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칼럼내용은 북한이 지난 3월25일 동해를 향해 2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의도의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한반도 프로세스를 재개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북한을 실제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대북제제의 완화/해제 그리고 북미평화협정 체결의 로드맵을 협상테이블에 먼저 제시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2012년 3월 당시의 리용호 북한 외무장관은 미국 전문가들과 전직 관리들에게 미국이 북한에 가하는 ‘위협’을 제거하기 전까지는 북한이 결코 비핵화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기 위협의 내용으로 한미동맹, 주한미군의 주둔,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 적용하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이라고 정의했다.
“상기의 위협이 제거되고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10 ~ 20 년 안에 비핵화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리 장관은 말했다. 그런 동안 북한은 핵보유국의 당사자로서 북미간 군비통제의 회담에 참여할 수 있다’고 그는 선언했다.
리 장관의 당시 발언은 북한의 전략과 목표에 대하여 매우 귀중한 정보의 단초를 제공한다. 그의 발언은 현재의 시점에서 북한의 김정은 지도자가 핵보유 및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재차 강조한 배경을 재조명하게 만든다.
대북정책이 불분명한 미국의 신임 대통령을 직시하면서, 김정은은 비핵화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하는 대신에 핵과 미사일 능력을 확대함으로써 현재 진행중인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에 대하여 선제적 과제를 던진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미국이 북한의 핵프로그램 속도를 늦추고자 한다면, 먼저 ‘무기통제의 회담’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대회연설에는 미-북 대화의 주요 주제를 비핵화에서 군비통제로 바꾸려는 김정은의 의도가 분명하게 숨어 있었다. 그는 북한의 핵개발이 국가의 전략적이며 우선적 목표임과 동시에 한반도의 역사에서 이것이 차지하는 매우 중대한 의의와 활용가치를 설명하고 있었다.
북한이 책임있는 핵보유국임을 선언하는 그의 메시지에는, 이제 자신의 정권이 영구적인 핵무력 국가이며 워싱턴 당국은 이에 응당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었다.
덜 중요한 내용이지만 ‘초현대적 전술핵무기’로 다중탄두 미사일, 고체연료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핵과 미사일의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김위원장의 발표도 있었다. 이러한 김의 발언은 북한을 미국이 평가하는 이상으로 위험하고 강력한 위협으로 만들겠다는 결의에 찬 신호였다.
현재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거론되고 있다. 반면에 노동당 대회에서 행한 김정은의 발언은 북한의 미국정책을 이미 수립되었으며, 이의 내용은 이제 막 출범한 미국의 행정부에 주요한 도전(위협)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이다.
상기같이 고비용이 드는 대량살상무기의 현대화 움직임은 북한이 경제적 위기에 처한 와중에도 진행되었다. COVID-19 대유행은 정권의 경제적 생명선인 중국과의 무역을 극도로 축소시켰다.
즉, 국가계획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외환보유량이 감소하고 국가재정의 수입이 감소하고 성장이 감소하며 국제 제재와 악천후가 경제에 타격을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은 핵보유와 미사일개발의 이익이 경제적 위험을 능가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앞서 나간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의 한가지 기대는 제재완화에 대한 것이다. 요점은 미국을 설득할 수 있다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제한하기 위해 미국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이다. 김 위원장은 2019년 2월 하노이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정상회담 에서 이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워싱턴의 핵 위협에 대한 인식을 점차로 높여가면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비록 낡은 전략에 뿌리를 두었지만, 북한의 새로운 접근방식은 미국과 대화의 초점을 비핵화에서 새로운 의제(무기통제)로 이동시킨다. 북한이 사실상의 핵무기 국가로서 지위를 획득하면, 미국이 과연 북한과 관계를 어떻게 관리할 수 있을까?
이러한 접근방식을 추구하면서, ‘북한의 비핵화는 실현할 수 없다’는 많은 미국 전문가와 관리들의 견해를 김정은은 활용하고자 희망한다. “대신에 미국은 북한의 핵위협을 적절히 ‘관리’하고 핵역량의 강화를 억제하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 – 이러한 입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해야 하는지 여부 가 아니라 어느 수준에서 보유를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화로 미국을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에 북한에게는 분명히 매력적(음악적)이다.
과연 바이든 정권이 상기의 미끼를 취하고 평양과의 군비통제라는 접근을 추진할 것인지는 미지수이다. 만약 그렇게 접근하려는 입장이 있다면, 이들은 바이든 대통령은 결코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수락’하지 않고 오히려 양적, 질적으로 제한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설명하려 들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북한의 모니터링과 검증에 대한 회피 때문에 1994년, 2005년, 2007년의 비핵화 협정이 핵프로그램을 동결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편집자 주. 북한이 비핵화를 파기한 과거에 대한 주요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게 있다). 실제적인 핵보유국으로서 북한은 아마도 현재시점 이후 임의적 강제사찰을 받아들이기를 더욱 완강하게 거부할 것이다.
비핵화의 가능성이라는 문을 닫으면서, 김정은은 북한을 영구적이며 사실적인 핵무장국가로 이끌 새로운 문을 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평양과의 군비통제회담으로 이어지는 미끄럼틀을 타기로 결정한다면, 김정은은 자신이 열망하는 ‘파트너’을 제대로 찾은 셈이다.
며칠 전 쿠바에서 반정부 시위가 있었다. 지난 일요일(11일) 오후 하바나 근교의 소도시에서 시작되었고, 지방에서 연이어 일어나는 모습이었다. 이는 즉각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해외 주류언론을 통해 시위 소식은 일파만파로 퍼지기 시작했다.
뉴스의 최종 버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결국 쿠바 최대 규모의 시위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체제 위기가 임박하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만, 이참에 군사개입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세계 ‘강대국’들의 이 같은 일사불란함은 카리브해 작은 섬나라에 그들의 관심이 여전히 지대하게 높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심지어 최대 규모의 시위대라며 외신들이 나른 사진 속의 대규모 집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이집트 등지에서 군중들이 대규모로 밀집해 있는 모습을 쿠바 반정부 시위라며 조작, 편집한 것이라는 사실이 곧 밝혀졌고, 그저 부끄러운 언론의 민낯일 뿐이다.
분명 이번 쿠바에서 일어난 시위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우선, 그 폭력성이 두드러졌고, 동시에 지방 도시에서도 함께 일어났다는 점이다. 내부적으로 축적된 오랜 불만의 폭발이 이를 초래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동요를 유도한 소위 ‘외부 세력’과의 합작품인지는 이 글의 목적이 아니므로 잠시 논외로 하자.
이 지면에서는 시위대가 보여준 공격성과 그 폭력성이 당국은 물론 쿠바인들까지 충분히 긴장케 했다는 사실이고, 이를 대처하는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과 이후 새롭게 형성되어가는 사회적 합의가 무엇일지 먼저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해 보이기 때문이다.
일단, 쿠바 사회는 여타 다른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만연한 폭력, 강도, 살인 등과 같은 강력한 사회적 충돌에 익숙하지 않다. 달리 말하면, 국가의 ‘질서’와 ‘안정’이라는 명분이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자행하는 국가의 물리적 폭력을 정당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에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다.
서방 주요 언론의 주장과 같이 쿠바처럼 ‘억압적인 체제’와 ‘정치 탄압’이 일상인 곳에서 시위진압을 위한 ‘변변한’ 경찰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을까. 과거에 드물게 일어났던 시위에서 경찰은 진압이 아닌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선에서 배치되었을 뿐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폭력이 일상화되지 않은 사회이기 때문에 경찰이 무장할 필요가 없었다는 의미다. 즉, 쿠바 사회는 무장한 경찰력이 필요치 않은 사회라는 뜻이다.
따라서, 전국에서 소규모로 일어난 반정부 시위대를 해산한 것은 경찰력이 아닌 대부분 쿠바 혁명을 지지하는 쿠바인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머리가 깨지고 이마를 꿰매는 등 부상자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양쪽 모두에서 치명적인 부상은 없었다. 쿠바는 총기가 유통되지 않아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한 명의 사망자는 화염병을 던지며 경찰서 진입을 시도한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경찰이 쏜 총탄으로 발생한 경우다.
이번 시위대 대부분은 경찰이나 공권력보다는 정부를 지지하는 쿠바 국민에게 ‘진압’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것이 어떻게 하면 가능했을까? 시위대와 충돌이 있었던 하바나 지구인 아로요 나란호(Arroyo Narranjo)에 거주하는 지인의 한 마디가 떠오른다.
“우리가 더 많아. 그래서 더 많은 걸 할 수가 있지!”. 이보다 더 명쾌할 수는 없다.
쿠바에서 일어난 반정부 시위를 국민의 정당한 권리 행사로 보는 관점에는 무리가 없다. 어느 국가에서나 정부의 정책이나 방향에 반대하거나 혹은 저항하는 방식으로 시위라는 수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노란조끼”가 그랬고, 최근 콜롬비아에서도 몇 달간 계속되고 있는 반정부 시위대도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공권력이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수십 명의 사상자가 일어나도, 실종된 시위대의 시신이 후미진 외진 곳에서 발견되어도 당국들은 언제나 당당하다. 심지어 국제사회조차 이 두 정부의 공권력에는 너그럽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칠레 대규모 시위에서 속출한 사상자, 과거 우리나라의 백골단을 연상케 하는 시위진압 부대 카라비네로(Carabinero)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시민을 상대로 군사훈련 하듯 그들의 진압 ‘능력’을 맘껏 선보였다. 그 결과 수많은 부상자와 영구 실명자들이 속출한 사실은 슬그머니 가려진다.
시위대가 카라비네로에게 진압되고 있는 모습(칠레)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라는 태그를 달고 외신들이 앞다퉈 소개한 쿠바와는 전혀 다른 현실이다. 쿠바에서 있었던 반정부 시위를 두고 물 만난 물고기처럼 구는 외신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면 씁쓸한 이유다.
서방 국가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쿠바 정부는 여전히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2019년 개헌 국민투표에서는 90%가 넘는 국민이 참여했고 85% 이상이 쿠바 사회주의 체제를 재확인하는 새로운 헌법을 찬성한 바 있다. 쿠바 국민이 직접 선택한 정부를 60년이 넘도록 독재국가로 낙인찍고, 이를 핑계로 미국의 살인적인 경제 봉쇄는 계속되고 있다.
쿠바 국민을 ‘걱정’한다는 미국은 금수조치를 철회하기는커녕, 코로나로 전 세계가 위기에 직면하는 동안 240여 개의 추가 제재를 꼼꼼히 적용하여 쿠바의 마지막 숨통까지 조여오고 있다. 쿠바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간단하고 쉬운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 백기를 들면 될 일이다. 그러면 미국의 모든 제재는 사라지고, 자본주의로 전향한 쿠바에는 외국 투자자들이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의료와 교육, 통신, 공공시설 등 가능한 모든 국가 시설은 민영화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억만장자들은 그저 옥에 티가 될 뿐이다.
내친김에 쿠바에 대한 미국의 군사개입을 종용하는 미국 마이애미에 거주하는 쿠바인들에게, 쿠바에 사는 쿠바 국민은 답한다. ‘미국 군사개입을 원하면 마이애미가 아니라 쿠바에 와서 요구하라!’라고. 이 쓴소리의 의미를 그들은 과연 알아챌까. 폭탄은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는단다. 폭력이나 전쟁은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재확인한다.
이번 일을 두고 쿠바의 ‘최대위기’를 바라는 서구 열강들의 기대와는 달리 쿠바 체제는 당분간 크고 작은 동요를 겪겠지만 말 그대로 버텨낼 것이다. 아직은 쿠바를 자신들이 지켜야 하는 조국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으니까. 쿠바 사회의 변화는 외세의 강요가 아니라 내부에서 만들어지는 동력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따라서, 이번 시위사태를 두고 쿠바 체제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적어도 마이애미 쿠바인들의 바램처럼 쿠바섬에 미군의 폭탄이 투하되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포용적 전위주의는 급진화된 전위주의이다. 포용적 전위주의가 경제의 모든 부문에서, 그리고 이 모든 부문의 각 부분에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여건들을 가로질러 확산됨에 따라 실험주의적이고 지식집약적인 생산방식은 그 가장 심층적인 속성을 드러내고 발전시킨다. 그러한 생산방식이 협력적 활동과 상상력 나아가 영구혁신을 결합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생산방식의 참여자들에게 대량생산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고차원적인 능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포용적 전위주의는 청년기뿐만 아니라 일생에 결쳐 특정한 종류의 교육을 또한 요구한다.
이러한 교육양식은 일반교육과 기술교육의 구분을 가로지르며, 두 가지 교육을 모두 다음에 서술할 방향으로 개혁함으로써 두 교육을 연속과정으로 상정한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교육양식의 특성들에 대한 후속적인 설명을 일반교육뿐만 아니라 직업 훈련에도 적용하고자 한다.
기술교육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포용적 전위주의는 세계가 독일로부터 배웠던 기술훈련 모형(대량생산 시대의 경직된 기계도구들을 운영하고 엄격하게 구별된 직종과 전문직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경제를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직업별 및 기계별 기술을 강조하는 모델)을 거부해야 한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독일식 기술훈련 모형을 일반적이고 유연한 고차원의 능력을 중시하는 모형으로 대체해야 한다.
수리적으로 제어되는 기계(프로그래밍이 가능한 로봇 또는 3차원 프린터)는 특정한 생산라인과 확정된 전문직종 또는 노동력의 특정 분야에 연결된 협소하고 전속적인 용도를 갖지 않는다. 그러한 기계를 발명하는 것과 이를 재프로그래밍하는 것의 구분과 그러한 기계를 재프로그래밍하는 것과 이를 사용하는 것의 구분은 모두 완화되어 왔다. 기계의 조작자들은 기계의 발명가의 권능과 태도를 일정 부분 보유해야만 한다. 인공지능을 완전하게 활용하는 능력은 같은 방향에서 더 나아간다. 인공지능이 요구하는 노동자상은 공식에 따라 처리할 수 없는 과업에 전념하기 위하여 공식에 따르는 업무에서는 기계가 자신을 앞지를 수 있게 하는 법을 아는 노동자이다.
지식경제의 국한된 형태 아래에서도 기술적 노동분업은 계획과 집행의 차이뿐만 아니라 모든 전문적 업무 역할들의 차이를 약화시킨다. 더욱 발전된 형태에서 지식경제는 모든 참여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신뢰와 재량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이를 필수적인 것으로 만든다. 지식경제는 이러한 재량을 행사하고 이러한 신뢰를 누리도록 교육받은 수행자들을 필요로 한다. 지식경제의 수행자들은 생산과정의 외부에서 지시되고 일회적이 아닌, 생산 과정에 내부적이고 영구적으로 이루어지는 혁신 작업에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
포용적인 형태의 지식경제의 주창자들의 교육은 네 가지 기본적 특성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이러한 특성들은 일반교육, 기술교육, 청년교육 나아가 평생교육에도 해당된다. 그 특성들은 지식경제의 발전에 중요하고 심지어 사활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특성들의 가치는 지식집약적 생산방식 자체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경제적 편익을 초월하고 민주사회에서 삶과 의식의 모든 측면에 관여한다.
첫 번째 특성은 교육의 방법이 분석적 능력과 종합적 능력, 더 일반적으로는 정보의 숙달보다는 상상력(반기계적인 것으로서 정신)과 관련된 권능에 우선권을 부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콘텐츠의 진공상태에서는 아무도 이러한 능력을 습득할 수 없다. 그러나 콘텐츠는 주로 역량의 향상을 위한 여건으로서 중요하다. 따라서 두번째 특성은 이러한 교육이 콘텐츠와 관련하여 백과사전적 피상성보다 선별적 심오함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미래에 필수적인 능력과 정보의 활용능력을 발전시키는 데에서 주제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백과사전의 온갖 개요를 암기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세 번째 특성은 이러한 교육이 사회적 배경에서 전통적으로 교실을 지배하는 권위주의와 개인주의의 혼합보다 교육과 학습에서의 협력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 간에도 학생 팀과 교사팀은 가르침과 배움의 주요한 도구가 되어야 한다. 협력적 관행에 있어서 학생들 간의 상호교육 등 광범위하고 다양한 실험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상상력과 협력의 만남은 지식경제의 어떠한 급진적인 형태에서도 중요하다. 지식경제가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방식에 의해 지식경제가 예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수법과 학습방식의 네 번째 특성은 그러한 교육방식이 변증법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주제와 방법은 적어도 두 개의 대조적인 관점에서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가 백과사전적 콘텐츠라는 목표를 버리고 범위보다 깊이를 선호하고 사실의 암송과 암기보다 분석적-종합적 능력을 선호하게 된다면, 교육의 모든 단계에서 이와 같은 변증법적 접근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대학문화의 정통 이론들은 청년들에게 지배적인 관념들을 사물 자체로 오인하도록 유도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방법과 주제의 결합을 자자연화(自然化)한다. 그러므로 경제학은 경제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19세기말 한계주의 경제학자들이 개척한 방법에 대한 연구이다. 다른 방법에 의해 수행된 어떠한 경제연구도 경제학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생산 및 교환 활동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주제에 한계주의 방법을 적용한 연구는 마치 경제학이라도 되는 양 취급한다. 마찬가지로 불변적인 규칙성보다 시간적 변화의 우월성을 함축하는 역사적 연구는 자연사와 생명과학에 적합한 것으로 취급되지만 우주의 역사성에 대한 발견임에도 불구하고 기초물리학에서 추방된다.
국정 교과과정들은 방법과 주체의 결합을 부당하게 자연화한 학술적 정통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하며 이러한 정통이론들을 청년의 교육에 투영한다. 교과과정들은 결과적으로 학생을 정신적으로 무력화시키고 그를 지적으로 예속적인 삶을 위해 준비된 고등교육 단계로 넘겨준다. 교육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은 이러한 위험 앞에서 청년을 면역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대학문화가 피상적인 경우에 변증법적 접근은 깊이와 개방성을 제안한다. 변증법적 접근은 규율과 방법의 체계가 서로 분리해놓은 것을 뒤섞어놓는다. 변증법적인 방법의 목표는 다른 정신을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것은 철저한 의심과 지적 실험을 천재의 전유물로 간주하기를 거부하고 대신 이를 공유재산으로 전환하는 정신이다.
급진화된 지식경제는 제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제도에서 일회적 혁신보다는 지속적인 혁신을 요구한다. 민주주의는 정치가 사회의 구조를 초극할 수 있어야 하고 변화의 가능조건으로서 위기(파국이나 전쟁의 형태)가 없어도 구조변화를 생성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교육에 대한 변증법적 접근은 민주정치와 지식집약적 생산이 모두 의지할 만한 정신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다.
교육의 더 큰 비전은 이러한 의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학교는 모든 학생들에게 사회와 문화의 기존 질서 안에서 운동하고 그 질서에 저항하고 이를 초월하고 수정하는 도구들을 장착시켜 주어야만 한다. 학교는 모든 사람 안에 혀가 묶인 예언자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교육은 스스로 가족이나 국가의 도구로 타락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가족은 학생에게 나처럼 되라고 말한다. 국가는 학생에게 복종하라고 말한다. 학교는 이러한 메시지들을 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만 하며 미래의 목소리가 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그 목소리는 어떻게 낼 수 있으며, 누가 그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현재 사회의 어떤 권력들도 학교를 자신의 봉사기구로 위축시킬수 없도록 교육이 조직되어야만 한다. 교사와 학생은 국가와 가족의 영향력을 통제하고 나아가 학생과 교사가 민주주의하의 교육에서 중요한 긴장(현재의 제도와 가정들에 기초하여 행동하도록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과 그러한 가정과 제도들에 도전하도록 사람들을 독려하는 것 사이의 갈등)을 실험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정치적, 법적, 재정적 수단을 갖추어야만 한다.
구체적이지 않고 비타협적인 추상관념들로 서술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교육적 신념의 고백들은 딴 세상의 일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고백은 급진화되고 보급된 형태의 지식경제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제에 가장 우호적인 정치체제(나는 이를 고에너지 민주주의9 2라고 부를 것이다)에서도 중요한 교육적 자극을 우리의 교육관에 불어넣는다. 우리의 상상적 활동의 모형에 따라 협력적 관행을 혁신하고 이러한 혁신을 일회적인 것보다는 영구적인 것으로 만들어감으로써 지식경제는 참여자들이 일을 수행하는 것[맥락보존적 활동]과 그 일을 수행하는 데 배경을 이루는 제도들과 가정들의 틀을 바꾸는 것[맥락변경적 활동]의 차이에 점차적으로 구애받지 않는 정신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고에너지 민주주의는 구조변화의 가능조건으로서 폐허나 전쟁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 정치생활의 형식을 위한 기반을 마련함으로써 똑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러한 체제하에서 사회생활의 전체 질서는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실제에서도 경쟁과 실험의 대상이 된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방향으로 교육을 변화시킬 때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교육적 전위(그러한 프로그램을 계발하고 가동시키는 일에 투신한 수천명의 교사들과 교육운동가들)의 부재인 것 같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작은 범위의 예언가, 정치인, 공무원의 정신에서만 존재한다면 프로그램은 발전할 수 없다.
