국내적으로는 폭력적인 가두시위를 선동하고, 대외적으로는 특히 미국의 군사개입을 노골적으로 지속해서 요청해왔다. 이는 같은 해 9월 미주연합기구(OEA)의 미주상호방위조약(TIAR)을 발효,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군사개입을 공식화하는 수순으로까지 이어진 바 있다.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난 2년간 베네수엘라 사태의 정점에 있던 자칭 베네수엘라 ‘대통령’으로 홀로 ‘군림’했던 과이도 의원의 퇴장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 우선,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에서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277석 중 256석을 얻어 의회 권력을 다시 회복했고, 의회 권력을 통해 현 정권을 사보타지 했던 야당은 이제 국회라는 ‘합법적’인 정치적 기반을 잃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베네수엘라 야당 내에서는 물론 일반 야당 지지층 국민 사이에서도 처음부터 지지가 높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의 가장 큰 기반은 미국의 ‘선택’을 받은 인물이라는 것 뿐이다. 국내 지지기반이 취약한 상태로, 명분은 고사하고 적법한 정치적 절차나 정당성 상실, 게다가 국경을 맞대고 군사적 긴장 관계에 있는 콜롬비아 마약 범죄조직과의 연루설과 불법 자금 유용 등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은 여전히 산적하다.

아래 사진[사진1]은 얼마 전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의회를 ‘점령’한 일을 풍자하며 “미국의 트럼프 지지자들과 베네수엘라의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태그를 달고 SNS로 공유되는 사진의 일부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과 과이도 의원이 2020년 베네수엘라 의회로 들어가기 위해 의회의 ‘담’을 넘는 모습을 포착한 사진이다.

베네수엘라에서 과이도 의원은 이미 미국의 ‘꼭두각시’라는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그를 빗댄 풍자와 해악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사진1] 베네수엘라에서 공유되는 과이도와 미국을 풍자하는 SNS 캡쳐화면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2019년 국회의원 의장 임기가 끝나는 과이도 의원을 이어 새로운 의장을 선출해야 했던 2020년 초 베네수엘라 의회에서 일어난 진풍경이다. 새로운 국회의장 선출을 ‘보이컷’한 과이도 의원이 뒤늦게 의회로 진입하려고 시도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2019년 과이도 의원이 베네수엘라 국회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난 2016년 거대 야당 연합으로 차베스 진영에서 국회 권력을 가져온 야당의 합의에 따른 것이었다. 즉 국회의장 자리를 주요 거대 4개 야당(G4)에서 번갈아 맏기로 하였고, 그 결과 과이도 의원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Voluntad Popular)당 차례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임기가 끝나는 2020년 1월 그는 국회의장 자리를 내놓을 생각이 없었고, 의석수 불충분이라는 핑계로 선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소수의 과이도 지지자를 제외한 야당 연합 G4은 정의제일당(Primero Justicia)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며, 지난 1년간 ‘명실상부’하게 두 명의 국회의장을 두는 초법적 선택을 하며, 야당의 끊임없는 자중지란이 이어졌다.

스스로 국회의장이라는 자격을 내세워 대통령으로 셀프선언하고 1년이 지났음에도 이렇다 할 정치적 ‘성과’는 고사하고 오히려 야당 내 자중지란으로 귀결되었으나, 과이도 의원의 ‘위상’에 이만저만한 생채기가 적지 않았음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과이도 의원은 베네수엘라 야권과 그 지지층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그에게 쏟아진 지나친 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기실 베네수엘라 사회 내에서 그가 차지하는 정치적 위상이나 헤게모니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루어져 왔다. 어쩌면 베네수엘라 야당을 대표하는 이미지로 줄곧 ‘무대’에 올랐던 그는 국제사회가 유일한 그의 관중이었을 지도 모른다.

미국의 그림자가 강력히 드리워진 베네수엘라의 주요 4대 야당 연합은 속칭 G4라 부른다. 과이도가 속한 소수정당인 민중의지당을 포함, 민주행동당, 새 시대, 정의제일당 등을 포함한 이 연합은 가장 극우적 성향의 집단이다.

한편, 과이도 의원의 소속 정당인 민중의지당의 실세는 레오폴도(Leopoldo)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과이도 의원의 정치적 ‘멘토’이기도 하다. 차베스 사망 이후 끊이지 않았던 폭력사태(병원건물방화, 길거리 폭력시위 등)를 주도한 혐의로 기소되었고, 대법원판결에 따라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얼마 전 일어난 군부 쿠데타에 가담한 정황이 드러나자 주베네수엘라 스페인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 지금은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생활하고 있다.

참고로 그의 아버지 레오폴도 길(Leopoldo Gil)은 지난 2015년 스페인 국적을 취득, 현재스페인 보수정당이자 집권당인 인민당(Partido Popular)소속으로 2019년부터 유럽의회 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과이도 의원의 대통령 ‘셀프선언’ 이후 스페인이 과이도 ‘체제’를 옹호하고 적극적으로 지지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레오폴도는 법의 심판을 피해 국외로 탈출하였으나, 외신들은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잠시 해외로 몸을 피한 ‘애국자’인 듯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베네수엘라 국민이 궁금한 것은 그의 ‘애국행위’가 아니라, 그가 마드리드 고급 아파트에 매달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진 약 만유로(한화 1300만원)의 출처다.

최근 치러진 총선의 결과는 베네수엘라의 핑크빛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을 가진 부르주아 자본가 계급의 야당 연합 G4의 계속되는 정치권 사보타지,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병적인 집착은 바이든의 민주당이라고 해도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테니까. 상기해보면, 베네수엘라를 미국 안보의 ‘위험’으로 간주한 것은 2015년 오바마 시절의 일이다.

과이도의 등장으로 국제사회가 떠들썩할 때, 카라마스 도심의 한 공원에서 레크레이션을 즐기는 모습

지금까지 베네수엘라를 다루는 거대 자본의 미디어들은 대부분 진실보다 자극적인 소재와 왜곡된 기사를 쏟아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는 사실관계 파악이 아닌 외신을 번역해서 나르는 일이 전부였다.

2019년 과이도 의원의 등장으로 야단법석을 떤 것은 오히려 국제사회였을 뿐 정작 베네수엘라는 평온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베네수엘라의 변화가 이를 희망하는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한, 그들의 시간은 묵묵히 그들의 편에서 흐를 것이다. 비록 국제사회의 부르주아 계급들이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선택을 끊임없이 막아설지라도.

이제는 그만 베네수엘라 민중들에게 그들의 미래를 맡겨야 하지 않을까.

