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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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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

admin | 월, 2019/12/23- 19:59

대학의 탄생과 변화

대학은 1000년전 지금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탄생했다. 그때는 인구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고, 기술도 거의 발달하지 않았으며, 인간은 신의 피조물이어서 지상에서의 존재란 영원한 삶으로 가는 중간단계라는 종교적 사고방식이 지배했다. 그때 이후 많은 것이 변했고 대학도 중세에서 현대, 후현대로의 역사적 변천으로 규정되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변화에 대응해 여러 차례의 중요한 변형을 겪었다. 현재 세계의 상태를 고려할 때 고등교육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일까? 중요한 전제 가운데 하나는 고등교육은 인간이 더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함으로써, 그리고 사회적 정의와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증진시키도록 도움으로써 이 세계를 더 나은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대학은 이런 역할에 실패하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 도덕적 헌신을 상실하고, 다른 면에서 잘못되고 파괴적인 사고방식에 헌신하며, 또 다른 면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하는지 아는 걸 어렵게 만들기조차 한다.

현대 대학은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이다. 과거에는 기독교에 뿌리를 두었지만 이제 매우 세속적인 기관이 됐다. 한때는 엘리트 집단이었으나 이제 수백만의 학생들에게 열려있다. 이론을 모든 것의 우위에 놓는 동시에 지극히 실용적이어서 문학비평과 이론물리학이 컴퓨터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경영, 디자인과 나란히 존재한다. 대부분 학문분과들이 각자의 형이상학적 배경을 가졌지만, 대학의 전반적 구조는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갉아먹는다. 대학들은 경제성장에의 헌신이라는 지배적 문화에 긴밀하게 묶여있는 동시에 이성과 숙고의 삶을 증진시키는 것을 추구한다. 문화적 전통을 보존하려는 기관이면서도 이런 전통의 기본적 가정들이 타당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지금 세계의 상태가 전반적으로 좋거나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현재 형식의 대학을 심각하게 재고할 이유가 없다. 현대 대학들은 세계가 현재의 상태에 이르게 하는데 공로를 세웠다. 특히 과학기술의 발전에 공헌했으며 부분적으로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에 기여했다. 그러나 최소한 진보의 길에 서지는 않았다. 현대 대학들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자신의 목적과 바탕의 가정에 대해 근본적으로 성찰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대학은 산업과 정치의 지도자들, 계획가와 분석가들, 교사와 시민들을 교육하며 우리의 파괴적 관행을 떠받치는 세계에 대한 이해의 방식을 발전시키고 합법화한다. 현대 대학의 영향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환경위기가 가장 심각하고 사회적 부정의(이는 환경의 쇠퇴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가 역사상 가장 증가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공동체 해체와 환경 파괴에서 대학이 해온 역할은 크게 주목 받지 않는다. 환경위기에 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과잉인구, 과소비, 대규모 산업, 공공정책, 생육하고 번성하고 정복하라는 성경의 가르침 등에 초점을 두었다. 대학은 대규모 산업, 정부, 종교의 이해와는 떨어져 있거나 거기에 적대적이라고 스스로를 이해했다. 전반적으로 대학구성원들의 입장은 자연세계의 파괴에 대한 비난이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동체 붕괴에 있어서도 대학의 책임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현대 대학들이 도시화를 촉진하는 이동성과 개인주의를 교육한다는 사실은 대체로 간과돼왔다.

 

현대적 믿음에 대한 대학의 헌신

나는 현재 형식의 대학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데, 특히 학문분과, 철학적 유물론, 그리고 경제주의-무한한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는 믿음-에 대한 헌신 때문이다. 대학이 세계의 선을 위한 세력이 되려면 이 세 가지를 넘어서야 하며 인간의 삶이 갖는 의미, 지구와 모든 서식자의 내재적 가치, 생명이 갖는 상대적 속성을 긍정하는 세계관을 보증해야 한다.

학문분과는 매우 강력한 동시에 통일된 세계관의 가능성을 저해하는 특별한 방식의 구조적 사고이다. 대학이 분과 형식의 사고에 매진하는 한, 대학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학문분과의 시각에서 보면 세계는 일관성과 통일성과 의미가 부족하다. 한 분과의 다양한 전제와 발견은 다른 분과의 전제와 발견에 의해 영향 받거나 점검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은 무제한의 경제성장이 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가정하는 반면 물리학자들은 지구의 파괴를 경고하는데, 이런 경고와 발견은 경제학자들에 의해 고려되지 않은 채 넘어간다. 마찬가지로 물리학자들은 모든 실재가 물질로 환원되고 그런 물질은 내재적 가치, 경험, 자유가 없다고 가정하는데 비해 (암묵적으로는 대다수 과학자들을 포함해서) 대학의 다른 학자들은 최소한 인간의 삶에는 의미가 있고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의 행동과 믿음에 책임이 있다고 가정한다. 대학의 분과구조는 이런 모순적 관점이 어떻게 두 가지 모두 진리로 통용되는지 생각하지 않은 채 공존하는 것을 허용한다. 전반적으로 통일된 실재에 대한 관념을 공유하는 대신, 서로 정반대인 추상적 개념을 내놓는다.

이런 방식으로 현대 대학은 현대성의 한 버전인 철학적 유물론이라는 후현대적 입장을 보태놓는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실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 그리고 중력 같은 물질적 힘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현대 대학에서 발견되는 근대적 세계관, 즉 오래 되고 이원론적인 세계관의 잔여일 뿐만 아니라 자연과학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세계관이다. 유물론은 초기의 이원론에 비해 더 큰 장점을 갖는다. 비이원론이기 때문에 형이상학적으로 분명한 실체들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데 따른 문제를 피해간다. 이렇게 설명되지 않는 것에는 경험(인간의 경험을 포함), 자유(인간의 자유를 포함), 내재적 가치(인간의 내재적 가치를 포함), 도덕적 미적 규범 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계는 생명이 없고 의미와 목적을 피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유물론이라는 세계관을 향유하는 개인의 존재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

현대 대학은 또한 경제주의에 경도돼 있다. 경제주의에 따르면 세계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돈으로 해결되며 돈은 은총처럼 무한하다. 세계경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여섯 배나 팽창했는데도 세계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대다수가 더 나빠졌다는 사실, 전반적인 환경이 전지구적 부의 증가에도 불구하고(대개는 바로 그것 때문에) 심각하게 쇠퇴했다는 사실은 이런 믿음에 대한 반증이 되지 않는다. 세계의 경제활동이 무한히 팽창하며 모든 이들에게 이익을 주고 건강한 생태권역과 양립 가능하다는 믿음이 너무 깊은 나머지, 경제주의가 보편적 부라는 공공연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에 설득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주의는 잘못되고 파괴적인 이데올로기로서 점점 큰 지구의 쇠퇴와 인간의 고통을 가져온다. 단순히 말해 유한한 지구에서 무한한 경제성장은 가능하지 않다. 현대 대학들이 직간접적으로 경제주의를 지지하는 한, 환경적으로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세계와 한편이 될 수 없다. 경제주의는 삶의 의미를 소비와 소득의 관점에서 정의하기 때문에 이런 목적을 수용한 대학은 자연세계의 파괴를 가속화하고 인간의 고통을 증진시킬 뿐이다.

 

대학이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

우리가 사는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데도 대학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지 않는 열세 가지 생각이 있다. 더 나쁜 것은 이 모든 생각이 진리로 간주되며, 전 세계의 고등교육기관으로부터 공개적으로 인증됐다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대학들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바로 그 생각들에 자신의 권위를 부여한다. 그 열세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다.

1. 실재는 내재적 가치를 갖지 않는다.

2. 우주는 목적이 없다.

3. 진리, 정의, 아름다움은 완전히 주관적이어서 중요하지 않다.

4. 사회 전반의 건전도는 GDP로 측정될 수 있다.

5. 광범위한 경제적 불평등은 문제가 아니다.

6. 교육은 직업훈련과 출세에 관련된 것이다.

7. 공장식 농축산업은 효율적이고 필요하며 지속가능하다.

8. 모든 중요한 문제는 시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9. 개인이 사회보다 더 현실적이다.

10. 가능한 최선의 세계질서는 하나의 슈퍼파워만 존재하는 것이며, 이것은 미국이다.

11. 글로벌 경제는 필연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12. 전쟁과 부정의는 피할 수 없다.

13. 경제성장은 기후안정성이나 생물다양성만큼 혹은 그보다 더 중요하다.

만약 한국과 미국이 지속 가능한 문명을 이루려면, 고등교육을 재발명하거나 현재 상태의 고등교육을 다른 종류의 고등교육으로 보완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세계를 파괴하는 생각에 도전하고 그것을 보다 진실에 가까운 생각으로 바꾸도록 해주는 형식의 고등교육이 필요하다.

나는 위에 제시한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해 토론하고 이 목록에 다른 생각들이 추가되기를 바란다. 아마 내가 만든 목록은 의도하지 않고 의식하지 못했지만, 미국 중심적일 것이다. 그러나 내 요점은 대학들이 당대의 문화적 가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며, 몇몇 중요한 생각들은 현재 구축된 고등교육의 맥락에서는 추호의 의심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형식의 대학이 세계를 파괴하는 생각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학의 구조와 관련이 있고, 둘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형태 짓는 광범위한 문화적 가정과 관련이 있으며, 셋째는 정치적인 문제이다.

 

대학이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하는 세 가지 이유

오늘날 대학은 학문분과에 따라 조직돼 왔다. 과거에는 반드시 그렇지 않았고 미래에도 그럴 필요가 없다. 학문분과는 탐구분야, 기본적 가정의 세트, 방법론으로 구성된다. 학문분과에 맞지 않거나 현재 분과의 기본가정과 모순되는 생각은 오늘날 고등교육의 맥락 안에서는 진지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내가 지구에서 인간이 영위하는 삶에 해롭다고 꼽았던 위의 모든 생각들은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만물은 그 자체로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을 예로 들어보자. 물리학과 화학이라는 분과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가정 위에 놓여있기 때문에 실재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가능성을 음미하는데 닫혀있다. 이론상 철학 같은 다른 분과는 실재하는 모든 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거나 이것이 실재에 대해 생각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는 생각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현대 철학자들은 인간의 인식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세계에 대해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없으며, 따라서 만물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은 말이 안 된다거나 우리는 물리학자들의 전제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내 초점은 실재하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는 가정이 더 개연성이 있다고 설득하려는 게 아니다. 현재 대학이 구조화된 방식 때문에 이런 생각이 대학에서 타당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산업화된 농업은 산출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토양을 파괴하기 때문에 지속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들어보겠다. 농경제학이라는 분과는 그것이 바이오기술과 결합돼 있는데다 대규모 농화학제품 기업들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에 위의 생각이 사실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이런 생각이 잘못됐다고 증명하거나 토론하지도 않는다. 그냥 무시해버린다. 많은 대학에 있는 환경연구, 지속가능발전, 음식연구 관련 학과들이 현대 농업은 지속 가능하다는 생각을 공개적으로 거부하지만, 이런 학과들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고 일반적으로 대학 안에서 낮은 지위를 차지한다. 이 학과들은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농업정책과 관행을 만들어내는 농과대학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대학들이 위의 열세 가지 생각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하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는 대부분이 이미 “상식”이 되어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등교육의 목적은 개인의 성취라는 생각과 끝없는 경제성장이 가능하며 바람직하다는 쌍둥이 생각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들이 경제성장은 끝없이 가능하며 대학에 가는 이유는 좋은 직업을 얻는 것, 즉 많은 돈을 버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한국의 경우 고등교육이 고강도 노동, 탁월한 경제정책과 함께 삶을 엄청나게 개선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런 생각에 도전하는 것은 상식을 배반한다. 그러나 전체 그림은 좀더 복잡하다. 한국의 삶이 모든 면에서 과거보다 나아진 것은 아니며, 10년마다 두 배가 되는 경제성장 역시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강의 기적은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이것은 경제성장이 끝없이 가능하다는 잘못된 가정에 그 뿌리가 있다.

대학은 바깥 세계로부터 단절된 “상아탑”으로 불려왔다. 어떤 면에서는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은 진실은 대학이 사회적 구성물이며 문명의 상식이 교육과정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경영대학원과 경제학과는 경제학이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도덕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런 생각을 거의 하지 않는다.

대학, 최소한 미국 대학들이 “경제학은 자연의 법칙과 사회의 도덕규범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처럼 위험한 생각을 고려하는 게 지극히 어려운 세 번째 이유는 정치적인 것이다. 미국에는 대개 소규모인 사립대학들과 대개 대규모인 공립대학들이 섞여 있다. 미국의 대다수 학생들은 공립 대학에 다니고 있다. 공립대학 교수들은 각 주에 고용돼 있다. 일부는 종신직위를 보장받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현재는 70%의 교수들이 종신고용을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공식적으로는 모든 교수들이 어느 정도의 학문적 자유를 누리지만, 매년 계약이 끝나는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이런 자유는 다음 학년초에 계약을 연장해야 한다는 열망에 의해 제한된다. 비정규직 교수들은 다시 고용되지 않을까 두려워서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생각들을 강의하는 게 결코 편안하지 않다. 슬프게도 정규직 교수들조차 종종 승진하지 못하거나 학생들의 평가에서 별점을 덜 받을까 두려워서 정치적으로 인기가 없는 생각들을 피한다.

한국 대학들이 대개 사립이라고 하더라도, 내 짐작으로는 상식적 생각들에 도전하는 것을 어렵게 만드는 정치적 압력들이 존재할 것 같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전반적으로 대학들은 세계를 파괴하고 있는 바로 그 생각들에 대해 다루지 못한다. 이런 일반화에는 예외가 있으며 이런 예외를 축하해야 하지만, 이런 예외가 더 큰 진실을 가리도록 허용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대학들은 상황을 호전시키지 않는다. 대체로 자신들의 상당한 권위를 공개적으로, 비공개적으로 잘못되고 파괴적인 생각에 부여함으로써, 그리고 지구를 파괴하는 “지식”을 재생산함으로써 상황을 점점 나쁘게 몰아간다.

 

대학을 변화시키는 두 가지 제안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미국과 한국에서 모두 통할 수 있는 두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런 두 가지 제안은 가능성의 전부가 아니며 얼마든지 다른 제안이 더해지길 바란다.

큰 대학의 교수들은 위에 제시된 위험한 생각들 가운데 하나 혹은 그 이상에 대해 탐구하는 독서그룹을 조직할 수 있다. 대여섯 명으로 구성된 독서그룹에서 한 학기 동안 한두 권의 책을 공들여 읽도록 한 다음, 이 문제들에 대해 토론하기 위해 자신들과 전공이 다른 동료들과 서너 번 만나도록 하면 된다.

우리는 애팔래치안 주립대학(노스 캐롤라이나 주의 중간규모 주립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이것과 비슷한 강의를 시도했다. 주제는 기후변화와 그것의 사회적 함의였다. 결과는 희망적이었다. 많은 교수들이 같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다른 교수들과 만나고, 자신들의 특수한 학문분과 바깥에서 중요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환영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가르치는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은 대학의 분과구조였다. 비록 임시적 토대에서 이뤄진 일이지만, 교수들이 자신의 전공을 넘어 함께 생각하도록 만든 것은 현재의 대학 구조를 변화시키는 한 가지 방법이다.

이 독서그룹이 거둔 눈에 띄는 성과는 어떤 생물학과 조교수가 학생들이 생물학 전공기초 강의에서 전지구적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에 대해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 부분은 선택강의이며 많은 강사들이 이 부분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그 이후로 생물학과는 전공기초 강의에서 기후변화의 생물학적 함의를 필수강의로 지정했다. 이론상 다른 학과의 교수들도 전공기초를 정하면서 비슷한 결정을 할 수 있다.

이 강의에서 얻은 또 다른 결과는 약 100명의 교수들이 기후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정보를 자신들의 강의에 넣겠다고 자발적으로 서약한 것이다. 이런 서약은 교수들에게 부과된 의무사항이 아니라 개인적 결정이었으나, 그들이 이 서약을 따르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현대 대학처럼 오래 되고 존경 받는 제도를 금방 뜯어고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함께 독서를 하는 것 같은 간단한 일들이 변화를 위한 맥락을 만들어내는데 놀라운 효과를 거두었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 종류의 분과를 횡단하는 노력들이 현대 대학의 문화를 변화시키는 잠재력을 가질 것이다.

나의 두 번째 제안은 대학 바깥에 대규모로 존재하는 성인학습센터와 관련된 것이다. 1920년에 독일 철학자 프란츠 로젠츠바이그는 독일 대학들의 비인격적 교육에 맞서 레흐르하우스(Lehrhaus, 교육의 집)로 알려진 기관을 설립했다. (역자주: 당시 독일에서 제기된 평생교육의 필요성에 부응하면서도 유대의 전통에 기초한 성인교육기관으로, 회당(synagogue)을 학교(lehrhaus)로 바꾸되 거꾸로 하지 말라는 탈무드의 가르침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유대역사에서 첫번째 레흐르하우스는 제1차 바빌론 유수때 세워졌으며 혁신적 교육방법으로 신앙의 의무를 지켰다.) 레흐르하우스의 강조점은 전통적인 유대식 삶에 대한 현대성의 도전에 대응하고 비위계적인 교수법을 도입하는데 있었다. 1930년대에 나치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레흐르하우스는 독일에서 가장 활기 있는 교육기관이었다. 1970년에 레흐르하우스 모델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어느 정도 부활했다.

1960년대에는 몇몇 “대안대학”들이 미국에 설립됐는데, 이는 그 시대의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 제도권 대학들이 실패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미국이나 한국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 건강한 공동체, 지속 가능한 경제학 같은 구체적인 문제 혹은 생태적이고 정의로운 문명을 증진시키는 발상을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조직하는 성인학습센터 혹은 “대학”을 설립하는 게 가능하다. 이런 “대학” 혹은 성인학습센터는 위에 제시된 위험한 생각들을 얼마든지 탐구할 수 있다.

나의 주안점은 현재 형식의 대학들이 문제의 일부라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운영하는 대학들은 구조적으로,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지구를 파괴하는 생각들을 분석하고 평가하는데 무능력하다. 물론 문화 자체가 그대로 유지되는 한 고등교육을 변화시킨다는 건 불가능하다. 우리는 대학을 내부와 외부에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야 하며, 동시에 현대 문화의 모든 다른 측면들까지 변화시키려고 힘써야 한다.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출발점은 없다. 그럼에도 새로운 종류의 문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식의 고등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마커스 피터 포드

철학자, 『현대 대학을 넘어: 구성적 후현대 대학을 향해』 저자

시민들의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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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26일 뉴욕 소재 월드처지 센터(World Church Center)에서 열리는 한국평화를 위한 국제회의에는 뉴욕에 거주하는 남북한 인사들과 교민들 그리고 미국의 반전 평화단체들과 한반도 관련 싱크탱크 연구원 등 광범한 인사들이 참여한다. 마침 세계적인 반전평화단체인 ‘전쟁없는 세상(WBW: WorldBeyondWar)’의 설립자이자 대표를 맡고 있고 2015년 이래 5년간 연속 미국시민단체가 추천한 노벨평화상 수상 후보이며, 2018년 미국평화재단이 명예의 전당에 올리는 평화시민상을 수상한 데이빗 스완손이 당일 특별찬조연설을 예정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스완손의 연설내용을 한국 내의 반전평화운동을 하는 모든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자 사전에 번역한 내용이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회나 정부를 들어본 적도, 그런 사회나 정부를 꿈꾸는 이들을 본적도 없다.

북한도 남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의 가장 큰 걸림돌은 다름아닌 미국인 듯하다. 미국의 정부와 여론 매체, 거대 부자들, 보수적 지식인층, 심지어 사실상 미국의 들러리 격인 유엔(안보리)까지도 한반도 평화의 장애가 되고 있다.

미국의 시민들은 행정부에 대해 매우 약한 견제력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선택이었다. 거대 매스컴들은 시민들을 쉽게 조종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여론은 중요한 문제다. 미국 내에서는 마치 신화(거짓말)처럼 과거의 전쟁들이 위대한 과업이었던 것으로 둔갑되어, 매우 중요한 사건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독립전쟁은 위대하다는 것이다. 모두 느끼겠지만 캐나다와 인도를 비롯한 대영제국의 나머지 영토가 여전히 영국 군주의 노예노릇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예제에 맞서 싸운 미국의 남북전쟁 역시 위대하다고? 전쟁이라는 살육과정 없이 노예제와 농노제를 끝낸 나라들이 대부분이지만, 예외적인 경우였을 뿐인 미국의 역사에서 딱히 배울 교훈은 없다.

무엇보다도 나치로부터 유대인을 구하기 위해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은 위대했다고 외쳐대지만, 이는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실제의 목표가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 이 전쟁에는 오늘날 미군이라면 과거의 전설로만 알고 있는 것 외에 다른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전쟁에는 패배한 적군의 항복이 수반된다. 나치의 항복은 미국보다는 프랑스군을 향한 것이었을 수도, 때로는 러시아군을 향한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적군은 항복했고 이를 마치 ‘선에 무릎을 꿇은 악’으로 포장하기란 어렵지 않다.  사실상 이런 류의 해석을 희석하려는 시도만으로도 이단으로 몰리기 쉽다.

그런데 누구도 미국인들에게 그들이 위대한 승리로 일컫는 ‘한국전쟁’을 효과적으로 납득시킬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심지어 버락 오바마(Barack Obama)도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별로 듣는 바가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사건이 그런 것처럼 단순히 “세계2차 대전이후”의 해프닝으로 묘사될 뿐이다. 예를 들면 평화를 기념하는 (1차대전) 휴전일이 전쟁을 기념하는 재향군인의 날로 바뀐 것, 또는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탄생, 영구적인 전쟁의 등장, 아무런 제약이 없는CIA전쟁, 핵위협, 극단적인 제재 등에 무감한 것처럼 말이다. 한국전쟁 기간에 미국은 스스로를 위해 놀랍고 지속적인 행적들을 이루었지만, 누구도 그 시대 자체를 합당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당시에 성취한 일들이 없었다면 미국은 오늘 같은 모습이 아니었을 수도, 러시아를 비난할 처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한번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흔히 한국전쟁은 신성한 군대가 명령에 따라서 충성한 사례 정도로 언급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섬긴 명령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훌륭한 군인이 되어야 하며, 훌륭한 군인은 결코 명령에 질문하지 않는다. 또는 한국전쟁은 자유를 수호한 방어전으로 묘사된다. 확신컨대 미국에는 한국이 지도상 어디 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지 여부를 아는 사람보다 한국전쟁은 북한이 먼저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나는 다음의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를 절반으로 나눈 것은 미국정부였다. 미국정부는 미국 유학파였던 한국의 독재자(이승만)와 함께 한반도 남쪽에 악랄한 독재를 불러왔다. 그리고 그 독재자는 미국과 공모하여 수많은 양민들을 학살했다. 북한과의 전쟁을 원한 것도, 한국전쟁이 공식 발발하기 전 남과 북의 국경에서 군사공격을 자행한 것도 그였다. 미군은 북한에 3만 톤에 달하는 폭발물을 투하했는데, 명령받은 조종사들이 더 이상 북한에 남아있는 “전략적 목표물이 없다”고 불평한 이후에 지속된 공격이었다. 게다가 미국은 한반도에 3만2천 톤의 네이팜(napalm)탄을 투하했다.  주로 민간인 주거지역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유행병을 퍼뜨릴 요량으로 흑사병(bubonic plague)과 여러 질병균을 함유한 곤충과 조류들을 퍼트렸다. 그러한 작전의 결과로 라임(Lyme)병이 한국에 퍼지게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라임병은 뉴욕 롱아일랜드의 끄트머리에 있는 플럼 아일랜드(Plum Island)에서 시작된 질병이다.