더욱이 구조상 거대하고 불평등하고 연방적인 (또는 단일 국가와 중요한 권한 이양을 결합한) 나라에서는 개혁과 개혁자는 투자와 품질에 관한 국가적 표준과 지역적인 학교운영을 조화시키는 제도적 틀에 의지할 수 있어야만 한다. 지켜야 할 핵심 원칙은 청년이 받는 교육의 품질이 그가 어디에서 혹은 누구한테서 태어났는가와 같은 우연에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학교의 수행성과를 평가하고 무엇이 최상으로 작동하는지를 발견하기 위한 국가적 시스템, 학교가 지역 재정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더 부유한 곳에서 더 가난한 곳으로 자원과 인력을 재분배하는 메커니즘, 나아가 시정적 개입의 절차 등 세 가지 수단들이 필요하다. 지역적인 학교 시스템이 수용가능한 성과의 최저 기준에 지속적으로 미달하는 경우에는 중앙 및 지역 정부(또는 연방 정부 하에서 세 가지 수준의 정부들)는 지역의 미달 학교를 감독하고 독립적인 행정가와 전문가들에게 학교의 운영을 위탁하고, 학교를 교정하고, 교정을 거쳐 반환하기 위해 공동으로 행동해야만 한다. 그러한 절차가 없다면 교육 기회가 출생의 우연성에 좌우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은 무시되고 만다.
나는 앞서 뇌의 물리적 구조에서 어떤 것도 정신의 두 측면(알고리즘과 공식들로 회고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굴성에 의해 지배되는 정신의 측면과 공식을 필요로 하지 않고 방법을 고집하지 않으며 자신의 정립된 전제들을 초월하는 상상력이라고 부르는 정신의 측면)의 상대적 힘을 정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뇌가소성은 상상력을 가능하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지만 상상력의 작업을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의 정신적 경험의 두 측면 사이에서 상대적 우월성을 정하는 것은 바로 사회와 문화의 조직이다. 정치의 역사는 이런 의미에서 정신의 역사에 내재적이다.
여기서 나의 관심을 끄는 정치사와 정신사의 부분은 지식경제의 잠재력이다. 나는 지식경제의 심화와 경제 전반에 걸친 지식경제의 보급이 같은 현상의 두 가지 측면이라고 주장해왔다. 만약 유사전위주의라고 불러온 형태의 엄호 아래서 일어나는 것과 같이 지식경제가 급진화 없이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새로운 선진적인 생산방식이 전파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그 경우 그 제품들, 즉 장치들과 서비스들만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피상적인 확장 과정에서 획득한 능력과 태도는 구매한 제품의 제한된 사용에 필요한 능력과 태도일 뿐이다.
급진화되고 확산된 지식경제는 우리의 경제활동뿐만 아니라 정신생활에서도 변화의 원인이자 그 결과이다. 포용적 전위주의 아래서 기계로서의 정신은 상상력으로서의 정신에 영토를 양도해야만 한다. 우리의 경제적 제도와 생산방식에서의 변화만으로는 이러한 변화를 보장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 변화는 또한 교육의 성격, 개념, 방법의 쇄신을 요구한다.
아래의 칼럼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의장을 지낸 전문가가 작성한 내용으로, 장래에 안전한 원자력기술의 혁신을 위하여 긴호흡의 장기적 R&D 투자는 당연히 의미가 있지만, 당장 다가오는 10~20년 내의 기후재앙을 대처하기에는 경제성도 없고 근본적으로 시간이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아래 언급하고 있듯이 기술개발의 현실적 장애에 더하여, 아직 완벽한 안정성을 보장할 수 없는 솔루션에다 더구나 예상을 뛰어넘는 급변의 기후재앙을 통제할 대책이 없다는 점에서, 인구조밀지역인 한반도에 원자력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는 일부 정치집단의 주장은 한마디로 수백만의 생명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무책임한 협박에 다름이 아니다. 현시점에서 원자력 추가건설은 무조건 중단되어야 한다. 오히려 에너지 절약이 정답이다.
지구를 지켜내기 위한 에너지 부문의 탄소 중립 계획과 관련하여 인류는 낭비할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들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것이 해수면 상승, 가뭄, 화재, 극단적인 기상현상, 해양산성화 등을 포함한 기후변화의 가장 놀라운 결과와 재앙을 예방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이러한 위협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석탄, 천연가스 및 석유와 같은 탄소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에 >덜 의존할 수 있도록 하는 원자력발전의 잠재력, 특히 혁신적인 원자로 설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첨단원자력의 설계는, 2006년 원자로 설계회사인 TerraPower를 설립한, Bill Gates와 같은 민간 투자자와 미국을 비롯한 국가와 정부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의 초점이었습니다.
이의 옹호자들은 원자력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혁신이 기술발전과 비용절감을 가져올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러나 기후변화 의 임박한 영향을 피하려면, 핵기술의 최첨단 혁신조차도 너무 작고 너무 늦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기존발전소와 건설중인 발전소의 경제성 동향을 고려할 때 원자력은 향후 10년 안에 기후변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lang="en-US">새로운 고급설계의 엔지니어링으로 본격적인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데 걸리는 긴 소요시간과 원자력을 보다 경제적으로 경쟁력있게 만들기 위한 제조기반 및 실제수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감안할때 원자력이 배출가스를 크게 줄이기 시작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미국을 포함하여 전세계 어디에도, 20년 안>에 탄소에너지의 발자국을 제거할 만큼, 원자력기술을 광범위하고 성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는 수준까지 개발할 수 있는 국가는 없습니다.
버티기 고군분투
원자력은 현재 미국전력의 약 20%를 제공하지만 관련업계는 수십 년 동안 경제적으로 조업이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습니다. 뉴욕의 인디언-포인트 발전소가 올해 4월 30일에 마지막 원자로를 정지시키면서 2013년 이후 12번째로 폐쇄되었습니다. 적어도 7개의 미국원자로가 2025년까지 추가로 폐쇄될 예정입니다.
2020년 10월 Lazard(세계적 자산투자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에서 원자력의 자본비용은 거의 모든 다른 에너지 생산기술보다 높습니다. 원자로를 궁극적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고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 생산과 비교하여 경쟁력 있게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이 진행 중에 있습니다만,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고유한 일련의 물류 및 안전규제라는 장애물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 프랑스, 일본 및 기타 여러 국가에서 현재 가동 중이거나 건설중인 발전로는 모두 저농축 우라늄 연료로 동력을 공급받고 물을 사용하여 냉각 및 “감속”하는 발전소인 경수로의 변형입니다. 물을 사용한 “Modulation”기능으로 우라늄 연료에서 추가 핵분열을 일으킬 가능성을 개선하기 위해 핵분열 반응에서 방출되는 중성자의 에너지를 줄입니다. 캐나다는 약간 농축된 우라늄 연료를 사용하고 수소 동위원소의 일종인 중수소를 포함하는 중수로 냉각 및 조절 원자로를 운영합니다. 영국은 단일 경수로와 가스냉각식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의 원자로는 모두 600~1,200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대형규모의 원자로입니다.
새로운 원자로 제작사들은 원자로를 보다 작게 만들고 다양한 유형의 연료, 냉각제 및 감속재를 사용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설계 중 하나인 NuScale 원자로는 77 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성할 수 있는데, 수동적 안전기능을 강조하는 소형경수로가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 (Nuclear-Regulatory-Commission)의 인가절차 중에 있습니다.
NuScale설계의 첫번째 고객은 Utah주의 Associated Municipal Power Systems이며, 2027년까지 Idaho에서 발전소운영을 시작할 계획 입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13억 5500만 달러의 보상예산으로 상기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NuScale은 혁신적인 신규 원자로설계 공급업체가 라이선스 프로세스에 참여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른 국가들의 승인과정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미국 원자력규제 위원회(Nuclear Regulatory Commission)는 상기 특이한 설계의 일부를 허가하기 위해 별도의 새로운 규정을 마련하기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의 자본비용은 거의 모든 다른 에너지 생산기술보다 매우 높습니다.
NuScale사의 나트륨냉각 고속원자로는 기존의 다른 원자로설계보다 승인과정에서 앞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원자력발전의 성배로 평가되는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연료를 생성하는’ 설계개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지난 60년 동안 8개 국가가 1,000억 달러이상의 비용으로 이러한 유형의 원자로의 여러 버전을 건설했지만, 경쟁력있게 전기를 생산할 만큼 신뢰성이 입증된 국가는 아직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에너지부는 GE-히타치 및 테라파워와 함께 아이다호 국립 연구소에서 건설할 다목적 시험원자로를 위한 상기의 설계를 승인했습니다. 비용이 30억~60억 달러로 추산되는 다목적 시험원자로는 2026년까지 연료시험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다른 스타트업 벤처기업들도 두 가지 대안적 디자인을 고려하여 왔습니다. 첫 번째는 용융염 원자로를 위한 것으로, 그 중 몇 개는 작동 중에 있습니다. 이들은 종종 리튬 또는 베릴륨과 혼합되는 불화물 또는 염화물의 염을 사용합니다. 더 유망한 것은 냉각재로 헬륨을 사용하고 감속재로 물대신 흑연을 사용하는 고온가스 원자로입니다. 미국은 1960년대와 1980년대 사이에 이런 류의 원자로 2기를 건설하고 운영하여 왔습니다. 중국, 독일, 일본은 모두 고온가스 원자로의 시험버전을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른 주요 과제는 이러한 새로운 원자로가 새로운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연료는 사용허가를 받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용 중 생산, 관리, 사용 후 저장 및 폐기해야 합니다. 일부 새로운 원자로설계는 현재 미국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는 우라늄의 고농축을 필요로 하는 연료의 사용에 의존합니다. 고농축 연료는 핵무기 확산에 대한 우려를 불러일으켰고 국제적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까다로운 연료공급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해도 비전통적인 원자로 설계는 심각한 건설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새로운 고급설계의 대부분은 수익성을 달성하기 위해 적절한 부지와 효율적인 건설의 가용성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원자력 산업은 기나긴 건설시간과 비용초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979년 쓰리마일 아일랜드 사고 이후 미국에서 대부분의 원자로 건설기간은 10년을 넘어섰고 건설비용은 무섭게 치솟았습니다.
원자력 혁신으로는 지구를 구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조지아의 Vogtle 공장은 미국에서 유일하게 건설중인 신규원자로입니다. 이 발전소의 원자로 2기는 초기가격이 140억 달러였으며 건설 5년 후인 2016년과 2017년에 조업을 시작할 예정이었습니다만, 현재까지 여전히 건설진행 중에 있으며, 2022년까지도 발전조업을 시작하지 못할 수 있고 최종 비용은 2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최근 유럽의 새로운 건설경험도 비슷합니다. 프랑스의 EPR 원자로설계는 프랑스와 핀란드 모두에서 여러 차례 지연과 막대한 비용초과를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대형 프로젝트는 프로그램 관리, 품질관리 및 규제문제에 있어 오랜 지연을 초래하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미국도 이런 문제에 예외가 아닙니다. 전세계의 원자로는 노후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경우 가동이 중단되었지만 신규의 교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2019년에는 6개의 원자로가 가동을 시작했고 13 개의 원자로가 폐쇄되었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전세계에 가동중인 원자로 408기의 평균 연령은 31년이며 이중 81기는 41년 이상입니다.
이러한 모든 이유 때문에 원자력은 기후변화에 대한 단기 또는 중기적 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더욱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비용이 경쟁력 있는 원자로를 건설하는 데 얼마나 많은 경제적, 기술적, 물류적 장애물이 존재하는지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원자력 에너지가 기후변화의 최악의 영향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온실가스의 배출량 감소수준을 달성하기에는 신속한 진행이 가능한 다른 형태의 발전방식을 대체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원자로설계 및 핵연료의 혁신은 여전히 상당한 연구와 정부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한계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은 여전히 탄소배출량을 줄일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이는 평가할 일입니다. 그러나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원자력의 능력에 대한 근거없는 고집 대신에, 우리는 진정한 위협인 기후위기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기 때문에 지금부터 10년이나 20년 이후가 아니라 당장 사용이 가능한 비탄소방출(재생) 에너지기술에 대한 강력한 정부지원이 필요합니다. 1분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선거란 국가의 5년을 결정짓는 중대사다. 그것은 국가의 경제성장과 발전 그리고 민주주의와 정치발전 등 전체 국가사회와 국민들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결정짓는 갈림길이었기에 언제나 중요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선거는 그 중요한 대선 중에서도 중요하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대선이다.
앞으로 5년이 우리의 ‘운명’과 ‘생존’을 결정한다
벌써 1년이 훨씬 넘게 코로나 감염병 사태가 이어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지금과 같은 이런 상황은 일찍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계속될지 알 수도 없다. 더구나 코로나 감염병 사태의 장기화에 따라 이 땅의 자영업자들은 도탄에 빠지고 청년 일자리는 반 토막 났다. 이로 인해 그렇지 않아도 심각했던 우리 사회의 양극화 현상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게다가 부동산 폭등은 자산 격차를 가장 극적으로 크게 확대시켰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양극화는 더이상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그야말로 폭발 직전에 놓여 있다.
한편, 기후위기는 흔히 다음 세대의 삶을 파괴할 수 있는 심각성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캐나다 등 북미 대륙의 50도에 이르는 폭염, 독일과 벨기에 그리고 중국과 인도를 강타한 유례 없는 폭우와 그로 인한 엄청난 인명피해를 목도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는 우리 다음 세대가 아니라 우리들의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10년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10년이 아니라 당장 다가올 5년이 가장 중요하다. 그 5년은 우리의 삶을, 우리의 운명을 좌우할 결정적인 5년이다. 실로 하루하루가 금쪽같은 5년이다.
지금 이 ‘戰時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
지금 우리는 사실상 ‘전시 상황’에서 삶을 위태롭게 이어가고 있다. 평시(平時)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전시(戰時)’다. 그러나 이러한 세기말적인 상황에서 거꾸로 극단주의가 휩쓸 가능성도 상존한다. 미국에서 트럼프와 같은 망나니가 출현한 것은 결코 돌연변이가 아니다. 선거란 온갖 거짓 공약과 인기 발언, 헛된 환상과 혹세무민이 판치게 된다. 그래서 본래 선거에 의해 좋은 인물을 선출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평범한 대선이 아니라 그야말로 우리의 ‘운명’과 ‘생존’을 가름하는 절체절명의 중차대한 선거다. 이번 대선을 통해 반드시 심각한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고 기후위기를 극복해내는 결정적 계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반드시 정말 좋은 지도자를 선출해야 한다. 거꾸로 만약 이번 선거에서 ‘탐욕의 화신’ 이명박이나 ‘오방색 비선실세’ 박근혜와 같은 인물을 뽑는 결과가 나온다면, 우리 모두의 운명은 마치 “폭풍 앞의 등불” 신세로 천 길 낭떠러지 백척간두에 서게 된다.
‘관료’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가? 이것이 차기 정부 성패 좌우한다
다음 정부에서 수행해야 할 원칙과 과제는 실로 많을 것이다. 여기에서 필자는 다음 정부가 꼭 명심해야 할 두 가지 점만을 짚고자 한다.
첫째, ‘관료 통제’의 문제이다. 어느 정부든 집권 초 몇 달만 반짝 의욕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듯하다가 시간이 좀 흐르게 되면 모든 것이 관료들에 포획되어 그들의 손에 놀아나는 꼴이 되고 만다. 기재부는 언제나 국가재정이 마치 자신들의 재산인 듯 간주하며, 검찰이나 법관이나 그 출신들은 마치 나라의 법률이 오직 자신들에게만 전속되어 있는 양 사고한다.
부동산 폭등으로 김수현이나 김현미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능력과 관점에 큰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LH를 포함하는 국토부 관료(그리고 이들과 ‘이심전심’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부처 고위관료)들도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 배후세력이다. 관료들이란 본능적으로 그리고 항상 기꺼이 오직 관행과 기득권 그리고 대자본의 편에 선다. 그리하여 이를테면, 심각한 기후위기 극복의 과제도 관료들의 손에 넘어가게 되면 아무 일도 못하게 될 가능성이 불 보듯 뻔하다. 그들은 모든 일을 해태하면서 그 어떠한 진전도 거두지 못하게 만드는 탁월한 ‘원초적 본능’을 보유하고 있다.
차기 정부의 성패는 관료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함으로써 ‘관료가 지배하는 우리 사회 구조’를 바꿔낼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문제에 대한 지도자의 의지와 능력이 가장 중요하며 동시에 ‘관료 통제’의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준비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대통령과 함께 국정을 공동 운영하는 ‘명신(名臣)’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하다
둘째 원칙은 명신(名臣)의 존재이다. 우리 모두 잠시 생각해보자. 현 정부에서 기억에 남는 장관이나 참모가 있는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좋지 않은 경우로 물러난 ‘유명한’ 참모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탁월한 능력이나 성과에 의해 이름을 날린 사람은 단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다.
세종은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세종과 함께 황희, 맹사성, 허조, 정인지, 김종서 등의 명신들이 있었기에 비로소 명군으로서의 세종의 치세가 빛날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상 명군 옆에는 항상 명신이 존재했다. 유명한 당 태종이나 한 무제 역시 유능하고 뛰어난 명신과 참모들의 보좌가 있었기에 마침내 성세(盛世)를 이루고 역사에 남는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
한 명의 대통령만에 의해 좋은 정치와 성과를 내기 어렵다. 이 어려운 시기, 유능하고 탁월한 인물을 발굴하고 기용하여 함께 국정을 공동 운영함으로써 반드시 좋은 성과를 이뤄내야 할 것이다.
아래의 글은 중국정부가 WHO의 2단계조사로 우한바이러스연구소 WIV만을 지명해서 진행하고자 하는 요구를 거절한 배경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서방의 요구에 굴복한 WHO 사무총장은 WIV가 진원지라는 전제하에서 2단계의 조사를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중국측은 전세계 군사적 생화학연구소 모두 공히 같은 범위와 절차와 과정을 통해서 진행할 것, 특히 역사적으로 문제가 많은 메릴랜드 소재의 Port Detrick Lab.에 대한 특별조사를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50만 명이 넘는 중국네티즌들은 지난 일요일, 언론일정에 맞추어 WHO에 보내는 공동서한에 서명하면서,폐쇄의 의혹에 쌓여 있는 미군의 생화학기지 Fort Detrick lab을 포함하여 의심스런 연구소들에 대한 국제전문집단의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였습니다. 이들은 특히 미국의 상기 연구소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미래의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정서구 정치인(바이든)과 언론들이 중국을 코로나바이러스 발원의 범인으로 지목하려는 악의찬선동 캠페인에 대응하여 나온 것입니다. 중국네티즌들은 메릴랜드주에 위치한 Fort Detrick의 미육군감염병연구소(USAMRIID)에 대한 조사를 WHO에 요청하는 공개서한을 공동작업으로 작성했습니다. 주도한 이들은 Global Times의 토요일판 WeChat 및 Weibo의 플랫폼에 편지를 게시하여 대중의 응답을 요청하였으며, 24시간 만에 50만 명의 서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편지에서 미래의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WHO는 위험한 바이러스 또는 생화학 무기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실험장소들에 대하여 특별한주의를 기울여야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공개서한은 에볼라, 천연두, 사스, 메르스 및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포함하여 세계에서 가장 치명적이고 전염성 있는 바이러스를 저장하고 있는 Fort Detrick 연구소를 특별하게 언급했습니다. 이들 바이러스 중 하나라도 누출되면 전세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것입니다.
“상기 연구실은 안전의 보안에 관한 악명높은 과거의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구소에서 나온 탄저균을 도난당하는 사건들이 발생하여 많은 사람들이 중독되거나 심지어 사망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2019년 가을에도 누출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런 과거의 사건들과 코로나–19의 확산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연구소의 자세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미국언론이 단편적으로 공개한 정보는 전세계를 걱정하게 했으며,일부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미국의 상기 연구소와관련될 수 있다는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미육군감염병연구소USAMRIID는 실제로 미국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조사가 있는 후 2019년 가을에 일시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미스터리한 연구소의 폐쇄이유를 “폐수오염 제거와 관련된 지속적인 기반시설 문제”이라고 보고했지만 이러한 설명은 충분한 설득력이 없습니다.
지난 6월의 최근 사례를 토대로 미국국립보건원(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모두를 위한 연구프로그램(All of Us Research Program)이 실시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2019년 12월 전에 이미 미국에서 COVID-19 감염의 증거가 발견되었습니다. 우한당국이 환자로부터 중국 최초의 COVID-19 증상을 기록한 일자는 2019년 12월 8일입니다.
공동서한은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중국당국은 서방국가들의 바이러스 학자들과 심지어 미국 주류언론까지 우한바이러스 연구소를 방문하는 것을 허용했지만,반대로 미국은 Fort Detrick 연구소를 절대로 공개하지도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밝힙니다.
미국은 서한에서 제기된 문제를 ‘음모론’이라고 몰아붙이며이를 조사하라는 중국 인민의 요청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왜곡하는 동시에, 우한연구소를 공격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잘못된 소문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전염병 수석책임자를 지낸 Zeng Guang은 Global Times와 인터뷰에서 WHO 전문가들이 중국을 방문하는 동안 이미 “우한연구소 누출이론”에 대하여 충분히 평가를 했기 때문에 상기의 소문에 대한 의심은 종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러나 다른 실험실에서 바이러스가 누출되었는지 여부에 대한 질문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미국)의 실험실에 대한 추가조사를 촉구했습니다.
그는 미국이 코로나-19의 발생 초기단계에서 사람들을 테스트하는 것에 방심하였기 때문에 다음 단계조사에서 미국이 우선조사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미국은 또한 전세계에 많은 생물학 실험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들 모두 생물무기와 관련한 주제에 대하여반드시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라고 Zeng은 말합니다.