 

정이나

목, 2021/02/04- 19:12
5
0

팬데믹, 즉 세계적 유행병인 코로나19는 의심의 여지 없이 의학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이동량’이나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 모임 제한’ 등의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또한 사회학적 문제임을 알게 된다. ‘사회학적’이라 함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작용하는 어떤 무엇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발병 및 확산 초기에 그 ‘어떤 무엇’은 사회적 심성 또는 지배적 규범의 문제로 해석되었다. 그리하여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 유교 문화권 국가의 ‘순종적’ 국민 덕에 방역이 잘 된다고 해석되었다. 물론 신천지 등 일부 개신교 집단에서 전체 사회보다 자기 집단에 ‘순종적’인 문화가 방역에 가장 큰 장애가 됨이 곧 밝혀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사회적 관계의 질서에서 ‘집단도덕’이 핵심이라고 보는 견해는 근현대 주류 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장이다.

다음으로, 그 사회적인 ‘어떤 무엇’은 공공의료제도라는 ‘제도’의 문제로 이해되었다. 특히 한 국제기관에서 독일의 공공의료제도를 높이 평가하여 한국보다 방역에 앞서 있다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내 공공의료제도의 문제가 드러나면서 그와 같은 의견이 대두했다. 그러나 스페인 등 여타 유럽 국가의 환자까지 실어와 병상을 제공했던 독일에서 코로나19 방역이 실패하여 사회폐쇄가 연장되면서, 이런 관점은 설득력을 잃었다. 또 공공제도가 잘 갖춰진 대표적 북유럽 복지국가인 스웨덴에서 난데없는 ‘집단면역 실험’을 했다가 실패하면서, 단순히 ‘제도’만의 문제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이렇게 의료제도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는 경우는 의료사회학적인 입장이다.

최근 들어 코로나19의 감염 동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경우가 잦아지면서, 사회적인 ‘어떤 무엇’의 핵심은 역학조사 및 그와 관련된 개인정보 수집의 문제로부터 점점 멀어져서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회폐쇄 여부, 즉 개인들의 이동량 통제 문제로 넘어갔다. 결국 3차 유행에 와서는, 역학조사 중심의 초기 감염병 대응에서 실패하여 익명적, 집단적 자유제한 정책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던 유럽과 유사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서구와의 차이가 나타났다. 서구에서는 사회폐쇄에도 불구하고 이동량이 크게 줄지 않아서, 젊은이들의 파티와 사적 모임에서의 감염이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리하여 학교나 직장과 관련된 이동량까지 줄여야 하는 문제에 직면했다. 반면에 한국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정책이 이동량 감소로 상당히 잘 연결되는 결과를 보여왔다.

지금까지 경과를 보면, 결국 사회적인 ‘어떤 무엇’에서의 핵심은 ‘사회적 거리’와 관련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것을 단순히 정부 방침에 잘 따라주는 ‘순종적’ 심성의 문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다른 차원의 문제로 볼 것인지가 핵심일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를 통해 드러난 또 다른 ‘사회적 거리’의 표현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 아파트 경비원 폭행 주민, 정인이 사건 등의 아동학대 부모에 대한 분노를 통해 나타났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에 대한 공감은 인간적 공감의 형태로만 표출될 뿐, 과로를 강요하는 산업의 이익분배 구조에 대한 문제 제기로까지 이어지지는 못하고 있다. 독일에서 간호 및 돌봄 노동자의 처우개선에 대한 문제가 코로나19를 계기로 집단적 목소리로 표현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아파트 경비원 폭행에 대한 분노 역시 노동권의 문제보다는 개인 인권의 측면에서 공감대가 확대되는 양상이다.

그러나 살인과 구별되기 힘든 양상의 아동학대에 대한 분노는 단순히 인격적 분노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불능에 대한 분노이기도 했다. 아동학대 신고 절차를 제대로 따른 행위자가 시민들 개인에 한정되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경찰이나 입양기관과 같은 조직적 행위자는 모두 책임회피와 무시로 일관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학대 부모에 대한 인간적 분노 못지않게 컸다. 그러나 정인이에 대한 젊은 부모들의 진정성 있는 추모의 물결은, 그 이전의 세대들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전경이기도 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정인이에 대한 추모가 ‘남에 대한 추모’라는 거리감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거리감의 변화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2차 집단’ 관계 속에서 개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거리감’이 매우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과거의 ‘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개인들은 ‘남’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다. 과거 ‘정’은 인연 맺기와 유관한 친밀감이다. 일회적이거나 익명적인 성격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공감이 아니라, 인연 지속의 기대감 속에서 호혜적인 감정을 교류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사회학에서 말하는 ‘1차 집단’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택배 노동자, 아파트 경비원, 아동학대 피해자에 대한 공감은 ‘연고가 배제된’ 공감으로서, 사회학에서 말하는 ‘2차 집단’적인 관계에 가깝다. 주류 사회학에서는 ‘2차 집단’ 관계의 핵심은 이익이라고 보았다. 서로의 이익을 위해 결합한 ‘차갑고’ ‘계산적인’ 관계라고 규정했다. 물론 거기에도 호혜성이 성립하나, 그것은 ‘인격적 친밀감’이 아니라 ‘공적 의무’에 기초한다. 즉 만일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은 한층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이다.

서구에서는 그런 시민적 공감이 공적 제도화를 낳았고, 그리하여 민주주의의 다양한 절차들이 확립되었다. 즉 서구에서 제도화는 곧 규범의 표현일 뿐만 아니라 실현 역시 의미한다. 그런데 택배 노동자나 아파트 경비원의 경우를 통해 보이듯이, 한국에서 공적 공감은 제도화로 쉽게 연결되지 못한다. 공감되는 개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 자체가 기대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제도화가 어려운 이유는 규범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고용자의 산업 논리가 더 우선인지, 아니면 피고용자의 인권이 더 중요한지가 사회적으로 논의된 적조차 없어서 규범이 무엇인지를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야말로 무규범의 상태이다. 또는 정인이 사건에서처럼, 제도화가 이루어진 경우에도 그 제도는 작동하지 않는다. ‘남’에게 공감하는 개인들은 제도를 따름으로써 그 규범에 동조하지만, 제도를 지켜야 할 권력기관은 제도를 무시할 만큼 규범에 무지한 것이다.

