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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전에 관해 UN & G20에 보내는 공개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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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안전에 관해 UN & G20에 보내는 공개서한

admin | 목, 2020/05/14- 20:44

편집자 주:

코로나사태로 인한 봉쇄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아프리카를 우선으로 식량 공급체계에도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한다. 이에 세계의 전직 정치지도자들과 주요 명사(50+)가 서명한 후 아래와 같은 공개서한을 UN과 G20 국가들에게 보냈다.

한국정부에게도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농업과 식량분야에 대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절실해졌고, 공공보건과 경제적 충격이라는 혼란이 발생하여도 일반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음식을 수급해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동시에 환경과 기후라는 문제도 감안해야 하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COVID-19가 농업과 식량 및 영양의 안전에 미치는 중기적이자 장기적인 염려를 담아, 국제적인 협력기구들과 개별 국가단위에 적절한 조치를 촉구하고자 아래와 같은 서한을 작성합니다.

현재 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보건의 위기는 일상의 공급체계에 혼란을 야기하며, 이에 따라 기아, 영양부족, 기후변화 그리고 환경적 퇴화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기에, 2015년에 UN에서 결의한 지속가능목표(SDGs)를 성취하기 위해 국제 간의 적극적이며 집단적인 협력과 행동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아래와 같은 주요 국제기구들이 이미 제기한 강력한 성명의 내용에 깊은 동의를 표합니다: IMF, World Bank,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al Development (IFAD), Committee on World Food Security (CFS), the Food and Land Use Coalition, the Global Forum on Agricultural Research (GFAR), the International Dryland Development Commission (IDDC), the Malabo-Montpellier (MaMo) Panel, 등.

동시에 아래의 연구 기관들의 조사와 보고에 따라 세계식량상(World Food Prize)과 같이 책임있는 조직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는 회의를 조직하고 있는 것에 주목합니다: Wageningen University, the Consultative Group for International Agriculture Research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 CGIAR), Associaton of International Research, Development Centers for Agriculture (AIRCA) 등.

상기에 언급한 국제적 기구와 지역별 조직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분석과 지지들은 국제적 농업의 연구개발과 식량안전에 관한 시스템을 제고할 긴급한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제안들을 지지하며, 지구적 단위에서 실제적인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COVID-19로 인해 공공보건의 위기가 전면화되면서, 전세계의 식량시스템 역시 큰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공급체계에 혼란이 발생하면서, 아동들의 학교급식이 제한되기도 하며, 식량보조에 의존하던 가구들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시장수요를 잃어버리면서, 다가오는 시즌에 수확과 재배의 작업을 어찌해야 할지 시름에 쌓여 있습니다.

일부 국가들이 곡물의 수출을 금하고 수입을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가격의 불안정을 악화시키고 통상의 긴장을 초래하자, 곡물가격이 코로나사태 발발 전보다 크게 오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하여, 다른 한편에서는 인도주의적 노력을 통하여 식량의 수급체계를 효과적으로 안정시키려는 조치들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마땅히 격려되어 왔지만, 문제는 충분한 규모에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다양한 지역단위의 식량체계와 지속가능한 자연자원의 관리에 기초하여, 국가와 지역단위에서 회복이 가능한 수급체계를 새로이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계절에 곡물의 수확과 재배를 지속하기 위한 협력적 조치들이 신속히 이루어져서, 식량의 생산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고 음식물이 가난한 사람들 특히 어린이와 여성 들에게 제대로 공급되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현재의 위기에 대응하는 단기적인 행동의 필요가 매우 시급하며, 동시에 세계적 규모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식량체계의 장기적 위기에 대해서도 대처를 해야 합니다.

유엔의 SDGs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농업과 식량안전의 현장에서 실제적 조치가 취해져야 하며 이러한 조치들은 마을과 개별국가, 지역과 국제적 수순에서 적절히 관리되는 협력적 노력을 동반해야 합니다.

COVID-19가 발발하기 이전에도 이미 많은 국가들이 SDGs에 접근하는데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이번 사태로 이들 국가들은 농업과 식량분야에 대해 배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절실해 졌고, 공공보건과 경제적 충격이라는 혼란이 발생하여도 일반 국민들에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식량과 음식을 수급해야 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동시에 환경과 기후라는 문제도 감안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상기에 언급된 복합적인 과제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환경과 농업 그리고 경제와 공공보건이라는 난제를 만나 각자 밀폐된 공간(silo)에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융합적이고 협력적인 연구개발을 통해 중기적인 농업과 식량안전 체계의 탄력적 안정성을 더욱 추구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재앙의 전조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COVID-19사태로 인해 주요 언론매체의 헤드라인에서 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환경에 대해 인류의 행동이 미친 충격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지난 몇 주간, 그린하우스에서 발생하는 가스배출이 줄어들고, 물과 공기의 질이 개선되고 있으며, 황폐된 지역에 새와 야생동물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과다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감안하면 갑작스런 경제활동의 중단이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자원의 보존, 농업의 생물적 다양성, 탄소배출량의 흡수, 토양과 수질의 개선, 신재생 에너지의 발전, 환경친화적 과학계획, 물과 비료의 효율적 사용, 다변화, 마을단위에 기초한 음식공급 체계 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지 다시 한번 확인하고 강조할 기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진행중인 코로나사태와 지구적 위기와 도전에 대응하는 것에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혁신(STI가 매우 긴요합니다. ICT와 바이오 분야의 혁명을 통하여 식량과 농업시스템을 개선하여 가난한 이들에게 식량의 안전을 제공하면서도, 환경과 기후에 대한 충격을 줄여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혁신적인 기술을 통한 정밀한 농업에 의한 생산성과 수입의 증대 그리고 농토에 적시의 자원 공급 “more from less” 접근 등이 요구됩니다. 단세포 단백질에서 육류를 만들어 내고 해조에서 바이오 연료를 추출해 내는 등 새로운 사고(out of the box)에 기초한 연구활동을 통한 혁신적인 기술을 시장에 도입해야 합니다: 어류 양식에서 출발하여 가축사육 대신 재배식 단백질생산 등 이러한 사례들을 통하여, 연구실의 성과가 실제 농업으로 연결되고 농장의 생산에서 소비자의 식탁으로 신속한 이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음식의 제공은 인류의 삶에 있어 어떤 경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여성들에게는 건강의 유지는 인권입니다.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일은 건강을 보장하는 것과 더불어 자기결정(존중)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여성의 건강에 대한 권리가 보장되면, 아이들도 더욱 건강해지고 제대로 영양상태를 유지하면서 가족전체에게 혜택을 가져다 주며, 미래를 담당할 젊은 세대들이 질병과 발육부진에 걸리지 않고 보다 적극적이고 건강하며 생산적인 삶을 즐기게 됩니다.

식량과 농업 체계를 지원한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영양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COVID-19에 대한 중장기적인 대응은 한계 상황에 처해 있는 모든 여성과 남성 그리고 아동들의 필요를 제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당장 농업의 적시 수급에 혼란이 생기면 향후 6-24개월 간 어려움에 빠질 것입니다. 신속한 지원조치를 통해, 지금이라도 속히 농업에 필요한 종자와 비료 그리고 살충제를 공급할 자금을 제공해서, 농민들이 적시적소에 생산물을 공급할 능력을 지원해야 합니다. 수송과 보관 그리고 배분체계를 개선하여 생산에서 수요에 이르는 역량을 제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백지 상태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부터 지원해야 합니다. The World Bank,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FAO), the World Food Program (WFP), the International Fund for Agriculture Development (IFAD) , the regional Development banks 등이 그 동안 역할을 지속적으로 담당해온 기구들로, 농업과 식량안전을 지원하기 위한 중대한 임무를 더욱 강화해야 합니다.

유럽연합과 아프리카 연합과 같은 지역기구와 지원조직들 역시 역할을 담당해야 합니다. 모두 합쳐 130여 개국에 걸쳐 이미 실행조직을 가지고 있기에, 더욱 나은 미래를 위해 지원 조치를 신속히 시행하여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CGIAR(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은 개별국가단위의 농업연구조직과 민간분야 그리고 NGO 등과 연대하여 보다 탄력적인 식량안전의 체계를 도입하는데 함께 연구활동을 개선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유엔은 2021년에 식량시스템에 대한 정상회의의 개최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면한 도전에 대응하는 지구적 차원의 노력을 조직하는 주요한 기회를 제공할 것입니다.

소수에 제한되어 있던 성공의 사례들을 모두가 공유하는 표준으로 만들기 위하여, 백지상태에서 해당 정부와 지역은행, 지원기구 그리고 민간 분야 간에 실제적인 파트너십이 형성되어야 하며, 모든 국가들의 농민과 수요자들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제기구들이 나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공동선을 향한 집단적인 노력과 인류애라는 정신의 고양 그리고 가장 약하고 힘든 자들을 향한 애정과 배려를 통하여, 인류사회의 농업과 식량 안전체계에 팬데믹이 던진 복합적인 도전을 극복하고, 보다 튼튼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의 경로 위에 균형적인 발전을 이루는 세상을 만들어 길 수 있다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입니다.

 

Signed by,

H.R.H Prince Hasan Bin Talal of Jordan;

Rashid Alimov, Secretary General of the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2016-2018;

Abdulaziz Altwaijri, former Director General ISESCO;

Shaukat Aziz, Prime Minister of Pakistan 2004-2007;

Sali Berisha, President of Albania 1992-1997, Prime Minister 2005-2013;

Jean Omer Beriziky, Prime Minister of Madagascar 2011-2014;

Wided Bouchamaoui, Nobel Peace Prize Laureate 2015;

Gordon Brown, Prime Minister of the UK 2007-2010;

Helen Clark, Prime Minister of New Zealand 1999-2008, Administrator of UNDP 2009-2017;

Herman De Croo, Minister of State of Belgium, Honorary Speaker of the House;

Emil Constantinescu, President of Romania 1996-2000;

Mirko Cvetkovic, Prime Minister of Serbia 2008-2012;

Susan Elliot, CEO, President Committee on American Foreign Policy;

Jan Fisher, Prime Minister of the Czech Republic 2009-2010; Ameenah Gurib-Fakim, President of Mauritius 2015-2018;

Nathalie de Gaulle, Founder of Societer & NG-INOV;

Noeleen Heyzeer, Under-Secretary-General of UN 2007-2015, Member of the UN Secretary-General’s High Level Advisory Board on Mediation;

Mladen Ivanic, Member of the Presidency of the Bosnia and Herzegovina 2012-2017;

Ekmeleddin Ihsanoglu, Secretary General of the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 2004-2014;

Gjorge Ivanov, President of North Macedonia 2009-2019;

Ivo Josipovic, President of Croatia 2010-2015;

Mats Karlsson, VP of the World Bank 1999-2011;

Shigeo Katsu, former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President of the Nazarbayev University;

Kerry Kennedy, President Robert F. Kennedy Human Rights;

Jadranka Kosor, Prime Minister of Croatia 2009-2011;

Ivo Komsic, Member of the Presidency of Bosnia and Herzegovina 1993-1996;

Chandrika Kumaratunga, President of Shri Lanka 1994-2005;

Zlatko Lagumdzija, Prime Minister of Bosnia and Herzegovina 2001-2002, deputy Prime Minister 2012-2015;

Yves Leterme, Prime Minister of Belgium 2008, 2009-2011;

Tzipi Livni,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Israel 2006-2009, Minister of Justice 2013-2014;

Budimir Loncar,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FR Yugoslavia (1987-1991);

Justin Yifu Lin, Chief Economist and Senior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2008-2012;

Petru Lucinschi, President of Moldova 1997-2001;

Rexhep Meidani, President of Albania 1997-2002, Member of the Academy of Sciences;

Stjepan Mesic, President of Croatia 2000-2010;

Peter Medgyessy, Prime Minister of Hungary 2002-2004;

Amre Moussa, Secretary General Arab League 2001-2011,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Egypt 1991- 2001;

Joseph Muscat, Prime Minister of Malta 2013-2020;

Rovshan Muradov, Secretary General NGIC;

Bujar Nishani, President of Albania 2012-2017;

Djoomart Otorbayev, Prime Minister of Kyrgyzstan 2014-2015;

Roza Otunbayeva, President of Kyrgyzstan 2010-2011;

George Papandreou, Prime Minister of Greece 2009-2011;

Ana Palacio,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pain 2002-2004;

Rosen Plevneliev, President of Bulgaria 2012-2017;

David Pan, Executive Dean Scwarzman College, Tsinghua University;

Petre Roman, Prime Minister of Romania 1989-1991, Speaker of Parliament 1996-2000;

Ismail Serageldin, Co-Chair NGIC, Vice President of the World Bank 1992-2000, former Chairman CGIAR;

Laimdota Straujuma, Prime Minister of Latvia 2014-2016;

Petar Stoyanov, President of Bulgaria 1997-2002;

M.S. Swaminathan, Founder Chairman M.S Swaminathan Research Foundation;

Boris Tadic, President of Serbia 2004-2012;

Eka Tkeshelashvili, deputy Prime Minister of Georgia 2010-2012;

Marianna V. Vardinoyannis, Goodwill Ambassador of UNESCO; Vaira Vike-Freiberga, Co-Chair NGIC, President of Latvia 1999-2007;

Filip Vujanovic, President of Montenegro 2003-2018;

Carlos Westendorp,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Spain 199501996;

Yashar Yakish, Minister of Foreign Affairs of Turkey 2002-2003;

Muhammad Yunus, Nobel Peace Prize Laureate 2006;

Viktor Yushchenko, President of Ukraine 2005-2010;

Kateryna Yushchenko, First Lady of Ukraine 2005-2010, President Ukraine 3000 Foundation;

Valdis Zatlers, President of Latvia 2007-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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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3일 미국 국무부장관인 Mike Pompeo는 국내방송사인 ABC와 인터뷰에서 미국 내에 진행되고 있는 COVID-19 상황에 대해 중국에게 비난을 퍼부었다. 미국 외교의 최고책임자인 그는 평소에 하는 의례적인 비난의 범주를 넘어서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중국은 비공식적인 (생화학무기) 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셰계를 감염시킨 역사를 지니고 있다. 중국의 연구소에서 발생한 사고로 세계가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 이번 사태가 처음은 아니다.”

상기의 언급은 단순히 사실을 완벽히 왜곡시킨 것뿐만 아니라 자신이 책임자로 있는 부서(미국무부)에게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를 안겨준 것이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미국의 외교를 대표하는 책임자가 민간TV 프로그램에 나와 상대국가에 대하여 조작된 거짓말을 퍼트리고 해당국가가 여러 번에 걸쳐 세균전을 시도했다고 고발한 것이다.

명백히 그는 미행정부와 국무부를 대신하는 위치에서 자격미달이며 무책임하고 명백히 수치스러운 일을 저지른 것이다. 이런 수준의 협잡꾼 언급이 미치는 영향은 겉잡을 수 없는 것으로, 과연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고 침묵을 지킬 것을 기대하려는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부부의 장관은 미국외교를 책임지는 개인으로, 대통령에 의해 지명되어 미국과 전세계 국가들 간의 관계를 관리하는 자리이다. 미국의 외교관계를 이끌고 지원하면서 전세계에 산재되어 있는 대사관과 외교관들을 관리하고 운용하는 직책이다.

통상, 외교직을 생각할 때 우리는 예의가 바르고 합리적이며 냉정한 행동의 소유자를 떠올린다. 상대국의 감정을 고려하면서 자국의 이해와 위상을 고려하여 균형을 갖추며 처신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미국의 현직 국무장관인 Pompeo는 이런 상식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인물이다. 세계 속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역할을 유지하기 위해 명예롭고 전문적이며 성실하게 외교업무를 수행하기는커녕, 그는 자신의 사무실과 산하조직을 허무맹랑한 거짓으로 가득찬 쓰레기장으로 변질시키면서, 미국이 현재 겪고 있는 역경에 대해 거짓 정보를 퍼트리고 사실을 감추며, 상대국가들을 중상하고 비난하는데 모든 노력을 쏟고 있다. 특히 우한연구소가 COVID-19의 진원지라는 그의 주장은 수치스러움의 막장을 보여준다.

그가 언급한 음모설은 전세계 과학분야 전문가들과 기구들의 일치된 의견으로 부정당했으며, 단 한 줄의 진실조차 담고 있지 않다.

Pompeo는 정보기관이 자신의 이야기를 증명한다고 주장하지만 현안의 뒷줄에 앉아 있는 미국 관계자들은 실제적으로 이를 부인하고 있고, 그의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낳고 있다. 한편 백악관은 이에 대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국무부는 15쪽의 문건을 통해 음모설을 옹호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어쨌든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관련보도의 엉터리 기사들이 돌고 있는 가운데, 평소 미국의 편을 들어주던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해당 관계자들조차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Pompeo는 즉흥적으로 가증스러운 거짓말을 만들어서 외교관직이 주는 특권과 지위를 악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계산에 따라 중대한 거짓으로 고발을 진행한 것이다.

이런 언급은 못 본척 지나칠 수도 없고, 카페트를 청소하듯이 지울 수도 없다. 미국의 주류매체들은 과장된 근거를 바탕으로 중국의 외교를 반복적으로 비난하기 즐겨 하면서, 북경정부가 어떤 수준에서도 확인하지도 시행하지도 않은 사실들을 팩트와 상관없이 제멋대로 떠벌리고 있다.

제3세계 국가군들만이 조작된 정보를 지지할 것이라는 믿는 것은, 안이한 이중적인 태도이며 Pompeo가 국제적 규모로 진행하고 지구를 대상으로 하는 사기극과 선전캠페인을 검증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이다.

중국당국이 이런 거짓조작을 묵인할 것인가? 그의 언급은 그가 소속된 나라의 입장을 대변하고 그의 지위가 부여하는 공식적인 성명이다. 폼페이오의 거짓말은 미국의 신뢰도에 타격을 가하고 전세계가 이를 인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이제부터 중국이 미국에 대하여 중대한 반격을 가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고 있다.

결론적인 메시지는 분명하다. Pompeo라는 존재는 그간 미국이 지닌 좋은 의미의 외교에 대한 블명예이자. 자신의 직책에 대한 수치이며 모든 세계인에 대한 모독이다. 이제는 중국에 대해서가 아니라 거짓정보를 만들어 내는 미국에 대해 주의를 집중해야 할 때이다. 지금이 (미국에 대한) 경계를 해야 할 출발의 시점이다.

 

출처: CGTN, 2020-05-05.

Tom Fowdy

Durham과 Oxford 대학에서 정치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언론인. 주로 중국과 북한 영국과 미국에 관한 기사 제공

 


<보충기사>

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파이낸셜타임지의 전임 정치경제평론가인 Mr. E.Luce가 쓴 폼페이오 평가서이다. 번역없이 원문 그대로 게재한다.

 

Mike Pompeo and America’s end of times diplomacy

Regardless of character, regimes have tended to show their wilier face to the world. Mao Zedong had Zhou Enlai, Ronald Reagan had George Shultz, Margaret Thatcher had Lord Peter Carrington. That is diplomacy — using persuasion to achieve what would be far costlier by war.

Mike Pompeo is an exception. Donald Trump’s secretary of state does not finesse his boss’s instincts. He talks through megaphones at Americans. The world is not there to be persuaded. It is a backdrop to Mr Pompeo’s domestic messaging. Foreigners, as a result, have stopped taking him seriously. That is a pity because Mr Pompeo fulfils one crucial qualification to be an effective diplomat: the trust of his leader.

Mr Pompeo could be the great Trumpian explainer, the approachable face of America First. Instead he has picked the role of Baghdad Bob, Saddam Hussein’s spokesman, who exaggerated his leader’s instincts. Such mimicry extends to Mr Pompeo’s management.

Last week Mr Trump fired the state department’s inspector-general — its supposedly independent watchdog — at Mr Pompeo’s behest. Mr Trump conceded he had never heard Steve Linick’s name. He did not question Mr Pompeo’s motive. Mr Linick’s investigations posed a threat to Mr Pompeo. In addition to his use of staff for trivial errands, such as picking up dry cleaning, Mr Pompeo had allegedly faked an emergency order to circumvent a block on US arms sales to Saudi Arabia.

If Trump says one thing before breakfast and the opposite afterwards, Pompeo keeps step. Few others have proven so adept

Instead of facing the music, Mr Pompeo asked Mr Trump to shut it down. That is how Mr Trump operates. Mr Linick is the fifth inspector-general to be sacked in the past two months. “Someone was walking my dog to sell arms to my dry cleaner,” was how Mr Pompeo mocked the uproar. That is the language of impunity.

On top of loyalty, Mr Pompeo is driven by two compulsions. The first is a burning ambition to succeed Mr Trump. That means never being on the wrong side of the president. If Mr Trump says one thing before breakfast and the opposite afterwards, Mr Pompeo keeps step. Few others have proven so adept. As a result, Mr Pompeo has amassed unusual power. He dominates Robert O’Brien, the national security adviser, and Mark Esper, the US defence secretary. Not since Henry Kissinger has America’s chief diplomat wielded such influence.

Unlike Nixon’s consigliere, who was an inexhaustible originator of ideas, Mr Pompeo is his master’s voice. Trying to keep up with Mr Trump may explain Mr Pompeo’s short fuse. When his actions are questioned, Mr Pompeo lashes out.

His second motive is loftier: to serve God. Many US politicians pay lip service to Christianity. Mr Pompeo is sincere. He served as a deacon and lay preacher in the 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Among its tenets are a belief in “end times”, that the world will conclude in the rapture of Christ’s second coming once prophecies have been fulfilled. Among these are the return of all Jews to the original Holy Land.