미국이 북한을 타도하기 위해 주도한 이 전쟁으로 남한인구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인구의 약20~30 퍼센트가 희생되었다. 북한에서는 죽거나, 다치거나, 주거지를 잃은 친척이 없는 가족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미국의 정치인들은150년 전에 일어난 남북전쟁의 의미를 확대하기 바쁘지만, 그들 대다수는 오늘날 북한의 미국에 대한 적대심이 고작 70년도 되지 않은 한국전쟁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미국은 한국전쟁의 공식적인 종결과 남북한의 재결합을 막아왔다. 대신에 북한주민에게 극단적인 제재조치를 시행하고 있으나, 수십 년째 미국이 명시하고 있는 목표의 달성(정권의 붕괴)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 동안 미국은 북한을 위협하는 한편, 전시작전권을 손에 쥐고 한국을 무장시켜 왔다. 북한은1990년대에 미국과 군축협약을 논의했고, 실제 협의된 대부분의 내용을 준수하였지만, 미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을 ‘악의축’ 중 하나로 지목하면서, ‘악의축’으로 지목된 다른 두 국가(리비아, 이라크)를 파괴했고, 이후로는 줄곧 마지막 ‘악의축’(이란)을 파괴하겠다며 위협해 왔다. 그 후에도 북한은 재협상의지를 밝혔으나,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 무기를 만들게 되었다. 이제라도 북한은 미국이 다시는 공격하지 않겠다고 확언하고, 한국에 미사일 배치를 중단하고, 북한 영공근처에서 핵무기 연습훈련을 멈추면, 재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발걸음을 보았고, 이는 눈부신 성과이다. 특히 남북한의 비폭력 운동가들의 공이 크다. 이들에게 크고 작은 손길을 보탠 전세계의 도움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성공은 세계에 오랜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보여줄 뿐 아니라, 하나의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는 에티오피아의 총리가 그러한 위업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한반도의 성공은 거기서 한발 나아가, 미국정부가 결코 끝내고 싶지 않은 ‘오랜전쟁’을 끝내는 본보기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는 전세계 모두가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일의 당사자이다.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이기 때문이고, 핵으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위험한 무지의 산물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 세계는 자칭 세계경찰이라고 나선 미국의 뜻에 맞서 평화를 지키는 본보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하기 때문에 북한은 그저 악랄하고 비이성적이라는 말을 그대로 믿는다. 북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북한이 미국을 공격하고 자유를 앗아갈 것이라는 말을 사실로 생각한다. 십여 건의 미국전쟁은 적국에 폭탄을 투하해 해당국 시민들에게 인권을 찾아준 전쟁으로 홍보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인들은 북한의 인민들이 인권을 위협받고 있다는 말을 신뢰하는 것이다.  오직 두 개의 거대정당만이 미국인들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북한과의 평화를 이야기할 때 미국인들은 이에 격노하게 된다. 미국인들은 유엔헌장은 물론 인간의 품격을 무시하는 핵전쟁카드를 쓸 때보다도 북한과의 평화에 대해 훨씬 더 분노한다.

실상은 미국이 자신이 독재국가라고 부르는 국가들 중 73%에 무기를 판매하고 있으며, 그 중 대부분에는 무기사용 훈련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독재자와 미국특유의 적대관계를 맺는 것보다는 독재자와 이야기를 하는 게 나은 것은 확실하다.

누군가 트럼프를(헤어스타일이든 뭐든) 칭찬하면, 트럼프는 파멸을 경고하다가 돌연 평화를 약속한다. 이럴 때 적절한 대응은 당파적인 분노도, 주한미군은 한국에서 절대 물러나지 않는다는 선언도 아닌, 안도와 격려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는 것이 한반도에 평화를 불러온다고 믿는다면, 나는 그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과거에도 노벨평화상은 그럴만한 업적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에게 수여된 적이 있다.  .

그러나 그 외에도 평화를 독려하기 위해 강구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쟁은 응원하면서 평화회담은 규탄하는 미국언론을 수치로 여겨야 하고, 이들을 개혁하고 인수하여 대체해야 한다. 우리는 트럼프의 거대전쟁 예고와 함께 무기업체의 주가가 솟구칠 때는 돈을 벌고, 평화가 등장할 때는 돈을 잃는 월스트리트 자본을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미국 내의 여러 정부부처와 대학, 투자펀드가 더 이상 대량살상무기에 우리의 돈을 투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계는 유엔 및 여러 기구들을 통해 한국과 주변에서 영구적이고 완전하게 전쟁예행연습을 끝낼 것을 요구해야 한다. 미국의회는 이란핵합의를 조약으로 만들어 복원하고, 중거리핵전략조약(Intermediate Range Nuclear Forces Treaty)을 수호하며, 핵확산방지조약을 준수함으로써 북한이 미국정부가 하는 말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유엔은 미국의 전쟁에 구실을 제공하는 역할을 멈춰야 한다. 유엔은 지난1975년 미국에게 한국 내 소위 유엔사령부를 해산하고, 미국의 제국주의적 행위에 유엔의 이름을 붙이지 말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미국은 해당결의안을 위반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를 다루는 수준을 훨씬 넘어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고, 실제 사용할 것처럼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엔(안보리)은 북한을 제재해야 할 국가로, 미국은 제재가 필요하지 않은 국가로 보고 있다.

세계는 이미 오래 전에 미국도 다른 모든 국가와 동등하게 법치주의를 따르도록 했어야 한다. 동시에 모든 핵무기의 금지를 완수했어야 한다. 미국에는 핵무기에 반대하다가25년의 징역을 살 위험에 처한7인의 킹스베이 플로우쉐어즈 (Kings Bay Ploughshares 7)가 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미국무기의 한국배치를 반대하며 자신에 몸에 불을 붙여 자살한 남성(고 조영삼)이 있었다.  이들이 이렇게 용감한 행동을 보였다면,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미국하원은 법안 하나를 통과시켰다. 아직 상원의 합의를 얻은 것은 아니지만, 이 법안은1) 한국전쟁의 종전지지와 함께, 2)국방부(Pentagon)에 전세계 미군기지가 미국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근거의 제시를 요구할 것이다.  이러한 두 단계의 요구로 한반도의 평화협정이 가능하게 될 것이고, 완전히 준수된다면,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미국의 미니요새, 즉 미군기지 내의 골프코스와 레스토랑 체인은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이들 기지는 들은 미국의 안전을 도모하기 보다는, 많은 경우 적대행위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조치들을 이른바 국방수권법 (National Defense Authorization Act)에 담아야 할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미국정부가 한반도에서 손을 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도록 강제할 전세계시민과 미국 내 시민사회, 국제기구의 압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것이 한반도를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통일된 또는 통일을 향해가는 한국과 더욱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미군이) 자신의 집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과 우정을 맺을 수 있다.  국가라는 관점에서는 그러한 우정은 흔치 않고 반역적으로 들릴 수도 있으며, 고립주의적인 것으로 들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러한 우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반도는 전세계의 일부일 뿐이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세계 모든 곳에서 전쟁과 전쟁준비를 끝내기 위해 절박함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내가 이끄는 글로벌 단체인WBW(WorldBeyondWar)의 목적이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worldbeyondwar.org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여 175개국에서 서명작업이 진행되는 평화선언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면 전쟁과 전쟁위협을 과거의 기록으로 돌릴 수 있다.

 

데이빗  스완손(David Swanson)

전쟁없는세상(WorldBeyondWar) 설립자 겸 대표

금, 2019/10/25-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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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을 대표하는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에 여성으로는 최초로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40대에 늦깎이로 정치에 발을 들였지만 한때 앙겔라 메르켈을 이을 가장 강력한 총리 후보로 거론돼 온 중량급 정치인이다. 추진력은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스로가 7남매의 어머니인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 노동부 장관으로서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다. 남성에게 유급 육아휴직 2개월을 주는 제도와 육아휴직 여성에게 임금의 67%를 보조하는 법안을 이끌어냈다. 군 경험이 전무하면서도 “독일 연방군을 독일에서 가장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겠다”며 여성으로는 최초로 독일 국방장관직을 수행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취임은 EU를 이끄는 두 축인 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의 수장이 모두 여성이 됐다는 상징적인 변화로 주목받기도 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맡고 있었던 크리스틴 라가르드는 지난 11월 여성 최초로 유럽중앙은행 총재에 취임했다. 두 사람 모두 기후변화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나선 것도 공통점이다. 라가르트 총재는 기후변화 대처를 위해 통화정책까지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EU는 많은 도전과 위험에 직면해 있다. 영국의 EU 탈퇴 이슈인 ‘브렉시트’나 난민 대책, 극우 포퓰리즘의 득세 등 하나 같이 만만치 않다. EU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해 왔던 독일의 경제 침체가 EU의 경제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미·중 무역분쟁의 격화와 러시아의 위협 등도 골칫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EU와 미국과의 관계도 무역과 이란 핵 합의 등에서 충돌하며 악화됐다.

지난 11월1일부터 5년의 임기를 시작한 폰 데어 라이엔은 트럼프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도 통화하며 새해에 만나겠다고 밝혔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제3국이 되겠지만 유례없는 협력관계를 갖게 될 것”이라며 안정적인 관계를 이끌어나가겠다고 밝혔다. 폰 데어 라이엔이 EU가 맞닥뜨린 대내외적인 도전에 맞서면서 기후변화와 EU의 미래라는 과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메르켈 내각 최장수 장관… 프랑스어·영어도 능통

폰 데어 라이엔은 1958년 10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에른스트 알브레히트가 그 직전 해에 출범한 유럽경제공동체(ECC)의 집행위원회(EU 집행위원회의 전신)에서 일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브뤼셀에 살게 됐기 때문이다. 알브레히트는 초대이자 폰 데어 라이엔이 취임하기 전까지 유일한 독일인 집행위원장이었던 발터 할슈타인 아래에서 일하며 경쟁 담당 사무국장까지 지내기도 했다. 훗날 집행위원장이 되는 폰 데어 라이엔을 생각하면 아버지가 일했던 자리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13살이 됐던 1971년 가족과 함께 독일 니더작센 주의 하노버로 이주했다. 이후 식품회사 사장을 거쳐 정계에 입문한 아버지는 1976년 니더작센 주의 주지사가 됐으며 1990년까지 계속 재선돼 연임했다. 아버지는 중도 보수 성향인 기독민주당(CDU) 소속으로 한때 헬무트 콜의 지지를 받아 당 대표 선거에 나갔지만 낙선하기도 했다. 총리까지 꿈꿔볼 수 있었던 정치가였던 것이다. 1990년에는 주지사직을 내주게 되는데 그의 후임자가 바로 나중에 독일 총리가 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다.

폰 데어 라이엔은 1977년 괴팅겐대에 입학해 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당시 독일에는 68혁명의 영향으로 생겼던 극좌 무장단체였던 적군파(RAF)가 독일 경영자총협회 회장이자 나치 친위대 출신이었던 한스 마틴 슐러를 납치해 사살하는 등의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에 대한 불안감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1978년에는 RAF가 저명한 보수 정치인이라는 이유로 알브레히트의 딸인 폰 데어 라이엔을 납치 대상에 올렸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때 폰 데어 라이엔에게는 24시간 경호를 받거나 영국으로 건너가 가명으로 사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영국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로즈 래드슨’ 이라는 가명으로 생활하면서, 런던 정경대(LSE)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이 이름은 미국인이었던 증조할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폰 데어 라이엔에게 런던은 ‘현대성의 전형’이자 ‘자유’와 ‘삶의 기쁨’을 느끼게 해 준 곳이었다. 그는 런던 생활에서 “내가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는 내면의 자유를 얻었다”며 “다른 문화가 공존하면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었다”고 말한다.

1979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전공을 바꿔 하노버 의대에 입학했다. 1987년에는 졸업하면서 의사 면허를 취득했고 산부인과 의사로 일했다. 1992년에는 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다. 그러는 동안 1986년에는 같은 의사인 남편 하이코 폰 데어 라이엔과 결혼했다. 괴팅겐대의 합창단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한다. 1992년에는 남편이 스탠포드 대학에서 일하게 되자 미국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4년 동안 아이를 키우며 뒷바라지를 했다. 1987년부터 1999년 사이에 그는 7남매를 낳아 길렀다.

벨기에와 영국, 미국을 다양하게 거친 이력 탓에 폰 데어 라이엔은 독일어는 물론 영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하다. 이 점이 뒷날 EU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되는데 반감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그는 미국에서 다시 독일로 돌아온 뒤 2002년까지 하노버대에서 강의와 연구를 계속했다. 한편으로 1990년부터 기민당에 입당했던 그는 지역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96년에는 기민당의 니더작센 주 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기민당 소속 의사들의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2003년에는 니더작센 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2003부터 2005년까지는 주 정부 내각에서 사회복지 및 여성·가족·보건 장관을 맡아 일했다.

2003년 기민당 당 대표였던 앙겔라 메르켈은 당시 슈뢰더 총리에 맞선 사회복지 개혁안을 마련하고 있었고, 이 안을 마련하는 그룹에 폰 데어 라이엔도 참여하게 된다. 2005년 총선에서 메르켈은 저출산과 사회 보장 문제를 공략하면서 표심을 잡기 위해 폰 데어 라이엔을 예비 내각 명단에 넣게 된다.

폰 데어 라이엔은 보수 정권에서 일했지만 북유럽식 복지체계를 도입해 기민당 내 진보파로 분류되기도 한다. 출산 증가가 경제발전에 기여한다는 지론으로 출산 장려책에도 힘썼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친을 5년이나 집에서 간병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정적인 이미지가 부각되기도 했다.

그는 메르켈 내각이 출범할 당시인 2005년부터 2009년까지는 가족여성청소년부 장관을 맡았다. 보수적인 당내의 반대 분위기 속에서도 보육 시설 확충에 43억 유로의 예산을 확보했다. 남성들에게도 2개월의 유급 육아휴직을 도입했다. 이런 정책에 대해 기민당과 연합하고 있는 기독사회당(CSU)에서는 “남성들은 기저귀 교환 인턴십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며 노골적으로 비꼬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의 과감한 추진력은 때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아동 포르노 단속을 위해 독일 연방경찰청이 가지고 있는 차단 목록을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 제공해 강제 차단하는 방법을 옹호하면서 ‘검열 줄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6년에는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기독교적 가치관 교육을 제시했다가 이슬람 이민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2009년부터는 노동사회부 장관으로 일했다. 주요 대기업의 감독이사회에 2023년까지 40%의 여성 이사를 임명하도록 하는 할당제 도입을 두고 사회민주당(SPD)과 기민당의 갈등이 벌어지자 메르켈 총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민당의 손을 들어줬다. 숙련된 노동 인력 확보를 위해 이주노동자의 이민 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동성결혼에 대해서도 찬성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2013년 폰 데어 라이엔은 여성 최초의 독일 국방장관에 임명됐다. 그는 군대를 ‘최고의 직장으로 만들자’며 군인들의 복지에 1억 유로를 투입했다. 군내 괴롭힘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못한 군 사령관을 해임시키기도 했다. 유럽과 러시아와의 긴장이 확대되면서 국방비 지출을 늘렸고, 18만5000명이던 병력 상한선을 해제하고 지속해오던 감군 정책을 벗어나 군인의 수를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2014년에는 이슬람국가(IS)와 싸우고 있는 쿠르드자치정부에 대전차 미사일과 공격용 소총과 기관총 등 7000만 유로 상당의 무기를 지원했는데, 이는 2차 대전 이후 70년 만에 최초로 독일이 외국에 무기를 제공한 사례가 됐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별도로 유럽의 독자적 군 지휘체계를 창설하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에 대한 무기 수출을 추진하기도 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메르켈 내각에서 지금까지 14년 동안 계속 장관을 지낸 유일한 인물일 정도로 메르켈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나토 사무총장이나 메르켈의 뒤를 이를 총리 재목으로 꼽혔다. 그러나 2017년 총선 이후부터는 메르켈 총리의 후계자 그룹에서 서서히 밀려나는 분위기였다. 국방부 장관 재임 중에 연방군 내 장비 부족과 부실, 연방군 내 극우주의자 활동과 신병 모집 시 무리한 홍보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입지가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해군 훈련함 정비와 관련해 국방부 차관이 고임금의 고문들을 고용한 문제가 불거졌다. 독일 의회는 국방부가 민간 컨설팅회사와 자문 계약을 체결하면서 폰 데어 라이엔 장관의 사익을 위해 예산을 사용했는지에 대한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문제가 된 외부 자문 컨설팅회사 중에는 폰 데어 라이엔의 아들이 일하고 있는 매킨지도 있다. 이 문제로 폰 데어 라이엔은 연방하원의 조사위원회에 증인으로 출석해야 한다.

장관직 수행에 대한 독일 여론의 평가는 박하다. 메르켈 정부의 장관 지지도를 묻는 주간지 슈피겔의 여론조사에서는 꼴찌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독일 공영방송 ARD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폰 데어 라이엔의 EU 집행위원장 선출에 대해 응답자의 56%가 ‘적합하지 않다’고 답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는 메르켈 총리가 선거 뒤 개각을 단행할 경우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분석이 언론에서 나오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폰 데어 라이엔은 EU 집행위원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우여곡절 끝에 집행위원장에… 앞길은 순탄치 않아

폰 데어 라이엔이 EU 집행위원장에 오르기까지는 우여곡절도 많았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 전부터 본인이 속한 유럽의회 내의 최대 정치그룹인 유럽국민당(EPP)에서 집행위원장 후보로 선출된 만프레드 베버 의원을 추천해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도 유럽국민당이 1위를 차지하자 메르켈 총리는 계속해서 베버 의원을 추천했다.

그동안 EU 집행위원장은 ‘선도후보’ 방식으로 선출돼 왔다. 유럽의회 선거에서 최다 득표를 한 정치그룹의 대표 후보를 EU 회원국 정상들이 추인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유럽국민당의 독주를 견제하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가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회 경쟁담당위원을 지지하고 나섰다.

EU 지도부와 28개 회원국 정상들은 지난 6~7월 밤샘 회의 끝에 두 사람이 아닌 중도좌파 성향의 유럽사회당(S&D) 그룹의 집행위원장 후보인 프란스 티메르만스 협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전 네덜란드 외무장관)을 추천하기로 의견을 모아갔다. 그러나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 등 4개국 정상들은 티메르만스가 헝가리와 폴란드에 대한 EU 차원의 제재를 주도했다며 ‘절대 반대’ 입장을 내놨다. 이때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폰 데어 라이엔을 새롭게 추천했고, 메르켈 총리가 수용하면서 전격 타결됐다. 대신 메르켈 총리는 폰 데어 라이엔을 지명하면 연정을 깰 수도 있다고 압박하는 사민당을 의식해 EU 회원국 정상 중 유일하게 집행위원장 지명 투표를 기권했다.

EU 집행위원회에 여성 비율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마크롱 대통령은 집행위원장을 독일에 양보하는 대신 유럽중앙은행 총재를 프랑스 출신 여성으로 앉히는 수확을 얻었다. 메르켈 총리는 60년 만에 독일 출신 EU 집행위원장을 앉히는 성과를 얻었다.

이 같은 진통은 지난 5월 말 유럽의회 선거가 끝난 후부터 예고됐다. 그동안 EU를 지배해온 중도파 유럽국민당과 유럽사회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대신 마크롱 대통령이 속해 있는 자유주의 성향 ‘리뉴 유럽’이 약진했고 발언권이 강해졌다. 그런데다 폰 데어 라이엔 임명 과정을 거치면서 유럽의회 내부의 다수 정당이 추천하는 후보를 집행위원장에 앉히는 ‘선도후보’ 제도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스카 켈러 유럽녹색당 그룹 공동대표는 “정상들의 밀실 인선은 EU의 변화를 요구하는 유럽시민들의 기대에 미달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의회 인준표결에서 폰 데어 라이엔은 중도파 정당들의 반대에 부닥쳐 간신히 과반을 넘겨 통과했다. 찬성 383표, 반대 327표, 기권 22표였다. 과반을 불과 9표 넘겼다. 2008년 리스본 협약에 따라 유럽의회에 인준 거부권이 주어진 뒤 가장 적은 표차다. 유럽의회 지도부가 지지하는 인물을 거부해서 중도파가 이탈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극우파들이 폰 데어 라이엔을 지지하고 나서 입지가 어색해진 상황이다.

EU 집행위원장은 그동안 정책에 대해 거의 독점적 권한을 행사해 왔다. 집행위원회는 EU 차원의 법안을 만들어 유럽의회와 EU 각료이사회에 제출하고, 심의·채택을 받는다. 유로존(19개) 회원국 예산안을 점검할 수 있는 권한을 포함해 점차 권한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폰 데어 라이엔은 의회가 특정 안을 표결을 통해 통과시키면 입법활동에 반영하기로 하는 등 일부 권한을 나눠주기로 했다. 하지만 유럽의회가 역대 최대로 분열됐다는 평가가 나오는데다, 선도후보제를 무시하고 나온 집행위원장과 의회의 관계가 얼마나 원만할지는 미지수다.

새로 취임한 폰 데어 라이엔은 벨기에 브뤼셀의 EU 집행위원회 본부 빌딩 13층의 집무실 옆 사무실을 개조해 숙소로 사용하기로 했다. 브뤼셀에서 일하며 숙박할 경우 전임자들처럼 호텔을 이용하지 않고 집무실 옆에서 잠을 자기로 한 것이다. EU 고위관리들이 낭비가 심하다는 비판에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라이엔은 2005년 정부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줄곧 그렇게 해 왔다고 한다. 국방부 장관 시절에도 국방부 내 소박한 공간에서 숙박을 했다. 주말에는 베를린에서 290km 떨어진 하노버의 집에서 가족들과 지냈다. 독일의 다른 장관들의 사정도 비슷했다고 한다. EU 안에서 숙박할 경우 경호 인력도 필요 없고 교통 혼잡을 겪지 않아도 된다. 전임 집행위원장인 장 클로드 융커는 집무실 근처의 아파트형 호텔을 이용했는데, 매월 3250유로(428만원)의 비용을 썼다.

 

‘하나같은’ EU로 기후위기 돌파할까?