시민 개인의 시민적 공감과 제도 규범 간의 이러한 괴리는, 아마도 민주주의 절차를 권위적으로 제도화한 한국 정치사와 관련이 깊을 것이다. 즉 제도화를 위해서는 대표된 권력이 필요하고, 권력을 대표하기 위해서는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표현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사에서는 이런 중간 과정이 아예 생략되거나 아니면 단순 절차적으로만 적용되어왔다. 권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소유대상이 되어 그 자체가 이익으로서 분배된다. 권력을 대표자에게 이양하는 시민들의 마음이 권력 대표자에게 전달이 되지 않으므로, 개인들은 추상적인 시민적 공감의 수준을 넘어 사무치게 인격적인 공감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제도화가 개인들의 마음과 괴리되어 있는 만큼, 그리하여 제도화가 규범의 표현이 아니라 권력의 표현이 되고, 그리하여 사회적 규범이 무엇인지 확인이 안 되는데 개인들의 감정만 확인되는 상태에서, ‘남’에 대한 격한 인격적 공감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내 집단’과 ‘남의 집단’을 엄격하게 나누어 이질적으로 집단 관계를 규정하던 고전적인 사회적 관계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오히려 ‘나’, ‘공감되는 다른 개인’, ‘권력기관’으로 상호작용의 대상을 삼분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고, ‘나’를 포함한 ‘개인’과 ‘권력기관’ 간의 권력 비대칭성을 뼈저리게 인식하는 마음의 상태가 표현된 것이 아닌가 한다. 말하자면 시민 개인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권력에서 소외된’ 남들에게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에서의 방역 성공은 권력기관에 대한 이러한 불신과 쌍을 이루는 듯이 보인다.

주권자로서 미약한 개인의 처지에서 신뢰할 수 없는 권력기관을 마주하여, 스스로 솔선수범해서 방역의 최전선에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한국에서 지금까지 방역이 성공했던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렇게 성공한 방역 역시 서구의 방역 못지않게 위태로울 수 있다. 서구의 경우 개인 주권자 의식이 강한 개인들이 정부의 방역 정책을 불신하여 방역이 어렵다면, 한국에서는 제도적 권리가 약한 개인들이 최악의 상황을 예방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방역 정책을 따르기 때문이다. 시민 개인들의 이런 자발적 동원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시민들의 헌신적인 솔선수범이 코로나19 이후의 한국 사회에서 ‘제도화한 권리’의 형태로 보상받아야 한다. 현재의 방역 성공은 한국의 의료제도, 경제 제도, 이익분배 방식 덕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불충분한 상태에서 스스로 솔선수범하고 타인에게 마음 깊이 공감하여 ‘시민적 동원’의 최고치를 만들어낸, ‘좋은 시민’들 덕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화, 2021/02/09- 20:31
2
0

국회 전문위원 검토보고서를 직접 봤더니

얼마 전 경기연구원의 한 연구원은 국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를 직접 읽고서 개탄하는 기고문을 발표하였다.

보건복지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를 읽어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상임위원회의 검토보고서라면 해당 정책을 논의하는 중요한 기초자료인데, 그 가운데 기본소득에 관한 사실관계(fact)가 틀린 곳이 다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나라의 정책이 이런 허술한 자료에 근거하여 논의되고 결정된다니 정말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검토보고서는 기본소득의 기초적 개념조차 모르는 전문위원이 작성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몇몇 기고에서 수석전문위원이 초선 의원 5~6명을 합한 것보다 힘이 세다는 것, 그것은 수석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때문에 국회의원이 입법에서 소외되기 때문이라는 것, 이러한 폐단은 전두환 군사정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하여 드디어 참여연대가 이처럼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고 나섰다는 것 등을 간간이 보아 왔다. 그렇지만 그저 문제가 많은 제도구나 라고 어렴풋이 느꼈을 뿐, 그 깊은 내막까지는 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에 검토보고서라는 것을 직접 보고 나니 그 폐해가 피부로 느껴진다. 이렇게 부실한 검토보고서로 저렇게 막강한 권한을 누리다니 얼마나 우려스럽고 위험한 일인지…(정원호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원, “국회의 기본소득 검토보고서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 <프레시안>, 2020, 12,30)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는 단지 ‘검토’의 차원을 훨씬 넘어선 것이다. 지엄한 ‘선언’이요 ‘결정문’과도 같은 위상으로 된지 이미 오래다. 세계 의회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회공무원, 즉 입법관료에 의한 법안 검토 시스템이다. 그리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가운데 입법관료의 영향력은 막강해졌다. 하지만 이른바 ‘국회 전문위원’은 공무원시험에 합격해 국회에서 순환 근무하는 국회 공무원들일 뿐이다. ‘전문’이란 그 명칭과 부합되지 않는다.

 

국회는 입법관료의 하부 구조인가?

필자는 오래 전부터 국회 전문위원이 피감기관이나 행정부 소속기관 공무원에게 “갑중의 갑”이라는 ‘증언’을 많이 들었다. 그들이 법안과 예산에 대한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 권한을 비롯해 국정감사 제도를 통하여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연전에 국회의 한 전문위원이 자신의 직무가 “국회의원과 비슷한 영향력이 있다”며 해당 상임위 소속기관에 국회의원급의 식사와 골프 접대를 요구했다는 논란이 각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국회 전문위원 스스로도 자신들이 국회의원에 준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현실이다. 국회의원 스스로 부여받은 권한을 행사하지 아니하고 그 직무를 유기하면서 생긴 권한의 공백이 국회 입법관료들의 수중에 쥐어진 셈이다. 그러니 국회가 “입법관료의 하위 구조”라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참여연대는 최근 “국회법상 전문위원은 국정감사를 지원하고, 법안에 대한 조사 등을 통해 검토보고서를 제출한다. 국회는 법안 심사 시, 첫 단계로 해당 법안에 대한 전문위원의 검토보고를 의무적으로 들어야 하고, 전문위원의 검토보고가 국회의원들의 법안 심사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며 “국회의원의 입법권을 훼손하는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국회란 숟가락만 얹어놓기선수들이 필요한 게 아니다

우리는 국회가 법률 해석과 관련하여 법제처의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경우를 여러 차례 목격한 바 있었다. 그러나 법제처는 행정부 각 기관에 법률 문제와 관련된 자문을 수행하는 행정부의 일개 부처로서 국회가 그러한 법제처에게 ‘유권해석’을 요청하는 것은 전혀 위상에도 맞지 않고 자존심도 버려버린 상황이다. 또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국회는 늘 자신들의 정쟁 문제를 검찰에 고소 고발하고 법원 판단에 맡겨놓고서 ‘하염없이’ 그 결정을 기다린다. 그런가 하면 국회 내에서 여야끼리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이제는 국회 사무처에게 ‘유권해석’을 의뢰한다.

