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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톱]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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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톱]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admin | 목, 2020/03/05- 00:00

[김언경 칼럼]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명예훼손 소송 도쿄 2심 재판 결과에 부쳐

* 이 글은 위안부 존재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명예훼손 소송을 지지하는 활동을 해 온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의 칼럼입니다.

지난해 10월, 저는 한겨레 전 부사장이신 원로 언론인 임재경 선생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에 대해 처음 들었습니다. 임 선생은 그가 일본에서 재판을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그를 지지하기 위해 ‘우에무라 다카시를 생각하는 모임’(우생모)을 만들었는데 그들이 일본에 가니 “한국의 대표적 언론단체인 민언련 사무처장이 함께 가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본의 무역보복으로 불매운동이 전개되는 와중에 3박4일이나 일본을 다녀온다는 것이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저는 우에무라 기자의 자서전 『나는 날조기자가 아니다』(푸른역사)를 읽었고, 결국 함께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삿포로 재판소 판결을 지켜보기 위해서 저는 또 다시 우생모와 함께 일본에 다녀왔습니다. 오늘은 그의 도쿄 재판소의 2심에서 또 다시 패소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판결문에 대한 상세한 분석은 전해 받지 못했지만, 아쉬운 마음이 매우 큽니다. 앞으로 이 문제를 더욱 공론화해야겠다는 생각에 제가 느낀 우에무라 기자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위안부 문제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누구이며, 어떤 재판인가?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62)는 <아사히신문> 기자로 재직 중이던 1991년 8월 11일 고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우에무라 다카시 “27년 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위안부 문제 보도하겠다” 뉴스톱 인터뷰 기사 참고). 그의 보도 사흘 뒤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서 우리에게도 많이 보도가 되었지만, 우에무라 기자의 보도는 한국보다 앞서 보도한 특종이었습니다. 그의 기사는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 주요한 외교문제로 만드는데 주요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4년 1월, 느닷없이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일본 우익들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쿄기독교대학의 니시오카 스토무 전 교수가 <주간문춘>에, 저널리스트라 불리는 사쿠라이 요시코가 <주간신초> 등을 통해 우에무라가 날조기자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우에무라 기자의 1991년 보도가 날조라는 주장의 배경은 단순합니다. 우에무라 기자가 쓴 당시 기사의 첫 구절에 “여자정신대라는 명목으로 전장으로 연행돼”라는 부분이 나오는 것을 트집 잡으며 정신대와 위안부를 구별하지 않고 썼다는 것이죠.

하지만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문제를 폭로하셨던 1990년대 당시에는 모두들 위안부와 정신대라는 표현이 혼용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0년에 창립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의 전신)도 단체명에 ’정신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이는 분명합니다. 우에무라 기자도 당연히 “당시 정신대라는 표현은 당시 일본과 한국 언론에서 모두 일반적으로 썼던 표현”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밖에도 우익들은 우에무라 기자의 부인이 한국인이라는 점 등을 빌미로 그가 사적인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날조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도로 인해서 우에무라 기자는 우익들의 공격에 노출되었습니다. 해당 보도들이 나올 당시, 우에무라는 아사이신문에 사표를 내고, 한 대학 강사로 부임하기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해당 학교에 날조기자를 고용하지 말라는 항의가 이어져 그의 임용은 취소되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그의 기사가 날조가 아니라는 점을 보도했지만 자신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우익들은 ‘일본의 매국노’라며 그에 대한 공격을 이어갔고, 심지어 고등학생인 딸에게 살해 협박까지 했습니다.

명예 회복을 위한 재판, 그러나 두 재판소 모두 2심까지 패소

이렇게 일본 우익으로 인한 공격에 시달리던 우에무라 기자는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 명예훼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재판은 니시오카 스토무와 <슈칸분춘>(週刊文春)을 대상으로 도쿄 재판소에서, 사쿠라이 요시코와 <슈칸신초>(週刊新潮) 등을 대상으로 삿포로 재판소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삿포로재판소 1,2심 모두 우에무라 기자가 패소했고, 도쿄재판소도 1심 패소 이후 오늘(3월 3일) 2심 결과가 나왔는데, 마찬가지 결과였습니다.

두 재판소 모두 우에무라의 사회적 평가가 떨어진 것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익들이 ‘우에무라는 날조기자다’라고 믿을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으며, 공공의 이해에 관한 사안이기 때문에 명예훼손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말한 ‘상당한 이유’ 그 무엇도 전혀 ‘상당한 근거’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변호인 측은 두 항소심 재판 모두에 대해서 “최고재판소(일본의 대법원)는 명예훼손 재판의 경우 진실 상당성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재판소가 추론으로서 상당한 합리성이 있다고 판결했다”고 평하면서 이는 판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재판 이후 우에무라 씨와 변호인 측은 즉각 상고하겠다고 밝혔기에, 이제 두 사안은 일본의 최고재판소에서 다투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어떤 말을 하는 사람들일까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삿포로 재판을 방청하는 과정에서 저는 사쿠라이 요시코라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삿포로 재판은 사쿠라이 요시코와 그의 글을 출판해 준 3개의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쿠라이 요시코는 영화 <주전장>에서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대표적인 일본의 우익인사입니다. 그는 45년생이고 여성으로 베트남에서 출생하여 하와이대학 역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지의 도쿄 지국에서 근무한 후 1980년부터 1996년까지 니혼 TV의 저녁 뉴스 프로그램인 ‘오늘의 사건’에서 메인 캐스터로 일했습니다. 일본에서 여성 캐스터의 선구자적 존재이기에 그를 ‘저널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가 쓴 글을 번역한 것들이 제법 있던데요. 일본 ‘슈칸다이아몬드’ 2018년 3월 17일호에 실린 사쿠라이 요시코의 칼럼 <한국의 사회주의화 및 북한화가 진행 중, 문대통령과 보수파 간의 대립에 주목>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마디로 근거도 없는 허위조작정보이며, ‘프로 막말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문재인이 구상하는 것은 헌법의 전면적인 개정입니다. 한국을 전혀 다른 나라로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헌법 전문에는 한국을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서 ‘자유’를 삭제하고 그냥 ‘민주주의적’이라고 바꿉니다. 그렇게 하면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부호가 맞기 때문입니다.”

“(문재인의 헌법 개정 내용 중 하나는) ‘국민의 권리’를 ‘인간의 권리’로 수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북한 김일성의 ‘인간중심’ 주체사상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재인은 적어도 이념에 있어서는 한국을 북한풍의 국가로 개조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연방제를 거쳐 통일국가로 향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사회주의화 및 북한화가 척척 진행중이라고 판단해도 될 것입니다.”

“경계 대상은 북한의 김정은만이 아니라 한국의 문재인이기도 합니다.”

우에무라 다카시를 생각하는 모임(우생모) 회원들이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재판에 참석한 모습

졌지만 이기고 있는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의 재판과정

삿포로 재판소의 2심에서 패소한 날,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두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도와주고 지지하는 분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위해 함께 해주는 이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그 모습을 보니 숙연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어 그는 “역사적으로는 이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이 재판은 일본의 전쟁범죄와 부끄러운 역사를 파헤친 언론인과 그 역사를 부인하고 다시금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가려는 일본의 보수 우익 아베 정권과의 ‘역사적’ 싸움입니다.