폰 데어 라이엔은 EU가 미국과 같은 연방 국가처럼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EU군’의 창설도 장기적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내 자녀 세대는 아닐지라도 내 손자 세대에선 유럽연합국(United States of Europe)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당선 소감으로 그는 “강하고 단결된 EU를 만들겠다”며 “외부의 누구도 우리를 분열시킬 수 없게 다시 단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취임 이후 그의 행보도 그에 발맞춰 가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차기 집행위원단 명단을 공개하면서 EU 집행위원회 산하에 방위·우주 분과를 신설하고 실비 굴라르 프랑스 전 국방장관이 분과 집행위원을 맡는다고 발표했다. EU 집행위에 방위와 관련된 분과가 창설된 것은 처음이다. 폰 데어 라이엔은 “EU는 결코 군사동맹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회원국들의 군대에 대한 공통적인 (무기 등) 조달은 매우 중요하다”고 취지를 밝혔다.

이 같은 행보의 배경에는 EU를 압박하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에 맞선다는 심중이 담겨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국은 관세 인상 및 방위비 분담금 압박 등으로 연일 EU를 거세게 압박 중이다.

경제적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논리에 호락호락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폰 데어 라이엔은 ‘미국 기업 저승사자’로 불리는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현 EU 경쟁 분과 집행위원을 유임시켰다. 베스타게르 위원은 애플, 구글 등 미국의 초대형 정보통신 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해 경쟁 질서를 해쳤다며 사상 최고 수준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르그레테 위원을 두고 “택스 레이디(Tax lady)가 미국을 싫어한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무역 분과 집행위원직에도 미국에 공격적인 필 호건 현 농업 분과 집행위원을 임명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취임하면서 기후 대응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지난 11일에는 EU를 ‘탄소 중립 대륙’으로 만들기 위한 ‘유런 그린딜’을 마련해 발표했다. EU 집행위원회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1990년 대비 40% 감축하는 현행 목표를 2020년 중반까지 적어도 50% 감축하는 내용으로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도 마련 중이다. 그린 딜에는 탄소 제로 과정에서 타격을 받는 국가와 지역을 지원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유럽중앙은행 역시 화석연료 사업에 대한 대출 및 투자를 줄이고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에 대해서는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정책을 고려하고 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신임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재생에너지 분야 기업 채권을 대거 매입하는 ‘녹색 양적완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자칫 부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EU회원국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EU 집행위의 그린딜에 대해서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동유럽 국가들은 반대하고 있다. 폰 데어 라이엔은 “어떤 이들은 전환 비용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지만, 행동하지 않는 데 따른 비용은 매년 커질 것”이라며 “그린 딜은 한편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되 한편으로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혁신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참고자료

Wikipedia – Ursula von der Leyen

[경향신문 2016.10.15.] 김종대 “우리도 여성 국방장관을 상상해 보라”

[경향신문 2019.7.3.] 존재감 과시한 마크롱, 위상 낮아진 메르켈

[경향신문 2019.7.7.] 독일 자국서 반대 목소리 커지는 EU 집행위원장 후보

[연합뉴스 2019.7.17.] ‘유리천장’깨고 첫 여성 EU수장 등극 ‘7남매 엄마’ 폰데어라이엔

[연합뉴스 2019.7.14.] EU 행정수반 후보 폰데어라이엔, 대학시절 獨적군파 표적돼 피신

[동아일보 2019.7.3.] EU에 거세게 부는 女風…집행위원장에 폰데어라이엔 장관 깜짝 발탁

[파이낸셜뉴스 2019.7.17.] EU 첫 여성 수장 폰 데어 라이엔 “하나된, 강력한 유럽 목표“

[파이낸셜뉴스 2019.7.20.][박종원의 News 속 인물] EU 이끌 “슈퍼 엄마”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연합뉴스 2019.10.4.] 몸에 밴 절약…EU 집행위 차기 수장, 집무실 옆에 숙소 둔다

[한국경제 2019.11.28.] 녹색금융 강력 주창하는 두 명의 여성 유럽수장

[연합뉴스 2019.12.18.] EU 집행위원장, 트럼프·존슨과 통화…”내년 초 만남 고대”

금, 2019/12/27-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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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하여 서방과 국내 언론들 전하는 내용과 다른 이야기가 소개되어 이를 의견과 번역없이 원문 그대로 전달합니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의문 : 자연발생이냐? 조작된 사건이냐?>

상기 기사의 작성자는 상해에 거주하는 미국인으로 서방과 중국을 비교분석하는 상담전문가로 푸단대학에서 객원 교수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출처는 캐나다의 Global Research Center 이다.


Mystery on 2019_NCoV in China : different Story

Initial symptoms were mild, which permitted many people to travel before stronger symptoms were detected. The first occurrences in December thus appeared to be of minor concern. The incubation period has not been definitively stated but, once infections began, the spread was surprisingly rapid after the first case was confirmed on December 31: on January 3, 44 cases; January 21, 225 cases, January 24, 830 cases. Local medical authorities have said the true extent of the Wuhan coronavirus is unclear, and the early official figures may have been an underestimation since the mild symptoms and delayed onset meant infections may have been undetected.

All the evidence suggests the Chinese authorities acted effectively as soon as they realised the danger they might be facing. Medical authorities immediately declared the outbreak, and within a week they had identified the pathogen and also determined and shared the genome sequence with the WHO and other parties, a sufficiently speedy response that earned praise from the WHO and scientists around the world.

Remembering the SARS troubles, they did much more. In most large centers in the country, all sports venues, theaters, museums, tourist attractions, all locations that attract crowds, have been closed, as have all schools. All group tours have been cancelled. Not only the city of Wuhan but virtually the entire province of Hubei has been locked down, with all trains, aircraft, buses, subways, ferries, grounded and all major highways and toll booths closed. Thousands of flights and train trips have been cancelled until further notice. Some cities like Shanghai and Beijing are conducting temperature tests on all roadways leading into the cities. In addition, Wuhan is building (in five days) a portable hospital of 25,000 square meters to deal with the infected patients. As well, Wuhan has asked citizens to neither leave nor enter the city without a compelling reason, and all are wearing face masks.

The scale of the challenge of implementing such a blockade is immense, comparable to closing down all transport links for a city 5 times the size of Toronto or Chicago, two days before Christmas. These decisions are unprecedented, but testify to the determination of the authorities to limit the spread and damage of this new pathogen. They not only address the gravity of the situation but also the seriousness of consideration for the public health, unfortunate and difficult decisions since the holiday is being destroyed for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Most public entertainment has been cancelled, as have tours, and many weddings as well. The damage to the economy during this most festive of all periods, will also be enormous. Hong Kong will suffer severely in addition to all its other troubles, since visits from Mainland Chinese typically support much of its retail economy during this period.

The Chinese New Year is the most important festival for Chinese. Saturday, January 25, is the first day of the Lunar New Year, a festive period that typically sees the largest mass-movement of people on the planet as Chinese flock back to their hometowns to be with relatives. No health authority has ever tackled the challenge currently faced by China, as the country grapples with a new coronavirus just as hundreds of millions prepare to travel.

And of course the Western media had a field day of schadenfreude. CNN published a report – a bit too gleefully, I thought – on the potential damage to China’s economy: (1)

“China’s economy is slumping and the country is still suffering the effects of the trade war with America. An outbreak of a new and deadly virus is the last thing it needs. The Wuhan coronavirus has already roiled Chinese markets and thrown plans for the upcoming Lunar New Year holiday into chaos for millions of people. The world’s second biggest economy grew at its slowest pace in nearly three decades last year as it contended with rising debt, cooling domestic demand and US tariffs, many of which remain in place despite a recent truce. Beijing is worried about unemployment, too, and has announced a wave of stimulus measures in recent weeks aimed at preventing mass layoffs .

The Wuhan coronavirus outbreak could spark widespread fear and spur people to hunker down and avoid going outside. That kind of behavior would deal a huge blow to the service sector, which now accounts for about 52% of the Chinese economy.” [And so on . . .]

The Western media have already staked out their claim to the fundamentals, all media sources claiming the virus was transferred to humans from animals or seafood. The media have added fuel to the fire by claiming the virus emerged from “illegally traded wildlife” in a market “where offerings reportedly include wild animals that can carry viruses dangerous to humans”, and that this virus “jumped into the human population from an infected animal”. Chinese officials stated that the virus appears to have originated at a seafood market in Wuhan, though the actual origin has not been determined nor stated by the authorities, and is still an open question perhaps primarily since viruses seldom jump species barriers without human assistance.

While there is no evidence of biowarfare, a virus outbreak in the city of Wuhan immediately prior to the Chinese New Year migration could potentially have dramatic social and economic repercussions. Wuhan, with a population of about 12 million, is a major transport hub in Central China, particularly for the high-speed train network, and with more than 60 air routes with direct flights to most of the world’s major cities, as well as more than 100 internal flights to major Chinese cities. When we add this to the Spring Festival travel rush during which many hundreds of millions of people travel across the country to be with their families, the potential consequences for the entire country are far-reaching.

 

Comparison with SARS

This is a novel Coronavirus (2019-nCoV), an entirely new strain related to the MERS (MERS-CoV) and the SARS (SARS-CoV) viruses, though early evidence suggests it is not as dangerous.

SARS was proven to be caused by a strain of the coronavirus, a large family of mostly harmless viruses also responsible for the common cold, but SARS exhibited characteristics never before observed in any animal or human virus, did not by any means fully match the animal viruses mentioned above, and contained genetic material that still remains unidentified – similar to this new corona virus in 2019.

Virologist Dr. Alan Cantwell wrote at the time that “the mysterious SARS virus is a new virus never before seen by virologists. This is an entirely new illness with devastating effects on the immune system, and there is no known treatment.” Dr. Cantwell also noted that the genetic engineering of coronaviruses has been occurring in both medical and military labs for decades. He wrote that when he searched in PubMed for the phrase “coronavirus genetic engineering”, he was referred to 107 scientific experiments dating back to 1987. To quote Dr. Cantwell:

“I quickly confirmed scientists have been genetically engineering animal and human coronaviruses to make disease-producing mutant and recombinant viruses for over a decade. No wonder WHO scientists identified the SARS/coronavirus so quickly. Never emphasised by medical news writers is the fact that for over forty years scientists have been “jumping species” with all sorts of animal and human viruses and creating chimera viruses (viruses composed from viruses of two different species). This unsupervised research produces dangerous man-made viruses, many of which have potential as bioweapons. Certainly SARS has the hallmarks of a bioweapon. After all, aren’t new biological warfare agents designed to produce a new disease with a new infectious agent? As in prior military experiments, all it might take … to spread SARS is an aerosol can . . .” (2) (3) (4)

Almost immediately upon receiving the genome sequence, several Russian scientists suggested a link between SARS and biowarfare. Sergei Kolesnikov, a member of the Russian Academy of Medical Sciences, said the propagation of the SARS virus might well have been caused by leaking a combat virus grown in bacteriological weapons labs. According to a number of news reports, Kolesnikov claimed that the virus of atypical pneumonia (SARS) was a synthesis of two viruses (of measles and infectious parotiditis or mumps), the natural compound of which was impossible, that this mix could never appear in nature, stating, “This can be done only in a laboratory.” And Nikolai Filatov, the head of Moscow’s epidemiological services, was quoted in the Gazeta daily as stating he believed SARS was man-made because “there is no vaccine for this virus, its make-up is unclear, it has not been very widespread and the population is not immune to it.”

It wasn’t widely reported, but it seems the final conclusion of the Chinese biochemists was the same, that the SARS virus was man-made. This conclusion wasn’t a secret, but neither was it promoted to the international media since they would simply have used the claim to heap scorn on China, dismissing this as a paranoid conspiracy theory. The Western media totally ignored this aspect, except for ABC news who reported that the SARS “Mystery Virus” was possibly “a Chinese bio-weapon that accidentally escaped the laboratory”. Nice of ABC to notice, but their story, if true, would be the first example of a nation creating and releasing a race-specific biological weapon designed to attack exclusively itself.

Notable is that while SARS spread to about 40 countries, the infections in most countries were few and deaths almost zero, and it was exclusively (or almost exclusively) Chinese who were infected, those in Hong Kong most seriously, with Mainland China suffering little by comparison.

As with SARS, this new virus appears to be tightly-focused to Chinese. At this stage it is too early to draw specific conclusions.

We might in other circumstances pass this off as an unfortunate coincidence but for some major circumstantial events that serve to alter our focus. One of these is the history of American universities and NGOs having come into China in recent years to conduct biological experiments that were so illegal as to leave the Chinese authorities enraged. This was particularly true when it became known that Harvard University had surreptitiously proceeded with experiments in China that had been forbidden by the authorities years earlier, where they collected many hundreds of thousands of Chinese DNA samples and then left the country.

The Chinese were furious to learn that Americans were collecting Chinese DNA. The government intervened and prohibited the further export of any of the data. The conclusion at the time was that the ‘research’ had been commissioned by the US military with the DNA samples destined for race-specific bio-weapons research.

In a thesis on Biological Weapons, Leonard Horowitz and Zygmunt Dembek stated that one clear sign of a genetically-engineered bio-warfare agent was a disease caused by an uncommon (unusual, rare, or unique) agent, with lack of an epidemiological explanation. I.e. no clear idea of source. They also mentioned an “unusual manifestation and/or geographic distribution”, of which race-specificity would be one.

Recent disease outbreaks that would seem to possibly qualify as potential bio-warfare agents are AIDS, SARS, MERS, Bird Flu, Swine Flu, Hantavirus, Lyme Disease, West Nile Virus, Ebola, Polio (Syria), Foot and Mouth Disease, the Gulf War Syndrome and ZIKA. And in fact thousands of prominent scientists, physicians, virologists and epidemiologists on many continents have concurred that all these viruses were lab-created and their release deliberate. The recent swine flu epidemic in China has the hallmarks as well, with circumstantial evidence of the outbreak raising only questions.

There was another curiosity in this case, in that additional to the usual criticisms of China being inactive or secretive, several US media replicated accusations from “a senior US State Department official” claiming Washington was “still concerned” about transparency in the Chinese government on the Wuhan coronavirus. Other articles claimed the US CDC was “concerned that Chinese health officials have still not released basic epidemiological data about the Wuhan coronavirus outbreak, making it more difficult to contain the outbreak.” There is no substantial reason that officials at any level of the US State Department should concern themselves with a virus outbreak in a foreign country.

Their criticisms were surprisingly detailed, demanding specifics on the number of infections directly from contact with the Wuhan market, the number of person-to-person infections, the precise incubation period from exposure to the onset of symptoms, the point at which persons become contagious. The questions were presented in benevolent terms of helping the Chinese medical authorities deal with the virus, though it was already self-evident China had no need to be lectured on such basics.

As of the date of writing, details are still too scarce to form definitive conclusions but, in every such case, once the smoke clears there are many unanswered questions that challenge the official Western narrative, but it’s old news and the media have already staked out their ground so the matter dies in the Western public mind, but not in China.

 

Larry Romanoff

He is a retired management consultant and businessman. He has held senior executive positions in international consulting firms, and owned an international import-export business. He has been a visiting professor at Shanghai’s Fudan University, presenting case studies in international affairs to senior EMBA classes. Mr. Romanoff lives in Shanghai and is currently writing a series of ten books generally related to China and the West

일, 2020/02/02-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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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돌팔매

덕수궁 돌담길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어 가는 1977년 10월 24일, 덕수궁 옆 서울지방법원 법정에서는 서울대·고대 유인물사건 재판의 결심이 열렸다. 서울대의 김창우(74학번)와 서익진(73학번), 고려대의 설훈(74학번), 이민구(75학번), 황인국(75학번) 등 수의를 입은 피고들이 법정에 들어오고 재판장이 들어와 앉자 곧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재판장 허정훈 판사는 장영자 사건을 담당했던 사람으로 피고들에게 강압적으로 재판을 진행한다는 악평을 듣고 있는 인물이었다. 먼저 검찰의 구형이 있었다. 고려대 중심인물 설훈이 징역 5년, 서울대의 김창우가 징역 4년 등 유인물 사건치고는 꽤 높은 형량이었다. 이어서 이돈명, 황인철 변호사 등 변호인단의 긴 변론이 있고, 마지막으로 피고들의 최후진술 시간이 주어졌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감시 속에서 숨죽이면서 비밀리 유인물을 만들어 뿌리며 저항의 칼을 갈아온 이들에게는 공개적으로 독재정권의 야만성을 성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먼저 제일 연장인 고려대 설훈이 나서서 ‘독재자 박정희는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을 펴다가 예상대로 재판장의 제지를 받았다. 이어서 서울대 김창우가 나섰다. 김창우는 또렷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박정희 독재의 반역사성과 민주화투쟁의 정당성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재판장이 돌연 나서서 말을 끊고 ‘네가 정당하다는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고 힐난하듯이 물었다. 김창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내가 30년 뒤에 박정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잘못된 정권인지 당신 앞에서 똑똑히 증명해 주겠다. 그리고 당신이 박정희에게 부역한 사실까지 자손 대대로 이야기 해주겠다.’ 오만한 재판장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일순 재판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김창우가 잠깐 숨을 고르느라 말을 멈춘 사이에 “이것으로 이만 재판을 마치겠습니다.”라고 내뱉듯이 말하고 일어나서 퇴장해 버렸다. 변호인과 피고 뿐만 아니라 재판정을 가득 메운 방청객들이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골리앗을 겨냥한 다윗의 돌팔매처럼 시원하게 한방 먹인 통쾌한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후과(後果)는 4일 뒤의 선고공판에서 바로 나타났다. 김창우는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4년 자격정지 4년을 선고 받았다. 이른바 ‘들었다 놓은’ 것이다. 통상 검찰이 4년을 구형하면 징역 2년 정도 판결을 내는 것이 보통인데, 검찰의 구형 형량 그대로 선고한 것이다. 김창우의 최후진술이 영향이 있었을 걸로 짐작이 가는 일이었다.

 

성북서의 ‘횡재’ –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

이 서울대·고려대 유인물사건은 당시 75년 긴급조치 9호 발령 이후 유신독재의 엄혹한 감시와 탄압 속에 학생운동이 각 대학별로 분산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서울대와 고려대가 함께 엮인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그 고리에 서익진이 있었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서클 1년 선배이면서 고려대 설훈에게는 마산고 1년 후배였다. 이 서익진이 마산고학우회장 시절 사용하던 등사기로 김창우와 설훈 두 사람의 유인물을 만들어준 것이었다.

먼저 꼬투리가 잡힌 것은 고려대 쪽이었다. 77년 4월 설훈과 이민구, 황인국이 고려대 학내에 뿌린 유인물이 악명 높은 성북서 정보과로 들어갔고, 성북서가 가능성 있는 인물을 한명씩 잡아다 악랄하게 조사하여 추적한 결과 설훈을 짚어냈고, 설훈을 잡아다가 ‘피똥을 쌀’ 정도로 고문하며 추궁해서 결국 서익진을 찾아 낸 것이다. 설훈도 서익진을 불지 않으려 이를 악물고 버텼지만 결정적 증거물인 등사기의 소재를 둘러댈 재간이 없었다. 서익진을 연행한 성북서 형사들은 덤으로 큰 횡재를 했다. 서익진의 자취방 빨래통에서 김창우가 서울대에서 뿌린 유인물 원본을 발견한 것이다. 서익진은 김창우의 부탁으로 자신의 등사기로 유인물을 인쇄해주고 그 원본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세탁물 속에서 수사관들에게 발각된 것이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실수였고, 그 바람에 후배 김창우가 잡혀가 함께 법정에 서게 되었다.

김창우는 원래 그 전 해 1976년 ‘3우1승팀’(김창우, 김천우, 박찬우, 양춘승)의 일원으로 학내시위를 주동하려다가 리더 양춘승이 주동을 3인으로 줄이고 자신을 후속팀으로 남겨 놓아 학교에 남은 상태였다. 양춘승과 김천우, 박찬우 3명은 77년 3월 28일에 예정대로 시위주동을 하고 감옥으로 갔다. 김창우는 후속팀을 조직하기 위해 함께 주동할 사람들을 물색하는 한편 그 동안에 학내 유인물 작업을 하기로 했다. 그는 서클 ‘한사(한국사회연구회)’ 1년 선배이면서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군 입대를 기다리던 서익진이 등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그에게 부탁하여 유인물을 만들어 교내 강의실, 화장실 등에 뿌렸다.

77년 5월 말 모든 일이 완벽하게 잘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던 김창우는 ‘뜻밖에도’ 강의실로 들이닥친 성북서 정보과 형사들에게 연행되었다. 성북서에서 조사를 마치고 6월 11일 서울구치소로 송치되어 구속 수감되었다. 거기에서 먼저 와있던 양춘승, 박찬우, 김천우를 다시 만났다.

 

어린 시절 – 공부도 운동도 잘한 모범생

김창우는 1956년 1월 23일 제주시 삼도동에서 부친 김인희(金仁熙) 님과 모친 김규숙(金圭淑) 님의 4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부산 건설국 산하 제주도 축항(築港)사무소에서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집안 대대로 제주도에서 살았던 제주도 사람은 아니었고, 증조부 때 뭔가 사연이 있어 육지에서 건너와 아들 하나를 낳았다고 한다. 독자로 태어난 할아버지는 일제 때 의사 일을 해서 가난한 제주도 안에서는 제법 풍족한 살림을 했고, 슬하에 6남 2녀를 두었다. 아버지 김인희 님은 그 중 넷째 아들이었다. 외가 쪽은 4.3사건 당시 학살 피해가 많았던 조천면에서 살았는데, 동아일보 주필을 지냈던 김명식 씨 등 저명한 언론인, 학자들을 많이 배출했다고 한다. 어머니 김규숙 님은 제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 밑에서 목포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목포에서 초등학교 선생으로 근무하다가 중매로 김인희 님과 결혼했다고 한다.

1962년 김창우는 제주북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김창우가 태어난 삼도동은 바닷가에서 가까워 어려서부터 늘 바닷가에 나가 놀았고,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도 학교 수업이 끝나면 바다에서 종일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김창우는 공부를 곧잘해서 항상 백점을 받아와 부모님을 기쁘게 했다. 그런 중에 축구도 잘 해 학교 대표선수로 뛸 정도였다.

1966년 김창우가 5학년 때 아버지는 공부 잘하고 똑똑한 큰아들을 큰물에서 키울 욕심으로 부산으로 전근을 신청했다. 신청이 받아들여져 일가족 모두 부산으로 이사했고 김창우는 부산 초량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전학 온 김창우는 첫 시험에서 백점을 받아 선생님과 반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제주 촌놈이라고 얕잡아 봤던 아이들의 태도가 대번에 달라졌다.

1968년에는 명문 부산중학교에 시험을 쳐 입학했고, 1,2학년 내내 거의 전교 수석을 독차지했다. 2학년 때부터는 좋아하는 축구도 다시 시작했고, 그러면서도 졸업 때까지 선두권을 놓치지 않았다. 1971년 부산고 입학시험에서도 수석은 놓쳤지만 차석으로 합격했다.