매사에 숟가락만 올려놓는 자세로 일관한다. 이런 자세로 일관하니 마땅히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법률 검토도 (세계 의회사상 유례가 없이) 국회 공무원에게 맡겨놓고 이제 거꾸로 그 ‘검토’를 신주 모시듯 모시면서 ‘분부’를 기다리게 된 것이다.

물론 국회의원 본인들은 자신들이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다며 자부할 게 분명하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법안을 ‘발의’하고, 본회의에도 열심히 출석하여 법안을 통과시키며, 매일 같이 상대당을 향해 질타한다. SNS 활동 또한 대단히 열심이다. 또 줄줄이 찾아오는 민원인과 이해당사자들 만나느라 분 단위로 약속이 잡혀있고, 게다가 지역주민들의 경조사를 비롯해 각종 모임 등등… 너무 바쁘고 너무 열심히 일하는 선량의 삶이라고 스스로 자부할 것이다. 하지만 외화내빈, 속빈 강정이다.

 

근본을 잃게 되면 모든 일이 본말전도된다

오늘 우리 국회의 모든 왜곡과 혼돈은 근본적으로 국민이 부여해준 입법권 수행이라는 직무를 사실상 유기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만약 우리 국회의원들이 다른 나라 의원들처럼 법안 검토를 국회 공무원에 넘겨 대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직접 불철주야 진지하고 성실하게 수행한다면, 지금처럼 주야장천 아수라장의 정쟁에만 몰두하는 시간 자체가 없게 될 것이다. 또 마치 연예인처럼 SNS 활동과 ‘재담(才談)’에만 몰두하는 국회의원의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다.

기본과 근본을 잃게 되면 모든 일이 본말전도된다. 국민들이 부여해준 입법권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게 되면, 결국 내가 아니라 그 다른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 국회의원 중 세계 의회사상 유례가 없는 이 왜곡된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를 개혁하여 자신들이 직접 수행해야 한다고 나서는 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이것이 문제라고 말하는 의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는 과연 언제 제대로 된 국회의원을 볼 수 있을까?

 

소준섭

화, 2021/02/16- 19:31
4
0

지난 1년 이상 돌림병이 여전히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 전쟁판 같은 엄청난 불안과 공포, 위험에도 불구하고 한미군사훈련을 꼭 해야 하나? 한국과 미국 군부는 신종 코로나 바리어스 감염증(COVII)-19)의 세계적 만연이라는 대위기상황에도 불구하고 3월 둘째 주부터 9일간 한미연합훈련을 실시키로 했다. 참으로 어이없고 부질없는 짓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번 한미연합훈련은 실제병력이 투입되는 야외 실기동훈련(FTX, Field Training Exercise)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연합지휘소연습(CPX, Command Post Exercise)으로 시행될 예정이다(다음 <그림 1> 참조). 그 훈련 규모와 훈련 계획 등 세부사항은 양국 군부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알려졌다.

<그림 1> 2021년 3월 실시 예정 한미훈련 개요 및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추진 현황 <출처: 동아일보 2021. 2. 15. A8면>

이 한미연합훈련은 사전연습인 연합지휘소훈련(CCPT, computer-simulated Combined Command Post Training)에 이어 위기관리참모훈련(Crisis Management Staff Training, CMST)이 진행되어 1부는 5일간, 2부는 4일간 실시된다.

그동안 한미양국은 이런 군사훈련을 매년 연례행사로 실시해왔다. 특히 주목할 점은 키리졸브 연습, 독수리 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 연습, 비질런트 에이스 연합공중훈련 등이 연중 계속 이어져왔다는 점이다(다음 <그림 2> 참조). 말하자면 한미 양국은 연중 한 차례 한미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게 아니라 이런저런 이름으로 수시로 군사훈련을 해왔다는 데 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실시와 연기, 미실시를 반복해 온 한미군사훈련의 사례부터 살펴보자.

키리졸브 훈련은 2018년 3월에 실시되었으나 2019년엔 연합지휘소 훈련으로 축소되어 실시되었다가 2020년에 COVID-19 악화로 무기 연기되었다. 그리고 이번 2021년 3월에 컴퓨터 시뮬레이션방식으로 실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독수리훈련은 2018년 4월에 실시되었으나 2019년 폐지되었고, 2020년 8월에 규모를 축소하여 실시되었다.

츨지프리덤가디언연습은 2018년 중단되었다가 2019년 8월에 연합지휘소훈련으로 대체되었고, 2020년 8월에 10일간 규모를 대폭 축소하여 실시했다.

비질런트 에이스 연합공증훈련은 2018년 12월에 다른 훈련으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 아예 연기되었고, 2020년 4월에 4일간 실시되었다. 이런 군사훈련은 1년에 전반기화 후반기에 실시되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남북갈등이 고조되던 때나 남북대화가 진행되던 때나 가리지 않고 한미동맹을 내세워 한미연합 군사작전을 연습해 왔다. 이게 대한민국이 불완전한 주권국가임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림 2>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주요 한미연합훈련 진행현황 <출처: 문화일보 2021. 2. 15.>

이 군사훈련 실시와 연기, 폐지, 대체 현황에 관해 나타난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이번 2021년 한미연합 군사훈련에 대해 통일부뿐만 아니라 외교부에서도 이런저런 방식으로 이견을 보여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와 같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보자고 생각했다면 그 어떤 이유를 들더라도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했어야 마땅할 것이다.