공개서한은 바이러스의 기원을 파악해야만 미래의 세계에서 잠재적 위험을 제거하고 다음 전염병을 피할해답을 찾을 수 있고 비통한 사망자의 가족을 위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항상 이러한 조사작업을 중단시키고 국제사회가 Fort Detrick 연구소를 조사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600,000명 이상의 미국인의 생명을 앗아간 전염병에 대한 비참한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과연 미국은 발생 원인에 대한 진실이 함께 묻히기를 원하느냐”고 공개서한은묻고 있습니다.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지난 금요일 회원국에 대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하여조사의 2단계로 “중국 및 실험실의 감사”라는 추가연구를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한 이후 코로나바이러스의 기원조사를 정치화하려는 새로운 시도의 움직임이 분명해 졌습니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이 WHO가 발표한새로운 성명의 사본을 인용하여 “2019년 12월에 확인된 초기확진의 사례지역에서 운영되는 관련실험실 및 연구기관에 대한 감사”를 포함하여 5가지 우선순위를 나열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습니다.
WHO는 이미 지난 1월 관련업무를 위해 국제전문가 팀을 중국에 파견했습니다. 조사팀원들은 다양한 분야를 다루는 서방국가들의 엄선된전문가들로서, WHO-중국 공동팀과 함께 작성한 상세한 보고서로 과학적 결론을 내리기 전까지, 우한에서 거의 한 달 동안 현장을 조사하고 연구했습니다.
“거브러여수스는 WHO의 수장으로서 WHO 전문가들의 결론을 존중하지 않고 글로벌 연구의 다음 단계에 대한 그들의 제안을 지지하지 않으며, 결론과 상반되는 아이디어까지 내세우면서 WHO 전문가들조차 이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라고 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가 말합니다.
그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조직의 책임자로서 자신의 조직이 파견한 전문가 팀을 믿지도 않고 지지하지도 않는다”고 전제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것은 무의미합니다”라고 확인합니다.
WHO-중국 합동조사팀을 잘 알고 있는 서방의 과학자는 거브러여수스가 2단계 접근방식을 바꾸려고 하는 이유는 미국이 주도하는 소수의 강국 회원들이 지닌 실험실누출의 고의적 의도에 대하여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라고 Global Times에 말했다.
서방의 과학자들은 이것이 다음단계의 조사를 시작하는 데 상당한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발생기원의 증거를 찾을 기회를 오히려 상실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실제로 중국팀과 WHO 국제전문가들은 보고서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공유하려는 2단계 계획의 초안을 작성했습니다. 이들은 WHO 사무총장이 추가작업이 수행되는 방식에 대해 수정을 제안한 것은 현재 진행중인 노력을 중단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거브러여수스의 발언에 대해 중국외교부 대변인 Zhao Lijian은지난 금요일 언론브리핑에서 코로나–19 기원에 관하여 중국-WHO 연구조사팀의 국제 전문가들이 여러 차례 실질적인 데이터와 정보를공유하였지만, 일부 정보가 개인정보의 보호 때문에이를 복사하거나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Zhao는 “중국이 2단계 조사연구에 대한 제안을 연구하고 있으며 다음단계의 연구는 회원국들이 주도적으로 협의를 통해 합의하고 중국-WHO 공동연구 일차보고서에 기초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일차보고서는 실험실 누출가설의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결론지었으며이제 우리는 세계적으로 더욱 광범위하게 발병의 초기사례를 찾아내 연구하고, 특히 냉동식품과 저온유통의 과정을 파악해야 합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별도로 48개국들이 WHO에 서한을 보내 바이러스 발원조사의 정치화에 반대하며 세계보건총회(WHA) 결의에 따라 행동하고 이에 따라 글로벌조사를 추진할 것을 촉구했으며,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모든 국가들이 바이러스의 추적에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과정에 책임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바이러스 기원에 대한 WHO-중국 공동조사팀의 보고서가 글로벌 바이러스 기원추적을 위한 기초이자 지침이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에 따르면 이번 서한은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한 조사가 과학적인 작업이어야 하며 동시에 이들 과학자들이 세계적인 범위에서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 전염병 학자들은 바이러스 추적문제를 정치화하는 의도가 퍼즐에 대한 “과학적, 합리적” 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야 하며 자국의 목적을 위해 이러한 노력에 대하여 일방의 압박을 가하고 강요하려는 국가들을 저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016-2017 촛불혁명의 불빛이 흔들린다는 원성이 높다.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빛바래져 있다는 말도 있고, 적폐청산 불만세력의 방해가 많다는 소리도 있다. 남북관계가 경직된 탓은 미국 때문이라는 국수주의적 지적도 나온 상태이다.
거룩한 촛불혁명을 촛불항쟁이라고 자기 비하하며 스스로를 폄하하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어느 혁명사의 경우를 보더라도 밋밋하게 완결된 혁명은 없었다. 혁명의 완성을 훼손하려는 반혁명 물결이 나타나 역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근본적 변화를 의미하는 혁명은 점진적 변화를 뜻하는 개혁과 구분한다. 그러나 역사 현실을 잘 살펴보면 혁명은 장기간에 걸쳐 일어나는 일상의 진화과정과 점진적 변화의 축적위에 근본적 변화과정을 수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혁명은 어떤 한 사건의 발생이나 영웅·호걸의 돌출로 이해되는 게 아니라 혁명의 완성과 후퇴, 전진과 역진이라는 과정들의 연속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어떤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들은 역사 변화과정을 보며 일희일비하고, 혁명이 더딘 행보를 한탄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신들이 일구어낸 위대한 역사적 대변화를 촛불항쟁이라고 경시하면서 헛발질만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우리의 물관리 행정과 입법사례는 촛불혁명 완성은 고사하고 어떤 개혁 정책하나, 법률 하나를 개정하고 시행하는 일조차 매우 어렵고 조심스럽고 진지하게 논의, 추진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일깨워준다. 어떻게 하면 촛불혁명을 완수할 수 있을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지나간다는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한 접근을 하는 이에게만 촛불혁명의 완수라는 대업 실현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군사문화의 유습이 짙게 깔려있는 관료조직문화의 전면적 쇄신과 자기수정이 없는 한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기술관료 자신이 국정목표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오로지 국민만을 위한 행정가의 자세를 견지해야만 한다. 그러나 일부 특정부서 관료들은 부처 이기주의에 빠져 여전히 많은 예산과 낡은 정책을 움켜주고 촛불혁명에 반하는, 개혁을 거스르는, 변화를 부정하는 데 골몰하고 오로지 납작 엎드려 눈 운동만 한다는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국민들의 빈축과 비난을 사고 있다는 게 오늘날 관청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다.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느끼는 쾌적한 환경의식과 바램은 맑은 공기와 물, 쓰레기 없는 세상에 있다. 탁한 공기와 더러운 물, 지저분한 주위 환경에 염증을 느끼지 않거나 거부감을 표하지 않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이 가운데 물은 가장 흔한 자원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낭비가 심한 자를 빗대어 ‘돈을 물 쓰듯 한다’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한국은 강수량이 풍부해 벼농사하기에 충분한 물을 가진 수자원국가였다. 그래서 치산치수정책은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해 왔다는 말을 쫓아왔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우리의 치산치수정책은 성장주의자의 손에 모든 걸 내맡기는 꼴이 되어버렸다. 경제성장시대이래 물 관리는 이원화되어 있었다. 수량은 건설부 소관이었고, 수질은 환경부 소관이었다. 1994년 영남 주민들의 젖줄인 낙동강물이 못 먹을 정도로 더렵혀졌다. 이 대형 환경사고는 대구지역 공단에서 무단 배출한 페놀에 의해 오염된 것이었다. 이 낙동강오염사태를 겪으면서 물관리 일원화를 요구하는 주장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물관리 일원화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집권 후 주요추진정책의 하나로 이를 채택했다. 2018년 5월에 가서야 국회는 여야 합의에 의해 물관리기본법을 의결했다. 지난 40년 동안 양분되어 온 수량·수질관리가 일원화되어 드디어 물관리 행정 책임은 환경부로 일원화되었다. 말하자면 국토부가 장악해 왔던 댐관리 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 등을 환경부가 관리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물부족 국가라면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들었을 때 토목공학자와 건설업체는 댐 건설과 수량 확보만이 대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환경운동가들은 거대한 댐이 성장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만큼 효과가 많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기업 프렌들리를 외치며 집권한 이명박 정권은 사실 4대강 토목공사를 추진하기 위해 녹색성장을 국가 최우선정책을 밀어 붙인 셈이었다. 이 4대강 사업의 주무기관이 한국수자원공사였다. 그리고 농업용수 확보와 운영은 농어촌공사가 담당했다.
물관리기본법이 제정되어 조직은 통합되었으나 사업과 예산은 통합되지 않아 통합물관리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예를 들면 소하천은 행정안전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맡게 되었으나 이를 감당한 예산이 부족하다는 점과 어쩌다 투입되는 예산 등에 대한 모니터링 체제가 불비하다는 것이다.
특히 통합물관리의 기초라고 말할 수 있는 물관리에 필요한 관련 정보들을 여러 기관에서 수집, 이용함으로써 디지털 전환시대에 걸맞지 않는 체계를 보이고 있다. 현재 물관리 정보 체계를 보면 환경부, 행안부, 국토부, 기상청, 국토지리정보원, 국립농업과학원,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농어촌공사, 한국환경공단이 25개의 정보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표 2>.
<표 2> 물관리 정보 시스템
지난 제20대 국회 말기였던 2020년 5월 12일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는 정부조직법에 대한 법안심의를 했다. 당시 국회 속기록을 통해 드러난 국회의원들과 관료의 발언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다.
김종민 의원의 정부조직법 개정 제안 이유는 지표수와 지하수, 수량과 수질, 재해 예방을 환경부가 효율적으로 통합관리하고자 하는 물관리 일원화의 취지에 따라 국토교통부 소관의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에 이관함으로써 국민 모두가 안전하고 깨끗한 물을 누릴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즉 2018년 6월 이전엔 국토교통부가 물관리 업무와 하천관리 사무를 일괄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2018년 6월 이후 물관리 업무는 환경부가, 하천관리 업무는 여전히 국토교통부가 쥐고 있었다.
첫째, 국회 수석전문위원 조의섭은 검토의견을 통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현재 물관리 정책, 유역 및 수질․수량 관리는 환경부가, 하천계획 수립, 공사 및 유지관리는 국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물관리와 하천 업무의 이원적 구조를 환경부로 일원화함으로써 조직 운용 및 업무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아 타당하다고 보았다.
둘째, 행정안전부 차관 윤종인은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행정조직 개편을 요청했다.
셋째,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은 찬성과 반대 의견을 말하지 않고 여야 국회의원들에게 정부조직 개편안 결정을 일임하였다.
셋째, 국민의 힘 윤재옥 의원은 여야간 국회 협상과정에서 국토부의 의견을 두둔하는 차원에서 하천관리 업무의 국토부 존치를 유지하는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넷째, 국회 행안위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국민의 힘 이채익 의원은 부처 협의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부각함으로써 정부조직법안 의결을 유보하였다.
결국 이날 회의에서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끝내 처리되지 않았고, 제20대 국회 폐회에 따라 법안 역시 자동 폐기되었다. 이 정부조직법 개정은 7개월 뒤 2020년 12월에 국회에서 의결되었고, 2021년 1월에 가서야 정부조직 개편에 적용되었다(표 1 참조). 국회는 국민 다수의 이권을 대표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실현되는 국가 핵심기구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협의민주주의와 절차민주주의에 의해 좋은 정책은 하루아침에 이름과 형식만 남게 되는 덜 좋은 입법이나 나쁜 입법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질 나쁜 야당의 존재를 우유부단한 집권여당 일부 의원들과 함께 촛불혁명의 위업 달성에 커다란 장애물이다.
부처협의는 정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절차요 과정이다. 그러나 부처협의과정에서 좋은 정책의 알맹이는 빠지고 좋은 정책은 간판으로만 남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회 입법정책을 통해서만 해결되어야 할 만큼 부처협의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질수록 관료들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부처협의가 좋은 정책 추진과 집행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야 할 것이다.
부처협의가 원만하게 진행되었더라면 남북공동선언 등을 조약 체결과 같은 수준으로 제도화할 수 있는 국회 비준 역시 그 실현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근 알려진 소식에 따르면 4·27 판문점 선언과 9·19 평양선언 등 남북공동선언의 국회 비준을 위해 국회의원 180인은 동의 의사를 모았다고 한다. 그런데 국방부와 기획재정부 등이 부처협의에 응하지 않음으로써 정부의 남북공동선언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도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부처협의가 공무원의 철밥통을 고수하는데 암약하는 부처 이기주의의 피난처가 되어선 안된다. 부처협의는 말 그대로 정책 조정과 합의를 통해 정부 효율을 극대화하는 통과의례여야만 한다. 부처협의는 충돌하는 가치와 이권을 조율하여 국리민복과 국가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만 운용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참고자료>
제20대 국회 제377회–행정안전소위 제3차(2020년 5월 12일)
19.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김종민 의원 대표발의)
20.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정부 제출)(계속)
(14시40분)
◯ 소위원장 이채익 다음은 의사일정 제19항 및 제20항, 이상 2건의 정부조직법 개정법률안을 일괄하여 상정합니다. 수석전문위원께서 사항별로 세부 내용을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소위 심사자료 3페이지부터 보고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로 이관하는 내용입니다. 검토의견 말씀드리면 개정안은 현재 물관리 정책, 유역 및 수질․수량 관리는 환경부가, 하천계획 수립, 공사 및 유지관리는 국토부가 담당하고 있는데 물관리와 하천 업무의 이원적 구조를 환경부로 일원화함으로써 조직 운용 및 업무 수행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일관된 정책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아 타당하다고 보았습니다.(중략)
검토의견 말씀드리면 부칙의 시행일과 관련해서 국토부 소관의 기구․정원․인력 등을 환경부로 이관하기 위해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기에는 다소 촉박한 문제가 있다고 봐서 일정 기간 시간을 둘 필요가 있다고 보았고요. 그밖에 소관 사무및 경과조치 등의 부칙 개정안은 문제가 없습니다마는 물관리 일원화에 따른 관련 개별 법률의 인용조문 중 ‘국토부장관’을 ‘환경부장관’으로 개정해야 될 사항들이 물환경보전법, 소하천정비법 등 26개 법률에 걸쳐 누락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보아서 수정의견을 조문대비표로 해서 14페이지에 붙여 놓았습니다. 이상 보고 마치겠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정부 측이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전문위원이 제시한 수정의견에 동의합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위원님들, 의견 개진해 주십시오.(중략)
◯ 윤재옥 위원 차관님, 국토부하고는 다 이야기가 됐어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예, 지금 국토부 국장님 와 계십니다. 의견을 청취하시려면 청취하십시오.
◯ 윤재옥 위원 국토부 입장을 설명해 주십시오.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위원님들이 다 아시다시피 물관리 일원화가 2017년 정부조직법 개정 때부터 논의가 돼서 2018년 6월 달에 여야 4당 합의에 의해서 일단 수자원 부분, 물 부분은 일원화되고 하천 부분은 남겨 두었습니다마는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도 국회에서 논의해 주시면 그 결정에 따르겠다는 것이 국토부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국회의 논의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입니까?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예, 그렇습니다.
◯ 윤재옥 위원 정부가 제출한 안에 대한 찬성 입장은 아니고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국토부 입장에서 찬성․반대보다는 국회의 논의 결과에 따르겠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그러면 행안부차관님, 국토부하고 회의 안 했나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이것이 사실은 상당히 오래 전에 여야 합의로 하천 관련 기능을 다 환경부로 이관하기로 결정된 사안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 추가적으로 이 법 심의 전에 이야기한 적은 없고요. 그때 정부 내에서는 의견을 다 조율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당시 제가 조직실장이었기 때문에요.
◯ 윤재옥 위원 국토부 무슨 국장이시지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국토정책관입니다.
◯ 윤재옥 위원 국토부는 지금 뉘앙스가 흔쾌히 찬성하는 입장은 아닌 것 같아요. 정부의 물관리 일원화 방향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찬성하지도 않는 입장인 것 같아요. 저의 말이 틀렸습니까?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물관리 일원화에 대해서 국토부는 찬성입니다. 다만 이 부분 정부조직법 개정안 자체가 지난 1년 반 전에 여야 합의로 논의가 되었고 이번에도 여야가 논의되는 대로 따르겠다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 윤재옥 위원 되게 애매해요. 왜냐하면 이 협상을 제가 주도했습니다, 원내수석 하면서. 그 당시에 물산업 진흥에 관한 물기술산업법과 또 물관리 일원화를 위한 정부조직법을 여야 간 협상에 의해서 타결해 가지고 물관리 일원화를 수용해 주되 하천관리 부분만 국토부에 남기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됐던 사안입니다, 그 당시에. 그렇지요?
◯ 국토교통부 국토정책관 하대성 제가 그때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 윤재옥 위원 지금 그렇게 법이 되어 있잖아요. 그렇게 돼 있는데 이것이 오늘 상임위에 올
라오기는 했지만 여야 간에 남은 하천관리 업무를 환경부로 넘길 것인가에 관해서는 약간의 논의가 필요한 부분인데 논의가 안 됐어요. 그래서 상임위에서 단순히 이 법안을 처리하기에는 저는 조금 숙성이 덜 됐다 이렇게 봅니다. 차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 행정안전부 차관 윤종인 위원님 말씀하신 취지는 알겠습니다만 2018년 6월 이후 하천에 관한 사무를 환경부로 이관한다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정부의 기본적인 입장이어서 전문위원 의견처럼 또 저희 정부가 말씀드리는 것처럼 일원화를 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저희 입장입니다. 다만 국토부에서 찬성도 않고 반대도 않는 어중간한 입장을 지금 표현을 해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요, 그것은 발언이 조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이 부분은 우리가 국토부의 입장도 지금 현 시점에서 존중을 해야 되고 또 여야 합의사항, 아까 국토부의 입장도 여야 합의 사항이 존중돼야 된다고 했는데 그때 당시에 실무를 맡았던 윤재옥 위원님이 그런 말씀도 하니까 이 부분은 부처끼리 조율하고 또 여야 간에도, 관련 상임위하고도 조금 공감이 돼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갖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계속 심사를 하고자 하는데 위원님들……
◯ 김민기 위원 이의 있어요. 이것을 공급자 관점이 아니라 소비자 관점으로 보면 소비자는 지방자치단체입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부와 국토부로 나뉘어 있는 것이 굉장히 불편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여야 합의로 이것이 되기로 했었는데…… 저는 이것이 되기로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하천이 빠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지금 국토부의 국장님께서 답변을 하셨는데, 국토부 국장님의 답변이 국회에서 결정되는 것을 다 받아들이겠다고 인정을 했는데 또 그렇지 않게 해석이 되는 모양이에요. 관심법까지 쓰셨어요.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인가까지 보신 것 같은데 저는 이것의 일원화를 이제 완결 지을 때가 됐다 이렇게 생각하고요. 그리고 특히 행안부의 입장에서, 지방자치단체를 관할하는 행안부의 입장에서 이것은 반드시 통과가 돼야 된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국토부 국장님의 답변을 저는 긍정적으로 봤습니다만 부정적으로 보시는 분도 계시니까 그러면 지금 국토부의 입장을 다시 전화해서 알아보시고 오세요.
◯ 소위원장 이채익 잠깐만요, 나는 그것이 좀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은 국토부의 국장이 국회에서 답변하는 것은 국토부의 공식입장으로 봐야지 그것을 지금 또 어디에 확인을 합니까? 국장이 와도 그것은 국토부의 공식입장으로 우리는 이해해야 된다고……
◯ 김민기 위원 아니, 저는 공식입장을 긍정으로 봤는데 지금 부정으로 보신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명확히 해 달라고요.
◯ 소위원장 이채익 아까 분명히 여야 합의사항이 준수돼야 된다, 그 부분이 존중돼야 된다 그 얘기를 분명히 내가 들었는데.
◯ 김민기 위원 그것이 국회 입장 아닙니까? 지금 그것을 반대했다고 보시는 것이잖아요.
◯ 윤재옥 위원 아니, 반대도 아니고 찬성도 아니고 입장이 애매하다 그랬지.
◯ 김민기 위원 그런데 그것을 근거로 해서 지금 이것을 계속심사로 둘 것은 아니라는 것이고요.
◯ 윤재옥 위원 그것은 김민기 위원님 발언 끝나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 김민기 위원 말씀해 보세요.