 

‘한사’에서 사회현실에 눈뜨고 감옥가기로 결심하다

1974년 김창우는 아들이 법대에 가서 판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서울대 사회계열에 지원했다. 종암동에 있는 서울상대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1박2일 시험기간 동안 부산고 선배들이 고향에서 올라온 후배 수험생들을 자기 하숙집에 데려가 재워주고 돌봐주었다. 김창우를 돌봐준 선배들이 바로 이념서클 한국사회연구회(한사) 선배인 정종호(72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었는데, 결국 이 선배들의 권유로 김창우는 대학 입학하자마자 한사에 가입하게 된다.

입학하고 얼마 안되어 긴급조치 4호가 발령되고 민청학련사건이 터졌다. 그 바람에 김병곤 등 한사 선배들이 다수 잡혀가고 서클활동이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종구(72학번, 성공회대 교수), 박석운(73학번, 법대) 등의 노력으로 차츰 안정을 찾아간다. 김창우는 선배들의 지도 하에 정의헌, 장기영, 김현준, 박태주 등 74학번 동기들과 함께 경제사, 경제학, 사회사상 등의 학습을 하면서 차츰 우리 민족과 사회의 현실에 대해 눈뜨게 되고, 유신독재정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키워나가게 되었다. 선배들 중에서도 일찍이 노동운동을 꿈꾸고 보일러공으로 일하고 있던 김승호(68학번), 민청학련 사건의 맹장 김병곤(71학번), 박석운(73학번) 등이 특히 김창우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면서 2학년 2학기 초 학과 선택을 할 때 좀더 사회운동에 가까이 가기 위해서 경제학과를 선택했다. 아버지 뜻을 어기고 처음으로 자신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1976년 3학년이 되면서부터 한사의 회장을 맡게 된 김창우는 어떻게 살 것인가 자신의 진로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2학기가 되자 자신 역시 선배들의 뒤를 따라 학생운동의 일선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반독재 데모를 주동하고 감방으로 가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이 지도하는 후배들의 영향이 컸다. 후배들에게 평소 했던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그리고 감옥살이를 마친 후에는 선배 김승호처럼 노동현장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3학년 당시 서울대 학생운동권에는 준비론적 분위기가 강했다. 현장 준비를 위해 정치투쟁은 유보되거나 자제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김창우의 문제의식은 반독재투쟁에 있어서 학생운동이 75년 이후의 침체된 분위기를 깨야하고, 다음 투쟁으로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학생운동은 학생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반독재투쟁을 해야 하고, 그를 통해 학생운동의 소시민적 한계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당시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차피 위장취업할 수밖에 없는데 감옥에 가는 것이 현장 들어가는 것에 장애가 될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선은 자기 현실조건에 충실하게 역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76년 2학기 초 어느 날 그는 같은 과 동기이면서 연합서클인 향토개척단 단장을 맡고 있던 친구 양춘승에게 자신의 뜻을 내비춘다. 그 장면을 신동호는 『70년대 캠퍼스1』에서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교문 앞에서 그(김창우)의 ‘콜’을 받은 양춘승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학교가 너무 조용하지 않아?”

지나가는 말투였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무얼 뜻하는지를. 그 역시 지나가는 말처럼 되받았다.

“어디 할 놈이 있을까.”

김창우의 말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내가 좀 알아볼게.”

선문답 같지만 무서운 뜻이 담긴 대화였다.

이렇게 시작한 양춘승과의 데모 모의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77년 5월 김창우를 감옥으로 인도했다.(자세한 과정은 신동호의 『70년대 캠퍼스1』 284쪽~293쪽 「관악산 유격대 ‘삼우일승’」을 보라)

서울구치소에서 양춘승을 다시 만났지만 오래 같이 있지는 못했다. 서울구치소에 수용된 시국사범이 늘어나면서 소내 정치투쟁이 가열화되었고, 이것이 사건화 되어 주동자들이 추가 기소가 되면서 교도소 측이 수용자들을 전국적으로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김창우는 한신대 김하범과 함께 장기수들을 수용하는 광주교도소 특사로 보내졌다. 광주에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장기 징역을 살고 있는 이현배, 유인태, 김효순, 이강철 등이 먼저 와 자리잡고 있었고, 김창우가 간 뒤에 송기숙 선생 등 광주 팀들과 이영희 선생, 김병곤 등이 들어왔다.

광주교도소에서 김창우는 이강철, 김병곤 등 선배들과 함께 소내투쟁에 앞장섰고, 그 결과 운동시간을 재소자들이 자율 조정할 정도로 소내 처우가 현저히 개선되었다. 그러자 자신감을 얻은 이들은 함께 수용된 장기수들과 함께 마찬가지로 대우해 달라는 차별철폐투쟁에 돌입했고, 결국 그 요구를 관철시켰다. 그러나 교도소 측의 보복을 불러와 주동자들은 다른 교도소로 이감보내졌다. 이 때 이 일로 김병곤은 공주로 이감갔다.

서울구치소에서 소내투쟁으로 추가 기소된 김창우의 추가건 재판이 광주에서 열렸다. 김창우는 이 재판을 위해 공들여 항소이유서를 썼다. 한국사회의 성격과 민주화투쟁의 목적에 대한 과학적 규명을 위해 쓴 이 항소이유서는 소내 선배들에게 회람되어 호평을 받았다. 추가건 재판은 구형 2년에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징역생활이 길어지면서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노동운동과 6월항쟁

김창우는 박정희가 김재규에 의해 사살되고 긴급조치9호가 해제되기 직전인 1979년 12월 5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광주교도소에서 얻은 신경쇠약증세는 석방 후에도 계속되었다. 그 바람에 석방 후 노동현장으로 들어가려던 계획은 뒤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제주도 큰 아버지 농장에서 6개월 요양하다 직장생활 하면서 건강을 추스르기로 하고 1981년 6월 비교적 근무조건이 좋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입사했다.

83년 초 건강이 조금 회복되자 KOTRA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현장 취업 준비를 했다. 전기학원을 다니면서 전기기사와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땄다. 자격증 취득 후 전기공사 현장을 돌아다니며 전기기술을 습득한 후 반월의 한 공장 변전실 전기관리공으로 들어갔다. 학력은 공고 중퇴로 위조했다. 신분이 탄로나 해고되지 않도록 조심해서 활동했지만 뜻하지 않은 곳에 일이 터졌다. 86년 서노련의 영향 하에 조직된 지하 노동운동조직 안산노동자해방동맹 사건이 터져 수사기관의 일제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사태를 관찰하다가 자신의 집에까지 경찰의 손이 뻗치자 87년 초 김창우는 회사를 그만두고 정의헌과 함께 부산으로 내려왔다.

부산에서 다시 공장에 들어갈 준비를 하던 중에 김창우는 역사적인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맞게 된다. 우선 취업은 유보하고 가두투쟁에 집중했다. 김창우는 밖에서 유인물을 만들고 시민들에게 뿌렸다. 노동자대투쟁 때는 부산의 국제상사투쟁에 집중하고 현장에 있는 일꾼들과 연계하면서 지원투쟁을 조직했다. 6.29선언 이후 열린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활동은 하지 않고 부산노동자협의회라는 노동운동단체를 조직하여 노동자의 권익이나 이해를 선전 선동하는데 집중했다. 88년에는 단순한 노동상담 지원 단체에 지나지 않던 부산노동자협의회를 해체하고 87 노동자대투쟁 과정에서 올라온 선진 노동자들을 조직화하기 위해 부산노동자연합을 조직했다. 현장활동가와 선진노동자들의 조직이면서도 현장에 조직적 기반을 가지는 조직체로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에서였다.

 

노운협 운동과 지역노동운동

지역 노동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김창우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서울의 전국노동운동협의회(노운협)를 구하라. 91년 민중당이 뜨면서 피디파 중심으로 노운협 활동가들이 대거 민중당으로 이동하자 노운협이 깨질 위기에 처했고, 이 노운협 유지를 위해 지방 활동가를 차출하기로 한 것이다. 김창우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조직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어 서울로 올라와 노운협 실무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2년간 노운협에서 일하면서 박창수 사건, 전국연합 건설 등 많은 일들을 치루어냈다. 밤낮 없이 몸을 돌보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김창우에게 간경화가 찾아왔다.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다시 부산에 내려왔다. 93년의 일이다.

부산에 내려온 김창우는 집에서 요양하면서 다음 활동을 모색했다. 몸이 조금씩 회복되면서 전기기사 자격증을 활용해서 거제도와 부산 등에서 전기공사업체에 취직했다. 생활의 방편이면서 노동현장과 연결을 놓지 않으려는 생각에서였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비정규직과 일용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김창우는 이들의 역량을 묶어낼 수 있는 방법이 무얼까 생각하다가 이들을 지역 중심의 노동자조직으로 담아내기로 결심하여 가까운 노동운동가들과 협의하여 2000년 부산지역 일반노조를 창설한다. 이 지역일반노조는 지역 연대 및 투쟁 중심의 노조조직으로 대기업 기업별노조 중심의 산별연맹 또는 산별노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제기된 것이었다. 이 부산 일반노조의 활동은 초기에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민주노총 건설 이후 지역의 연대와 투쟁이 급격하게 소멸되면서 지역노동운동이 거의 무력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지역노동운동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새로운 조직형태로 주목받으면서 전국적으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부산의 일반노조가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 가입 조합원 수가 1000명 가까이로 늘어나고 활동이 활발해지자 노동운동 정파들이 앞다투어 조직원으로 가입하여 정파들간에 조직 장악을 위한 경쟁이 벌어졌다. 경쟁이 가열되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비방, 중상, 모략이 행해지면서 조직이 혼란에 빠졌다. 이를 보다 못한 김창우가 ‘교각살우(矯角殺牛) 우려가 있으니 서로 자제하자’고 충고하고 나섰다. 그러자 정파들은 ‘편드는 거냐’며 김창우까지 공격하고 나섰다. 정파들의 소모전에 넌덜머리가 난 김창우는 2003년 재충전을 이유로 노조 활동을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인생 후반전에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2004년 노동운동 현장에서 자신의 역할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절감한 김창우는 창원 노동대학원에 입학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여년 노동운동의 경험과정에서 가진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석사논문 ‘전노협 청산에 관한 연구’을 작성하여 제출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2007년 출판사 후마니타스에서 ‘전노협 청산과 한국노동운동’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는 이 책으로 2008년 2월 16일 ‘제3회 김진균상’을 받았다.

 

이 논문은 한국노동운동이 광범한 기층 노동자들의 꿈과 희망과 투쟁에 기초하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려던 운동에서, 상층을 중심으로 한 법과 제도와 정책과 교섭에 의존하는 권력지향의 합법 개량주의 운동으로 변화해버린 것에 대해, 1995년 전노협이 청산되고 민주노총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김창우는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지역적, 전국적, 산업적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는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산별노조를 건설하기 보다는, 대기업노조 중심의 합법적인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형태를 채택했던 것이 문제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은 하층 조합원들의 연대투쟁과 조직역량이 중심이 아니라 상층 간부들에 의한 정치적 교섭과 정책을 중심으로 한 권력지향의 관료적인 조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현재 상태를 타개하는 길은 현재와 같은 무늬만 산별이지 실제적으로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의 과두적 지배체제에 불과한 민주노총체제를 해체하고, 중소 영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주체 세력에 의해 공동투쟁과 연대투쟁을 통해 계급적 단결과 연대조직으로서의 진정한 산별노조 또는 전국단일노조체제를 새롭게 건설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즉 잘못된 민주노총 건설의 역사를 바로잡고 첫단추를 새로 다시 꿰어야 비로소 한국노동운동이 본궤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김창우는 석사논문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자신의 이론을 실증적으로 입증할 필요를 느꼈다. 즉 민주노총이 70-80년대 민주노조운동정신과 전노협의 급진적인 사회변혁정신을 ‘계승’하지 못하고 ‘청산’한 바탕 위에서 세워짐으로써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것을 역사적 과정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2008년 그는 성남에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그리고 10년의 연구 끝에 2018년 ‘민주노총의 운동노선과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 1996~1998’이라는 박사논문을 완성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에서 김창우는 민주노총 1기 집행부가 결국 상층중심, 교섭중심으로 가게 된 근본 이유는 기업별노조에 기초한 산별연맹들의 과두적 지배체제로서의 민주노총이라는 조직노선을 채택한 근본적 한계 때문이었고, 그 결과가 노동법개정 총파업투쟁을 비롯한 민주노총의 거의 모든 투쟁과 활동 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고 있다.

김창우는 지금 의왕시 인덕원역 근처 작은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연구와 집필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하여 어쩌다보니 혼기를 놓쳐 독신으로 살고 있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추구하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노동운동이 당면하고 있는 어려움도 결국 가까운 장래에 극복될 것이라고 믿는다. 전노협으로 출발했던 변혁지향적인 노동운동은 사회개혁(개량)주의를 표방하는 민주노총과의 노선 투쟁에서 패배하여 현재까지는 비록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기 위한 길은 계속 추구할 것이고, 새롭게 형성되는 새로운 주체세력에 의해 조만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보고 있다. 자신은 첫 단추를 잘못 꿰어 잘못 흘러가고 있는 한국노동운동의 역사를 바로잡는 데 작은 기여나마 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어쩌면 그의 인생의 후반전은 이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공동선, 2019년 11-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필자는 공동게재에 동의함).

목, 2020/02/2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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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익 자유주의 운동에 연료를 공급해 온 억만장자 코크씨는 뉴욕의 병원과 박물관의 후한 기부자였다. 그는 정치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너무 많은 돈을 썼으며 그 영향력을 계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코크형제

2019년 8월 코크 형제 중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79세로 숨졌을 때 뉴욕타임스는 이런 부고 기사를 냈다. 미국 공화당의 돈줄이자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검은 손으로 불리는 코크 형제에 대한 세평을 생각하면 다소 밋밋한 평가다.

돈을 많이 쓰긴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맨해튼의 미국 자연사박물관에 2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박물관에는 그의 이름을 딴 공룡 전시홀이 있다. 이 전시홀에 기후변화를 부정하는 듯한 설명 패널이 붙어 있어서 음모론이 돌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업데이트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고 한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는 6500만 달러를 기부했다. 링컨센터에는 1억 달러를 기부했다. ‘변혁적(transformative)’이란 평가를 받았던 이 기부금으로 링컨센터의 뉴욕주립극장은 무대 전면 보수가 가능했다. 극장 자체가 ‘데이비드 코크 극장’으로 불릴 정도다.

뿐만 아니라 뉴욕 장로교 병원(NewYork-Presbyterian Hospital)에 1억 달러를,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Memorial Sloan Kettering Cancer Center)에 1억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흑인 고등교육 지원단체인 ‘흑인연합대학기금’에 2500만 달러,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 2억 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각종 기관에 10억 달러 이상을 지원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미국을 움직이는 검은 손

미국의 부자라고 하면 빌 게이츠, 워런 버핏을 떠올린다. 코크 형제는 한국에는 별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포브스 선정 세계 부자 순위에서 늘 10위권 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곤 했다. 2016년의 경우 두 사람의 재산을 합치면 800억 달러에 달해 1위인 빌 게이츠의 자산 750억 달러를 넘을 정도였다. 지난해 두 사람은 나란히 11위에 올랐으며 재산을 합치면 1010억 달러에 육박했다. 1위인 제프 베이조스(1310억 달러)에는 못 미치지만 2위인 빌 게이츠(965억 달러)는 넘어섰다.

미국 정치가 ‘슈퍼팩’으로 대변되는 거대 기업과 큰손들의 막대한 정치자금 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금권 과두 정치라는 이야기가 나올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바로 코크 형제다. ‘뉴요커’의 전속 작가인 제인 메이어는 <다크 머니>라는 책에서 대표적인 ‘검은 돈’의 출처로 코크 형제를 꼽고 있다.

코크 형제가 소유한 코크 인더스트리는 하루 6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4000마일의 송유관을 소유하거나 운영하고 있는 거대 석유·화학 기업이다. 당연하게도 코크 형제는 기후변화를 부정한다. 되레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사람들의 삶을 오히려 악화시킬 것이라고 말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당시 인수위원회에서 환경보호청 관련 업무를 맡았던 마이런 에벨은 기후변화 부정론자 중 하나다. 그는 코크 가문의 자금을 후원받아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자 세계적 경제학자인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코크 형제의 승리다. 트럼프는 단지 도구에 불과하다”라고 평가했다.

코크 형제는 2012년 대선에서는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지만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다. 당시 트럼프 후보의 무슬림 입국 금지 발언에 대해서 “나치를 연상시킨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트럼프와 힐러리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암과 심근경색 중 반드시 한쪽을 골라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오히려 힐러리가 공화당의 경선 주자들보다 더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까지 말했다.

트럼프 역시 워싱턴 주류 정치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인기를 얻었다. ‘워싱턴 오물 빼기’(drain the swamp)라는 공약이 말해주듯 돈과 정치권력을 주고받으며 나눠먹는 거대 자본과 정치 엘리트를 척결하겠다고 했다. 마치 코크 형제를 겨냥한듯하다.

서로에게 으르렁대는 사이 이미 트럼프 주변은 이미 코크 형제의 영향력 하에 있는 인물들로 들어찼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부터가 코크 형제에게서 대규모의 정치자금을 받아온 인물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로 밀었고 30만 달러의 선거자금을 기부하기도 했다. 뒤에 국무장관이 되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장 역시 별명이 ‘코크 가문의 하원 의원’일 정도로 아낌없는 지원을 받아온 인물이다. 폼은 잡았지만 트럼프 자신 역시 이른바 ‘코크토퍼스’(코크 형제와 문어를 뜻하는 옥토퍼스의 합성어)에 단단히 휘감겨 있었던 셈이다. 트럼프 취임 후 ‘오물’의 상징이었던 로비스트들은 더 늘어나고 로비 자금도 증가했다.

코크 형제는 트럼프를 싫어한다고 했지만, 트럼프의 등장은 그들이 만들어온 미국의 결과이자 역사의 일부다. <다크 머니>의 언급대로 “코크 형제는 트럼프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만 트럼프야말로 본질적으로 그들의 후계자인 동시에 그들이 1970년대 이후 계속해서 매진해 온 광범위한 정치 활동의 결과물”이며 “트럼프는 미국의 과두 체제를 이끄는 대부호들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실패한 괴물”인 것이다.

 

코크 형제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괴물

코크 형제는 캔자스주 위치토에서 태어났다. 형인 찰스 코크가 1935년생, 동생인 데이비드 코크가 1940년생이다. 할아버지인 해리 코크는 네덜란드 출신 이민자로 철도와 언론 사업을 벌였던 기업가다. 아버지인 프레드 코크는 MIT 출신으로 원유를 휘발유로 정제하는 보다 효율적인 공정을 개발하는 등 사업에 수완을 보였다. 프레드는 잠시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정유소 건설에 참여하기도 하는데 그때의 체험으로 공산주의를 혐오하게 된다. 극우단체인 존버치협회를 결성하고, 2차 대전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와 독일의 나치를 칭찬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의 양육에도 나치 추종자인 가정교사를 고용할 정도였다.

코크 형제는 두 사람 모두 MIT를 나왔고,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찰스 코크는 1967년 부친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장이 됐고 회사 이름을 ‘코크 인더스트리’로 바꿨다. 데이비드 코크는 1970년에 회사에 합류했다. 코크 형제는 본래 네 명인데, 재산 다툼 끝에 1983년에 차남인 찰스와 3남인 데이비드가 다른 형제들의 지분을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코크 인더스트리는 석유·화학을 기반으로 사업 다각화에 성공했다. 회사 매출액은 2006년에 이르러 2000배 이상 커졌다. 지금은 카길 다음으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비상장기업이다. 60여개 국가에서 12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석유, 화학, 에너지, 섬유, 광물, 비료, 펄프 및 제지, 화학 물질 등 광범위한 사업 분야를 갖고 있다. 두 형제는 나란히 지분의 42%씩을 소유하고 있다. 2017년에는 유명 시사주간지 ‘타임’지 인수에 돈을 대기도 했다.

찰스 코크는 자신이 부유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특권적인 삶을 누리지는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일하기를 원했다”고 회고했다. 찰스는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유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자유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등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비판하는 동시에 오바마 정부의 복지 정책에 대해서도 혹평을 아끼지 않았다.

데이비드 코크 역시 비슷한 입장이다. 1980년 대선에서 자유당 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공약이 사회보장과 복지 제도, 모든 가격지원과 보조금, 최저임금, 법인세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증권거래위원회(SEC), 연방수사국(FBI) 등의 연방 기관도 모두 없애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1% 남짓의 득표율로 패배했지만 그의 생각은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등 해외 군사 개입에 반대한다. 동성결혼과 줄기세포 연구를 지지하기도 했다.

코크 형제는 지식인, 정책연구소, 시민모임에 대한 지원이라는 3단계 계획을 세우고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번영을 위한 미국인들(AFP)’ 같은 보수 단체나 헤리티지재단 등 보수적 성향의 싱크탱크도 코크 형제의 지원 아래 있다. 자발적으로 생겨난 것으로 알려진 보수주의 정치 운동 ‘티파티’ 역시 코크 형제들이 자금을 지원해 조직한 ‘만들어진 운동’이라고 한다.

그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1997년 정부가 석유 정제시설에서 나오는 오염물질 기준치를 강화하려고 하자 코크 형제의 지원을 받는 어느 학자는 궤변을 제시했다. “스모그로 인해 태양빛이 줄어들면 피부암도 줄어든다. 만일 공기오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피부암이 매년 1만1000건 이상 늘 것이다.” 소송까지 이어진 국면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재판부는 이 학자의 의견을 들어준다. 알고 보니 재판부 역시 코크 가문의 재단들이 뒷돈을 대준 학술회의에 참석해 휴가를 보냈던 것이다.

2010년 미 연방대법원 역시 코크 형제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슈퍼팩’을 허용하며 사실상 무제한 선거자금 사용이 가능해진 것이다. 특정 정치인이나 정당에 직접 자금을 대는 방식이 아니라면 영리 목적 기업들도 무한정 모금을 해서 선거자금으로 쓸 수 있다. 코크 형제도 자신들의 이념에 부합하는 정치인들을 위해 아낌없이 돈을 쏟아 붓는다. 데이비드 코크는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1억 달러 이상을 썼다. 2016년 대선에서는 1600명이 넘는 유급 직원들을 35개 주에 파견해 전체 유권자의 80% 이상을 접촉할 수 있을 정도였다. 끌어 모은 정치자금만 8억8900만 달러에 달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의 파리기후협약 탈퇴 이후 ‘공화당 지도부가 어떻게 기후 변화를 가짜 과학(Fake Science)으로 생각하게 됐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따르면 한때 공화당의 존 매케인은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구온난화 대응을 주요 의제로 들고 나오기도 했지만 먼 옛날의 얘기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기후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하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정치자금 부족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코크 형제와 같은 화석연료 산업의 플레이어들이 만든 정교한 캠페인에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크 형제가 쓰는 언어의 단어 하나하나까지 가져와 썼다.”