Since Mr Trump needs a high evangelical turnout in November to win a second term, Mr Pompeo’s beliefs align with his president’s goals. Unlike Mr Trump, Mr Pompeo’s theology is not for show. “Pompeo talks about God a lot,” says a former senior national security staffer. “Sometimes he does so in a self-deprecating way. But God is never far from his mind.”

The only trip Mr Pompeo has taken since the start of the US coronavirus lockdown was to Israel last week for a photo-op. Mr Pompeo had already abandoned decades of policy by shifting the US embassy to Jerusalem and giving the green light to Israel’s annexation of the West Bank. “I am confident the Lord is at work here,” Mr Pompeo said on an earlier visit. He meant it.

Mr Pompeo also means what he says about China, which he calls “Communist China”. This now includes openly stoking Taiwanese independence. That may be good politics but it is not diplomacy.Mr Trump puts all the blame on China for America’s pandemic toll and depicts Joe Biden, the Democrats’ presidential candidate, as its lackey. “A vote for Joe Biden is a vote for China”, said one pro-Trump advertisement.

China’s official media calls Mr Pompeo a “superspreader” of the “political virus”. Such bluster should be easy for the world’s leading diplomat to dismiss. But Mr Pompeo has robbed himself of standing. America and China now daily hurl conspiracy theories at each other. The rest of us inch uncomfortably close to the rapture.

 

Edward Luce

FT commentator on Politics & Economy

수, 2020/05/27-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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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체제의 순환고리를 어떻게 끊을 것인가

백낙청 선생은 1997년 쓴 「분단체제극복운동의 일상화를 위해」를 통해, ‘국가연합(남북연합)’을 자신이 1990년대 초반 이래 제기해온 ‘분단체제론’의 새로운 맥점으로 제시했다. 이 제시는 시기적으로 절묘했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민주정부 10년’이 시작되었다. 통일문제에 경륜이 깊은 김대중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 클린턴 정부와의 궁합이 맞아떨어져 1999년에는 ‘페리 프로세스’에 남북미가 합의할 수 있게 되었고(1994년의 제네바 합의는 북미 간의 합의였다), 2000년에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이루어져 6·15 공동선언을 내놓을 수 있었다. 더욱이 공동선언의 제2조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하여 분단체제론이 1997년 이래 새롭게 강조했던 (국가 또는 남북) ‘연합’ 통일 방안에 대해 드디어 남북이 모두 합의하게 되었다. 그렇기에 6·15 선언 직후 백 선생은 이 조항의 합의가 “획기적”이라 썼고, 더 후일인 2012년에 쓴 「포용정책 2.0을 향하여」에서는 이 조항이 “6·15 공동선언의 가장 빛나는 성취에 해당”한다고 극찬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어 들어선 노무현 정부에서는 우선 2005년 백 선생 자신이 “남·북·해외가 함께 만든 ‘6·15 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의 남측대표라는 중책”을 맡아 “3월과 6월 및 8월에 금강산과 평양, 서울에서 각기 공동행사를 치르는 등 ‘6·15 시대’가 크게 활력을 되찾는 현실을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2007년의 10·4 정상선언으로 “남북연합의 건설은 …… 이미 시작되었”다고 후일 회고한다. 당시 고위급회담에 총리가 나가고, 그 총리 회담의 정례화가 언급되고, 정상회담도 수시로 열자는 언급이 오갔던 것 등이 바로 “(남북)연합기구에 해당하는 조치들이 많이 마련된” 것이었다고 풀이하고 있다.

이상 백낙청 선생의 여러 회고를 종합해보면, ‘남북연합’은 1989년 노태우 정부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서 처음 등장하여, 6·15 선언에서 버전 1.0을 완성하고, 2007년 10·4 선언에서 1.5가 이뤄지며 (2012년 대선 때 백 선생이 제안한 ‘2013년 만들기’에서의 버전 2.0 기획은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으로 무산되었지만) 이제 촛불 이후에 2012년 대선 실패로 유실되었던 그 버전 2.0의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시간의 축을 따른 직선적, 선형적 성장도면이 그려진다. 간단히 도식하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그러나 위 <그림 3>은 내가 겪어왔고, 생각해왔던 ‘87년 이후 지난 30년’, 1987년 6월에서 2016년 촛불 직전까지의 상(像)과 크게 다르다. 내 실감 속에서 그 30년은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가 87년의 거대했던 민주 동력을 서서히, 그리고 완전히 삼켜버린 시간이었다. 그 느낌을 실감 그대로 전하기 위해서 촛불혁명 이전인 지난 2015년 12월 17일, 필자가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했던 강연을 강연문 그대로 인용하면서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15년이 채 보름도 남지 않았다. 새해가 되면 87년 이후 29년째다. 87년 태어난 아기가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된다. 한 세대가 지났다. 벌써 그런가. 87년의 벅찼던 희망과 기대가 어제 일 같은데, 벌써 그렇다. 그 30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가?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누구는 지금이 1972년의 유신 전후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하고, 누구는 더 거슬러가 1894년 청일전쟁 전야의 상황과 비슷하다고까지 말한다.

민주화운동 세력은 87년 6월 항쟁 이후 이제 대한민국은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민주주의의 다리를 건넜다고 확신했다. 4·19 때처럼 역사가, 민주주의가 거꾸로 다시 돌아가는 일은 결코 없다고. 60 – 70 – 80년대 30년 동안, 4·19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힘이 자라났고, 그랬기에 그 철벽같았던 전두환 군사독재를 밀어뜨릴 수 있었다고. 이제 한국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 정상국가가 되었다고. 어둠의 임계점을 넘어 광명의 땅으로 들어섰다고. 세계도 환호하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고. 역사발전의 곧고 탄탄한 정상궤도로 확실히 진입했다고. 다소의 저항이 있겠지만 시대의 대세는 돌이킬 수 없다고. 그런데 시간이 꼬여버린 듯하다. 다 지나왔다고 생각해왔던 시간 안으로 거꾸로 다시 떠밀려가고 있다는 느낌이니 말이다.

지난(2016년) 10월 ‘백년포럼’에서 이부영 전 의원은 87 민주화운동 성취 이후, 주도 세력에게 ‘그림’, ‘로드맵’이 없었다고 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림이 분명했다. 그 그림은 4·19 이후 30년의 민주화운동이 산출한 것이다. 이 그림은 직선 몇 개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그림 4>)

문제는 이 그림에 있었다. 87년의 주도 세력은 이 그림처럼 앞에 열린 길이 탄탄한 평지 위의 직선 길이라고 생각했다. 87년을 통해 획득한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를 열심히 하면, ‘경제사회적·실질적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따라 이뤄질 거라고 생각했다. 잔잔한 호수 위에 돌을 하나 첨벙 던지면 차츰차츰 퍼져가는 가는 동심원처럼.

그런데 그 후 30년의 실제는 어떠했는가. 87년 10주년에는 ‘IMF 사태’를 당했다. 20주년에는 ‘6월 항쟁을 통해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내지 정치적 민주주의는 달성했으나 경제·사회 면에서의 실질적 민주주의는 여전히 부실하거나 심지어 후퇴했다’는 식의 진단들이 나왔다. 이제 30년이 코앞인데, 이제는 그 형식적·절차적 민주주의, 정치적 민주주의조차 제대로 ‘달성’된 것이었는지 의문이 드는 지경이다.

나는 87 주도 세력이 개인 욕심에 빠져 민주화의 대업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는 식의 설명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진단은 흔히 동기가 의심스럽거나, 혹은 너무 단순하여 그렇듯 의심스러운 동기에 이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그런 이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정치권으로 들어간 민주화운동 인사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할 이유도 없는 것 같다. 중요한 점은 나름 열심히 한다고들 했는데 엉뚱한 곳에 와 있는 원인이 뭐냐다. 직선을 따라 30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다시 둘러보니 왠지 출발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다는 느낌, 기분 좋지 않은 데자뷔, 기시감이다.

이 강연 당시(2015년 12월)는 박근혜 정부의 전성기였다. 그때의 사회 분위기를 기억하는 분이라면 모든 게 막힌 듯 얼마나 암담했는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87년의 에너지는 완전히 실종된 것으로 보였다. 민주주의는 철저히 재갈 물리고 총체적 블랙리스트가 정치, 사회, 학술, 문화 전방위를 지배했다. 남북관계는 뿌리까지 얼어붙어서 오히려 87년 이전인 전두환 정부 시기보다 대화가 더 막혀 있다고 느낄 지경이었다. 이제는 수십 년이 갈 ‘제2의 10월 유신’이 목전에 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다 이 강연 4개월 후, 4·13 총선이라는 최초의 반전이 왔다. 그러나 그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끝내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던 촛불혁명이 왔다. 87년 역시 그러했다. 당시 누구도 87년 6월과 같은 거대한 ‘판 갈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4·19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를 회고하여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은 결국 온다’거나 ‘민주주의는 역시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낭만적으로 칭송하는 데 그친다면, 좋게 말해 순진하다. 엄격히 반성해봐야 할 일이다. 도대체 한국 사회에는 어떤 마(魔)가 씌워 있기에 세계를 놀라게 한 그토록 대단한 민주혁명이 연이어 벌어졌음에도 그것이 모두 번번이 독재로 회귀하고 말았는가? 촛불혁명이 또다시 같은 운명을 겪지 않게 되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8년 촛불 이후 백 선생의 지난 시간의 회고를 보면 그런 긴박감, 절박감, 위기의식, 그 30년의 진행 상황에 대한 회오나 반성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동안 남북연합 잘 해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잠시 정체가 있었지만, 이제 다시 해온 대로 남은 길 그대로 마저 밀고 나가면 된다는 식이다. <그림 3>의 남북연합 완성의 직선도와 <그림 4>의 민주화 완성의 직선도는 그래서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고, 2005년 9·19 합의와 2007년 2·13 합의는 북핵문제 해결의 경로를 예시했으며, 같은 해 <10·4 남북정상선언>은 종전과 평화체제문제를 화두에 올렸다.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동시에 물어야 한다. 그럼에도 왜 6·15 선언 이후 채 몇 개월이 안 되어서부터 강한 ‘퍼주기’ 후폭풍에 시달려야 했고, 6자회담의 중요한 합의들은 왜 금방 휴지 조각이 되어야 했으며, 10·4 선언의 성과는 오히려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종북몰이의 단골 먹거리 메뉴로 역용당해왔던 것일까. 과연 그 성과들은 ‘포용정책 버전 1.0, 1.5, 2.0’에 이르는, 그리고 이르게 되고야 말, 순탄한 직선적 상승 코스였던 것일까. 오히려 이 과정은 그 상승만큼의, 아니, 그 상승 폭을 오히려 능가했던 후폭풍과 역풍을 수반하여 그 직선의 방향을 하향으로 짓누르고 구부려 뜨려 결국 앞으로 나간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원주(圓周)를 따라가 역방향으로 돌아갔던 것 아닌가? 즉 분단체제가 다시금 강화되고 있었고, 그에 따라 그 가공할 ‘마의 순환고리’가 굉음을 일으키며 다시금 작동하기 시작했던 것 아닌가? <그림 5>처럼 말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이들이 ‘분단체제의 역풍’이 다시 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을 때, 백 선생은 상황이 좋지 않음을 인정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결코 그렇게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여전한 신념이다 …… 회복 불능은 아니다. 심지어 정지 상태도 아니다. 한반도식 통일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궁극적으로는 시민참여 통일과정으로 될 가능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라고 썼다. 이미 시작된 남북연합이 돌이킬 수 없는 추세가 되었기 때문에 분단체제는 점차 약화될 수밖에 없다는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에는 분단체제가 시대를 역진하여 민주혁명 이전의 상태로 완전히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반복적 일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마의 순환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절적 단절’이 필요하다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양적 변화의 사고법만 존재한다. 이는 <그림 3>의 남북연합의 직선도에서 유추할 수 있다. 남북연합의 증가만큼 분단체제는 감소한다. 역시 직선적 관계다. 백 선생이 신념을 가지고 말하듯 남북연합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항상 작동한다. 간혹 정부 간의 길이 막히더라도 백 선생이 제기했던 ‘시민참여 통일과정’의 길로 더욱 열심히 나가면 된다. 그렇게 하여 남북연합의 힘이 커지는 만큼 분단체제의 힘은 계속 약화된다.(<그림 6>)

분단체제는 어차피 ‘흔들리고,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그런 분단체제가 다시 강고해질 수가 없다. 그리하여 어느덧 분단체제는 더 이상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닌 것으로 인식된다. 이미 별다른 힘을 쓸 수 없는, 사멸하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게 하나 있다. 그 ‘사멸의 끝’은 어디일까? 과연 <그림 4>에서 굵은 직선은 분단체제가 0이 되는 지점에 언제나 도달할까? 과연 도달할 수 있는 것일까? 혹시 영원한 점근선 아닐까? ‘지평선 도달하기’와 같은 것 말이다. 그 사멸의 끝은 저 멀리 보이는 지평선에 있다. 자, 그러니 분단체제의 완전한 사멸에 이르기까지 흔들리지 말고 계속 나가자. 그러나 지평선이란 다가가는 만큼, 정확히 그만큼, 더욱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 보니 저 지평선에 도달할 그 시점(즉 분단체제가 종식될 그 시점)이 남북연합이 완성된 ‘1단계 통일’ 때일지, 아니면 그 이후 더욱 높은 수준에서 이루어질 ‘2단계 통일’ 때일지 전혀 명확하지 않다.

그런데 그러다 보니 어느덧 이 과정에서 ‘분단체제’가 이제는 별로 유해하지 않은, 잘 길들여진, 순치(馴致)된 존재가 되어버린 듯하다. ‘남북연합’과 ‘과정으로서의 남북연합’ 그리고 ‘과정으로서의 통일’은 ‘분단체제를 상정’한다고 하니, 이제 분단체제는 1단계, 2단계 통일의 전제, 바탕이 된다.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문제의 해결을 지향하는 원대한 분단체제론의 장도(長途)를 동반하는 충직한 종자(從子)가 되어버린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진정 고민되는 것은 그렇듯 한가한 ‘먼 미래문제’가 아니다. 과연 민주혁명의 동력을 (4·19와 87년 6월) 그토록 완벽하게 말아먹고 말았던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를 지금 여기서 (촛불혁명 이후) 어떻게 완전히 끊어야 하느냐라는 절박한 현실의 문제다. 지금껏 해온 대로 ‘남북연합’ 열심히 하고, 혹시 정부가 시원치 않으면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마찬가지로 열심히 하면, 결국 문제없다는 것이 분단체제론의 해법이었다. 그러는 어느 사이 분단체제론에서 ‘분단체제’는 이제 별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되어버린 듯하다. 오래 전부터 ‘흔들리고’ ‘허물어지고’ ‘해체되어’ 왔다고 하였으니, 어느 사이 이제는 무해(無害)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러나 이런 방식의 사고법으로는 분단체제를 결코 빠져나올 수 없고(빠져나올 생각이 별로 없다), ‘마의 순환고리’를 끊을 수도 결코 없다(그런 게 반복적으로 작동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분단체제론의 사고법은 양적 점증(漸增), 점변(漸變)론이다. 백 선생이 제시해온 ‘남북연합’과 ‘시민참여 통일과정’을 열심히 하면(점증), 분단체제는 서서히 사라지고 통일은 서서히 온다(점변). 결국 현상유지론이다. 반면 양국체제론은 ‘질적 단절’을 주장한다. 분단체제는 마의 순환고리를 통해 대략 30년을 주기로 완강하고 반복적으로 작동해온 강력한 실체다. 확실한 ‘질적 단절’을 통해서만 끊어낼 수 있다. 분단체제를 끊어내야, 현상을 타파해야만, 비로소 통일의 길이 열린다. 그러나 분단체제론에는 이러한 ‘분단체제 현상타파’의 사고법이 없다. 어느덧 ‘분단체제 현상유지론’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일에 대해 많은 말을 하지만 실제로 통일로 가는 길은 “두루뭉수리 …… 어물어물 진행되는 통일” 과정이라고 할 뿐, 그 실체가 묘연하다.

‘분단체제의 마의 순환고리’는 이미 4·19 이후 30년 동안에도 한 차례 작동했던 바 있다. 박정희 – 전두환 정권은 일체의 비판과 저항을 용공·좌경·친북으로 몰아치면서 ‘비상국가체제’의 철옹성을 높이 세웠다. 이 과정에서 4·19 주도 세력은 처절하게 무력화되고 말았다. 과연 그때 통일론이 없고, 통일에 대한 의지와 열망이 없고, 분단체제극복운동이 없어서, 4·19는 그렇듯 실패해버리고 말았던 것일까? 이어 87년의 거대한 민주적 에너지가 이윽고 그 ‘비상국가체제’를 종식시킨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힘조차 동구권 붕괴 이후 ‘북한붕괴론, 흡수통일론, 북핵위기론’이라는 새로운 교의로 무장한 신(新) ‘비상국가체제’ 세력에 의해 다시금 ‘종북’, ‘퍼주기 세력’으로 몰려 다시금 ‘귀 빼고 뭣 뺀 당나귀’처럼 무력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순치되었던 것은 분단체제가 아니라, 그 분단체제를 끝장내보겠다 했던 저항 세력, 87년의 민주 동력이었다. 그 시간 역시 30년이었다. 87년 6월은 과연 승리한 것인가? 아니다. 4·19가 그랬던 것처럼 실패했다.

암울했던 2015년 겨울의 강연에서 나는 그것을 쓰라리게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쓰라렸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내 자신 80년대의 대변동에 미미한 일부였을지라도 풍찬노숙해가며 온몸을 던졌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까지 몽땅 말아먹은 이유를, 아프지만, 아파도 견디면서, 꼼꼼하게 추적해보았다. 그 결과 악몽 같은 과정이 ‘반복’된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 핵심에 ‘남북의 극단적 적대’를 동력으로 작동하는 ‘분단체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마의 순환고리’ ‘분단체제의 반복강박’이라 불렀다.

절망을 이야기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반대로 절망을 빠져나가는 길을 찾자는 것이었다. 반드시 찾아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원인을 모르는 게 문제다. 원인을 확실히 알면 해법이 반드시 있다. 그 12월의 강연에서는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야기했다. ‘분단체제’가 문제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분단체제에서 공존체제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뭔가 아직 석연치 않았다. 평화체제, 공존체제는 좋다. 누구나 좋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그 평화체제, 공존체제를 이룰 수 있는가? ‘분단체제’를 종식시킬 열쇠, 핵심이 뭔가?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그냥 좋은 말’ ‘공자님 말씀’하고 끝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그것이 무엇일까? ‘질적 단절’의 그 고리가 무엇인가?

강연 이후 오래 생각했다. 답은 가까운 데 있었다. 양국체제였다. 그것을 2016년 5~6월의 4회 대중강연에서 밝힐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부터 대중적인 매체를 통해 칼럼 형식으로 가능한 널리 알려 나갔다. 양국체제가 현실화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로 보았기 때문이다. 2018년 4·27 판문점 회담 결과를 예견하는 글을 마지막으로 칼럼 활동은 일단 접었다. 이제는 큰 흐름이 잡혀가는 것으로 보였고, 그 상황에서 그런 방식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일단 다했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책 출판을 준비했다. 그것이 학자로서 해야 할 남은 숙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제 여기서 양국체제의 발상을 압축하여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마의 순환고리’는 ‘분단체제’를 통해 작동한다. 어떤 시스템도 동력이 끊어지면 정지하듯이 어떤 역사적 체제도 그 선행조건이 사라질 때, 같이 사라진다. ‘분단체제’는 미소 냉전과 남북 적대라는 두 개의 동력(선행조건)으로 작동되어왔다. 90년대 초 미소 냉전이 이윽고 종식되었음에도 분단체제가 존속해온 이유는 남은 동력인 남북 적대가 존속했기 때문이다. 이 적대를 해소해야 분단체제가 씌워놓은 마(魔)와 주술(呪術)에서 풀린다. 우선 남과 북이 서로 상대가 자신을 소멸시키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돼야 한다. 남과 북처럼 참혹한 전쟁을 한 사이에서 그 믿음이 완전해지기는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장 분명한 것은 서로를 국가 대 국가로 완전히 인정하는 공식적·제도적인 조치들이다. 서로의 주권과 영토를 인정한다고 서로 그리고 세계만방에 약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양국체제다. 서로 정식 수교하여 대표부를 교환하고 이를 시발로 교류의 폭을 점차 늘려가는 것이다. 한국(ROK)과 조선(DPRK) 두 나라의 수교는 ‘한조(韓朝) 수교’다. 한조 수교는 코리아 양국체제가 공식화되는 첫 단추가 된다.

국가 간 수교가 적대관계 해소에 미치는 영향은 한중 수교에서 볼 수 있다. 서로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했던 수교 이전과 이제 서로 100만명씩 서로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수교 이후의 차이는 너무도 명백하다. 남북 수교가 한중 수교만큼 당장 빠른 효과를 내기는 어렵겠지만, 수교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수준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질 것은 분명하다. 분단체제론이 강조해온 남북 민중연대, 시민연대도 이때 비로소 본격화될 수 있다. 여기서 반드시 빠뜨려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양국체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북미 적대 역시 풀어야 한다. 미소 냉전이 종식되었음에도 한반도에서 냉전의 여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것은 그 파생물이었던 남북 적대와 함께 북미 적대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북미 역시 전쟁을 한 사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쟁을 했던 중국, 베트남과 이미 수교했다. 북미 적대 해소의 가장 현실적인 방법 역시 북미 수교에 있다. 따라서 양국체제는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를 통해 현실화된다. 남북 수교와 북미 수교가 이뤄지면 ‘분단체제’는 동력을 잃고 해소된다. ‘마의 순환고리’ 역시 따라서 끊긴다.