◯ 윤재옥 위원 우선은 정부 내의 물관리 일원화와 관련된 쟁점이 약 2년 전에 정리가 된 것입니다. 사실 야당한테는 논의를 일체 하지 않고 합의사항을 변경하는 법을 오늘 제출해서 심사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야당 입장에서는 합의사항의 변경이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 서로 양해가 된 사항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상임위 차원에서 이것을 오늘 처리하기에 부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저도 개인적으로는 물관리 일원화의 방향성에 대해서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마 국토부는 정부 전체의 물관리 일원화 방향에 반대할 수는 없지만 내부적으로는 이 업무를 넘기는 데 반대하는 분위기가 많이 있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 김민기 위원 법이라는 것 자체가 국민을 위한 것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환경부가 관할권을 갖든지 국토부가 관할권을 갖든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 일을 지방자치단체가 행함에 있어서, 관리함에 있어서 어디가 더 효율적이냐 이런 문제였는데 물관리 일원화라는 대명제를 수행함에 있어서 하천이라는 부분이 빠져 있었던 것을 이제는 바로잡는 개념으로 보시면 저는 오늘 바로 통과가 되어야 되고 또 통과가 이제까지 안 됐기 때문에 오는 불편함에 의해서 지금 개정안이 나왔다고 보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오늘 이것을 통과시켜야 된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 윤재옥 위원 하천을 환경적인 측면에서 볼 것인가 또 개발해서 활용하는 측면에서 볼 것인가 이런 양쪽의 상반된 입장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그래서 이 문제는 우리 상임위에서 공박을 하기보다는 새로 국회가 구성되면 질병관리청도 새로 신설한다고 하니까 정부조직법 중에 같이 할 것들을 모아서 그때 같이 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존경하는 위원님들, 오늘 심사할 안건이 사실 많습니다. 윤재옥 위원님이나 저나 물관리 일원화에 대해서 이론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하천 관리 기능을 국토부로 존치한 부분도 그 나름의 근거가 다 있고 또 여야 지도부들이 합의한 사항을 여야 지도부가 완전 이해되지 않는 상태에서 우리 상임위원회가 이 부분을 뒤엎는 법안을 20대 국회가 끝나가는 무렵에 이렇게 하는 데 대해서 저희 당 입장에서 상당히 심리적으로 부담이 있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좀 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하고 또 관련 부처가 국회에 대해서 이해를 구한다면 하천 이 부분까지도 통합해야 된다는 논의가 많기 때문에 좀 더 숙성시키고 합의를 이끌어서 그렇게 하면 시간의 문제이지 크게 어려움도 없겠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김민기 위원님께서 대승적으로 협조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위원장님, 정부가 제출한 정부조직법은 하천 관리 일원화에 관한 사항은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위원님들 이견이 없으시면 그것은 통과시켜 주시면……
◯ 윤재옥 위원 차관님, 전문위원님이 그것은 안된다는……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아닙니다. 그것은 수정의견에 다……
◯ 윤재옥 위원 지금 그 부분은 전문위원님 검토 의견대로 수용하시면 저희들이 굳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수용하고 있습니다.
◯ 윤재옥 위원 그것은 다시한번 봅시다.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위원님, 정부가 낸 안은 5페이지 나번부터입니다.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제가 보충설명드리겠습니다. 나번의 경우에는 정부 개정안대로 갔고 7페이지 다번 중에서 첫 번째 경찰공무원, 교육공무원 보임 제한 완화는 정부안대로 가고 별정직공무원의 국장 보임 제한 완화는 개정안을 받지 않고 현행대로 하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앞의 것은 정부조직 개편에 관한 내용이니까 그것은 빼놓으시면 될 것이고요.
그렇게 정리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윤재옥 위원 별정직공무원 국장 보임 제한 완화는 전문위원께서 좀 신중하게 검토해야 된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 수석전문위원 조의섭 그렇습니다.
◯ 윤재옥 위원 그런 부분은 정부에서 수용하는 겁니까?
◯ 행정안전부차관 윤종인 예, 수용한 겁니다.
◯ 윤재옥 위원 전문위원 검토의견을 수용하면 저는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 소위원장 이채익 의사일정 제20항 정부조직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수정한 부분은 수정한 대로, 기타 부분은 원안대로 의결하고자 하는데 이의없으십니까?
‘시대의 예언자’ 혹은 ‘미래를 향한 메시아’로 불리는 웅거는 브라질 태생으로 하버드 법대를 다니며 비판법학 운동을 주도하면서 약관 29세에 종신교수직을 획득하고 이후 수많은 화제의 저술을 남기면서 국내에도 ‘주체의 각성’ ‘민주주의를 넘어’ ‘정치 3부작’ ‘진보의 대안’ 등이 번역 소개된 미국을 대표하는 현시대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현재의 산업체계를 ICT첨단기술이 주도하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칭하는 것을 거부하면서 이를 ‘지식경제의 시대’라고 명명합니다. 실제로 ICT 첨단기술이 산업과 생활에 구조적인 변화를 일으켰지만, 2000년을 넘어서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산업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고 일부 집단이 소위 e-Flatform이라는 이름으로 독과점을 강화하고 경제운용의 성과를 독차지하면서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계약직과 비선형적 고용의 불안정이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웅거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첨단기술을 소수의 그룹이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狹域(프린지)의 폐쇄적 전위주의와 거대기업들이 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이해와 지위를 강화하는 유사적 전위주의에 있다고 진단하면서, 지식경제의 소명은 가장 선진화된 기술과 생산관행을 생활과 산업전반으로 확산하고 보편화시키는데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는 이를 포용적 전위주의라고 부르면서 이를 실현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다음의 세가지 기반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인지적 교육적 요건 – 사회적 도덕적 요건 – 법적 제도적 요건.
이어서 웅거는 기존의 경제학인 아담 스미스와 마르크스의 고전경제학, 마샬과 빈-학파에 의해 주도된 한계(효용)학파와 미시경제, 그리고 이단이라는 표현으로 케인즈의 이론, 이후의 신자유주의와 이에 타협한 사민주의의 타락과 제3의 길 등을 모두 비판하면서 새로운 경제이론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웅거의 “지식경제의 도래”는 아마도 헤겔의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못지않게 매우 난해하고 추상적인 저술입니다만, 기존의 논리와 관행에 갇혀 있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도전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다른백년의 지원을 바라는 심정으로 구매를 요청합니다. 책의 내용은 매주 한차례씩 20여 주에 걸쳐서 다른백년의 홈에 게재됩니다. 두손모아,
다른백년 이사장 이래경
포용적 전위주의는 도덕적 생산문화에서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작업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신뢰와 재량 수준의 고양을 유지하는 작업방식뿐만 아니라 특징적이고 까다로운 특성들을 지닌 협력관행의 향상에 있다.
중요한 쟁점은 도덕적 생산기반에서 이러한 변화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문화의 소여인지 아니면 우리가 의도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실천과 의식의 특성인지이다. 이러한 변화는 포용적 전위주의를 향상시키는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고 또한 그래야 한다. 심화되고 보급된 지식경제의 도덕적 문화는 변혁적 행동이 닿을 수 없는 운명의 영역으로 남아야 할 필요가 없다. 그러한 도덕적 문화는 집단적 창조물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도덕적 문화의 구성 요소와 요건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도덕적 문화의 강화를 바랄 수 없다.
작업장 내에서 지휘통제에 기초한 노동분업에 대한 접근 방식은 재량의 여지를 봉쇄하고 신뢰를 권력과 감시로 대체한다. 경직된 기계의 작동을 모방하는 작업의 반복적 성격은 생산적인 과업들의 전문화된 집행자들에게 집행을 담당하고 있는 바로 그 계획을 다시 정의할 기회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다. 고용계약의 암묵적 조건(임노동의 계약적 형태)은 생산과정을 지시할 모든 나머지 재량이 법과 단체협상의 제약 안에서 소유자가 임명한 관리자들에게 유보된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기성제도에서 생산적 자원과 기회의 분산적 접근을 조직하는 중요한 법적 장치들은 통일적인 재산권(19세기의 법적 발명품)과 이에 부응하는 계약법상의 장치로서 쌍무적인 미이행계약(간단한 급부로 완결되는 협상의 조건들을 빠짐없이 적시하는 사무적인 거래)이다. 통일적인 재산권과 쌍무적인 미이행계약[쌍무계약]은 공히 권리보유자가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를 거의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특권적인 재량의 영역(권리의 영역)과 다른 사람의 청구권에 복종해야 하는 주변 영역을 뚜렷하게 분리하는 체제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세계에서 사무적인 거래와 거의 통제받지 않는 이기심의 영역은 사회적 상호의존성이 매우 두드러지는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들(가족, 공동체, 교회)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의존성에서 더 효과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비축하고 또한 우리는 불완전한 합의를 권력, 교환, 충성이 거리낌 없이 섞이도록 허용하는 사회생활의 부분들(가족과 공동체)에 유보한다.
지식경제의 심화와 확산은 다른 도덕적 문화를 요구하고 그러한 문화의 발전에 기여한다. 포용적 전위주의는 포용적 전위주의가 번창하는 도덕적 환경의 원인이자 그 결과이다. 그러나 포용적 전위주의는 결코 그 자신의 도덕적 기초의 만족스러운 건축가일 수 없다. 그러한 기초도 의도적인 행동의 결과이어야만 한다.
이 절의 도입부에서 환기시킨 두 가지 보완적 시각(신뢰와 재량의 향상과 우리의 협력적 성향의 강화와 정교화)에서 경제생활의 도덕적 기풍에서의 필요한 변화를 고려해 보겠다.
신뢰와 재량의 향상은 계획이 집행 과정에서 수정됨에 따라 생산적인 업무의 계획수립과 그 집행의 차이를 이완시키고 경쟁에 맡기는 활동과 협력에 맡기는 활동의 차이를 상대화함으로써 순차적으로 발전한다.
앞서 언급한 군사적 유추를 상기해보자. 지식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작업집단은 정규군보다 비정규군을 더 닮아야만 한다. 그러나 특수작전부대와 같은 비정규군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계속 활동하는 더 큰 군대의 엘리트적이고 보조적인 세력으로 작동하는 것과 정규군 전체가 비정규군의 특성을 조금씩 획득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의제이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욱 야심적인 의제다. 정규군이 비정규군의 특성을 얻기 위해서는 정규군은 엘리트 부대의 극단적인 유연성과 기동성과 중앙통제를 비율상 확장하고 유지하는 능력을 조화시켜야만 한다. 아직 어떠한 군대도 달성하지 못한 바로 이 과업을 급진화되고 확산된 지식경제의 수행자들이 성취해야만 한다.
포용적 전위주의의 인지적-교육적 요건과 법적-제도적 요건과 관련하여 진보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도덕적 생산문화에서의 변화는 그 초기 단계들을 벗어날 수 없다. 지식경제를 꽃피우기 위해서 다수를 위한 지식경제는 내가 앞서 기술했던 유형의 교육을 필요로 한다. 지식경제는 또한 생산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 형태를 배가시키는 시장경제의 제도적 법적 안배들에 대한 법적, 제도적 혁신들에 달려 있다. 금융이 수익 중에서 자신의 몫을 늘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신규 자산의 창출에 대한 기여도를 떨어뜨림으로써 지속적으로 사회의 생산적 의제보다는 금융 자체에 더 복무하는 한, 주요한 생산자산의 통제권은 자유로이 이동하는 자본의 대규모 공동자금을 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행사될 것이다. 우리가 생산자원의 분산적 접근 수단, 이른바 재산체제의 혁신을 이루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종속적인 임노동은 자유노동의 지배적인 형태로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 아래서 도덕적 생산문화의 필수적인 변화는 시작되기는 하겠지만 지속하거나 발전할 수 없다. 의식과 관행의 변화는 구조의 변화와 연계됨으로써 힘을 얻을 것이다.
신뢰와 재량의 수준을 제고할 필요는 간단히 말해서 더 일반적인 요구(기질과 기술을 포함해서 협력하는 능력을 강화하고 정교화하라는 요구)의 가장 긴급한 결론이다. 비록 제도들이 협력의 의향과 능력에 관련될지라도 그러한 의향과 능력은 순전히 제도적 설계의 피조물은 아니다. 협력적 능력은 사회적, 경제적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독자적인 요소이다. 협력적 능력이 허약하다면 어떠한 제도적 체제도 이러한 체제의 창안자들이 의도한 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협력적 능력이 강력하다면 협력적 능력은 다양한 제도적 체제들을 매개로 유익한 결과를 낳을지도 모른다.
마키아벨리, 해링턴, 몽테스키외, 비코와 같은 초기 유럽 사회이론가들은 모두 협력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점과 이러한 능력은 제도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을 의식하였다. 이들은 ‘정신’ 과 ‘덕’과 같은 항목 아래서 협력적 능력을 연구하였다. 마르크스, 뒤르켐, 베버, 짐멜의 이론에서 보듯이 후속적인 고전적 사회이론은 협력적 능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변형과 결과를 탐구할 기반을 결여하였다. 협력적 능력이 다양한 체제들의 역사를 관통한다고 말하려면, 이러한 이론적 전통이 부인하는 것(우리가 만들고 살아가는 체제보다 우리 안에 항상 더 많은 것이 존재한다는 통찰)을 전제해야 한다. 이러한 전통이 사망선고를 받고 난 다음 사회과학의 후기역사에서 협력은 “사회자본”(사회적 결속들의 상대적 밀도)이라는 위축되고 두서없는 형태 속에서 하나의 논제로 다시 등장하였다.
나는 협력체제를 상호작용의 관행적인 상호작용 형태들과 이러한 형식들과 연결된 태도들, 기술들, 가정들 나아가 이러한 형태들이 당연시하고 자신의 기반으로 수용하는 제도적, 법적 안배들의 집합체로 이해한다.
생산방식, 특히 가장 선진적인 생산방식의 발전에 대한 협력체제의 기여도라는 측면에서 볼 때 산출과 생산성에서 협력체제의 다산성을 판단할 두 가지 중요한 기준이 존재한다.
첫 번째 기준은 협력체제가 최대다수의 경제주체들의 재능과 역량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이들에게 생산적인 자원과 기회에 대한 접근기회를 어느 정도 확장하는 지이다. 일정한 집단들이나 일정한 유형의 개인들에게 도달하는 데 있어서 시장경제를 조직하는 방법 중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방법은 다른 방법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방식으로 도달한다. 그러나 시장경제가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유일한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심지어 다른 모든 경쟁적 형태들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접근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제조직 방식조차 여전히 결함을 가진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도 기회와 접근을 추구한다.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해법은 주어진 시장경제에서 (유일한 재산체제와 계약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포함해서) 시장의 유일한 법적 구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통찰일 것이다. 경제적 주도권의 분산에 대한 대안적인 제도적 방식들이 이제 동일한 시장질서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할 것이다.
협력체제의 개선을 판단할 두 번째 기준은 협력체제가 협력의 요건과 혁신의 요건 사이의 긴장을 완화시키는지 여부이다. 긴장의 완화는 협력에 대한 모든 접근에서 중요하다. 긴장의 완화는 혁신을 영구화하려는 생산방식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의 실천적 역량의 발전(경제성장과 생산성 증가는 그 일단에 불과하다)은 협력하고 동시에 혁신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혁신이 기술적인가 조직적인가 제도적인가 심지어 개념적인가에 상관없이 혁신을 정식화하고 집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혁신은 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모든 혁신은 기존의 협력체제를 교란시킨다. 혁신은 기존의 협력체제에 참여하는 집단들, 즉 서로 대립하는 노동력의 부문들, 서로 맞서는 노동자, 고용주, 투자자의 기득권과 확립된 기대들을 위협함으로써 체제를 교란시킨다. 혁신의 채택이 상대적인 집단적 위치들에 미치는 효과에서 보자면 모든 혁신은 불확실성을 야기한다.
기술적인 혁신조차도 사회 전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생산과정의 참가자들에게도 불확실한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결과들은 기계의 관념과 설계 단계에서, 누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기계를 사용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가정들의 형태로 이미 시작된다. 실제로 기술에 대한 최상의 사고방법은 자연적 요소와 재료를 우리의 이익을 위해 배치하면서 자연을 변형하는 실험과 협력체제를 재구성하는 실험의 결합을 구체화하는 것으로 기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의 생산방식을 다른 생산방식보다 더 선진적인 것으로 만드는 특성은 그 생산방식이 앞서 말한 두 가지 실험의 결합에서 다른 생산방식보다 낫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는 다른 실험의 수행에서 배운 교훈을 각각의 실험에서 구체화할 수 있다.
협력과 혁신의 요구들은 상호 간에 의존적이면서도 모순적이다. 그러나 두 가지 요구들이 철저하게 모순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러한 긴장의 완전한 해소를 결코 희망할 수 없겠지만, 어떤 협력체제는 이러한 갈등을 줄임으로써 다른 체제와 차이를 만든다. 예컨대, 어떤 협력체제는 불안정에 맞서 안전장치를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방식과 사람, 기계, 기타 자원의 혁신적 재조합을 억제하는 조치들을 분리할 수도 있다. 이러한 협력체제는 사회적 안배들의 가소성을 심화하면서 이러한 가소성이 공포와 불행을 야기하지 않도록 할 수도 있다.
내가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을 논의해온 과정에서 견지한 두 가지 관점(생산적 활동에 허용되고 요구되는 신뢰 및 재량의 향상과, 앞서 기술한 두 가지 기준에 의한 협력체제의 개선)은 중요성과 일반성에서 같지 않다. 전자는 후자의 표현이자 측면이다. 더 많은 사람들의 재능과 역량을 활용하고 혁신의 필요와 협력의 필요를 화해시키는 방향에서 더 전진하는 협력체제는 참여자들의 역량을 강화하는 데에서(재량) 기존 체제보다 더 나은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또한 참여자들에게 더 높은 수준의 상호적 취약성과 불확실성(신뢰)을 수용할 것을 요구하는 체제가 될 것이다.
그러한 체제는 변화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을 담대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보호와 기부재원의 배경 아래서 그렇게 요구할 것이다.
발전되고 확산된 지식경제의 도덕적 조건에 관한 이와 같은 비전의 중심에는 우리가 카이저에게 돌리는 것(타자와의 관계가 도구적인 것으로 그치는 이기적 교환의 영역)과 신에게 돌리는 것(칸트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우리가 타자를 목적 자체로 처우하는 연대에 대한 우리의 실험의 영역) 사이에 어떤 극명하고 무제약적인 모순을 부인하는 견해가 있다. 그것은 우리의 이기심과 야망이 조금이라도 완화된다거나 또는 가장 친밀한 삶의 영역에 관습적으로 유보해온 상호인격적인 참여의 희망을 우리가 경제에서 실현할 수 있다는 견해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식경제의 융성을 통한 생산력의 발전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생산의 도덕적 문화에서의 변화를 필요로 한다는 견해이다.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에 대한 이러한 논의가 도달하게 되는 문제는 우리가 도덕적 기반을 집단행동이이나 법적, 제도적 혁신을 통해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여부이다. 우리는 실제로 이를 발전시킬 수 있다. 지식경제의 도덕적 기반은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문화적 운명이 아니다. 우리는 그 누적적이고 결합적인 효과를 통해 이러한 변화에 기여하는 기획들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기획들을 경제활동에 대한 반향을 포함하여 경제의 외부에서 협력적 능력을 강화하는 기획, 협력 및 혁신의 필요와 영구혁신에 우호적인 협력체제를 향한 운동 간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기획, 협력체제와 그 배후의 제도적 안배들이 최대다수의 경제주체들에게 가장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가능성을 증가시키는 기획 등 세 가지 항목으로 묶어 보겠다. 첫 번째 기획은 문화와 정치에서의 변화를, 두 번째 기획은 노동시장에서 안정성과 유연성의 관계를, 세 번째 기획은 시장경제의 조직방식과 이러한 시장경제가 계약과 재산권을 통해 분산적인 경제활동의 조건들을 형성하는 방식을 각기 다룬다.
경제 외부에서 협력적 능력의 강화는 경제 내부에서의 협력적 능력의 강화에 이를 것이다. 일상적 경험의 전반적 기조는 사람들이 가슴에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을 가르칠 것이다. 특히나 세 가지 [경제외적인] 영역에서 협력의 장애물들에 대처하고 이를 극복함으로써 협력의 능력과 의지를 강화하고자 시도하는 사회혁신의 사례들을 이제 검토해보겠다. 각 사례들은 독자적으로 가치 있는 사회적 목표들 달성하는 데 일조한다. 그러한 사례들은 또한 경제활동의 도덕적 기풍에 예측 가능한 영향을 끼침으로써 경제 외부의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경험을 변화시킨다.
첫 번째 사례는 교육의 협력적 성격이다. 우리가 학교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학교들 사이에서도 교사와 학생들 간의 협력을 통해 가르침과 배움을 협력적으로 수행하고 청년들에게 상호 간의 교육에 대해 적극적인 책임을 공유하도록 자극한다면, 협력의 충동은 개인의 형성 과정 초기에 착근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사례는 앞서 내가 서술했던 행정적 포드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취지에서 공공 서비스의 비영리적 공급과정에 국가와 나란히 시민사회를 동원하는 것이다. 국가 외부의 시민사회는 국가의 행동을 분산시키기 보다는 폭력을 억압하는 경찰과 더불어 공동체의 자체 조직을 보완하면서 (서비스 제공자들 또는 사회단체들의 연합들을 매개로) 건강과 교육의 협력적 제공을 통해 대중과 시민사회 자체를 동시에 형성할 수 있다. 세 번째 사례는 신체 건강한 모든 성인이 생산체제 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가족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원칙의 일반화이다. 자발적인 혹은 의무적인 사회봉사 활동은 정책적 법적 구조틀을 수립하여 이러한 노력이 사회적 연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협력과 혁신의 필요 간의 갈등을 완화시키면서 양자 간의 상호의존성을 활용하는 안배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그러한 제도적 안배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제도적 안배들이 개념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모순에 해당하지 않는 어떤 과업을 성취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 제도와 관행들을 도전과 재구성에 실현 가능한 최대로 개방하면서 역량 향상적인 (경제적 교육적) 기부재원을 개인에게 제공하도록 경제적 불안정에 대한 개인의 안전장치들을 설계하는 과업이다.
이러한 과업을 제도적인 형태로 고려하기 전에 먼저 이를 심리적인 표현에서 생각해보자. 자신과 타인에게 유용한 존재가 되려면 개인은 항구적이고 마비적인 공포 속에 살아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은 또한 순응에서 벗어나도록 충격을 받아야만 한다. 개인의 습관적인 행동형태는 주변의 모든 변화에서 도전을 받아야만 한다. 그가 겪어온 경험이 굴성(屈性)을 보임에 따라 경험의 성질은 강렬해질 수밖에 없다. 습관과 순응은 생명력의 적들이다.