데이비드 코크는 죽었지만 앞으로도 코크가문의 영향력은 변함없을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미 대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까. 2018년 코크 형제가 노스다코타 주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케빈 크레이머를 지지하지 않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완전 웃음거리”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그들의 후원을 한 번도 구하지 않았다”며 “그들의 돈도 나쁜 아이디어도 필요치 않다”고도 했다. 코크 형제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 무역 정책을 공공연히 반대해 왔다.

그러나 <다크 머니>의 분석처럼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라는 아웃사이더가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배경에 미국의 심각한 빈부 격차가 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코크 형제와 트럼프의 갈등은 사소한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자유지상주의가 낳은 기형적인 세계에서 트럼프는 백인 중산층의 울분,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토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 토대는 당분간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데이비드 코크는 흔치 않았던 인터뷰 중 하나에서 ‘워런 버핏처럼 죽기 전에 전 재산을 기부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닙니다. 우리 돈의 대부분은 코크 인더스트리에 있고, 우리가 죽으면 아이들은 주식을 인수할 것입니다. 나는 코크 인더스트리가 계속 성장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당신의 돈을 거부한 사람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오.”

 

참고자료

[뉴욕타임스 2019. 8. 26] How David Koch Left His Mark on New York

[뉴욕타임스 2017. 6. 3] How G.O.P. Leaders Came to View Climate Change as Fake Science

[CRAIN’S NEW YORK BUSINESS 2014. 9. 8] David Koch offers rare look into his giving, politics

[THE VERGE 2018. 1. 8] The climate change misinformation at a top museum is not a conservative conspiracy

[서울신문 2017. 6. 16]‘괴물’ 트럼프 조종하는 ‘코크토퍼스’의 검은 돈

[조선일보 2016. 4. 26] 美공화 핵심 돈줄 “힐러리 지지할 수도”

[이코노미조선 2017. 6. 12] 트럼프의 기후협약 탈퇴 조종한 ‘악의 축’ 비난, 자유 경제 신봉하는 재산 110조원 석유 재벌

[한겨레 2017. 6. 15] 트럼프 대통령을 조종하는 ‘어둠의 손’ 코크 형제

[한겨레 2018. 1. 28]‘워싱턴 오물’ 빼겠다더니…트럼프 첫해 ‘로비스트’ 더 활개

[연합뉴스 2018. 8. 1] ‘공화당 큰손’ 코크형제와 등돌린 트럼프…”그들 돈 필요없어”

목, 2020/03/19-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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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른백년의 2019년도 기부금 모금액과 사용 실적을 공개합니다.

이 내용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개한 내용과 동일합니다.

[다른백년] 2019 연간보고서 기부금모금액 및 활용실적명세

화, 2020/03/31-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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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다른백년은 현재 지구적 규모에서 진행중인 COVID-19 팬데믹을 새로운 형태의 세계전쟁(World War–C, WWC)로 정의한다. 

지난 세계1, 2차 대전은 눈에 보이는 적국과 전쟁을 수행하며 물리적 무기를 포함한 전통적 방식의 전술전략을 사용하였다면, WWC는 국경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를 상대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지난 수세기 쌓아온 인류문명(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를 포함한)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새로운 성격의 전쟁이다. 언제 끝이 날지 모르지만 COVID-19가 진정된 이후의 세계와 인류문명은 거대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에 다른백년 은 “World after CoronaVirus? –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의 세계는?”라는 주제로 세계 주요한 칼럼을 매주 번역 소개한다. 첫 번째로 포린포리시(FP)가 종합한 10명의 세계명사들의 의견을 첫 기사로 소개한다. 또한 이와 관련한 국내 필진들의 자유로운 기고를 환영하며 앞으로 뜨거운 논쟁이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1990년 베를린장벽의 해체 또는 2008년 Lehmann Brothers의 파산처럼, 코로나-19라는 엄청난 대유행병이 전세계를 뒤흔들면서, 이후 미칠 파장에 대해 현시점에서 여러 가지 경우들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질병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시장을 뒤흔들며, 나라마다 정부의 역량(부족)을 드러내는 동안, 세계를 움직이는 정치와 경제의 권력구조가 재편되면서 새롭게 전개되어 갈 것이라는 것이다.

이번 위기가 보여주듯이 목하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분별있게 바라보기 위해, FP는 여러 각국의 10명의 저명한 인사들에게 이번 사태 이후 전개될 세계질서에 대한 견해를 질의하였다.

4/2,국내외 코로나19 발생현황 <출처: esri Korea>


A World Less Open, Prosperous, and Free

세계는 폐쇄적이고 퇴보하며 자유축소적 경향으로 갈 듯

대유행병은 국가의 기능을 강화하고 민족주의의 대두를 불러올 것이다. 각 나라 정부는 위기를 관리하는데 온갖 조치를 동원할 것이며, 위기가 끝난 후에도 강화된 조치의 철회를 기피할 것이다. 일부 권위주의적 국가들은 희생자의 숫자를 조작하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한다.

COVID-19는 국제정치의 힘과 영향력을 서구에서 동양으로 이동을 가속화할 것이다. 한국과 싱가포르가 최선의 모범을 보였으며, 중국 역시 초기의 실수를 만회하면서 적절히 대응하였다. 반면에 유럽과 미국은 허둥지둥 대며 대처를 지연시킴으로써 과거의 서구라는 아우라(명성)는 퇴색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을 것은 국제정치가 지닌 대립적 충돌이라는 기본적 속성이다. 1918-19년 간에 유행하였던 독감의 경우에서 보듯이, 대유행병의 경험을 겪으면서도 강대국 간의 권력다툼은 사라지지 않으며 지구적 협력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COVID-19 역시 예외가 아닐 것이다. 각국의 시민들은 국가가 자신들을 더 보호해 주길 요구할 것이고 정부와 기업들은 미래의 취약성을 감소시키기 위하여 초세계화의 흐름에서 퇴각하는 현상이 벌어질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COVID-19는 세계를 더욱 폐쇄적이고 퇴행적이며 자유축소적으로 몰아갈 것이다. 확실하지 않지만,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함께 부적절한 기획들, 무능한 지도력들이 결합되면서 인류를 암울한 미래로 유도할 듯하다.

Stephen M. Walt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국제정치학 교수


The End of Globalization as We Know It

주지하듯이 세계화는 종말을 맞이할 듯

코로나 대유행은 ‘경제의 세계화’라는 낙타의 등을 부러뜨리는 매질이 될 수 있다. 대유행 이전에도 중국을 경계하여 지국의 첨단기술과 지적재산권에서 격리시키고 동맹들에게 이를 강요하던 미국의 이중화 결정에 대응하여, 이미 중국은 일취월장하는 경제와 군사력으로 도전을 해오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21세기 전반에 유행하던 상호혜택의 세계화라는 이상으로 되돌아 가기는 어렵다. 지구적 경제통합에서 오는 혜택을 공유하는 매력이 없어진다면, 20세기에 형성되었던 지구적 규모의 경제질서와 규칙구조는 조만간 위축될 것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노골적인 국제정치의 대립으로 빠지지 않고 여전한 협력을 유지하려면 정치적 리더들의 부단한 자기단련을 요구한다.

자국의 국민들에게 COVID-19을 성공적으로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는 지도자들은 정치적 자산을 획득하겠지만, 이에 실패한 정치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실패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으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Robin Niblett

영국 왕립국제문제 연구소 책임자


A More China-Centric Globalization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 가능성

COVID-19는 세계경제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바꿀 뿐만 아니라, 새로운 변화 즉 미국중심의 세계화에서 중국주도의 세계화로 흐름을 가속시킬 것이다.

왜 그런 흐름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가? 미국인들은 세계화와 개방무역에 대한 매력과 신뢰를 상실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존재와 관계없이, 미국인들에게는 자유통상이라는 합의가 이미 자신들에게 해로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에 중국인들은 이에 믿음을 잃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역사적 깊은 배경이 있다.

1842-1949년간 중국의 굴욕적인 역사는 자기도취(만족)와 무익한 외부세계와 관계단절에서 발생한 결과였다. 이후 지난 수십 년간에 이룬 경제적 굴기는 세계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성과이었다. 동시에 중국인들은 어느 곳, 누구와도 경쟁할 수 있다는 문화적 자신감을 흠뻑 경험하였다.

결론적으로 나의 신작 ‘ Has China Won?’에서 언급하였듯이, 미국 앞에는 두 개의 선택지가 놓여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패권국의 선두를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 제로-섬의 국제적 경쟁(대립)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만약 미국인들 삶의 안녕– 현재 매우 악화되어 있는 –을 향상시키는 것이 목표라면 중국과 협력해야만 한다. 현명한 조언자들은 후자의 협력을 제안할 것이다. 불행하게도 현재 미국 정치의 자해적 환경은 중국에 대한 화해를 선택할 것 같지 않다.

Kishore Mahbubani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외교전문가,  2001-2년간 UN 안보리 의장 역임


Democracies Will Come out of Their Shell

민주주의 진영이 새로운 변모를 보일 때

요약하자면, 서구정치의 거대이론에 대한 제자백가적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민족(고립)주의자, 반세계화주의자, 반중국 이론가, 그리고 자유주의적 국제주의자들 간에 자신들의 견해를 추동할 새로운 증거들을 찾아내려고 혈안이 될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경제적 타격과 사회적 붕괴에 따라 대충적 결론으로 자국주의, 패권국가간의 경쟁격화, 전략적 단절(decoupling) 등이 대두할 것으로 전망된다.

1930-40년대의 공황을 겪으면서, 서구사회에 서서히 반체제적인 흐름이 대세적으로 형성되었던 반면에, 루스벨트(FDR)와 소수의 앞선 정치지도자들이 전쟁 전후에 흐름을 어렵잖게 국제주의로 다시 돌리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1930년대 세계경제의 붕괴는 선진사회가 매우 긴밀히 연계되어 있었고, 동시에 매우 취약했음을잘 보여 주었으며, FRD은 이를 전염병균(contagion)이라고 명명했다. 당시 미국은 상대적으로 다른 서구국가들보다 폐해가 적었다. FDR과 국제주의자들은 전후의 국제질서로 개방적 질서를 유지하면서 상호의존을 운용해낼 방어기제와 역량이라는 규칙을 구상해 냈다. 미국은 국가 간의 국경을 봉쇄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상호협력이라는 지구적 인프라를 구축하면서 전후 개방질서를 작동시켰다 (브레튼우드 체제).

미국과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은 상호의존이 약점이라는 방어적인 느낌에서 취할 수 있는 반동적인 흐름을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 진영은 당장은 자국(고립)주의적 반응을 보이겠지만 긴 호흡으로 실용적이고 규제를 동반한 국제주의의 새로운 모습을 찾아가야 한다.

G. John Ikenberry

프린스턴 대학교 W. Wilson 스쿨의 책임교수, 국제외교 전공


Lower Profits, but More Stability

적은 수익구조, 그러나 장기적인 공급체계의 안정구조로

COVID-19의 유행은 세계규모 단위의 생산거점기지라는 기본적 교의를 위협하고 있다. 기업들은 현재 시행중인 다단계적 조치, 다국적의 부품공급체제를 재고하고 축소시킬 것이다.

세계규모 단위의 부품공급은 정치적 경제적 요소들에 의해 혼란을 겪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의 인건비 상승 트럼프의 통상전쟁 로봇산업의 발전 자동화 3D 프린트 등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선진경제권 내에서 겪고 있는, 진행 중이거나 곧 다가올, 실업문제 등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

이러한 상황과 겹치면서 COVID-19는 부품공급체계의 연계고리들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전염된 공장들의 폐쇄는 다른 생산기지들의 연쇄적인 중단을 야기하고, 생산과 재고가 고갈되면서 병원 약국 슈퍼마켓 그리고 소매상들이 크게 영향을 받고 있다.

대유행병이 가져올 다른 측면은 많은 기업들이 통상의 이점보다는 대체공급의 안정성에 대해 많이 고려하게 되면서 곧 이를 적용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정부단위에서도 전략적인 산업에 대하여 국내에 back-up 계획과 적정 재고를 갖추도록 강제하면서, 기업들의 수익성을 떨어지는 대신에 공급체계의 안정성은 제고될 것이다.

Shannon K. O’Neil

예일대 출신의 남미지역 전문가로 NGO 싱크탱크에서 활동


This Pandemic Can Serve a Useful Purpose

대유행병은 미래에 긍정적인 촉매제가 될 수도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세가지 사항은 명백하다.

첫째, 코로나 바이러스는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정치를 크게 변화시킬 것이다.  ‘평등’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정부의 권한을 강화시키면서 대유행병과 이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안보적 주제와 양극화라는 사회적 이슈를 악화시키고나 또는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되었든, 정부의 권한은 강화된다. 경험상으로 보면 권위적이거나 인기영합적인 정부들은 전염병에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반면에, 한국과 대만처럼 민주적인 정부들은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대유행병은 상호 연계된 세계의 종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상호의존성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기도 하다.

둘째, 국제 정치적으로는 자국폐쇄적이며, 자급적이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한마디로 더욱 가난하고, 추하고 좁아진 세상을 향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희망과 긍정적인 신호들도 있다. 현재의 위협에 지역적으로 공동대응하기 위하여 인도정부는 동남아 국가 지도자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하였다. 현재의 대유행병이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적인 큰 이슈들에 대해 공동적인 대응을 촉발한다면, 이는 매우 긍정적인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Shivshankar Menon

인도의 외교가. 싱(Singh) 수상의 외교안보 고문 역임


American Power Will Need a New Strategy

미국권력에 새로운 전략이 필요한 시기

2017년 트럼프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강대국 간의 패권경쟁에 초점을 맞춘 국가안보전략을 선언하였다. COVID-19의 대유행은, 이 전략이 매우 잘못된 것으로, 미국과 같은 초강대국조차 스스로 국가안보를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리차드 댄지그(Danzig)는 2018년에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21세기의 기술 수준은 분포(소유)뿐만 아니라 결과에 있어서도 글로벌한 성격을 지닌다. 전염균, AI 시스템, 콤퓨터 바이러스, 방사능 등은 한번 사고가 터지면 사고 당사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로 다가온다.

따라서 현재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상호의존적 위험에 대하여 합의된 보고체계 공유된 통제 공동의 위급대응계획 기준 협약 등을 추진해야 한다.

COVID-19와 기후위기와 같은 초국가적인 위협 앞에서 다른 국가보다 미국을 우선하는 사고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국가들이 지닌 힘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지국의 이익을 우선시 하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어떤 수준에서 정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대유행병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는 전략에 미국이 실패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Joseph S. Nye, Jr.

‘소프트파워’ 이론을 제창한 미국 정치학자,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전 학장


More Failed States

실패한 국가군들의 다수 출현 가능성

‘영구적’ 이라는 표현은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단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위기는 향후 수 년간 대부분 국가들을 국제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현안보다 자국의 국경선 안에서 전개되는 상황에 집중하게 할 것이다.

향후 부품공급의 취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적 자급자족(결과로서 관계의 단절)으로 이동하는 흐름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위기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극복하고 국내적 자원을 재결집시키기 위하여, 대규모의 이(난)민에 대한 거부, 기후위기 등 지구단위의 문제 또는 역내 문제 해결의 노력 또는 실행에 대한 축소 등이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국가들은 약점을 드러내면서 회복 과정의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기들은 악화일로에 있는 미중 관계를 더욱 어렵게 하고, 유럽의 통합과정을 약화시킬 것이다. 긍정적 측면으로는 글로벌한 수준의 공공의료 가버넌스가 일정 부분이 강화될 것으로 보이지만, 세계 각국이 서로 협력하고 역할을 다하기 보다는 결국은 세계화를 퇴보시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ichard N. Haass

공하당 출신의 미국외교협회 회장, 콜린 파웰 전 국무장관의 조언자


The United States Has Failed the Leadership Test

지도적 국가로서 미합중국은 실패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지도국가로서 자격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 미합중국은 속좁은 자기이해에 갇히고 서툰 무능함을 드러내었다. 이러한 종류의 대규모 유행전염병은 국제적인 기구를 통하여 정보를 사전에 제공하여 각 국가들이 이에 대응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하고 조치에 필요한 자원을 준비하도록 했어야만 한다. 미합중국이 지도국가로서 이를 조직해 냈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속좁은 이해에 갇히면서 워싱턴은 리더쉽 테스트에서 실격을 당했고 그로 인해 세계는 더한 고통을 당하고 있다.

Kori Schake

미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부국장이며, The Atlantic의 정기 기고자.


In Every Country, We See the Power of the Human Spirit

모든 국가에서 인류애가 지닌 감동을 목격하고 있다.

COVID-19는 금세기 최악의 대규모 유행병으로 영향의 규모와 깊이는 실로 어마하다.  공공의료의 (실패)위기로 인해 지구상의 78억 인구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의 영향은 2008-9년에 있었던 금융 대공항보다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대규모의 지진성 충격은, 아시다시피, 국제사회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면서 힘의 균형을 뒤흔든다. 동시에 예외적인 도전에 대응하여 전세계인들이 남녀 구별없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현재까지는 국제적 규모의 협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다. 현 위기의 책임 당사자들인 강대국가 미국과 중국 등이 말장난의 싸움을 그만두고 효과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못한다면, 이들 국가들에 대한 국제적인 신뢰도는 급격히 축소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이름으로 5억에 해당하는 해당 시민들에게 적정한 지원을 해내지 못한다면 회원국가들은 브뤼셀(유럽연합정부의 소재)의 힘을 축소시키려 할 것이다. 미국의 문제는 현재의 위기를 중단시키려는 효과적인 조치를 제공해야 할 연방정부가 무기력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국가에서 보듯이 인류애의 정신이 살아나 의사, 간호사, 정치인,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 리더쉽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계기로 예외적인 위기라는 도전에 대응하여 전세계인들이 남녀의 구별없이 행동에 나설 것이라는 희망을 제공하기도 한다.

Nicholas Burns

하버드 케네드 스쿨 교수출신의 외교관

목, 2020/04/02-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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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는 전염(복사)을 확산시키려고 하고, 우리는 이를 중지시켜야만 한다.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간은 선택할 수 있다. 이번 팬데믹은 금세기 최초의 대규모 전염병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지만, 극복되는 과정에서 세계를 새롭게 변화시킬 것이다. 1918년 전쟁 통에 발생했던 ‘스페인독감’과는 달리 이번 사태는 세계가 평화롭게 번영을 구가하는 와중에 발생하였다. 우리는 이를 반드시 제대로 극복해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 극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을 각오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다양한 해결 방안들을 검토하고 이들이 지닌 도덕적인 암시를 함께 이해해야 한다. 주요한 선택의 문제는 각국이 직면한 국내의 현안뿐만 아니라 국경을 넘어서는 국가 간의 협력에 관한 것이다.

부유한 국가들에게 있어 가장 일차적인 선택은 매우 공세적으로 바이러스의 감염을 중단시키는 일이다 동시에 이에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얼마나 부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어떤 의견은 바이러스 감염을 차단하려고 경제를 깊은 불황에 빠뜨리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불필요한 혼란(disruption)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자연스레 바이러스가 전염되도록 방치해도 스스로 집단적 면역(herd immunity)이 형성될 수 있으며, 취역한 계층에만 방역을 집중하면서 경제활동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공세적인 방역 대신자유방임적 완화를 기대하는 것으로 과연 경제가 문제없이 잘 돌아갈지는 결과를 알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이다. 정부가 강제하기 전부터 이미 시민들은 알아서 여행을 중단하고 외식과 영화관람, 쇼핑을 꺼려하였다.

전염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신규확진자’들을 추적하여 관리하는 것이 방치하는 것보다 오히려 경제적 불황을 조기에 종결하는 선택으로 판단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적극적인 방역조치를 해야 국제적인 공공의료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영국왕립대학의 COVID-19 대응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방역을 포기하면 영국과 미국 전역에 전염될 것이고 노인층의 상당수가 의료조치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 후베이 지역의 경험에서 보았듯이 강력한 봉쇄가 이러한 불행을 막는 길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중국에서조차 수용할 수 없는 의료재난(방치에 따른)을 선진국인 영국과 미국이 허용해야 한단 말인가? 다만 상기의 견해가 부분적으로 옳은 것은 주요 경제활동을 장기간 중단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강력한 방역조치를 선택하면,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시행되어야 하며, 재감염 현상이 발생하지 않도록 제어해야만 한다.

강력한 방역조치가 시행되는 동안, 정부와 금융기관들은 경제활동이 지속되고 생산적 역량이 위축되지 않고 시민들, 특히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실제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처들을 취해야 한다.

국내의 현안 못지않게 국경을 넘어선 연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이제 막 시작된 금융의 불안정과 불경기(아마도 불황)은 개발국가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가할 것이다. IMF는 3월23일 현재 830억불 규모의 국제자본이 개발국가들에게서 이탈했다고 발표했다. 대부분 수출에 의존하는 개발국가들에게 상품가격의 폭락현상도 매우 심각한 것이다.

이들 국가군은 국내에 번지는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급격히 위축되는 국내수요와 싸워야만 하지만, 이러한 외부적 압력을 감당해낼 역량이 매우 제한되어 있어, 경제적 사회적으로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IMF는 80여 국가들로부터 긴급구제금융 요청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부유한 국가들이 전염병을 차단하고 경제를 되살려내면 취약한 국가들도 혜택을 받게 될 것이지만, 단기적인 측면에서는 사정이 매우 급하다. 개발국가들은 즉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며, 이러한 선순환적인 지원은 모든 국가들의 경제회복에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와 동시에 지구적 규모의 불경기는 모두에게 닥친(공유된) 도전이다 보편적 지원이라는 연대가 필요하고 정당한 실제적인 이유이다.

유럽연합의 경우에도 같은 이야기가 적용된다. 현재의 연합을 규정하는 핵심은 지역집단적 대의를 위하여 개별국가 단위로 이루어지는 재정회계와 주권적 통화를 포기한 것이다. 지난 금융위기 시절에 적지 않은 국가들의 실책이 있었고 당시에는 각자의 실책에 대한 윤리적 비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팬데믹의 경우에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며, 이를 대응하는 과정에 함께 연대하지 못하면, 실책이 있을 경우, 양해와 용서가 있을 수 없다. 이로 인한 상처는 깊고 치명적일 수 있다. 누구의 실책도 아닌 위기에 직면하여 함께 연대하여 대처하지 못하면 유럽연합이라는 거대한 기획은 윤리적으로도 실제적으로도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국경을 넘어서는 연대와 지원은 단순히 재정적인 것에 국한되어서도 아니 되며, 의료적 지원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의료의 공급체계를 파괴할 수 있는 수출제한 조치가 시행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행히 이번 유행하는 전염병은 우리의 선조들이 겪은 치명적인 질병에 비하면 치사율이 매우 낮지만, 다른 한편 현존하는 인류가 겪어보지 못한 실제적 위기이다. 따라서 종합적인 정보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려야 하는 현실적 도전이며, 동시에 인류의 윤리적 수준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현실과 윤리라는 두 측면을 모두 살펴가면서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지도자들이 평정을 유지하며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하면서 유행병을 퇴치할 수 있을까? 가장 취약한 계층과 가난한 국가들을 우선적으로 보호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갈등과 대립을 넘어선 연대 그리고 폐쇄적인 자국이기주의를 대신하는 지구적 연대를 선택할 수 있을까? 팬데믹이 지난 이후 열악해진 세상 대신 개선된 세상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바이러스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만 인류인 우리는 가지고 있다, 현명한 것으로 결정할 수 있는 선택권을!