책 소개:

한반도 위의 남과 북은 여전히 정전(停戰) 상태의 ‘분단체제’를 존속하며 서로가 맞서고 있다. 이러한 전쟁 상태에서는 순수한 통일 의지와 열망조차도 갈등을 격화하고 독재를 강화하는 불쏘시개로 이용되는 ‘딜레마’에 봉착할 뿐이다. 『코리아 양국체제』의 저자는 체제의 전환(‘질적 단절’)을 통해 남북이 평화와 공존에 이르는 선명한 대안을 제시한다. 일 민족 이 국가의 평화체제이자 공존체제, 한마디로 ‘코리아 양국체제’이다.

이 책은 양국체제의 이론을 종합 정리한 1부, 촛불 이후의 현실 흐름과 이에 대한 양국체제론 입장에서의 진단을 모은 2부, 그리고 분단체제론과 양국체제론 간의 논쟁을 3부로 싣고 있다. 지난 실패의 역사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코리아 양국체제가 촛불혁명을 평화적으로 완성하는 길이라는 점을 역설하고 체제전환의 당위와 함께 구체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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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2020/05/2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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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미국은 구제금융 이상의 것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낸 <블룸버그>

#사례:

뉴욕 주 와쇼(Warsaw, NY)의 가족 식당 주인은 25명 종업원 고용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식당 내에서 손님 받을 수 없어 매상이 확 줄은 사장은 드라이브 스루로 음식만 사가게 하고 간간히 빵과 치즈 등도 함께 파는 궁여지책을 동원해 하루하루를 근근이 버티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이에 사장은 소상공인 재난지원금 대출인 급여보호프로그램을 이용하려 30년간 거래한 지역 은행에 12만5천 달러(약 1억 5천만 원) 대출을 신청했다. 그러나 은행에서 돌아온 답은 돈이 다 떨어져서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Fortune, April 30, 2020).

소상공인을 위한 구제금융이 시작된 지 14일도 안 돼 다 소진 됐다는 <포춘>지 기사

 

코로나19에 직접 타격 받은 소상공인과 서민

미국 정부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미국 경제가 1920년대 대공황급 이상으로 악화될 것을 우려해 선제적 방어에 나섰다. 엄청난 돈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런데 막대한 이 긴급재난지원금을 갚을 이들은 정작 누구인가? 돈이 곳간에서 흘러 넘쳐서 준 것이 아니라 빈 곳간에서 돈을 찍어서 풀어낸 것이니 향후에 납세자들이 이 돈을 갚아야 한다. 그리고 향후란 그리 먼 미래도 아니다. 현재 50세 미만의 직장인들이 갚아야 할 당사자들이기 때문이다.(“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Fortune, April 21, 2020).

돈을 찍어 푸는 것이 사망 직전의 미국 경제를 살릴 유일한 방법임을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좋다 그렇다면 그것은 누구에게 우선적으로 쓰여야 할까? 답은 명확하다. 이것을 갚아 나가야 할 이들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들은 국민들이고 서민들이다. 당장 실탄이 필요한 이들에게 가야 한다. 한시가 급한 사람들 말이다.

그런데 서민들이 일하는 곳은 대부분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다. <뉴욕타임스>가 만든 아래 표를 보면 큰 그림이 보인다. 미국에선 고용근로자 500명을 기준으로 그 아래를 중소기업으로 그 이상을 대기업으로 분류하는데,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사업체에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그리고 100명 미만의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체에서 대부분의 서민들이 일을 한다. 2016년 현재 6천만 명에 이르는 근로자가 3,100만 개의 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그래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들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일단 막는 것이 매우 시급한 일이다. 그것이 곧 일반 서민을 보호하는 지름길이기에 그렇다.

미국 민간부문 근로자의 업체(고용자수)별 고용 현황

소상공인 자영업체에 미국의 민간부문 근로자의 거의 절반이 고용되어 있다 <출처: 뉴욕타임스>

정부가 소상공인들을 돕겠다며 내놓은 돈은 이제까지 6,600억 달러(약 809조 원: 1차 3,490억 달러(약 429조 원); 2차 3,100억 달러(약 380조 원))이다. 이름은 급여보호프로그램(Paycheck Protection Program:이하, PPP), 그걸로 직원의 급료를 주고 해고하지 말라는 취지로 붙인 이름이다.(João Granja 외, 2020). 그런데 그 돈은 제대로 쓰였을까? 그렇지 않아서 문제다. 위의 사례에서 보듯 혜택을 본 이들은 매우 적고 대부분 PPP 구경도 못했으니까. 그렇다면 그 돈은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쓰였을까?

 

대기업이 낚아채간 소상공인 재난지원금(PPP)

영세자영업자 같은 소상공인에게 주라고 국가가 푼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위 사례의 식당 사장의 말을 들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돈이 어떻게 다 떨어졌는지 곧 알게 되었다.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Ruth’s Chris Steak House)같은 큰 체인점이 정부가 돈 풀자마자 바로 신청해서 수백만 달러를 가져갔다. 그런 큰 회사는 일 년에 수백만 달러를 번다. 정말 화가 났다. 그런 대형 식당 체인이 소기업인가. PPP라는 게 원래 소상공인 도우라고 조성한 돈 아닌가? 근데 왜? 도대체 왜 그 돈이 그들에게 갔는가?”(Fortune, April 21, 2020).

이런 상황은 와쇼의 식당 사장만 겪는 게 아니다. <뉴욕타임스>에 소개된 뉴욕시에서 6개의 식당을 경영하며 310명을 고용한 제법 큰 소상공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도 PPP를 신청했지만 단박에 거절됐다. 그의 입에서도 “범털(큰 회사)들은 구제금융 받고, 나 같은 개털들은 못 받고 이게 말이 되나?”하는 분통이 터져 나왔다.(“‘The Big Guys Get Bailed Out’: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New York Times, April 20, 2020).

그럼 큰 식당 체인들은 도대체 얼마나 타 갔을까? 100개 이상의 점포에 5천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는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가 2천만 달러(악 245억 원)을 받았다. 전국에 189개 점포를 갖고 8천 명의 직원을 갖고 있는 햄버거 체인점 <쉐이크 쉑>(Shake Shack)은 1천만 달러(약 123억 원), 샌드위치 체인점 <포트벨리>(Potbelly)는 전국에 약 500개 점포가 있고 직원 수는 6천 명에 이르는데 이 회사도 소상공인 구제금융 1천만 달러를 받았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또 다른 대형 체인 <제이 알렉산더스>(J. Alexander’s)도 1,510만 달러(약 185억 원)의 PPP를 따냈다.(“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요새 말로 ‘득템’(좋은 것을 획득했다는 신조어)했다.(그것이 득템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히겠다).

이것을 두고 식당, 술집, 호텔 등 사업체의 사교단체인 <뉴욕시접객업소연맹>(NYC Hospitality Alliance)은 “정말 분노와 짜증이 난다. 정부의 지원은 소상공인 영세 자영업 식당에게 가야 마땅하다”는 성명을 냈다. <미국식당협회>(National Restaurant Association)에 따르면 3월 이후 4월 중순 현재까지 미국에서 약 8백만 명의 식당 종사자 또는 노동력의 3분의 2가 해고당했다. 식당업계는 3백억 달러(약 36조7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고, 4월말까지 추가로 5백억 달러(약 61조 원)의 손실을 입을 것으로 추정했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대기업체인 보다 영세 식당들의 타격이 컸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전자는 코로나사태가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아 셧 다운(정상영업중지)이 연장되더라도 버틸 여력들이 있어 잘 넘길 것이지만, 영세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약 3분의 2가량이 사라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세업자를 살리라고 제공한 구제 금융을 덩치 큰 대기업이 톡 채가 버렸다. 대기업의 가로채기는 다른 곳에서도 벌어졌다.

 

소상공인 구제 금융에 숟갈 얹은 호텔 등 대기업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거의 300개에 이르는 상장기업들이 소상공인 구제금융 중 10억 달러(약 1조 2천억 원)을 가져갔다. 예를 들면, 텍사스 주 달라스시 에 기반 한 호텔회사 애쉬포드 주식회사(Ashford Inc.)는 리츠 칼튼 등의 특급호텔을 소유한 호텔업계 제왕이다. 이런 회사가 7,600만 달러(약 934억 원)의 PPP 구제 금융을 받았다. 애초에 신청은 간 크게도 총 1억2천6백만 달러 (약 1,544억 원)을 했다. 그 절반가량을 따낸 것이다.(“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Washington Post, May 2, 2020;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소상공인 구제금융 받아간 대기업 중 호텔업계의 제왕인 애쉬포드 소속 리츠 칼튼 아틀랜타 호텔의 전경. 이 호텔은 PPP로 2천9백만 달러를 받아냈다 <출처: 뉴욕타임스>

도대체 어떤 대기업이 이런 짓을 했느냐는 비난이 비등했지만, 소관부처인 중소기업청(The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이하 SBA)은 양심불량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길 꺼렸다.(뭐가 구리긴 구린 모양새다). 그러나 매체는 그동안 과거에 공개됐던 대출 프로그램 정보를 종합해 몇몇 회사 이름을 밝혀냈다.(우리나라 대부분의 맹탕 기자들과는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때 단서가 됐던 것은 바로 회사 대표(CEO)의 연봉이었다. 캘리포니아 주의 인공지능회사 <베리톤>(Veritone)은 2018년도 대표의 연봉이 1,870만 달러(약 230억 원), 동생이 1,390만 달러(약170억 원)를 받는 대기업이다. 그런데 이 회사는 이번에 650만 달러(약 80억 원)의 PPP를 받았다.(Washington Post, May 2, 2020).

뉴저지 주의 제약회사 <애퀴스티브 테라슈이틱스>(Aquestive Therapeutics)의 대표 연봉은 작년에 260만 달러(약 31억 원), 올해 이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480만 달러(약 59억 원)를 받았다. 복제약회사인 <웨이브 라이프 사이언스>(Wave Life Sciences)는 720만 달러(약 88억 원)의 PPP를 챙겼는데 회사 대표의 2018년 연봉은 580만 달러(약 71억 원)였다.(Washington Post, May 2, 2020). 회사 대표가 그렇게 엄청난 연봉을 챙기는 큰 회사이면서도 소상공인을 위한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마저 한 치의 주저함 없이 채간 것이다. 이들이 왜 부자가 되었는지 알만하다. 챙길 건 확실히 챙기자가 이들의 모토!

 

14일 내에 14년 치 지원금(1PPP) 소진그 많던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은 다 어디로 갔나?

그렇게 영세자영업자 구제를 위한 정부재난 지원금은 정작 그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 소진되었다. 특히 4월 3일 발효된 PPP는 14일이 되기도 전에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재무부 산하 중소기업청(SBA)이 보통 소상공인을 위해 대출프로그램으로 잡은 액수가 일 년에 300억 달러(약30조7천억 원)가 안 된다. 그런데 SBA의 14년 치 소상공인용 대출금액 보다 더 많은 코로나19 대응 PPP가 14일이 되기도 전에 동나 버린 것이다.(Fortune, April 30, 2020). 대부분 상장사인 대기업의 호주머니 속으로 홀랑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전국의 소상공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2차 PPP가 또 발주되었다. 1차 때 보다 대기업이 몸을 조금 사린 것 같지만 여전히 대기업이 채간 돈이 훨씬 많다. 다음 <뉴욕타임스>의 도표를 보라.

1백만 달러(약 12억 원) 이상의 거액대출이 초기 재정지원에 큰 부분 차지한다. 첫 번째 PPP의 경우, 소수 5% 기업에게 대출금 전체의 거의 절반이 갔다. 대기업이 채갔다. 15만 달러(약 1억 8천만 원) 미만의 소액을 빌린 소상공인은 전체 대출자의 70%를 차지하지만 빌려간 액수는 PPP의 15%에 불과하다. 2차 PPP는 조금 눈치가 보였는지 소액대출이 늘었다(1차 대출액 평균 20만6천 달러; 2차 평균 7만9천 달러). 15만 달러 미만의 소액대출은 PPP의 37%를 차지했다. 그러나 1백만 달러 이상 대출을 챙긴 대기업은 대출자의 1%에 불과하지만 받은 액수는 PPP의 4분의 1이 넘는다.(“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1,2차 소상공인대출(PPP) 대출액별 현황

소상공인대출(PPP) 중 1백만 달러가 넘는 대출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출처: 뉴욕타임스>

<뉴욕타임스>분석에 따르면 소상공인의 25%만이 정부지원을 받았다.(“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공간적으로 보면, 코로나로 타격을 가장 많이 받은 지역은 3월 4월 현재까지 뉴욕과 뉴저지 주이다. 그러나 시카고대학과 MIT대학의 학자들이 분석해 본 결과 이런 지역의 소상공인들은 PPP지원을 적게 받았고, 오히려 코로나의 직접적인 타격이 덜한 지역에서 지원을 더 많이 받는 불균형 현상이 벌어졌다.(João Granja 외, 2020; New York Times, May 7, 2020; Washington Post, May 2, 2020). 한 마디로 코로나 대응 PPP가 코로나와는 별로 상관없는 애먼 데로 가버린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관련 인물들이 따간 PPP

그렇다면 어떤 대기업들이 소상공인을 살리라고 준 돈들을 날름 삼켜버린 것일까? 어떤 루트로? 다음의 예를 보면, 그 실마리를 풀 수 있다.

<홀라도르 탄광>(Hallador Coal)이란 회사가 있다. 이 회사가 PPP로 타간 돈은 1천만 달러(약 123억 원)이다. 그런데 이 회사가 로비스트로 고용한 이는 다름 아닌 트럼프 행정부에서 ‘스캔들 메이커’로 악명이 높았던 스콧 프루이트(Scott Pruitt)이다. 그는 환경청장(EPA)으로 취임한 직후부터 에너지업계 로비스트가 제공한 10만 달러(1억2천만 원)를 받고 모로코 여행을 하는 등의 온갖 지저분한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한 마디로 청렴과는 거리가 먼 쓰레기 탐관오리다. 그러나 그를 감싸고 도는 트럼프에 의해 청장직을 유지하다 결국엔 사임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물러나자마자 간 곳이 바로 홀라도르다. 그는 지금 홀라도르를 위해 대정부 로비스트로 맹활약 중이다. 동시에 현재 그는 연방수사국(FBI)에 의해 14건의 죄목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New York Times, July 5, 2018).

뇌물 등 온갖 비리 추문에 휩싸였으나 트럼프의 비호 아래 버티던 스콧 프루이트가 사임을 두고 <아틀랜틱>은 그의 사임으로 엄청난 추문이 과연 덮어질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는 사임 후 <홀라도르 탄광>의 로비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그 회사는 소상공인 구제금융 1천만 달러를 따냈다.

<리노 리소시스>(Rhino Resources)란 탄광회사도 1천만 달러의 PPP를 받았다. 그런데 그 회사의 전임 사장이 누구였나 하면, 현재 트럼프의 <미국광산안전보건청>(mine saftey and health administration)의 수장인 데이비드 자테잘로(David Zatezalo)다. 이게 끝이 아니다. <라마코 리소시스)(Ramaco Resources)라는 탄광회사는 무려 840만 달러(약 103억 원)을 따냈다. 어떻게? 현재 회장 랜디 애킨스(Randall Atkins)가 <미국에너지국>(Dept. of Energy)의 석탄위원회위원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더 댈 수 있다. 그러나 독자들의 귀가 더러워질까봐 멈춘다.

이렇게 현재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을 가진 전 현직 관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애쓰는 통에 소상공인을 살리기 위해 만든 정부재원에 대기업들이 침을 발라 꿀꺽하고 자신들의 배를 채웠다. 물론 그들은 그런 연줄이 전혀 돈을 타내는데 작동하지 않았다고 극구부인하고 있다. 비리 저지르고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는 사람 보기 드물다. 이런 것은 동서고금 마찬가진가 보다. 하긴 잘못을 시인할 인간이면 아예 그런 짓을 저지르지는 않을 공산이 클 터. 어쨌든, 이렇게 해서 사양산업인 화석연료 생산 대기업이 소상공인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따간 돈이 무려 5천만 달러(약 613억 원), 그 중 트럼프 행정부와 연계된 회사가 가져간 PPP는 <가디언>추산 2,800만 달러(약 343억 원), <엔비시뉴스>추산 1,830만 달러(약 224억 원)이다.(“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NBCNews, April 25, 2020;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Washington Post, May 5, 2020).

소상공인 대출 낚아채간 석탄회사란 제목의 <워싱턴 포스트> 기사

트럼프 행정부와 관련된 인사로 인해 PPP를 받은 회사는 화석연료 회사 이외에도 많다. <크로포드 유나이티드>(Crawford United)와 <플로테크 인더스트리>(Flotek Industries)가 그 예로 각각 370만 달러(약 45억 원), 460만 달러(약 56억 원)를 받았고 이런 일이 가능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작자들이 트럼프 행정부에서 해외대사 등의 요직과 특혜를 받은 회사의 이사 등의 중역을 돌아가며 맡고 있다. 소위 회전문 인사의 당사자들이 정부 돈을 타내는 데 거간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NBCNews, April 25, 2020).

 

은행과 단골고객의 상부상조

앞에서 언급했듯 소상공인의 몫을 채가는 이런 비열한 짓의 선두주자는 단연코 트럼프 행정부와 연줄이 닿는 대기업이다. 그 다음은 어떤 방식이 동원되었을까? 소상공인옹호 시민단체인 <중심가연맹>(the Main Street Alliance)대표 아만다 볼란틴(Amanda Ballantyne)은 “은행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온 기업”이 PPP를 따갔다고 말한다.(NBCNews, April 25, 2020). 은행과 짬짜미 한 기업들이 타갔다는 뜻이다.

대형은행들은 PPP신청을 받을 때 하나의 원칙을 가지고 대출신청을 받았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전 회에서 필자가 말했던, 선착순 규칙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제로는 두 개의 줄을 만들었다. 하나는 진짜 소상공인을 위한 줄, 다음은 속성 줄(왜 이렇게 요사이 패스트트랙이 유행하는 줄 모르겠다)인 기존의 단골 대기업을 위한 줄. 예를 들면 제이피모건(JPMorgan)이 그렇게 두 개의 줄을 세웠다. 그런데 대기업은 솔직히 줄을 설 필요도 없다. 전화 한 통이면 끝나는 줄이니까. 아니면 먼저 은행 측에서 고객에게 전화를 했을 수가 있다. 이렇게 좋은 대출조건이 있는 상품이 나왔으니 신청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먼저 타진을 했을 수가 있다. 이것저것 다 논외로 치더라도 영세자영업자들은 대출 받는데 제출해야 하는 서류작업에 서툴다. 그러나 대형회사들은 능숙하며 완벽하게 서류를 꾸며낼 준비가 언제나 돼있다. 이미 게임이 안 되는 것이다.(New York Times, April 24, 2020).

소상공인 대출을 대행하는 대형은행이 선착순 규칙을 어겨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는 <뉴욕타임스> 기사 제목

또 대출 대행 은행은 자기들과 관련 있는 인사가 있는 기업에게 우선적으로 대출을 해 주었다. 스마트폰 보호 장구를 만드는 기업인 <재그주식회사>(Zagg Inc.)는 무려 940만 달러(약 115억 원)의 지원을 키뱅크(KeyBank)를 통해 받았다. 그런데 현재 회사 대표가 키뱅크의 과거 고위 임원이었다. 웃긴다. 서로서로 챙겨주기 그런 건가? 이 때문에 볼란틴은 정책입안자들이 소상공인지원프로그램을 연줄과 은행단골고객이 아닌 실질적인 소상공인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가도록 규정을 정비해야한다고 일갈하고 있는 것이다.(NBCNews, April 25, 2020).

그렇다면 정부의 구제금융 분배를 대신한 대행사인 은행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수수료다. 그들이 고작 한 일이라곤 신청 받아 정부 돈을 자신들 입맛대로 나눠준 것뿐인데 엄청난 수수료까지 챙겼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에 따르면 대출대행 은행이 수수료로 거둔 금액은 무려 100억 달러(약 12조 원)가 넘는다.(“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NPR, May 4, 2020).

그들이 대기업에게 우선적으로 거액의 돈을 선뜻 대출해 준 데에는 또다른 야비한 이유가 있다. 대출 규모가 클수록 수수료가 더 높기 때문이다. 물론 대출 서류 작성 등 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정력이 다수에게 소액대출을 해줄 때 보다 덜 들어가는 것은 덤이다. 결국 종합하면, 소상공인에게 가야할 구제 금융을 이들 은행들도 챙겼다는 뜻이다. 단골고객인 대기업과 짝짜꿍하면서. 이런 걸 보고 우린 말한다. 벼룩의 간을 내먹는다고. 그러면 일이라도 제대로 할 것이지, 이게 뭐람. 하긴 아무런 정부의 제제가 없는 곳에서 이들처럼 안 하는 것이 바보취급 받을 테니 저들의 행보는 저들로서는 무척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른다.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감싸고도는 판에 누구 탓을 하랴.(이것에 대해서는 조금 뒤에 말하겠다).

