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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위장 부부’ 행세하다 싹 튼 사랑… 감옥에서 결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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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위장 부부’ 행세하다 싹 튼 사랑… 감옥에서 결혼까지

admin | 수, 2020/01/29- 00:10

지난 2019년은 3.1혁명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의미 있는 해를 맞아 많은 시민들이 임시정부가 걸었던 ‘임정로드’를 따라 걸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 102주년에도 그 발걸음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역시 지난 1월 9일부터 5박 6일 동안 청년백범 14기 답사단의 일원으로 중국 광저우~충칭에 이르는 임정로드를 탐방하고 돌아왔습니다. 길 위에서 보고 들으며 느꼈던 경험을 독자들께 공유하고자 <오마이뉴스>에 답사기를 연재합니다. – 기자 말

[이전 기사] 중국 광저우에서 발견한 약산 김원봉과 의열단의 흔적

중국 광저우는 무림고수 황비홍(황페이훙·黃飛鴻: 1856~1925)과 엽문(예원·葉問: 1893~1972)의 고장으로 유명하다. 광저우에서 조금 떨어진 포산(佛山)이라는 도시에는 두 사람의 기념관도 있다.

중국의 액션배우 이연걸(리롄제)과 견자단(전쯔단)의 영화 덕분에 한국인들에게도 매우 친숙한 인물들이다. 그래서인지 광저우를 찾는 한국인 관광객들의 여행기를 보면 두 사람의 이야기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나 역시도 광저우하면 황비홍과 엽문을 먼저 떠올렸던 게 사실이다. 중국무술 애호가로서 두 무림고수의 발자취를 좇아 떠나는 광저우·포산기행은 오랜 버킷리스트이기도 했다.

▲ 포산에 위치한 “황비홍기념관”. 바로 근처에 엽문을 기념하는 “엽문당”이 있다. ⓒ 위키피디아

이곳에서 우리 독립운동가들이 조국 독립의 꿈을 키워나갔다는 사실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고난의 대장정을 이어가던 발자취가 이곳에 남아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게 됐다. 그래서 광저우 탐방은 우리 역사에 대해 너무나도 무지했다는 부끄러운 고백과 함께 시작됐다.

혁명의 도시, 광저우

“광저우는 혁명의 도시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광둥지부의 박호균 사무국장은 광저우를 이렇게 소개했다.

지금은 국제 무역 도시로 유명하지만, 근대 시기 광저우는 늘 혁명의 소용돌이, 그 중심에 있었던 공간이었다. 1911년 손문(쑨원·孫文: 1866~1925)의 광저우봉기는 신해혁명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중국 역사상 최초의 공화제 정부 ‘중화민국’이 수립됐다. 1917년에는 군벌에 반대한 손문이 광저우에 내려와 ‘호법정부’를 수립했다. 1927년에는 국민당 장개석(장제스·蔣介石: 1887~1975)에 맞선 중국 공산당의 ‘광둥코뮌’도 일어났다.

중국 근대사를 장식하고 있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모두 광저우라는 공간에서 일어난 것이다. 청년백범 답사단은 바로 그 혁명의 현장들을 차례 차례 방문하면서, 숨겨져 있던 한국 독립운동가들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 기의열사능원 기념탑 앞에서 청년백범 14기 답사단 단체사진 ⓒ 김경준

중조인민혈의정 앞에서 부른 ‘아리랑’

‘광주기의열사능원(廣州起義烈士陵園)’은 1927년 12월, 중국 공산당의 광저우봉기 당시 희생된 공산당원 5000여 명의 합동 묘역이 조성된 곳이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혁명의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라, 1955년에 정부가 나서서 광저우 시내 한복판에 매우 크고 웅장하게 조성해놨다.

▲ 광저우 기의열사능원 전경 ⓒ 김경준

공산당 숙청 작업에 나선 장개석 세력에 맞서 일어난 광저우봉기에는 한국 청년들도 150~200명가량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로 이 합동 묘역에 우리 한인 청년들도 함께 잠들어 있다. 답사단은 어제에 이어 남의 나라 혁명에 참여하다 스러져간 한인 청년들의 넋 앞에 술을 올렸다. 이번엔 특별히 한국에서 공수해 온 막걸리를 제주(祭酒)로 올렸다.

▲ 광저우봉기 당시 희생된 5000명의 유해를 매장한 합동묘역 ⓒ 김경준
▲ 기의열사능원 합동묘역 앞에서 한국에서 준비해 온 막걸리를 올리는 청년백범 답사단 ⓒ 김경준

기의열사능원 안쪽으로 들어가면 ‘중조인민혈의정(中朝人民血宜亭)’이라는 정자가 나타난다. 광저우봉기에 참여했던 최용건(북한의 국가 부주석 역임)이 1964년 광저우를 방문한 것을 계기로 중국 정부에서 세운 비석이다.

▲ 중조인민혈의정 ⓒ 김경준
▲ 중조인민혈의정 안에 세워진 비석. 앞에 있는 꽃은 답사단이 방문하기 전날, 독립운동가 김학철 선생의 아들이 놓고 간 꽃이다. ⓒ 김경준

中朝兩國人民的戰鬪友誼萬古長靑 (중조양국인민적전투우의만고장청)
중국과 조선, 양국 인민의 전투로 맺어진 우정이여! 오래도록 푸를지어다!

혹자는 ‘결국 이 비석은 중국과 북한의 우정을 기념하는 비석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도 한다.