그리고 삿포로 재판을 응원하기 위해 두 번 일본을 방문하면서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에무라 기자를 지지하는 많은 일본의 시민이 있으며, 한국의 우생모 등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일본의 시민사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작년 민언련은 일본의 무역보복 이후, 일본과 한국의 보수언론들의 하는 거짓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토크쇼를 마련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강연을 한 민족문제연구소 김승은 책임연구자는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규명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시민사회의 노력이 매우 진정성 있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저는 실감을 하지 못했죠. 하지만 두 차례 일본 방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촉구하며 본인의 자리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양심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본 시민이 존재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의 변호인단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우에무라 기자 말로는 삿포로와 도쿄에 계시는 약 270명에 달하는 변호인단이 구성되었다고 합니다. 삿포로에서 활동하는 900여명의 변호사들 중 107명이 우에무라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실제 내가 재판을 방청한 두 번의 재판 모두 상대방 변호인 측은 4명 정도의 변호인이 앉아있는 데 비해서, 우에무라 측 변호인은 그야말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계속 들어왔습니다. 변호인석의 모든 자리가 꽉 차서 간이의자를 가지고 오고, 그 와중에 더 자리를 좁혀서 앉아야 할 정도로 변호인의 수는 많았습니다. 게다가 이들의 구성과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 변호인부터 젊은 여성 변호인까지 정말 다양했고, 재판정에 들어서는 그들의 표정은 매우 따뜻하고 활기찼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재판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서서 실질적으로 그와 연대하고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나면 시민을 대상으로 재판결과와 의미, 앞으로의 계획 등을 매우 상세히 알려주는 기자회견을 했고, 다시 시민사회를 대상으로 보고회를 했습니다. 많은 변호인들이 이런 과정이 끝난 뒤 우에무라 기자와 함께 한국음식을 먹는 회식 자리까지 함께 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모여서 우에무라 기자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변호인단의 모습은 감동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시민들의 우에무라 기자에 대한 응원과 지지도 결연했습니다. 재판이 있을 때마다 재판과정에 대한 보고회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지난 10월 그 자리에 우리가 ‘우에무라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인사했을 때, 여러 명의 일본인들은 눈물을 훔치는 것을 봤습니다. 감사와 환영과 연대의 표정은 지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홋카이도 주민이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해결하는 홋카이도 모임>이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신다는 나나오 히사코(七尾寿子, ‘우에무라재판을 지원하는 시민들의 모임’ 사무국장)라는 일본 여성은 ‘우생모’가 모이는 자리마다 오셔서 시종일관 손을 잡고 우에무라 기자를 지지하기 위해 방문한 것에 대한 감사와 연대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 2월 삿포로 판결 이후 열린 보고회에서는 ‘경남지역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건립추진위원회’의 이경희 공동위원장(‘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 함께하는 마창진 시민모임’ 대표)의 발언을 듣고 그 자리에서 성금을 걷어주기도 했습니다.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우익들에게 ‘매국노’로 낙인찍혀있는 상태입니다. 우경화된 일본 사회 내에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시민들과 정의로운 변호사들은 그에 대한 부당한 공격을 비난하며 그를 지지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재판은 이런 한일 양국의 깨어있는 시민을 늘려나가고, 그들의 참여로 결국은 역사적으로 승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싸움의 과정에서 한일 양국의 많은 시민들이 왜 이렇게 지극히 정상적인 기사 하나로 인해 한 인간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에 대한 사과와 배상조차 받기 힘든 일본의 현실이 얼마나 엄혹한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는 2019년 제 7회 리영희상을 수상했다.

한일 교류의 필요성을 강조한 우에무라 기자

마지막으로 우에무라 기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가 거듭 강조한 것은 한일 교류였습니다. 그는 현재 일본의 <슈칸 긴요비>(週刊 金曜日)의 편집장입니다. <슈칸 긴요비>는 일본의 진보적 주간지인데, 경영난에 처한 잡지사가 우에무라 기자를 편집장으로 초빙했다고 합니다. 현재 <슈칸 긴요비>는 우리의 〈시사IN〉과 기사 교류를 맺고 있습니다. 한편 우에무라 씨는 한국가톨릭대학의 초빙교수로 한국에서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었지만, 학기 중에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강의를 하고, 언론인으로 활동하면서 힘겨운 재판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쁘게 지내는 그는 한일 예비 언론인의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예비 언론인’은 우리의 ‘언론사 지망 취업준비생’과는 조금 다릅니다. 일본은 사실상 언론사에 취업이 확정된 상태의 예비 언론인들이 학업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이들에게 한일 교류의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에무라 기자는 2017년부터 ‘언론인 한일 학생 포럼’을 만들어서 한일 양국의 문제해결에 진정으로 기여할 수 있는 언론인의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반일감정이 매우 큰 편입니다. 그래서 처음 우에무라 기자의 이런 간곡한 호소를 들었을 때는 그다지 절실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결심 공판 당시 재판 과정을 미디어에 담고 후원하는 한국과 일본의 학생들을 보면서 저의 마음은 바뀌었습니다. 친일과 반일, 친한 반한이 아니라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 양국 시민이 함께 노력하는 과정은 분명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일본 최고재판소의 최종 판결을 남겨둔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를 위해서 한일 양국의 많은 시민들이 이 재판에 관심을 갖기를 바라며, 그를 응원합니다.

*참고자료


공소인성명

오늘, 도쿄고등재판소에서 니시오카 츠토무 씨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니시무라 도쿄소송의 공소심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 1심에 이어 우리는 패소했습니다. 지극히 부당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니시오카 씨는 2014년 2월 6일호《주간문춘》의 기사에서 제가 쓴 전 일본군 “위안부” 김학순 씨의 증언기사 A를 “날조”로 규정하는 등, 저에 대한 “날조”공격을 되풀이해왔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격렬한 “우에무라 날조 배싱(bashing)”이 일어났습니다. 저는 내정되어있던 대학의 교수직을 잃었고, “딸을 죽이겠다”는 협박장까지 받았습니다.

저는 2015년 1월 니시오카 씨 등을 고소했습니다. 저의 명예, 가족의 안전, 근무처 학생들의 안전, 그리고 전 “위안부”인 김 씨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싸웠습니다.

오늘 고등재판소 판결에서는 니시오카 씨가 제 기사를 “날조”라고 주장하는 세 가지 점 중 두 가지에 대해 진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나, 믿는 데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니시오카 씨를 면책했습니다. 니시오카 씨는 저에 대한 직접취재를 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니시오카 씨는 제 기사를 날조기사로 단정할 때에도 결정적인 오류를 범했습니다. 그것이 1심에서 밝혀졌습니다.

이《주간문춘》의 기사를 보십시오. “이 때 자기 이름을 대고 나온 여성은 부모에게 팔려 위안부가 되었다고 소장에 썼고, 한국 언론의 취재에도 그렇게 답하고 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소장에서도 한국 언론의 취재에도 김학순 씨는 그렇게 답하지 않았습니다. “날조” 비판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어있는 것입니다.

또, 니시오카 씨는 저의 기사 B에 대해, 저서『알기 쉬운 위안부문제』에서 김학순 씨가 기생으로 팔려갔던 것을 적지 않았으므로 “악질적이고도 중대한 날조”라고 규정했습니다. 우리는 이 언설을 무너뜨릴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여 고법에 제출했습니다. 일본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준비하고 있던 김 씨가 처음 변호단의 청취조사에 응한 1991년 11월 25일의 녹음테이프입니다. 여기서 김 씨는 “기생”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테이프에 근거해 기사 B를 썼습니다.