개인은 안전과 능력을 향유해야만 한다. 그러나 개인의 안전과 능력은 사회경제적 생활의 동결(凍結)을 조건으로 획득되거나 유지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개인의 안전과 능력은 일단 필수적인 보호이익과 권능의 안식처에서 확보되지만 개인을 둘러싼 사회와 문화가 변하는 것을 지켜보려는 의향의 이면임에 틀림없다.
개인으로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의 일부는 자신의 성격(경직되고 습관적인 자아 형태와 그 존재방식)에 대한 저항이며, 이러한 저항은 경화된 인성형태 안에서 조금씩 죽어가는 상황에서 우리를 구제한다. 그러나 사회와 그 경제 질서로서는 그 해법은 사회경제적 생활의 가소성(可塑性)-도전과 변화에 대한 개방성-에 대한 통제 요소들을 부과하는 과정에서 안전과 능력의 보증을 제외시키는 것이다. 가소성에 대한 일정 정도의 간섭은 피할 수 없다. 안전과 능력을 보장하는 권리와 편익들은 비교적 안정적이어야 한다. 즉 그러한 권리와 편익은 단기적 정치의 의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제외는 상대적인 제외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보증과 기부재원의 내용과 범위뿐만 아니라 이러한 보증과 기부재원을 최상으로 발전시킬 수단도 항상 논쟁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적 의제를 더 훌륭하게 확장하기 위하여 더욱 많은 것을 더욱 심도 있게 다루기 위하여 정치적 경쟁과 사회적 실험의 의제에서 어떤 것을 제외한다. 우리는 개인적이고 집단적인 정체성에 대한 의식과 함께 혁신이 초래하는 불안정에 맞선 안전에 대한 의식을 사회경제적 생활의 기성형태를 보존하는 데에 허비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는(경제, 사회, 심지어 주체의) 변화를 가로막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창조적이고 변혁적인 권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개별 노동자-시민의 안전장치와 기부재원을 발전시킨다.
이러한 방향에서 운동의 작은 단초적인 사례는 유연안전성이라는 딱지가 붙은 역사적 사민주의의 현대적 개혁이다. 유연안전성은 노동과 관련된 권리와 편익을 특정한 직업보유에 종속시키기보다는 완전히 휴대가능하게 하기 위해 그러한 권리와 편익을 다시 규정한 것이다. 유연안전성의 제안자들은 이를 오늘날 가장 부유한 나라의 통치 엘리트들이 가진 지배적인 기획(유럽식 사회보호와 미국식 경제적 유연성의 조화)의 일부로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유연안전성을 이와 달리 영구혁신의 충동을 내부화하는 협력체제들을 발전시키려는 더욱 광범위한 기획에서 하나의 계기이자 하나의 단편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일단 우리가 목표를 이렇게 다시 규정한다면, 우리는 두 가지 병행하는 기획들을 통해 다양한 수단으로 이 목표를 추구해야만 한다. 첫 번째 기획은 예컨대 출생시에 모든 사람에게 그가 삶의 전환점마다 융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회상속분, 즉 사회의 생산자산에 대한 지분을 제공함으로써 안전장치와 기부재원의 패키지를 발전시킬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의 기획은 변화의 기회로서 위기[전쟁이나 경제 붕괴]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에도 사회의 기성 구조를 단편적이지만 누적적인 재구성에 더 개방함으로써 경제생활과 정치생활을 동시에 재정비할 것이다. 이 두 가지 기획은 특정한 순간 또는 특정한 쟁점과 관련하여 충돌할 소지도 있다. 그러나 똑같은 비전이 두 가지 기획들을 자극하기 때문에 둘 사이에는 전면적인 모순이나 지속적인 모순은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의 어떤 단일한 조직도 만인의 잠재력이나 모든 경제적 실험 노선의 가치를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비인격적 옮음(right)의 어떠한 체계도 좋음(good)의 실질적 관념들 사이에서 중립적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인격적인 옮음의 체계는 공상적이고 위험한 중립성의 이상을 모순과 시정에 대한 개방성이라는 유용하고 가치 있는 목적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분산적 경제의 이상도 자연적인 형태를 갖고 있지 않다. 즉,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연적인 체계가 없음은 물론이고 시장질서의 확정적이고 전(全)목적적인 형태도 존재하지 않는다.
19세기에 가장 순수하고 비타협적인 형태로 발전하였고 그 이후 사법과 법리에서 중심적 지위를 결코 상실한 적이 없는 재산권과 계약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고전적 자유주의 법학]은 사유할 가치가 있는 모든 경제적 사고를 우리가 사유하고, 수립할 만한 가치가 있는 모든 경제적 기획을 우리가 수립할 수 있게 하는 자연적인 법률 언어가 아니다. 그러한 특정한 접근 방법은 제한적인 언어일 뿐이고 이러한 접근에 유리하게 동원된 중립성과 탄력성의 구실로 더욱더 제약적으로 되었다.
시장을 조직할 때 어떤 방식은 다른 방식보다 낫다. 어떤 방식들은 더 다양한 방법으로 생산의 자원과 기회에 대한 더욱 분산적인 접근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을 수 있다. 어떤 방식들은 또한 경제적 분산을 제도적이고 법적으로 형성하는 데에서 발명과 실험을 허용하기 때문에 더 나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장점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분산적 경제활동을 위한 수단의 조직에서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재산권과 계약의 체제에서도 다양성과 실험의 여지가 클수록, 시장 조직이 특정한 집단, 계급, 경제주체들 및 생산활동 직군들에게 기득권을 제공하게 될 개연성은 그만큼 작아진다. 각 재산체제(달리 말하면, 생산적 자원과 기회에 대한 분산적 접근을 조직하는 각각의 방법)는 서로 다른 유형의 행위자와 이해관계를 우대하는 경향을 보일 것이다. 개방성의 최적 보장은 시장근본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특정한 시장형태를 자연적이고 필수적인 형태로 성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많은 형태들(재산과 계약의 많은 체제들)이 동일한 시장경제와 동일한 법체계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하도록 허용하려는 것이다.
대체로 소수의 편익을 위한 단일한 시장형태의 구축 결과는 협력적 의지와 능력의 강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기업이나 경제에서 나아가 국가 전체 차원에서) 공통 대의의 함양에 대해 정당한 의구심을 던질 것이다. 연대의 이상을 위한 기본 쟁점은 언제나 그 구조적 가정들(분산적 활동의 기회를 풍부하게 간직한 경제를 조직하는 방법을 통해 연대의 이상이 당연시하는 것)을 확인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다.
연대 방침의 해악은 불변적이고 심지어 인식조차 안 된 제도적 틀에 부여된 후광으로 복무해온 것이다. 협력의 요구는 갈등을 완충시키는 자극제가 된다. 예컨대, 협력의 요구는 특히 20세기 양차대전의 간전기 국면에서 유럽 정치와 가톨릭교회의 사회 교리에서 발생하였다. 즉, 기업과 경제부문 전체에서 노동자와 소유자의 협력을 촉구하는 방식은 계급갈등을 국민적 통합과 사회적 조화로 전환하려고 노심초사하는 국가의 시야에서 노동의 전투성과 사회주의적 선동에 맞서는 무기로 봉사하였다. 그러한 방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발전되고 확산된 지식경제가 의존해야만 하는 도덕적 사회적 기반을 강화시키기 보다는 약화시키는 결과를 발생시켰다.
협력체제의 향상에서 수용할 만한 유일한 형식은 이러한 오류를 회피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오류를 회피하기 위해서 협력체제는 시장경제의 유일하고 배타적인 조직 방식에 의해 포획되는 상황에 저항해야 한다. 그러한 저항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협력체제는 분산된 경제적 활동 및 생산적 자원과 기회들에 대한 분산된 접근이 동일한 시장경제 안에서 실험적으로 공존하도록 구조화하는 대안적 방식들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나는 이러한 주장이 시장의 제도적 재구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지금 논의해 보겠다.
다자주의는 최근 몇 년 동안 잊혀졌던 주제이었습니다. 다자주의보다는 각국의 이해에 기초하여 형성된 다극화된 오늘날의 글로벌 환경속에, 국가 간의 경쟁에는 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최근 주요 국가간에 국제법인세의 개혁에 대하여 이루어진 글로벌 합의는 다자주의가 죽지 않았다는 매우 반가운 증거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충분하지 못합니다. COVID-19 대유행기간 동안에도 세계화는 계속 진행되었지만, 예전에 비하여 여전히 불평등이 심화되고 시민들간에 고립감이 증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의존적 상황은 어느 때보다 갈등적입니다. 백신개발과 데이터 그리고 기술표준을 포함한 소프트파워는 무기화되었고, 모든 것이 정치적 경쟁의 수단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상도 점점 자유를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정치 및 경제 시스템을 시민들에게 가장 잘 제공할 수 있는 민주주의 자체가 부정적인 논쟁의 치열한 공방으로 인하여 위협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개방경제, 성과의 공유(positive-sum outcomes), 사회정의와 연대에 기반하여 예측이 가능한 세계를 기대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의 퇴치에서 기후변화의 대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인류 모두가 겪고 있는 도전과제는 오로지 글로벌 협력을 통해서만 처리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따라서 EU는 인류 모두에게 겉보기에 무미건조하지만 기술적이며 관료적인 개념이 지닌 실제적 이점을 보여주기 위해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를 되살리는데 계속해서 앞장서 나갈 것입니다.
한편, ‘다자간 참여’를 거부하는 대안인 ‘나홀로 해결’ 방식은 한마디로 백신에 대한 접근성의 감소, 기후대응에 대한 불충분한 조치, 악화되는 안보위기, 부적절한 규제가 남발되는 세계화, 그리고 글로벌 수준의 불평등 증가 등을 의미합니다. 아무리 강한 국가라도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현재 G20 의장(주최)국인 이탈리아는 현안적 과제에 더하여 다자주의를 의제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EU가 다자주의에 대한 요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모든 국가들이 다자주의를 실제의 행동으로 실천하는 조건에서, 다자주의가 모두를 위한 제도임을 입증해야 합니다. 때마침 논의를 시작한 글로벌 조세협정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7월초 G20 재무장관들이 승인하고 132개국이 지지한 이번 협정의 내용은 다(초)국적기업들에 대해 최소 15%의 글로벌 최소세율을 설정하고 이들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해당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공정한 세계화를 향한 역사적인 조치이자 효과적인 다자주의를 위한 획기적인 성취로 평가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개별정부 단위에서 개인의 탈세를 방지하기 위한 중요한 조치를 취했습니다. OECD에 따르면 국가 간의 세금정보 자동교환으로 2009년에서 2019년 사이에 G20 국가의 추가세수로 950억 유로(1,120억 달러)의 수입을 올렸고, 조세피난처에 숨은 예금은 34%가 감소했습니다.
그러나 규모가 매우 큰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 행위를 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OECD는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로 인해 매년 세계적으로 1000억~2400억 달러의 세수손실이 발생하며 이는 전체 법인세 수입의 4~10%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산합니다. 더욱이 현재의 국제적 법인세시스템은 100년 전에 설계된 것으로 오늘날처럼 세계화되고 디지털화된 경제와는 매우 동떨어져 있습니다.
EU는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국제적인 협력을 통한 대응조치를 마련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 왔습니다만, 최근의 돌파를 가능하게 한 것은 지난 1월 초에 출범한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건설적인 참여였습니다. 이는 과거 매우 부정적이었던 미국이 국제적 다자주의의 비전을 지지하기 위해 복귀했다는 놀랍고 반가운 신호였습니다.
현재로 새로운 법인세도입을 지지하는 132개 주권국가들의 경제규모는 전세계 GDP의 90%를 차지합니다. 이번 협정자체가 다국적기업들의 조세회피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진전이며, 극소수의 부유한 승자와 수십억 명의 패자를 배출하여 왔던 법인세율의 바닥을 향한(rush to bottom) 국제적인 경쟁에 끝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사회는 규칙의 힘에 대한 믿음을 되찾기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든 국가가 전염병과 싸우는 비용을 공히 부담하고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투자를 함께 동원해야 하는 시기에, 이번 협정은 각국정부의 수입을 높이고 재정을 안정적으로 이끌 것입니다. 이에 더하여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불평등이 증가하는 시기에, 새로이 공정성의 확대기반을 제공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최근의 조세협정은 다자주의적 행동이 보다 공평한 형태의 세계화를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향후 인류사회는 백신기술에 대한 접근 및 기후위기의 대응에서 데이터 보안 및 기술표준에 이르기까지 여러 영역에서도 유사하고 효과적인 국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대유행의 시기에 경험하고 있는 전염병의 중요한 교훈을 무시한다면 미래세대는 우리를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 인류 모두를 위한 진정한 다자주의 의제를 실현하려면 현명한 전략과 대담한 전술이 필요합니다.
7월 첫 주말, 미국의 하늘이 전설적인 자유와 민주주의(독립기념)을 축하하는 불꽃놀이로 장식되고 있는 동안, 공화당이 개별주 단위에서 미국의 선거제도를 엉망으로 만드는 법안을 추진하는 한편에 연방의회에서는 선거권리를 확대하려는 ‘시민참여법 – For The People Act’ 개정을 필리버스터로 방해하는 요상스런 광경들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은 어렵습니다. 편파적인 견해와 신화(잘못), 뒷이야기와 의식절차들로 뒤범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 동안 저는 외국의 민주주의 학자들에게 미국의 정치(선거)제도를 둘러싼 양당의 싸움이 그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 보았습니다만, 돌아온 대부분의 답변은 매우 암울한 내용이었습니다.
칠레의 정치학자 David Altman은 다음과 같이 답변합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실제는 미국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매우 동떨어져 있다고 확신합니다. 미국시민들이 생각하는 정치제도와 실제로 작동하는 현실의 모습에는 인지적인 불협화음이 존재합니다.”
민주주의 ‘다양성’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스웨덴의 정치과학자인 Staffan Lindberg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제가 정말 걱정하는 것은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민주주의를 잘못 운용하여 피해를 입은 뒤에 민주주의를 포기한 많은 국가들의 경우들과 매우 유사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저는 Erdogan 통치 초기의 터키 모습, 헝가리의 Orban 정권, 인도의 Modi 정권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국가들의 이름을 계속해서 나열할 수 있습니다.”
나는 린드버그가 제시한 국가들 명단의 길이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통상 미국은 이러한 비판에 대하여, 결과적으로, 그리고 종종 무시하는 방식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대부분의 경우 집권세력은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권력과 인기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미국에는 여전히 많은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집권하고 있는 민주당은 적어도 전국적으로는 과반수를 가지고 있으며 기득권을 위해 싸우지는 않습니다. 민주당의 골치거리인 Joe Manchin 상원의원의 타협제안(당파적 게리맨더링 금지, 유권자 자동등록, 15일의 조기 투표 보장, 투표권법 재활성화, 선거일 휴일제)조차도 괄목할만한 선거권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며, 1960년대 이후 미국의 민주주의를 매우 확장하는 법안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저와 같은 자유주의 전문가들은 종종 과거로 미끄러질 위험에 주의를 집중합니다. 그리고 이는 실제적 상황입니다. 정의를 위한 브레넌 센터( Brennan Center for Justice)는 1월 초부터 5월 중순 사이에 최소 14개 주(공화당이 다수인)에서 투표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22개의 법률을 제정하여 “미국시민들의 투표권 행사를 제약하며 유권자 권리를 억압하는 최악의 탄압법규들을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3개 유권자단체들의 별도보고서에도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올해 14개 주에서 제정된 24개 법률은 주의 입법부가 “선거행정을 정치화, 범죄화 및 간섭할 수 있도록 허용합니다.”
그러나 반대의 상황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브레넌 센터는 또 다른 14개 주에서는 유권자 접근성을 확대하는 법안들이 최소 28개 이상 제정된 것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반된 이야기는 일방적인 과거로 회귀가 아니라 양극화입니다.
“투표와 관련하여 미국은 두 개의 지역으로 사회가 분리되고 있습니다.”“Give Us the Ballot : The Modern Struggle for Voting Rights in America”의 저자인 Ari Berman 은 필자가 초청한 최근의 팟캐스트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 줍니다 “당신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에 따라, 일부 장소 즉 푸른색의 장소(민주당이 다수인)에서는 투표하기가 정말 쉽습니다. 반면에 당신이 붉은 주(공화당이 다수인)에 살고 있다면 투표하기가 정말 어렵거나 더욱 어려워집니다.”
외국 관찰자들이 확실하게 지켜보고 있는 것은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다민족이 처한 상황이 얇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꽃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라고 자랑하고 있으며, 이는 기술적인 의미에서 분명한 사실(독립선언문에 기초한)입니다. 그러나 여성과 소수민족의 투표권을 전제조건으로 삼는 현대적인 민주주의 정의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세계에서 매우 어린 신생의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Lindberg는 “민주주의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저에게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우스꽝스럽습니다. 적어도 60년대 시민권운동 이전까지의 미국을 민주주의 국가라고 평가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은 포르투갈이나 스페인과 함께 이제 막 시작하는 새로운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정치제도에 대해 정확하게 지적한 것입니다. 민주주의로서 정치참여를 중시하는 현대사회는 미국이 지니고 있는 제도를 채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선거인단 제도는 저의 관점으로는 신석기시대의 제도입니다. 전세계의 모든 민주주의 학자들을 이에 놀라고 있습니다”. “미국의 투표일을 화요일로 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Altman이 필자에게 묻습니다. “미국은 시민들에게 투표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지 않습니다.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투표할 시간을 주도록 요청해야만 합니다. 이상해요. 여기에는 돈의 역할이 작동합니다. 그것은 금권민주주의 체제와 매우 비슷해 보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특정 유권자들을 침묵시키고 선거행정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정치화하려는 공화당의 지속적인 노력은 공정한(?) 경쟁으로 빛나는 과거로부터의 일탈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미국의 과거인 평균적(경험적)인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과거의 역사를 배경으로 삼아 공화당의 노력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Lindberg는 “신생 민주주의는 허약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막 시작하는 민주주의가 오래된 제도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만약 미국의 정치제도가 민주주의로 간주될 수 없을 정도로 나빠진다면, 그것은 미국역사의 과거적 관행으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전부가 아니라 일부의 시민에게는 자유권이 주어지는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닐 수 있습니다.”라고 지적합니다.
투표참여 여부의 선택과 참여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법은 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부정입니다. 불가리아의 자유전략센터(Center for Liberal Strategies)의 의장인 정치학자 이반 크라스테프는 “이는 주권자인 시민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정부를 선출하는 방식이 아닙니다. 반대로 정부가 원하는 바대로 자신들이 선호하는 시민들만 투표에 참여하도록 선택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시민권을 부여할 것인지, 누구에게 투표권을 허용할 것인지, 누구를 투표에서 제외시킬 것인지를 정부가 미리 정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크라스테프의 주장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의 역사를 바탕으로 민주주의 국가들은 종종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다수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한 예는 민족국가라는 역사적 대세입니다. 유럽에서는 다수가 하나의 민족으로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인종과 종교가 매우 복잡하게 뒤얽혀 있습니다.
민주적 다수에 대해서는 문자 그대로 명백한 정의가 있습니다.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함께하는 유권자들의 연합으로 다수를 이루어야 합니다. 역사적 과반수와 달리 선거인 과반수는 선거를 치르는 해마다 변경될 수 있으며, 실제로 변경됩니다.
종종 상기의 두 가지 경우수가 서로 수렴합니다. 대체로 선거인 다수는 역사적 다수를 반영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미국에서는 대립적 갈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선거인 다수가 상호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선거인 다수가 항구적인 다수를 유지하려고 합니다.”라고 그는 내게 말했습니다. 크라스테브는 유고슬라비아 전쟁 중에 제기되었던 유명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민족이 우리나라에서는 소수가 될 수 있는데, 왜 나의 민족이 당신 나라에서 소수로 남아야 합니까?”
언젠가 위스콘신 의회의 공화당 의원인 Robin Vos가 “만약에 매디슨과 밀워키를 위스콘신 주의 선거지역에서 제외한다면 우리는 명백하게 과반수를 차지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는 놀랍도록 분명합니다. Vos의 상기 발언은 충동적이지만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공동체의 주요 권력은 포함과 배제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누가 제외할 사람을 결정합니까?”
저는 공화당의 선거제도에 대한 공격을 비난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주요 정당 중 하나가 ‘민주주의 자체가 문제’라는 견해와 이러한 위협을 중화시키려는 의제를 개발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두려운 일입니다. 저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파멸고리”라고 설명했습니다. 투표권을 훼손시키며 권력을 얻는 정당은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여 유권자와 미래를 위협하며 선거를 방해하려 합니다.
다행히 상기 언급만이 유일한 전망은 아닙니다. 점점 더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상황의 발전이었습니다. 그리고 필리버스터에 대한 간단한 내용변경으로, 1965년 투표법 이후 무엇보다 미국의 선거제도에 일층 개선된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이의 위협을 정확하게 인식합니다. 이들은 진정한 민주주의에 훨씬 가까운 국가로 변해갈수록 자신들에 대한 지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선거의 결과 자체를 거부하고자 합니다.
출처 : 뉴욕타임즈(NYT) on 2021-07-01.