물론 북한의 최용건이 방문한 것을 계기로 세워진 비석이지만, 광저우봉기 당시 전사한 조선 청년들에게 과연 남과 북이 따로 있었을까? 오로지 중국의 혁명을 돕는 것이 조국 독립에 보탬이 될 것이라는 신념으로 싸우다 스러져간 하나의 한국, 하나의 조선 청년들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이 비석조차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 답사단 역시 한민족의 노래 ‘아리랑’을 부르며, 광저우봉기 당시 숨져간 넋들을 위로하고 조국의 완전한 자주독립과 통일을 기원했다.

▲ 중조인민혈의정을 둘러보며 다함께 아리랑을 부르는 답사단원들 ⓒ 변량근

그런데 비석 앞에 웬 조화 하나가 놓여있었다. 답사단 모두 누가 그 조화를 올려놓고 갔을까 궁금해했는데, 알고 봤더니 우리 답사단이 방문한 바로 전날, 조선의용대 ‘최후의 분대장’ 김학철 선생의 아들 김해양 선생이 놓고 간 꽃이라고 한다.

우리 답사단이 광저우를 떠나는 날에는 민족문제연구소 ‘아리랑로드’ 팀이 다시 우리가 걸었던 길을 걷기 위해 온다고 했다. 한국인들의 방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찾는 후손들이 있으니 이곳에 잠든 넋들이 그리 외롭지만은 않겠구나 싶어 적잖이 감격스러웠다.

슬픈 로맨스가 깃든 ‘혈제헌원’ 정(亭)

기의열사능원에서 특별히 깊은 인상을 받았던 장소가 있었다. 지금까지 많은 답사팀들이 기의열사능원을 방문했지만, 우리와는 직접적인 인연이 없어서 그런지 주목하지 않았던 장소다. 바로 ‘혈제헌원(血祭軒轅)’이라는 현판이 달린 정자다.

▲ 주문옹과 진철군의 슬픈 로맨스가 깃든 “혈제헌원” 정자 ⓒ 김경준

혈제는 피를 제물로 올리는 제사를 말하고, 헌원은 고대 중국의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제왕을 뜻한다. 즉 중국을 위해 피의 제사를 올린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대문호 노신(루쉰·魯迅: 1881~1936)의 시에서 따온 구절이다.

언뜻 보면 섬뜩하지만, 이 정자가 세워진 사연을 들어보면 숙연해진다. 여기에는 주문옹(저우웬용·周文雍: 1905~1928)과 진철군(첸티에쥔·陳鐵軍: 1904~1928)의 슬픈 로맨스가 있다.

중국 공산당원이었던 두 사람은 광저우에서 비밀 연락책으로 활동하기 위해 위장 부부로 행세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에게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고, 1차로 투옥되었을 때도 함께 탈출했다. 그러나 배신자의 밀고로 1928년 1월 27일, 체포되어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원하는 게 있느냐”는 재판관의 물음에 주문옹은 “아내와 결혼기념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고, 두 사람은 감옥 철창에서 나란히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옥중 결혼식을 올린 것이다. 이들은 2월 6일, 홍화강(紅花崗) 사형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형장으로 가기 전, 주문옹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반동들의 총성은 우리의 결혼을 축하하는 축포 소리다!”

▲ 주문옹과 진철군의 마지막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 ⓒ 김경준

기의열사능원 한쪽에는 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도 있다. 수갑을 차고 형장에 끌려온 비참한 모습이지만, 표정만큼은 혁명에 대한 단호한 의지가 깃들어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또 한 커플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 독립운동가인 박열(1902~1974)과 일본인 아나키스트 가네코 후미코(1903~1926) 부부다.

▲ 아나키스트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부부 ⓒ 위키피디아

그들 역시 옥중에서 결혼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법정에서도 당당하게 일본의 죄를 성토하면서 혁명의 동반자이자 연인으로 끝까지 함께 했다. 주문옹과 진철군 부부는 형장으로 끌려가면서도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고 하는데, 이준익 감독의 영화 <박열>에서도 이들 부부가 끌려가며 인터내셔널가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경우 국적을 초월한 연인이었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어쨌든 여러모로 닮은 두 커플의 이야기는 가히 ‘세기의 로맨스’라 할 만하지 않을까? (*3부에서 이어집니다)

<2020-01-28>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위장 부부’ 행세하다 싹 튼 사랑… 감옥에서 결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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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 1억원 들여 친일 잔재 전수조사
도내 친일파 명단, 유족 개인정보 등 이유로 보고서 비공개
전문가 “세금 투입한 용역 취지 벗어나”

전라북도청사 전경. 전라북도 제공

전라북도가 약 1억원의 예산을 들여 도내 친일 인사와 잔재를 청산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했지만 용역 최종보고서는 비공개에 부쳐 논란이 되고 있다.

전라북도는 지난 4일 도청 홈페이지를 통해 ‘전라북도 친일 잔재 전수조사 및 처리 방안 연구용역’ 최종보고서를 비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전라북도는 ‘친일 인물에 대한 조사 내용이 포함돼 유족과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정보는 유족 개인정보에 해당될 수 있다’,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는 정보통신망 유통이 금지된다’를 비공개 사유로 적었다.

전북대학교 산학협력단이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수행한 이번 용역은 전북 출신 친일파 명단을 추리고, 지역에 산재한 친일 잔재를 조사했다.

친일 인사 명단은 민족문제연구소 친일인명사전을 기초로 작성됐다.