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는 지난 1월 노동당 제8차대회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과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요구했다. 이런 그의 요구는 2018년 6월 11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성사와 4·27판문점선언과 9·19 평양공동선언에 비추어보아 너무나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특히 919 군사합의에 의해 군사분계선에 존재했던 양쪽 전방초소들을 파괴한 이후 아무런 군사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비춰보아도 한미군사훈련을 이 시점에서 강행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이번 2021 한미연합훈련은 전시작전통제권의 한국으로의 전환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미국 두 나라는 이번 한미연합훈련에서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완전운용능력(FOC, Full Operational Capability)을 검증해야 한다고 전해진다. 2020년 후반기에 실시되었던 한미연합훈련에서 완전운용능력을 검증해야 했으나 사실상 무산되어 예행연습만 실시되었다. 따라서 한국은 이번 상반기 연합훈련을 통해 완전운용능력을 검증하길 원하고 있다. 한국정부가 2021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 full mission-capable) 검증까지 완료하여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완료하려면 이번 상반기 훈련과정에 완전운용능력 검증을 완료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즉 한국군은 북한의 반발 등을 감안하여 훈련 규모를 축소하더라도 완전운용능력 검증을 이번 훈련에서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주장대로 별도의 시기에 별도 방식으로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본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한다면서 굳이 한국군과 미군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합군사령부를 구성, 운영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셋째, 한미 양국 군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후 구성, 운영될 한미 미래연합사령부의 전시 지휘통제소 위치를 둘러싸고 견해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은 수도방위사령부가 관할하는 남태령의 B-1 문서고를 전시지휘소로 선호하고 있고, 이미 몇 년 전부터 이를 위한 리모델링 작업을 해왔다. 그러나 미군측은 이 전시지휘소를 성남시 미군 전용 핵 ‘CP 탱고, CP TANGO, Command Post Theater Air Naval Ground Operations; TANGO탱고’를 사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이 핵벙커는 구글 지도에 위치가 노출된 이 미군전용 지휘통제소이다. 한국군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려면 한국군이 원하는 장소나 위치에 전시지휘소를 설치, 운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넷째, 이런 한미군사훈련 실시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해 한미간 견해차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미군측은 COVID-19 등 이유로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완전운용능력 검증을 뒤로 미루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한국측은 아예 그런 이류로 한미연합훈련 자체를 연기하자는 주장을 왜 펴지 못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네 가지 의문조차 풀지 못하고 있으면서 안보공백 타령이나 하면서 자주국방을 말하는 게 우습지 않은가 묻고 싶다.

끝으로 묻는다. 이제 대한민국은 한미군사동맹이 우선인가 민족간 교류와 협력이 우선인가 여부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된다. 언제까지 미국이 원하면 국토 어디에서라도 미군을 위해 군사기지를 제공해야 하는지 라는 물음에 응답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미군사동맹만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필수조건인가? 그렇다면 남북대화나 남북교류와 협력은 접어야 하는가? 아니면 이제 한미군사동맹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남북관계 개선과 도약을 통해 한반도 평화 대전환을 추구하는 게 민족문제 해결의 급선무라는 가치전환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즉 한반도 평화 대전환은 모든 국정목표의 우선목표요 대상이어야 한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주권국가임을 증명해 보여야 할 때이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주권국가임을 증명하려면 군사주권, 전시작전통제권을 미국으로부터 어서 빨리 회수해야 할 것이다. 70년이나 철 지난 한미군사동맹의 낡은 신화로부터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허상수

목, 2021/02/18- 20:39
3
0

글제에서 대충 파악이 되듯이 이번에는 우리나라 축산과 육식의 과다 섭취의 문제이다.

통계상 우리나라는 1인당 육식섭취량이 일본보다 2배 정도 많다고 한다. 1년에 먹어치우는 닭의 양이 2억 마리가 넘는다. 이것도 2019년 통계이니 코로나로 인해 집콕생활을 강요받았던 지난해에는 더 늘었을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양의 고기를 먹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미국을 비롯해 외국에서 값싸게 들여오는 GMO(유전자조작농산물) 사료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사료용으로 천 만톤 정도의 GMO 사료를 수입한다. 우리나라 쌀 생산량(2020년도 약 350만톤)의 약 세배 가까이나 된다. 수입량에서 짐작되듯이 우리나라는 많은 식용 가축을 키우고 있다.

불과 20~30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농가는 대부분 소 한 두 마리를 키웠고 그 소들은 일소로 쓰이기도 하고 농가소득에서 짭짤한 부수입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사료를 공급하는 곡물 수출국의 기상이 악화되어 사료값이 오르면 소를 한 두마리 키우는 농가는 버티기 힘들다. 또 부업으로 한 두 마리를 키우던 농가의 농민들이 나이가 들면서 사료 급여와 분뇨 처리가 힘들어지면서 사육을 포기하게 되었고 축산은 점점 규모화 되어갔다.

이제 시골 농가에서 부업으로 소 한 두마리를 키우는 농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축산은 농가에서 생산하는 여러 작물이나 품목 중 하나가 아니라 축산업이라는 영역으로 독립되었고 전문 경영자들에 의해 좁은 공간에서 대량으로 사육되고 있다.

조류독감(AI)이라든가 구제역, 아프리카 돼지열병(ASF) 같은 가축전염병에 감염되어 농장에 있는 가축을 전부 살처분했다는 얘기는 20~30년 전만 해도 들을 수 없었던 얘기이다.

좁은 땅에서 많은 가축을 키워야 하니 조밀하게 키우는 밀식 축산을 할 수 밖에 없다. 동물 학대니 동물 복지니 하는 얘기는 문제가 되는 그 때 뿐이고 축산 환경은 개선되지 않는다. 가축전염병은 한번 돌면 밀식, 밀접된 축산농장 안에 사육되는 동물에게 급속히 전염이 된다. 특히 요즘 지어지는 양계장은 냄새를 줄이고 외부의 전염병을 차단하기 위해 창없이 밀폐된 축사를 짓는다. 무창계사라고 한다. 전염병이 침입하면 집단감염이 일어나기 딱 좋은 시설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조류독감이 이번 겨울에 다시 나타났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농장의 닭이나 오리들은 모두 살처분된다. 살처분이라는 말에는 섬찟, 끔찍, 폭력, 잔인이라는 느낌이 잘 안드러나지만 감염이 되면 이 농장의 닭들은 농장 주변에 땅을 파고 안락사 과정도 없이 생매장으로 살육된다. 조류독감이 발생한 농장의 닭이나 오리들은 물론 살처분되고 반경 3km 이내의 농장에 있는 닭이나 오리들도 모두 예방 행위로 똑 같이 살처분된다. 한 농장에서 키우는 닭이나 오리들은 수 십, 수 백 마리가 아니라 수 만, 수십 만 마리가 된다. 이 생명들이 영문도 모르고 한꺼번에 구덩이로 내몰려서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경기도 화성에 가면 ‘산안마을’이라는 농사공동체가 있다. 이 공동체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체계적인 사육방식을 이용해서 유정란을 생산한 곳이며 친환경 축산과 동물복지농장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 농장 가까운 가금류 농장에서 조류 독감이 발생했다. 반경 3km 안에 포함된 산안마을 양계장의 닭들도 살처분의 대상이 되었다. 농장 앞에는 공무원들이 초소를 세워 달걀 반출과 사료반입을 막고 있다. 공동체 식구들은 살처분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고 이 공동체 대표를 지낸 윤 모 대표는 가축들의 생명과 자신의 생명을 바꾸더라도 막겠다고 농성을 하고 있다.