 

2020-03-24

마틴 울프

파이낸스타임지 수석해설가

목, 2020/04/09-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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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3월 30일)에도, 매서운 기세로 확산 일로를 치닫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그 공포와 고난과 고통에 더하여, 우리가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생명공동체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거의 세계 모든 나라에서 국경폐쇄나 이동금지조치가 내려지고 있지만 그것은 이번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 취해지는 일시적인 조치로서, 폐쇄나 단절이 그 장면의 주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설적으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하나로 통해 있음’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이번 사태로 사망하신 분들이나 그 유족의 슬픔은 말할 것도 없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살신성인하는 의료진, 그리고 확산 방지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분들과 헌신하는 봉사자들, 이에 호응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거룩하고 아름답고, 슬프다. 슬픔과 고통의 바로 그 자리에서 감동과 의지가 더 화려하게 피어나는 것을 볼 때, 각성과 참회, 감사와 희망이 교차한다. 각국에서 취해지는 조치들은, 인류 역사에서 ‘마지막 세계대전’이던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임에 분명한 극단적인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 바야흐로 1백 년 만에 맞이하는 세계적인 대전(大戰) – 3차 세계대전의 상대가 ‘적국(敵國) 인민(人民)’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라는 사실은 한편으로 공포감을 주지만 한편으로 (박멸의 대상이 ‘人間’이 아니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1차,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이번 세계대전도 근대 세계의 폐해(인간의 삶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바이러스의 침투 경로가 확장된 것)로 인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 것이다. 그리고 그 ‘제3차 세계대전’은 근대 세계의 종말을 재확인하고, 기대컨대는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다시 개벽 시대’를 재조명하는 등불이 될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앞서 말한 안도감은 근원적으로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 인류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통의 고난 경험’을 공유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나의 種으로서의) ‘인류’에 다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온다. 그것은 인류[人間]를 지금 당장, 지구상에서 현재보다 더 높은 위치로 올려놓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인류가 지구상의 생명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즉 N분의 1로서 자리매김하여 있음을 자각하는 것이 스스로의 생명력을 고양하는 길이고, 가장 ‘자연스러우며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태도이며, 또한 가장 지속가능하고 행복 지향에 적합한 현실-존재 인식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지난 20세기 내내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 되어 왔던 인간중심주의(human-centralism), 시나브로 그 입지가 좁아져 왔으나 여전히 현실적으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그 파멸적 근대 문명의 기저에, 분명한 구멍=문(門)을 만드는 일이다. 이 문을 통해 우리 인류와 지구생명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세계로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일러 ‘다시 개벽 시대’로의 진전이라고 하면, 적확할 것이다. 이 개벽에 즈음해서야 비로소 우리는 ‘인류’가 된 것이다.

기회는 늘 위기와 함께, 낙관적인 상황은 언제나 비관적인 상황과 함께 온다. ‘인류공동체, 지구공동체, 생명공동체’를 존재/인식이 거의 일치하게 경험/인식하는 ‘다시 개벽 시대’의 도래와 함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치명적인 멸종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되었으며, 사방이 생명에 위협적인 지뢰투성이인 지역/시대에 접어들었음을 실감하게 되었으며, 전 지구적 차원에서 그리고 전 인류의 지평에서 공통의 죽음을 직접적으로 목격하고 경험하고 공감할 수 있는 물질적, 정신적, 소통적(疏通的) 토대가 구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인류) 집 문 앞에 배달된 택배(과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되겠지만(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 종식을 알리는 ‘카톡 알림’은 그다음 택배(‘코로나20’일지, ‘코로나v.2’일지 모르지만)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을 소리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 세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이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인류는 이번 코로나19와 같은 위험 요소에 더욱 빈번하게 노출될 것이며, 그 위험의 강도도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다시 말해 코로나19로 인한 지금의 사태는 빙산의 일각으로, 그 아래에는 훨씬 더 크고 무거운(무서운) 위험 요소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대기 중이라는 것이다.

답은 언제나 문제 속에 있기 마련이다. 코로나19의 대량 감염국 중국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중국보다도 빠른 속도로 확진자가 늘어나던 2월 초순경만 해도 세계인의 의심스런 눈초리가 한반도로 쏟아졌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국민들은 끊이지 않는 돌발변수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의연하게 사태를 수습해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역전되었다. 이제 전 세계 각국에서 한국에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한국을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지구촌을 감싸고돈다. 이번 사태 직전에 있었던 BTS(방탄소년단)의 K-POP 세계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이어서, 현재의 상황은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것이 아님을 확인하게 하는 또 하나의 쾌거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자화자찬으로 치달아서도 안 되고, ‘국뽕’으로 흘러서도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이것은 우리끼리 알고, 우리끼리 (이 성공적인 대응의 혜택을) 누리고 말 사태는 아니라는 점이다. 작더라도 실질적이고 실제적이며 실용적인 의미를 발굴하고, 발견하고, 발전시켜 인류 전체에 베풀어 나가야 한다(弘益人間 在世理化). 필자가 보기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에게 이번 사태는 ‘세월호 이후’와 ‘촛불 혁명 이후’의 일로써 다가왔다. 재난이 일어나는 방식(‘세월호’ ‘메르스’)을 잊지 않고, 평화 시에 전쟁을 준비하는 그 자세로 방역 시스템과 의료체계를 정비해 왔으며(의료체계-의료보험제도 등-의 대부분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갖추어진 것이지만, 대한민국의 메이저 의료기관은 메르스 이후 유사한 사태에 대비한 훈련을 주기적으로 진행해 왔다), 또 그것을 극복하는 한국인 특유의 방법론(‘촛불혁명’의 그 위대한 참여정신)이 결합되어서 이번 코로나19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시민)의 반응과 대응은 전 세계 국가에게 모범이 되고 온 인류에게 희망이 될 여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우리가 세월호와 아이들을 잊지 않은 덕분[性靈出世]이며, 메르스의 비극을 외면하지 않은 덕분[臥薪嘗膽]이다. 무엇보다 문제에 정면으로, 정직하게, 정성껏 대응하는 것이 그 문제 해결의 정 도(正道)라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점이, 이번 사태 진전에서 대한민국의 첫 번째 인류사적인 기여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이번 사태로 인하여 목숨을 잃은 분들, 고통과 고난을 겪어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직 ‘시작도 되지 않은 후폭풍 (특히 경제나 생활-학생들의 학사일정 등)’ 등을 생각할 때, 이번 사태는 지난 세월호나 메르스(에볼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전면적인 전환의 숙제를 우리에게 지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국내나 동아시아 일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전 인류에 걸쳐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개벽신문>을 통해 여러 차례 밝혔듯이 ‘촛불혁명’은 120여 년 전의 ‘동학농민혁명’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져 온 면면한 이력을 갖는다. 동학농민혁명은 ‘서세동점’의 정점과 ‘동학의 다시개벽’의 전망이 부딪친 사건이며, 그런 점에서 ‘근대세계’와 ‘근대 이후 세계’, 즉 다시개벽 시대의 전초전에 해당하는 사건이었다. 이번 코르나19는 바로 그 연장선상에서 우리 인류가 도달한 근대세계, 그 대서사의 한 단락이 매듭지어진다는/지어져야 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데에 첫 번째 의미가 있다.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서구 소위 ‘선진국’ 또는 ‘서구사회’가 보여준,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함과 그로 인한 시민들의 피해는 단지 국가 지도자의 입장 차이나 국가 시스템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선진문명’이 놓여 있는 자리, 딛고 있는 토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 정부와 국민(시민)에 주어진 숙제는 이 위기를 ‘아국운수(我國運數) 먼저 하여’ 극복할 뿐만 아니라,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체제를 어떻게 재구축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모범과 예시, 그리고 비전을 제시해 주는 데까지 닿아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바로 ‘다시개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속히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종식되고,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또 돌아가서 도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널뛰듯’ 폭락과 폭등을 되풀이하는 증시 상황은 이번 사태에 즈음한 경제의 팬데믹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 현재(3월 말) 시점에서 전 세계적으로 3,000조원이라는 거액의 예산을, 이번 사태로 인해 ‘위기’에 빠진 경제가 더 깊은 수령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아 내기 위해 책정할 계획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것도 ‘우선’ 그 정도이고, 여차 하면 후속 투입도 마다하지 않을 기세이다. 어느 누구랄 것 없이, 어떤 부문이랄 것 없이 부도와 파산의 위기에 내몰리는 기업, 자영업자와 그에 딸린 수십, 수백만의 경제 인구를 생각할 때, 아니 사실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삶(생활, 경제)에 영향을 끼칠 이번 사태의 후폭풍을 생각할 때 경제 붕괴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할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인 것처럼 보기는 한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해 보면, 이번 사태 수습의 목표점이 사태 발생 이전, 물질적 풍요 문화적 만끽이 난무하던 그 상황, 이른바 ‘일상으로 돌아가기’, 경제적으로 발전을 거듭하던 그 시절로의 복귀하는 것이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멈춤!’의 첫 번째 경고판을 지나친 후과가 이 정도이다. 두 번째 경고판이 있을지, 곧장 절벽이 나타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이제라도/이제야말로 근대세계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그것은 근대문명, 현대문명, 물질문명의 질주를 멈추고 진로를 수정하는 일이다. 백척간두진일보란 바로 지금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 벼랑 끝, 벼랑과 벼랑 사이, 그 너머에는 ‘다시개벽’의 새 시대가 놓여 있다. 과거로의 회귀, 예전 일상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하늘 관계, 새로운 인간-인간 관계, 새로운 인간-만물 관계를 경천(敬天)과 경인(敬人)과 경물(敬物) 같은 개벽적 관점에서 모색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이번 사태에 즈음하여 우리가 치른 고통과 희생에 값하는 길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하는 ‘대한국민(시민)’의 지혜로운, 은혜로운, 감동적인 일거수일투족 – 전 세계인들에게 영감을 주는 일동일정(一動一靜)에 이미 그 씨앗이 싹트고 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자가 격리, 사회적 거리 두기, 통행금지, 여행금지, 국경폐쇄, 도시봉쇄 들은 ‘잠시 멈추어 보자’는, ‘참회의 자리/시간을 만들자’는, 보이지 않는 그 속에서 보이는 것을 찾고, 들리지 않는 그 가운데서 들리는 소리를 들어보자는, 홀로가 됨으로써 다시 동귀일체(同歸一體)를 생생(生生)하게 생득(生得)하는, 전일적(全一的) 생명으로서의 인류 양심(養心)-하늘[天]의, 거룩한 개벽의 소리이다. 하나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 ‘다시개벽의 그 시대’가 열리고 있다.

 

박길수

월간 ‘개벽신문’의 주간,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 대표

금, 2020/04/1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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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의 방지용으로 의료자재들에 대한 국제적 수요가 폭증하는 가운데, 독일 경찰조직에 배달되어야 할 마스크 선적물량이 미국으로 빼돌려지고 다른 국가들이 입찰에 응하지 못하도록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는 등 미국의 해적 행위에 대한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베를린 당국에 의하면,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되었던 N95의 마스크 20만 장이 태국에서 항공편 환적 중에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한다.

베를린 주 내무장관 Andreas Geisel은 이러한 행위를 ‘현대판 해적질’이라고 비난하면서 독일정부가 워싱턴에 국제적 교역질서를 준수하도록 요청할 것을 청원하였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무리 위기적 상황이라 하더라도 대서양 협력국들 사이에 서부개척 시기에나 있을 법한 강도 짓을 해서는 안된다.”

독일 언론들은 해당 마스크의 공급사인 미국 3M이 중국에서 생산한 것으로 보도하고 있으나, 정작 공급자인 3M은 베를린 경찰에게서 주문을 받은 기록이 없으며 상기 기사의 출처가 어디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 측은 의료자재들이 부족해지자, 미국 행정부가 항상 그랬듯이, 시장에서 마음대로 미국의 힘을 마구 휘두르며 국가 간에 마구잡이 경쟁을 야기시키고 있다며 일치된 목소리로 비판하고 나섰다.

파리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핵심지역 Île-de-France의 주요 책임자인 Valérie Pécresse는 미국이 야기한 마스크 쟁탈싸움을 ‘보물찾기’라고 이름 지었다.

“관행상 우리가 구매가능한 마스크 물량을 확보했는데도 미국인들이 – 나는 미국정부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 (고가의 가격으로) 투찰하면서 우리를 배제시켰다. 미국인들은 싯가의 3배를 제시하였고 그것도 현장에 직불하겠다고 제안하였다. 우리는 국민의 세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투찰할 수 없었고, 지불조건도 인수 후 품질검사가 끝난 후에나 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응찰에 실패하였다”고 현지 TV 방송에서 이야기하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프랑스 다른 지역책임자들의 증언을 보태어 다음과 같이 이어갔다 “확인할 수 없는 미국 구매자들이 마스크 물량, 그것도 겉포장에 ‘프랑스’이라고 인쇄된 물량들에 대해 투매를 하였다.”

이미 COVID-19가 심각하게 감염된 지역인 대서부(Grand Est)지역 의회의 의장인 Jean Rottner 박사도 RTL라디오 방송에 나와 말한다 “우리는 반드시 싸워야 한다” 그는 연이어 트위터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빼돌려진 2백만 장의 마스크는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주문하지는 않았지만 과거의 관행상 우리에게 양도되어야만 했다” 프랑스 미디어들은 이를 ‘마스크 전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미국회사인 3M사는 일반의료용 마스크보다 보호기능이 뛰어난 호흡질환용 마스크(respirator)인 N95를 중국 포함하여 여러 해외 생산기지에서 생산해 왔는데, 지난 금요일 트럼프 행정부에게서 미국향(向) 선적물량을 대거 증가하도록 요구를 받았으며 중국정부로부터 1천만 장의 마스크 선적에 대해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시에 3M은 미국 행정당국으로부터 미국 내에서 생산하는 마스크를 캐나다와 남미지역으로 수출할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당 회사는 이러한 요구는 의료 분야 종사자들에 필요한 공급물량조차 중지하라는 것으로 인도주의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해당국가들로부터 보복조치를 당하는 불이익을 발생시킬 것을 경고했다.

“만약 이런 일이 강행된다면, 결국은 미국 내 공급할 수 있는 호흡질환용 마스크 공급량이 줄어들게 될 것이고, 이는 우리나 행정당국이 추구하는 것과 배치되는 일이다” 라고 진술했다.

캐나다 수상인 Justin Trudeau 역시 미국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미국 역시 캐나다로부터 의료자재를 공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마스크와 의료자재들의 쟁탈전에는 미국은 매우 유리한 장점을 갖고 있는데, 항공화물 수송능력이 중국에 비해 3배나 되고 연방과 주정부 그리고 민간 수요에 대응하는 수많은 수입업체들이 상하이에서 활동 중에 있다.

상하이에서 활동 중인 무역상인 Michael Crotty은 뉴욕 타임즈에게 ‘중국의 생산공장들은 이런 전쟁상황에서 최고가를 지불하는 고객을 선호한다며, 이런 기회(초과이익을 가질)는 흔치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친분 관계가 때때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억만장자인 Robert Kraft는 매세츄세스 주지사인 Charlie Baker에게 보잉 767기를 빌려주어 마스크 1.2백만 장과 의료보호장구들을 매세츄세스로 항공편으로 운송하도록 도왔다.

이 항공기는 뉴잉글랜드의 영웅(Patriot)인 농구팀의 전용으로 구입한 두 대의 비행기 중 하나이며, 뉴욕에 있는 중국 영사 Huang Ping의 도움을 받아 주말에도 영사관을 열어 필요한 절차와 서류를 갖출 수 있었고, 심천 공항에서 승무원들이 입국절차를 생략한 채 비행기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3시간 만에 화물적재가 이루어졌고 단 3분만에 이륙허가가 떨어졌다.

공화당 소속의 Baker 주지사는 도착한 비행기 앞에서 감동적으로 울먹이며 말했다 “이번 의료보호장구(gear)는 대단히 특별합니다. 이런 보호장구들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힘들고 도전적인 일이라는 것은 이제 비밀도 아닙니다. 저는 현장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을 지켜주는 보호장구들을 구입하는 특별한 노력을 계속할 것입니다. 점점 더 많은 물량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처럼 미국의 여러 주정부들과 연방정부는 각자 장비들을 구입하는데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있다. 뉴욕 주지사인 Andrew Cuomo는 ‘마치 50 개 주정부가 e-Bay에서 서로 먼저 물품을 구매하려고 싸움질을 하는 것 같다’고 고백했다.

트럼프가 자신의 정치적 선호에 따라 자신이 높이 평가하는 주를 우선으로 지원할 것임을 분명히 하면서, 각 주지사들은 연방정부의 재고가 급속히 소진되는 것을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게 되었다. Baker주지사는 트럼프와 통화에서 아래와 같이 불평하였다 “세 번의 좋은 물량 기회 모두, 연방정부에게 선수(先手)를 놓쳤다. 만약 누군가 물량을 가지고 있고 당신(연방정부)과 나(매세츄세스 주정부)사이에 판매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매번 놓칠 수 밖에 없다”. 이후 트럼프가 정부 간에 충돌이 생기면 연방정부가 응찰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는 했다.

미 연방정부의 비상관리국(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개입하여 미국 구매업자들 간의 싸움을 조정하고는 있지만 분배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못하고, 오히려 민간업체들이 더 잘할 것이라고 변명을 대고 있는 실정이다. ‘연방정부는 의료자재들의 수출을 금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자재수급을 비공식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여론의 비난을 받고 있다.

브라질 역시 중국으로부터 의로보호 장구를 구매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고 밝혔다. 브라질 보건장관 Luiz Henrique Mandetta은 “고가응찰이라는 문제가 개입되고 있다”고 말했다.

4월초 현재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많은 25만 명의 확진자와 6천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스크 등 주요한 보호장구의 물량확보가 절대적인 상황이다.

출처: 영국 가디안 (The Guardian)


 

<관련 논평>

현대판 해적질로 미국의 지도력이 침몰하고 있다

최근 독일 당국은 독일경찰조직을 위해 주문한 20만장의 마스크가 태국에서 항공화물 환적 과정에서 고가로 투찰한 조직에 의해 미국으로 빼돌려 졌다고 공개적으로 미국을 고발하였다. 이 뉴스는 최근에 벌어진 여러 사건 중 하나로, 거래 관행상 공급이 예정되었던 의료자재들이 워싱턴에 의해 싯가의 3-4 배에 해당하는 고가로 투찰(投札)하면서 마지막 순간에 행선지가 바뀐 사례들에 대해 비판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피해를 본 국가군에는 캐나다와 프랑스가 포함되어 있다. 캐나다 수상인 트뤼도는 이를 매우 염려스러운 사태로 받아들인다고 말하면서 캐나다에 할당된 물량은 반드시 캐나다로 반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프랑스의 로트너 박사는 미국인들이 마지막 순간 응찰에 가담하여 3-4배 가격으로 그것도 현장에서 현금을 지급하면서 우리의 주문량을 빼돌리고 있다고 불평했다.

COVID-19 확진자가 수십 만 명에 달하면서, 미국은 이제 바이러스 감염의 중심국가가 되었고, 사전의 준비가 없었던 탓에 여러 주정부들이 갑자기 의료자재 구매에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이런 상황에 이르자, 세계 지도국가로서 자신감을 보여 왔던 미국은 자국 상황에 대해 적정하게 대처하기는커녕, 비윤리적인 행태로 시장을 교란시키며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미국은 건국이래 수많은 위기에 직면해 왔지만, 이번 COVID-19 돌출과 같이 충격적인 사태를 맞이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지난 100년을 돌이켜 보아도, 대불황과 제2차 세계대전, 진주만 기습, 소련과 핵전쟁 대치 그리고 9/11 사태 등을 겪어 왔지만 이번 COVID-19 사태처럼 미국 내부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명성에 먹칠을 하며 제국이 무릎을 끊게 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국가경제가 이처럼 절단이 난 적도 없으며, 4월초 기준으로 25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10만 명이상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전망에 따라, 주정부 단위로 제각각 의료자재의 부족을 해결하는 일에 절망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지난 세기 미국은 여러 번에 걸쳐 유럽의 동맹들을 지원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껴 왔으나, 이번처럼 국가가 진흙탕 속에 처해져, 자신을 위한 생존의 정치(survival politics)라는 긴박한 절망감으로 다른 국가들을 어려움에 빠트리는 적이 없었다. 미국의 주정부들이 시장 가격의 4배로 투찰(投札)하며 마스크, 호흡기 등 의료자제를 구매하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는 것은 미국 전통의 신뢰, 안정 또는 힘의 정치 모습이 아니다.

반대로 이는 재앙이라는 신호이다. 재앙이라는 표현은 가볍게 사용할 단어가 아니지만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불가피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초기 대응은 경멸스러울 만큼 무능하고 사전준비가 없었으며, 그 결과로 이 세계 어느 지역보다 심각한 전염상태를 보이고 있다. 최상위 지도력의 부재와 주정부 단위 간에 진행되는 불협화음은 국가의 대처능력을 박살내고 국가단위의 전략도 부재하여, 따라서 코로나바이러스는 더욱 창궐하고 있다. 가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이 몽땅 잘못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그 결과로 단순히 미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까지 대가를 치르고 있는 셈이다. 현재 미국은 국제적 현안에 대해 동맹들을 안심시키고 지원하는 지도적 국가로서 역할을 하기는커녕, 괴팍스럽고 억척스럽게 동맹들을 어려움에 빠트리고 있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쉽게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의 동맹들이 미합중국을 신뢰할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워싱턴 자체가 대응과정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커다란 부채를 짊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상황이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해온 정책인 ‘America First’이란 독트린과 뒤섞이면서, 미국은 유럽을 단순히 연대의 파트너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목표를 추구하는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제 유럽대륙의 국가들은 워싱턴과의 관계가 현재의 상황이 종료되면 이전으로 돌아 갈수 있다고 믿지 않게(doubtful) 되었고, COVID-19의 사태는 미국과 ‘유럽 또는 타동맹’ 간의 관계를 ‘America First’ 에서 ‘America Only’로 빠져들게 하였다.