 

대형회사의 PPP가 득템인 이유

 그러면 이쯤에서 다음의 질문이 나와야 한다. 상장기업인 대기업들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소상공인 대출에 슬쩍 숟가락을 얹으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이 굳이 죽어라 PPP 돈을 빌리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떻게 500명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한 대기업이 소상공인을 위한 PPP를 받을 수 있었는가?

먼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다. 대기업이 노린 것은 바로 탕감이다. 탕감을 노리고 PPP를 받는 것이다. 무슨 말일까? PPP는 다른 대출과 달리 탕감가능성이 있는 대출이다. 대기업은 탕감 받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그토록 PPP를 타내려고 애썼던 것이다.(New York Times, May 7, 2020). 탕감 받는 조건은 6월 30일까지 직원을 해고 하지 않는 것이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이 조건은 소상공인보다 덩치가 큰 대기업이 지키는 것이 더 쉽다. 왜냐하면 덩치가 크면 그만큼 그 시한까지 고용 유지가 쉬우니까.

이에 비해 소상공인들은 규모가 워낙 작고 영세하다 보니 그게 어렵다. 미국에 팬데믹이 시작되자마자 소상공인들은 이미 직원들을 많이 내보냈다. 일단은 실업보험을 타게 하고 사태가 나아지면 다시 고용할 요양으로 나름 선제적 조치를 취했다. 일단은 소나기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코로나사태가 언제 끝날지 모를 장기전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미국 전역이 경제 재개를 다 허용한 것도 아니다. 즉 열고 싶어도 못 열 수 있다. 또 열었다한들 파리만 날리고 있고, 십중팔구 앞으로도 그렇게 될 공산이 매우 크다. 사업이 팬데믹 이전처럼은 안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 말은 곧 고용을 그 이전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말과 같다. 그것은 소상공인에겐 대출금 탕감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과 같고, 그것이 현실화되면 대출은 고스란히 빚으로 떠안게 된다는 의미다.(“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New York Times, May 6, 2020).

소상공인 구제금융은 탕감 가능하지만 그 요건을 만족 시킬 수 있는 것은 대기업이지 소상공인들은 아니다. 그래서 탕감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받은 소상공인들은 자칫하면 이자와 함께 원금도 갚아야 해서 빚더미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뉴욕타임스> 기사

게다가 문제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이 PPP를 받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수십 번 신청해도 돌아오는 대답은 ‘노’ 밖에 없다.(“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설사 PPP를 받는다 한들 탕감은커녕 빚더미에 앉을 공산이 큰 데다, 또 규정이 너무 까다로워서 받아 놓고도 한 푼도 쓰지 못하고 손도 못 댄 소상공인들이 많다. 반드시 급여로만 대출금의 75%를 써야 한다는 단서 조항 때문이다.(“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New York Times, May 2, 2020). 이미 직원들을 내보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 이런 걸 두고 엎친데 덮친 격, 설상가상이라 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소상공인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는 와중 대형회사는 6월말까지의 고용은 식은 죽 먹기니 일단 타고 보자하고 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6월말의 시한만 지나면 탕감 받고 직원들을 가차 없이 자를 것이 뻔하다. 누구에겐 PPP가 생명줄이자 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누구에게는 먹고 입 싹 씻을 수 있는 그저 눈먼 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득템이란 표현을 썼던 것이다.

어쨌든 대기업이 PPP를 거의 다 채가자 엄청난 비난이 일었다. 이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2백만 달러(약 24억5천만 원)이상 대출자(대기업만 가능)에 대한 조사가 들어갈 것이고 법적책임도 물을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완전 뒷북이다. 이에 몇몇 회사들이 받은 돈을 토해내겠다고 발표했다. 호텔체인점 <에쉬포드>, <쉐이크 쉑> 햄버거, <루스 크리스 스테이크 하우스> 등이 슬그머니 발을 뺀 것이다.(“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New York Times, May 2, 2020).

 

짜고치는 고스톱: 탕감받기 위해 로비해 법령 바꾼 대기업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차례다. 어떻게 500명 이상의 직원을 가진 대기업이 500명 미만의 소상공인 구제 금융을 받았는가? 이 대답을 하기 전에 재무부장관 므누신이 1차 PPP가 소진되고 나서 대기업을 향해 뒷북을 친 것에 대한 평가를 해야 한다. 그러면 저 질문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답을 확보할 수 있다.

왜 재무부와 SBA는 초장부터 PPP 시행 계획을 세밀하게 하지 않았는가? 이번 경우(코로나19)가 전례가 없는 것이라 경황이 없어서? 나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용인 500명을 기준으로 벌어진 PPP 자격 요건을 보면 처음부터 너무나 꼼꼼히 대기업을 위해 정책과 법안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니까 그렇다. PPP 법안은 500명 이상의 종업원을 둔 대기업이라도 회사 전체로 보지 않고 회사에 속한 물리적 장소 1개 당 직원이 500명 이하면 PPP를 받을 수 있게 허용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이렇다. 수백(십) 개의 체인점과 수천 명의 직원을 고용한 식당체인과 호텔체인이라고 하더라도 체인점 단 한 곳의 직원이 500명만 넘지 않는다면 전체 회사에 소상공인이 탈 수 있는 자격요건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완전 꼼수다. 물론 이런 꼼수도 이들 업계의 집요한 대정부 및 대의회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 혁혁한 성과다.(New York Times, April 20, 2020).

이렇게 정치권은 철저히 대기업 편이다. 대기업에게 뭔가를 주지 못해 안달을 한다. 물론 그래야 자신들이 주워 먹을 콩고물이 떨어지니까. 그러니 실로 일로매진할 수밖에. 소상공인과 서민들을 위해 일해 봤자 그들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없다. 도의적 책임과 사명? 바랄 걸 바라자. 그들의 안중엔 그런 것은 없다. 소상공인과 거기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서민들 생각일랑 그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그러니 저런 짓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기준 선 500명과 관련한 특혜가 한 가지 더 있다. 이것은 다음 회에서 알아보기로 하자.

 

다윗과 나단

이렇게 소상공인을 위한 PPP는 구멍이 숭숭 난 채 내가 말하는 제국들(탐욕과 부정 및 반칙에 찌든 극소수 부자들, 엘리트들)의 뱃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정작 생명줄이 필요한 이들에겐 지푸라기 하나 던져주지 않고 모터보트를 타고 있는 이들에게 기름을 더 넣어준 격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제국 중 어떤 것들은 슬그머니 PPP를 돌려주기로 했단다. 그러면 다인가? 생각해 보라. 그것이 도둑질 하고 들키니까 제자리에 갖다 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치미 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반환하면 범죄 아닌가? 자격도 없는 것들이 정경유착과 로비로 규정을 수정해 자격 있는 것으로 둔갑하고 또한 갖은 연줄 동원해 없는 자들에게 돌아갈 것을 가로챘다. 그건 명백한 범죄다. 한도 끝도 없는 욕심으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제국들이 그렇게 PPP를 가로챈 사이 생명줄 놓친 자영업자들은 줄도산 하고 노동자들은 실업자로 전락했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일자리는 그들에겐 유일하게 남은 호구지책이었다. 번듯한 직장도 아니고 그저 허드레 일자리였다. 그것마저 낚아 채갔으면서, 그래서 남의 가정을 파괴했으면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돈을 반환하기로 했으니 끝이란 말인가? 하긴 누가 뭐래도 PPP를 꿍치고 앉아 뱃속을 채울 요량인 대기업도 있긴 하니 더 이상 뭐라고 말하겠는가. 그러니 뭐 잘못 한 게 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안 나오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지. 남의 나라 일이지만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이 대목에서 구약성서의 나오는 다윗 왕과 나단 선지자의 삽화가 떠오른다. 나의 지도교수 피터 버거(Peter Berger)가 가끔 언급하던 매우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은 자신을 위해 전장에 나가 싸우는 우리아의 아내에 꽂혀서 간통을 저지른다. 그것이 발각 날까봐 충신 우리아를 일부러 최전선에 보내 죽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를 자신의 아내로 삼는다. 왕의 이 비열한 범죄는 유야무야 끝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느 날 선지자 나단이 다윗 앞에 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길 꺼낸다. 여기 부자와 가난한 자가 있다. 부자는 양과 소가 많고 가난한 자는 가진 것이라곤 오직 새끼 양 한 마리뿐이다. 어느 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고 부자는 자기 양과 소를 잡아 손님을 대접하지 않고 가난한 자의 새끼 양을 빼앗아 그걸 잡아 대접했다. 이 말을 들은 다윗은 불같이 화를 냈다. 당장 그 자를 잡아 오라고 사형에 처하겠다면서. 그 때 나단이 다윗을 보며 말 했다. 왕이여 그게 바로 당신이다. 그 순간 다윗은 고꾸라져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이런 다윗 같은 제국을 기대하는 것은 한낱 부질없는 꿈일 터…

 

참고 자료

“Coal Snags $31 Million in U.S. Stimulus Loans for Small Business,” Washington Post, May 5, 2020.

“E.P.A. Chief Scott Pruitt Resigns Under a Cloud of Ethics Scandals,” New York Times, July 5, 2018.

“Firms With Trump Links or Worth $100 Million Got Small Business Loans,” NBCNews, April 25, 2020.

“Fossil Fuel Firms Linked to Trump Get Millions In Cornavirus Small Business Aid,” The Guardian, May 1, 2020.

“Small Businesses Counting on Loan Forgiveness Could Be Stuck With Debt,” New York Times, May 6, 2020.

“Public Companies Received $1 billion in Stimulus Funds Meant for Small Businesses,” Washington Post, May 2, 2020.

“Here’s How The Small Business Loan Program Went Wrong In Just 4 Weeks,” NPR, May 4, 2020.

“Where the Small-Business Relief Loans Have Gone,” New York Times, May 7, 2020.

João Granja ,Christos Makridis, Constantine Yannelis, and Eric Zwick, “DID THE PAYCHECK PROTECTION PROGRAM HIT THE TARGET?,” NBER WORKING PAPER SERIES, Working Paper 27095, May 2020.

“‘The Big Guys Get Bailed Out’: Restaurants Vie for Relief Funds,” New York Times, April 20, 2020.

“The U.S. Needs Way More Than a Bailout to Recover From Covid-19,” Bloomberg Businessweek, April 30, 2020.

“14 years in 14 days: Inside the chaotic rollout of the SBA’s PPP loan plan to save America’s small businesses,” Fortune, April 30, 2020.

“Luxury Hotel Company Is Biggest Beneficiary of Small-Business Funds,” New York Times, April 22, 2020.

“Hotel Group Will Return Tens of Millions in Small Business Loans,” New York Times, May 2, 2020.

“Some Small Businesses That Got Aid Fear the Rules Too Much to Spend It,” New York Times, May 2, 2020.

“Who Will Pay For the Coronavirus Bailout? If you’re under 50 and Working, You Will,” Fortune, April 21, 2020.

“Failing to Help Those Who Need It Most,”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Denied, Deferred and Ignored: 13 Applications, and No Relief,” New York Times, April 24, 2020.

금, 2020/05/29-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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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미국이 2년 전에 파기하고 떠나간 이란핵협상의 일원이라고 주장하면서 테헤란에 대해 UN단위의 제제를 시도하자, 이를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짓이라고 일축했다.

2015년 당시 미국을 포함하여 러시아 중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6개국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완화시키는 조건으로 테헤란 당국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협상(JCPOA)에 동의한 바 있다.

이에 유엔안보리는, 나중에 떠났지만, 미국을 참가국으로 포함한 협상의 내용을 추인했으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8년에 이 협상에서 떠났으며 오바마 대통령의 동의에 의해 이루어진 합의를 ‘최악의 협상’이라고 폄하하였다.

그러나 지난 달 미국무장관인 Pompeo는 “협상에 담긴 용어(내용)들이 애매모호하다”면서 “유엔안보리의 결의 당시 협상당사국들에게 주어진 권한은 현재에도 모든 당사국들에게 온전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9년 12월 6일 비엔나에서 열린 JCPOA 당사국 회의 장면, 여기에는 미국이 빠져 있다.

그는 JCPOA로 알려진 핵협상의 당사국들은 이란에 대한 유엔제재의 스냅백(상대방이 규정을 어기면 무효화)규정을 제안할 권한을 가진다고 주장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러시아 대사인 Vassily Nebenzia는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고 기자단에게 전달했다 “이것은 우스꽝스러운 짓이다. 미국은 더 이상 당사국이 아니며 그런 제안의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유엔 외교관들은 만약 미국이 이란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포함하여 제재를 다시 가할 것을 제안한다면 매우 혼란스런 저항의 싸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밝혔다.

Nebenzia 대사는 미국이 그럴 자격이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스냅백은 명백하게 JCPOA를 끝장내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제조사도 종결될 것인데, 이런 상황이 미국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라며 그는 경고를 보냈다.

미국은 오는 10월에 종료되는 이란에 대한 무기금수조치를 15개 국가로 구성된 유엔안보리에서 연장시키지 못할 경우를 대비하여, JCPOA 협상당사자인 유럽국가들에게 제재를 재개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안보리의 결의에는 9개국 이상의 찬성과 거부권을 지닌 러시아 중국 미국 프랑스 영국의 동의가 필요하다.

안보리 결의에 대한 거부권 행사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해 Nebenzia 대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하였다 “그럴 필요가 실제로 발생할 때까지 질문에 답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라….. 나는 이란에 대해 무기를 금수시켜야 할 아무런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

 

출처 : CGTN Report, 2020-05-13

월, 2020/06/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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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의 ‘뉴노멀’에 대한 논의들이 쏟아지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 우리는 한국 사회가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생각을 공유한 바 있다. 그 결과 2016-17년의 ‘촛불혁명’이라는 정치변화가 가능했고, 그 기반 위에서 코로나19의 성공적 방역 역시 가능했다. 말하자면 매우 한국적인 특성을 가진 세월호 재난은 한국 정치에 어떤 임계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어서 닥친 코로나19가 제2차 세계대전만큼 또는 그보다 더 참담한 세계적 재난으로 작용하면서, 그것은 이제 세계 차원의 어떤 임계점으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것이다.

대체로 코로나 19 이후의 ‘뉴노멀’은 ‘디지털화’나 ‘그린뉴딜’로 상상된다. 그러나 ‘새로운 정상성 또는 규범’을 의미하는 그 표현은 단순한 기술변화, 즉 ‘디지털 방향으로의 전환인가 아니면 저탄소 뱡향인가?’의 문제로 축소될 수 없다. ‘정상성’이나 ‘규범’은 사회학의 핵심 개념이다. 따라서 ‘뉴노멀’은 사회의 변화, 즉 다차원적 사회적 관계들의 형태 및 성격에서 변화가 불가피함을 의미하는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적절하다. 코로나19가 초래한 새로운 문제들은 각 사회 내외에서 경제적 충격만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심층에서 사회적 관계들 역시 변화시킬 것이다.

예컨대 여행 제한이나 국경봉쇄로 인한 이동성의 급작스러운 정지는 자동차 산업과 항공산업에 대한 국고지원이나 실업률 급증의 문제―물론 실업은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로만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의 사회가 대유행 전염병(팬데믹)과 공존하는 사회일 수밖에 없다면, 자율주행차, 전기자동차, 수소자동차, 저탄소 배출형 항공기로의 생산 전환이라는 디지털화, 저탄소화의 문제뿐만 아니라, 물리적 이동량 자체 및 그 구성에서 계속 변동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대유행 전염병 상황에서 언제든 소환될 수 있는 ‘사회적 거리 두기’와 이동성은 밀접히 연관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사회적 거리 두기’는 ‘물리적 거리 두기’를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사회적 관계를 변화시킬 것이다. 사회학에서는 물리적 이동성과 사회적 이동성이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논의해왔다. 또 이동성 제한으로 외국인 계절노동자 등의 사용에 문제가 생기면, 노동시장의 수요-공급 불일치(미스매칭)에 대한 해결책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디지털화가 불가능한 영역에서 노동시장의 미스매칭이 계속 사회경제적 문제로 등장할 터인데, 그중 돌봄 영역과 관련하여 서구에서는 이미 문제가 드러났다. 예컨대 미국과 독일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한 간호사들의 집회가 있었다. 미국의 간호사 집회는 마스크 등 보호장비 부족 때문이었다. 독일의 경우에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간호사의 임금상승이 이루어졌으나 인력 부족으로 인해 그들이 여전히 과도한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에 시위가 일어났다. 한국의 경우에는 돌봄 문제가 노동시장의 문제보다는 오히려 피해자 집중 발생 부문―정신병동과 노인요양시설 등―의 문제로 주목을 받았다. 방역에 자원하고 헌신하는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언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으나, 노동조건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헌신적 태도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서구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의료체계 붕괴에 대한 공포로 연결된 데에는, 공공의료 체계의 약화나 붕괴 못지않게 돌봄 노동시장의 문제 역시 작용했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시나리오에서 종종 간과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돌봄과 저숙련 서비스직에서 일자리가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이다.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일자리로서 돌봄 일자리가 꼽힌다. 산업화한 사회들의 고령화 추세로 인해서 돌봄 일자리는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는데, 대유행 전염병이 일상화한다면 돌봄 일자리에 대한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다. 또 확대되는 디지털화 속에서 콜센터와 같은 서비스직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콜센터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이들이 코로나19의 취약집단으로 등장한 바 있다. 또 최근에는 저숙련 서비스업에서의 불안정 고용 관행으로 인해 ‘n잡을 뛰는’ 경우가 늘면서, 서비스업 종사자의 감염 위험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증가하는 돌봄 일자리와 저숙련 서비스직 일자리와의 공통점을 찾자면, 다음의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이런 일자리들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 나쁜 노동환경의 속성을 갖는 여성 일자리들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로 제시된 디지털화나 그린뉴딜의 정책 속에서 이런 일자리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현재 논의되는 ‘뉴노멀’에서 고려되는 현실은 절반의 현실에 불과하고, 그 절반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다른 절반이 완전히 배제된다. 이것은 기존의 ‘노동’ 개념이 남성의 노동과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여성 노동은 돌봄이나 감정노동과 같이 ‘타인과의 관계’라는 요소들을 포함하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그것은 ‘노동’이 아니라 ‘규범’의 문제, 즉 ‘여성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

노동을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분리하는 이런 경향은, 페미니스트 정의론자들이 ‘분배 패러다임’이라고 부르는【1】 방향으로 발전한 사회계약론의 전통 속에서 확립되었다. 사회계약론은 자유주의 정치이론의 기초로서 근대 헌법과 현대 사회정책의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과거 한국에서 헌법은 단지 수입된 서양의 근대적 제도에 불과했다. 80년대 후반의 ‘민주화 개헌’으로 헌법이 국민에게 한층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나, 그것이 일반 국민의 정치 감정 속에서 뜨겁게 소환된 것은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였다. 이런 의미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 민주주의 정치의 임계점이 된 것이다.

한국적 위험이었던 세월호 재난이 한국에서 자유주의 정치원리를 ‘정상적인 규범’으로서 대중화―일종의 근대화 따라잡기로서―했다면, 코로나19 이후 기대되는 세계적 ‘뉴노멀’은 돌봄과 서비스 노동의 증가 문제와 관련하여 자유주의 정치원리에 체계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의 것이다. 말하자면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두드러진 돌봄과 서비스 노동의 불가피성으로 인해서,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은 단순한 기술혁신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의 개념, 그리고 그것의 기초가 되는 ‘개인’과 ‘자유’의 개념까지, ‘뉴노멀’의 새로운 사고가 이루어져야 한다.

코로나19 이후 지적되어야 하는 새로운 사회계약의 문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지금까지 말한 바와 같이 ‘새로운 노동’ 개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밀접하게 연관되는 또 다른 문제는, 인간이 바이러스와 공존하는 ‘생물체’ 또는 ‘물질적 존재’라는 사실이다. 이 두 문제는 기존 사회계약론의 전제들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 성격을 갖는다. 왜냐면 기존 사회계약론은 어쩌면 버섯처럼 땅에서 불쑥 솟아났을 법한 ‘독립적이고 분리된’ 개인들의 ‘이성적 사고’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먼저 돌봄노동이나 감정노동과 같은 페미니즘의 노동 개념은 ‘분리된 개인’이라는 사회계약론의 출발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리고 인간 역시 ‘생명체’라고 보는 물질적 관점은 ‘이성적 사고의 주체로서 개인’이라는 사회계약론의 출발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최초의 사회형태는 가족이나 친족과 같이 혈연에 기초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계약론은 그리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친부살해’와 같은 방식으로 아들들이 가부장적 친족 관계로부터 개인화한 상태를 근대 정치의 원초적 상황으로 규정했다. 따라서 사회계약의 주체는 아버지와 동등한 남성이다. 그런데 근대화 당시 남성들은 아내의 법적 권리를 자신의 권리 속에 완전히 복속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사회계약의 주체인 남성들은 가족이라는 사생활영역의 주인인 ‘가장 남성’을 의미하게 된다.【2】 페미니스트들은 이로부터 공적 영역(정치)과 사적 영역(가족)이 법적으로 분리되고, 가족 및 여성의 권리와 관련된 문제들은 공적 논의에서 사라지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고전적 사회계약론의 이러한 기본 구도가 복지 자유주의로 발전한 롤즈의 ‘정의론’까지 이어지면서, 그것은 결국 현대 ‘분배 패러다임’의 골격을 형성했다. 가정폭력이나 돌봄,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등이 ‘정의’의 문제로 인식되지 못하는 이유를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주의의 기본 전제인 이러한 ‘남성적, 소유적 개인주의’에서 찾는다.【3】

여성뿐 아니라 서구의 ‘가장 남성’ 상에서 벗어나는 모든 범주, 즉 장애인 등 의존적인 사람이나 흑인 노예 등이 모두 사회계약의 주체인 ‘개인’ 개념에서 배제되었다. 그리하여 ‘개인’이란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는 ‘합리적’ 선택의 주체로 정의되었다. 페미니스트들은 이러한 ‘개인’의 모습이 남성의 삶 중 일정 시기 동안에만 가능한 존재 형태일 뿐이라고 비판해왔다. 남성들도 돌봄 관계 속에서 성장하고, 노동능력을 상실하면 다시 돌봄 관계 속으로 돌아간다. 또 근대화가 진전하면서 여성에게도 법적 시민권이 인정되고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남성 중심적 ‘개인’ 개념은 ‘시민’ 개념과 점점 더 괴리를 넓혀왔다.