Ezra Klein
2021년부터 뉴욕타임즈 고정 칼럼리스트로 참여하고 있으며, 이전에는 Vox의 편집장을 역임했으며 팝캐스트“The Ezra Klein Show를 운용하고 있었다. “Why We’re Polarized – 미국이 양극화된 원인”의 저자이기도 하다
나는 “동학을 하는” 사람이다. 꽤 오래전부터 한살림생협운동이나 그 근간의 하나인 생명평화운동을 하시는 분들과 어울리면서 천천히 물들기 시작했고 몇년전부터는 소위 ‘개벽파’에도 발을 담게 됐다. 그래서 지금도 조금씩 계속 공부를 하고 있다. 요새 도올선생이 유튜브에 올리는 동경대전 강의도 구독중이다. 한편으로 보다 실천적이고 주체적인 (탈중화) 관점에서 이를 비판적으로 사유하는 전주에 계신 강주영 선생의 해설도 따라가고 있고, 과거 조선성리학 연구자였고, 지금은 동학과 많이 통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고마한국말철학’을 만들어 나가는 최봉영선생의 이론도 주목하고 있다(* 이미 출간된 서적 외에 페이스북 ‘묻따풀학당’과 유튜브 ‘디자인학교’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이판’에 계시는 어떤 분들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과도한 민족주의 정서이고, 이게 가장 부정적으로 표출되는 경우가 유사역사학과 유사제국주의이다.
나는 도올선생도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장문화醬’에 대한 강의에서도 그런 점이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도올선생은 한국의 장문화를 “물과 소금, 콩”이라는 세가지 재료가 “햇볕, 공기, 미생물”이라는 자연환경과 시간의 흐름 속에 빚어지는 과정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메주를 겨우내 온돌방에서 띄운 후에 물, 소금과 함께 한독에 집어 넣어두면 간장과 된장으로 갈라쳐 나온다. 역시 메주에 약간의 재료를 첨가하여 묵히면 다시 고추장이 된다. 그 관계와 형성과정이 참으로 절묘하다. 또, 한국의 집집마다 갖춰진, 이런 장이 만들어지고 보관되는 장독대를 예전 어머니들이 정안수 한사발을 내어놓고 천지신명에게 기도하는 신성한 공간으로 설정하였다. 이는 한국인들이 동아시아의 샤먼전통인 하늘과 통하는 의식을 지켜내려오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그들의 먹거리라는 생활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과 맞닿아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콩(즉 대두)은 동북아시아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도올선생은 두부와 같이 콩으로 만들어진 식물성 단백질 식품과 이런 장이 되는 발효식품이 동아시아인들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우수성과 함께 설명했다. 나는 이 강의가 결과적으로 대단히 훌륭한 영성 메타포어를 가진 생활문화의 묘사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사한 식문화를 가진 일본이나 중국과 한국을 비교하는 부분이다. 도올선생은 특히 한국 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한다. 나는 앞에서 설명한 음식문화나 종교문화에 대해서 공부해 본 바는 없지만, 그 단순하고 간결한 구조가 이러한 문화의 원형에 가까울 것이라는 짐작 정도는 할 수 있다. 도올선생은 일본과 중국에는 이러한 구조가 없는 대신, 복잡한 장문화가 있고, 이것은 “원래 이런 음식문화 철학의 본질을 벗어난 것이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나는 이런 설명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나는 도올선생과 마찬가지로 일본과 중국 양쪽 다 생활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어떤 장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모두 간장을 가지고 있고, 그것도 상당히 다양한 종류와 맛을 가진 것들이 있다. 또, 일본의 경우 된장과 유사한 미소가 있고, 간장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이나 가정마다 자기만의 비방으로 다양하고 풍부한 맛을 갖도록 만든다. 중국의 경우 된장이나 미소와 같이 전국적으로 압도적 대표성이 있는 한종류의 paste형 발효장은 없지만, 역시 지역별로 다양한 맛을 내는 콩이나 밀을 주재료로 한 발효장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쓰촨 청뚜 피셴의 두반장豆瓣酱이고, 그외에도 달거나 매우 짠 다양한 지역별 황두장黄豆酱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밖에 광둥지역에 가면 두시豆豉처럼 전혀 다른 질감과 식감을 가진, 콩발효 양념도 존재한다. 다만, 일본이나 중국 모두 맵고, 짜고 달콤한 고추장은 없다. 청면장甜麵醬이 살짝 비슷하긴 하다. 또, 관점에 따라서 콩과 고추가 함께 들어간 두반장을 고추장에 가깝게 볼 수도 있다. 중국에는 대신에 고추를 사용한 다양한 발효장이 있기는 하다. 이런 다양한 매운 맛을 표현하는 마라麻辣,샹라香辣,쑤안라酸辣와 같은 역시 다양한 어휘도 존재한다. 중국에는 음식 매운맛으로 유명한 지역이 여럿 있는데, 내 경험에 의하면 이 지역 사람들은 같은 매운맛이라고 해도 한국의 고추장의 톈라甜辣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이건 한국 사람 모두가 훠궈나 마라탕맛을 즐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때문이다.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요는 한국의 장문화와 또 다르게, 일본과 중국은 자기들의 지역 특성과 재료에 맞게 다양한 장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삼국의 장문화를 비교해서 우열을 논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오히려, 제3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제조기술적인 면이나 재료와 맛의 다양성 측면에서는 일본과 중국쪽이 우월하다고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그때문인지, 한국사람들도 이제 된장찌게를 끓일 때, 재래식 된장과 미소를 반반씩 쓰는 경우가 많다. 조선간장과 왜간장도 어느쪽이 더 맛있는 것이 아니라 용도가 다를뿐이다.
앞서 말한대로, 나는 도올선생의 메타포어적 해석을 매우 좋아하고, 이런 장문화가 아마도 동아시아 장문화의 원형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설사 이 상상이 맞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장문화의 원조이고, 중국과 일본 민족은 그것을 전수 받은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근거가 부족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혹여 한국의 장이 원형에 가까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중국이나 일본의 장보다 더 좋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다. 심지어는 장독대와 하늘숭배 신앙조차도, 그냥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문화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게 동아시아의 하늘숭배나 샤먼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고 입증할 방법도 없다.
정리하자면, 이런 설명은 재미있고 의미도 있지만, 해석 자체가 훌륭한 것이지. 이것이 우리 민족문화의 상대적 우월성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도올선생은 동 강의에서 동이족과 중국의 고대왕조인 은상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다시 유사역사학적 주장을 펼쳤다. 이밖에도 작년에는 노자에 대한 연강에서 노자가 (고)조선 사람이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해서 사람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만번 양보해, 노자가 조선 사람이라고 치자. 그의 국적이나 출신종족이 그의 도가사상의 위대함을 더 빛나게 하거나 가릴 수 있는가 ? 공자는 또 어떤가 ? 이 사람들의 race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축의 시대’라는 표현은 사기에 불과한가? 도올선생이 중화문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할말이 많지만 여기까지만…… )
나는 도올선생에게 존경심을 품고 있고, 그의 동경대전 강의를 계속 듣고 있는 입장에서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의 반중감정 분위기에 대해서 곰곰히 생각하면서, 도올이나 동학을 하시는 분들 중 상당히 많은 분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은 이런 사고방식이 작금의 사태와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이런 잡글을 쓰게 됐다.
이것은 소위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우선 여기서 문화공정에 대해서 분명히 이야기해둘 것이 있다. 당연히 이런 공정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김치나 한복과 같은 주제로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들이 다투는 가운데, 한국의 미디어나 유튜버들이 만들어 낸 신조어이다.
그런데, 나는 동북공정과 문화공정이라는 단어가 연결되는 지점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다. 듣기로 지금 반중감정의 코어세력은 2~30대 청년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동북공정은 10년도 전인 2010년 이전에 논란이 됐던 일이다. 동북공정의 핵심은 한반도 북부와 현재 중국의 동북지역인 만주에 존재하던 고대 왕국인 고구려의 역사적, 민족적 귀속여부에 대한 논쟁이다. 이 문제의 기원은 한중수교 직후,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의 동북지역에 소재한 고구려 역사유적을 탐방하게 된 사실에 있다. 그들은 이 유적지와 중국 동북지역에 대한 일종의 ‘심리적 소유권/영유권’주장을 하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이 유적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한 한중간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하필이면, 직전 강릉단오제의 문화유산 등재때문에 중국도 자국 여론에 대해 민감해진 상황이었다. 또, 결정적으로 중국내의 소수민족인 조선족 동포들의 존재가 일종의 뜨거운 감자로 작용한 탓도 있다. 그런데,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현재 중국 정부는 이 프로젝트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도 않고, 그 결과 일반인들의 뇌리에서는 거의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당시에 문제가 됐던 소수민족 분리독립운동과 같은 극단적인 흐름이 이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궁금증은 이거다, 지금의 2~30대 청년들은 과거의 동북공정에 대해서 정말로 분노하고 있을까 ? 만일 그렇다면 그들이 고구려라는 고대왕국, 그리고 그 왕국이 위치했던 중국의 동북지역이나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해서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까? 또, 지금도 거기에 사는 조선족 동포들이나 북조선 주민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 내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들은 실리추구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통일조차 관심이 없다고 한다. 하물며, 기후가 춥고 황량하며, 경제적으로 낙후된 중국의 동북지역에 대해서 관심이 있을 턱이 없다. 부연하자면 그 지역은 한족과 조선족을 막론하고 중국의 젊은이들도 매력을 잃고 점차 떠나가는 곳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국의 청년들이 실질적으로 동북공정에 연연해야할 이유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나는 동북공정의 위협이라는 실체 자체가 매우 과장된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얼마전 한 매체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한국 청년들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코비드, 미세먼지, 한복, 김치 논쟁 같은 조금 더 자기 삶에 관계된 구체적인 문제들이지, 동북공정에 기댄 한국의 굴절된 민족주의 심리는 아닐 것 같다. 그럼 과연 누가 동북공정을 문제삼고 있는 것일까 ?
유감스럽게도 나는 ‘동학하는 분’들처럼 나와 동류인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적지 않으신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됐다. 그래서 위에 도올선생의 강의의 예를 들어서 이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게 왜 문제인지, 그리고 어떤 부분이 동학정신과 어긋나는지 조금만 더 설명해보고 싶다. 일단 하나의 가설을 이야기해보자. “동학의 사상은 이미 180년전에 출현했지만, 매우 근대적인 동시에 근대를 초극할 수 있는 생명평화사상의 씨앗을 품고있다. 이 사상은 또 단순한 공담이 아니라, 한때 한반도 주민중 1/4 이상의 동의와 수십만의 희생이 따른 실천을 통해 동학혁명과 3.1운동으로 이어졌다. 이후에는 아마도 한국 민주화 운동의 배경중 하나가 되어, 여전히 촛불시민정신으로 계승되고 있다.”
여기에 두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동학사상은 구체적으로는 천도교, 원불교 등의 다양한 현대 종교로 진화하거나, 생명평화와 한살림생협 같은 실천운동으로 이어졌으나, 아직 동서양의 고전사상이나 서구의 진보적 근현대사상들처럼 정교한 이론체계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이건 당연하다. 수백년 수천년 동안 여러 국가의 수많은 지식인과 천재들이 참여하여 만든, 즉 인류의 지혜가 농축된 사상들과 한국이라는 특정 민족, 그중에서도 아주 소수만이 공을 들여온 사상의 정교함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오히려, 지금부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디테일을 채워갈 필요성이 존재할 뿐이다. 두번째 문제는 사상적 계보이다. 동학에는 동아시아의 전통 사상과 근대 천주교, 기독교의 영향 외에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이 있는가 ? 이걸 찾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통일신라시대의 풍류도, 더 거슬러 올라가 ‘하늘’ 사상이나 고대 동북아의 샤머니즘에서 기원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노력 자체는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유사역사학이 고개를 들이민다. 아니 거기까지 나가지는 않더라도, 뭔가 남들과 다른 뛰어나고 근사한 ‘그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기대, 또 우리는 그런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낸 남다른 민족이어야 한다는 ‘선민의식’이 싹튼다. 그리고 그 발원지가 바로 만주지역이다. 그래서, 그 민족의 성지는 언젠가 “수복해야 할 고토”가 된다.
사실, 나는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지 잘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최봉영선생이나 강주영선생의 강의를 즐겨 듣는 이유는 두분 모두 위에서 말한 무리를 범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잘 풀어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도올의 강의도 대부분의 내용은 그러하다고 믿는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동도들이 ‘그것’에 대한 확신이나 이에 기반한 선민의식을 좀처럼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는 느껴진다.
그래서 묻고 싶다. 유대교와 기독교/천주교의 차이가 뭐라고 생각하나? 내가 묻고 답하자면, 전자는 원시적인 고대의 한 소수민족종교에 불과하고, 후자는 특정한 역사적 맥락속에서 이를 세계 어떤 민족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보편화한 위대한 고등종교라는 차이가 있다. 그래도 “유대인들이 세계를 지배하니까” 유대교가 기독교 못지 않게 위대하고 훌륭한 것이라고 생각되나? 그래서 그 신념에 근거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행하는 비윤리적인 폭격 행위도 동의가 되나?
한가지 더 묻고 싶다. 내가 앞서 이야기한 가설, 즉, 근대를 초극할 가능성이 있는 생명평화사상이 있다고 하자. 이게 ‘고토수복’같은 침략적 사고방식이나 동북공정에 대한 적대감으로 드러나는 반중 혹은 혐중감정과 잘어울리는가?
길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위의 가설이 맞는 것이고, 그게 정말 훌륭한 사상이라면 이는 결국 추상화되고 보편화되어야 한다. 또, 한편으로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모두 민족감정의 때를 벗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애써 ‘전파’하고 ‘전도’하려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바깥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공부하고 싶어할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이 광주사태와 한국의 민주화가 궁금해서 한국에 와보고 싶었던 것처럼.
한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다. 동학하는 분들이 믿는 일종의 백여년전 예언 같은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게 수운과 해월 어떤 분의 말씀이었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개벽이 일어나면 동학하는 이들이 중국에 와서 이를 전파한다…” 와 비슷한 내용이었던 것으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19세기, 비록 망해가는 청왕조였지만, 조선인들에게 중국은 여전히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리라, 즉, 동학이 조선을 넘어 세상을 구할 거라는 어떤 예지로 해석하고 싶어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 동학이라는 사상이 가장 우수하니,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인 일본과 중국에…”라는 생각을 암암리에 많은 분들이 품고 있는 것 같다. 요새 K-XXX 열풍에 올라타고 유행하는 한국문명론이 이런 생각과도 통한다. 나는 이런 생각에 반만 동의한다. 처음의 가설로 다시 돌아가보자. 지금 많은 한국인들이 촛불시민정신으로 나타난 한국의 민주주의를 아시아에 전파하고 싶어한다. 2019년의 홍콩사태, 2021년 미얀마 쿠데타가 발생한 후, 이런 주장이 더욱 호응을 얻고 있다. 앞서 나는 동학 사상이 보편화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아마도 다른 나라 사람들도 들여다보고 자신들이 배울 것이 있는지 살필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상상하는 바람직한 미래는 일본이든 중국이든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동학을, 즉 자신의 근대초극사상을 발견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중국의 경우 백년전, 량슈밍이라는 사상가가, 중국의 전통사상을 근대화할 것을 꿈꾼 적이 있다. 그는 단순한 사유에 그치지 않고, 그 사상에 기반해서 사회를 바꾸려고 진력했다. 마치 동학의 선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를 향촌건설운동이라고 하는데, 결국 향촌혁명파, 즉 중국 공산당에게 역사의 무대를 내주고 말았지만, 지금도 그 후예들이 사회운동으로서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사상적 측면은 100년전 그 상태에 멈춰있고, 권위주의 일당 독재국가라는 닫힌 체제의 특성상, 자유롭게 발전해 나가는데 한계를 보이고 있는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현대화할 수 있는 과거의 사상적 자원이나 사회개혁의 열망이 꼭 부족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다시 진도를 나가지 못할 이유도 없다. 아마 일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고 그들에게 사상을 전파한다기보다는 서로 배우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이 모두에게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그게 150년전 기독교와 민주주의가 대포와 함께 들어와 근대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강요된 것과는 다른, ‘새로운’ 우리들의 방법과 문명이 아닐까?
미국의 외교정책 커뮤니티에서 여전히 광범위한 합의를 이끌어내는 아이디어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 자유세계의 지도자이어야 하며 앞으로도 그런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가 클린턴, 부시, 오바마 시대에는 정치전면의 중심에 있었고,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면서 잘못된 정보와 일관성없는 행동을 보이는 동안(어느 정도 침묵하긴 했지만)에도 대체로 같은 입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이든 신임 대통령이 “미국이 돌아왔다”고 말하고 그의 외교정책팀이 국제사회의 권위주의체제의 흐름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진영을 단결시키려 노력하면서 설정한 목표도 미국이 세계의 지도국가로서 리더십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고유한 위치에 있다는 것에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믿음을 반영합니다 .
이러한 견해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주장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연코 어떤 강대국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결정적인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는 충분한 경제적 또는 군사적 힘을 갖고 있지 않으며(어떻게 정의하더라도),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도 그러한 리더십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습니다. 대체할 그럴듯한 대안이 없다는 것만으로는 일방적인 리더십을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미국이 확실하게 이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자유세계”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과연 “리더십”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정의해야 합니다.
분명히 “자유세계”라는 용어는 개인의 권리, 관용,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한 책임정치, 법치, 표현의 자유 등과 같은 우리에게 친숙한 자유주의 제도를 시행하는 국가를 의미합니다. “리더십”을 행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모방하고 싶어하는 매력적인 모델이거나 현명한 정책을 선택하고 이를 통하여 성공을 구현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를 따르도록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대답해야 하는 ‘첫 번째 질문’은 미국이 다른 자유주의 국가들에게 좋은 모델인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특히 외교정책과 관련하여 다른 국가들이 신뢰하고 따라오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입니다. 결론적으로 두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첫 번째 질문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미국은 과연 다른 자유국가들이 본받아야 할 매력적인 모델입니까? 중도우파적인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연례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서 2017년 미국을 ‘완전한 민주주의’에서 ‘결함있는 민주주의’로 한 단계 낮추고 이후로 계속 그런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매력적인 모델이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판단의 근거는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투표율 순위는 겨우 세계 26위에 불과하고 정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는 역사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전체 미국인의 25%와 공화당원의 53%는 트럼프가 2020년 선거에서 승리했으며 그가 “진정한 대통령”이라고 믿고 있으며, 전체 공화당원의 거의 절반은 일부 개별 주 의원들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2020년 대선의 승리를 트럼프에게 돌리려고 시도했던 것이 적절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선거결과에 대한 거짓말을 거부하고 바이든의 승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 리즈 체니(Liz Cheney)하원의원을 동료인 공화당의원들이 공화당의 지도부에서 해임시켰습니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1월 6일 국회의사당에 대한 폭력적인 공격을 조사하기 위한 독립위원회의 구성을 방해하고, 일부는 의사당의 공격을 관광방문차 “정상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는 “평화로운 애국자”로 칭찬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트럼프는 의사당 점거자들을 “평화로운 사람들 ”과 “애국자”라고 묘사합니다 .
11월 이후 공화당이 장악한 17개 개별주의 의회는 투표절차에 새로운 제한을 부과했으며, 지난달에는 트럼프시절 대법원에 임명한 3명의 대법관이 다른 보수파와 합류해 1965년 선거(투표권리)법을 더욱 약화시켰습니다 .
정치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를 “자유의 땅”이라고 부르고 싶어하지만, 미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투옥률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러시아의 두 배 수준입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지난달에 공개된 사회발전지수에서 미국이 28위의 수준에 머물고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더 많은 내용이 필요하세요? 미국의 조세시스템은 광범위하게 퍼진 사기행위에 의해 손상되었고 미국은 선진국가군에서 가장 열악한 경제적 불평등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바로 미국 모기지시장의 붕괴와 함께 미국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로 인한 전세계적인 공황은 그냥 발생한 자연재해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만, 부적절한 규제 및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부패한 산물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미국의 국가안보기관은 비밀유지라는 권한에 중독되어 있으며 상응한 책임요구에 대해서도 똑같은 알레르기를 보입니다. 고위관리들은 고문의 사용을 승인하고, 미국시민에 대한 불법적인 감시를 지시하고, 자신들의 측근과 애인에게 기밀정보를 제공하고,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행세하면서 진실에 대해서는 FBI에 거짓말을 늘어 놓습니다. 군대 지휘관들은 전투를 명령받은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으며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것에 대하여 해명조차 할 줄 모릅니다.
동시에 공화당과 민주당 출신 대통령 모두는 공히 정부의 불법 행위에 대하여 시민들에게 사실을 알리려는 언론인들과 내부고발자들을 기소하려는 노력을 강화해 왔습니다. 당연한 결과로써, 미국은 현재 세계언론자유지수의 순위가 44위에 불과합니다. 물론 독재정권의 국가들은 훨씬 나쁩니다. 그러나 미국은 자유세계의 이웃국가들에게 결코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합니다.
설상가상으로 자신들이 동의하지 않는 견해를 침묵시키거나 주변화하려는 우파와 좌파의 극단주의자들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부 공립학교와 대학에서 역사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고, 이미 설정된 자신만의 내러티브를 강요하려는 공공연한 노력들이 표출되고 있습니다.
상기의 경향들은 역사적 정확성과 지적 장점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무관하게, 이러한 종류의 검열은 자유사회의 원칙과 크게 상충됩니다. 한편, 엄청난 사망자를 발생시킨 예기치 못한 전염병이 발생하였는데, 상당수의 시민들은 생명을 구하는 백신이 COVID-19보다 위험하다거나 국가가 소아성애자들의 비밀도당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고 잘못 믿고 있습니다.
상기의 모든 것을 감안할 때 미국의 정치체제를 다른 국가들이 본받을 수 있는 모델로 삼을 수 있습니까?
두 번째 유형의 리더십은 어떻습니까?