그러나 고법판결은 이 새 증거를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니시오카 씨의 결정적인 오류도 간과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내려놓은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에무라 날조 배싱”의 장본인은 니시오카 씨입니다. 그의 언설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배싱에 가담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대학에 협박전화를 한 남성이 체포되어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제 딸을 트위터로 비방ㆍ중상한 회사원은 그 책임을 추궁 받아 배상금 지불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판결에서 그 장본인이 면죄를 받은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에무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일은 기자 여러분에게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이 부당판결을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이대로라면 가짜뉴스가 거리낌 없이 유포되는 심각한 시대가 옵니다. 즉각 상고하고, 최고재판소에서의 역전판결을 기대하겠습니다.

이상


공소심 판결에 대한 변호인단 성명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 씨가 전 “위안부” 김학순 씨의 증언에 관한 91년의 신문기사를 둘러싸고 주식회사 문예춘추와 니시오카 츠토무 씨를 고소한 소송의 공소심에서 도쿄 고등재판소는 오늘, 우에무라 다카시 씨의 공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우에무라 씨 등의 논문이나《주간문춘》의 기사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진실성ㆍ진실상당성의 항변을 인정한 도쿄지방재판소 판결을 거의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추인한 지극히 부당한 판결이다.

니시오카 씨 등은 무에무라 기사에 대해 “기생이었던 김학순 씨의 경력을 쓰지 않았으니 날조다”라는 취지를 주장해왔다. 우에무라 씨는 공소심에서 91년 12월 기사의 근거가 된 김학순 씨의 증언테이프를 증거로 제출했다. 증언테이프 안에는 기생에 대한 증언이 없었다. 증언자가 증언하지 않은 내용을 기사로 쓰지 않은 것이 “날조”가 될 리 없다. 그러나 공소심은 해당 증언 테이프가 김학순 씨의 증언 전체를 기록한 것이라 인정하기 힘들다는 둥 믿기 어렵다는 트집을 잡으면서 그 증거력을 부정했다. 이런 주장은 상대방에게도 통하지 않아, 테이프의 성립과정을 입증하기 위해 신청된 본인 신문도 각하되었다. 고등재판소의 판결은 변호인단으로부터 반론의 기회를 빼앗은 기습적인 인정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판결은 8월의 우에무라 기사 중에 “여자정신대의 이름으로”라는 기사가 “강제연행을 의미한다”는 전제에서 우에무라 씨가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1심의 인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8월에 기사에는 확실하게 “속아서 위안부가 되었다”고 써놓지 않았는가. 우에무라 씨에게 강제연행을 꾸며내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면 “속아서 위안부가 되었다” 따위를 썼을 리가 없다. 이 판결의 인정은 상식을 까마득히 벗어나있다.

이상의 내용에서 볼 때 이 판결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은 너무도 조잡한 판결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편, 고등재판소 판결은 ① 우에무라 씨가 김 씨가 기생으로 팔려갔다는 경력을 알고 있었으면서 일부러 이를 기사화하지 않았다는 사실, ② 우에무라 씨가 장모의 재판에 유리하도록 의도적으로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사실에 대해 공히 진실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공소심의 큰 성과로써 우에무라 씨의 명예를 일부나마 회복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번 심리 과정에서 우에무라 씨의 기사가 날조가 아니라는 것을 완전히 입증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함과 동시에, 전 “위안부”의 존엄회복 운동을 든든하게 뒷받침했다고 믿는다. 이러한 1심, 2심의 성과를 토대로 최고재판소에서 끝까지 싸워낼 것이다.

이상

2020년 3월 3일

<2020-03-04> 뉴스톱 

☞기사원문:
‘위안부 최초 보도’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 패소했지만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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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프리존=이규진기자] 3ㆍ1운동 99주년을 맞아 항일 독립운동과 관련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더욱 새롭게 주목된다. 실제 이날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행한 기념사를 통해 여성 독립 운동가들을 정면으로 재조명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을 ‘건국의 아버지들’이라고 칭한 뒤 ‘건국의 어머니들’도 있다며 유관순 동풍신, 윤희순, 곽낙원, 남자현, 박차정, 정정화와 부산 일신여학교 여학생들을 열거했다.

여성 독립운동군들을 기리는 행사가 별도로 열리기도 했다.

(사)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1일 오후 탑골공원 정문에서 보훈처와 항일독립운동단체연합 후원으로 ‘오늘 그들 여기에’라는 타이틀로 3.1혁명 99주년 기념식과 사업회의 4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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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일 오후 탑골공원 정문에서 보훈처와 항일독립운동단체연합 후원으로 ‘오늘 그들 여기에’라는 타이틀로 열린 3.1혁명 99주년 기념식과 사업회의 4주년 기념행사 ©추광규 기자

역사여 외쳐라! 항일여성 독립군들의 이름을…

항일여성독립운동사업회 김희선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2015년도에 당시 만세운동을 해냈던 학생들이 모여서 만세 퍼포먼스를 했다”면서 “오늘은 두 번째로 특별히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 후손들로써 드리는 차례를 지내기 위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어 “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5회차 4주년을 맞는 날”이라면서 “이 정부 들어서 사단법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계속해서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 4천600명이 넘게 국가로부터 서훈을 받고 있다”면서 “그런데 여성은 몇 분일까요? 현재는 293분이다. 남자는 독립운동가라고 책에 나오는데 여성은 유관순 누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역사를 잘못 배우게 된 것 아닌가?”라면서 “우리는 바른 역사를 배워야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바른 역사를 배우기 위한 목적에 모자란 부분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우리나라의 바른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또한 “100년 전 일제 강점기에 목숨을 바쳐서 싸웠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라고 물은 뒤 “시대정신, 역사의 요구는 자주 독립이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이 같이 말한 뒤 “3.1 그 당시 7천992명이 돌아가셨다”면서 “왜놈들에 의해서, 2월부터 만세운동이 시작돼서 4월까지 돌아가신 분들이 8천명이라는 것이다. 자주독립을 원하는 사람이 돌아가셨는데 혁명이라고 말을 안 할 수 없다. 독립 운동가들이 가졌던 마음은 이 시대에 친일파를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함께 생각해야 한다.”고 의미를 말했다.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전 대표는 축사를 통해 “3.1혁명의 정신을 마음속에 간직한다“면서 ”얼음산이 바다위에 떴을 때 7분의 1정도만 우리 눈에 보이고 7분의 6은 바닷속에 있다. 여성독립운동가는 수면 속에 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학교에서 신학을 배울 때 교수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면서 “우리가 죽은 다음에 하늘나라에 간다면 극락세계에 간다면 이 세상에서 평가받았던 그 모든 분들보다 10배 20배 100배가 되는 훌륭한 숨은 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렇게 저희가 배웠는데 오늘 우리가 추모하는 여성독립운동가 우리들의 어머니 우리들의 누이 이분들이 바로 숨어계신 의인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분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함 전 대표는 “항일운동가 단체들이 연합을 해서 그동안에 애썼지만 놓쳤던 항일 운동가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해서 아름다운 민족사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또 항일 저항의 역사를 또 독재 타파를 했던 역사의 장을 펼치자고 해서 많은 분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월혁명회 정동익 회장은 축사를 통해 “오늘 역사적인 항일 3.1일 혁명 99주년을 맞아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가 창립한지 4년 만에 국민들의 주목을 받는 비중 있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3.1 혁명은 다 아시다시피 외세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을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전 민족적인 투쟁이었다”면서 “지금 우리나라는 전쟁 위기에 처해 있다, 외세에 의한 전쟁위기가 점점 높아지고 있는데 평화를 이루기 위한 정신적인 원천이 3.1일 혁명정신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계속해서 “지금 남북 단일팀이 참가한 평창올림픽 덕택에 잠시 동안 전쟁위기에서 벗어나 있지만 미국은 다음 달이면 대규모 한미연합 전쟁 훈련을 하겠다고 한다”면서 “그렇게 되면 모처럼 남북대화가 문은 닫히고 평화는 물건너가고 다시 우리는 다시금 전쟁위기에 쌓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우리가 전쟁을 막고 이 땅에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외세가 우리 운명을 결정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지금 이시기야 말로 우리가 전쟁 말고 평화를 외쳐야 할 때다. 목숨 바쳐 자주독립을 외쳤던 선열들의 정신으로 평화를 외치자. 그 길만이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이다. 우리 모두 함께 뜻을 모아 평화를 위해 떨쳐나서자”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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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추광규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은 “3.1혁명 99주년이자 내년 100주년을 앞두고 100년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또 우리민족 앞으로의 100년은 무엇일까를 탐구하는 자리”라면서 “3.1 혁명을 추념하면서 3.1 혁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 결심을 다지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이어 “3.1 만세운동을 불렀던 우리 선조들이 지금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뭐라고 말씀 하실 것인지 생각하자”면서 “첫째 민주주의다. 우리 선조들이 들고 흔들었던 태극기가 모독 되지 않기를 바란다. 태극기 정신을 바로 살려야 된다. 태극기를 흔들 때 흔들어야 한다. 우리민족의 독립을 위해서만이 태극기를 흔들고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두 번째는 3.1 혁명은 민주주의”라면서 “독재를 찬양하는 것은 결코 3.1 정신을 받은 게 아니다. 지금까지 3.1일 혁명 기념식을 할 때마다 불만이었다. 하지만 올해 대통령 기념사는 최고로 마음에 들었다. 아주 잘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아주 심도 있게 몇몇 분을 거론해 주셨다”고 말했다.