출처: CGTN

Tom Fowdy

영국 Durrham 과 Oxford 대학에서 국제관계 정치학을 전공했고 세계주요 언론에   영국, 미국, 중국 그리고 북한에 관련한 칼럼을 쓰는 자유기고가

목, 2020/04/16-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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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른백년 이래경 이사장의 ‘시민주권 시대의 정치경제론’

-시민을 위한, 시민에 의한, 시민권력의 정치경제를 위하여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위한 담론을 실천하고 있는 사단법인 다른백년의 이래경 이사장이 다른백년 홈페이지에 ‘기획칼럼-이래경의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이름으로 1년 반 동안 연재한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책 『시민주권 시대의 정치경제론』은 촛불혁명 이후 한국 사회의 로드맵을 제안하는 내용이다. 격변과 전환의 소용돌이 속에서 탐욕적 시장경제의 폐해를 극복하고, 참여와 혁신 그리고 연대에 기초한 시민경제로 전환하는 로드맵은 저자 나름의 ‘해방과 자유의 논리’이다.

저자가 2018년에서 2019년 동안 연재한 ‘제3섹터 경제론’의 토대는 촛불혁명이었다. 촛불혁명은 기득권에 포획되어 박제화 된 형식적 민주 제도와 절차의 한계를 뛰어넘어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새로운 시대를 요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사회의 성찰과 새로운 좌표’라는 주제를 ‘제3섹터 경제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하면서 저자는 촛불혁명의 의미를 반추하고, 시장과 공공의 영역에서만 바라보고 해석해 왔던 기존의 경제론을 시민의 영역,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민주권과 시민권력’의 관점에서 재구성을 시도했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수많은 문제 해결의 핵심은 제2섹터인 시장을 중심으로 제1섹터인 공공영역과 제3섹터 부문을 종속적으로 연결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각각의 역할로 분리시켜 상호보완적이며 병렬적으로 각자의 역할을 맡도록 하면서 궁극적으로 제3섹터의 몸집을 키워나가는 데 있다. 정부는 축적된 과학기술과 지식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산출된 시장경제의 성과를 제3섹터의 영역으로 적정하게 옮겨 나르는 양수(PUMPING)의 몫을 담당해야 한다. 즉 미래의 무한한 일자리의 보고인 제3섹터 영역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이것이 저자의 문제의식을 함축한 ‘제3섹터 경제론’의 핵심이다.

 

출판사 서평

촛불혁명 이후 정치적 영역에서 직접민주주의를 통한 시민권력의 실현은 한국사회의 역사적 이정표이다. 저자는 책에서 시민권력을 위한 물적 기반의 재구성을 위하여 조세정책의 양수역할과 사회적 경제의 실천을 통한 삼투막 기능을 제안한다. ‘정부에 의한 양수와 삼투막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며 강화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12장 ‘조세개혁과 사회적 상속에 대하여’, 13장 ‘사회적 혁신과 전환을 위한 로드맵’, 14장 ‘협력과 공유의 사회를 꿈꾸며’ 등에 잘 나타나 있다.

한편 저자는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시민의 존엄과 탁월성을 구현하는 기본소득과 기본자산 및 선택적 복지청구권 도입을 주장한다. 나아가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라는 기존 경제학의 이론적 허구를 폭로하면서, 역사적 사회적 선택적 그리고 시천주의 존재로서 인간이 지닌 가능성의 미래를 이야기한다. 인간 본연의 모습에 기초한 사회주의를 시원적으로 고민했던 사를 푸리에와 이를 실현하려 했던 로버트 오웬, 그리고 20세기 일본 시민사회의 전설로 남아 있는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 등을 2장 ‘인간품성에 대한 재발견’, 4장 ‘형제애적 실천에 대하여’ 등에서 살펴보고, 한국인들의 혈통 속에 흐르는 공동체적 유전인자 밈과 풍속을 5장 ‘한국역사에서 배우는 향촌의 자치운동’에서 조명하고 있다. 또한 명백하게 한계에 도달한 자본제적 시장경제의 문제점과 성격을 고발하고 대안을 담은 내용을 3장 ‘자유주의에 대한 성찰과 비판’, 6장 ‘사유재, 공유재 및 관계재 그리고 행복’, 7장 ‘길 잃은 자본주의 위기에 대응하는 다양한 흐름’, 8장 ‘자본의 탐욕에 갇혀 있는 기업사회 비판’ 그리고 9장 ‘시장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을 위하여’에 담았다.

모든 것은 정치로 통하고 정치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듯이, 현재 한국사회 현안의 모든 근원은 정치제도와 절차적 과정의 결함에 있으며, 이를 직업적으로 다루고 있는 정치인들이 일차적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11장 ’한국사회, 새로운 정치가 필요하다’, 15장 ‘행정사법관료는 공복인가 관비인가’는 적폐가 청산되지 못한 역사적 한계와 제도의 결함 뒤에 숨어 기회주의적 행위를 일상적 관행으로 삼아온 행정사법 관료제의 폐해를 지적하는 글이다. 저자는 국회 구성에 있어서 100% 연동비례제, 시민소환제 및 시민발안과 연동된 국민투표 등 직접민주제 도입은 촛불시민혁명 이후 이제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인간다움을 보장하는 최저임금제와 노동시간 제한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하며, 한국 경제 규모에 걸맞는 사회안전망이 구축되어야 마땅하다. 이는 현대국가에 있어 정언적 의무사항에 해당한다. 핵심은 시행의 여부가 아니라 의지를 담아내는 해당 정책의 정합성과 현실성, 일관성의 문제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1장 ‘시대의 현안’과 17장 ‘스핀햄랜드 및 노동자기금의 경험에 대한 성찰’에 담았다.

 

저자소개

저자 : 이래경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금속공학부 입학 후, 1975년 서울대생 김상진 할복자살 사건과 1980년 광주민주항쟁과 관련된 일련의 시위로 두 번 제적을 당했다. 서울대학교 공대생으로서는 처음으로 1996년에 명예졸업장을 취득했다. 다양한 사회 경험 후 독일의 대표적 기계공업사와 합자한 (주)호이트한국 대표이사를 27년간 역임했다. 민청련 발기인 및 초대 상임위원, 민주기업가회의 회장, 한반도재단 이사 및 운영위원장, 국민주권연구원 상임이사를 지냈으며 지역 시민사회 중심의 보살핌 운동을 지향하는 사단법인 일촌공동체를 설립했다. 복지국가 소사이어티 공동대표를 지낸 후 현재 사단법인 다른백년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철든 이후 시대와 사건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너와 내가 우주이고 역사’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서로 만나야 연대가 있고, 진보의 방향으로 ‘다른 백년’이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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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2020/04/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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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느끼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은 의심에 여지가 없지만, 이러한 돌출사태가 새로운 세계질서(NWO, New World Order)의 출범을 알리는 왕좌의 역할을 할지, 또는 많은 이들이 학수고대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는 것에 머물지, 의견이 나뉘어 있다.

 

The COVID-19 Game-Changer

COVID-19는 게임체인저

지난달 중국에서 처음 시행하고 이후 서구 전 지역으로 확산된 COVID-19에 대한 현재 같은 엄청난 봉쇄적 방역조치를 세계는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다.

오로지 공공보건이라는 이유로, 마치 계엄령이 내려진 듯, 수 주간 고립되어 식료품과 의약품 그리고 은행거래와 같은 기본적 서비스 외에는 외출을 금한 적은 지난 전쟁의 시기에도 없었다.

전례가 없는 사태로 인해 어떤 물리적인 충돌(전쟁)보다 급격히 국민경제가 황폐화되면서, 국유화와 공적 구제의 논의가 시작되고 있으며 시민집단들은 어느 때보다 정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빠졌다.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벌어지고 우리들 삶이 며칠 사이에, 극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룻밤 사이, 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서구인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연극하듯이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사실들에 대해, 겨우 정신을 차려가며 코로나바이러스가 새로운 질서NWO를 가져올 왕좌의 출현인지, 모두가 학수고대 하였듯이 세계화에 치명타를 날리는 사건이지, 두 개의 입장으로 나뉘어져 논쟁이 시작되고 있다.

 

NWO vs. Anti-Globalization

새로운 질서NWO vs 반세계화

각 입장마다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관점들을 지니고 있다.

새로운 질서NWO라는 관점은 서방의 정부들이 경제의 주요한 영역을 통제하고 장악하거나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내부에서 다시 두 개의 상반된 입장(사회주의로 이행과정이냐, 본질적으로 파시즘화이냐)으로 갈라진다.

이들에 의하면, 일단 초기에는 각국 정부가 돌발적 사태에 대해 독자적이지만 비슷한 유형의 대처를 진행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동적인 노력을 통하여 지정학적 또는 지구적 차원의 일반적 계획을 수립할 것이고, 현재의 긴급한 의료위기 상황에 대응한 ‘지구적 정부’의 구축을 위해 노력하면서 결국은 모든 영역에 걸쳐 ‘지구적 정부’의 영향이 커지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면에 반세계화라는 입장에서는, 트럼프와 몇몇 서구 지도자들처럼 즉각적으로 전략적 영역의 산업에 대한 부품공급체계(supply chains), 예를 들어 제약과 의료기기 생산, 등을 해외기지에서 국내로 회귀시키기를 원할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지구는 결코 평평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 경제적 ‘자국우선’주의의 회귀경향을 사회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산시킬 것으로 보고 있다. 국경개방, 자유무역, 유엔조직 등은 과거의 산물이며, 국가주의라는 시대정신, 국경강화, 공정한 무역(관세징수), 정치적 다자주의의 축소 등으로 대치된다는 것이다.

 

The Death of The “Old World Order

구질서의 종말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에 관한 상기의 두 가지 관점 중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날지 또는 두 관점이 서로 섞이면서 하이브리드적 시나리오로 진행될 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구질서(OWO, Old World Order)는 결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구질서OWO란 단극체제, 양극체체 또는 다극체제 중 무엇이라 칭하던지, 미국과 소련 또는 중국 간의 내부경쟁을 통하여 하나의 세계를 지향 하던 경향성을 의미한다.

이런 흐름은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역류하기 시작했으며 주로 통상분야에서 강하게 나타난 반면에 국가 간의 국경선을 넘나드는 인적 자유이동에는 미미한 수준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COVID-19 발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뒤늦게나마 협력적 대응이 가장 효과적 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물론 트럼프가 선두에 서서 시작했지만 많은 국가들도 역류적인 경향에 따라 자국의 이익에 우선하려는 본능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과 경향은 신자유주의가 가르치는 국제관계에 대한 교의, 즉 같은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는 국가들은 기본적으로 같은 행동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불신하는 것이며, 실제로 신자유주의적 교의가 증명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소위 세계적 명사들에 의해 인용되었던 온갖 화려한 언사와 형식과 현란함을 내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추구했던 예의 협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은 신속하게 ‘신자유주의’를 포기하고 ‘신현실주의’로 돌아섰다.

 

The NWO

새로운 질서

지구적 규모의 위기가 초래되면서 새로운 질서이론NWO이 추구하는 변화가 이루어 질 듯도 싶다. 지난 시기의 비협조적이었던 혼돈상황에서 벗어나 보건위기에 대응하는 긴급조치를 통하여 보다 협력적 방향으로 나가는 것은 자연스런 해법이며, 새로이 형성된 국유화된(nationalized) 경제권(특히 EU 안에서) 간에 형성될 합동재건기금(joint reconstruction fund) 그리고 정기적으로 실시될 다자간의 봉쇄훈련이라는 ‘비상법규’를 매개로 경제적 정치적 영역으로 확장되어 갈 듯 하다.

그러나 Schengen Zone(유럽 26개국이 참여한 무관세 지역)은 이번 위기를 통해 최소한 원형 그대로의 형태로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며, 지난 몇 주간 실시된 방역의 봉쇄라는 연쇄적 퇴행(reaction)과정에서 개별국가마다 자신의 이해를 방어하기 위해 어떻게 반응했는지 결과에 따라 향배가 결정될 것이다.

이번 위기 또는 유사한 사태가 향후 전개될 경우, 국가단위(또는 EU라는 지역단위)에서 즉각적인 봉쇄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아마도 주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이런 상황에 처하면 개별국가 단위에서 생존을 위하여 폐쇄적 자급자족의 양상을 보일 것이고, 이는 실제적으로 지역단위의 중앙 결정에 따라 협력한다는 기존 합의에 반하여, 역설적으로 반세계화의 교의에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Anti-Globalism

반세계화

실제 지속적으로 반세계화적 시나리오를 향해가면서 개별국가 단위에서, EU같은 초국가적인 지역단위 대신에, 자국 내 유기적이며 자급자족의 경향을 내보이면서, 한편에서는 여전히 과거에 추구하였던 세계화라는 강력한 전설(legacy)속에 갇혀 있으면서도, 독자적인 국가주권을 더욱 강화하려 할 것이다.

이는 필자가 연전(年前)에 묘사한 트럼피즘의 경향이 현실화되는 것을 의미하며, 성향이 같은 국가들이 모여 가치와 이해를 공유하면서 신자유주의와 신현실주의가 모순적으로 결합된(twist) 형태로 협력을 모색해 나갈 것이다.

기존 세계화의 종말은 중국이 주도하는 일대일로(BRI)에 가입하는 것보다 트럼피즘을 수용하는 소수의 국가들에게 이점을 가져다 줄 것이다. 전자(BRI)의 경우에는, 중국이 미국보다 2개월 먼저 겪은 COVID-19로부터 회복된 장점(다시 재발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에서 특별한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후에 전개될 지구적 규모의 체제 변화에서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취해야 하는 접근은 거대전략의 이해(利害)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복잡계 이론과 전략사고(Chaos Theory & Strategic Thought)에 의거하여, NWO의 관점에 따라 비대칭적인 세계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다시 표현하자면, 트럼피즘을 추구하는 미국은 반세계화 모델을 선호하는 반면에 중국은 새로운 질서NWO모델을 지지한다.

 

Predictable Constants

예측가능한 상수들

앞의 두 가지 상반된 관점 중의 하나 또는 하이브리드적으로 미래의 결과가 나온다 하더라도 몇가지 변하지 않을 상수들이 존재한다.

우선은 국제적 백신 캠페인의 성공 여부에 따라 사회적 세계화라는 사람들의 자유왕래가 급격히 축소되면, 국가단위에서 과거 서구사회에서 기본적 자유로 묘사되었던 내용들을 희생시켜 가면서라도 개별정부가 스스로를 위하여 전례없이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회적 변화의 하나로 모든 시민들은 일정 나이에 이르면 군대복무와 같이 의무적으로 공공의료 봉사에 참여하여 향후 또 다른 보건위기가 발생하면 의료진을 대신하게 될 것(또는 긴급상황 시 정부의 계획에 의하여 해당되는 정부조직 내 또는 사회봉사에 대체근무)이며, 또한 대중언론매체들에 대한 검열관리가 강화될 것이다.

경제적 측면에 있어서도 개별정부들은, 이를 사회주의적이라 부르던 파시즘적이라 칭하던, 경제활동에 대한 통제를 늦추지 않을 것이며, 개별시민들이 정부에 보다 많이 의존하게 되는 대신 사회적 혜택(이전소득 등)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들은 새로운 질서NWO와 반세계화 관점의 차이만큼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국가 간의 관계가 지구적 규모의 긴밀한 협력을 유지하던가(NWO), 협력을 기피하던가(반세계화), 아니면 지역적 수준에 집중(하이브리드)하는 형태를 취하게 될 것이다.

 

Concluding Thoughts

결론적 내용들

새로운 질서의 도래가 이루어질지, 아니l면 기존의 세계화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지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어떤 결과가 이루어지던, 현재의 상황은 세계가 수년 전부터 염려해 왔던 블랙스완(검은백조, 아주 예외적인 상황)의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개별적 방역의 봉쇄조치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강화되어 갈 것이며, 결과적으로 서서히 현존의 질서를 대치하며 새로운 세계의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제목처럼 던져진 화두에 대한 확실한 모습이 언제쯤 이루어질 것인지 시간적 프레임은 불확실하지만 한가지 가장 중요하게 지켜보아야 하는 변수는, 진행중인 위기로부터 다양한 개별국가들을 지원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선호하는 방식인 반세계화와 중국이 지향하는 새로운 질서NWO간에 이루어지는 경쟁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듯이, 중국이 위기로부터 먼저 회복되어 세계를 돕는데 앞서 나가는 반면에, 이러한 상황은 차후 트럼프가 취하는 행보에 따라 전향적인 방향으로 변할 수도 있다. 누가 승자가 되던 누가 패지가 되던 누가 웃고 누가 울게 될지는 알 수는 없어도, 위에 언급한 세가지(NWO, 반세계화, 하이브리드)의 시나리오에 따라서 세계는 개선되거나 악화되는 두 가지의 방향 안에서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이 칼럼 기사는 ‘One World’에서 발췌된 것입니다, 2020-03-20

Andrew Korybko

모스크바에 주재하는 미국인으로 아프리카-유라시아에 대한 미국전략, 중국의 일대일로 및 하이브리드(이념선전, 제재, 문화, 홍보조작 등)전쟁에 대한 국제정치 전문연구자

금, 2020/04/17-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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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고든 바이런【1】은 장시〈Childe Harold’s Pilgrimage〉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자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었다.”(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 는 말로 소감을 표현했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우리는 이렇게 표현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 보니 우리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We awoke one morning and found ourselves to live in another world).

코로나-19 전염병이 맹렬하게 확산 중인 상태에서 코로나-19 이후의 변화된 모습을 예측하는 것은 너무 주제 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19가 초래한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태의 진행을 예의주시하고 이미 발생한 예후를 조심스럽게나마 진단해보는 것은 결코 이르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세계로 양분될 것이라는 점이다. 즉, 각국이 처한 조건에 따라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코로나-19 이후의 세상은 우리가 이전에 살았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이 되어있을 것이다.

세계1차대전이 끝날 즈음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된 스페인독감은 2년여에 걸쳐서 2,50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면서, 전사자 900만 명이었던 세계1차대전보다 2배 이상의 사망자를 냈다. 스페인독감이 전세계에 빠르게 확산된 것은 전쟁의 종식에 따른 각국 병사들의 본국 귀환 때문이었다. 전쟁이라는 이벤트가 없음에도 코로나-19가 이렇게 빠른 시일내에 팬데믹이 된 것은 지구촌의 세계화에 있다. 이번 코로나-19의 팬데믹은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체제 그 자체가 전염병을 팬데믹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기능을 하였다.

신자유주의의 두 가지 기제가 작동하였다. 하나는 자본과 무역의 자유화에 따라 무역의 주요 대상이 과거의 자원이나 완성품에서 소재와 부품으로까지 확장된 가치사슬의 글로벌화(Global Value Chain)에 따른 인적교류 증대다. 또 하나는 정부의 공공지출을 삭감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 교의에 따라 각국의 사회복지와 공공의료 프로그램의 축소다. 그 결과가 이번 코로나-19의 빠른 팬데믹 확산이다.

이렇게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한 지역에서 발생한 전염병이 순식간에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것을 사실상 막을 방법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가 구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이 코로나-19 확산의 고속도로 역할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한 대응은 가장 원시적인 방법인 국경을 통제하고 개인의 이동을 금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물론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각국의 통제의 수준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인 대응은 국경 통제다. 이번 사태로 셍겐조약에 따라 역내 국가들의 자유로운 이동권이 보장된 EU조차도 역내 국가들의 국경 통제로 셍겐조약【2】의 정신은 실종되었다.

국경 통제와 개인의 이동권 제한으로 특징되는 지구촌의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에서 양 극단의 모델을 보여주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혹자는 한국식 모델과 중국식 모델을 얘기하지만 오히려 더 극명하게 차이를 보여주는 곳은 남한과 북한의 모델이다. 북한은 아예 국경을 봉쇄하였고 국내적으로는 최장 40일간의 격리,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통해서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e) 정책을 실행했다. 반면 남한은 국경을 열어놓았으며 사회적 거리두기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방식으로 이뤄졌고 국제적인 호평속에서 개방모델의 전형을 보여줬다. 세계 각국은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 사이에서 어떤 국가는 더 강력한 통제를 다른 국가는 좀 더 느슨한 방식으로 대처방식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상태에서 불가피한 가택연금이나 다름없는 자가격리라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가장 원시적인 대책이지만 전염병을 차단하는 가장 강력한 조치다.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국가간의 자유로운 이동은커녕 집밖도 못나가는 기묘한 형국이다. 각국은 말 그대로스트레스 테스트【3】를 받고 있는 중이다. 각국은 생존을 위해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개인의 자유에 대한 통제와 함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쏟아내면서 이 힘겨운 스트레스 테스트를 겪고 있다.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와 역학조사를 위해 개인의 사생활을 완전히 발가벗기고 있는 상황이 뉴노멀이 되었다.

남한과 북한의 두 모델은 글로벌한 세계체제 속에 편입된 정도를 반영한 대처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북한 모델은 미국과 UN안보리가 강요한 경제제재로 강제된 모델이다. 북한이 방역물자 등을 외부에서 들여올 방법이 없는 조건에서 국경을 봉쇄한 것은 최선의 선택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남한은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자본시장, 상품시장, 인적교류 등 모든 분야에서 개방하였고, 이후 각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전면적으로 깊숙이 편입되었다. 이런 조건에서 남한의 코로나19에 대한 개방적 대처 또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잘 알다시피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워싱턴 컨센서스【4】의 이데올로기에 따른 결과다.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라틴아메리카를 시발로 1990년대 동구 사회주의권의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과 함께 가속화되었고 이어서 아시아 외환위기를 거치고 각국이 FTA를 체결하면서 지구촌을 거침없이 세계화 하였다. 거침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흐름이 지구촌 주민들과 국가들을 양극화의 정점으로 끌고 가던 순간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였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천지는 불인(天地不仁)하다고 했듯이 코로나-19는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강타하였다. 공공의료시스템을 갖춘 곳은 그나마 덜하지만 이를 갖추지 못한 나라들의 가난한 사람들을 정확하게 타격하였다. 코로나-19의 국가간 전파 초기에 숙주가 된 감염자들은 비즈니스든 아니면 여행이든 해외를 나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국가 내의 지역감염이 되는 순간 무방비 상태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인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주요 표적이 되었다. 코로나19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층들이 바로 이들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만들어낸 부의 양극화로 가난해진 사람들, 그리고 국가의 공공지출 삭감으로 공공의료시스템이 망가져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노인 등 병약자들이 코로나19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것이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지나간 곳에서는 ‘국유화’ 단어는 사라졌고 ‘민영화’가 이를 대체했다. 이런 과정에서 의료의 공공성은 약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빈민층은 보험에 가입하지 못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는 ‘국유화’라는 단어를 다시 소환하고 있다. 스페인은 의료시설을 일시적으로 국유화했고 미국은 전시법까지 동원하였다.