산안마을 공동체 구성원들은 양계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고민하고, 공동체를 통해 개인과 서로의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성찰하는 삶을 택했고 강요나 유혹이 아닌 공명과 스스로의 결단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인간이 가져야 할 존엄을 지키는 만큼 자기들이 키우는 닭과 가축도 존중하고 건강과 행복권을 지켜주려고 노력했다.

정부는 동물학대와 가축전염병으로부터 동물들을 지키고 동물권, 행복권, 동물복지를 실현하는 동물복지농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산안마을은 그 가장 앞자리에 있다.

산안마을 양계장은 2014년 조류독감 대유행 때도 매몰 명령이 떨어졌으나 끝까지 버텨내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은 곳이다.

전염병에 감염된 가축은 멀리 이동할 수 없다. 그래서 농장 가까운 곳에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거기에 살아있는 가축을 집어넣고 묻는다. 지금은 살처분 광경이 끔찍하다고 TV에 잘 안나오지만 우리는 그 전에 얼마나 잔인하게 처리했는지 기억한다. 거대한 구덩이에 대형덤프트럭으로 가축들을 쏟아부으면 멀쩡한 소나 돼지가 살겠다고 가파른 구덩이를 기어오르고 굴삭기 대형 삽날로 밀어넣고 찍어누르던 장면을.

가축 살처분은 그 지역 주민과 공무원들에게 생명을 죽여서 받는 정신적 고통 – 트라우마를 남긴다. 가축 주인들에게는 경제적 타격과 실의를 남긴다. 지역은 토양과 지하수 오염의 위험에 빠진다.

대량 밀집 공장형 축산의 필연적 결과이다.

육식의 제한없는 섭취. 신 선진국 대한민국의 반성 지점이다.

지금과 같이 육식을 과잉섭취하면 동물복지농장을 확대하기 어렵다. 대량 밀식 축산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사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식량자급율을 올릴 수도 없다.

육식의 대량 섭취는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지구환경에도 악영향을 준다. 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 환경위기의 1/4이 축산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경기도 가축방역심의회에서 ‘산안마을’의 상황을 확인하고 조류독감에 감염되지 않고 앞으로도 안전이 유지된다고 파악하여 농식품부에 건의하면 살처분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

다행히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산안마을 상황을 보고받고 ‘예방적 살처분은 공장식 밀집사육을 전제로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친환경적으로 동물권을 존중해서 운영하는 동물복지농장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이점이 없으니 경기도 차원의 기준안을 마련해 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경기도가 산안마을의 닭들에게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적용한다면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일방적 처리 방식에서 농장의 유형에 따라 다르게 적용하는 새로운 길이 열릴 것이다.

새로운 길이 열리더라도 과다한 육식의 섭취를 줄이지 않으면 전염병이 돌 때마다 예방적 살처분으로 수많은 가축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지구를 위해, 우리의 건강을 위해, 동물 복지를 위해, 식량자급을 위해, 축산농장의 이웃주민들을 위해 고기를 조금만 먹기, 일주일에 한번 이하로 줄이기를 함께하기를 간절히 요청드린다.

인간과 동물, 자연과의 관계를 착취와 수탈이 아닌 협력과 상생의 관계로 회복하지 않으면 가축들은 늘 살처분의 위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산안마을이, 산안마을 닭들이 살아남기를 기원한다.

간절히…

 

이재욱

화, 2021/02/23- 19:43
2
0

복지현장과 정책분야에 십여 년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온 필자로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복지정책에 대한 논쟁, 특히 기본소득에 대한 자해적 비난에 대하여 개탄과 경악을 금치 못한다.

상기 타이틀에 한국정치인들에게 고함이라는 부제를 달았으나, 이의 대상에는 이명박과 박근혜라는 부패정치인의 대명사를 배출한 수구적 야당의 정치집단을 논의에서 제외한다.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야 마땅하나, 다만 상황에 따라 살아남은 이들의 현존을 그저 반면교사로 삼고자 한다. 현실정치제도의 결함과 역사적으로 누적된 부패를 청산하기에 역부족인 시민운동역량의 한계를 탓할 뿐이다.

동시에 지난 4년 간의 문재인 정권과 여당인 민주당의 무능과 실책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부터 부동산투기의 천국으로 변모한 대한민국에서 최고 최상의 복지정책은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후 안락함을 제공해줄 주거의 해결이다. 현정권의 출범이래, 핵심적인 부동산과 주거의 정책으로 진보적 시민사회는 보유세강화와 양도차익의 회수를 중장기적인 근간으로 삼고 가난한 서민을 위한 장기공공임대주택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민간영역의 사회주택 활성화를 촉구해 왔다. 그러나 현 정부는 주택정책을 수요공급의 시장논리로 환원시키고, 단기적이며 수치적인 경제성과를 시현하기 위하여 오히려 부동산투기를 조장하여 왔다.

복지는 생산과 유통이 이루어지는 산업현장의 제1차적 영역과 사후적으로 안전망을 구축하는 사회정책이라는 제2차적 영역으로 구성된다. 근래에 들어오면서 제1차적 영역의 중요성이 보다 강조되면서 사회정책 역시 산업경제정책의 핵심적 중심의 영역으로 재구성되어 제1차적 영역과 제2차적 영역이 상호 결합되고 서로를 지원하며 순환하는 역동적 체계를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제1차 영역의 기본적 조건으로 적정임금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최저임금의 시간당 1만원과 주당 노동시간의 52시간 제한을 내세운 대선공약을 충분한 설명도 없이 자본자산들의 압력에 밀려 일방적으로 포기했으며, 경제력 10위의 강국임에도 불구하고 국제노동기구의 기본요구 수준조차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현정권이 과연 복지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반문해 본다.

이에 더하여 복지제도를 확장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재정적 지원이 뒤따라야만 한다. 뒤에 보다 상세히 언급하겠지만, 복지의 주요 지표인 공공지출 비중에 있어 대한민국은 복지선진국의 1/3 수준이며 OECD평균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자산누진세를 중심으로 조세개혁과 증세가 필연적임에도 불구하고 현정권은 무슨 까닭인지 출범부터 일체의 증세논쟁을 거부하여 왔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여의도 국회의원들이 미국상원의 진보적 정치인인 버니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의 최근 눈부신 활약을 본받기 바랄 뿐이다.

본격적인 기본소득의 논쟁에 들어가기 전에 서구의 복지역사를 간략하게 일별하여 본다.