임헌영 소장은 “세 번째는 반외세”라면서 “일본의 아베가 마치 조선반도의 총독처럼 발언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북폭을 우리 허락도 안 맡고 하겠다고 한다. 반외세 민족자주독립 민주주의 복지국가 건설 이것이 내년 3.1혁명의 기본적인 나아갈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은 1부 순서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4주년 기념식과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초상화 봉헌, 전시. 2부 순서에는 화윤차례문화원 주관으로 박남식 박사외 문하생들이 항일여성독립운동가 추모헌공차례가 3부 시민과 함께하는 그날의 합창으로 대북 공연팀 ‘수’의 대북 공연과 합창단의 선창으로 독립군가 홀로아리랑 등을 참석자들과 함께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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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를 올리고 있다. ©추광규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희선 회장과 일문일답이다.

-창립 4주년을 맞은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항일여성독립운동기념사업회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고 그분들의 정신을 받들어서 이 시대의 정신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단체다.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이 역사 속에서 되살아나서 그 뜻이 후손들에게도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

-오늘 행사에 대한 의미를 말해 달라
“오늘 행사는 유무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후손으로서 기리기 위한 자리”라면서 “제례를 시작으로 해서 차례로 지내면서 그분들의 정신을 많은 대중들에게 시민들에게 그리고 참여하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도 알리기 위해 준비가 되었다. 대북을 치고 그 당시에 불렀던 원곡 애국가라든가 홀로아리랑 등을 부르는 것도 독립정신이 어떤 것이고 그 당시에 여성 독립 운동가들이 어떻게 투쟁했는가를 노래로서 그날의 함성을 합창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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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화 ©추광규

-여성독립운동가들이 항일 운동사에 미쳤던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가?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은 독자적인 독립투쟁운동을 한 것뿐만 아니라 군자금을 모아오고 정보를 캐오는 것 등을 하는데 있어서 여성들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아직은 가부장제 사회여서 여성들이 한 일은 뒷일로 뒷바라지 일 정도로 여기지 않았다. 남자현 선생님의 혈서나 윤희순 선생님의 의병대장 노래 등 여성독립운동가들이 남성들 못지않게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투쟁했던 이런 모든 것들은 우리가 그 시대정신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규진 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1> 뉴스프리존

☞기사원문: 항일운동 이후 남성 독립 운동가는 1만4,600명…여성은 몇 분일까?

토, 2018/03/03-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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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종식 공연에 ‘친일파’ 조두남 작곡 ‘선구자’ 준비
작사가 윤해영도 친일 행적…연습 중 지적 받고 제외

▲ 윤장현 광주광역시장이 1일 오전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앞 민주종각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기념 민주의 종 타종식’에 참석해 이은방 시의회의장, 장휘국 시교육감, 독립유공자 유족, 시민 등과 함께 타종을 하고 있다./광주광역시 제공

제99주년 3·1절을 맞아 광주시가 진행한 민주의 종 타종행사 기념공연에 ‘친일노래’가 불려질뻔 한 것으로 확인됐다.

연습 도중 문제제기를 받고 본 공연에선 제외했으나 행사를 준비한 광주시의 역사의식 부재를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광주시에 따르면, 이날 오전 광주시청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 후 5·18민주광장에서 민주의 종을 33번 타종하는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는 윤장현 시장, 이은방 광주시의회 의장, 장휘국 광주시교육감을 비롯해 독립유공자 후손 등이 참여했다.

“3·1절 독립정신을 계승·발전시켜 시민대통합을 이루자”는 시민들의 염원을 담은 행사였다.

그런데 이 행사가 자칫하면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할뻔 했다.

‘일’은 행사 준비 과정에서 터졌다.

광주나비는 이날 낮 12시 5·18민주광장에서 3·1절 99주년을 기념해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11차 광주 수요시위’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타종식은 이 행사 10분 전인 오전 11시50분 진행이 됐는데, 수요시위 참석을 위해 5·18민주광장을 지나가던 김순흥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부장이 기념공연 연습 과정을 보게 됐다.

공연자들이 부르고 있는 노래는 김순흥 지부장의 귀를 의심케 했다. ‘친일가요’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가곡 ‘선구자’를 부르고 있던 것이었다.

이 곡은 작사자와 작곡가 모두 친일행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데다 노래 자체도 ‘친일가요’로 알려져있다.

작곡가 조두남은 일본 중심의 국민음악 창조를 목적으로 한 ‘만주작곡가협회’ 회원으로 활동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다.

‘선구자’ 노랫말을 쓴 윤해영 역시 논쟁은 있지만 ‘친일작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순흥 지부장은 현장에서 바로 이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10년이 넘도록 (선구자가)친일 음악이라고 지적해 왔는데, 광주시는 그것도 모르고 3·1절이라는 중요한 날에 기념공연을 하려고 하느냐”는 것이었다.

이같은 지적에 광주시는 부랴부랴 공연 계획을 수정, 본공연에선 ‘선구자’를 빼기로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찜찜함’은 남는다.

김순흥 지부장이 현장을 보지 못하고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타종식에 앞서 ‘선구자’가 3·1절을 기념하는 공연으로 불려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김순흥 교수님의 지적을 받고 혼란서러워 본 공연에선 ‘선구자’를 빼기로 했다”며 “이 노래 자체는 독립군의 기상을 표현하는 곡으로 알려져있고, 많이 불려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작곡가 등의 행적이 특별히 문제가 된다는 것은 몰랐다”며 “공연을 준비한 기획사 쪽에서도 그렇게만 알고 ‘선구자’를 선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누가 말해주지 않는 이상 노래를 만든 사람들의 배경까지는 검증하기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며 “이와 관련한 교육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순흥 지부장은 시가 지적에 따라 ‘선구자’를 공연하지 않기로 한 것에 대해선 “다행이다”면서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특히 “‘선구자’는 독립운동가를 상징하는 노래가 아니다”며 “말을 타고 달리는 일본군을 부러워하는 내용이다”고 꼬집었다.