양극화로 불평등이 만연된 세계에서 코로나-19는 단계적으로 빈민층에게 고통을 안겨줄 것이다. 먼저 코로나-19에 대한 예방, 진단, 치료, 자가 격리 등 코로나-19에 대한 노출과 대처에서 불평등 문제다. 미국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한국의 경우 진단에서 치료까지 무료인 반면 미국의 경우는 정부가 개입하기 전까지는 공공의료제도의 취약으로 민간의료보험이 없는 경우 400만 원 정도의 진단비용이 들었다. 확진 판정을 받았지만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되지 못하는 개인은 수천만 원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치료 자체를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재택근무가 확산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빈민층이 종사하는 직종은 재택근무와는 거리가 멀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밀집된 곳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업무 특성상 마스크를 착용할 수도 없고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는 직종으로 코로나-19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가 야기할 다음 단계는 경제 불황이다. 이 불황에 따른 고통을 1차적으로 겪는 층도 빈민층이다. 구체적으로 서비스업종의 자영업자, 고용안정성이 없는 시간제 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 월세입자 등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다. 코로나-19가 짧은 기간에 종식되지 않고 상대적으로 장기화되면 이들의 삶은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대응책이라고는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사회적 격리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길거리 자영업이 1차적으로 타격을 받고, 이어서 노동유연화(해고의 용이성)가 높은 국가들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순차적으로 고통을 겪게 될 것이다. 영업 단절을 겪는 자영업자들과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사라진 노동자들에게 마트의 사재기 뉴스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수입이 끊어진 상태에서 매월 꼬박 꼬박 지불해야 하는 상가 임대료 및 주택 임대료는 이들에게 지불 위기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가장 노출된 사회가 미국이다.

코로나-19는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지만 그 피해의 결과는 신자유주의가 주조한 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할 것이다. 각국은 신자유주의에 편입된 정도에 따라 그에 걸맞는 정도의 대처와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말을 뒤집으면 코로나-19 사태가 몰고 올 빈민층 고통 편담을 전사회적 고통분담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회적 연대의 힘에 따라 그 사회적 비용은 각 나라별로 달리 나타날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민중의 사회적 연대의 힘이 얼마나 조직되어 있느냐에 달렸다. 사회적 연대의 힘이 약한 사회는 그만큼 더 사회적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코로나-19로 가장 위험한 국가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에서 순식간에 코로나-19가 확산된 것은 트럼프 정부의 어설픈 대응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미국이 신자유주의 종주국이라는 점을 간과하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교의가 작동되는 시스템 그 자체다. 2008년 금융위기의 발원지임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처방을 하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체제 작동 메카니즘을 유지한 채 모기지로 집을 구입했던 서민들과 미국 밖의 나라들에게 고통을 전가하면서 임기응변식 땜질 처방으로 위기를 넘겼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는 형편없는 공공의료시스템, 세계에서 가장 쉽게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는 노동유연성, 방역물자의 해외 아웃소싱으로 인한 미국 내 제조업 부재 등 미국의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미국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저항력이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 실업수당 신청 숫자다. 본격적으로 코로나19가 확산된지 일주일 만인 3월 셋째주(15-21일) 실업수당 신규 신청자가 328만 건을 넘겼다. 이 수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향후 단기간에 코로나-19를 잠재우지 못하면 1920년대 대공황 시기보다 훨씬 많은 실업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공포스러운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고용유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구조조정이 가능하게 만든 극단적인 노동유연화 정책 때문이다.

이런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발 빠르게 미의회는 2조2천억 달러(약 2천7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 패키지 법안을 통과시켰고 그 중 22.7%인 5천억 달러(616조원)를 2천5백억씩 실업수당(실업보험 포함)과 개인에 대한 지원을 포함하였다. 연소득 7만5천 달러 이하 개인에게는 1,200 달러의 현금을 지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응급처치를 하였지만 문제는 코로나-19를 조기에 통제하지 못하면 미국이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면 미국은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사회적 양극화가 정점에 이르러 빈부격차가 극심하고 공공의료 시스템이 형편없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종차별과 같은 편견이 심하며 총기 소유 자유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동과 같은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국가가 미국이다. 최근 미국에서 총기 판매 급증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미국이 코로나-19가 촉발시킨 미국-내 모순을 국내적으로 수습하지 못하면 그 불똥은 경제적 차원이던 전쟁 차원이던 미국 밖으로 전가될 것이다.

코로나-19는 현재 진행형이며 그 확산의 정도에 따라 지구촌에 어떠한 파장을 일으킬지 그 폭과 깊이에 대해 미지수다. 이에 대한 각국의 정책 또한 이제 시작 중이다. 코로나19는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흐름에 각 나라가 능동적이든 피동적이든 동승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서 신자유주의 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수십 년 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던 우리의 의식, 관념, 경제시스템, 국제질서, 국가 정책의 자율성 등 우리사회의 모든 가치와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사회적 연대 또한 테스트할 것이다. 코로나-19가 더 지나가봐야 알겠지만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결코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새로운 대안이 모색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1】 George Gordon Byron. 영국의 시인. 1788~1824.

【2】 1985년 프랑스, 서독, 네델란드, 벨기에, 룩셈부르그 등 5개국이 맺은 조약으로 국경 개방조치가 주 내용임. 이후 EU가 창설되면서 참여국이 확대되었다.

【3】 경제와 경제외적 변동에 대해 금융기업이 얼마나 대처할 수 있는지를 평가

【4】 1980년대 말 워싱턴에 소재하는 미재무부, IMF, WB 등이 개발도상국과 90년대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과정에서 관철한 정책들을 일컫는다. 공공지출 삭감 등의 긴축재정, 변동환율제와 외환시장 개방, FDI와 무역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탈규제 등의 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 이데올로기 컨센서스를 말한다.

 

김서진

(사)개성공단기업협회 상무 / 북한학(경제·IT)

토, 2020/04/1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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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주요 거리와 광장은 텅 비워가는 중에, 수많은 병원들은 혼잡과 고통 속에 빠져드는 것을 지켜 보노라면 가슴이 무너진다. COVID-19가 유럽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창궐하면서, 팬데믹 현상이 이후 세상을 바꿀 것이 보다 분명해지고 있다. 그러나 어떤 대처를 할 것이지 결정하는 오늘의 선택에 미래가 달려있다.

우선 코로나바이러스를 세계 공동(일반)의 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물론 이는 물리적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유사상황에 준하는 물자이동의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위기상황에는 본능적으로 위축되고 이기적으로 되기 싶다. 이러한 반작용은 이해를 할 수 있지만 바로 패배로 가는 길이다. 혼자 해결하려 들면 싸움은 길어질 수밖에 없고, 경제적 인명적 피해는 훨씬 커지게 된다. 적(敵)은 폐쇄된 자국주의를 자극하지만, 국경을 넘어선 협력을 통해서만 이를 격퇴시킬 수 있다.

선진국가들뿐만 아니라 취약한 국가군들과 이해가 충돌되었던 지역 간에도 팬데믹을 퇴치하기 위한 국제적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점을 지난 G7 외교장관 모임과 주요한 국제회의 때마다 강조하였다. 유럽연합(EU)은 이러한 노력의 일부이자 주도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

바로 지금이 연대라는 표현이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다행히 프랑스와 오스트리아가 마스크 수백만 장을 서로 교환하고 독일이 프랑스와 이탈리아 환자를 자국 내 병원으로 수용하면서 이미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 자국주의라는 조치를 넘어서서 국가간 연대로.

해당 책임부서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주요한 의료장비들의 공동구매가 용이해지고 경제촉진 구제정책에 함께 협력하고 외국에서 곤경에 빠진 국민들을 자국 내로 귀환시키는 영사활동의 협력이 이루어 지고 있다. 유럽의회에서 의결이 이루지면서, EU지도자들 간에 유럽단위의 위기관리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처하기 위한 공동전략에 협력적 노력을 한층 강화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다.

COVID-19는 국간 간에 또는 체계경쟁을 향한 전쟁이 아니다. 이미 팬데믹의 진행단계에 맞추어 유럽과 중국 그리고 기타 지역 간에 상호지원과 연대가 상호적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전염병이 발발되자 유럽은 중국을 지원하였고, 이제는 회복된 중국이 전세계에 의료자재와 의료진을 보내주고 있다. 지국적 연대와 협력의 귀중한 사례가 되고 있고 이를 규범화해야 한다.

COVID-19를 접근하는 한가지 선택은 이를 통해 역사를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의 내용이 무엇이 될는지 아직 모르지만, 팬데믹이 주는 메시지와 결과에 대해 EU가 중국과 미국이 함께 공동적인 노력을 하도록 일치단결하여 목소리를 내야 한다. 상기 3개의 힘들이 함께 같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야만 G20와 UN 역시 달라 질 수 있다.

단순히 정부간의 국제적 공조를 넘어서서, 과학자와 경제학자 그리고 정책입안자들 간에도 협력이 확산되어야 한다. 2008년 세계경제가 수직으로 추락하는 위기에서 구출하는데 G20의 협력이 핵심적 역할을 한 경험이 있다. 같은 선상(線上)에서 다시 한번 그리고 긴급하게 주요 지도자들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다.

국제적인 협력을 추진하는데 4가지 우선적 사항이 있다.

첫 째, 국제적인 공공선을 실행하기 위하여는 방역조치와 백신개발에 모든 자원을 공유해야 한다.  둘 째, 금융과 재정적 구제조치와 국제통상의 보호에 힘을 합하여 경제적 타격을 최소화 해야 한다.  셋 째, 건강책임 당국이 긍정 신호를 보내면 닫혀진 국경들을 호혜적 방식으로 다시 개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음해적 정보를 퍼트리는 것을 차단하기 위하여 함께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있었던 G20 회상회의에서 상기 사항들이 일반적 형식으로 언급되었으나, 정말로 필요한 것은 당장 그리고 수주 내에 다자적이고 구체적인 실행이 유지되고 충분할 만큼 추가되어야만 한다.

추가하여 아프리카에 특별히 중점을 두어야만 한다. 지난 2014-16 년간에 있었던 에볼라 출현으로 이미 경험이 축적되어 있기는 하지만, 전 대륙을 통하여 의료시스템이 전반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감염자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많은 빈곤 국가군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비공식 경제를 통하여 하루하루를 연명해 가야만 한다. 이들 국가군에서는 상하수도 시설도 없는 상태에서 집단적인 캠프생활을 하기 때문에 손을 씻거나 물리적 거리를 유지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전염병과 싸우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이 필요한데, 빈곤국가들은 재정에 대해 다음 3가지 자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 외국의 투자, 송금 그리고 관광인데. 그러나 모두 현재 상황에서 크게 타격을 받고 있다. 세계적으로 투자자본은 안전지대로 신속히 흘러가 버렸고, 돈을 벌러 외국에 간 빈국의 노동자들은 실직을 당하여 본국으로 송금할 여력이 없다.

현재 세계적 규모의 불황에 직면하여 있는 가운데, 빈곤 국가들이 파탄 상황에 빠지게 하지 않으려면, 재정적 지원과 신용의 제공이 절실하다 – 그것도 매우 긴급하게. 국제금융기구와 (선진국)중앙은행 간의 협력만이 이를 풀어갈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전반적으로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장기적인 대립을 피할 기회가 있다. 벌써 경쟁 국가들 간에 협력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오가고 있다. 심각하게 감염된 이란에 대해 적대적 이웃이었던 UAE와 쿠웨이트 등이 지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누구라도 동시에 다자(면)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는 없는 일이다. UN 사무총장이 촉구하였듯이, 현재의 위기를 평화를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 동안 세계는 비협조적으로 위기의 상황을 맞이했고 경고의 신호를 무시했으며 대부분 국가들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제는 분명해 졌다 – 모두가 힘을 합치는 것만이 앞으로 전진하는 길이다.

 

출처 : Project Syndicate 2020

Josep Borrell

유럽연합 국제관계 및 안보정책의 책임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의 부위원장

 

<보충칼럼>

국제적 문제는 국제적 해결을 요구한다- G20의 역할론

급격히 악화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무엇보다 공중 보건 측면에서 비상사태이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전파되어 정부가 질병을 억제하고자 극적인 조치를 취했음에도 바이러스는 급속도로 번지면서 국제경제에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됨에 따라 수요 감소, 공급망 교란, 불확실성 증가가 이어지면서 일자리 감소가 만연하고 회사가 폐업하고 기타 2차적 경제충격의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근대에 발생한 가장 엄청난 보건 및 경제의 위기임이 분명하다.

사회의 접촉망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바이러스 전파를 얼마나 성공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따라 코로나-19의 경제적 충격의 영향력이 좌지우지될 것이다. 신속하고 효과적인 조치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사망자 및 확진자의 급격한 증가, 보건 시스템의 과부화, 기업의 정상 운영 불가능, 세계 경제의 심각한 결과가 초래할 것이다. 경제 성과와 보건(수명) 사이의 밀접한 상관 관계를 고려할 때 경제가 어려울수록 보건부문 또한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영향을 초래하게 된다.

각국 정부가 대내 정책을 점차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지만 동시에 국제적 차원 또한 경시해서는 안 된다. 만약 코로나-19가 빠르게 확산한다면 해외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국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예를 들어 호주의 경제적 번영은 코로나-19의 지역적 확산뿐 아니라 무역 상대국 및 세계 경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달려 있다. 초연결 세계에서 이러한 점은 모든 국가에서 통용된다.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된 효과적인 보건 및 경제 정책과 가능한 협력에 대해 불가피한 이해 관계를 갖는다.

G20 정상들은 이와 관련하여 코로나19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 ‘일반종합행동계획’에 속히 합의에 이르러야 한다. G7은 공동 대응을 논의하고자 비상 화상회의를 소집하고 있다. 이에 G20은 코로나-19의 국제적 대응을 위해 주된 역할을 담당하면서, 국제적 권한에 따른 국제적 대응을 통하여 폭넓은 회원국 (주요 선진국 및 주요 개발 도상국 모두 포함)을 포용해야 하며, 세계 금융위기의 성공적 극복에 기여하여야 한다.

G20 창설의 주요 추진국인 호주는 현재 G20 정책에 목소리를 낼 특별한 책임이 있다. 코로나-19 확산방지용 국제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집단간섭 및 안정적으로 세계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조정 정책 모두 G20 대책에 포함되어야 한다.

G20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필요한 세계적 리더십을 보여줄 기회와 의무가 있다. 코로나19는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시장의 신뢰 상실과 변동성 증가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금융 위기를 극복한 것처럼 G20 정상들은 전 세계 기업, 시장, 시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증가하는 불확실성과 잠재적인 경제 혼란에 맞서 신속하고 결단력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현재까지는 국가 간 조정 또는 협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국이 이탈리아에 보낸 의료 물품과 같은 쌍방의 계획을 통해 현재 이탈리아 내 코로나19 발생을 약화시키며 인명 구조에 도움을 주고 있다. 더 많은 국가들이 함께 하면 더 많은 결과를 이뤄낼 수 있다. 국제적 협력을 통해 다른 국가와 함께 하면 국내에서 일어나는 어려운 상황을 더욱 쉽게 이겨낼 수 있다. 반대로 인종집단 및 노인계층을 차별하는 반사적인 대응은 다른 국가들이 위기에 대처하기 어렵게 만든다.

G20 정상들은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필수 의료물품 이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는 조정방안에 합의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해당 방안에는 최소한 핵심요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한다.

첫째로 G20 정상들은 필요한 모든 의약품, 의약품, 소독제, 비누 및 개인 보호 장비의 자유 유입에 대한 수출 금지 또는 제재를 풀어야 한다. 국제 팬데믹에서는 필수 장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할 필요가 있다. 세계 보건위기 동안 ‘근린궁핍화 (beggar-thy-neighbour)’ 정책에 의존하면 다른 국가에 경제적 어려움 이상으로 훨씬 큰 피해를 주어서 궁극적으로 자국에도 피해를 입히게 될 것이다.

둘째로 국가 정상들은 필요한 의약품의 가격을 낮춰야 한다. 이는 관세, 수입 쿼터 및 정부 부과 비용을 철폐함으로써 가능하다.

그리고 셋째로 정부는 최소한 세계 최빈국에서도 코로나-19에 대응할 수 있도록 공공보건을 위한 기금을 확대하거나 세계 보건 기구의 코로나-19 연대대응기금에 대한 사업, 자선 및 개인 기부를 장려함으로써 공공보건 재정의 규모를 조정해야 한다.

정부는 시민보호를 절대적으로 우선시해야 하면서 세계 정상들은 경제침체에서 벗어나 세계경제의 신뢰, 성장, 일자리를 복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할 것임을 함께 다짐해야 한다. 세계 정상들이 타격을 받은 분야 및 중소기업에 공동으로 지원하겠다고 합의하면 불확실성이 완화되고 신뢰가 구축되며 중요한 시기에 경제가 기능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방안에 대한 G20 정상들의 논의는 팬데믹에 대응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증진하고 코로나-19의 사회적, 경제적 충격을 최소화할 것이다. 호주는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대응을 주도할 기회 및 책임을 지닌다.

위기를 각국이 개별적으로 대처하려 하면 보건 및 경제적 비용이 더욱 커질 뿐이다. 어디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타개하려면 진정한 국제적 대응이 필요하다. 바로 G20라는 조직을 통해서 가장 효과적이고 합법적인 방안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들의 정상들은 지체하지 말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출처 : 동아시아포럼(East Asia Forum), ANU. 2020/03/19.

존 WH 덴톤

파리에 기반을 둔 국제상업회의소 (ICC) 사무총장 그리고 피터 드리즈데일, 호주 국립대(ANU) 공공정책학교 부설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소장이자 명예교수

 

목, 2020/04/23-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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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메르스 참사가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으로 이어진 한국의 당대 정치사를 배경으로 하여, 한국 정부는 코로나19에 매우 기민하고 체계적으로 대응했다.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성공적인 방역에 있었겠으나, 그 의도하지 않은 부대작용으로서 한국은 어느새 세계 민주주의의 선진국으로 우뚝 발돋움한 형국이 되었다. 절제되지 못한 신자유주의화의 파고 속에서 사회질서의 방향을 잃은 듯 보이는 영국과 미국의 자국 비판적 언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방역에 대한 칭찬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의 평가는 애초에는 매우 야박했다. 독일의 헌법학자는 한국의 확진자 동선추적 체계를 문제 삼아 보건 파시스트 국가라는 단어를 썼고, 프랑스 정부의 과학자문위원은 한국의 방역체계가 극단적으로 사생활을 침해하므로 유럽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대중적 변호사가 한국을 중국과 다르지 않은 감시국가라고 폄훼한 칼럼이 발표되기도 했다. 그러나 유럽 대륙이 미국보다 먼저 코로나19의 중심지로 대두하면서, 유럽 언론의 태도는 바뀌었다. 이탈리아의 스키장이 코로나19 전파의 진원지로 알려지고, 정부의 사회적 거리 두기 호소에도 젊은이들이 클럽에서, 그리고 이후에는 집에서 파티 모임을 그치지 않자, 마침내 국경폐쇄와 주민 이동제한/금지 조치들이 시행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동의 자유라는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그런 비상조치들이 지속하면서, 유럽의 경제적 손실과 국민 생활의 질 하락은 ‘2차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급속도로 확대되었다.

그러자 유럽에서 한국의 방역을 보는 관점이 점차 너그러워지더니 결국에는 미국·영국의 여론을 따라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관심을 표명하는가 하면, 독일에서는 정부 인원을 파견하여 한국의 방역을 배우고자 했다. 독일 보건장관은 확진자 위치추적 앱의 필요성을 제안했다가 정부 회의에서 거부되었음에도, 여전히 앱 개발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위치추적이 아닌 블루투스 사용 앱을 개발하여 확진자와 근거리에 있는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애플과 구글이 연합하여 블루투스 방식 앱을 개발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그뿐 아니라 처음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의 상징이던 마스크가 이제는 구미에서도 전략물자 대우를 받으면서, 때아닌 ‘현대판 해적 행위’까지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앱 사용과 함께 공공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 오스트리아는 현재 이동제한 조치를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그와 같은 시도를 하지 못한다. 시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독려하고 싶어도 의료인에게조차 마스크가 부족하고, 이동제한 외의 다른 대안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식의 표적 검사를 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확진자 동선 추적이 필요한데,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법적인, 또 국민정서상의 문제 때문에 그것을 시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선진국이자 인권 수호의 전진기지인 서구 그리고 미국에서 이렇게 강력한 주민 이동제한 정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프랑스 르 피가로지의 아시아 특파원은 프랑스 엘리트의 오만을 꾸짖는 기사로 자국 변호사의 한국 폄훼에 대응했다. 한마디로, 이 비상상황에서 ‘뭣이 중헌디?’라고 물은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절대시하느라 이동권 제한이라는 기본권 침해를 기약도 없이 지속하는 프랑스 사회의 모순을 따갑게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한국이 국경폐쇄는 물론 주민 이동제한조차 시행하지 않은 민주적 방역 선진국으로 인식되면서, 이제 민주주의 선진국에 대한 새로운 판별기준이 등장하게 되었다. 즉 개인정보 보호가 더 중한가 아니면 이동의 자유가 더 중한가? 생명권이 더 중한가 아니면 사생활 보호가 더 중한가?의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반면 정작 한국에서는 확진자 동선추적을 허용한 특별법의 합헌성이나 그것의 실질적 적용 실태 등에 대해 본격적인 논의나 감시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 물론 비상사태이기 때문이다.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개인정보 수집은 불가피하다는 암묵적 합의가 지배적인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전통이 약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월호·메르스의 이어진 재난 충격으로 인해서, 한국 사회에서 ‘사생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기적으로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생명이 우선이라는 절박감이 내재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국에 터진 n번방 사건은 한국 사회의 개인정보 보호 개념이 지나치게 무디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조주빈이 피해자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범죄를 일삼았을 뿐만 아니라, 권한 없는 공익요원이 주민의 개인정보에 불법적으로 접근하는 일이 너무 쉬웠음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또 그 와중에 한 주민센터 홈페이지에서는 n번방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8일 동안이나 공개했다.

법적 근거도 없는 해외 입국 자가격리자 전자팔찌 착용을 애교스러운 ‘손목밴드’라는 단어를 쓰며 실시하겠다고 해도, 반대보다 찬성하는 국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말하자면 저 프랑스 특파원과 함께 서구의 개인정보 보호가 생명권에 앞설 만큼 중하냐고 따지는 그 순간에, 우리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한 한국 정부와 시민의 인식에 대해서도 물어야 한다. 코로나19가 한국을 새로운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떠올리며 동시에 제기한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국가적 비상시에 이동의 자유뿐만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역시 어느 정도로 제한해야 합당한가? 그것의 부작용은 무엇일 수 있는가? 또 그런 기본권 제한이 정확히 비상시국에만 한정되도록, 시민은 국가권력을 어떻게 견제할 수 있는가?

정신없이 달려온 한국 민주주의 고속열차의 속도를 잠시 늦추어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하라고, 코로나19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발 빠른 진단키트 개발이나 혁신적인 정보통신 수준과 같은 과학·산업 측면뿐 아니라 수준 높은 시민정신으로 성공적 방역이 가능했다고 자부하는 현시점에서, 그런 자부심을 유지하고 후대에도 물려줄 수 있는 길은 바로 민주주의를 더 공고히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홍찬숙

현재 서울대학교 여성연구소 객원연구원, 독일 뮌헨대학교 사회학 박사, 전공영역: 위험사회 및 개인화 이론, 연구주제: 현대사회의 불평등, 사회변동, 페미니즘.

금, 2020/04/24-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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