인클로우저 운동으로 농민들을 농지에서 추방하여 이들 다수가 실직 상태에서 부랑자로 전락하면서 사회적 불안으로 증대하자, 빅토리아 왕조의 영국은 강제노역을 포함한 빈민법을 제정하여 근대적 개념의 사회복지를 국가단위에서 처음으로 시행하였다. 공공부조를 중심으로 한 빈민법은 이후 스핀햄랜드 시행과 신빈민법을 거치면서 낙인효과라는 복지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킨다. 이렇듯 복지역사의 과정에서 실책으로 인하여 산업화를 가장 먼저 이룩한 영국이 현재처럼 이류국가로 전락하는 불행을 맞이한다. 복지정책의 중대성을 다시 일깨우는 대목이다.

전기의 발명 등으로 시작된 제2차 산업혁명시기인 19세기말 후발의 산업국가로 강대국 대열에 뒤늦게 참가한 독일은 대규모의 공장제 실시로 인한 노동자 조직과 갈등 및 공산화의 위협 등에 대응하여 수혜자 부담원칙의 본격적인 사회보험을 실시하게 된다. 이후 사회보험제도는 유럽대륙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으로 안착하고 제도적 경제활동에 참여하지 못하는 국외자들에 대한 ‘포용’을 중심과제로 삼게 된다.

북유럽의 스웨덴은 후진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1930년대에 勞農연정의 기반 위에 진보적인 사민당이 집권하면서 국가의 역할을 ‘인민의 집’으로 선언하고 이후 현재까지 보편적 복지를 국가의 기본정책으로 시행해 오고 있다. 30년대의 사회연대임금 타결과 60년대의 렌-마이드너라는 산업혁신정책,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과 세계화 이후 젠더 이슈(여성의 부엌으로부터 해방과 사회참여)와 생애주기의 맞춤형 복지를 도입하면서 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 영역을 확충하고 강화하여 왔다.

이렇듯 서구 복지정책의 역사는 산업화의 단계와 상황적 조건에 따라 복지정책의 내용이 공공부조에서 사회보험을 넘어 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 분야로 확산 발전되어 왔다. 여기서 반드시 눈여겨볼 지점은 항상 후발참여국가가 앞서 시행한 선발국가들의 제도적 한계를 뛰어넘어 복지의 새로운 영역을 혁신적으로 추동하여 왔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해당국가군의 사회경제적 상황의 변화와 여건이 주요하게 작동한 배경도 있겠지만, 복지제도가 갖는 특유의 성격인 구축효과(embedding effect)의 영향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한번 시행을 도입하여 구축되면 이에 따른 시혜자의 절대적인 이익관계가 형성되면서 정책의 변경이 정치적으로 매우 어렵게 된다. 따라서 한번 복지정책의 경로를 설정하면 이를 수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에 산업화 과정의 초기, 제2차 산업혁명 그리고 제3차 산업혁명과 세계화 등에 상황의 변화에따라 영국은 빈민법에 기초한 공공부조, 유럽대륙은 포용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보험, 그리고 노르딕 지역은 보편적 사회수당과 서비스를 복지정책의 역사적 궤적에 따라 각자의 중심축으로 삼게 되었다.

현재 세계경제의 여건과 흐름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후 케인즈 이론 중심의 정책이 황금기를 구사하다가 7-80년대의 스태그-인플레와 고실업 문제로 몰락하고, 금융통화중심의 세계화라는 명분과 때마침의 소비에트 몰락으로 신자유주의로 대체되면서 이후 소위 워싱턴-콘센서스라는 미국중심의 단일체제가 대세를 이루어 왔다.

그러나 1997년 아시아의 통화위기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계기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고하고 대안의 체제를 암중 모색하는 와중에 있으며,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양적완화라는 긴급수단에 기대어 연명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더하여 산업경제의 영역은 제3차 산업혁명기와 탈산업화의 과정을 지나 소위 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필자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 대신에 지식혁신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하고자 하며, 지식혁신경제에 대한 상론은 다른백년이 3월 말경 출간예정인 하버드대학의 석좌교수인 로베르또 M. 웅거의 최근 저술 “지식경제 시대의 도래”를 참조하여 주시길 요청한다.

세계경제포럼 등 주류사회의 예측대로 미래사회가 전개된다면, 거대기술기업들이 사이버 포털과 기술기반을 거점으로 지구적 규모의 독점과 수탈을 강화하여 양극화가 심화되는 한편, 과학기술의 발전과 혁신에 따라 인류가 필요로 하는 재화와 서비스 대부분이 과거처럼 육체노동과 사무관리 업무에 의존하지 않은 채 시스템 자체의 운용과 개선을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

특히 사회복지 영역의 핵심주제인 일자리 부문에 있어서는 기존의 관행과 형태를 넘어서는 격변이 이루어질 전망이다. 산업화 이후 전형적인 방식으로 아침 8-9시에 출근하여 하루 8시간 이상의 노동을 진행한 후 저녁 6시경에 퇴근하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연모델과 비선형적 형태, 필요에 의해서 진행되었다가 사라지는 GIG(이벤트식 직업)방식, 그리고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고 불리는 불안정한 계약직 등의 확산이 이루어질 것이다. 이미 코로나-19사태 이후 비대면 작업과 재택근무의 가능성이 확인된 만큼, 이러한 방향의 급속한 확산 가능성을 우리는 현재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새로운 상황의 전개가 목전에 다가왔는데 과연 기존의 산업체계에서 발전해온 전통적 복지체계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까? 전통적인 일자리와 직업체계가 마구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존의 일자리만을 방어하는 고용보험의 강화가 정말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한가지 예로 북유럽이 시행을 자랑하며 기존 산업체계에 부응해 시행하여온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실효성을 상실하면서 심각한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새술은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새로운 상황의 전개에는 새로운 해법과 대응책이 필요하다.

18세기 산업화가 시작된 이래 앞서가는 선각자들에 의해 기본소득의 선행적 개념들이 제기되어 왔으며, 1980년대를 지나면서 벨기에의 루뱅 대학이 중심이 되어 이론적 체계와 정책적 대안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주요 선진국가들에서 국민발안과 실험적 정책 그리고 양심적인 기업인들과 대선과정의 주요 후보들에 의해서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며, 이미 일부의 시행결과로 긍정적인 성과들을 상당히 누적하여 왔다.

작년 미국의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도 기본소득이 주요한 현안으로 부상하였으며, 최근에는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구제지원정책의 후속작업으로 미국의 산업경제 정책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제임스 칼브레이스 교수가 문화예술 분야와 사회적 경제영역에 기본소득에 준하는 지원책을 제안하고 나섰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창하고 나선 정치인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십 수년 전부터 이 분야에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들과 수 년간 학습과 토론을 진행하여 왔으며, 전문가 입장인 공동저자로서 본인이 직접 단행본을 출간하면서 기본소득의 국제네트워트인 BIEN에 큰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일부의 여당 정치인들이 세계적으로 기본소득이 아직 본격적 수준에서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에서 이의 시행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무책임하며 소모적이라는 비난을 가한다. 무지한 것인가? 이들의 발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기하고자 한다.