‘선구자’는 윤해영의 ‘용정의 노래’라는 시에 곡을 붙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노랫말 중 “말 달리는 선구자”가 만주벌판을 누빈 독립투사를 연상케한다고 해 독립군의 기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게 김 지부장의 지적이다.

김 지부장은 “기획사가 선곡을 했더라도 타종식 자체는 광주시가 주관한 행사가 아니었나? ‘친일음악’이라는 것도 모르고 준비한 것 자체가 문제다”며 “반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경남 기자 [email protected]

<2018-03-01> 광주드림

☞기사원문: 광주시 3·1절 기념행사서 친일노래 불려질뻔

토, 2018/03/03-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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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앵커멘트 】
일제시대에 만든 일본 신사는 국내에 딱 하나 남아 있습니다. 고흥 소록도에 남아있는 것이 그것인데요,
최근 철거와 보존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 99번째 3·1절을 맞아 함께 고민해 봤으면 합니다.

보도에 박승현 기잡니다.

【 기자 】
지난 1935년 건립된
고흥 소록도 내 일본 신사입니다.

당시 일제가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신사 참배를 강요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세워진 전국 천개 신사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습니다.

이 신사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존치하자는 쪽은 소록도 신사는 이미 원래 기능을 잃었고
일제 침략의 흔적인 만큼
교육자료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인터뷰 : 방학진 /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
– “소록도 신사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역사를 극복함으로서 후세에 좋은 교육자료로 활용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

반면 철거해야 한다는 쪽은
신사는 단순 시설물이 아닌
일제의 정신적 의미가 담겨 있어
역사 청산과 함께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인터뷰 : 노성태 / 향토 사학자
– “일본 군국주의 정신의 상징터 거든요. 따라서 저희들이 남겨놓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보존이냐 철거냐 논란이 커지고 있는
소록도 신사.

이제는 공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kbc 박승현입니다.

<2018-03-01> KBC광주방송

☞기사원문: 국내 유일 ‘日 신사’ 존폐 논란

토, 2018/03/03- 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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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재단x민족문제연구소x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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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임인재단, 민족문제연구소,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이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를 위한 협약식을 했다.

게임인재단이 역사 연구 기관과 손잡고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에 나선다.

재단법인 게임인재단은 3월16일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 재단법인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함께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협약식을 했다. 각 기관은 이번 협약으로 대중문화로 자리 잡은 게임을 활용해 역사 인식을 높이고 일반 대중들에게 역사를 친숙한 형태로 알려 나가기로 뜻을 모았다.

특히, 교육에만 초점을 맞춘 게임에서 벗어나 재미와 몰입도를 갖춘 형태로 역사를 쉽게 알리는 방법을 다양하게 모색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각 기관은 게임과 역사의 가교 역할을 하면서 각종 지원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게임인재단은 2013년 게임 업계 종사자를 주축으로 문화 산업으로서 게임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설립됐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은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고 ‘식민지역사박물관’ 건립을 주도하는 등 한일 과거사 청산 운동의 핵심 역할을 해온 역사 연구 단체다. 두 단체의 만남이 어떤 결과물을 끌어낼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게임인재단은 “이번 협약을 계기로 게임이 대중문화를 넘어, 사회적 역할과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보다 크고 넓은 그릇이 되는 첫걸음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다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게임이 양적인 성장을 넘어 영역을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민족문제연구소 측은 “그동안 영화 <암살>, 드라마 <각시탈>, 다큐멘터리 <백년전쟁> 등 주로 영상 영역이 역사의 대중화를 이끌어 왔다”라며 “이번 협약은 게임과 역사가 만나 역사 대중화의 지평을 넓히는 새롭고 신선한 시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8-03-16> 블로터닷넷

뉴스1: 민문연 “게임으로 우리 역사 대중화 나선다”

☞기사원문: 게임인재단-민족문제연구소, 게임 통한 역사 대중화 나선다

※관련기사

☞아이뉴스24뉴스: 게임 활용해 우리 역사 알린다

연합뉴스: “게임으로 역사 알리자”…게임인재단, 민족문제硏 등과 협약

일간스포츠: 게임으로 우리 역사 알린다…게임인재단, 민족문제연구소 등과 공동 사업

NSP통신: 게임, 대중 문화 넘어 시대적 역할과 메시지 담는다

금, 2018/03/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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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환 서울시의원, 청원서 의회 안건으로 올려

▲ 지난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 동상 기증식에서 친박단체 회원과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충돌하고 있다.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청원서를 제출했다.

서울시의회 오경환 의원(더불어민주당, 마포4)은 19일 민족문제연구소의 ‘박정희기념도서관 내 박정희 동상 건립 반대’에 대한 청원서를 받아 서울시의회 안건으로 올렸다고 밝혔다.

박정희기념도서관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역사화해’ 차원에서 박정희기념관 건립을 약속했다. 행정안전부가 200여억원을 지원했고 당시 고건 서울시장이 시유지 무상지원을 밝혔다. 여기에 기념재단이 모금한 500억원이 더해져 박정희기념도서관은 2010년 첫 삽을 떴다.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은 시유지인 이 땅을 무상으로 사용하고 있고, 부지 내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어 왔다.

박정희 동상설립 신고는 지난 1월31일 서울시에 접수됐다. 공공미술위원회는 2개월 이내인 오는 31일 이 전에 심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와 관련 민족문제연구소는 “대한민국헌법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명시하고 있는 한 박정희는 청산의 대상이 될지언정 기념의 대상을 될 수 없다”며 “박정희 동상을 서울시민의 땅에 세우겠다는 준동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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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의회 더불어민주당 오경환 의원(마포4) © News1

민족문제연구소가 청원서를 직접 서울시로 제출하면 단순민원 처리 된다. 하지만 시의회에 제출함에 따라 오경환 의원이 소개 의원으로 대표 발의에 나섰다. 본회의 의결 후 서울시 집행부로 보내면 이와 관련한 답변을 제출해야 한다.

오 의원은 “박정희 동상 건립문제는 법적·행정적 문제와 정서적으로 찬반여론이 얽혀 있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며 “박정희 동상은 상암동과 역사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어 동상건립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2018-03-20> 뉴스1

☞기사원문: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제출

※관련기사

☞KNS뉴스통신: 민족문제연구소,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제출

☞오마이뉴스: 서울시, 박정희 동상 건립 ‘적절성’ 따진다

경향신문: 오경환 서울시의원 “박정희 동상건립 반대 청원서 접수”

 

화, 2018/03/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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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다운로드]

“돌아오지 못한 조선인 유골, 한일 정부가 책임져야”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131구, 창고로 보낼 수 없습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문제에 대한 일본시민사회의 노력에
한일 정부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근본적으로 양국 정부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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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문제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유족들이 제사도 올리지 못하며 유골을 찾아다니고 있고, 일본과 한국 양국정부가 이를 2005년부터 조사한다고 하였지만,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2. 이런 가운데 일본 사이타마현 토코로자와시 ‘곤죠인 사찰’의 유골131구가, 유족을 찾지 못한 채 임의로 처리될 상황에 놓여있습니다. 해방 이후 배를 마련해 귀향길에 나섰던 조선인들이 태풍 등으로 인해 조난을 당했고, 이 유해가 이키 섬과 스시마 섬의 해안으로 떠밀려와 매장되었습니다. 1976년 이키 섬과 1983년 스시마 섬에서 유해가 발굴되었고, 이 유골 131구가 현재 ‘곤죠인 사찰’에 모셔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곤죠인 측에서 더 이상 희생자들의 유해를 모실 수 없는 상황이고 이 유해들을 옮길 마땅한 곳을 3월 30일까지 찾지 못할 경우에는 후생노동성 창고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유골은 한국으로 돌아오기가 더욱 어려워질 뿐더러, 유족을 찾게 되기는 거의 불가능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이에 대해 일본 시민사회에서는, 곤죠인 사찰에 더 이상 유골을 모시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이키섬의 ‘텐토쿠지’에 유골을 다시 모시겠다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4. 이에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는, 이 유골에 대해 일본정부가 임의로 처리하지 말고 일본 시민사회의 요구를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 한국정부도 일본정부에 이런 입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교섭해야 합니다.