뿐만 아니라 대유행 전염병 코로나19를 전후로 돌봄이 점점 더 생활과 노동의 영역에서 중요성을 얻고 있다. 또 현대로 올수록 혼인과 남성의 지배로부터 여성들이 점점 더 풀려나기를 추구하거나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새로운 정상성 또는 규범’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계약의 주체인 ‘개인’ 개념이 이제 더 이상 ‘가족의 구성원 및 재산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남성 가장’ 개념과 일치할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관계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돌봄 관계 속에 위치한 개인’의 관점에서, 그리고 ‘스스로를 부양해야 하는 개인’까지 포함하도록 ‘개인’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새롭게 정의된 ‘개인’ 개념에 기초하여 사회계약과 분배의 프레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 역시 바이러스에 취약한 생명체이자 물질이라는 또 다른 문제 역시, 사회계약론에 근본적 수정을 요구한다. 한편으로는 개인을 단순히 데카르트적인 ‘생각하는 존재’로 규정한 사회계약론의 기본 구도에서 벗어나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생태계를 롤즈처럼 다음 세대와 공정하게 나눠야 할 자원으로만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야 한다. 여기서는 인간과 생태계 간의 ‘위험 관계’가 고려되어야 한다. 롤즈는 사회계약이 ‘협동적 사회구성원’ 간의 정의로운 계약이어야 한다고 보았는데, 이제 사회계약은 ‘협동적 지구구성원’ 간의 정의로운 계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문제를 울리히 벡은 공론정치의 의제 변화―글로벌 위험사회와 세계시민주의 정치―의 문제로 보았고, 라투르는 ‘사물의 의회’라는 지구정치(cosmopolitics)의 관점에서 본 바 있다.【4】

그런데 여기서 어떤 관점을 취하든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그것은 물질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이어주는 고리가 바로 ‘돌봄’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돌봄 관계’와 ‘위험 관계’는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구상하는 데서 반드시 동시에 고려되어야 한다.

 

【1】아이리스 매리언 영, 『차이의 정치와 정의』, 김도균·조국 역, 모티브북, 2017; 낸시 프레이저, 『전진하는 페미니즘』, 임옥희 역, 돌베개, 2017.

【2】캐롤 페이트먼,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이충훈·유영근 역, 이후, 2001.

【3】캐롤 페이트먼, 위의 책; Susan M. Okin, Justice, Gender, and the Family, New York: Basic Books, 1989; 낸시 프레이저, 위의 책; 마사 누스바움, 『역량의 창조』, 한상연 역, 돌베개; 에바 키테이, 『돌봄: 사랑의 노동』, 김희강·나상원 역, 박영사, 2016.

【4】울리히 벡, 『글로벌 위험사회』, 박미애·이진우 역, 길, 2010; 브뤼노 라투르,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홍철기 역, 갈무리, 2009.

화, 2020/06/0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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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도서관이 왜 국회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국회의원은 단 한 명도 없다

당신은 국회도서관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국회도서관이 왜 존재하고 있으며, 원래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가?

사실 국회도서관이 무슨 목적으로 국회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며,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기관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아니 거의 없다.

국회도서관이 어떠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지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 국회의원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국회의원만이 아니라 국회 직원, 심지어 국회도서관 직원 자신들조차도 거의 생각해본 적도 없고 또 아무런 인식도 관심조차 없다.

 

국회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진열하고 읽는 그런 곳이 아니다

 국회도서관이 과연 어떠한 성격을 지니고 무슨 업무를 수행하는 곳인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1) ‘국회도서관’이라는 명칭에는 왜 ‘도서관’ 앞에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으며, 이렇게 ‘국회’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고 한다면 (2) 과연 ‘국회’와 관련하여 어떠한 임무를 그 특성으로 하는 도서관인가가 분명하게 규정되어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국회도서관은 도서의 수집, 정리, 보존 업무를 위주로 하는 일반 도서관이 아니다. 지금과 같이 일반 사람들이 들어가 책을 보고 자료를 찾는 그런 도서관이어서는 안 된다. 국회도서관이란 어디까지나 국회의원의 입법 활동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하여 국회 내에 설치되었기 때문에 ‘국회’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영국 하원도서관의 『의회도서관을 위한 가이드』에는 “의회도서관은 입법부의 의원 및 증가하고 있는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특정하게 한정된 이용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회도서관은 과연 이러한 존재 목적을 수행하고 있는 것인가?

 

세상에 이런 의회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의회조사처의 역사를 살펴보면, 1900년대 초에 의회도서관 직원의 능력만으로는 대규모 연구기관을 운영하는 데 어려움에 봉착했기 때문에 도서관 내에 입법정보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는 별도의 기구를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의회조사처는 처음에 의회도서관의 6개 부서 중 하나의 기구로서 출발했지만 현재는 오히려 의회도서관 전체보다도 질적인 측면에서 훨씬 중요한 부서로 발전하였고, 오히려 의회도서관이 의회조사처의 업무를 지원하는 거대한 정보 저장소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세계 의회기구에서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모두 ‘의회조사처’ 기구에 소속되어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프랑스, 독일, 영국 의회에서는 외교안보와 국제관계를 담당하는 ‘조사처’의 부서에서 수행하고 있다. 일본 역시 입법고사국의 해외정보조사실에서 수행하고 있다.

사실 우리 국회 입법조사처의 직무 범위에도 ‘외국의 입법동향 분석 및 정보의 제공’(입법조사처법 제3조 5항)을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도 해외정보 조사 업무는 여전히 국회도서관에 두고 있어 전체 입법지원 업무가 효율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채 중첩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아니 사실을 그대로 밝히자면, 국회도서관 내에 의회정보실과 법률정보실에 관련 석박사급 인력을 유지하면서 오직 그들을 활용해 국회도서관의 조직 유지 및 확대만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국회도서관 내 전문 인력에게 승진의 기회나 계장 및 과장 등 간부의 길은 철저히 봉쇄되어 있다.

세계적으로 의회 기구에서 ‘조사처’ 조직이 도서관과 별도로 분리된 프랑스 의회도서관은 직원수가 29명, 독일은 91명에 지나지 않는다. ‘조사처’가 통합되어 있는 영국의 경우에는 도서관 직원이 총 226명인데, 그 중 조사실에 82명이 배치되어 있다. 즉, ‘조사처’ 조직이 분리된 의회도서관은 기본적으로 100명 규모를 넘지 않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일본과 미국의 경우에는 의회도서관이 국립중앙도서관을 겸하고 있기 때문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이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우리의 경우와 전혀 단순 비교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 현재 우리나라 국회도서관의 정원은 300명이 훨씬 넘는다. 이미 입법조사처가 별도로 설치되어 있는 상황에서 ‘순수 도서관 기능’만을 수행하는 데 현재의 인력이 적정규모인지 근본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뒤바뀐 국회도서관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지휘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도서관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은 거의 사서(司書)로 구성되어 있다. 국회도서관의 ‘의회정보실장’이나 ‘법률정보실장’이라 하면, 일반 사람들은 대단한 의회전문가 혹은 법률전문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이 직책들은 사서직 혹은 행정직이 담당하고 있다. 조직 구성에 있어서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조직 운용의 원칙을 지키고 인적 자원과 물적 자원을 그것이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 정확히 배치한다는 뜻이다.

의회도서관이란 사서가 독점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이다. 독일 의회도서관은 일반 사서와 레퍼런스(입법지원 담당) 사서로 구성되는데 레퍼런스 담당 사서는 연구직으로서 일반 사서의 상위에 있다. 또 일본 국회도서관 입법고사국의 전문조사원의 대우는 행정부 1급에 준해왔다.

한편 사서에 관한 공무원 직제도 미국에서 일반 사서는 GS-7등급(GS; General Schedule, 미국 공무원은 GS-1등급부터 GS-15등급까지 분류되어 있다. GS의 숫자가 클수록 고위직이다)이고 전문성과 경력에 의하여 GS-9등급부터 GS-12등급으로 분류된다(그 이상의 등급도 가능은 하다). 이에 비하여 미국 의회도서관의 의회조사처 수석 연구원의 경우는 GS-18등급까지 승진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경우, 100에서 1016까지 순차적으로 구분된 공직 분류지수 중(숫자가 높을수록 직위가 높다) 일반직 사서(주제전문 사서 포함)의 지수는 204에서 779에 속해 있다. 여기에서 780은 우리나라로 말하면 3급에 해당하고, 결국 일반직 사서는 3급 이상의 간부직에 임용될 수 없음을 의미하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또 아무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국회도서관은 본래의 존재 이유와 다른 길을 걸어왔다. 본말은 전도되고, 그 위상은 뒤바뀐 채 왜곡되었다. 감시가 결여되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다.

이제 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해야 한다. 그래서 본래의 설치 목적에 부합하는, 국회도서관다운 국회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이 복원되어야 한다.

화, 2020/06/0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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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는 단순히 의료분야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에도 위기를 불러오면서, 이로 인한 긴장이 코로나바이러스에 퇴치하려는 국제적 협력의 노력에 큰 장애를 형성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갈등의 격랑 한가운데 처해졌다.

WHO가 중국과 상호적 협력을 진행한 것이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미국은 해당기구에 대한 재정과 지원을 거부하고 동시에 실태조사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러한 요구는 복합적인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회원국들 공동의 목표인 WHO를 개혁해야 한다는 제안을 담고 있지만 실제로는 의도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심각한 팬데믹이 발생하면서 WHO의 개혁에 대한 요구는 한편 이해할 만하다. 과거에도 전염병의 대유행이 여러 번 발생하였고, 이에 따라 WHO의 지도력과 전략 그리고 역량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공동의 관심이 형성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COVID-19 팬데믹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국이 개혁을 요구한 것은 상기의 일반적 사항이 아니라 WHO와 중국 간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면서, 회원국들 간에 WHO 개혁제안 자체보다는 미국의 요구에 대해 많은 논쟁이 야기되고 있다.

현재까지 미국이 촉구한 개혁의 요구는 변화의 내용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 내기는커녕, 오히려 전향적인 개혁이 무엇인가에 대한 내부적 논란과 갈등만을 야기시켰다. 미국은 WHO개혁을 정치외교적 아젠다로 삼아 G7 사무국에 내용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뉴스 매체에 따르면, G7의 다른 회원국들은 미국의 WHO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지 않으며 미국이 요구한 WHO에 대한 즉각적인 사찰요구에도 동의하지 않고 있다.

미국이 G7에게 요구하는 WHO 재검토나 개혁프로세스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회원국들이 항상 대규모 전염병과 팬데믹에 대한 국제적 대응방안을 검토하고 국제보건의 감시체제에 대한 개혁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G7 회원국들과 의미있는 합의를 형성하지 못하면서, WHO와 같은 국제적 기구 내에서 미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G7에 제시한 WHO 미국 개혁안의 구체적 내용은 COVID-19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반복적으로 되풀이 된 것으로 기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회원국들의 간섭으로부터 사무총장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국제적 보건지침의 준수 여부를 감독 개선하며, 심각한 질병의 발발 시 국제사회에 알리는 과정에 있어 폭넓은 재량권을 부여하는 등이다.

문제는 새로움이 없이 반복되는 상기 제안의 내용이, 기구에 대한 재정과 지원을 철회하겠다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횡포와 겹치면서, 정당화될 수도 없고 매우 부적절한 것으로 변질되었다.

더구나 사무총장의 독립성을 강화하자는 미국의 제안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여행제한을 거부한 WHO결정에 대해 화를 내면서, 서로 모순이 상충되는 모양새가 되었다. 대통령의 주장(화)를 별도로 하더라도, 상기의 사건은 WHO 사무총장은 미국의 주권에 문제를 제기하거나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미국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셈이 되었다.

이에 대해, 중국 등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회원국들은 사무총장의 더 많은 재량과 독립성이 과연 미국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구심을 나타낸다. 이에 따라 호주가 제안한, 즉 개별국가들의 주권에 우선하여 전염병 발발 시 WHO 파견전문가들이 해당국가를 방문하여 조사할 권한을 부여하자는, 내용은 의안으로 제출되자 곧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WHO개혁에 대한 오랜 노력은 세계보건에 대처하는 WHO의 권한과 개별국가들의 주권 간의 지속(합의)가능한 균형점을 찾지 못한 어려움에 봉착하여 왔다. 이러한 문제의 어려움은 특정국가들을 타겟으로 삼으면 더욱 복잡해진다.

미국이 WHO와 중국 간의 협력을 문제삼아 개혁을 제기하면, 당연히 중국은 자국의 주권을 위협하고 팬데믹의 대처에 대해 책임을 묻는 듯한 개혁조치를 거절할 것이다. WHO 개혁을 핑계로 중국의 행위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는 해당기구를 국제정치의 전쟁터로 삼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것이며, 동시에 WHO가 임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재정지원에 타격을 가하는 것이다.

WHO개혁을 개별국가의 주권에 우선하는 기구의 권한에만 집중하게 되면 그 동안 진행되어온 개혁에 대해 합의된 논의의 모든 성과를 무력화시키는 위험이 도사린다. 2014년에 서아프리카에서 발발한 에볼라 발병은 세계보건의 재앙이었다, 이후 당시에 WHO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에 대한 검토와 조사가 진행되었고, 이에 따라 WHO의 사전준비와 대처능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개혁안이 제출되었다. 당연히 WHO 집행부는 이러한 개혁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2018년에 콩고에서 에볼라가 재발되자, WHO는 매우 인상적으로 대처하였다. 유사하게 COVID-19에 대응하여 WHO가 신속하게 연구팀와 의료진을 파견하여 공공의료의 역량을 보여준 점에 대하여 국제사회는 높게 평가하고 있다. 특히 가난한 국가들에게 팬데믹이 더욱 위협적이므로 이들에게는 신속한 대처능력은 더욱 중요하다 (실제로 아프리카 빈국에 대한 WHO지원은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다).

팬데믹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없는 가운데, 미국 행정부가 재정지원을 동결하면서 WHO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팬데믹에 대응할 역량과 기능을 강화하려는 기구의 능력을 방해하는 꼴이다. 미국의 협박은 WHO회원국들이 미국의 개혁요구를 수용할 때까지 재정과 지원을 보류하겠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이러한 제안은 논리적이지도 못하고 신뢰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충동적인 개혁요구는 전략도 없고 자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도 모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최악의 시점에서 치명적인 병원균과 대처해야 하는 WHO의 역량에 커다란 타격을 가하는 짓이다.이처럼 잘못된 시도는 WHO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망치는 일이다.

 

출처 :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2020-05-10.

David P Fidler

워싱턴 대학교 등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하고 있으며, cyber-security와 공공의료분야에 관련한 많은 저술과 기고를 남기고 있다

 

수, 2020/06/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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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케어 시행 3년, 종합병원 이행 성적 26점

’19년 종합병원의 건강보험보장률 목표(70%) 이행률 25.9%(58개소)

비급여 관리방안 부재로 예견된 실패, 재정 낭비한 관료 문책해야

보건복지부는 고시 즉각 개정해 비급여 풍선효과 방지하라

 

경실련은 오늘(8/19) <문케어 시행 3년, 종합병원 건강보험 보장률 목표 이행 실태>를 발표했다. 문케어는 문재인정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으로 2022년까지 건강보험 보장률을 70%까지 올리는 국정과제다.

(조사목적) 정부는 문케어 시행을 위해 약 30.6조원의 건강보험료를 투입할 계획으로 이미 9.2조원 지출했다. 막대한 예산투입에도 비급여 관리대책 부재로 보장률 증가는 답보 상태에 있고,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된 비급여 관리를 위한 보고 의무제도는 정부의 고시 개정 중단으로 연내 시행이 불투명한 상태이다. 이에 문케어 최대 수혜대상인 종합병원의 목표 보장률 이행실태 발표를 통해 의지도 전략도 없는 무능한 관료와 정책의 문제를 알리고 비급여 관리제도의 조속한 시행을 정부에 촉구하고자 한다.

(조사대상) 233개 종합병원(공공 53개, 민간 180개)의 연도별(2016년~2019년) 건강보험 보장률 현황과 문케어 목표 보장률(70%) 이행 여부를 분석했다.
(재정계획) 정부는 문케어에 6년간 건강보험 재정 30.6조원 추가 투입 ′17년부터 ′19년까지 3년간 총 재정 소요의 1/3인 약 9.2조원 투입

(보장률 현황)문케어 시행으로 종합병원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19년에 68.5%로, ’16년 대비 7.3%p 증가했다. 재정투입이 시작된 ’18년에는 전년 대비 7.5%p 증가했으나 ’19년엔 1.3%p로 둔화세였는데, 비급여 풍선효과로 추정된다.


 

(문케어 이행률) 문케어 시행에 따라 보장률 70%에 도달한 종합병원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는데, ’16년 6.6%에서 ’19년 25.9%로 약 19.3%p 증가했다.

 

(문제와 개선방안) 문케어 시행 3년, 목표 보장률 이행 종합병원은 4곳 중 1곳 뿐.
문재인대통령은 문케어(건강보험 보장성강화대책)를 통해 국민의료비 직접 부담률을 30% 미만으로 낮추겠다고 약속했지만, 문케어 예산이 집중 투입된 대형 종합병원의 보장률은 68.5%로 개선되는데 그쳤고, 이행율은 25.9%(58개)로 저조했다.
이번 조사에 포함되지 않은 개인소유 종합병원과 병∙의원의 보장률이 전체 의료기관 평균 보장률보다 낮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문케어의 목표 보장률 이행은 문대통령 임기 내 실현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림3]의 종합병원 보장률 분포를 보면 166개(전체 중 74.1%, 공공병원 24개 포함) 기관이 문케어 목표 보장률 이하이며, 시행 3년 이행률 추세에 의하면 계획이 종료되는 ’22년에는 50%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문케어 저조한 성적은 비급여 관리대책 없이 밀어붙인 여당과 관료 책임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서는 건강보험 진료에 병행하는 비급여에 대한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비급여 풍선효과’를 방지할 수 있다.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기관의 10%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보장률이 낮은 민간 의료기관의 비급여 관리 기전 마련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문케어의 초라한 성적표는 예견된 결과다. 비급여를 급여로 전환하면서 병원에 막대한 재정을 퍼줬고, 늘어나는 비급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 상태다. 이는 비급여 대책 없이 정책을 밀어붙인 무능한 민주당과 정부 관료의 책임이 크다.
최근 문케어 4년 성과발표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해 청와대는 “다음 대통령이 국민과 함께 뛰어가야 할 길이어야 한다”고 실패를 시인했다. 즉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실효성 있게 지속되려면 문대통령 임기 내 비급여 통제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비급여 보고는 타협의 대상 아닌 의무, 정부는 고시 즉각 개정해야
국회는 2020.12월 의료법을 개정하고 2021.06.30까지 정부가 하위법령을 마련하여 시행하도록 공포하였으나, 정부는 의료계 반발에 고시개정을 2개월째 미루고 있다. 이는 국회의 입법명령을 행정부가 무시하는 행위로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경실련은 정부가 국회의 입법명령을 어기고 지난 ‘의대정원 증원 중단’과 같이 의료계와 타협하거나 후퇴하는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국민 의료비 경감을 위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계획이다.끝.

 
 

2021년 08월 19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20210819_경실련보도자료_종합병원 문케어 이행 실태 발표
20210819_경실련보도자료_종합병원 문케어 이행 실태 발표

문의 : 경실련 정책국(02-744-0400)

목, 2021/08/19-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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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국을 보라, 단지 죽음이라는 단어로 규정되는 나라가 되었다. 사람들은 병상이나 자신의 침상에서 외로이 죽어가고 있고, 또는 길거리에서 살해당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일상을 둘러싼 경제가 붕괴되면서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은 사라지고 있다. 미국 시민들은 숨을 쉴 수가 없어 죽어간다(dying because they can’t breathe).

이것들을 제대로 설명하려 해도 우리를 누르는 힘이 강하여 맞서기 어렵다. 이유는 너무나 많고 상대할 적들은 너무나 힘이 세다. 어떻게 한 나라에서 동시에 이토록 엄청난 이들이 동시에 터져 나올 수 있을까?

치명적인 팬데믹이 전 지역을 휩쓸고 있는데도 정부는 대응할 능력이 없고, 기억이 가능한 현대의 역사에서 가장 심각한 경제적 붕괴가 일어나고, 거리에선 분노의 시위가 폭발하고, 세기에 걸친 백인우위의 역사 속에 조지 플로이드가 살해되면서 상황은 격화되고 있다.