용역에서 전북 출신 친일파는 118명, 친일 잔재는 131건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전라북도는 유족 개인정보 등을 이유로 1년 가까이 약 1억원을 들여 진행한 용역 결과를 비공개했다.

이 때문에 용역보고서에 담긴 도내 친일 잔재도 도민들은 알 수 없게 됐다.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 박우성 투명사회국장은 “세금을 들인 연구용역을 비공개한다는 것은 부실 용역이란 의혹을 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정보나 명예훼손이 우려된다면 일부라도 공개해야 한다. 전면 비공개는 친일 잔재를 청산하고 알리겠다는 이번 용역의 취지에서 벗어난다”고 덧붙였다.

전라북도 관계자는 “정보공개위원회 자문을 구한 결과, 친일 인사가 담긴 명단을 공개할 경우 유족 개인정보 침해와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친일 인사 명단을 제외한 용역보고서 일부 공개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2021-01-05> 노컷뉴스 

☞기사원문: 전북도, 친일 청산 용역 ‘공개 속앓이’

목, 2021/01/07- 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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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당 1억씩 지급”… 5년 만에 결론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한국일보 자료사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지 5년 만의 결론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부장 김정곤)는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1심 선고기일을 열고,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일본의) 불법행위는 인정되고, 원고들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고 밝혔다.

배 할머니 등은 2013년 8월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사람당 1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조정을 한국 법원에 신청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에 폭력을 사용하거나 속이는 방식으로 위안부로 차출한 불법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조정 절차에 응하지 않으면서, 사건은 2015년 12월 정식재판으로 넘어갔다. 정식 재판이 시작된 후에도 일본의 거듭된 소장 송달 거부로 인해, 공시송달 절차를 거쳐 소가 제기된 지 약 4년 만인 지난해 4월에야 첫 재판이 열렸다.

이번 재판의 최대 쟁점은 ‘주권면제’ 원칙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었다. 일본 정부는 그간 ‘한 국가의 행위 대해 다른 나라가 자국 법원에서 국내법을 적용해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 원칙인 주권면제론을 들어 재판이 응하지 않았다.

이에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강원 변호사는 “(식민지 시절) 일본 행위는 반인권적 불법행위이자 국제범죄에 해당해 주권면제(국가면제)가 적용될 수 없다”며 예외를 주장했다.

이날 재판부도 “반인도적 행위로서 국제강행 규범을 위반한 부분까지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는 없다”면서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일본 상대 손해배상 일지

<2021-01-08> 한국일보 

☞기사원문:위안부 할머니들, 日정부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 이겼다 

관련기사 

☞뉴시스: ‘日위안부 소송’ 할머니들이 이겼다…법원 “1억씩 지급”

☞여성신문: 일본군’위안부’ 피해 여성들, 일본 정부 상대 승소 “역사적인 판결”

☞프레시안: 법원 “일본,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

☞한겨레: 법원 “반인도적 행위…‘위안부’ 피해자에게 1억원씩 배상”

토, 2021/01/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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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한
사법부의 역사적인 판결을 환영한다.

오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첫 판결이 있었다. 사법부는 일본의 범죄행위를 모두 인정하고,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한 사법부의 역사적인 판결을 환영한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1991년 故 김학순 님의 증언 이후 오늘날까지 그 피해를 온몸으로 증언하며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요구해왔다. 이번 판결은 30년 동안 인권과 존엄의 회복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투쟁해 온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눈물을 닦아준 판결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소송에서 일본은 ‘한국 법원이 일본국을 상대로 재판할 권리가 없다’며 재판을 거부해왔다. 일본의 주장은 전범국가로서의 책임을 면해보자는 한낱 궤변에 불과하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는 일본국이 저지른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반인도적인 범죄행위이다.

사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나 2015년 이른바 ‘위안부’합의로 일본군’위안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일본은 전범국가로서 마땅히 법적 책임을 다하고 피해자들의 요구대로 사죄, 배상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죄는커녕 자신들의 전쟁범죄를 은폐하고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늘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의 회복을 위해 즉시 법적 책임을 이행해야 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10월 30일에 내려진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의 이행을 가로막고 한국 정부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여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오늘 ‘위안부’ 소송의 판결을 즉시 이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며,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한 모든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끝까지 연대할 것임을 밝힌다.

2021년 1월 8일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겨레하나·근로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대한불교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민족문제연구소·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야스쿠니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조선학교와함께하는사람들 몽당연필·청년시대여행·평택원폭피해자2세회·평화디딤돌·포럼 진실과 정의·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한국YMCA전국연맹·합천 평화의집·흥사단·1923한일재일시민연대·KIN

토, 2021/01/09-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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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리=서울뉴스통신】 최인영 기자 = 구리시는 구리 출신 독립운동가 ‘노은 김규식 선생’이 새겨진 구리사랑카드를 10,000매 제작하여 오는 2월부터 배부한다.

구리시는 해마다 선생께서 나라와 겨레를 사랑했던 숭고한 정신을 이어가고 후손들에게는 그의 업적과 정신을 알리기 위한 추모제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된 사노동 생가터(동구릉로389번길 55-11)를 작은 기념공간으로 조성하고 ‘노은 김규식길’ 이라는 명예 도로명도 부여하는 등 시민들에게 잊혀져 가는 역사를 알리는 사업을 추진했다.