5. 근본적으로는 한국과 일본, 양국정부가 유골봉환문제에 대한 책임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DNA조사, 봉환사업 등에 대해 양국정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6. 한국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유골봉환문제가 강제동원 문제 진상규명에 관련된 역사문제이며, 또한 한일 과거사를 바로 세우는 문제, 그리고 희생자와 희생자 유가족을 위한 인권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긴급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이후에도 한국 시민사회는 물론 일본시민사회와 연대하여 공동으로 대응해나갈 것입니다.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곤죠인 사찰유골) 대응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긴급 기자회견

○ 주최 :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 민족문제연구소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 평화디딤돌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일시 : 2018. 03. 22.(목) 오전 11:00

장소 : 일본대사관 앞 (트윈트리 타워)

○ 담당 :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팀장 김영환 / 010-8402-1718 / [email protected] 
이하나 (겨레하나 정책국장) / 010-6584-2121 / [email protected]

○ 세부내용

▲곤죠인 사찰 유골문제에 대한 상황 공유와 경과 보고
곤죠인 사찰 131구 유골에 대한 상황, 일본 시민사회의 요구 등에 대한 상황 공유

▲유족, 대학생, 노동, 종교계 등 시민사회 각계 발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에 대해 일본대사관, 외교부에 요구사항 전달
일본대사관에 시민사회의 요구사항을 전달하고, 외교부 면담을 추진합니다
 


< 별첨 >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봉환 문제에 대한 한국 시민사회단체의 요구사항

○ 일본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1. 당면 현안으로서 곤죠인(金乗院)에 안치되었던 한국인 유골을 3월 말에 임의로 처리하지 말고, 일본 종교단체와 시민단체가 요구하는 이키 섬(壱岐島)의 텐토쿠지(天徳時)에 모시고자 하는 뜻을 존중하여 처리하라.

2. 일본정부는 1938년 이후 군인.군속 등으로 끌려가 사망한 한국인 유골 조사와 봉환사업을 하루 빨리 실시하고, 한국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의 DNA 정보를 수집하라.
 
3. 일본정부는 일제시기 강제동원 되어 사망한 한국인 노동자 유골에 대해서도, 봉환 책임을 강제동원 관련 기업에게만 떠넘기지 말고 직접 조사와 봉환사업에 나서라.

○ 한국정부에 대한 요구사항

1. 당면 현안인 곤죠인 한국인 유골에 대해 일본 정부가 임의로 처리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교섭을 즉각 실행하라.
 
2. 한국정부는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조사와 봉환사업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하루빨리 일본정부와 교섭에 나서라.

3. 유골문제에 관해 한국정부가 교섭한다면 일본정부가 응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2년간 교섭하지 않은 무책임에 대해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죄하라.

4. 강제노동 피해 배상 관련한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에 따를 후속조치 마련과 유죠은행에 보관 중인 한국인 강제노동 피해자 저금통장 반환, 유네스코 산업유산과 강제노동 문제, 유골 조사와 봉환 문제 등 강제동원 문제를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룰 정부 내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라.
 

2018년 3월 22일
 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 / 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민족문제연구소 /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본부 /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 평화디딤돌 /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수, 2018/03/21-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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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18/03/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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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3·1혁명 100년, 그 역사적 무게를 생각한다
조세열 민족문제연구소 사무총장

2019년은 폭압적인 식민통치에 맞서 독립을 선언하고 거족적인 만세시위운동을 일으킨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그런데 1919년의 항쟁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여 온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 이상의 거대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우리 역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는 민주공화정을 잉태시켰다. 3·1혁명 이후 왕정은 구시대의 유물이 되었으며 복벽파는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제국’에서 ‘민국’으로, ‘신민’에서 ‘국민’으로의 전환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를 만들어 낸 것이다.

둘째, 처음으로 여성들이 사회변혁의 전면에 나섰다. 나라와 민족을 구하겠다는 일념에 남녀노유가 차이가 있을 까닭이 없었겠으나, 여성들이 대거 현실참여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이전 시기에 비할 때 획기적 국면이 아닐 수 없었다.

셋째, 기생·해녀·백정·광부 등 아직 봉건사회의 질곡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분적 차별을 받던 계층이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전통적으로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이에 맞선 주력이 민중이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천민으로 취급받던 이들이 만세시위에 적극 참여했다는 사실이 내포한 현상타파적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넷째, 전면적인 항일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다. 3·1혁명을 계기로 식민지 조선의 수다한 젊은이들이 국경을 넘어 무관학교와 독립군을 찾았다. 이들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로 상징되는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린 전사들로 거듭났다.

다섯째, 좌우세력이 통합하여 민족협동전선을 구축하였다. 초기 임시정부가 그러하였으며 이후 부침이 있었으나 이러한 통합 지향은 일제의 패망 때까지 지속되었고, 해방 이후에도 좌우통합, 통일국가 수립의 여망으로 맥을 이어나갔다.

여섯째, 제국주의 지배하에 신음하던 피압박 민족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불어넣었다. 중국 신해혁명의 주역 쑨원이 독립선언에 이은 만세시위를 ‘혁명’이라 평가하였으며,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조선을 가리켜 ‘동방의 등불’이라 칭송하기에 이르렀다.

항쟁의 전개과정과 그 영향을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3·1정신은 민족이 당면했던 자주독립이라는 목표와 자유 민주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정리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성격을 반제국주의 민족혁명인 동시에 반봉건적 민주혁명이라 규정하는 것이다. 더욱이 3·1항쟁이 배태하고 있던 이러한 혁명성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강 정책에 반영되고 항일세력 전체의 시대정신으로 발전 확산되어 갔다는 측면에서 선언적 차원을 넘는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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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4년 3·1절을 맞아 중국 서안에서 공연됐던 대형 항일 오페라 〈아리랑〉 기념사진. ‘삼일혁명절’ 표기가 선명하다. 1940년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소속 한유한이 대본을 쓰고 작곡한 〈아리랑〉은 해방 전까지 10여 차례 상연됐다. ⓒ민족문제연구소

1930년대 들어 항일세력의 3·1인식이 좌우를 막론하고 ‘혁명’ 또는 ‘대혁명’으로 통일되어 가고 있었던 사실을 우리는 다시 주목해야 한다. 일제 침략전쟁의 확대, 사회주의 사상의 확산 등 시대적 상황이 3·1정신이 내포한 혁명성을 재평가하고 인식의 전환을 가져다주었다.

항일세력이 공유하였던 3·1정신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해방 후 제헌헌법에서 현행헌법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기본이념으로 관철되고 있다. 또 ‘촛불’들이 외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도 기실 그 원천을 3·1정신에서 찾을 수 있으며, 이를 재확인하고 실천하려는 의지의 표명과 다름없었다.