상기의 비극들이 개별적으로 미국흑인들에게 유별나게 비대칭적으로 전개된다. 일단의 설명은 인종차별과 억압에서 시작할 수 있는데 이로써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단순히 건국이래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것뿐만 아니라, 또한 현재 벌어지고 있는 길거리의 시위를 부채질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재의 권력자들이 미국을 더욱 분열시키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현재 백인 미국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스런 위기는 전염병의 어려움과 경제적 위기 그리고 미국의 역사에서 흑인들이 겪고 있는 공권력의 폭력의 연대기적 사례들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흑인들은 유아의 놀랄만한 사망률을 포함하여 질병감염률에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고, 흑인가구의 평균 자산은 백인가구의 평균에 1/10에 지나지 않는다. 항의가 시작된 Minneapolis시의 통계를 보면, 백인가구의 평균 수입은 흑인 가구의 두 배를 넘는다. 전국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일생을 통해 천 명당 한 명이 경찰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 데, 이는 백인의 수치에 2.5배이다.

이런 기본적인 사항을 통해, 현재 터져 나오는 문제들 역시 흑인들에게 압도적인 충격을 가한다. 예건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죽는 흑인 숫자가 백인보다 3배가 많고, 팬데믹의 경제적 영향은 취약한 빈민계층에게 더욱 가혹한데, 그나마 연장되어 시행중인 실업구제기금은 7월말이면 중단된다. 중단시점이 오면 흑인들이 비대칭적으로 더욱 고통을 받을 것이다. 반면에 미국의 무책임한 사회 미디어들이 방영하는 비디오들과 지나치게 강압적인 공권력의 사례들이 고난에 항의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루는지를 (일종의 경고로) 보여주고 있다.

미국사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하려면, 시각을 확대해서 보아야 한다. “인종차별을 언급하는 것은 미국의 원죄에 해당하는 일종의 유행이며, 건국 당시부터 약속이 지금 현재에도 지켜지지 않는 영속불멸한 실패라는 점을 무시하고, 지난 과거의 세대가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인 점을 간과하는 일이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도날드 트럼프 자신인데 정착 본인은 이러한 상황이 우연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다 – 참으로 제때에 제자리를 차지한 기회주의적 행운아라고 말할 수 밖에.

더욱 중요한 것은 트럼프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힘의 배경이며, 그 자신이 직접 관련이 없는 오랜 과거의 누적된 일이 그의 말대로 우연적으로 그에게 닥친 것이다. 트럼프가 현재 상황에 대한 백인들의 불만을 정치무기로 삼는 가운데, 공화당 의원들은 규정된 법조차 거부해 가면서 인종차별과 부패면피 등에 자신과 국가의 운명을 걸고 있다.

보수정권 시절에 흔했던 공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과 길거리 시위 – Conservative Movement -에 더하여 전염병이 창궐한 이때, 이제 길거리 시위는 Trump Movement로 변화되면서, 트럼프가 입을 열어 말할수록 위기는 더욱 악화되고 있다.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재난은 이제 상기의 진실을 외면하고는 탈출할 출구가 없다. 이는 지난 몇 년간, 아니 지난 수일간에 다시 확인된 사실이다. 일부 백인 자신들의 힘과 공인된 불만의 표출이 바로 미국의 실제라는 환상이 실현(트럼프의 재선)되기 전에 미국이 붕괴되는 것을 맛보게 될 것이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미래에도 당연히 존재할 것이지만, 건국이래 약속된 땅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변하게 될 것이다. 국가의 모든 폭력, 통제되지 않은 대통령의 트위터가 이를 부추기고 선출된 공직자들이 무책임하게 방관하며 지켜보는 가운데, 온갖 궤도이탈의 행위들이 범람하면서 미국의 약속은 질식하여 사라질 것이다. 숨 한번 쉬어보자.

 

출처 : 영국 가디안지, 2020-06-02 일자.

Andrew Gawthorpe

네덜란드의 Leiden University에서 미국역사를 강의하는 교수

 

화, 2020/06/09-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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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아래의 칼럼은 한국 유수한 대학의 국제대학원에 재직중인 미국인 교수가 한국의 정치와 외교에 던진 조언의 글이다. 한반도상황과 동아시아에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라는 주문은 매우 고맙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의 글속에서 동아시아 역사전반에 대한 몰이해, 근대역사에서 탈아입구를 추구하며 주변국들에게 패악을 저지르고도 반성하지 않은 일본에 대한 무지, 미국의 패권을 위해 일본에 면죄부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패혜와 4.3항쟁에서 저지른 미군의 범죄 및 광주민주항쟁에 보인 미국의 패착 등에 대한 묵인, 그리고 무엇보다도 북한에 대한 악의적 폄하 등을 엿볼 수 있다. 자연스레 과연 한국의 대학에 체류하는 미국 지식인들은 우리를 돕고 있는 우인(友人)인가? 아니면 미국의 패권유지를 위한 하수인인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에 대한 답변은 온전히 글을 읽는 독자들의 몫이다.


2020년 세계보건회의에서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민주주의 체제와 과학기술에 기반한 COVID-19 대응의 성공사례를 발표하였다. 그는 동시에 인간의 안전보장(human security)에 대한 협력분야에 세계적인 지도국가가 될 것임을 약속하였다.

이는 아시아에서 미들-파워로 부상하는 한국의 국가적 위상을 반영한 사례로, 지난 시절 식민지배와 격심한 전쟁을 겪은 과거의 역사와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다. ‘미들-파워’라는 것은 다자주의에 기초하여 외교적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강화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제 한국의 외교정책의 성과에 대한 표준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다만 이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아시아에 있어서 규칙에 기반한 질서를 옹호하고 북한의 도전에 응답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

미들-파워 국가로서의 한국의 위상은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야망과 필요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아시아의 지정학적 어려움으로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 그리고 여전히 군사적 위협과 인권이 무시되는 레짐(북한체제)의 한가운데 한국이 처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워싱턴과 동맹은 북한을 대응하는데 필수적이지만, 지난 시기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의 과정에서 한반도의 분단을 야기시킨 것처럼 자신의 주도적 전략이 결여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서울당국은 친(親)사회적 좌표와 기구들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를 형성해 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정권의 새로운 남방정책의 목표는 실재적인(physical) 것과 디지털적인 인프라를 사회기제적으로 융합하는 방식으로 아시아의 남방과 북방지역을 연결하는 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의 혜택 국가로서 한국은 이해상충의 해결방식으로 군사적 대결과 무역전쟁을 피하고자 한다.

외무장관인 강경화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이웃 국가들과 사전적으로 협력을 제안함으로써, 우리는 개별국가 간의 협력이 다른 개별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하는 선의적(virtuous) 사이클을 형성하고자 도모한다’.

물론 자신의 위상을 확인하는 것은 환경과 타산에 의한 수동적 기능이 아니라 능동적인 자신감과 확신에 기초한다. 이미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을 국제무대에서 주요한 행위자로 인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선진국과 개발국을 연계하는 여러 종류의 국제회의 주관하고, 산업적으로는 삼성과 현대 등의 브랜드가 부상하고 있고, 문화적으로도 K-Pop, BTS 그리고 기생충과 같은 영화가 한국의 지위를 알려준다.

동시에 해외협력기금(ODA)와 유엔평화유지군 등에 유의미한 재정지원을 하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도전을 받고 있는 아시아의 질서유지에 주도적인 미들-파워 국가로서 다음의 3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일본과 과거사에 대한 대립이 미들-파워 외교라는 에너지의 공급에 주기적으로 정전(停電)사태를 야기한다. 독도분쟁과 불충분한 과거사의 화해, 전쟁(강제노동) 보상 등 반일본의 정서가 미들-파워의 위상에 걸림돌로 돌출한다.

한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일상적으로 일본군사주의의 위협을 과장하고 도쿄당국과 협력의 중요성을 간과하면서, 한국이 지역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킨다. 미사일방어 등에 대한 정보 교환, (북한의) 제재의 기피와 수출통제의 위반에 대한 확인, 항해의 자유보장과 재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에 대한 협력 가능성을 제한한다.

두 번째, 한국의 자유민주적 가치는 중국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실용주의에 입각한 현실적 외교정책과 가끔 충돌을 한다. 한국당국은 평양과 외교적 접근은 북경을 경유한다는 믿음 때문에 때때로 가장 주요한 무역 파트너이자 강력한 이웃(중국)에 대하여 차별화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한국은 신장과 홍콩의 인권 상황과 탈북자들이 중국에서 착취당하거나 북한으로 송환되는 것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있다. 또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보이는 팽창주의, WTO 규칙의 준수여부, 그리고 일대일로가 국제적 규범을 지키는지 여부에 대해서 침묵을 지킨다.

세 번째, 국내의 정치적 대립이 외교정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양당체제 하에서 전임의 두 대통령이 감옥으로 보내졌고, 국회는 입법과정에서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키는 실제적 전장터이다.

단임의 5년제 대통령 임기와 불안정한 정당정치 때문에 북한과 주변 이웃국가들에 대한 정책이 시계추처럼 흔들린다. 이러한 내부의 균열로 인해 외국의 개입전술에 쉽게 노출되고, 성과있게 운용되는 정권이라도 외교정책에서 자원할당의 주도권을 행사하기에 비효율적이며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위에 언급한 대치적 정치상황이 정치적 지도력에 제한을 가하면서, 이념적 경쟁의 주변국가들에 대해 주도적 우위를 취하기보다는 주어진 법적 규정을 수동적으로 따르게 한다. 한국의 외교정책은 민주적 절차와 국가이익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갖추기 위해 투명성과 일관성을 유지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북한과 평화경제를 추구하기 위해 일본과 결별한다는 정책적 오류(fantasy)를 피할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그리고 인권상황, COVID-19 팬데믹의 위기극복, 미국 미사일시스템의 한국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 등에 대하여 일관된 정책이 요구된다.

미들-파워의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으로 한국은 워싱턴과 동맹을 강화하고 북경과 평양과의 관계를 조정해가는 가운데 제로-섬에 빠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에 주도적으로 대응하면서 중국과 북한을 자극하지 않을 수 있다.

특히, 동맹의 의무라며 국제적 질서유지에 기여하는 것보다, 패권국가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자유무역을 증진하고 기후변화를 완화시키는 소소한 분야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아시아 내에 새로운 협력기구를 창립하면서 이념과 역사의 갈등에서 외교정책을 해방시킬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지역 내의 경제를 활성화하고 정치적 안정을 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화와 합의에 의한 한반도 통일에도 다가갈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MIKTA(Mexco, Indonesia, S. Korea, Turkey & Australia) 협력기구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새로운 남방정책에 있어서도 인도를 결합시키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또한 지역역량의 증대를 위해서 동반자 국가들인 호주와 아세안과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 이러한 미들-파워 외교를 통하여 한국의 위상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을 강화할 수 있고 다른 국가들과 국제적인 협력의 가치를 과시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EastAsiaForum, 2020-05-27.

Leif-Eric Easley

이화여자 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

화, 2020/06/09-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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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초반부터 불어 닥친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돌림병(COVID-19)의 세계적 유행과 확산은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자본주의세계체제가 누려왔던 기성 질서와 관성이 매우 허약한 무용지물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래서 모든 인류와 나라는 이념과 체제를 가리지 않고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온전히 그 이전과 다른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COVID-19의 대유행은 모든 산업분야에 엄청난 충격과 영향을 끼침으로써 세계적 경제난, 경기침체, 실업난, 부도, 파산을 낳고 있다. 무역국가인 한국경제역시 극심한 어려움을 노사 양측이 겪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구시대적 정치관행과 생활문화, 세계관 및 인생관까지도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이 복합위기는 불확실성과 불안정, 불안을 특징으로 한다. 이 다중위기는 목전의 COVID-19로 인한 돌림병위기와 경제위기,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위기로 겹쳐서 몰려들고 있다. 그래서 멀지 않은 장래에 인류의 생존과 희망을 위협하고 있다. 더욱이 분단모순을 떠안고 있는 한국은 이 복합위기들을 극복, 지양하기 위해 모든 국가역량을 한데모아 대통령을 정점으로 총력대응하고 있다. 그래서 나름대로 돌림병 확산을 저지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어 K-방역모형은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새로운 포준, 새로운 정상(New Normal)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개발협력기구 가입국 가운데 산업재해·자살율·노인 빈곤율 세계1위이며, 기후악당국가로 혹평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① 디지털 인프라 구축 ② 비대면 산업 육성 ③ 국가기반시설 스마트화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단지 이틀 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그린 뉴딜이 화두”라고 선언하고, 환경부,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국토교통부 등의 합동 서면 보고를 지시했다.

정부 수반과 국무위원뿐만 아니라 노조 및 주요 사업자단체 대표까지 참석한 범국가적 비상경제회의는 6차 회의에서 앞으로 5년 동안 76조원 재정 투자를 통해 경기진작 등 국난극복을 의결했다(2020. 6. 1.) 전례가 없는 일이다. 말 그대로 국난극복을 위해 중앙정부가 지닌 재정역량을 모두 걸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고 말하자마자 13조원 규모의 ‘한국판 그린뉴딜’ 사업추진이 발표되었다. 일부에서는 시장주의정권시기 녹색성장의 판박이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주지하다시피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정책은 저개발국이나 개발도상국에서 추진되었던 것들이었다. 한국과 같이 중후장대한 중화학공업입국이고 수출만을 지상과업으로 삼는 무역국가에서 지속 불가능한 정책이었다.

녹색성장은 생태효율성(eco-efficiency)이라는 지표로써 나타낼 수 있는, 경제성장을 위한 환경보호책으로 추진해야 했거나 지속가능한 성장(sustainable growth)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더욱 가관이었던 점은 사실상 또 다른 개발주의에 경도된 녹색성장정책으로써 4대강개발과 원자력발전 증설을 위해 토목건설기업들이 획책한 명분이었다. 대통령의 한 마디로 녹색성장정책은 정권 최대의 국책사업으로 둔갑했다. 기존의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무력화하고, 녹색성장기본법 제정과 시행으로 그 극단을 찍었다. 한때 한국 대통령은 녹색성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리더쉽을 구가하기도 했다. 그를 위해 국민세금이 쏟아 부어졌다.

한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제 역시 이 녹색성장기본법체제에서 국가계획으로 완성되어 앞으로 10년, 30년 이후 기후변화 대응계획이 수립되어 에너지, 산업, 건축, 교통, 농업, 생태서비스 보전, 독성 없는 환경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선진국에 가까운 정책기반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계획만큼 이산화탄소배출 감축정책에 의한 가시적 효과가 미흡하고, 기후변화대응 계획의 총괄 및 조정기능이 부족하며 체계적 이행점검 수단이 부재하여 계획과 실적, 정책 효과간 격차가 크다는 데 있다.【1】

제레미 리프킨은 앞으로 10년 이내 시점인 2028년 화석연료 문명은 종말을 고하게 되며 지구 생명체를 구하기 위한 대담한 경제 계획으로써 그린 뉴딜을 주창했다. 지구온난화에 가장 책임이 있는 4대 핵심 부문, 즉 정보 통신 기술(ICT) 부문, 전력(에너지) 및 전기 유틸리티 부문, 운송 및 물류 부문, 건축물(주거와 상업·산업·기관 건조물) 부문에서 연소시 이산화탄소 배출하는 화석연료 산업과 절연하고, 저렴하고 새로운 녹색 에너지를 채택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민주당 오바마 정부의 파리기후변화협정 참여를 거부, 공식 탈퇴함으로써 그의 시장주의 반환경 행보를 거침없이 내디뎠다. 그러나 미국 하원 민주당 의원들은 2019년 2월 7일 미국판 그린 뉴딜 결의안을 채택했다.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 1.5특별보고서로 시작된 논의에 주목하여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40-60% 감축하고, 2020년 이산화탄소 배출 없음(Net Zero)에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동시에 미국 사회에서 부의 불평등과 차별해결이 시급하며, 세계 대전쟁을 준비하는 것과 같은 태세로 그린 뉴딜을 실행해야한다며 5개 목표를 제안하며 10년 동안 기반을 구축해야 할 14개 부문 인프라와 산업을 열거했다. 트럼프 정부가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유럽(EU) 그린 딜은 심화되는 기후위기로 지구상 800만 종 중에 100만 종의 생물종 멸종 위기에 있다고 진단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이자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8개 목표를 제안했다(2019. 12, 11.). 예를 들면 새로운 성장은 정의롭고 번영하는 사회로 나가야 하며 모든 전환은 정의롭고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2030, 2050 기후 목표 상향 조정, 친환경 에너지 공급, 청정 순환경제를 위한 산업변화, 에너지 절약, 자원 고효율적 건축, 지속가능하고 스마트한 교통시스템, 공정하고 건강하고 친환경적 농업 시스템 구축, 생태서비스 및 생물다양성 보존 및 회복, 독성 없는 환경을 위한 오염물질 배출 제로(zero)화 등을 목표로 하고 20개 사업내용을 제시하였다. 영국도 탈퇴하는 흔들리는 유럽체제에서 개별 국가들이 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집행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미국과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이산화탄소배출을 많이 해 왔던 공업 국가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3중의 복합위기에 처한 한국정부가 야심차게 추진을 선언한 뉴딜정책은 어디로 나아갈까? 첫째, 사상 최대 규모의 재정투입에도 불구하고 ‘고용 없는 성장’을 거듭해 온 정보통신산업부문에서 어떤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둘째,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얼마나 빨리 뛰어넘을 것인가? 미국에서 메인 컴퓨터가 처음 개발되어 산업현장에 맨 처음 투입된 분야가 인구조사통계와 은행, 항공기예약시스템이었다. 당시 미국은행에서는 세계 최고 기술수준의 전산화에 처음 성공하여 이제 설비생산성 효과를 잔뜩 기대하였으나 투입 대비 산출 효과는 이에 거이 미치지 못하였다. 초기 기술을 생산 및 서비스 현장에 적용한 뒤 투입 대비 산출 효과를 셈해 보고, 생산성 제고가 많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였으나 생산성 효과를 낳는 데에는 시간과 비용,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이런 현상을 싸잡아 부른 게 바로 ‘생산성 역설’이었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더 많은 정보통신산업기술을 도입, 적용하게 될 때 매번 이런 생산성 역설과 시행착오를 반복하게 될 것이다.

셋째, 산업현장에 신기술 도입과 적용은 불가피하게 탈숙련화 및 기술적 실업을 낳게 될 터인데 이를 만회할 만큼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넷째, 한국판 뉴딜과 그린 딜의 사업 내용을 일별해 볼 때 몇 개 산업부문, 몇 개 재벌 계열사들만 사업 이득을 볼 수 있는 ‘특혜 경제 시비’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다섯째 기존 상품시장경제체제를 뒤흔들고 있는 대전환의 시대임에 도 불구하고 ‘인간노동 소외’를 지양할 탈상품화 전략은 부재한 것일까? 총자본의 대공세에 맞설 총노동의 협상력 부실, 대응역량 결핍, 진부한 일규주의 투쟁노선, 기업별노조체제의 한계, 이면헌법이 지배하는 1948년 체제를 탈피하지 못한 분단체제, 국제법상 기술적 전쟁상태 등 여러 가지 구조적, 행태적 제약조건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국면 전환을 위한 집단대응에 많은 아쉬움이 남아 있다.

이제 한국판 그린 딜에 대해 잠시 눈을 돌려보자. 한 마디로 드는 느낌이다 : 그럴듯한 그린 딜 정책만으로 뭘 이룰까? 한국의 대표적 환경운동단체 전 사무총장의 한 마디는 더욱 난감하다.【2】

첫째 그린 딜 전략 평가에 앞서 무엇보다 먼저 한국의 지속가능발전정책은 ‘이행 결함’의 늪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 정부 내내 많은 이들이 참여하여 나름대로 국제적 수준에서도 인정할만한 구색을 갖춘 국가지속가능발전계획을 수립했고, 지속가능발전기본법도 제정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녹색성장을 추진하다고 이를 모두 뒤집어 버렸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권은 ‘지속가능발전기본법’을 단순히 ‘지속가능발전법’으로 격하시켰다. 더욱이 하위범주인 녹색성장만을 위해 ‘녹색성장기본법’으로 상위에 올려놓고, 그럴듯한 정책으로 포장, 시행했다. 환경부뿐만 아니라 전 부처에 녹색성장 관련 부서가 신설, 운영되었다. 이런 문제에 아무런 개념과 철학이 없던 박근혜 정부도 이를 답습했으나 환경부 등 부처내에서 녹색성장 부서는 대부분 사라졌다.