이번에 제작 배부될 예정인 ‘노은 김규식 선생’과 태극기가 그려진 구리사랑카드도 이러한 역사 계승 발전 사업의 하나로 독립운동 유공자 및 후손에게는 명예와 자긍심을, 시민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환기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안승남 구리시장은 “노은 김규식 선생은 20세 젊은 나이에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한제국무관학교에 입학한 이후 일제강점기 조국의 독립을 위해 수많은 독립운동 단체를 이끌었던 구리시를 대표하는 역사 인물이자 독립투사이다. 2021년에도 그 분의 숭고한 정신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선양운동을 펼쳐 나갈 예정으로 이번에 제작되는 ‘노은 김규식 선생’이 새겨진 구리사랑카드는 역사를 알리는 것 뿐만 아니라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관내 소상공인들을 위해 시민들이 함께 위기를 극복하자는 의지도 담겨 있다며 위기에 처한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앞으로도 더 많이 구리사랑카드를 사용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2019년부터 발행하고 있는 구리사랑카드는 2020년 12월 말 현재 약 361억원이 발행 및 유통됨으로써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에서 소상공인 매출증대 등 침체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월 최대 1백만원 충전 시 10%에 해당하는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경기동부 취재본부 최인영 기자 [email protected]

<2021-01-13> 서울뉴스통신

☞기사원문: 구리시, ‘노은 김규식 선생’ 새겨진 ‘구리사랑카드’ 발행

수, 2021/01/13-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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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진연, 선고 직후 기자회견 열고 “재판부, 일본 적반하장에 힘 실어주는 것”

▲ 참가자들이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하인철

14일 오후 2시 30분 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이 ‘전범기업’ 미쓰비시 사죄 및 배상 면담요청에 대한 재판 결과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대진연은 2019년 미쓰비시의 전범행위에 대한 사죄와 피해 보상을 요구하며 면담요청을 진행했다. 이에 대해 지난달 검찰은 5100만 원에 달하는 과도한 벌금을 구형했고 14일 선고가 진행됐다.

선고가 진행되기 전 대진연은 무죄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재판부에 양형 사유를 제출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오후 2시 재판부는 검찰이 구형한 5100만 원을 그대로 선고했다. 이에 대해 재판에 출석한 회원들이 규탄 기자회견을 곧바로 진행했다.

양희원 강원대진연 회원은 “오늘 사법부의 유죄 판결에 대해 정말이지 절망스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사법부의 국적이 대체 어디인가, 사법부의 정의는 살아있는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배상판결이 나온 지 어느덧 3년이란 시간이 지났는데, 미쓰비시는 그 동안 어떤 사죄와 배상, 반성도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장미란 대구경북대진연 회원은 “전범기업이 아직도 이 나라에서 아무일 없었다는 듯 장사를 하고 있다. 전 국민적인 반일, 불매 열풍에도 눈 깜짝하지 않았다. 피해자분들과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대학생들에게 5100만 원이라는 벌금이 떨어지는 동안 미쓰비시는 무얼 하고 있었느냐”라며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배상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몇억 원을 내지 못하겠다며 반발하고 들고 일어났다”라고 미쓰비시를 규탄했다.

박찬우 광주전남대진연 대표는 “얼마 전 위안부 피해 할머님들에게 일본정부가 배상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하지만 스가 총리는 이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뻔뻔스럽게 대하고 있다”라며 “아직 전범국이 제대로 반성도 안 한 이 상황에서 국민을 대변해야 할 검찰과 사법부가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을 어떻게 탄압할 것인지 혈안이 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규탄 성명 전문을 낭독하고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한편, 대진연(소속 회원 포함)에게 현재까지 선고 및 구형된 벌금의 총액은 1억2350만 원이다. 대진연은 후원금을 모으고 있다.

[규탄성명] 전범기업 미쓰비시 규탄한 대학생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하인철

정의로운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규탄한다. 사법부의 판결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정당한 목소리를 틀어막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고, 미쓰비시와 일본의 적반하장격인 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다.

2018년 11월, 미쓰비시는 강제노동 피해자 분들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의미를 넘어, 법적배상이라는 측면에서 일제강점기 당시 미쓰비시의 분명한 잘못을 꼬집고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하지만 미쓰비시는 아직까지도 피해자 분들께 사죄 한 번 한 적 없고, 심지어 법적배상 역시 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는 중이다.

강제징용 문제는 단순히 과거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 피해자 분들의 현재진행형인 문제이다. 그렇기에 25명의 대학생들은 미쓰비시에게 사죄할 것을 요구하며 면담요청을 진행했다. 이는 전쟁범죄의 주범인 미쓰비시에 대한 대학생들의 분노였고, 또 국민들의 염원이었다.

그렇기에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 그리고 피해자 분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낸 대학생들은 무죄이다.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미쓰비시 면담요청 대학생들은 유죄를 선고한 사법부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앞으로도 적폐 사법부, 검찰과 맞서 올바른 역사를 만드는 길에 당당히 나설 것이다.

2021. 01. 14
민생경제연구소 진보대학생넷 안진걸(민생경제연구소 소장) 임헌영(민족문제연구소 소장)

<2021-01-14> 오마이뉴스

☞기사원문: 미쓰비시 면담요청한 대진연 회원들에 벌금 5100만원 선고

금, 2021/01/1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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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민주주의 전문학술지 『기억과 전망』 제43호 발간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50주기,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이었던 2020년을 돌아본 논문들 수록
문인간첩단사건 피해자 임헌영 선생의 회고, 한국전쟁기 전염병 관련 저작 분석한 신동원 전북대 교수의 주제서평 등 수

기억과전망 43호 표지

(서울=국제뉴스) 김서중 기자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민주주의 전문학술지 『기억과 전망』 43호를 발간했다.