올바른 전략을 선택하고 성공적으로 실행하여 과연 다른 국가들이 이를 따르도록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는가요? 미국은 이런 역할에 꽤 익숙했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특히 외교정책과 관련하여 미국이 보여준 집단적 정치적 지혜에 상당한 의심을 제기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선, 미국은 오늘날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단일의 현안인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항상 뒤처져 왔습니다. 다행히 바이든 행정부는 이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국가전체가 과연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인지 여부는 여전히 미해결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화당은 이에 동참하고 있지 않습니다.
미국은 또한 1990년대부터 초-세계화를 주도하여 금융불안정을 심화시켰고, 중국이 주요 경쟁자로 부상하는 것을 가속시켰으며, 결국 세계전역에서 포퓰리즘적 흐름을 촉발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개방된 세계경제가 바람직하고 보호주의적 흐름은 일반적으로 억제되어야 하지만, 워싱턴은 자유화를 지나치게 너무 멀리, 너무 빨리 시행하여 왔습니다.
그간 양당의 미국 엘리트들은 중국과의 긴밀한 관계가 중국을 “책임있는 이해관계자”로 만들고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앞당겨 10억 명 이상의 중국인민들을 “자유세계”로 끌어들일 것이라고 확신해 왔습니다만 이러한 배팅에는 전혀 성과가 없었으며, 이제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치인들은 미국의 정책이 키워준 동급의 경쟁자인 중국에 대해 경고를 남발하면서 서로 경쟁합니다.
외교정책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록은 계속됩니다. 4차례 정권의 연속으로 미행정부는 중동 평화프로세스를 잘못 관리했으며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리비아 및 기타 지역에서의 전쟁은 수백만 명의 이들 지역 인민들의 생명을 대가로 치르면서 값비싼 패배와 재앙으로 끝났습니다.
한편, 미국은 가치와 정치적 행동이 자유주의적 이상과 크게 상반되는 중동의 고객국가들을 계속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의 목록에는 이집트 와 사우디 뿐만 아니라, 휴먼라이츠워치 와 이스라엘 인권단체인 B’Tselem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운용하고 있다고 비난한, 이스라엘도 포함됩니다.
이란에 대한 미국의 정책도 실패했습니다. 이라크 전쟁은 이란의 지역적 영향력을 오히려 강화했고, 제재를 강화한 것으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획득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불행히도 트럼프는 이란의 핵농축 능력과 핵물질 비축량을 축소하고 “탈출시간”을 연장한 2015년의 협정을 포기하고 미국의 동맹국(모두 “자유세계”의 구성원)들에게도 (이란과 교역을 하면) 제재하겠다고 위협까지 했습니다. 이란핵협정(유엔안전보장이사회도 만장일치로 승인한)이후 과정에서 미국의 훌륭한 지도력이 보여준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란은 그 어느 때보다 핵폭탄의 보유에 가까워졌고 바이든 행정부는 초기의 협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의 모든 사실들을 감안하면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가치를 전세계에 퍼뜨리려는 미국의 노력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에 따르면 2020년은 세계의 자유수준이 15년 연속으로 하락했으며 폴란드와 헝가리와 같은 NATO 동맹국들이 미국의 보호막 아래에 있으면서도 이제 자유주의의 주요한 가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코노미스트-인텔리전스-유닛(Economist Intelligence Unit)은 전세계 인구의 겨우 8.4%만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으며 “2020년에도 세계의 민주주의는 계속해서 쇠퇴했다”고 매우 우울한 평가의 결론을 내렸습니다. (재확인을 위하여 – 미국은 완전한 민주국가군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할 때 미국인들이 스스로를 세계무대에서 현명한 지도국가로 볼 이유는 거의 없으며 자유세계의 다른 국가들이 무비판적으로 미국의 지침을 따를 이유도 거의 없습니다.
제가 불공정하거나 편향된 내용을 제공하고 있습니까?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칼럼의 시작부분에서 언급했듯이, 세계 자유사회에서 미국을 대체할 명백한 대안의 “지도국가”는 없으며 아마도 미국의 지도력이 필요하고 여전히 효과적일 수 있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는 효과적인 코로나바이러스 백신개발을 시작하도록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마땅하며(유일한 경우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백신캠페인을 주도하고 있으며, 글로벌 조세제도를 개혁하여 다국적기업들이 역외 조세피난처를 악용하는 기회를 제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비록 합의가 상원에서 승인을 얻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확실하지 않지만), 유럽과 아시아의 동맹국들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스스로 많은 일을 할 수 있지만 부상하는 중국과 균형을 맞추는 노력에는 미국의 참여도 거의 확실하게 필요합니다.
미국은 국제문제에서 계속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고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역할이 무엇인지 재고해야 합니다. “자유세계의 지도자”의 지위가 타고난 생득적 권리, 강대한 국가권력의 불가피한 결과, 또는 “예외적인” 덕목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어떤 것이라고 가정하는 대신, 미국은 스스로에게 어떻게 해야 자유세계가 미국의 사례와 조언을 따르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된다고 확신할 수 있는지를 자문해야 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 당장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 아닙니다.
분명히 말하자면, 제자신이 미국에 대하여 이렇듯 우울한 평가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미국이 지닌 정치적 제도와 다른 미덕들을 다른 국가들이 명백하게 본받을 가치가 있는 나라라고 믿고 싶습니다. 저는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외교적 판단을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그렇지 않으며 지도력을 발휘하려면 상당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자신을 자유세계의 정당한 지도자라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에, 먼저 미국의 국내에서 잘못된 것을 수정하면서 미국 밖의 세계를 어떻게 대할지 재고해야 합니다. 성공이 결코 보장되지는 않지만, 미국인들이 스스로 개혁하는 것에 성공한다면 세계가 미국의 지도력을 받아들이길 희망하는 마땅한 이유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문재인정부의 임기가 이제 1년도 남지 않았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대선 후보를 가리는 경선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정부의 임기가 끝나가면 그 정부의 공과가 평가되고 새로운 정부의 과제가 정책제안으로 제시된다. 농업계에서도 우리 농업과 먹을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음 정부의 정책과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농민단체, 소비자생협,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단체 등 민간 진영의 단체들이 ‘국민행복농정연대’ 라는 이름으로 모여 공동정책을 제안하기 위해 토론회를 가졌다.
국민행복농정연대는 「농민이 행복해야 국민이 행복하다」 라는 전제를 고정명제로 놓고 농업과 먹을거리 문제를 공동정책으로 제안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지난 6월과 7월 두 달 동안 6차례에 걸쳐 토론회를 진행하였고 이 토론회 내용을 바탕으로 공동정책을 만들어 각 후보 진영에 제안하고 이를 수락하는 후보와 정책 협약을 맺는 방식이다.
국민행복정책연대는 이번 20대 대선을 앞두고 처음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대 대선에서도 「19대 대선 공동정책제안을 위한 국민행복농정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한 바 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 활동하는 국민행복농정연대는 『기후위기와 농업・먹거리・지역 위기가 심화하는 시점에 농정과 먹거리정책, 지역정책의 개혁을 위한 차기정부의 핵심정책과제에 대해 관련 제 단체들의 공동제안 및 후보협약 활동 등을 추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우선 농업계의 의견을 모으고 대선 후보들에게 당면 농업 과제를 제시하기 위해 관련 단체들이 모여서 논의를 하는 것은 잘 한다고 격려할 일이다. 다른 분야에서도 이런 정책제안 연대체를 구성해서 활동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부가 여러 차례 바뀌었어도 농업문제는 쌓여만 가는 상황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하겠다고 뭉치는 것은 대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방식의 공동정책 제안이 적절하고 유효하기 위해서는 먼저 검토할 것들이 있다.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승하면서 개방농정으로 농축산물을 과다 수입함으로서 농업소득은 줄어들고 농사짓는 후계자는 단절되었다. 농촌은 노인들만 사는 경로당 마을이 되었다. 농업 농촌 관련 문제를 생각나는 대로 나열해도 농민– 농업노동력, 농지, 농협 문제, 농가소득, 식량자급률, 농업예산 축소 문제, 농촌 과소화–소멸 문제, 농촌교육, 복지와 문화서비스 부족 등 켜켜히 쌓여 있다.
또 대량생산 위주의 성장주의 농정, 과잉투자, 불필요한 투자, 부적절예산의 조정 등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 추진사업들도 손대야 할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이렇다보니 각 진영에서 문제라고 할 의제들이 쏟아져 나와서 공약 백화점이 된다.
이번 토론회에서 논의 된 것만 간단히 정리하면
1) 농가 혹은 농촌의 소득 부족을 보정하기 위한 농촌(농민) 기본소득
2) 식량 자급률 제고, 다품목 연중 생산기반 마련, 식생활 양극화와 건강불평등 해소, 식생활 교육 정규교과목화, 지역별 먹거리통합지원센터 설립 의무화, GMO문제 해결
3) 지방 소멸에 대응하는 농촌인구 유입정책, 농촌정책의 국가 의제화, 농촌주민자치 확대
4) 신자유주의 개방농정 폐기와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지속가능한 농업, 고령화 해소와 농촌인구 유입을 위한 정책 수립
5) 농업의 공익적 가치 발현 지원, 농업의 각종 성과지표 설정, 농업 예산 확대
6) 중앙진권 농정에서 지방자치 농정으로 전환, 국민행복농정위원회, 농촌살리기 부처 공동위원회 설치, 청와대 농업먹거리 수석비서관 신설, 농정틀 전환을 위한 컨트롤타워 필요, 산하 공기업들의 전면 재구성을 통한 성장 중심 농정에서 지속가능한 농정으로 전환 등등
이런 다양한 제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런 제안들은 앞으로 간소화 작업을 거칠 것이다.
그런데 이 간소화 작업 과정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정권의 임기가 5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5년에 온갖 문제를 해결하기란 불가능하다.
취임 반년은 인선과 공약을 실현할 구도를 잡는데 시간을 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선이 잘못되어 이 공동정책에 관심이 없거나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부처나 기관의 장이 되면 정책을 실현하기 쉽지않다. 또 전 정권에서 세운 기관의 장들이 임기가 남아 있다면 이들과 정책 협의를 해야 한다. 이렇게 조율하고 정책 실현방안을 세우는 과정으로 1~2년이 후딱 지나간다.
그러면 시작해 보지도 않은 정책은 난마와 장애물에 시달려 너덜너덜해 지고 피로도가 쌓여 지난 수 십년 동안 해 온 것처럼 밖에서 욕하고 비난하며 5년은 지나가고 또 정권 말기 1년을 남겨 두고 다음 정권의 공동정책-사실상 5년 전에 제안됐던 공동정책- 제안이 되풀이 될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부탁하고 싶은 건 5년 동안 꼭 해야 할 것을 정리하고 제안을 제한하는 것이다.
다음 정권 5년 동안 꼭 해야 할 것, 이 5년의 성과를 기반으로 그 다음 정부에 좀 더 자주적인 농정을 위해 진행해야 할 과제들을 선후와 경중을 따져서 제안정책을 세우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관련부처와 공기관의 역할, 구조조정, 그에 따른 저항을 어떻게 설명, 설득하고 돌파할 것인지 그리고 기관의 장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인선) 등을 준비해야 한다.
지금 급하고 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용광로처럼, 비빔밥처럼 다 집어넣으면 선후와 경중의 혼선으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5년 전에 했고 이번 대선 과정에서도 하고 있는 일이 5년 후에도 내용의 큰 변화없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정권 5년 동안 꼭 실현할 것들을 정리하고 이를 실현시킬 구체적인 방도를 세워야 한다. 농업정책실현의 1차 5개년 계획, 2차 5개년 계획 이렇게 적어도 20년 정도의 계획을은 세워보자. 그래서 20년 후에는 우리 농업이 우리 국민을 먹여살리는 자랑스런 농업과 농정이 되도록 말이다.
사족 : ‘국민총행복농정’이라는 슬로건을 올린 지 벌써 5년이 넘어서지만 국민들 대부분은 모른다. ‘농민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해’ 라고 동의할 국민이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농업계에서도 성과나 확산없이 되풀이 되는 것에 식상해 있다.
기후재앙의 이야기는 서구뿐만 아니라 심지어 미국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쌀쌀한 시베리아의 기온이 화씨 118도(섭씨 46도)에 달했습니다. 중동은 타는듯한 무더위에 시달리고 있으며 특히 시리아는 가뭄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지난 6월 말, 캐나다의 작은 마을이 산불로 완전히 소실되었습니다. 중국 역시 집중호우와 홍수뿐만 아니라, 폭염을 포함한 극심한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 동안 미국 서부는 지독한 폭염, 극심한 가뭄, 맹렬한 산불이라는 지옥같은 기후재앙에 직면해 있습니다.
현재 상황은 매우 극단적이지만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오랫동안 경고해 왔지만, 미국의 서부가 겪는 현재의 가뭄(예년보다 더 강렬하고 광범위함)은 미래에 닥칠 일에 대한 징조일 뿐입니다. 실질적인 정책의 대응이 없다면 이러한 극단적인 기후변화는 계속해서 지역사회를 위기에 빠뜨리고 인류문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입니다.
Pacific Institute의 공동 설립자인 Peter Gleick은 “기후변화가 도래하고 점차 악화되고 있으나, 이에 대하여 인류가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경종을 울립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전례가 없는 극한적 폭염에는 사람의 지문(활동흔적, fingerprint)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고온과 가뭄은 미국의 서부에서 과거에도 드문 일이 아니지만, 인간활동에 의해 촉발되는 기후변화는 이를 더욱 심각하고 빈번하게 만들었습니다. 기후를 연구하는 팀은 최근조사에서 6월의 기록적인 폭염의 규모와 심각성이 기후변화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의 기후과학자인 Daniel Swain은 “전례가 없는 극한폭염에서 인간의 지문을 감지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인간지문의 영향은 치명적이었습니다. 극심한 더위로 인하여 이를 다룰 수 있는 장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곳에서는, 사람들도 특히 노인들이 사망합니다. 올해의 더위 강도가 그렇습니다. 기록적인 더위가 6월 말에 워싱턴과 오리건을 강타했을 때 약 90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서는 수백 명의 삶이 사라졌다고 발표했습니다.
서부전역에서 가뭄은 물공급과 같은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지역사회를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6월에 관계관리자들은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큰 저수지인 오로빌 호수가 너무 빨리 고갈되어 사상 처음으로 폐쇄되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의 폐쇄는 800,000가구의 물공급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거대한 후버댐에 물을 공급하는 데 도움이 되는 미국 최대 저수지인 미드 호수(Lake Mead )도 역사적 최저치에 도달 했으며, 이는 서부의 많은 주에 물과 전기 공급에 대한 우려를 더욱 부추겼습니다.
물공급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외에도 폭염은 전력망에 부담을 주며 정전을 촉발했습니다. 외교 위원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에너지 및 환경분야 선임연구원인 앨리스 힐(Alice Hill)은 “사람들이 가장 전력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 순간에 셧다운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기후위기의 영향은 에너지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녀는 “전력망이 일단 가동을 중지하면 의료부문이 영향을 받고 운송부문, 통신부문, 금융부문 모두 전력공급을 잃으면 커다란 손실을 당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뭄이 심화됨에 따라 생태환경의 영향은 특히 심각할 수 있습니다. 생태계는 종종 인간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할 수 없으며 캘리포니아와 같은 주에는 이미 멸종위기에 처한 많은 어종들이 있습니다. 캐나다해안에서는 6월의 폭염으로 약 10억 마리의 바다생물이 죽었습니다.
Gleick은 “가뭄이 심할 때 생태계가 우선적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의 멸종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생태계가 말라가는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라틴아메리카 지도자들은 이미 환경보호를 위한 합의로 진전을 이루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한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들과 협력해야 합니다.
6월 말 기온이 치솟자 바이든 대통령은 피해를 입은 캘리포니아 한 카운티에 산불진화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3,700만 달러를 약속하고 연방소방관의 급여를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앞서 지난 5월 정부는 연방비상관리국(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극한의 기상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각 주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자금을 두 배로 늘릴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보수적인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 의원들이 기후변화에 대처하는데 정치적인 장애물로 작용하는 일을 오랫동안 겪어 왔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사기라고 비난하고 파리기후 협정에서 미국을 탈퇴시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보다 최근에는 공화당상원의원 Ron Johnson 이 기후위기를 “헛소리”라고 일축했습니다. 이러한 분열은 정당의 지지기반에도 더 광범위하게 반영됩니다. 퓨-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민주당원의 거의 절반이 기후변화 해결이 개인의 가장 큰 관심사라고 말한 반면에 공화당원들은 겨우 10%만이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6월에 공화당의원 그룹이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Conservative Climate Caucus 를 구성했지만 이 그룹은 특정정책에 대한 의회의 승인을 거부했으며 그 지도자인 John Curtis 의원은 기후변화를 “위기”라고 불러서는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활동가들이 기후변화의 극복에 집중하기를 희망했던, 5,790억 달러에 대한 별도의 초당적 기반시설 예산 중에 기후대응을 위해 470억 달러를 배정했지만, 현재 기후변화로 인해 심각한 혼란이 야기되고 있는 바로 이때 청정전력(Clean Electricity)의 기준을 마련하고자 했던 바이든의 주요 조치가 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바이든은 지난 6월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은 (기후대응을 위한) 재원이 매우 부족한 나라입니다.”
Hill은 현재 정부의 대응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기후위험에 대하여 적절히 준비하는 데 필요한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하면서. 선제적 위험감소가 아닌 재해 후 복구노력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합니다. 대통령은 아직 국가적 적응전략을 채택하지 않았다고 외교위원회 선임 펠로우인 Hill은 지적합니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국가적 적응전략을 갖고 있고 그러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주요 위험을 해결하는 데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결과가 모두에게 나쁘고 점차 더욱 나빠질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텍사스 공과대학의 기후과학자인 Katharine Hayhoe는 “우리는 기후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가정 하에 인류전체의 문명을 구축해 왔습니다만, 현재의 인류는 마치 백미러를 보면서 미래로 운전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법적으로 지원할 기회가 줄어들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 은유를 사용합니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미래에 재난적 수준으로 들이닥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주에서 공화당원들은 화석연료의 사용을 강제하고 유해한 배출량을 늘리기 위한 노력을 배가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자체로 지속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인류가 기후변화가 지속되도록 스스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재의 기후위기를 난포운전중인 트럭에 비유한 기후과학자인 Swain은 말합니다. “트럭의 브레이크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브레이크를 사용하지 않을 뿐”이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Swain은 “아직은 우리가 상황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기후시스템에 대해 우리가 가진 통제수단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매우 나쁜 결정을 내리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분야와 영역의 정책입안자들이 제동을 걸기 시작하지 않는 한, 현재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극한의 기후조건은 결과에 따라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중요한 사회기반시설은 뜨거운 열기 아래 계속 휘청거릴 것입니다. 생태계는 고통을 받을 것이고, 일부 생물들은 멸종될 것이며, 더욱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것입니다.
Gleick은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예고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구온난화의 결과가 인류 모두에게 에외없이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미국조야에서 智將으로 평가받는 Vincent Brooks가 한국근무 경험을 바탕으로 제시한 한반도프로세스의 구상에는 일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해도, 지난 70여 년간 한반도 분단과 냉전구도의 고착 및 지속 그리고 북한핵무장 등 모든 현안의 일차적 책임이 바로 미국, 미패권에 있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간과하고 있다. 더구나 엄청난 인류적 현안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협력체제가 절실한 현시점에서,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정치 산업 평화 그리고 안전에 있어 미국과 대등한 아니 오히려 보다 중요한 국제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중국을 봉쇄하고 발전을 저지하려고 거짓의 동맹을 앞세우는 몽유병 환자의 글인 듯싶다. 각설하고 한반도프로세스의 열쇠이자 출발점은 미국이 먼저 종전선언을 주도하고 북한에 가하고 있는 모든 제재를 순차적으로 해지하는 것이다. 분석을 겸한 국내 전문가의 의견(오마이뉴스 7월 31일자 게재내용)을 말미에 추가로 제공한다.
한반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김정은 북한국무위원장은 북한의 근간이 되는 경제·군사정책의 결정적 전환을 단행했습니다. 조선인민군대를 우선시하던 아버지의 선군 사상에서 탈피하여 인민대중제일”People and Masses First”의 노선으로 대치하였습니다. 이러한 북한통치체제의 재편은 조선인민군대를 뒤로 물리고 노동당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김정일의 지속적인 권력강화를 추구하며 지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침체를 겪고 있는 북한경제를 소생시키기 위한 노력의 발판을 마련하고 하는 것입니다.
최근 북한인민군의 자제 역시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2020년 10월 열병식에서 북한인민군대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6을 선보였으나 미국에 대한 공격적인 언사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습니다. 이는 2018년 9월에 있었던 지난 퍼레이드와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당시에는 앞선 퍼레이드와 마찬가지로 여러 탱크들 앞에 “미국제국주의 침략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맹렬한 적을 파괴하라!”라는 구호를 등장시켰습니다.