둘째, ‘지속가능발전’, ‘녹색성장’, ‘그린 뉴딜’은 단일하고 직선적 선형 정책들이 아니다. 이들 정책들이 지닌 복합성, 다중성, 을 이해하고 이에 걸맞게 대응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원래의 개념상 ‘현재 세대와 미래세대의 욕구와 필요성, 지속가능성’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지속가능한 발전’은 환경보호도 하면서 경제성장을 하고, 사회 통합, 문화다양성도 병행적으로 추구하고 동시에 실현하는데 있다. 따라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려면 서로 충돌하거나 배치되고 있는 가치나 지향들을 조정, 타협, 순치하려는 집중적이고 집요한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시장주의자들에게 녹색성장은 단지 친환경 경제성장에만 치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셋째, 한국에서 녹색 뉴딜은 어떠한가? 문대통령의 녹색뉴딜 지향은 대전환시대 출구전략으로서 유용한 선택이라고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행정부 밖에서의 논의에 쫓아가보자. 지난 5월 6일 더불어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회 한국형뉴딜TF 단장, 에너지전환포럼, 그린피스 공동 주최로 “코로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한국판 뉴딜’의 주요과제, ‘그린뉴딜’ 기후위기대응과 에너지전환을 통한 한국사회 대전환 모색”을 부제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그린뉴딜” 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2명의 경제학자가 발표했다. 다음날 국무총리 주재 목요포럼에서 전직 광역도지사 출신의 국회의원 당선자가 “코로나 이후 변화된 세상,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앞당기자”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5일 뒤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에 이어 그린 뉴딜을 위한 4개 부처 공동보고를 지시했다. 2일 뒤 신임 집권여당 원내대표는 “21대 개원 즉시 한국판 그린뉴딜기본법 추진”을 발표했다. 6월 5일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226개 단체장들은 기후위기비상선언에 서면동의하고 선포식을 국회에서 가졌다. 한국판 녹색 뉴딜 정책 입안과정은 속도전 양상 그 자체이다.

넷째, 그렇다면 그 녹색 뉴딜 정책의 추진방향은 적확한가? 한 마디부터 하자면 기존 정책들의 재탕이 너무나 많다. 새롭고 담대한 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직업 관료들이 서류 캐비넷이나 컴퓨터 폴더에 있었던 이런저런 정책들을 골라내 열거한 것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이런 기시감은 필자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다. 앞서 소개한 미국과 유럽의회의 녹색 뉴딜 정책만큼도 세밀해 보이지 않다. 만일 “녹색의 산업화, 산업의 녹색화”를 기조로 한다면 산업자원부와 환경부가 기존 정책을 병렬적으로 열거할 게 아니라 관계부처 장, 차관들이 말 그대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협력방안을 새롭게 도출해 내어 시장 수용성과 사회 수용성 평가에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단지 그렇게만 해서는 아니 될 일이다. 이산화탄소 배출 제로와 사회적 불평등 해결, 일자리 창출이라는 얼핏 이질적으로 보이는 정책목표들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포기하고, 무엇을 지켜야 할 것인지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단순한 정책 혼합(policy mix)가 아니라 정책통합(policy integration)을 해야 한다. 하나 더하기 하나(1 + 1)는 단순히 둘(2)이 아니라 둘 반(2.5)이거나 셋(3), 또는 그 이상의 결과를 낳을 새로운 정책목표 설정과 사업내용이 마련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한국경제 체질 자체를 교체할 수도 있다는 대전환기 경로변경을 고려해 봐야 한다. 국민경제의 변화 없이 지속가능성을 제고할 수 있을까?

녹색 뉴딜 정책은 큰 우산정책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한다.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 절반 감소, 2050년 온실가스 배출 제로, 지속가능한 사회형성을 대목표로 한다면 이를 위해 회복력을 갖추면서도 탈탄소 경제아래 빈곤을 없애는 기후변화 대응을 하고, 노동·환경·안전을 확보하는 정의로운 전환, 탈 원전과 탈 탄소 산업으로 전환하면서 일자리 양산, 순환경제를 하면서 일자리 확보, 지역 정부 녹색 뉴딜, 지역 먹거리·에너지·경제전환 공동체 구성과 운영, 이를 위한 정부 예산 배정과 책임(탄소배출 제로를 위한 예산배정, 탄소배출영향평가제도 도입과 시행) 등 정책 묶음(패키지)을 동시에 입안, 추진해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기획재정부 전체업무의 녹색전환부터 선결되어야한다. 이제 정부 부처간, 정부와 노사정간, 정부와 시민사회간, 정부와 국회간 올바르고 바람직한 방향을 찾아가기 위해 더 많은 의견수렴과 합의, 정책조율이 필요하다.

촛불혁명은 구체제 유습과 낡은 관행의 청산과 함께 새로운 질서를 통해 새로운 체제 형성, 다시 말하자면 새로운 체제로 이행, 전환해야만 그 이름값을 다할 수 있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새롭게 만들어 내어 국리민복과 이용후생을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임기 2년 이내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임기 4년 이내 이를 위한 입법과 제도 정비, 행정력 발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금은 바로 그런 일들을 실행하기에 적기이다. 지속가능한 대한민국 건설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 지속가능성 제고의 첩경이 되어야 한다.

 

【1】 이유진 2020 1.5°C를 위한 정세전망 “기후위기 대응과 그린뉴딜” 대한민국 기초지방정부 기후위기비상선언 발제자료. 2020. 06. 05.

【2】 페이스북 염형철 게시글과 댓글: 바로가기 클릭

수, 2020/06/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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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수십 년간 중국인민공화국은 일년에 인민대표자회의(NPC)와 인민정치협상회의(CPPCC)라는 두 개의 회의를 동시에 개최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왔다. 양회로 불리는 두 개의 회의는 매년 3월에 개최되어 왔는데 올해는 COVID-19의 위기로 5월로 연기되었다.

서방사회에서는 인민대표자회의가 통과의례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공산당과 정치협상회의의 역할과 상호작용이 점차 무게를 더해 왔으며 이번 양회의 결정들은 중국 당중심 헌법기구와 강화된 다민족의 선출권력 간의 복잡한 관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양회에서 중국공산당이 중요한 몇 개의 법안을 통과시켰는데 그 중의 하나가 시민법(national civil law)이고, 다른 하나가 논쟁을 야기한 새로운 국가안전규정(new national security bill)으로 홍콩에서 지속되는 시위를 차단하려는 목적으로 북경당국이 홍콩 내에 안전전담 조직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다. 북경당국은 안전규정의 제정을 지난 해에 감행할 수 있었으나, 이번 인민대표자회의를 통하여 선언하면서 규정의 무게를 더하였다.

인민대표자회의 대표단은 정부의 연간 업무보고를 승인하였는데 처음으로 대만에 대한 ‘평화적’ 통일을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대만과 ‘비평화적’ 통일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또한 GDP목표치를 설정하지 않았고 6%의 성장을 고수하는 대신,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두었다.

인민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의 양회는 당중심 헌법기구의 핵심을 구성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공산당이 운전석을 차지하고 지배한다.

제14차 회의 이후, 공산당의 총서기가 중국국가의 주석직과 군중앙위원회의 주석직을 겸임한다. 다음으로 정치상임위원회(당중앙 지도부)의 중요한 3인이 행정부의 수상, 인민대표자회의 주석(의장) 그리고 정치협상회의 주석(의장)을 책임진다 (현재는 Li Keqiang, Li Zhanshu and Wang Yang이 맡고 있다).

이렇게 당 중심의 헌법시스템 내에서 권력의 배분이 당 중앙의 가장 중요한 4사람이 상기의 자리를 제각각 차지하면서 이루어 진다.

이러한 시스템은 당기구의 중앙위원들로서 일반주석들의 위치가 행정부의 핵심인 수상/부수상직보다 강한 권력을 가지도록 구성되어 있다. 동시에 권력의 분산보다는 통일집중의 원칙 위에 있다.

공산당과 인민대표자회의는 일상적인 긴장과 때때로 대립하는 위치에 있다. 헌법상으로는 대표자회의가 최고의 의결기구이다. 대표자회의 지위와 기능은 이론적으로는 당보다 우위에 있으며, 당은 인민대표자회의라는 헌법적 프레임 안에서 역할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대로 공산당이 대표자회의를 통제하며 공산당 총서기가 대표자회의의 주석보다 강한 권력을 행사한다.

인민의 주권개념은 대표자회의에 녹아 있다.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마치 차량의 방향조향장치와 같이 자신들의 의견과 국가적 의지를 입법을 통해서 전달한다. 이런 의미에서 대표자회의는 제국의 봉인이 찍힌 현대적 형식기구로 이해할 수 있으며, 최고 권위와 주권을 상징한다. 실제로 인민대표자회의는 2980명의 참석자들이 보수를 받지 않는 임시적인 입법자로서 활동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공인의 입법기구인 셈이다.

의회 민주제도에서는 흔히 입법기구가 양원으로 분리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이론적으로 권력을 분리시키는 양원제를 거부하고 있지만, 지난 몇 년간 대표자회의와 정치협상회의는 양원제와 유사하게 입법과정의 역할을 증대하여 왔다. 헌법규정에 따라, 모든 주요 결정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받아야 하며, 법적인 권한은 없더라도 정치협상회의의 자문을 사전에 거쳐야 한다. 국가의 법률의 제안과 통과는 반드시 대표자회의를 거쳐야만 한다.

입법 과정은 당의 해당위원회들이 제안, 조사와 연구, 기획의 초안, 상담과 여론취합 등 오랜 과정을 거치면서 이루어지고, 제안 이후에는 해당분야 전문가들의 검토, 숙의, 조정과 승인, 법제화와 초안의 수정을 거쳐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에 의한 승인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실제 대표자회의가 개최되기 전에 진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사전적 진행을 통해 진지한 상담과 협상, 조정과 논쟁을 통해서 수많은 수정이 이루어진다. 동시에 중앙당의 해당위원회 위원들은 양회가 개최되기 전에 중국전역을 방문하여 사전조사를 시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예를 들어, 홍콩의 국가안전규정은 1명의 거부와 6명의 기권을 제외하고 2878 참가자들의 찬성을 얻었다.

대표자회의 참석자 수數의 배정은 개별 성省과 특별지역의 인구수에 비례하여 이루어지며, 특별지역의 대표자들은 직접 선출되며, 개별 성의 대표자회의 참가자는 간접적으로 선출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협상회의의 참석자들은 지역의 이익보다는 해당 지역의 다양한 부문을 대표해서 구성된다. 협상회의는 통상 46개 부문으로 나누어 지는데 의료 건강 교욱 미디어 종교 자연과 사회과학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농민과 노동자들은 정치협상회의의 대표권을 갖지 않는데, 대신 당의 정치적 체계 내에서 다양한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분야의 엘리트들로 구성되는 ‘클럽’에 참여한다.

정부의 주요 지도부들은 대표자회의의 승인을 통해서 선출되지만, 이런 선출의 과정은 간접적이고 사전에 지명되고 통제된다. 중앙당의 조직부서에서 후보자들을 지명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산당원들이 대표자회의 주요 기구에 참여하면서 당의 지침을 통하여 조직기구에서 지명한 후보들을 선출하고 승인한다. 이렇게 사전통제된 선거시스템은 당우위(黨優位) 국가시스템을 운용하는 전제가 된다.

비록 현재까지는 공산당에 의하여 대표자회의가 사전에 조직되어 진행되고 있지만, 이들 대표자회의와 공산당 간의 관계가 향후 어떻게 진화하여 중국사회가 다원화하고 국제적으로 상호관계를 형성해 갈지는 지켜보아야 할 사항이다. 지금부터 대표자회의의 참가자들이 국가의 장래와 통일에 관하여 더욱 국수적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방적으로 변해갈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on 2020-05-30.

Baogang He

호주의 멜버른에 있는 Deakin 대학교수, 국제관계학 전공.

목, 2020/06/11-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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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미래는 암울하지만, 아직은 포기할 시점이 아니다.

그 동안 홍콩은 중국과 세계를 연결하는 핵심적 역할을 맡아 왔다. 중국으로 반환된 이후에 홍콩은 결코 자치적일 수 없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라는 점은 현지인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세력들#이 자치권을 자극하여 긴장을 격화시키려 하고 있으며, 1989년에 있었던 천안문 학살을 기념한다는 구실로 지역 내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미중관계가 악화일로인 상황에서 국제적인 개입은 홍콩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위험을 증가시키게 될 것이다. 반면에 홍콩인 스스로 합법적인 수단을 통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다 줄 수 있다.

홍콩의 중국반환은 1984년 중국과 영국간의 합동선언으로 결정되었고 1990년에 있었던 인민대표자회의(NPC)에 의해 기본법이 설정되었으며, 1997년에 양도작업이 진행되었다. 선언의 합의문에는 ‘일국양제’가 명시되었고, 1997-2047의 50년 간 이를 유지되도록 하였다. 중국정부는 일국(一國)에 방점을 두었고, 홍콩인들은 이제(二制)의 유지에 관심을 가졌다.

지정학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지역적으로도 홍콩은 중국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서방의 언론들이 선동하고 외부에서 지원자금이 들어오면서 소수인(minority)들이 자치권을 요구하였지만, 대부분의 지역민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문화와 생활방식이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들은 그저 북경어를 공식어로 사용하는 것에 저항감을 가지고 있고 공립시스템의 교육제도를 거부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자신들을 본토의 재판정에 세울 수 있는 범죄인송환법 도입의 제안을 저지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새로운 저항은 일국이제의 모델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국가안전법에 집중되고 있다.

인민대표자회의의 상임위원회 주석을 맡은 Wang Chen은 중국본토에 적용되는 기본법 23조의 지역안전규정이 현재까지 홍콩에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난 달 회의에서 이에 대한 입법절차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의 목적은 중앙정부에 저항하는 반란, 분리, 난동 및 국가기밀의 도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홍콩인들은 법안의 목적이 북경당국에 의해 임의적으로 적용되고 저항권을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기본법에 의해 발언의 자유는 보장되지만, 장래에 중국을 비난하는 것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외국인들과 공조하는 사람들은 구속될 수 있으며, 안전법에 해당되면 본토의 규정에 따라 사전허가 없이도 문밖에서 도청이 가능해 진다.

반면에 홍콩행정당국은 시민들에게 염려할 것이 없다고 설득하고 있으며, 법무담당 책임자인 Teresa Cheng은 만약 기본법을 저촉하는 사례가 발생하면 이를 조사 확인하여 NPC에 통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행정장관이었던 Leung Chun-Ying은 영국통치 시절에 있던 ‘반공특별국’과 같은 기구가 설치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들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안심하지 못하며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6월4일 천안문학살 기념행사에는 18만 명의 시민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올해에도 COVID-19를 구실로 집회가 금지되고 있음에도 수천 명이 이를 위반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창가에 촛불을 밝히면서 동참하고 있다.

홍콩 상업회의소 4천여 회원들은 제안된 안전법을 일반적으로 지지하지만 미국의 무역제재를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본토와 분리하여 관세 및 여행 등에 부여한 혜택을 폐지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중국의 안전법제에 의한 감시와 처벌이 증대하는 위협을 반영하여, 국무부의 여행책임부서가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5월 29일에 행한 그의 선언대로 거의 예외없이 모든 분야에서 제재가 이루어질 것이다.

홍콩의 재무담당 책임자인 Paul Chen은 미국과 직접교역량은 홍콩경제의 적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염려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홍콩은 본토로 들어가는 주요 관문의 역할을 해왔으며 경제는 서비스 분야에 집중되어 있고, 진주강(Pearl River) 델타의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 해안을 따라 급성장한 금융중심과 연구개발의 센터역할을 하여왔다.

동시에 아시아의 최상급 업무중심이다. 현재까지 중국투자의 2/3가 홍콩을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중국의 주요 기업인 ICBC와 Tencent 등이 본사를 홍콩에 두고 해외활동을 확대하여 왔으며, 외국인들은 홍콩의 증권시장을 통하여 본토기업의 주식을 매입할 수 있었다. 이런 활동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과 호주 등 서방 기업들은 중국 본토와 서방의 완충지대라는 전략적 견지에서 홍콩에 등기를 하였다. 이들이 철수를 결정하면 지역의 경제뿐만 아니라 본토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호주의 외무장관은 최근 주요한 내용을 언급하였는데, 영국에 관련된 것이었다. 영국은 영국국적의 해외주민증(BNO)를 소지한 홍콩시민들에게 거주와 시민권 임시부여를 제안하면서 호주에게도 동참하기를 요청하였다.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상기의 제안을 북경당국이 수용하지 않으면서, 다시 한번 홍콩시민들의 운명은 외부세력에 의해 결정되게 되었다.

가장 순탄하고 평화로운 경로는 홍콩시민들이 스스로 국가안전법을 거부하는 법안을 제출하는 것이다. 입법의회선거가 9월에 예정되어 있고 지난해 40만 명으로 등록된 유권자 숫자가 8% 늘어난다. 친-민주 진영은 시민들에게 과거에 친-민주 진영이 다수를 차지한 적 있는 기능적 입법의회 선거에 참가하도록 독려 중이다. 이러한 민주적인 절차의 과정이 현안이 되고 있는 사항에 대해, 외부의 개입을 통하는 것보다, 홍콩의 특별한 지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홍콩시위 배후에는 미국의 NED(National Endowment of Democracy) 자금지원이 있었다.

 

출처: East Asia Forum in ANU, 2020-06-8.

Jocelyn Chey

시드니 대학의 방문교수이자 홍콩에 대한 호주정부의 대표자문역을 지냈다

월, 2020/06/15-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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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북 붕괴론은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많은 진원지들이 있겠지만, 그 1차적 진원지는 아무래도 체제이탈자(본 글에서는 탈북자 대신, 체제이탈자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유는 이 용어가 보다 개념설명에 더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집단이 아닐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입장에선 자신들의 체제이탈을 합리화해야 하니, 북 비난에 대한 욕망을 쉽게 뿌리칠 수 없다. 2020년 현재 약 3만 명 정도의 체제이탈자들이 국내에 거주하면서 생기는 곱잖은 부작용이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정말 심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북 붕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2016년 8월 22일 당시 박 대통령은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북한 엘리트층조차 무너지고 있고, 주요 인사들까지 탈북과 외국으로의 망명이 이어지는 등 심각한 균열 조짐을 보이는 등 체제 동요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태영호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을 계기로 내부 균열을 언급한 것이다. 그 이전(2011년 6월)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다. 한밤중에 그렇게 올 수 있다”고도 했다.

2차 진원지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의 농락 때문이다. 미국의 딥스테이트 세력 및 국내의 보수·수구세력들의 정치적 집합체들이라 할 수 있는 미래통합당 등 정당 및 보수·수구계열의 국민운동체와 같은 부류의 시민사회가 한 통속이 되어 끊임없이 ‘가짜뉴스’를 생산해낸 부작용이다.

한 예로 1996년 게리 럭(Garry Ruck)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은 미하원 안전보장위원회 세출위원회에서 북의 봉괴에 대해 “붕괴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인가라는 시기의 문제이다”라고 진술했다. 1년뒤 2010년에는 커트 캠벨(Kurt Campbell) 당시 국방부 부차관보는 미국을 방문한 일본 의원단에게 “북은 6~7개월 버틸까 말까 하는 상황”이라고 장담했다.

3차 진원지는 조·중·동으로 대표되어지는 보수·수구 언론매체 및 그들에 기생해 있는 보수·수구계열의 전문가(학자, 지식인 등)집단들이고, 여기에 ‘국방의 의무’보다 직업 군인화된 군인집단도 예외이지 않다.

아래와 같은 상황을 상정해 그 대응책으로 한·미 당국이 수립한 ‘작전계획 5029’ 의 일부내용을 보면 ‘①식량난으로 굶주린 주민들의 불만이 증폭되고, 다수가 국경을 넘는다. ②민심을 의식한 지도층 다수가 불만을 표출하며 북한을 탈출한다. ③급기야 민중봉기가 일어나고 군부가 호응해 정변을 일으킨다. ④김정은을 제거하고 정권을 교체 내지 전복시킨다.’ 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함의해주는 바를 잘 생각해볼 일이다.

‘3-3-3 붕괴설’은 그 정점이다. 전형적인 묻지마식 붕괴설이었고, 그 시작은 19994년 김일성 주석이 서거하자 빠르면 3일 혹은 3개월, 그것도 아니라면 3년 내에는 반드시 붕괴할 것이라는 뉴스와 확증편향이 우리사회를 유령처럼 떠돌게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김정일 체제로의 안착이었다.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심심찮게 정체불명의 북 붕괴설은 계속 터져 나온다. 고난의 행군시기(94-97)에도, 김정일 서거 이후에도, 장성택 숙청을 전후한 시기에도, 그리고 가장 최근은 김정은 건강 위중설과 맞물려 또 터져 나왔다. 이 결과 역시 모두가 없었던 일로 되었다.

그런데도 왜 이 ‘양치기 소년’현상은 없어지지 않을까?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는 거짓말이 그렇게 지속되면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주장이 용납되지 않거나, 설 땅이 없어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어찌됀 판인지 계속하여 어떤 필요에 따라 부활하고 있으니 이 어찌 이상하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중심에 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과는 하등 상관없이‘북은 반드시 붕괴되어져야 할’그들의 맹신적 사유체계가 조·중·동이라는 매체를 타고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일 께다.

결과, 우리 국민들은 단 한 번도 북에 대한 실체적 진실과 직면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북 지도자가 죽으면, 내분이 일어나 자멸하는 북 시나리오만 정답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 알게 모르게 우리 모두는 그렇게‘붕괴 확증편향’으로 그들의 공범이 되었고, 그 공범의식은 또다시 그들에게 정치적 사냥감으로 작용하여 북 붕괴를 거의 맹신에 가까운 믿음으로 작용하게 했다.

그렇게‘양치기 소년’현상이 왜 발생하지 않은지는 설명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제껏 우리 모두가 이렇게 목도한 이 모든 확증편향이 단 한 번도 실현된 적이 없고, 향후에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해서 이 글은 바로 그런 실체도 없는 북 붕괴설, 어떻게 하면 허위가 밝혀지고, 그들이 있는 그대로의 북을 이해하는데 도움 될까를 고민한 끝에 앞선 글들과 마찬가지로 대신해 묻고, 대신해 그들에게 답 준다.