매년 두 차례 발간되는 『기억과 전망』은 한국연구재단 등재학술지로, 국내외 민주주의를 주제로 한 논문들을 싣는다.

이번에는 2020년 겨울호답게 4·19혁명 60주년, 전태일 분신 50주년,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고루 돌아볼 수 있는 논문들이 수록되었다.

첫 번째 논문은 4·19혁명을 주제로 다룬다. 김일환은 「사립대학으로 간 민주화운동: 4·19~5·16 시기 ‘학원분규’와 사립대학 법인 문제의 전개」를 통해, 4·19를 겪으며 개혁의 주체로 떠오른 대학생들이 자신들의 공간인 대학 내부에서 ‘학원의 독재자’ 사학재단에 대항하는 과정을 분석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군사정권과 사립대학 간 ‘갈등적 담합’ 체제가 구축되었고, 이 골격이 사학법 개정을 시도했던 노무현 정부를 거쳐 대학의 위기라 불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동원은 전태일의 노동과 죽음이라는 주제를 인공지능과 연계한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나의 전체인 일부”인 인공지능: 1960년대 말 비인간 노동과 전태일의 후기인간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저자는 전태일이 내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라는 세 가지 테제를 중심으로 후기인간주의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각각 ‘(비)인간 선언’, ‘노동(자) 거부’, ‘지(의)식’으로 해석했다.

이어 수록된 논문 「5·18, 광주 일원에서의 연행·구금 양상과 효과: 계엄군의 연행·구금이 지역민 및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에서 김형주는 당시 계엄군의 폭력과 그 효과를 지역적 맥락에서 분석했다. 그는 광주 일원에서 발생한 계엄군의 연행과 구금으로 당시 방관자이자 협조자였던 지역 경찰과 공무원이 어떤 시선을 갖게 되었는지 서술하고, 이것이 일선 행정기관에 미친 영향은 신군부의 권력 장악이라는 거시적 시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위에서 언급한 세 편의 민주화운동 관련 논문 외에 정진영의 「존재로서의 사회운동: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자립생활 과정을 사례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논문은 시설을 벗어나는 자립과정에서 발달장애인들이 사회운동의 주체로 어떻게 자리하는가를 탐구했다.

이번 호의 회고록은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는 이번 글에서 1974년 ‘문인간첩단 사건’으로 투옥된 경험을 풀어냈다. 문학평론가인 임 소장은 박정희 정권하에서 여러 고초를 겪었는데, 1979년에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글에는 문인간첩단 사건 당시 ‘빙고호텔’(국군보안사 서빙고분실)에서의 끔찍한 고문의 과정, 서대문 귀소에서의 생활, 재판 진행과정, 석방 후 요시찰 인물로 살아야 했던 이야기 등이 담겼다.

이밖에도 신동원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소장은 한국전쟁기의 전염병 관련 저작들을 분석한 주제서평을 선보였는데, 이임하의 <전염병 전쟁: 한국전쟁과 전염병 그리고 동아시아 냉전 위생 지도>를 중심으로 2020년 코로나와 한국전쟁기의 전염병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 글은 감염병에 대해 국내에서 출간된 거의 모든 서적의 일람을 제시하고, 한국전쟁기에 전염병을 다룬 저작을 개괄하고 비교한다.

<2021-01-15> 국제뉴스

☞기사원문: 학술지 ‘기억과 전망’ 43호, ‘민주화운동사의 역사적 장면들’

금, 2021/01/15-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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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 12억원 확보…”동학농민군 시대정신 담을 것”

황토현전적지 전봉준 장군 동상 [정읍시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읍=연합뉴스) 김동철 기자 = 친일 작가 작품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전북 정읍시 황토현전적지의 전봉준 장군 동상이 철거되고 재건립된다.

정읍시는 19일 ‘녹두장군’ 전봉준 장군의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염원과 위엄을 담은 작품으로 교체하기 위해 ‘전봉준 장군 동상 건립추진위원회’를 개최했다.

추진위는 동학농민혁명 연구자, 시의원, 건축·조경·미술·조각 분야 전문가, 동학 단체 회원 등 2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동상·부조물 철거 후 처리 방안, 새 동상 건립 위치, 주변 경관 조성, 국민 성금 모금 방법 등을 논의했다.

위원들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와 자주 국가 보전이 중심인 동학농민군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교체키로 의견을 모았다.

시는 예산 12억원을 확보했다.

1987년 10월 정읍시 덕천면 황토현전적지에 건립된 전봉준 장군 동상은 친일 조각가 김경승(1915∼1992)이 제작했다.

동상과 배경 부조 시설물은 화강암 받침대 위에 높이 6.4m, 좌대 3.7m, 형상 3.7m 규모로 건립됐다.

김경승이 친일 인명사전에 수록된 인물인 까닭에 동학 단체와 민족문제연구소 등은 줄곧 철거를 요구해왔다.

유진섭 시장은 “시는 철저한 역사적 고증으로 동학농민혁명 정신 선양에 어긋나는 기념사업을 바로잡을 것”이라며 “동상 재건립으로 동학농민혁명과 더불어 전봉준 장군이 정읍을 대표하는 인물로 기억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2020-01-19> 연합뉴스 

☞기사원문: ‘친일작가 제작’ 전봉준 장군 동상, 철거 뒤 재건립한다

수, 2021/01/20-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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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BAR_길윤형의 알고 싶어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가장 처음 공개 고백한 김학순 할머니. <한겨레> 자료사진

지난 8일 한국 법원이 국제 관습법상의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을 깨고,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뒤 한-일 양국에서 이 판결의 후폭풍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찬찬히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묻습니다. 이 판결이 정말 한-일 관계를 지난 2019년 가을과 같은 격한 충돌로 몰고 갈까요?