3·1항쟁이 운동인가? 혁명인가? 아니면 혁명적 운동인가? 서구 학문의 학술적 관점에서 보면 이론의 여지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대의 항일세력이 왜 혁명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수용하였는지, 또 장기간에 걸쳐 확립된 개념이 어떻게 실종되고 말았는지에 대해서는 학계의 전향적이고 진지한 접근이 절실하다고 본다.

민족문제연구소는 2014년 처음으로 3·1혁명 100주년 기념사업회 창립을 주도하고 매년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여는 등 3·1혁명의 역사적 의의와 위상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 애써왔다. 올해 초에는 대통령직속정책기획위원회의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년 의의 및 기념사업 추진 방향’ 연구용역을 수임해, 시민들이 주역이 되는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사업을 기획하였으며 곧 보고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이제 3·1혁명 100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자리매김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해 볼 때다. 여기에서 향후 전개될 기념사업을 일일이 거론할 여유는 없지만, 3·1혁명의 위상 재정립만큼은 다시 강조하고 싶다. 자국사에 대한 국수주의적 과대평가도 문제이지만 스스로 폄하하는 일도 있어서는 아니 된다.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치열하게 지속적으로 전개됐던 독립투쟁의 역사, 특히 일제강점기 내내 독립운동 진영과 재외동포들의 정신적 지표였으며 외국에서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던 3·1혁명을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 몰가치적인 3·1절이라는 명칭도 독립선언기념일 또는 3·1혁명 기념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또 3·1정신의 요체라 할 민족대단결의 뜻을 살려 남북화해와 평화구축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민주공화정 수립 100년의 시점에서 과거를 성찰하는 한편으로, 나라와 민족의 미래 100년을 설계하고 전망을 세우는 거시적 안목을 가져야 할 때다. ‘촛불혁명’과 ‘3·1혁명’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시차가 존재하지만 그 과제는 여전히 닮은꼴이다.

<2018-03-22> 프레시안
☞기사원문: 처음으로 여성이 사회변혁 전면에 나선 이 사건!

목, 2018/03/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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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역사 기반의 게임 개발 지원

▲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협약식

게임인재단이 역사 연구 기관과 손잡고 역사를 주제로 한 게임 개발을 지원한다.

게임인재단은 3월30일 민족문제연구소,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협약식을 열고 역사 기반 게임 개발을 지원하는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은 지난 16일 발표한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한국사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PC 온라인 게임 개발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한국 게임 개발사 및 개발자를 대상으로 하며 게임인재단 공식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선정된 개발사는 게임 개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진, 영상, 악보 등 각종 역사 관련 사료를 지원받으며 저작권 검수, 역사 연구 기관의 자문과 각종 교육 프로그램 등을 무상으로 제공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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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ame X History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 게임인재단 공식 페이스북(www.facebook.com/gamein.or.kr/ )

게임인재단은 역사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장르의 게임 출시를 지원할 예정이다. 게임인재단 측은 “게임 속에 김구, 안창호가 직접 캐릭터로 등장하거나 복원된 독립군가를 편곡해 게임 속 BGM으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와 게임 스토리에 접목하는 등 그 활용 소재와 범위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된다”라고 밝혔다.

게임을 통한 역사 대중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참여 사례로 한국사 RPG ‘난세의 영웅’이 새롭게 제작된다. 투캉프로젝트가 제작하는 ‘난세의 영웅 리뉴얼'(가칭)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총 10편의 구성으로 개발 중인 역사 기반 모바일 게임이다. 게임 고유의 재미와 역사적 지식 두마리 토끼를 모두 겨냥하고 있다.

안겨레 투캉프로젝트 대표는 “역사를 게임으로 재미있게 풀어 대중들에게 보다 친숙하게 다가간다는 취지에 공감해 동참하게 됐다”라며 “최근 새롭게 개발 중인 ‘난세의 영웅 리뉴얼(가칭)’의 근현대사편을 광복절과 같은 역사적 의의가 있는 날 공개할 수 있다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게임인재단은 “그동안 역사를 기반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 음악 등이 대중문화의 중심에서 사랑받아왔다”라며 “이제는 게임의 차례며 역사도 하나의 IP가 되어 게임의 인기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민족문제연구소 역시 “난세의 영웅을 시작으로, 3.1혁명 100주년이 되는 2019년에는 더 많은 역사 나눔 게임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2018-03-31> 블로터

☞기사원문: 게임인재단-민족문제연구소, 역사 기반 게임 개발 지원

※관련기사

더코리아뉴스: 게임인재단, 역사 기반 게임 개발 지원하는 Game x History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서울경제: 게임인재단,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스포츠경향: 게임인재단, ‘게임인 역사 나눔 프로그램’ 시작

더게임스: 게임인재단 등 역사 기반 게임개발 지원

 

토, 2018/03/3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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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내일을여는역사재단·민족문제연구소ㅣ출판사:민연ㅣ15,000원ㅣ286pageㅣ발행일: 2018.03.01.ㅣISSN 1228-8802ㅣ9771228880200-81

[여는글]

머나먼,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적폐 청산의 길

많은 화제를 몰고 온 평창 동계올림픽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정치적인 면에서도 남북간, 북미간 대화의 모멘텀이 형성되어,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간 정상회담의 성사가 실현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에 대한 국내외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8년 3월 1일은 3·1운동 99주년 기념일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임시정부 수립의 계기가 되었던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중요성을 명확히 부각하는 역사인식을 지향하고 있다. ‘건국’이라는 용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의미를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뉴라이트 적폐세력이 도발했던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뉴라이트 세력의 건국절 도발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하에서 독버섯처럼 사회 곳곳을 파고들었던 적폐세력의 이념 공세가 도달한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더불어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의 기점으로 삼자는 뉴라이트 세력의 사회적 영향력은 현저하게 약화되었지만,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된 사회 곳곳의 적폐 청산은 여전히 요원한 길이 아닌가 싶다.

올해 2018년은 1948년 남북한 양측에 독자 정부가 수립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이번 『내일을 여는 역사』 70호에서는 ‘1948년 톺아보기’라는 코너를 새로 기획하였다. 1948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들의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뉴라이트 적폐세력의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이 지니는 허구성을 밝혀보고자 한다. 이번 호에는 제주4·3항쟁과 남북협상에 대한 글을 실었다. 양정심은 항쟁과 학살, 그리고 희생을 아우르는 제주4·3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것을 역설하였고, 김기협은 남북협상의 전개와 그 의미를 안재홍과의 가상 대담의 형식으로 정리하면서 남북협상이 갖는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았다. ‘1948년 톺아보기’ 코너는 앞으로 몇 차례 더 기획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코너에서는 이성대가 역사 교사의 시각에서 중·고교생 교육의 혁명적인 개혁을 주문하였다. ‘인물로 보는 역사’에서는 두 편의 글을 실었다. ‘반독재 민주화 열전’에서는 황병주가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적 존재인 전태일의 삶과 죽음이 갖는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고,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에서는 김정인이 일제하 천도교의 두 지도자 최동희와 최린의 삶의 궤적을 비교하였다.

‘사실 체크’에서도 두 편의 글을 실었다. 홍종욱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 식민지 주민의 일본 국민 만들기에 주요한 역할을 했음을 지적하고, 그 그림자가 해방 후 남북한 사회에도 짙게 드리웠음을 강조하였다. 정요근은 박근혜 정부와 국수주의 유사 역사 세력의 공생 관계를 고발하였다. 국수주의 유사 역사 세력이 겉으로는 식민사학 청산을 외쳐댔지만, 친일 뉴라이트 역사관을 옹호하던 박근혜 정부 하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집필 참여와 교육부의 각종 예산 지원을 통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해나갔음을 밝혔다.