 

1. 과연 그들은 북 붕괴론에 대한 개념적 정의가 있는가?

 알다시피 북 붕괴론이 대한민국과 서구사회에 하나의 인식적 흐름으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1980년대 말에서 1990년 초까지 봇물처럼 터진 현실사회주의권 몰락 및 붕괴가 그 직접적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근거도 충분하다. “오늘날 제아무리 북한이 부인하더라도 전 세계 사람들은 공산주의 진영 대부분이 붕괴된 것처럼 결국에는 북한도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북한의 협상전략>, 366쪽 참조.)

다시 말하면 후쿠야마(Francis Hukuyama)의 역사인식, 즉 그가 <역사의 종말>에서 ‘자유민주주의체제로 역사는 이미 끝났다’는 그 우월적 인식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지독한 열병은 참으로 고치기 어려운 악성종양으로 남아 우리를 내내-분단극복과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괴롭히는 주범노릇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작 주목해야 되는 것은 그 반전이다. 후쿠야마는 이후 그 정의적 명제가 틀렸음을 뒤늦게 인정하고, 트럼프의 정치행태를 보며 “민주국가도 퇴행(현지시각, 2017.2.9.)”가능하다는 수정인식을 선보인다. 해서 사회주의체제만 몰락(혹은,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체제도 충분히 몰락할 수 있다는 그 상상력이 필요한데, 그런데도 우린 여전히 몰락한 사회주의체제만 눈에 들어오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이념으로 인해 엉망진창 되어버린 자본주의체제의 위기와 몰락은 못 보고 있다.

더해서 우리가 북 붕괴론과 관련하여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북 붕괴론의 실체가 불명확하거나 없다는데 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이 말하는 북 붕괴론이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으니 실체가 없다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겠다.

복잡하지도 않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소멸(몰락)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구권에서와 같이 사회주의체제에서 자본주의체제로 전환된다는 의미에서의 체제전환을 뜻하는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지금의 지배 체제(좁히면 김정은 체제)가 쿠데타나 시민봉기 등에 의해 붕괴되어 권력층의 교체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의 지배체제 변동을 의미하는지… 그 어떤 것인지에 대해 그들 자신도 모른다.

그러니 그들 자신들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과 필요에 따라 북 붕괴론을 남발시킬 수밖에 없고, 진작 북 붕괴론 실체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신하지 못하며 주구장창 그냥 북 붕괴설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들 자신도 북 붕괴론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그냥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따라 내뱉는 술수언어일 뿐이고, 비례적으로 우리 국민 모두는 그들이 말하고 있는 북 붕괴론이 무얼 의미하는지, 또 어떤 실체를 갖고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정말 북 붕괴론을 그들이 현실 가능한 상황으로 믿고 있다면, 그들의 섭리 상 아주 철저하게 붕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립해 효과적으로 대국민 설득과 홍보에 나섰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보다 더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북 붕괴론의 실체가 없으니 그럴 수밖에.

마치 이는 마르크스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고 했듯이 북 급변사태도 시도 때도 없이 필요에 따라 온 대한민국을 휘젓게 한다. 혹세무민(惑世誣民)도 이런 혹세무민이 없다.

 

2. 북 붕괴론은 현실화될 수 있는가?

백번 양보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선의적으로 해석해줘 만약 북 붕괴론 실체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아래 3가지로 요약정리 가능할 것이고, 그것에 대해-그 3가지에 대해 그 불가능성을 하나하나 짚어댄다면, 그들이 얼마나 허왕된 꿈을 꾸고 있으며, 국민들을 혹세무민시키려 하는지 알게 할 수 있을 것이다.

 

① 과연 국가 자체가 소멸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 천재지변 등에 의한 자연적 소멸의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니 전혀 억지라고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과 이 글에서 논하려는 논지의 핵심으로서의 국가 자체의 소멸은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래에 열거된 2가지 가능성 다 현실성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는 외세의 침입을 받아 그 국가가 외세의 국가에 병합되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 내에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일어나 다른 국가에게 자신들의 국가를 헌납하는 방식이다.

반론 첫째, 북은 스스로 자주국방의 기치하에 핵무력을 완성한 명실상부한 전략국가이다. 그런 국가를 상대로 그 어떤 국가가 공멸을 자초할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단 말인가? 불가능하다.

반론 둘째,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에 의한 타국에 헌납하는 방식도 도저히 가능하지 않는 상상력의 범위이다. 왜냐하면 북에서는 원천적으로 쿠데타나 국가적 변란 등이 불가능하다. 수령중심의 유일체제 특성이 반체제 단체나 개인을 허용할리 만무하며, 연동해 시민봉기나 시위가 불가능하다. 실제도 이제까지 반체제 시위나 데모가 있었다고 보도된 적이 없다. 고로 역시 불가능한 기대이다.

 

② 레짐 체인지는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이 또한 불가능하다. 근거는 만약 이러한 상황이 일어나고자 했다면 이는 80년대 말 동구권이 체제전환의 길을 걸어가고자 했을 때 그때 일어난 것이 이치적으로 맞아서 그렇다. 하지만, 그때 북은 동구권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어떻게? 그건 <통일뉴스>에 실린 “북은 집단지도체제가 과연 가능한가?”(5.15) 중 ‘4. 현실사회주의 몰락에서 찾아낸 그들의 교훈’에서 확인받듯이 오히려 수령중심의 사회주의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그 항로를 잡았다.

이 외에도 2011년 아랍권의 오렌지 혁명이라 불린 ‘중동의 봄’이라는 민주화 물결 때도 북은 많은 사람들(혹은, 많은 국가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즉 그 영향을 미쳐 북이 곧 체제전환을 할 수밖에 없을 거라며 국제사회가 주목한 적이 있었지만, 북은 한 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앞에서 잠시 언급한 것과 같이 북 스스로는 동구권의 체제전환에서 얻은 반면교사를 더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국가운영원리를 확정했다. 불가능한 상상력이다.

 

③ 그럼 지배체제의 변동은 수반될 수 있는가?

기억을 되살려 보자. 위키리크스(Wikileaks)는 2010년 2월 17일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와 천영우 당시 외교부 2차관의 오찬 때 천영우는 중국이 김정일 사망 뒤 북 정권의 붕괴를 막지 못할 것이라고 예견했고, 더 나아가서 “북한은 경제적으로 이미 무너졌고, 김정일 사망 뒤 ‘2~3년 안에’ 정치적으로도 붕괴할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천영우가 무슨 근거와 정보로 그런 인식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그런 인식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필요충분조건이 성립해야 함은 분명하다. 이름하여 북 체제를 지탱하는 내구력에 어떤 변화가 수반되고,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흐름을 타고 있는지 정도는 충분히 검증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국가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이 부정되고 있는지, 둘째는, 그 주체사상에서 출발한 유일사상체계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셋째는, 역사적 정통성-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에서 김일성민족의 시원이 부정당하고 있는지, 넷째는 당과 인민의 관계에서 믿음과 신뢰적 관계보다는 그 반대의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지, 다섯째는, 수령과 당의 군대로 되어 있는 군대가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은 반드시 확인되어져야만 한다.

그런데, 그 어떤 변화가 없다는 이는 분명 허구이다.

그래놓고 또 우리가 유념해야 될 것은 그 허구를 증명하는데 있어 다음과 같은 시각도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북처럼 폐쇄적인 독재국가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날 수 없다. 정보가 통제되고 자유가 제한되어 불만 표출이 어렵고, 데모를 하더라도 그에 대한 탄압과 처벌이 너무 가혹할 것이기 때문에’와 같이 그런 인식을 갖는 진보적 자유주의 시각이다.

왜 이 시각이 북을 들여다보는데 있어 문제가 심각하게 되는 것 인가하면 북에 대한 인식 그 대전제가 북을 ‘폐쇄적인 독재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오류에 빠진다. 지금 당장은 폐쇄적 독재가 인민의 저항을 다소 늦출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아랍의 봄’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경험처럼 독재체제는 반드시 민중의 저항을 받게 되어 붕괴될 것이라는 실체적 경험이 반영하게 되어 ‘그렇다면 북도 언젠가는 무너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자신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즉, 북 체제변동은 잠시 유보될 수는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변동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는 말이다.

이렇듯 북 체제를 수령중심 인민대중 사회주의체제로 인식하지 않고, 위와 같은-보수·수구세력들이 인식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진보적 자유주의시각의 ‘폐쇄적 독재체제’로의 인식은 북의 조그마한 변화에도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듯’이 언제나 북 붕괴론에 시달리게 된다.

예하면 이런 것이다. 노동자를 포함하는 기층민중, 유학생 및 작가나 교원 등 지식층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나 당 비서를 포함한 지배층의 망명까지 다양한 계급·계층에서 체제이탈자가 발생하면 이를 인식함에 있어 ‘기층 민중들의 체제염증’, ‘지식층의 이반’, ‘지배층의 동요’로 확대해석해내 정권이나 체제에 불만을 품고 북을 탈출한다고 연계시켜 버리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들이-진보적 자유의자들이 인식하지 못한 치명적 약점 둘이 있다.

하나는 체제이탈자 들 중에는 상당수가 자신들의 잘못에 따른 처벌에 대한 두려움이나, 혹은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소외감으로 탈출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체제이탈자 수가 곧 체제붕괴와의 상관관계로 넘어가는 그 직접성이 매우 적다는 측면에서의 간과이다. 황장엽, 태영호 등 고위층의 체제이탈자가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북은 ‘비겁한 자여 갈 테면 가라’로 정리해낼 수 있는 충분한 체제 내구성이 있고, 또 북 체제이탈자 수보다 약 66배가 더 많은 쿠바도 체제 붕괴설에 시달리지 않음은 그 함의를 잘 생각해내어야만 한다.

해서 결론은 북 체제는 항시 체제 붕괴라는 위험을 갖고는 있으나 ‘지금은 아니다’라는 인식보다는, 오히려 북 체제의 특성상 ‘체제 붕괴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보다 더 본질적임을 선행해 인식해야 한다.

 

3. ‘북 붕괴론이 붕괴되어져야 북이 보인다

북 붕괴론은 실체가 없다. 굳이 있다면 ‘북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믿음을 우리 국민들이 믿어줬으면 하는 그들의 사유체계만 있을 뿐이다. 결과, 그들은 북이 왜 핵을 개발하려 하는지, 또 포기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대책 없이 ‘비핵화’만 외치고, 나아간다면 통일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 제시하나 없이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도둑 찾아오듯 ‘통일은 대박’이라며 속 빈 구호를 내건다.

그래놓고 다시 그들의 북 인식 사유체계를 한번 들여다보자.

‘최고지도자 사망 → 권력투쟁 → 급변사태 → 체제붕괴 → 흡수통일’이 그들이 갖고 싶어 하는 최고의 프레임이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현실 사회주의권 붕괴 때와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 그리고 1990년대 중후반의 식량난 소동 때, 그리고 작금의 김정은 건강 위중설까지 그들은 단 한 번도 이 인식방법을 변경시킨 적 없다.

또한,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정치적)목적 달성을 위해 남북관계나 북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본질을 숨기고, 반면 드러난 상황에 대해서는 최대한 부풀려 곧 북 체제에 균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소문을 적극 퍼트린다. ‘악마국가 북한’과 마침내 ‘승리하게 될 대한민국’이 그렇게 대비된다. 아주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이고, 프레임 씌우기이다. 최고 꼭지점은 ‘이대로만 간다면 북은 멸망할 것’이라는 국가적 최면도 마다하지 않는다. 북 붕괴론이 그렇게 계속 영속되길 바라며 비례해 계속 웃길 바란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먼저는 당신들이 그렇게 기대하는 북의 ‘위기’ ‘급변사태’, 혹은 ‘붕괴’가 온다하더라도 이를 당신들이 그렇게 기를 쓰고 원하는 ‘흡수통일’과는 상관관계가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하면 당신네들의 생각, 혹은 셈법에는 ‘북의 위기는 필연적으로 급변사태로 이어지고, 급변사태는 붕괴로 이어지고, 붕괴는 통일로 이어진다’는 연관성을 가져가고는 싶겠으나, 실제로는 그 논법이 단언컨대 1도° 성립시키지 못한다.

이유는 북이 실제적 붕괴를 맞이한다고 하더라도, 그 국면하에서는 국제법상 정전협정 당사자국들이 제 1순위의 해결권을 가지고, 다음이 UN이 개입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미국·중국 등 강대국을 제치고 한국이 끼어들 틈은 단 1도°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는 위기에 빠진 북을 결코 한·미·일 세력에 포섭되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을 것이며, 미국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깡그리 무시한 채 북을 온전히 집어삼키려만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더한다면 현상유지적 안정만을 꾀하는 국제사회의 특성상 남북통일을 도와줄 이유도 전혀 없다.

다음으로는 세계적인 평화학자 요한 갈퉁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을 상기하면 당신네들의 생각이 얼마나 틀렸는지 금방 알 수 있다. “북한붕괴론이 북한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라고. 대입하면 ‘북 붕괴론을 철석같이 믿는 당신네들의 사유체계가 북 붕괴보다 먼저 붕괴될 것이다’이다.

이는 북이 당신들이 생각하고 싶은 것과는 달리, 위 ‘2와 3’에서와 같이 지금의 북 정권은 폭압정권도 아니며 북의 인민들이 북 정권을 반대하지도 않으며, 또 북에는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그 어떤 제재에도 충분히 견뎌낼 만한 힘이 있음이다. 때문에 북 붕괴보다 당신들의 그 믿음적 사유체계가 먼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확실하다.

첫째, 그들은(북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일제를 반대하면서 형성된 항일무장투쟁경험과 이를 ‘자주’로 국채화한 국가정통성이 매우 강한 나라이다. 즉, 그 어떤 외세의 부당한 간섭과 제재에도 절대 굴복하지 않는다.

둘째, 비록 여러 측면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분명 있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또한 분명한 것은 무상교육·무상의료·무상주택으로 대변되는 사회주의체제가 갖는 장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셋째, 수령중심의 유일사상체계가 갖는 체제의 힘을 결코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 표징에는 권력투쟁이 일반화되어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체제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최고 국가수반을 3년간이나 비워놓고도 ‘유훈통치’가 가능한 국가를 이 지구상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없다면 이상할 수는 있으나, 그것이 가능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체제가 갖는 견고성, 내구력은 대단하다는 것이 인정되어져야만 한다.

넷째, 군과 조선로동당이 갖는 힘을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제2차 고난의 행군 시기는 선군의 힘으로, 공개처형(장성택의 예) 등에서 확인받듯이 부정부패와 특권에는 한 치의 타협 없는 일벌백계의 기풍이 당을 특권집단이 아니라 인민의 이익에 복무하는 최전선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결과, 가장 많은 사망자 집단이 우리 대한민국과 서방세계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당원, 당 간부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국가와 인민이 하나의 사상체계, 즉 주체사상으로 대변되어지는 지도이념으로 무장되어 있다는 점도 절대 간과되어져서는 안 된다. 상징으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것 중에 북 인민들은 고집이 세고, 줏대가 높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표현을 철학적으로 표현해내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자 모든 것을 결정 한다’가 된다. 이렇게 인민 한 사람 한 사람모두가 철학으로 무장되어 있고, 정치적으로는 수령-당-대중이 하나의 유기체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국가적으로는 ’대가정‘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북은 국가-인민이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명확해진다. 당신네들이 꿈꾸는 북 붕괴도, 그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도 모두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제는 그 긴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다름아닌, 북이 붕괴된다는 것도, 북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은 다른데 있지 않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과 페리의 보고서를 주목하면 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 세계를 이해하는 길은 그 세계의 밖에 놓여있다”고 했는데, 바로 이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맞는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북을 이해하는 길은 북 밖에 있으며’로의 적용은 틀려서 그렇다.

단 한번만이라도 우리가 북을 북의 시각에서 제대로 바라보고자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백번 양보해 그들의 시각으로 봤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오직 체제이탈자(탈북자)의 시각만으로 그들 내부를 들여다본 것뿐이다.

첫 출발부터 잘못되어졌음은 그렇게 생겼고, 또 공화당 출신의 페리가 어떻게 그런 ‘페리보고서’를 써낼 수 있었겠는가라고 반문했을 때 대한민국의 보수도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북 보고서’를 써낼 수 있을 만큼의 너무나도 긴 ‘잘못된’ 북 시간여행이 있었음을 고백하자.

그러면 보수와 민족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한반도는 통일조국의 청사진이 그려진다.

 

통일뉴스, 2020년 5월 29일에 게재된 글입니다 (필자와 협의하여 수정 후 본지에 실린 것임).

화, 2020/06/1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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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행정부가 홍콩에 부여한 무역의 특별한 지위를 중단하는 제재조치에 착수했다고 선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제재가 홍콩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해 호주의 중국무역협회 의장인 Daryl Guppy와 중국국제방송CGTN 간에 이루어진 인터뷰 내용을 번역 소개한다.


CGTN: 홍콩에 부여한 특별무역지위를 종결한다는 선언을 행한 이후, 트럼프가 취할 제재의 내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Guppy: 글쎄요, 정확한 내용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만, 다양한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을 겁니다. 우선은 미국기업들이 홍콩에서 사업하기가 좀더 어려워 지겠지요. 일부 사업분야에는 직접적으로 금지조치가 행하여질 것이지만, 가장 주요한 관심은 비자의 제약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홍콩에 들어가는 비자를 받는 것이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자처럼 받기가 어려워 지겠지요. 이점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아마도 미국의 금융기관들이 홍콩에서 철수하는 것입니다. 대단히 극적이고 나쁜 시나리오인 셈입니다. 일단의 충격으로 투자알선 기금들, 즉 현재 홍콩지수를 투자의 대상 삼고 있는 기관들과 헤징 조직들이 크게 영향을 받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자본들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접근을 합니다만 이렇게 되면 자본시장도 충격을 받겠지요. 다시 말하면, 미국의 제재가 이루어지면 홍콩을 통해 중국본토에 흘러 들어가던 자본의 흐름에 장애가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상황에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상기에 언급한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반면에 한가지 보탬이 되는 측면은 미국에 상장된 기업들이 중국의 중시로 복귀하는 일이 늘어날 것입니다. 진작에 Alibaba와 Tencent가 미국의 증시를 떠나 홍콩의 증시로 이동하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러한 움직임이 빨라질 수 있습니다만, 기억해야 하는 것은 홍콩이라는 도시가 WTO에 의해 여전히 독립적인 관세지역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점이며,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에서도 독자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CGTN: 홍콩에 직접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요?

Guppy: 향후 홍콩이 상해처럼 변해가는 것이 불가피할 듯 합니다. 상호연계된 자본시장 특성상, 중국에서 직접 거래하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따라서 홍콩이 지난 시절에 자본시장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것이고 반면에 중국경제 전체와 결합되는 수준은 높아질 것입니다. 물론 이는 거대한 대국을 지향하는 중국에게는 좋은 일이죠. Greater Bay(광동-홍콩-마카오)의 결합도 함께 증가할 것입니다.

전체적인 영향을 종합해 보면, 홍콩이 중국경제의 전반과 상당한 수준으로 결합하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나 홍콩을 경유하던 국제투자 행위들은 향후에는 중국본토에서 직접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CGTN:  홍콩 내의 미국기업들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지요?

Guppy: 미국 기업들이 받을 중요한 충격은 관세와 관련된 것입니다. 현재 660억불의 무역이 홍콩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데, 무관세이던 이들 무역거래에 관세가 부과되면 이는 매우 심각한 부담과 위험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미국에서 홍콩으로 수출되는 액수가 500억불이고, 나머지가 홍콩에서 미국으로 수출되는 액수인데 그간의 용이했던 거래에 관세라는 충격이 다가오는 것이죠.

다른 한가지는, 이것도 매우 주요한 충격으로 작용할 텐데, 과거에는 누구나 홍콩을 들어가고 나오는 일이 비자라는 과정없이 매우 용이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이제 미국이 제재를 가하고 미국인들의 이동에 비자를 요구한다면 홍콩에서 사업하는 것의 용이함이 줄어들게 되고, 사업의 편이함이 사라진다는 것은 결국 불리한 점이 되겠지요.

CGTN: 트럼프가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 동기와 배경이 무엇이라고 판단하시는지요?

Guppy: 첫 번째 동기는 트럼프가 재선을 위하여 반중 캠페인을 무기로 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배경이고, 트럼프 진영은 무엇인가 행동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고, 이 시점에서 매우 큰 조치를 취하거나 최소한 시끄럽게 떠들어 대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손쉽게 판단한 듯 합니다.

홍콩은 중국의 일부입니다. 이는 변경시킬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간 홍콩은 매우 큰 자유를 누려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6개월 간 혼란을 겪으면서 중국당국이 홍콩을 안정화시키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예들 들어 미국 내에 전국적으로 시민적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고 봅시다(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런 경우 미국은 중국이 홍콩에 가한 것보다 훨씬 강제적으로 진압을 하려 할 것입니다.

사업은 시위진압처럼 그렇게 되질 않습니다. 당신이 사무실에 나갈 수도 없고, 사업을 계속할 수 없으면 당연히 그런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하겠지요. 어떤 사회도 그런 상황을 용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요? 중국은 미국의 제재조치에 대응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면에 미국에게 중국이 자국 영토에서 시민적 질서를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지 말도록 요구를 해야겠지요.

 

출처: CGTN, 2020.06.07.

화, 2020/06/16-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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