먼저, 일본의 움직임을 살펴 보겠습니다. 아키바 다케오 외무성 사무차관은 판결 당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매우 유감이다. 일본 정부는 결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항의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어 오후엔 스가 요히시데 총리가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로선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합니다. 이튿날인 9일 일본 언론들은 정부 당국자를 인용해 “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를 쏟아냈고, 자민당 외교부회는 15일 회의에서 정부에 대항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습니다.

이 판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 역시 판결 당일인 8일 ‘외교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공식화됩니다. 첫 문장에서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해 나갈 것”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전한 뒤, 두 번째 문장에선 “2015년 12월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이하 12·28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함”이라는 표현을 집어넣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2월28일 12·28 합의를 재검토하는 조사 보고서가 공개된 뒤,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합의가 정부 간 공식 합의임을 부정할 순 없다”고 언급하긴 했지만, 이후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는 등 합의를 무력화하는 작업을 이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 점에서 정부 담화에 12·28 합의에 대한 언급이 재등장했다는 것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 입장이 강경한 ‘원칙론’에서 ‘현실론’으로 선회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를 증명하듯 정부는 셋째 문장에서 “이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여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결론 내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9월 스가 정권이 출범한 뒤 올 7월로 예정된 도쿄 올림픽을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재가동하는 ‘평화 올림픽’으로 활용하기 위해 한-일 관계 개선을 시도해 왔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강창일 신임 주일 한국대사에게 전한 “때때로 문제가 생겨나더라도 그 문제로 인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할 양국관계 전체가 발목 잡혀선 안 된다”는 말이나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이 판결이 “솔직히 조금 곤혹스러운 것이 사실”이란 언급은 이 같은 기조를 재확인해 주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원래 질문으로 돌아가 봅니다. 위안부 판결은 2018년 10월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처럼 한-일 관계를 파탄으로 몰아넣게 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진 않을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국내 여러 전문가들이 한-일 간 마찰을 피할 수 있도록 국제사법재판소의 분쟁 해결 절차를 따르자거나, “만만한 일본을 상대로 갈 데까지 간 한국 법원의 모험주의는 완전히 다른 차원에 진입하고 있다”(선우정 <조선일보> 부국장)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판결을 지지하는 ‘정의의 관점’이 아닌 ‘현실 외교적 관점’에 선다 해도 이 판결에 대해 우리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지나치게 오버하며 자세를 낮출 필요는 없다고 판단합니다.

강제징용 손해배상소송 원고 쪽 대리인들과 한·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2018년 11월12일 피해자들 사진을 들고 도쿄 신일철주금 본사로 향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노 히데키 ‘강제연행·기업책임추궁재판 전국네트워크’ 사무국장, 김민철 ‘강제동원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운영위원장, 김진영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임재성·김세은 변호사. 원고 4명 중 이춘식(94)씨를 제외한 3명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보지 못하고 고인이 됐다. <한겨레> 자료 사진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요?

한-일 관계를 격랑으로 몰고 간 대법원 판결 이후 상황을 돌이켜 봅시다. 한국 대법원은 2018년 10월 일본제철 등 일본 기업이 과거 식민지 시기 강제노동을 시켰던 한국인 피해자들에게 각 1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놓습니다. 그때도 일본 정부는 판결을 강하게 비난하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담화를 내놓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구체적인 보복 조처를 내놓은 것은 그로부터 무려 8개월이 지난 2019년 7월이었습니다. 지금도 모두의 기억 속에 생생한, 반도체 생산에 꼭 필요한 불화수소 등 3개 물질에 대한 수출 규제 등의 조처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왜 바로 보복에 나서지 않고 8개월을 기다린 걸까요? 이 판결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자신들이 젊은 시절 감당해야 했던 혹독한 노동에 대해 구체적인 배상과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 중요했던 것은 피해자인 원고들이 ‘실제 배보상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원고인단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하고, 이렇게 압류된 자산을 매각하려는 이른바 ‘강제집행 절차’에 나섭니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이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재판 결과로 인해 일본 기업에 ‘실제적 피해’가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일본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일 청구권 협정 3조 1항에 근거해 2019년 1월9일 ‘외교 협의’를 요청하고, 이어 5월20일 이번엔 3조 2항에 근거해 ‘중재’ 요청을 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북-미 핵 협상에 온갖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는 일본 정부의 요청을 무시합니다. 그 결과 발생한 것이 2019년 7월의 보복 사태입니다. 즉, 일본 정부가 보복 조처를 취한 것은 판결 그 자체 때문이 아닌, 원고들이 진행한 강제집행과 한국 정부의 ‘의도적 무시’ 때문이었습니다.

정말이냐고요? 일본 정부가 중재 요청을 한 다음날인 2019년 5월21일 고노 다로 외상의 기자회견 내용을 살펴봅니다.