한미합동 군사연습과 순항 및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한 김정은의 비판도 한반도 긴장고조보다는 자제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은 올 여름에 추가적인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예정이어서 이러한 북한의 자제가 계속될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김위원장이 자신의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는 인식을 보여줍니다. 북한경제는 COVID-19로 인한 봉쇄, 각종의 국제제재 및 끊임없는 자연재해 등 복합적인 영향으로 황폐화되었습니다. 작년에만 북한은 8.5% 정도의 심각한 경제위축을 겪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김위원장은 식량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표현했으며, 유엔식량농업기구는 북한의 기초식량수요가 공급분을 97만t 초과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제안보는 북한의 최우선 과제입니다. 당간부들에게 압박을 가하면서 관료주의적 나태함과 부패를 퇴치하는 한편, 대중에게는 “심각한 어려움”과 “축적되는 고난”에 직면하여 김위원장에게 충성을 나타내도록 독려하기 위해, 인민대중제일주의라는 노선이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김위원장은 조국의 미래와 경제안보를 담보할 수 있는 미국과 대화의 기회를 가로막지 않기 위해 군사행동의 전선에서 신중을 기하고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대통령과 문재인 한국대통령에게 평양의 어려움은 기회로 다가옵니다. 두 지도자들은 비핵화의 진전, 북한의 중국의존도 감소, 남한의 긴밀한 지원 둥으로 북한이 궁극적으로 미국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에 통합되는 대가로 북한의 근본적인 안보문제, 특히 어려움에 처한 경제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동시에 한미 양국은 동맹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한미동맹강화의 목표는 북한이 한미동맹의 맹점을 이용하려는 기회를 배제하고 강력한 우위의 입장에서 북한에게 접근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월한 합동군사 및 외교력을 달성하는 동맹의 모습은 김위원장의 위협을 억제하며 북한과 항구적인 평화의 길을 여는 새로운 접근을 허용할 것입니다.
동맹은 더욱 굳건하게
첫 번째 단계로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이 주요 훈련시설에 접근하는 것을 막는 정치적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 군사준비태세 유지의 핵심인 기동훈련 및 실탄을 사용할 수 있는 훈련구역의 접근이 제한되어, 미국은 아파치공격-헬리콥터 승무원과 같은 특정부대의 훈련을 위하여 일본과 알래스카에 재배치할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국 국내의 정치적 압력이 훈련에 대한 제한의 주요 원인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간 동안 이러한 포플리즘의 정책을 채택했지만, 최근에는 비정치적인 방식으로 이러한 문제를 접근했습니다. 이러한 비정치적인 한국의 선택은 내년 3월의 대선을 앞두고 있는 선거운동 시즌에도 지속되어야 합니다.
바이든과 문 대통령이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인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강화를 위한 훌륭한 출발이었습니다. 한국에 COVID-19 백신을 제공하고 공동백신연구에 참여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은 미국의 새로운 행정부가 한국과 관계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팬데믹 초기단계에 개인보호장비를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한 한국정부의 지원에 보답하면서 상호적인 호의와 신뢰를 구축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또한 특히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초점을 맞춘 광범위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상호적으로 행동을 조정하겠다는 의도를 전달했습니다. 이러한 광범위한 협력은 동맹을 위한 새로운 전략적 지평을 열어주고 미국이 안보라는 중요한 문제에 대해 동맹국(한국)의 관점을 고려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면서 한국지도부와 국민에게 안심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일관성 없는 한미동맹의 맹점을 이용하는 기회를 봉쇄해야 합니다. 이러한 한미동맹의 강화에는 두 가지 과제가 놓여 있습니다.
첫째, 북한과 중국은 미국과 남한 사이에 쐐기를 박는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군사적 위협에서 외교적 약속에 이르기까지 김 위원장은 워싱턴과 서울에 다양한 메시지를 보내는데 능숙합니다. 한편 중국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종종 경제적 강압을 사용합니다. 2016년에 미국과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배치한 결정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은 다양한 한국의 산업과 기업들이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방해했습니다. 영향을 받은 비즈니스 영역은 THAAD 배치와 직접 관련된 대기업에서 관광 및 K-pop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한미동맹은 굳건했고 중국은 궁극적으로 이를 중단했지만, 미국과 한국이 가까워질수록 중국으로부터 더욱 많은 괴롭힘을 예상해야 합니다.
한미 정상은 향후 중국의 경제적 강압행위에 대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이에는 중국과 러시아의 경제수단화와 정치적 전쟁에 대한 방어를 강화하기 위한 전략을 포함하도록 군사침략에 대응하는 전통적인 영역을 넘어 한미동맹 간에 공동방어태세를 확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한국이 대선이라는 정치시즌에 돌입하면 이와 관련하여 더욱 교활하고 음험한 개입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더욱 중요합니다.
둘째, 한미동맹은 한국 대통령 선거기간 및 이후에도 연속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트럼프-문 시대 동맹약화의 주요 원인은 포플리즘적 민족주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국방비의 정치화이었습니다. 한국 정당들은 서로에게 매우 대결적인 반대입장을 지니고 있으며, 이미 포플리즘적 후보들이 반미주의와 반동맹의 주제를 정치화하고 있다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통합적인 대공 및 미사일 방어시스템의 개발, 공통지휘 및 통제시스템의 현대화, 보장된 미국 핵우산의 불확실성에 대한 방어기제로서 전술핵무기 획득 등과 같은 매우 예민한 동맹의 주제들이 정치적 쟁점이 되고 포플리즘의 등장으로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
한미동맹 지도자들과 군사전문가들은 2021년 한해 동안 이룩한 가치있는 진전을 잃지 않도록 중요한 문제에 대해 초당적 지원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광역의 인도-태평양지역에 존재하는 적국들에게 동맹의 지위에 대한 양보를 허용해서는 안됩니다.
적국에게는 접근전략을
이러한 확고한 기반 위에서 미국과 한국은 점진적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을 시작해야 합니다. 북한의 행동을 바꾸려는 동맹국들의 이전시도에는 군사적 압력, 국제적 경제제재, 비핵화를 위한 북경당국의 협력이 포함되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은 북한이 지닌 중국과 경제적 (의존)관계 및 한미동맹이 초래한 군사적 위험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보다 나은 접근방식은 김위원장이 가장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방식, 즉 경제적, 정치적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물론 한미정상은 상호신뢰가 강고히 구축되었을 때 더욱 깊은 협력의 단계로 나아가는 “전략적 신중함”의 정책을 채택할 수 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만이 북한이 (한미동맹이) 제공하는 선의를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취하는 것을 방지할 것입니다. 전략적 신중함은 또한 북한이 도중에 이탈할 경우 이전의 모든 과정을 취소하고자 하는 충동으로부터 한미동맹관계를 보호할 것입니다.
포용의 첫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새로운 관계를 알리기 위한 노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미국과 한국은 건설적인 대화에 참여하려는 북한의 의지가 입증되면 인도적 및 의료 지원의 형태로 즉각적인 경제적 구호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지원은 미사일 및 핵무기 실험을 금지하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과 연계된 유엔주도의 인도주의적 역할의 일부로 제공될 수 있습니다.
군사전선에서 초기목표는 긴장을 완화하고 분쟁위험을 완화하기 위한 공동약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잠재적인 인화점(불안)이 한반도에서 급속하게 갈등을 확대하고 실제의 전쟁을 재개할 위험을 계속 제기합니다. 포괄적인 군사협정(CMA)로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군사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지만 이후의 협력은 진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기의 협정을 만든 軍對軍의 채널은 6.25전쟁의 종전선언과 긴장의 영구적인 완화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통로 중 하나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진전에 대한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과의 종전선언은 한반도 정치의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잠재적으로 김위원장이 미국과 한국에 대한 북한의 정치적 수사(rhetoric)를 부드럽게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것은 비핵화를 향한 길을 열 수 있는 추가적인 신뢰구축의 조치를 가능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북한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다면적 안보보장을 달성하는 것입니다. 다만 종전선언을 현재의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으로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종전선언문은 현재의 정전체제의 변경을 의미하지 않으며 향후 당사자 간에 협상해야 하는 평화조약과 어떤 식으로든 연결해서도 안됩니다.
미국과 한국의 지도자들은 김정은에게 그가 가장 원하는 방향, 즉 그의 경제적, 정치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하고 중국에 대한 입장을 재조정하는 것입니다. 미국과 한국은 북한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금융투자기관들이 북한에 10년 무이자대출을 제공하는 기반시설 개발기금을 만들 수 있도록 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습니다. 남북간의 자유무역 협정에 서명하는 것은 기반시설 개발기금을 보완할 수 있고, 한반도의 현안에 대한 한반도(남북 공히)의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법으로 틀을 잡아갈 수 있으며, 분단된 민족의 양측 모두가 함께 접근하는 밑그림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패키지는 중국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한은 새로운 투자유입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북한의 역량강화와 사회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국과 미국은 경제적 이익을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증된 진전에 대응하여 교환해야 합니다.
한미동맹과 북한은 군사관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한반도 주변바다에서 전통적인 해양분쟁을 방지하고 중국인들의 불법조업을 근절할 방법을 모색해야 합니다. 이러한 노력으로 또한 비무장지대(DMZ)에서 확실한 보안과 안정성을 제공해야 하며, 남한과 북한 간에 갈등의 고조됨이 없이 조정이 가능할 때 유엔군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입니다.
다음단계는 당사자 간의 평화조약이 될 것입니다. 비핵화가 검증되고 남한과 북한의 군대가 현실적으로 서로를 침공할 수 없을 때 정전을 영구적으로 대체하는 협정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평화조약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진행의 과정에서 적절한 조치와 양보를 하도록 한미동맹이 전략적 신중함을 계속 채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까지 미군과 한국군은 확고한 방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지속가능한 평화제안
마지막 단계에서 한미는 평화협정을 넘어 북한을 (한미)동맹주도의 질서로 완전히 통합해야 할 것입니다. 남한은 북한의 무역 및 직접투자의 주요 제공자로서 앞장서게 될 것입니다. 미국은 북한의 두 번째 주요 교역파트너이자 국제자금조달의 주요 조력자가 될 것입니다. 경제플랜으로 평양의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남북의 자유무역 협정을 인도-태평양 무역 파트너십으로 확장하여 북한이 아시아전역의 시장에 접근할 수 있도록 주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조치는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경제질서를 공고히 하여 수천만 명 삶의 질을 향상시킬 것입니다. 군사적으로 영구적인 평화계획은 평양이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핵무기를 파괴했음을 확인함으로써 안보를 제공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재구성된 북한과의 관계는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 것입니다.
이러한 방향으로의 진행을 방해하거나 방해할 수 있는 많은 장애물이 있습니다. 중국은 북한경제에 대한 지배적인 독점권을 쉽게 양도하지 않을 것이며 한미의 외교계획을 방해하려고 할 것입니다. 더욱이 국제사회의 긴장이 완화되지 않는 상태에서, 장래에 북한이 붕괴될 것 같은 쇠약함에서 북한을 “구하는” 위험을 평가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북한을 구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당 지배구조와 100만 명 이상의 조선인민군, 개탄스러운 국가의 인권유린 등을 상당기간 인내해야 할 것입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북한의 정상화를 돕는 데 따르는 위험 때문에 이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는 국가들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동맹지도자들은 이러한 장애물과 기타의 많은 어려움들과 씨름하면서도, 다시는 전쟁의 도가니를 거치지 않고, 북한의 용인할 수 없는 현재 상태를 보다 나은 미래로 변화시키는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
출처 : Foreign Affairs(포린어페어) on 2021-07-29.
Vincent Brooks
주한미군/한미연합사령관과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4성 장군출신으로 문무를 겸비한 智將으로 인정받고 있다
Ho Young Leem(임호영)
Brooks의 한미연합사령관 시절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한국군의 4성 장군출신이다
전주한미군사령관은왜북미동맹을제안했나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임호영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공동으로 기고한 ‘북한과의 대타협'(A Grand Bargain with North Korea)의 내용이 주목받고 있다.
핵심 내용은 북미 쌍방의 단계적 조치에 호응하여 궁극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고 동북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봉쇄하는 친미동맹, 즉 아시아식 나토에 가입하면 미국이 북의 체제를 인정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먼저 이러한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미국의 전략적 난처함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외교전략은 적의 동맹들을 속칭 ‘이간질’하여 해체(decoupling)하고 자신의 동맹을 확대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전략 아래 중소 분쟁 당시 중국과 수교했고, 중국-베트남 전쟁 이후 베트남과 수교했으며, 중국-인도 분쟁 이후 인도와 동맹적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2000년 이후 미국의 후원에 연명하던 엘친의 러시아가 푸틴의 지도력에 힘입어 미국의 적대 국가로 다시 부상했다. 중국 역시 시진핑 시절에 와서 과거 미국의 글로벌 지도력에 순응하던 태도를 버리고 공개적으로 미국과 경쟁하게 되었다.
여기에 북이 핵무장을 완성하고 미국의 본토를 겨냥하는 등 중러 수준의 안보적 위협으로 성장하였다. 공장 산업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가 반중 노선을 분명히 함으로써 미국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북중러의 동맹이 강화되었다. 바이든 정부에서도 중러를 현실적인 적대국가로 설정함으로써 북한을 중러 동맹에서 이탈시킬 필요성이 증대되었다.
미국은 3개의 핵무장 국가를 동시에 상대할 수 없다. 미국으로선 북중러의 동맹을 해체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 가장 약한 고리인 북에 유화적인 손짓을 함으로써 반미 동맹에서 이탈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이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불가능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더 나아가 북에 핵무기 포기와 친미동맹을 제안한다는 점에서 중러에 더욱 공격적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주장하는 장기적인 목표는 점진적으로 북한을 비핵·반중의 친미동맹에 포섭하는 것이다.
첫 단계에서 북이 먼저 가시적인 양보 혹은 양보 의사를 국제사회에 공표하면 미국이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인도적 지원은 국제사회에서 적에게도 무조건적으로 하는 것이다. 즉, 미국이 먼저 인도적 지원을 하고 북이 이에 호응하는 것이 순리라는 점에서 수동적인 태도이다.
두 번째 단계에서 북이 비핵화에 착수하면 한미가 북에 대규모 경제지원을 하고 평화조약 전 단계인 종전 선언을 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시킨다는 것이다. 또 북한이 중국과의 동맹에서 이탈하는 조건으로 북미관계,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킨다.
문제는 이 단계에서 미국이 북에 대한 군사적 압박은 완화시키지만 정전협정과 유엔사 체제를 유지하고 한미군사훈련도 적정한 규모에서 정상적으로 유지한다는 점이다.
세 번째 단계에서 북이 비핵화를 완료하고 한미와 함께 인도-태평양 지역의 반중 동맹에 참여하면 미국이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북미상호불가침을 포함하는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또한 한미일과 인도, 호주 등이 참여하는 친미경제공동체 즉, 자유무역지대에 북이 참여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점은 남북이 경제적 관점, 지정학적 관점에서 미국의 반중 동맹에 가담하여 중국과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 봉쇄의 주한미군을 더욱 강화하면 남북통일에 대한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브룩스 전 사령관이 주장하는 단기적 목표는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주요 대선주자와 한국의 유권자들에게 “반미는 한국의 국익에 반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다. 브룩스에 따르면 반미는 민족주의적이며 포퓰리스트적 선동에 불과하다. 즉 남북이 번영하려면 중국이 아니라 미국 편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브룩스의 당면한 요구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주한미군의 남한 내의 활동을 전면적으로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즉, 남한 정부와 국민들은 사드 기지의 확장과 유지를 허용하고, 해외에서 포격과 사격 훈련을 하는 미군에 남한 내의 훈련장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각종 미군기지에 대한 한국민의 민원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셈이다.
전향적이지만 반중 요구는 지나쳐
브룩스 전 사령관의 제안이 긍정적인 것은 북미 직접대화, 이른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원칙인 쌍방 상호조치의 교환, 관계정상화와 불가침 등 평화조약 허용 등이다.
하지만 북한에 핵무기 포기 이외에 반중 친미 동맹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트럼프를 포함하여 과거의 그 어느 태도보다 미국국익 중심이고 반중국적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주한미군의 정당성에 대해 ‘북한의 위협에서 남한을 지킨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북이 핵무장을 거의 완성함으로써 미국의 본토를 핵 공격에서 지키기 위해 북한과 더 이상 적대관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주한미군의 정당성이 사라지게 되었다.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주한미군이 존재하는 이유는 북한이 아니라 중국때문이라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한국 국민 중 미국을 위해 중국을 적대시해야 하고, 한국 땅에 미군을 주둔시켜 미중 간에 핵전쟁이 나도 좋다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대부분의 국민들은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반중노선은 비현실적이라고 여긴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성격을 반중동맹으로 인정하는 순간 한국 내의 주한미군 철수 주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브룩스 전 사령관의 주장은 미국의 대승적인 관용을 과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미국외교의 실패를 승리적 어구로 감추는 것에 불과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사위 문제’가 계속 쟁점화하고 있다. 법사위를 야당에 양보하기로 여야 간에 합의를 한 뒤에도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이번 기회에 아예 법사위의 체계·자구 심사권을 폐지하자는 법률안을 발의하였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국회 공무원에 이관하겠다?
법사위가 체계·자구 심사권을 갖는 것은 세계 각국 어떤 의회에도 존재하지 않는 비정상적 왜곡 시스템이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도입한 이 기형적 제도는 당연히 폐지해야 하며, 그것이 곧 우리 국회가 정상화의 길을 복원해나갈 수 있는 길이다.
그런데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민형배 의원의 법률 개정안은 법사위가 담당했던 법률안·규칙안 등의 체계·자구 심사 기능을 국회 법제실로 이관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박주민 의원의 개정안은 국회 사무처에 법제 전문기구를 둬 각 상임위 소위원회 심사 단계에서 이를 심사하도록 했다.
바로 이 지점에 중요한 문제가 존재한다.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 폐지는 올바른 길이지만, 국회 공무원에게 이관하는 방식은 옳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법사위 체계·자구 심사권을 국회 공무원에게 넘기게 되면 그 권한을 장악한 국회 관료들의 힘만 키우게 되고 이로부터 온갖 왜곡과 폐단이 발생하게 된다.
다른 나라 의회 상임위에서는 각 상임위에서 소관 법률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를 의원들이 수행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국회는 하나씩 하나씩 세계 의회의 ‘기본’과 ‘표준’을 적용해 나가야 한다.
공무원에 일을 넘기면, ‘주인’은 공무원이고 의원은 그 ‘허락’을 받는 하부로 전락한다
한 가지 사례를 더 살펴보겠다. 공공기관에 정치권 주변의 ‘낙하산’들을 대규모로 내려보내는 일은 사회적인 비난을 많이 받는 사안이다. 이번 정부에서도 ‘낙하산’을 더 많이 내려보내기 위해 의원입법을 통해 공공기관 자리를 인위적으로 늘리고 있다.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법안이 얼마 전에 발의되었다. 그런데 이 법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국고 수반 기관과 정부 지원액이 총 수입액의 2분의 1을 초과할 것으로 추계되는 기관 ·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합계 30% 이상의 자본금을 출자하는 기관을 설치하는 법률안을 심사할 경우, 그 타당성에 대해 재정 당국의 의견을 반드시 듣고 국회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에 포함시키며, 이를 제안하는 국회 상임위원회는 미리 기획재정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하는 절차를 추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심화시킨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기재부 관료들과 ‘협의’하고 국회 공무원인 전문위원의 ‘검토’를 받는 것은 결국 대부분 관료집단의 힘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국회의원들은 매사가 이런 식이다. 항상 공무원들에게 ‘심판관’의 권위와 권한을 넘겨준다. 자신들의 ‘무능’을 스스로 인지해서 그리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아니면 조그만 어렵게 보이거나 귀찮은 일은 어떻게든 ‘아랫사람’ 시켜서 그저 편하게 군림하겠다는 심산인건지, 그것도 아니라면 두 가지 요인이 결합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국회의원들이 관료집단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하부 구조로의 전락이다.
본디 관료집단을 통제해야 할 주체는 다름 아닌 정치와 국회이다. 그런데 정작 정치와 국회는 소명의식은 없는 채 안일과 군림만을 추구하다가 결국 관료들의 특권화를 조장하고 있다. 이렇듯 정치의 무능, 국회의 무능이 관료주의를 더욱 악화시킨다.
공무원에 떠맡기지 말고 스스로 일하라. 의원이란 직접 입법업무를 하라고 뽑아준 것
필자는 우리 국회의 가장 근본적인 병폐가 국회의원 본인들이 스스로 일을 하지 않으려는 관행과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국회의원 본인들이 수행해야 할 ‘법률안 검토보고’ 작업을 국회공무원인 전문위원이 대신 검토보고하는 지금의 시스템이 그 대표적 사례다.
상임위원회 회의에서도 국회 공무원들이 법률 낭독을 비롯해 대부분의 진행을 맡는다. 왜 그러냐 물으면, 의원들은 “(지위가 높으신) 내가 (하찮게) 그것을 읽으라고?”라는 식이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국회의원들이란 그런 일을 하라고 국민들이 선출한 것이란 점이다. 세계 모든 의회에서 그러한 업무를 의원 본인들이 직접 수행한다.
국회의원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입법권한을 스스로 수행하지 않고 관료들에게 떠넘기면, 바로 그 관료들이 입법의 주인으로 되는 것이다. 그 구조에서 국회의원들은 한낱 들러리로 전락한다. 일을 하지 않으니 ‘전문성’이 쌓일 리도 없다. 우리 국회는 그렇게 정작 자신에 부여된 입법업무로부터는 주변화된 채 매일 같이 SNS에서 말재간이나 자랑하고 마치 자신들이 연예인인 양 각종 이벤트에 열중하면서 습관적 무조건 반대의 정쟁만 일삼는다. 이것이 우리 국회 문제의 근본 문제이다. 이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그 어떤 국회개혁을 외쳐본들,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이요 “속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스스로 일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국회개혁도 반쪽짜리, 허구일 수밖에 없다.
이제 다른 나라의 모든 의회처럼, 우리 국회의원들도 국민이 부여한 입법권을 공무원에게 떠맡기지 말고 제발 스스로 일하라. 이것이 우리 국회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핵심이요 기본이다.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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