‘내일을 여는 책’ 코너에서도 두 편의 글을 실었다. 정호훈은 유형원의 『반계수록』을 소개하였다. 그는 『반계수록』으로부터 실학의 근대성을 찾으려 한 기존의 견해들을 비판하고 『반계수록』에서 현실의 전면적 개조와 새로운 국가 건설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자고 주장하였다. 김공회는 출간 이래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공유하자고 역설하였다. ‘사료의 재발견’에서는 이민우가 고려 말기 조준의 전제 개혁 상소를 분석하였다. 조준의 상소를 계기로 이루어진 과전법의 제정이 당시 사회가 직면한 토지제도 개혁의 모든 방안을 포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선 건국 이후에도 토지제도의 개혁은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었음을 지적하였다.

‘예인열전’ 코너에서는 최열이 단원 김홍도의 생애와 활동을 출생에서부터 임종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서술하였다. ‘예술과 현실의 소통’에서는 김소연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렸던 《신여성 도착하다》 전시에 대한 감상을 담담한 필체로 정리하였다.

‘세계사의 현장’에서는 박진우가 오늘날의 일본 천황제가 갖는 의미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그는 오늘날의 일본 천황제가 평화주의적인 천황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집단적 기억과 동시에, 과거의 전쟁 책임에 대한 집단적 망각을 촉진하는 매개로 작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역사와 공간’에서 김창회·신동훈은 경주의 조선시대 유적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함께 최근 진행되고 있는 경주읍성 복원 사업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정리하였다.

‘북한의 이해’ 코너에서는 윤여령이 북한의 ‘인테리’ 정책에 대한 역사적 변화를 시기별 특성에 따라 흥미 있게 서술하였다. ‘독자마당’에서는 김해규 민족문제연구소 회원이 평택 지역을 사례로 들어 지역 단위 친일 잔재 청산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경청할 만한 내용이다.

2018년 신년 벽두 이후 국내의 정치적, 사회적 움직임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개헌 논의는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 결정,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와 미투 운동의 전개, 그리고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간 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3월 이후에도 국내외 정국의 흐름은 큰 파고 속에서 예측 불허의 반전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다스의 실소유주 논란에서 촉발되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경유착, 공천헌금, 인사 청탁,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일반인들이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부정부패를 일삼았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추한 실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적폐의 우두머리로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저질렀던 파렴치한 행태는 온 국민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적폐는 ‘이명박근혜’로 대표되는 수구 세력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폭로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의 여파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미투의 가해자로 고발된 인사들은 검찰의 고위 간부로부터 문화예술계, 시민운동계, 학계와 교육계, 의료계, 그리고 정치권의 유력 인사들에 이르기까지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사회 전방위에 걸쳐 있어 큰 충격파를 주고 있다. 권력과 위계를 이용한 남성의 젠더 폭력이 상상 이상으로 사회 곳곳에 퍼져 있었던 것이다. 미투 운동의 성과를 담아내는 노력까지 포함한 적폐 청산은 절대로 게을리 할 수 없는 문제이며, 성평등을 위한 끊임없는 지향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거대 담론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 간호사의 소중한 생명을 죽음으로 몰고 간 ‘태움’으로 대표되는 직장 내 악습 역시 그 근원적 이유부터 깊은 고민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다.

역사학계로 관심을 돌려보면,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강행 실상에 대한 전모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 시절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했던 역사 관련 유관기관들의 적폐 청산을 위한 행보 역시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로 나타난 것이 없다.

2월 말로 종료될 예정이었던 교육부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은 2개월 연장되었다. 하지만 교육부 내부의 자체 조사라는 한계로 인하여, 활동에 여러 제약이 있다고 한다. 급기야 지난 2월 8일에는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등 14개 학회와 연구소 등이 중심이 되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부역한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연구재단,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 6개 기관의 각종 비리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 청구를 제안하였다. 500여 명의 시민, 연구자 등이 감사 청구에 참여하였다. 감사원은 하루빨리 감사 착수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박근혜 정부 하에서 해당 기관이 저지른 비리 의혹을 분명하게 밝혀내고, 적극 관여자에 대해서는 응분의 조처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남북 간, 북미 간 대화의 움직임은 반드시 실질적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진정한 평화를 가져오는 최선의 길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명박근혜 정권’ 하에서 벌어졌던 국기 문란과 부정부패의 철저한 조사와 처벌, 미투 운동의 확산을 통한 남성 중심의 젠더 폭력 근절, 나아가 아직도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의 진상 조사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우리가 달성해야 할 적폐 청산의 과제는 사회 각 방면에 널려 있다. 보다 더 분발이 필요한 2018년 3월이다.

정요근(편집위원)



차 례

04 여는 글
머나먼, 하지만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적폐 청산의 길

11 1948년 톺아보기
1948년 4월 3일, 한라산에 봉화가 오르고! -제주4・3항쟁 70주년을 맞이하여
안재홍 선생에게 듣는 ‘남북협상’의 의미

37 지금 우리는?
교육의 혁명적인 개혁이 절실하다-역사 교사의 시각에서 본 우리 교육의 방향 정립

51 인물로 보는 역사
[반독재민주화열전] 전태일,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식민지 지식인의 엇갈린 선택] 사람이 하늘이냐,
천황이 하늘이냐-최동희와 최린

95 사실(史實) 체크
치안유지법과 독립운동
박근혜 정부의 비호 아래 진행된 국수주의 유사 역사의 세력 확장

123 내일을 여는 책
『반계수록』, 조선을 넘어서는 새로운 국가 구상
『국부론』, 인간의 이기심과 야경국가에 대한 맹목적 찬가?

145 예인열전
단원 김홍도, 살아서 신필, 죽어서 신선-고전관학파 회화세계의 완성자(1)

193 사료의 재발견
조준의 전제 개혁 상소 : 어진 정치에 적합한 토지제도는 무엇인가?

203 예술과 현실의 소통
선망과 조롱, 신여성의 험난한 여정-<신여성 도착하다>전(展),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217 세계사의 현장
일본 내셔널리즘과 천황제

229 역사와 공간
유람의 메카, 삶의 터전-조선 전기 경주부를 찾아서

263 북한의 이해
북한의 ‘인테리’ 정책: 역사적 변화를 중심으로

281 독자마당
지역의 친일잔재청산이 중요하다

목, 2018/04/05-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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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_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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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제작 등: PD 김세호, 조작가,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역적’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목, 2018/04/05-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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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_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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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_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기획 제작 등: PD 김세호, 임선화 기록정보팀장, 방은희 교육팀장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03-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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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듣기]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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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10-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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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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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월, 2018/04/1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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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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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3회 임시정부와 3.1혁명 3편 – 임시정부는 어떤 나라를 세우려고 했나?”

☞ ‘내역사’ 시즌2: 비하인드히스토리 “경희대학교의 뿌리 신흥무관학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2회 임시정부와 3.1혁명 2편 – 3.1혁명의 이름없는 영웅들”

☞ ‘내역사’ 시즌2: 미식가(미리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가다)1회 식목일의 기원

☞ ‘내역사’ 시즌2: 역전다방 1회 임시정부와 3.1혁명 1편 – “왜 3.1운동이 아니라 3.1혁명인가”

0403-3

 


0523-1

[팟캐스트] 내일을 여는 역사 시즌 2

“우리 역사의 뿌리가 친일독재 세력에 의해 흔들리고 훼손되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겨울 촛불을 들고 싸운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역사적폐의 주범들의 실체와 이들이 저지른 역사범죄의 동기를 파헤쳐보고자 합니다.”

화, 2018/04/1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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