“한국에 대해 1월9일 청구권 협정에 관한 협의를 요청했다. 한국에선 이낙연 총리가 이 문제에 대응하는 역할을 맡는다 해서 일본도 이낙연 총리의 대응을 어떤 의미에선 지지한다는 의미로 조금 억제적으로 대응했다. 다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는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제 곧 4개월 이상을 기다리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이낙연 총리가 ‘한국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발언이 있었다. 이 얘기를 듣고는 우리 쪽에서도 이 이상 기다리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중재 절차를 통보하기에 이른 것이다. (중략) 만에 하나 일본 기업에게 실질적 피해가 이르게 된다면 일본 정부로서는 필요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 생각한다.”

즉, 일본 정부가 움직이게 된 것은 판결 자체가 아닌 한국 정부의 무대응과 일본 기업에 실제 피해가 이를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번 위안부 판결은 어떨까요? 지난 강제동원 소송과 달리 이번 위안부 소송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들은 기나긴 수요집회 기간 자신들이 긴 투쟁에 나선 것은 “돈 때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가 8일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여 위안부 제도가 “일본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한 국가범죄”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그 시점에서 모든 갈등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즉, 할머니들과 그 유족들에겐 일본 정부의 재산을 실제로 찾아내 압류·매각 등의 강제집행 절차를 시작할 의지가 없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역사적 정의이기 때문입니다.

말로만 그런 것 아니냐고요? 현재 진행 중인 위안부 재판은 모두 2건입니다. 8일 판결이 나온 첫 재판의 원고(유족 포함)는 12명, 3월24일로 변론 기일이 연기된 두번째 재판의 원고는 20명입니다. 이 32명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12·28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으로부터 1억원을 수령했습니다. 평소 역사적 정의를 강조해 온 할머니들이 재단에서도 돈을 받고, 이 판결로도 돈을 받기 위해 ‘타국 정부 재산에 대한 강제집행’이란 무모한 일을 벌일 것이라 생각하긴 어렵습니다. 실제, 이용수 할머니는 16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일본 총리가 공개된 장소에 나와 세계가 다 듣도록 피해자에게 직접 사과해야죠. 그렇게만 한다면 저는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돈 얘기한 적도 없어요. 지금이라도 사과한다면 재판(손해배상 소송)도 취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재판의 원고 대리인인 이상희 변호사 역시 “일본 정부가 판결의 취지를 받아들이면 된다.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닌 역사의 정의”라고 말합니다.

수원평화나비 소속 회원 등 시민들이 2020년 6월24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수요시위’를 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그렇다면, 일본 정부의 입장은 어떨까요. 원고들이 강제집행에 나서지 않는데도 무턱대고 한국에 보복 조처를 취할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지난 15일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의 기자회견 내용을 잠깐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재판에 대해서는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국제법상으로도, 양국관계를 보더라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상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매우 유감이라 생각한다. 9일 내가 강경화 한국 외교부 장관에게 직접 전화해 강하게 항의했다. 그리고 항의뿐 아니라 정부로서 한국이 국가적으로 국제법 위반을 시정하기 위해 적절한 조처를 속히 강구할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여러 선택지’를 시야에 넣고 의연히 대응해 가겠다.

(질문: 여러 선택지라 함은 이른바 보복 조처도 포함된 것으로 이해해도 되는가?)

아마도 보복 조처라 하면 일본이 무엇인가 당했을 경우 대항조처를 취한다는 것이지만, (지금 말하는 것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한국이 국제법 위반 상태를 일으키고 있다’, 이것에 대해 시정을 촉구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보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모테기 외무상은 보복 조처는 일본이 ‘당했을 경우’ 즉 직접적 피해를 입을 경우 취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은 이상 이런 조처를 취할 의사가 없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원고단이 강제집행 절차에 나서지 않는 한 일본이 먼저 움직이진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고들에겐 강제집행을 할 의사가 없습니다.

결국, 지난 8일 판결로 인한 한-일 갈등은 ‘소리 없는 대치’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국 원고들은 이 판결을 통해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30년에 걸친 길고 긴 투쟁 끝에 한국 법원으로부터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게 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판결을 오랜 위안부 투쟁의 대미를 장식하는 ‘상징적 판결’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일본 정부 역시 본인들이 “최종적 불가역으로 해결됐다”고 주장해 온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는 무리수를 두진 않을 것입니다.

길윤형 기자 [email protected]

<2020-01-19> 한겨레 

☞기사원문: ‘위안부’ 판결로 한일관계 파국이라고? 오버하지 맙시다

수, 2021/01/20-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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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2021/0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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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만화가 10명 참여 ‘한 시대 다른 삶’…항일·친일인사 삶 비교

‘한 시대 다른 삶’소개하는 관계자들
(서울=연합뉴스) 황윤기 수습기자 = 서울 용산구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하재욱 작가, 성모 작가, 박종선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장, 최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이 만화 ‘한 시대 다른 삶’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1.1.31 [email protected]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최근 만화가 윤서인의 망언으로 많은 국민이 분노했는데, 이 만화는 그에 대한 민족문제연구소의 대답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부천지부에서 출간한 ‘한 시대 다른 삶’은 독립운동가의 삶을 조명한 그간 교육만화와 다른 점이 많다. 제목 그대로, 같은 일제강점기를 살았지만 친일과 항일이라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간 인물들의 삶을 나란히 놓고 대비시킨다.

31일 민문연에 따르면 ‘한 시대 다른 삶’은 지난해 경기도 문화예술 일제 잔재 청산 공모사업에 선정돼 권당 470쪽, 2권짜리 만화책으로 만들어졌다.

경기지역 초·중·고등학교 2천400곳에 보급됐으며 민문연 부천지부 누리집에서 웹툰으로 볼 수 있다. 신문과 잡지 등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시사만화가 10명이 항일·친일 인사 10쌍의 삶을 만화로 풀어냈다.