우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사회보험을 도입한 당시의 독일과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며 사회수당과 서비스를 전면화했던 당시의 북유럽국가들은 모두 후발적 참여국가들이었으며, 당시의 선진 제국들이 시행하지 않았던 정책을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다. 이에 관련하여 위에 언급한 것처럼 세계10위권의 경제강국인 대한민국은 이제야 복지국가를 향한 여정의 초입에 서있어, 구축효과의 부담이 상당히 적으며 따라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기에 세계에서 가장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복지정책의 주요한 평가기준으로 GDP 대비 국민분담률을 살펴보면 선진복지국가군은 45%에 달하여 OECD 평균은 35%수준을 유지하는데 반하여 한국은 겨우 27-8%에 머물고 있다. 자산에 대한 누진과세 등 조세의 여력이 상당히 있다는 반증이다.

직접적인 복지지출액에 대해서도 선진복지국가군은 GDP의 30%가 넘어서고 있고 OECD 평균 역시 22-25% 수준을 보이고 있는데 반하여 한국은 겨우 10%의 문턱을 넘어서고 있다. 한마디로 현대적 국가의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현재의 복지재정을 2-3배로 확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지식혁신경제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국은 기존산업의 추적자 지위에서 혁신의 선도자(prime-mover) 위치로 전환을 해야 하는 시점에 서있다. 자연스레 선도국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산업적이며 기술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혁신을 가능하게 하고 촉진할 수 있도록 복지체제에도 역동성을 도입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 구축효과의 부담이 가장 적고 복지재정의 잠재력이 상당한 한국이 새로운 복지개념을 도입하는데 매우 유리한 환경과 자체적인 필요를 지니고 있다. K-방역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대한민국이 선도적 혁신국가로 나서는 것이 단순하게 빈말로 이루어질 일은 아니다.

요약하면, 대한민국이 기본소득을 선제적으로 도입 시행하는 것을 위험하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난할 것이 아니라, 혁신을 주도하기 위한 자체의 필요와 여건에 따라 앞서 나가는 포석이라고 높게 평가하면서 심도있는 논의와 연구를 진행해야 마땅하다.

이미 진보학자들의 국제적 추이는 기존 복지체계의 한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새로운 가능성으로 혁신적인 경제운용성과를 전국민에게 배분하는 배당성격의 기본소득과 모두에게 가장 소중한 공공재로서 과학기술과 이에 기반한 산업기반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고, 공유적 소유개념에 따라 사회적 상속을 통한 개별단위 기본자산의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프랑스의 토마 피켓티 교수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다만 필자의 견해는 사회적 상속 혹은 자산의 중과세에 기반한 기본자산에 대한 논의는 기본소득의 점차적 시행과 추후 안정적 기반이 형성된 이후 이에 대한 반성과 평가 위에서 재론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판단한다. 지금은 기존의 복지정책과 기본소득 간의 상호적 보완과 결합에 올곧이 집중할 시점이다.

오히려 보좌진들이 올린 몇 페이지의 보고서에 의존하여 기본소득을 백안시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으로서 대단히 무책임한 행동이다. 기본소득을 무조건 부정하는 자세가 아니라 이를 여하히 미래지향적으로 검토하고 실천적으로 정착시키려는 노력이 함께 동반되어야 마땅하다.

모름지기 시대의 흐름과 필요에 의해서 제기된 정책의 정합성을 검토하고, 실천적 의지와 지속적인 노력을 담아내고 시행 이후 실효적인 반성과 발전적인 재구성을 통하여 더욱 진전시켜야 한다. 기존 복지제도의 강화론자이든 기본소득 도입의 지지자이든 ‘모 아니면 도 (all or nothing)’라는 자세를 버리고 法古創新의 자세로 상호보완과 결합을 검토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의 기본소득에 대한 전향적 비판을 아래에 열거하고자 한다.

우선 조만 간에 시행할 기본소득과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본자산의 도입은 미래를 향한 올바른 방향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이 만병통치의 해법일 수는 없으며, 맹점의 하나인 정책의 무지향적 성격을 기존 복지제도로서 보완하여야 한다. 전반적으로 적용하기에는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경험의 역사가 일천하고 여전히 실험단계에 있으며,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서는 제한된 영역과 부문 혹은 계층과 지역에 일차적으로 적용해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다층적 다면적 갈등과 차별이 전면화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선택과 집중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무조건의 일반적 적용이라는 이상적인 기본소득의 모델은 한국사회가 제1차적 영역에서 상대적인 공정성과 안정을 일정 수준으로 확보한 이후에야 비로소 보편적인 방식으로 시행을 검토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

지원의 내용이 용돈수준의 푼돈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비판은 지극히 옳고 타당하다. 재정적 여력과 준비상황에 따라 시차를 두고 점차적으로 적용의 대상과 범위를 확장하여 간다는 것을 전제로 하여, 적용대상을 선택하고 우선순위를 설정하되 지원액수가 실제적인 생활에 큰 도움이 되는 수준에서 시작할 것을 조언한다.

예건데, 사회신참의 청년실업군, 농어산촌민, 문화예술인 등에 대하여 월단위 4-50만원, 연간 500만원 수준 이상의 지원으로 시작하는 동시에, 참여를 전제로 하는 방식으로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활동하는 해당 개인들에게 일정한 보조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미래의 새로운 일자리를 일구는 것을 검토해 보자.

기본소득이 가지는 잠재적 매력과 행정적 용이함(공정을 포함)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현실의 구체적인 현안에 집중하여 해결하려는 정책지향적 기존 복지정책의 강점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기본소득과 무관하게, 교육과 공공보건, 의료체계와 재난구제, 주거와 장애 등 영역에 대한 국가의 적극적인 정책개입과 책임성은 더욱 강화되어야 하며,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건과 환경의 조성에도 정부는 과감한 투자를 지속하여야 한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의 도입은 다가오는 미래사회에 대응하는 역동적이며 정합적인 필요조건이다. 지난 200여 년 동안 서구사회가 시행하고 발전시켜온 시회안전망이라는 복지제도를 경험의 한축으로 삼되, 새로이 전개되는 사회경제적 상황과 조건에 발맞추어 새로운 개념(기본소득)의 사회정책을 조세개혁과 더불어 현실적 방식으로 도입하는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래경

목, 2021/02/25- 20:44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