방학진 민문연 기획실장은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관련 만화와 웹툰이 많이 나왔지만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만 다루고 있다”며 “한 측면만 다루면 역사가 제대로 보이지 않고,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같이 보여줘야 그 시대를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민 전국시사만화협회장은 결과물을 보여주고 싶은 인물로 최근 망언 논란이 불거진 시사만화가 윤서인씨를 꼽았다. 윤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물이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을 조롱한다며 많은 비판을 받았고, 광복회 측과 고소전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최 협회장은 “시사만화는 일제를 풍자하며 시작했다”며 그 기원을 1909년 6월2일 ‘대한민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만평에서 찾았다.

그는 “작가의 펜촉이 어딜 향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긍정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며 “윤씨 같은 작가들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게 이런 책”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같은 작가로서 부끄러움도 있고, 그래서 이 작업이 더욱 중요했다”고 말했다.

만화 ‘한 시대 다른 삶’ [촬영 황윤기 수습기자]

교육용 만화이자 시대극인 만큼 고증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한다. 건물 외관이나 복식 등은 구체적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그렸고, 내용은 역사 전문가들의 감수를 받았다. 실제 작업 기간은 한두 달 정도로 짧았지만 최 협회장은 “협회 소속 ‘베스트’ 작가들이 참여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한용운과 ‘친일 불교인’ 평가를 받는 강대련 편에 참여한 하재욱 작가는 “지금 우리가 ‘그때 그들이 독립운동을 해야 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긴 쉽지만 사실은 정말 힘든 일”이라면서 “‘나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아득한 절망감을 느낀다”고 했다.

최 협회장은 “그래서 올바른 역사 인식이 필요한 것”이라며 “그 시대에 독립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올바른 생각이 있어야 그나마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학진 실장도 “친일파의 오랜 변명 중 하나가 ‘그때는 다 그랬다’이지만 이 책을 통해 ‘다 그렇게 살지는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2020-01-31> 연합뉴스 

☞기사원문: “친일, 어쩔 수 없었다? 다 그러진 않았다 보여주고 싶었죠” 

※관련기사 

☞민족사랑: 민족문제연구소 부천지부, 『한 시대 다른 삶』 만화와 웹툰으로 제작 

☞부천타임즈: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엇갈린 삶 

☞IBS뉴스: 친일파와 독립운동가 엇갈린 삶 웹툰 ‘한 시대, 다른 삶’ 제작

일, 2021/01/3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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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의회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특별위원회(위원장 최훈 의원)는 2일 행정문화위원회 회의실에서 4차 회의를 갖고 친일잔재 청산을 위한 올해 업무계획을 청취했다.

이날 위원들은 역대 도지사의 친일행적 표기와 친일상징물 심의위원회 구성 추진상황을 듣고 향후 운영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친일화가가 그린 표준영정 지정 해제·교체와 지정문화재 친일잔재 정리 계획과 조례 추진, 일본식 지명 정비사업 계획, 학교 내 일제잔재 청산사업 2기 추진계획 등을 듣고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최훈 위원장(공주2·더불어민주당)은 “‘친일잔재 조사 및 연구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가 지난 연말 제정됨에 따라 문화체육관광국은 가시적인 친일잔재 조사·연구활동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추경 예산을 확보하고 연구용역을 추진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선영 부위원장(비례·정의당)은 “친일인명사전 편찬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임종국 선생의 기념사업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주문했다.

김영권 위원(아산1·더불어민주당)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지 않으면 제3차 일본 침략이 있을 수 있다”면서 “교육기관에서는 교가 교체 등 여러 분야에서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영수 위원(서산2·더불어민주당)은 “친일 행위로 부와 명예를 얻어 아직도 기득권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도와 도교육청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친일 행위에 대해 적극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한일 위원(예산1·국민의힘)은 “친일잔재 청산 특위를 구성해 그동안 많은 정리사업을 지원했다”면서 “앞으로 유관기관과 연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영우 위원(보령2·더불어민주당)은 “친일잔재 문화재 중 보령에 있는 김좌진 묘역의 비문을 친일 작가가 작성했다”고 지적하고 “김좌진 묘역 주변 주차장은 보령시 소유로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와 협의 없이 작가의 친일 행적 안내판을 설치해도 된다”고 제언했다.

조철기 위원(아산3·더불어민주당)은 “아직까지 끈질기게 친일 행적을 옹호하는 단체가 있어 친일잔재 청산에 어려움이 많다”며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본식 지명에 대한 지속적인 조사와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019년 6월 구성된 친일잔재 청산 특위는 도내 산재한 일제강점기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고 순국선열의 고귀한 뜻을 되새기며 민족정기 확립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지난해 11월 공주시 일원을 방문하여 친일 죄상비 설치 관련 강의를 청취하고 공산성 인근 친일인사 공덕비 옆 죄상비 설치 현장을 방문해 친일잔재 청산 의지를 되새겼다.

아울러 지난 12월 말 아산 근대문화마을 정비사업 중 해평윤씨 일가 가옥에 이들의 친일행적을 관광객에게 정확히 알릴 수 있도록 요청하는 건의안을 아산시에 전달한 바 있다.

//장은하 기자([email protected])

<2021-02-03> 경인투데이뉴스 

☞기사원문: 충남도의회, 친일잔재 청산 활동 ‘속도’

목, 2021/02/04-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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